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

이설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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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설 기자입니다.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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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3~2026-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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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30 “이민자들이 일자리 뺏어가”… 쌓이는 미래 불안감

    “미래가 불안하다.” 기자가 싱가포르에서 만난 20, 30대 청년들은 ‘포스트 리콴유(李光耀)’ 시대에 대해 이 같은 전망을 내놓았다. 2030세대는 1주일 동안 이어진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추모 행렬에 적극 동참했다. 이들은 리 전 총리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리 전 총리의 통치를 직접 경험한 ‘리콴유 세대’는 아니지만 그가 존경받는 건국의 아버지라는 점은 교육과 언론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 대한 불만은 컸다. 싱가포르는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만6000달러로 아시아 1위, 세계 8위의 선진국이다. 실업률은 낮지만 다국적기업 등 인기 직장은 외국인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상실감이 컸다. 출신국을 따지지 않는 ‘능력주의’에 본토인들이 치이고 있다는 피해 의식이 엿보였다. 싱가포르는 이주민 비율이 전체 인구의 28%에 달한다. 싱가포르경영대(SMU) 정치학과 배유일 교수(42)가 최근 정책학 수업을 듣는 학생 7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는 이주민을 바라보는 젊은 세대의 시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싱가포르가 장차 맞닥뜨릴 가장 중요한 정책 문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민자 증가로 인한 일자리 감소 △고령화로 인한 이민자 증가 △이민자 증가로 인한 다문화 정책 △고령화로 인한 연금 및 복지 순으로 답변이 많았다. 배 교수는 “대부분 이민자 문제를 지적했다”며 “다국적기업 금융계 학계 등 좋은 일자리는 화이트칼라 이민자인 ‘엑스팻(expat)’에게, 힘든 3D 업종은 인도와 동남아시아 출신 노동자에게 뺏기고 있다는 불만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2030세대는 이민자를 잠재적 경쟁자로 보고 경계했다. 니디아 베로니카 씨(21·여)는 “학과생 중 절반이 외국인이다. 중국과 인도 출신이 특히 많다. 이들로 인해 싱가포르인이 설 자리가 좁아져서 싫다”고 말했다. 최근 급등한 집값에 대한 무력감도 호소했다. 싱가포르 국민 90%는 평생에 걸쳐 월세 형식으로 집값을 갚아 가는 공공주택에, 나머지 부유층 10%는 콘도에서 생활한다. 상위 1% 이내의 부촌인 센토사, 탕린, 홀란드 등지의 집값은 2500만∼3700만 싱가포르달러(약 200억∼300억 원)를 가뿐히 넘는다. 또 자동차 가격과 유지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비싸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이런 불만은 극심한 빈부 격차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세계은행이 소득 불평등을 매기는 지니계수에서 싱가포르는 155개국 가운데 123위에 머물렀다. 엘살바도르, 나이지리아와 비슷한 정도로 빈부 격차가 심하다. 부모가 경영 컨설턴트와 교사인 난양이공대(NTU) 림추이 씨(23·여)는 “결혼할 때 돈이 없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고민을 털어놨다. 공대생이라 취직하면 월급이 3500싱가포르달러(약 280만 원) 정도로 괜찮은 편인데도 웬만한 공공주택에 들어가려면 계약금 4000싱가포르달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 불평등으로 인해 더이상 스스로 부와 명예를 성취할 수 없다는 상실감도 심각했다. 회사원 추이왕림 씨(27)는 “교육의 기회는 보장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우열반을 운영하는 탓에 사교육이 기승을 부린다. 여유 있는 부모를 둔 아이들은 사교육을 통해 엘리트 코스를 밟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언론 통제에도 불구하고 최근 인터넷의 발달로 다양한 정치적 의견을 분출하는 분위기도 형성됐다. 싱가포르국립대(NUS) 한인학생회장인 황재윤 씨(재료과학공학과 3학년)는 “온라인상에서는 집권당인 인민행동당(PAP)을 자유롭게 비판하는 등 정치적 의견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막상 선거 때가 되면 별다른 대안이 없어 또 집권당을 뽑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기자가 만난 대부분의 젊은이는 “특권층은 2000억 원짜리 집에서 사는 반면 이주노동자들은 단칸방에서 생활할 정도로 빈부 격차가 심각하다. 권위주의에 대한 반감도 커지는 추세”라며 싱가포르의 미래를 걱정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5-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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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지노도 영업 중단… 폭우 속 ‘마지막 길’ 배웅

    ‘하늘마저 울어버렸다.’(싱가포르 최대 일간 스트레이츠타임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장례식이 치러진 29일, 건기(乾期)라서 좀처럼 비가 내리지 않았던 싱가포르에 난데없이 폭우가 쏟아졌다.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 나온 시민들은 눈물과 빗물로 범벅이 된 채 목이 터져라 ‘리콴유’를 외쳤다. 나흘간 리 전 총리의 시신이 안장되어 있던 국회의사당 앞에는 오전 6시부터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오전 7시가 되자 구불구불 긴 줄이 이어질 정도로 인파가 늘어났다. 시민들은 미리 준비한 휴대용 의자, 도시락, 노트북 등을 꺼내 시간을 보내며 차분히 운구를 기다렸다. 오전 6시 45분에 집을 나섰다는 조안 리 씨(35·여)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일찍 나왔다. ‘파파’가 우리를 위해 한 일에 비하면 비에 젖는 것은 별일 아니다”고 말했다. 오전 11시가 지나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부터 몸이 불편한 노인까지 시민들은 준비한 비옷과 우산을 꺼내 쓸 뿐 자리를 뜨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현장이 어찌나 조용했는지 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낮 12시 30분경 리 전 총리의 유해를 실은 군용 포차(砲車)로 만든 운구차가 의사당을 나와 장례식장인 싱가포르국립대로 향했다. 승합차 한 대, 군용트럭 5대, 오토바이 2대, 경찰차 등 승용차 5대인 단출한 행렬이었다. 곡사포 4대가 예포 9발을 쏘자 포차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빗방울은 갈수록 굵어져 폭우로 변했다. 운구 행렬이 지나는 싱가포르 시내 15.4km 구간에는 시민들이 운집해 비를 맞으며 자신들의 ‘국부(國父)’가 가는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 꽃을 던지는 시민들도 많았다. 시민들은 국기(國旗), 리 전 총리의 사진, ‘싱가포르를 위한 당신의 헌신에 감사합니다’는 글귀가 적힌 팻말 등을 흔들면서 조금이라도 운구 행렬을 가까이에서 보겠다는 듯 길게 목을 뺐다. 데이비드 호 씨(78)는 “오늘처럼 억수 같은 비가 내렸던 47년 전 독립기념일이 생각난다. 하늘이 우리 정신력을 시험하는 것 같다”며 “리 전 총리의 삶은 이보다 더한 폭풍우도 견디어낸 삶이었다”고 말했다. 외신들은 “도로 곳곳에서 수만 명이 우산을 쓴 채 대형 국기를 들고 양쪽으로 도열한 장면이 장관을 이뤘다”면서 “리 전 총리가 자신이 일군 조국 구석구석을 돌며 생을 마무리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운구차가 리 전 총리의 오랜 지역구였던 탄종파가르 지역을 지나가자 시민들은 “파더” “리콴유” “생큐”를 외치며 화답했다. 공군 전투기들이 싱가포르 하늘을 갈랐고 검은 조기를 내건 해군 순찰 선박들도 포차와 발맞춰 운항했다. 운구차가 싱가포르국립대 문화센터에 닿은 시간은 오후 1시 50분경. 마중 나온 흰색 제복 차림의 군인들이 리 전 총리의 시신이 든 관을 조심스럽게 옮겼다. 붉은색 싱가포르 국기로 뒤덮인 관은 투명 유리관에 넣어진 채 문화센터에 마련된 단상 위로 옮겨졌다. 장례식은 국영방송과 추모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되면서 해외 거주 싱가포르인도 추모 물결에 동참하도록 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대형 상가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동남아 최대 카지노업체 중 하나인 젠팅싱가포르 역시 오후 2시부터 4시간 동안 영업을 중단했다. 싱가포르 민간항공국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구 행렬 상공에서 소형 무인 항공기의 운항을 금지시켰다. 한편 28일까지 국회의사당을 조문한 싱가포르인은 전체 550만 명의 10% 가까운 50만 명 이상이라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또 최소 85만 명의 시민들이 지역별 추모 장소 18곳에서 조문했다고 알려졌다. 4시간 반에 걸친 장례식을 마치고 리 전 총리의 시신은 장례식장에서 13km 떨어진 만다이 화장장으로 옮겨졌다. ‘아시아의 거인’은 가족과 측근들만 지켜보는 가운데 한 줌의 재로 돌아갔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5-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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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콴유 前총리 타계]“생큐, 파더”… 운구차 보이자 참았던 눈물 쏟아

