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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박을 입힌 배경 위에 붉고 풍성한 머리칼의 여인이 팬지 한 송이를 들고 있다. 영국 화가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1828∼1882)는 연인 엘리자베스 시달과의 결혼을 기념해 이 초상화를 그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여인은 그림을 그릴 때 이미 심각한 병에 걸린 상태였다. 그리고 2년 뒤 세상을 떠났다. 로세티와 시달의 아련하고 복잡한 심경이 담긴 이 작품의 이름은 ‘마음의 여왕’. 해당 작품을 포함해 클로드 모네와 파블로 피카소, 프랜시스 베이컨, 앤디 워홀 등 다양한 시기와 시대를 아우르는 거장들의 예술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가 국내에서 열렸다.1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개막한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전은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립미술관인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JAG)의 소장품 143점을 9개 주제로 나눠 선보였다. 개막 하루 전인 15일 미술관에서 전시 총괄 큐레이터를 맡은 이탈리아 출신 미술사학자·평론가인 시모나 바르톨레나를 만나 이번 전시에 대해 들어봤다.● 세계 순회전 최고 인기는 모네와 로세티 바르톨레나는 JAG의 유럽 미술품을 이탈리아와 독일을 거쳐 한국에 소개하고 있다. 그에게 “지금까지 전시에서 관객들은 어떤 작품을 좋아했냐”고 묻자 단박에 “모네와 피카소, 로세티”를 꼽았다.“모네의 ‘봄’은 물론이고 함께 전시된 19세기 프랑스 화가 외젠 부댕의 세 작품은 모두 JAG의 핵심 소장품입니다. 부댕은 모네가 멘토로 여겼던 화가죠. 피카소의 파스텔화 ‘광대’는 화가가 90세 때 그린 작품이지만, 순수하고 창의적 본능으로 가득 찼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려는 의지가 보입니다.”이번 전시는 인상파나 피카소 같은 유명 작가의 작품을 다수 선보였다. 게다가 19세기 영국의 ‘라파엘 전파’나 인상파의 후대 화가인 ‘나비파’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카미유 피사로의 아들 뤼시앵 피사로의 ‘아침 햇살’과 빈센트 반 고흐의 목탄 드로잉(늙은 남자의 초상), 피에르 보나르의 ‘봄의 일몰’ 등도 놓치면 안 될 명작들이다. 20세기 미술 섹션에선 베이컨의 캔버스 유화 ‘남자의 초상에 관한 연구’와 케네스 놀런드의 ‘부러진 반지’가 눈에 띈다. 이 밖에 유명 작가들의 판화와 이르마 스턴, 윌리엄 켄트리지 등 남아공 유명 미술가들의 작품도 소개된다. 바르톨레나는 “유럽 전시에선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보러 왔다가, 남아공 화가 같은 새로운 작가를 발견해 좋았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했다.● 사하라 이남 최대 미술 컬렉션‘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전은 JAG 소장품을 17세기 네덜란드 회화부터 19세기 영국과 프랑스를 거쳐 20세기 미국 현대미술까지 이어지는 구성으로 소개한다.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 △빅토리아 시대 영국 미술 △인상주의 이전 △인상주의 △인상주의 이후 △20세기 초반 아방가르드 △20세기 컨템퍼러리 △20세기부터 현대까지 남아공 미술 순이다. 여기에 JAG 설립자를 조명한 △필립스 부부까지 9개 주제로 엮었다. 이런 방대한 전시가 가능했던 건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에서 가장 큰 공공 미술 컬렉션으로 꼽히는 JAG의 다양한 소장품 구성 덕이었다. 바르톨레나는 “처음 미술관 수장고에 갔을 때 남아공은 물론이고 유럽 미술 작품 수천 점이 있어 깜짝 놀랐다”고 떠올렸다. JAG 미술관은 ‘필립스 여사’로 불렸던 플로렌스 필립스(1863∼1940)를 비롯한 남아공 부호들의 기부와 후원으로 소장 목록을 키워 나갔다. 특히 영국계인 필립스 여사는 아일랜드 출신 수집가 휴 레인(1875∼1915)의 조언으로 일찍부터 인상파 작품을 모았다고 한다. 여기에 다른 후원자들의 기증도 더해져 오늘날의 컬렉션이 완성됐다.바르톨레나가 특별한 애정을 갖고 ‘중요 작품’으로 꼽은 것들도 있다. 점묘파 화가 폴 시냐크의 ‘라 로셸’과 제라드 세코토의 ‘오렌지를 든 소녀’다. 바르톨레나는 “시냐크의 회화는 이번 전시작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화라서 눈여겨볼 만하다”고 했다. ‘오렌지를 든 소녀’는 “인종차별이 심했던 남아공에서 JAG가 최초로 소장한 흑인 미술가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아무래도 관객들은 색이 화려하고 다양한 유화에 관심을 갖습니다. 하지만 피카소나 툴루즈 로트레크 같은 작가들은 판화에서도 정말 훌륭한 작품을 남겼어요. 작가들의 개인적인 기교가 잘 드러나는 판화들을 자세히 감상하면 더욱 흥미로울 겁니다.” 8월 31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금박을 입힌 배경 위에 붉고 풍성한 머리칼의 여인이 팬지 한 송이를 들고 있다. 영국 화가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1828~1882)는 연인 엘리자베스 시달과의 결혼을 기념해 이 초상화를 그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여인은 그림을 그릴 때 이미 심각한 병에 걸린 상태였다. 그리고 2년 뒤 세상을 떠났다.로세티와 시달의 아련하고 복잡한 심경이 담긴 이 작품의 이름은 ‘마음의 여왕.’ 해당 작품을 포함해 클로드 모네와 파블로 피카소, 프랜시스 베이컨, 앤디 워홀 등 다양한 시기와 시대를 아우르는 거장들의 예술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가 국내에서 열렸다.1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개막한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전은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립미술관인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JAG)의 소장품 143점을 9개 주제로 나뉘어 선보였다. 개막 하루 전인 15일 미술관에서 전시 총괄 큐레이터를 맡은 이탈리아 출신 미술사학자∙평론가인 시모나 바르톨레나를 만나 이번 전시에 대해 들어봤다.● 세계순회전 최고 인기는 모네와 로세티바르톨레나는 JAG의 유럽 미술품을 이탈리아와 독일을 거쳐 한국에 소개하고 있다. 그에게 “지금까지 전시에서 관객들은 어떤 작품을 좋아했냐”고 묻자, 단박에 “모네와 피카소, 로세티”를 꼽았다.“모네의 ‘봄’은 물론, 함께 전시된 19세기 프랑스 화가 외젠 부댕의 세 작품은 모두 JAG의 핵심 소장품입니다. 부댕은 모네가 멘토로 여겼던 화가죠. 피카소의 파스텔화 ‘광대’는 화가가 90세 때 그린 작품이지만, 순수하고 창의적 본능으로 가득 찼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려는 의지가 보입니다.”이번 전시는 인상파나 피카소 같은 유명 작가의 작품을 다수 선보였다. 게다가 19세기 영국의 ‘라파엘 전파’나 인상파의 후대 화가인 ‘나비파’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카미유 피사로의 아들 뤼시앵 피사로의 ‘아침 햇살’과 빈센트 반 고흐의 목탄 드로잉(늙은 남자의 초상), 피에르 보나르의 ‘봄의 일몰’ 등도 놓치면 안 될 명작들이다.20세기 미술 섹션에선 프랜시스 베이컨의 캔버스 유화 ‘남자의 초상에 관한 연구’와 케네스 놀런드의 ‘부러진 반지’가 눈에 띈다. 이밖에 유명 작가들의 판화와 이르마 스턴, 윌리엄 켄트리지 등 남아공 유명 미술가들의 작품도 소개된다. 바르톨레나는 “유럽 전시에선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보러 왔다가, 남아공 화가 같은 새로운 작가를 발견해 좋았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했다.