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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총리실이 19일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검경 관계자를 불러 최종 실무자 회의를 열었지만 결국 합의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20일 열리는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에서 정부 중재안 없이 사개특위 위원들이 수사권 조정 문제를 논의하게 됐다. 총리실은 19일 오후 8시 임채민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황희철 법무부 차관, 조영곤 대검 형사부장(대행), 이완규 대검 형사1과장 등 검찰 측 인사 3명과 김남석 행정안전부 1차관, 박종준 경찰청 차장, 민갑용 경찰청 기획조정과장 등 경찰 측 인사 3명이 참석하는 최종 실무자회의를 열어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한 마지막 조율을 시도했다. 총리실은 이날 회의에서 “사법경찰은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해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196조 1항을 어떻게 변경할지에 대해 검경 양측의 의견을 마지막으로 조율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총리실은 이날 ‘경찰의 수사개시권을 인정하되 선거와 공안 사건에 대해서는 사건인지 시점부터 검찰 지휘를 받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은 2차 중재안을 마련했지만 형소법 196조 1항에 대한 검경 양측의 의견차가 커 논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날 형사사법제도의 근간이 되는 형소법 196조 1항의 변경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찰 수사는 검사가 반드시 통제한다는 원칙을 유지하되 검찰이 현실적으로 지휘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예외 조항을 두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특히 2차 중재안대로 검사의 지휘 조항을 없애고 예외적으로 공안 및 선거 사건만 지휘하게 하는 것은 본말이 뒤바뀐 논리라는 주장이다. 검찰은 “백번 양보해 검찰의 지휘 조항을 없애더라도 경찰이 반드시 다른 기관의 통제를 받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제시된 중재안에는 “경찰이 수사를 한 때에는 지체 없이 관련 서류와 증거를 검찰에 송부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검찰의 수사 종결권을 명문화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고 경찰은 이를 수용했다. 이날 합의 실패에 대해 대검 관계자는 “합의에 이르지 못해 유감”이라며 “향후 국회 논의과정에 충실히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서울중앙지검에선 오후 3시 반부터 밤늦게까지 150여 명의 평검사가 참석하는 회의를 열어 수사권 조정에 대한 토론을 이어갔다. 경찰은 수사개시권 명문화를 촉구하는 일체의 공식적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하지만 합의가 실패한데 대해선 유감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경찰 관계자는 “검찰이 경찰의 수사개시권을 일부 인정할 수 있다면서도 형사소송법 196조 1항을 삭제하는 것은 끝까지 반대하고 있어 타협점을 찾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또 “선거나 공안 사건의 경우 검찰이 입건 기준을 내려주면 거기에 맞춰 수사를 진행할 의향이 있다”며 “그런 절차 없이 검찰이 일방적으로 수사를 지휘하면 오히려 검찰의 입김에 따라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국무총리실의 수사개시권 조정방안 중재 마감시한을 하루 앞둔 19일 검찰과 경찰은 내부적으로 최종 입장을 정리하고 협상전략을 짜느라 부산한 모습을 보였다. 두 기관은 또 이명박 대통령이 17일 전 부처 장차관 워크숍에서 검경의 수사권 대립을 ‘밥그릇 싸움’이라고 비판한 점을 의식해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면서도 각자 입장을 언론과 정치권에 알리는 데 부심했다. 》 ○ 檢 “수사권은 형사법 근간 바꾸는 문제”서울중앙지검 소속 평검사 150여 명은 이날 오후 3시 20분부터 8시간 동안 서울 서초구 서초동 청사 15층 대회의실에서 수사권 조정 문제에 대한 대책회의를 가졌다. 참석자들은 김밥으로 간단히 저녁식사를 한 채 밤늦게까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서울중앙지검 평검사 회의는 △1999년 2월 심재륜 당시 대구고검장의 항명 파동 △2003년 3월 노무현 대통령 취임 직후 ‘인사서열 파괴’ △2005년 5월 국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형사소송법 개정 관련 대책회의에 이어 이번이 4번째다. 회의 참석자들은 “수사권 논의는 기관 간 권한 배분·조정의 문제가 아니라 형사사법제도의 근간을 바꾸는 중대한 문제”라며 “소수의 몇 사람이 시간에 쫓겨 급하게 결정할 것이 아니라 큰 공론의 장에서 논의돼야 한다”는 내용의 건의문을 채택했다. 이들은 또 “사법통제나 주민통제를 받지 않는 사법경찰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행정·사법경찰의 분리, 자치경찰제 도입 등도 (수사권 조정과) 함께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준규 검찰총장 등 대검찰청 주요 간부들도 이날 대부분 출근해 대책회의를 여는 한편 국회와 총리실을 상대로 마지막 설득작업을 벌였다. 검찰 내부 게시판인 ‘이프로스’에도 “총장님이 직을 걸고 막아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글 등 검찰 내부의 위기의식을 엿볼 수 있는 게시물이 줄지어 올라왔다.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 경찰, 심야대책회의 열어 대응논리 고심경찰은 수사개시권 명문화를 촉구하는 집단행동이나 일체의 공식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중재안 발표를 하루 앞둔 19일, 박종준 차장 등 경찰청 간부들은 조현오 청장 주재로 비공식 회의를 갖고 총리실 중재안에 대한 입장을 조율하는 등 정중동(靜中動) 행보를 보였다. 경찰 수뇌부도 이날 총리실 주재로 최종 실무자 회의가 열리는 점을 감안해 극도로 말을 아꼈다. 경찰 관계자는 “총리실이 합리적인 중재안을 낼 것으로 기대하지만 검찰의 반발 때문에 ‘수사권력 투명화’라는 사법개혁 취지에 역행하는 결론이 나온다면 동의하기가 어렵다”며 “상황을 조용히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경찰이 강력한 통제장치 없이 수사개시권을 행사할 경우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경찰은 정반대 논리를 펴고 있다. 경찰의 입건과정에 문제가 있다면 검찰이 언제든 지휘권을 활용해 바로잡을 수 있고, 검찰 홀로 수사 전 과정을 쥐고 있는 것보다 경찰과 검찰이 상호 견제하는 게 국민 인권 보장 차원에서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경찰 관계자는 “경찰이 수사개시권을 제대로 행사하는지 검증하는 절차에 대해 검찰과의 협의를 통해 양보해 나갈 의향이 있는데 검찰은 수사개시권을 허용하면 수사권 전체가 위협받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한편 박종준 경찰청 차장은 경찰청사에서 수사권 조정 관련 부서 직원들을 모아놓고 이날 마지막 검경 간담회에서 나온 검찰의 주장 등을 분석하고 대응 논리를 개발하기 위한 심야 회의를 가졌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유치장 입감(入監) 때 여성 입감자의 브래지어 탈의 문제를 놓고 경찰의 오락가락 행보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사건은 10일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열린 ‘반값 등록금 촛불집회’에 참여했다가 연행된 여대생 김모 씨(20)가 입감 과정에서 경찰이 브래지어를 벗도록 한 데서 시작됐다. 