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

허진석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구독 79

추천

안녕하세요. 허진석 기자입니다.

jameshur@donga.com

취재분야

2026-04-09~2026-05-09
경제일반40%
인공지능17%
산업14%
건강7%
과학일반7%
기업3%
정보통신3%
우주/천체3%
칼럼3%
동식물3%
  • 블랙핑크 무대의상이 23만원 청바지로… AI 에이전트 굴리며 38억 조달[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서울 동대문구 현대시티아울렛 13층에 있는 킨도프(KYNDOF) 사무실. 컴퓨터 화면에는 인공지능(AI) 에이전트들이 쉬지 않고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작업을 수행 중이다. 사람은 없다. 개발자도 없고, 연구자도 없다. 그런데 현재 돌아가고 있는 개발 프로젝트는 브랜드 운영·관리 등 15개. 각각의 AI 에이전트가 서로 승인하고, 수정하고, 피드백을 보내며 스스로 굴러간다. 지난달 29일 사무실에서 만난 김선빈 킨도프 대표(35)는 “전통적인 개발 조직이라면 수십 명이 필요한 규모의 개발이다”고 했다. 킨도프는 블랙핑크와 에스파, 르세라핌, 아이브 등 K팝의 유명 그룹들의 무대 의상을 고품질로 짧은 시간 안에 공급하는 회사다. 무대 의상으로만 끝내지 않고 이를 패션 상품으로도 만들어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무대 의상이 데이터가 되는 순간 킨도프가 풀려는 문제는 단순히 ‘옷을 잘 만드는 것’이 아니다. 무대 및 드라마 의상 산업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도전을 하고 있다. K팝 아티스트가 하루에도 몇 차례 의상을 갈아입고 공연과 뮤직비디오를 소화하는 이 시장에서, 정장 한벌 맞추는 데 한 달 이상이 걸리는 전통 방식은 애초에 맞지 않는다. 김 대표는 “3일 만에 만들어 달라고 하면서 아이돌 그룹 멤버별로 10벌씩 필요하다는 주문이 들어온다. 일반 맞춤복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해야 가능하다”고 했다. 빠르기만 해서도 안 된다. 지금의 팬들은 스타일리스트가 시중에 파는 명품을 입혀도 불만을 토로한다. ‘왜 파는 옷을 입혀. 좋은 맞춤복 해줘야지’. 팬덤의 눈높이가 올라갈수록, 의상 제작의 고난도는 높아지고, 납기는 더 짧아진다. 그런데 이 분야를 산업화하려는 공급자는 지금까지 거의 없었다. 그는 공방 형태로 소규모로 운영되고, 납기가 대기업처럼 정확하게 지켜지지는 않고, 디자인 의도와 다른 옷이 나와도 어쩔 수 없이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의류 생산 공정에서 기성복은 자동화가 어느 정도 됐지만, 고급 맞춤복 의상을 만드는 분야에는 아직 자동화 기술이 적용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엑셀도 없이 손으로 숫자를 적는 업계다. 시쳇말로 6·25 이후 바뀐 게 없는 그 분야에 킨도프가 뛰어든 것”이라고 했다.● AI가 5만 땀을 자수 기계에 지시 킨도프의 기술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다. ‘자수 도안 전산화(디지타이징) AI’를 자동화 공정에 결합했다. 의류에 자수를 놓으려면 바늘이 어느 방향으로, 어떤 결로 몇만 번을 움직여야 하는지를 지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킨도프의 AI 봇 ‘토미톰’은 예컨대 5만 땀의 작업 지시서를 스스로 만들어 자수 기계로 자동으로 전송한다. 김 대표는 “디자인을 실물처럼 보이게 하는 렌더링 작업이 끝나면, 디지타이징 파일이 자동 생성되고, 자수 기계에 지시가 내려가는데 사람 개입 없이 한번에 처리된다”고 했다. 디자인 단계도 마찬가지다. 기존에는 2D 플랫 드로잉을 스타일리스트에게 보내면, ‘내가 생각한 빨간색이랑 다르다’는 식의 해석 충돌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킨도프는 AI를 활용해 소재의 물성이 반영된 3D 렌더링 이미지를 제작 전 단계부터 제공한다. 디자인 의도와 실물의 간극을 최소화하기 위한 기술이다. 아이돌 한 명이 입을 의상 한 벌에 대한 작업 지시서(패턴, 치수, 부자재 위치, 자수 설계 등)를 AI가 자동 생성한다. 과거에는 사람이 나눠서 몇 시간씩 걸렸던 작업이 이제는 순식간에 바로 끝난다. 나아가, 누가 신체 치수를 측정해도 같은 결과가 나오도록 방식을 표준화하고, 디지털 더미를 제작해 실물 없이도 가상 피팅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 디지털과 물리 세계의 연결 고급 맞춤복 생산이 자동화되려면 의류 제작 공정마다 사진을 찍어 데이터로 쌓는 것이 필요하다. 결과물을 한번에 완벽하게 만들려면 실시간으로 사진을 보고 공정을 감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로고의 위치나 색깔 등이 제대로 됐는지를 AI는 원래 디자인과 공정 사진을 비교해 가며 감독한다. 킨도프는 공정과 공정 사이에 옷감을 옮기고 제작 과정을 촬영하는 물리적 로봇 ‘제임스’를 개발 중이다. 제임스는 발을 갖추지 못했다. 상체와 뇌만 살아 있는 상태다. 그래서 자수 기계와 연동하고 싶으면 사내 연결망을 통해 사람에게 연락해 자수 기계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AI 로봇이 인간에게 협조를 부탁하고, 인간이 그 제안을 받아 물리 세계에서 데이터를 수집해 로봇에게 알려주는 이 장면은, 킨도프가 얼마나 진지하게 디지털-물리 통합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킨도프는 구글의 AI파운데이션 모델과 오픈 소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제임스의 발을 만드는 중이다.● 대학 시절부터 여러 창업 도전 고려대 통계학과를 졸업한 김 대표는 미국계 헤지펀드에서 수학적 모델로 투자 전략을 만드는 전문가인 퀀트로 일했다. 창업에 대한 열망이 늘 있어서 대학 시절에 이미 영화 추천 엔진 스타트업, 링크트리와 유사한 SNS 바이오링크 서비스를 만들었다 접었던 경험이 있다. 현재 킨도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배우자인 홍다은 씨가 SNS에 올리던 빈티지 의상 사진이 인기를 끌자 김 대표가 현금흐름 예측 등을 조언·지원하면서 자연스럽게 협업이 시작됐고, 2023년 법인을 설립했다. 김 대표는 헤지펀드에서 퀀트로 일한 경험을 킨도프에 이식하고 있다. 패션 시장 데이터를 수집하고, 예측 모형을 돌리고, 그 결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식이 헤지펀드에서 초과 수익을 찾던 방식과 비슷하다. AI 에이전트가 현재 1623개 패션 브랜드의 가격·재고 데이터를 매일 크롤링하고, 시장 포지셔닝을 추적한다. 또 각 브랜드의 추정 매출과 판매량을 자체 예측 모형으로 산출한다. 무신사에서 경쟁 브랜드의 재고가 어떤 속도로 줄어드는지를 관찰해 가격 탄력성을 계산하고, 기온 데이터와 판매 데이터를 결합해 캠페인 최적 시기도 도출한다.● 블랙핑크 의상 상품화를 넘어킨도프 비즈니스 모델의 대표적인 성과는 블랙핑크의 무대 의상이다. 블랙핑크 멤버 리사가 공연에서 입었던 찢어진 청바지. 킨도프는 이 의상의 콘셉트를 ‘2000아카이브스’ 브랜드로 전환해 일반 소비자용 데님 팬츠(23만 원)를 출시했다. 무신사에서 올해 1월 여성 데님 팬츠 판매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에스파의 카리나가 공항에서 착용한 킨도프의 ‘긱시크’ 안경도 같은 방식이다. 에스파와의 긴밀한 협업 관계를 바탕으로 발매 전 카리나에게 착용을 제안하고, 착용 노출이 곧 판매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킨도프는 창업 2년 만인 지난해 직원 5명으로 연매출 40억 원을 달성했다. 투자금은 목표했던 12억 원의 두 배가 넘는 26억 원을 유치했다. 팁스 글로벌 트랙 선정으로 연구개발 자금 12억 원이 추가돼 총 38억 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킨도프는 할리우드를 포함한 미국 엔터 시장으로도 진출할 계획이다. K팝만이 아니라 엔터의 최상류인 할리우드 배우나 가수까지 확보해 글로벌 패션 상품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김 대표는 “해외 소비자들은 K팝 스타가 입은 패션을 ‘K패션’으로 인식하는 데 그 자리를 정확하게 채우는 브랜드를 우리가 만들 것”이라고 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6-05-0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대졸자 업무를 고졸자가… ‘AI 기반 이음 프로젝트’ 주목

    조영빈 오토폼엔지니어링코리아 대표(59)는 매달 한 번 경북기계공업고등학교를 찾는다. 작년 8월 시작한 ‘오토폼 이음 프로젝트’의 현장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박판 성형 시뮬레이션 분야 세계 1위 소프트웨어 기업 오토폼엔지니어링(스위스 본사)이 한국에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인공지능(AI) 기반 성형 해석 기술을 고등학생에게 가르쳐 기존 대졸자가 맡던 엔지니어링 직무를 수행하도록 키워내는 산학협력 모델이다. 박판은 자동차와 항공기, 가전제품 등 많은 곳에 쓰인다. 2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사무실에서 조 대표를 만났다. 이음 프로젝트의 배경에는 뿌리산업의 구조적 위기가 있다.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KPIC)의 2024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금형 산업 종사자 평균 연령은 47세이며, 30대 미만 비율은 3.9%에 불과하다. 최근 2년간 폐업한 제조업체 수는 8만1804개에 달한다(국세통계포털). 숙련공의 은퇴가 가속화되면서 수십 년간 현장에서 축적된 경험이 데이터화되지 못한 채 사라지는 ‘기술 증발’이 뿌리산업을 위협하고 있다.조 대표는 이 위기의 돌파구를 AI로 인한 기술 보편화에서 찾았다. 그는 “원래 박사급 전유물이던 해석 기술이 대학 교육과정으로 내려왔고, AI가 더해지면서 학습 문턱이 다시 한 단계 낮아졌다. 직관적으로 물어보고 바로 실행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했다. 202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클로디아 골딘의 연구처럼, 기술 발전에 교육이 따라가지 못하면 기술 격차에 따른 양극화가 심화된다는 문제의식도 이 프로젝트의 근저에 깔려 있다. 프로젝트 구조는 실전 중심이다. 오토폼 전문 인력이 주 1회 학교를 방문해 강의하고, 학생들은 현장 실습·기업 탐방·진로 멘토링·졸업 프로젝트를 병행하는 1년 6개월 과정을 밟는다. 교사들도 함께 교육받아 장기적으로 학교 자체 역량을 내재화하는 구조다. 조 대표는 “학생들은 자신들의 미래 모습이 사무실에서 설계를 하는 것으로 바뀔 것이라는 기대감에 적극적이었고, 배움이 늘어감에 따라 자신감도 올라갔다”고 했다.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교육 3개월 만에 강사들이 ‘현장 투입 가능’ 판정을 내렸고, 1기 10명 전원이 아직 9개월의 과정이 남은 상태에서 취업이 확정됐다. 이들은 2027년 상반기 자동차 1·2차 협력업체 현장에 합류할 예정이다. 현재 2기 모집도 시작됐다. 조 대표는 “대졸자들은 서울로 향하지만, 고등학생들은 지역 정착을 선호한다”며 이 모델이 지역 뿌리산업의 인력 공백과 기술 세대교체를 동시에 해결하는 구조라고 했다. 일본 오토폼 대표도 이 프로그램을 보고 “일본에서도 검토하겠다”고 했을 정도다. 오토폼이 진출한 세계 15개국 어디에서도 유례가 없는 시도다. 오토폼은 경북의 성공 모델을 올해 안에 전국으로 확산해 각 도에 거점을 구축하고 총 8개 산학협력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는 계획이다. 조 대표는 “숙련자의 경험을 기업의 디지털 자산으로 전환하는 것이 K제조 재도약의 골든타임을 사수하는 길”이라고 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6-04-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50조 시장’ 소비자 불신이 창업 씨앗… 19개월 만에 189억 투자 유치[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자동차 커뮤니티에서 흔히 보는 게시글이 있다. ‘선배님들, 이 장기 렌트 견적 괜찮은 건가요?’ 월 납입액이 적정한지 경험자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다. 같은 차, 같은 조건이어도 월 납입액이 다른 경우가 많으니 소비자들은 덤터기를 쓰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정상연 디자인앤프랙티스 대표(38)는 이런 질문 덕분에 창업을 하게 됐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자동차 리스 시장 규모는 23조 원, 렌트 시장 규모는 130만 대 이상(약 40조 원)으로 합산 약 50조 원이다. 그런데 이 시장에는 일반인은 잘 모르는 관행이 있다. 고객이 자동차 대리점에서 차를 보다가 리스나 렌트를 원하면, 관련 면허가 없는 영업사원은 중개인에게 고객 정보를 넘긴다. 중개인은 다시 위탁 상담사에게 연락해 재위탁한다. 각 단계마다 수수료가 쌓인다. 수수료 상하한선이나 공개에 대한 규정은 없다. 정 대표는 “업계 관례상 영업사원 소개비가 수수료에 붙고, 중개인은 상담을 통해 고객을 파악하면서 수수료율을 어느 정도로 할지 정하게 된다”고 했다. 정 대표가 창업 준비 중 138개 차종의 견적서를 모아 분석했더니, 똑같은 차에 똑같은 이용 조건임에도 중개인이 설정한 수수료율에 따라 월 납입액이 51만7000원이 되기도 하고 62만6000원이 되기도 했다. 심사의 불투명성도 사용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주택담보대출도 모바일로 처리되는 시대인데, 자동차 리스나 렌트 심사는 여전히 금융사 사람의 심사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심사역의 주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어느 심사역을 만나느냐에 따라 승인이나 보증금이 필요한 조건부 승인, 혹은 불승인 결정이 나는 것이다. 정 대표는 고객의 이 같은 찜찜하고 불안한 마음을 없애 주면 시장이 더 커지겠다고 직감했다.● 투명한 가격-비대면 자동 심사로 승부 자동차 리스나 렌트를 하려면 이름과 연락처를 남기고 상담사 전화를 기다리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디자인앤프랙티스의 ‘차즘’ 앱을 열면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관심 차량을 선택하는 순간 15개 금융사 월 납입액이 실시간으로 비교돼 화면에 나열된다. ‘가장 저렴해요’ ‘높은 승인율’ 같은 태그와 함께 계약 기간, 선납금, 연간 주행거리를 조절하면 즉각 가격이 바뀐다. 차즘의 핵심 경쟁력은 세 가지 기술의 결합이다. 첫째는 표준화된 가격 비교 엔진이다. 