● 사하라 이남 최대 미술 컬렉션‘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전은 JAG 소장품을 17세기 네덜란드 회화부터 19세기 영국과 프랑스를 거쳐 20세기 미국 현대미술까지 이어지는 구성으로 소개한다.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 △빅토리아 시대 영국 미술 △인상주의 이전 △인상주의 △인상주의 이후 △20세기 초반 아방가르드 △20세기 컨템포러리 △20세기부터 현대까지 남아공 미술 순이다. 여기에 JAG 설립자를 조명한 △필립스 부부까지 9개 주제로 엮었다.이런 방대한 전시가 가능했던 건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에서 가장 큰 공공 미술 컬렉션으로 꼽히는 JAG의 다양한 소장품 구성 덕이었다. 바르톨레나는 “처음 미술관 수장고에 갔을 때 남아공은 물론 유럽 미술 작품 수천 점이 있어 깜짝 놀랐다”고 떠올렸다.JAG 미술관은 ‘필립스 여사’로 불렸던 플로렌스 필립스(1863~1940)를 비롯한 남아공 부호들의 기부와 후원으로 소장 목록을 키워 나갔다. 특히 영국계인 필립스 여사는 아일랜드 출신 수집가 휴 레인(1875~1915)의 조언으로 일찍부터 인상파 작품을 모았다고 한다. 여기에 다른 후원자들의 기증도 더해져 오늘날의 컬렉션이 완성됐다.바르톨레나가 특별한 애정을 갖고 ‘중요 작품’으로 꼽은 것들도 있다. 점묘파 화가 폴 시냐크의 ‘라 로셸’과 제라드 세코토의 ‘오렌지를 든 소녀’다. 바르톨레나는 “시냐크의 회화는 이번 전시작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화라서 눈 여겨 볼 만하다”고 했다. ‘오렌지를 든 소녀’는 “인종차별이 심했던 남아공에서 JAG가 최초로 소장한 흑인 미술가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아무래도 관객들은 색이 화려하고 다양한 유화에 관심을 갖습니다. 하지만 피카소나 툴루즈 로트렉 같은 작가들은 판화에서도 정말 훌륭한 작품을 남겼어요. 작가들의 개인적인 기교가 잘 드러나는 판화들을 자세히 감상하면 더욱 흥미로울 겁니다.” 8월 31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유럽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유리 레비치(Yury Revich)가 6월 1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6월 3일 평촌아트홀에서 공연을 연다. 레비치는 18세에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데뷔한 뒤 에코 클래식(ECHO Klassik), 국제 클래식 음악상(ICMA) 등을 수상했다. 또 작곡가, 유니세프 오스트리아 명예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이번 공연은 고전, 낭만, 근대 음악과 자작곡을 포함한 레퍼토리로 구성된다. 1부 첫 곡 ‘악마의 트릴’은 주세페 타르티니가 꿈속에서 악마가 연주하는 바이올린 선율을 들은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완성한 작품으로, 극적인 트릴 기법과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구성이 특징이다. 고도의 연주 기술이 필요해 레비치의 탁월한 테크닉을 감상할 수 있다. 2부 마지막 곡 사라사테의 ‘카르멘 판타지’는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주요 선율을 기반으로 재편곡된 바이올린곡으로, 화려한 기교와 오페라의 극적 요소가 어우러진다. 레비치와 함께 대전의 청년 클래식 연주자인 피아니스트 김수빈, 첼리스트 황진하가 함께 무대에 오른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식사 시간 배불리 무언가를 먹었는데도 습관처럼 군것질을 반복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당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어 과자나 빵에 자꾸만 손이 가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다. 먹고 후회하고 또 먹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왜 또 못 참았지?” 자책도 한다. 이러한 ‘식탐’을 의지력 부족이 아닌 각인된 습관 회로의 결과로 설명하는 책이 나왔다. 저자는 뇌과학과 심리학을 바탕으로 ‘식탐은 뇌가 학습한 습관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달콤한 초콜릿을 한 조각 먹고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이 반복되면 뇌는 이 행동을 자동화된 패턴으로 저장한다. 이 때문에 억지로 참는 정도로는 식탐을 끊기 어렵다. 나의 식습관 회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파악하고 그 회로를 새롭게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책은 이론과 실전으로 나뉜다. 이론 부분에서는 뇌가 어떻게 식습관을 결정하는지, 식품 산업은 어떻게 우리의 식탐을 자극하는지, 또 칼로리를 제한하거나 의지력에만 의존하는 다이어트가 왜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이 전개된다. 이어 실천 플랜으로 ‘21일 식습관 혁명’을 저자는 제시한다. 처음 5일은 나의 식습관 패턴을 찬찬히 분석해야 한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감정이 요동칠 때 어떤 음식이 떠오르는지, 그 결과 어떤 기분이 드는지 관찰하는 것이다. 그 다음 6∼16일에는 오래된 식탐 회로를 끊는 훈련을 이어간다. 건포도 한 알을 천천히 관찰하고 맛보며 오감에 집중하거나(건포도 수련), 온몸의 감각을 세밀하게 느끼고 내 몸과 마음을 연결하고(보디 스캔), 식탐이 생길 때 충동을 억누르지 않고 알아차리고(Recognize), 받아들이며(Allow), 탐구하고(Investigate), 친절하게 대하는(Nurture) ‘RAIN’ 훈련법 등이다. 책은 이 과정에서 ‘마음 챙김’을 중요한 키워드로 제시한다. 단순한 명상이 아니라 먹고 싶다는 충동이 들 때 내 몸과 감정에 주의를 기울여 뇌의 패턴을 알아차리라는 것이다. 이를 반복하면 무의식적인 폭식에서 벗어나 몸이 보내는 진짜 신호를 듣고 건강한 식습관을 만들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와장창 깨져서 금이 간 유리창 같은 그림 속 여인이 손수건을 이빨로 잘근잘근 깨물며 울고 있습니다.여인은 빨간 모자에 푸른색 브로치를 달고, 긴 머리카락을 가지런하게 빗어 넘긴 모습이지만, 그의 얼굴 한가운데는 흑백 사진처럼 모든 색이 사라지고 불안한 손가락과 치아만 강조돼 있습니다.빨강, 파랑, 초록, 노랑의 경쾌한 색채를 갖고 있음에도 초조한 모습의 이 여인은 바로 파블로 피카소가 한때 사랑했던 여자, 도라 마르입니다.‘우는 여인’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 이 그림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서 마르는 영원히 ‘우는 여자’로 기억되고 맙니다.피카소는 왜 연인을 이렇게 그렸던 걸까요? ‘그림 속에 갇혀버린 뮤즈’, 마르와 피카소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피 묻은 장갑의 여인피카소와 마르의 첫 만남은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장소는 프랑스 파리의 예술가들이 자주 오갔던 카페 ‘레 되 마고(Les Deux Magots).’ 함께 아는 친구였던 시인 폴 엘뤼아르의 소개로 마르와 피카소는 한 테이블에 마주 앉게 되죠.당시 마르는 대담한 사진으로 앙드레 브르통, 만 레이의 인정을 받고, 초현실주의 예술가 그룹과 어울렸습니다. 금기를 탐구하며 ‘에로티즘’, ‘내적 경험’ 같은 저서를 남긴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와 연애를 한 적도 있었죠.그만한 과감함과 예술적 감각을 지녔던 그가 자기보다 훨씬 유명한 예술가 피카소를 처음으로 눈앞에서 마주한 순간.