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송평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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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송평인 칼럼니스트입니다.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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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6~2025-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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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3%
  • [오늘과 내일/송평인]재잘거려라, 보수

    트위터(twitter)는 영어로 재잘거린다는 뜻이다. 트위터에 들어가면 하늘색 바탕에 한 마리 새가 보인다. 새가 지저귀듯이 재잘거리는 곳이 트위터다. 채팅(chatting)의 채트도 생각나는 대로 수다를 떤다는 뜻이다. 재잘거리는 진보는 넘쳐나는데 재잘거리는 보수는 별로 없다. 재잘거려라. 보수. 세상이 변했다. 근엄한 말만 하고 있다가는 망할지 모른다.생각보다 직감이 중요한 전자매체 마셜 매클루언은 ‘미디어(매체)는 메시지다’라고 말했다. 그는 매체를 구전(口傳), 글과 인쇄매체, 전자매체로 구별한다. 입에서 입으로 소식을 전하던 시대에는 메시지는 기억하기 쉬운 운문에 적합해야 한다. 운문은 시인의 것이고, 시인은 운문으로 그 사회의 기억을 전해주는 사람이었다. 글이 발명되고 메시지는 산문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운문은 기억을 위한 것이지만 산문은 성찰을 위한 것이다. 메시지는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전달됐다. 전자매체의 등장으로 다시 상황은 변했다. 메시지는 즉각 전송되고 즉각 응답을 원한다. 인쇄매체에서는 성찰이 먼저이고 반응은 나중이지만 전자매체에서는 반응이 먼저고 성찰은 나중이다. 생각보다 직감이 중요해졌다. 구전 시대에서 문자 시대로 넘어갈 때 반발이 있었다. 플라톤은 당시의 뉴미디어인 문자가 살아있는 정신의 직접적 교류에 방해가 된다고 봤다. 소크라테스는 말로 진리를 깨우치게 했을 뿐 스스로는 어떤 글도 남기지 않았다. 인터넷 시대에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생각을 정리한 후에 글을 쓰는 데 익숙한 작가에게 말부터 하고 본다는 것이 도무지 쉽지 않다. 인쇄매체를 호령하던 1급 작가가 전자매체에 대한 부적응을 겪고 있는 사이에 변화에 재빨리 적응한 이외수 같은 작가가 트위터의 스타로 부상했다.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가 뜬 것은 참을 수 없이 가볍게 재잘거리기 때문이다. 거짓도 진실인 것처럼. 아니 거짓이든 진실이든 뭔 상관이냐는 태도로, 쫄지 않고. BBK 사건의 에리카 김이 ‘눈 찢어진 사람’과 불륜 관계였다고 말할 때도 쫄지 않고. 어차피 ‘꼼수’인데. 미국소 먹으면 광우병 걸리고 천안함은 스스로 좌초하거나 미군이 쏜 어뢰에 맞은 거다. 사실이든 아니든 뭘 어차피 ‘꼼수’인데. 재잘거리기 위해서는 정신 자세를 바꿔야 한다. 근엄함, 혹은 그 반대의 한 쌍인 열등감 같은 것은 집어던져라. 김어준이 잘 재잘거리는 것은 스스로 삐끼요, 딴지요, 꼼수로 자리매김하기 때문이다. 그는 조국의 ‘진보집권플랜’에 흐르는 ‘진보적 엘리트 특유의,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공기처럼 흐르는, 우아하고 거룩한 오만이 재수 없을 수 있겠다’ 싶어 ‘닥치고 정치’를 냈다고 말했다. 생각해보고 나서 정리해서 말하겠다는 것이야말로 인쇄시대적 사고다. 재잘거리기 위해서는 말이 앞뒤가 맞는지 따지는 것을 일단 접어둬라. 먼저 반응을 띄우고 느낌을 말하고 그러고 나서 따져보는 것이 순서다. 또 재잘거리기 위해서는 꼼수라도, 꼰대라도 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진보는 꼼수라고 자처하는데 보수에는 꼰대로 보이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사람들만 있어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말하고 나서 생각한다 인쇄매체 시대의 논객들이 주춤하는 사이 재빨리 새로운 전자매체 시대에 적응한 논객들이 공론장을 잠식해가고 있다.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은 중심을 지향하고 비록 시청취자 편지나 독자 투고 같은 피드백이 있기는 하지만 중심으로부터 모든 메시지를 발사한다. 여기서는 글쓰기 말하기 하나하나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시대의 논객은 네트워크로 생산되고 분배되는 정보에 익숙하다. 스스로를 유일한 발신자로 생각하지 않고 여러 혹은 많은 발신자 중의 하나로 여긴다. 그렇다고 진실한 발신의 의무가 약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당위로서나 그렇고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재잘거릴 수 있는 것은 이런 구조 속에서다. 좋든 나쁘든 시대가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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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출판 정치

    내년 선거철을 앞두고 정치서적 출간 붐이 일고 있다. 교보문고에는 ‘닥치고 정치’(김어준) ‘나는 꼼수다 뒷담화’(김용민) ‘조국 현상을 말하다’(김용민) ‘운명’(문재인) ‘진보집권 플랜’(조국 오연호) 등이 정치사회 베스트셀러 코너의 상위권을 차지했다. 모두 야권 진영의 책으로 등장인물이 비슷하다. ‘나는 꼼수다’로 뜬 김어준은 ‘닥치고 정치’에서 문재인을 치켜세우고 그 문재인은 ‘운명’을 썼다. 김용민 역시 ‘나꼼수’의 일원으로 뒷담화를 늘어놓고 조국 현상을 얘기한다. 조국 현상은 ‘진보집권 플랜’에서 시작됐다. ▷보수우파 진영에서 내놓은 책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의 ‘보수, 비탈에 서다’, 나성린 의원과 최홍재 시대정신 이사의 ‘대한민국을 부탁해’는 출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진열대에서 찾을 수 없다. 전원책 변호사의 ‘자유의 적들’만이 간신히 눈에 띈다. 신(新)매체인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어 구(舊)매체인 출판까지 이른바 진보좌파가 주도권을 쥐었다. 인터뷰 형식을 빌리거나 구어체로 쉽게 쓰는 전략이 독자들에게 먹혀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프랑스도 선거철이 되면 출판계가 북적거린다. 6개월 앞으로 다가온 내년 대선을 앞두고 사회당 후보가 된 프랑수아 올랑드는 ‘생존자’와 ‘프랑스의 꿈’을 펴냈다. 2007년 대선에서 당내 라이벌 니콜라 사르코지 현 대통령에게 진 도미니크 드빌팽 전 총리는 ‘우리들의 오래된 나라’라는 책으로 우파 독자를 유혹하며 독자 출마를 모색하고 있다. 공산당 등 군소정당의 대선 후보들도 책으로 출사표를 냈다. ▷한국의 유력한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글로는 조용하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자서전 비슷한 책을 낸 적이 있지만 차기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이 궁금해하는 중요 이슈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언론 인터뷰에서도 감질나는 ‘단답(短答)’이 대부분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곧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듯한 행보를 이어가는데도 정작 본인의 정치비전을 알 수 있는 책이 하나도 없고 인터뷰도 안 한다. 두 사람이야말로 신비주의를 벗고 출판 정치에 좀 나와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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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정치적으로 매력적인’