    25일 오전 7시 싱가포르 이스타나 대통령궁 앞. 꽃을 든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두 시간 만에 인파는 수천 명으로 불어났지만 다들 소리를 낮춰 정적이 감돌 정도였다. 차도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만 이따금 울렸다. 오전 9시 반. 마침내 궁의 정문이 열리고 정문 앞 양쪽으로 도열한 군인들 사이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의 시신이 담긴 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군중은 역사적 순간을 담기 위해 약속이라도 한 듯 스마트폰을 높이 들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생큐 파더(father)” “생큐 리콴유” “유 아 마이 히어로(You are my hero)”를 외쳤다. 가족 애도 기간인 이틀간 대통령궁 내 총리관저에 안치돼 있던 리 전 총리의 시신은 이날 나흘간 국민 조문을 받기 위해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관은 투명한 유리함에 들어 있어 군중이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관은 뚜껑이 없는 검은 지프차 뒤에 연결한 포차(砲車)에 실렸다. 운구 행렬은 청렴한 삶을 살았고 자신이 살던 집조차 허물라는 유언을 남긴 리 전 총리의 생전 모습처럼 소박했다. 경찰 오토바이 4대, 소형 경찰차 1대 뒤로 운구차와 차량 8대가 따랐다. 차량도 모두 소형차였다. 한 관광객은 “위대한 지도자의 운구 행렬치고 간소해도 너무 간소하다. 이런 지도자를 가졌다는 게 보기도 좋고 부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일부 시민들은 운구차를 뒤따라 달려가기도 했다. 뛰어가다 멈춰서 울음을 터뜨린 주부 제인 리 씨(53)는 “지금 싱가포르 국민들은 아버지를 잃은 자식 입장이다.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한다. 의사당에 가서 또 추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당까지 가는 2km 인도에 죽 늘어서 있던 수천 명의 시민은 운구 행렬이 지나갈 때 “생큐 리콴유” “생큐 파더”를 외치면서 국기를 흔들었다. 오전 10시 운구차가 의사당에 도착하자 정복을 입은 군인 8명이 관을 유리함에서 꺼내 의사당으로 메고 들어가 중앙 홀에 준비된 작은 단 위에 올려놓았다. 자주색 천을 씌운 단은 가로세로가 각각 1.5m, 2m도 안 될 정도로 작았다. 높이도 성인 무릎 정도밖에 안 됐다. 관 앞에는 흰 꽃으로 테두리가 장식된 고인의 작은 초상화 외엔 아무런 장식도 없었다. 국부가 국민을 맞이하는 장소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소박한 제단이었다. 의사당 밖은 조문을 하려고 몰려든 사람들로 순식간에 인산인해를 이뤘다. 불과 2시간 만에 의사당은 조문 차례를 기다리는 시민 행렬로 포위됐다. 구불구불 길게 이어진 행렬은 수천 m나 됐다. 땡볕이 내리쬐는 날씨였지만 자리를 뜨는 이는 없었다. 부채를 부치거나 우산을 펼쳐 햇빛을 가리면서 차분히 입장을 기다렸다. TV에서는 “8시간째 줄을 서도 입장하기 힘들다”며 “오늘은 조문을 권하지 않는다”는 안내 자막이 나올 정도였다. 조문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팀을 이뤄 차례로 의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한 번에 20명씩 최대 30분간 머무르는 식으로 진행됐다. 11세 아들과 함께 조문을 하고 나왔다는 50대 남성 다니엘 진 링 씨는 “아침부터 줄을 섰지만 4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입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차례를 기다리던 한 30대 남자는 “회사에 하루 휴가를 내고 이곳에 왔다. 서너 시간 기다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왔는데 이렇게 사람이 많으니 오늘 조문을 할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다”고 했다. 국장(國葬)으로 치러질 리 전 총리 장례는 29일 싱가포르 서북부에 위치한 싱가포르국립대(NUS) 센트럴센터에서 거행된다. 정부 관계자들은 장례식 준비에 한창이었다. 장례식에 참석하겠다고 밝힌 외국 정상들도 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등이 참석 계획을 밝혔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참석을 검토 중이라고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이 25일 보도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도 참석하겠다고 25일 밝혔다. 장례식이 끝나면 리 전 총리의 시신은 화장될 예정이다. 고인은 생전에 “내가 죽거든 화장해서 아내의 뼛가루와 합쳐 달라”고 말했었다.:: 포차(砲車) 운구 ::프러시아 군대의 전통에서 시작되었다가 1901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나는 군인의 딸로 죽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처음으로 도입되어 국가 지도자 장례식 때 많이 보인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테레사 수녀(1997년 사망) 운구도 포차가 했다.싱가포르=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5-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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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콴유 前총리 타계]‘질서의 나라’답게… 추도 메모로 차분한 조문

    싱가포르 정부가 마련한 리콴유 전 총리의 분향소는 ‘통제 속의 꽉 짜인 질서’가 특징인 이 나라 문화를 반영하는 듯 특이했다. 우선 분향소 자체가 한국에서 흔히 보는 모습이 아니었다. 고인의 시신이 안치된 이스타나 대통령궁 정문 오른쪽에 높이 2.5m, 폭 1m, 두께 30cm의 흰색 페인트로 칠한 6개의 큰 나무 게시판이 줄지어 있고 그 앞에 시민들이 꽃다발을 놓는 식이었다. 영정이나 향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이곳을 ‘트리뷰트 플레이스(tribute place·추모 장소)’라고 불렀다. 리 전 총리 타계 이틀째인 24일 오전 10시부터 줄을 길게 늘어선 시민들은 차분하게 현장 안내를 받아 나무 게시판 앞에 선 뒤 묵념을 하거나 꽃을 놓았다. 그러고는 게시판 앞 테이블에 놓인 메모지와 펜으로 조용히 추모 글을 남긴 뒤 투명함에 넣었다. 양미간에 주름이 질 정도로 진지하게 공을 들여 글을 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간혹 흐느끼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화를 한다거나 통곡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아 분위기는 정적에 가까울 정도로 조용했다. 안내를 맡은 공무원(군인)들은 분향소가 붐비지 않도록 추모객들을 다섯 명씩 끊어 들여보냈다. 함에 메모지가 가득 차면 일일이 꺼내 내용이 괜찮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판 앞뒤(한 면에 54개씩)에 질서정연하게 꽂았다. 한 안내원은 “오늘 아침까지만 메모지가 벌써 2만 장 가까이 나갔다”고 말했다. 게시판에 가로세로로 나란히 꽂힌 메모들은 깨알같은 글씨로 긴 사연을 담은 것도 있었고 짧게 고인에 대한 추모 내용을 적은 것들도 많았다. ‘우리가 집이라 부를 수 있는 아름다운 나라를 이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싱가포르를 위한 당신의 일생에 걸친 헌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분향소 앞에서 만난 리안 핑 씨(58·주부)에게 “싱가포르의 ‘메모 분향’이 특이한 것 같다”고 기자가 말을 건네자 “글로 차분하게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질서를 좋아하는 우리 싱가포르인들에게 맞는 추모 방식인 것 같다”고 답했다. 싱가포르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슬픔에 잠겨 있다. 한낮 평균기온이 31도나 될 정도로 덥고 습한데도 추모 열기는 시간이 갈수록 달아오르고 있다. 대표 일간지 스트레이츠타임스는 24일자 지면 전체를 리 전 총리 업적과 살아온 길을 소개하는 기사로 채웠고, 공항 지하철 버스터미널 식당 등에 설치된 TV에서는 추모 특별방송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다민족 사회(중국계 75%, 말레이계 13%, 인도계 12%)답게 TV에서는 중국계를 비롯해 히잡(무슬림 여성들이 쓰는 가리개)을 쓴 말레이계, 터번을 쓴 인도계 주민들의 인터뷰가 번갈아 나왔다. 노동조합 연합체인 전국노동조합(NTUC) 조합원들도 이날 1분간 묵념하는 행사를 하기도 했다. 이곳 사람들의 일상은 변함없는 듯했지만 얼굴에선 ‘큰어른을 잃었다’는 상실감이 확연하게 엿보였다. 인상 깊었던 점은 시내 곳곳에서 만난 젊은이들도 하나같이 똑같은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 가난을 겪지 않아 중장년층과는 감회가 다를 것이고 성장의 대가로 자유를 억압당한 것에 비판적인 의견도 나올 법한데 대부분이 “리콴유가 있었기에 오늘의 싱가포르가 있다”고 말했다. 분향소 앞에서 만난 난양이공대(NTU) 학생 로널드 림 씨는 “한국 기자까지 이렇게 취재를 오고 외신들도 그의 죽음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는 것을 보고 조국과 ‘파운딩 파더(founding father·건국의 아버지)’에 대해 더 강한 자부심을 느끼게 됐다”며 “언론을 통제하고 일당독재나 다름없이 정치적 다원주의를 배척한 점 등은 오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엔 너무 가난해서 모든 걸 돌볼 여력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조문객 이안 왕 씨(68)는 “싱가포르 청년들도 ‘리콴유 키즈’라 그의 업적을 대략은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싱가포르=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5-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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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國父 잠들다” 눈물에 잠긴 싱가포르

