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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비판을 받아왔던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최근 사퇴 의사를 밝혔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이후 물러나겠다고 했다. 그의 사퇴는 한국 축구 혁신의 시작점이 돼야 한다. 하지만 그의 사퇴 이후에도 협회 선거제도 개혁 없이는 한국 축구의 혁신은 쉽지 않다. 정 회장은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지난해 협회 감사 결과에 따라 자격정지 이상의 중징계를 받아야 한다는 처분을 받았다. 협회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으나 4월 행정소송에서 패했다. 협회는 항소하기로 했지만 2심에서도 승소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협회 감사는 지난 윤석열 정부 때 실시됐다. 하지만 이번 정부도 지난달 ‘국가 정상화 프로젝트’에 협회 혁신안을 포함시킨 상태였다. 정 회장으로서는 연이어 정부와 맞서게 되는 상황이었고, 이는 그에게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월드컵이 목전인데도 전례 없이 식어 버린 열기로 인해 국내 축구가 팬들의 외면에 따라 산업적으로 고사할 수도 있다는 축구계 내부의 위기의식도 고조되고 있었다. 선거를 통해 연임돼 2029년까지 임기가 남아 있기는 했지만 어차피 행정처분에 의해 회장 업무를 강제로 중단당할 가능성이 높아진 데다 팬들에 이어 축구계 내부 비판도 커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의 잔여 임기 동안 남은 월드컵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그에게는 이번 월드컵이 지나가면 더 이상 가장 가시적 성과인 월드컵 성적을 통해 신뢰를 회복할 기회가 없다. 이번 월드컵 대표팀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낼 경우 그로서는 만회의 기회 없이 최악의 상태에 빠진다. 여론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태에서 강제 퇴진당하는 모양새를 갖는 것보다는 선제적으로 사퇴 선언을 하는 것이 낫다. 정 회장은 성명서를 통해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에서 성과를 내도록 지원하는 것이 마지막 소임”이라고 했다. 정 회장은 2013년 협회장 취임 이후 한국이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그러나 2023년 프로축구 승부조작에 가담한 인물들을 기습 사면하려 했고,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및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에서의 불공정과 관련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와 함께 협회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한국 축구의 경쟁력도 급격히 추락했다. 이러한 혼란 외에도 오랫동안 축구 발전을 위한 협회의 미래 비전과 세부계획은 불분명했다. 일본이 50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월드컵 우승에 도전하는 동안 한국 축구는 정체됐다. 후임 회장은 공정성과 합리성을 되살려 협회의 신뢰를 회복하고 한국 축구의 미래를 재설계하고 재건해야 하는 사명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현 협회 선거 시스템으로는 혁신이 어렵다. 지난 협회장 선거인단은 192명이었다. 20만 명에 이르는 축구인을 대표하기에는 지나치게 적은 숫자다. 선거인단에는 이미 현 집행부에 가깝고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 있는 프로축구단 대표이사, 협회 산하 각종 단체장 및 임원 66명(34%)이 기본으로 포함된다. 나머지는 추첨으로 정해진 선수, 지도자, 심판 등으로 구성된다. 현직 회장 또는 현 집행부에 크게 유리하다. 어려서부터 선후배 관계로 얽혀 있고 이미 서로 뻔히 아는 축구계에서 소수의 선거인단은 집행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고 손쉽게 집중 관리 대상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소신 투표를 하기 어렵다. 정 회장이 지난 선거에서 일반 팬들의 정서와 달리 85%의 압도적 득표율을 보인 것은 이런 폐쇄적인 선거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폐쇄성과 기득권에 유리한 선거구조는 구체제에 맞서는 젊고 혁신적인 인물들이 나서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다. 정 회장 측근이 나설 경우 상대방이 이 선거체제를 극복하고 이기기는 어럽다. 이 경우 정 회장 체제의 인적 청산이 어려워지고 그 카르텔 속에 과거의 구습이 유지될 가능성이 커진다. 협회 개혁은 따라서 현 체제 인사들에 대한 책임을 함께 묻는 형식이 돼야 한다. 또한 협회를 사유화할 수 있는 이러한 폐쇄적인 선거 시스템의 개혁도 병행돼야 한다. 협회는 스스로의 개혁을 위해 후임 회장 선거 이전에 선거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 이는 협회가 자기 개혁을 위해 언젠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며, 후임 회장은 이를 더 정교하게 개선하는 것을 과제로 삼아야 한다. 협회 개혁의 진정성은 이 문제에 대한 태도에 달려 있다.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bluesky@donga.com}

농산업·식품 분야의 유망한 창업 아이디어와 기술을 발굴하고, 미래 농식품 산업을 선도할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창업자를 육성하기 위한 ‘2026 농식품 창업콘테스트’가 6월 3일까지 참여 기업을 모집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하고 한국농업기술원이 주관한다. 농·축산·원예·식품 등 농산업 전후방 분야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한 7년 이내 창업자 또는 예비창업자를 대상으로 한다. 인공지능(AI), 정보통신기술((ICT), 로보틱스, 자동화, 애그테크, 푸드테크, 스마트팜, 농기자재, 반려동물, 농업, 원예, 축산(가축·말산업 등), 화장품, 종자, 곤충, 미생물, 동물용의약품, 식품소재, 천연추출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첨단기술과 그린바이오 기업들에 참여 무대를 제공한다. 2026 농식품 창업콘테스트 홈페이지(a-challenge.kr)에서 신청할 수 있다. 예선을 통해 본선 진출 22개 팀을 가린 뒤 이 중 11개 팀이 결선에 진출한다. 결선을 통해 대상(대통령상 5000만 원), 최우수상(국무총리상 2000만 원), 우수상(장관상 2팀 1000만 원) 등 총 1억2500만 원의 상금을 지급한다. 본선 진출 팀들에는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소개하고 투자를 유치할 기회(IR 투자밋업)가 주어진다. 결선 진출 팀들에는 농식품 스타트업 관련 박람회 내 특별전시, 전문가 1 대 1 매칭을 통한 사업 고도화 및 비즈니스 모델 전략 수립 등에 대한 기회가 주어진다. 이번 행사를 후원하는 농협중앙회, 롯데중앙연구소, 유타대아시아캠퍼스, 한국마사회, CJ제일제당, 유엔산업개발기구 한국투자진흥사무소 등에서도 다양한 멘토링과 컨설팅 및 연계 프로그램을 통한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 2025 농식품 창업콘테스트에는 전국에서 (예비)창업 기업 570곳이 참가해 57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본선에 진출한 기업 20곳은 약 75억3000만 원 규모의 투자 유치 성과를 거뒀다. 2024 농식품 창업콘테스트 참여 기업 메타파머스(대표 이규화)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서울대 로보틱스 연구진이 설립한 메타파머스는 다목적 농작업 로봇 ‘옴니파머’를 개발했다. 농작물의 수확과 수분, 선별 등 다양한 작업을 처리하는 장점을 가졌다. 메타파머스는 옴니파머 개발로 2024 농식품 창업콘테스트에서 장관상과 농협중앙회장상을 받았다. 이어 세계 최대 규모 기술 전시회 CES 2025에서 애그테크 부문 혁신상도 차지했다. 세계에 기술력을 알린 메타파머스는 리드 투자사 옥타곤벤처파트너스, 퓨처플레이와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가 참여한 30억 원 규모의 프리A 투자금을 유치했다. 최근 메타파머스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초격차 스타트업 프로젝트에도 선정됐다. 이규화 메타파머스 대표는 “농식품 창업콘테스트에 참여한 덕분에 기술을 고도화하는 동시에 성장 방향도 점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석형 한국농업기술진흥원장은 “농식품 창업콘테스트는 완성된 기업만 선발하는 무대가 아니라 가능성과 성장성을 함께 보는 무대”라고 말했다.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누구를 위한 응원인가. 20일 경기 수원시에서 열리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수원 FC 위민(한국)과 내고향여자축구단(북한) 경기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북한축구단을 응원하고 정부가 이들에게 3억 원을 지원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스포츠계의 강한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논란 속에 시민단체들은 남북을 공동 응원할 것이고, 정부도 실제 지원 규모는 더 작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이번 일의 진행 과정에서 이미 국내 스포츠계는 상처를 입었다. 시민단체와 정부 당국자들의 스포츠계에 대한 몰이해, 남북관계에 대한 감상주의적 접근 속에서 스포츠를 너무나도 손쉽게 일방적인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려는 데 대한 분노도 깔려 있다. 이 대회는 아시아 여자 최강팀을 가리는 무대다. 남자 축구보다 현저히 관심도가 떨어지는 비인기 종목의 어려움 속에서 수원 FC 위민은 투자를 해왔다. 선수들도 자신의 평생에 걸친 성취를 이루려는 자리다. 힘들게 온 그들의 노력이 마땅히 주목받고 보상받아야 한다. 그런데 여자 축구에 눈곱만큼도 관심 없던 이들이 북한이 온다니까 갑자기 정치적 명분을 내세워 떠들썩하게 구호를 외치며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앗아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내 여자 축구팀의 환경이나 현실, 그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철저히 외면된 채 정치적 이벤트의 들러리가 돼 가고 있다. 남북 응원을 말하기 전에 시민단체 중 어느 곳 하나 우리 여자 축구팀에 대한 관심이나 존중을 먼저 말한 적이 있는가. 우리 팀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북한 응원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한국 팀은 오히려 원래 예정됐던 숙소까지 북한 때문에 옮겨야 했고, 실질적 유료 관중석의 상당 부분은 시민단체들이 차지했다. 홈팀이 아닌 것처럼 돼 버렸다. 이 경기는 친선경기가 아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1위 북한 여자축구는 한국(19위)보다 강하다. 그들은 한국을 꺾고 결승에 올라 우승상금 100만 달러(약 15억 원)를 차지하기 위해 왔다. 북한 우세 상황에서 시민단체들은 어느 팀이 결승에 가더라도 끝까지 응원하겠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는 그들의 응원 의도와 방향이 북한 쪽에 쏠려 있다고 의심받을 수 있다. 이들에 대한 지원금 규모가 적당한지를 판단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공개돼야 할 지원금 세부내역도 정부가 공개하지 않는다고 하니 답답함은 커져만 가고 있다. 핵무기를 쥐고 한국을 적대 국가로 명시하며 위협하는 북한에 대해 국민 대다수는 반감을 갖고 있다. 통일이 민족 과제라도 이런 반감을 고려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며 설득 가능한 통일정책을 마련해 가야 한다. 어느 한 진영의 이념만으로 강요하듯이 혹은 이벤트성으로 추진한다고 되지 않는다. 우리는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만들 때도 심각한 분열을 겪었다. 정당한 노력으로 얻고 그 결실을 눈앞에 둔 국가대표 자리를 왜 북한을 위해 내놓아야 하느냐가 불거졌다. 이는 북한에 대한 우리 내부의 반감이 강하고, 통일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정당한 몫까지 희생할 순 없다는 의식이 팽배함을 확인하는 계기였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취지를 알렸는데도 저항에 부딪혔던 단일팀이었다. 하물며 국내 스포츠 입장을 고려한 사전 조율도 없이, 더군다나 친선을 위해서도 아닌 적대적 상대팀을 맞이하며 잔치를 벌이고, 그 판 위에서 우리 팀이 들러리에 가까운 역할을 해야 한다면 그 어찌 반발이 안 일어나겠는가. AFC도 이 경기를 순수 스포츠 행사로 치를 것을 당부하며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했다. 이 경기를 순수하고 자연스럽게 남북 친선을 위해 활용하려 했다면 시민단체들은 자신들의 비용으로 활동하고, 우리 팀을 응원하는 서포터스들과 교류해 자율적이고 공동 참여적 응원을 추구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이런 협의나 신중함 없이 진행되고, 이를 추진하는 시민단체에 정부가 거액을 지원하면서 특정 입장만 공식화되는 것으로 비치며 문제가 커졌다. 우리 자존감까지 낮추며 특정 진영 중심으로 북한에 과도한 메시지를 보내려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정부는 오해를 없애기 위해 모든 내역을 공개하라. 시민단체들은 공동 응원이란 명분 아래 행여라도 편향된 응원을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이번 일은 남북 친선이 아닌, 우리 내부의 분열만 심화시킬 것이다.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bluesky@donga.com}