    폴리시크(polichic)는 ‘정치적으로 매력적인(politically chic)’을 줄인 말이다. ‘88만 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씨는 요새 젊은이들은 ‘간지’가 나지 않으면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간지(感じ)는 ‘느낌’을 뜻하는 일본말로 간지가 난다고 하면 영어의 시크처럼 멋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법륜 스님이 그제 한나라당 초선 모임에서 ‘안철수 현상’을 설명하면서 “요새 젊은이들은 이념적 성향이 없다”고 말했다. 이념 과잉의 386세대와 달리 2030세대엔 매력이 먼저고 그 뒤를 이념이 따라가는 모양이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형법학자로서는 별로지만 폴리시크하다. 인터넷방송 ‘나는 꼼수다’의 김어준 씨는 조 교수에 대해 “키도 크고 잘생기고 목소리도 좋고 학벌도 좋고 생각도 올바르고 내용도 있고 품위도 있고, 이만한 자산을 패키지로 가진 진보인사가 없었다”고 표현했다. 물론 외모가 전부는 아니다. 진보 쪽의 여배우 김여진 씨는 미모가 출중한 것도, 연기가 뛰어난 것도 아니지만 폴리시크하다.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사회 참여에도 진정성이 느껴진다. ▷폴리시크한 것으로 요새 가장 뜬 사람은 김어준 씨다. 조 교수에게는 사르트르, 김여진 씨에게는 수전 서랜던의 흉내 같은 게 엿보이지만 김 씨는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있다. 가령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에서 봤다는 피카소의 ‘게르니카’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다가 그 그림은 레이나소피아미술관에 있다는 지적이 나와도 창피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지적한 사람에게 부수적인 걸 따지는 지식인 근성이라고 면박을 준다. 그는 조 교수의 한계를 모범생적인, 지식인적인 스타일이라고 비판한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불분명하지만 거침이 없어 반응이 뜨겁다. ▷한나라당 원희룡 남경필 의원 등은 ‘쇄신’을 표방한 소장파임에도 폴리시크하지 못하다. 홍준표 대표가 젊은이들과 소통하겠다며 만든 자리에서 한 발언을 문제 삼아 비판하는 데나 열심일 뿐 그들 스스로는 홍 대표만큼도 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보수 쪽에서 박세일 서울대 교수는 지적으로 뛰어나지만 젊은이들에게 호소력은 별로다. 그럼 젊은 보수논객 변희재 씨는 폴리시크한가. 미국에서는 러시 림보 같은 보수파 라디오 진행자의 인기가 높다. 정치판이 재밌어지려면 보수 쪽에서도 폴리시크한 사람들이 나와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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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조폭 문신

    조선왕조실록에 동성애 관계의 궁녀들끼리 애정의 표시로 붕(朋)이라는 문자를 몰래 몸에 새겼다는 기록이 나오지만 한국사회에서 문신이 성행한 적은 없다. 3세기 중국 삼국지 위지동이전에는 일본에 대해 ‘남자개경면문신(男子皆경面文身)’이라는 기술이 나온다. ‘남자는 모두 얼굴 문신(경面文身)을 한다’는 의미다. 한국은 중국에서 온 문신이란 말을 그대로 사용하지만 일본에서는 이레즈미(刺靑)라고 해서 그들의 고유한 한자어를 쓴다. ‘이레즈미’란 제목을 가진 유명 소설과 영화도 있다. ▷한국에서 문신은 최근까지도 조직폭력배나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형성되기 시작한 조폭들이 일본 야쿠자의 영향을 받아 문신을 하기 시작했다. 중국 수호지를 보면 양산박에 문신을 한 호걸들이 있다. 그들의 의리에 감명받은 일본 야쿠자가 문신을 새기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있다. 오늘날 문신은 한국 조폭, 일본 야쿠자, 중국계 방(幇) 등 동아시아권 폭력조직에 공통된 현상이다. 가문의 문장처럼 폭력배들은 문신을 새김으로써 조직에 소속감을 드러낸다. 문신을 새길 때의 고통을 참고, 지워지지 않는 각인을 몸에 지님으로써 각오를 표시하는 것이다. ▷문신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쭈뼛하게 만드는 기능이 있다. 고대 사회의 전사들은 적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무서운 얼굴 문신을 했다. 오늘날 조폭이 하는 문신에도 무서운 용이나 호랑이 그림이 압도적으로 많다. 상반신이나 전신에 걸쳐 사인펜으로 그린 것처럼 선명하고, 진하다 못해 검푸른빛이 감도는 문신은 보는 사람이 위화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문신을 하는 것은 자유지만 다른 사람의 기분도 배려해야 한다. 목욕탕에서 문신한 남자를 만나면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지고 목욕할 마음이 사라진다. ▷울산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용 문신을 하고 공중목욕탕을 드나든 조폭 2명에게 경범죄처벌법을 적용해 범칙금 5만 원을 통보했다. 최근 조현오 경찰청장이 조폭 단속을 강화하라는 지시를 내린 이후 나온 조치다. 일본의 공중목욕탕이나 헬스클럽에는 ‘문신한 사람 입장 금지’ 팻말을 내건 곳이 많다. 문신한 사람이 그런 곳에 들어가면 형법상 주거침입죄로 처벌되고 주인의 퇴장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퇴거불응죄로 처벌된다. 조폭이 어둠의 세계의 징표를 함부로 내놓고 다니지 못하도록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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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송평인]문화적 좌파와 우파