    “지금의 싱가포르를 있게 해준 당신에게 감사드립니다.”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가 지난달 5일부터 폐렴으로 입원해 머물렀던 싱가포르종합병원 앞에 수북이 쌓인 추모 카드에 적힌 글귀다. 나라의 경제적 번영과 사회적 안정의 기틀을 세워 ‘국부(國父)’로 존경받는 리 전 총리가 향년 92세로 타계하자 국민들은 “위대한 지도자를 잃었다”며 눈물을 흘리며 애도했다. 싱가포르종합병원과 가족 장례식이 치러질 총리 공관, 정부가 마련한 분향소 앞에는 시민들이 가져온 꽃이 차곡차곡 쌓였다. 거리 곳곳엔 늦은 밤까지 추모 발길이 이어지고 관공서마다 조기(弔旗)가 내걸려 도시 전체에서 장례식 분위기가 배어 나왔다. 싱가포르 총리실은 23일 오전 성명을 내고 “리 전 총리가 오늘 오전 3시 18분(한국 시간 오전 4시 18분) 세상을 떠났다. 평화롭게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리셴룽(李顯龍) 총리가 슬픈 마음으로 전 국민에게 알려드린다”고 발표했다. 리 총리는 리 전 총리의 장남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23∼29일 7일간을 애도 기간으로 정했다. 국장(國葬)으로 치러질 장례식은 29일 오후 2시 싱가포르국립대 문화센터에서 열리며 이후 시신은 화장된다.  ▼ “재임때 공관 비운채 소박한 삶… 고인돼서야 오셨네요” ▼‘눈물에 잠긴 싱가포르’23일부터 이틀간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의 가족 장례식이 치러지는 이스타나 대통령궁 내 총리 공관인 ‘스리 타마섹’ 앞에는 이날 오전부터 수백 명의 시민이 몰려들었다. 새벽에 발표된 리 전 총리의 타계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고인의 시신이 운구되는 모습이라도 보겠다며 궁 바깥으로 몰려들었다. 아들인 리셴룽(李顯龍) 총리와 며느리이자 총리 부인인 호칭 여사도 오전에 궁에 도착했다. 호 여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스타나 궁 정원 잔디 위 안개도 이별을 고하는 것 같다’고 적었다. 리 전 총리의 시신을 실은 운구차가 다가오자 기다리고 있던 시민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거나 “고마워요. 리콴유”를 외쳤다. 운구 행렬이 공관 안으로 들어가자 길에 죽 늘어서 있던 사람들은 정문 앞에 다시 모여 정부가 비치한 방명록과 추모 카드에 애도 메시지를 쓰고 꽃다발을 놓았다. 이날 오후 8시까지 정문 앞에서만 1만1000여 개의 추모 카드가 만들어졌다. 밤이 되자 추모객들은 더욱 늘어났다. 오후부터 공관 앞에 모여든 시민들은 일렬로 줄을 지어 리 전 총리를 조문했다. 대부분 검은 양복과 검은 원피스를 입었고 손에는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리 전 총리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일부 노인들은 조문소 앞에서 “아버지(Father)”라 부르며 울기도 했다. 이곳을 찾은 오잉후아 씨(68)는 “리 전 총리는 생전에 이곳 총리 공관에서 살지 않았다. 죽어서야 왔다”며 눈물을 훔쳤다. 리 전 총리는 싱가포르 자치정부 총리로 선출된 1959년 “내 아이들을 집사와 청소부가 있는 특별한 환경에서 키우지 않겠다”며 공관 사용을 거절했다. 이후에도 1965년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연방에서 독립할 때 안전 문제로 잠깐 머무른 것 외에는 주로 외국 귀빈을 접대할 때만 이용했다. 리셴룽 총리도 현재 공관에 살지 않는다. 그는 이날 오전 8시(현지 시간) 부친의 타계를 공식 발표하는 TV 연설을 통해 “리 전 총리는 싱가포르 국민에게 자랑스러운 국가 정체 의식을 불어넣었다”며 “우리는 앞으로 그와 같은 인물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이다. 그는 싱가포르 자체였다”고 말했다. 그는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 등 3개 언어로 연설을 하면서 슬픔이 북받치는 듯 수차례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그러면서 “건국 총리 리콴유 선생, 편안히 쉬십시오”라는 말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이날 공관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토니 탄 싱가포르 대통령과 고촉통 전 싱가포르 총리,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 등이 다녀갔다. 공관 내부에 안치된 리 전 총리의 관은 하얀 꽃들로 장식됐다. 상주인 리 총리는 검은색 바지와 흰색 티셔츠 차림으로 직접 조문객을 맞았다. 리 전 총리가 마지막으로 머무른 싱가포르종합병원 앞에도 추모객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싱가포르 당국은 25일까지 탄종파가르, 앙모키오 등 시내 중심가 18곳에 분향소를 추가로 설치할 예정이다. 택시 기사인 존 폴림 씨(53)는 “싱가포르의 엄청난 변화와 리 전 총리의 리더십을 직접 겪은 우리 세대나 부모 세대는 너무 상심이 크다”고 말했다. 리 전 총리의 타계와 동시에 싱가포르 정부가 만든 추모 홈페이지(www.rememberingleekuanyew.sg)는 이날 오전 접속자가 크게 몰린 탓인지 한때 작동이 중지되기도 했다. 여기에는 고인이 부인 콰걱추 여사와 젊은 시절 데이트하면서 찍은 사진, 현지 시찰을 하며 찍은 사진 등 생전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올라 있다. 많은 싱가포르 시민들은 추모 홈페이지와 리 전 총리 트위터, 싱가포르 총리실 페이스북 등을 오가며 추모 메시지를 남겼다. 한 시민은 그의 죽음이 발표된 시간을 가리키는 시계의 사진을 올려두고 “이 시간을 그에게 바친다. 그는 위대한 인간이었다”라고 적기도 했다. 외국인들도 “현대사의 거인이 쓰러졌다”며 깊은 애도를 표시했다. 공관 앞 분향소를 찾은 일본인 교사 모리야마 씨(46)는 “한 국가의 정치를 자신만의 철학으로 그만큼 밀어붙인 이가 없다는 점에서 리 전 총리는 대단한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그의 사망 소식이 발표된 직후부터 이날 오후 11시까지 리 전 총리를 언급한 전 세계 트윗과 리트윗은 19만 건을 넘어섰다.싱가포르=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5-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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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촌을 부국으로…‘싱가포르 국부’ 리콴유 前 총리의 생애

    1인당 국민소득 400달러에 불과했던 가난한 어촌 마을을 5만 달러가 넘는 부강한 나라로 탈바꿈시킨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가 영면한 올해는 싱가포르 독립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리 전 총리는 박정희(한국) 장제스(대만) 덩샤오핑(중국)과 함께 아시아의 도약을 이끈 아시아 1세대 창업형 지도자 중 마지막 생존자였다. 지난해 싱가포르 1인당 GDP는 5만6113달러로 세계 8위, 아시아 1위이며, 세계경제포럼 (WEF) 조사 국가경쟁력은 세계 2위, 국제투명성기구 조사 국가청렴도는 세계 5위이다. 이런 싱가포르를 있게 한 주인공이 리콴유라는 데에 이견은 없다. 1923년 싱가포르로 이주한 중국계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나 풍족하게 자란 리콴유는 어릴 적부터 수재소리를 들으며 1935년 명문 래플스학교에 수석 입학 수석 졸업을 한다. 하지만 곧 2차 대전이 터지고 일본군이 고향을 점령하면서 일본군 선전 정보부에서 번역 일을 하거나 고무풀 장사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야 했다. 그는 훗날 자서전에서 “일본군 치하를 겪으며 권력을 차지하고 사람을 다스리는 정치의 속성을 몸으로 익혔다. 정부가 왜 필요한지 깨달은 시기이기도 했다”고 적었다.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영국 유학을 떠나 런던 정경대·케임브리지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해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영국의 선진 문물과 학문과 인종차별 등을 경험하면서 “내 나라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다. 영국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1950년 고국에 돌아온 그는 노동 전문변호사로 영국 측 사용자들과 아시아계 노동자들 사이 쟁의를 잇따라 타결시키면서 동족의 이익을 대변해야겠다는 열망을 가졌고 마침내 서른한 살 때 정치에 뛰어들어 1954년 창립한 ‘인민행동당’ 사무총장직을 맡았다. 5년 뒤인 1959년 싱가포르가 자치권을 얻어 낸 뒤 실시한 총선에서 인민행동당이 51석 중 43석을 휩쓸며 압승하자 리콴유는 서른여섯 나이에 첫 총리가 된다. 이후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 초대 총리로 취임해 1990년 퇴임할 때까지 장장 26년간 총리로 재직했다. 자치정부 시절까지 합하면 무려 31년 동안 총리로 재직해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일한 총리로 기록됐다. 독립 당시 400달러 수준이었던 싱가포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그가 총리직에서 퇴직한 1990년에 1만2750달러를 달성했다. 리콴유는 서울시만한 면적에 자원도 인구도 부족한 도시국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의 힘이 필요하다고 판단, 1963년 국민투표를 통해 말레이 연방에 가입하지만 연방의 맹주 말레이시아와 충돌을 빚다 2년 만에 탈퇴한다. 리콴유가 정치노선의 핵심키워드로 ‘실용주의’를 갖게 된 배경이 되는 일이었다. 그는 이후 특정 이념에 경도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반식민주의-온건사회주의-강경 반공주의를 넘나들면서 싱가포르를 통치했다. 2007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싱가포르의 이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이념에서 자유롭다. 잘 작동한다면 시도해라. 좋다면 계속해라. 작동하지 않는다면 던져버리고 다른 것을 시도해라. 이게 이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집권 후 재정 안정화, 서민주택 보급, 공직비리조사국 설치, 해외투자 유치 등의 정책을 시행했다. 개발도상국이 소홀히 하기 쉬운 환경보호에도 힘써 싱가포르를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 중 하나로 만들었다. 미래를 내다 본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에도 박차를 가해 싱가포르 항만공사를 설립해 세계 일류 수준의 컨테이너 항구를 건설했고, 창이 국제공항을 건설해 싱가포르를 물류 중심지, 동서양 항공의 요충지로 만들었다. 또 세계 유명 금융기관을 적극 유치해 싱가포르를 동남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일으켰으며 자원빈국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공직자 급여를 세계 최고수준으로 끌어 올려 공무원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그는 국민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서는 권위적 통치가 불가피하다는 정치관을 가졌었다. “여론이나 지지율 등락에 관심을 갖는 것은 지도자의 일이 아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신문 기사가 아니라 집 의료 직장과 교육”이라면서 ‘언론 자유’를 경시하는 태도도 가감없이 드러내곤 했다. 또 “국민이 사랑하는 지도자가 될지, 두려워하는 지도자가 될지 사이에서 나는 늘 마키아벨리가 옳다고 믿었다”면서 마키아벨리즘 신봉자라는 것도 숨기지 않았다. 자신을 괴롭히는 정적(政敵)들에 대해서도 “말썽꾼들을 정치적으로 파괴하는 게 나의 일”이라면서 “내 가방 안에는 매우 날카로운 손도끼가 있다. 만약 말썽꾼과 겨루게 된다면 나는 손도끼를 사용할 것”이라는 말하기도 했다. 리 전 총리는 “질서를 넘어선 자유는 용납되지 않는다”며 태형(笞刑)을 도입하는 등 강력한 법치로 나라를 다스렸다. 담배꽁초 투기, 화장실 물 내리기 등 사소한 부분까지 통제하자 ‘정부가 일일이 간섭하는 유모 국가’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독재라는 비난에 대해서도 아시아가 서구를 따라잡으려면 강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아시아적 가치’를 주장해 당시 아시아에 만연했던 독재를 옹호하는 논리를 폈다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개발과정에서 무력을 동원하거나 착취, 인권 침해 논란을 초래하지 않았고 “부패는 망국의 지름길”이라며 측근도 봐주는 법이 없었던 청렴한 지도자여서 ‘온건한 독재자’로 불렸다. 1986년 개국공신이자 최측근인 태 치앙완 국가개발부장관이 두 차례에 걸쳐 40만 싱가포르 달러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자 망설임 없이 구속수사를 지시했다. 결국 태 장관은 감옥에서 자살했다. 본인에게는 더 엄격했다. 1995년 부동산 급등으로 자신의 일가에 대한 투기 의혹이 일자 조사를 자청했고, 무혐의 결론이 난 뒤에는 차익을 모두 기부했다. 부인 콰걱추(柯玉芝) 여사가 2010년 89세를 일기로 타계했을 때에는 “그녀 없이 나는 다른 사람으로 다른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다만 그녀가 89세의 인생을 꽤 잘 살았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겠다. 하지만 마지막 이별의 이 순간 내 마음은 슬픔과 비탄으로 무겁다”며 절절한 사부곡(思婦曲)을 감추지 않았다.이설 기자 snow@donga.com·최창봉기자 ceric@donga.com}

    • 201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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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가포르의 아버지’ 리콴유 그는 누구인가?

