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로버트 래드퍼드는 포로수용소에서 화폐가 어떻게 생겨나는지와 관련된 논문을 발표했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로버트 래드퍼드(Robert A. Radford)라는 영국인이 있었다. 1919년에 태어났고, 20대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영국군으로 전쟁에 나섰다가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1942년쯤 수용됐고, 전쟁이 끝나면서 1945년 포로 생활에서 벗어났다. 1945년 11월 래드퍼드는 경제 학술지에 ‘포로수용소에서의 경제적 조직(The Economic Organization of a P.O.W Camp)’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포로수용소에서의 경험을 정리하고 서술한 것으로 현대 경제학, 특히 화폐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논문은 경제적 통제장치가 없고 공식 화폐도 없는 포로수용소에서 어떻게 돈이 생겨나고 이용됐는지, 그리고 돈 가치가 어떻게 변화하고 통용됐는지를 보여준다.
포로수용소에서도 경제 구조 작동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은 특별한 생산 활동을 하지 않는다. 배급을 받으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기만 한다. 일본군은 포로들에게 강제노동을 시켰지만, 국제 협약상 포로의 강제노동은 금지돼 있다. 독일은 이런 점에서 국제법을 준수했고, 독일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포로들은 수용소 내에서 일상생활을 하며 지냈다. 독일 감시원들은 포로들이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만 않으면 그냥 알아서 지내도록 방치했다.
보급품은 독일군과 적십자사가 보내주는 것으로 해결했다. 적십자사는 먹을거리 외에도 옷 등 필요 물품과 담배, 차, 커피 등 기호품까지 정기적으로 보냈지만, 달러·파운드·마르크 같은 돈은 보내지 않았다. 포로수용소엔 가게가 없고 모두가 배급받아 살아가니 돈이 있어도 쓸데가 없다. 외부와 소통할 일이 없어 돈이 들어올 데도 없다. 적십자사 역시 포로수용소에서는 돈이 필요하지 않으니 돈을 보낸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화폐가 존재하지 않고, 화폐가 필요하지도 않은 사회, 그게 모두가 생각하는 포로수용소의 경제 구조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포로수용소 내에서도 경제 구조가 작동했다. 분명 돈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돈이 생겼다. 바로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끼리만 사용하는 돈이다.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디플레이션도 발생했다. 물건을 거래하는 중개업자가 생기고, 돈 많은 포로도 나왔다. 소위 자본가라 부를 수 있는 계층도 발생했다.
포로수용소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포로가 되기 전 계급과 직업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모두가 평등하니 정부 조직, 경제부처, 중앙은행은 물론 경제 구조에 대해 명령하거나 규칙을 정하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도 자체적으로 화폐가 생기고 시장 구조, 경제 질서가 만들어졌다. 포로수용소 인원은 1200명에서 2500명 사이였다. 이 정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에서도 돈, 시장질서, 경제 구조가 자생적으로 발생했다.
물물교환에서 화폐로 래드퍼드는 이탈리아에 있는 포로수용소에 수감됐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었고, 그는 초창기부터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관찰할 수 있었다. 적십자사는 정기적으로 포로들에게 구호물자를 보냈다. 잼, 마가린, 초콜릿, 휴지, 비스킷 등 다양한 상품이 포로 개인에게 지급됐다. 보급품 중에는 담배도 포함됐는데, 담배를 피우지 않는 포로들이 있었다. 이들은 흡연자에게 담배를 건네는 대신 초콜릿 등 다른 물품을 받았다. 처음엔 이렇게 자기가 덜 좋아하는 물품을 다른 사람에게 주고, 더 좋아하는 것을 받는 물물교환 형태였다. 그러다가 물품별 교환 비율이 정해지기 시작했다. 잼 1통은 마가린 250g 정도, 담배 한 개비는 초콜릿 몇 개 등이었다. 당근 절임 캔은 가치가 없어서 다른 것과 교환되지 않았다. 물론 이 교환 비율은 장소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포로수용소는 넓었고, 구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포로수용소 전역에서 교환 비율이 일치했다. 즉 시장이 통일된 것이다. 여기에 교환 기준이 되는 물품, 즉 화폐 역할을 하는 품목이 나타났다. 바로 담배였다. 담배는 썩지 않은 채 오래가고, 부피가 작으며, 또 동질적이다. 사람들은 담배를 화폐로 사용했고, 치즈 하나는 담배 7개비, 커피는 담배 2개비 등으로 모든 품목이 담배 개수로 가격이 매겨졌다. 공용 게시판 등에 이런 교환 비율 가격표가 적혔고, 포로들은 이 가격표를 기반으로 서로 거래했다.