    서울시장 선거운동 때 박원순 시장이 서울 안국동 선거캠프 앞에서 멘토단과 함께 찍은 사진이 일간지에 일제히 실렸다. 박 시장의 양옆에는 소설가 공지영 씨와 여배우 김여진 씨가 팔짱을 끼고 섰고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박재동 화백의 모습이 보였다. 박 시장은 앞서 조국 서울대 교수와 함께 남산 둘레길을 걷는 모습이 사진에 찍히기도 했다. 트위터에서 그를 지지한 문화예술인을 보면 소설가 이외수, 가수 이효리, 개그맨 김제동 씨 등 각 분야의 다양한 인기인이 망라돼 있다. 물론 박 시장의 알파와 오메가였던 안철수 서울대 교수를 빼놓을 수 없다. 문화적 좌파에 밀리는 우파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 옆에는 어떤 문화예술인이, 어떤 멘토로 불릴 만한 사람들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 후보 곁에서 봤던 유명인은 박근혜 홍준표 등 정치인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이런 것도 따지고 보면 박 시장과 나 후보의 승패를 가른 원인이다. 스타란 그가 하는 것을 따라하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다. 공지영 씨의 소설 ‘도가니’를 감동적으로 읽거나 김제동의 예능을 좋아하고 이효리의 댄스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들의 정치적 선택을 따라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게다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생기기 전과는 달리 지금은 그 스타들이 신문 방송 등 매체를 통하지 않고 직접 트위터에서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스타의 선택을 직접 들을 수 있게 되면서 이들의 영향력은 더 커졌다. 물론 반드시 SNS를 통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안 교수는 SNS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가 박 후보를 지지한다는 것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전달되는 것만으로 선거 판세를 들었다 놓았다 했다. 한나라당도 스타 문화예술인을 영입해 SNS에서의 역량을 강화한다고 한다. SNS라는 것이 자발성을 기반으로 하는데 영입은 개념이 없는 말이다. 다음 달 5일부터는 앵커우먼 출신의 김은혜 전 청와대 대변인과 개그우먼 조혜련 씨가 안 교수와 시골의사 박경철 씨의 ‘청춘콘서트’와 유사한 ‘드림토크’를 시작한다고 한다. 이것도 흉내내는 것 같아서 자연스럽지는 못하다. 사실 대체로 어느 나라에서나 문화적 우파가 문화적 좌파의 영향력을 따라가지 못한다. 프랑스에서는 과거 좌파 지식인 사르트르가 우상으로 추앙받은 반면 우파 지식인 레몽 아롱은 홀대를 받았다. 사르트르는 스탈린 체제를 찬양했고 아롱은 비판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공산주의가 붕괴될 때까지도 아롱과 함께 옳기 보다는 사르트르와 함께 실수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사실 문화계 자체가 정치나 경제와 같은 분야에 비해 좌측에 서 있어서 그런지 모른다.문화적 주도권 싸움은 장기전 우리라고 다르지 않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8·24 주민투표를 거쳐 최근 10·26 재·보궐선거까지 관통한 전면적 무상급식이라는 이슈만 보더라도 단계적 무상급식 쪽의 논리가 훨씬 정치하고 책임감이 있었지만 “아이들 밥먹이는 문제인데 인색하다”는 주장에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이나 밀리고 말았다. 정치라는 게 문화적 주도권만으로 이기고 지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일방적으로 밀려서는 안되는 게 그 주도권 싸움이다. 그건 임기응변적으로 스타 문화예술인에게 눈독을 들이는 것만으로 해답이 안 나온다. 어떤 문화예술인을 스타로 만드는 것은 따지고보면 독자요 시청자다. 특히 젊은 독자요 시청자다. 그런 독자와 시청자를 사로잡을 수 있을 때 SNS에서 어느 스타 문화예술인이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신호를 보내올 것이다. 한나라당은 자기 조직에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이 진정한 대학생 하부조직이나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유럽의 정당들은 휴가철에는 청소년 정치캠프를 운영하며 젊은 세대들에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람시의 말처럼 문화적 주도권 싸움은 더디지만 길게 보고 가야 하는 장기전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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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전 세계 동시 출간

    ‘전 세계 동시’ 시대다. 영화에서 전 세계 동시 개봉이 일반화한 가운데 출판에서도 전 세계 동시 출간이 늘고 있다. 어제 시사주간 ‘타임’의 전 편집장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의 공인 전기 ‘스티브 잡스’가 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등 서유럽과 북유럽권 언어를 비롯해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권 언어 외에 카탈루냐어로도 번역됐다. 외국에서 막 나온 책을 번역서로 시차 없이 읽는 것은 우리에게는 흔치 않은 경험이다.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는 6권 ‘혼혈 왕자’와 7권(최종권) ‘죽음의 성물’이 영어권 국가(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외에 영어 사용 가능 국가에서도 동시 출간됐지만 한국의 경우 이를 번역한 책은 몇 개월 간격을 두고 나왔다. 이번 ‘스티브 잡스’의 동시 번역 출간은 미국 현지 출판사가 전략적으로 전 세계 동시 출간 기준을 제시하고 마무리되는 원고부터 미리미리 각국 출판사에 넘겨 번역할 시간을 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내년 4월에는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시장과 정의’(가제)가 미국과 한국에서 원서와 번역서로 동시 출간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지하 갱도에 갇혔다가 69일 만에 구조된 칠레 광원 33인의 얘기를 담은 책 ‘The 33’은 올 2월 한국을 비롯한 4개국에서 동시 출간됐다. 폭로 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를 다룬 책 ‘위키리크스’도 올 초 11개국에서 일제히 선보였다. 그러나 이번처럼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모은 책이 출간과 동시에 번역돼 나온 것은 처음이다. ▷전 세계 동시 시대를 처음 연 것은 영화다. 영화 제작의 디지털화로 전 세계 동시 개봉이 가능해졌다. 1995년 전적으로 컴퓨터그래픽 기술만을 사용해 만들어진 영화는 ‘토이 스토리’다. 위성을 통해 디지털 신호를 전송한 최초의 국제 동시 개봉 영화는 2000년 영국 런던, 벨기에 브뤼셀, 프랑스 파리, 일본 도쿄에서 상영된 ‘토이 스토리 2’였다. 바로 이 토이 스토리를 만든 사람이 잡스다. 내년에 나올 ‘아이패드 3’는 처음으로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출시될 것이라고 한다. 잡스에게 디지털은 동시성의 다른 표현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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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SNS 선거법 위반도 면밀히 감시해야

    법원이 내년 총선의 낙선운동 대상자로 한나라당 국회의원 19명의 명단을 트위터에 올린 회사원에게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선거에 미치는 파급력은 과거 유권자를 버스로 동원하던 것보다 훨씬 강하다. 따라서 불법 선거운동에 이용될 소지도 크다. 선거법 위반은 민주주의 파괴행위이므로 온·오프라인 구분 없이 엄격히 다스려야 한다. 선거관리위원회와 검찰이 10·26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SNS를 통한 불법 선거운동을 적극 단속하기로 했다. 그러나 먼저 가이드라인을 충분히 알릴 필요가 있다. 선관위는 지난해 6·2지방선거에서 많은 팔로어를 거느린 유명 인사들이 투표 당일 인증샷을 요구해 선거에 영향을 미쳤는데도 방치했다. 인증샷은 투표소 입구나 근처에서 찍으면 괜찮지만 기표한 투표지를 촬영해 누구를 지지했는지 알 수 있게 하면 선거법 위반이다. 인증샷을 올린 유권자에게 경품을 제공하는 것은 매수 행위가 될 수 있다. SNS는 본래 친밀한 사이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출발했다. SNS에서 친구에게 얘기하듯 별 생각 없이 어느 후보자를 비난한 것이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돼 부지불식간에 흑색선전이나 인신비방이 될 수도 있다. 외국도 SNS를 이용한 선거법 위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로데리크 에겔러 독일 연방선관위원장은 2009년 “출구조사 결과가 투표 완료 전에 트위터를 통해 유출된다면 선거의 법적 효력을 묻는 소송까지 가는 재앙이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 선거에선 방송사와 여론조사기관이 시간대별로 출구조사를 해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수치를 파악한다. 이런 투표 추세가 트위터 등을 통해 유출되면 선거 결과도 좌우할 수 있다. 물론 국민이 SNS를 통해 정치적 의견을 활발하게 교환하는 것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선관위와 검찰은 SNS가 열어놓은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기회를 축소하지 않는 범위에서 SNS 공간의 선거법 위반을 면밀히 감시해야 한다.}

