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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8월 9일 17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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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뜨게 하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은 인생에서 아주 가끔, ‘존재 의미’를 느낄 때 그의 열정은 꿈틀댄다. 그 열정이 그를 일하게 한다. 영준에게 있어 대학 동창들과 함께 차린 벤처는 직장 이상의 ‘그 무엇’이다. 따라서 자신이 용납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산을 불려가고 시류에 쓸려 가는 회사에는 더 이상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신뢰했던 민혁은 자본과 권력의 ‘단맛’에 점점 중독돼 친구에서 증오의 대상으로 자리를 바꿔 앉았다.
영준은 대학 시절 첫사랑이자 친구인 정신과 의사 인호에게 털어 놓는다.
“점점 사는 게 재미없어져. 지리멸렬한 거 같아. 우리가 이제 젊은 시절을 막 벗어나고 있잖아. 앞으로 살면서 무슨 희망이 있을까. 이젠 열정도 남아 있지 않은 거 같아. 열정을 쏟을 일도 없을 거 같고. 그냥 그렇게 사는 거지. 심드렁하게.”
1권에서는 벤처를 중심축으로 영준과 그 주변을 휘감아 도는 현대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2권에서는 인호의 눈으로 본 영준과 민혁의 ‘열정과 불안’, 인호 자신이 갈망한 ‘자유’의 결말을 그리고 있다.
전체적인 구성이 아주 조밀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소설 속 인물들이 담담하게 내뱉는 얘기에 절로 고개가 주억거려질 때가 많다. 이들의 모습에서 ‘나’를 보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소설을 쓰기 위해’ 영화 주간지 ‘씨네21’의 편집장 자리를 그만 둔 작가의 첫 장편소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소설 쓰는 일은 ‘지어낸다’기 보다는 ‘토해낸다’는 게 어울리는 작업이었다”고 얘기한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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