    <리콴유 약력>-1923년 9월 16일 싱가포르 출생-1946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법학과 졸업-1954년 인민행동당 창당 참여-1959년 싱가포르 자치정부 초대 총리 취임-1963년 말레이시아연방 발족으로 싱가포르 주정부 총리 맡음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싱가포르 분리·독립, 싱가포르 총리 취임-1979년 선박 적재량 기준 싱가포르가 세계 2위의 항구로 승격-1990년 퇴임(26년간 총리 재임)-2004년 장남 리센룽,총리 취임-유족: 부인과 2남 1녀-주요 저서: ‘싱가포르 이야기(1999)’ ‘일류국가의 길(2001)’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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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거인’ ‘소프트 독재자’…리콴유, 그는 누구인가?

    23일 타계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싱가포르의 국부’로 통한다. 26년간의 총리 재임기간 중 도시국가였던 싱가포르를 작지만 강한 ‘강소국’으로 발전시킨 그에게는 ‘작은 거인’ ‘소프트 독재자’ 등의 여러 별명이 붙어 다녔다. ‘국가가 개인에 우선한다’는 철학으로 개발독재 방식을 추구해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과도 종종 비교된다. ● 시대를 만든 인물 싱가포르는 국가 브랜드가 뚜렷하다. 싱가포르는 부패가 적고 거리가 깨끗한 나라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반면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태형을 때려 체벌하는 나라라는 부정적 이미지도 따라다닌다. 이같은 싱가포르 이미지는 리 전 총리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동갑내기 외교계 거물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그를 ‘시대를 만든 인물’이라고 극찬했다. 소년 리콴유는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1923년 싱가포르로 이주한 중국계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나 풍족하게 자랐다. 하지만 그의 집안은 영국식 사고와 생활방식을 따랐다. 국제 증기선에 일하며 영국인 선원들의 합리적 사고방식을 경험한 할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할아버지는 리콴유를 ‘해리’라 부르며 중국어보다 영어를 먼저 가르쳤다. 리콴유는 1935년 명문 래플스학교에 수석 입학했고 졸업할 때도 수석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평온한 일상은 1942년 태평양 전쟁을 겪으며 무너졌다. 전쟁 통에 집안 형편이 기울면서 생활전선에 내몰린 것. 그는 암시장에서 고무풀을 내다팔았다. 또 일본군 선전부에서 근무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이 시기 그는 현실에 눈 떴다. 특히 할아버지의 죽음은 그를 정치적으로 각성시켰다. 이웃들이 수시로 일본군에 끌려가는 상황에서 그는 용케 살아남았다. 훗날 그는 “일본군 치하에서 권력을 차지하고 사람을 다스리는 정치의 속성을 몸으로 익혔다. 결국 살아남았다는 점에서 나를 ‘여우’라 불러도 좋다”고 회고했다. 종전 뒤 그는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영국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1950년 고국에 돌아온 그는 영국 변호사 존 레이콕의 사무실에 들어갔다. 이후 그는 진보당 후보로 출마한 상사의 선거운동을 도우면서 운명처럼 정치에 첫발을 내딛었다. 1951년엔 더 큰 기회가 찾아왔다. 전국 최대 규모인 집배원·전화교환수 노조가 그에게 일은 맡긴 것. 리콴유는 사건을 매끄럽게 해결해 일약 스타 변호사로 떠올랐다. 이후 그의 정치 행보는 탄탄대로를 달렸다. 노동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얻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1954년 인민행동당(PAP)를 창당했다. PAP는 1959년 5월 온건·합리 노선으로 다양한 민족의 지지를 받으며 집권당이 됐다. 리콴유는 자동으로 초대 싱가포르 자치정부 총리에 취임했다.● ‘살아남아야 한다’ 그는 곧바로 팔을 걷어붙였다. 서울시만한 면적에 자원도 인구도 부족한 도시국가. 리 전 총리는 싱가포르 홀로 성장하기엔 역부족이란 생각에 말레이시아 연방 가입을 결단했다. 하지만 양측 관계는 말레이시아의 일방적인 추방으로 끝났다. 말레이시아에겐 사사건건 목소리를 높이는 중국계 총리가 눈엣가시였던 것이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그는 국가 발전의 밑그림을 그렸다. 이스라엘의 자문을 받아 군대를 창설한 뒤 경제로 눈을 돌렸다. 싱가포르는 경제발전 모델로 이스라엘을 따랐다. 양국은 적대적 국가에 둘러싸여 있고 자원이 없는 소국이란 점에서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리 전 총리는 이스라엘처럼 주변국이 아닌 미국 유럽 등 선진국과 주로 교역했다. 다국적 기업이 7000여 개에 달하는 지금의 대외개방 정책도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야권은 당시 유행했던 ‘제국주의 국가가 제3세계를 착취한다’는 종속이론을 들어 그의 경제정책에 반대했다. 리 전 총리는 “이론도 먹고 살 수준이 돼야 논할 수 있다”며 밀어붙였다. 경제가 부흥하면서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리 전 총리는 “부패는 망국의 지름길”이라며 엄벌로 다스렸다. 측근도 봐주는 법이 없었다. 1986년 개국공신이자 최측근인 태 치앙완 국가개발부장관이 두 차례에 걸쳐 40만 싱가포르 달러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자 그는 망설임 없이 구속수사를 지시했다. 결국 태 장관은 감옥에서 자살했다. 본인에게는 더 엄격했다. 1995년 부동산 급등으로 자신의 일가에 대한 투기 의혹이 일자 조사를 자청했고, 무혐의 결론이 난 뒤에는 차익을 모두 기부했다. 싱가포르의 청렴 풍토는 이런 바탕에서 싹텄다. ● ‘아시아적 가치’ 리 전 총리는 “질서를 넘어선 자유는 용납되지 않는다”며 강력한 법치로 다스렸다. 태형은 이러한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재임시절 담배꽁초 투기, 화장실 물 내리기 등 사소한 부분까지 통제했다. ‘일일이 간섭하는 유모국가’라는 국제사회의 비판에 그는 “정부는 국민을 교육하고 올바른 생활습관을 가르칠 의무가 있다”고 반박했다. 원칙주의는 외교계에서도 빛을 발했다. 1988년 자국민을 살해한 인도네시아 군인 2명을 사형시켰고, 1993년 미국 청년 마이클 페이가 싱가포르의 질서를 어지럽히자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압박을 받으면서 끝까지 태형을 집행했다. 그의 사상은 ‘아시아적 가치’로 요약된다. “서양은 사회질서 유지 기능이 정부로 넘어간 반면 아시아는 가족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기에 지도자는 국민의 생활을 통제하고 잘못하면 매를 때려도 된다”는 게 골자다. 그는 1994년 미국 정치잡지 ‘포린 어페어스’를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에 대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3,4월호에서 리콴유가 “아시아에 서구의 민주주의는 맞지 않는다”는 논지를 펼치자, 김 전 대통령은 11·12월호에서 “아시아의 문화도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전통이 있다”고 반박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두 정치인의 논쟁에 외신들도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또 장기집권으로 ‘개발 독재자’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1990년 총리에서 물러날 때도 측근에게 권력을 넘긴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평가를 받았고 2004년에 총리직에 오른 현 리센룽 총리는 그의 장남이다. 그의 자녀와 측근들은 대부분 고위 관리로 재직하거나 주요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젊은층을 중심으로 ‘정치 후진국’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도 비판받는 대목이다. 그는 노조를 변호하면서 정계에 입문했지만 노조가 지나친 욕심으로 국익을 해친다고 판단해 파업을 용납하지 않았다. 한국과 싱가포르는 인연이 깊다. 리 전 총리는 박정희 대통령부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을 모두 만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1979년 1월 부친 박 대통령이 리 전 총리와 면담할 때 통역을 맡았다. 리 전 총리는 특히 박정희 대통령에 특별한 애정을 보였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한국의 성공을 위한 박 대통령의 강한 의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박 대통령이 없었다면 한국은 산업화를 이루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고 적었다. 퇴임 이후 죽음을 맞기 직전까지 온통 싱가포르에 대한 염려뿐이었던 작은 거인. 그가 일군 싱가포르는 리콴유의 인생 그 자체였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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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리콴유 前총리 별세, 향년 91세

