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선생 60돌맞아 동상제막-학술회의 활발

  • 입력 1996년 12월 5일 20시 12분


「金次洙기자」 丹齋(단재)申采浩(신채호·1880∼1936)선생의 순국 60주년을 맞아 그의 사상을 재조명하고 추모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단재 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는 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단재의 한국민족주의」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갖고 단재의 민족주의사상 변천과정 등을 되짚어 봤다. 또 단재동상건립추진위원회(상임위원장 김정기서원대교수)는 단재의 탄신일인 8일 청주 예술의전당 광장에서 단재동상을 제막한다. 서울에서 제작된 단재동상은 제막을 위해 5일 청주로 옮겨졌다.전국에서 9천여명이 동상건립 기금 모금에 참여, 7천여만원을 모았고 충북도에서도 1억여원을 지원했다. 안규철씨(서울대 미대강사)가 조각한 동상은 두루마기를 입고 서있는 단재의 모습을 표현한 높이 2.5m의 입상이다. 지난 5월 공모를 통해 작품을 선정한뒤 일제때 춘원 이광수가 살았던 서울명륜동 집 뒤뜰에서 동상을 제작했다. 이 동상은 일제 암흑기에 민족의 앞날을 밝히는 빛을 제공했던 단재의 단아한 모습을 촛불의 이미지를 통해 잘 표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5일 학술회의에서 주제발표를 한 신일철 강만길(고려대) 신용하 박희병(서울대) 이만열교수(숙명여대)등은 단재는 위대한 민족주의자이자 역사학자요 독립운동가였다고 입을 모았다. 신일철교수는 「신채호의 민족주의적 세계관과 그 극복」이란 논문에서 『단재의 역사관은 중화주의적 사대문화권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세계가 다원적인 열강경쟁의 장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했다』고 말했다. 신교수는 이어 단재가 역사를 진화론적인 생존경쟁과 자연선택의 원리로 이해하고 민족간의 경합과 투쟁과정에서 승리자가 돼야 역사의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는 민족자강의 국사관을 확립한 것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단재의 역사관이 1923년이후 무정부주의로 바뀌었지만 민족애나 민족의 독립운동을 버린 것이 아니었다는게 신교수의 설명이다. 즉 독립후의 이상적인 목표로 무정부주의적 자유사회상을 제시한 것이며 일제를 쫓아내기 위한 폭력적 무장투쟁을 옹호하는등 민족주의를 불변의 신념으로 계속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신용하교수는 『단재는 구한말에 「민족주의」라는 용어를 애용했던 사상가였다』면서 『단재는 민족주의를 민족보전 국가보전의 유일한 방법이자 제국주의 침략격퇴와 민족국가 발전을 추진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보았다』고 말했다. 신교수는 이어 『단재는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화한 이유는 대한민국의 민족주의가 강건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보고 민족주의 확립을 한국인이 해야 할 가장 화급한 일로 꼽고 국권회복에 앞장섰다』면서 단재의 이같은 민족주의 사상을 올바로 계승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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