금융사마다 잔존가치 평가 기준이 다르고 강점 차종이 다르다. A 캐피탈은 그랜저에서, B 캐피탈은 카니발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견적을 낸다. 차즘은 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연동해 고객이 최적의 조합을 찾을 수 있게 한다.둘째는 비대면 자동화 심사 시스템이다. ‘심사받기’ 버튼 하나로 연동된 금융사의 비대면 심사가 진행되고 승인 가능 여부를 간편하게 확인할 수 있다. 셋째는 전문화된 운영 시스템이다. 그 결과 1인당 월 판매량이 기존 업계 영업사원에 비해 40배나 많다. 정 대표는 “만약 한 사람이 월 두세 대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려면 대당 200만 원의 이익이 필요하지만, 500대를 팔 수 있으면 대당 4000원만 남겨도 된다. 효율적이고 투명한 시스템으로 유통 과정 수수료를 최소화하는 게임을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생산성 혁신으로 대당 유통 이익을 극단적으로 낮추고, 차 가격도 협상을 통해 낮춤으로써 시장을 키워 선순환시킨다는 전략이다. 이런 시스템을 통해 지난달에만 1058대를 팔았다.● 신입 행원에서 창업까지 10년 준비 정 대표는 한양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하나은행에서 여신 담당자로 일했다. 펀드 판매에서 성과를 낼 정도로 열정적이었지만 창업에 대한 갈망은 늘 있었다. 그렇지만 실패하고 싶지는 않았다. 은행 시스템이 어떻게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는지 열심히 배우며 경험을 쌓았다. 은행에서 무인 점포 프로젝트를 주도해 미래금융전략부 부행장 눈에 들었다. ‘사내 벤처를 해 줄 테니 핀테크 스타트업에서 먼저 배워 오라’는 부행장의 제안으로 2020년 7월 대출 중개 및 관리 핀테크 기업 ‘핀다’에 6개월 파견을 떠났다. 여기서 리스-렌트 플랫폼을 기획해 출시하고 사업을 총괄했다. 2021년 2월 하나은행 미래금융전략부로 복직했지만 곧바로 사표를 냈다. 그해 6월 첫아이가 태어났다. 그런데도 창업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2024년 5월 8일 어버이날에 핀다의 사업부를 법인으로 독립시켰다. 6명으로 출발한 팀은 창업 첫 달 매출 203만 원을 기록했다. 그로부터 7개월 뒤 월 매출 1억 원을 돌파했다. 이 시점에 이미 차 한 대 중개할 때마다 버는 돈이 직접적인 비용보다 많아 공헌이익(매출액에서 판매량과 함께 늘어나는 변동비를 뺀 이익)이 발생했다. 창업 14개월 차엔 영업이익 발생, 16개월 차엔 월간 흑자 전환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정 대표는 “핀테크 플랫폼은 흔히들 돈 먹는 하마로 안다. 준비 잘 된 팀은 초반에도 돈 벌 수 있다는 걸 증명하려 했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시리즈 A 투자 유치까지 총 19개월간 프리(Pre)A 21억 원, 프리(Pre)A 브리지 27억 원, 시리즈 A 141억 원 등 세 번의 투자 라운드를 통해 189억 원을 투자받았다.● “자동차 유통의 기본 인프라 될 것”차즘이 지금 가장 집중하는 것은 생산성이다. 상담사 1인당 월 200대 계약을 달성해 가격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 올해 목표다. 동시에 구매보다 저렴한 리스-렌트 상품을 정기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금융사 및 완성차 제조사와의 교섭력을 키우고 있다. 정 대표는 “이미 그랜저 하이브리드 캘리그래피 트림은 할부보다 저렴한 리스-렌트 상품 출시를 목전에 두고 있다”고 했다. 중기 로드맵으로는 반납 중고차 중개와 리스-렌트 승계 서비스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2027년에는 차고지 개발을 통해 물류 기능을 내재화하고 배송부터 사후 관리까지 직접 하는 구조를 완성할 계획이다. 오래된 중고차는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로 수출하는 사업까지 계획에 포함돼 있다. 일본을 시작으로 세계 진출도 꿈 꾸고 있다. 일본은 시장 환경이 한국과 동일해서 같은 사업 모델로 비교적 쉽게 진출이 가능하다. 차즘은 거래 규모가 커지면 차량 공급가와 조달금리 모두 낮출 수 있어 최소한의 수수료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디자인앤프랙티스는 고가가 된 휴대전화처럼 자동차도 월 납입액을 내고 쓰는 사람이 많아지는 시대가 열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 대표는 “전기차로 바뀌면서 차량 가격이 급격히 높아져 금융상품 발전은 필연적”이라며 “차를 빌려 타는 시대를 대비한 인프라 기업이 되고 싶다”고 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6-04-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GS리테일 고객 최우선 ‘AX 전략’ 속도 본격화

    허서홍 GS리테일 대표가 올해 ‘고객 최우선’과 인공지능 전환(AX)을 양축으로 본업 경쟁력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GS리테일은 2025년 연결 기준 매출 11조9574억 원, 영업이익 2921억 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각각 3.3%, 14.1% 늘었다.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을 새로 썼다. 외형 확대보다 사업 체질 개선과 수익성 중심 운영이 숫자로 확인됐다는 점에서, 올해 전략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검증된 실행 로드맵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핵심은 편의점 GS25의 ‘질적 성장’이다. GS25는 수익성이 낮거나 정체된 점포를 리뉴얼하거나 상권 경쟁력이 높은 지역으로 재출점하는 ‘스크랩앤빌드’를 강화했다. 그 결과 기존점 매출 증가율은 지난해 1분기 0.9%에서 2분기 0.1%, 3분기 4.4%, 4분기 3.6%로 개선됐다. 매출 기준으로 편의점 업계 1위인 GS25의 지난해 매출은 8조9396억 원으로 3.2% 증가한 반면 점포 수는 1만8005개로 전년보다 줄었다. 점포 수 경쟁보다 점포당 생산성 제고가 올해도 계속될 전망이다. 허 대표는 올해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그 일이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지를 최우선 기준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모든 판단과 실행의 출발점을 고객 경험에 두겠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데이터와 인공지능(AI) 도구 투자를 확대해 고객 행동을 더 빠르게 읽고 실행으로 연결하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이는 가격·상품·프로모션을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결정하겠다는 의미다. 현장에서는 성과가 나오고 있다. GS25의 신선식품 사전예약 서비스 ‘신선한 예약’은 올해 1∼2월 4차례 진행돼 누적 주문 2만 건을 기록했다. 이를 계기로 우리동네GS 앱 내 신선식품 매출은 전년 대비 540% 증가했다. 구매 고객의 70%가량이 2030세대로 집계됐다. 1∼2인 가구 중심의 근거리 장보기 수요를 편의점이 흡수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신선식품과 소용량 상품 강화는 단순 부가서비스가 아니라 편의점 포맷 재정의에 가까운 변화로 읽힌다. 데이터 플랫폼 경쟁력도 주목된다. 우리동네GS 앱의 지난해 11월 월간 활성 사용자 수(MAU)는 431만 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2년 10월 출시 시점과 비교하면 약 3배 성장했고, 작년 말 대비로는 16% 늘었다. 오프라인 유통 사업자가 고객 접점을 앱 안으로 끌어오면 개인화 쿠폰, 장보기 예약, 멤버십 결제, 검색 데이터 기반 상품 기획까지 한 번에 연결할 수 있게 됐다. 향후 GS25와 GS더프레시의 판촉 효율과 재구매율을 끌어올릴 여지가 큰 셈이다. 홈쇼핑 GS샵도 AX 실험을 본격화했다. GS샵은 생성형 AI를 결합한 데이터 분석 시스템(AI BI)을 도입해 상품 속성부터 구매 고객, 채널, 배송까지 전 구매 여정을 자연어 방식으로 분석할 수 있게 했다. 협력사 전용 통합 시스템 ‘GS샵 파트너스’도 데이터 인사이트·모바일 서비스·AI 챗봇 중심으로 전면 개편했다. 협력사의 상품 기획과 편성, 운영, 정산 효율이 높아질수록 GS샵 역시 방송 경쟁력과 수익성을 함께 끌어올릴 수 있다. GS리테일 관계자는 “올해 GS리테일의 AX는 비용 절감보다 밸류체인 전체 생산성 혁신에 더 가깝다”고 했다. 허 대표는 회사 가치 체계 역시 고객 최우선, 성장 마인드, 열린 소통, AX 실행력으로 제시하고 있다. 결국 올해 GS리테일 성장의 관전 포인트는 점포 수 확대가 아니라 점포당 매출, 앱 체류 시간, 데이터 기반 재구매, 협력사 생산성, 그리고 고객이 체감하는 품질 개선이 얼마나 숫자로 이어지느냐 등이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6-04-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45조 사채시장에 덤빈 직장 동료 셋… “연 3조 굴리는 핀테크 키워”[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칼국숫집 사장이 있다. 하루에 200그릇씩 꼬박꼬박 파는 성실한 자영업자다. 밀가루 거래처 대금은 매달 5일에, 아르바이트생 급여는 15일에 나간다. 그런데 오늘은 4일. 통장 잔고가 바닥났다. 한 달이 다 돌고 나면 수지가 맞는 장사인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200만 원이 없어 발을 동동 굴러야 한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은행은 재무제표도 없고 신용 데이터도 부족한 칼국숫집 사장에게 대출을 내주지 않는다. 그는 옆 가게 사장을 찾아간다. “김 사장, 200만 원만 꿔줘. 다음 달에 220만 원으로 갚을게.” 이게 어려우면 생명보험을 담보로 고금리 대출을 받는다. 이런 일은 전국 수십만 소상공인과 중소 사업자에겐 결코 낯설지 않다. 소상공인이 운영자금 등을 위해 사채로 빌리는 돈은 연간 45조 원 규모다. 올라핀테크 김상수 대표(47)가 이 숫자를 처음 마주했을 때, 머릿속에서 창업의 불꽃이 튀었다. 2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이 문제를 해결하면 사회적으로도 유의미하겠다고 생각했다. 45조 원이라는 시장 규모도 창업의 자극제가 됐다”고 했다.● 소상공인을 삼키는 ‘자금 지옥’ 소상공인이 은행 대출을 거부당하는 이유는 그들이 ‘불량’해서가 아니다. 금융기관이 이들을 불량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는 데이터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개인을 심사할 때는 급여 내역, 자동차 할부 이력, 전세 및 자가 여부 등 방대한 정보가 금융기관에 흘러들어 가지만, 간이과세자 사업자번호 하나를 들고 찾아오는 소상공인에게 은행이 던지는 말은 한결같다. “재무제표를 가져오세요.” 가령 3년 동안 열심히 팔고 배달하고 포장했어도 정리된 재무제표가 없으면 그 사람은 금융 시스템 안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자영업자의 신규 자금 조달 중 사채 비중이 34.4%에 달한다. 고금리 대출 잔액은 43조6000억 원을 넘어섰다.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거부당한 경험이 있는 사업자는 49%에 이른다. 김 대표는 “금융은 어려울 때 도와주고 여유가 있을 때 돌려받는 순기능이 있어야 하는데, 현대사회의 금융은 비가 오면 우산을 뺏고 해가 뜨면 쓰라고 내미는 꼴이다. 소상공인들이 항상 자금 부족에 허덕이는 건 그들 잘못이 아니라, 금융기관이 이들을 판단할 요소가 구조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평균 1시간 안에 입금하겠습니다” 올라핀테크의 해법은 단순하면서도 혁신적이었다. 온라인 판매 사업자가 쿠팡이나 지마켓 같은 플랫폼에서 받게 될 ‘정산 채권’을 올라핀테크에 양도하면, 올라핀테크가 실시간 판매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즉각 평가해 현금을 선지급한다. 대출이 아니라 채권 매입이기 때문에 셀러의 신용등급에는 아무 흔적도 남지 않는다. 이 서비스를 진짜 혁신으로 만든 것은 기술보다는 설계 구조다. 서비스 시작 당시 경쟁사들은 이용자에게 정산 계좌를 자사 계좌로 변경하도록 요구하거나, 산더미 같은 서류를 제출하게 했다. 마치 대출을 받으러 은행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올라는 그것을 전부 없앴다. 기존 쇼핑몰 정산 계좌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신청부터 심사, 지급까지 비대면 자동화로 처리하고 평균 1시간 이내에 입금한다. 김 대표는 “이전엔 이런 편의를 제공하는 업체가 없었다. 5∼6년 지난 지금은 저희를 벤치마킹해서 비슷해졌다. 저희가 만든 변화다”라고 했다. 물론 수수료가 있다. 김 대표는 “쇼핑몰마다 정산주기가 달라 수수료가 다른데, 0.4∼2.0%다. 건당 1%로 1000만 원을 선정산받으면 10만 원인 셈이다. 사업자분들께 자금을 융통할 선택권을 드린 건 맞지만 저희도 자금을 조달해 오는 비용이 있어서 연간 금리로 따지면 중금리(15% 미만) 정도다. 그래서 짧은 융통자금에만 활용하시라고 권한다”고 했다. 올라핀테크의 핵심 기술은 자체 개발한 ‘비금융 신용평가 모델’이다. 매출, 정산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해 30초 안에 선정산 가능 금액을 산출한다. 판매량이나 취소율 같은 정량 지표와 리뷰 및 고객응대(CS) 처리 속도 같은 정성 데이터 등 200여 가지 요소를 결합해 사업자의 신뢰 점수를 자동으로 계산한다. 현재는 국내 최다 수준인 20개 이상의 쇼핑몰을 통합 지원하며 24시간, 365일 운영된다.● 창업을 결단할 때 한 생각과 실천들 김 대표가 창업을 단순한 아이디어로 끝내지 않고 실행할 수 있었던 데는 냉정한 자기 인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79년생인 그는 2006년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이후 한네트(ATM·PG) KSNET(PG사업팀) SK플래닛(재무지원팀 매니저) 다날(카드사업팀장)을 거치며 결제, 커머스, 금융의 접점을 직접 경험했다. 14년 동안 업의 본질을 파고들면서 하나의 확신에 도달했다. 내가 알고 있는 이 업계의 고충을 내 지식과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창업을 앞두고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공동창업자를 찾는 것이었다. 다날에서 만난 정남기현 부대표와 고경환 현 그로스본부장이 그 상대였다. 