“오랫동안 지고 온 짐을 내려놓은 느낌이었습니다. 평생의 숙제를 마친 듯 했습니다.” 지난해 2월, 70세의 나이로 법무사 시험에 최종 합격했던 당시를 회상하는 한상범 씨(71)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오랜 세월에 걸친 깊은 감회가 담겨 있었다. ● 교통사고 보상금으로 대학진학 그는 초등학교를 마친 뒤 모 대학 시설에서 잔일을 해주는 급사로 일했다. 신문배달, 번데기 장사 등도 했다. 대전 도시 노동자 가정의 4남 2녀 중 셋째. 학업에 대한 희망을 이어가는 것도 버거운 가난 속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러 합격했으나 입학금은 끝내 마련하지 못했다. 진학을 포기했다. 대신 ‘재건학교’와 ‘전수학교’에 다녔다. 1960∼70년대 세워졌던 재건학교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정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중학교 교과 과정을 가르쳤다. 주야간으로 운영됐다. 전수학교는 실업계 고등학교 내용을 가르치며 취업을 도왔던 기관이다. 한 씨는 이 학교들에 다니면서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학업과 일을 병행했다. 전수학교를 마치고 책 판매원을 했다. 백과사전류 등을 이곳 저곳 방문하며 판매했다. 그러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대형버스에 치었다. 한쪽 발을 절단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으나 다행히 봉합수술은 잘됐다. 주변에서는 이 때 나온 교통사고 보상금으로 작은 가게라도 차려 먹고 살라고 했지만 그가 택한 것은 대학 진학이었다. 마침 검정고시에 합격한 즈음이었다. 이 보상금으로 자취방을 얻어 공부에 집중한 뒤 국민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다.● 계속되는 낙방 후 꿈 접은 법학도 법학 공부는 오래된 꿈이었다. 가난한 생활 속에서 그의 형이 억울하게 절도 혐의를 받고 경찰서에 불려 다니며 고초를 겪은 일이 있었다. 그때 “너는 꼭 법관이 돼 보라”던 형의 말이 머릿속에 자리했다. 졸업하고 취업해 결혼했다. 그동안 학자금 융자를 갚았다. 이후 부인의 동의를 얻어 사법시험에 도전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시험 준비를 한 뒤 1년 반 만인 1983년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수험 생활을 이어 갔지만 결국 합격하지 못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다 틈틈이 법무사 시험도 치렀다. 법무사 시험제도는 1992년에 처음 생겼다. 법무사란 법률 전문가로서 등기, 공탁, 개인회생·파산·면책 신청 등과 관련한 대리 업무를 한다. 소장을 작성하고 상대 소장에 대한 답변서를 쓰기도 한다. 변호사는 법률 전반에 대한 상담을 제공하고 소송대리인으로서 법정에 출석하여 변론할 수 있는 반면 법무사는 소송대리권이 없고 소송 서류의 작성 및 제출 권한만 있다는 차이가 있다. 변호사는 소송대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고, 일상생활과 관련된 많은 법률 문제의 처리는 법무사가 하는 경우가 많다. 변호사 비용을 들이지 않고 나 홀로 소송을 하려는 이들도 법무사를 많이 활용한다. 소득 없는 수험 기간이 길어지면서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과 불안감 등으로 인해 한 씨의 공부는 잘 되지 않았다. 그는 수험 생활을 그만두고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으로 일하며 생업에 종사했다. 세월이 흘렀다. 그러다 60세가 다가오자 사무장 일도 더 할 수 없었다. “나이가 있으니 다른 일을 알아보라”는 말을 들었다. ● 노후 대비 다시 법무사 시험 이때부터 자격증을 따서 노후에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때마침 생긴 행정사 시험을 준비했다. 행정사는 각종 민원 신청, 인허가, 출입국 업무 등 행정기관을 대상으로 한 서류 작성 및 제출 업무를 대행한다. 58세 때인 2013년 제1회 행정사 시험에 합격했다. 60세에 행정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행정사로 일하던 그에게 어느 날 옛 선배가 찾아와 법무사 시험에 재도전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했다. 법무사 시험에는 나이 제한이 없다. 젊은 시절부터 꿈꾸었던 법률 전문가가 되어 보기로 다시 마음먹었다. 2017년 사법시험이 폐지된 뒤 변호사나 법관이 되기 위해서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다닌 뒤 변호사 시험에 응시해야 한다. 이런 제한이 없는 법무사는 노년에 법률 전문가가 되기 위한 거의 유일한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많은 업적이나 부를 이루신 분들은 이 나이에 세계여행을 하며 지내실 테지만, 어떤 일을 계속 해 오다가 잘 안됐던 사람은 50이 됐든 70이 됐던 몇 살이 됐든지간에 한번은 강한 정신으로 자기를 무장해서 자기가 해 보고 싶었던 거에 도전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있었어요.”● 긍정과 체력관리로 나이 이겨60세 넘어 다시 법무사 시험 준비를 했다. 몇 번 시험을 치러 본 뒤 65세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젊은 시절과 다른 점이 있다면 훨씬 더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려 했다는 점이다. 세월 속에서 많은 일을 겪고 난 뒤 “어차피 인생의 종점은 행복이며 그 행복을 위해 살려고 하는 거다”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행정사 사무실에서 매일 밤 12까지 일하며 공부했다. “손님이 없을 땐 공부할 시간이 생겨서 좋고, 손님이 있으면 돈을 벌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공부량이 부족하다 싶으면 집에 돌아와 새벽까지 더 공부했다. 작은 집에는 책상을 들일 공간이 없었기에 밥상을 펴고 공부하거나 세면대에 널빤지를 걸치고 그 위에 책을 올려놓고 의자를 가져다 앉아 공부하기도 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자전거를 타거나 공원 산책을 하는 등 여유를 즐기며 쉬는 데 집중했다. “어차피 살 거 기분 좋게 살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체력 관리를 위해 매일 아침 사과와 비타민C, 홍삼과 계란을 먹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과 아침에 일어난 뒤에는 꼭 30분가량 허리와 목을 풀어주며 스트레칭을 했다. 마침내 지난해 2월 제30회 법무사 시험 최종 합격자 명단에 들었다. 첫 법무사 시험을 본 지 33년 만이었다. 사시 포함 평생에 걸쳐 20회 가까이 낙방한 뒤였다. 주민등록상에는 1956년생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1955년 생으로 70세 되던 해였다. 그는 “제 나이가 70이었지만 마음은 항상 청년 같았거든요. 세월이 흘러간 거는 흘러간 거고, 저는 그냥 하던 일을 계속해서 합격을 한 거라 특별한 거는 없었어요”라면서도 “제가 법률과 관계된 생활을 오래 했는데, 그 경험을 현실 속의 자격증과 연결해 살릴 수 있다는 점이 기쁩니다”고 했다.● 소득보다 성취감과 긍지가 주는 행복 그는 지난해 법무사 사무소를 개업했다. 법무사의 수입은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월 100만 원에서 1000만 원 단위까지 다양하다고 했다. 변호사 및 다른 법무사들과의 경쟁도 심한 상태여서 합격만 하면 무조건 많은 돈을 번다고 보기는 힘든 상황이다. “제가 이 나이에 무슨 큰돈을 벌기보다는 가게 세 내고 생활 유지하는 정도로 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이 재미있어요.” 개업한 지 1년 정도 지난 지금 그의 소득은 월 200∼300만 원 정도 된다고 했다. 자신의 활동 정도에 따라 자신의 지명도를 높일 수 있고, 그에 따라 앞으로 소득도 더 늘어나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그는 변호사 사무장, 행정사 등 폭넓은 경험과 법무사로서의 전문지식을 활용해 의뢰인들을 도울 수 있다는 데 대해 “굉장한 긍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의뢰인의 문제를 해결 한 뒤 “고맙다”라는 말을 듣고 보람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 더 나은 활동을 통해 더 좋은 날들을 맞이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된 데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고 했다. 그에게는 돈보다도 늦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기어코 이루어 낸 자신의 성취, 그리고 그 일을 통해서 느끼는 보람과 긍지가 더 큰 행복감을 주고 있었다. 은퇴할 나이 이후 오히려 꿈을 향해 더욱 달려온 그가 얻은 열매다. ● 중장년 몰리는 법무사… 판례 공부가 핵심 법무사 시험은 비교적 난도가 높지만 최근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응시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2017년 3276명이었던 법무사 1차 시험 응시자 수는 2020년 4070명으로 늘어난 뒤 지난해 제31회 1차 시험 때는 8154명으로 증가했다. 2020년 이후에만 두 배가량 늘었다. 이는 최근 고용 불안 등으로 인해 노년에도 정년 없이 일할 수 있는 전문 자격증을 취득하려는 이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올해 2월 발표된 제31회 법무사 2차 시험 합격자 수는 221명이었는데 41세∼45세 40명, 46∼50세 60명, 51세 이상 55명이었다. 40세 이상이 합격자 수의 70%를 차지했다. 최고령 합격자는 68세였다. 2차 시험의 벽이 높다. 한 씨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판례를 어떻게 해석해 사안에 적용하는지를 공부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한 씨는 암기 위주인 1차 시험을 치를 때는 “꼭 외워야 할 것들을 추린 뒤 이들의 머릿글자를 따서 조합한 단어들을 기억하는 식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QR코드를 스캔하면 채널A 유튜브 ‘건강IN으로’에 업로드된 인터뷰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새마을운동이 개발도상국의 자립과 공동체 회복을 돕는 국제협력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달 22일 새마을운동 56주년을 맞아 기념식을 개최한 새마을운동중앙회는 현재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 등 11개국 52개 마을에서 지구촌 새마을운동 시범마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주민들이 직접 마을의 발전 과제를 정하고 함께 해결해 나가는 이 사업은 새마을운동의 핵심 가치인 근면·자조·협동 정신을 기반으로 진행되고 있다. 아프리카 잠비아 카푸에군 음와치비야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직접 회의를 통해 시장과 상수도 시설 설치를 결정하고 운영 규칙을 만드는 등 ‘내 마을은 내 힘으로 가꾼다’는 새마을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시범마을 현장을 직접 방문한 무탈레 날루망고 잠비아 부통령은 “새마을운동이 잠비아에 영감과 희망을 주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국내에서 축적된 성공 경험을 국제사회와 나누는 새마을 교육 사업은 현지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끄는 핵심 동력이다. 1973년 시작된 해외 지도자 교육 프로그램은 2025년까지 150개국 6만8000여 명의 수료생을 배출하며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의 근간이 되었다. 올해 중앙회는 총 13개국 386명의 외국인을 국내로 초청해 현장 적용 중심의 맞춤형 실무 교육을 실시한다. 국제 협력 네트워크 역시 한층 공고해지고 있다. 지난해 우즈베키스탄, 적도기니 등 5개국이 새마을글로벌협력국으로 신규 가입했다. 이로써 ‘새마을운동글로벌리그(SGL)’는 총 51개국 체제로 확대되었다. SGL은 지구촌 곳곳을 잇는 글로벌 협력의 중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새마을운동을 대한민국의 핵심 공공외교 자산으로 육성하기 위해 발족한 ‘새마을 외교 그룹(Saemaul Diplomacy Group)’의 활동도 주목받고 있다. 현재 38개국 주한 외교단이 참여하고 있는 이 그룹은 새마을운동이 해당 국가의 공식적인 국가 농촌 개발 전략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새마을운동중앙회는 국제 원조와 농업·농촌 협력의 범위를 더욱 넓혀, 더 많은 국가의 자립과 공동체 회복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방침이다.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국제 축구대회에서 통했던 과거 한국팀의 전술은 어떠한 것이 있었나. 이를 살펴보는 것도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앞둔 현 대표팀에 의미 있는 시사점을 줄 수 있다. 