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구독 218

추천

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kimmin@donga.com

취재분야

2025-11-05~2025-12-05
미술55%
인사일반13%
문학/출판10%
연극10%
음악3%
역사3%
칼럼3%
문화 일반3%
  • ‘나’를 켜는 별을 기다리며…

    “수예가 아홉 살이었을 때, 저에게 질문을 했어요. ‘이렇게 하면 안 될까요? 이건 어때요?’ 하면서. 그 나이에 흔한 일은 아니거든요.”올해 핀란드 ‘장 시벨리우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제자 박수예(25)의 첫인상을 묻자 울프 발린 교수의 눈이 반짝였다. 스웨덴 출신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독일 베를린 한스아이슬러 국립음대 교수,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악예술대 객원교수인 발린은 23세 때부터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해 42년 동안 많은 세계 유망주를 지도하고 있다.박수예는 아홉 살 때 발린 교수에게 발탁돼 베를린에서 공부하며 앨범 발표부터 콩쿠르 우승까지 차근차근 커리어를 밟아 나가고 있다. 십수 년 전 한국에서 온 어린 연주자의 가능성을 어떻게 알아보았을까. “어떤 사람의 잠재력은 느낌으로 다가오기에 설명하기 어렵죠. 하지만 그 질문을 받으니 수예가 공손하게 물어보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어린 소녀였는데도 강한 개성과 열린 마음과 왕성한 호기심이 돋보였어요. 수예와 정말 많은 수업을 했지만 어려웠던 기억이 없을 정도로, 영리함과 노력을 갖춘 톱클래스 연주자입니다.” 발린 교수는 올해 바이올린 부문으로 열리는 ‘LG와 함께하는 제20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2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예선 2일 차까지 심사를 마친 상태였다. 지금까지의 인상을 묻자 “끝까지 봐야 알 수 있겠다”고 신중하게 답하면서도 참가자들의 기량을 칭찬했다. “요즘 콩쿠르는 연주자들의 평균 기량이 매우 높아졌어요. 점점 심사하기가 까다로워지고 있지요. 그럼에도 언제나 ‘톱클래스’는 극소수입니다. 그런 연주자를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발린 교수는 이번 콩쿠르의 흥미로운 포인트로 1차 예선에서 연주자들이 모차르트 소나타를 연주한 것을 꼽기도 했다. “20세기 피아니스트 아르투어 슈나벨이 ‘모차르트는 아이들이 연주하기엔 너무 쉽고, 어른이 연주하기엔 너무 어렵다’고 했어요. 모차르트 음악은 ‘디테일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작은 것을 간과하잖아요. 작고 평범한 것도 놓치지 않고 연주할 수 있느냐, 또 솔로곡이 아니니 피아노와 잘 협주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죠.” 발린 교수가 심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대목은 뭘까. 결국은 차이를 가르는 건 “개성”이라고 했다. 요즘은 유튜브 등을 통해 좋은 연주와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이에 평균적으로 실력은 높아졌지만, 세계적으로 연주들이 비슷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저는 베를린에서 세계에서 온 여러 학생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다른 문화에 적응하느라 어려움을 겪지만, 꼭 지켰으면 하는 건 자신의 ‘뿌리’입니다. 1960, 70년대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 15명을 떠올려보면, 각자의 연주 스타일이 모두 달랐거든요.” 이를 위해서는 연주자들이 기교만 열심히 연습하는 게 아니라 작곡가를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그가 살았던 시대와 사회, 정치 배경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나를 위해 음악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작곡가와 음악을 앞에 세우고 내가 뒤에 서는 것. 그 안에서 움직이며 큰 힘을 만들어 내는 연주자가 정상에 오를 수 있습니다. 그런 연주자를 만나게 되기를 기대하며 남은 심사에 임하겠습니다.” ‘LG와 함께하는 제20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는 7, 8일 서울교육대 종합문화관에서 열리는 준결선에 이어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결선 경연으로 마무리된다. 준결선 1만 원, 결선 전석 2만 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8시간 전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삼일절, 독립혁명 의미 살려 ‘3·1독립선언절’로”

    3월 1일 삼일절의 명칭을 민족 독립을 쟁취하려는 혁명적 성격이 강하단 뜻을 담아 ‘3·1독립선언절(3·1 Independence Declaration Day)’로 바꾸는 걸 추진하는 모임이 결성됐다.‘3·1독립선언절 제정 추진위원회’는 3일 서울 서초구 KCEF서초플랫폼에서 발기인대회를 개최했다. 위원회는 이날 발기선언문에서 “1919년 3월 1일은 우리 민족이 일제의 식민 지배와 폭정을 벗어나 정치적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자유의지로 결단하고 봉기한 3·1독립혁명의 첫날”이라고 밝혔다. 위원회는 이어 3월 1일은 “독립선언과 만세 시위를 결행한 날이며, 상하이 임시정부로 시작된 오늘날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의 길로 나아가게 한 역사적 계기이자 근대적 국민통합의 기반”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국회는 3·1독립선언절 제정 법안을 여야 합의로 조속히 의결하라”고 촉구했다. 위원회는 이문원 전 독립기념관 관장과 이택휘 전 서울교대 총장, 김학준 전 동아일보 회장, 신복룡 건국대 명예교수, 정윤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주성민 한국지역사회교육재단 명예이사장 등 공동대표 6인을 포함해 33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정 교수는 “내년 2월 4일 추진위원회의 공식 발족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1일 전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화려한 군복 뒤에 숨은 불안감

    “최고 상류층의 초상화를 그리던 붓으로 거리의 부랑자와 정신 이상자도 그렸던 화가.” 근대 미술의 문을 연 거장 프란시스코 데 고야(1746∼1828)에 대해 어느 미술사가가 남긴 말이다. 고야의 붓이 모두가 선망하던 대상부터 감추고 싶은 사회와 인간의 치부까지 건드렸음을 뜻한다. 그의 붓이 그린 귀족과 왕실 초상화에선 이런 ‘양면성’을 느낄 수 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열리는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전에서 볼 수 있는 고야의 ‘라 로카 공작, 비센테 마리아 데 베라 데 아라곤의 초상’은 스페인 왕실과 가까웠던 라 로카 공작이 왕립 역사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된 걸 기념해 그린 초상화다. 이때 고야는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4세의 신임을 받아 궁정화가로 일하고 있었다. 군인이자 행정가였던 라 로카 공작은 이 초상화에서 화려한 군복과 훈장 차림이다. 권위를 드러내는 복장은 그의 업적을 돌아보게 한다. 이 시기 스페인을 포함한 유럽 왕실은 프랑스혁명으로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라 로카 공작은 왕실의 반혁명 정책을 지지했고, 바렌시아 지역 사령관으로서 프랑스인 추방령을 내려 왕실의 신임을 받았다. 강경한 왕실 충성파 세력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고급스러운 의자와 위엄 있는 복장에 반해, 라 로카 공작의 모습엔 독특한 특징이 있다. 이를테면 소매 끝으로 어색한 듯 움츠리고 있는 오른손이 그러하며,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걸려는 듯 살짝 벌어진 입술 또한 그렇다. 사실적인 피부 질감과 주름은 라 로카 공작의 권위 이면에 있는 왕정 쇠퇴기의 불안함을 보여준다. 고야는 이 그림을 그리기 2년 전 목숨을 위협하는 병을 앓았다. 당시 서서히 청각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 고통을 겪은 뒤 고야가 그린 작품들에선 인간의 심리를 꿰뚫는 통찰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 작품을 그리고 4년 뒤, 고야는 수석 궁정화가가 된다. 그 직후 국왕 카를로스 4세와 그의 가족 초상화를 그리게 된다. ‘카를로스 4세의 가족’은 국왕이 아닌 왕비 마리아 루이사를 중심에 배치하고 왕족의 옷을 화려하게 그렸다. 하지만 마치 해질 녘 노을처럼 사라질 것 같은 모습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은 왕실 내부의 긴장과 시대적 변화를 반영해 19세기 프랑스 예술계에도 신선한 충격을 줬다.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고야의 예술이 지닌 혁신성과 감정의 깊이를 높이 샀다. 그의 예술은 에두아르 마네 같은 인상파 화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쳐 근대 미술의 문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12-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도잉아트, 美NADA아트페어 참가… “김서연-알레그레 작품 출품”