김 씨와 김 씨가 소속된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은 14일 “경찰이 김 씨에게 브래지어를 벗게 한 뒤 조사를 해 심한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경찰은 15일 “경찰 호송규칙에 따라 합법적으로 진행했다”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하지만 김 씨를 조사한 서울 광진경찰서는 불과 3시간여 뒤 기자회견을 열고 “(브래지어 탈의는) 적법한 절차에 따른 것이었지만 (김 씨가) 수치심을 느꼈다면 사과한다”고 말했다. 경찰의 어이없는 말 바꾸기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경찰은 당초 한대련이 인권 침해를 주장하자 발끈하며 “과연 인권 침해가 있었는지 국가인권위원회에 우리가 직권조사를 의뢰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인권위 조사 의뢰를) 안 하겠다”고 했다가, 몇 시간 뒤에는 다시 아무 설명도 없이 인권위에 조사를 의뢰했다. 기자가 보기에 경찰은 브래지어 탈의와 김 씨의 성적 수치심을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 문제가 되는 것은 경찰의 브래지어 탈의가 적법한 것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경찰의 적법한 탈의 과정에서 김 씨가 성적 수치심을 느낄 만한 상황이 발생했느냐 아니냐다. 브래지어 탈의 문제는 이미 인권위의 판단이 나와 있다. 인권위는 2008년 11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당시 시위대가 낸 같은 진정에 대해 “자살 방지를 위해 속옷 탈의는 요구해야 하지만 성적 수치심이 들지 않도록 보완책을 세우라”고 권고했다. 탈의 요구는 정당하되 성적 수치심이 들지 않도록 유의하라는 게 이 권고의 핵심이다. 경찰은 당시 권고에 따라 속옷 탈의 시 겉옷 위에 입을 수 있는 가운을 유치장에 비치하는 등 보완책을 세웠다. 하지만 모든 절차가 적법했다고 모든 입감 여성이 성적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성적 수치심은 매우 주관적인 판단이기 때문이다. 김 씨가 보편적인 상식보다 과하게 반응했을 수도 있지만, 경찰이 ‘적법한 절차’만을 강조한 나머지 여성의 심리를 간과했을 수도 있다. 인권위도 밝혔듯이 ‘탈의’ 자체는 적법하다. 하지만 공권력을 집행하는 국가기관은 그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미세한 문제도 신경을 써야 한다. 경위야 어떻든 사과까지 한 마당에 이를 다시 뒤집는 것은 국가기관의 태도라고 보기에는 왠지 당당하지 않은 것 같다.신광영 사회부 neo@donga.com}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15일 A교대 총장을 지낸 김모 교수(64)에게서 “정권 실세에게 인사 청탁을 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억대의 로비자금을 받은 혐의로 브로커 황모 씨(55)를 구속했다.경찰에 따르면 김 교수는 총장 퇴임 후 1년쯤 지난 2008년 7월 “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이 될 수 있도록 청와대 핵심참모에게 로비해 달라”며 황 씨에게 8차례에 걸쳐 1억6000만 원을 건넸다. 하지만 김 교수는 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이 되지 못하자 황 씨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고 결국 돌려받지 못했다. 김 교수가 황 씨를 통해 인사 로비를 시도했던 청와대 참모는 당시 국정기획수석이던 박재완 현 기획재정부 장관이다.경찰 조사 결과 황 씨는 김 교수에게 “박 수석과 중학교 동문이어서 잘 아는 사이”라며 친분을 과시했지만 실제로는 박 장관과 직접적인 친분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 씨는 그 대신 박 장관과 중고교 동문인 자신의 고향 선배를 동원했다.황 씨는 박 장관이 2008년 12월 서울 서초구의 한 일식집에서 중고교 동문 모임을 갖는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고향 선배에게 부탁해 김 교수와 박 장관의 만남을 주선했다. 경찰은 “일식집 옆방에서 박 장관을 만난 김 교수가 그 자리에서 인사 청탁을 했지만 박 장관이 ‘그런 말을 하는 자리라면 나는 나가겠다’며 청탁을 거절했다”고 말했다.김 교수는 박 장관이 불교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황 씨의 고향 선배를 통해 금으로 된 반야심경도 전달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장관은 청와대 재직 시절 청와대 내 불교신도들의 모임인 ‘청불회’ 회장을 지냈다. 황 씨의 고향 선배는 이 물건을 청와대 박 장관 집무실에서 전달하려 했지만 박 장관은 “왜 이런 것을 가져왔나”라며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김 교수는 3년이 지나도록 소득이 없자 결국 돈을 돌려받기 위해 경찰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황 씨가 김 교수에게 받은 돈의 대부분을 사업자금과 유흥비 등으로 쓴 것으로 보고 있으나 황 씨는 받은 돈은 로비를 위해 접대용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김 교수는 2003년부터 4년간 A교대 총장을 지냈으며 현재 이 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교육 관련 학회장을 두루 역임한 김 교수는 대통령표창과 국민훈장 목련장 등 다양한 수상 경력을 갖고 있다. 경찰은 김 교수에 대해 “금품을 동원해 인사 청탁을 시도했지만 뇌물이 박 장관에게 직접 전달되지 않아 범죄(뇌물공여 미수)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피해자 신분으로만 조사했다”고 밝혔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 자금 128억 원을 횡령하고 코스닥 상장을 유지하기 위해 허위로 매출액을 조작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배임)로 제일창업투자회사 허모 회장(60)에 대해 10일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14일 밝혔다. 경찰은 제일창투 외에 다른 창업투자회사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많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허 회장은 회삿돈 128억 원을 빼돌려 자신이 별도로 운영하는 건설사의 어음 83억 원을 결제하고, 개인소득세 40억 원과 범죄추징금 5억 원을 납부하는 데 사용한 혐의다. 허 회장은 제일창투가 경영 악화로 2009년 연매출이 4억7000여만 원에 그치자 코스닥 상장 유지를 위해 투자계약서와 회사통장 등을 위조해 7배에 가까운 30억8000만 원으로 부풀린 혐의도 받고 있다. 코스닥 상장사는 연매출이 30억 원을 넘지 못할 경우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상장폐지 대상으로 분류된다. 1990년 설립된 제일창투는 자본금 340억 원 규모의 벤처캐피털. 