한국적인 전술로 첫 세계적 성과를 거둔 팀으로는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4강에 올랐던 박종환호를 꼽을 수 있다. 당시 박 감독은 ‘6가지 번개 전술’로 불리던 세부 전술을 개발했다. 4-2-4 포메이션을 바탕으로 ①풀백이 양쪽 날개로 공을 주면 윙(측면 공격수)이 공을 안으로 치고 들어가면서 링커(미드필더)와 자리를 바꾼다 ②양쪽 풀백이 오픈스타일로 윙에게 패스하면 윙은 안으로 치고 들어가 오버래핑하는 풀백에게 연결시킨다 ③링커와 안쪽에 있는 선수가 좁은 폭의 오버래핑으로 중앙을 돌파한다 ④윙과 링커가 2 대 1 패스를 한 뒤 링커가 상대 수비를 교란하면서 양쪽 윙 위치로 돌아간다 ⑤일반적인 중앙 돌파를 시도한다 ⑥중앙 돌파(⑤번 공격)가 막혔을 때 양쪽 날개로 공격을 펼친다 등이다. 현대 축구에서 자주 사용하는 오버래핑에 의한 측면 공격과 측면 공격수와 미드필더의 위치 교환으로 상대 선수를 혼란시키는 전술이 들어 있다. 박 감독은 당시 세계 축구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는 상태에서 국내 코치진과 자신의 구상으로 전술을 만들었다. 이를 매우 정밀하게 훈련시켜 선수들의 몸에 배게 만들었다. 선수들은 실시간으로 변하는 경기 내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어떤 전술을 적용할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상대를 돌파하고 전술을 실현할지를 익혔다. 당시 한국팀은 마치 야구 경기에서 감독의 사인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평을 받았다. 한국 축구 최대 성과인 2002 한일 월드컵 4강 진출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은 기본적으로 3-4-3의 스리백을 운용했다. 이영표 송종국 등 좌우 윙백이 폭넓게 공수에 가담하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수비에서는 홍명보가 중심이었고 미드필드와 공격진에서 박지성 안정환 이천수 설기현 유상철 황선홍 등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선수들이 유기적으로 호흡을 맞췄다. 전반적으로 한국은 이때 측면과 중앙의 손발이 잘 맞았다. 그러나 가장 큰 특징은 상대를 숨 막히게 했던 고강도 압박 플레이였다. 이는 지역방어 및 중원 싸움에서 특히 효과를 발휘했다. 이를 위해서는 엄청난 체력이 필요했는데 히딩크 감독은 부임하자마자 한국 선수들의 체력 개선에 나섰다. 박 감독과 히딩크 감독은 모두 장기 합숙훈련을 하면서 선수들이 강한 체력을 갖추게 한 뒤 세부 전술을 가다듬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박 감독은 평소 선수들이 연습경기에서 실점하면 그 실점한 골수의 10배만큼 운동장을 돌게 하는 등 지독하게 체력 훈련을 시켰다. 멕시코 고지대에서 뛸 것을 대비해 선수들에게 마스크를 쓰고 뛰게 했고 대회 보름 전 입국해 일찍 현지 적응을 시켰다. 히딩크 감독은 과학적인 프로그램을 도입해 선수별 맞춤 훈련을 하면서도 지옥 훈련에 가까운 셔틀런 등을 시켰다. 이후 환경은 크게 변했다. 세계 무대로 진출한 선수들이 많고 이전처럼 장기 합숙훈련을 하기는 힘들다.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에 진출했던 파울루 벤투호는 다른 식으로 팀을 관리했다. 벤투 감독은 4-3-3을 기반으로 포백 수비와 빌드업 축구를 구사했다. 후방에서부터의 패스 플레이로 빈틈을 노렸다. 그는 대표팀 소집 때마다 주전 선수들을 별로 바꾸지 않고 줄기차게 같은 방식을 고집하며 연습시켰다. 역대 최장인 4년 4개월간의 긴 대표팀 감독 재임 기간 동안 답답할 정도로 한 가지 방식만을 고집한다는 비판을 많이 들었으나 결국 이를 통해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 팀들이 낸 성과는 장기 합숙을 통한 집중적인 체력 및 조직 훈련으로 성과를 내는 방식, 장기 합숙은 하지 못하되 오랫동안 틈날 때마다 같은 전술을 훈련하며 특화된 장점을 갖춰 나가는 방식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지금은 장기 합숙도 어렵고, 벤투 감독만큼 홍명보 월드컵 대표팀 감독이 긴 부임 시간을 확보한 것도 아니다. 이런 때는 아직 선수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특정 전술을 이식하기보다는 선수들의 특징에 맞추어 최적화된 조합을 찾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홍 감독은 포백과 스리백을 오가며 실험해 왔지만 한때 주류에서 사라져 선수들에게 덜 익숙해진 스리백이 최적인가라는 논란이 있다. 홍 감독이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다.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bluesky@donga.com}

축구팬들이 떠나고 있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앞둔 상태에서 축구대표팀 관중 수와 시청률이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앞둔 시점에 비해 반 토막 이상으로 줄었다. 그리고 그 추세는 더 뚜렷해지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 월드컵 본선에서의 성적 부진까지 이어진다면 축구계 전체가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을 것이 분명하다. 그동안 한국 축구는 국가대표팀의 인기가 축구계 전반의 생태계를 이끌어 왔기 때문이다.한국 대표팀은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5, 6개월 앞둔 시점부터 본격적인 평가전을 벌였다. 이해 6월 브라질, 칠레, 파라과이, 이집트와 평가전을 했고 9월에는 코스타리카, 카메룬과 경기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비롯해 대전 수원 고양 등을 오가며 경기를 치렀는데 이집트전, 카메룬전을 빼고는 모두 매진됐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던 이집트전, 카메룬전도 매진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6만4000여 좌석 중 5만9000석이 들어차 6만 명 가까운 팬들을 불러 모았다. 6월 치러진 모든 경기가 시청률 10%를 넘겼다. 브라질전 16.4%, 칠레전 14.9%, 파라과이전 11.5%, 이집트전 12.6%였다. 올해 월드컵을 앞두고는 개막 7, 8개월 전인 지난해 10월부터 국내에서 브라질, 파라과이, 볼리비아, 가나와 평가전을 치렀다. 올해 3월과 4월에는 해외에서 코트디부아르, 오스트리아와 경기했다. 모두 매진에 실패했다. 세계적인 스타 선수들이 대거 포진한 브라질과의 경기는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매진에 가까운 6만3000여 팬을 모았으나 전석 매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곧바로 이어진 파라과이전에서는 관중이 2만2206명에 불과해 3분의 1로 줄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국가대표팀 경기 중 2008년 9월 요르단전(1만6537명) 이후 17년 만의 최소 관중을 기록하며 축구계에 충격을 안겼다. 이어 대전에서 열린 볼리비아전은 4만여 석 중 3만3852석을 채우는 데 그쳤다. 다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가나전에서도 3만3256명이 찾아 전제 관중석의 절반밖에 채우지 못했다. 브라질의 인기에 힘입어 잠시 반짝하며 매진에 근접했을 뿐 나머지 경기들의 관중 수가 예전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시청률 역시 가나전이 8.5%를 기록했고 최근 열린 코트디부아르전은 4.7%, 오스트리아전은 1.1%로 수직 낙하했다. 축구대표팀 시청률 중 역대 최저 수준의 경기가 최근에 집중돼 있다.카타르 월드컵 이후 파울루 벤투 감독이 물러난 뒤 위르겐 클린스만, 홍명보 감독으로 이어지는 후임 감독 선임 과정에서 불거진 불공정 논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체제에 대한 불만과 불신, 최근 대표팀 경기력 저하 등을 둘러싼 팬들의 종합적인 반응이 빚어낸 결과다.그러나 진짜 위기는 지금부터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무엇보다 팬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과거에도 대표팀에 대해 수많은 비판은 물론 비난과 조롱까지 있었지만 그래도 팬들이 직접적으로 대표팀의 패배를 바라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 각종 댓글이나 주변 반응 중에서 이번 월드컵에서 대표팀이 참패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내용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동안 수많은 개혁 요구에도 협회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패해 혹독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협회가 밀실 행정과 독단적인 운영을 해 왔는데 월드컵 성적만 좋다고 모든 게 용서돼서는 안 된다는 것 때문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우려되는 점이 있다. 아예 축구에 관심이 없어졌다는 반응이 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열린 코트디부아르 및 오스트리아와의 평가전이 열린 줄도 몰랐다는 사람이 많다. 이러한 팬 이탈 현상이야말로 축구계에 가장 뼈아프다. 팬 층의 붕괴야말로 각종 후원 계약을 비롯해 축구계 마케팅을 마비시켜 결국 축구계를 고사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프로축구 기반이 약한 한국 축구는 대표팀 인기가 곧 축구계 인기와 직결돼 왔는데 대표팀에 대한 이러한 거부 반응과 무관심은 국내 축구 환경을 근본적으로 훼손할 수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대표팀 성적이 부진하면 단순한 비판을 넘어 팬들의 거부감과 무관심을 더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월드컵 전망은 밝지 않다. 한국 축구가 진짜 위기를 맞고 있다.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bluesky@donga.com}

6월 11일 개막하는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멕시코, 미국, 캐나다 공동 개최)은 선수들 입장에서 월드컵 사상 가장 힘든 대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친 몸을 제대로 추스를 새도 없이 나서야 하는 경기 일정이 어느 때보다 촉박한 데다 많은 개최 지역에서 한낮 최고기온이 40도 가까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는 숨 막히도록 무덥고 습한 날씨 속에서 거친 몸싸움을 벌이고 전력 질주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대회부터 경기 수와 기간도 늘어나 선수들의 피로는 더욱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선수 건강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국내외에서 일고 있다.급증하는 대회 일정 쉴 틈이 없다 각국 월드컵 대표팀 주축 선수들이 평소 뛰고 있는 유럽 주요 프로리그는 대부분 월드컵 직전까지 이어진다. 지난해 8월 시작된 2025∼2026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는 5월 24일(현지 시간) 막을 내리는데 월드컵 개막을 불과 18일 앞두고서다. 선수들은 월드컵 직전 FIFA가 정한 16일간의 소집훈련 기간을 거쳐 대회에 참가한다. 프로리그를 마친 선수들이 쉴 시간은 하루이틀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소집 장소로의 이동 시간을 포함하면 사실상 쉬는 날 없이 곧바로 월드컵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일부 선수들은 이러한 프로리그 외에도 별개의 대회를 더 치르고 있다. 지금 진행 중인 2025∼2026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는 5월 30일 끝난다.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치른 선수는 더 지치고 쉬지 못한 채 월드컵에 나서야 한다. 최근 FIFA와 UEFA 및 국제축구 단체들은 경쟁적으로 경기 수를 늘리며 수익을 불려 왔다. FIFA가 이번 월드컵부터 참가국 수를 기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늘리면서 경기 수는 64경기에서 104경기로 40경기가 늘었다. 대회 기간은 30일 안팎에서 39일로 길어졌다. 이에 앞서 UEFA도 챔피언스리그 경기 수를 125경기에서 189경기로 늘렸다. 이 밖에 클럽월드컵, 대륙별 대회 및 국가대표 경기 등 온갖 대회가 줄줄이 엮여 있어 1년 내내 경기 일정이 빌 틈이 없고 각 대회 간격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김민재 최장기간 연속 출전 1위 과밀한 경기 일정은 선수들을 혹사시켜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축구선수 권익단체인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가 2024∼2025시즌 1500명의 선수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의 김민재(바이에른 뮌헨)가 최장기간 연속 출전(경기 후 5일 이내 다른 경기 출전)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해 가장 혹사당한 선수 중 한 명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민재는 2024년 말 뮌헨에서 독일 분데스리가, DFB 포칼(독일축구협회컵), 챔피언스리그는 물론 한국 대표팀까지 장거리를 오가며 73일간 평균 3.6일마다 경기에 나서 20경기 연속 출전했다. 연속 출전은 선수에게 충분한 회복 시간을 주지 못해 심각한 부상 위험을 일으킨다. FIFPRO는 4∼6경기 이상 연속 출전은 금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김민재는 이 기간 이후 아킬레스힘줄 부상에 시달렸다. 많은 선수가 충분한 휴식 없이 경기에 나서 부상으로 선수 경력에 치명상을 입고 있다. FIFPRO는 의학계 권고에 따라 최소 4주간의 비시즌 휴식 기간을 도입할 것과 무더위에 대비한 보다 세밀한 경기 운영 지침을 요구하고 있다. 손흥민(LAFC)도 2024년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에서 뛸 당시 “우리는 로봇이 아니다”라며 경기 수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선수들 목소리는 그동안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지만 가장 힘들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선수 보호 대책을 적극 논의해야 한다. 축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경기장이 아닌 선수다. 선수들이 보호받지 못하면 경기 질이 하락할 것이고 이는 축구 산업 자체를 위축시키며 공멸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부국장급 bluesky@donga.com}

