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영

신광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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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광영 논설위원입니다.

neo@donga.com

취재분야

2025-11-19~2025-12-19
칼럼100%
  • [오늘의 동아일보]서민과 멀어진 ‘고시 등용문’ 外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특채 파동 등으로 특채를 50%까지 늘리려던 행정고시 개편안이 무산됐다. 고시제도가 다시 한 번 ‘신분상승의 사다리’로서의 입지를 다진 셈. 과연 그럴까. 요즘 고시촌에선 ‘유전(有錢)합격, 무전(無錢)불합격’이란 말까지 나오는데…. ■ 뮤지컬배우 망치 습격사건화려한 뮤지컬 무대 뒤로 관객들은 모르는 ‘쩐의 전쟁’이 있었다. 뮤지컬 주연 배우는 밀렸던 출연료를 현금으로 주겠다는 공연 제작사 간부 말을 철석같이 믿고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공연장으로 찾아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돈봉투가 아닌 무시무시한 쇠망치였다. 대낮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황당한 ‘망치 테러’ 사건의 전말을 알아봤다. ■ 거가대교 탄생시킨 공학수조8.2km의 거가대교가 100년 만에 찾아온 슈퍼 태풍에 흔들린다. 방파제가 무너지며 해저터널로 바닷물이 들어간다. 다행히 실제 상황은 아니다. 70분의 1로 축소한 모형이다. 테니스장 4개 크기의 수조에서 혹독한 안전성 시험을 거친 끝에야 거가대교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데….}

    • 201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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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압박 면접? 모욕 면접!

    취업준비생 이현경 씨(가명)는 2년 전 그날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 휴대전화 제조업체 면접장에서의 일이다. “아버지가 안 계시느냐는 질문에 ‘이혼하셨다’고 답했더니 ‘부모님이 왜 이혼을 했냐’고 묻더군요.” 생전 처음 받아본 질문에 당황한 이 씨는 “아버지가 외도 문제가 있으셔서…”라고 했다. 면접관은 다시 “언제 이혼했냐”고 물었고 이 씨는 “제가 중학교 때”라고 답했다. “중학교 때면 별로 상처 안 받았겠네. 그래도 그런 일 겪고 나면 남자 못 믿게 되지 않나? 우리 회사 남자 직원들 많은데 잘 지낼 수 있어요?” 이 씨는 주변의 남자친구들을 거론하며 “공과 사는 구분한다”고 답했지만 말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다시 면접관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현경 씨. 지금 눈물 흘리려는 거 같은데…. 그것 봐, 눈물 흘리잖아. 이 상황을 이기지 못하는 거잖아요. 그래 가지고 사회생활 하겠어요?” 이 씨는 눈물을 머금고 면접장을 나왔지만 그날 일은 그에게 깊은 상처가 됐다. “이후로 면접을 네 번 더 봤는데 혹시라도 그 질문이 나올까봐 자꾸 위축이 돼요. 얘기를 잘하다가도 부모님 관련한 질문이 나오면 자꾸 말이 꼬이고….” 서울의 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취업준비생 김영준 씨(가명)는 23일 기자에게 일기장을 보여줬다. 지난해 12월 국내 최대 규모의 인터넷 다운로드 업체에서 면접을 본 날 쓴 일기였다. “나라는 인간이 한없이 비참하다. 정말 열심히 해서 언젠가 면접관이 되면 나는 절대 그러지 않으리라.” 그날 김 씨가 만난 면접관 8명 중 4명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회사에 입사하면 누가 제일 갈굴(괴롭힐) 것 같아요?” “누가 제일 일 못하게 생겼어요?” ‘군대에서 신병을 괴롭힐 때나 나올 질문’이라는 생각에 김 씨는 기가 막혔다.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진 면접. 가운데 앉아 있던 면접관이 담배를 끄며 말했다. “김영준 씨, 안 뽑을 테니 나가 보세요.” 청년백수 35만 명 시대. 기업 면접장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본보는 회원수 128만 명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인터넷 취업카페인 ‘취업 뽀개기’를 통해 설문조사를 했다. 설문에 응시한 386명 가운데 63%인 241명이 면접 도중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 중 인격적인 무시를 당했다고 답한 비율이 37%로 가장 많았고, 면접관이 성추행으로 느껴지는 언행을 하거나 성차별적인 발언을 했다고 답한 사람도 19%에 달했다. 영업직에 지원한 여성 구직자는 “영업을 하려면 술자리에서 고객의 비위를 잘 맞춰야 하는데 남자를 다룰 줄 아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여성 지원자를 일으켜 세워 모델워킹을 해보라고 시키는 사례도 있었다. 문제가 된 기업 관계자는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압박면접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압박면접은 지원자의 약점을 파고들어 발언의 진위를 검증하고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자질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정보국이 첩보원을 선발하려 만든 이 방식이 미국 금융가에서 주로 쓰였다. 취업 컨설팅업체인 ‘커리어 코치’ 윤영돈 소장은 “한국 기업들도 지난 10여 년간 압박면접을 해왔다”며 “사생활 침해와 성차별 관행에 관대한 우리문화의 특수성이 녹아들다 보니 압박면접이라는 이유로 인권이 침해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압박면접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고 평가받는 한국얀센. 이 회사는 매년 채용 절차가 시작되기 전 면접관을 대상으로 3차례에 걸쳐 면접 교육을 진행하고 지원자를 논리적으로 압박하는 자체 매뉴얼도 개발했다. 면접관들끼리도 서로 교차 평가하는 제도를 도입해 인권 침해 소지를 최소화했다. 한국얀센 오경아 이사는 “면접관 교육을 할 때 외모나 학력, 가정사 등 직무능력과 무관한 부분은 건드리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신과 전문의가 면접에 참여하기도 한다. 건국대 의대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는 “압박면접 자체가 고도의 심리적 과정이기 때문에 면접관들이 일반 면접보다 훨씬 심도 깊게 준비해야 한다”며 “압박을 통해 무엇을 검증할 지를 분명히 설계하지 않으면 압박면접이 모욕면접으로 전락하기 쉽다”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송인광 인턴기자 연세대 경영학과 4년양성희 인턴기자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4년유민영 인턴기자 고려대 법학과 4년}

    • 2010-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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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동아일보]“남자 잘 다루나?”… 도 넘은 압박면접 外

    어렵게 1차 시험에 통과했는데…. “남자 다룰 줄 알아요?” “부모님 왜 이혼하셨어요?” “외모 때문에 고생 좀 하죠?” 면접관이 던진 질문들. 일자리 얻으러 갔다가 가슴에 비수를 맞고 돌아오는 구직자들이 늘고 있다. 미국에서 건너온 압박면접, 한국에선 ‘모욕면접’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청년백수 35만 명 시대. 면접장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 세계 첫 전체 ‘페이스 오프’3월 세계 최초로 안면 전체 이식 수술을 받아 화제를 모았던 스페인 남성 오스카 씨가 27일 언론에 처음 모습을 나타냈다. 비록 완벽한 얼굴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음료를 마시고 말도 할 수 있고 피부의 자극을 느끼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가족과 식사를 하거나 거리를 걸어보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 벤처, 특허 팔아 200억 매출창업 후 9년 동안 적자만 냈다. 투자자들에게 빌린 돈도 못 갚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런 기업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어째서일까. 기술 중심 강소회사를 꿈꾸며 10여 년간 융합 연구개발(R&D)에 몰두해온 한 기업의 반전 성공 스토리를 좇아가봤다.}

    • 2010-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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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자체들 낯뜨거운 ‘콩글리시 행정구호’ 많아

    부산 동구의 대표 슬로건인 ‘SingSing 동구’. 미래로 ‘씽씽 달린다’와 ‘싱싱하다’는 의미의 중의적 표현에서 나온 구호다. 기자가 내민 설문지에서 이 구호를 본 미국인 메릴린 플럼리 교수(한국외국어대 영어과)는 ‘헉’ 소리를 냈다. “‘싱싱’은 싱싱 감옥(singsing prison)을 연상시키는데요.” 미국 뉴욕 허드슨 강변에 있는 싱싱 교도소는 흉악범 집중 수용소로 악명이 높다. 플럼리 교수 옆에 있던 캐나다인 스티븐 애도런티 교수(한국외국어대 영어과)는 경북 상주의 구호 ‘Just+ 상주’를 가리키며 “‘뭐 그냥 상주. 올 필요 없어요.’ 이런 느낌인데요”라고 말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246개 중 44%인 108곳이 영어 구호를 쓴다. 이에 대해 한국외국어대 외국인 교수와 유학생 20명을 대상으로 물어봤다. 경기 고양시 구호인 ‘Let's Go yang’에 대해선 “양고기 먹으러 가자”라는 반응이 많았다. 충남 서천군의 ‘Amenity Seocheon’에 대해선 “어메니티(amenity)가 무슨 뜻이냐”, 충남 공주시의 ‘Hi-Touch Gongju’를 보고서는 “안녕 인사하면서 손뼉 치는 거?”라는 반응이 나왔다. 애도런티 교수는 “공주는 백제 왕조의 수도였는데 왜 ‘높이 뛰는 운동’을 연상시키는 표현을 했지요? ‘Royal 공주’라고 하면 어떨까요. 외국인들은 역사에 열광합니다”라고 말했다. 뜻이 통하지 않는 조어도 많다. ‘Greenpia’(서울 도봉구), ‘Dreampia’(대구 남구) 등 단어에 유토피아(Utopia)의 ‘pia’만 붙인 사례가 대표적. 플럼리 교수는 “‘피아(pia)’는 뜻 자체가 없는 말이라 그린피아라고 하면 우스꽝스럽게 들린다”고 말했다. 울산(Ulsan for you)과 경남 김해(Gimhae for you)처럼 같은 구호를 쓰는 곳도 많다. ‘Yes’ ‘Happy’ ‘Pride’ 등의 표현은 10여 개 지자체에서 함께 쓴다. 지자체 영어 구호의 상당수는 외국인도 모르고 한국인도 몰랐다. ‘Super 평택’을 구호로 쓰고 있는 평택시는 구호를 응용해 ‘슈퍼오닝(SuperOning)’이란 지역 농산물 상표도 만들었다. ‘Super(슈퍼)’+‘Origin(오리진)’+Morning(모닝)’의 합성어란 게 평택시의 설명. 파주시는 시 구호를 지난 5년간 매년 바꿨다. ‘Upgrade PAJU’, ‘Back-to-Basics PAJU’, ‘YES, WE CAN!’에 이어 올해 구호는 ‘New More G&G PAJU’. 구호가 바뀔 때마다 홍보물도 새로 만들었다. 현수막과 플래카드 제작 의뢰를 받은 광고기획사 관계자는 “올해 제작비가 1800만 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게 구호에 들어간 ‘G&G’의 뜻을 묻자 “생각을 안 해봤다”고 했다. 확인 결과 ‘G&G’는 ‘Good & Great’였다. 이마저 정부시책으로 녹색성장이 강조되면서 ‘Green & Global’로 또 바뀌었다. 파주시 관계자는 “시민들이 뜻을 모르면 궁금해서라도 더 찾아보게 되지 않을까요?”라는 기가 막힌 ‘해몽’을 내놓았다. ‘콩글리시 행정’은 지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행정안전부는 최근 ‘Walking School Bus(워킹 스쿨버스)’ 제도를 시작했다. 초등학생들이 어른들의 인솔하에 걸어서 등하교하는 제도다. 학부모 민원기 씨는 “미국과 남미에서 17년간 살았지만 교사의 설명을 듣고서야 어떤 제도인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공문에 쓸 때는 ‘Walking School Bus’와 함께 ‘보행안전도우미사업’을 병기하지만 현장에선 한글 이름이 더 어렵다며 영어를 쓴다”고 해명했다. 보건복지부의 ‘Tour Talker’(현지 노인이 관광객을 안내하는 제도), 교육과학기술부의 ‘Wee project’(학생안전통합시스템)도 이해가 어려운 정책명이다.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김일태 교수는 “정부가 시민에게 다가서는 행정을 하겠다고 공언해 왔지만 여전히 공급자 중심의 발상을 하고 있다”며 “기업이야 상품명을 잘못 지으면 기업 자신의 손해지만 공공기관이 이름을 잘못 쓰면 시민들이 피해를 본다”고 지적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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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동아일보]시간강사들 현실이 어떻기에 外