한국거래소는 제일창투가 그동안 분식회계를 통해 매출액을 속인 사실을 파악하고 올해 4월 상장폐지 결정을 내렸고 현재 상장폐지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경찰은 “제일창투가 분식회계를 통해 회사 경영상태를 부풀려 투자자를 끌어 모았다”며 “하지만 부실 경영으로 결국 상장폐지까지 몰려 100여 명으로 추정되는 소액투자자가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경찰은 제일창투 외에도 일부 창투사에서 횡령과 분식회계 등 비리가 있다는 정황을 다수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4월 현재 창투사는 총 104곳에 이른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일부 벤처캐피털의 과장 광고에 속아 재산을 날린 서민의 신고가 잇달아 접수되고 있다”며 “일부 금융기관의 비윤리적 경영 행태를 집중 수사해 뿌리 뽑겠다”고 밝혔다. 한편 경찰은 금융기관 수사 외에도 교통안전공단 본사와 군납 식품업체 5곳을 연이어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교통안전공단 임직원들이 회삿돈 16억 원 이상을 빼돌린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납업체들은 건빵이나 햄버거용 빵을 군부대에 납품하기 위해 방위사업청 입찰에 참여하면서 납품가격을 담합한 혐의를 받고 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800억 원어치의 수출용 면세 금괴를 사들인 뒤 국내 귀금속 상가에 몰래 팔아 87억 원의 세금을 빼돌린 모자(母子)가 경찰에 적발됐다.서울지방경찰청 경제범죄수사대는 13일 이 같은 혐의로 이모 씨(60·여)를 구속하고 이 씨의 아들 등 친인척 1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 등은 2004년부터 4년간 K아연 등 제련업체 4곳에서 수출용 귀금속 원료로 쓰겠다며 금괴 5.3t(시가 800억여 원)을 사들여 부가가치세 75억여 원을 면제받은 뒤 국내 귀금속 업자들에게 판 혐의다. 이 씨는 금으로 귀금속을 만들어 수출하면 관세를 돌려받는 점에 착안해 허위 수출계약서를 세관당국에 내고 12억 원을 부정 환급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서울 종로3가에서 20년가량 귀금속상을 운영해온 이 씨는 현행 귀금속 수출 관련 법규의 허점을 교묘히 노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 씨는 한국귀금속가공협회로부터 추천을 받아 수출용으로 금괴를 매입하면 부가세가 면제되고 관세를 환급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악용했다. 이 씨는 우선 아들을 비롯한 친인척 6명을 바지사장으로 고용해 귀금속 도매상을 세운 뒤 제련업체에서 면세용 금을 사들였다. 경찰은 “국세청 규정상 귀금속 관련 회사만 설립하면 귀금속가공협회로부터 수출용 면세 금괴를 살 수 있도록 추천을 받을 수 있다”며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을 장려하기 위해 금으로 만든 제품을 수출하는 절차가 간소화됐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사들인 금으로 귀금속을 만들어 수출하는 조건으로 75억 원의 면세 혜택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세운 귀금속 업체를 통해 금괴를 국내에 유통시켰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조현오 경찰청장(사진)은 최근 ‘반값 등록금’ 촉구 집회와 관련해 집회 신고를 무조건 금지하진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조 청장은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집회가 금지된 청계광장에서 반값 등록금 시위를 하려 해 금지 통고를 해왔지만 가급적 허가하는 쪽으로 전향적인 검토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청계광장에서 집회가 열릴 경우 청계천 주변에 일반 시민이 접근하는 게 어려워진다는 이유를 들어 2008년 이후 집회 신고를 해도 허가하지 않았다. 조 청장은 “등록금 시위로 도로가 몇 시간씩 점거되는 불법 행위가 없진 않았지만 보름간의 집회가 대부분 평화적으로 진행돼 (청계광장 집회 허가 여부를) 전향적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 청장은 “청와대 행진이나 도로 점거 등 경찰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거는 경우가 많아 허가가 쉽지 않다”며 “나도 대학생 자녀를 둔 부모로서 학비가 싸지면 좋지만 반값 등록금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정치권이 중지를 모으는 와중에 거리로 나와 불법 시위를 하는 건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조 청장은 또 불허 상태에서 진행되는 반값 등록금 집회에 야당 지도부 등 정치인들이 참여하는 것에 대해 “경찰이 국회의원들에겐 손을 못 대고 있다”며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하는데 경찰이 센 사람한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면 누가 법질서를 지키려 할지 우려된다”고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조현오 경찰청장(사진)이 최근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에서 논의하는 경찰 수사개시권 명문화 등 수사권 조정문제와 관련해 “경찰에 수사(개시)권 등을 주기로 한 여야 합의안이 관철될 수 있도록 총경 이상 간부들은 몸을 던지는 헌신적인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청장은 26일 전국 지방청장 화상회의에서 “모든 지방청장과 경찰서장은 수사권 조정 문제에 자신의 직위를 건다는 자세로 임하라”라며 “각 지역 국회의원이나 사개특위 위원 등에게 우리의 입장과 수사권 조정의 정당성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라”고 지시했다. 현재 사개특위에서 논의 중인 검·경 수사권 조정의 주요 골자는 경찰의 수사 개시권을 형사소송법에 명문화하고 “경찰은 검찰의 지휘에 복종한다”고 규정한 검찰청법 조항을 폐지하는 것이다. 이는 국회 사개특위가 최근 특수수사청 설치 등 검찰의 핵심 개혁방안을 백지화할 조짐이 보이자 조 청장이 여느 때보다 강도 높게 경찰의 수사권 명문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조 청장은 25일 기자 간담회에서도 “현재 대부분의 사건은 경찰이 수사하고 있어 경찰의 수사(개시)권을 명문화하는 것은 현실을 법에 반영하는 것일 뿐”이라며 “경찰이 준법 투쟁하듯 사건마다 검찰에 ‘수사를 할까요, 말까요’를 물어본다면 수사가 되겠느냐”고 말했다. 사개특위 검찰소위는 지난달 20일 “사법경찰관은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해야 한다”는 기존 법안을 “사법경찰관이 범죄 혐의가 있다고 인식하는 때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해야 한다”고 고쳐 경찰에 수사개시권을 주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16일 사개특위 검찰소위에서 일부 여당의원이 검찰의 수사 지휘권을 종전보다 강화하는 의견을 제시하자 경찰 내부에서는 “(수사권 조정을) 개악한다”는 반발이 일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검찰 출신 일부 의원이 경찰이 수사 이전 내사단계부터 검찰에 보고하도록 하는 조항을 넣었다”며 “이 경우 검사 등 법조인 비리를 수사할 때 외압의 소지가 더 커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검 관계자는 “경찰은 서민과 맞닿아 있는 1차 수사기관인 만큼 임의로 수사를 개시하는 것에 대한 통제장치를 두지 않으면 서민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검찰은 기존에 밝힌 대로 경찰 수사개시권 명문화 등에 명백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조현오 경찰청장(사진)은 25일 최근 충남 아산 유성기업 파업과 관련해 “이번 파업에 외부세력이 개입한 것으로 확인돼 가담 정도를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 청장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연행 노조원을 조사한 결과 공장을 점거하던 노조원들 사이에서 ‘외부세력이 설쳐대 무섭고 겁난다. 