    싱가포르의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콴유(李光耀·91) 전 총리가 23일 타계했다고 싱가포르 총리실이 밝혔다. 향년 91세. 리 전 총리는 폐렴으로 지난달 5일부터 싱가포르 종합병원에 입원,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왔다. 싱가포르 총리실은 이날 성명을 통해 “리 전총리가 오늘 오전 3시18분 싱가포르 종합병원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며 “(아들) 리센룽(李顯龍·63) 총리가 매우 슬퍼하고 있다”고 밝혔다. 리 전 총리는 1959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직후 초대 총리에 올랐으며 이후 도합 26년 간 총리직을 지내다 1990년 퇴임했다. 리 전 총리는 ‘싱가포르의 국부’로 통한다. 26년간의 총리 재임기간 중 도시국가였던 싱가포르를 작지만 강한 ‘강소국’으로 발전켰다. 취임 첫해 400달러(약 45만 원)에 불과하던 1인당 GDP이 지금은 5만6112달러에 이른다. 리 전 총리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부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을 모두 만났다. 1923년 싱가포르로 이주한 중국계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난 리 전 총리는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뒤 1954년 인민행동당(PAP)를 창당했고 PAP는 1959년 집권당이 됐다. 리 전 총리는 자동으로 초대 싱가포르 자치정부 총리에 취임했다. 이후 싱가포르를 부패 없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다. 싱가포르는 온통 추모 물결에 휩싸였다. 싱가포르 국민들은 그의 출신 선거구인 탄종 파가르 지역 당국이 마련한 전시장에 그의 건강을 기원하는 기를 달고 서명 메시지 꽃등을 전시하면서 쾌유를 기원해왔다. 리센룽 총리는 자신의 페이스북 홈페이지를 통해 리 전총리의 타계를 전했다. 그의 페이스북 홈페이지는 ‘위대한 인간, 위대한 위업, 그의 타계로 세상은 전보다 가난해졌다’ ‘그는 세계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한명이었다. 그는 조국에 헌신했다’ 등 리 전총리를 애도하는 글들이 쇄도했다. 리 전 총리는 2013년 펴낸 ‘한 사람이 바라본 세계’(One Man‘s View of the World)라는 책에서 “내가 움직이지 못하고 인공튜브로 연명한다면, 의사들은 나를 떠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의 ’사전 의료 지침‘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주엔 그의 병세가 심각하게 악화됐다는 소식들이 전해지며 그가 사망했다는 오보가 나오기도 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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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국관광객 타깃… “IS의 튀니지 데뷔전”

    18일 일어난 튀니지 박물관 테러는 이슬람 무장단체가 이 나라 민주주의 체제를 흔들고 북아프리카에서 테러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저질렀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튀니지는 ‘아랍의 봄’ 이후 유일하게 민주주의 체제로 안착했다. 테러단체가 이런 나라를 혼란에 빠뜨려 세력 확대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튀니지 당국은 올 1월 ‘이슬람국가(IS)’가 벌인 리비아 호텔 테러 이후 자국이 타깃이 된 경위도 조사하고 있다. 튀니지 시민 수천 명은 이날 늦은 밤까지 수도 튀니스 중앙광장에 모여 희생자를 추모하고 테러를 규탄하는 촛불시위를 이어갔다. 당국은 현장에서 범인 2명을 사살하고 관련 용의자 9명을 이튿날 체포했다. 하비브 에시드 튀니지 총리는 현지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범인 2명의 이름은 야신 라비디와 하템 카츠나위로 확인됐다. 이 중 라비디는 정보 당국에 알려진 인물”이라고 말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이날 테러로 인한 사망자는 외국인 17명을 포함해 최소 20명에 이른다. ‘중동의 루브르’로 불리는 바르도 박물관이 이곳의 대표 관광지라 외국인의 희생이 컸다. 희생자의 국적은 일본 3명, 이탈리아 3명, 스페인 2명, 콜롬비아 2명 등이다. 부상자도 5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테러범들은 튀니스 도심의 국회의사당을 노렸다. 18일 낮 12시 30분경 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테러범들은 의사당 진입을 시도했으나 경비에게 저지당하자 바로 옆에 있는 바르도 박물관으로 향했다. 이들은 버스에서 내리는 관광객들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해 8명을 살해한 뒤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전문가들은 IS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리아 이집트 등 이웃 나라들이 내전과 독재 회귀 등으로 진통을 겪은 반면에 튀니지는 차근히 민주주의 국가의 면모를 갖춰갔다. 2010년 재스민혁명을 통해 북아프리카-중동 민주화의 물꼬를 튼 뒤 이듬해 30년간 장기 집권한 진 엘아비딘 벤 알리 대통령을 몰아냈고, 지난해에는 첫 대통령을 선출했다. 하지만 튀니지도 무장단체의 그늘을 피해 가진 못했다. 정부 과도기에 난립한 무장단체들은 경제난에 내몰린 청년들 틈을 파고들었다. 민주화 체제에 반발하는 반정부 세력도 적극 이용했다. 그 결과 튀니지는 IS 대원의 최대 공급국으로 전락했다. IS에 가담한 튀니지인은 약 3000명, 전사자는 6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외신은 “튀니지 당국이 그간 IS에 가담한 자국민들의 테러를 우려해 왔다”며 “이번 테러도 IS 세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날 테러가 튀니지 당국의 수배를 받다가 리비아에서 사살된 IS 고위 지도자 아흐메드 루이시의 죽음에 대한 보복전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테러 감시단체인 시테는 19일 “테러가 일어나기 전 지하디스트가 트위터에 ‘IS가 오고 있다’며 충성 맹세 글을 올렸다. 이번 테러는 IS의 튀니지 데뷔전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에시드 튀니지 총리는 18일 “이번 공격의 목적은 관광객들에게 공포를 심어 튀니지 경제에 타격을 주고 민주주의 성과를 퇴색시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튀니지는 관광수입이 국내총생산(GDP)의 12%를 차지한다. 각국은 이번 테러를 강력히 규탄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19일 성명을 내고 “미국은 민주화와 번영을 위해 노력하는 튀니지 정부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유엔인권이사회는 19일 “IS가 어린이를 포함한 야지디족을 대량 학살하는 인종 학살 의혹도 있다”며 “이들을 전쟁범죄 재판에 넘겨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5-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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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佛도 안락사 허용

    말기 환자에게 진정제를 투여해 잠든 상태에서 숨질 수 있도록 하는 안락사 법안이 프랑스 하원에서 18일 통과됐다. AP통신은 이날 “찬성 436표, 반대 34표의 압도적인 표차로 법안이 통과됐다”며 “올여름 상원에서도 법안이 통과되면 프랑스는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3국에 이어 유럽에서 네 번째로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가 된다”고 전했다. 집권 사회당과 제1야당인 대중운동연합이 함께 마련한 이 법안은 환자가 요구할 경우 의사가 환자 사망 시까지 진정제를 지속적으로 투여할 수 있도록 했다. 환자가 연명 치료와 수분 공급 중단을 요구해도 이에 따라야 한다. 뇌사 등으로 의사를 전하기 힘든 환자가 사전에 밝힌 연명 치료 거부의 뜻도 존중해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2005년부터 치료가 힘든 말기 환자의 경우 자신의 의지에 따라 치료를 중단할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의사가 직접 안락사에 관여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집권 사회당은 그간 공약으로 내건 안락사 합법화를 추진했지만 보수단체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이런 갈등 끝에 프랑스 하원은 이번에 치명적인 약물 대신 진정제 투입을 이용한 안락사를 선택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프랑스인의 96%가 이 법안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 법안은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전망된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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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타냐후 ‘운명의 날’… 여야 누가 이겨도 聯政의 벽 넘어야

    이스라엘 총선이 17일 전국 1만119개 투표소에서 실시됐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66)의 리쿠드당과 이츠하크 헤르조그 노동당 당수(54)가 이끄는 시오니스트연합이 박빙의 승부를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4선에 도전하는 네타냐후 총리가 승리하면 재임 기간이 최장 13년까지 늘어나 역대 이스라엘의 최장수 총리인 다비드 벤구리온의 12년 5개월을 뛰어넘게 된다. 헤르조그의 노동당과 치피 리브니 전 법무장관이 이끄는 하트누아당이 힘을 합친 시오니스트연합이 승리하면 헤르조그 당수가 총리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번 총선은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짙다. 대부분 현지 언론은 그의 고전을 예상하고 있다. 하아레츠 등 현지 언론은 “굳건하던 네타냐후의 위상이 위태롭다”며 “민생을 등한시하고 지나치게 강경한 외교노선을 고집한 그에게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여론조사상으로도 네타냐후 총리가 약간 불리하다. 13일 마지막으로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오니스트연합이 전체 120석 중 24∼26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돼 리쿠드당(20∼22석)을 앞질렀다. 지난해 연정을 구성했다가 결별한 예시아티드당과 아랍계 정당연합인 조인트리스트는 각각 13석과 14석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누가 총리 자리에 오를지는 알 수 없다. 리쿠드당과 시오니스트연합 모두 과반(61석)에 한참 못 미치는 25% 안팎을 득표할 것으로 예상돼 연정 구성이 불가피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시오니스트연합이 주도하는 야권연대(64석) △리쿠드당과 예시아티드당, 아랍계 정당연합(73석) △시오니스트연합과 리쿠드당의 대연합 등 세 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했다. 선거 전문가들은 중도 좌파 성향의 시오니스트연합보다는 보수 성향의 리쿠드당이 연정 구성에서 다소 유리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마지막 여론조사에서도 우파 성향 정당이 51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돼 좌파 성향 정당의 43석을 크게 앞섰다. 영국 BBC는 “리쿠드당이 총선에서 1위 정당이 되지 못하더라도 네타냐후 총리가 연정을 구성할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고 지적했다. 리쿠드당이 군소 정당과 손잡고 61석을 넘기면 네타냐후 총리는 재집권할 수 있다. 리쿠드당은 2009년 총선에서도 우파동맹과 연정을 구성해 집권에 성공했다. 다급해진 네타냐후 총리는 선거 막판 이스라엘 유권자들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쟁점화했다. 그는 총선 하루 전인 16일 이스라엘 뉴스사이트 ‘nrg’와의 인터뷰에서 재선에 성공하면 팔레스타인이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격 선언했다. 이는 팔레스타인의 비무장화를 통해 ‘2국가 해법’을 지지한다고 밝힌 자신의 2009년 연설을 뒤집은 것으로 보수 성향의 표심을 리쿠드당으로 결집시키기 위해 강수를 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팔레스타인 측은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에 빼앗긴 동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수도로 삼을 계획이다. 외신들은 정치적 위기 때마다 ‘안보 카드’로 상황을 돌파해온 네타냐후의 전략이 이번엔 먹히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경제난과 끊이지 않는 외부 갈등에 지친 국민들이 안정된 경제와 민생정책에 목말라 있다는 것이다. BBC는 “총선을 앞두고 미 의회연설을 강행해 ‘강한 이스라엘’의 면모를 부각한 게 큰 실책이었다. 이로 인해 살인 물가에 화난 국민들이 완전히 멀어졌다”고 전했다. CNN은 네타냐후가 재집권에 성공하면 미국과의 관계가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스라엘은 미국과 이란이 진행하는 핵협상이 중동지역 정세 불안을 부채질한다며 미국에 맞서고 있다. 시오니스트연합은 외교 문제보다는 국내 이슈로 민심을 파고들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 집권 이후 이스라엘 주택가격은 55%가 뛰었고 국민의 41%가 빚에 허덕이는 것을 비난하며 안보에 치중한 예산을 주택 교육 의료 복지 등으로 돌리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외교 분야에서도 미국과의 관계 회복,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 진행 등 온건책을 제시했다. 총선 결과는 18일 오전(한국 시간)에 나온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5-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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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부동산재벌 2세, 마이크 켜진줄 모른채 ‘살인 고백’