    • 201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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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회장님과 조폭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007년 시비 끝에 아들을 때린 북창동 술집 종업원들을 심야에 인적이 드문 청계산으로 끌고 갔다. 조직폭력배를 대동한 그는 아들을 때렸다고 나선 조모 씨를 쇠파이프로 한 차례 때린 뒤 발로 마구 폭행했다. 나머지 종업원도 말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맞았다. 김 회장의 아들이 “조 씨가 나를 때린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하자 그들은 다시 북창동으로 향했다. 술집에 들어간 김 회장은 술집 사장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폭행 당사자 윤모 씨가 불려왔고 김 회장이 윤 씨를 때리려 하자 아들이 말리더니 대신 자기가 맞은 만큼 때렸다. ▷SK그룹 가문의 최철원 전 M&M 대표는 지난해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유모 씨를 사무실로 불렀다. 임원 중 한 사람이 그의 무릎을 꿇리자 최 전 대표가 들어왔다. 최 전 대표는 “엎드려라, 한 대에 100만 원이다”라며 야구 방망이로 유 씨를 내리쳤다. 유 씨가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임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구타는 계속됐다. 10대를 맞은 유 씨가 안 맞으려고 몸부림을 치자 그는 지금부터 한 대에 300만 원이라며 3대를 더 때렸다. 이어 그는 유 씨를 일으켜 세워 뺨을 때리고 두루마리 휴지를 입안에 물리고 얼굴을 가격했다. ▷섬유유연제 생산업체 피죤의 이은욱 전 사장은 지난달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다 조폭에게 폭행을 당했다. 이 전 사장은 올 2월 피죤 사장에 취임했으나 4개월 만에 피죤의 창업자인 이윤재 회장에 의해 해임돼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경찰 수사 결과 3억 원을 주고 광주 무등산파 조폭을 동원한 이 회장의 청부 폭행으로 밝혀졌다. ▷이 회장은 경찰의 출두 통보를 받은 직후 병원에 입원해 환자복을 입고 조사를 받더니 결국 구속되지 않았다. 법원은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에 대해 “범죄 혐의가 인정되나 이 회장이 피해자와 합의하고 증거 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김승연 회장과 최철원 전 대표는 모두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법원이 회장님들의 ‘사적 보복 폭행’에 이렇게 관대하다면 ‘有錢無罪(유전무죄)’와 뭐가 다른가. 송 평 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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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서울대 일본학 전공과정

    한국에는 곳곳에 기묘한 일본 부재(不在) 현상이 남아 있다. 한국 최고 국립대인 서울대가 국내의 모든 학과를 망라한 최대 규모의 종합대이면서도 일본학과가 없었다는 것도 그런 현상 중 하나다. 뿌리 깊은 반일 감정에다 ‘일본은 어느 나라보다 우리가 잘 안다’ 혹은 ‘일본은 학문적으로 연구할 게 없는 나라’ 같은 근거 없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서울대가 어제 1946년 개교 이후 ‘65년의 금기’를 깨고 아시아언어문명학부를 신설해 일본학 전공과정을 두기로 했다. ▷지일파인 지명관 전 한림대 석좌교수는 1973년 일본 유학을 떠났다. 그는 일본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 알고 있던 일본과 달라서 놀랐다고 한다. 사실 한국이 일본을 잘 모른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한국의 많은 지식인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일본을 배운다기보다는 일본을 통해 서구의 문화를 배우는 데 치중했다. 광복 이후 1970년대까지는 일본으로 많이 건너가지도 않았지만 간다고 해도 한국 관련 자료를 찾는 수준이었다. 1980년을 전후해서야 일본 자체를 공부하러 가기 시작했다. 한국에는 아직도 50년 전, 100년 전 일본 문서를 해독할 인력이 거의 없다. ▷서울대는 일본 최고 국립대인 도쿄(東京)대가 한국 관련 전공학과를 개설하지 않는 이상 일본학과를 만들지 않는다는 상호주의를 고수해왔다. 2001년 당시 서울대 이기준 총장과 도쿄대 하스미 시게히코(蓮實重彦) 총장이 각각 일본과 한국 전공학과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도쿄대는 교양학부와 인문사회계연구과 한국조선문화연구전공의 한국어 및 한국학 강사진을 크게 늘렸고 서울대는 일본연구소와 언어학과 내 일본어고급과정을 신설했다. ▷바야흐로 한국 중국 일본의 동북아 시대를 맞았다. 중국이 주요 2개국(G2)의 하나로 부상하면서 그동안 가깝고도 먼 관계를 유지해온 3국은 긴밀한 협력을 모색할 수밖에 없고 서로에 대해 더 잘 알아야 하는 단계에 왔다. 중국 최고 명문 베이징(北京)대가 2009년 한국어과를 독립학과로 승격시켰다. 이번에 서울대가 일본학 전공과정을 두기로 결정했다. 도쿄대의 한국어 및 한국학 강사진은 이미 15명 정도로 1개 학과 수준이다. 교과서 왜곡 문제, 영유권 분쟁 등 3국간에 현안이 있지만 따질 것은 따지고 진전시킬 것은 진전시키는 게 올바른 방향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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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통영의 딸’ 외면하며 무슨 進步요 인권인가

    우리는 왜 ‘통영의 딸’ 신숙자 씨를 반드시 구해내야 하는가. 첫째, 신 씨가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이다. 둘째, 신 씨는 낯선 땅에서 외화를 벌어 가난한 조국을 일으키는 데 기여했던 1960년대 파독(派獨) 간호사 가운데 한 명이었다. 셋째, 신 씨는 아이들의 아빠와 생이별을 감수하면서까지 인간의 존엄을 지켰다. 북한 공작원에게 속아 가족을 데리고 입북한 남편 오길남 씨가 해외 유학생을 포섭해 데려오라는 북한의 지령을 받고 떠나기 전에 “당신이라도 탈출하라. 탈출에 성공하면 우리를 빼내라. 그렇게 되지 않을 땐 우리 모두 죽었다고 생각하라”는 결연한 당부로 또 다른 국민의 희생을 막았다. 25년 회한의 세월을 보내온 오 씨는 병으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아내를 구하는 모임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어제 서울 청계광장에서 시작된 ‘구출! 통영의 딸 100만 엽서 청원운동’에서 오 씨는 주소도 알 수 없는 아내와 두 딸에게 엽서를 보냈다. 1986년 북한을 나올 때 두 딸 혜원과 규원의 나이는 7세와 10세였다. 지금은 32세와 35세로 성장했을 두 딸과 69세의 아내는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청원운동을 주도하는 최홍재 남북청년행동 대표는 고려대 학생회장이던 1991년 북한 체제를 찬양하며 박성희 성용승 등 두 대학생을 평양에 보내는 결정을 주도했다. 그는 지금 속죄하는 심정으로 신 씨 송환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현재 27개 시민단체가 참가한 이 청원운동은 국민 100만 명의 엽서를 모아 대한적십자사와 유엔에 전달할 계획이다. 그제 미얀마 독재정권이 미국 유럽 등 국제사회의 압력에 굴복해 정치범 300명을 석방했다. 유엔을 통한 압력이 신 씨 모녀 구출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북한은 미얀마보다 더 악독한 정권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햇볕정책을 펴면서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한꺼번에 북한으로 돌려보내고도 단 한 명의 납북자도 구해내지 못했다. 인권은 좌우의 이념을 떠나 그 이념이 서있는 토대일진대 한국의 자칭 진보 세력은 납북자나 북한 주민의 인권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국회에서 북한인권법이 발의된 지 6년이 지났지만 민주당 등 야당은 발목잡기를 계속하고 있다. 여당인 한나라당도 북한 눈치를 보면서 무기력하게 끌려다니고 있다. 신 씨 모녀 구출 운동은 납북된 우리 국민 약 500명을 자유의 땅으로 데려오고 북한 주민의 인권을 개선하는 큰 발걸음의 시작이 돼야 한다.}

