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게 이렇군요]이총재 "强手냐 민생이냐"

  • 입력 2001년 1월 22일 16시 27분


“더 세게 나가자니 그렇고,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없고….”

한나라당 주진우(朱鎭旴)총재비서실장은 22일 ‘이회창(李會昌)총재가 설 연휴 후 어떤 선택을 할 것 같으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고 이총재가 선택을 유보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정치인 이총재’가 기로에서 선택을 망설인 적도 없다.

▽의표 찌르기〓이총재는 96년 정치 입문 이후 종종 의외의 선택으로 정치권을 놀라게 했다. 97년 대통령선거 직전 지정기탁금제 포기와 당시 김영삼(金泳三)대통령에 대한 탈당 촉구, 작년 16대 총선 때 김윤환(金潤煥) 이기택(李基澤) 신상우(辛相佑)씨 등을 공천에서 배제한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총재가 사석에서 인용한 적이 있는, 옛 일본 무사(武士)의 몽상류(夢想流)검법 얘기는 그의 이런 정치스타일을 연상케 한다. 이 무사는 부모의 원수인 검술 고수와 맞붙게 되자 자신의 눈을 천으로 가려 고수를 방심케 한 후, 몽상 상태에서 한 칼에 고수의 허를 찔러 승리했다는 것. 이는 곧 정치경험이 일천한 자신이 ‘정치 9단’으로 불리는 기성 정치인들과 맞서 이기려면 상대의 의표를 찔러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총재 자신도 21일 설 연휴 정국 구상을 위해 서울 근교의 모처로 떠나면서 “수십년간 이어져 온 한국정치의 폐단을 분명히 청산하고 새 출발을 해야 된다”며 모종의 결단을 내릴 것임을 시사했다.

▽뭘 고심하나〓이총재가 당면한 최우선과제는 ‘안기부 돈 선거자금 유입’ 사건의 매듭을 어떻게 짓느냐 하는 것이다. 그가 가장 아파하는 것은 구여권의 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구설수에 휘말리면서 3김(金)과의 차별적인 이미지가 희석되는 것.

이총재는 또 정치적 비전보다는 ‘반(反)DJ 정서’에 기대어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당 안팎의 지적도 몹시 부담스러워 한다. 그가 ‘새 출발’을 다짐한 것도 구정치의 ‘수렁’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은 그에게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관계 재정립이라는 숙제를 안겨준 것으로 보인다.

‘의원 꿔주기’ 사태는 또 다른 고민을 이총재에게 안겨줬다고 할 수 있다. 즉 ‘용납할 수 없는 방법’이긴 하지만 이미 국회 교섭단체로 등록한 자민련을 어떻게 대우하느냐는 것으로, 현실과 명분을 모두 헤아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계속 대립축을 형성하느냐, 아니면 경제와 민생 등에 있어서만은 제한적인 동반자관계를 형성하느냐 하는 선택의 큰 틀 속에서 이총재의 결단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해법은 있다〓맹형규(孟亨奎)기획위원장은 “총재가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의원들의 분위기는 강경하다”고 말했다. 한 당직자는 “(이총재가) 이번 기회에 과거와의 단절 등 보다 충격적인 조치를 취할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원창(李元昌)의원은 “이총재의 선택은 쟁점 현안을 넘어서 정치권의 근본적 문제 해결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며 “어떤 경우에도 경제 회복, 민생 안정 등 국민적 요구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이총재가 앞으로 소모적인 정쟁을 지양하고 민생현안만 챙기겠다는 식의 ‘신(新) 상생의 정치’ 선언을 할지 모른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그 핵심내용은 모든 문제를 국회에서 풀자는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송인수·김정훈기자>i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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