    도잉아트는 미국 마이애미 아이스팰리스스튜디오에서 2일(현지 시간)부터 6일까지 열리는 NADA(New Art Dealers Alliance) 아트페어에 참가한다. NADA는 2002년 뉴욕에서 설립된 비영리단체로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해 왔다. 도잉아트는 스페인 작가 바바라 알레그레와 한국 작가 김서연의 작품을 출품한다. 정승희 도잉아트 대표는 “NADA가 지향하는 미학적 실험성과 동시대적 감각을 반영하는 두 명의 작가를 선보인다”라고 설명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12-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이창호 1968승… 스승 조훈현과 최다승 타이

    ‘돌부처’ 이창호 9단(50·사진)이 1968승을 기록하며 ‘스승’ 조훈현 9단(72)의 역대 최다승 기록에 함께 이름을 올렸다. 한국기원에 따르면 이 9단은 30일 서울 한국기원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열린 2025 인크레디웨어 레전드리그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최규병 9단을 상대로 241수 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이로써 이 9단의 통산 전적은 1968승 1무 814패가 됐으며, 조 9단과 최다승 공동 1위에 올랐다. 1986년 입단한 이 9단은 그해 조영숙 초단에게 첫 승리를 거둔 뒤, 2000년 10월 안조영 6단을 꺾으며 1000승을 기록했다. 지난해 9월 유창혁 9단을 상대로 1900승을 달성했다. 이 9단은 “최다승 기록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주변에서 알려줘 최근 알게 됐다”며 “어느 기사와 대국해도 늘 어렵다. 앞으로도 좋은 내용의 바둑을 두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9단은 올해 63전 50승 13패를 기록하고 있다. 현재 2000승까지 32승이 남아 있어, 이런 속도라면 내년에 달성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12-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더하기’와 ‘빼기’… 韓-대만 추상화, 서로를 비추다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에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한 홍콩 문학가 류이창(1918∼2018)의 소설 ‘테트-베슈(對倒·교차점)’. 소설은 1970년대 홍콩을 배경으로 중국 상하이에서 이주한 중년 남성과 10대 소녀의 이야기를 나란히 보여준다. 제목 ‘테트-베슈’는 우표 수집가들이 쓰는 말로, 우표 두 장이 위아래 반대로 붙어 있는 ‘쌍둥이 우표’를 가리킨다. 지난달 23일 대만 가오슝 에일리언 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전시 ‘음유시공(吟遊時空·The Bards of Time and Space)’은 마치 이런 쌍둥이 우표와도 같았다. 중국에서 태어나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50년을 살다 대만으로 돌아온 작가 호칸(霍剛·훠강·93)과 한국에서 태어나 남미와 유럽에서 활동한 작가 권순익(66)을 교차 구성했기 때문이다. 미술관 측은 “‘테트-베슈’에서 두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전개되며 서로 호응하는 구조에서 힌트를 얻어 전시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실제로 전시장에 들어서면 국적도 세대도 다른 두 작가의 작품이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가까이서 질감, 붓 터치를 눈여겨볼수록 둘의 접근 방식이 완전히 다름을 알게 된다. 권 작가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겹겹이 쌓는 과정을 무수히 반복해 두껍게 쌓아 올린다면, 호 작가는 순간 떠오르는 형태와 색, 선을 그리며 즉흥적으로 리듬을 만든다. 미술관은 이를 ‘더하기’와 ‘빼기’로 비유했다. 호 작가는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해 본질로 돌아가며, 권 작가는 계속해서 더하면서 내면으로 다가간다는 설명이다. 호 작가는 중국 난징에서 태어나 17세에 대만으로 이주한 뒤, 서구 추상화를 보고 자극을 받아 1964년 밀라노로 이주했다. 권 작가는 급속한 현대화와 산업화를 겪은 세대로, 특히 광산 지역인 경북 문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 ‘흑연’을 자주 사용한다. 이런 두 작가가 가오슝에서 만난 건 ‘현대 아시아 추상’을 함께 짚어 보자는 의도가 담겼다. 미술관 디렉터인 야만 샤오는 “유럽의 초기 추상은 디자인적인 요소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 데 반해 두 아시아 작가의 추상 작품은 산해경(山海經)을 읽는 느낌을 준다”고 했다. 기획자의 의도대로 작품들은 서로 호응하거나 차이점을 드러내며 다양한 모습을 드러낸다. 1955년부터 현재까지 약 70년에 이르는 과정에서 나온 두 작가의 작품 72점이 전시됐다. 호칸의 과감한 선이 돋보이는 대형 회화 작품, 권 작가가 기와에서 형태를 가져와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형태로 만든 설치 작품 등을 만날 수 있다. 내년 11월 1일까지.“亞 추상화, 서구 모방 아닌 우리만의 철학 담아”‘에일리언 센터’ 야만 샤오 디렉터 “전시 계기, 韓과 교류 이어가고파”“아시아의 추상화가들이 서구 스타일을 단순히 모방한 게 아니라 우리만의 철학으로 독자적인 언어를 창조한 역사라는 것을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대만 가오슝에 있는 에일리언 아트센터 디렉터인 야만 샤오(사진)는 센터 개관 7주년을 맞아 개최한 이번 전시의 기획 의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만 남부 제2도시이자 무역항인 가오슝에 2018년 문을 연 에일리언 아트센터는 개관 전에는 방치된 건물이었다. 하지만 콘크리트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자연이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해당 건물의 원래 이름은 ‘킨마 호스텔’. ‘킨마’는 금문도와 마조도를 가리키는 말로, 대만군이 머물렀던 군사 숙소였다고 한다. 1967년 만들어져 1988년까지 군인 숙소였다가, 2012년까진 철도 공병 사령부로 쓰였다. 이후 비어 있는 상태로 점점 폐허가 되어 갔다. 샤오 디렉터는 “미술관으로 만들어 보라는 제안을 받고 고민 끝에 수락했다”며 “설계안을 15번이나 바꾸면서 2년여의 리모델링 과정 끝에 지금의 공간이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미술관 이름으로는 ‘낯선 것을 받아들인다’는 뜻에서 ‘에일리언(Alien·외계인, 이방인)’을 붙였다. 20세기 이후 근현대 미술을 집중 조명하는데, 미국 작가인 제임스 터렐의 ‘코린토스 터널’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음유시공’전과 일본 작가의 도예·회화전도 열린다. 샤오 디렉터는 “휴대전화 화면으로는 볼 수 없는 예술의 여러 가지 감각을 직접 와서 경험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있다”며 “이번 전시를 계기로 (한국 등과) 국제적인 교류를 이어가고 싶다”고 밝혔다.가오슝=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12-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성공한 ‘엄친아’ 가정, 공통된 비결은…