    • 201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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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梁 대법원장의 ‘튀는 판결’ 지적 옳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용훈 사법부에서 잇따라 나온 ‘튀는 판결’을 비판했다. 그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튀는 판결과 소신 판결은 종이 한 장 차이”라면서 “대법원 판결은 법 해석의 통일 기준이기 때문에 하급심은 그걸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국회 폭력 사건 1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유죄로 바뀌었다.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은 1심에서 재판부에 따라 유무죄로 갈려 혼선이 빚어졌으나 항소심에서 모두 유죄 판결이 났다. 똑같은 법률의 적용을 받고, 증거 인정 여부를 둘러싼 다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법관의 법률해석 논리에 따라 유무죄가 갈리니 국민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판사는 상급심에서 자신의 판결이 깨지는 것을 수치로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법관은 영미권 법관과는 달리 선례(先例) 구속의 원칙을 적용받지 않는다. 그래서 판례 변경을 시도하기 위한 소신 판결이 가능하다. 그러나 누가 봐도 상급심에서 파기될 것이 뻔한 판결을 한다면 그건 독단이다. 헌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한다. 양심이라는 것도 사람마다 천차만별(千差萬別)인 양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법관도 공유할 수 있는 양심을 말한다. 헌법이 양심 앞에 헌법과 법률을 놓은 것은 법질서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판사는 국민이 선출한 입법자(立法者)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헌법과 법률이 판사 스스로 생각하는 정의와 다르다고 해서 입법적 법률해석을 하는 판사는 법관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검사가 유죄 취지의 기소를 했으나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 불이익이 따른다. 판사 역시 자신의 판결이 상급심에서 뒤집히면 상응한 책임을 지는 것이 옳다. 대법원장이 법관 인사권을 활용해 튀는 판결을 통제하는 것이 곧 법관의 독립성 침해는 아니다. 양 대법원장의 말처럼 판결은 운동경기가 아니다. 운동경기는 승패가 엇갈릴 때 관중의 흥미를 더 끌 수 있지만 판결은 결론이 엎치락뒤치락하면 불신을 받는다. 양 대법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법원이 1년에 100∼200명씩 큰 기업 신규직원 채용하듯 법관을 채용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판사가 된 사람 중에는 세상 공부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튀는 판결을 막으려면 사법연수원이나 로스쿨을 막 나온 신출내기보다는 변호사 경력을 쌓은 법조인을 중심으로 법관 충원을 늘려나가야 한다.}

    • 201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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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軍 새 지휘부, 국민 안심시킬 태세 보여라

    우리 군의 최고 작전책임자인 합동참모본부 의장을 비롯한 대장급 4명이 교체된다. 합참의장에는 정승조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이 내정됐다. 해군 참모총장에는 최윤희 해군 참모차장, 연합사 부사령관에는 권오성 합참 합동작전본부장, 1군사령관에는 박성규 육군교육사령관이 각각 중장에서 대장으로 진급해 임명된다. 군 상부지휘구조 개편이 추진 중이고 2015년 전시작전권 전환을 앞두고 있어 이번 인사에 대한 군 안팎의 관심이 크다. 군 수뇌부 교체는 무엇보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군의 대비 태세와 대응능력 강화에 도움이 돼야 한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1년(11월 23일)을 앞둔 한반도 안보 상황은 여전히 불안하다. 북한은 천안함 포격과 연평도 도발에 대해 사죄하기는커녕 ‘전면 전쟁’을 들먹이며 대남(對南) 협박을 거듭하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그제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비난하며 “심리전 본거지에 대한 직접 조준격파 사격 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임의의 시각에 실전행동에 돌입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지난해와는 다른 형태의 도발을 할 가능성도 크다. 왕재산 간첩단 사건과 탈북자 독살 시도에서 드러났듯이 북한은 요인 암살과 주요 시설 파괴를 노린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로 강화됐던 우리 사회의 대북(對北) 경계심이 시간이 지나면서 풀어지고 있는 징후가 보인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내년 총선 대선을 앞둔 선거 바람에 휩쓸려 대북 유화론이 힘을 얻을 가능성도 있다.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군은 조금도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 지난해 북한이 처음으로 우리 영토에 대한 포격 도발을 했음에도 우리 군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해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연평도 현지 부대는 우왕좌왕했고 합참의장은 강력한 응징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신임 합참의장은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북한이 다시 도발을 해올 경우 철저하게 보복한다는 결전의 태세를 군 전체에 심어줄 책임이 있다. 지휘관이 결기를 보여야 수하 장병이 싸워 이길 수 있다. 정 합참의장 내정자는 자이툰부대 사단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낸 미국통이다. 북한의 도발 위협이 상존하고 중국 세력이 지속적으로 팽창되는 안보 환경에서 강력한 안전판인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노력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 201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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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송평인]디지털 시대의 名士 정치