    미국에서 살인과 실종 등에 연루된 혐의를 받아온 부동산 재벌의 자백 음성이 공개돼 화제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했냐고? 물론 전부 죽였지.” 미국 부동산 재벌 2세 로버트 더스트(71·사진)는 2년 전 다큐멘터리 녹화 도중 잠시 화장실에 들른 사이 이렇게 혼자 읊조렸다. 당시 화장실엔 아무도 없었지만 그가 차고 있던 마이크로 녹음이 돼 세상에 공개됐다. 그의 자백 음성은 15일 더스트의 생애를 다룬 케이블방송 HBO의 6부작 다큐멘터리 ‘징크스(The Jinx·불길한 징조)’를 통해 전파를 탔다. 방송사는 최근 다큐멘터리 작업을 마무리하던 중 해당 파일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HBO의 제보로 방송 하루 전날인 14일 밤 뉴올리언스의 한 호텔에서 더스트를 살해 혐의로 체포했다. 뉴욕타임스(NYT)는 15일 “방송사 PD가 30년 넘게 경찰이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며 “재벌, 살인, 비밀, 방송을 통한 폭로라는 흥행 요소를 모두 갖춘 사건에 누리꾼들이 폭발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더스트는 자산 40억 달러(약 4조5000억 원) 규모의 부동산 재벌 시모어 더스트의 장남이다. 그는 지난 30년간 2건의 살인사건과 1건의 실종사건에 관여했다는 의심을 받아왔지만 그때마다 호화 변호인단을 꾸려 법망을 피해갔다. 부동산 재벌 가문의 비밀과 실종 사건을 담은 그의 이야기는 2010년 영화 ‘올 굿 에브리씽’으로 제작됐다. 더스트가 처음 의혹을 산 것은 1982년 아내 캐슬린이 실종되면서부터. 그는 기차역에 데려다준 아내가 사라졌다고 경찰에 실종신고를 냈지만 경찰은 더스트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이웃들이 “캐슬린이 평소 ‘내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남편이 벌인 일’이라고 말했다”고 증언한 것이다. 하지만 끝내 증거를 찾지 못했고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2000년에는 더스트의 대학 동창이자 여자친구였던 수전 버먼이 실종사건의 실체를 알고 있다는 제보가 있어 재수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버먼이 자택에서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에도 경찰은 더스트를 범인으로 의심했지만 증거가 없었다. 더스트는 또 2004년 이웃 모리스 블랙을 살해한 뒤 시체를 토막 내 바다에 버린 혐의로 체포됐지만 유명 변호사를 선임해 정당방위를 인정받았다. HBO 방송팀은 지난 10년간 더스트 다큐멘터리를 준비해 왔다. 그를 둘러싼 살인사건과 실종사건에 초점을 맞춘 것. 변호인단은 방송사 측이 더스트를 잡기 위해 이번 시리즈를 기획하고 수사 당국과 협력했다고 주장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더스트의 살인 행각은 이번에도 법망을 피해 갈 것인가. 미 법조인들 사이에선 더스트의 육성파일이 사적 공간에서 한 혼잣말이어서 증거능력이 없다는 의견과 충분히 증거가 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한편 그의 동생은 “이번 일로 형이 죗값을 치르게 돼 다행”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5-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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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전부 죽였지” 부동산 재벌의 화장실 혼잣말이 방송되며…

    “내가 무슨 짓을 했냐고? 물론 전부 죽였지.” 미국 부동산 재벌2세 로버트 더스트(71)는 2년 전 다큐멘터리 녹화 도중 잠시 화장실에 들른 사이 이렇게 읊조렸다. 당시 화장실엔 아무도 없었지만 그가 차고 있던 마이크로 녹음이 되면서 세상에 공개됐다. 그의 자백 음성은 15일 더스트의 생애를 다룬 케이블방송 HBO의 다큐멘터리 ‘징크스(불길한 징조·The Jinx)’시리즈를 통해 전파를 탔다. 방송사는 최근 다큐멘터리 작업을 마무리하던 중 해당 파일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HBO의 제보로 방송 하루 전날인 14일 밤 뉴올리언스의 한 호텔에서 더스트를 살해혐의로 체포했다. 뉴욕타임스(NYT)는 15일 “방송사 PD가 30년 넘게 경찰이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며 “재벌, 살인, 비밀, 방송을 통한 폭로라는 흥행요소를 모두 갖춘 사건에 누리꾼들이 폭발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더스트는 뉴욕 맨해튼 고층빌딩 수십 채를 보유한 부동산 재벌 세이모어 더스트의 아들이다. 자산 40억 달러(4조5000억 원)의 더스트가는 매년 포브스지가 발표하는 부호 명단에도 오른다. 그는 지난 30년 간 2건의 살인사건과 1건의 실종사건에 관여했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그때마다 그는 호화 변호인단을 꾸려 법망을 피해왔다. 부동산 재벌 가문의 비밀과 실종 사건을 담은 그의 이야기는 2010년 영화 ‘올 굿 에브리씽’으로 제작됐다. 더스트가 처음 의혹을 받은 것은 1982년. 당시 38세의 그는 기차역에 태워준 부인이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며 경찰에 실종 신고를 냈다. 경찰은 실종된 부인이 평소 “내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모두 남편이 벌인 일”이라고 이야기했다는 주변 증언을 토대로 그를 용의선상에 올렸다. 하지만 끝내 증거를 찾지 못했고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2000년 더스트의 대학동창이자 여자친구였던 수전 버먼이 실종사건의 실체를 알고 있다는 제보를 경찰에 하면서 재수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버먼은 자택에서 머리에 총을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더스트를 의심했지만 역시 증거가 없었다. 더스트는 또 2004년 이웃 모리스 블랙을 살해한 뒤 시체를 토막 내 바다에 버린 혐의로 체포됐다. 당시 증거는 충분했으나 유명 변호인단을 선임해 정당방위를 인정받았다. 이후 그는 세간의 시선을 의식해 한동안 벙어리 여성으로 변장한 채 시골에 숨어 지냈다. HBO 방송팀은 지난 10년 간 더스트 다큐멘터리를 준비해왔다. 그를 둘러싼 살인사건과 실종을 밝히기 위해 그에 대한 모든 정보를 수집했다. 부동산 재벌가 장남으로 지낸 유년시절, 연애와 결혼, 후계구도에서 동생에게 밀린 뒤 느낀 소외감 등을 취재하며 그의 실체에 다가갔다. 그의 변호인단은 “방송사측이 더스트를 잡기 위해 이번 시리즈를 기획하고 수사 당국과 협력했다”고 주장했다. 미 법조인들 사이에선 더스트의 육성파일이 사적 공간에서 한 혼잣말이어서 증거능력이 없다는 의견과 충분히 증거가 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한편 그의 동생은 “이번 일로 형이 죗값을 치르게 돼 다행”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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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리아-우크라이나의 ‘잔인한 봄’

