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

유윤종 전문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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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음악 분야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푸치니:토스카나의 새벽을 무대에 올린 오페라의 제왕'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등의 책을 썼습니다.

gustav@donga.com

취재분야

2025-11-08~2025-12-08
음악67%
칼럼10%
문학/출판10%
문화 일반7%
연극3%
기타3%
  • 다시 쇼팽으로 돌아온 조성진 “그동안 일부러 피했지만, 이젠 할 수 있겠다 싶어”

    201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의 주인공 조성진이 9개월 만에 국내 무대에 선다. 지난해 11월 국내 11개 도시 투어 후 주 활동무대인 독일 베를린으로 돌아간 조성진은 8월 27일 DG(도이체 그라모폰) 레이블 다섯 번째 음반을 내놓은 뒤 4일부터 18일까지 전주, 대구, 서울, 인천, 여수, 수원, 부산에서 독주회를 갖는다. 새 음반에는 쇼팽 스케르초 4곡 전곡과 쇼팽 피아노협주곡 2번 (잔안드레아 노세다 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협연)을 실었다. 네 차례의 콘서트에서는 1부에서 야나체크의 소나타와 라벨 ‘밤의 가스파르’, 2부에서 새 앨범에 실은 쇼팽 스케르초 네 곡을 연주한다. 조성진은 3일 서울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앨범과 콘서트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고국에서 투어를 열게 된 소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난해 한국 투어 이후 연주여행은 못했다. 당시 투어도 일상으로 잠시나마 돌아간 느낌이어서 잊지 못할 이벤트였다. 피아니스트로서 연주란 당연한 일로 생각해 왔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연주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6년 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다시 쇼팽으로 돌아왔다. 쇼팽을 연주하는 데 변화한 점이 있다면. “쇼팽콩쿠르 당시에는 연주 스타일이 달랐다. 경직된 느낌이 있었다. 콩쿠르 이후에 훨씬 자유롭게 내 음악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다. 거울을 보면 내 얼굴은 똑같은데 남들은 다르게 보는 것과 비슷하다. 쇼팽 콩쿠르는 많은 기회를 주었고, 그때 생각을 하면 아직도 긴장되고 끔찍한 기억이다. 이번에 쇼팽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2016년 쇼팽을 녹음하고 의식적으로 안 해왔다. 쇼팽 콩쿠르 우승은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고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자리지만 ‘쇼팽 스페셜리스트’로만 각인될 수 있어 위험하다. 나는 그걸 원하지 않아서 의식적으로 그동안 다른 작곡가들을 다뤄왔다. 이제 이때쯤이면 쇼팽을 녹음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프로그램을 정할 때 많이 생각하지 않고 하고 싶은 곡을 하는 편이다. 지난 번 쇼팽 협주곡 1번을 녹음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같은 지휘자, 악단과 2번을 하고 싶었다. 또 5년 전 쇼팽 발라드 전곡을 녹음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스케르초 전곡을 하고 싶었다. 쇼팽 작품 중 발라드와 스케르초, 소나타가 가장 비중이 크다고 생각한다.”-쇼팽 협주곡은 1번이 더 유명한 편인데, 2번 협주곡의 매력은. “쇼팽 콩쿠르 당시 결선에서 1번 협주곡을 연주한 이유는 당시까지 2번을 연주해보지 않아서 1번이 더 안전했기 때문이다. 2번 협주곡의 2악장은 쇼팽이 쓴 곡 중 가장 아름다운 곡 중 하나다. 1번이 더 널리 연주되는 것은 길이가 8~10분 더 길고 보여줄 수 있는 테크닉이나 음악적 요소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2번이 섬세한 요소가 더 많고 구조도 더 자유롭다.”-쇼팽의 스케르초 네 곡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이 있다면. “스케르초 2번은 2006년 지휘자 정명훈 선생님 앞에서 연주해 정 선생님과 인연이 만들어졌고, 은사 신수정 선생님과의 인연도 이 곡과 함께였다. 그래서 스케르초 2번은 내게 특별하다. 쇼팽콩쿠르 당시 준결선 마지막 곡으로 연주하기도 했다.” -올해 열리는 쇼팽 콩쿠르 참가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없다. 만약 우승을 하는 비결이 있었다면 나간 대회마다 우승했을 텐데 그게 아니니까. 콩쿠르는 운이 많이 작용한다. 컨디션을 잘 조절해서 무대를 서는 것과 큰 기대를 안 하고 마음을 비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이번 콘서트에서 쇼팽 외 소개하고 싶은 곡은. “라벨 ‘밤의 가스파르’는 지금까지 내가 연주한 피아노 솔로곡 중 테크닉적으로 가장 어렵다. 하지만 청중의 입장에서는 음악적인 특별한 점을 알기 어렵다. 