    ‘정치인’ 박원순 변호사의 대형 사진 현수막이 서울 안국동 옛 참여연대 건물에 내걸렸다. 시민단체 출신으로 서울시장 선거 범야권 후보가 된 박 변호사의 선거사무실이 이곳에 마련됐다. 여의도에서는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 정당정치의 수호를 역설하면서 나경원 후보 지원을 선언하고 나섰다.SNS 정치와 시민단체의 한계 ‘국가와 시민사회’라는 도식에서 보면 정치그룹(political group)이나 정당(political party)도 시민사회에서 나온 것이다. 서구에서 19세기 중반 선거권이 급속히 확대됐다. 후보자가 잘 아는 소수의 유권자 대신 잘 모르는 다수의 유권자를 상대하게 되자 단순한 정치그룹 대신 조직력과 자금력을 갖춘 정당이 등장했다. 정당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그때부터 싹텄다. 독일 사회철학자 하버마스는 정당이 애초 시민사회에서 나왔음에도 권력 체계에 포섭됐다고 보고 새로운 시민운동을 구상하는데 그것이 이른바 신사회운동이고 그 대표적 조직이 시민단체다. 그러나 서구에서 시민단체는 대체로 정치의 일원이 되는 것을 자제하고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데 만족했다. 물론 정당을 만들어 직접 정치에 뛰어든 경우도 없지는 않다. 독일에서 환경운동단체가 녹색당을 창당해 정치권에 진입했지만 아직은 군소정당으로 기민당 대 사민당의 구도를 깨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 소비자운동가 랠프 네이더 변호사는 녹색당 대표와 무소속 등으로 여러 차례 대선에 출마했지만 공화당 민주당 양당 구도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스웨덴 독일 등에서 ‘해적당’의 새로운 움직임이 있지만 아직 미미하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정당이 유례가 없는 시민단체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정당이 다른 정치 결사체를 앞서는 힘은 조직력에 있다. 박 변호사는 민주당 박영선 후보와의 대결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조직력의 한계를 극복했다. 박 변호사는 SNS의 힘을 빌려 이제 한나라당의 나 후보까지 꺾을 기세다. 그의 선거캠프에서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할 때 SNS의 숙달 정도를 체크한다. 디지털의 시각으로 보면 정당의 조직력이라는 것은 19세기에 기원한 아날로그적인 것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지지자를 더 효율적으로 동원할 수 있다면 정당의 조직력은 왜 필요한가. SNS는 정당정치와는 전혀 다른 정치를 예고하고 있다. SNS 정치에서 결정적 역할은 정당의 당협위원장이 아니라 유명인이 한다. 트위터에 많은 팔로어를 거느린 조국 서울대 교수나 소설가 공지영, 혹은 김제동 김여진 같은 연예인들이 누구를 지지하냐가 중요하다. 그들이 트위터를 통해 인증샷을 요구하면 팔로어들은 충성스럽게 투표소로 달려간다. 정당정치에서 당협위원장 몇 명이 하는 역할을 유명인 한 명이 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명사(名士)정치라고나 할까. 서양에서 정당정치가 뿌리내리기 전 명사들이 선거를 좌지우지하던 시대가 있었다. 당시 유권자들은 정당의 정책에는 관심이 없고 명사들을 따라 투표를 했다.범야권 주도권 잃은 민주당 그러나 명사정치는 한계가 있다. 명사들은 선거가 없으면 활약할 여지가 적어진다. 정당은 한 선거와 다음 선거 사이에서는 국민의 의견을 정책으로 집약해 국정에 반영하는 역할도 한다. SNS 정치로는 그 일을 해내기 어렵다. 박 변호사가 진다면 정당정치 위기론은 육지에 상륙한 열대성 저기압처럼 소멸할 것이지만 그가 이긴다 해도 결국 정당에 기댈 수 밖에 없다. 다만 박 변호사의 민주당에 대한 승리는 더는 민주당이 범야권의 보스를 자임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박 변호사는 스스로 “미래에 탄생할 더 큰 민주당의 당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에서 민노당 쪽으로 확 끌려간 야당이 출현할 수도 있다. 그때 사라지는 것은 정당이 아니라 중립을 외쳐온 시민단체의 정체성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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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문자메시지

    휴대전화로 주고받는 문자메시지는 컴퓨터로 주고받는 e메일보다 친근하게 느껴진다. 문자메시지는 철자나 문법, 구문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편하고 빠르게 써서 보낸다. 그러다 보니 실수도 많다. 할머니에게 ‘오래 사세요’라고 보내야 할 문자를 ‘할머니 오래 사네요’라고 보내기도 하고, 아내나 여자친구에게 선물을 사줬다가 ‘고마워 자기야. 사망해∼♡’와 같은 문자를 받기도 한다. ▷주어를 빼고 쓰다 보니 의미가 헷갈리는 때도 있다. 이동관 대통령언론특보가 박지원 민주당 의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인간적으로 섭섭합니다’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지 몰랐습니다’가 그렇다. 이들 문장의 의미는 두 번째 문장의 주어가 무엇이냐에 따라 천지차이다. ‘인간적으로 섭섭합니다. (박 의원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지 몰랐습니다’가 될 수도 있고 ‘인간적으로 섭섭합니다. (내가 박 의원에게)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지 몰랐습니다’가 될 수도 있다. 생략이 화근(禍根)이다. ▷이 특보는 박 의원이 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 씨를 거론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들먹인 데 대한 항의로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박 의원은 발끈해 국정감사장에서 이를 공개했고 이 특보는 ‘내가’라는 말이 빠져 오해가 생겼다고 밝혔다. 개인적으로 주고받았다고 볼 수 있는 메시지를 공개한 박 의원이나 주어 때문에 오해가 생길 수 있는 메시지를 확인도 없이 성급하게 보낸 이 특보나 모두 잘한 게 없다. 전화로 했더라면 별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을 문자로 보내다 보니 생긴 일이다. ▷문자메시지는 음성 통화와 달리 기록으로 남는다. 불륜 관계에서 은밀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가 배우자에게 들통 나 이혼하는 사례도 있다. 지난해 서울가정법원은 간통했다는 물증이 없더라도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사랑해’ ‘헤어진 지 이틀 됐는데 보고 싶어 혼났네’ 등의 문자를 주고받았다면 이혼 사유가 된다고 판결했다. 이동통신사업자는 문자메시지를 보관하지 않는다. 남아 있는 곳은 사용자의 휴대전화뿐이다. 결국 제때 삭제하지 않은 쪽의 책임이 크다. 때로는 망각이 기억보다 낫듯이 음성처럼 사라지는 것이 문자처럼 남아 있는 것보다 나은지 모른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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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월가 시위에서 어떤 메시지를 찾을 것인가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월가)에서 3주 전부터 벌어진 시위가 지난 주말 보스턴 로스앤젤레스 워싱턴으로 번졌고 캐나다 등 외국으로도 확산될 조짐이다. 애초 이 시위는 규모가 크지 않았고 목표도 분명치 않았다. 처음에는 일자리 없는 젊은이와 학생들이 월가 근처 공원에 모여 얼굴 페인팅을 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모임으로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며 이들 사이에 극심한 빈부격차와 월가의 카지노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점차 시위대로 변한 이들은 “월가를 점령하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을 끌어모았다. 시위대는 “미국인의 상위 1%가 하위 90%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소득을 얻고 있다” “은행가들은 잘나갈 때는 자기 배만 채우더니 파산 직전에 몰리면 정부에 빚더미만 지우고 국민을 실직자로 만들고 있다”며 분노를 키웠다.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 배우 수전 서랜던 같은 유명인과 거대노조 운동가들이 찾으면서 시위대는 지난 주말 뉴욕에서만 수천 명으로 늘어났다. 월가 시위는 프랑스와 영국의 이민자 폭동, 그리스의 복지병(福祉病) 시위, 아랍 국가의 민주화 시위와는 성격이 다르다. 이민자 폭동과는 달리 약탈이 없고, 복지병 시위 같은 격렬한 가두투쟁도 없었다. 민주화 시위처럼 총알과 포탄이 날아다니지도 않는다. 단지 보행자 통로로 다니라는 경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차도를 행진했다는 이유로 시위대 700여 명이 연행됐을 뿐이다. 월가 시위는 세계 자본주의의 취약점을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시위대가 주장하는 반(反)시장주의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은행과 기업의 극단적 이기주의가 세상의 불신과 불만을 낳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은행은 리스크만 사회에 돌리고 이익은 혼자서 챙기지 않았는지, 기업은 직원들을 배려하기보다는 경영진과 대주주의 배만 불리지 않았는지 되돌아보라고 월가의 시위대는 요구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한 쌍이다.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보다 우월한 점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스스로 교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위기 때마다 변신했다. 1930년대 대공황은 케인스식 경제와 베버리지식 복지로, 1980년대 인플레이션에는 대처와 레이건식 경제로 위기를 극복했다. 세계 각국의 정부 기업 은행 자본가들은 이번 월가 시위에서 어떤 메시지를 발견하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 2011-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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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굶주리는 북한 주민 우롱하는 김정일 王族의 삶