“인천을 글로벌 기술 사업화의 핵심 거점이자 바이오-X(바이오 융합) 창업 플랫폼 도시로 성장시키겠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이재선 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인천창경센터) 대표(53)가 인천을 바이오 창업의 관문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대표는 유한양행 삼성전자 삼성바이오에피스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을 거치며 바이오산업 최전선에서 25년 넘게 활동했던 전문가다. 2015년 개소한 이래 국내 스타트업을 적극 발굴하고 지원해 온 인천창경센터를 새로 이끌게 된 그는 기존의 창업 지원 및 투자 유치 활동에 바이오 분야를 적극 융합시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인천 송도에는 셀트리온 삼성바이오로직스 SK바이오사이언스 등 세계적인 바이오 기업들이 모여 있다. 이 기업들이 대학, 연구소, 스타트업 등 외부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적극 활용해 혁신을 추구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활성화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췄다. 때마침 인천창경센터가 글로벌 바이오 스타트업을 육성 지원하는 ‘K바이오랩 허브사업단’을 지난달부터 운영하게 돼 이 같은 여건을 더욱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인천창경센터는 이 사업을 통해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입주 공간, 공동 연구시설, 네트워킹 환경을 제공하고 기업, 대학, 연구소, 병원의 오픈 이노베이션과 고속 성장을 지원한다. 이 대표는 “지난 10년이 인천창경센터를 창업 전문기관으로 일정 궤도에 올려놓은 개화기였다면, 이후에는 고도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 대표가 그리는 고도화 방향은 창업 전 주기 지원 체계 정비, 투자-회수-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 확립, 바이오 융합 분야 제고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이 실제로 작동하거나 적용 가능한지를 검증하는 PoC(개념 검증)부터 사업화, 투자 유치, 글로벌 진출까지 단계별로 지원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인천창경센터의 대표 투자 유치 플랫폼인 ‘빅웨이브(BiiG WAVE)’도 더욱 확장시킬 계획이다. 빅웨이브는 지난 5년간 140여 스타트업을 발굴해 누적 1729억 원의 투자 유치를 이끌어냈다. 기업 진단, 기업 설명, 투자자 연결, 글로벌 진출 및 후속 관리까지 세밀하게 지원한다. 이 대표는 빅웨이브의 활동 영역을 싱가포르, 일본, 중국 등으로 넓혀 국내 투자 유치 이후 해외 투자로 이어지는 스케일업 플랫폼으로 진화시킬 계획이다. 인천창경센터는 현재까지 약 120억 원 규모의 투자조합을 결성했으며 2021년부터 혁신모펀드 1∼3호와 빅웨이브모펀드 1호 등을 통해 1조 원이 넘는 출자조합을 조성했다. 이 대표는 이 조합들이 회수기에 진입하면 이를 지역 스타트업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대표는 “인천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항공, 항만 기반 시설을 갖추었고, 송도-바이오, 청라-로봇, 영종-항공으로 대표되는 전략적 클러스터를 지니고 있다”며 인천이 창업도시로서의 무궁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다.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1998년 6월 21일 수도 테헤란 등 이란 전국의 거리에는 수백만 명의 인파가 쏟아져 나와 환호했다. 이날은 이란이 프랑스 월드컵에서 미국을 상대로 2-1 승리를 거둔 날이었다. 미국 언론이 표현한 대로 이란 입장에서는 ‘역사적 승리’였다. 우선 이 승리는 이란이 전체 월드컵에서 거둔 첫 번째 승리였다. 또한 오랫동안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던 미국을 상대로 한 승리였기에 그 승리감이 배가됐다. 당시 이란의 최고 지도자였던 알리 하메네이는 ‘거대한 사탄’으로 표현했던 미국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선수들을 격려했다. 이란과 미국은 1979년 이란이 미국인 수십 명을 인질로 잡고 444일간 풀어주지 않았던 ‘이란 인질 사태’ 이후 관계가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태에서 월드컵 무대에서 처음 만났다. 월드컵 역사상 가장 정치적으로 민감한 경기로 꼽혔던 이 경기는 테러 우려 속에 삼엄한 경비가 펼쳐진 가운데 열렸다. 그러나 정작 경기는 평화적으로 치러졌다. 경기 시작 전 이란 선수들은 미국 선수들에게 평화의 상징인 흰 장미를 전했고 미국 선수들은 미국 축구연맹 깃발을 건넸다. 두 팀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 경기의 덕을 크게 본 것은 이란이었다. 국제무대에서 자신들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표출할 기회를 얻었고, 미국전 승리를 체제선전에 대대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국내외 이란인들이 대규모 응원을 통해 굳게 결속하고 단합하는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이란은 이때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이후 20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상태였는데,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됐을 때도 이란은 전국적인 열기에 휩싸여 대규모 축하 행사를 열었었다. 국기를 달고 몸과 몸이 부딪치는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격렬한 집단 대결을 펼치는 축구는 가장 내셔널리즘적인 요소를 지닌 스포츠다. 이란의 승리는 이러한 축구 대결의 특성이 자국 내 민족주의적 분위기와 결부되며 가장 큰 정치적 효과를 낸 사례 중 하나다. 이란과 미국은 모두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이란으로서는 이 승리 하나로 충분했다. 그랬던 이란은 6월 열리는 2026 북중미 월드컵 불참을 선언했다. 이란의 체육부 장관이 11일 국영TV에서 최고지도자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점을 거론하면서 이란 선수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에 미국 및 멕시코 캐나다가 공동 개최하는 이번 월드컵에 참가할 수 없다고 밝혔다. 1998년 월드컵에서 이란의 미국전 승리를 격려했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지난달 사망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일단 이란의 불참을 확정하지 않고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이란이 불참한다면 이라크나 아랍에미리트(UAE)가 대체 출전할 가능성이 크다. 이라크는 대륙 간 플레이오프를 통해 아시아에 주어지는 8.5장의 월드컵 티켓 중 마지막을 노리고 있다. UAE는 대륙 간 플레이오프 출전 자격을 놓고 마지막까지 이라크와 대결했으나 패했다. 이란이 빠진 자리에는 월드컵 본선 진출에 가장 근접했던 이 나라들을 출전시키는 것이 합당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FIFA가 재량권을 발휘해 축구시장이 큰 중국을 출전시킬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중국은 예선에서 3승 7패로 최하위권의 성적을 냈다. 그보다 성적이 좋은 팀들을 놔두고 FIFA가 중국을 임의로 출전시킨다면 전 세계적인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주목할 것은 이란의 입장 변경 여부다. 전쟁 종결 시점과 종결 형식에 따라 이란이 불참 선언을 번복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이전부터 내부 분열 조짐을 보인 데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이란 국민들을 결속하고 정서적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월드컵보다 좋은 무대나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이란이 “미국 아닌 멕시코에서 경기를 치를 수 있다면 출전을 고려하겠다”는 등 다시 조건부 출전론을 들고 나오고 있는 것이 단순한 제스처만은 아닐 것이다. 전쟁이 일찍, 그리고 이란의 체면을 어느 정도라도 세워 주는 식으로 마무리된다면 이란이 월드컵에 복귀할 수 있다.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고도 불참하면 FIFA의 제재를 받는다. 이란이 끝까지 불참해 징계를 받게 된다면 막대한 벌금보다도 다음 월드컵 출전 제한을 받는 것이 가장 뼈아플 것이다.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bluesky@donga.com}

23일 폐막하는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올림픽은 새로운 측면에서 국내 올림픽사에 기록될 만하다. 소위 ‘역대급 무관심 올림픽’으로서다. 이번 올림픽은 다른 때보다 관심과 열기가 덜했다. JTBC가 단독 중계한 이번 올림픽 개막식 시청률은 1.8%였는데, 지상파 3사가 중계한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때의 18%, 2018 평창 겨울올림픽 때의 44.6%에 비하면 10분의 1 이상으로 줄었다. 또한 올림픽 기간에 시청률 폭발 현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16일 김길리가 여자 1000m 결승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던 쇼트트랙 경기가 분당 최고 시청률 17.6%까지 오르기는 했지만 과거에는 못 미쳤다. 평창 겨울올림픽 때 이상화가 은메달을 따냈던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는 생중계 시청률이 65.3%에 달했다. 김연아가 금메달을 차지했던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프리 시청률은 36.4%(분당 최고 41%)에 이르렀다. 시청률 저조와 관련한 여러 이유 중 가장 많이 거론되고 또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중계 방식이다. 이번 올림픽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중계권을 따낸 JTBC가 독점 중계했다. 62년 만에 지상파 중계 없는 올림픽이 됐다. 단일 채널에서만 생중계하다 보니 중계 우선순위에서 밀린 다른 종목에서 금메달이 나오는 순간을 놓치는 등 중계 범위의 축소가 일어났고, 그만큼 다양한 경기를 볼 기회가 줄었다는 지적이 일었다. 반면 올림픽 지상파 독점이 깨지자 이들이 보도에 소극적이었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에 맞서 중계권 재판매 및 뉴스권 구매 조건이 까다로웠다는 논박이 이어졌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이번 중계 체제하에서는 다양한 방송사에서 경쟁적으로 만들어내던 다양한 특집 프로그램과 이면 취재 등이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만큼 특색 있는 콘텐츠가 줄었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이를 바탕으로 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내용들도 위축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올림픽의 열기가 확산되는 동력이 줄었다. 이번 올림픽이 세계적으로 외면받은 것은 아니다. 미국 올림픽 중계권을 갖고 있는 NBC유니버설 측은 이번 올림픽 첫 5일간 평균 시청자 수가 2650만 명을 기록하며 이전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비해 93% 증가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큰 폭의 시청자 증가를 기록할 것은 분명하다. 이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느라 정치 공세를 퍼부었던 베이징 올림픽 때와는 달리 올림픽 붐업에 나선 점, 미국 팀의 선전 등에 힘입은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한국에서는 베이징 올림픽 때의 1시간 시차에 비해 이번 올림픽은 개최 지역과의 8시간 시차로 인해 생중계 시청이 어려워진 데다 과거 김연아 이상화 같은 대형 스타의 부재로 경기 주목도가 떨어졌다. 