정 부대표는 컴투스, LGU+, 세가퍼블리싱코리아를 거쳐 다날 대외전략팀장을 지낸 사업기획 전문가였고, 고경환 그로스본부장은 아트디렉터 출신으로 브랜딩과 프로덕트 메이킹을 주도해 온 인물이었다. 김 대표는 “저는 혼자 창업하는 것보다 공동창업을 하라고 주변에 권합니다. 각자의 능력과 역할에 맞춰 일을 나누고, 같은 꿈을 꾸며 함께 노력하는 느낌이 생각보다 큰 힘이 됩니다”라고 했다. 2019년 1월, 셋은 창업 준비에 전업으로 뛰어들었다. 10개월이 넘도록 서로 치열하게 논의하고, 시장을 조사하고, 수치를 검증했다. 김 대표는 “수익이 얼마나 날지, 유지가 될지만 논의한 게 아니었다. 이게 되면 우리를 얼마나 가슴 뛰게 할 수 있을지, 그것도 우리 사이의 합의 대상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사업을 해도 될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저는 일이 잘 풀리지 않더라도 저를 파괴하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배달일이라도 해서 다시 살아가면 된다는 태도가 확실했습니다.” 창업자를 끝까지 버티게 하는 것은 사업계획서가 아니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면의 답이다. 김 대표에게 그 답은 45조 원이라는 숫자에 있었다. 김 대표는 “이 문제를 해결하면 사채로 동원되는 45조 원이 어떤 형태로든 금융회사로부터 조달될 수 있고, 그러면 금리도 낮아지고 사람들이 훨씬 더 나은 환경에서 사업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세상 모든 사업자용으로 진화올해 2월 기준으로 누적 지급금액 6조8078억 원, 누적 지급 건수 102만3432건, 누적 가입자 4만1383명이다. 매월 4000∼5000명의 사업자가 900억∼1000억 원을 유동화하고 있다. 올라핀테크는 현재 KB국민카드와 키움캐피털의 자금을 끌어와 이 규모를 뒷받침하고 있다. 2020년 서비스를 내놓고 그해 매출 1억 원으로 시작해 36억 원(2022년), 95억 원(2023년), 170억 원(2024년)으로 성장했다. 2025년에는 매출 205억 원에 당기순이익 7억 원으로 첫 흑자를 냈다. 위험이 없지는 않다. 부실채권이 제일 큰 위험이다. 김 대표는 “1건의 부실채권이 100건의 수익을 갉아먹을 수 있다. 평가 엔진을 바탕으로 규모의 경제로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올라핀테크는 올해 큰 진전을 시작했다. 2월에 출시한 ‘레븐(REVN)’은 이커머스를 넘어 확정 매출채권이 존재하는 모든 기업 간(B2B) 사업자를 대상으로 선정산 모델을 적용하는 서비스다. 중장기 로드맵은 더 크다. 2027∼2028년 데이터 기반 사업자 대출 50조 원 달성, 2029년 이후 동남아시아를 거점으로 글로벌 사업자로 나선다는 계획이다. 김 대표는 “저희가 지금 연간 3조 원가량 유동성을 제공하는데, 45조 원의 10분의 1도 안 된다. 고충을 겪는 사업자가 훨씬 많은 것이다. ‘모든 사업자의 자금 문제를 해결한다’는 비전을 차근차근 실현하고 싶다”고 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6-04-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용량 2MB 작은 코드 하나로 월 1억”… 1000만 폰 파고든 37세[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매달 수십만∼수백만 원씩 쓰는 신용카드. 그런데 카드를 쓸 때 자신이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온라인 쇼핑몰에서 장을 볼 때, 여행 앱에서 호텔을 예약할 때 내 카드로 얼마를 아낄 수 있는지 알면서 결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알아보려면 카드사 앱을 따로 설치해 열고 혜택 탭을 찾아 들어가야 한다. 그 귀찮음 때문에 연간 수십만 원이 될 수 있는 환급 금액(캐시백)과 적립 혜택이 공중으로 사라지고 있다. 이 손해를 눈여겨보고 진지한 해결책을 만든 스타트업이 페어리테크(Fairytech)다. “사용자들은 복잡하고 시간이 더 걸리니까 귀찮아서 (혜택을) 못 받는 거예요. 그렇다면 편의성을 올려 주고 딱 맞는 순간에 알려 주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했죠.” 16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난 장인선 페어리테크 대표(37)의 말이다. 사용자 수요를 파악해서 뿌려지는 디지털 광고는 무조건 배척의 대상은 아니다. 적절한 때에 정확한 수요자에게 닿으면 사용자에게도 이익이 된다. 지금까지 카드사들이 보내는 광고 문자 방식은 한계가 뚜렷했다. 결제 이력만으로 뿌리는 아파트 미분양이나 대출 광고가 쏟아지자 소비자는 피로감에 마케팅 수신을 꺼 버린다. 그 과정에서 할인, 이벤트 같은 ‘혜택성 알림’까지 함께 줄어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잘못 설계된 맞춤 광고와 묶음형 마케팅 동의 구조 때문에 정작 필요한 혜택 정보는 도달하지 못해 소비자와 회사 모두 손실을 보는 셈이다. 장 대표는 규모가 10조 원에 달하는 국내 온라인(디지털) 광고 시장에서 이런 비효율을 온디바이스(On-Device) 기술로 풀겠다고 나섰다. 개인정보를 서버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서도 사용자에게 딱 맞는 혜택을 딱 맞는 순간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내 휴대전화 안에서 처리… 마법 같은 기술 페어리테크의 핵심 기술은 사진 한 장만큼 작은 약 2MB 크기의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SDK)로 구현돼 있다. 페어리테크는 ‘모멘트(Moment) SDK’라고 이름 붙였다. 이 기술의 결정적 차별점은 ‘프라이버시 퍼스트’이다. 모든 데이터가 사용자 휴대전화 안에서만 처리되기 때문에 개인정보가 서버로 유출될 위험이 없다. 이 SDK는 사용자가 스마트폰에서 어떤 앱을 실행하는지, 단순히 살펴보기만 하는지, 결제 단계에 진입했는지 등을 관찰해 처리하고는 외부 서버로 전송하지 않는다. 작년까지 롯데카드, 하나카드, IBK카드, 캐시워크 같은 주요 금융사 앱에 도입돼 1000만 기기(중복 포함)에서 작동 가능한 상태다. 6월이면 신한카드까지 가세해 작동 가능 기기는 2000만 대가 된다. 사용자가 이용 동의만 하면 화면 뒤에서 조용히 작동한다. 금융사들은 사용료를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익을 챙겨갈 수 있다. 예컨대 사용자가 여행 앱인 트립닷컴 앱을 열고 호텔을 검색하다 결제 직전 단계에 다다르면 페어리테크의 독자적인 알고리즘은 이 움직임을 휴대전화 내에서 실시간으로 감지한다. 그리고는 ‘A사 카드로 결제하면 5% 적립 혜택이 있어요’라는 알림을 띄워 준다. 사용자가 굳이 카드사 앱을 열어 혜택을 찾아볼 필요가 없다. 쿠팡 앱을 열면 ‘2.1% 캐시백 혜택을 찾았어요’라는 알림이 자동으로 나온다. 그 알림 메시지를 클릭해서 결제하면 혜택이 자동으로 적립된다. SDK를 장착한 금융사 등에도 온라인 쇼핑몰에서 제공하는 마케팅 비용 일부가 돌아간다. 페어리테크도 여기서 수익을 창출한다. 장 대표는 “예전이라면 개인은 몰라서, 귀찮아서 그냥 지나쳤을 혜택을 간편하게 받을 수 있고 기업 고객은 개인정보 규제 걱정 없이 데이터의 수익화가 가능하다”고 했다. 기업 고객에는 연간 수십억∼수백억원의 수익을 제공하고, 페어리테크는 이제 막 시작단계인데도 월 1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페어리테크는 아고다(최대 4.9% 적립) 알리익스프레스(6.3%) 파페치(7.7%) 야놀자(2.8%) 쿠팡(2.1%) 이마트몰(1%)을 비롯한 국내외 70여 쇼핑몰과 제휴를 맺은 상태다. 이렇게 사용자 행동 맥락을 파악해 적절한 시기에 혜택 알림을 주는 방식의 효과는 의외로 컸다. 페어리테크가 한 카드사에서 실험한 결과, 실시간 혜택 알림을 비활성화하자 평균 클릭 수가 70%나 감소했고 관련 거래액은 절반 가까이 줄었다. 알림을 켜고 끈 것만으로도 클릭과 매출 차이가 컸다는 점이 실시간 개인 맞춤형 알림의 효용을 방증한다. 놀라운 점은 페어리테크의 혜택 알림 클릭률은 28%로 업계 평균 1.5%의 약 19배다. 특히 네이버페이와 진행한 회원 가입 캠페인에서는 클릭률 27%, 클릭을 통해 실제 회원에 가입한 전환율 78%라는 놀라운 성과가 나왔다.● 구글 동료와 공동 창업 장 대표는 미국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 석사를 마치고 2013년 첫 직장 구글에 입사했다. 미 본사에서 3년, 한국 구글 오피스에서 5년 등 총 8년을 안드로이드와 온디바이스 인공지능(AI) 분야에서 보냈다. 그가 총괄한 텐서플로 라이트(TensorFlow Lite)는, 원래 서버에서 돌리던 딥러닝 모델을 스마트폰 같은 기기 안에서 직접 구동할 수 있게 해 주는 온디바이스 AI 핵심 기술이다. 구글에서의 8년은 여러 모로 풍족했다. 성장 기회를 주고 팀도 바꿀 수 있게 해 주었으며 미국에서 한국 오피스로의 이동도 지원해 줬다. 그럼에도 퇴사를 결심한 때는 2021년이었다. 결심에서 행동까지는 단 한 달이 걸렸다. 창업 결심은 시장 구조 변화에서 기회를 봤기 때문에 가능했다. 개인정보보호 규제가 강화되면서 쿠키나 광고 아이디(ID) 같은 ‘타사 데이터’에 의존해 정교한 표적 마케팅을 하던 중소 애드테크나 온라인 광고 회사들이 규제를 버티지 못하고 줄줄이 문 닫는 모습을 봤다. 반대로 대형 플랫폼들은 자체 보유 데이터와 인프라를 앞세워 더 강해지고 있었다. 이 쏠림 현상을 온디바이스 기술로 바꿔 보고 싶다는 생각이 창업의 방아쇠가 됐다. 개인정보 규제 강화로 금융사나 통신사는 사용자 데이터를 제대로 수익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판단했다. 구글 동료 엔지니어들에게 함께 창업하자고 제안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혼자 퇴사를 선언했다. 퇴사를 하고 사업을 진행하니 구글에서 함께 일한 테크리더 신지원이 합류했다. 온디바이스 AI 특허를 3건 등록한 신지원은 페어리테크 공동창업자이자 기술총괄이다.● “유명 통신사도 도입 코앞”페어리테크는 현재 기업 세일즈에 집중하고 있다. 기술 안정화에 4년을 쏟은 끝에 1000만 기기라는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국내 유명 통신사가 올 2분기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며 “통신사가 합류하면 사용자 규모는 수천만 명이 된다”고 했다. 다음 단계는 ‘시점 타겟팅 광고 플랫폼’이다. 사용자가 대출 관련 앱을 탐색하는 순간 금융 광고를, 여행 앱을 열 때는 여행보험이나 면세점 광고를 노출하는 방식이다. 장 대표는 “이미 몇몇 결제회사와 생명보험회사, 온라인쇼핑몰 등이 계약을 마친 단계”라고 밝혔다. 물론 리스크도 있다. 구글이나 애플이 운영체제(OS) 정책을 강화할 경우 기기 내 앱 감지 범위가 제한될 수 있고, 개인정보보호법 해석이 변화함에 따라 서비스 설계를 반복적으로 수정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장 대표는 개인정보를 기기 내에만 두는 이 방향이 시대 흐름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고 확신한다. 개인정보를 지키면서도 초개인화된 경험을 원하는 소비자 수요, 국내외 대형 테크기업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국내 기업들의 요구, 온디바이스 AI 기술의 급격한 발전이라는 흐름에서 페어리테크가 선두에 있다고 자부한다. 그는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 사회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싶다”며 “사용자를 잘 이해하는 온디바이스 AI로 발전해 광고뿐만 아니라 개인비서, 생산성 도구까지 똑똑하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6-03-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AI-반도체-기후테크 집중 육성… “유니콘 기업 배출하겠다”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경기창경센터)가 ‘기후테크 유니콘 탄생’을 올해 목표로 내걸었다. 이와 함께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분야 스타트업도 집중 육성한다. 현재 국내에는 기후테크 분야 유니콘이 단 한 곳도 없다. 경기창경센터는 클린, 카본, 에코 등 5개 분야를 중심으로 3년간 100개 기업을 집중 육성해 국내 첫 기후테크 유니콘을 배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공공시장 진입로 확보, 산업과 정책의 융합, 사업실증(PoC)부터 매출·투자·글로벌 확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 전략의 핵심이다. 김원경 경기창경센터 대표는 “우리 센터는 단순한 지원 기관을 넘어 투자와 보육, 오픈이노베이션을 결합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며 “이를 바탕으로 AI와 반도체, 기후테크 기업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17일 밝혔다. 경기창경센터는 투자 혹한기로 일컬어진 작년에도 기업설명회(IR) ‘스타트업 815’를 통해 174개사가 476억5000만 원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도왔다. 김 대표는 “선발과 육성, 성장을 위한 외부와의 연계가 잘 작동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12대 신기술 기반 딥테크 기업을 대상으로 기술 차별성, 실행 역량, 글로벌 확장 가능성을 종합 평가한 뒤 투자 이후에도 보육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연계한다. 경기창경센터는 이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해 ‘2025 벤처창업진흥유공 민간 생태계 조성 부문’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김 대표는 “투자 이후의 성장을 끝까지 책임지는 구조가 우리의 노하우”라고 했다. 오픈이노베이션(OI) 방식도 남다르다. 경기창경센터는 대·중견기업과 스타트업을 묶어 전략투자와 사업실증을 한 번에 설계하는 모델을 운영한다. 공공·금융 분야 디지털 전환을 주도하는 중견 정보기술(IT) 서비스 그룹 아이티센과는 ‘유니콘 브릿지’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한 스타트업 6개사 가운데 2개사에 전략투자를 집행하고, 나머지 기업에는 사업실증 비용을 지원해 실제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했다. 5년째 협력을 이어온 첨단 전자 소재 기업 이녹스와는 매년 4, 5개 스타트업을 선정해 선(先)투자 후(後)육성 방식으로 공동 투자와 밀착 보육을 병행하고 있다. 사업실증 이후에도 시장 검증, 공동 사업화, 전략투자, 연구개발(R&D) 연계까지 단계별로 지원하는 ‘포스트 OI 체계’를 갖추고 후속 성장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는 사업 규모와 범위를 동시에 키운다. 하반기 모태펀드를 중심으로 연간 약 200억 원 규모의 펀드를 결성할 계획이다. 