    북한 김정일의 손자이자 김정남의 아들인 김한솔이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은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귀고리와 목걸이를 한 자유분방한 모습이었다. 이브닝드레스 차림의 외국인 여자친구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 밑에는 둘이 나눈 ‘사랑한다’는 댓글이 눈에 띄었다. 김한솔은 마카오에 있는 연국(聯國)국제학교를 다녀 영어에 능통하다. 현재 보스니아의 유나이티드월드칼리지 모스타르 학교 고교 과정에 입학허가를 받고 준비 중이다. 1년 학비가 3000만 원이 넘는 학교다. 김한솔의 사진과 글을 보면서 반가운 생각보다 기이한 느낌이 드는 것은 그가 북한 주민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젊은이 중에는 올봄 아랍 국가에서 민주혁명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컴퓨터는 있지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할 기회도 갖지 못하고 있다. 해외에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평양을 벗어난 곳에 살고 있는 주민은 헐벗고 굶주림에 지쳐 있다. 김한솔은 연국국제학교 동창인 자신의 페이스북 친구를 상대로 ‘민주주의인가 공산주의인가’라는 온라인 설문조사를 하면서 스스로 ‘민주주의’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권력 투쟁에서 밀려나 떠돌고 있는 자유분방한 김정남의 아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북한 체제의 혜택을 받고 자란 왕족(王族)이 그런 얘기를 하니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김씨 왕조국가다. 김일성으로부터 권력을 세습한 아들 김정일과 손자 김정은만 화려한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김정은의 이복 형 김정남과 동복 형 김정철은 권력에서 밀려났다고 하지만 왕조시대 대군(大君)처럼 해외를 유람하며 호화생활을 하고 있다. 김정남은 중국과 마카오를 오가며 돈을 여유롭게 쓴다. 김정철은 에릭 클랩턴의 해외 공연에 여자친구들과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김정일은 공산주의 치하의 동독에서 잠시 유학한 경험밖에 없지만 그의 아들들은 모두 스위스 학교에서 공부했다. 김정일 자녀의 서구 경험은 아직까지 북한에 어떤 변화의 미풍(微風)도 가져오지 못했다. 중동 국가의 왕족들도 서구에서 공부했지만 자기 나라를 민주화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민중 주도의 민주화 시위를 맞고 있다. 북한 주민의 삶과 유리된 채 서구 사회를 경험한 김정일의 아들과 손자들은 북한 체제가 붕괴된 후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 스스로도 불안할 것이다.}

    • 2011-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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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판사는 법 위에 있나

    선재성 전 광주고법 부장판사가 친구 변호사를 법정관리기업에 소개하고 투자이익 형태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으나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재판부는 선 판사가 파산재판부 재판장이었을 당시 법정관리인에게 친구 변호사를 소개한 것이 조언이나 권고에 불과하지 알선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파산재판부의 감독을 받는 법정관리인이 재판장의 권고를 쉽게 물리칠 수 있는 처지였는지 의문이다. 선 판사의 부인이 남편 명의의 통장에서 2억 원의 투자자금을 빼내갔는데도 부인의 투자여서 몰랐다는 주장을 재판부가 받아들인 것도 상식에 비춰 논란의 소지가 있다. 뇌물 혐의이든 알선이든 소개의 대가로 금품을 받은 사실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으면 처벌하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의 논리다. 검찰 수사가 선 판사의 혐의를 입증할 만큼 충분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법원은 검찰수사 초기에 선 판사와 친구 변호사 등에 대해 청구된 압수수색 영장 11건을 기각해 그때부터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검찰이 재판에 안이하게 대응한 측면도 있다. 선 판사는 21년 법관 생활 중 19년 동안 대부분 광주지법 판사로 근무한 향판(鄕判·지방판사)이다. 광주지법이 선 판사의 재판을 맡을 판사의 부담을 고려해 검찰에 다른 법원으로 관할을 옮겨 재판하는 방안을 권고했는데도 검찰은 그대로 뒀다가 지금 와서 “법원에 자정(自淨)능력이 있을 줄 알았다”고 변명하고 있다. 선고를 내린 형사2부 재판장 김태업 부장판사는 선 판사의 서울대 법대 후배로 올 초 광주지법에서 잠시 함께 근무했다. 그는 공판에서 선 판사에게 ‘피고인’이란 호칭 대신 ‘선재성’ 또는 ‘선 부장판사’라고 불렀다. 지법 부장판사가 휴직 중인 현직 고법 부장판사를 재판한 사건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무죄 선고가 내려지니 판사는 법 위에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방 법조계의 고질적 문제도 되짚어봐야 한다. 선 판사는 법정관리업체 관리인이나 감사로 친형이나 친구, 운전사를 선임해 물의를 빚고 광주고법과 대법원의 진상조사 끝에 징계를 받았다. 향판은 지역사회를 이해하는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지연 학연으로 지역사회와 얽히기 쉽다. 사법부는 이번 기회에 향판 인사제도도 손을 봐야 할 것이다.}

    • 201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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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실화 소설의 힘