여기에 쇼츠와 경기 하이라이트 등을 통해 경기 결과와 극적인 순간만을 빠르게 소비하는 흐름도 TV 시청률 저하에 영향을 주었다. 국가대표 선수의 메달 획득과 관련된 ‘국뽕’(과도한 애국주의) 분위기가 덜해진 점도 있다. 그러나 한 선수의 메달 획득 과정에 집약된 노력과 인내 및 고난 극복의 모습 속에는 분명 귀중한 가치가 담겨 있다. 또한 이들이 우리 사회를 대표해 나서서 땀 흘리는 장면에 함께 공감하고 응원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정서적 통합을 이루는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분투하는 선수들에 대한 격려와 환호도 그만큼 상대적으로 사라지거나 줄어든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이번 올림픽은 방송사들이 IOC 대응 방식을 재점검할 필요를 제기했다. 방송사와 시청자 모두 피해를 입지 않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IOC는 주 수입원인 올림픽 TV 중계권료를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요구한다. 개별 방송사가 홀로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방송사는 물론 새로운 시청 흐름을 대변하는 인터넷이나 OTT업체 등 다양한 매체를 포함시켜 IOC의 중계권료 협상에 단체로 맞서는 ‘코리아 풀’을 확대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민들이 다양한 경기를 볼 수 있도록 여러 시청 경로를 확보하고, IOC의 중계권료 인상 시도에 공동 대응하면서 분담을 통해 중계권료 부담도 줄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이 보편적 시청권을 더 폭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보완도 병행해야 한다.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bluesky@donga.com}

“포기함으로써 좌절할 것인가, 저항함으로써 방어할 것인가, 도전함으로써 비약할 것인가.”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암 수술을 마치고도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 대표작 ‘토지’를 악착같이 써내려 가면서 겪었던 삶에 대한 심경을 그 책 서문에 적은 구절이다. 우리에겐 유사한 심경을 느끼게 하는 삶의 기로들이 다가온다. 삶의 목표와 의미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 앞에 오는 난관은 육체적 정신적인 것일 수도 있고 문화적 환경적 장벽일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힘에 겨워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실수를 한 선수가 심한 질책을 받고 울었다. 이 모습을 본 감독이 강하게 말했다. “야구에 울음은 없다!(There is no crying in baseball!)” 야구뿐 아니라 인생사에 있어서도 모욕이나 고난 앞에 쉽게 무릎 꿇지 말고 할 일을 하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이 말은 미국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영화 속 명대사로 꼽힌다. 미국 영화 명대사 100선 안에 들기도 했다. 이 영화는 1992년 개봉했던 톰 행크스, 지나 데이비스, 마돈나 주연의 ‘그들만의 리그’다. 1943년부터 1954년까지 실제로 존재했던 미국 최초의 여자프로야구리그 ‘올아메리칸걸스 프로야구리그(AAGPBL)’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주요 선수들이 전쟁에 나가는 등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가 중단될 위기에 처하자 당시 미국 야구계는 팬들의 눈길을 계속 야구에 묶어 두기 위해 여자프로야구를 출범시켰다. 여자 선수들은 스커트를 입고 화장을 한 채 경기에 나서고, 여성답지 않은 행동을 하면 벌금을 내야 하는 상황 속에서 경기했다. 야구 본고장 미국에서도 야구는 전형적인 남성 스포츠로 인식돼 왔다. 여성들도 1800년대부터 야구를 했지만 여성들은 좀 더 큰 공과 언더핸드 피칭을 하는 소프트볼 쪽으로 주로 진출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신체적으로 연약한 여자는 소프트볼에 어울리고 야구는 남자에게 어울린다는 사회적 인식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미국 스포츠 연구자들은 분석한다. 최근까지도 미국 고등학교 및 대학교에서 여자 야구를 하는 선수들은 극소수였고 관련 시설과 제도적 뒷받침도 허약했다. 영화 ‘그들만의 리그’는 지금보다 더 보수적이었던 그 당시 이러한 사회적 인식을 뚫고 차별과 무시 속에서도 여자 선수들이 야구를 통해 자신의 성취를 이루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가정과 여성으로서의 위치를 더 중시했던 이들이 야구 선수로서 자신의 능력과 가치에 눈을 뜨고 그 역할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는 여성이 아닌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온갖 사연과 개인적 갈등이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며 9회말 투아웃 이후 마지막 대결로 압축되는 과정과, 라이벌 선수 간의 충돌이 대폭발하는 결말 부분은 삶 속의 갈등과 투쟁을 숨 막히는 야구 경기에 빗댄 명장면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실제의 미국 여자프로야구는 전쟁에서 남성들이 돌아오면서 다시 남자 경기에 팬들의 눈길을 뺏기고 수익이 줄어들면서 해체됐다. 그 이후 여자 야구는 오랫동안 더 짙은 그늘 속에 잠겼다. 미국에서 축구 농구 배구 골프 등 소위 메이저 종목 중에서 야구만 여자 프로리그가 없었다. 그랬던 미국 여자 야구가 올해 72년 만에 여자프로야구리그(WPBL)를 부활시킨다. 8월부터 보스턴, 로스앤젤레스 등 4개 팀이 참가해 7주간 리그를 펼친다. 단기 리그이고 선수들의 연봉도 적지만 여자 프로리그가 독립할 수 있는지를 시험받는다. 전 세계에서 선수들을 모았고 국가대표 포수 김현아(보스턴) 등 한국 선수 4명도 참가한다. 한국 여자 야구는 미국보다 더 열악한 환경 속에 있다. 프로는 물론이고 실업팀도 없는 상태이고 선수들은 늘 생계 걱정을 한다. 그러나 미국 프로야구 관중의 39%, 한국 프로야구 관중의 55%가 여성 팬인 상황에서 여성들의 야구 진출은 결국 시대적 흐름이 될 수밖에 없다. WPBL 출범은 이 흐름을 반영한 결과다.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여자 야구 선수들은 기존의 사회적 선입견과 보이지 않는 장벽을 넘으려 노력해 왔다. 숱한 난관을 극복해 온 이들의 모습은 마치 ‘야구에 울음은 없다’라는 말을 마음속에 각인해 온 것처럼 꿋꿋하다. 그들이 프로리그를 성공적으로 출범시키고 유지한다면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그들 자신의 리그’가 꽃을 피울 것이다.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bluesky@donga.com}

“지금도 생생하다. 처음 운동장에 들어갔는데 공이 어떻게 오는지 모르겠더라. 튀어 오르는 공을 잡으려다 보면 훌쩍 넘어가 버리고, 이 정도면 컨트롤이 되겠지 싶었던 공도 옆으로 휙 지나갔다. 그런데다 뛰는데 이유 없이 코피가 났다.” 19세 청년 신연호(62·고려대 감독)가 43년 전 처음 밟은 곳은 한국 축구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무대였다. 해발 2600m에 가까운 멕시코 고지대. 백두산 높이와 맞먹는 곳이었다. 숨 쉬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무더운 날씨, 정오의 태양, 접시처럼 움푹 들어간 경기장을 가득 채운 7만 관중의 함성까지. 잊을 수 없는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U-20)축구선수권대회다. “전진해서 공격을 한 번 하고 나면 수비할 생각이 안 들 정도였다. 진짜 숨이 안 쉬어졌다.” 공기가 희박한 고지대에서는 평소처럼 뛰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산소 포화도는 떨어지고, 심장은 더 빨리 뛴다. 하지만 당시 대표팀은 몸과 정신으로 버텨냈다. 첫 경기에서 스코틀랜드에 0-2로 패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멕시코를 2-1로 꺾고, 호주까지 연파하며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기세는 8강까지 이어졌다. 우루과이를 2-1로 누르며 4강 진출.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대회 4강 무대를 밟는 순간이었다. 4강 상대는 브라질. 훗날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한 베베토와 둥가, 조르징요가 있었다. 한국은 선제골을 넣으며 앞서갔지만 결국 1-2로 역전패했다. 3, 4위전에서도 폴란드에 1-2로 졌다. 최종 성적은 4위. 그러나 이 대회는 ‘순위’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신연호는 이 대회에서 멕시코전 역전 결승골, 우루과이전 선제골과 결승골을 터뜨리며 세계 언론으로부터 ‘작은 펠레’라는 찬사를 받았다. 한국 축구가 처음으로 세계 무대에서 “통한다”는 확신을 얻었다. 4강전이 열리던 날, 길거리는 조용했다. 상점들이 문을 닫았고 학교에선 수업을 멈춘 채 교사와 학생들이 TV 앞에 모이거나 라디오를 들었다. 선수단 귀국 당시 김포공항에서 서울 시내까지 카퍼레이드가 펼쳐졌다. 2002년 한·일 월드컵보다 19년 앞선 ‘원조 4강 신화’였다.● 왜 지금, 다시 멕시코? 43년 전 멕시코 청소년대회가 소환된 이유는 2026 북중미 월드컵(6월 11일∼7월 19일) 때문이다. 한국은 조별리그 1·2차전을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치른다. 해발 1550m 지대다. 3차전이 열리는 몬테레이는 540m지만, 이미 두 경기를 고지대에서 치른 뒤다. 해발 1500m를 넘으면 산소 흡수 능력은 약 5% 떨어진다. 회복 속도는 늦어지고, 공의 궤적도 달라진다. 공기 밀도가 낮아 공은 더 빠르고 멀리 날아간다. 혈관이 확장돼 코피가 나는 경우도 잦다. 1983년 대표팀은 톨루카(2660m), 멕시코시티(2200m)에서 훈련과 경기를 치렀고, 8강·4강·3, 4위전은 몬테레이와 과달라하라에서 소화했다. 일정 역시 6월 초부터 중순까지로 2026년 월드컵 일정과 유사했다. 그래서 신연호 감독의 경험은 지금 대표팀에도 시사점이 크다.● 마스크 훈련과 6가지 전술… ‘호랑이’의 준비 당시 사령탑은 ‘호랑이’ 박종환 감독이었다. 여건은 열악했다. 고지대 전지훈련은 꿈도 꾸지 못했다. 대신 택한 방법이 마스크 훈련이었다. 1982년 12월부터 서울 효창운동장 인근 여관에서 합숙하며 마스크를 쓰고 달리게 했다. “처음엔 10분도 못 버텼다. 점점 강도를 높여 30분까지 뛰게 했다. 지옥 훈련이었다.” 박 감독은 생전 이렇게 회상했다. 실업팀, 대학팀과의 연습경기에서 실점하면 그 수의 10배만큼 운동장을 돌게 했다. 태릉선수촌에서도 고강도 훈련은 이어졌다. 신 감독은 “몰래 마스크를 살짝 내리기도 했다”며 웃었다. 전술 준비도 치밀했다. 박 감독은 경기 상황을 6가지로 나눠 약속된 패턴을 만들고 번호를 붙였다. 1번부터 6번까지. 벤치 지시가 없어도 선수들이 상황에 맞춰 번호를 선택해 움직였다. 이 ‘기계 같은 조직력’이 본선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신의 한 수, 조기 출국과 김치찌개 대표팀은 대회 보름 전 멕시코에 입국했다. 나름 대한축구협회가 신경을 썼다. 식재료는 충분히 가져가진 못했다. 신 감독 어머니가 싸준 고추장은 비행기 안에서 부풀어 터져버렸다. 운 좋게도 멕시코 교민들이 힘을 보탰다. 그런데 뜻밖의 호재가 있었다. 고기였다. 신 감독은 놀랐다. “투우의 나라라서인지 소고기가 풍족했다. 단백질을 제대로 먹었다.” 평소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박 감독은 원흥재 코치와 함께 김치찌개를 끓였다. 입맛이 떨어질 틈이 없었다. 찌개 맛이 소문나 외국 언론이 박 감독을 ‘요리사’로 알 정도였다. 경기장 밖에서의 안정감은 경기력으로 이어졌다. 평소 다혈질인 박 감독은 멕시코에서 표정을 바꿨다. 1차전 스코틀랜드에 허무하게 졌는데 선수들을 다그치지 않았다. “괜찮다, 잘했다.” 이 한마디가 분위기를 바꿨다.● 눈빛으로 통했다… 조직력과 투혼의 결정판 멕시코와의 2차전은 정오 경기였다. 해가 강렬했다. 안방팀 멕시코의 꾀였다. 해발 2200m, 아스테카 스타디움. 올해에도 월드컵 개막전이 열리는 곳이다. 7만2000명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을 이겨내고 후반 44분, 상대 수비 몸에 맞고 튀어 오른 공을 신연호가 헤딩으로 꽂았다. 역전 결승골이었다. 그는 “후반엔 오히려 멕시코 선수들이 더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8강 우루과이 전은 상징적인 장면을 남겼다. 후반 9분, 신 감독은 “그 때 노인우와 순간 눈이 마주쳤다”고 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신연호가 전방 공간으로 뛰었다. 순간 수비수 사이로 노인우의 침투 패스가 신연호의 발에 배달됐다. 골키퍼와 1대1. 신연호는 골망을 흔들고 특유의 만세 세리머니를 했다. 선제골. 전반 페널티킥을 실축한 노인우는 집중력을 잃지 않고 실수를 만회했다. 전남 여수 한 동네에서 자라 초중고와 대학까지 함께한 두 친구의 합작품이었다. 신연호는 연장전에서 문전 센스로 결승골까지 터트렸다. 또 한 번 만세를 불렀다. 좀처럼 표정 변화가 없는 박 감독도 종료 휘슬과 함께 오완건 단장, 선수들과 엉켜 안고 울었다.● 과거는 거울이다기세가 하늘을 찔러 4강에 가긴 했는데 선수들은 당시 한국의 열광을 몰랐다. 인터넷도, 실시간 소식도 없었다. 훈련과 경기에만 집중했다. 귀국 후 김포공항에서야 실감했다. “짐을 찾지 말라고 하더라. 그냥 기자회견부터 하라고 했다. 얼떨떨하게 나갔는데 그 때 알았다.” 1983년 멕시코는 한국 축구가 세계를 향해 눈을 뜬 순간이었다. 