    형제자매가 모두 뛰어난 성취를 드러내는 가족에겐 어떤 비밀이 있을까. 성장 과정과 부모의 양육 태도부터 자녀 간의 경쟁과 협력, 가족 내 미묘한 정서와 문화는 얼마나 영향을 줄까. 이런 궁금증에 대해 실제 가족의 사례를 통해 깊이 있게 서술한 책이다. 어릴 적 아버지가 출장을 떠났을 때 다른 집에 맡겨지면서, 집마다 다른 분위기를 본 저자는 “내가 이 집에서 태어났더라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를 생각해 봤다고 한다. 그러나 가정 문화에 관해 다룬 책을 찾기는 어려웠다. 이에 직접 연구하고 책을 쓰기에 이른다. 저자는 재즈 음악가 마살리스 가족, 철인 3종 경기 선수와 소설가 남매 등 각기 다른 분야에서 성공한 형제자매들을 인터뷰했다. 그들이 공유하는 가정 내 문화나 일상 대화, 농담까지 세세하게 들여다봤다. 이 과정에서 성공은 엄격한 훈육이나 일방적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님이 드러난다. ‘성공 양육 비법’이라는 확실한 공식은 오히려 존재하지 않았다. 가족마다 다른 변수와 우연의 요소가 작용한다. 다만 한 가지 공통된 패턴도 있다. 부모들은 자녀가 실패하는 걸 막지 않으며, 스스로가 분명한 목표를 향해 살아가며 본보기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트라이애슬론으로 올림픽에 출전한 세라 그로프의 아버지 제리 그로프는 14km에 이르는 집 근처 호수를 수영으로 건너고 싶다는 딸의 말에 보트로 옆을 따라가며 도전하게 돕는다. 결국 세라는 호수를 끝까지 헤엄쳐 건너며 마을 기록을 세운다. 세라의 오빠 애덤은 성공한 기업가로, 언니 로런은 호평받는 소설가로 성장했다. 저자가 만난 부모들은 아이가 무엇을 하고 싶다는 ‘의지’가 솟구치는 순간을 포착하고,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도록 스스로 절제했다. 2007년부터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에서 가족과 젠더, 여성 건강 등의 사회 문제를 취재해 온 저자는 2018년 직장 내 성희롱 이슈를 다뤄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인터뷰 대상자의 목소리를 잘 살리면서 풍성한 데이터도 갖추는 저자의 스타일이 이 책에서도 잘 드러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11-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마당놀이 같은 심판극… 관객이 배심원이죠”

    무대 한가운데에 식탁이 있고, 객석은 무대를 삼면으로 둘러싼다. 보통 관객은 무대 맞은편에서 바라보지만 이 연극은 관객이 투우를 감상하듯 둘러싼다. 그 때문에 배우들은 한 번 등장하면 퇴장할 수 없다. 이에 앞 모습은 물론이고 옆 얼굴, 뒤통수까지 연기해야 하는 ‘고난도’ 작품. 연극 ‘트랩’의 배우 박건형과 연출 하수민을 2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났다. 실은 하 연출은 오래전부터 박 배우를 주인공 ‘트랍스’에 어울리는 인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를 만난 뒤 ‘말 한마디’에 더욱 확신을 얻었다.“무대 위 트랍스는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사실 스스로 삶을 변화시킬 용기가 없는 평범한 인물이거든요. 박 배우가 ‘평범한 인간’이란 얘길 했을 때 핵심을 관통했다 생각했죠.” 박 배우는 트랍스를 “돈벌이에만 급급하다 지적인 사람들을 만나 고장 나는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그 말대로 섬유회사 외판원인 트랍스는 출장 중 자동차 사고로 우연히 만난 은퇴한 법조인들의 저녁 식사에 초대되며 엉뚱한 길에 빠진다. 이 법조인들은 무료함을 달래려 ‘모의재판’ 놀이를 하는데, 왕년의 실력을 발휘해 트랍스를 추궁한다. 때로는 네가 저지른 일이 ‘철학적으로 아름다운 작품’이라며 부추긴다. 이 과정을 ‘블랙코미디’로 그리는 극은 마지막에 충격적 반전으로 막을 내린다. 뭣보다 이 연극의 매력은 이러한 모든 과정을 관객이 배심원이라도 된 듯 에워싼 채 감상한다는 점이다. 덕분에 배우는 회차마다 커다란 시련(?)에 빠진다.“제게 가장 소중하면서 어려운 장면이 ‘등장 신’이에요. 조용한 무대에 들어가 흥을 느끼고 춤도 추며 분위기를 띄워야 해요. 그런데 관객이 워낙 가까우니 때론 제 몸짓을 부끄러워하는 게 느껴집니다. 거기서 같이 민망하면 끝장나는 거죠.”(박 배우) 무대에서 먹는 것도 고역이다. 음식을 먹되, 대사 차례가 오기 전에 다 씹어 넘겨야 한다. 이러다 보니 상대 배우 입의 ‘이물질’이 자신의 와인잔에 들어온 적도 여러 번 있다고 한다. “분명 어떤 관객은 이걸 봤을 텐데 ‘이걸 버려, 마셔?’ 오만가지 생각이 그때마다 들어요. 삼면을 둘러싼 객석이 아주 매력적이면서도 난이도가 굉장히 높은 셈이죠.” 하 연출은 이런 무대를 만든 의도를 ‘마당놀이’에 비유했다. “원작 소설을 읽고 ‘향연’과 ‘법정’이 동시에 벌어져야 한다는 게 떠올랐어요. 그래서 큰 테이블은 심판대와 같고, 관객은 배심원이어야 했죠. 사실은 관객도 같이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지만, 거기까진 한계였습니다. 하하.” 이런 몰입감은 관객이 무대를 지켜보며 계속해서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마지막 장면이 공개되면 그날마다 객석 분위기가 다릅니다. 어떤 날은 박수가 나오고, 다른 날은 충격에 휩싸인 침묵이 감돌아요. 결국 이 작품은 관객이 완성하는 겁니다. 한 시간 반 동안 작품으로 들어가 함께한다는 것. 정말 독특한 경험이니 꼭 참여해 보세요.” 3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11-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연극 ‘인간 탈피’ 30일까지

    극단 다이얼로거와 창작집단 고릴라조합의 연극 ‘인간 탈피’(사진)가 서울 종로구 지구인아트홀에서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2021년 공연예술창작산실 대본 공모 우수작으로 선정된 지강숙의 희곡이 원작으로, 남동훈 연출이 무대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인간성을 잃은 자가 인간으로, 지킨 자가 개구리로 변한다는 역설적 설정을 통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인간 본질과 사회적 균열을 탐구한 실험적 연극이다. 정교한 선으로 구성한 무대와 영상, 여기에 음악과 안무가 독특하게 결합해 작품의 기묘한 세계관을 드러낸다. 30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11-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뒤통수까지 연기하는 무대…관객이 둘러싼 연극 ‘트랩’