마르는 기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는 듯 장갑을 벗고 한 손을 테이블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작은 칼을 꺼내 손가락 사이를 내리찍는 위험한 놀이를 시작합니다.날카로운 칼날이 마르의 희고 긴 손가락 사이를 빠르게 오고 가던 찰나. 실수로 잘못된 곳을 찌르고, 손가락에서 흐른 피가 테이블 위에 놓인 장갑을 적십니다. 피카소는 그런 마르를 지켜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당신의 피 묻은 장갑, 내가 가져가고 싶어요.”마르가 건넨 장갑을 피카소는 집으로 가져가 진열장에 간직합니다. 마르의 복잡하고 예민한 내면을 상징하는 피 묻은 장갑, 그것을 손에 넣은 피카소.이 장면은 앞으로 두 사람의 관계에서 일어나게 될 격렬한 감정, 그리고 그것을 냉정하게 자기만의 것으로 만든 피카소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습니다.“나에게 도라는 우는 여자”피카소는 마르를 뮤즈로 삼아 그림으로 남겼지만, 마르 또한 성공한 사진가로 피카소에게 최신 사진 기법을 가르쳐 줬습니다.또 마르는 초현실주의 예술가들과 함께 ‘반파시즘 선언’에 참여하며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냈는데, 그의 이런 정치적 의식 영향으로 피카소는 스페인 내전에 관심을 갖고 대작 ‘게르니카’를 그립니다.피카소가 ‘게르니카’를 그리는 과정을 마르는 사진으로 남겼고 이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록이 됐습니다.이렇게 현실에서 두 사람은 단순한 연인을 넘어 예술적으로도 교류하고 협업하는 관계였는데, 피카소는 후일 마르에 대해 이런 말을 남깁니다.“도라는 내게 항상 ‘우는 여인’이었다. 나는 몇 년간 그녀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만을 그렸는데, 내가 그런 모습에서 즐거움이나 쾌감을 느껴서가 아니다. 내 눈에 도라는 그저 ‘우는 여자’였고, 그건 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깊은 내면에서 드러나는 현실이었다.”이 말처럼 피카소는 ‘게르니카’를 그린 다음 몇 년 동안 마르를 모델로 한 초상화를 여러 점 남겼고, 그 그림 대부분에서 마르는 슬프고 고통스럽게 울부짖고 있는, ‘우는 여인’이었습니다. 사랑 앞에 냉정했던 예술가, 피카소“‘우는 여인’은 피카소가 도라 마르의 우울한 감정에 집착한 결과물이다. 그는 마르의 고통에 깊이 감정 이입을 하면서도 그것을 이용했다.”마르의 회고전을 연 영국의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은 ‘우는 여인’을 이렇게 설명합니다.늘 불안하고 예민해 수시로 유리처럼 산산조각 나는 마르의 내면을 피카소는 예리하게 관찰했고, 때로는 부추기고 과장해 그림 속에서 일그러진 표정, 손수건을 잘근잘근 깨물며 울부짖는 모습으로 남긴 것이죠.그 결과물인 ‘우는 여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 됐습니다. 게다가 피카소는 마르를 통해 이해한 불안과 슬픔을 보편적인 감정으로도 승화했는데 그건 바로 ‘게르니카’ 속 사람들의 표정입니다. ‘게르니카’ 속 스페인 내전이라는 폭력으로 참혹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얼굴은 마르의 내면에서 본 것을 여러 차원으로 변주한 것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피카소가 ‘우는 여인’의 도상을 ‘게르니카’에도 넣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하다 포기했다는 사실인데요. ‘우는 여인’이 뿜어내는 슬픔이 너무 강렬해 다른 인물의 감정을 압도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피카소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슬픔과 고통의 감정은 마르에게서 본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피카소는 마르의 피 묻은 장갑을 가져가듯, 그녀의 감정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훔쳤’고, 그것을 사람들의 보편적인 감정으로 확장해 ‘게르니카’에 활용했습니다. 마르의 핏빛 장갑이 피카소의 진열장 속 기념비가 되는 순간이죠.마르는 후일 인터뷰에서 “‘우는 여인’은 피카소가 나를 본 관점일 뿐, 도라 마르가 아니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피카소의 우는 여인’으로만 나를 기억하지 말아 달라는 항변입니다.사랑하는 여인의 아파하는 모습을 관찰하며 표현하고, 그것을 더 발전시켜 역사적인 대작으로 만든 피카소. 그의 냉정함은 약 100년이 지나 또 다른 평가를 받고 있고, 이에 따라 ‘우는 여인’은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예술가는 누구의 눈물을 그림으로 남길 수 있는가, 혹은 타인의 고통을 어디까지 빌릴 수 있는가?’※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옥(玉) 공예가인 서지민 서울산업대 명예교수의 개인전 ‘푸르를 녹, 빛날 옥(Green like Her, Shine like Oke)’이 9일 서울 종로구 코너갤러리와 가회헌 한옥에서 개막했다.이번 전시는 서 교수가 궁중옥 장신구와 연구 제작에 힘써온 시간을 돌아보는 회고전으로, 그가 옥으로 만든 도장과 노리개 등 작품 120여 점을 선보인다. 임금의 옥새를 본떠 만든 작품이나 옥으로 만든 함 등을 감상할 수 있다.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던 서 교수는 고대 보물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미국 테네시주립대학에서 고대 보석을 연구하고, 직접 제작에까지 나서면서 서울산업대 금속공예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했다. 전시는 21일까지 열린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와장창 깨져서 금이 간 유리창 같은 그림 속 여인이 손수건을 이로 잘근잘근 깨물며 울고 있습니다. 여인은 빨간 모자에 푸른색 브로치를 달고, 긴 머리카락을 가지런하게 빗어 넘긴 모습이지만, 그의 얼굴 한가운데는 흑백 사진처럼 모든 색이 사라지고 불안한 손가락과 치아만 강조돼 있습니다. 빨강, 파랑, 초록, 노랑의 경쾌한 색채를 갖고 있음에도 초조한 모습의 이 여인은 바로 파블로 피카소가 한때 사랑했던 여자, 도라 마르입니다. ‘우는 여인’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 이 그림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서 마르는 영원히 ‘우는 여자’로 기억되고 맙니다. 피카소는 왜 연인을 이렇게 그렸던 걸까요? ‘그림 속에 갇혀버린 뮤즈’, 마르와 피카소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피 묻은 장갑의 여인 피카소와 마르의 첫 만남은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장소는 프랑스 파리의 예술가들이 자주 오갔던 카페 ‘레 되 마고(Les Deux Magots)’. 함께 아는 친구였던 시인 폴 엘뤼아르의 소개로 마르와 피카소는 한 테이블에 마주 앉게 되죠. 당시 마르는 대담한 사진으로 앙드레 브르통, 맨 레이의 인정을 받고, 초현실주의 예술가 그룹과 어울렸습니다. 금기를 탐구하며 ‘에로티즘’, ‘내적 경험’ 같은 저서를 남긴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와 연애를 한 적도 있었죠. 그만한 과감함과 예술적 감각을 지녔던 그가 자기보다 훨씬 유명한 예술가 피카소를 처음으로 눈앞에서 마주한 순간. 마르는 기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는 듯 장갑을 벗고 한 손을 테이블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작은 칼을 꺼내 손가락 사이를 내리찍는 위험한 놀이를 시작합니다. 날카로운 칼날이 마르의 희고 긴 손가락 사이를 빠르게 오고 가던 찰나. 실수로 잘못된 곳을 찌르고, 손가락에서 흐른 피가 테이블 위에 놓인 장갑을 적십니다. 