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광영]‘브래지어 탈의’ 경찰의 어이없는 말 바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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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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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사회부
신광영 사회부
유치장 입감(入監) 때 여성 입감자의 브래지어 탈의 문제를 놓고 경찰의 오락가락 행보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사건은 10일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열린 ‘반값 등록금 촛불집회’에 참여했다가 연행된 여대생 김모 씨(20)가 입감 과정에서 경찰이 브래지어를 벗도록 한 데서 시작됐다. 김 씨와 김 씨가 소속된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은 14일 “경찰이 김 씨에게 브래지어를 벗게 한 뒤 조사를 해 심한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경찰은 15일 “경찰 호송규칙에 따라 합법적으로 진행했다”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하지만 김 씨를 조사한 서울 광진경찰서는 불과 3시간여 뒤 기자회견을 열고 “(브래지어 탈의는) 적법한 절차에 따른 것이었지만 (김 씨가) 수치심을 느꼈다면 사과한다”고 말했다.

경찰의 어이없는 말 바꾸기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경찰은 당초 한대련이 인권 침해를 주장하자 발끈하며 “과연 인권 침해가 있었는지 국가인권위원회에 우리가 직권조사를 의뢰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인권위 조사 의뢰를) 안 하겠다”고 했다가, 몇 시간 뒤에는 다시 아무 설명도 없이 인권위에 조사를 의뢰했다.

기자가 보기에 경찰은 브래지어 탈의와 김 씨의 성적 수치심을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 문제가 되는 것은 경찰의 브래지어 탈의가 적법한 것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경찰의 적법한 탈의 과정에서 김 씨가 성적 수치심을 느낄 만한 상황이 발생했느냐 아니냐다.

브래지어 탈의 문제는 이미 인권위의 판단이 나와 있다. 인권위는 2008년 11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당시 시위대가 낸 같은 진정에 대해 “자살 방지를 위해 속옷 탈의는 요구해야 하지만 성적 수치심이 들지 않도록 보완책을 세우라”고 권고했다. 탈의 요구는 정당하되 성적 수치심이 들지 않도록 유의하라는 게 이 권고의 핵심이다.

경찰은 당시 권고에 따라 속옷 탈의 시 겉옷 위에 입을 수 있는 가운을 유치장에 비치하는 등 보완책을 세웠다. 하지만 모든 절차가 적법했다고 모든 입감 여성이 성적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성적 수치심은 매우 주관적인 판단이기 때문이다. 김 씨가 보편적인 상식보다 과하게 반응했을 수도 있지만, 경찰이 ‘적법한 절차’만을 강조한 나머지 여성의 심리를 간과했을 수도 있다.

인권위도 밝혔듯이 ‘탈의’ 자체는 적법하다. 하지만 공권력을 집행하는 국가기관은 그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미세한 문제도 신경을 써야 한다. 경위야 어떻든 사과까지 한 마당에 이를 다시 뒤집는 것은 국가기관의 태도라고 보기에는 왠지 당당하지 않은 것 같다.

신광영 사회부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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