음악적으로 완벽한 곡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많이 연주하고 싶다. 나이 들면 칠 수 없을 것 같다(웃음).” -코로나19 때문에 시간이 많아졌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지난해 3월 미국에서 마지막 연주를 하고 연주가 취소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 두 달이겠지, 뭘 배울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심각함을 느꼈다. 나 뿐 아니라 모든 아티스트가 힘들었을 것이다. 새 곡을 익히려 해도 다음 연주가 언제가 될지 모르니까. 그래서 어떤 곡을 완성하려 하지는 않았고 평소 못했던 것. 바흐 파르티타 전곡을 쳐보던가 하는 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온라인 콘서트를 많이 하게 됐는데, 그때까지는 중계를 싫어했지만 코로나 덕분에 적응하게 됐다. 그래도 무관중 콘서트는 라이브를 대체할 수 없다. 관객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피아니스트로서 가장 매력적인 작곡가와 다음 앨범에서 다루게 될 작곡가는. “몇 명만 간추리기 힘들다. 쇼팽은 피아노를 위해 거의 일생을 바쳤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매력적인 작곡가다. 베토벤은 쇼팽과 다르게 피아노 소나타에서 오케스트라가 들리듯 스펙트럼이 넓은 작곡가여서 다른 매력이 있다. 다음 앨범에는 헨델을 비롯한 바로크 작곡가들의 작품이 들어갈 것 같다.” -피아니스트로서 자신이 어떤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하나. “피아니스트로서 아직 성공했다고는 정의하기 어렵다. 아직 배워나가는 입장이다. 그 점은 마흔 살이 되든지 쉰 살이 되든지 같을 것이다. ‘이정도면 됐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발전은 없다.” -어떤 식으로 휴식하고 영감을 얻나 “취미가 딱히 없다. 음악이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쉴 때도 음악을 듣거나 연주회를 보러 간다. 영감이란 건 추상적이다. 어떤 곡을 치면서 나는 어떤 영감을 받고 표현하려 하는데 관객은 그걸 못 느끼거나 다르게 느낄 수 있다. 물론 나도 연주하면서 나름대로 해석을 하는데, 모든 방법을 열어놓고 하는 편이다. 나도 정답이 아닐 수 있고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니까 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의견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항상 생각을 열어두려 한다.”-음반 녹음을 좋아하는 편인가. “연주가마다 녹음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 유명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녹음실을 선호했지만 나는 무대를 좋아한다. 최대한 녹음도 콘서트처럼 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차이는 나기 마련이다. 최대한 가깝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콘서트처럼 했다고 해도 다시 들어보면 느낌이 다르다. 콘서트는 관객에게서 받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앞으로의 목표는.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는 타입이다. 얼마 전만 해도 ‘뉴욕 카네기홀에서 연주했으면 좋겠다’ ‘빈 필과 협연하고 싶다’ 등 목표가 있었지만 이젠 다르다. 개인으로서 행복한 게 중요한데, 나는 좋은 연주를 하는 게 가장 행복한 것 같다. 그러므로 목표는 조금이라도 더 만족할 수 있는 연주를 하는 것이다. 내년부터는 코로나가 걷혀서 계획된 연주를 최대한 많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년 말 한국에서 협연 기회가 많을 것 같고,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와 미국 투어가 예정돼 있고, 뉴욕 필이나 베를린 방송교향악단과 협연도 준비되고 있다.”-최근 한국에 입국해서 장염으로 고생했다고 알려졌는데. “몸은 다 회복됐다. 연주에 어려움은 없다.(웃음)”-2019년 통영에서 지휘를 선보인 일이 있다. 지휘자로 변신할 계획은. “당시엔 실험적 이벤트로 지휘를 했는데. 그때 결심했다. 지휘는 앞으로 안하겠다고.”-지휘를 하지 않기로 한 이유는. “(지휘에) 재능이 없어서다.(웃음)”한편 클래식 공연과 음반 리뷰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영국 ‘가디언’지는 새 음반에 대해 “성숙하고 감동적이며 열정적이다. 쇼팽의 조용한 부분들을 주의 깊게 고려해 그의 음악이 가진 ‘노래’를 잘 표현했다. 조성진의 재능을 확인시키는 음반”이라고 평했다. 서울 콘서트는 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18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앙코르 콘서트가 열린다. 앙코르 콘서트는 네이버TV에서 유료로 중계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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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비츠,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수석지휘자로… 女지휘자중 ‘최고’