    한 달에 평균 40만6250원을 번다. 대학 강의의 33.8%를 담당하지만 직장에서는 국민연금, 건강보험도 적용받지 못한다. 10명 중 9명은 계약기간이 6개월 이내여서 다음 학기 강의가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5만7000여 명으로 추산되는 대학 시간강사의 현실이다. 한 대학 시간강사가 교수 임용 탈락 등을 비관해 자살한 사건을 계기로 시간강사의 열악한 처우가 다시금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 복거일이 쓰는 6·25 ― 지평리 전투4월 1일자 춘천지구전투로 시작해 다부동전투 인천상륙작전 운산전투로 이어온 ‘복거일의 6·25의 결정적 전투’가 지평리전투로 막을 내린다. 중공군에게 밀려 서울까지 내주었던 유엔군은 지평리전투의 승리를 발판 삼아 재반격에 나섰다. ‘결정적 전투’를 통해 한층 또렷해진 6·25의 모습은 무엇보다 우리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게 한다. ■ 어느 베트남댁의 ‘피보다 진한 가족사랑’열여덟 살 베트남 신부는 한국에서 인생 역전을 꿈꿨다. 하지만 남편은 일곱 식구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자신과 피 한 방울 안 섞인 전처 소생 아이들 셋, 반신불수로 누워있는 시아버지…. “고향으로 가든지 재혼하라”는 권유에도 불구하고 스물네 살 킴풍 씨가 가족들 곁을 지키는 이유는? ■ 그 많은 현수막, 선거 후엔 어디로 갈까선거를 앞두고 거리마다 현수막 홍수다. 그 많은 현수막은 선거가 끝난 뒤 어디로 갈까. 폐현수막을 수거해 친환경 생활소품을 만들겠다고 나선 ‘착한 회사’가 있다. 20대 여성 5명이 만든 ‘터치포굿’이다. 이들의 손을 거치면 폐현수막이 예쁜 가방과 멋진 지갑으로 다시 태어난다. ■ 영화 ‘포화 속으로’ 주연 권상우 인터뷰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배우 권상우에게 영화 ‘포화 속으로’는 전쟁의 공포를 느낄 수 있는 값진 기회였다. 이 영화에서 학도병으로 출연한 그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개인적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이 교육적인 측면에서 이 영화를 많이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 그리스 기자들이 본 한국 축구 문제점은“북한보다 경기력이 떨어진다.” “최근 한국의 경기 중 최악이었다.” 한국의 남아공 월드컵 본선 첫 상대인 그리스의 기자들이 지난달 30일 한국과 벨라루스의 평가전을 지켜본 뒤 한 말이다. 12일 1차전이 끝난 뒤 한국 기자들이 그리스 기자들에게 되돌려줄 말이 되길 기대한다.}

    • 201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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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세 베트남 새엄마는 천사”

    《다섯 살배기 막내딸은 더는 바나나 우유를 찾지 않았다. 밤새 고깃배를 탄 남편이 아침에 돌아오면 무릎에 드러누워 바나나 우유를 사달라고 조르던 아이는 그렇게 아빠의 빈자리를 표현했다. 남편이 사고로 세상을 뜬 지 2년. 홀로 여섯 식구를 떠안게 된 베트남 아내는 그사이 한국말 실력이 훌쩍 늘었다. “하이고 마, 이 먼 데까지 어예 왔는교?” 지난달 26일 울산 울주군의 한 어촌에서 만난 쿠엔킴풍 씨(24)는 오후 10시를 넘겨 일을 마치고 귀가 중이었다. 현관에 들어서니 네 아이가 엄마를 맞았다. 고1 큰딸, 중2 둘째 딸, 초등학교 6학년 셋째 아들, 그리고 막내 딸. 이 중 킴풍 씨가 낳은 아이는 막내뿐이다. 나머지 세 남매는 남편이 이혼한 전 부인과 낳은 아이들이다.》 “미안하구나, 우리 며느리”“너 안붙잡는다, 새 출발하라”고 했지만…청소일 등으로 힘겹게 일곱식구 생계 꾸려“고마워요, 우리 엄마”고1인 저와 9살차… 처음엔 까칠하게 대했죠이젠 한국어 가르쳐드려요, 울산 사투리도 함께“사랑해요, 우리 가족”올해 처음으로 어버이날 편지-카네이션 받아이런 착한 애들 두고 고향으로 어예 가겠는교?킴풍 씨는 신발을 벗자마자 안방에 들어가 시아버지의 전기장판 온도를 체크했다.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불수인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와도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킴풍 씨가 바닥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정리하고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나오자 아홉 살 차인 큰딸이 엄마를 앉히더니 어깨를 주물렀다. 2004년 한국에 올 때만 해도 킴풍 씨는 ‘인생 역전’을 꿈꿨다.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남편이 제 눈엔 참 듬직했어요. 친정이 가난하니까 돈도 부치고 남편과 오순도순 살고 싶었죠.” 하지만 열여덟 살 베트남 소녀를 기다리고 있는 건 어린 세 남매와 시부모였다. 전처가 남긴 빚까지 떠안게 된 남편은 계속되는 빚 독촉에 직장을 그만둬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시어머니와 함께 뱃일을 시작한 남편은 오전 2시에 배를 타 오전 9시가 돼서야 집에 돌아왔다. 오후에는 그물 정리 등 작업 준비로 바빴고 저녁을 먹으면 곧장 잠에 빠졌다. 킴풍 씨는 “말도 서툰 데다 어머니와 얘기 나눌 시간도 없어서 어머니만 보면 늘 무서웠다”고 했다. 결혼 1년 만에 낳은 막내가 투정을 부리면 시어머니는 “네 고향 아이니까 저러지, 한국 아이들은 절대 안 그런다”며 면박을 주기도 했다. 킴풍 씨가 기댈 곳은 자신과 낳은 막내딸을 끔찍이 아끼던 남편뿐이었다. 남편은 아침에 녹초가 돼서 귀가해도 막내가 바나나 우유를 찾으면 벌떡 일어나 사오곤 했다. 하지만 순탄해져 가던 결혼 생활도 4년 만에 끝이 났다. 2008년 6월 남편과 시어머니를 따라 함께 뱃일 나간 날, 배 뒤편에 있던 남편이 파도에 휩쓸렸다. 남편은 허우적대며 4, 5차례 물 위를 오르내리더니 거품을 내며 가라앉았다. 남편을 잃은 상처를 다독일 겨를도 없이 킴풍 씨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스물두 살의 젊은 색시에겐 유혹이 많았다. 친정 식구들과 베트남 친구들은 “남편도 없이 한국에 과부로 남아있을 이유가 뭐가 있겠느냐. 고향으로 돌아오든지 다른 한국 남자와 재혼을 하라”고 권유했다. 시어머니도 “살기 힘든 거 뻔히 아는데 안 붙잡는다. 비행기 값 마련해 줄 테니 원하면 언제든지 떠나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킴풍 씨는 “아빠마저 잃게 된 세 남매가 눈에 밟혔다”고 했다. “제 딸이야 친엄마라도 있잖아요. 근데 얘들은 저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아빠, 엄마가 있었으면 이렇게 안 살 텐데, 돈 없어서 시내도 못 나가고 친구들처럼 옷도 못 사 입고 하다못해 교복도….” 킴풍 씨는 교복 얘기를 꺼내다 눈물을 주룩 흘렸다. 올해 여상에 입학한 큰딸은 입학식 전날까지 20만 원가량 하는 교복을 사지 못했다. 킴풍 씨가 면사무소에 여러 차례 사정한 끝에 후원금을 받아 겨우 마련할 수 있었다. 어렵게 한국에 남기로 결심은 했지만 홀로 짊어진 생계의 짐은 만만치 않았다. 현재 하고 있는 모텔 청소 일은 일감이 규칙적이지 않아 한 달 벌이가 30만 원 안팎. 여기에 정부 보조금 80여만 원을 보태 110만 원으로 일곱 식구가 산다. 이 중 30만 원은 당뇨와 심장질환까지 앓고 있는 시아버지 병원비로 들어간다. 지붕에서 비가 새 방바닥이 빗물로 젖지만 600만 원이 넘는 수리비를 마련할 수 없어 장마철엔 이불을 펼치지 못한다. 시어머니 최영옥 씨(63)는 “이 힘든 생활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며느리는 늘 웃는 얼굴”이라며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솔직히 내가 낳은 자식보다 며느리가 낫다”고 말했다. 시어머니는 지난해 말 친척들을 수소문해 150만 원을 빌렸다. 그 돈으로 킴풍 씨는 막내딸과 베트남 고향에 다녀왔다. 고향에 자주 연락하라고 며느리에게 매달 국제전화카드도 사준다. 킴풍 씨가 한국말을 하면 서툴다고 무시하던 세 남매도 지금은 엄마의 전담 한국어 선생이 됐다. 과거 킴풍 씨와 눈도 잘 맞추지 않았던 초등학생 아들도 배다른 여동생이 투정을 부리면 업어서 달랜다. 학교 부설 어린이집에 다니는 여동생을 위해 등하굣길마다 동생을 챙겨 손잡고 다닌다. 한번은 아버지 사망 직후 친권자로 등록되어 있는 생모가 보상금 수령 포기 각서를 쓰기 위해 집을 찾았다. 친엄마를 향해 큰딸이 쏘아붙였다. “아줌마, 할 일 끝났으면 어서 돌아가세요. 곧 엄마 오실 텐데 아줌마랑 마주치면 기분 안 좋으실 거예요.” 자신들을 버리고 빚까지 남긴 친엄마와 그래도 곁을 지켜준 새엄마에 대한 애증이 겹친 말이었다. 지난달 8일 어버이날, 킴풍 씨는 한국 생활 6년 만에 처음으로 아이들로부터 카네이션과 편지를 받았다. “엄마 저희한테 잘해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앞으로 잘 살아봐요.” “수학 47점 맞아 왔을 때 학원 못 보내줘서 미안하다고 하셨죠. 죄송해요. 앞으론 열심히 해서 변호사 될게요. 그땐 꼭 효도할게요.” 킴풍 씨는 다 말라버린 카네이션을 주방 싱크대 벽에 테이프로 붙여 놓았다. “평소 용돈 한번 제대로 준 적이 없는데 그 비싼 꽃을 어떻게 사왔을지 짐작이 가서 차마 못 버리겠어요. 이렇게 사는데 기자님이라면 고향 가고 싶겠어요?” 후원 문의 어린이재단 1588-1940 울주=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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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의 눈/신광영]아동성폭행 피해 감추기가 키운 자책의 상처