    무대 한가운데에 식탁이 있고, 객석은 무대를 삼면으로 둘러싼다. 보통 관객은 무대 맞은편에서 바라보지만, 이 연극은 관객이 투우를 감상하듯 둘러싼다. 때문에 배우들은 한 번 등장하면 퇴장할 수 없다. 모든 장면을 소화하고 실시간 음식까지 먹는다. 이에 앞 모습은 물론 옆 얼굴, 뒤통수까지 연기해야 하는 ‘고난도’ 작품. 연극 ‘트랩’의 배우 박건형과 연출 하수민을 2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났다.실은 하 연출은 오래전부터 박 배우를 주인공 ‘트랍스’에 어울리는 인물로 생각했고 한다. 그런데 그를 만난 뒤 ‘말 한마디’에 더욱 확신을 얻었다.“무대 위 트랍스는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사실 스스로 삶을 변화시킬 용기가 없는 평범한 인물이거든요. 박 배우가 ‘평범한 인간’이란 얘길 했을 때 핵심을 관통했다 생각했죠.”박 배우는 트랍스를 “돈벌이에만 급급하다 지적인 사람들을 만나 고장 나는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그 말대로 섬유회사 외판원인 트랍스는 출장 중 자동차 사고로 우연히 만난 은퇴한 법조인들의 저녁 식사에 초대되며 엉뚱한 길에 빠진다. 이 법조인들은 무료함을 달래려 ‘모의재판’ 놀이를 하는데, 왕년의 실력을 발휘해 트랍스를 추궁한다. 때로는 네가 저지른 일이 ‘철학적으로 아름다운 작품’이라며 부추긴다. 이 과정을 ‘블랙 코미디’로 그리는 극은 마지막에 충격적 반전으로 막을 내린다.뭣보다 이 연극의 매력은 이러한 모든 과정을 관객이 배심원이라도 된 듯 에워싼 채 감상한다는 점이다. 덕분에 배우는 회차마다 커다란 시련(?)에 빠진다.“제게 가장 소중하면서 어려운 장면이 ‘등장 신’이에요. 조용한 무대에 들어가 흥을 느끼고 춤도 추며 분위기를 띄워야 해요. 그런데 관객이 워낙 가까우니 때로 제 몸짓을 부끄러워하는 게 느껴집니다. 거기서 같이 민망하면 끝장나는 거죠.”(박 배우)무대에서 먹는 것도 고역이다. 음식을 먹되, 대사 차례가 오기 전에 다 씹어 넘겨야 한다. 일러다보니 상대 배우 입의 ‘이물질’이 자신의 와인잔에 들어온 적도 여러 번 있다고 한다. “분명 어떤 관객은 이걸 봤을 텐데 ‘이걸 버려, 마셔?’ 오만가지 생각이 그때마다 들어요. 삼면을 둘러싼 객석이 아주 매력적이면서도 난이도가 굉장히 높은 셈이죠.”하 연출은 이런 무대를 만든 의도를 ‘마당놀이’에 비유했다.“원작 소설을 읽고 ‘향연’과 ‘법정’이 동시에 벌어져야 한다는 게 떠올랐어요. 그래서 큰 테이블은 심판대와 같고, 관객은 배심원이어야 했죠. 사실은 관객도 같이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지만, 거기까진 한계였습니다. 하하.”이런 몰입감은 관객은 무대를 지켜보며 계속해서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마지막 장면이 공개되면 그날마다 객석 분위기가 다릅니다. 어떤 날은 박수가 나오고, 다른 날은 충격에 휩싸인 침묵이 감돌아요. 결국 이 작품은 관객이 완성하는 겁니다. 한 시간 반 동안 작품으로 들어가 함께 한다는 것. 정말 독특한 경험이니 꼭 참여해 보세요.”3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11-27
    • 좋아요
    • 코멘트
  • 여성 미술가 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그림[김민의 영감 한 스푼]

    소더비 뉴욕 경매에서 구스타프 클림트의 ‘엘리자베스 레더러 초상’이 근현대미술 최고가를 기록하고 난 3일 뒤. 이번엔 여성 미술가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이 등장했습니다. 21일(현지 시간) 같은 경매에서 5470만 달러(약 806억 원)에 낙찰된 프리다 칼로의 작품 ‘엘 수에뇨(라 카마)’, 즉 ‘꿈(침대)’입니다. 이 기록은 2021년 세워진 라틴아메리카 작가의 작품 최고가도 넘어섰습니다. 이전 라틴아메리카 최고가 작품 역시 칼로가 그린 ‘디에고와 나’였습니다.침대, 해골 그리고 나 ‘엘 수에뇨’에는 구름이 자욱한 하늘 위로 떠 있는 침대, 금색 이불을 덮고 있는 프리다, 그리고 캐노피 위에 놓인 해골이 보입니다. 해골은 꽃다발을 쥐고 있지만, 온몸에는 다이너마이트 전선이 칭칭 감겨 있습니다. 불길한 무언가가 일어날 듯한 분위기입니다. 이 그림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지붕을 사이에 두고 데칼코마니처럼 펼쳐진 닮은꼴의 프리다와 해골입니다. 두 사람의 옆으로 누운 자세부터 얼굴을 받친 두 겹 베개까지, 비슷한 형태들이 나란히 놓여 리듬을 만듭니다. 그런데 해골의 몸에는 다이너마이트 전선이, 프리다의 몸에는 푸릇한 잎이 달린 덩굴이 감겼습니다. 각각 죽음과 생명의 기운을 뿜어내는 모습. 그러나 둘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습니다. 얇은 지붕이 무너진다면 금방이라도 하나가 될 것처럼 말입니다. 구름처럼 떠다니는 침대, 식물 덩굴이 자라나는 이불, 지붕을 덮친 해골처럼 칼로의 작품에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광경들이 등장합니다. 이런 모습을 눈여겨 본 프랑스 초현실주의 예술가 앙드레 브르통(1896∼1966)은 칼로의 작품도 ‘초현실주의’라고 칭찬하며 자기의 무리에 끌어들이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칼로의 생각은 달랐습니다.꿈이 아닌 현실이다 칼로는 1939년 파리에서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을 만난 뒤 이렇게 말합니다. “지적 허영과 무책임한 이론만 가득한 부패한 지식인 집단이야. 이런 예술가들과 만나느니 시장에서 토르티야를 파는 게 낫겠어.” 또 자기 작품은 초현실주의가 아니라고 부정하며 “내 작품은 꿈이 아닌 현실을 그린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1930년대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은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무의식’을 개념적으로 접근하고 풀어내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이에 반해 칼로는 현실 속 자기의 삶에서 감정을 끌어와 작품을 그렸기에 거부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엘 수에뇨’를 봐도 신비로운 분위기는 있지만, 그림 속 오브제들은 잠자는 칼로를 비롯해 모두가 현실에 있었던 것들입니다. 칼로가 누워 있는 침대부터, 다이너마이트를 감은 해골까지, 전부 칼로가 갖고 있던 가구와 물건입니다. 우선 침대는 칼로가 인생 대부분을 보낸 장소입니다. 칼로가 18세 때 타고 있던 버스가 트램과 충돌하는 큰 사고가 났고, 이때 칼로는 쇠못이 골반을 관통한 것은 물론이고 척추와 다리도 심하게 다쳤습니다. 이후 오랫동안 고통스러운 재활과 수술을 거쳐야 했고, 평생 만성 통증에 시달렸습니다. 신체의 한계를 겪는 상황에서도 칼로는 그림을 그렸고, 가족들은 침대에 이젤과 팔레트를 놓아줬습니다. 누워 있을 때도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캐노피에 거울을 달아 주기도 했죠. 칼로는 이렇게 늘 어려움을 극복하고 무엇이든 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의지는 역설적으로 ‘죽음이 언제나 내 곁에 있다’는 생각 덕분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칼로가 잠자면서 꾸는 ‘꿈’을 주제로 한 그림에 자기를 닮은 해골을 그려 넣은 것을 보면, 그가 ‘언제든 잠을 자다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유명하고 희귀한 칼로 “프리다 칼로가 존경받는 여성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이 매우 자랑스럽다. 세상 어느 여자가, 아니 어떤 사람이 그녀의 마음에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모든 사람이 마음속에 칼로의 작은 조각 하나씩은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칼로의 조카손녀인 마라 로메오 칼로의 말입니다. 칼로는 살아있을 때는 초현실주의 예술가나 남편이었던 디에고 리베라보다 덜 유명한 작가였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고 여성 예술가에 대한 연구가 깊어진 것과 동시에 그의 불꽃 같았던 삶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등 미디어로 조명되며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또 멕시코에서 칼로의 작품을 ‘국가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며, 멕시코 내부의 칼로 작품은 해외로 거래될 수 없어 희귀함이 더해졌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공개 경매가 아닌 프라이빗 세일에서 칼로의 작품은 5000만 달러에서 1억 달러 이상까지 거래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칼로의 얼굴이 크게 그려질수록 컬렉터에게 인기가 많다고도 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처럼 누구나 감정 이입하기 쉬운 비극적인 삶, 그것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는 그림, 그리고 아무나 가질 수 없다는 희귀함. 이런 조건들이 더해져서 칼로의 작품은 계속해서 기록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화제의 ‘엘 수에뇨’는 내년 3월부터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영국 테이트모던, 스위스 바젤 바이엘러 미술관을 순회하는 기획전으로 관객을 만날 예정입니다.※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을 하시면 e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 2025-11-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내 인생의 키워드는 ‘한번 해볼까’”