    독일 여성 지휘자 요아나 말비츠(35·사진)가 2023년 시즌부터 명문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로 활동한다고 세계 주요 음악저널들이 1일 보도했다. 저널들은 말비츠가 이 자리에 취임하면 여성 지휘자 역사상 최고의 지위가 된다고 전했다. 말비츠는 세 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한 음악신동 출신으로 2006년 하이델베르크 시립극장에서 지휘자로 데뷔했다. 2018년 뉘른베르크 국립극장 음악감독으로 취임했고 2020년 잘츠부르크 음악축제에서 모차르트 ‘여자는 다 그래’를 지휘해 이 축제 100년 역사상 최초로 오페라를 지휘한 여성이 됐다.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서베를린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대항하기 위해 구동독이 1952년 설립한 악단. 쿠르트 잔데를링크 등 구동독 최고 지휘자들의 조련을 받으며 ‘동독의 자존심’으로 불렸다. 독일 통일 이후에도 피셰르 이반,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등 최고의 지휘 명장들이 수석지휘자로 활동해 왔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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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비츠, 女지휘자 최고 지위된다…2023년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수석지휘자 취임

    독일 여성 지휘자 요아나 말비츠(35)가 2023년 시즌부터 명문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로 활동한다고 세계 주요 음악저널들이 1일 보도했다. 말비츠는 세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한 음악신동 출신으로 2006년 하이델베르크 시립극장에서 지휘자로 데뷔했다. 2018년 뉘른베르크 국립극장 음악감독으로 취임했고 2020년 잘츠부르크 음악축제에서 모차르트 ‘여자는 다 그래’를 지휘해 이 축제 100년 역사상 최초로 오페라를 지휘한 여성이 됐다. 유력 음악저널들은 말비츠가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에 취임하면 여성 지휘자 역사상 최고의 지위가 된다고 전했다. 그는 올해 말 출산을 이유로 최근 뉘른베르크 국립극장 음악감독을 사직했다.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서베를린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대항하기 위해 구동독이 1952년 설립한 악단. 쿠르트 잔데를링크 등 구동독 최고 지휘자들의 조련을 받으며 ‘동독의 자존심’으로 불렸다. 독일 통일 이후에도 피셰르 이반,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등 최고의 지휘 명장들이 수석지휘자로 활동해 왔다.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이 2017년부터 악장(콘서트마스터) 세 명 중 한 사람으로 활동 중이다. 플루티스트 김유빈은 플루트 수석을 맡고 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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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활력 금관, 정밀한 絃… ‘젊은 말러’ 재현… SAC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가능성 열다