    조두순에게 끔찍한 일을 당한 나영이는 최근 ‘개학 전에 전학을 가라’는 아빠의 권유에 고개를 저었다. 대신 “친구들이 나를 이해해줄 것”이라며 아빠를 설득했다. 나영이는 방학 동안에도 친구들을 자주 집에 불렀다. 헤어질 땐 어김없이 집에 바래다줬다. “혼자 다니지 마라”, “큰길로 다니라”는 조언도 많이 한다. 나영이는 4일 통화에서 “저는 더 다칠 일이 없지만 친구들은 다치면 안 되잖아요”라고 했다. 나영이도 처음에는 알려지는 게 싫었단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관심으로 자신감을 찾았다. 나영이 아버지는 “요즘은 안부전화가 오면 아이가 직접 받아 또박또박 설명한다”고 말했다. 4일 오후 5시부터 동아일보가 만드는 인터넷 방송뉴스 ‘동아 뉴스스테이션’(station.donga.com)에 방송된 탐사리포트 ‘아동성폭행, 가족이라는 지옥’을 취재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피해아동의 신원보호였다. 가정 내 성폭행이라는 예민한 주제다 보니 보호기관 관계자는 “외부에 알려지면 아이가 또 상처를 받는다”고 강조했다. 친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수진이(가명)와는 끝내 만남이 허락되지 않아 방 한 칸을 사이에 두고 전화로 대화를 나눴다. 피해 아동들이 흉악범죄의 피해자로 위로받기보다 또 다른 ‘문제아’로 낙인찍히고, 가해자로부터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신원보호는 지당하다. 하지만 쉬쉬하는 것만이 능사일까. 성폭행 피해 아동들은 자책감에 시달린다. 나영이 주치의였던 신의진 강남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한 아이의 경우 ‘아빠가 밥을 주니까 나는 이거 해줘야 되는 거 아닌가’ 해서 저항을 못하다 뒤늦게 상황을 알게 되면 자기를 탓한다”고 말했다. 4년 동안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수진이도 그 때문에 침묵의 세월을 보냈다. 그런 아이들에게 “네가 당한 일을 감춰야 한다”는 시선은 피해자의 자존감을 더 떨어뜨려 상처를 각인시킨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신 교수는 “상처는 치료 후 공유하는 게 원칙”이라며 “무조건 숨겨주기보단 상처를 극복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8세 때 납치돼 성폭행을 당했던 미국의 제니퍼는 방송에서 당시 상황을 털어놔 19년 만에 범인을 잡았다. 피해자를 고개 숙이게 만드는 우리 사회에서 제2의 제니퍼가 나올 수 있을까. 지난해 추산된 우리나라의 성폭행 사건 신고율은 7%였다.신광영 영상뉴스팀 neo@donga.com}

    • 201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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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ou look like 권상우” 갈라파고스에도 한류가…

    갈라파고스 산크리스토발 섬 주민들이 기자에게 건넨 첫 인사말은 “You look like 권상우(당신, 권상우 닮았어요)”였다. 배우 권상우를 닮았다는 칭찬보다 갈라파고스 주민들이 그를 알고 있다는 게 더 신기했다. 알고 보니 권상우, 최지우 주연의 드라마 ‘천국의 계단’이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었다. 지역 방송에서 ‘천국의 계단’이 방영되는 평일 오후 6시부터 7시까지는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텔레비전을 보느라 거리가 한산했다. 스쿠버다이빙 용품 대여점을 운영하는 크리스티나 카스타뇨 씨(37)는 “매일매일 방송을 기다리는 게 힘들어 아예 DVD를 통째로 구했다”며 “어제 오후 6시부터 다 보고 나니 다음 날 오전 7시였는데 하도 슬퍼서 눈이 퉁퉁 부었다”고 말했다. 드라마 주제곡인 ‘보고 싶다’는 휴대전화 통화 연결음으로도 인기가 높았다. 한 여고생은 “권상우가 실제로 피아노를 잘 치느냐”고 묻기도 했다. DVD 대여점에 가보니 대표적 한류 드라마인 ‘겨울연가’와 ‘대장금’뿐 아니라 2007년 방영된 ‘커피 프린스’도 인기 대여품목에 들어가 있었다. 가게 주인은 “한국 드라마는 보통 예약을 하고 2, 3주를 기다려야 빌려갈 수 있다”고 했다. 중고교에 다니는 딸 셋을 키우는 이사벨 모리엔테스 씨(43)는 “에콰도르나 미국 드라마는 성적이거나 폭력적인 장면이 너무 많은데 한국 드라마는 사랑의 순수한 감정을 섬세하고 감동적으로 보여줘 아이들이 감수성을 키우는 데 참 좋다”고 말했다. 갈라파고스에 부는 한류 열풍은 드라마뿐만이 아니었다. 가정집이나 상점에 있는 가전제품도 삼성이나 LG 등 한국산이 대부분이었다. 영어를 거의 못하는 택시운전사 요세프 씨는 직접 “애니콜”을 외치며 “삼성 휴대전화는 갈라파고스에서 몇 안 되는 명품이고 젊은이들의 로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관심 중에 반갑지 않은 것도 있었다. 지난해 11월 갈라파고스에 도착한 권영인 박사 일행은 주민들로부터 경계의 시선을 받아야 했다. 그보다 한 달 전, 북한 남성 3명이 갈라파고스를 찾아 주정부와 잠수함 공급 관련 협의를 한 사실이 현지 주민들에게도 알려졌기 때문이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행색이 지저분한 권 박사 일행 3명은 ‘북한에서 온 것 같다’는 오해를 받았다. 현지 주민들은 권 박사 일행을 볼 때마다 “남한, 북한 어디에서 왔느냐”, “한국에 전쟁 난다는 얘기가 많은데 괜찮으냐”고 묻기도 했다.갈라파고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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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로스 미디어/다윈을 따라서]갈라파고스 프로젝트

