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지도부 간담회 발언록]한화갑 "인사-제도쇄신 국민이 원해"

  • 입력 2001년 11월 7일 19시 37분


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의 간담회는 시종 무거운 분위기였다.

참석자 한 사람씩 돌아가며 발언을 한 뒤 김 대통령이 20여분에 걸쳐 정치·경제 상황을 설명한 뒤 “당무회의에서 발표하겠다”고 밝히는 것으로 끝났다. 당초 2시간 예정이었으나 35분간이나 간담회 시간이 단축됐다.

한 참석자는 “대통령의 심기가 매우 불편해 보였다”고 말했다. 다른 참석자는 “대통령의 결심이 이미 서 있는 것 같았다”며 “최고위원들의 발언을 주의깊게 듣지 않는 듯했다”고 전했다. 김 대통령이 자리를 뜬 뒤 참석자들만 따로 남아 5∼10분 정도 얘기를 나눴지만 김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설왕설래만 오갔다는 후문이다.

한광옥(韓光玉) 당 대표나 이상주(李相周) 대통령비서실장, 유선호(柳宣浩) 정무수석비서관 등도 “(대통령 발언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한화갑(韓和甲) 정동영(鄭東泳) 김근태(金槿泰) 정대철(鄭大哲) 김원기(金元基) 최고위원 등 쇄신파측 최고위원들은 청와대를 나온 뒤 따로 구수회의를 갖고 ‘김심(金心) 헤아리기’를 시도했지만 별다른 해답을 찾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한 참석자는 “다들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각자 자신들의 생각을 꿰맞췄다”며 “대통령이 뭔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다음은 발언순서에 따른 발언록 요지.

▽한화갑〓국민이 우리를 지지하지 않는 점이 야속하기도 하고 섭섭한 면도 있으나 국민의 결정은 최종적인 것이라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신뢰회복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필요하며 하나하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인사 쇄신과 제도적 쇄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누군가가 책임지는 모습이 필요하다. 잘잘못을 따져 책임을 지라는 것이 아니고 책임정당 집권당으로서 국민에게 정치적 도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중권(金重權)〓일심으로 협력해 나갈 상황에서 해야 할 일 안하고 하지 않을 일을 하고 있었던 데 대해 죄송하다. 국정쇄신과 인사쇄신이 필요하다. 국정쇄신은 대통령께서 국민에게 오래 전에 약속한 것이기도 하다. 여론에 밀려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필요한 조치를 할 때가 왔다. 한두 사람 공격하는 모습은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미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희생양, 속죄양 만드는 것이 아니다.

▽박상천(朴相千)〓최고위원회의를 의결기구화해야 한다. 최고위원회의를 중심으로 당이 돌아갈 때 책임도 지는 모습을 갖추게 된다. 내년 경선을 치르고 지방선거를 치르는데 경선을 끝내고 패배한 쪽에서 당권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당의 단합에 문제가 생기고 이탈 가능성이 있다. 총력체제를 갖추려면 이런 공유체제가 필요하다. 선출직 임기가 2개월 남았기 때문에 최고위원회의를 복원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동영〓두어 사람 물러난다고 민심이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국민은 정부 여당이 변하기 시작했다고 받아들일 것이다. 일각에서는 죄도 증거도 없는 사람을 희생양으로 만들려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당사자들의 결단은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대통령 등뒤에 숨으면 책임의 화살은 어디로 날아가겠는가. 최근 대통령이 인사 운영을 잘못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소리들이 늘어나고 있다. 읍참마속이 필요하다.

▽정대철〓결단이 필요하다. 당-정-청을 개혁해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이와 함께 정치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정당민주화를 이룩해야 한다. 보스정치를 탈피해 공천도 상향식으로 하고 예비선거제를 도입해야 한다.

▽신낙균(申樂均)〓1차적으로 할 일은 인적 쇄신이라는게 당의 공감대다. 국민적 합의 도출이 안 되는 것은 인사문제와 결부돼 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본질적 변화로 민심을 회복하느냐 못하느냐의 기로에 섰다.

▽김기재(金杞載)〓현재 상태를 방치하면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렵고 지방선거가 잘못되면 대선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획기적인 반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전당대회 시기는 별도 당내 기구를 구성해 신중히 전략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고위원을 당무회의에서 재선출하는 방식으로 슬그머니 복귀시키는 것은 모양이 좋지 않다.

▽김근태〓정치적 부담이 대통령에게 집중되고 있는데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 개혁을 위해 갈 길은 먼데 개혁을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그런 힘이 있는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DJP공조 붕괴 후 절호의 기회가 왔으나 정책결정과 타이밍을 놓쳤다. 쇄신 없이는 단합을 이룰 수 없다. 쇄신만이 레임덕을 막을 수 있다. 개인은 억울할 수 있으나 군사독재 시절에 싸울 때처럼 비장한 마음으로 결단해야 한다.

▽노무현(盧武鉉)〓그동안 특정인 처리에 반대하고 제도개혁을 통한 근본 쇄신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지금 민심이나 당내 상황에서는 내 의견이 소수이다. 지금 이 시기는 옳고 그름을 떠나 민심의 화살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통령 결단이 필요하다. 대통령 당적이탈 건의가 일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신중해야 한다. 과거에 대통령의 당적 이탈이 민심을 얻지 못하고 당만 표류한 경험이 있다. 임기 말까지 확실히 책임지고 당의 고삐를 다잡는 결단이 필요하다.

▽이인제(李仁濟)〓면모를 일신해서 심기일전해 민심을 회복하자는 인적쇄신과 당-정-청 쇄신 요구를 잘 알고 계실 것이다. 이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 주시기 바란다. 개편 시기, 대상 범위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요구되는 것이므로 당원들로서는 대통령의 결단을 따를 것이다. 특정인을 거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당사자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민심이반이 걱정이나 더 큰 문제는 경제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관료주의와 명분 중심의 경제팀이 아닌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전투적이고 강력한 경제팀을 구성해야 한다.

▽김원기〓대통령 결단으로 감동을 줘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의표를 찌르는 조치로 전환을 맞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를 소생시켜야 한다.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실질적으로 정치가 돌아가게 하는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정용관기자>yongari@donga.com

민주당 현안에 대한 최고위원 입장
구분인적쇄신전당대회 및 후보선출 시기
한광옥권노갑, 박지원 잘못한 증거 없다당 공식기구에서 논의
한화갑책임질 사람 필요지방선거 후 대선후보 선출
이인제특정인 은퇴 강요할 성격 아니다지방선거 전 대선후보 선출
김중권특정인 거명 부적절논의할 시점 아니다
노무현희생양 만들기 부적절지방선거 전 대선후보 선출
김근태특정인 퇴진대선후보 조기가시화론은 쇄신 물타기
박상천특정인 거명 부적절지방선거 전 대선후보 선출
정동영특정인 퇴진1월 전대에서 당 지도부 새로 구성
정대철인적쇄신과 당 시스템 개편 필요지방선거 후 대선후보 선출
김원기책임질 사람 필요논의할 시점 아니다
김기재당-정-청 대폭 쇄신 불가피당 공식기구에 논의
신낙균특정인 거명 부적절논의할 시점 아니다

<정용관·부형권기자>yongar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