초기 투자는 물론이고 스케일업 단계까지 후속 투자를 책임지는 구조를 위한 것이다. 또 딥테크 스타트업의 스케일업을 위해 ‘인뎁스(In-depth) 네트워킹’을 운영한다. ‘공동 설계형 사업실증’으로 수요 기업 사업부서를 초기부터 참여시키고, 글로벌 R&D 프로그램과 해외 파트너 협업으로 스타트업의 해외 시장 진출까지 지원한다. 아울러 볼보, 라디알, 유니레버 같은 글로벌 기업들과 협력해 한국 스타트업의 기술이 그들의 공급망에 들어갈 수 있도록 판로를 열어준다는 계획이다. 올해는 전국 19개 창경센터를 잇는 ‘글로벌 전략 허브’로서 지역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 관문 역할을 강화한다. 이를 위해 AI 분야에 집중해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웹서비스(AWS), 오라클 등 글로벌 빅테크와 협력하고, 정부·글로벌 선도기업이 함께 운영하는 ‘어라운드X(AroundX)’ 프로그램을 통해 투자 유치부터 오픈이노베이션까지 묶어 지원한다. 동시에 K-스타트업 그랜드 챌린지 등 인바운드 창업 프로그램과 연계해, 해외 인재가 한국에 들어와 창업하고 정착하는 것을 돕는 지원도 강화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경기창경센터는 창업자의 비전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곁을 지키며, 혁신적인 도전이 결실을 맺기까지 든든한 페이스메이커가 되겠다”고 밝혔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6-03-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인공위성도 PC처럼 쓴다” 확신하는 한국인[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자정이 넘은 시각, 연구원 하나가 모니터를 혼자 응시하고 있었다.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 있던 날,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해양위성센터의 조성익 연구원은 천리안1호가 촬영한 연평도 위성 영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화면 속엔 한 시간의 시차를 두고 포연이 피어오르는 장면을 정확하게 포착됐다. ‘개발비만 3500억 원에 달하는 국가 위성이 이런 영상을 잡아냈는데, 지금 이 장면은 나만 보고 있구나’. 위성 영상을 누구나 활용할 수 있으면 세금 낭비는 줄이고 새로운 기회를 많이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밤, 텔레픽스의 씨앗이 조용히 뿌리를 내린 셈이다. 올해 1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조성익 텔레픽스 대표이사(48)는 “2021년부터 경영하고 있는 텔레픽스는 위성의 눈에 해당하는 광학 탑재체부터 인공지능(AI) 기반 위성 영상 빅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까지 위성 산업 전 주기 기술을 보유한 국내 유일 기업이 됐다”며 “인공위성을 PC처럼 개인이 활용하는 시대를 앞당기고 싶다”고 했다.● 3500억원 위성 영상을 혼자 보는 시대의 종언 인공위성은 오랫동안 국가 전유물이었다. 정보기관과 특정 부처만이 활용하는 정보자산, 그것이 위성 영상의 지위였다. 하지만 조 대표는 다른 관점으로 접근했다. 지금도 큰 민간 기업들은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위성 사진을 활용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활용하면 경제적 부가가치를 만들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라고 봤다. 텔레픽스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위성 활용의 대중화, 민주화다. 지금도 위성 영상은 활용되고 있지만 분석이 약하다는 것이 조 대표의 판단이다. 실제로 정부 기관 관계자들은 “의사 결정권자들은 위성 영상이 아닌 분석 결과만 원한다”고 토로한다. “위성 데이터가 늘어날수록 업무량이 늘어나는데 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현장의 고충도 듣고 있다. 최근 농업과 물류, 기후 모니터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위성 데이터 수요가 늘면서 위성 활용이 정부 중심에서 민간으로 확대되고 있다.● 세계 최초 기록을 잇따라 쓴 3대 핵심 기술텔레픽스의 기술 경쟁력은 세 가지 핵심 제품에 집약된다. 먼저 세계 최초 우주용 온보드 엣지 AI 프로세서 ‘테트라플렉스(TetraPLEX)’다. 기존에는 위성이 촬영한 영상을 처리하려면 지상국으로 전송한 뒤 분석해야 했고, 이 과정에만 최소 6분 이상이 소요됐다. 테트라플렉스는 그래픽처리장치(GPU)·중앙처리장치(CPU)·프로그램 가능 논리 소자(FPGA)의 3중화 체계를 탑재해 우주에서 직접 AI로 영상 분석 데이터를 처리한다. 영상 처리 시간을 기존의 35분의 1로 줄였다. 이 기술은 2024년 8월 스페이스X 재사용 발사체 팰컨9에 실려 우주로 나갔고, 이후 15개월 이상 궤도에서 정상 작동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2024 초소형 위성 기술 현황 보고서’에도 등재됐다. 두 번째 무기는 AI 큐브위성 ‘블루본(BlueBON)’이다. 2025년 발사에 성공한 블루본은 세계 최초로 블루카본(해양생태계 탄소 흡수원)을 모니터링하는 AI 큐브위성으로, 자체 개발한 다분광 광학탑재체와 테트라플렉스를 함께 탑재했다. 블루본은 작년 6월 미국의 이란 이스파한 핵시설 공습 현장을 포착해 분석한 보고서로 7월 초에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같은 해에는 폴란드 위성 기업과 30만 달러 규모의 유럽 영상 판매권 계약을 체결하며 국내 최초 큐브위성 영상 수출의 역사를 썼다.세 번째 핵심 제품은 세계 최초 위성 데이터 분석 특화 AI 에이전트 ‘샛챗(SatCHAT)’이다. 챗GPT처럼 자연어로 질의하면 위성 영상 탐색부터 분석, 보고서 생성까지 자동으로 처리해 준다. 기존에는 위성 영상 탐색부터 분석 보고서 완성까지 2∼5일이 걸렸지만, 샛챗은 이 모든 과정을 수 분 안에 처리해 95% 이상의 시간을 아껴준다. 지난해에는 국내 대형 정부 기관과 최초로 대규모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상업적 가능성을 증명했다. 텔레픽스는 지난달에는 헝가리 정부의 국가 지구 관측 위성 프로그램(HULEO)에 수천만 달러 규모의 고해상도 전자광학(EO) 카메라 시스템을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유럽 최대 규모 위성 제조사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체결한 이 계약은, 항공우주연구원으로부터 이전받은 기술을 민간 기업이 최초로 유럽에 상업 수출한 사례다. 조 대표는 “텔레픽스가 광학렌즈를 직접 깍아서 제조하며 확보한 기술이 유럽 국가 주도 위성 사업에 본격 참여하게 된 것”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별 보던 눈을 지구로… 연구원에서 창업자로 조 대표는 연세대 천문우주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대학원에서 NASA와 함께 위성 개발을 해 온 지도 교수 아래 천문 관측 기기 설계와 데이터 분석을 익혔다. 2006년 KIOST에 입사한 뒤 15년간 위성 개발과 운영의 전 과정을 몸소 겪었다. 프랑스 에어버스에 파견돼 천리안1호의 해양 탑재체 개발에 참여했고(2007∼2008), 2010년 6월 발사 성공 후에는 해양위성센터장으로서 위성 운영과 서비스를 이끌었다. 이어 천리안2호 개발을 위해 다시 프랑스로 건너간 2013∼2017년, 그는 유럽과 미국에서 민간 우주 스타트업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조 대표는 “미국과 유럽은 민간 업체들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이게 비즈니스가 될 수 있겠다는 힌트를 그 때 얻었다”고 했다. 오랫동안 품었던 생각이 결단으로 굳어지는 순간이었다. 조 대표는 2019년 설립된 텔레픽스를 퇴직금 등을 투자해 2021년 인수했다. 인수 후 사업이 순탄하지 않았다. 우주 산업은 긴 개발 기간과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분야였고,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우주는 여전히 낯선 영역이었다. 자금 환경의 격차는 늘 넘어야 할 벽이었다. 그는 수직계열화 전략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국방과학연구소 등에서 평균 17년 이상 위성시스템 개발을 한 전문가들이 함께 했다. 위성의 ‘눈’인 광학 카메라부터 AI 처리 칩, 위성 운영, 영상 분석 소프트웨어까지 전 공정을 내재화해 품질과 비용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한 것이다. 그 전략은 까다로운 유럽 인증과 국제 입찰 경쟁을 이겨내는 것으로 결실을 맺었다.● ‘위성의 PC화’ 시대로 텔레픽스는 코스닥 기술특례상장을 위한 기술평가를 통과하고 기업공개를 준비 중이다. 서울 여의도 본사와 대전 대덕 연구개발 거점에 임직원 90여 명이 AI 모델 개발과 위성 하드웨어 제작에 매진하고 있다. 2024년에는 세계경제포럼(WEF) 기술선도기업 선정, 미국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CES) 혁신상 수상 등의 소식을 전했고, 지난해에는 엔비디아 인셉션 프로그램 및 아마존웹서비스(AWS) 스페이스 엑셀러레이터로 선정되는 등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위성 기업들과 경쟁하면서 기술적 차별점을 지속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조 대표는 “텔레픽스는 AI와 위성의 융합이라는 새로운 시장의 최전선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보유한 희소한 기업으로서 기존 국가 위성 제작 비용의 5분의 1로 위성을 제작할 수 있는 수직계열화 구조로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조 대표가 꿈꾸는 미래는 위성이 PC처럼 개인용 도구가 되는 시대다. 조 대표는 “대형 컴퓨터 이후 PC가 나왔듯이 위성도 누구나 쓸 수 있는 시대가 반드시 온다”며 “미국에서 위성 영상 구독 고객의 재구독률이 97%를 넘는다는 사실은 위성 영상의 수요가 그만큼 강력하다는 방증”이라고 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6-03-0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중국 아웃도어 웨어로봇 하이퍼셀 국내 출시 外[톡톡 스타트업 뉴스]

    ■ 중국 아웃도어 웨어로봇 하이퍼셀 국내 출시서비스 로봇 기업 브이디로보틱스(대표이사 함판식)는 24일 서울 중구 명동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중국 아웃도어 웨어러블 로봇 ‘하이퍼셀’ 4종을 국내에 공식 출시했다. 인공지능(AI)으로 사용자 움직임에 협응해 파워를 증강하는 외골격 로봇으로 CES 2025 로보틱스 부문 최고혁신상을 받았다. 150만∼300만 원대 4종 라인업으로 체력 소모를 최대 39% 줄여준다고 브이디로보틱스 측은 설명했다.■ 리얼월드, ‘AI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합류피지컬 AI 기업 리얼월드(대표이사 류중희)가 업스테이지 컨소시엄을 통해 정부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협력 생태계에 합류한다고 23일 밝혔다. 로봇 제어 최적화 등을 통해 업스테이지 모델을 피지컬 AI 영역으로 연결하기 위한 검증을 담당하고 실제 산업 현장으로 확산하는 데 집중할 예정이다. 2024년 설립된 리얼월드는 로보틱스 파운데이션 모델 ‘RLDX’를 개발 중이며, 올 상반기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6-02-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동물 대신 세포로 신약 실험”… 새 길 열어 100억 모은 공학자[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처음엔 이 멤브레인(막)으로 물을 더 잘 거르는 필터를 만들지, 기능성 섬유를 만들지 우리도 몰랐다. 다만 ‘물질이 잘 통하면서도 튼튼한 막’을 만드는 기술 하나는 확실히 있었다.” 나노 생산 기술 기계공학자 김동성 셀로이드 대표이사(49·포스텍 교수)는 사업의 출발점을 이렇게 말했다. 김 대표가 처음 붙잡았던 것은 세포가 아니라 나노 섬유 멤브레인, 더 정확히는 미세한 섬유를 엮어 만든 물질투과성 막이었다. 이 기술은 2016년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 선정됐다. 방향을 정해준 건 협업을 하던 바이오 연구실의 현실이었다. 동물 유래 젤인 매트리겔에 세포를 섞어 오가노이드(장기유사체 혹은 미니 장기)를 키우면 크기와 성숙도는 제각각이고 작업자가 누구냐에 따라 배양의 결과가 달랐다. 지난달 9일 서울 서초구 연구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해결하면 동물실험을 대체할 오가노이드 생산을 앞당길 수 있는 도전할 만한 과제였다”고 했다.● 세상에 없던 숨 쉬는 ‘우물’셀로이드가 해결하려는 문제는 단순하면서도 까다롭다. 오가노이드 자체는 이미 전 세계 연구실에 널려 있다. 그런데 고품질 오가노이드들을 균일하게 대량 생산하는 기술은 없다. 세포들이 분화 및 자기 조직화 과정을 거치며 입체적으로 자라도록 하는 3차원(3D) 배양은 하이드로겔(물이 가득 찬 고분자 그물망) 혹은 바닥이 막혀 있는 마이크로웰(작은 우물형 용기)을 쓰는 방식이 대부분인데, 이렇게 배양된 오가노이드들은 크기·성숙도 편차가 크다. 김 대표가 먼저 내놓은 답은 네스트웰(NestWell)이라는 제품이다. 나노섬유 멤브레인으로 만든 물질투과성 마이크로웰이다. 세포는 빠져나갈 수 없지만 산소와 영양분, 노폐물이 오갈 수 있는 미세 구멍이 뚫려 있다. 세포가 3차원으로 응집하면서도 질식하지 않는다. 여기에 김 대표의 전공인 나노 생산 정밀가공 기술이 붙는다. 웰(우물)의 입구 지름을 각각 500, 800, 2000 마이크로미터(㎛)로 설계해 오가노이드 크기 자체를 설계 값에 맞춰 찍어내듯 만들도록 돕는다.이 구조는 2024년 세계적인 종합 과학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실린 신장(콩팥) 오가노이드 연구 논문에서 성능을 증명했다. 사람 유도만능줄기세포(hiPSC)로 만든 신장 오가노이드가 네스트웰에서 탁월하게 잘 자랐다. 사람 신장에 있는 세포 종류 비율과 콩팥 단위(네프론) 구조가 비슷하게 재현됐다. 각 세포가 제 역할을 할 만큼 성숙한 상태까지 자란 것이다. 웰 크기를 바꾸면 오가노이드 크기도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결과도 나왔다. 논문 속 형광사진에 가지런히 배열된 미니 신장들은 김 대표의 말처럼 ‘공장에서 찍어낸 미니 장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3D 배양 자동화 시스템까지 만들어 김 대표가 내놓은 두 번째 답은 오가네스트(OrgaNest)라는 제품이다. 