    ‘세계 최대 현대미술 전시’ 베니스 비엔날레는 메인 전시 참여 작가만 400여 명. 세계 65개국 파빌리온(전시장)을 꾸리는 각국 큐레이터와 작가팀을 더하면 600명이 넘는다. 이곳에서 20여 년을 일하며 미술, 건축 전시 총괄 디렉터로 수많은 변수를 관리하고 갈등을 조율해 온 이가 있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의 총괄 책임자이기도 한 마누엘라 루카다지오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해외 주요 인사 초청(K-Fellowship)’을 통해 최근 한국을 찾은 그를 14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루카다지오는 베니스 비엔날레가 성장한 배경이 ‘다양성’과 ‘연결’이라고 강조했다. 여러 문화가 한자리에서 만나는 장이 바로 베니스 비엔날레라는 것. 그는 “베니스는 동서남북, 심지어 실크로드까지 연결하던 ‘가교’였고, 그렇기에 비엔날레가 열리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며 “19세기 단 1개의 전시장에서 지금의 규모로 성장한 비결”이라고 했다.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자란 루카다지오는 건축사학 박사로 건축 역사를 연구하고 오래된 건축물을 복원하기도 했다. 미술관에서도 일하던 그는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일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고 20여 년을 비엔날레에서 일하게 된다. 그는 “‘한 번 해볼까?’라고 시작한 일이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이 됐다”며 “역사도 흥미롭지만, 살아 있는 예술가와 소통하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고 했다. 나와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호기심을 갖고 알아보기를 좋아하는 루카다지오는 자신이 받은 영향 중 하나로 나폴리의 문화를 꼽았다. “나폴리는 오랜 시간 동안 그리스부터 아랍, 노르만 등 다양한 문화가 거쳐 갔고, 그 흔적이 도시에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그 덕에 도시적이면서 도시적이지 않은 양면성이 있죠.” 어느 길에서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떠들 수 있는, ‘공적’이면서 ‘사적’인 특징이 있다고. 그런데 이번 방한으로 돌아본 한국의 모습에서 나폴리와 비슷함을 느꼈다고 그는 덧붙였다. “오래된 건축물부터 근대 건물, 무척 현대적인 초고층 건물까지 한자리에 있는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거리의 사람들 표정에서도 활기가 느껴지며 한국 문화가 역동적이라는 것은 최근 몇 년 사이 실감했지요.” 그는 2021년부터 프리츠커 건축상의 총괄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건축상의 심사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지만 운영 전반을 관리하는데, 지난해 수상자인 일본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이 ‘루카다지오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한 바 있다. 당시 상황을 묻자 그는 “자세한 것을 밝힐 순 없지만, 리켄이 말했으니 내가 전화한 것이 맞다”며 “누군가의 ‘인생 뉴스’가 될 소식을 전하게 돼 나도 긴장하고 감동했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일정은 개인적으로 한국 문화 예술을 알기 위해 방문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각기 다른 문화의 사람들을 수십 년간 조율해 온 그에게 ‘중재’의 비결을 묻자 간단한 답이 돌아왔다. “대화를 하라.” “비엔날레든 상이든 큰 행사에는 먼저 철저한 계획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늘 변수는 생기고, 그때마다 최고의 해결책은 대화였어요. 또한 큰 어려움이 닥친 일은 늘 최고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니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안전하지 않은 것을 겁내지 말고, 대화를 하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11-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아수라장 속… 홀로 초연한 예수의 얼굴

