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냐… 외설이냐…』 음란성 시비,정답없는 「논쟁」

  • 입력 1997년 7월 25일 07시 39분


「비디오방:감자(이재경·17)는 비디오방에서 비디오를 보고 있고 새(장남경·17)가 찾아와 본드를 불고 오럴 섹스를 한다. 개쪽모의:공주(최미선·15)가 계속 섹스를 거부하자 뺀과 프린스와 아임떡은 공주를 돌림빵하기로 한다」. 최근 공연윤리위원회로부터 등급외 판정을 받은 「나쁜 영화」의 문제 장면들이다. 이 영화는 십대 가출 청소년들의 삶을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담아내 제작 단계부터 화제가 된 작품. 그러나 극장 상영 여부는 불투명한 것으로 보인다. 또 유명 만화가 이현세씨도 음란 폭력만화 유통 혐의로 검찰의 칼날위에 섰다. 바로 얼마 전 작가 장정일씨는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동성연애자를 소재로 한 왕가위감독의 영화 「부에노스 아이레스」도 수입 불가 판정을 받는 등 「음란물」과 관련된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자 문화예술계에서는 『청소년보호법 발효와 맞물려 문화적인 「마녀 사냥」이 시작되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작품까지 검열과 제재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반면 「빨간 마후라」 등 청소년들의 심각한 성행태를 목도한 시민들이 우리 사회의 「타락」을 걱정하는 소리 또한 높다. 도대체 우리 사회의 성적 표현의 자유와 「표현의 한계」는 무엇인가. 「나쁜 영화」를 심의한 신봉승공륜부위원장(극작가)은 『포르노에 가까운 청소년들의 정사 장면을 놓고 「표현의 자유」 운운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사회에는 법에 앞서 공론(公論)이란 것이 있다』며 『그런 것이 극장에서 상영돼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이상 대화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말을 끊었다. 반면 「나쁜 영화」를 연출한 장선우감독은 『우리 현실을 과장이나 왜곡없이 담은 영화작품』이라고 주장한다. 장감독은 또 『다른 생각과 삶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없이 자기들만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독선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그러한 청소년들이 일부인지 많은 사람들의 문제인지는 성인 관객이 영화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문명의 역사는 금기(禁忌) 타파의 역사다. 문명은 어쩌면 표현의 자유를 부르짖는 세력과 사회 미풍양속 보존을 위해 「지나친」 표현을 막아온 세력간의 길고 긴 갈등의 역사였다. 지금은 명작으로 꼽히는 보들레르의 「악의 꽃」이나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 같은 작품도 당대에는 「음란」 혐의로 몰렸다. 작가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성적 표현을 동원한다. 자신의 메시지를 가장 잘 드러낼수 있는 효과적 수단으로, 또는 그것이 현실이라서, 또는 「성이 인간의 가장 자연스런 욕망이고 진실이기 때문에」라는 이유를 내세운다. 여기서 예술이냐 외설이냐의 논란이 비롯된다. 만화가 이현세씨를 조사한 검찰은 『만화 「천국의 신화」가 집단 혼음과 짐승과의 교접을 그리는 등 현저한 음란성을 갖고 있다』며 『최근 사회적으로 청소년의 폭력성과 성적 방종이 위험수위를 넘어서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현세씨는 『이 만화는 아직 「도덕 관념」이 없는 원시 선사시대의 생활상을 신화와 전설에 바탕해 창작한 것』이라며 『이같은 작법에 사법적 제재를 가한다면 차라리 절필하겠다』고 밝혔다. 만화가협회도 『창작품에 대한 예술과 외설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독자와 비평가의 몫』이라며 이번 사태를 「창작의 자유에 대한 사법권의 지나친 간섭」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처럼 「창작의 자유」와 「사회 미풍양속」은 역사적으로 항상 「긴장 상태」에 있었다. 인간의 삶 자체가 구조적 양면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성적 수치심과 호기심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논란이 된 작품들은 예술로 남기도 하고 외설의 쓰레기로 쓸려나가기도 한다. 우리 사회 「도덕」을 걱정하는 「어른들」이나 일반 시민들이 경계하는 것 역시 「예술을 빙자한 외설과 성의 상업화」일 것이다. 하나의 작품이 당대의 논란으로부터 벗어나 예술사의 이정표로 남느냐 아니냐는 작품에 담긴 메시지와 예술적 완성도에 달렸다. 사회의 건강성을 잃지 않으면서 유연성과 문화적 지평을 넓혀갈 수 있도록 옥석을 가리는 일이 필요하다. 〈신연수·권기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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