관류(perfusion) 기반 자동 배양 시스템이다. 카트리지 안에 네스트웰을 장착하고, 1mm 안팎의 미세 튜브를 통해 배양액을 연속 주입·배출하며 장기간 자동으로 돌리는 구조다. 연구원이 수동으로 플레이트를 꺼내 피펫 작업으로 배양액을 갈아주던 일을 폐쇄 회로 속 모터와 센서가 대신한다. 오염 위험과 세포 유실을 줄이고, 작업자 편차를 없앴다. 기존 방식과의 차이는 숫자로 드러난다. 간(liver) 오가노이드의 경우 12일간 진행되는 배양 작업에서 기존 매트리겔 방식은 유효 수율이 10∼25%인데 반해 네스트웰과 오가네스트를 쓰면 90%까지 올라간다. 이런 오가노이드 생산 수율 개선은 생산 단가 절감으로 직결된다. 김 대표는 “간 오가노이드의 경우 약 62%, 췌장은 52% 단가를 아낄 수 있다”고 했다. 3D 오가노이드 배양 자동화 플랫폼 개발은 글로벌 장비사와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점점 늘고 있다. 하지만 물질이 통과하는 막이 깔린 마이크로웰과 폐쇄형 관류 배양을 결합해 고균일 오가노이드를 대량 생산하는 상용 솔루션은 셀로이드가 처음이다.● 논문으로만 끝낼 순 없어 창업 셀로이드는 2021년 5월 18일, 포스텍 재료가공 및 통합 바이오 시스템 연구실에서 스핀오프한 회사다. 김 대표는 포스텍 기계공학과·융합대학원(의과학전공) 무은재 석좌교수이자 차세대과학기술한림원 회원이다. 나노섬유 멤브레인과 같은 나노 소재 및 성형 기술을 바이오헬스 시스템과 엮어온 공학자다. 나노섬유 멤브레인과 물질투과성 마이크로웰 성형 기술이라는 원천을 확보한 뒤,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곳으로 오가노이드·세포치료제 공정을 선택한 것이다. 김 대표는 “논문 몇 편으로 끝낼 게 아니라 아예 시장의 표준 공정을 만들자”며 시작했다. 이 결심에 제자인 이성진 최고과학책임자(CSO)가 3D 세포 배양 플랫폼 개발을 맡고, 자동화·로보틱스를 전공한 이동현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자동화 솔루션을 맡으며 합류했다. 나노 생산, 로봇과 모터, 센서·튜빙에 익숙한 공학도들이 세포를 다루는 생물학자들과 팀을 짜 ‘숨 쉬는 마이크로웰’과 ‘세포들을 성숙시키는 배양기’를 같이 설계했다. 셀로이드 기업부설연구소는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연구개발(R&D) 역량 진단에서 국내 기업 연구소 상위 10% 이내 평가를 받았다. 임직원 15명 중 석사 이상 인력이 11명으로 3D 세포배양·자동화·AI·소재 합성 전문가들이 고르게 포진해 있다.● 성모병원과 준비하는 ‘동물실험 이후’의 세상 셀로이드의 현재 거점은 서울성모병원 성의회관 내 포스텍-가톨릭대 의생명공학연구원이다. 첨단 의료기법이 적용되고 신약 물질이 발굴되는 글로벌 연구중심병원에서 중요한 원재료 중 하나인 오가노이드를 키우고 있다. 서울성모병원은 첨단 재생의료, 세포·유전자 치료 임상 역량을 갖춘 병원이다. 병원 연구진과 함께 약물 반응, 독성 평가, 재생치료 가능성을 실험한다. 셀로이드가 이곳을 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동물실험을 줄이겠다고 말하려면, 사람 세포와 환자 데이터를 다루는 현장 안에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셀로이드는 미국 스탠퍼드 의대에서 스핀오프한 스타트업과 심장 오가노이드 공동 연구 및 사업화를 진행 중이다. 또 줄기세포 및 오가노이드를 이용한 동물 대체 및 첨단 재생의료기술을 개발 중인 입셀, 오가노이드사이언스, 에드믹바이오 같은 기업들의 오가노이드 배양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동물대체시험법의 개발·보급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고, 식품의약품 안전처와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등이 참여하는 K-오가노이드 컨소시엄, 오가노이드 표준연구회(OSI) 등이 출범하며 제도화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김 대표는 식약처 안전평가원 산하 OSI 기술인프라 분과장, K-오가노이드 컨소시엄 초대 이사로 새로운 표준 논의 한복판에 서 있다. “규제를 쫓아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드는 배양 프로토콜이 언젠가 규제의 표준이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아직 적자이고, 오가노이드·동물 대체 시험 관련 제도도 완성되지 않았다. 경쟁도 더 치열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신약 개발 과정에서 동물실험을 없애려면 동물 대신 실험을 할 수 있는 믿을 만한 오가노이드를 경제적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런 시대를 먼저 열고 싶다”고 했다.글·사진=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6-02-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컨텍 “4월 제주 ‘아시안 스페이스 파크’ 준공” 外[톡톡 스타트업 뉴스]

    ■ 컨텍 “4월 제주 ‘아시안 스페이스 파크’ 준공”우주 지상국 서비스 전문 기업 컨텍(대표이사 이성희)이 4월 초 제주 제주시 한림읍 상대리에 아시아 최대 규모 민간 지상국 단지 ‘아시안 스페이스 파크(ASP·사진)’를 정식 준공한다고 3일 밝혔다. 제주 ASP는 컨텍의 자체 안테나와 글로벌 파트너사의 위성용 안테나(저궤도 및 정지궤도) 12기가 집결된 국내 유일의 ‘민간 안테나 팜(Farm)’이다. 컨텍은 제주 ASP 준공을 계기로 향후 인공지능(AI) 기반 데이터 센터를 구축해 단순 위성 데이터 수신을 넘어 분석과 전처리를 현장에서 수행하는 ‘우주 데이터 올인원 허브’로 기능을 확장할 계획이다. ASP 준공은 인프라 확충을 넘어 제주를 아시아 우주 비즈니스 전략 거점으로 부각시키는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제주도는 민간 주도 우주 산업과 지상국 인프라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며, ASP 구축과 준공 과정 전반에 걸쳐 행정 및 제도적 지원을 해 왔다. 이성희 대표는 “ASP는 전 세계 우주 기업들이 데이터를 교환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가치를 창출하는 아시아의 핵심 스페이스 허브로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부 디지털 헬스케어 솔루션 ‘더마트릭스’, 시드 투자 유치피부 디지털 헬스케어 솔루션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더마트릭스(Dermatrix)가 딥테크 액셀러레이터(AC) 블루포인트파트너스로부터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고 3일 밝혔다. 투자 금액과 정확한 기업 가치는 비공개다.서울아산병원 피부과 의사 출신 김경훈 대표가 창업한 더마트릭스는 AI 정밀 피부 분석부터 피부과 병원 데이터 관리, 일상 케어까지 피부 건강 전 과정의 디지털 연결을 목표로 한다.스마트 데이터 관리 및 업무 자동화 솔루션은 피부과 환자 임상 사진 촬영, 데이터 관리, 진료 활용, 환자와의 공유까지 효율적으로 관리되도록 돕는다. 서울아산병원 피부과 등에서 3년 이상 운영해 시스템 안정성과 효과를 검증받았다.김경훈 더마트릭스 대표는 “이번 투자를 통해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하고 서비스 범위를 넓혀 최적의 맞춤형 치료가 가능한 피부 진료 환경을 만들겠다”고 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6-02-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오늘과 내일/허진석]‘정년-연금 일치’는 논의조차 없는 국가

    회사 감사실로 호출된 날, 김준비(가명) 씨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정년 이후에도 현금이 나올 수 있는 일을 별도로 해 온 것이 문제가 됐다. 2024년 말 감사를 시작한 회사는 2025년 초 그를 해고했다. 51세로 정년이 9년 남은 때였다. 회사는 재직 기간 다른 일까지 문제 삼아 소송을 제기했고, 2025년 말에 그는 벌금까지 냈다. 전화기 너머의 그는 “회사 동료들과 연락이 다 끊겼다. 여전히 조용히 숨죽여 산다”고 했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정년이 지나면 5년간 없는 것은 확정된 미래다. 아이들이 아직 어리다. 어떻게 가만히 있나. 그걸 대비하느라 임대업과 숙박업 등을 조금씩 해 왔다. 소득 공백은 국가가 만든 것 아닌가. 그 짐을 국민 개인에게 떠넘겨 각자도생의 길로 내모는 건 옳은 일인가.”소득 공백 방치로 국민만 짐 떠안아 정년(停年)은 멈추는 해라는 의미로 ‘직장에서 물러나도록 정해져 있는 나이’라는 뜻이다. 우리 사회는 정년을 연장하는 문제로 다시 씨름하고 있다. 2013년 ‘최소 60세 이상’으로 법이 개정되면서 그 전에 관행적으로 55세 혹은 58세이던 정년은 60세로 바뀌었다. 13년이 지난 지금은 정년으로 65세가 거론된다. 하지만 입법 논의는 더디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당초 지난해 말까지 입법을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23일 입법 추진을 6·3 지방선거 이후로 미루겠다고 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니 다양한 계층의 얘기를 더 듣겠다는 명분이다. 선거를 앞두고 혹시 있을지 모를 민심 이반을 우려한 정치적 계산의 결과겠지만 처한 사정에 따라 입장 차는 크다. 청년은 자신들의 일자리가 준다고 반대한다. 단계적 정년 상향 방안에 대해서는 혜택을 받지 못할 수 있는 60년대 중후반 출생 연령층은 빠르게 일률적으로 정년을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업은 임금 부담 등을 이유로 반대한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을 위한 잔치라며 소외감을 느낀다. 정년을 연장한다고 하니 연금 수령 시기를 더 늦추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국제통화기금은 연금 개시 연령을 68세로 권고했지만 정부와 여당은 일단 선을 긋고 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공론화위원회는 연금 개시 연령을 68세로 높이는 안을 검토했다가 올해 초 폐기했다. 너무 부작용이 크고 현실성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불씨가 꺼진 건 아니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29일 정년과 함께 연금을 받는 연령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연금이 늦어지면 비정규직의 고통은 더 커진다.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연금을 받을 때까지 일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 정년이 아예 없고, 있더라도 연금 수령 시기까지 일할 수 있다. 한국만이 유일하게 소득 공백을 제도적으로 방치 중이다.자명한 원칙 천명해야 과도기 보완책도 나와 한국 사람들은 2023년 프랑스의 연금개혁 시위가 과격한 것에 놀랐고, 연금 수령 시기가 2년 늦춰지면서 자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도 2년 더 늘고, 연금 수급액이 더 늘어나는데도 그렇게 격렬하게 반대하는 것에 또 놀랐다. 프랑스 사람들은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노년의 시간이 줄어든다며 반대했다. 논의 수준의 차원이 다르다. 소득 공백 방치는 1998년 김대중 정부 때 국민연금을 개혁한다면서 연금 수급 연령을 2033년이면 65세가 되도록 바꾸면서 시작됐다. 정년을 올리는 입법이 추진될 때마다 2013년에도 겪었던 청년 일자리 감소와 기업 부담 논란을 매번 겪을 것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정년과 연금 개시의 일치를 천명해야 한다. 당장 실현은 어렵더라도 이 자명한 원칙을 밝혀 두고, 언제까지 구현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국민 노후의 안녕은 체제나 이념, 연금재정 부족을 이유로 훼손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이런 원칙이 있어야 소득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겸업 금지 규칙의 완화 같은 과도기 보완책도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허진석 콘텐츠기획본부 기자·부장급 jameshur@donga.com}

    • 2026-01-3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자동차 렌트 관리 플랫폼 차즘, 151억원 투자 유치 外[톡톡 스타트업 뉴스]