    다윈의 항로를 따라 항해하는 권영인 박사(49)가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진화론의 발상지인 갈라파고스에 도착한 지난해 11월 28일. ‘장보고 주니어’호를 타고 들어온 권 박사 일행을 맞은 것은 해변의 바다사자 가족이었다. 새끼 한 마리를 갓 낳은 어미 사자는 ‘大’자로 드러누워 ‘산후조리’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날개 길이 1m가 넘는 군함새 10여 마리가 20cm 크기의 새끼 바다사자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새끼를 잡아먹나 했더니 새끼가 벗어놓은 누런 태반을 먹기 위해 경합을 벌였다. 태반을 낚아채 달아나던 군함새가 또 다른 동료의 공격에 먹이를 바다로 떨어뜨렸다. 물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펠리컨이 태반을 잽싸게 물어 삼켰다. 진화론의 바탕원리인 생물들의 치열한 경쟁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그 싸움의 와중에도 갓 태어난 바다사자는 어미의 품을 파고들며 눈도 못 뜬 채 젖을 빨았다. ○ 인간의 손을 탄 동물의 낙원 그러나 진화론의 발상지가 된 ‘생명의 원점’ 갈라파고스는 많이 변해 있었다. 175년 전 찰스 다윈이 이 땅을 밟았을 때의 감흥을 느껴보려는 권 박사의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다윈이 부리 모양의 차이를 보고 진화론을 도출했던 핀치새. 사람을 몰랐던 핀치는 권 박사가 부리를 보려고 4, 5m 앞으로만 다가가도 나무에 있다가 모두 날아가버렸다. 권 박사는 “170여 년 만에 사람을 무서워하는 잠재의식이 어떻게 유전될 수 있었을까”라며 아쉬워했다. 갈라파고스 생물들이 이제 사람의 손길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매년 1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찾으면서 갈라파고스의 관광수입은 본국인 에콰도르 전체 외화수입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주민들의 수입도 본토의 2, 3배가 넘다 보니 30년 전 2000명 정도이던 인구가 3만 명으로 급증했다. 사람의 발길을 따라 쥐나 염소 등 외래종이 유입되면서 진화론의 근거가 됐던 갈라파고스 고유 생물들은 터전을 잃었다. 식용으로 들여온 염소가 풀을 다 뜯어먹어 자이언트거북은 먹이가 부족해졌다. 갈라파고스란 섬 이름은 스페인어로 거북이란 뜻. 자이언트거북은 이 섬의 상징이다. 거북에게 또 다른 수난이 닥쳤다. 지구 온난화다. 지온이 29도가 넘으면 거북 알이 대부분 암컷으로 부화되기 때문에 이상고온 현상은 거북의 성비를 교란시킨다. 14종이던 거북이 최근 11종으로 줄어들 만큼 멸종 위기에 처하자 갈라파고스 국립공원은 전문센터를 만들어 그 안에서 거북을 키우고 있다. 권 박사는 “이상고온은 거북들만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항해를 하는 우리에게도 재앙”이라고 했다. 권 박사 일행은 배 위에서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톡톡히 실감했다. 통상 해수 온도가 26도 이하면 허리케인이 발생하지 않는다. 10월 말 수온은 보통 25도 이하로 떨어져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하지만 11월 멕시코 출항 당시 바다 온도는 30도였다. 실제로 출발 직전 풍속 265km의 허리케인 ‘릭’이 불어닥쳐 배가 떠내려갈 뻔했고, 항해 중 강풍을 만날 때마다 허리케인이 아닐까 마음을 졸여야 했다. ○ 쉴 곳 잃은 바다제비 보며 동병상련 센터 안에 갇혀있던 거북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권 박사는 “생물과의 교감을 기대하고 갈라파고스에 왔는데 배에서 만난 바다제비와의 인연만 못하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밤새 파도와 싸운 다음 날 아침이었다. 참새만 한 바다제비가 배 위에 날아들었다. 제비는 배 위를 서너 바퀴 돌며 선원들의 눈치를 보더니 갑판 난간에 내려앉아 날개에 머리를 묻고 잠이 들었다. 반경 수백 km 이내에 섬이 전혀 없고 파도가 높아 쉴 곳을 찾지 못했던 바다제비는 얼마 뒤 깨어나 아예 선실로 내려가 테이블 위에서 본격적으로 숙면에 들어갔다. 전날 밤 배 안에서 공포에 떨었던 권 박사는 잠든 바다제비를 보며 동병상련을 느꼈다. 권 박사나 바다제비나 기댈 건 자연의 자비뿐이었다. 이튿날 아침 바다제비는 권 박사 머리 위로 날아올라 세 바퀴쯤 돌더니 다시 바다로 날아갔다. 하지만 갈라파고스에서는 권 박사가 기대한 자연과의 교감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길가의 벤치도 바다사자가 비워둔 자리만 사람이 앉을 수 있다”던 현지인의 설명은 현실과 달랐다. 권 박사의 배가 정박한 산크리스토발 섬의 항구는 갈라파고스 주지사의 공약에 따라 건립된 관광용 데크로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다. 본래 그곳에서 살던 바다사자들은 항구 주변에 방치된 난파선에 자리를 잡았다. 거리에는 각종 고기를 숯불에 놓고 드라이어로 구워 파는 노점이 즐비했다. 진화론이 탄생한 ‘생명의 땅’에서는 저녁만 되면 골목마다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메탄 밀집지역 발견 성과도 하지만 예기치 못한 성과도 있었다. 권 박사 팀이 갈라파고스에 도착하기 하루 전인 지난해 11월 27일. 선실에서 실험용 컴퓨터를 보던 권 박사가 ‘배를 세우라’고 다급히 소리쳤다. 바닷물 속 메탄 농도가 표시된 그래프가 위아래로 요동을 쳤기 때문이었다. “이거 장난 아닌데. 동해에서 가스 하이드레이트가 나온 곳의 두 배는 되겠어.” 갈라파고스 제도 중 하나인 산크리스토발 섬 동북쪽 해상 30마일 지점에서 메탄 밀집 해저지역을 발견한 것. 해수면에서 측정한 바닷물 속 메탄 양은 일반 해수의 70배인 L당 3.7μmol(마이크로몰). 새 에너지원인 ‘불타는 얼음’ 가스 하이드레이트가 발견된 동해의 해저 2000m 측정값은 2.5μmol이었다. 바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메탄이 많아지는 것을 감안하면 그때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권 박사는 “이렇게 높은 값을 보이는 것은 해저에 가스 하이드레이트가 있든지, 아니면 화산활동에 의한 작용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만일 이곳에서 가스 하이드레이트가 발견된다면 권 박사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소속이던 2007년 동해에서 가스 하이드레이트를 발견한 데 이어 해외에서 다시 대체 에너지를 발견하는 셈이다. 권 박사 팀은 3월 말 여수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이번 탐사는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이사장 김재철 동원그룹회장)가 지원했으며, 2012여수세계박람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한다는 뜻도 담고 있다. 글·사진=갈라파고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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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리로 기자옆구리 퉁퉁 치고 핸드볼 공만한 대변 ‘뿌지직’

    1835년 갈라파고스에 상륙한 찰스 다윈은 자신의 저서인 ‘비글호 항해기’에서 “(핀치)새 몇 마리가 있었지만 그것들은 나에 대해 거북만큼도 관심이 없었다”고 썼다. 날개를 덥석 잡아도 순순히 몸을 맡길 만큼 핀치새는 인간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그 덕에 다윈은 핀치새의 부리를 마음껏 연구할 수 있었고 섬마다 다른 부리 모양은 진화론의 핵심적 근거가 됐다. 기자가 핀치새를 처음 만난 건 섬을 돌아보기 위해 탔던 택시 안에서였다. 핀치새는 정차해 있는 택시 사이드미러에 앉더니 신기한 듯 실내를 두리번거렸다. 부리 모양을 보기 위해 얼굴을 들이대니 푸드덕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숲에서 만난 자이언트거북은 지름이 1m쯤 되는 등딱지를 뒤뚱뒤뚱 흔들며 걸었다. 다윈은 갈라파고스 방문 당시 거북의 등딱지 모양이 섬마다 다르다는 현지인의 말을 듣고 진화론에 착안했다. 나무 이파리를 먹고 사는 거북은 고개를 높이 들어야만 살아남다 보니 풀이 많은 지역의 거북보다 목 부분 등딱지가 위로 솟아있었던 것. 등딱지를 자세히 보기 위해 뒤따라가는데 거북이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곤 꽁무니에서 걸쭉한 반죽을 한 무더기 떨어뜨리더니 부르르 떨었다. 진한 녹색 대변은 핸드볼 공만 한 크기였다. 거북은 기자가 앞쪽에 나타나자 자세를 낮추며 멈췄다. 그리곤 ‘꾸웅’ 소리를 내며 고개를 등딱지 안으로 넣었다. 갈라파고스 해변가에는 수백 마리의 바다사자가 나른한 모습으로 낮잠을 잤다. 워낙 수가 많다 보니 어미를 찾으려는 새끼들은 이곳저곳을 다니며 젖꼭지가 보일 때마다 주둥이를 들이댔다. 어미들은 ‘킁킁’ 냄새를 맡으며 자기 새끼가 아니면 거칠게 내쳤다. 육지에선 느린 바다사자들이지만 물속에서는 무척 날렵했다.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만난 바다사자들은 기자를 가운데 두고 지그재그로 가로지르더니 꼬리로 기자의 옆구리를 퉁퉁 쳤다. 얼마 뒤 한바탕 물고기 떼가 몰려들더니 그 사이로 길이가 1.5m쯤 되는 물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망치상어였다. 얼굴이 가로 30cm 정도의 널빤지처럼 생겼고 양끝에 눈이 달렸다. 기자는 “상어를 보면 움직이지 말라”는 말이 떠올라 숨을 죽였다.}

    • 201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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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년호 지면안내]다윈의 섬 갈라파고스에 닻을 내리다 外

    ■ 돛단배 타고 415일… 다윈의 섬 갈라파고스에 닻을 내리다배에서 본 7∼8m의 파도는 새파란 벽이었다. 벽과 벽 사이, 파도의 골짜기에서 배는 한 잎의 낙엽. 선실은 안전벨트 없는 롤러코스터였다. 적도 무풍지대에선 스크루에 그물이 걸려 일촉즉발의 위기…. 기댈 건 자연의 자비뿐이었다. 돛단배 타고 목숨을 건 항해에 나선 지 415일. ‘다윈의 항로’를 따라 3만 km를 돌고 돌아 ‘생명의 원점’ 갈라파고스에 닻을 내렸다. ■ 신년 인터뷰 - 브라운대 첫 흑인여성 총장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의 첫 흑인 총장인 루스 시먼스 브라운대 총장은 목화 농장에서 일한 부모의 12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는 2001년에는 타임이 뽑은 미국 최고의 총장으로 선정됐다. 그의 성공 비결과 교육 철학을 들어봤다. ■ 신년 좌담회 - 原電르네상스를 향하여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발전소 수주의 주역들이 모였다. 30년간 피땀 흘려 키운 원자력 기술이 위부터 아래까지 합심해 발로 뛰는 비즈니스 외교와 만나 큰 성과를 거뒀다. 바야흐로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이번 원전 수주의 의미와 앞으로의 과제를 짚어봤다. ■ 20년 백호 사육사가 말하는 호랑이백호에게서는 배울 점이 많다. 고독을 즐기며 드센 황호와 달리 평화롭게 어울려 지내길 좋아하고 성실하다. 한번 붙으면 이길 때까지 물러나는 법이 없는 강인함도 매력이다. 20년째 백호를 돌보는 ‘호랑이아빠’ 정상조 씨는 백호랑이 해를 맞는 감회가 남다르다. ■ 올해 美정가가 주목하는 여성 정치인 6인11월엔 미국에서 중간선거가 치러진다. 각 당은 2월부터 당내 경선을 치르면서 선거체제로 접어든다. 올해 특징은 유난히 여성 정치인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는 것. 주지사에서부터 상원의원들까지 여성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 허정무 축구대표팀 감독 와이드 인터뷰6개월 앞으로 다가온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준비에 여념이 없는 허정무 축구대표팀 감독(57)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무척이나 강조한다. 과거의 ‘진돗개’라는 별명답지 않게 넘쳐흐르는 자상함으로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허 감독을 자택에서 심층 인터뷰했다. ■ ‘中안개시장’서 정면승부 펴는 현대차글로벌 초일류 기업들이 새해 중국시장에서 생존의 길을 찾고 있다. 우리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 소비시장으로 우뚝 선 중국은 매일 치열한 격전이 펼쳐지는 다국적 기업들의 ‘전쟁터’다. 중국 ‘최전선’에서 공격 경영을 다짐하는 현대자동차 현지공장 및 판매법인을 취재했다.}

    • 201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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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로스 미디어/다윈을 따라서]갈라파고스 프로젝트