피카소는 그런 마르를 지켜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피 묻은 장갑, 내가 가져가고 싶어요.” 마르가 건넨 장갑을 피카소는 집으로 가져가 진열장에 간직합니다. 마르의 복잡하고 예민한 내면을 상징하는 피 묻은 장갑, 그것을 손에 넣은 피카소. 이 장면은 앞으로 두 사람의 관계에서 일어나게 될 격렬한 감정, 그리고 그것을 냉정하게 자기만의 것으로 만든 피카소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습니다.“나에게 도라는 우는 여자” 피카소는 마르를 뮤즈로 삼아 그림으로 남겼지만, 마르 또한 성공한 사진가로 피카소에게 최신 사진 기법을 가르쳐 줬습니다. 또 마르는 초현실주의 예술가들과 함께 ‘반파시즘 선언’에 참여하며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냈는데, 그의 이런 정치적 의식의 영향으로 피카소는 스페인 내전에 관심을 갖고 대작 ‘게르니카’를 그립니다.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그리는 과정을 마르는 사진으로 남겼고 이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록이 됐습니다. 이렇게 현실에서 두 사람은 단순한 연인을 넘어 예술적으로도 교류하고 협업하는 관계였는데, 피카소는 후일 마르에 대해 이런 말을 남깁니다. “도라는 내게 항상 ‘우는 여인’이었다. 나는 몇 년간 그녀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만을 그렸는데, 내가 그런 모습에서 즐거움이나 쾌감을 느껴서가 아니다. 내 눈에 도라는 그저 ‘우는 여자’였고, 그건 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깊은 내면에서 드러나는 현실이었다.” 이 말처럼 피카소는 ‘게르니카’를 그린 다음 몇 년 동안 마르를 모델로 한 초상화를 여러 점 남겼고, 그 그림 대부분에서 마르는 슬프고 고통스럽게 울부짖고 있는, ‘우는 여인’이었습니다.사랑 앞에 냉정한 예술가, 피카소 “‘우는 여인’은 피카소가 도라 마르의 우울한 감정에 집착한 결과물이다. 그는 마르의 고통에 깊이 감정 이입을 하면서도 그것을 이용했다.” 마르의 회고전을 연 영국의 현대미술관 테이트모던은 ‘우는 여인’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늘 불안하고 예민해 수시로 유리처럼 산산조각 나는 마르의 내면을 피카소는 예리하게 관찰했고, 때로는 부추기고 과장해 그림 속에서 일그러진 표정, 손수건을 잘근잘근 깨물며 울부짖는 모습으로 남긴 것이죠. 그 결과물인 ‘우는 여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 됐습니다. 게다가 피카소는 마르를 통해 이해한 불안과 슬픔을 보편적인 감정으로도 승화했는데 그건 바로 ‘게르니카’ 속 사람들의 표정입니다. ‘게르니카’ 속 스페인 내전이라는 폭력으로 참혹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얼굴은 마르의 내면에서 본 것을 여러 차원으로 변주한 것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피카소가 ‘우는 여인’의 도상을 ‘게르니카’에도 넣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하다 포기했다는 사실인데요. ‘우는 여인’이 뿜어내는 슬픔이 너무 강렬해 다른 인물의 감정을 압도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피카소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슬픔과 고통의 감정은 마르에게서 본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피카소는 마르의 피 묻은 장갑을 가져가듯, 그녀의 감정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훔쳤’고, 그것을 사람들의 보편적인 감정으로 확장해 ‘게르니카’에 활용했습니다. 마르의 핏빛 장갑이 피카소의 진열장 속 기념비가 되는 순간이죠. 마르는 후일 인터뷰에서 “‘우는 여인’은 피카소가 나를 본 관점일 뿐, 도라 마르가 아니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피카소의 우는 여인’으로만 자신을 기억하지 말아 달라는 항변입니다. 사랑하는 여인의 아파하는 모습을 관찰하며 표현하고, 그것을 더 발전시켜 역사적인 대작으로 만든 피카소. 그의 냉정함은 약 100년이 지나 또 다른 평가를 받고 있고, 이에 따라 ‘우는 여인’은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예술가는 누구의 눈물을 그림으로 남길 수 있는가, 혹은 타인의 고통을 어디까지 빌릴 수 있는가?’※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을 하시면 e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제가 어디서 눈을 부릅뜨고 ‘다 불태울 거야!’라고 소리치는 카타르시스를 느껴보겠어요. 몰랐던 나를 끌어내며 희열을 느끼고 있죠.” 연극 ‘헤다 가블러’의 주연을 맡은 배우 이영애가 13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32년 만에 무대에 선 소감을 전했다. 이 배우는 주인공 헤다에 대해 “120년 전 헨리크 입센이 쓴 극에선 ‘결혼에 갇힌 여자’이지만, 누구나 고립될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선 남녀노소 모두 ‘헤다’가 될 수 있다”고 했다.“저도 때론 ‘나에게 악플 단 사람들, 가다가 넘어져라!’ 저주하는 마음이 들어요. 누구나 마음속에 크고 작은 ‘헤다’가 있지 않을까요.” 7일 개막해 6월 8일까지 이어지는 ‘헤다 가블러’의 5회 공연까지 마친 이 배우는 무대에 서기 전만 해도 “걱정이 많아 악몽도 꿨다”고 털어놨다.“대사를 잊어버리는 꿈도 꿨어요. 어느 날은 관객들이 전부 공연 중간에 나가 버리며, 누군가 저에게 ‘영애 씨, 그렇게 하시면 안 돼요’라고 하셔서 엉엉 우는 꿈도 꿨어요.” 첫 번째 공연 당시엔 긴장할 새도 없었다고 한다. ‘대사 잊어먹지 말고 연습한 대로 차근차근 하자’는 말만 되뇌었다.“첫 회는 매뉴얼대로만 하는 게 목표였는데, 공연 영상을 다시 보니 발성이 너무 달라 ‘큰일 났다’ 싶었어요. 동료 배우들과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조금씩 무대에 다시 익숙해지고 있어요. 이제는 어느 날은 빨간 매니큐어를 칠하고, 어느 날은 노래 부르듯 대사를 하며 관객과 소통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헤다는 모두가 원하는 아름다운 여인이지만 내면에 무한한 이기심과 질투, 슬픔을 지니고 있다. 그의 심리를 쫓아가는 게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어려웠다”는 이 배우는 “관객들도 오셔서 함께 헤다의 마음을 풀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글자가 빼곡한 종이들이 무대 위에서 낙엽처럼 흩날린다. 배우가 종이 낱장 하나를 집어 귀에 대자 의미심장한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종이를 떼면 소리는 끊어지고, 다른 종이를 들면 전혀 다른 소리가 들린다. 종이마다 적힌 건 고대 그리스의 무당 ‘시빌’이 사람들의 질문을 듣고 써서 던져 놓은 점괘다. 문제는 쌓여 있던 점괘들이 어느 날 세찬 바람에 날려 흐트러져 버렸다는 것. 수북하게 쌓인 종이 더미를 다급하게 뒤지며 ‘내 점괘’를 찾으려는 군상 속에서 극(劇)은 묻는다. ‘우리는 미래와 운명을 예측할 수 있는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예술가 윌리엄 켄트리지의 공연 작품 ‘시빌’이 한국 무대에 올랐다. 켄트리지는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인전 ‘주변적 고찰’을 열었고, 2016년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오페라 ‘율리시즈의 귀환’을 선보인 바 있다. 9, 10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선보인 ‘시빌’은 운명을 알고 싶은 인간의 오래된 욕망과 불안을 드로잉을 담은 영상과 애니메이션, 음악, 연기, 무용으로 표현했다. 