    ■ 자동차 렌트 관리 플랫폼 차즘, 151억원 투자 유치자동차 리스와 렌트 관리 플랫폼 차즘(Chazm)을 운영하는 디자인앤프랙티스(대표 정상연)가 151억 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 유치를 마무리했다고 27일 밝혔다. 선도 투자사인 스톤브릿지와 KB인베스트먼트, 퓨처플레이와 함께 현대자동차 계열 제로원벤처스와 LX그룹 계열 LX벤처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소재 글로벌 투자사 쇼룩 HQ를 포함한 국내외 전략적 투자사들이 참여했다. 디자인앤프랙티스의 투자 유치 누적액은 190억 원이 됐다. 차즘은 차량 계약, 운행, 반납, 유통에 이르는 전 과정을 데이터로 관리하는 플랫폼이다.■ 디든로보틱스-KAIST 기계공학과, 피지컬 AI 공동 개발 협약로보틱스 스타트업 디든로보틱스가 KAIST 기계공학과와 피지컬 인공지능(AI) 및 휴머노이드 기술 분야 공동 연구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사진)을 체결했다고 27일 밝혔다.이번 협약으로 디든로보틱스는 휴머노이드 로봇 손 및 조작 메커니즘 관련 연구 과제를 KAIST 기계공학과 연구진과 공동 수행한다.디든로보틱스는 KAIST 기계공학과 휴보랩 출신 연구자 4명이 2024년 공동 설립한 로봇 전문 스타트업이다. 자율보행과 복잡한 환경 적응이 가능한 자석 발 사족 보행 로봇 ‘디든(DIDEN) 30’을 개발해 왔다. 조선 산업을 비롯한 비정형 환경에서의 이동과 물리적 상호작용 기술을 축적하고 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6-01-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혈액형 무관하게 쓰는 ‘만능혈액’ 개발… “헌혈 한계 넘어설 차세대 기술”[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병원에 혈액이 한 팩밖에 없는 날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때 수술 환자가 발생하면 수술은 불가능합니다.” 백은정 아트블러드 대표이사(49)는 한양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로 수혈의학 전문의다. 20년째 대학병원 의사인 그가 지금도 매일 목격하는 현장은 참담하다. 환자에게 수혈할 혈액이 부족해 수술이 연기되고, 외부에서 오는 응급환자를 받지 못하기도 한다. 2차병원 외과 의사가 절박하게 전화로 피를 구걸하기도 한다. 위법이어서 개별적으로 피를 나눠줄 수도 없다. 혈액형을 파악하지 못하는 긴급 상황에서는 항원항체반응이 생기지 않는 만능공여형 혈액인 Rh-O형 피를 써야 하지만 한국에서 이 혈액형을 가진 사람은 0.3%에 불과하다. 만능공여형 혈액을 갖춰 둔다는 건 꿈 같은 얘기다. 우리나라 혈액 보유량은 평균 4.2일로 권장 기준인 5일분에도 못 미친다. 헌혈자는 계속 줄고 있다. 13일 서울 서초구 아트블러드 연구소에서 만난 백 대표는 “피가 부족해서 규모가 있는 병원은 수혈관리실을 설치하고 전담 인력까지 두도록 법제화한 유일한 나라가 우리”라며 “저출산으로 헌혈 가능자는 줄고 고령화로 수혈 수요는 폭증하는 구조여서 인공혈액 상용화에 나서게 됐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앞선 기술 보유 아트블러드가 개발한 핵심 기술은 세포주 기반 인공적혈구 대량생산이다. 조혈모세포에 특정 유전자를 도입하여 계속 증식할 수 있는 세포주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이 세포주는 살아 있는 사람의 골수 속 조혈모세포처럼 장시간 증식하며, 한 번 확립되면 세포 배양 시설에서 적혈구를 계속 생산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이 분야에 도전하는 곳은 영국 스칼렛과 미국 사피, 한국 아트블러드 세 곳이 대표적이다. 그중에서도 아트블러드만이 정상 염색체를 가진 적혈구 생산용 세포주를 확립했다. 스칼렛은 암세포 기반 세포주라 일반 수혈용으로는 사용할 수 없고, 서필은 유도만능줄기세포 기반이어서 성인과 다른 배아형 혈색소가 생성돼 산소 운반 능력이 떨어진다. 백 대표는 “증식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이 계속 발현할 수 있게 만들었다. 적혈구 전구세포 단계에서 계속 증식을 할 수 있고, 원할 때 분화시킬 수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상 세포로 이걸 해낸 것이다”고 의미를 설명했다.아트블러드는 현재 50L 바이오리액터에서 적혈구 생산에 성공했다. 증식→분화→정제의 전 공정 기술을 확보했다. 생산된 적혈구는 헌혈 혈액과 동일한 양면이 오목한(biconcave) 모양을 띤다. 올해 150L 규모로 확장하고, 최종적으로는 수만 리터급 대량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기술의 장점은 명확하다. 혈액형에 상관없이 수혈이 가능하다. 헌혈 혈액처럼 감염 위험이 있지도 않다. 면역학적·비면역학적 부작용으로부터 안전하다. 헌혈 혈액보다 생체 내에서 더 오래 생존하는 것도 강점이다. 아트블러드는 반려견용 적혈구 개발도 진행 중이다. 사실 사람의 인공혈액을 상용화하려면 임상과 비슷한 확인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동물 혈액으로 먼저 검증을 하는 것이다. 게다가 반려견 혈액은 사람 혈액보다 구하기가 더 힘든 현실적 어려움을 개선하려는 목적도 있다. 백 대표는 “우리 기술로 반려견 혈액을 만들어 사고 없이 수혈이 된다면, 사람에게도 안전하게 적용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라고 했다.● 오랜 창업 준비와 난관들 백 대표의 인공혈액 연구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연세대학교 진단검사의학과 김현옥 교수 연구실에서 펠로우로 근무하던 그는 조혈모세포에서 적혈구를 체외 배양할 수 있다는 혁신적인 논문을 접했다. 백 대표는 “전임자가 한 번 시도했다가 실패한 실험이었다. 하지만 제가 남아있는 시약으로 다시 해 봤더니 재현이 가능했다. 그때가 시작이었다”고 했다. 세계에서 관련 논문이 단 2편밖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분야였다. 백 대표는 한국인 최초로 세계 수혈학회에서 기조연설을 하며 선구자로 인정받았다. 20년간 논문 40여 편을 국제 저명 학술지에 게재하고 국내외 특허 30여 건을 확보했다. 하지만 실험실의 성공과 혈액 생산은 차원이 달랐다. 2013년부터 백 대표는 창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신약 개발 강의를 찾아다니며 들었는데, 만난 기업인들의 조언은 한결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기술은 사업화하지 않으면 절대 실현될 수 없다’. 5년간 낮에는 교수로, 밤에는 창업 교육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이중생활이 이어졌다. 2021년 전환점이 왔다. 정부가 혁신성장 빅3 추진회의에서 다부처 공동사업을 통해 임상용 인공혈액 생산 기술을 확보하기로 결정하면서다. 2023년에 아트블러드는 관련 대형 국책 과제의 메인 연구팀이 됐다. 백 대표는 “정부가 의지를 보였다. 부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창업 후 예상치 못한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임상시험을 위한 동물 모델이 없었다. 개발하려는 것이 혈액이기 때문이다. 쥐와 사람의 혈액형이 달라 쥐에게 투여하면 바로 파괴되기 때문이다. 비임상-임상 시험 과정 자체도 따라 수립해야하는 것이다. 정제 공정도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다. 백 대표는 “필요한 기술들이 세상의 첫 시도여서 여러 단계마다 효율 개선이 필요하다. 매우 도전적인 과제”라고 했다. 법적으로 혈액은 인체에서 채혈한 혈구 및 혈장이어서 인공혈액은 기존 법규를 적용할 수 없었다. 2025년 8월에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인공혈액을 ‘첨단바이오의약품’으로 분류했다. 임상시험의 길을 열었다.● 인류사에 한 획을 그을 인공혈액 2023년 정부는 복지부·과기부·산업부·식약처·질병청이 참여하는 ‘세포기반 인공혈액 기술개발사업단’을 출범시켰다. 5년간 471억 원을 투입하는 1단계 사업이다. 아트블러드는 사람에게 수혈하는 적혈구 제제를 대량생산하는 핵심 과제를 단독 수주했다. 같은 해 차세대 유망 초기(seed) 기술 실용화 패스트트랙 사업 과제를 수주해 개에게 수혈할 수 있는 적혈구를 세계 최초로 생산하는 데도 성공했다. 아트블러드에는 임직원 33명(연구개발 인력 26명)이 연구와 생산을 맡고 있다. 세계 최초의 도전에 각계 전문가들이 모였다. 강스템바이오텍 출신 노경환 바이오 분야 최고기술책임자(CTbO), 삼성바이오로직스 출신 김선규 세포라인 분야 최고기술책임자(CTcO), CJ헬스케어 출신 정영미 최고개발책임자(CDO), LG화학 출신 유수현 최고제품책임자(CPO) 등이 합류해 있다. 경기 안산에 공장(GMP인증시설) 부지를 확보했고, 서울 서초구에 6∼7층 규모 부설연구소를 운영 중이다.아트블러드는 2029년 임상시험 시작을 목표로 한다. 단기적으로는 만능공여형(Rh-O형) 수혈용 적혈구, 중기적으로는 희귀 혈액형 맞춤형 적혈구와 반려견용 적혈구, 장기적으로는 약물전달체 플랫폼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아트블러드는 글로벌 수혈용 혈액 시장은 2022년 370억 달러(약 47조 원)에서 2030년 545억 달러(약 70조 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적혈구제제 시장은 전체의 약 50%를 차지한다. 백 대표는 인류의 혈액 부족을 인공혈액 기술로 해결하기를 원한다. 시장은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으로 본다. 백 대표는 “응급실에 만능공여형 혈액을 배치해 놓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수술이 피가 없어서 지연되는 일이 없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날을 위해 오늘도 한 걸음씩 나아간다”라고 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6-01-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이공계 석박사들의 ‘돈 되는 기술’ 분석 플랫폼 하이젠버그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바이오 분야 등의 연구자들이 직접 글을 쓰는 기술 분석 플랫폼 하이젠버그가 작년 말 출범했는데, 기술과 경제적 가치를 분석하는 콘텐츠로 주목받고 있다. 서비스 론칭 한 달 만에 웹사이트 방문자 수 10만 명을 돌파했다. 서비스 테스트를 위한 유료 가입자 수는 2500명을 넘어섰다. 특히 ‘삼성이 1조 원 투자한, 인간이 만든 가장 복잡한 기계 High-NA EUV’ 보고서는 단일 콘텐츠로 조회수 7만 회를 기록하며 주목받았다. 반도체 장비라는 고난도 주제를 기술적 원리와 경제적 가치로 연결한 분석이 독자층의 호응을 얻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하이젠버그에는 반도체, AI, 바이오, 2차전지, 방산 등 주요 분야에서 매주 5편 이상의 심층 리포트와 뉴스레터가 실리고 있다. 하이젠버그 사이트는 과학기술 콘텐츠 기반 미디어 스타트업 하이젠버그(대표이사 권순용)가 유튜브 영상 채널 에스오디(SOD)에 이어 문자 기반의 기술가치 분석 플랫폼으로 만든 것이다. 하이젠버그의 차별점은 필진 구성이다. KAIST, 서울대, 포스텍 등 국내외 최정상급 대학의 이공계 석박사 학위를 보유한 연구자와 엔지니어 45인이 콘텐츠 제작에 참여한다. 기술을 해석하는 관찰자가 아니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국책 연구소 등 산업 현장에서 직접 실험하고 설계하며 데이터를 다뤄 온 경험이 있는 연구자들이다. 권순용 대표에 따르면 하이젠버그의 보고서는 ‘전망된다’ ‘가능성이 있다’와 같은 모호한 추측성 표현을 최소화한다. 그 대신 실험 데이터와 최신 논문이나 학회에 제출된 연구의 핵심 도표, 공정과 제품 개발 과정에서의 실제 제약 조건을 근거로 기술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한다. ‘이 기술은 게임 체인저이다’ ‘이 기업의 전략은 기술적으로 한계가 명확하다’와 같은 단정적인 결론을 추구한다. 하이젠버그의 모태인 유튜브 채널 에스오디는 삼성전자, SK, 엔비디아, 퀄컴, ASML 등 120여 개 글로벌 기업 및 기관과 협업하며 콘텐츠 제작 역량과 네트워크를 축적해 왔다. 에스오디는 구독자 90만 명, 누적 조회수 3억 뷰를 기록하며 대한민국 과학기술 콘텐츠의 한 축을 형성해 왔다. 권 대표는 “KAIST 유회준 교수(AI 반도체), 김주영 교수(하이퍼엑셀 대표) 등 석학 및 산업 전문가와 함께한 콘텐츠는 조회 수 200만 회를 넘기며 기술 콘텐츠의 대중적 가능성을 입증했다”고 했다. 하이젠버그는 국내 대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프라이머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고, 프라이머 배치 26기에 선정됐다. 하이젠버그의 목표는 구독형 미디어에 머무르지 않는다. 현재 하이젠버그는 방대한 기술 논문, 특허, 시장 데이터를 자체적인 온톨로지(Ontology·지식체계) 기술로 구조화해 기업과 정부의 의사 결정을 지원하는 솔루션을 준비하고 있다. 하이젠버그는 이 솔루션을 ‘기술과 경제’ 영역에 특화해 기술 투자와 산업 전략 분석에 적용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이젠버그는 이러한 방향성을 바탕으로 기술의 경제적 가치를 분석하는 분야에서 신뢰받는 데이터 인텔리전스 미디어이자 분석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한다는 것이 목표다. 권 대표는 “많은 사람이 가볍게 소비하는 콘텐츠보다, 기술의 최전선에 있는 리더들이 반드시 참고해야 할 기준을 만들고자 한다”며 “하이젠버그는 단순히 기술을 설명하는 미디어가 아니라 기술의 가치를 판단하는 가늠자가 되겠다”고 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6-01-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루센트블록이 쏘아올린 혁신금융의 기로[스타트업 이슈 돋보기]

    “(혁신금융사업자) 지정 기간 만료 후 배타적 운영권은 이 법에만 신설돼 있는데, 금융 부분의 서비스 모방이 다른 부분보다 더 쉽다는 특수성을 감안해 배타적 운영권이 원안대로 인정되는 게 좋겠습니다.” 2018년 11월 국회 정무위 소위. 금융혁신지원특별법(금융분야 규제 샌드박스법) 제정 논의 당시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현 대통령 정책실장)이 낸 의견이다. 국회의원들도 한목소리였다. 금융 분야는 사업모델 베끼기가 쉽다. 혁신 스타트업을 보호해야 한다. 배타적 운영권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자.​ 법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제23조에 배타적 운영권이 명시됐다. 혁신에 나선 기업이 먼저 리스크를 지고 길을 열면 인가 후 2년간 동일 서비스를 막아준다는 내용이다. 대전 소재 스타트업 루센트블록은 이 법을 믿었다.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 ‘소유’를 만들었다. 2018년 창업 당시 개념조차 없던 시장이었다.​ 부동산을 쪼개 파는 것 자체가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문제는 금융소비자 보호를 하면서 어떻게 안전하게 거래토록 하느냐였다. 플랫폼이 자산과 증권, 투자금을 모두 관리하면 사고 위험이 크다. 루센트블록은 신탁사, 예탁결제원, 계좌관리기관을 분리하는 구조를 설계했다. 비금전신탁 수익증권 방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사업을 하겠다며 규제 샌드박스를 신청하고 정부 설득에만 2년 반이 걸렸다.​ 이 방식은 결국 표준이 됐다. 금융위가 다른 조각투자 업체에도 똑같이 하라고 권고했다. 카사코리아, 펀블, 뮤직카우 등이 모두 루센트블록 구조를 따랐다.​ 루센트블록은 350억 원 적자를 감내했다. 첫 고객을 만나기까지 또 3년 반이 걸렸다. 결과는 나왔다. 50만 명이 이용했다. 300억 원 규모 자산이 유통됐다. 11개 부동산이 상장됐다. 작년 10월 첫 매각이 성사됐다. 수익률 17.2%였다. 4년간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 작년 9월 4일 금융위원회는 보도자료를 냈다.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운영되어 온 시범서비스를 제도화하는 과정으로서 조각증권(STO) 장외거래소 사업자를 신규 인가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금융위는 업계가 전혀 예상 못한 경쟁 인가 방식을 택했다. 한국거래소, 넥스트레이드, 루센트블록 등 3개 컨소시엄이 신청했다. 한국거래소는 2023년 샌드박스로 조각투자 장내거래소를 2년간 운영했다. 실적은 0건이다. 넥스트레이드는 투자 검토 명분으로 루센트블록과 비밀유지각서를 맺고 기술·운영 정보를 받아갔다. 같이 컨소시엄을 꾸리자고 접근했다가 아무 말도 없이 2~3주 만에 따로 인가를 신청했다. 이 때문에 작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넥스트레이드가 기술을 탈취했다는 박범계 의원의 질타가 있었다. 1월 7일 증권선물위원회 심의에서 한국거래소와 넥스트레이드가 선정되고 루센트블록은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적 0건인 기관들이 4년 무사고 기업보다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금융위는 시장 규모를 고려해 최대 2곳만 인가한다고 한다. 시장 효율성과 환금성이 이유다. 14일 금융위 정례회의에서 최종 의결되면 루센트블록의 혁신금융사업자 지위는 소멸된다. 사업방식을 표준화하며 7년을 이 시장 개척에 전력을 다했는데, 하루아침에 문을 닫아야 한다. 이렇게 결론이 난다면 법 제정 당시 그렇게 우려하던 ‘사업 베끼기’가 정부 주도로 일어난 셈이 된다. 특정 스타트업에게 특혜를 주자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법 제정 취지처럼 혁신의 싹을 살리는 방향으로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되고 있는지 돌아보자는 얘기다. 혁신금융지원특별법은 혁신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국회와 행정부의 고민의 결실이었다. 그 취지는 리스크를 지고 길을 열면 제도화를 최대한 돕겠다는 약속의 다름 아니다. 공동체를 위해 위험한 밀림 속에서 새길을 만드는 사람을 우리는 제대로 격려하고 있는가.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6-01-12
