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은은한 매화향에 봄은 묻어오고…

  • 입력 1999년 4월 2일 19시 13분


다시 봄이다. 붉은 피처럼 강렬하게 터지는 꽃망울은, 봄이 희망이며 황홀한 도취임을 일깨운다. 박재삼은 바다를 마주하고도 ‘화안한 꽃밭같네 참./ 눈이 부시어, 저것은 꽃핀 것가 꽃진 것가’(‘봄바다에서’)하며 바다마저 꽃의 눈부심으로 비유하고 있으니, 봄을 맞이하는 기쁨과 환희가 그저 놀랍다. 그리고 그 봄의 선두주자는 단연 매화다. 설중매(雪中梅). 감히 입에 담기 어려울 듯 어떤 비장함을 간직하고 있는 꽃. 하나의 상징으로 승화하여 정신의 단련과 수련을 요구하는 가르침. 춘한(春寒)에 우뚝하여 접근하기 어려운, 그러나 눈부시게 아름다운. 폭발적으로 개화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꽃. 바로 매화다.

조선후기의 화가 전기(田琦·1825∼54)의 ‘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는 이를 잘 보여준다. 특히 그는 눈처럼 빛나는 매화, 초옥에서 운치를 즐기는 선비를 방문하는 지우(知友)의 붉은 도포, 그리고 산 사이의 푸릇한 녹색 점점을 봄의 풋풋한 생기로 결합한다. 깔끔한 색채 속에 매화의 높고 뛰어난 운취가 은은한 향으로 전달되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김지하는 방문하는 지우마저 물리치며 ‘머물려거든/매화봉오리/아조아조 향그럽게 머물라’고 하면서 ‘어렵게 수소문하여/ 나를 찾지마라’(‘편지’)고 선언한다. 이 그림처럼 뿜어내는 매화의 향기에 홀로 취하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조용훈(청주교육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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