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콴유 前총리 타계]‘질서의 나라’답게… 추도 메모로 차분한 조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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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 특파원 현지 르포 2信

싱가포르 정부가 마련한 리콴유 전 총리의 분향소는 ‘통제 속의 꽉 짜인 질서’가 특징인 이 나라 문화를 반영하는 듯 특이했다. 우선 분향소 자체가 한국에서 흔히 보는 모습이 아니었다. 고인의 시신이 안치된 이스타나 대통령궁 정문 오른쪽에 높이 2.5m, 폭 1m, 두께 30cm의 흰색 페인트로 칠한 6개의 큰 나무 게시판이 줄지어 있고 그 앞에 시민들이 꽃다발을 놓는 식이었다. 영정이나 향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이곳을 ‘트리뷰트 플레이스(tribute place·추모 장소)’라고 불렀다.

게시판 뒤덮은 추모 쪽지 24일 이스타나 대통령궁 앞 분향소에 조문객들이 남긴 추모의 글과 꽃다발이 빼곡하게 놓여 있다. 싱가포르=이설 기자 snow@donga.com
게시판 뒤덮은 추모 쪽지 24일 이스타나 대통령궁 앞 분향소에 조문객들이 남긴 추모의 글과 꽃다발이 빼곡하게 놓여 있다. 싱가포르=이설 기자 snow@donga.com
리 전 총리 타계 이틀째인 24일 오전 10시부터 줄을 길게 늘어선 시민들은 차분하게 현장 안내를 받아 나무 게시판 앞에 선 뒤 묵념을 하거나 꽃을 놓았다. 그러고는 게시판 앞 테이블에 놓인 메모지와 펜으로 조용히 추모 글을 남긴 뒤 투명함에 넣었다. 양미간에 주름이 질 정도로 진지하게 공을 들여 글을 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간혹 흐느끼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화를 한다거나 통곡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아 분위기는 정적에 가까울 정도로 조용했다.

안내를 맡은 공무원(군인)들은 분향소가 붐비지 않도록 추모객들을 다섯 명씩 끊어 들여보냈다. 함에 메모지가 가득 차면 일일이 꺼내 내용이 괜찮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판 앞뒤(한 면에 54개씩)에 질서정연하게 꽂았다. 한 안내원은 “오늘 아침까지만 메모지가 벌써 2만 장 가까이 나갔다”고 말했다. 게시판에 가로세로로 나란히 꽂힌 메모들은 깨알같은 글씨로 긴 사연을 담은 것도 있었고 짧게 고인에 대한 추모 내용을 적은 것들도 많았다.

‘우리가 집이라 부를 수 있는 아름다운 나라를 이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싱가포르를 위한 당신의 일생에 걸친 헌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분향소 앞에서 만난 리안 핑 씨(58·주부)에게 “싱가포르의 ‘메모 분향’이 특이한 것 같다”고 기자가 말을 건네자 “글로 차분하게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질서를 좋아하는 우리 싱가포르인들에게 맞는 추모 방식인 것 같다”고 답했다.

싱가포르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슬픔에 잠겨 있다. 한낮 평균기온이 31도나 될 정도로 덥고 습한데도 추모 열기는 시간이 갈수록 달아오르고 있다. 대표 일간지 스트레이츠타임스는 24일자 지면 전체를 리 전 총리 업적과 살아온 길을 소개하는 기사로 채웠고, 공항 지하철 버스터미널 식당 등에 설치된 TV에서는 추모 특별방송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다민족 사회(중국계 75%, 말레이계 13%, 인도계 12%)답게 TV에서는 중국계를 비롯해 히잡(무슬림 여성들이 쓰는 가리개)을 쓴 말레이계, 터번을 쓴 인도계 주민들의 인터뷰가 번갈아 나왔다. 노동조합 연합체인 전국노동조합(NTUC) 조합원들도 이날 1분간 묵념하는 행사를 하기도 했다.

이곳 사람들의 일상은 변함없는 듯했지만 얼굴에선 ‘큰어른을 잃었다’는 상실감이 확연하게 엿보였다. 인상 깊었던 점은 시내 곳곳에서 만난 젊은이들도 하나같이 똑같은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 가난을 겪지 않아 중장년층과는 감회가 다를 것이고 성장의 대가로 자유를 억압당한 것에 비판적인 의견도 나올 법한데 대부분이 “리콴유가 있었기에 오늘의 싱가포르가 있다”고 말했다.

분향소 앞에서 만난 난양이공대(NTU) 학생 로널드 림 씨는 “한국 기자까지 이렇게 취재를 오고 외신들도 그의 죽음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는 것을 보고 조국과 ‘파운딩 파더(founding father·건국의 아버지)’에 대해 더 강한 자부심을 느끼게 됐다”며 “언론을 통제하고 일당독재나 다름없이 정치적 다원주의를 배척한 점 등은 오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엔 너무 가난해서 모든 걸 돌볼 여력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조문객 이안 왕 씨(68)는 “싱가포르 청년들도 ‘리콴유 키즈’라 그의 업적을 대략은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싱가포르=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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