    • 좋아요
    • 코멘트
  • “한 달 수억 절감하는 ‘AI 다이어트’… 비용 최대 90% 줄여 준다”[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한 달에 클라우드 서버 사용료로 수억∼수십억 원을 쓰는 인공지능(AI) 서비스 기업의 사용료를 90%까지도 아껴준다. 우리는 AI가 어떠한 AI 반도체에서도 최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덩치’를 줄여주고 속도를 높여주는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스타트업이다.” 지난달 11일 서울 강남 사무실에서 만난 AI 경량화 및 최적화 스타트업 스퀴즈비츠의 김형준 대표이사(32)가 말한 자사의 사업 방식이다. AI는 해가 바뀔수록 더 똑똑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AI가 처리해야 하는 연산과 데이터가 많아져 무거워진다. AI가 무거워지면 속도가 느려지고 클라우드 비용이 많이 든다. AI 반도체를 만드는 하드웨어 회사들도 고민이 있다. 자신들의 반도체를 써도 기존 AI 서비스를 경제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AI가 반도체 특성에 맞춰 효율적으로 구동될 수 있도록 개선할 수 있다”며 “이 기술 덕분에 글로벌 AI 서비스 기업과 AI 반도체 설계 기업 양쪽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고 했다.● AI 다이어트… 서버 10대가 할 일을 1대로 스퀴즈비츠가 해결하려는 문제는 명확하다. AI 서비스의 경량화·최적화(효율화)다. 챗GPT가 쏘아 올린 거대언어모델(LLM) 열풍 뒤에는 감당하기 힘든 인프라 비용이 도사리고 있다. 엔비디아의 최신 GPU 서버는 대당 수억 원에 달한다. AI 프로그램을 효율화하면 서버 1대로도 10대의 성능을 낼 수도 있다. 김 대표는 “AI를 만드는 곳은 많아졌다. 하지만, 그걸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건 다른 영역의 문제”라고 했다. AI 효율화라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 김 대표는 “컴퓨터가 느려졌을 때, 하드웨어를 모르는 사람은 무작정 재부팅만 합니다. 하지만 컴퓨터 구조를 아는 전문가는 불필요한 프로그램을 끄고 메모리를 정리해 금세 쌩쌩하게 돌아가게 만들죠. AI 효율화도 이와 비슷하다”고 했다. 김 대표가 말하는 ‘하드웨어 지식을 기반으로 한 효율화’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AI 반도체는 크게 연산(계산)과 메모리(저장)라는 두 축으로 돌아간다. 아무리 계산이 빨라도 데이터를 가져오는 속도(메모리)가 느리면 반도체는 멍하니 놀게 된다. 이른바 병목 현상이다. 스퀴즈비츠의 기술은 이 틈새를 파고든다. 예를 들어, 메모리에서 데이터를 가져오는 찰나의 대기 시간에 놀고 있는 연산장치에 다른 계산을 미리 시키는 식이다. 마치 요리사가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멍하니 서 있지 않고 재료를 다듬어 요리 시간을 단축하는 것과 같다.● 하드웨어 맞춤형 효율화의 마법 스퀴즈비츠는 다양한 경량화 및 최적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경량화는 AI 모델을 작고 가볍게 만든 것이고, 최적화는 작은 모델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기술이다. AI 모델을 경량화하는 기술 중 하나는 ‘양자화(Quantization)’다. 32비트라는 긴 비트로 표현되는 데이터를 8비트, 4비트 단위로 짧게 압축해 활용하는 기술이다. 김 대표는 “마트에서 장을 볼 때 10원 단위까지 정확하게 계산하지 않잖아요. 1000원이나 100원 단위로 단순화해서 계산해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죠. AI를 데이터를 단순화하면서 성능 저하는 없거나 최소로 하는 것이 기술이다”고 했다. 경량화에는 가지치기(Pruning)라는 기술도 있다. AI 모델의 수많은 신경망 중 결과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불필요한 연결을 과감히 잘라내는 기술이다. 나무가 더 잘 자라도록 잔가지를 쳐내는 원리와 같다. 최적화 기술 중에는 계산 구조 변환(Graph Compilation)이 대표적이다. 복잡하게 얽힌 연산 순서를 하드웨어가 가장 좋아하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순서로 재배열하는 기술이다. 스퀴즈비츠는 이 모든 기술을 섞어 속도를 10배로 빨라지게 만든다. 김 대표는 “10초에 10장의 이미지를 만들어야 하는 AI 서비스 기업이 GPU 10개를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 솔루션을 적용하고 난 후에는 GPU 1장으로 같은 속도를 낼 수 있었다”고 했다.● “인텔도 우리를 찾는다”… 흑자 경영 중 스퀴즈비츠는 세계 최고 권위의 여러 AI 학회에서 경량화 및 최적화 관련 논문을 70편 이상 발표했다. 고객으로는 네이버, 카카오, 크래프톤, LG, KT, LGU+ 등 내로라 하는 대기업들로 확보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인 인텔은 파트너다. 인텔의 AI 가속기 ‘가우디’를 최적화할 수 있는 기술력을 인정받아 ‘인텔 파트너 얼라이언스 골드 등급’을 획득했다. 국내 AI 스타트업 리벨리온과도 전략적 제휴를 맺고 국산 NPU 생태계 확장에 앞장서고 있다. 구글이나 삼성 같은 거대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효율화 기술을 내재화할 수도 있지 않을까. 김 대표는 자신만만하다. “그들이 직접 할 수도 있죠. 하지만 우리가 더 잘합니다. 하드웨어의 바닥부터 알고리즘의 꼭대기까지 꿰뚫고 있는 팀은 세계적으로 드뭅니다. 직접 하는 것보다 우리를 활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니 글로벌 대기업이 일을 맡기는 거겠지요.”● “남들이 못하는 걸 하자” 포스텍 출신의 집념 김형준 대표는 포스텍(POSTECH) 창의IT융합공학과 1기 출신이다. 학부 시절부터 정해진 커리큘럼 대신 직접 학과 규칙을 만들고 학생회를 조직하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재미에 빠졌다. 창업의 꿈은 일찍부터 꾸고 있었다. 창업하려면 남들과 똑같은 수준으로는 승산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늘 풀고 있었다. 그는 “기술 장벽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해 AI 반도체 설계를 전공했다. 하드웨어를 알아야 소프트웨어를 극한까지 최적화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했다. 그는 AI 반도체 설계를 배운 대학원 동료들, 기술 자문을 해 준 포스텍과 서울대 교수 등 4명과 함께 2022년 3월 스퀴즈비츠를 창업했다. 처음엔 CCTV나 로봇에 들어가는 ‘엣지(Edge) AI’ 경량화에 집중했다. 기술에 대한 수요는 많았지만, 성공적인 사업화는 다른 이야기였다. 고객들은 스퀴즈비츠 기술을 많은 비용을 아끼고 싶어했지만 시장 여건이 여의치 않아 어려움이 있었다. 기회는 생성형 AI 붐이 일면서 찾아왔다. 서버 비용으로 고통받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경량화와 최적화 기술이 빛을 발한 것이다. 창업하면서 네이버 D2SF와 포스텍홀딩스로부터 시드 투자를 유치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2024년에는 카카오벤처스 등으로부터 프리 시리즈A 투자를 끌어냈다. 스퀴즈비츠는 NPU 시장이 더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 대표는 “엔비디아 GPU를 대체할 NPU 시장이 커질수록 스퀴즈비츠의 역할도 커질 것”이라며 “국산 NPU 위에서도 기존 AI가 충분히 빠르고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솔루션으로 증명하고 있다”고 했다. 스퀴즈비치는 창업 3년 차인 2024년부터 흑자를 내고 있다. 김 대표는 스퀴즈비츠의 미래에 대해 “AI 반도체와 서비스 기업 사이의 기술적 장벽을 허물어, 누구나 AI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해 주는 필수 중개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6-01-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보다 싸고 편리하게… 공공 온라인도매 1조원 돌파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가 15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개최한 ‘2025년 농산물유통 혁신대전’에서 유통혁신을 주도한 ‘미스터아빠’가 대상을 받는 등 5개 기업이 상을 받았다. 이들은 온라인 거래, 물류 자동화, 스마트 선별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 농산물 유통구조를 바꿔 나가고 있다. 미스터아빠는 경남 창원에서 2020년 설립된 회사로 산지에서 직접 조달한 농산물을 소포장해 소규모 상점, 슈퍼마켓, 식당 등에 맞춤형으로 공급하는 전국 배송망을 구축했다. 올해 미스터아빠가 주목받은 이유는 ‘농수산물 온라인도매시장’과의 협력이다. 2024년 4월 온라인도매시장에 구매자로 가입했는데, 올해는 온라인도매시장 거점물류센터 운영사로 선정될 정도로 성장했다. 거점물류센터인 경기 이천의 산지이음센터는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해 처리 과정의 98%를 자동화한 약 1만 평 규모 시설이다. 산지에서 개별 배송되던 농산물을 이곳에서 합배송하는 방식으로 전환해 물류 효율화를 주도했다. 최우수상은 강원 영월의 한반도농협이 수상했다. 이 농협은 스마트 산지유통센터를 운영 중인데, 입고와 선별 등 전 공정에 무선주파수식별(RFID) 기술을 도입해 처리 물량을 약 51% 늘렸고, 입고 처리 시간을 3분에서 1분으로 단축했다. 우수상은 전남서남부채소농협이 받았다. 출하 정보를 실시간 제공하는 전자송품장을 적극 활용하고, 양파·마늘·양배추 등 계약재배(2025년 총 119억 원)를 통해 농가에 안정적인 판로를 제공했다. 장려상은 온라인도매시장을 활용해 산지-유통업체-소비자를 연결하고 농가소득 증대와 소비자가격 안정에 기여한 제주의 달콤트리와 가락시장 중도매인인 대광후르츠가 각각 수상했다. 농수산물 온라인도매시장은 유통비용 절감을 위해 농식품부가 2023년 출범시킨 공공 유통 플랫폼이다. 11월 초 연 거래금액 1조 원을 넘겨 전년 동기 대비 2.9배로 성장했다. 농식품부는 소비자들이 주변 농산물 판매가격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농산물 알뜰 소비 정보 플랫폼(앱)’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내년 하반기 시범 출시될 예정이다. 이날 행사에는 약 150명의 농협, 유통업계, 농업인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처음으로 진행된 생산자-구매사 교류회도 활발했다. 제주농협 등 21개 산지 생산자와 아워홈, 오아시스 등 19개 유통업체가 신규 거래처 발굴을 위한 상담을 나눴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농산물 유통구조를 만들기 위해 현장에서 힘써 주시는 분들과 함께 노력하겠다”고 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5-12-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1주일 작업 단 10분에 해결… 135조 로봇 작동구조 설계시장 진출”[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로봇이나 기계 장치를 설계하려면 숙련된 석·박사급 엔지니어들이 일주일 넘게 매달려야 한다. 구조를 구상하고 설계한 뒤, 제대로 작동하는지 컴퓨터 모의실험(시뮬레이션)을 반복해야 한다. 이 과정을 인공지능(AI)으로 단축해 1주일 걸리던 일을 10분 만에 끝낸다.” 9일 서울 관악구 사무실에서 만난 김중호 아이디어오션 대표이사(32)는 메커니즘(기구) 설계 자동화 솔루션 ‘메테우스(METHEUS)’를 시연하며 이같이 말했다. 2023년 7월 설립된 아이디어오션은 사람의 직관에 의존하던 메커니즘 설계를 수학 모델과 AI 기술로 자동화해 주목을 받고 있다. 메커니즘은 로봇이나 기계 시스템 등에서 모터의 회전력을 특정한 움직임으로 바꿔 주는 뼈대(링크)와 관절(조인트) 구조를 말한다.● 손으로 하는 메커니즘 설계 현재 로봇이나 기계 시스템에 필요한 메커니즘 설계는 여전히 수작업 영역에 머물러 있다. 엔지니어는 자신의 경험에 의존해 뼈대와 관절을 구상한 다음에 캐드(CAD) 프로그램으로 점을 찍고 선을 그어가며 일일이 설계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3D 모델로 만든 뒤 힘과 성능을 모의하고 분석하는 전산응용해석(CAE) 프로그램을 돌렸을 때 오류가 발견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설계를 뜯어고쳐야 한다. 김 대표는 “설계와 해석 프로그램이 서로 다르고 비용도 비싸다 보니 전문 인력이 붙어도 시행착오를 겪느라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조건 넣으면 기기 작동구조 자동 설계 아이디어오션이 개발한 메테우스는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 작동 범위, 장애물 위치, 모터 위치 같은 조건을 입력하면 AI가 최적의 메커니즘을 자동으로 생성해 준다. 