    장보고호 풍랑에 파손남미대륙 육로로 탐사도중 두번이나 강도 만나새 배 구입 다시 바다로스크루에 그물 엉켜 죽을고비‘검은 섬’이 마침내 눈앞에… 지난해 11월 28일 오후 6시. 화산암으로 뒤덮인 검은 섬이 노을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다윈의 진화론이 시작된 ‘생명의 원점’ 갈라파고스. 415일 전 ‘다윈의 길’을 따라 떠난 3만 km의 여정이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장보고 주니어’호 탐사대장 권영인 박사(49)는 “살아서 도착했다는 것 하나로 마음속 모든 응어리와 오랜 긴장감이 녹아내렸다”고 말했다. 권 박사와 지준명 선장(55), 권상수 대원(42)은 서로의 머리를 맞대고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죽을 고비갈라파고스 도착 일주일 전 적도 무풍지대를 지날 때였다. 저녁에 폭풍우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기 때문에 해가 지기 전 서둘러 주변의 섬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바람이 없어 배를 움직일 수 있는 건 엔진밖에 없었지만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엔진오일을 갈아보고 팬벨트도 점검했지만 이상이 없었다. 시간은 가고 파도는 무섭게 높아져 갔다.권 대원이 결국 바다에 뛰어들었다. 파도가 높은 바다에 뛰어드는 건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배 밑으로 가보니 스크루에 그물이 엉켜있었다. 서둘러 풀지 못하면 권 대원의 목숨은 물론이고 배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10여 분 만에 그물을 풀고 물 위로 올라온 권 대원은 오른손에 쥔 칼을 건네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왼팔 하나로 휘청거리는 배 위로 기어올랐다. 권 대원을 부축한 지 선장은 “다윈도, 탐사도 다 좋은데 일단 살고 봐야지”라고 했다.딱 1년 전인 2008년 크리스마스이브. 대서양 카리브 해 부근에서 정박을 시도하다 7∼8m 되는 파도를 만났다. 파도와 파도 사이에 배가 있었다.권 박사는 “배가 이쪽 파도 벽과 저쪽 파도 벽을 ‘핑퐁핑퐁’ 오가는 탁구공 같았다”고 했다. 파도에 튕겨 오른 배는 4∼5m를 자유낙하했다. 그는 선실 기둥을 붙잡고 밤새도록 롤러코스터를 타야 했다. 그는 “크리스마스 아침에 갑판 위에 올라가 보니 배가 닻줄이 끊어진 채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고 말했다. ○ 바다가 육지보다 안전배 위에서 숱한 죽을 고비가 있었지만 권 박사는 “비바람 몰아치는 바다가 봄바람 부는 육지보다 차라리 안전하다”고 했다. 권 박사는 사재를 털어 마련한 첫 번째 배 장보고호가 풍랑으로 부서진 뒤 새 배를 구하기 전까지 넉 달간 남미 대륙을 육로로 탐사했다.그는 지난해 4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길을 걷다가 등 뒤에서 ‘퍽’ 하는 소리를 들었다. 돌아보니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성 4명이 “네 등에 새똥이 떨어졌으니 닦아 주겠다”며 팔을 붙들었다. 그중 한 명이 가방을 대신 들어주겠다며 낚아채려 했다. 강도임을 눈치 채고 인근 역사박물관 화장실로 도망갔지만 괴한들은 그곳까지 따라와 몽둥이로 화장실 문을 두드렸다. 한참을 버틴 뒤에야 괴한들이 사라졌다.다윈이 화강편마암을 연구한 곳으로 알려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노사 세뇨라 성당 인근에서도 권 박사는 봉변을 당했다. 렌터카를 몰고 성당 주변의 빈민촌을 지나는데 총을 든 남자 2명이 건물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차를 세운 뒤 창문을 두드렸다. 두려운 마음에 무작정 차를 돌려 도망쳤다. 알고 보니 종종 총격사고가 나는데 마약상과 범죄자들이 몰려 있어 경찰이 접근을 못하는 곳이었다.○ 또 하나의 전쟁서양에는 “진정 잃고 싶지 않은 친구와는 함께 항해하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 바다에 갇힌 좁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 부대끼면서 미묘한 신경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6.6m2 남짓한 선실에는 권 박사와 지 선장, 권 대원이 함께 생활한다. 적도지방의 낮 기온은 보통 40도 안팎. 작열하는 태양을 피할 수 있는 갑판 위 천막 밑 자리를 두고도 신경전이 벌어졌다. 딱 한 사람밖에 앉을 수 없기 때문. 극도로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태에서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 아닌 전쟁을 벌여야 했다.강풍 지역에서 돛을 어느 정도 빳빳하게 펼지를 두고도 티격태격했다. “돛을 팽팽히 당겨 속도를 내야 한다”, “돛을 느슨하게 해 안전하게 가야 한다”고 의견이 갈리기 때문이다. 세 사람이 3시간씩 3교대로 키를 잡는데 근무자가 바뀔 때마다 돛의 모양이 바뀌었다.어느새 바뀌어 있는 돛 모양을 보고 “그 실력으로 어떻게 태평양을 건널 생각을 했느냐”는 등의 막말과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파도가 심해 밥을 못 해먹고 며칠을 과자로 때우던 와중이라 신경이 더 날카로워졌다. 배 안에선 하루 종일 속옷만 입고 지내는 사이지만 마음이 상하면 닷새 넘게 서로 말문을 닫고 끼니때마다 자기 식사만 몰래 해먹기도 했다.○ 다시 바다로2009년은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이 탄생한 지 200주년 되는 해. 권 박사는 이를 기념해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세계를 누비던 자취를 따라 항해하며 지구 변화 연구와 해양 자원 탐사를 하기로 했다. 2008년 10월 미국 아나폴리스에서 처음 장보고호를 타고 바다로 나섰다.하지만 2009년 초 강한 파도에 맞아 배가 파손되면서 함께하던 대원이 떠났다. 결국 3월부터 넉 달 동안 육로로 탐사를 진행했고 7월에 어렵게 두 번째 배인 장보고 주니어호를 마련했다. 때마침 항해 경험이 풍부한 지준명, 권상수 씨까지 항해를 함께하겠다며 자원하면서 권 박사는 항해를 재개할 수 있었다.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12월 18일. 갈라파고스에 20일을 머문 그들은 다시 태평양을 건너 한국으로 가는 8000km의 여정의 닻을 올렸다. 미국 아나폴리스에서 바다로 나선 지 435일째 되는 날이었다.갈라파고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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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아갈까” 한때 흔들려… “삶의 리셋” 마음 다잡아

    권영인 박사(49)는 ‘범생 과학자’였다. 첫 직장인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20년을 근무했다. 연구원에서 그가 이끌던 탐사대는 2007년 동해에서 ‘불타는 얼음’을 발견했다. 대체 에너지로 주목받던 가스 하이드레이트였다. 두둑한 연구비와 안정된 지위를 보장받았지만 그는 몇 달 뒤 사표를 냈다. 퇴직금이 필요했다. 마이너스통장까지 만들어 요트를 샀다. 20년을 다닌 첫 직장을 그만둘 때 선후배들이 밤에 집으로 와 “교도소 갈 사고 친 거 아니면 그냥 있으라”고 타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어릴 적 과학잡지를 보며 키워왔던 세계 해양탐사의 꿈은 오랜 염원이었다. 들뜬 마음에 시작된 항해는 후회의 연속이었다. 집채 같은 파도가 지나가고 나면 끝없는 지루함이 찾아왔다. 출렁이는 배에서 요리는 언감생심이었고 엔진 옆에 간이침대를 놓다 보니 엔진에서 나오는 유황냄새 속에서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침대에 몸을 동여매도 파도가 3, 4초 간격으로 찾아왔다. 배 위에선 허리를 펼 수 없고 걸을 곳도 없다 보니 몸은 서서히 굳어갔다. 비바람을 피해 배에서 항구로 뛰어내리다 척추마저 휘었다. 권 박사는 “하루 한갑씩 태우던 담배가 속이 울렁거려 피울 수가 없더라”고 했다. 더 힘겨운 건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첫 배인 장보고호가 지난해 3월 난파되자 한 명 있던 선원마저 떠나갔다. 헐값에 배를 넘기고 나니 새 배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할 만큼 했고 위험하니 후일을 도모하자”는 주변의 만류가 시작됐다. “성공하지도 못할 일을 호언장담하다 망가졌다”는 비아냥거림도 들었다. 항해 포기를 고심하던 차에 탐사 장비를 대준 독일 장비회사 사장이 스카우트 제의를 해왔다. 권 박사는 “고액 연봉은 둘째 치고 아이들에게 독일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 정말 고민이 컸다”고 했다. 그 유혹을 그는 끝내 뿌리쳤다. “남은 인생을 ‘리셋’하고 싶어서 절정의 자리를 박차고 나왔는데 지금 돌아가면 앞으로 나를 넘는 도전은 못할 거예요.” “후회가 없느냐”는 물음에 권 박사는 소리 없이 웃었다. “매일같이 아침 동트는 모습을 보면서 커피, 저녁엔 노을을 보며 맥주 한잔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배 타는 게 백만장자로 사는 가장 저렴한 방법이에요.” 권 박사에겐 이제 또 하나의 목표가 있다. 한국 도착 전 중간 기착지인 하와이에서 가족과 상봉하기로 했다. 갈라파고스에서 출항을 위해 엔진 시동을 걸던 권 박사의 말. “초등학생 아들하고 고등학생 딸이 있는데 한창 예쁠 때야. 얼굴 보려면 살아서 가야지. 아자! 아자!”갈라파고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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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은 한걸음 가까워지고 마음은 만걸음 넓어졌어요”