신 감독도 “한국 축구를 세계가 알게 된 시작”이라며 동의한다. 그 경험이 1986년 멕시코 월드컵으로 이어졌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 축구의 토대가 됐다. 아르헨티나, 이탈리아를 맞아 실제 그랬다. 43년 전 청소년 대표팀은 강한 체력, 조직력으로 기본 무장을 했다. 여기에 집중력, 끈기를 잘 섞었다. 4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승리의 공식이다. 북중미 월드컵을 앞둔 지금, 다시 멕시코를 떠올리는 이유다. 과거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일 수도 있다.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101년 만에 펼치는 날갯짓이다. 여자야구가 깨어나고 있다. 국내 최초 여자야구경기가 열린 지 1세기 만에 한국 여자야구선수들이 야구 본고장 미국에 진출한다. 첫 남자 경기가 열린지 93년 만에야 최초의 공식 여자 선수가 경기에 나오는 등 야구사의 그늘 속에 있던 여자야구가 오랜 뒤안길에서 벗어나 햇빛 속으로 날아오르려 하고 있다. 때마침 여자 야구 예능프로그램 채널A ‘야구여왕’이 출범하면서 여자 야구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그들은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한국 여자 야구 발자취를 짚어 본다.● 뜨거웠던 첫 관심… 그리고 오랜 침묵 국내 최초 여자 야구 경기는 1925년 3월 5일 경남 진주 시원여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마산사립의신여학교와 시원여학교 간의 대결이었다. 의신여학교 해당 연도 졸업생 14명이 이곳을 찾아 방문 경기를 치렀다. 당시 동아일보는 “여자계의 야구전은 조선 처음이므로 상당한 흥미를 끌었다”고 전했다. 경기는 시원여학교 측이 ‘약간 미숙한 점이 있어서’ 1회부터 1-7로 밀렸다. 9회까지 치러진 경기는 48-40으로 의신여학교 승리로 끝났다. 국내에 야구가 전해진 때는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가 당시 황성기독교청년회(YMCA) 회원들에게 야구를 가르친 1904년. 국내 최초 야구 경기가 열린 건 2년 뒤인 1906년이다. 초창기 선수들은 고의적삼을 입고 짚신을 끈으로 매어 신고 경기했다. 외야수는 맨손으로 공을 잡고 방망이는 단 한 개를 두 팀이 번갈아 썼다. 그러나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선수들이 ‘유니폼 입고 스파이크 신고’ 출전했다. 이때 신문에서 짚신 신고 경기했던 초창기 모습을 이미 “상상할래야 상상할 수 없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일이다”고 한 걸로 보아 야구 여건이 크게 개선됐음을 알 수 있다. 야구는 1960∼1970년대 열광적인 고교야구 인기 시대를 지나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남자 중심이었다. 여자 쪽에는 선수도 팀도 없었다.● 남자들 사이 1명의 여자선수… 95년 만의 등장 이 오랜 침묵은 1999년 한 선수로 인해 깨졌다. 그해 4월 열린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 덕수상고와 배명고의 준결승전. 야구 명문 덕수상고의 선발투수로 여자 선수 안향미가 나섰다. 던진 공은 단 3개. 초구 스트라이크에 이어 3번째 공이 상대 선수 몸에 맞아 출루를 허용하며 마운드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는 여자 최초로 공식 경기에 출전했다는 역사를 썼다. 야구도입 이후 95년, 남성들의 첫 야구 경기 이후 93년 만이었다. 그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서울시교육청에 요청해 여자도 야구 특기생이 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꾸었다. 그는 국내 프로야구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온라인을 통해 선수를 모아 2004년 국내 최초 여자 야구팀 ‘비밀리에’를 창단했다. 비밀리에는 그해 일본에서 열린 제4회 여자야구월드시리즈에 참가했으나 일본에 0-53으로 지는 등 전패했다. 그러나 이런 활동이 밀알이 되어 국내 여자 야구팀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여자 야구를 체계적으로 보급하기 위해 한국여자야구연맹(WBAK)이 창설됐다. 현재는 여자 사회인 야구 49개 팀 1200여 명의 선수가 활동 중이다. 1년에 5∼6개의 전국 대회가 열린다. 국제대회에도 꾸준히 출전했다. 2017, 2023년 두 차례 아시안컵 동메달을 땄다. 올해 7월 세계 여자야구 월드컵 예선 참가를 준비 중인 한국 여자야구는 현재 세계랭킹 12위 수준이며 일본 대만에 이어 홍콩과 아시아 랭킹 3위를 다투고 있다. ● 라멘집, 접골원… ‘열정’과 ‘생존’사이에서 국내에 실업팀이나 프로팀이 없기에 선수들에게는 운동과 생계 활동을 병행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한국 대표팀 에이스 김라경은 여자 야구가 좀 더 활성화된 일본의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뛰면서도 생계를 위해 유소년 야구교실, 일본 라멘집 등에서 일했다. 최근에는 방송을 통해 접골원 보조로 일하며 운동한다고 밝혔다. 한국 여자 야구를 키워왔다고 할 수 있는 사회인 야구 여자팀 선수들의 직업은 골프 캐디, 미용사, 교사, 회사원, 주부, 학생, 가게 점원 등 다양했다. 연맹 관계자는 “국제 대회에 나가고 싶어도 지원해 주는 곳이 없어 선수들이 자비로 참가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현재 고등학교 대학교 및 프로구단에서도 여자 입단 제한 규정은 없다. 그러나 남성 위주의 숙소 및 팀 문화, 체력 차이 등으로 인해 여자 선수들이 넘기 힘든 장벽이 세워져 있다. 여자 선수들은 대개 남녀가 함께 뛸 수 있는 리틀야구단에서 중학교 3학년까지 뛰다가 이후에는 사회인 야구로 옮긴다. 야구에 대한 ‘열정’과 생활인으로서의 ‘생존’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들이 계속 운동할 수 있도록 고등학교, 대학교, 실업 팀 등 연속적인 루트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수술 딛고, 골프서 전향… 비상(飛上)을 꿈꾸다올해 8월부터 72년 만에 미국 여자 프로야구가 부활한다. 지난해 11월 미국 여자 프로야구리그(WPBL) 드래프트에서 한국 선수 김라경 박민서(이상 뉴욕) 박주아(샌프란시스코) 김현아(보스턴)가 지명됐다. 7주 단기리그지만 직업선수로서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무대다.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할 기회도 잡을 수 있다. 시속 110km대의 공을 던지고 타격도 뛰어난 국가대표 김라경은 팔꿈치 수술을 딛고 재기에 성공했다. 초등학교 6학년인 12살 때 리틀야구 여자 최연소 홈런을 쳤던 박민서는 골프 선수로 전향했으나 미국 여자 프로야구 소식을 듣고 지원했다. 국가대표 유격수 박주아는 내야의 수준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는 평을 받는다. 국가대표 포수 김현아는 국내 선수 중 가장 높은 1라운드 4순위로 지명됐다. 그는 3루수와 유격수를 하다 포수로 포지션을 바꾼 지 6개월밖에 안됐지만 투수 리드나 주자 견제 가 뛰어나다. 그는 지난해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아시안컵 대회에서 7경기 15타점으로 타점 1위에 오르며 주목받았다. 그는 “드래프트에서 어떤 결과가 나와도 인정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는데 예상보다 빠른 순번에 놀랐다”고 했다. “여자야구란 만들어진 길이 아니고 한걸음 한걸음이 모두 미래를 알 수 없는 도전과 선택이기 때문에 항상 불안함과 두려움이 많은 것 같다”는 그는 이번 WPBL 진출에 대해 “내가 좋아하는 야구를 이제는 인정받고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했다.● 함께 도전하는 여자야구… 눈길 끄는 ‘야구여왕’ 한국 프로야구 관객은 지난해 1200만 명을 넘었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가 조사한 2024년 프로야구 관중 성향을 보면 남성 44.5%, 여성 55.5%로 여성 비율이 높다. 여성 팬들의 높은 비중은 곧 ‘보는 야구’에서 ‘하는 야구’로 전환할 여성들이 늘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여자야구에 대한 관심과 응원이 필요하다. 채널 A는 핸드볼 김온아, 육상 김민지, 소프트볼 선수 출신으로 한화이글스 치어리더였던 노자와 아야카 등 각 방면의 정점에 섰던 인물들이 여자 야구에 도전하는 내용의 ‘야구여왕’을 방영 중이다. 이들은 국내 50번째 여자야구단이라 할 수 있는 ‘블랙퀸즈’를 결성했다. 골프여제 박세리가 단장, 야구스타 추신수가 감독이다. 전국 대회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들은 다양한 화제를 낳으며 눈길을 끌고 있다.연맹 측은 “국제대회 성과와 미디어 노출로 여자야구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고 여성 스포츠 전반에 대한 관심확대가 맞물리며 팬 층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고 최근의 분위기를 전했다. 연맹은 “여자야구를 선택하는 것 자체가 이미 큰 도전이자 용기이다. 한 명 한명의 경험이 기준이 되고 역사가 될 것”이라며 미래의 여자야구선수들을 격려했다.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서울에서 미국 여자프로야구리그(WPBL)까지.’ 올해 72년 만에 부활하는 미국 여자프로야구리그 드래프트가 실시되기 직전인 지난해 11월. WPBL 홈페이지에는 한국의 김현아 선수를 소개하는 글이 실렸다. 한국 간판타자로 활약하고 있는 그의 활약상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김현아는 지난해 10월부터 11월 초까지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제4회 BFA 여자야구 아시안 컵에서 7경기 15타점으로 타점 1위에 올랐다. 한국은 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10개국 중 4위를 차지하며 잠재력과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WPBL은 김현아가 이 대회에서 타율 0.409, 출루율 0.483의 맹활약을 펼치고 도루도 8번 시도해 8번 모두 성공하는 등 타격능력과 빠른 발을 동시에 갖춰 팀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대회에서 그는 OPS 0.983을 기록했다.이런 전망을 바탕으로 그는 1라운드 4순위로 보스턴에 지명됐다. 사실상 현 단계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로서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이화여대에 다니던 그는 사회인 야구팀 ‘레드폭스’ 소속으로도 활약했다. 졸업이 다가오며 취업과 야구 사이에 대한 고민도 털어 놓았던 그는 WPBL 지명을 계기로 한국 여자야구의 새로운 도전에 나설 계획이다. 여자 야구라는, 만들어진 길이 아닌 개척자의 길에 나서고 있는 그의 심경과 미래 구상에 대해 이메일로 묻고 들어보았다. 아래는 일문일답.-WPBL 진출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국내 선수 중 가장 높은 1라운드 4순위로 지명됐는데, 소감을 부탁드린다.= 미국 트라이아웃과 중국 아시안컵에서 후회 없이 야구를 하고 지명을 기다리며 어떠한 결과가 나와도 인정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는데 예상보다 빠른 순번에 나와 놀라기도 하고 남들이 본 제 강점이 무엇인가 생각하기도 하면서 좋은 기억으로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 같다. 사실 언제 뽑히든 주전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마음은 변화가 없어서 ‘들뜨지 말자’라는 생각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 WPBL 진출이후 목표가 있다면.= 최우선의 목표는 올해 첫 시즌 부상 없이 잘 끝마치는 것이다. WPBL에 진출하게 되면서 개인적으로는 최대한 오래 선수생활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미국이라는 발전된 야구를 배우며 기술적인 부분부터 언어, 문화, 접근법까지 야구 외,내부적인 부분 모두 많이 배우고 싶다. -개인적으로나 여자선수로서나 WPBL 진출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사실 여자야구라는 것은 만들어진 길이 아닌 한걸음 한걸음이 모두 미래를 알 수 없는 도전과 선택이기 때문에 항상 불안함과 두려움이 많은 것 같다. 이번 WPBL 진출도 참가 신청을 했던 순간부터 합격 이후까지 도전의 순간들이었다. 돌이켜보면 이런 시간들이 저에게는 후회가 없을 경험이었고 제가 좋아하는 야구를 이제는 인정받고 할 수 있는 의미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 한국여자야구 현실이 어려운 가운데 미래를 개척 중인데, 후배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이 있다면.=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을 하기위해선 그만큼 내가 싫어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해야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야구를 향한 길이 어렵고 힘들겠지만 많이 돌아가도 그리고 잠시 쉬어가도 좋으니 본인이 사랑하는 야구를 포기하지 마시라.