    올해 처음 열린 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가 29일 3일간의 여정을 마쳤다. 공연기획자들의 협의체인 한국공연예술경영협회와 예술의전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움을 겪는 신진 예술가들을 위해 손잡고 마련한 큰 마당이다. 29일 저녁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폐막 공연은 이 축제를 위해 조직된 SAC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콘서트였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란 대개 다양한 자리에서 활동해온 연주가들이 특정 행사를 위해 모이는 비상설 오케스트라를 뜻한다.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 수석급 단원들이 올스타급 앙상블을 이루는 스위스의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대표적이다. 단기간에 합주력을 숙성시켜야 하는 제한이 있지만 개별 멤버의 기량이 출중한 만큼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특유의 빛이 나는 연주를 기대할 만했다. 이틀 앞선 개막 연주회와 같이 노부스 콰르텟의 비올리스트로 친숙한 이승원이 지휘봉을 들었다. 콘서트 전반부는 피아니스트 원재연이 협연하는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1번이었다. 1악장 도입부의 현이 부풀어 오르는 순간부터 남다른 색깔이 귀를 붙들었다. 현의 인원이 적잖은 편이었지만 악단은 실내악처럼 단정하게 울렸다. ‘모차르트 C장조’의 광휘를 과시하기보다는 빛을 줄이고 그 대신 굽이굽이 기복과 음영을 부여했다. 이런 악단의 표정은 원재연의 솔로가 시작되자 바로 이해됐다. 솔리스트의 개성에 맞춰 악단이 밑그림을 깔아둔 결과였다. 천진함을 과장하기 쉬운 이 곡의 구석구석에 원재연과 악단은 정밀한 음영을 수놓아 한층 성숙한 표정을 지어냈다. 한편 큰 악절이 교차하는 곳에서는 지휘자와 솔리스트가 설정해둔 템포의 설계가 달랐던 듯 뒤늦게 맞춰 나가는 부분들이 귀에 걸렸다. 이승원의 비팅(손젓기)은 예비박을 크게 두지 않았다. 악단이 반사적으로 맞추기보다 세밀히 보며 따라가도록 하는 스타일이었다. 후반부 말러 교향곡 1번에서 이 점은 더 두드러졌다. 악기 파트 간의 밸런스가 탁월해 다양한 조합의 빛나는 음색들이 표현된 반면 1, 2악장의 리듬은 펄떡펄떡 뛰는 편이 아니었다. 영상에 비유하면 미장센은 빛났지만 테이크 연결이 종종 순조롭지 않았던 셈이다. 1주일의 한계 속에 숙성시킨 앙상블의 제한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말러는 후반부가 더욱 빛났다. 3악장에서 더블베이스 조재복의 솔로는 호소력이 크고 풍성한 ‘노래’를 들려주었다. 전반부에서 종종 불안했던 금관도 4악장에서 빛나는 역연을 들려주었다. 금관의 활력과 생기에 정밀한 현악부가 겹쳐 찬연하고 큰 화폭의 젊은 말러가 재현됐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악장 박지윤이 악장을 맡은 바이올린 파트의 윤택한 음색과 세밀함은 특히 일품이었다. 첫해 SAC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화려한 면면은 역설적으로 코로나19 때문이기도 했다. 유럽 유명악단 단원 등 해외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연주가들이 여럿 국내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첫해에 우연히 최상의 조건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해가 갈수록 더 빛을 더하는 SAC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모습을 기대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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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트 걸친 네 남자의 중저음 앙상블… ‘포 비올라’와 함께 가을에 빠져보세요