고대 그리스 신화부터 현대 과학기술과 알고리즘까지 다양한 주제를 소재로 다뤘다. 켄트리지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남아공의 식민주의와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의 잔재에 민감하게 반응한 작품으로 다양한 장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작가다. 총 2막으로 구성된 이번 공연도 1막 ‘그 순간은 흩어져 버렸다’에서 남아공의 탄광 속 광부와 그림을 그리는 켄트리지의 모습이 교차했다. 극에서는 무대 위 연기자들이 입으로 내는 리드미컬한 소리와 광부의 곡괭이 소리가 겹친다. 이 대목에서 관객은 ‘이야기를 짓는’ 예술가와 ‘광물을 캐는’ 광부의 노동을 비교하게 된다. 켄트리지는 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광산은 요하네스버그를 두 가지 풍경으로 나눈다. 하나는 산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화려한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폭력적이고 무질서한 도시의 모습. 사람들은 광부를 불법 노동자라고 하지만 예술가와 광부 중 과연 어느 쪽이 불법인 것인지, 그 질문을 거칠게 담았다.” 2막 ‘시빌을 기다리며’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예언’과의 쫓고 쫓기는 싸움을 세련된 감각으로 무대에 펼쳐 놓는다. 켄트리지와 협력해 작품을 연출한 작곡가 은란라 말랑구의 힘이 넘치는 음악과 연기자들의 몸짓이 알렉산더 콜더의 드로잉을 연상케 하는 색채와 선을 만나 정제된 모습으로 전개된다. 그중에서도 스크린으로 투사된 책 영상 위로 역동적인 춤을 추는 ‘시빌’의 그림자가 겹치는 장면이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빅데이터를 상징하는 듯한 깨알 같은 글씨들은 무대 위 살아 있는 몸으로 등장한 무녀 ‘시빌’의 그림자에 가려 힘을 잃는다. 켄트리지는 “우리는 은행 대출을 받는 게 좋을지, 80세까지 살 수 있을지, 미래와 건강은 어떨지 알고리즘에게 예측해달라며 신봉한다. 동시에 인간적인 ‘시빌’의 가능성을 붙들기 위해 여전히 싸우고 있다”고 했다. 켄트리지는 30일 GS아트센터에서 또 다른 작품을 이어간다.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한 ‘쇼스타코비치 10: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었더라면’을 선보일 예정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제가 어디서 눈을 부릅뜨고 ‘다 불 태울 거야!’라고 소리치는 카타르시스를 느껴보겠어요. 몰랐던 나를 끌어내며 희열을 느끼고 있죠.”연극 ‘헤다 가블러’의 주연을 맡은 배우 이영애가 13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32년 만에 무대에 선 소감을 전했다. 이 배우는 주인공 헤다에 대해 “120년 전 헨릭 입센이 쓴 극에선 ‘결혼에 갇힌 여자’이지만, 누구나 고립될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선 남녀노소 모두 ‘헤다’가 될 수 있다”고 했다.“저도 때론 ‘나에게 악플 단 사람들, 가다가 넘어져라!’ 저주하는 마음이 들어요. 팬데믹 때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하루 종일 영상 수업을 들을 땐 ‘집에서 뛰쳐나가고 싶다’ 생각도 했죠. 누구나 마음 속에 크고 작은 ‘헤다’가 있지 않을까요.”7일 개막해 6월 8일까지 이어지는 ‘헤다 가블러’의 5회 공연까지 마친 이 배우는 무대에 서기 전만 해도 “걱정이 많아 악몽도 꿨다”고 털어놨다.“대사를 잊어버리는 꿈도 꿨어요. 어느 날은 관객들이 전부 공연 중간에 나가버리며, 누군가 저에게 ‘영애 씨, 그렇게 하시면 안돼요’라고 하셔서 엉엉 우는 꿈도 꿨어요.”첫번째 공연 당시엔 긴장할 새도 없었다고 한다. ‘대사 잊어먹지 말고 연습한 대로 차근차근 하자’는 말만 되뇌었다.“첫 회는 매뉴얼대로만 하는 게 목표였는데, 공연 영상을 다시 보니 발성이 너무 달라 ‘큰일났다’ 싶었어요. 동료 배우들과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조금씩 무대에 다시 익숙해지고 있어요. 이제는 어느 날은 빨간 매니큐어를 칠하고, 어느 날은 노래 부르듯 대사를 하며 관객과 소통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헤다는 모두가 원하는 아름다운 여인이지만 내면에 무한한 이기심과 질투, 슬픔을 지니고 있다. 그의 심리를 쫓아가는 게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어려웠다”는 이 배우는 “관객들도 오셔서 함께 헤다의 마음을 풀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글자가 빼곡한 종이들이 무대 위 낙엽처럼 흩날린다. 배우가 종이 낱장 하나를 집어 귀에 대자 의미심장한 소리가 들리지만 종이를 떼면 소리는 끊어지고, 다른 종이를 들면 전혀 다른 소리가 들린다. 종이마다 적힌 것은 고대 그리스의 무당 ‘시빌’이 사람들의 질문을 듣고 써서 던져 놓은 점괘다.문제는 쌓여 있던 점괘들이 어느 날 세찬 바람에 날려 흐트러져 버렸다는 것. 수북하게 쌓인 종이 더미를 다급하게 뒤지며 ‘내 점괘’를 찾으려는 군상 속에서 극은 묻는다. ‘우리는 미래와 운명을 예측할 수 있는가?’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예술가 윌리엄 켄트리지의 공연 작품 ‘시빌’이 한국 무대에 올랐다. 9~10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선보인 이 공연은 운명을 알고 싶은 인간의 오래된 욕망과 불안을 드로잉을 담은 영상과 애니메이션, 음악, 연기, 무용으로 표현했다. 고대 그리스 신화부터 현대 과학기술과 알고리즘까지 소재로 다뤘다.켄트리지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남아공의 식민주의와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의 잔재에 민감하게 반응한 작품으로 다양한 장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작가다. 총 2막으로 구성된 이번 공연에서도 1막 ‘그 순간은 흩어져 버렸다’에서 남아공의 탄광 속 광부와 그림을 그리는 켄트리지의 모습이 교차했다.극에서는 무대 위 연기자들이 입으로 내는 리드미컬한 소리와 광부의 곡괭이 소리가 겹쳤다. 이 대목에서 관객은 ‘이야기를 짓는’ 예술가와 ‘광물을 캐는’ 광부의 노동을 비교하게 되는데, 켄트리지는 이렇게 설명했다.“광산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를 두 가지 풍경으로 나눈다. 하나는 산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화려한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폭력적이고 무질서한 도시의 모습. 사람들은 광부를 불법 노동자라고 하지만 예술가와 광부 중 과연 어느 쪽이 불법인 것인지, 그 질문을 거칠게 담았다.”이어지는 2막 ‘시빌을 기다리며’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예언’과의 쫓고 쫓기는 싸움을 세련된 감각으로 무대에 펼쳐 놓는다. 켄트리지와 협력해 작품을 연출한 작곡가 은란라 말랑구의 힘이 넘치는 음악과 연기자들의 몸짓이 알렉산더 칼더의 드로잉을 연상케 하는 색채와 선을 만나 정제된 모습으로 전개된다.그중에서도 스크린으로 투사된 책 영상 위로 역동적인 춤을 추는 ‘시빌’의 그림자가 겹치는 장면이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빅데이터’를 상징하는 듯한 깨알 같은 글씨들은 무대 위 살아있는 몸으로 등장한 무녀 ‘시빌’의 그림자에 가려 힘을 잃는다. 켄트리지는 “우리는 은행 대출을 받는 게 좋을지, 80세까지 살 수 있을지, 미래와 건강은 어떨지 알고리즘에게 예측해달라며 신봉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인간적인 ‘시빌’의 가능성을 붙들기 위해 여전히 싸우고 있다”고 했다.켄트리지는 30일 GS아트센터에서 또 다른 작품을 이어간다. 