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2년여 공백깨고 신작 「보트하우스」출간

  • 입력 1999년 3월 9일 19시 48분


‘작가의 욕망은 뭇대중의 욕망과는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단순히 좋은 작품을 쓰겠다는 정도가 아니라, 노벨문학상을 타보겠다거나 아니라면 X도, 포르노 비슷한 걸 써서 감옥에라도 한번 가보자는 정도의 패기는 있어도 좋은 게 아닌가.’

96년 가학섹스 동성애 그룹섹스 등 충격적인 성묘사를 담은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파란을 일으켰던 작가 장정일(37). 이번주 책시장에 신작 ‘보트하우스’(산정)를 내놓는다.

출판사의 자진 절판, 검찰의 사법처리 강행, 법정구속으로 2개월간의 옥살이, 문인들의 검열철폐 요구…. ‘내게…’이후 2년4개월간 그는 어떤 창작물도 내놓지 않고 두문불출했지만 세상은 그로 인해 소란했다.

그의 혀는 여전히 불온하다. ‘내게…’가 적나라한 섹스묘사를 통해 세상을 조롱했다면 ‘보트하우스’는 왜소해진 작가의 모습을 거칠게 폭로한다.

그의 눈에 비친 오늘의 작가는 ‘아파트든 자동차든 대중들이 욕망하는 것을 똑같이 욕망하며, 대중의 욕망을 모방해 순도 떨어지는 소설을 쓰는 양계장의 닭들’같은 존재다.

왜 이렇게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작가’를 발가벗긴 것일까.

교정지상태의 원고를 읽고 대구의 집으로 전화를 한 기자에게 작가는 “더 이상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속된 말로 이제 문학에서 손을 씻고 싶었다. 지난번 사건의 충격 때문은 아니다. 다시 글을 쓸 수 있으려면 맨 처음 글을 쓰려고 했을 때의 마음을 찾아야할 것같았다”고 털어놓았다.

처음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는 자신의 옛 작품으로 훌쩍 시간여행을 떠났다. 소설 도입부 작가의 분신 ‘나는’이 찾아 헤매는 구형 타자기 ‘클로버727’. 그의 추종자들로부터 ‘90년대적 감성의 시원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아온 ‘아담이 눈뜰 때’(90)의 첫 문장에 언급됐던 그 타자기다.

‘보트하우스’는 지금까지 그가 써온 모든 소설의 속편이자 종합편이다. 작품 곳곳에서 독자는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너에게 나를 보낸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패러디를 만날 수 있다. 그토록 가벼운 틀을 빌려 장정일은 문학에 대한 고행승같은 일념을 고백한다.

‘진정한 프로는 끝까지 가는 거야. 진정한 작가는 베스트셀러가 되어서 1백만부가 터져도 매일 새벽 다음 소설에 쓸 메모를 한단 말이야. 헤밍웨이를 봐. 죽기 전에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는 거야. 이제 써지지 않는다. 이제 써지지 않는다. 그리고는, 탕! 이게 프로야’

독자의 비위를 건드리는 그의 소설은 이번에도 소수의 열광적인 옹호자와 다수의 비판자 사이에서 십자포화를 맞을 것같다.

“‘아담이 눈 뜰 때’이후 장정일의 소설들은 문학적 폭발력과 미학적 문제성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기에는 이미 사유와 경험의 보따리가 바닥나버린 소설가의 노회한 자기관리술의 산물”(계간지 ‘리뷰2호’ 문학평론가 권성우)이란 비판을 과연 이 작품이 극복해 낼 것인가.

어쨌거나 새 소설을 펴낸 그는 “작가로서 무엇을 해야할지 이제는 알 것 같다”고 차분하게 말했다.

“많이 부숴 보니까 이제는 내 생각을 제시할 수 있을 것같다. 속도 빠른 자본주의사회에 브레이크 걸기, 컴퓨터 대신 수동타자기로 글을 쓰며 저항하는 것같은 류의…. 그게 작가가 해야할 몫이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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