    “비올라만 네 대?” 미안한 얘기지만, 비올라가 주목받는 악기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큰 바이올린이네’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음색은 바이올린과 첼로의 중간 정도. 바이올린처럼 화려한 ‘불꽃 기교’를 자랑하는 일도 드물다. 그런 비올라 네 대가 앙상블을 펼친다. 9월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무대에 오르는 ‘포 비올라’ 콘서트다. 영어로 ‘for violas’(비올라를 위하여)이지만 ‘four violas’(비올라 네 대)이기도 하다. 독일 라이프치히 국립음대 비올라 교수 이승원과 노부스 콰르텟 단원 김규현, 독일 하노버 NDR 라디오 필하모닉 비올라 수석 김세준과 아벨 콰르텟 단원 문서현이 호흡을 맞춘다. 이승원은 전 노부스 콰르텟 단원, 김세준은 전 아벨 콰르텟 단원이다. “해외에서도 비올라만의 앙상블은 흔치 않아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비올리스트 네 명이 유튜브에 올린 연주를 보고 콘서트를 착안했습니다.” 이번 콘서트를 기획한 김규현의 설명. 그는 “네 연주자가 두 현악4중주단(콰르텟)으로 묶일 뿐 아니라 모두 독일에서 공부해서 서로 잘 아는 사이”라고 말했다. 앙상블에서 선율을 맡는 일은 적지만 의외로 비올라의 팬은 적지 않다. 김규현은 “첼로가 사람 목소리와 닮았다는 평이 많은데, 실제로는 비올라가 중저음의 남성 목소리와 더 비슷하다. 연주하다 보면 남자들이 서로 흥얼흥얼하는 느낌이 든다”고 설명했다. 비올리스트들은 자주 심술궂게 들리는 질문과 마주친다. ‘왜’ ‘하필’ 묻히기 쉬운 비올라를 연주하게 되었을까. “흔한 경우인데, 저도 바이올린을 먼저 했어요. 대학에서 현악앙상블 수업을 하는데 비올라 숫자가 적어 바이올리니스트 몇 명이 비올라 파트에 들어갔죠.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지판(指板)을 짚는 방법이 같아 바꿔 연주하기 쉽다.) 비올라의 점잖고 여유로운 느낌이 좋더군요. 제 ‘한량’ 기질에 맞았나 봐요.(웃음)” 음악가들 사이에선 각자의 악기를 희화화한 ‘악기 조크’가 많다. 비올라 조크는 그 숫자와 도발성에서 압도적이다. ‘한 선율로 화음을 내려면?’ ‘비올라로 두 사람이 연주하면 된다’는 식이다. “비올라가 선율을 적게 담당하다 보니 기량이 떨어지는 연주자가 맡는 경우가 있었죠. 상대적인 얘기일 뿐, ‘상처받지 않고’ 웃고 넘어갑니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바흐 ‘샤콘’ 편곡판으로 시작해 바로크에서 낭만, 현대곡까지 각 시대를 망라하는 일곱 곡을 연주한다. 김규현은 바로크 작곡가 마랭 마레가 작곡한 스페인풍의 ‘라 폴리아’를 주목해 보길 권했다. “현대 작곡가 녹스가 비올라 네 대용으로 편곡한 버전이죠. 프랑스 바로크 양식의 화려함이 잘 표현돼 있습니다.” 그는 마침 비올라를 듣기 좋은 계절이 온다고 말했다. “비올라 소리는 ‘트렌치코트 입은 듯한’ 가을 느낌과 잘 어울리죠. 선선함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때, 네 남자가 들려주는 ‘가을 목소리’를 즐기시면 좋겠습니다.” 4만∼6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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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도시를 잇는 길 사이사이, 역사가 말을 건다

    우리의 일상을 규정하는 ‘도시’를 다뤘지만 두 책은 여러모로 대조된다. 신간 ‘대서울의 길’은 서울에서 뻗어 나가는 영향권을 아우르는 ‘대(大)서울’을 다뤘고 도시를 풀어 나가는 키워드로 ‘길’을 선택했으며 미시적 사실들로 가득하다. 신간 ‘도시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을까’는 역사상 첫 도시부터 오늘날까지 세계의 도시들을 다뤘고 ‘건축’을 키워드로 내세웠으며 개념과 원리들을 정리한 ‘교과서식’ 틀로 짜였다. ‘대서울의 길’에서 저자는 ‘도시는 선(線)이다’라고 선언한다. “사람들은 행정단위뿐 아니라 도로와 철도를 따라 선적으로 이어지는 지역들에도 소속감을 느끼고 연대한다.” 예를 들어 신촌 오거리에서 버스를 타고 김포, 통진, 강화도로 다니던 사람들은 군(郡)과 면(面)으로 나눌 수 없는 공통의 이익과 화제, 역사가 있다. 중앙선을 따라 구리, 남양주, 양평, 춘천, 원주에 이르는 길도 마찬가지다. 외곽과 서울을 잇는 지역들의 모습에는 향수를 자아내는 과거가, 때론 잔인한 개발시대의 모습이 덧씌워진다. 저자는 발로 뛰고 사진으로 담은 오늘의 ‘대서울’에 38년 전 나온 책 속의 모습을 비교해 보여준다. 1983년 뿌리깊은나무 출판사에서 나온 ‘한국의 발견―한반도와 한국사람’ 시리즈다. ‘20세기 택리지’라고 부를 만한 한 세대 전 인문지리서에 자신이 취재한 현재를 겹쳐 보이면서 저자는 38년 전 책이 환기한 명제를 실천한다. “근대화 또는 도시화라는 것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땅과 사람의 변화, 곧 그 쓰임새가 바뀐 땅에서 그 땅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오던 사람들의 생활이 어떻게 바뀌었느냐 하는 것이다.” ‘자유로, 경의선, 통일로’ 장에서 저자는 경의선 일산역에 선다. 서남쪽엔 신도시가 호화롭게 펼쳐지고 동북쪽엔 한적한 구도심이 있다. “일산 구도심은 경의선이 놓이면서 서울과 개성 사이의 길목으로 번성했지만 이익은 서울 상인과 개성 상인이 취하고 일산 사람은 얻는 것이 없다고 해서 ‘실속 없는 일산 사람’이라는 말이 생겼다”는 ‘한국의 발견’ 내용을 떠올린다. 이렇게 수십 년 된 과거가 현재에 남긴 흔적들을 찾아내는 점이 이 책의 남다른 매력을 만든다. ‘도시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을까’에서 저자는 ‘건축’, 즉 기능에 따른 디자인의 관점에서 역사 속 도시들을 바라본다. 로마제국 도시들이 가진 대제국의 특성이나 근대 ‘권력가 도시’ 빈과 ‘상인 도시’ 암스테르담의 비교 등을 통해 당대 시대정신을 집약한 도시들의 특징을 짚어 나간다. 고대 그리스 도시들에 필수적으로 존재했던 시설은? 야외극장이다. 시민들은 관객이 되기도 하고 배우가 되기도 하면서 자신의 직업 이외에 군인, 의회 의원 등 다양한 역할을 체험했다. 이런 그리스 도시의 특징은 ‘공공과 개인의 균형’이라는 덕목으로서 민주주의를 발달시킬 수 있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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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방송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 음반 발매