무게를 가장 가볍게 설계하는 방법이나 비용을 최소로 하는 방법 등을 고르는 것도 가능하다.아이디어오션은 메테우스의 자동화 기술력을 검증 하려고 탁구공을 옮기는 로봇 팔을 제작해 범용 로봇팔(유니버셜 로봇)과 대결을 시켰다. 김 대표는 “메테우스가 설계한 로봇은 불필요한 기능을 빼고 최적화한 구조 덕분에 제작비용은 10분의 1에 불과했지만 작업 속도는 2배나 빨랐다”고 했다. 범용 로봇팔은 물건을 집거나 컵에 담긴 물을 따르는 일도 할 수 있지만, 탁구공을 옮기는 로봇은 그 일에만 최적으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설계 과정을 간편화했기 때문에 범용 로봇을 비싸게 사서 쓸 필요는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아이디어오션은 내년 9월 메테우스 정식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대기업과 협업하며 사용 편의성을 높이는 보완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제품은 보안이 중요한 대기업을 위한 구축형, 중소기업 및 교육용인 구독형, 기존 CAD 사용자를 위한 플러그인 같은 다양한 형태로 제공될 예정이다. 아이디어오션이 추산한 로봇-기계 설계 시장 규모는 135조 원이다.● 거짓말 없는 물리 법칙 기반 AI메테우스는 SBM(Stem Block Mechanism·줄기 메커니즘)이라는 수학 모델과 딥러닝 기술이 결합된 물리 법칙 기반 AI다. 핵심이 되는 SBM은 복잡한 작동구조를 레고 블록처럼 단순화해 자동 설계할 수 있도록 하는 독자적인 수학 모델이다. 수학 모델이 물리 법칙에 부합하는 수억 개의 설계안(데이터)을 지속적으로 생성했고, AI는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설계를 가장 잘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사용자가 목표와 기능, 제한 사항 등을 입력하면 AI는 학습을 통해 익힌 감각으로 설계 후보들을 재빠르게 추려낸다. 이 후보들만 다시 해석하고 검증함으로써 짧은 시간에 최적의 답을 찾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AI가 링크 길이를 10cm라고 했는데 공식에 넣어 보니 9.98cm가 더 정확하네’ 같은 사실을 알게 되면 설계안 보완도 한다. 실제 모터나 베어링, 링크 정보를 입혀 현실에서도 잘 작동하는지도 확인한다. 최종적으로 3D 설계도(CAD 파일)를 내놓는다. 챗GPT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은 확률에 기반해 문장을 생성하다 보니 사실이 아닌 내용을 지어내는 할루시네이션(환각) 문제를 일으키지만 메테우스는 물리 법칙에 맞는 데이터로만 학습하고 수학 모델로 검증을 거치기에 그런 문제가 없다. 메커니즘 설계를 AI로 자동화할 수 있게 된 것은 김 대표 지도교수인 김윤영 전 서울대 기계공학부 석좌교수 덕분이다. 김 석좌교수는 2007년부터 메커니즘 설계 자동화를 연구해 온 세계적 석학이다. SBM 개념을 만들고 18년간 연구했다. 메커니즘을 개념적인 연결 구조(줄기)와 기능을 담은 단위 요소(블록)로 나눠 설계하는 독창적인 방식이다. 메커니즘 설계를 레고 블록 조립처럼 바꾼 것이다. 이런 개념을 바탕으로 모든 메커니즘을 자동으로 산출할 수 있는 표준화된 수학 모델까지 완성했다.● 상용 모듈 만들어 조립만 하면 시제품까지 나와 국내 기계 제조 생태계가 위축되면서 시제품 제작용 부품을 깎아 줄 공장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중국에 주문을 넣어도 납기 지연이 다반사다. 이에 아이디어오션은 시제품 제작 과정도 혁신했다. 메테우스가 설계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즉시 조립 가능한 ‘표준형 모듈’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미리 표준화된 링크와 조인트, 모터(근육)를 만들어 두고 활용하는 방식이다. 김 대표는 “가상 공간의 설계(Sim)가 현실(Real)에서 오차 없이 작동하도록 해 주는 파이프라인(Sim2Real)을 구축했다”며 “설계부터 시제품 검증까지 논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모듈로 시제품을 테스트한 결과는 메테우스에 투입돼 AI 성능을 고도화하는 데이터로 쓰인다. 이론적으로는 계산된 결과라 하더라도 부품에 있는 작은 공차나 물리적 특성이 반영된 움직임 등이 메테우스를 고도화하는 데 다시 쓰이는 것이다. 김 대표는 “수학 모델과 AI를 활용해 물리적으로 가능한 모든 방안에서 최적의 설계를 찾는 특징 덕분에 지금까지 인류가 몰랐던 획기적인 설계안이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창업 생각하며 독자 기술에 늘 관심 김 대표의 창업 의지는 고교 시절 포스텍 영재기업인교육원 1기 과정을 밟으며 싹텄다. 일찌감치 ‘나만의 확실한 기술을 가진 기업가’를 꿈꾼 그는 서울대 기계공학부 박사 과정에서 지도교수인 김 석좌교수를 만나 그 꿈을 구체화했다. 김 대표는 김 석좌교수의 SBM을 실제 로봇 제작에 처음 적용한 논문을 로봇 관련 저널에 게재했다. 이때 학문적 연구의 상용화 가능성이 김 대표 눈에 보였다. 김 석좌교수의 뛰어난 연구와 제자의 창업 열망이 맞물려 아이디어오션이 탄생했다. 김 대표와 연구실 동료였던 이종준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공동창업자로 참여해 물리 법칙 기반 AI를 구축하는 역할을 맡았다. 김 대표는 “SBM은 로봇팔이나 다리, 자동차 힌지 같은 세상의 모든 움직임을 하나의 통일된 수학 언어로 표현한 원천 기술”이라며 “중국 칭화대를 비롯한 해외 유수 대학들이 뒤따라 연구하고 있지만 독보적인 기술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사업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을 묻자 김 대표는 “이론적으로 완벽한 수식이 실제 현장의 물리적 오차까지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기술력으로 난관을 돌파한 아이디어오션은 현재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 의뢰를 받아 차세대 모빌리티와 가정용 로봇에 적용될 기구 설계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김 대표는 “설계는 물론 시제품 제작까지 책임지는 지능형 설계 자동화 분야의 세계적 선두주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글·사진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5-12-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교수와 제자들 창업했더니 260억 몰려… 세계 5곳만 가진 기술[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단백질 치료제 중 대표적인 것은 항체 치료제다. 항체는 바이러스나 암세포 표면의 특정 분자 부위에 정확하게 달라붙어야만 제 역할을 한다. 기존 방식에서는 이런 항체를 얻기 위해, 동물에 항원을 주입해 몸이 스스로 항체를 만들게 하거나, 미리 만들어 둔 수십만 개 이상의 항체 후보 집합(라이브러리)을 하나씩 시험해 보면서 그중에서 잘 붙는 항체를 골라내야 했다. 그런데 이 패러다임을 뒤집는 기술이 등장했다. 인공지능(AI)이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운 항체(단백질)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이렇게 신규 설계된 항체를 ‘드노보(de novo·처음부터라는 의미의 라틴어) 항체’라 한다. 세계적으로 드노보 항체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24년이고, 세계에서 이 기술을 가진 곳은 5곳뿐이다. 한국에선 갤럭스(대표이사 석차옥)가 유일하다. 2일 서울 관악구 본사에서 만난 박태용 부사장(32)은 “5개 회사가 서로 다른 접근법으로 질병 극복을 노리고 있다”며 “갤럭스는 폐암과 유방암, 췌장암, 자가면역질환, 비만, 뇌 질환 등의 원인이 되는 표적 단백질 8종에 작용하는 항체를 설계하며 신약 후보 물질 탐색 효율을 극적으로 높이고 있다”고 했다.● 3차원 단백질 구조 정밀 예측 우리 몸의 단백질은 20가지 아미노산이 1차원 서열로 연결된 후, 마치 종이접기처럼 특정한 3차원 구조로 접힌다. 이 구조가 단백질의 기능을 결정한다. 문제는 아미노산 100개만 돼도 이론적으로 가능한 3차원 구조가 바둑 경기의 경우의 수보다 훨씬 많다는 점이다. 갤럭스의 AI 플랫폼 갤럭스디자인(GaluxDesign)은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 서열을 입력으로 받아 그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예측한다. 더 나아가 특정 표적에 잘 결합하거나 원하는 기능을 수행하도록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을 역으로 찾아낸다. 면역항암제로 설명해 보자. 암세포는 PD-L1이라는 단백질을 만들어 면역세포의 공격을 피한다. 박 부사장은 “암세포가 PD-L1을 내세워 ‘나 아군이야’라며 면역세포를 속이는 것이다. 그런데 항체가 PD-L1에 먼저 붙으면 암세포는 위장을 못 하게 되고, 면역세포의 공격을 받아 죽게 된다. 우리 기술을 활용해 PD-L1에 잘 붙는 항체를 정밀하게 설계할 수 있다”고 했다. 갤럭스는 올해 3월 연간 7조 원어치 가까이 팔리는 세계적인 제약사 로슈의 면역항암제 ‘티센트릭’과 동등하거나 더 우수한 결합력과 안정성을 가진 새 항체를 단번에 설계했다. 박 부사장은 “AI로 설계한 구조와 실험실에서 만든 단백질(항체) 구조 간의 차이는 원자 지름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거의 동일한 구조였다”며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 단백질을 매우 현실적으로 설계했다는 의미”라고 했다. 특히 효율성이 눈에 띈다. 갤럭스가 올해 11월 공개한 데이터에 따르면, 질병의 원인이 되는 표적 단백질별로 AI가 50개만 설계했는데도, 이 중에서 15개(30%)가 실제로 표적에 잘 붙는 항체로 만들어졌다. 수십만 개의 후보를 하나씩 시험하는 기존 방식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탐색 효율성이다. 박 부사장은 “지금까지 서로 다른 8개의 표적에 대해 모두 드노보 설계에 성공했고, 이 가운데 7개 표적에서는 매우 강하게 결합하는 약물 후보급 항체를 확보했다”고 했다.● “연구 결과를 세상에서 쓰이게 하자” 갤럭스의 창업은 25년간 단백질 구조 연구에 몰두한 연구자와 그 제자들이 의기투합해 이뤄졌다. 석차옥 대표이사(55)는 1989년 대입 학력고사 여자 수석으로 서울대 화학과에 입학한 후 시카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 캠퍼스(UCSF)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며 단백질 구조 연구에 몰두했다. 2000년 UCSF에서는 단백질 접힘 이론의 대가인 켄 딜 교수 연구실에 합류하며 더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2004년 서울대 화학부 교수로 부임한 이후에는 대학원생들과 함께 갤럭시(GALAXY)라는 단백질 구조 모델링 플랫폼을 개발해 왔다. 석 대표는 우주의 은하계가 복잡하지만 물리 법칙에 따라 움직이듯, 분자 세계도 기본 원리를 안다면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 연구자였다. 그 믿음은 성과로 증명됐다. 국제 단백질 구조 예측 대회(CASP)에서 2010년부터 10년 이상 글로벌 탑3 안에 들었고, 단백질 상호작용 예측 대회(CAPRI)에서는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2018년 CASP에서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AlphaFold)가 기존 방법들을 압도하는 성능을 보여 세계를 놀라게 했는데, 그때 석 대표는 심사 위원단에 참여해 ‘알파폴드 쇼크’ 현장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기도 했다. 기초과학 연구자로서 자연의 분자 원리에 대해 순수한 호기심으로 연구에만 매진하던 석 교수는 2020년 전환점을 만난다. 박사과정 졸업을 앞둔 제자 박태용의 창업 제안이었다. 박 부사장은 “인류의 생명을 지키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이루려면 기술 창업의 길이 지름길이라 생각했다”며 “연구실에 있던 원종훈 양진솔 연구원과 뜻을 모았고 교수님이 기꺼이 동참해 주셨다”고 했다. 갤럭스의 핵심 기술은 단백질 구조의 물리적 원리를 AI에게 학습시킨다는 점이다. 박 부사장은 “거대언어모델(LLM)은 패턴만 학습시키지만 우리는 ‘이게 왜 답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으며 물리화학적 원리까지 학습시킨다”며 “원리를 학습한 AI는 데이터 양이 적어도, 본 적 없는 새로운 문제도 원리에 기반해 답을 내놓는다”고 했다.● 여명기인 AI 신약 시장AI 신약 개발 시장은 여명기에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글로벌 AI 신약 개발 시장은 2023년 약 1조 3000억 원에서 2028년 약 4조 2000억 원으로 3배 이상 커질 전망이다. AI를 활용하면 전통적인 신약 개발 기간을 10∼15년에서 3∼4년으로, 비용을 수조 원에서 수천억 원 수준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때문에 AI 신약 개발은 수백조 원에 달하는 전체 신약 시장을 근본적으로 재편한 잠재력을 가진 기술로 평가 받는다. 갤럭스는 지금까지 26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글로벌 빅파마를 포함해 셀트리온, LG화학, 한올바이오파마 등 17개 파트너와 협업 중이다. 이달 1일에는 셀트리온과 다중 항체 기반 차세대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갤럭스는 2027년까지 빅파마와 대형 파트너십 계약을 맺고 AI 설계 단백질 신약의 임상시험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후보물질 탐색 성공률을 높인 것은 대단한 성과지만 신약 개발까지 모두 효율화하려면 갈 길은 멀다. 단백질 설계를 잘한다고 해도 실제 몸속에서는 이상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고, 전혀 엉뚱한 곳에 붙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효율적으로 단백질 치료제를 생산하는 것도 중요하다. 박 부사장은 “드노보 설계를 통해 내가 원하는 특성을 가진 단백질을 미리 설계하고 조합할 수 있는 시대가 이제 막 열린 셈”이라며 “후보 물질 탐색뿐만 아니라 임상 성공률까지도 AI 신약 개발 기술로 높일 것”이라고 했다. 갤럭스는 항체 치료제에 집중하고 있지만 다른 단백질 치료제인 효소 치료제와 사이토카인 등의 연구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25-12-0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