이날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한 ‘쇼스타코비치 10: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었더라면’이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000년 개관해 신진 작가를 지원해 왔던 ‘인사미술공간’(인미공)이 6월 운영 종료를 앞두고 마지막 전시를 열고 있다. 1999년 외환위기 이후 창작 활동과 예술 지원이 위축되자, 당시 한국문화예술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은 시각 예술가들의 활동과 교류를 지원하기 위해 인미공을 열었다. 그간 신진 작가들의 개인전 등을 개최하며 등용문 역할을 해왔으나 갈수록 여건이 나빠지면서 문을 닫게 됐다. 지난달 29일 개막한 전시 ‘그런 공간’은 이러한 인미공의 25년 역사를 돌아보는 의미가 담겼다. 김익현, 슬기와 민, 박보마, 아트-토커 등 작가와 기획자들이 다수 참여했다. 관람객에게 개방되지 않았던 3층 사무실을 활용해 가상의 무대를 재구성하거나(박보마), 과거 인미공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재료로 영상 작품을 구성하고(김익현), 인미공을 경험한 큐레이터들이 그동안 이뤄진 활동을 토대로 타임라인을 구성(아트-토커)했다. 서울 종로구 관훈동에서 첫 전시를 시작했던 인미공은 2006년 지금의 원서동 건물로 이전했다. 인미공을 운영하는 아르코미술관은 “시간이 흐르며 공간의 역할이 변했고, 지역 개발에 따른 임대료 상승 등 대내외적 여건이 악화돼 운영 종료를 결정하게 됐다”며 “그 대신 인미공에서 생성한 여러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음 달 1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3일 일본 교토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니조(二条)성. 여기에 있는 일본 막부시대 쇼군(將軍)의 궁전 ‘니노마루 고텐’은 화려한 금박 장식 등으로 평소 니조성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하지만 대형 부엌과 조리실(다이도코로, 오세이쇼)은 다소 어둡고 차분한 분위기의 목조 건축물로 평소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곳. 이날 건물 안에 들어서자 폭 9.5m, 높이 3.8m 대작 회화 ‘옥타비오 파스를 위하여’가 압도적 분위기를 내뿜었다. 이 작품은 세계적 거장인 독일 출신 미술가 안젤름 키퍼가 3월 31일부터 개최한 개인전 ‘솔라리스’에서 새로 공개한 신작이다. 키퍼가 아시아에서 연 최대 규모의 전시에 어울리는 크기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폭격의 비극에서 영감을 얻은 회화부터 과학과 신화, 종교에 대한 사색을 담은 작품까지 총 33점을 선보인 이번 전시를 현장에서 둘러봤다.● 죽음과 황금이 섞인 매혹적인 폐허 키퍼는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는 요제프 보이스(1921∼1986)나 게오르크 바젤리츠 같은 독일 신표현주의 미술가들과 함께 현대 미술의 새로운 길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 거장. 독일 신국립미술관, 프랑스 퐁피두센터를 비롯해 여러 권위 있는 미술 기관에서 그의 작품 세계를 조명해 왔다.‘옥타비오 파스를 위하여’는 커다란 캔버스 위에 줄지어 붙은 돌과 숯덩이들이 끝없이 펼쳐진 들판을 만들어 냈다. 들판 한가운데 불에 탄 번쩍이는 형상이 보이는데, 가까이 가면 비명을 지르는 얼굴이다. 그림 속 인간은 고통스럽지만, 역설적으로 들판은 무심한 듯 아름다운 금박과 각종 금속을 산화해 만든 청록색 물감으로 그려져 매혹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해당 작품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파스(1914∼1998)의 시에서 영감을 받은 연작 가운데 하나. 모든 것이 연결돼 서로 영향을 준다는 시 구절을 인용한 이 작품은 현대인들이 전쟁의 상흔을 제대로 직면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그 옆엔 원폭 투하로 뼈대만 남은 히로시마 센다초등학교의 사진을 바탕으로 한 ‘오로라’가 있다. 이 역시 처음 공개된 작품으로 공동묘지처럼 되어버린 학교를 선으로 겹겹이 그린 위에 유모차를 얹고 그 안에 금박 패널을 넣었다. 제목 ‘오로라’는 1905년 러일전쟁 쓰시마 해전에서 일본 해군의 포격으로 피해를 본 군함을 일컫는다. 러일전쟁은 러시아 혁명을 일으키는 신호탄이 됐다. 당시는 일본 제국주의가 팽창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인간의 욕망이 낳은 비극과 그 안에서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사색하게 만든다.● 인간이 만드는 비극과 희망 이번 전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대한 원자폭탄 폭격 80주년을 맞아 기획됐다. 키퍼의 작품은 역사적 비극 등 한 측면만 강조하기보다 그 안에 담긴 인간의 복잡한 속성, 그것을 이해하며 생겨나는 희망을 신화에 빗대거나 상징을 통해 표현한다. 인간이 자아낸 비극을 신비롭게 표현해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건 키퍼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든 요소 중 하나다. 1945년 3월 폭격을 당하던 독일의 한 병원 지하에서 태어난 키퍼는 폐허가 된 도시에서 부서진 건물 벽돌을 갖고 놀며 자랐다고 한다. 패전국 독일의 복잡하고 모순적이던 사회 분위기에서 영감을 얻은 작가는 인간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선보여 왔다. 이번 전시도 조리실로 쓰였던 공간에서 ‘모겐소 플랜(Morgenthau Plan)’을 제목으로 한 설치와 회화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모겐소 플랜은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군수 산업과 중공업을 제거하고 농업과 목축 중심의 국가로 만들려 했던 계획. 작가는 이 계획이 실현됐다면 만들어졌을 법한 곡식이 빼곡한 밭을 건물 내에 만들었다. 금을 입힌 곡식 사이로 바닥에 납으로 된 책과 뱀 조각이 보였다. 무언가를 억지로 제압하거나 거스르려는 인간의 행동이 문명을 만드는 데 일조했지만, 때로는 스스로를 파괴하는 덫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전시장 밖 쇼군이 머무는 침실이 있었던 니노마루 고텐 앞 정원엔 ‘사포’ ‘솔라리스’ 등 지혜로운 여인들을 표현한 조각이 설치됐다. 또 금박과 산화된 청록 안료가 가득한 풍경 사이로 사라질 듯 서 있는 작가의 뒷모습을 담은 회화 ‘안젤름이 여기 있었다’ 등도 전시됐다.교토=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떠나는 연인의 가시는 길에 꽃을 뿌려 드리겠다고 했던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은 한국인에게 슬픔과 한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미술가 소피 폰 헬러만이 본 진달래꽃은 살짝 다르다. 한때 사랑했던 두 사람의 엇갈린 시선과 떠나려는 찰나. 그사이에 피어난 희고 가느다란 꽃이 진달래꽃이다.독일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살고 있는 작가 헬러만이 ‘단오’를 비롯한 한국의 문화를 주제로 만든 작품으로 국내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지난달 9일 서울 강서구 ‘스페이스K 서울’에서 개막한 전시 ‘축제’는 헬러만의 신작 회화 20여 점과 대형 벽화를 선보였다. 헬러만은 캔버스를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 제소(gesso·석고 가루)를 칠하는 등의 바탕 작업을 생략하고, 천 위에 바로 빠른 붓질로 즉흥적이고 속도감 있는 그림을 그린다. 이런 감각을 살려 작가가 한국 전시를 위해 선택한 큰 주제는 ‘축제’와 ‘단오’.