- 한국여자야구 발전을 위해 필요한 부분은 어떤 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제도적인 부분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지원이 없더라도 운동할 수 있는 단계와 공간만 있으면 충분히 지금보다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몇 가지 예를 들면 현재 여자야구는 고등학생이 되면 운동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지는데 이런 것을 만든다던지, 경제활동을 할 수 없으니 인재유출이 많이 되는데 특히 대학생 대표팀 선수들이 취업을 할 시기부터는 야구를 포기하는 상황들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 등 제도적인 부분들을 보완해 인재육성과 유출방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WPBL이 끝나면 다시 국내로 돌아와 훈련하실 예정인지.= WPBL이 끝나면 최대한 외국에서 야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그게 안 된다면 한국에 돌아와 개인 훈련을 할 계획이다. 여자야구대표팀도 국제대회가 끝나면 따로 훈련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이번 리그 이후에는 훈련계획이 없어 만약 한국에 돌아온다면 개인 레슨 장에서 연습을 할 것 같다. 현재 야구장을 빌릴 방법도 없고 빌린다고 하더라도 금액적인 부담이 너무 커서 대부분 야구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시는 분들께 가서 배우고 있다. -WPBL이 존속하지 않아도 여자야구는 계속 할 것인지.=아마 해외 리그나 해외 팀을 최대한 알아보며 야구를 계속하다가 더 이상 방법이 없으면 취업을 하지 않을까 싶다. - 과거 현재 미래로 보았을 때 한국 여자는 어떤 단계라고 보시는지.= 저는 여자야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초창기 어땠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국제대회경기들로 봤을 땐 선수들의 개인기량이 많이 올라왔다고 느낀다. 그 치만 아직 부족한 부분은 야구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이 한국에는 없다보니까 연습량에 있어서 이 선수들이 기량을 더욱 발전시키기 어려워 큰 발전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체계적으로 리틀야구에서 야구를 배우는 친구들도 생기고 있는 만큼 앞으로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욱 발전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자 야구 개척자의 외로움이나 고단함에 대한 느낌은 어떻게 이겨내는지.=저는 같이 야구를 하는 동료들과 지내면서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길이 없고 환경이 없는 건 있는 사실이고 현실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야구를 하면서 이런 길이라고 이미 알고 제가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최대한 긍정적으로 지내려고 한다. - 미래에도 야구를 계속하실 생각인지.=제가 야구를 하는 것도 하는 거지만 야구를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게 전파시키고 싶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101년 만에 펼치는 날갯짓이다. 여자야구가 깨어나고 있다. 국내 최초 여자야구경기가 열린 지 1세기 만에 한국 여자야구선수들이 야구 본고장 미국에 진출한다. 첫 남자 경기가 열린지 93년 만에야 최초의 공식 여자 선수가 경기에 나오는 등 야구사의 그늘 속에 있던 여자야구가 오랜 뒤안길에서 벗어나 햇빛 속으로 날아오르려 하고 있다. 때마침 여자 야구 예능프로그램 채널A ‘야구여왕’이 출범하면서 여자 야구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그들은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한국 여자 야구 발자취를 짚어 본다.● 뜨거웠던 첫 관심… 그리고 오랜 침묵 국내 최초 여자 야구 경기는 1925년 3월 5일 경남 진주 시원여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마산사립의신여학교와 시원여학교 간의 대결이었다. 의신여학교 해당 연도 졸업생 14명이 이곳을 찾아 방문 경기를 치렀다. 당시 동아일보는 “여자계의 야구전은 조선 처음이므로 상당한 흥미를 끌었다”고 전했다. 경기는 시원여학교 측이 ‘약간 미숙한 점이 있어서’ 1회부터 1-7로 밀렸다. 9회까지 치러진 경기는 48-40으로 의신여학교 승리로 끝났다. 국내에 야구가 전해진 때는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가 당시 황성기독교청년회(YMCA) 회원들에게 야구를 가르친 1904년. 국내 최초 야구 경기가 열린 건 2년 뒤인 1906년이다. 초창기 선수들은 고의적삼을 입고 짚신을 끈으로 매어 신고 경기했다. 외야수는 맨손으로 공을 잡고 방망이는 단 한 개를 두 팀이 번갈아 썼다. 그러나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선수들이 ‘유니폼 입고 스파이크 신고’ 출전했다. 이때 신문에서 짚신 신고 경기했던 초창기 모습을 이미 “상상할래야 상상할 수 없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일이다”고 한 걸로 보아 야구 여건이 크게 개선됐음을 알 수 있다. 야구는 1960∼1970년대 열광적인 고교야구 인기 시대를 지나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남자 중심이었다. 여자 쪽에는 선수도 팀도 없었다.● 남자들 사이 1명의 여자선수… 95년 만의 등장 이 오랜 침묵은 1999년 한 선수로 인해 깨졌다. 그해 4월 열린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 덕수상고와 배명고의 준결승전. 야구 명문 덕수상고의 선발투수로 여자 선수 안향미가 나섰다. 던진 공은 단 3개. 초구 스트라이크에 이어 3번째 공이 상대 선수 몸에 맞아 출루를 허용하며 마운드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는 여자 최초로 공식 경기에 출전했다는 역사를 썼다. 야구도입 이후 95년, 남성들의 첫 야구 경기 이후 93년 만이었다. 그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서울시교육청에 요청해 여자도 야구 특기생이 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꾸었다. 그는 국내 프로야구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온라인을 통해 선수를 모아 2004년 국내 최초 여자 야구팀 ‘비밀리에’를 창단했다. 비밀리에는 그해 일본에서 열린 제4회 여자야구월드시리즈에 참가했으나 일본에 0-53으로 지는 등 전패했다. 그러나 이런 활동이 밀알이 되어 국내 여자 야구팀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여자 야구를 체계적으로 보급하기 위해 한국여자야구연맹(WBAK)이 창설됐다. 현재는 여자 사회인 야구 49개 팀 1200여 명의 선수가 활동 중이다. 1년에 5∼6개의 전국 대회가 열린다. 국제대회에도 꾸준히 출전했다. 2017, 2023년 두 차례 아시안컵 동메달을 땄다. 올해 7월 세계 여자야구 월드컵 예선 참가를 준비 중인 한국 여자야구는 현재 세계랭킹 12위 수준이며 일본 대만에 이어 홍콩과 아시아 랭킹 3위를 다투고 있다. ● 라멘집, 접골원… ‘열정’과 ‘생존’사이에서 국내에 실업팀이나 프로팀이 없기에 선수들에게는 운동과 생계 활동을 병행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한국 대표팀 에이스 김라경은 여자 야구가 좀 더 활성화된 일본의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뛰면서도 생계를 위해 유소년 야구교실, 일본 라멘집 등에서 일했다. 최근에는 방송을 통해 접골원 보조로 일하며 운동한다고 밝혔다. 한국 여자 야구를 키워왔다고 할 수 있는 사회인 야구 여자팀 선수들의 직업은 골프 캐디, 미용사, 교사, 회사원, 주부, 학생, 가게 점원 등 다양했다. 연맹 관계자는 “국제 대회에 나가고 싶어도 지원해 주는 곳이 없어 선수들이 자비로 참가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현재 고등학교 대학교 및 프로구단에서도 여자 입단 제한 규정은 없다. 그러나 남성 위주의 숙소 및 팀 문화, 체력 차이 등으로 인해 여자 선수들이 넘기 힘든 장벽이 세워져 있다. 여자 선수들은 대개 남녀가 함께 뛸 수 있는 리틀야구단에서 중학교 3학년까지 뛰다가 이후에는 사회인 야구로 옮긴다. 야구에 대한 ‘열정’과 생활인으로서의 ‘생존’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들이 계속 운동할 수 있도록 고등학교, 대학교, 실업 팀 등 연속적인 루트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수술 딛고, 골프서 전향… 비상(飛上)을 꿈꾸다올해 8월부터 72년 만에 미국 여자 프로야구가 부활한다. 지난해 11월 미국 여자 프로야구리그(WPBL) 드래프트에서 한국 선수 김라경 박민서(이상 뉴욕) 박주아(샌프란시스코) 김현아(보스턴)가 지명됐다. 7주 단기리그지만 직업선수로서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무대다.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할 기회도 잡을 수 있다. 시속 110km대의 공을 던지고 타격도 뛰어난 국가대표 김라경은 팔꿈치 수술을 딛고 재기에 성공했다. 초등학교 6학년인 12살 때 리틀야구 여자 최연소 홈런을 쳤던 박민서는 골프 선수로 전향했으나 미국 여자 프로야구 소식을 듣고 지원했다. 국가대표 유격수 박주아는 내야의 수준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는 평을 받는다. 국가대표 포수 김현아는 국내 선수 중 가장 높은 1라운드 4순위로 지명됐다. 그는 3루수와 유격수를 하다 포수로 포지션을 바꾼 지 6개월밖에 안됐지만 투수 리드나 주자 견제 가 뛰어나다. 그는 지난해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아시안컵 대회에서 7경기 15타점으로 타점 1위에 오르며 주목받았다. 그는 “드래프트에서 어떤 결과가 나와도 인정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는데 예상보다 빠른 순번에 놀랐다”고 했다. “여자야구란 만들어진 길이 아니고 한걸음 한걸음이 모두 미래를 알 수 없는 도전과 선택이기 때문에 항상 불안함과 두려움이 많은 것 같다”는 그는 이번 WPBL 진출에 대해 “내가 좋아하는 야구를 이제는 인정받고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했다.● 함께 도전하는 여자야구… 눈길 끄는 ‘야구여왕’ 한국 프로야구 관객은 지난해 1200만 명을 넘었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가 조사한 2024년 프로야구 관중 성향을 보면 남성 44.5%, 여성 55.5%로 여성 비율이 높다. 여성 팬들의 높은 비중은 곧 ‘보는 야구’에서 ‘하는 야구’로 전환할 여성들이 늘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여자야구에 대한 관심과 응원이 필요하다. 채널 A는 핸드볼 김온아, 육상 김민지, 소프트볼 선수 출신으로 한화이글스 치어리더였던 노자와 아야카 등 각 방면의 정점에 섰던 인물들이 여자 야구에 도전하는 내용의 ‘야구여왕’을 방영 중이다. 이들은 국내 50번째 여자야구단이라 할 수 있는 ‘블랙퀸즈’를 결성했다. 골프여제 박세리가 단장, 야구스타 추신수가 감독이다. 전국 대회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들은 다양한 화제를 낳으며 눈길을 끌고 있다.연맹 측은 “국제대회 성과와 미디어 노출로 여자야구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고 여성 스포츠 전반에 대한 관심확대가 맞물리며 팬 층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고 최근의 분위기를 전했다. 연맹은 “여자야구를 선택하는 것 자체가 이미 큰 도전이자 용기이다. 한 명 한명의 경험이 기준이 되고 역사가 될 것”이라며 미래의 여자야구선수들을 격려했다.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겨울올림픽 때마다 눈 확보 문제가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한 달도 남지 않은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올림픽도 마찬가지다. 이번 올림픽은 이탈리아 밀라노와 코르티나담페초(코르티나)에서 분산 개최된다. 코르티나가 개최지로 선정된 된 배경에는 이곳이 자연설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으리라는 점도 작용했다. 코르티나는 1956년에도 겨울올림픽이 열렸던 곳으로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산맥에 인접해 있기에 상대적으로 눈 걱정을 덜 할 것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충분한 눈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여전히 경기 전 가장 예민한 이슈 중 하나다. 프리스타일 스키 경기가 열리는 코르티나의 리비뇨 경기장은 이번 겨울에 예상보다 눈이 적게 내려 자연설이 부족해지자 인공설을 투입해 경기장 시설을 마무리하려 했다. 그러나 제설과 관련된 기술 및 재정적 문제가 생겼고 경기장 완공이 늦어지리라는 우려를 낳았다. 현재는 차질 없이 마무리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대회 직전까지 여러 관계자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상대적으로 눈이 풍부한 지역인 이곳에서도 인공설이 없으면 대회를 안심하고 치를 수 없다. 대회 주최 측은 이번 겨울올림픽의 안정적 경기 운영을 위해 최대 240만 ㎥의 인공설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필요한 물의 양은 94만8000㎥다. 눈 부족 사태가 가장 심각했던 겨울올림픽은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이다. 당시 스키 등 설상 종목이 열렸던 베이징 북서쪽 장자커우 지역은 연평균 겨울 강수량이 7.9mm에 불과한 건조한 곳이었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눈을 채우기 위해 주최 측은 모든 설상경기장의 눈을 100% 인공눈으로 채웠다. 