    히로니뮈스 보스(1450∼1516) 하면 스페인 프라도미술관에 소장된 ‘환락의 땅’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벨기에와 네덜란드 남부, 프랑스 북부 지역까지 아울렀던 플랑드르 지역은 상업과 섬유산업이 발달했다. 덕분에 루벤스를 비롯해 뛰어난 감각을 지닌 예술가를 다수 배출했다. 그중 한 명인 보스가 그린 세 폭 제단화가 ‘환락의 땅’이다. 높이가 220cm이고, 양쪽 문을 열면 폭 4m가 넘는 이 작품엔 인간의 쾌락과 타락을 상상력을 동원해 표현한 모습들이 가득하다. 나체의 사람들이 자기 몸보다 큰 과일에 달라붙어 그것을 먹고 있거나, 타락한 인간이 새의 머리를 한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장면 등 기괴한 모습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프라도미술관에서도 늘 관객이 붐비는 작품 중 하나다. 현재 보스가 그린 것으로 확인된 작품은 세계에 25점밖에 없으며, 드로잉도 8점에 불과하다. 보스는 15, 16세기 플랑드르 지역에서 조수들과 함께 의뢰를 받아 많은 그림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종교개혁이 이 지역을 휩쓸면서 혼란이 벌어진다. 예수, 마리아 등 성인을 표현하는 것이 금지됐으며, 성당에 있던 조각이나 그림들이 대거 파괴됐다. 이때 보스의 그림들도 많이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또 보스가 그림에 서명이나 날짜를 매번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추정 작품을 그의 것으로 확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서울 세종미술관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전에서 전시하는 샌디에이고 미술관 소장품 ‘그리스도의 체포’엔 보스의 서명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림 오른쪽 위에 있는 단검에서 보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예수가 로마 병사들에게 체포되는 순간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림의 왼쪽 화려한 복장을 한 로마 병사가 칼을 꺼내려고 움직이고 있으며, 이를 본 베드로가 단검을 번쩍 들어 올리며 저항하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예수를 배신한 유다는 바로 옆에서 곁눈질하며 상황을 살피는 중이다. 예수를 둘러싼 모든 인물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가운데, 예수만이 바닥을 내려다보며 모든 것을 받아들인 듯 평온한 얼굴이다. 예수 옆엔 촛불이 활활 타오르며 얼굴에 따스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보스는 이러한 인물들의 대조를 통해 예수가 배신당하고 체포되는 고통보다, 유다를 용서하고 초연해하는 감정을 강조하고 있다. 멀리서 세계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넓은 시야에서 그린 ‘환락의 땅’과 비교하면, 인물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 가져와 그린 이 작품은 보스의 감정 표현을 좀 더 디테일하게 감상할 수 있다. 보스가 그린 것으로 확실하게 확인되는 ‘그리스도의 체포’는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대표 소장품 가운데 하나이며,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작품이다. 약 500년 전에 그려진 작품으로 미술관에 직접 가지 않으면 보기 힘든 근대 이전 시기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 특별히 눈여겨볼 가치가 크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11-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보스가 표현한 예수와 주변인물들…희귀 작가 작품 소장한 샌디에이고 미술관展

    히로니뮈스 보스(1450~1516)하면 스페인 프라도미술관에 소장된 ‘환락의 땅’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텍스타일 산업이 발달했던 플랑드르 지역은 루벤스를 비롯해 뛰어난 감각의 예술가를 다수 배출했는데, 그 중 한 명인 보스가 그린 세 폭 제단화가 ‘환락의 땅’이다.높이가 220cm이며 문을 열면 폭 4m가 넘는 이 작품 속에는 인간의 쾌락과 타락을 상상력을 동원해 표현한 모습들이 가득하다. 나체의 사람들이 자기 몸보다 큰 과일에 달라붙어 그것을 먹고 있거나, 타락한 인간이 새의 머리를 한 괴물에게 잡아 먹히는 장면 등 기괴한 모습이 호기심을 자극해 프라도미술관에서 늘 관객이 붐비는 작품 중 하나다.보스가 그린 것으로 확인된 작품은 전 세계에 25점뿐이다. 15,16세기 플랑드르 지역에서 조수들과 함께 많은 의뢰를 받아 그림을 그렸지만, 이후 종교개혁 시기에 가톨릭 성당에 있던 조각, 제단화가 대거 파괴되었는데 이 때 보스의 그림도 함께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게다가 보스가 그림에 서명이나 날짜를 남기지 않아 그의 작품으로 확실히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데 서울 세종미술관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전에서 전시하고 있는 샌디에이고 미술관 소장품 ‘그리스도의 체포’에는 보스의 서명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림 오른쪽 상단에 있는 단검에서 보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이 작품은 예수가 로마 병사들에게 체포되는 순간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림의 왼쪽 화려한 복장을 한 로마 병사가 단검을 꺼내 들고 있으며, 이를 본 베드로가 단검을 들어 저항하려 하고 있다. 예수를 배신한 유다는 그의 바로 옆에서 곁눈질을 하며 상황을 살피고 있다.예수를 둘러싼 모든 인물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가운데, 예수만이 바닥을 내려다보며 모든 것을 체념한 듯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다. 예수의 바로 옆 촛불이 활활 타오르며 얼굴에 따스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배신을 당하고 체포되는 고통보다, 유다를 용서하고 초연한 감정을 대조를 통해서 강조하고 있다. 멀리서 전 세계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넓은 시야에서 그린 ‘환락의 땅’과 비교하면, 인물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로 가져와 그린 이 작품은 보스의 감정 표현을 좀 더 디테일하게 감상할 수 있다.보스가 그린 것으로 확실히 확인되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작품인 이 그림은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대표 소장품 중 하나다. 또한 약 500년 전에 그려진 작품으로 유럽으로 직접 가지 않으면 보기 힘든 근대 이전 시기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특별히 눈 여겨 볼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11-24
    • 좋아요
    • 코멘트
  • [책의 향기]역사-철학으로 본 ‘학생이란 무엇인가’