    《“네 인생에서 2010년이 얼마나 중요한 해인 줄 알지? 내가 이야기했던 것 한번 꺼내 봐.” 멘터(조언자)인 테니스 국가대표 이진아 선수의 말에 박소란 양이 검은색 종이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하얀색 손글씨로 ‘고쳐야 할 점’ ‘2010년 이루어야 할 점’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이진아 선수가 얼마 전 박소란 양에게 내준 특별한 ‘숙제’였다. 성탄절 이튿날인 26일 낮 12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는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동아일보가 4월 1일부터 12월 21일까지 연재한 ‘내일로 보내는 희망편지’에 소개된 17명의 멘터 중 민병철 건국대 언어교육원 원장부터 로봇 태권V의 김청기 감독, 이상봉 디자이너,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사장, 헤어디자이너 박준, 조수빈 KBS 아나운서, 이진아 선수 등 7명과 어린이재단이 인연을 맺은 학생과 가족들을 위해 조촐한 송년모임을 마련한 것이다. 어린이재단의 임신혁 대외협력실장은 “사회 명사들이 어린이들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선뜻 내줄 줄 몰랐다”라며 “희망편지에 출연한 아동들뿐만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큰 힘이 됐을 것”이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대형 화면에 1회 요리사가 되고 싶은 최종욱 군과 박효남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 주방장의 만남을 소개한 지면부터 차례로 희망편지의 주인공들이 소개됐다. 멘티들과 나란히 앉아 있던 역할모델들은 화면 속 자신들의 모습에 다시금 미소를 머금었다. 이어 역할모델들은 식사를 함께하며 멘티들과 이야기꽃을 피웠다. 내년도 계획을 미리 적어오라고 했던 이진아 선수는 소란 양을 만나자마자 ‘숙제검사’를 하더니 보충숙제를 내주기 시작했다. “일단 당장 네가 따라잡아야 할 국내 상위권 랭킹 선수들의 장단점부터 분석해 봐. 네가 이번 동계훈련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구체적으로 쓰고.” 무릎이 안 좋아 약을 먹고 있는 이진아 선수는 급한 대로 주머니에서 약봉지를 꺼내 볼펜으로 꼼꼼하게 메모했다.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실기시험을 앞둔 이수림 군은 이상봉 디자이너에게 진학과 관련된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 씨는 “꼭 명문대를 나와야 패션디자이너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더딘 길에서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이채원 부사장과 금융가를 꿈꾸는 박찬희 군은 학업 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기말고사에서 전교 200명 중 4등이란 좋은 성적을 거둔 박 군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은 이 부사장은 자립형사립고나 외국어고에 도전해 보라고 권유했다. 민병철 원장으로부터 각종 영어 콘텐츠를 선물 받은 뒤로 부쩍 영어 실력이 나아진 차미진 양은 지난번엔 잘 해내지 못했던 영어 자기소개를 멋지게 해냈다. 바쁜 연말, 자신을 위해 달려와 준 역할모델들에게 희망편지 주인공들은 자신들을 ‘행운아’라며 큰 포부를 밝혔다. “영어 선생님이 돼서 필리핀이나 베트남 어머니를 둔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을 돕고 싶어요.”(차미진 양) “언젠가 여기 계신 분들처럼 큰 사람이 되겠습니다.”(이수림 군) 이런 학생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희망편지 역할모델들은 “도리어 우리가 사랑과 열정을 배웠다”고 화답했다. 조수빈 아나운서는 “방송에 쫓겨 바쁘게만 달려왔는데 소연이를 만난 뒤 소연이를 실망시키지 않는 사람이 되고자 자신을 더 많이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3시간여의 특별한 ‘송년모임’이 끝나고 아쉽게 발길을 돌렸지만 이들의 인연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이날 자신의 멘티인 태완이가 교통사고로 나오지 못해 얼굴을 보지 못한 박준 디자이너는 “전화를 걸어봐야겠다”며 그 자리에서 휴대전화 번호를 눌렀다.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희망편지 그 이후 국제대회 출전… 대학 합격… 희소식 줄이어▼ 미래의 역할 모델을 만나 ‘인생 코치’를 받게 된 아이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고대했던 만남은 한 번의 ‘이벤트’로 그치지 않았다. ‘내일로 보내는 희망편지’ 주인공들은 마음속 영웅들과 수시로 연락하며 자신의 꿈에 다가서고 있었다. 여자테니스 국가대표를 꿈꾸는 박소란 양(17)은 4월 국내 랭킹 1위인 이진아 선수를 멘터로 맞게 된 뒤 꿈에 그리던 국제무대에 서게 됐다. 박 양의 사연을 본 전직 국가대표 선수 이덕희 씨(56·여)의 제의로 소란 양은 같은 달 열린 이덕희배 국제주니어선수권대회에 ‘와일드카드’로 출전했다. 복식 경기에 참가한 소란 양은 첫 국제대회에서 러시아와 일본 선수로 이뤄진 강팀을 누르고 8강에 올랐다. 소란 양은 이어 10월 전국체전에서 개인전 2회전, 11월 명지대 총장배 대회에선 단식 16강에 올랐다. 충남 천안에서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우고 있는 박가을 군도 강충모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인연을 맺으면서 피아노 레슨을 받게 됐다. 강 교수의 부인이자 유명 피아니스트인 이혜전 숙명여대 교수가 천안에 사는 제자 공병숙 씨를 가을 군에게 소개해 준 것. 공 씨는 가을 군에게 “기꺼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라 무료로 레슨을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가을 군은 “그러면 제 마음이 해이해질 것 같다”며 일반 레슨비의 절반 수준을 내기로 했다. 애니메이션 작가 지망생인 한우석 군은 올해 4월 김청기 감독이 그려준 ‘로봇태권V’ 그림을 ‘가보’라며 책상 앞에 붙여 놓았다. 애니메이션을 잘 그리려면 교양이 많아야 한다는 조언에 국사책을 독파했다. 최근 기말고사에서 하위권이던 성적이 중상위권으로 올랐고 국사 과목에선 최고점을 받았다. 우석 군은 또 어린이재단의 도움으로 ‘클리닉 저널’이라는 애니메이션 교육기관에서 주말을 통째로 보냈다. 그 결실로 2학기 도내 판화대회에서 강원도 교육감상을 수상했고 최근 월정사 공모전에도 출전해 입상했다. ‘고3 꿈나무’들의 대입 합격 소식도 들려왔다. 밀레니엄 서울힐튼호텔 박효남 총주방장을 만났던 요리사 지망생 최종욱 군은 대경대 호텔조리학부에 입학할 예정이다. 종욱 군은 3월 박 총주방장을 만난 자리에서 “주방장 일을 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박 총주방장이 이에 화답해 종욱 군은 7월 한 달간 힐튼호텔 주방장 인턴으로 일했다. 기아 타이거즈 이용규 선수와 형, 동생 할 정도의 사이가 된 정재훈 군도 동의대 특수체육학과에 입학하게 됐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09-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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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동아일보]다시 만난 ‘희망편지’ 주인공들 外

    “개천에서 용 날 수 있을까”란 물음에서 시작된 창간기획 ‘내일로 보내는 희망편지’는 올해 18개의 특별한 인연을 만들었다. 가난과 무관심에 절망으로 몰렸던 아이들은 마음속 영웅들과 형 동생,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맺으며 잃을 뻔했던 꿈을 되찾았다. 미래의 역할모델에게 인생 코치를 받으며 꿈 앞에 성큼 다가선 희망편지의 주인공이 한자리에 모였다.■ ‘명동거리 삼겹살 파티’ 이뤄낸 인터넷 누군가가 명동 한복판에서 삼겹살을 굽겠다는 댓글을 달았어요. 옆에서 탬버린 흔들고 노래 부르겠다는 댓글도 나왔어요. 말도 안 되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26일 이들이 진짜로 출현했어요. 관객 100여 명은 오프라인에서 ‘인증’했다는 자체가 즐겁대요. 점점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허물어져요.■ ‘영어로 영어수업하는 교사’ 선발부터 삐걱 ‘영어로 영어 수업하는 교사’를 선발하겠다는 서울시교육청의 ‘TEE 인증제’가 내년부터 전국으로 확대된다. 하지만 인증을 받은 교사들조차 “필기시험 문제가 수준 이하다” “어떻게 30분짜리 수업 한번 보고 선발하는가”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확대 이전에 제도 정비가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시속 394.2km 세계기록 세운 中고속철도26일 개통한 중국 후베이(湖北) 성 우한(武漢)에서 광둥(廣東) 성 광저우(廣州)를 오가는 고속철도가 순간속도를 최고 시속 394.2km까지 내 세계 최고기록을 세웠다. 투입된 기술이 모두 중국 기술은 아니지만 문자 그대로 ‘괄목상대(刮目相對)’라 할 만하다. ■ 프로농구 코트 강타한 KT ‘킹콩 신드롬’프로농구단 KT가 최근 8연승으로 ‘올레’를 외치고 있다. 지난 시즌 꼴찌 KT가 모비스와 선두를 다투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새로 가세한 외국인 선수 나이젤 딕슨(사진) 덕분이다. 205cm, 154kg의 거구인 딕슨. 그가 온 뒤 KT에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일까.■ 과자 팔아 1조 원… 中입맛 잡은 오리온 오리온의 올해 과자 매출이 1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몇 백 원짜리 과자만 팔아 이룬 성과다. 이 같은 성과 뒤에는 중국시장에서의 성공이 있다. 중국의 역사와 중국인의 생활 습관까지 고려한 마케팅으로 중국 소비자의 70%가 오리온을 중국기업으로 인식할 정도라는데….}

    • 2009-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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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9구급차 동승취재 해보니… 막무가내 이송요구 일쑤