    18일로 방송 1주년을 맞은 평화방송 라디오의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월∼토 오전 10시∼낮 12시)이 기념 음반(사진)을 발매했다. 2장의 CD로 구성된 음반에는 1년간 청취자들이 보낸 신청곡 중 진행자 장일범과 PD, 작가가 고른 30곡을 실었다. 줄리아니 기타협주곡,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1번 등 기악곡과 도니체티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 ‘남 몰래 흘리는 눈물’ 등 성악 명곡을 망라했다. 세계적 음반사 워너클래식과 함께 기획해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 소프라노 조수미 등 이 음반사가 발매한 정상급 아티스트들의 수준 높은 곡들을 담았다. 음반 마무리로는 바빌로프, 슈베르트, 바흐의 ‘아베 마리아’ 세 곡을 배치했다.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은 명곡 소개뿐 아니라 화제의 아티스트를 초대하는 토크, 국내외 음악계 화제 소개 등을 곁들여 대표적인 오전 클래식 방송으로 자리 잡았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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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년 예술의전당 ‘눈물사건’후… 다시는 엄마 만날 수 없었다”

    우크라이나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48). 지난해 내한 연주를 펼친 극소수의 해외 연주가 중 유독 생생히 기억되는 이름이다. 그는 지난해 3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9번 ‘하머클라비어’ 3악장을 연주하다 눈물을 흘리며 중단했지만 50분에 달하는 앙코르곡을 쏟아놓으며 ‘폭풍 환호’를 불러왔다. 그가 1년 반 만에 다시 온다. 다음 달 9일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 1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라흐마니노프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쇼팽 스케르초 1∼4번 등을 연주한다. 리시차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그는 지난해 ‘눈물 사건’에 대한 가슴 아픈 뒷얘기를 처음으로 털어놓았다. ―지난해 연주에서 50분에 달하는 긴 앙코르를 들려주어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 긴 앙코르는 습관인지. “앙코르는 정규 프로그램에 맞지 않는 곡들을 선보일 기회이고 청중과 특별하고도 흥미로운 교감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번에도 특별한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베토벤 ‘하머클라비어’ 소나타 연주 중 눈물을 흘리며 연주를 중단했는데…. “그 일 이후 예감이란 걸 믿게 됐다. 당시 중간 휴식시간 중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내 조국 우크라이나가 완전 록다운(이동제한)에 들어간다는 뉴스가 올라왔더라. 끔찍한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흘렀다.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었다. 며칠 뒤 프랑스의 음악축제에서 이 곡을 준비하면서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그날 저녁 끔찍한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 이웃분의 전화였다. 문을 두드려도 엄마가 반응이 없다고. 아, 그랬다…. 언제 다시 하머클라비어 소나타를 연주할 수 있게 될지 모르겠다.” ―이번에 쇼팽 스케르초 네 곡을 연주하는데, 이 곡들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피아니스트 조성진도 다음 달 7일 쇼팽 스케르초 네 곡을 같은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한다). “지난겨울 피아니스트 요제프 호프만(1876∼1957)의 연주에 매혹됐다. 옛날 라디오에서 나오는 것 같은 음질이었지만 최신 녹음보다 선명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소리를 나도 내보자고 생각했다.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은 뒤 쇼팽 시대의 피아노로 쇼팽의 소리를 탐구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얻은 결과를 쇼팽 스케르초에 적용하려 한다.” ―2007년 쇼팽 연습곡을 유튜브에 올리면서 ‘유튜브에서 가장 많이 조회되는 피아노 스타’로 등극했다. 유튜브로 기회를 열고 싶은 연주가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유튜브는 첫째, 학습 도구다. 옛 연주자들의 녹음처럼 희귀한 자료들을 찾을 수 있다. 둘째, 교육 도구다. 손가락 사용법부터 음악사 강의까지 배울 수 있다. 셋째, 홍보 도구다. 직접 자신의 팬을 찾아나서는 음악가들에게 도움을 준다. 위험은 있다. 나쁜 댓글에 마음이 상할 수 있다. 하지만 경기장에 온 다른 팀 팬들이 야유한다고 해서 눈물을 흘리며 떠날 수는 없다. 버텨내면 승리할 거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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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공연 중 흘린 눈물…코로나는 나와 엄마를 영원히 갈라놓았다

