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시효’로부터는 자유로운 몸이었지만 ‘역사의 시효’를 믿으며 그를 응징하려는 사람들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65년 12월 20대후반의 청년이던 곽태영(郭泰榮·63·백범독서회회장)씨는 강원도 양구에서 군납업을 하고 있던 안씨를 공격한다.
그는 칼로 안씨의 목을 두 군데나 찔렀으나 안씨는 세 차례에 걸친 뇌수술 끝에 극적으로 살아났고 그때부터 ‘심판자’들을 피해 더욱 필사적인 은신에 들어갔다.
민족정기구현회회장인 권중희(權重熙·63)씨는 ‘집요한 응징자’였다.
15세 때 ‘백범일지’를 읽고 백범을 민족혼으로 받아들였다는 그는 80년대초 안씨가 미국이민을 시도하고 있다는 신문보도를 접하고 추적에 나섰다.
권씨는 87년 서울 마포구청앞에서 몽둥이로 안씨를 공격한 것을 시작으로 91년 한 차례, 92년 세 차례에 걸쳐 응징을 계속했고 이 과정에서 암살배후에 대한 안씨의 ‘자백’을 받아내기도 했다.
‘최후의 응징자’는 박기서(朴琦緖·49)씨. 버스운전기사였던 그는 96년 10월 23일 인천 신흥동 안씨의 집을 찾아가 이른바 ‘정의봉’으로 안씨의 머리를 내리쳐 살해했다.
박씨의 집에서는 권씨가 쓴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 등 백범 관련서적 10여 권이 발견됐다.
〈문 철기자〉full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