    택시 취급 200회 “콜”도38회 출동에 ‘긴급’은 7건취객 “다리삐어” 이송요구병원 도착하자 자취 감춰 “철산급차, 철산급차, 구급출동….” 10일 오전 10시 2분. 경기 광명소방서 구급대원들은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70대 여성의 신고를 받고 긴급 출동했다. 지령이 떨어진 뒤 구급차가 출발하기까진 9초가 걸렸다. 운전석에 앉은 이용 대원(33)은 소방서 앞 도로로 진입하기 위해 양보를 구하는 손짓을 했다. 하지만 차량들은 경적소리를 내며 돌진해왔다. 도로에 들어선 건 21초 뒤였다. 몸이 둔한 구급차는 수시로 앞자리를 내줬다. 적재량 1t 트럭을 각종 응급장비를 갖춘 탑차로 개조해 구급차의 무게는 3t 정도. 배보다 배꼽이 크다보니 속도가 안 붙어 앞차와 간격이 자꾸 벌어졌다. 사이렌이 쉼 없이 울렸지만 주변 차량들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 이 대원은 “차들이 갑자기 끼어들어 급정거를 하면 환자가 다칠 수 있다”고 했다. 선진국에선 구급차에 대한 일반 운전자의 양보를 강제하고 있지만 우리는 권고사항이다. 구급차 뒤쪽은 얌체 운전자로 붐볐다. 구급차가 가면 주변 차량들이 길을 내줄 것으로 생각하고 바짝 붙어 따라왔다. 하지만 기대만큼 ‘진도’가 안 나가자 주변 차로로 흩어졌다. 출발 6분 만에 도로에서 광명시장 주변 골목길로 들어섰다. 불법 주·정차된 차들이 늘어서 있어 한 대만 겨우 지나갈 수 있었다. ‘거북이 운전’으로 100여 m쯤 가자 맞은편에 승용차 한 대가 들어섰다. 승용차가 후진을 했지만 주차된 차들과의 간격이 20cm 남짓해 애를 먹었다. 200m 되는 골목을 통과하는 데 5분이 걸렸다. 목적지까진 11분이 걸렸다. 신고한 환자는 다행히 안정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환자의 경우 4분 안에 응급조치를 하지 않으면 뇌손상이 시작된다. 동행한 방소은 응급구조사(30)는 “오전이라 상대적으로 덜 막힌 편”이라고 했다. 환자를 이송하고 복귀하는 길, 무전이 울렸다. 입술이 찢어진 어린이 환자였다. 급히 차를 돌려 현장에 가보니 환자와 그의 어머니가 골목에 나와 있었다. 대원들이 들것을 내린 뒤 상처를 봤다. 입 주변이 1cm 정도 베여 있었다. 아이는 걸어서 구급차에 탄 뒤 간단한 소독치료를 받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방 구조사는 “가벼운 열상이나 치아가 아파서 구급차를 부르는 분들이 많다”며 “보호자는 걱정이 되겠지만 그 사이 응급환자가 도움을 못 받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충주대 응급구조학과 신동민 교수는 “대부분 선진국은 구급차를 유료로 운영하기 때문에 비응급 환자는 잘 타지 않는다”며 “일본의 경우 구급차가 무료지만 구급대원이 신고단계에서 비응급 환자를 가려낸다”고 말했다. 10일 하루 광명소방서의 구급차 출동은 38건. 이 중 호흡곤란 등 응급상황은 7건에 불과했다. 지난해 통계를 보면 119 구급대 이용자 중 비응급 환자는 64.7%에 달했다. 한 사람이 구급차를 ‘자가용’처럼 이용해 5년간 200여 회나 탄 사례도 있다. 이날 오후 11시 10분경 광명시청 앞에서 다리를 삐어 걸을 수가 없다는 50대 남자의 신고가 들어왔다. 현장에 가보니 그는 술 냄새를 풍기며 계단에 앉아 있었다. 그 취객은 “내 아들이 레지던트로 있다”며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까지 가자고 요구했다. 대원들은 너무 먼 거리라 일단 가까운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으라고 설득했지만 취객은 “너희들 그 병원에서 돈 받았느냐”며 항의했다. 할 수 없이 취객을 태운 구급차는 밤 12시가 넘어서야 서울대병원에 도착했다. 대원들은 취객을 부축해 응급실까지 안내하려 했으나 그는 “장례식장에 잠시 다녀올 테니 먼저 떠나라”며 자취를 감췄다. 심모 대원(36)은 “대학병원 근처에 사는 분들이 구급차를 불러 병원까지 온 뒤 은근슬쩍 귀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소방서로 복귀하는 동안 자해로 인한 두부 손상 등 2건의 신고가 접수됐지만 너무 멀리 나와 있어서 출동하지 못했다. 광명=신광영 기자 neo@donga.com▼임신부 긴급이송하다 신호위반 접촉사고“유산 책임” 형사처벌 몰려▼ 광명소방서 구급대원 A 씨에게 서울 서초역 교차로는 평생 잊지 못할 곳이 됐다.7월 16일 오전 3시 반경. A 씨는 경기 광명시 철산동에서 하혈을 하는 임신부를 태우고 서울 강남의 한 병원으로 향하던 길이었다.서초역 사거리 통과 직전 신호가 바뀌자 A 씨는 정지선 앞에 섰다. 녹색신호였던 우측 4개 차로 중 2∼4차로에 있던 차들이 사이렌 소리를 듣고 멈추자 운전자들이 양보해준 것으로 판단하고 그대로 직진했다. 하지만 그 순간 1차로에서 질주하던 승용차가 교차로를 통과하던 구급차와 부딪혔다.다행히 접촉사고의 충격은 크지 않았다. A 씨는 다친 곳이 없었고 상대 운전자는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었다.하지만 임신부를 병원에 인계하고 온 지 두 달 만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사고 당시 임신 5개월째였던 임신부는 그 후 예정일보다 석 달이나 빨리 출산하다 쌍둥이 중 한 아이를 유산했다. 그 쌍둥이는 부부가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아 어렵게 얻은 아이였다.시험관 아기 시술을 했던 임신부의 주치의는 “접촉사고가 유산에 영향을 미쳤다”는 소견을 냈고 그에 따라 A 씨는 형사처벌(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을 받게 됐다. 현행법상 구급차는 위급상황에 한해 교통신호 위반이 허용되지만 사고가 날 경우 일반인과 같은 기준으로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구급차는 신속 이송을 위해 환자를 인접 병원으로 옮기는 게 원칙이지만 이 사건의 경우 환자의 요구로 40∼50분 떨어진 곳으로 가던 중 일어났다.충주대 응급구조학과 신동민 교수는 “구급은 행정인 동시에 서비스이기 때문에 구급대원이 민원인의 요구를 따르다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외국의 경우 교통위반으로 사고가 나더라도 면책 범위를 명시하고 있지만 우리는 관련 지침이 없다”고 말했다.광명=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09-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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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떡볶이 값 아껴 세네갈 친구들 도와 뿌듯”

    아프리카 세네갈 어린이들의 힘겨운 일상이 지난달 21일자 동아일보 보도(A3면·dongA.com 뉴스테이션)로 알려지면서 세네갈을 향한 ‘작은 기부’의 물결이 일고 있다. 세네갈 등 아프리카 아동 지원사업을 하고 있는 어린이재단에는 보도 열흘 만에 510건의 후원신청이 답지했다. 지구 저 멀리 또래 친구들을 도우려는 청소년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신규 후원자 중 만 18세 미만이 165명으로 전체의 32%를 차지했다. 경기 평택시에서 부인과 함께 태권도체육관을 운영하는 신동우 씨(43)는 본보 기사를 보고 중학교 1학년인 쌍둥이 딸에게 후원을 제안했다. “맞벌이 하느라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부족함 없이 다 해주다 보니 쌍둥이가 ‘없는 사람’에 대한 이해심이 부족한 것 같아요. ‘어려운 친구들을 배려하라’고 백 번 말하면 뭐합니까. 용돈 쪼개 쓰면서 아프리카 친구들을 직접 도와주고 펜팔도 하면서 스스로 깨쳐야죠.” 아버지의 권유에 쌍둥이 자매 지영 양과 우영 양(13)은 흔쾌히 동의했다. 매달 2만 원씩인 후원금 마련 방안도 짜냈다. 쌍둥이 자매는 떡볶이나 아이스크림 등 매일 사먹던 간식을 월 수 금요일 3일만 먹기로 했다. 주말마다 다니던 영화관도 한 달에 한두 번으로 줄이고, 독서 시간을 늘리기로 했다. 이 계획을 지키기 위해 이달부터 용돈기록부도 쓴다. 내년 2월 태권도 4품(4단) 승품 심사를 보는 지영 양은 “대학생이 되면 세네갈에 가서 제가 도움을 줬던 친구도 만나보고 그곳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는 봉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어린이재단 임신혁 대외협력실장은 “기부에 대한 기존 관점이 어려운 사람에게 일방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면 요즘 청소년들은 도와주면서 동시에 삶을 배우는 ‘자신에 대한 투자’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매달 2만 원씩 보내는 소액 기부이다 보니 일반 서민들의 참여도 많았다. 경기 성남시 상대원동에서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권윤자 씨(48)도 후원에 동참했다. “단돈 2만 원이 세네갈 아이들에겐 꿈을 이루는 한 줄기 빛이란 말에 마음이 움직였어요. 저 같은 서민도 누군가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뿌듯합니다.” 어린이재단 1588-1940신광영 기자 neo@donga.com▶dongA.com 뉴스테이션에 동영상}

    • 2009-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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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속죄에 울고 희망에 또 울다

    “윤재경(가명)이 어머니 되시죠?” 경찰서에서 전화가 온 건 오전 3시쯤이었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닌데 식은땀이 났다. 아들이 절도로 구치소에 있다 나온 지 두 달 정도 된 터였다. 300m 거리의 지구대까지 가는 데 1시간이 걸렸다. 당뇨를 앓고 있는 최모 씨(40)는 합병증으로 시력을 거의 잃어 밤길에는 매우 힘들어했다. 이번엔 폭행혐의였다. 9명이 1명을 때렸는데 윤 군(18)도 현장에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합의금 50만 원에 풀려났지만 윤 군은 ‘전과’가 있어 재판에 넘겨졌다. 윤 군의 비행이 시작된 건 2004년 최 씨가 재혼하면서부터. 새 아버지와 불화를 빚더니 수시로 가출했다. 절도와 폭행에 연루되는 일이 잦아 경찰에 자주 소환됐다. 없는 형편에 합의금을 마련하느라 빚도 졌다. 여기에 윤 군은 우울증까지 보였다. 알약 50알을 먹고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가까스로 깨어나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당뇨를 앓아 온 최 씨에게 윤 군은 목숨을 걸고 낳은 아들이었다. 그 아들은 최 씨의 걸음걸이가 “왕따 같다”며 떨어져 걸었고 최 씨가 넘어지면 “쇼 하느냐”며 내려다봤다. 구치소 면회실에서 “여기 또 오면 다신 안 보겠다”고 꾸짖었을 땐 피식 웃는 아들이었다. 폭행사건 재판 이후 헤어졌던 모자는 5개월 만인 21일 다시 만났다. 대전 대덕소년원 ‘편지 낭독의 밤’ 행사장에서였다. 6개월 형을 선고 받은 윤 군은 우울증 병력 때문에 치료감호소에서 지내고 있었다. 최 씨 모자 등 소년원생과 부모 6쌍은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았다. 뒤에서 본 부모들의 어깨는 한결같이 ‘ㅅ’자 모양으로 처져 있었다. 28일 ‘교정의 날’에 앞서 열린 이날 행사는 소년원 측이 정신장애나 발달장애로 의료 재활시설에 수감된 70명을 위해 만든 자리였다. 보호자 전원을 초대했지만 참석한 부모는 8명이었다. 곽칠선 교무과장은 “그나마 오늘이 최다 인원”이라며 “비행에 장애까지 겹쳐 부모에게마저 버림받은 아이가 많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와 말없이 앉아있던 윤 군은 낭독시간이 되자 품에서 꼬깃꼬깃한 편지를 꺼냈다. “엄마가 저 때문에 당뇨합병증으로 뇌경색까지 왔는데 병원에 입원해 계신 걸 보고도 전 또 가출을 했죠. 엄마가 환자복 차림으로 경찰서에 왔을 때…. 제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저 이곳에서 (대입)검정고시 공부도 해서 고등학교 졸업자격이 생겼어요. 엄마에게 해드리지 못한 보답 다 할 때까지 꼭 오래 사세요.” 뜻밖의 소식에 최 씨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2년 전 고교를 자퇴한 아들이 몰래 검정고시를 준비해 석 달 만에 합격한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눈물을 훔치며 아들을 바라봤다. 답장 순서가 돌아왔지만 최 씨는 편지를 꺼내지 않았다. 시력이 거의 없어 편지를 쓸 수 없었기 때문. 최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즉석에서 육성편지를 썼다. “아들아, 검정고시 합격 그 자체보다 엄마의 힘겨운 믿음에 아들이 응답해준 게, 우리 아들이 하고자 하는 뭔가를 찾은 게 너무 기뻐. 엄마가 너무 아파서 예전처럼 너의 방패가 될 수 없어. 그래도 너는 나의 영원한 ‘숙제’야. 엄마 살아 있는 동안 그 숙제 잘 끝낼 수 있도록 도와줄 거지?” 이어 폭행으로 수감 중인 최모 군(17)의 차례였다. “저 자고 있으면 들어와서 내 옆에 누워 눈물 흘리며 자는 우리 엄마, 제가 뭐 해달라면 안 해줄 것처럼 무뚝뚝하게 말하고 나중에 몰래 해주는 아빠. 사랑은 줄 때 받고,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고 하신 말 이제야 깨닫게 되네요.” 최 군의 흐느낌 속에 어머니의 답장이 이어졌다. “(폭행)합의금 마련하느라 빚이 많이 쌓여 힘든 삶이 계속되지만 아들에게만은 예수도 되고 부처도 될 있어. 우리 아들, 사랑한다. 아까 보석박물관 다녀왔지. 너는 영원한 엄마의 보석이야. 알았어? 영원히 빛나주길 바란다.”대전=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09-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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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을 원망하며 살던 내가 물었다

