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리에를 아시나요?”…봄동 열풍은 끝나지 않았다 [그 마을엔 청년이 산다]

  • 동아닷컴
  • 입력 2026년 7월 13일 07시 30분


지방 소멸에 맞서는 청년들의 이야기 31회
전남 구례 청년마을 ‘수숲기간’


초여름 지리산 자락. 장바구니를 든 청년들이 산비탈에 쪼그리고 앉아 방금 꺾은 나물을 입에 넣는다.

“향이 훨씬 깊은데?”

“이건 햇볕을 덜 받아서 단맛이 나네”

줄기의 탄력을 살피고, 잎맥을 들여다본다. 마트 비닐봉지 속 나물이 아니라 산에서 막 올라온 생명의 맛을 이야기한다.

전남 구례에 전국 최초의 ‘나물사관학교’가 생겼다. 이른바 ‘나물리에’(Namul-lier)를 양성하는 곳이다.

올봄 대한민국 유통가와 식문화 트렌드를 뜨겁게 달궜던 키워드는 ‘봄동 열풍’이었다. 얼어붙었던 땅을 뚫고 나온 봄나물의 강인한 생명력과 풋풋한 맛에 MZ세대가 반했다. 식탁 위의 조연으로만 취급받던 나물이 건강과 미식을 동시에 챙기는 힙한 식문화의 주역이 됐다.

이런 나물 열풍을 한 단계 더 진화시키려는 청년들이 있다. 구례 청년마을 ‘수숲기간’이다. 이들은 단순히 먹는 것을 넘어 청년들이 산촌에서 삶을 일구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거대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주인공은 문준호(38) 꿈앗이 주식회사 대표다.


‘신생아 0명’…최악의 인구 소멸지

구례는 전체 면적의 78%가 산림이다. 전남에서 손꼽히는 임야 지역이자 도내 22개 시·군 중 인구수가 가장 적은 곳이다. 특히 지난해 구례군 토지면에서 태어난 신생아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지역소멸이라는 단어가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마을이다.

누군가는 이 풍경에서 위기를 말하지만, 문 대표는 가능성을 봤다.

문 대표는 서울에서 나고 초·중·고를 졸업한 전형적인‘도시 청년’이었다. 20대 초반까지 서비스업과 광고 관련 일을 하며 자신의 길을 찾고 있었다. 농업은 그저 할아버지 세대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인생의 방향이 바뀐 것은 여주농업경영전문학교에 입학하면서다.

“키우고 싶은 작물 재배하고, 남는 시간에는 해외여행 다녀야지.”

그런 단순한 꿈을 갖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고향인 구례의 산지로 내려왔다.


현실은 달랐다. 임업 현장에는 대부분 노인만 남아 있었고, 그나마 있는 청년들은 서로를 알지 못했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도 흩어져 있었다.

문 대표는 “가장 힘들었던 것이 정보와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가장 먼저 청년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토박이와 귀촌인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비영리 모임이었다. 그러다 보니 또 다른 현실이 보였다. 청년들의 ‘먹고살 고민‘이었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구례의 현실에 가장 맞는 임업이었다. 임업이야말로 청년들에게 새로운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농업보다 경쟁자가 적고, 생산뿐 아니라 가공, 체험, 교육, 관광까지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꿈앗이 주식회사’의 탄생 배경이다.

문 대표를 필두로 뜻이 맞는 청년들이 뭉쳤다. 문화를 기획하는 예술가,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 캠핑장을 운영하는 청년 등 서로 다른 재능을 가진 5명의 핵심 멤버(강성은·김현찬·김지희·손용훈)가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원래부터 친구가 아니었다. 커뮤니티에서 만나 같은 꿈을 품게 된 사람들이다.


전국 최초의 ‘나물사관학교’

이들이 나물에 집중한 것도 전략이었다. 처음에는 임업 전반을 소개하려 했지만 고민 끝에 하나의 성공 모델이 먼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시장성이 있는 나물을 중심으로 생산부터 브랜딩, 판매까지 구축하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바로 ‘나물리에’다.

청년들은 나물사관학교만 운영하지 않는다. 숲을 일상으로 연결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어가고 있다. 숲을 걸으며 나무 이야기를 듣고, 지역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국악 공연까지 즐기는 산책 프로그램, 로컬 문화 콘텐츠, 임산물을 활용한 가공 체험과 지역 축제를 기획한다.

올해는 의미 있는 성과가 있었다. 행정안전부가 추진하는 ’2026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 10곳 가운데 하나로 선정된 것이다. 이를 통해 향후 3년 동안 임업을 기반으로 한 청년 정착 모델을 구축할 예정이다.


본격적인 사업에 앞서 지난 4월 구례 피아골의 3만평 부지에서 체험 행사가 열렸다. 전국에서 초등학생과 학부모 40여 명이 참여해 대성황을 이뤘다. 아이들은 지리산 자락을 뛰놀며 고사리와 두릅을 직접 채취하고 나물을 요리했다. 프로그램의 신선함에 학부모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문 대표는 나물사관학교를 단순 체험 프로그램으로 만들려는 게 아니다. 수료생들이 실제 구례에 정착해 임업인이 되고,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선배가 돼 다시 후배를 가르치는 선순환 구조를 꿈꾼다. 나물리에 브랜드 역시 전국의 프리미엄 산나물 유통 플랫폼으로 키워갈 계획이다.


문 대표는 말한다. “250년 전 운조루(토지면 조선시대 양반 고택)는 굶주린 이웃에게 쌀독을 열었습니다. 우리는 기회가 없는 청년에게 숲을 열어 보일 것입니다.”

언젠가 나물리에라는 단어가 사전에 오르는 날이 온다면, 그 시작에는 지리산 숲속에서 나물을 ‘음미’하던 청년들이 있었다고 기록되길 이들은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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