    《 3월 15일과 16일은 시리아 내전과 우크라이나 사태가 각각 시작된 날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다마스쿠스 유적으로 전 세계 관광객들을 끌어모았던 시리아는 내전이 발발한 지 4년이 지났지만 총성이 멎지 않고 있다. 높은 교육열로 우수한 인재가 많았던 이 나라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4.3%라는 경이적인 경제성장률을 보여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지금은 어린이와 여자들이 가장 고통받는 땅으로 전락했다. 우크라이나는 또 어떤가.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지정학적 요충지에 남한의 여섯 배 면적의 비옥한 토지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농산물과 지하자원을 자랑하던 나라로 한때 유럽 최대의 군사력을 보유했던 곳이다. 하지만 1년간의 내전으로 곳곳이 폐허로 변했다. 총성은 멎었어도 ‘경제 회생’이라는 새로운 전쟁을 마주하고 있다. 》 #1년 전 터키로 피란을 온 시리아 소년 아드만(가명·11)은 학교 대신 공장에 다닌다. 그는 고무장갑도 끼지 않고 하루 종일 그릇에 묻은 화학물질을 제거하는 일을 한다. 몸이 불편한 엄마 대신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 아빠는 피란길에 숨졌고 큰형은 포탄에 맞아 다리를 절뚝거린다. 아드만의 친구들도 대부분 폐지를 줍거나 거리에서 구걸을 한다. #의사를 꿈꾸던 시리아 소녀 라나(가명·13)는 최근 아버지의 강요로 결혼을 했다. 상대는 자신보다 15세 많은 요르단 남성. 난민 여성을 노린 성범죄를 걱정한 아버지가 딸을 걱정해 내린 결단이었다. 공부를 곧잘 하던 라나는 전쟁이 뒤바꿔놓은 현실이 아직도 거짓말 같다. 그는 “난민 여성들이 추행을 당해도 사람들은 모른 척한다. 아무도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시리아는 내전 4년 동안 무려 22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국민의 절반(1150만 명)이 난민으로 전락했다. 시리아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76세에서 56세로 20년이나 짧아졌다. 지난해에는 ‘이슬람국가(IS)’가 득세하면서 내전 발발 이후 치른 희생(7만6000여 명 사망)이 가장 컸다. 더 심각한 문제는 피해자 대부분이 여성과 어린이라는 것. 시리아인권관측소에 따르면 사망자 절반은 민간인이며, 난민의 75%가 여성과 어린아이다. 남성들은 정부군이나 반군단체에 가담하거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시리아에 남는 경우가 많다. 국내외 각지를 떠도는 시리아 여성과 아동의 삶은 비참하다. 극빈 상황에서 이들은 구걸이나 성매매로 내몰리고 있다. 불법 아동노동도 흔한 풍경이 됐다. 난민으로 넘쳐나는 인접국 터키와 요르단인들은 시리아 난민들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이 때문에 더 안전하고 일자리가 많은 유럽으로 불법 입국을 시도하다가 바다에서 목숨을 잃는 난민도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국내에 남은 이들의 삶도 힘겹다. 지난달 척추에 포탄 파편을 맞아 병원을 찾은 10대 소년에게 의사는 “척추에 박힌 파편을 제거하면 걸을 수 있다”고 하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내셔널지오그래픽 3월호). 필요한 의료장비가 없어서다. 인권의사회(PHR)에 따르면 내전 4년 동안 의료진 610명이 사망했으며 의료 시설 대부분이 파괴됐다. 시리아에 남은 주민 중 약 500만 명은 구호의 손길이 닿기 힘든 정부군 또는 반군 포위 지역에 있어 외부와 단절된 채 죽어가고 있다. 교육 체계도 마비됐다. 중동에서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한 시리아의 학교 4분의 1이 파괴됐다. 하지만 상황은 갈수록 꼬이고 있다.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정부군과 반군 간 대립으로 시작된 구도가 반군 간 갈등, 종파 간 갈등 등으로 복잡하게 얽혀 종전은 요원하다.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은 혼란을 틈타 성장한 IS로 인해 어부지리의 득을 보고 있다. IS의 공격으로 반군 전력이 약화된 데다 미국이 IS에 관심을 쏟으면서 장기적인 정권 유지가 용이해진 것이다. 중동 전문가인 한국외국어대 서정민 교수는 “정부군과 반군을 지원하던 미국과 러시아가 지난해 우크라이나 사태로 대립각을 세우면서 시리아 문제 해결에 대한 대화가 단절됐다. 우크라이나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러시아는 맹방 시리아를 포기할 가능성이 거의 없고 미국은 대선을 앞두고 있어 상황 종료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내다봤다.▼ 우크라이나 사태 1년… 포성 멈췄지만 ▼경제살리기 더 힘든 전쟁 시작총성이 멎은 우크라이나에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됐다. 약 1년간 치열하게 벌어진 내전의 영향으로 화폐 가치는 급락했고 외환보유액도 바닥났다. 상당수의 공장이 파괴돼 경제 회생의 동력까지 잃은 상태다. 블룸버그통신은 이 상황을 놓고 ‘우크라이나의 새로운 전장(戰場)은 경제’라고 보도했다. 지난해 3월 16일 크림 자치공화국이 주민투표를 통해 러시아 병합을 결정하면서 본격화된 내전은 지난달 정부와 반군 측이 극적으로 휴전에 합의해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하지만 양측 군대는 여전히 삼엄하게 대치 중이고 경계에선 여전히 포성이 간헐적으로 울리고 있다. 2012년 대규모 보수를 거쳐 우크라이나에서 두 번째로 큰 현대식 공항으로 변모했던 도네츠크 공항은 이제 콘크리트 더미와 철골에 뒤덮여 있다. 하지만 러시아와 반군 측은 병합 1주년을 맞아 16일부터 각종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치를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외신들은 반군과의 전쟁보다 ‘경제 살리기’가 우크라이나에 더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크라이나는 자국 통화인 흐리브냐화의 가치 급락을 막기 위해 5일부터 기준금리를 기존 19.5%에서 30%로 10.5%포인트 인상했다. 일반적으로 주요 국가들이 0.25%포인트 수준의 미세한 금리 조정을 하는 것과 비교할 때 우크라이나의 다급함이 묻어나는 조치다. 우크라이나의 인플레이션 비율은 공식적으로 28.5%로 추산되지만 WP는 스티브 행키 존스홉킨스대 교수의 분석을 인용해 실제 인플레이션 비율이 272%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2013년보다 15.2% 감소했고 외국인투자가가 자금을 회수해 외환보유액은 거의 바닥 수준인 56억 달러에 머물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대외 국가채무는 300억 달러(약 33조9000억 원)로 GDP의 25% 수준이며 갚아야 할 돈이 올해만 110억 달러(약 12조4000억 원)에 이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우크라이나의 이런 상황을 감안해 11일 이사회에서 175억 달러(약 19조8000억 원) 규모의 구제금융 지원안을 승인했다. IMF는 50억 달러의 긴급 자금을 곧바로 지원한 데다 세계은행,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유럽투자은행(EIB) 등이 75억 달러를 추가 지원할 것을 시사하기도 했다. 모두 합쳐 4년간 250억 달러짜리 경제회생 프로그램이 가동되는 셈이다. 우크라이나가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질 경우 자금을 빌려준 국가들까지 타격을 입어 유럽 경제에 상당한 악영향을 몰고 올 것을 우려한 선제조치다. IMF의 지원이 당장 급한 불은 끄겠지만 경제 회생은 요원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당장 긴축정책에 들어가야 하고 통화가치 급락을 막기 위해 금리도 더 높여야 하는 상황이다. 여기에다 오랜 내전으로 생산시설마저 파괴됐다. WP는 “우크라이나가 비록 경제력을 회복한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엄청난 고통을 견뎌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성욱 동아대 교수(국제학)는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수출되는 천연가스의 80%가 통과하는 우크라이나는 양측에서 경제적 실리를 챙기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결국 국가부도 위기에 몰렸다”며 “그 원인으로 옛 소련 붕괴 이후 25년간 민족 분열을 봉합하지 못하고 오히려 권력 창출에 활용한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의 무능과 실책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 201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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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리아 내전 4년째…여성 성매매 내몰리고 불법 아동노동까지

    #1년 전 터키로 피난 온 시리아 소년 아드만(11·가명)은 학교 대신 공장에 다닌다. 그는 고무장갑도 끼지 않고 하루 종일 그릇에 묻은 화학물질을 제거하는 일을 한다. 몸이 불편한 엄마 대신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 아빠는 피란길에 숨졌고 큰 형은 포탄을 맞아 다리를 절뚝거린다. 아드만의 친구들도 대부분 폐지를 줍거나 거리에서 구걸을 한다. #의사를 꿈꾸던 시리아 소녀 라나(13·가명)는 최근 아버지의 강요로 결혼을 했다. 상대는 자신보다 15살 많은 요르단 남성. 난민 여성을 노린 성범죄를 걱정한 아버지가 딸을 걱정해 내린 결단이었다. 공부를 곧잘 하던 라나는 전쟁이 뒤바꿔놓은 현실이 아직도 거짓말 같다. 그는 “난민 여성들이 추행을 당해도 사람들은 모른 척 한다. 아무도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시리아는 내전 4년 동안 무려 22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국민의 절반(1100만 명)이 난민으로 전락했다. 시리아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76세에서 56세로 20년이나 짧아졌다. 지난해에는 이슬람국가(IS)가 득세하면서 내전 발발 이후 치른 희생(7만6000여 명 사망)이 가장 컸다. 더 심각한 문제는 피해자 대부분이 여성과 어린이라는 것. 시리아인권관측소에 따르면 사망자 절반은 민간인이며, 난민의 75%가 여성과 어린이이다. 남성들은 정부군이나 반군단체에 가담하거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시리아에 남는 경우가 많다. 국내외 각지를 떠도는 시리아 여성과 아동의 삶은 비참하다. 극 빈곤 상황에서 이들은 구걸이나 성매매로 내몰리고 있다. 불법 아동노동도 흔한 풍경이 됐다. 난민으로 넘쳐나는 인접국 터키와 요르단인들은 시리아 난민들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이 때문에 더 안전하고 일자리가 많은 유럽으로 불법 입국을 시도하다가 바다에서 목숨을 잃는 난민도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국내에 남은 이들의 삶도 힘겹다. 지난달 척추에 포탄을 맞아 병원을 찾은 10대 소년에게 의사는 “척추에 박힌 파편을 제거하면 걸을 수 있다”고 하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내셔널지오그래픽 3월호). 필요한 의료장비가 없어서다. 인권의사회(PHR)에 따르면 내전 4년 동안 의료진 610명이 사망했으며 의료 시설 대분이 파괴됐다. 시리아에 남은 주민 중 약 500만 명은 구호의 손길이 닿기 힘든 정부군 또는 반군 포위지역에 있어 외부와 단절된 채 죽어가고 있다. 교육체계도 마비됐다. 중동에서도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한 시리아의 학교 4분의 1이 파괴됐다. 하지만 상황은 갈수록 꼬이고 있다. 국제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정부군과 반군 간 대립으로 시작된 구도가 반군 간 갈등, 종파 간 갈등 등으로 복잡하게 얽히면서 종전은 요원하다. 알 아사드 정권은 혼란을 틈타 성장한 IS로 인해 어부지리의 득을 보고 있다. IS의 공격으로 반군 전력이 악화된 데다 미국이 IS에 관심을 쏟으면서 장기적인 정권 유지가 용이해진 것이다. 중동전문가인 한국외대 서정민 교수는 “정부군과 반군을 지원하던 미국과 러시아가 지난해 우크라이나 사태로 대립각을 세우면서 시리아 문제해결에 대한 대화가 단절됐다. 우크라이나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러시아는 맹방 시리아를 포기할 가능성이 거의 없고 미국은 대선을 앞두고 있어 상황 종료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내다봤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5-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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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라덴 피살 직전까지 드론 공포에 떨었다