    [소설가 공지영씨 ‘세네갈 경험’ 특별기고]신을 원망하며 살던 내가 물었다그 많은 혜택 왜 내게만 주셨나요 세네갈은 아프리카에서 최빈국은 아니다. ‘끝에서 열 번째라니 당장 기근이 들어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 곳에 비하면 그래도 살 만한 곳일 것이다’라고 방심한 것이 잘못이었다. 지난해 최빈국 1위 에티오피아와 우간다를 다녀온 후 더 이상의 충격은 없을 거라는 생각도 오만이었다.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서 4시간여를 달려 들어간 내륙지방 디우르벨에 다다랐을 때 나는 비로소 이 검은 대륙이 내 알량한 양심과 신앙이 시험받는 땅임을 깨달았다. 그것은 단지 농작물이 자라야 할 곳에 펼쳐진 쓰레기 더미들, 우기의 끝 무렵인데도 눈을 흐리게 만드는 먼지들(건기에는 거의 숨을 쉴 수가 없을 지경이라고 한다), 황사 먼지 속에서 아침이면 일어나 동냥그릇을 들고 몰려나오던 조그만 소년들, 그들의 찢어진 옷과 더러운 맨발, 숙소에서 자주 나가던 전기, 식탁 위를 과감히 활보하던 아기 손바닥만 한 바퀴벌레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난번 에티오피아 방문 때 그래도 이 빵을 먹고 나면 이들의 삶이 조금 나아질 것이라고 믿었던 내 오만함에 대한 자책 때문이었다. 하루에 1달러를 가지고 11명의 식구가 먹고사는, 그러니까 적어도 굶어서 죽지는 않는 그들의 눈에도 에티오피아의 난민이 가졌던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초점 잃은 눈동자였다. 겨우 죽지 않을 만큼의 빵을 먹고 하루를 사는 그들에게 내일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열세 살에 아이를 낳다가 척추를 다치고 귀가 먼 열일곱 살의 미혼모는 ‘꿈이 있어요?’라는 내 질문에 젓가락만 한 팔다리를 숨기며 “양고기를 한번 먹어 보고 싶어요. 일어나 걷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때 그녀를 만난 지 한 시간여 만에 처음으로 미소가 어리는 것도 보았다. 그 미혼모가 그토록 어여쁘지 않았다면 내 가슴이 좀 덜 아팠을까? 수백만의 미혼모들이 이런 식으로 절망에 빠져 있는 이 나라, 그러나 그녀의 막내 동생 카딘은 내가 꺼내든 볼펜을 감히 만져 볼 생각도 못하며 말했다. “학교에 다니고 싶어요.” 작은 푼돈과 보잘것없는 선의가 거대한 가난과 착취와 모순을 이길 수 있을지 나는 가끔 절망에 빠진다. 더위와 악취가 해일처럼 우리를 덮칠 때 무언가를 건설하는 일은 희망처럼 더디고 작다. 그럴 때면 마더 테레사의 말을 떠올린다. ‘우리가 하는 일은 거대한 대양에 물 한 방울을 보태는 일처럼 보잘것없지만, 그 한 방울이 없다면 바다도 없다’는 그 말. 나는 그저 커피 값을 아낀 2만 원으로 그 아이들의 학비를 대주고 연필을 사줄 수 있을 뿐이다. 모기장을 사줄 수 있고 수도관 30cm를 연장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학교에 가면 무언가 다른 내일이 우리를 기다린다는, 어쩌면 결정적인 희망의 빛을 줄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말이다. 오늘도 우간다와 에티오피아 혹은 시에라리온을 도우러 또 다른 팀이 떠났다. 그들이 돌아오면 또 다른 팀이 떠날 것이다. 그러면 하나의 수도, 하나의 학교, 하나의 화장실이 세워질 것이다. 오늘은 한 아이가, 내일은 그 이웃집 아이가 비로소 학교로 갈 수 있을 것이다. 나와 내 친구와 내 친구의 친구가 조금만 마음을 열면 그 옆집 아이도 학교에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희망이 없다면, 나의 아프리카 방문은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다. 나는 살면서 가끔 신에게 물었다. 대체 뭘 그리 잘못했다고 내게 이런 벌을 내리십니까. 43도를 오르내리는 더위 속에서 망연히 앉아 있다가 내가 물었다. 대체 뭘 잘했다고 내게 그 많은 혜택을 주셨습니까? 어쩌면 이번 방문에서 온전히 도움을 얻고 온 사람은, 실은 나였던 것만 같다.}

    • 200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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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마 잉어’는 쉼없이 자맥질을 한다, 한 닢을 구걸하려…

    ‘16~18세기 노예무역 중심지’ 세네갈에 어린이재단 매달 ‘2만원의 희망 심기’● 실업률 48% - 가난 ‘검은 탄식’인구 5명중 1명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학비 마련위해 마약중개도● 간질병 초등생 ‘되찾은 꿈’한국 동갑내기의 도움받아 약도 사고 학교도 다니게돼 “커서 의사가 되고 싶어요”12일 세네갈 고레 섬(Gor´ee Island)으로 가는 길은 ‘검은 잉어’들로 북적였다. 유람선이 섬에 200m 정도로 근접하자 검은 물고기 같은 물체들이 바다를 하얗게 가르며 일제히 몰려들더니 순식간에 유람선을 에워쌌다. 물 위로 얼굴을 내민 건 흑인 소년들이었다. 100여 명의 ‘인간 잉어’는 관광객을 향해 “머니!”라고 외쳤다. 배 위에서 동전이 한 닢 떨어질 때마다 수십 명이 물속을 파고들었다. 모이를 향해 달려드는 고기 떼의 형상이었다.고레 섬은 소년들의 조상이 노예로 팔려가던 곳. 아메리카 대륙과 가까워 16∼18세기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다. 노예감옥 등 당시 상처가 보존된 이 섬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면서 관광명소가 됐다.섬 소년들은 운 좋게 한 닢을 낚으면 입에 넣고 다시 동전 사냥에 나선다. 배가 하루 두세 번 오가기 때문에 종일 해도 50∼100CFA프랑(약 150∼300원)짜리 동전을 몇 개 잡는 게 고작이다. 배가 섬에 도착한 뒤 해변에서 물놀이를 하는 관광객 사이로 큰 소년이 작은 소년의 머리를 연거푸 물속에 밀어 넣었다. 고라(12)와 와드(9) 형제였다. “장난이냐, 고문이냐”고 묻자 고라는 “훈련”이라고 했다. “둘이 열심히 해야 하루에 1달러를 채울 수 있다”고 했다. 고라는 나이 차가 14세인 미혼모 어머니와 살면서 생업의 짐을 함께 졌다. 그는 아직 학교에 가본 적이 없다. 고라와 동갑인 모사는 처지가 한결 낫다. 모사는 세네갈 디우르벨에서 초등학교에 다닌다. 다만 교실 밖에서 수업을 듣는다. 창문 밖에 의자를 놓고 그 위에서 창틈으로 칠판을 본다. 모사는 간질 환자다. 세네갈에서 간질은 주변 사람의 정신을 오염시키는 전염병으로 통한다. 교실에서 쫓겨났지만 모사는 창틀을 책상 삼아 꿋꿋이 공부한다. 10일 수업에 열중하던 모사가 필기를 하다 노트에 끼워진 사진 한 장을 떨어뜨렸다. 사진 속 주인공은 한국에 사는 동갑내기 김지은 양. 6년 전 어린이재단을 통해 인연을 맺었다. 김 양이 없었다면 모사는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모사의 부모는 땅콩을 튀겨 팔며 하루 2, 3달러를 번다. 학교에 다니려면 등록비 12달러에 학용품과 책값으로 한 해 30∼40달러가 들어간다. 병원까지 다니려면 400달러가 든다. 5남매를 키우는 모사의 부모에게 학교와 병원은 언감생심이었다. 김 양이 보내는 매달 2만 원의 후원금이 모사를 절망에서 건져냈다. 김 양도 아버지가 일할 수 없는 장애인이라 넉넉하진 않지만 용돈을 아껴 돈을 부친다. 15달러 남짓한 그 돈으로 모사는 학비를 내고 약을 샀다. 어렵게 학교 문턱을 넘고도 간질 때문에 교실 문턱은 넘지 못했지만 모사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달 치른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상위 3%의 성적을 받기도 했다. 모사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한국 돈 2만 원이 만든 꿈이다.이날 낮 기온은 43.5도까지 올라갔다. 학교 근처 가게에서 500mL짜리 생수를 사니 가격이 300CFA프랑(약 900원)이다. 모사네 가족 하루 수입의 3분의 1이다. 세네갈 인구 5명 중 1명은 1달러 미만으로 하루를 산다. 여기에 실업률은 48%나 된다. 어린이재단 서아프리카 담당 우스만 씨는 “세네갈은 아프리카로 마약을 공급하는 교두보인데 수도 다카르로 상경한 청소년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마약중개상이 되는 사례가 많다”며 “그중 상당수는 학비를 마련하려고 위험을 무릅쓴다”고 말했다. 모사의 학교에서 나오는 길, 수십 명의 아이가 기자의 팔을 잡고 늘어졌다. “잔돈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아이들은 멈추지 않았다. 보다 못한 교사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돈이 아니라 펜을 달라네요.”디우르벨 (세네갈)=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고사리손 기부’ 3년새 5배이상 늘어 ▼ 성인들이 아프리카 어린이들과 일대일 결연을 맺어 도와주던 국제 후원이 청소년 간의 ‘고사리손 기부’로 바뀌고 있다. 혼자 자란 아이들이 또래들과 형제나 남매 관계를 맺은 뒤 용돈을 아껴 돈을 보내주고 편지도 주고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세네갈의 한 미혼모(14)는 이혜진 양(13)이 매달 2만 원씩 1년째 도와준 덕분에 아이를 키우기 위해 40대 남성과 결혼할 뻔했던 위기를 모면했다. 유럽 프로축구 선수를 꿈꾸는 에티오피아의 코르사(11)는 김유정 양(11)의 후원으로 구걸 대신 학교에서 훈련을 받게 됐다.※ 후원 문의: 어린이재단 1588-1940}

    • 200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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