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런민일보 한국판 내용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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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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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사건, 北의 대화요구 묵살한 美책임”

북한의 연평도 도발을 분석한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 한국판
북한의 연평도 도발을 분석한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 한국판
지난해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 서울 시내 지하철 가판대에 깔린 한 신문의 1면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이번 (연평도) 포격의 본질은 (남북 간) 영해와 영토의 주권 다툼이다.”(11월 29일자)

이 신문은 ‘연평도 사건의 4대 배경’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북한이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표하고 미국과의 대화를 촉구했으나 미국은 거절했다”며 연평도 도발의 책임이 미국 측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또 지난해 12월 29일 통일부가 새해 업무보고에서 “2011년은 통일에 더욱 다가서는 전진의 해”라고 밝힌 것을 ‘흡수통일의 전략적 신호’라고 해석했다. 신문 신년호는 “남한이 몰래 흡수통일을 꿈꾸고 있는 것은 세계가 알고 있었다”며 “한반도 정세가 더욱 긴장될 가능성이 높아져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불안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 정부의 입장은 물론이고 국민 정서와도 사뭇 다른 논조의 이 신문은 뭘까. 바로 중국 공산당 기관지이자 대표적 일간지인 ‘런민(人民)일보’의 ‘한국판’이다.

민감한 외교사안 中시각 일방 전파

전 세계 86개국에 나가는 런민일보 해외판 중 신문 전체가 현지어로 발행되는 건 한국어판이 처음이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에서 발행하는 한글 신문인 ‘흑룡강신문’이 국내에 들어와 있지만 유력 중국 신문이 한국어로 번역돼 배포되는 건 ‘런민일보 한국판’이 유일하다.

지난해 9월 창간돼 주간으로 나오는 이 신문은 지하철 가판대에서 7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전국의 관공서와 대학, 주요 기업 등에도 배포되고 있다. 중국동포들이 자주 오가는 외국인 복지시설에는 무가지로 배포된다. 논조가 한국 정부 입장과 배치될 때가 있지만, 신문 광고는 정부 광고와 국내 기업 광고가 많다.

발행 부수는 1만여 부. 런민일보 해외판이나 자매지인 환추(環球)시보에 실린 기사를 그대로 번역하다 보니 한중 간 예민한 외교 사안을 중국 쪽 시각으로 바라본 기사가 적지 않다. 중국 런민일보는 자사의 서울지국장과 평양지국장을 지낸 ‘고급 기자’ 쉬바오캉(徐寶康) 씨를 한국판 대표로 파견해 편집 방향을 조율하고 있다.

런민일보 한국판 류재복 특별취재국장은 “자칫 한중관계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중립을 지키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북쪽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외국인 노동자 복지시설인 ‘지구촌사랑나눔’에서 무가지로 신문을 받아 본 중국동포 김용철 씨는 “최근 연평도 사건이나 중국인 선원 문제가 있었는데 그동안 한국 쪽에서 보여주는 내용만 알다가 중국 쪽 시각도 볼 수 있어 균형이 잡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 강준영 교수는 런민일보 한국판 발행 배경에 대해 “기존에는 한중 간 경제협력이 주요 이슈였다”면서 “그러나 최근 천안함 피폭이나 연평도 도발처럼 입장차가 첨예한 사안이 잇달아 생기면서 중국의 시각을 한국에 적극 전파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한중 간 현안이 계속 늘어날 것에 대비해 우리도 중국 국민을 상대로 여론전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아직 중국 현지에서 중국어로 발행되는 한국 언론은 하나도 없다. 중국 정부는 외국 신문의 중국어판 발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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