    실화소설을 영미권에서는 팩션(faction)이라고 한다. 1965년 트루먼 카포트의 ‘냉혈’이 현대 팩션문학의 시조로 꼽힌다. 그는 살인사건에 대한 신문 기사를 보고 많은 관련자들을 취재해 이 소설을 완성했다. 1970년대 후반 미국의 흑인작가 알렉스 헤일리가 6대에 걸친 자신의 가계를 추적해 완성한 ‘뿌리’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졌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TV 시리즈 ‘뿌리’를 보고 눈물을 흘린 시청자도 많았다. ‘밤의 군대들’ ‘사형집행인의 노래’를 쓴 노먼 메일러도 대표적인 팩션 작가다. ▷최근 세간에 충격을 던진 영화 ‘도가니’의 원작이 바로 2009년 공지영이 낸 동명 소설이다. 한국 문학사에서 보기 드물게 성공한 실화소설로 2000년부터 4년 동안 한 청각장애학교에서 일어난 일련의 성폭행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에 앞서 공지영은 사형제도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많은 사형수와 인터뷰한 뒤 2004년에 완성했다. ‘우리들의…’는 실화소설로 보기는 어렵지만 그때부터 제대로 된 실화소설을 쓸 준비를 착실히 한 것으로 보인다. ▷팩션은 문학이면서 저널리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공지영은 소설가인 동시에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셈이다. 그것도 기존 언론이 제대로 다루지 못한 ‘미시적 권력관계에서의 비리’를 폭로한 훌륭한 저널리스트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같은 소설과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체험기로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작가가 중량감 있는 사회비판 작가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공지영의 정치의식은 공정하지 못하다. 공지영은 한 잡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첫 재판에서는 법정 구속으로 징역 5년이 선고됐다. 검사는 3년을 구형했는데 죄질이 워낙 나빠 5년이 된 거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었다. 얼마 가지 않아 촛불시위가 일어났는데 그 사이 2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이 난 거다. 시위에 가려 기사 한 줄 나지 못했던 거다”고 말했다. 공지영은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고 있지만 1심이나 2심이나 사법부는 이용훈 사법부로 동일하다. 재판받은 사건이 일어난 것도 인권을 외치던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에 걸친 2000∼2004년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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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송평인]보(洑)

    강물을 저장하고 수위를 조절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협곡과 유사한 지역에 저수지 형태로 물을 저장하는 댐(dam), 강바닥에 개폐식 수문을 설치해 물을 저장하고 흘려보내는 배리지(barrage), 수중보처럼 물이 일정 수위를 넘으면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도록 만든 위어(weir) 등이 있다. 우리나라 토목용어사전은 barrage(배리지)는 보로 번역하고, 댐과 위어는 영어 표현 그대로 쓴다. ▷잠실 신곡 등 한강수중보는 말로만 보라고 하지 개념적으로는 위어에 해당한다. 위어는 하천관리 방법 중에서 가장 친(親)환경적이다. 서울시장 야권후보로 나선 박원순 변호사가 보와 위어 사이의 개념적 차이를 무시한 채 “보는 한강을 일종의 호수로 만드는 건데 없애는 것이 자연적인 강 흐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잠실보를 철거하면 수위가 낮아져 서울시민의 식수원을 공급하는 취수탑을 옮겨야 한다. 수조 원의 예산이 들고 대규모 토목공사가 필요하다. 장마철을 제외한 시기에는 한강이 바닥을 드러내 모양도 흉하고 하수만 흘러 악취가 진동할 것이다. 신곡보를 철거하면 김포평야 일대에 물 확보가 어려워지고 밀물 때 소금기 섞인 물이 올라와 수질이 탁해질 위험이 있다. ▷금강 등 4대강에 설치되는 16개 보에 대해서는 4대강 개발 비판론자들은 보로 해석하려 하고 찬성론자들은 위어로 해석하려 한다. 4대강 보는 규모가 크긴 하지만 물이 일정 수위에 도달하면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위어에 가깝다. 그러나 둑의 높이가 높아 비가 많이 오지 않으면 넘치지 않고 수문을 개폐해서만 수위를 조절할 수 있다면 보의 기능을 한다고 봐야 한다. 다시 말해 4대강 보는 정확히는 보와 위어의 절충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달 24일 충남 연기군에 위치한 금강 세종보가 4대강 16개 보 가운데 처음으로 일반인에게 개방됐다. 다음 달 6일에는 금강 백제보, 8일 영산강 죽산보, 15일에는 한강 여주보와 강천보, 낙동강 구미보가 차례로 개방될 예정이다. 4대강 보는 위어의 특징이 많이 가미돼 전형적인 보인 배리지보다는 훨씬 환경친화적으로 설계돼 있다. 이제 누구든지 직접 가서 4대강 보를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이 왔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11-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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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仁村은 민족을 일으켜 세우고자 했다

    인촌 김성수 선생(1891∼1955)의 탄생 120주년(10월 11일)을 맞으며, 그가 교육자 언론인 기업가 정치인으로서 한국 근현대사에 남긴 큰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학술대회가 어제 열렸다. 인촌은 일제 식민치하의 엄혹한 현실에서 민족을 일으켜 세우고자 했다. 광복 후 대한민국의 기반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경성방직, 중앙학교(중앙중학교 중앙고등학교 전신)와 보성전문학교(고려대 전신), 동아일보를 통해 국부(國富)의 초석을 다지고, 인재를 양성했으며, 정부를 대신해 민중의 눈과 귀 역할을 했다. 이영훈 서울대 교수는 인촌이 세운 경성방직을 “오늘날 선진 한국경제를 만든 기업들의 선구자”로, 한용진 고려대 교수는 인촌이 인수한 중앙학교와 보성전문학교를 “독립국가 건설에 이바지한 인재의 도량”으로,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인촌이 창간한 동아일보를 “민족의식을 잃지 않도록 깨우친 등불”로 평가했다. 학자들은 “동아일보는 해외에서의 독립운동, 애국자들의 투옥과 석방 등에 관한 소식을 소상하게 전해 민족에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고 평가했다. 신용하 울산대 석좌교수는 “일제 치하 국내에서 애국계몽운동을 통해 실력을 배양하고 국외에서 무력 독립을 준비하는 이중노선은 모든 독립운동가들이 공유한 생각이었다”며 “좌파든 우파든 어떤 독립운동가도 인촌에게 친일의 잣대를 들이댄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해외에서의 애국활동보다 국내에서의 민족자강, 국권회복 노력이 더 가시밭길이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인촌은 광복 직후 건국준비위원회(건준)와 조선인민공화국에 속지 않고 임시정부를 봉대(奉戴)했다. 또 신탁통치 결정 이후 김일성의 정치 선동에 이용당한 김구의 남북협상론 대신 이승만의 단정론을 지지했다. 김학준 단국대 이사장은 좌파 사학자들이 인촌을 부당하게 분단세력으로 몰아가는 근거가 된 건준과 조선인민공화국은 무늬만 좌우합작이었으며 모스크바 3상회의 신탁통치 결정은 졸속이었다고 지적했다. 진덕규 이화여대 이화학술원장은 “인촌은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 이승만의 권력욕에서 빚어진 정치 행태를 바라보면서도 건국이 민족 최대의 과제라고 여겼기 때문에 이를 감내했다”고 말했다. 인촌은 이승만이 영구집권을 획책하자 주저 없이 부통령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는 “당시 불온문서로 취급받아 언론에 실리지 못한 인촌의 부통령 사임서를 복사해서 읽었다”고 회고했다. 인촌은 힘든 시대에 선각자적인 혜안과 뛰어난 현실인식, 겸허한 인품으로 중론(衆論)을 모으고 몸소 실천했다. 우리가 새삼 인촌의 정신을 되새기는 것은 오늘날 국정의 난맥과 이념적 혼란이 인촌의 시대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 2011-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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