    지난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치러질 당시 긴장한 한국 사회의 모습이 외신에서 화제가 됐다. 영어 듣기 평가에 영향을 줄까 봐 항공기 운항을 중단하고, 공공 기관 출근도 늦추는 등의 모습이 유별나게 보였던 모양이다. 이런 사회적 배려는 따뜻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단 한 번의 시험과 그 뒤로 연결되는 대학에 과한 비중을 두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예술대, 웨슬리언대 등 여러 명문대 총장을 지낸 저자가 ‘학생’의 본질을 탐구한 책이다. 학생의 출발을 고대 ‘위대한 스승’들의 제자로 설정한다. 이들은 공자와 소크라테스, 예수의 추종자다. 공자의 제자들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덕을 쌓고 조화롭게 살기를 추구했다면,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은 스승과 대화하며 배우는 걸 목표로 삼았다. 예수의 제자들은 스승을 모방하는 것을 중요시했다. 이렇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 ‘학생’들은 중세와 계몽주의 시대를 거쳐 21세기 대학생에 이르며 다양한 모습을 갖게 됐다. 중세에는 지극히 일부에게만 교육이 주어졌고,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학생은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사람’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랠프 월도 에머슨(1803∼1882)은 “순응을 참지 않고 거부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학생”이라고 봤다. 여기서 강조하는 건 학생이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이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타인으로부터 배우며 자유를 발견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고대에는 ‘순종자’에 가까웠던 학생들이 역사적 변화를 거치면서 ‘독립적 사유자’로 거듭났다. 현대에 이르러 ‘좋은 학생’은 명문대나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 경쟁을 이기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러나 저자는 “학생이란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가르침을 얻고 창의적으로 반응하는 상태”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모든 사람은 평생 학생으로 남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가장 훌륭한 가르침은 내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배움과 발견 근본적 변화에 열린 사람이 되도록 이끄는 것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11-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클림트 초상화 ‘엘리자베스…’ 3630억에 낙찰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가 20세기 초에 그린 초상화가 18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역대 최고가인 2억3640만 달러(약 3630억 원)에 낙찰됐다. 이는 공개 경매로 팔린 미술품 사상 두 번째로 비싼 가격이다. 낙찰된 작품은 ‘엘리자베스 레더러의 초상’(사진)으로, 클림트의 주요 후원자였던 유대인 사업가 아우구스트 레더러의 딸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온전하게 보존된 몇 안 되는 클림트의 전신 초상화 중 하나다. 이번 기록은 클림트 작품은 물론이고 근현대 미술품 중에서도 최고가다. 역대 공개 경매에서 가장 높은 낙찰가를 기록한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4억5030만 달러·2017년)다. ‘엘리자베스 레더러의 초상’은 화장품 회사를 세운 에스티 로더의 아들 레너드 로더가 뉴욕 자택에 40년간 걸어 놓았던 것으로, 그가 사망하고 경매에 나왔다. 이 작품을 낙찰받은 사람의 신원은 알려지지 않았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11-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모딜리아니의 100년전 손길… 초상화엔 ‘지문’이 찍혀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주요 소장품 65점을 소개하는 전시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가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개막했다. 내년 2월 22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에선 클로드 모네, 페테르 파울 루벤스 등 귀에 익숙한 대가부터 히로니뮈스 보스, 프란시스코 데 고야 등 마니아들의 인기 작가까지 여러 거장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눈여겨볼 만한 작품을 선별해 주마다 소개한다.》요즘은 고화질 사진이나 모니터로도 명작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관객이 굳이 명화전을 찾는 것은, 픽셀과 프린트로는 전해지지 않는 작가의 손길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 속 머리카락 한 올이나 무심하게 젖혀진 옷깃의 선에서 수십, 수백 년 전 화가들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었는지를 더듬어 보곤 한다. 원화의 매력이다.‘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에선 붓 터치를 넘어 작가의 신체 흔적이 생생하게 남은 그림도 만날 수 있다. 바로 그림에 찍힌 ‘지문’이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의 ‘푸른 눈의 소년’엔 그의 지문이 찍혀 있다.1986년 이 그림을 기증받은 샌디에이고 미술관도 이 사실을 40년 가까이 몰랐다고 한다. 전시 큐레이터인 마이클 브라운 박사는 “보존연구팀이 서울 전시를 위해 작품의 상태를 살피던 과정에서 그림 왼쪽 아랫부분에서 모딜리아니의 지문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미술관이 공개한 현미경 촬영 사진엔 캔버스 천 무늬 위로 구불구불하게 찍힌 지문이 선명하다. 브라운 박사에 따르면 엄지손가락 지문이다.“모딜리아니가 물감이 마르기 전 캔버스를 이젤에서 내려놓으며 자국이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 손가락에 묻은 빨간 물감이 가장자리에 얼룩 형태로 남은 것도 확인됩니다.”브라운 박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빈센트 반 고흐도 엄지손가락 지문이 남은 그림이 있다”며 “매우 놀라운 일이고 미술사적으로는 논문의 소재가 될 만큼 중요한 발견”이라고 덧붙였다. 미술관은 작품이 돌아오면 연구를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이 작품은 모딜리아니가 프랑스 파리에 머무르며 자기만의 화풍을 완성했던 시기인 1916년에 그렸다. 당시 모딜리아니는 주변 아이들을 종종 모델로 삼곤 했다. 푸른 눈의 소년 역시 그중 하나로 추정된다.소년의 타원형 얼굴, 길쭉한 코와 가느다란 목 표현은 모딜리아니의 ‘트레이드마크’. 모딜리아니는 이 무렵 파리 예술가들이 엄청난 호기심을 가졌던 아프리카의 가면과 조각에서 이러한 표현의 단서를 얻었다. 이런 독특한 표현으로 전통적인 인물화에서 벗어난 모딜리아니는 앞에 앉은 사람을 보는 자기의 ‘마음’을 그리고 싶어 했다. 이러한 의도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흐릿한 눈동자다.이 작품에서 모딜리아니는 소년의 눈동자를 선으로 그리긴 했지만, 눈의 흰자와 눈동자를 모두 푸른색으로 칠해버렸다. 어떤 초상화에선 한쪽 눈을 눈동자 없는 회색으로 그리기도 했다. ‘왜 눈동자를 그리지 않느냐’는 궁금증에 모딜리아니는 이렇게 답했다.“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될 때 눈동자를 그리겠습니다.”눈동자를 자세히 표현하지 않은 그림. 작품 속 인물의 마음은 ‘신비로움’의 영역으로 남겨진다. 관객은 흐린 눈동자 너머에 있을 소년의 내면을 어림잡아 더듬어 볼 뿐이다. 100년 전 파리의 누추한 화실에서 모딜리아니가 남긴 엄지손가락 자국과 함께.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11-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100년 전 화가의 지문이 그대로 남아 있는 그림, 모딜리아니 초상화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주요 소장품 65점을 소개하는 전시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가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개막했다. 내년 2월 22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에선 클로드 모네, 페테르 파울 루벤스 등 귀에 익숙한 대가부터 히에로니무스 보스, 프란시스코 데 고야 등 마니아들의 인기 작가까지 여러 거장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눈여겨 볼 만한 작품을 선별해 주마다 소개한다.》요즘은 고화질 사진이나 모니터로도 명작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관객이 굳이 명화전을 찾는 것은, 픽셀과 프린트로는 전해지지 않는 작가의 손길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 속 머리카락 한 올이나 무심하게 젖혀진 옷깃의 선에서 수십, 수백 년 전 화가들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었는지를 더듬어보곤 한다. 원화의 매력이다.‘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에선 붓 터치를 넘어 작가의 신체 흔적이 생생하게 남은 그림도 만날 수 있다. 바로 그림에 찍힌 ‘지문’이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의 ‘푸른 눈의 소년’엔 그의 지문이 찍혀 있다. 1986년 이 그림을 기증받은 샌디에이고 미술관도 이 사실을 40년 가까이 몰랐다고 한다. 전시 큐레이터인 마이클 브라운 박사는 “보존연구팀이서울 전시를 위해 작품의 상태를 살피던 과정에서 그림 왼쪽 아랫부분에서 모딜리아니의 지문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미술관이 공개한 현미경 촬영 사진엔 캔버스 천 무늬 위로 구불구불하게 찍힌 지문이 선명하다. 브라운 박사에 따르면 엄지손가락 지문이다.“모딜리아니가 물감이 마르기 전 캔버스를 이젤에서 내려놓으며 자국이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이때 손가락에 묻은 빨간 물감이 가장자리에 얼룩 형태로 남은 것도 확인됩니다.”브라운 박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빈센트 반 고흐도 엄지손가락 지문이 남은 그림이 있다”며 “매우 놀라운 일이고 미술사적으로는 논문의 소재가 될 만큼 중요한 발견”이라고 덧붙였다. 미술관은 작품이 돌아오면 연구를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이 작품은 모딜리아니가 프랑스 파리에 머무르며 자기만의 화풍을 완성했던 시기인 1916년에 그렸다. 당시 모딜리아니는 주변 아이들을 종종 모델로 삼곤 했다. 푸른 눈의 소년 역시 그중 하나로 추정된다.소년의 타원형 얼굴, 길쭉한 코와 가느다란 목 표현은 모딜리아니의 ‘트레이드 마크.’ 모딜리아니는 이 무렵 파리 예술가들이 엄청난 호기심을 가졌던 아프리카의 가면과 조각에서 이러한 표현의 단서를 얻었다. 이런 독특한 표현으로 전통적인 인물화에서 벗어난 모딜리아니는 앞에 앉은 사람을 보는 자기의 ‘마음’을 그리고 싶어 했다. 이러한 의도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흐릿한 눈동자다.이 작품에서 모딜리아니는 소년의 눈동자를 선으로 그리긴 했지만, 눈의 흰자와 눈동자를 모두 푸른 색으로 칠해버렸다. 어떤 초상화에선 한쪽 눈을 눈동자 없는 회색으로 그리기도 했다. ‘왜 눈동자를 그리지 않느냐’는 궁금증에 모딜리아니는 이렇게 답했다.“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될 때 눈동자를 그리겠습니다.”눈동자를 자세히 표현하지 않은 그림. 작품 속 인물의 마음은 ‘신비로움’의 영역으로 남겨진다. 관객은 흐린 눈동자 너머에 있을 소년의 내면을 어림잡아 더듬어 볼 뿐이다. 100년 전 파리의 누추한 화실에서 모딜리아니가 남긴 엄지손가락 자국과 함께.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11-18
    • 좋아요
    • 코멘트
  • 놀멍 쉬멍 걸으멍… 에메랄드빛 길에 ‘멍’해졌습니다