경찰이 빨리 꺼내줬으면 좋겠다’는 진술이 많이 나왔다”며 “파업을 지원하러 유성기업에 들어간 외부 세력이 상급단체인 전국금속노조일 수도 있고 별도의 이적단체에 가입된 사람일 가능성도 있어 면밀히 조사한 뒤 법대로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유성기업 노조의 공장 불법점거 사건을 수사하는 충남 아산경찰서는 25일 노조 지회장 김모 씨를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김 지회장과 함께 체포영장이 발부됐으나 달아난 이 노조 쟁의부장 김모 씨를 수배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 지회장은 노조가 파업을 시작한 18일부터 유성기업 아산공장에서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 등을 요구하며 공장을 불법 점거하고 공장 안으로 들어가려는 비노조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혐의다. 경찰은 24일 시위 현장에서 노조원 500여 명을 연행해 이 중 단순 가담자 400명을 석방하고 나머지 100여 명은 아산서 등 인근 경찰서에 나눠 입감 조치했다. 입감된 100여 명은 유성기업 전현직 노조 간부 30여 명, 외부 가담자 40여 명, 파업 또는 경찰 연행 과정에서 과격한 행동을 한 적극 가담자 20여 명 등이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아산=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

경찰이 취객이나 괴한의 난동에서 경찰관을 보호하기 위해 ‘책받침 방패’를 도입했다. 책받침 방패는 2008년 일본에서 처음 개발된 것. 2006년 일본 도쿄시내의 한 파출소에서 경찰관 3명이 흉기를 들고 난입한 괴한과 몸싸움을 벌이다 2명이 중상을 입은 것이 계기가 됐다. 그 결과 2년에 걸친 고민과 연구개발 끝에 나온 것이 ‘책받침 방패’다. 이 방패는 평소 사무실에서 책받침으로 쓰다가 흉기로 공격을 받으면 즉시 방패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크기는 A4용지보다 약간 큰 가로 23cm, 세로 45cm. 책받침 뒷면에 손잡이가 달려 있어 유사시 손에 끼고 방어를 할 수 있다. 재질은 항공기 유리창을 만들 때 쓰는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이라 예리한 칼로 찔러도 뚫리지 않을 정도다. 우리 경찰이 책받침 방패를 전격 도입하기로 한 것은 최근 서울 관악구의 한 파출소에서 벌어진 흉기 난동 사건이 계기가 됐다. 경찰은 “도로변에 있는 파출소의 경우 행인이 갑자기 들이닥쳐 흉기를 휘두를 가능성이 높다”며 “업무 중 돌발 상황에서 경찰관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비”라고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꽃 한 포기, 벌레 한 마리의 생명도 소중한데 저는 그동안 사람을 죽이는 길을 걸어왔죠. 이젠 생명을 살리는 길을 가려 합니다.” 평생 무기 개발을 해오던 과학자가 생명과 환경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국토 종단 걷기에 나섰다. 전 국방기술품질원 기술기획부장 김재훈 박사(53)는 정년을 10년 앞둔 지난해 말 사표를 냈다. 김 박사는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뒤 국방과학연구소와 국방기술품질원에서 27년간 근무하며 K-21 장갑차와 30mm 자주 대공포 등 신무기를 개발했다. “무기 만드는 데 젊음을 바쳤는데 어느 날 내가 살상도구를 만들고 있다는 회의가 들더군요. 남은 인생은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고 환경을 보호하는 데 쓰려고 합니다.” 직장을 그만둔 후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그는 7일부터 전남 고흥에서 35일 일정으로 국토 종단을 시작했다. 이 국토 종단에는 환경단체 회원과 일반인 등 70여 명이 동참했다. 올해 초 그가 자신의 블로그에 자신의 철학과 함께 ‘지구 살리기 국토 종단’ 계획을 올리자 이를 본 누리꾼들이 동참한 것이다. 김 박사 일행은 시골길을 걸으며 자연이 무참히 파괴되는 현장을 무수히 마주쳤다. 분리수거가 안 된 채 뒤죽박죽된 쓰레기 더미, 논두렁에 수북이 쌓인 비료 포대, 가축 분뇨가 떠다니는 개울 등 농촌의 환경오염은 도시 못지않았다. 골프장 개발 때문에 산이 통째로 파헤쳐진 곳도 많았고 햇빛이 잘 드는 곳은 무덤으로 뒤덮여 있었다. 김 박사는 “환경오염은 도시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골은 환경의 사각지대”라고 말했다. 그는 전국을 걸으며 즉석 강의를 통해 “지구도 우리와 똑같은 의식과 감정을 가진 생명체”라는 점을 시민에게 알리고 있다. 일요일이었던 15일에는 경남 산청의 지리산고등학교를 지나다 축구 경기 중인 고교생들에게 게릴라 강의를 열었다. “최근 100년간 지구 온도가 0.8도 올랐는데 사람으로 치면 체온이 2도나 오른 거라고 했더니 학생들이 ‘지구가 지독한 독감에 걸렸네요’라며 관심을 보이더군요.” 김 박사 일행은 다음 달 11일쯤 목적지인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도착할 예정이다. 그는 “인간은 살기 위해 자연을 해치지만 자연이 무너지면 인간도 살 수 없다”며 “새벽에 피어오르는 물안개, 아침이슬에 반짝이는 이름 모를 들꽃, 무논에서 재잘거리는 개구리 소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느끼는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웃으며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꽃 한포기, 벌레 한 마리 생명도 소중한데 저는 그동안 사람을 죽이는 길을 걸어왔죠. 이젠 생명을 살리는 길을 가려합니다." 평생 무기 개발을 해오던 과학자가 지구와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국토 종단 걷기에 나섰다. 전 국방기술품질원 기술기획부장 김재훈 박사(53)는 정년을 10년 앞둔 지난해 말 사표를 냈다. 김 박사는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뒤 국방과학연구소와 국방기술품질원에서 27년간 근무하며 K-21 장갑차와 해군 전자전 장비 등 신무기를 개발했다. "무기 만드는 데 젊음을 바쳤는데 어느 날 내가 살상도구를 만들고 있다는 회의가 들더군요. 남은 인생은 죽어가는 지구와 생명을 살리는 데 쓰려고 합니다." 정년이 보장된 직장을 박차고 나온 그는 이후 환경운동가로 변신했고 7일 전남 고흥에서 35일 일정의 국토종단을 시작했다. 이 국토종단에는 환경단체 회원과 일반인 등 70여 명이 동참했다. 올해 초 그가 자신의 블로그에 자신의 철학과 함께 '지구 살리기 국토종단' 계획을 올리자 이를 본 누리꾼들이 동참해온 것이다. 김 박사 일행은 시골길을 걸으며 지구가 무참히 파괴되는 현장을 무수히 마주쳤다. 분리수거가 안 된 채 뒤죽박죽된 쓰레기 더미, 논두렁에 수북이 쌓인 비료 봉지, 가축 분뇨가 떠다니는 개울 등 농촌의 환경오염은 도시 못지않았다. 골프장 개발을 위해 산이 통째로 파헤쳐진 곳도 많았고 햇볕이 잘 드는 곳은 무덤으로 뒤덮여있었다. 김 박사는 "환경오염은 도시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골은 환경의 사각지대"라고 말했다. 그는 전국을 걸으며 즉석 강의를 통해 "지구도 우리와 똑같은 의식과 감정을 가진 생명체"라는 점을 시민에게 알리고 있다. 