    “드론(무인공격기)을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근거지를 옮겨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에는 극도로 조심해야 합니다.”(2010년 알카에다 간부가 오사마 빈라덴에게 보낸 편지에서). 9·11테러의 배후이자 국제 테러단체 알카에다의 지도자였던 오사마 빈라덴은 미국 정부에 사살된 2011년 5월 1일 이전까지 1년여 동안 드론의 공포 속에서 쇠락의 길을 걸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CNN방송은 11일 파키스탄의 은신처에 숨어 있던 빈라덴이 다른 알카에다 간부들과 2010년 6월부터 사살되기 직전까지 주고받은 편지 등을 토대로 “지금 ‘이슬람국가(IS)’처럼 한때 번성했던 알카에다가 쇠락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2009년 영국 맨체스터 쇼핑몰 테러를 계획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아비드 나세르(28)에 대한 공판 과정에서 증거물로 제출됐다. 2011년 5월 1일 빈라덴 사살 작전을 주도한 미국 네이비실(해군 특수부대)은 파키스탄의 은신처에서 수천 건의 문서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입수했다. 당시 알카에다의 최대 고민은 미 중앙정보국(CIA)의 드론 공격이었다. 알카에다의 한 간부는 빈라덴에게 보낸 편지에서 서열 3위 무스타파 야지드가 드론 공격으로 숨진 과정을 전하면서 드론에 대한 무력감을 토로했다. 그는 “야지드가 정보원의 집에 머물 때 드론 공격으로 야지드와 아내, 딸, 손녀가 사망했다”며 “흐린 날에는 안심이 되지만 날씨가 개면 다시 드론이 찾아온다”고 적었다. 또 다른 간부는 “우리(알 카에다)는 전파 방해, 해킹 등으로 드론 공격을 피해 보려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고 토로했다. 알카에다는 끊임없이 테러를 모의했지만 대부분 실패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문서에는 “‘3명의 형제들’을 덴마크에 보냈으나 연락이 끊겼다”면서 영국, 러시아 등지에서 테러를 시도한 정황이 담겼다. 삼엄한 감시를 피할 수 있는 새로운 테러 방법을 고민한 흔적도 있었다. 알카에다의 한 전략가는 “가정용 칼, 연료, 가스 탱크 등 생활용품을 사용한 테러 공격이나 비행기나 기차 등을 무기화하는 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빈라덴은 당시 은신처에 숨어 지내면서도 사소한 문제들을 일일이 챙겼던 것으로 확인됐다. 2010년 8월 빈라덴은 10여 장에 걸쳐 쓴 편지에서 알카에다와 동맹관계인 소말리아 무장단체 알샤바브에 ‘삼림 훼손을 해선 안 된다’고 강조하는 한편 알카에다의 차기 지도자가 될 만한 청년들의 이력서를 보내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또 브래들리 매닝 전 미군 일병이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에 넘긴 미국 기밀 자료를 번역해 알카에다 전 대원이 공유하며 미국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라고 지시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5-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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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가지 암 극복” 호주 20대여성 SNS 사기극

    “저는 네 가지 암과 싸워서 이겼어요. 2009년 암 수술 중 목숨을 잃을 뻔했죠.” 호주 여성 벨 깁슨(23·사진)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암 극복기를 공개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17세 때 뇌종양, 간암, 자궁암 등으로 4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으나 병원 치료 없이 암을 극복한 노하우를 공개했다. 젊은 여성의 흔치 않은 투병기에 대중은 열광했고, 그는 곧 유명인사가 됐다. SNS의 팔로어는 20만 명을 기록했다. 뜻밖의 반응에 그는 관련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를 추종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암 환자인 데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점에 착안해 영양분 섭취 정보를 알려주는 앱을 만들었다. 이 앱은 30만 명이 다운로드했고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애플과 손잡고 세계적 출판사와 요리책 계약까지 마쳤다. 하지만 모두 가짜였다. 호주 일간 시드니모닝헤럴드는 10일 “지인과 병원 등을 취재한 결과 깁슨의 투병기는 거짓”이라고 전했다. 다른 현지 언론은 깁슨 친구의 말을 인용해 “깁슨은 아픈 적이 없었다”고 전했다. 그의 사기 행각은 자선단체에 모금액을 전달하지 않자 소비자단체가 조사에 나서면서 드러났다. 깁슨은 현재 SNS에 올렸던 글을 지운 채 두문분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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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가지 암과 싸워 이겼다던 호주 여성, 알고보니 모두 거짓

    “전 4가지 암과 싸워서 이겼어요. 2009년 암 수술 중에는 목숨을 잃을 뻔했죠.” 호주 여성 벨 깁슨(23)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암 극복기를 공개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17살 때 뇌종양 말기, 간암, 자궁암 등으로 살날이 4개월 남은 시한부 판정을 받았으나 병원 치료 없이 암을 극복한 노하우를 공개했다. 젊은 여성의 흔치 않은 투병기에 대중은 열광했고, 그는 곧 유명인사가 됐다. SNS의 팔로워는 20만 명을 기록했다. 뜻밖의 반응에 그는 관련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를 추종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암 환자인 데다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점에 착안해 영양분 섭취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앱을 만들었다. 이 앱은 30만 명이 다운로드하며 히트를 쳤다.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애플과 손을 잡고 세계적 출판사인 펭귄북사와 요리책 계약까지 마쳤다. 하지만 이는 모두 가짜였다. 호주 일간 시드니모닝헤럴드는 10일 “지인과 병원 등을 취재한 결과 깁슨의 투병기는 거짓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다른 현지 언론은 깁슨의 친구를 인용해 “깁슨은 아파 보인 적이 없었으며, 다만 그의 친구 2명이 뇌종양으로 숨진 일은 있다”고 전했다. 그의 사기 행각은 자선단체에 제공하기 위한 모금액을 전달하지 않자 소비자단체가 조사에 나서면서 드러났다. 사건의 파장이 커지자 깁슨은 페이스북 등 SNS에 올렸던 암 관련 글을 지운 채 두문분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5-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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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 2등시민 취급” “남성자매들 같이 갑시다”

    8일 전 세계는 여성 권익 신장을 요구하는 외침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세계 여성의 날’ 107주년을 맞아 각국은 한마음으로 여성계가 이룬 성과를 축하하는 한편 당면과제 해결을 위한 결의를 다졌다. 나라마다 일 가족 양립, 이주 여성 권익 등 내세우는 메시지가 다르기도 했지만 최근 이슬람국가(IS)의 잔혹한 여성폭력을 의식한 듯(영국 BBC) ‘여성폭력’이 공동 화두로 등장하기도 했다. 미국 뉴욕 시 맨해튼에서 열린 거리행진은 떠들썩한 축제였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남녀 수천 명이 “여성의 권리가 인류의 권리!”라는 구호를 외치며 유엔 본부 앞에서 타임스스퀘어까지 행진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낸 기념성명에서 “여성이 세계적으로 큰 공헌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여러 곳에서 2등 시민 취급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뉴욕 행진에 참여한 빌 더블라지오 뉴욕 시장의 부인 셜레인 매크레이 여사는 “이 자리는 수세대에 걸친 페미니스트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라며 “100년도 더 전에 행진이 시작됐지만 아직 우리는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말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 리마 보위는 시위에 참석한 남성들을 “남성 자매”라고 부르며 남성들의 참여를 강조했다. 행진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참여했다. 영국 런던 시위에도 수천 명이 참여했다. 세계적인 여성 참정권 운동가인 에멀라인 팽크허스트의 증손녀와 고손녀 등 수백 명의 정치인 배우 등 명사들이 동참했다. 참여 여성 상당수는 긴 치마와 모자 등 참정권을 요구하던 시절 여성들의 차림을 재현하기도 했다. 터키의 경우 최근 성폭행을 당한 뒤 잔인하게 살해당한 외즈게잔 아슬란 씨(20)의 추모 행사가 여성의 날 행사로 번졌다. 시민 수백 명이 거리로 나와 “여성혐오증이 기승을 부리면서 여성폭력 건수가 급증했다”며 자전거를 타고 이스탄불의 포브스 다리를 건너는 자전거시위를 벌였다. 아슬란 씨를 추모하며 ‘미니스커트 캠페인’을 벌인 터키 남성들 중 일부는 이날도 치마를 입고 등장했다. 수도 앙카라에서는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단체 IS의 성노예화와 성폭력을 규탄하는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터키를 포함한 중동지역에서는 이례적으로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해 눈길을 모았다. 성불평등지수가 최하위권인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는 남성들이 여성 억압의 상징인 부르카를 두르고 거리로 나와 여성 학대와 폭력을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최근 잦은 여성 대상 범죄로 악명이 높은 인도에서는 ‘불가촉천민’ 취급을 받는 남편과 사별한 여성들을 타지마할에 초청하는 행사가 열렸다. 또 성폭행당한 여성에게 “더럽혀졌다”며 황산테러를 하는 범죄를 비난하는 피해 여성들의 모금 행사도 있었다. 국제여성인권단체 페멘(FEMEN)과 배스터스(Bastardxs) 회원들은 파리와 브라질에서 “가슴을 드러내는 것은 우리에게 무기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상의를 벗는 퍼포먼스를 했다. 클린턴 가족 소유의 클린턴재단은 광고회사와 손잡고 성 상품화에 반대하는 취지를 담아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40여 개 옥외광고에서 여성의 모습을 지웠다. 유명인들의 이색 발언도 화제를 모았다. 괴짜 부호로 유명한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회장은 허핑턴포스트 블로그에 “여성을 기용 안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여성들이 리더가 되면 불안해하는 문화가 문제”라며 일침을 놨다. 그는 최근 셰릴 샌드버그의 린인재단이 주최한 성차별 퇴치회담에 참석한 소감을 전하며 “여성 기장이 스피커로 인사를 하면 승객들이 겁에 질린다. 여성이 지도력을 발휘하면 거부감을 느끼는 문화가 문제”라고 밝혔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 2015-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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