겨울올림픽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인근 저수지 등에서 200만 ㎥의 물을 투입한 것으로 추정됐다. 올림픽 규격 수영장을 약 800개 채울 수 있는 양이다. 물 1㎥가 2.5㎥의 인공눈을 만들 수 있다고 추산하면 인공눈 500만 ㎥를 투입한 셈이다. 물 부족 지역에서 1억 명이 하루 동안 식수로 쓸 수 있는 양을 경기장에 투입했고, 인근의 물을 대거 끌어다 쓰면서 물 부족 사태를 일으킨다는 이유로 환경론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겨울올림픽 눈 부족 사태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때는 대회 중 이상 고온으로 경기장의 눈이 녹는 사태가 발생했고 주최 측은 부랴부랴 인근 산간 고지대에서 수백 대의 트럭과 헬리콥터로 눈을 퍼 날랐다. 대회 기간 기온 6∼10도로 역대 가장 따듯한 곳에서 열렸던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때는 눈 부족에 대비해 겨울 동안 내린 눈 45만 ㎥를 7개의 대형 특수 저장고에 넣어 두고 꺼내 쓰도록 했다. 눈 부족은 지구 온난화 때문이다. 1920∼1950년대 겨울올림픽 개최지의 평균 2월 기온은 0.5도 안팎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개최지 평균 2월 기온은 7.8도로 올랐다. 기온이 오르면서 눈이 내리지 않거나 눈 대신 비가 내렸다. 겨울올림픽 때 인공눈 사용 비중은 2014 소치 올림픽 80%, 2018 평창 올림픽 90%, 2022 베이징 올림픽 100%로 높아졌다. 높아진 인공눈 사용비중은 이에 따른 비용증가를 가져왔다. 베이징 겨울올림픽 때 쓴 인공눈 관련 비용만 2조3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과도한 비중은 올림픽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올림픽을 치를 때마다 막대한 경기장 및 시설 비용이 문제가 돼 왔다. 겨울올림픽은 여기에 인공눈 제조 비용까지 더해지고 있다. 요한 엘리아슈 국제스키스노보드연맹(FIS) 회장은 최근 올림픽 눈 부족과 관련해 “미래에는 눈을 용이하게 확보할 수 있는 고지대를 겨울올림픽 개최지로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검증된 소수의 지역에서만 번갈아 올림픽을 개최함으로써 새로운 도시에서 올림픽을 열 때마다 드는 시설 건립 비용을 줄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주장은 올림픽 독점 논란을 야기시킬 수 있다. 그럼에도 갈수록 커지는 올림픽 비용 증대에 따른 위기의식을 보여준다. ‘눈과 얼음의 축제’로 불렸던 겨울올림픽이지만 이제 그 ‘눈’은 갈수록 구하기 어려워지고 자연은 인간들에게 그 축제 비용을 청구하고 있다. 대규모 인류 행사에 내미는 환경 파괴 경고장처럼.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bluesky@donga.com}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2028년을 전후로 구조적 변곡점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공급 제약으로 취업자 수 증가세가 둔화되고, 이후에는 감소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더불어 2032년까지 산업 전반에서 약 89만 명 규모의 추가 인력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된다. 제조업의 경우 생산 자동화와 디지털 기술 확산으로 단순 생산 인력 수요는 감소하는 반면 설비 운영, 공정 관리,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등 새로운 역할에 대한 요구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흐름은 산업 변화가 일자리의 양보다 직무 구조와 인력 구성의 재편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산업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올바른 인력 수급 전략 수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신규 채용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기존 인력을 대상으로 한 직무 재설계와 재교육, 재배치를 통해 변화에 대응하는 전략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이다. 산업 현장에서는 “기술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이를 실제로 운용하고 조직에 안착시킬 인력 배치가 기업이 직면한 현실적 고민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산업 변화와 고용 안정을 함께 고려한 대응책으로 ‘산업 일자리전환 컨설팅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주관하는 이 사업은 탄소중립과 디지털 확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고용 불안을 사전에 완화하고, 기업과 근로자가 변화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산업 환경 분석과 대응 전략 수립을 시작으로 직무 재설계, 재교육, 적응 훈련, 관련된 정부 지원 연계까지 단계별로 지원하는 것이 특징이다. 전담 기관으로 참여한 한국표준협회는 올 3월부터 산업 구조 변화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직접 찾아 나서며, 500여 기업에 진단 컨설팅을 실시했다. 이 가운데 285개 기업은 전문 컨설팅으로 이어지며 기업별 상황에 맞는 지원을 받았다. 컨설팅을 완료한 기업은 ‘산업 일자리전환 장려금’을 신청해 훈련비와 사업주 훈련장려금을 인당 최대 각각 300만 원, 600만 원까지 지원받아 조직 변화에 따른 부담을 완화하고, 근로자가 새로운 역할과 근무 환경에 원활히 적응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한국표준협회 윤정균 경영혁신본부장은 “많은 기업이 변화에 대한 부담부터 떠올리지만, 컨설팅 과정을 거치며 가능한 방향과 실행 방안을 구체적으로 그려 보면 인식이 달라진다”며 “관건은 기술의 진보 그 자체가 아니라, 달라진 환경에 맞춰 인력과 조직을 어떻게 구성하고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설계”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한국표준협회 퓨처밸류캠퍼스 강남에서 열린 ‘산업 전환 베스트 프랙티스 세미나’에서는 산업 일자리전환 컨설팅 및 훈련장려금 연계 사례가 실무자의 목소리로 발표되며 공감을 이끌었다. 이날 세미나에는 2025년 산업 일자리전환 컨설팅 참여 기업, 컨설턴트 및 산업 전환 지원 사업을 희망하는 기업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특히 훈련장려금 제도 관련 질의응답에서는 적용 절차와 실전 활용 노하우가 공유되며 참석자들의 집중도가 한층 높아졌다. 세미나에서 만난 한 참가자는 “산업 일자리전환 컨설팅 지원 사업에 참여한 기업들의 현장 적용 사례를 접하며, 막연하게 느껴졌던 산업 변화 준비 과정이 한층 구체적으로 그려졌다”며 “우리 조직의 여건에 맞게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겠다는 확신도 함께 생겼다”고 소감을 전했다.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전북 전주시에서 전통 한과를 만들고 있는 전모 대표(36)는 6년째 설탕이나 물엿 대신 조청만을 고집하며 전통 한과를 만들고 있다. “창업하고 다음 해에 바로 온라인 시장에 뛰어들었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오프라인 판매가 어려웠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온라인 판매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 전 대표는 독학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광고와 온라인 마케팅을 배워 홍보를 해 봤지만 최신 트렌드를 파악하고 플랫폼을 활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좋은 제품을 만들었는데도 성장이 정체되면 답답합니다. 마침 판매 비수기에 맞춰서 교육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게 큰 전환점이었죠.” 그가 말하는 전환점은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지원하는 ‘디지털 특성화대학’이다. 2022년 처음 시작된 이 사업은 지역 거점 대학과 협력해 인근 소상공인들에게 온라인 플랫폼 입점과 활용에 대해 실습 중심의 교육을 제공한다. 전 대표는 올해 4월 전주대에서 ‘디지털 특성화대학’ 교육을 수료했다. “챗GPT를 활용한 콘텐츠 제작 실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배운 걸 바로 적용해 제품 설명이나 광고 문구도 직접 바꿨죠. 무엇보다 좋았던 건 교육에 그치지 않고 멘토링까지 해주니까 지금 부족한 게 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가 보이더라고요.”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약 110조 원이다. 이 중 모바일 쇼핑 비중이 77%다. 온라인 소비가 생활 전반으로 확산되며 오프라인 중심의 소상공인들에게 온라인 진출은 생존 과제가 된 지 오래다. 올해 중기부와 소진공이 추진하는 역량 강화 교육은 소상공인의 디지털 역량 수준을 고려해 온라인 시장에서의 성장 단계별 지원과 이어지도록 개편됐다. 소진공은 온라인 진출 준비 단계에서 디지털 활용이 어려운 소상공인 1084명을 대상으로 현장 중심의 일대일 교육을 제공했다. 집합 교육 참여가 어려운 50대 이상 또는 1인 사업장을 중심으로 전문가가 직접 사업장을 방문해 온라인 플랫폼 입점 방법 및 활용 방법 등을 교육했다. 이를 통해 온라인 진출의 출발선에 선 소상공인의 심리적 장벽을 낮췄다. 기초 단계에서는 지역 거점의 디지털 특성화대학 10개교와 함께 실습 중심 교육을 진행했다. 디지털 특성화대학은 지난 3년간 약 4500명의 온라인 진출을 도왔다. 단순 이론 교육이 아닌, 실제 플랫폼 입점 실습과 상품 등록 등의 교육을 통해 소상공인 2033명이 온라인 판매의 기본 구조를 이해하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췄다. 현장에서 함께하는 동료 소상공인과의 네트워크가 형성된다는 것도 수료생들의 높은 만족 요인 중 하나다. 실전 단계에서는 매출 확대에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 3345명을 대상으로 플랫폼별 특성을 반영해 실무 중심의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고 매출 등의 실질 성과 창출을 지원했다. 올해 교육에는 네이버, 카카오, G마켓 등 국내 5개 플랫폼과 아마존, 쇼피, 큐텐저팬 등 해외 3개 플랫폼이 참여했다. 특히 판매자에게 제공하는 플랫폼의 서비스 및 페이지 구성은 지속적인 개편이 이루어지는 만큼 정확한 정보를 빠르게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플랫폼 협업 교육은 현업에 종사하는 전문가를 통해 진행된다. 최신 정보를 바탕으로 경쟁 우위에 올라설 수 있는 스킬을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소진공 박성효 이사장은 “온라인 시장은 앞으로도 계속 확대될 전망이다. 이 사업은 앞으로도 소상공인의 온라인 시장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보안업체 에스원이 삼성전자와 협업해 ‘삼성 AI 도어캠’을 출시했다. 삼성 인공지능(AI) 도어캠은 에스원의 출동 인프라와 AI 영상 분석 기술, 삼성전자의 스마트싱스 플랫폼이 결합된 지능형 홈 보안 상품이다. 40여 년간 축적된 에스원의 보안 운영 노하우와 삼성전자의 사물인터넷(IoT) 기술력을 결합해 주거 공간의 안전을 한층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삼성 AI 도어캠은 △택배 분실 우려에 대해 듀얼카메라·AI 영상 분석 기술로 대응을 강화하고 △강력범죄에 대한 24시간 출동 서비스(유료)를 제공하며 △부실한 해외 제품들이 일으키는 해킹 등의 보안 우려에 대해 수준 높은 국내 기술을 적용해 신뢰도를 높이며 △스마트싱스 연동으로 일상 속의 보안 편의성을 강화하는 특징을 강조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택배 관련 피해구제 신청 1149건 중 ‘분실’이 37.1%로 가장 많았다. 삼성 AI 도어캠은 상하 듀얼카메라 구조로 이에 대응한다. 상단 카메라는 방문자 얼굴을, 하단 카메라는 바닥에 놓인 택배를 각각 촬영한다. 하단 카메라로 촬영된 이미지를 클라우드 AI 분석 서버로 전송해 택배물의 도착·사라짐 알림을 전달한다. 2024년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강력범죄의 약 26%가 주거지 내에서 발생했다. 삼성 AI 도어캠은 24시간 긴급출동 서비스를 제공(별도 가입 유료 서비스)한다. 위급상황 발생 시 인근 에스원 요원이 현장으로 출동한다. 전국 100여 개 에스원 출동 인프라를 활용해 즉각적인 현장 대응을 한다. 삼성 AI 도어캠은 국내에서 제조된 기기로 삼성전자의 보안기준을 통과해 해킹 및 영상 유출 위험을 최소화했다. 또 삼성 AI 도어캠은 삼성전자의 스마트홈 플랫폼 ‘스마트싱스’와 연동돼 스마트싱스 앱을 통해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방문자가 도어벨을 누를 경우 스마트싱스가 연동된 삼성 스마트 TV, 비스포크 AI 패밀리허브 냉장고, 비스포크 AI 콤보 및 세탁기 등에서 실시간 영상을 확인할 수 있어 요리 중이거나 거실에서 휴식을 취할 때도 방문자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스마트싱스 앱을 통한 양방향 음성통화 기능도 지원해, 인터폰까지 가지 않아도 방문객과 실시간 대화가 가능하다. 에스원 관계자는 “보안이 생활 전반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시대를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