    제주도와 동아일보가 공동 주최한 제17회 제주국제사진공모전에서 황보달 씨의 작품 ‘에메랄드빛 신비의 길’이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제주도’를 주제로 한 올해 공모전은 기존 사진 부문에 더해 숏폼 부문을 새로 만들었다. 사진 부문에는 471명이 총 1588점을 출품했다. 외국인은 21개국 출신 41명이 155점을 출품했다. 숏폼 부문에는 국내 참가자 16명이 지원했다. 수상자는 사진 부문에서 대상 금상 은상 동상 각 1명 및 입선 10명과 숏폼 부문에서 금상 은상 동상 각 1명으로 총 17명에게 상장과 총상금 660만 원을 수여한다.대상 수상작 ‘에메랄드빛 신비의 길’은 제주의 김녕 바닷길을 상공에서 포착한 작품으로, 드론 촬영 특유의 시점과 공간적 깊이가 돋보인다. 사진 중앙에 이어진 바닷길은 색채의 대비 속에서 섬세한 원근감을 만들어낸다. “자연이 만들어주는 수면 위의 다양한 컬러가 신비로움을 자아내며, 바닷길과 조화를 이루면서 잠깐 동안 허락되는 길의 이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길을 걸으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지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이번 공모전 심사는 3차에 걸쳐 진행됐다. 심사는 양숙연 제주한라대 방송영상학과 교수와 김신욱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국민대·서울대·한양대에서 사진학을 강의한 이탈리아 출신 자코모 오테리 씨가 맡았다. 양 심사위원은 “올해는 빛과 앵글을 통해 제주의 다양한 얼굴을 탐색한 작품들이 두드러졌으며, 제주를 바라보는 사진적 시선이 한층 깊어졌음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숏폼 부문에 대해서는 “짧고 간결한 영상 안에 제주의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도 많은 창작자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수상작은 공모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되며, 내년 상반기 제주자연유산센터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제주국제사진공모전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독특한 문화를 지닌 제주도의 진면목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2009년부터 해마다 열리고 있다.● 입선조병익, 김진홍, 김영태, 황영훈, 서정철, 윤다빈, 송정원, 유진희, 박진영, 김승진● 숏폼 부문[금상] 홍제인[은상] 김으로[동상] 김가연, 김지아(공동 출품작)● 심사위원양숙연 제주한라대 방송영상학과 교수김신욱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자코모 오테리 이탈리아 사진작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11-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제17회 제주국제사진공모전 대상 수상작 ‘에메랄드빛 신비의 길’

    제주도와 동아일보가 공동 주최한 제17회 제주국제사진공모전에서 황보달 씨의 작품 ‘에메랄드빛 신비의 길’이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제주도’를 주제로 한 올해 공모전은 기존 사진 부문에 더해 숏폼 부문을 새로 만들었다. 사진 부문에는 471명이 총 1588점을 출품했다. 외국인은 21개국 출신 41명이 155점을 출품했다. 숏폼 부문에는 국내 참가자 16명이 지원했다. 수상자는 사진 부문에서 대상 금상 은상 동상 각 1명 및 입선 10명과 숏폼 부문에서 금상 은상 동상 각 1명으로 총 17명에게 상장과 총상금 660만 원을 수여한다.대상 수상작 ‘에메랄드빛 신비의 길’은 제주의 김녕 바닷길을 상공에서 포착한 작품으로, 드론 촬영 특유의 시점과 공간적 깊이가 돋보인다. 사진 중앙에 이어진 바닷길은 색채의 대비 속에서 섬세한 원근감을 만들어낸다. “자연이 만들어주는 수면 위의 다양한 컬러가 신비로움을 자아내며, 바닷길과 조화를 이루면서 잠깐 동안 허락되는 길의 이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길을 걸으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지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이번 공모전 심사는 3차에 걸쳐 진행됐다. 심사는 양숙연 제주한라대 방송영상학과 교수와 김신욱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국민대·서울대·한양대에서 사진학을 강의한 이탈리아 출신 자코모 오테리 씨가 맡았다. 양 심사위원은 “올해는 빛과 앵글을 통해 제주의 다양한 얼굴을 탐색한 작품들이 두드러졌으며, 제주를 바라보는 사진적 시선이 한층 깊어졌음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숏폼 부문에 대해서는 “짧고 간결한 영상 안에 제주의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도 많은 창작자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수상작은 공모전 홈페이지(www.jejucontest.com)를 통해 공개되며, 내년 2월 제주자연유산센터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제주국제사진공모전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독특한 문화를 지닌 제주도의 진면목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2009년부터 해마 열리고 있다.[대상] 황보달 ‘에메랄드빛 신비의 길’ 제주의 김녕 바닷길을 상공에서 포착한 작품으로, 드론 촬영 특유의 시점과 공간적 깊이가 돋보인다. 사진 중앙에 이어진 바닷길은 색채의 대비 속에서 또 하나의 구성적 선으로 드러나며, 섬세한 원근감을 만들어낸다.[금상] 정우원 ‘회상’빛의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톤과 명암에 따른 분위기가 사진의 깊이를 한층 더해준다. 작품 속 인물의 표정에서 해녀의 삶과 내면이 선명하게 전해진다. 바다에 뛰어드는 역동적인 장면이 아닌 또 다른 시선으로 포착된 이 작품은, 세월 속에 사라져가는 제주 해녀의 모습을 담아내며 긴 여운을 남긴다. [은상] 김지안 ‘오래전 그날의 횃불행진’이호테우해수욕장에서 열린 축제의 한 장면으로, 제주의 문화를 생생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안정된 야경의 색조 속에서 수평으로 이어진 횃불의 불빛이 강한 에너지를 더하며, 빛에 의해 묘사되는 특징들을 잘 보여준다. 바다와 함께하는 해녀들의 모습을 재현해 제주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함께 전하고 있다.[동상] 세바스티안 폰 슈츠(미국) ‘콰이어트 프래리(Quiet Prairie)’하늘의 구름과 산을 배경으로, 가까이 자리한 오름 위에 평온하게 서 있는 말. 초원 속 어딘가를 응시하는 말들의 모습이 제주의 자연과 어우러지며 또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멀리 산을 바라보는 홀로 선 말의 뒷모습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입선조병익, 김진홍, 김영태, 황영훈, 서정철, 윤다빈, 송정원, 유진희, 박진영, 김승진 ● 숏폼 부문[금상] 홍제인[은상] 김으로 [동상] 김가연, 김지아 (공동 출품작) ● 심사위원양숙연 제주한라대 방송영상학과 교수김신욱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자코모 오테리 이탈리아 사진작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5-11-16
    • 좋아요
    •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