일요일이었던 15일에는 경남 산청의 지리산 고교를 지나다 축구를 하고 있는 고교생에게 게릴라 강의를 열었다. 그는 "최근 100년 간 지구 온도가 1.5도 올랐는데 사람으로 치면 체온이 4도나 오른 거라고 했더니 학생들이 '지구가 지독한 독감에 걸렸네요'라며 관심을 보였다"며 "이런 학생들이 늘어나면 생명과 자연을 사랑하고 현재의 인간 위주로 개발되는 지구를 돌아볼 터전이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박사 일행은 종단 기간동안 비닐봉투나 나무젓가락 등 1회용품을 쓰지 않는 '친환경 여행'을 하고 있다. 그는 "길에서 만나는 지역 동네 분들이 종종 일회용 믹스커피나 초코파이를 건네지만 비닐 포장된 물건은 쓰지 말자고 약속을 한 상태여서 정중히 사양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박사 일행은 다음달 11일경 목적지인 서울시청 앞 광장에 도착할 예정이다. 김 박사는 "인간은 살기위해 자연을 해치지만 자연이 무너지면 인간도 살 수 없다"며 "새벽에 피어오르는 물안개, 아침 이슬에 반짝이는 이름모를 야생화, 논둑에서 재잘거리는 개구리 소리 등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인지 새삼 느끼는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웃으며 말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입양아의 대부’로 불리는 동방사회복지회 설립자 김득황 명예이사장(사진)이 18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6세. 김 명예이사장은 1915년 평북 의주 출생으로 내무부 차관을 지낸 뒤 1972년 동방사회복지회를 세워 입양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37년 동안 아동 6만 명에게 양부모를 찾아준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상, 우봉봉사상 등을 받았다. 1세대 간도연구가이기도 한 김 명예이사장은 재야 역사학자로 활동하며 한국사상사, 한국종교사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펴내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도영(의학박사) 도웅 도봉 도경(㈜메드빌 전무이사) 도종 씨(명지대 사회복지대학원장), 딸 진숙 씨(동방사회복지회 회장), 사위 김학주 씨(동방평택복지타운 대표), 며느리 권정혜(고려대 교수) 박관성 씨(광주여대 교수)가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21일 오전 8시다. 02-2227-7550}
경찰이 시범 실시한 지 채 한 달도 안돼 3색 신호등제의 도입을 철회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16일 “3색 신호등은 사고를 줄이고 예산도 아낄 수 있는 제도지만 대다수 국민이 반대해 더 밀어붙일 수 없다”며 “확대 설치를 무기한 보류한다”고 밝혔다. 경찰은 2009년부터 3색 신호등제의 도입을 추진했으며 지난달 20일부터 서울 광화문 등 전국 53곳에서 시범 운영해왔다. 서울지역 11개 교차로에서 시범 운영한 결과 교통사고는 지난해 같은 기간 11건에서 4건으로 감소했고 사고 부상자도 16명에서 6명으로 줄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하지만 경찰은 시범 운영 직후 일각에서 “운전자가 헷갈려 한다”고 지적하자 충분한 검토나 홍보도 하지 않은 채 한 달도 안 돼 꼬리를 내렸다. 조 청장은 “인터넷에서 (누리꾼) 80% 이상이 반대해 어쩔 수 없다”며 “실체적 진실보다 국민이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중요한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하지만 상당수 시민은 “시작부터 눈에 익숙한 제도가 어디 있느냐”며 “정부가 인터넷 사이트가 자체 실시한 조사결과 하나를 근거로 장기간 연구해 추진해온 제도를 곧바로 포기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질타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19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건물에 딸과 아버지가 두 다리를 절뚝이며 나란히 들어섰다. 피아노 소리가 울리는 강당 앞에서 강수진 양(13)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빠, 나 목소리 괜찮아?” 강대생 씨(47)가 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러게 무리해서 연습하지 말라니까….” 근육이 굳어가는 근위축증에 걸린 수진이는 걸을 때마다 두 다리를 절뚝인다.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와 남동생도 그렇게 걷는다. 온몸이 마비되면서 호흡까지 어려워져 생명을 잃을 수 있는 병이지만 마땅한 치료법이 없다. 이 버거운 현실을 수진이는 노래로 버텨왔다. “눈을 감고 노래 부르는 상상을 하면 무대에서 멋진 춤을 추고 있죠. 친구들도 저를 너무 좋아해요.” 이날 수진이는 그토록 기다려 온 무대에 섰다. 백혈병이나 소아암 등 난치병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이사장 유명열)이 난치병 어린이 합창단을 만들기 때문이다. 심사위원 5명을 포함해 100여 명의 청중 앞에서 수진이는 맑은 목소리로 팝송 ‘오버 더 레인보’를 열창했다. 노래로 살아갈 힘을 얻는 아이는 수진이뿐만이 아니었다. 목발을 짚고 나온 진연호 군(9)은 ‘목소리가 작아 가사 전달이 잘 안 된다’는 지적에 “노래는 못해도 화음은 잘 맞춰요”라며 쌩긋 웃었다. 뇌종양 수술 후유증으로 앞을 못 보는 한 피아니스트 지망생은 베토벤 교향곡을 선보였고 휠체어에 탄 한 어린이는 “항암치료를 잘 받아서 꼭 뮤지컬 가수가 되겠다”며 열의를 보였다. 난치병을 앓던 15세 아들을 지난달 떠나보낸 한 아버지는 객석 한 귀퉁이에서 아이들을 응원하며 박수를 쳤다. 가수 빅뱅과 세븐의 노래를 만든 작곡가 이규원 씨와 국립오페라단 성악가 김관현 씨 등 심사위원들은 “기본기가 많이 약한데 잘 따라올 수 있겠어요?”라며 날카로운 지적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자 일부 지원자는 “열심히 할 건데… 아저씨가 가르쳐 주시면 안돼요?”라며 울먹였다. 결국 지원자 대부분이 합창단에 합류했다. 이날 오디션을 통과한 ‘완전 초보’ 단원 20여 명은 앞으로 유명 뮤지션들의 ‘박칼린식’ 집중 지도를 받는다. 작곡가들이 만든 곡을 연습해 5월 말 무대에 오르고 음반도 낸다.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은 이들과 함께할 일반인 단원과 ‘재능 기부’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있다. 어린이날 공표 90주년을 맞아 합창단 공연을 기획한 재단은 난치병 어린이를 위한 ‘Make-A-Wish, 희망’ 캠페인도 다음 달 29일부터 90일간 진행할 예정이다. ‘난치병 어린이 합창단’ 참여 문의 02-3452-7474, www.wish.or.kr신광영 기자 neo@donga.com}