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뛰기와 씨름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액운을 쫓아내고 한 해의 풍년과 건강을 기원하는 활기찬 분위기를 헬러만의 그림에서 느낄 수 있다. 헬러만은 “전시를 준비하며 봄에 열리는 한국의 축제인 ‘단오’와 이청준의 소설 ‘축제’를 읽었다”며 “‘축제’는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간직하고 삶을 기념하는지에 관한 이야기인데, 내 작품도 언제나 기억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 그가 표현한 단오제의 모습은 ‘진달래꽃’처럼 다소 낯선 형상을 하고 있지만, 공동체의 안녕을 소망하는 마음만은 비슷하다. 헬러만은 “단오에 관한 자료와 사진을 보며 영국에서 좋은 여름과 풍년을 기원하는 축제 ‘메이데이’가 떠올랐다”고 했다. 헬러만이 한국 문화를 재해석한 작품들을 한 차원 끌어올리는 건 미술관의 폭 80m, 높이 9m 벽을 가득 채운 초대형 벽화다. 조민석 건축가가 설계한 독특한 구조의 전시장 모양을 활용해 작가는 변화무쌍한 자연의 모습을 펼쳐 놓았다. 정면에 가장 크게 보이는 공간에는 거센 폭풍과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을 대비시켰다. 오른쪽 2층 공간으로 이어지는 창엔 폭포가 쏟아지는 모습을 표현했다. 전통 단오제에서 마을의 산에 올라가 나무에 치장하고 내려오는 모습을 그린 작품 ‘산행’도 인상적이다. 오방색 깃발이 번개가 치고 먹구름이 낀 하늘 속 무지개와 연결되는 장면이 담겼다. 커다란 자연 풍경 속에 배치된 캔버스 속 사람들은 대자연의 변덕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작은 존재. 하지만 그 안에서 기원하고, 축복하고, 기념하며 끈질기게 살아가는 인간사의 단면을 떠올리게 한다. 7월 6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3 예고편이 공개됐다. 6일 넷플릭스는 유튜브 공식 계정에 “456억을 건 마지막 게임이 시작된다”며 약 1분 30초 길이의 티저 예고 영상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은 업로드 약 3시간 만에 조회수 20만 회를 넘겼다. 예고편은 성기훈(이정재)이 핑크 리본이 달린 관 속에서 눈을 뜨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어 게임 참가자들이 빨간색, 파란색 공을 무작위로 뽑으며 새로운 게임을 이어간다. 마지막 장면에선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며 임신부 참가자인 준희(조유리)의 운명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날 함께 공개된 스틸컷에는 경비원들에게 붙잡혀 울부짖는 기훈, 가면을 벗은 채 누군가에게 맞서는 노을(박규영), 잠수복 차림으로 산소통을 메고 바다에 있는 준호(위하준)의 모습이 담겼다. 2021년 시즌1을 시작한 ‘오징어 게임’은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며 넷플릭스 역대 흥행 1위에 올랐다. 지난해 공개된 시즌2도 작년 4분기(10∼12월) 시청 횟수가 1억6570만 회를 넘어섰다. 시즌3는 6월 27일 공개될 예정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3 예고편이 공개됐다. 6일 넷플릭스는 유튜브 공식 계정에 “456억을 건 마지막 게임이 시작된다”며 약 1분 30초 길이의 티저 예고 영상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은 업로드 약 3시간 만에 조회수 20만 회를 넘겼다.예고편은 성기훈(이정재)이 핑크 리본이 달린 관 속에서 눈을 뜨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어 게임 참가자들이 빨간색, 파란색 공을 무작위로 뽑으며 새로운 게임을 이어간다. 마지막 장면에선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며 임산부 참가자인 준희(조유리)의 운명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이날 함께 공개된 스틸컷에는 경비원들에게 붙잡혀 울부짖는 기훈, 가면을 벗은 채 누군가에 맞서는 노을(박규영), 잠수복 차림으로 산소통을 메고 바다에 있는 준호(위하준)의 모습이 담겼다.2021년 시즌1을 시작한 ‘오징어게임’은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며 넷플릭스 역대 흥행 1위에 올랐다. 지난해 공개된 시즌2도 작년 4분기 시청 횟수가 1억6570만회를 넘어섰다. 시즌3는 6월 27일 공개될 예정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상설전이 5년 만에 부활했다. 과천관은 한국 근현대미술 100년사를 조명하는 ‘한국근현대미술’전을 1, 2부로 나누어 소개한다. 서울관은 1960∼2010년대 대표작 86점을 담은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전을 열었다. 1일 과천관 1부와 서울관의 상설전이 먼저 개막했고, 과천관 2부 전시는 다음 달 26일 공개 예정이다. 먼저 전체 윤곽이 드러난 서울관 전시작 중 눈여겨볼 ‘노른자 작품’ 8점을 꼽아 봤다. ① 이응노 ‘군상’(1986년) 서예와 수묵화는 물론이고 일본에서 서양화를 배우고, 젊은 시절 종로에서 상점과 극장의 간판까지 그렸던 ‘평생 화가’ 이응노의 대표작이다. 1958년 프랑스로 이주한 뒤 추상화가 세계적으로 유행하자 한국식 ‘문자 추상’과 화폭을 글자 같은 사람들로 가득 채운 ‘군상’ 시리즈로 주목받았다. 2017년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회고전이 열렸다. ② 최욱경 ‘미처 못 끝낸 이야기’(1977년) 1950∼70년대 추상화를 그린 미술가들은 남성 작가 중심으로 조명됐다. 이와 달리 이번 전시는 입구에 들어서면 이성자와 최욱경의 회화 2점이 먼저 관객을 맞이한다. “여성 미술가를 제대로 보자”는 배명지 학예연구사의 의도가 담겼다. 폭 2m가 넘는 캔버스에 불꽃 같은 형상들이 에너지를 뿜어내는 대작이다. ③ 이우환 ‘선으로부터’(1974년) 현상학의 영향을 받은 미니멀리즘 예술이 중요하게 떠오르던 1960년대. 이우환은 일본에서 선불교를 토대로 한 ‘모노하’ 운동의 이론을 제시해 현재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작품이나 사물의 ‘내용’보다 우리가 그것을 마주하면서 생기는 ‘만남’이 의미를 만든다는 미학을 이 작품은 캔버스에 푸른 선을 긋는 ‘행위’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④ 박생광 ‘무속3’(1980년) 흑백 위주의 수묵화가 중심이던 1981년 팔순이 가까웠던 화가 박생광은 강렬한 원색으로 불교, 무속, 한국사 등의 소재를 대작으로 풀어낸 백상기념관 개인전으로 미술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 무렵 ‘혜초’ ‘명성황후’ ‘녹두장군’ 등을 연달아 발표하고 파리 르살롱 특별전에도 초대를 받는다. 이 작품은 ‘이건희 컬렉션’으로 미국 워싱턴 순회전에 출품돼 9월까지만 감상할 수 있다. ⑤ 황재형 ‘황지330’(1981년) 1980년 강원 태백 황지탄광에서 매몰 사고로 숨진 광부의 작업복을 176cm 높이 캔버스에 그렸다. 낡아서 해어지고 구겨진 작업복이 커다란 산맥처럼 자세히 묘사됐고, 광부의 이름표에는 그늘이 져 있다. 고단한 삶의 흔적 속 비극과 숭고함을 담아 화단의 주목을 받았지만, 작가는 ‘광부의 삶을 대상화한 것 아닌가’라는 자괴감에 직접 탄광촌으로 이주해 ‘광부 화가’가 됐다. ⑥ 신학철 ‘한국근대사―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1989년)‘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릴 수 있는가’라는 한강의 질문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화가는 동학농민운동, 의병 항쟁, 4·19혁명 등의 장면들을 발췌해 휘몰아치는 덩어리로 그렸다. 목이 잘린 인물이 작은 사람들을 붙잡고 거대한 힘을 일으키는 듯한 모습이다. ‘이건희 컬렉션’ 순회전 준비로 한국을 찾았던 영국박물관 큐레이터가 이 작품을 보고 “붉은색과 형상이 아름답다”고 감탄하며 순회전에 포함시키지 못해 아쉬워했다는 후문이다. ⑦ 백남준 ‘잡동사니 벽’(1995년) 첫 전시 뒤 30년 만에 다시 빛을 보는 작품이다. 