[이미지로 보는 세상]'메가패스 장군'의 슬픈 초상

  • 입력 2001년 11월 28일 18시 21분


이미지에 대한 플라톤의 생각은 단호했다. ‘동굴’과 ‘침대’의 비유를 통해 플라톤은 이미지가 우리를 진정한 세계와 동떨어진 거짓 세계로 인도한다고 주장했다.

플라톤 식의 생각이 받아들여질 경우, 이미지는 문화의 주류는커녕 한 귀퉁이에 발붙이기도 쉽지 않다. 플라톤이 살았던 그리스에서 회화적 또는 조각적 이미지가 번영했던 까닭은 플라톤식 철학과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였지 그의 도움을 통해서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런 번영도 로마시대에 이르면 위기를 맞는다.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이른바 성상파괴 논쟁이 일어난 것이다. 성상파괴 논쟁이란 교회에 하나님이나 예수 등의 종교적 이미지를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다. 논쟁 초기에는 플라톤식의 생각이 적용되면서 이미지의 허용에 반대하는 입장이 힘을 얻는다. 예컨대, 예수의 이미지란 진정한 예수의 본질을 보여주지 못한 채 우리를 현혹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점차 이미지를 허용하자는 쪽의 의견이 설득력을 얻는다. 그 근거들 중 첫 번째는 이미지가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자에게 성경의 교리를 가르쳐줄 수 있다는 점이다. 교황 그레고리는 “그림은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에게 책이 해주는 역할을,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에게 대신 해 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제 이미지는 “문맹자를 위한 성경”으로 격상된다. 이런 근거 이외에도, 이미지가 성자의 모습이나 교리를 생생하고도 오래 기억시켜 준다는 점 등이 제시되면서 이미지가 허용된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는 슬프고 비장하다. 소설을 통해 이순신 장군의 칼은 차디찬 비가를 끊어낸다. 아들 면의 죽음, 한양으로의 압송, 백의종군, 삼도수군통제사로의 복귀. 이순신 장군의 슬픔과 고뇌를 그려내는 소설은 부패하고도 무능한 조선 조정, 거만하고도 노회한 명나라 원군, 그리고 침략자 일본군 사이의 아수라에서 차라리 무인(武人)으로 죽고자하는 장군의 결단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절정에 달한다.

“하루하루가 무서웠다. 오는 적보다 가는 적이 더 무서웠다. 적은 철수함으로써 세상의 무의미를 내 눈앞에서 완성해 보이려는 듯 했다.”

“나는 집중된 중심을 비웠다. 중심은 가볍고 소슬했다. 나는 결국 자연사 이외의 방식으로는 죽을 수 없었다. 적탄에 쓰려져 죽은 나의 죽음까지도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적이 물러가 버린 빈 바다에서 죽을 수 없었다. 나는 갈 것이다.”

결국 장군은 무인으로 죽었고, ‘칼의 노래’는 그 무인의 삶에 대한 글의 노래를 접는다. 그러나, 울림은 계속된다. 소설은 끝났지만 그 속에서 묘사된 장군의 슬픔과 고뇌는 생생하게 머리에 남아 가슴을 적신다. 글이 칼보다 더 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미지보다 더 생생하고 감동적일 수 있음을 ‘칼의 노래’는 보여준다.

텔레비전 광고의 영향으로 이순신 장군을 메가패스장군으로 인지하는 어린 세대들이 늘어나는 이미지의 시대. 폴랑거리는 흥미를 위해서 엽기와 폭력을 기꺼이 이미지의 중심에 삼는 시대. 문맹자를 교육시키고 문맹자에게 생생한 감동을 전해 주었던 이미지가 오늘날은 문맹을 부추기고 가벼운 가슴을 양산시키는 데 기여하지 않나 반성해 볼 일이다.

김진엽<홍익대 예술학과 교수>jinyupk@wow.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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