50대 남성에게 5년 가까이 성폭행을 당한 박은경(가명·27) 씨가 어렵게 말문을 연 이유는 한 가지였다. 그녀는 인터뷰를 거듭 사양하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더는 숨죽이지 않도록 도와 달라”는 부탁에 마음을 열었다. 박 씨는 6일 ‘5년의 악몽’을 털어놓으며 “아직 신고할 용기를 못 내는 분들께 힘이 됐으면 하지만 신고한다고 끝이 아니라서…”라며 말을 흐렸다. “요즘 인권 때문에 교도소에서도 아픈 사람 다 고쳐준다면서요. 그 인간 고작 몇 년 살고 건강해져서 나오면 어떡하죠.” 고액 연봉의 공기업에 다니는 박 씨가 여경으로 진로를 튼 건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박 씨의 공포는 막연한 불안감이 아니다. 최근 보복범죄 현황을 보면 2006년 70건이던 게 2009년 129건으로 3년 새 84% 늘었다. 피살된 사례도 4건이나 된다. 어렵게 신고를 해도 보복의 공포가 계속되는 것이다. “신고하면 너는 물론이고 가족들도 죽인다”고 협박해 박 씨를 수백 차례 성폭행한 이경수(가명·55). 그는 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판사 앞에서 “우린 사실상 주말부부였다. 부부보다 더 깊은 정을 나눴다”고 강변했지만 결국 구속됐다. 경찰조사 땐 피해자와 통화를 하게 해달라며 진술까지 거부하다 결국 허락을 얻어냈다. 그는 통화에서 “은경아, 몸이 너무 아프다. 고소 취하해 줄 거지?”라고 울면서 애원했다. 하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내가 (징역) 살면 얼마나 살 것 같아. 나가기만 해봐”라며 안색을 바꿨다고 경찰은 전했다. 박 씨는 그에게서 해방될 수 있을까? 보복 우려가 있을 경우 가해자에 대한 보호관찰이나 접근금지 규정이 있긴 하지만 범위가 가정폭력 등에 제한돼 있다. 피해자 신변보호도 폐쇄회로(CC)TV 설치나 주변 순찰 등에 그치고 있어 효과는 크지 않다. 반면 미국은 가해자가 추적할 수 없도록 피해자의 거주를 옮겨 주고 신원도 세탁해 준다. 또 성폭력 등 강력범들은 출소 후에도 음주 등 범행을 일으킬 수 있는 행동을 통제하고 강제적 치료 명령을 내린다. 기사를 보고 연락해온 부산의 한 경찰관은 “20년 넘게 흉악범들을 겪어 봤는데 피해 여성은 아주 위험한 상태”라며 “지금처럼 설렁설렁 순찰 도는 정도로는 절대 보복을 막을 수 없다”고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학창시절 별명이 ‘스마일 걸’이었던 박 씨는 “지옥의 5년을 보내며 마음이 돌이 됐다”고 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신고할 용기를 내는 일이었다면 그녀에게 웃음을 돌려주는 건 이제 사회의 몫이다.신광영 뉴스제작팀 neo@donga.com}

※ 내러티브 리포트(Narrative Report)는 삶의 현장을 담는 새로운 보도 방식입니다. 기존의 기사 형식으로는 소화하기 힘든 ‘세상 속 세상’을 이야기체(Storytelling)로 풀어냅니다. 동아일보는 내러티브 리포트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 더욱 깊이 있는 세상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지난달 27일 경찰서로 뛰어 들어온 한 여성이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눈물범벅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가씨.” 형사들의 거듭된 질문에 박은경(가명·27) 씨는 “저를… 저를…죽이려 해요”라며 1시간 가까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그녀의 휴대전화가 쉬지 않고 울렸다. 형사들의 설득에 가까스로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스피커폰으로 굵은 저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4년 8개월 동안 성폭행을 당했지만 도저히 신고할 엄두를 못 냈던 그 사람, 이경수(가명·55)였다.》신고 후 일주일 만인 6일.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박 씨는 우윳빛 피부에 단아한 외모였다. 대학 시절 그녀의 꿈은 스튜어디스였다. 5년 전 항공사 면접을 앞두고 찍은 이력서 사진은 이제 경찰서 조사 서류에 붙어 있었다. 담당형사는 “지금도 예쁘지만 그땐 정말 티 없이 맑은 아가씨였네”라며 혀를 찼다. 지난 5년간 그녀에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친절한 아저씨’와의 만남두 사람의 악연이 시작된 것은 2006년 여름. 박 씨는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 한 지역축제에서 영어통역 봉사를 하고 있었다. 말을 타고 해변을 오가던 이 씨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젊은 사람이 참 성실하네. 수양딸 삼고 싶어.” 박 씨는 “머리가 벗어지고 얼굴이 쭈글쭈글한 게 딱 봐도 할아버지였다”고 그의 첫인상을 떠올렸다. 그래도 동네 주민의 호의려니 생각한 박 씨는 부담 없이 마음을 열었다. 박 씨가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취업 준비를 위해 통역 봉사를 하게 됐다는 걸 파악한 이 씨는 “대기업 임원 친구들을 소개해 주겠다”며 저녁 식사자리에 초대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 이 씨는 갑자기 모텔 앞에 차를 세우고 문을 잠그더니 17cm 회칼을 꺼냈다. 성폭행을 한 뒤엔 휴대전화로 촬영한 나체 사진을 보여주며 “신고하면 네 엄마 아빠한테 사진 보내고 몰살해버리겠다”고 말했다. 단 하루의 악몽이길 바랐지만 그게 시작이었다.박 씨가 취업 준비를 위해 고향을 떠나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 연락을 피하자 이 씨는 고시원 앞까지 찾아오기 시작했다. 박 씨는 그 와중에도 토익 점수를 만점 가까이로 올리고 회계관리사 등 7개의 자격증도 땄다. 대학을 수석 졸업한 박 씨는 고향에 있는 초봉 3500만 원의 유명 공기업에 취직했다. 하지만 이 씨는 “어렵게 들어간 회사 못 다니게 하겠다”며 박 씨를 협박해 휴일마다 자기 집으로 불러 성폭행했다. 몸부림치며 저항하면 방 안에 있는 비상탈출용 완강기 줄로 목을 조르며 “목숨으로 사랑을 맹세하라”고 강요했다. 또 “같이 죽자”며 각자 한 손씩 손수건으로 묶은 뒤 저수지로 끌고 들어가 익사 직전까지 갔다 낚시꾼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박 씨는 “살려주면 시키는 대로 하겠다”며 애원했다. 정말 죽을 수 있겠다는 공포가 매번 신고할 용기를 꺾었다.직장 동료들은 금요일이 되면 화색이 돌았지만 박 씨는 목요일부터 두통에 시달렸다. 회사에 안 가는 공휴일, 명절도 마찬가지였다. “달력을 펼쳤는데 그달에 공휴일이 많으면 정말 죽고 싶었어요.” 평일에도 자유는 없었다. 오전 8시와 점심 식사 후 낮 12시 반, 퇴근 무렵인 오후 5시 반, 자기 전인 오후 9시 반, 휴대전화에선 알람이 울렸다. 하루 4차례 중 한 번이라도 전화를 빼먹으면 그녀의 집까지 달려와 밤새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렇게 당하면서 왜 신고도 못 했냐고요?지옥이 시작된 지 1년쯤 되던 날, 박 씨는 단짝 친구에게서 자신처럼 성폭행을 당한 후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친구와 함께라면 신고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친구가 먼저 신고를 하자 경찰은 범인을 체포해 피해여성 8명을 추가로 밝혀냈다. 하지만 그들은 경찰의 진술 요청에 하나같이 “기억이 안 난다”며 거부했다. 결국 범인은 징역 2년의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박 씨는 이 씨를 경찰에 신고해도 잠깐 잡혀 있다 다시 나와 반드시 보복할 것이란 생각에 또 용기를 접었다.이 씨는 종종 자신의 동창 모임에 박 씨를 데리고 갔다. 그러곤 “내 마누라야. 영계랑 사는 게 부럽지”라고 자랑했다. 그때마다 박 씨는 죽고 싶을 만큼 치욕을 느꼈다. 하루는 이 씨의 ‘50년 친구’라는 사람이 조용히 박 씨를 불렀다. “앞길이 창창한 처녀가 왜 이러고 사니. 내가 네 아버지라면 지금 당장 저놈을 죽여버릴 거야.” 박 씨가 눈물을 흘리며 “가족을 다 죽이겠다는데 어떻게 신고해요”라고 하자 그는 “그럼 이렇게 계속 살래? 죽을 때 죽더라도 신고해서 잠시라도 편하게 사는 게 낫잖아”라고 했다.그 사람 말처럼 박 씨도 수없이 신고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끝내 단념하게 만드는 건 ‘엄마’였다. 박 씨가 대학 1학년 때 엄마는 아버지와 이혼하고 경남의 한 소도시에서 홀로 살았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박 씨는 매달 생활비와 한약을 지어 보냈다. “대학 수석 졸업하고 좋은 데 취직한 효녀라고 주변 분들에게 그렇게 자랑을 하셨어요. 