독일 볼프스부르크 미술관 개인전에서 발표한 작품으로, 이 지역에서 생산하는 폭스바겐 자동차와 한국의 전통 가마, 불상, 코끼리가 리드미컬하게 쌓여 있다. 배 학예연구사는 “30년 전 작품 설치 영상부터 상세한 설치 가이드라인, 자동차 부품이 녹슬면 대체할 수 있는 여유분까지 작품과 함께 들어 있었다”며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작품 보존이 되도록 고민한 흔적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⑧ 이불 ‘사이보그 W5’(1999년) 비닐 속에 담긴 생선이 부패해가는 설치 작품이나, ‘낙태’ 퍼포먼스로 충격을 안겼던 이불 작가는 이후 문명과 유토피아의 불완전함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매끈한 흰색으로 제작돼 예뻐 보이지만, 한쪽 팔과 다리가 잘려 있는 ‘사이보그’의 모습은 이상향을 꿈꾸지만 늘 실패하는 인류 역사의 단면을 담고 있다. 지하 전시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바로 앞에 설치돼 관객을 놀래킨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푸른 물감으로 무늬를 그린 청화백자 화분에 종려나무가 시원하게 뻗어 있다. 햇볕을 받아 밝게 빛나며 총천연색을 뽐내는 식물과 커튼을 넘어 검푸른 실내 공간. 마룻바닥 위엔 한 소년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덩그러니 서 있다. 이 아이는 클로드 모네의 여덟 살 아들 장 모네. 독특한 분위기의 그림 속에서 아버지는 천진난만하지만 어른들의 세계에서 때로 낯설고, 불안하며, 두려움을 느끼는 소년의 마음을 풀어 놓았다. 이 책은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이 남긴 어린이 그림을 모은 화집이다. 2023년 프랑스 지베르니인상파미술관에서 열린 ‘인상파 화가와 어린이들’ 전시회 도록을 한국어로 번역했다. 전시의 주요 출품작과 더불어 기획자와 연구자의 글, 카미유 피사로의 아들 리오넬 피사로가 아버지에 대해 쓴 글 등이 수록됐다.책에 자주 등장하는 화가는 모네와 카미유 피사로,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그리고 베르트 모리조다. 르누아르는 자기 자식보다 부유층 어린이를 집중적으로 그렸다. 그림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그가 미술 시장에서 의뢰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어린이 초상화를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르누아르는 1879년 살롱전에서 귀족 부인의 자녀를 그린 작품으로 큰 주목을 받았고, 주문이 밀려들면서 어린이 초상화를 자주 그렸다. 이는 19세기 말 프랑스의 사회 변화와도 관련이 깊다. 이 무렵 프랑스에선 가구당 자녀 수가 줄면서 어린이를 보는 사회적 시선이 바뀌었다. 관련 법과 제도도 등장했다. 부유층 어린이를 위한 의복, 게임, 장난감이 판매됐고 부르주아 가정에선 아이 방을 따로 마련해 어린이용 가구와 소품으로 꾸며주는 문화가 생겼다. 르누아르는 이 문화에 발맞춰 아이를 예쁜 모습으로 남기고자 하는 부모들의 욕망을 자극했다. 여성 화가였던 모리조의 그림에선 아이를 향한 따뜻한 시선과 정직한 표현이 느껴진다. 모리조는 딸 쥘리를 자주 그렸는데, 동료 화가인 메리 커샛은 “오로지 어린이의 진실하고 자연스러운 모습만을 그렸다”고 평했다. 자기 자식이니 꾸미거나 미화해서 그릴 수도 있었겠지만, 모리조는 가정주부가 되기를 거부한 진지한 화가였다. 딸을 출산한 1878년을 제외하고 모든 인상주의 그룹전에 참여했을 정도로 화가로서의 삶에 집중했다. 남성 화가들처럼 카페나 술집에서 마음껏 동료들과 교류할 수 없었지만, 그 대신 그들을 집으로 초대했고 딸 쥘리도 자연스레 화가들과 어울렸다. 자기 자식뿐 아니라 동시대 후배 화가들과 그들의 아이들까지 사랑한 ‘아버지’ 피사로의 집은 예술가와 현실 참여적 지성인들의 아지트이자 예술 학교였다. 시인 옥타브 미르보는 피사로의 아들에게 “네 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 꿈꾸던 이상적인 아버지”라고 했다. 폴 세잔은 “내 아버지보다 카미유를 더 믿고 따른다”고 했다. 피사로의 그림 속 아이들은 항상 그림을 그리거나 색을 칠하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있다. 이 밖에도 책엔 폴 고갱, 메리 커샛이 남긴 어린이 그림과 마틴 파, 리네케 딕스트라 같은 현대 사진가들의 작품, 당대 어린이들의 교육 제도나 여가, 그림 속에서 볼 수 있는 의복 문화에 대해 연구한 글이 함께 수록됐다. 인상파 예술가 그룹이 살았던 시대와 공간 속 어린이의 삶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책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026년 베니스 비엔날레 제61회 국제미술전에서 한국관 전시를 총괄할 예술감독에 최빛나 큐레이터(사진)가 선임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예술감독 지원자 공개 모집을 거쳐 최 큐레이터가 제안한 전시기획안 ‘해방 공간. 요새와 둥지’(가제)를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기획안은 최고은, 노혜리 작가가 참여해 ‘요새’와 ‘둥지’라는 상반된 개념을 통해 21세기적 ‘해방 공간’을 드러낸다는 의도를 담았다. 최 큐레이터는 2016년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 2022년 싱가포르 비엔날레 공동예술감독 등을 역임했다. 2026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전의 총감독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 있는 자이츠 아프리카 현대미술관 총괄 디렉터인 코요 쿠오가 선임됐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은 내년 5월 9일부터 11월 21일까지 열린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등록 이민자의 자녀로 미국에 살고 있는 두 청소년 G와 B. G는 가정 폭력에 시달리고, B는 어머니가 미국을 떠나 혼자 생계를 꾸려야 한다. 집에서도 사회에서도 ‘시민권’이 없어 기댈 곳 없는 두 아이는 서로 의지하며 가까워진다. 그러다 G가 대학 진학에 성공하고 시민권을 얻게 된다. 굳건했던 둘의 관계에는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데…. 연극 ‘생활의 비용’으로 2018년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을 수상한 마티나 마이옥 작가가 미등록 이민자로서의 경험을 담아낸 ‘생추어리 시티’가 한국 무대에 올랐다. 폴란드 출신 미국인인 마이옥은 어린 시절 어머니와 미국으로 이주해 뉴저지주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한국에서는 이오진이 연출을 맡고 배우 이주영 김의태 아마르볼드가 출연한다. 22일부터 다음 달 1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된다. 총 2막으로 구성된 극은 1막에서 장면이 빠르게 전환된다. 두 인물이 미등록 이민자로서 부딪히는 ‘현실’과 서로를 위하는 소년 소녀의 ‘우정’을 짧은 대화로 교차하며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무대 한가운데 불편하게 쌓여 있던 나무판자들이 눈길을 끈다. 이 판자들은 막이 전환될 때 하나씩 조립되며 2막에서 집으로 변한다. 3년의 세월이 흘러 시민권을 가진 대학생 G가 B의 앞에 다시 나타난다. 두 사람은 ‘안식처’(생추어리 시티)를 찾았을까? 이미 다른 연인이 생긴 B에게 G는 자신과 결혼해 시민권을 얻으라고 제안한다. B가 팍팍한 현실에 ‘위장 결혼’을 결심하자 B와 G, 그리고 B의 연인 헨리의 각기 다른 욕망과 질투가 충돌하며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해당 연극은 ‘지역’을 주제로 하는 ‘두산인문극장 2025’의 첫 시리즈. 사랑과 우정이란 보편적 이야기로 ‘지역 사회 구성원의 조건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