물론 이 가격은 계속해서 바뀌었다. 적십자가 구호 물품을 보내온 직후에는 물가가 내려갔다. 시간이 지나 보급 물품이 거의 다 떨어질 때쯤엔 물가가 올라갔다. 가끔 적십자가 보내주는 물품이 평상시보다 많을 때가 있었다. 크리스마스 등 특정 시기에는 보급품이 좀 더 많았고, 다른 기관에서도 구호물자를 보내와 보급품이 풍족해지기도 했다. 또 어떨 때는 오랜 기간 보급이 오지 않았다. 이렇게 외부 환경이 달라질 때마다 물가가 전반적으로 오르는 인플레이션이나 물가가 내리는 디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순간적인 가격 변동도 있었다. 어느 날 아침식사 때 담배 보급품이 온다는 소문이 돌자 담배 가치가 갑자기 떨어졌다. 평소에 담배 2개비를 줘야 했던 것을 4개비를 줘야만 살 수 있었다. 오전 10시, 그게 헛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가격은 원래대로 돌아갔다.
가격 변화로 이득을 보는 사람도 나타났다. 치즈를 팔려는 사람이 처음 보급품을 받았을 때 바로 팔지 않고 이후 가격이 올랐을 때 파는 식이다. 또 중개인도 나타났다. 물품이 쌀 때 사뒀다가 물품이 비쌀 때 내다 팔아 수익을 올렸다. 상인도 생겼다. 외부에서 원재료를 구해 와 포로수용소 내에서 커피, 차를 만들어 팔기도 했다. 돈이 아니라 담배를 받고 팔았다. 그렇게 여러 방법으로 이득을 올리는 이들이 있다 보니 소위 자본가라 할 수 있는 사람도 나왔다. 많지는 않았지만, 포로수용소 안에도 부자라고 할 만한 전문적인 중개인과 상인이 있었다.
포로수용소에서는 모두가 배급받아 살아가기에 화폐가 필요하지 않다. GETTYIMAGES정부 없어도 시장은 생겨 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이 담배에서도 나타났다. 모든 담배는 동일한 가치로 평가됐지만, 브랜드에 따라 조금씩 선호가 달랐다. 인기 있는 좋은 브랜드의 담배는 자기가 피우고, 인기가 조금 떨어지는 브랜드의 담배들이 유통됐다. 포로들이 직접 담배를 제작하기도 했지만, 손으로 만든 담배는 화폐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이런 담배를 가지고 거래하려 할 때는 거부됐다. 이건 일종의 위조지폐였다.
일반 포로는 가격 변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물가가 전반적으로 떨어져서 물건을 보유한 포로들이 평소보다 손해를 볼 경우 그들은 중개인을 비난했다. 중개인의 농간으로 가격이 변화하는 데다, 중개인은 이익을 얻고 포로들은 손해를 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포로들은 물품 간 공정 가격이 있다고 봤고, 실제 각 품목의 가격을 고정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가격이 고정되면 중개인의 농간이 없어질 테고, 중개인이 중간에 이득을 챙길 수도 없다. 그러나 그렇게 만든 고정 가격은 유지되지 못했다. 포로수용소 내에서 유통되는 상품 양에 따라 가격은 계속해서 수시로 바뀌었다.
포로들에게 비판을 받은 사람으로는 중개인 외에 비흡연자도 있다. 비흡연자들도 흡연자들과 똑같은 양의 담배를 보급받았다. 흡연자들은 자기가 담배를 피우고 남은 것들을 거래에 사용한다. 하지만 비흡연자 또는 담배를 조금만 피우는 사람은 자신이 배급받은 모든 담배를 물품 구매에 사용할 수 있다. 흡연자들은 비흡연자에게 같은 양의 담배가 공급되는 것이 불공평하다고 봤고, 비흡연자도 중개인과 더불어 공공의 적이 됐다.
이런 담배 경제는 1945년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대부분의 물품 공급이 중단되며 거의 사라진다. 특히 담배가 더는 보급되지 않자 가격 기능도 정지됐다. 1945년 4월 연합군 부대가 들어오면서 포로수용소 내 담배 화폐 경제도 종료된다.
포로수용소 담배 경제 이야기는 돈은 인간 사회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정부와 국가가 없어도 돈은 만들어진다. 돈, 그리고 돈과 관련된 여러 현상은 사람들이 거래하면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지, 정부나 소수의 몇몇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포로수용소 담배 경제 이야기는 돈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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