근데 제 상황을 아시면…제가 엄마한테 어떻게 그 얘기를….” 박 씨는 내내 침착하게 과거를 얘기했지만 엄마 얘기가 나오면 목이 메었다.그 효심이 박 씨에겐 아킬레스건이었다. 이 씨는 그녀가 연락을 피할 때마다 그녀의 엄마가 사는 도시로 내려가 해당 지역번호인 0××가 찍히도록 전화를 걸었다. “지금 네 엄마 집 앞인데 쇠망치로 대가리를 부숴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이 씨는 늘 회칼과 손잡이 부분에 붕대가 감긴 30cm 길이의 무거운 쇠망치를 가지고 다녔다. 침대 머리맡에 있던 공기총도 수시로 꺼내 겨누곤 했다. 마음을 굳게 먹었다가도 박 씨는 “제발 엄마는 건드리지 마라” 하고 사정해야 했다. 그렇게 억지로 만난 날 밤이면 박 씨는 옆에서 코를 골며 자는 그의 얼굴을 보며 손잡이 붕대가 누렇게 된 쇠망치를 수없이 들었다 놓았다.박 씨를 만나기 전 이 씨에겐 강간치상 등 6번의 전과가 있었다. 이 씨는 이혼한 전처와 그 이혼을 도와준 처남을 죽이겠다며 칼로 협박하다 2008년 7월 다시 수감됐다. 그는 교도소에 가면서 “미행 붙여놨으니 다른 남자 만날 생각하지 말고 면회와 편지를 꼬박꼬박 하지 않으면 나와서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박 씨에겐 빈말이 아니었다. 이 씨는 전처와 처남을 죽이기 위해 공기총과 청산가리를 구하러 갈 때마다 박 씨를 데리고 다녔다. “너도 반항하면 이걸로 죽는다”며 겁을 줬다. 결국 이 씨가 수감된 10개월 동안 그녀는 매달 2, 3차례 면회를 가고 매주 2통씩 편지를 써야 했다. 이 씨는 철저하고 집요했다. 교도관이 배치된 감옥 면회장에선 박 씨를 부드럽게 대했다. 그러나 그는 출소하던 날 “저번에 보니까 가방도 없이 왔던데 어디서 어떤 놈 만나고 있다가 슬쩍 와가지고 가식을 떠느냐”며 주먹을 휘둘렀다. 박 씨는 고막이 터져 두 달간 치료를 받았다.○ 자살해 버리겠다는 말에 “기다리자…”2009년 5월 출소한 이 씨는 “나를 감옥에 보낸 전처와 처남을 죽이고 나도 자살하겠다”고 버릇처럼 말했다. 당뇨로 체중이 20kg 이상 줄고 이도 대부분 빠졌지만 살인 계획에만 몰두했다. 주말에 그의 집에 가면 일주일 동안 혼자 끼적인 메모가 수십 장 쌓여 있었다. “최대한 악랄하고 결단력 있게 계획을 끝내야 한다”며 스스로 다짐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하루 종일 공기총 사격 연습을 해 손가락에 박인 굳은살과 캡슐에 담은 청산가리를 보여줬다. 박 씨는 “아무 희망도 없고 무서울 게 없는 사람이라 언제든 말을 실행으로 옮길 것 같아 신고할 엄두를 못 냈다”고 했다.신고도 못하고 직접 죽이지도 못하니 박 씨는 그가 자살하겠다고 한 ‘그날’이 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올여름까지’라던 ‘그날’은 그해 말, 이듬해 여름으로 계속 미뤄졌다. 그 무렵 이 씨는 화투에 몰두했고 박 씨에게서 도박 자금으로 4000만 원을 뜯어 갔다. 힘들게 일해 번 돈이었지만 이 씨가 화투를 치러 가 있을 땐 잠깐이나마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어 차라리 나았다. 그가 해수욕장 인근 도박장에 있는 동안 박 씨는 여행객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가족들끼리 친구들끼리 큰 소리로 웃으면서 물놀이하는 게 너무 부러웠어요. 나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있는데….” 도박장에서 파출소까지는 불과 150m 거리였다.이 씨가 “이번 계획은 진짜”라고 약속한 날을 하루 앞둔 지난달 27일. 박 씨는 조심스럽게 이 씨에게 말을 꺼냈다. “2월이 다 가는데 언제 정리가 되는 거야?” 하지만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 씨는 “넌 내가 죽기를 바라는 거냐”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곤 회칼과 쇠망치를 가져왔다. 떨리는 손으로 금고 비밀번호를 눌러 공기총도 꺼냈다. 이 씨는 숫돌에 칼을 갈며 “그동안 아주 가식을 떨었구나. 오늘 너부터 죽인다.” 읊조리듯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박 씨가 방을 나가려 하자 이 씨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쇠망치로 머리를 내리치려 했다. 허벅지에 이미 한 대를 맞은 박 씨는 망치를 든 이 씨의 손을 잡았다. 혹시나 칼로 바꿔 잡을까 봐 20분 넘게 죽을힘을 다해 버텼다. 흉기를 내려놓은 이 씨는 “저수지로 죽으러 가자”며 집을 나섰다. 그는 대문 앞에 묶여 있던 강아지의 머리를 쇠망치로 내리쳤다. 목이 돌아간 강아지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났다.저수지를 100여 m 앞두고 차 옆자리에 있던 이 씨가 담배를 사겠다며 내렸다. 앉았던 자리에는 쇠망치와 회칼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이 씨가 편의점에 들어가는 걸 본 박 씨는 핸들을 틀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택시를 잡아타고 쫓아올까 봐 신호도 무시하고 10여 분을 무작정 달렸다. 경찰서에 들어서자 박 씨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경찰이 이 씨의 위치를 파악해 도착한 곳은 평소 그가 고스톱을 치던 민박집이었다. 담배를 물고 패를 살펴보던 이 씨는 그 자리에서 체포돼 구속됐다. 도망친 박 씨가 경찰에 신고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신고는 했지만… 경찰 신고 후 그가 없는 첫 주말. 박 씨는 친구를 만났다. 5년 만에 처음 맛보는 자유였다. 하지만 떠나지 않는 그놈 목소리. 그는 아직 곁에 있다. 이 씨가 쇠망치로 머리를 내리치는 악몽을 매일 꾸고 초인종이나 전화벨이 울리면 심장이 미친 듯 뛴다. 공포의 끈질김. 악몽 속에선 단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박 씨는 “출소하면 어떻게든 나와 가족들을 찾아내 죽일 것”이라고 말했다.이민을 갈까 했지만 혼자 도망친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박 씨는 4년째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경찰이 되기로 결심했다. “하루 종일 경찰서에 있을 수 있잖아요. 총을 소지할 수 있는 유일하게 합법적인 방법이고.” 잃어버린 5년의 세월도 엄마에게 털어놓을 생각이다. 출소에 대비해 거처를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피눈물을 흘리시겠지만 결국 얘기하게 될 것을…. 누군가 저 같은 처지에 있다면 공포의 덫에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아파트 12층인 중앙119구조대 김진태 소방관(45)의 집은 오후 2시에도 깜깜했다.“햇볕이 안 들어오게 베란다 창에 블라인드를 쳤어요. 자외선을 쐬면 피부가 검어지거든요.” 김 소방관은 집에 와서도 마스크와 모자를 벗지 않았다.그는 붕대 감긴 손으로 앨범 한 권을 꺼냈다. 100km 울트라 마라톤과 철인3종 경기에 출전해 찍은 사진들이었다. 지진으로 무너진 벽돌더미에서 축 늘어진 개 한 마리와 찍은 사진도 있었다. 인명구조견 조련사로 세계 각지의 재난현장을 다닐 때 찍은 것들이다.특전사 출신인 그의 별명은 ‘울트라 진태’. 그는 사진 속에서 마라톤 결승선을 지나며 활짝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미소를 더는 보지 못한다. “요즘은 대원들하고 식사하는 것도 제가 꺼려요.”그의 인생을 바꾼 2년 전 사건. 2008년 12월 경기 이천의 한 물류창고에 불이 났다. 대형 화재였다. 인부 6명이 숨지고 한 명이 실종된 상황. 김 소방관은 실종자를 찾아 불타는 건물을 수색했다. 그런데 갑작스레 들려온 소리. “무너진다!” 몸을 돌리는 순간 김 소방관은 건물 붕괴로 인한 열 폭풍 때문에 수십 m를 튕겨져 날아갔다.목숨은 건졌지만 온몸에 3도 화상을 입었다. 얼굴 화상이 특히 심해 지금도 피부이식 수술을 더 받아야 한다. 하지만 연 1억 원 가까이 드는 치료비를 국가가 대주는 것도 딱 올해까지. 치료 시작 후 3년이 지나면 지원이 끊긴다. 병원에 있는 동안 월급이 30% 정도 줄었고 부인은 간병 때문에 직장을 그만뒀다. 사고 며칠 뒤 부인마저 암 수술을 받았다. 치료가 3년을 넘길 텐데 어떻게 해야 하나.2007년 인명 구조작업 중 음주운전 차량에 치인 이도재 소방관(40). “이런 거 처음 보죠?” 7일 부천소방서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의족을 벗어 무릎까지만 남은 다리를 뿌드득 소리가 나도록 주물렀다. “멀쩡할 때보다 2∼3배 더 시려요.”사고 후 3년이 지났지만 완치는 아직 멀다. 이제 치료비는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오른쪽 종아리 살을 절단된 왼쪽다리에 옮겨 붙여 오른쪽 다리도 수술이 필요하다. 항생제를 자주 복용해 치아가 빠지고 신장이 약해지는 등 후유증도 심하다.소방관들의 평균수명은 한국인 남성 평균보다 20세 정도 낮은 58세. 매년 300명 이상이 다치고 6명 정도가 순직하지만 생명수당은 월 5만 원. 공무상 부상에 대한 치료 보장 기간은 소방관도 일반 공무원과 차이가 없는 3년이다. 그나마 허리디스크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소방관의 직업적 특성으로 인한 만성 질환에 대해선 별다른 지원이 없다.선진국들은 치료 기간을 일률적으로 정하지 않는다. 동국대 산업의학과 안연순 교수는 “미국은 소방관이 다치면 ‘케이스 매니저’가 치료 기간을 판단한 뒤 완치 때까지 책임진다”고 말했다.부상 소방관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게 있다. 김 소방관은 얼마 전 슈퍼에 갔다 경찰에 붙들렸다. “제가 마스크랑 모자를 눌러 쓰고 있으니까 누가 신고했나 봐요. 제복을 입고 있었는데도 참….”이 소방관도 사고 전 즐겨 가던 대중목욕탕에 가지 못한다. “여섯 살 된 아들이 하도 졸라서 한 번 갔죠. 주인이 ‘요즘 장사도 안 되는데 장애인까지 온다’고 하더라고요. 저야 그러려니 하는데 아들놈이 막 울데요.”임용된 지 5년이 안 돼 그만두는 소방관의 비율은 5명 중 1명꼴이다. 미국 소방관들의 직업 만족도가 의사나 과학자와 함께 최상위권인 것과는 대조적이다.“(이 직업을 택한 게) 왜 후회가 안 되겠습니까. 그래도 소방관이란 게 참 멋있지 않습니까. 다들 살려달라고 후퇴할 때 전진하는, 남을 위해 몸을 불사른다는 게….” 그렇게 다치고도 속없는 이 소방관이 씩 웃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지난해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 서울 시내 지하철 가판대에 깔린 한 신문의 1면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이번 (연평도) 포격의 본질은 (남북 간) 영해와 영토의 주권 다툼이다.”(11월 29일자) 이 신문은 ‘연평도 사건의 4대 배경’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북한이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표하고 미국과의 대화를 촉구했으나 미국은 거절했다”며 연평도 도발의 책임이 미국 측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또 지난해 12월 29일 통일부가 새해 업무보고에서 “2011년은 통일에 더욱 다가서는 전진의 해”라고 밝힌 것을 ‘흡수통일의 전략적 신호’라고 해석했다. 신문 신년호는 “남한이 몰래 흡수통일을 꿈꾸고 있는 것은 세계가 알고 있었다”며 “한반도 정세가 더욱 긴장될 가능성이 높아져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불안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 정부의 입장은 물론이고 국민 정서와도 사뭇 다른 논조의 이 신문은 뭘까. 바로 중국 공산당 기관지이자 대표적 일간지인 ‘런민(人民)일보’의 ‘한국판’이다.민감한 외교사안 中시각 일방 전파전 세계 86개국에 나가는 런민일보 해외판 중 신문 전체가 현지어로 발행되는 건 한국어판이 처음이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에서 발행하는 한글 신문인 ‘흑룡강신문’이 국내에 들어와 있지만 유력 중국 신문이 한국어로 번역돼 배포되는 건 ‘런민일보 한국판’이 유일하다.지난해 9월 창간돼 주간으로 나오는 이 신문은 지하철 가판대에서 7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전국의 관공서와 대학, 주요 기업 등에도 배포되고 있다. 중국동포들이 자주 오가는 외국인 복지시설에는 무가지로 배포된다. 논조가 한국 정부 입장과 배치될 때가 있지만, 신문 광고는 정부 광고와 국내 기업 광고가 많다.발행 부수는 1만여 부. 런민일보 해외판이나 자매지인 환추(環球)시보에 실린 기사를 그대로 번역하다 보니 한중 간 예민한 외교 사안을 중국 쪽 시각으로 바라본 기사가 적지 않다. 중국 런민일보는 자사의 서울지국장과 평양지국장을 지낸 ‘고급 기자’ 쉬바오캉(徐寶康) 씨를 한국판 대표로 파견해 편집 방향을 조율하고 있다.런민일보 한국판 류재복 특별취재국장은 “자칫 한중관계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중립을 지키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북쪽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외국인 노동자 복지시설인 ‘지구촌사랑나눔’에서 무가지로 신문을 받아 본 중국동포 김용철 씨는 “최근 연평도 사건이나 중국인 선원 문제가 있었는데 그동안 한국 쪽에서 보여주는 내용만 알다가 중국 쪽 시각도 볼 수 있어 균형이 잡히는 것 같다”고 말했다.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 강준영 교수는 런민일보 한국판 발행 배경에 대해 “기존에는 한중 간 경제협력이 주요 이슈였다”면서 “그러나 최근 천안함 피폭이나 연평도 도발처럼 입장차가 첨예한 사안이 잇달아 생기면서 중국의 시각을 한국에 적극 전파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전문가들은 “한중 간 현안이 계속 늘어날 것에 대비해 우리도 중국 국민을 상대로 여론전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아직 중국 현지에서 중국어로 발행되는 한국 언론은 하나도 없다. 중국 정부는 외국 신문의 중국어판 발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싱가포르가 ‘스마트 기술’로 도시국가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경제발전을 위해 인구를 정책적으로 늘리면서 부닥치는 교통 및 전기 문제를 첨단 정보기술(IT)로 풀려는 것. 작은 나라에서 차들이 늘어나는 바람에 심각해진 교통체증에 대비하기 위해 싱가포르는 지능형 교통망을 도입했다는데….■ 필리핀 새댁의 첫 친정 나들이고향에 딸을 두고 한국에 시집 온 필리핀 엄마. 두 살배기 아기였던 딸은 올해 열세 살. 마닐라 국제공항에서 11년 만의 기적 같은 재회. 엄마는 펑펑 울고 딸은 덤덤했다. 그리웠지만 너무 멀었던 엄마. “한국에 꼭 데려가자”며 엄마와 한국인 아빠가 필리핀까지 왔는데…. 한 필리핀 여성의 험난한 친정 방문길을 동행했다.■ 한국영화의 샛별, 송새벽지난 한 해 한국영화. 이 사람만 나오면 배꼽 잡기 바빴다. ‘방자전’에서 어눌한 변태 변학도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배우 송새벽. 올해 첫 주연작 ‘위험한 상견례’와 블록버스터 ‘7광구’ 개봉을 앞둔 그에게 “확 변한 대접 때문에 변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물었다.■ 프로야구 각 팀 올해 희망은고생 끝에 낙이 오고(고진감래·苦盡甘來), 옛 것을 익혀 새 것을 알게 되면(온고지신·溫故知新) 얼마나 좋을까. 이를 위해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칠전팔기(七顚八起)를 노리는 팀들이 있다. 기대와 설렘을 안고 새 시즌을 맞는 프로야구 8개 팀의 희망을 사자성어로 풀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