    우크라이나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48). 지난해 ‘꽁꽁 잠긴 세계’에서 내한 연주를 펼쳤던 극소수의 해외 연주가 중에서도 생생히 기억되는 이름이다. 지난해 3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온 그는 마스크를 낀 채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29번 ‘하머클라비어’ 3악장을 연주하다가 눈물을 흘리며 연주를 중단했지만 50분에 달하는 앙코르곡을 쏟아놓으며 ‘폭풍 환호’를 불러왔다. 그가 1년 반 만에 다시 온다. 9월 9일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 1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라흐마니노프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피아노소나타 2번, 쇼팽 스케르초 1~4번과 ‘환상 폴로네이즈’를 연주한다. 리시차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그는 지난해 ‘눈물 사건’에 대한 놀랍고도 가슴 아픈 뒷얘기를 처음으로 털어놓았다. ―지난해 한국 입출국 전후 총 4주간의 격리를 무릅쓰고 내한해 한국인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2013, 2015, 2017년 등 여러 차례 한국에서 연주했습니다. 유튜브 스타로 뜨기 전인 1998년 내한 연주를 보고 기자가 감명 받아 동아일보에 즉시 리뷰 기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한국과 한국 청중에 특별한 애정이 있으신지요? “연주생활 초기부터 여러 차례 한국에서 공연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처음부터 스타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특별한 청중을 만났죠. 지식이 풍부하고도 열정적인 청중입니다. 이런 청중은 연주자에게 영감을 주고 서로가 도움이 됩니다. 이번에 라흐마니노프의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연주할 예정인데, 라흐마니노프는 일기에 ‘미국 순회공연에서 이 곡을 연주할 때 청중 쪽 오른쪽 귀가 객석의 반응에 따라 튜닝되었다’고 썼습니다. 사람들이 지루해 하면 다음 변주로 건너뛰기도 했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 때로는 거의 변주 절반을 건너뛰었고, 뉴욕 카네기홀에 가서야 전곡을 연주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일화는 음악가에게 청중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줍니다. 청중은 콘서트의 절반이라고 할 수 있죠. 한국 관객들은 내가 최선을 다해 연주하도록 영감을 줍니다.―지난해 연주에서 50분에 달하는 긴 앙코르를 들려주어 놀라움을 안겨주었습니다. 긴 앙코르는 습관인지요, 그때만의 특별한 이벤트였는지요.”앙코르는 정규 프로그램에 맞지 않는 곡들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이며 청중과 특별하고 흥미로운 교감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죠. 지난해엔 50분이었던가요. 시간을 재며 앙코르에 응하지는 않지만, 이번에도 특별한 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베토벤 ‘하머클라비어’ 소나타 연주 중 눈물을 흘리며 연주를 중단했습니다. 그 이유를 연주 뒤 밝혔지만, 그때를 회상하신다면. ”저는 예전에 예감이란 걸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예감을 믿게 된 것 같습니다. 당시 중간 휴식시간 중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내 조국 우크라이나가 완전 락다운(이동제한)에 들어간다는 뉴스가 올라왔더군요. 그러고 나서 함머클라비어 소나타의 느린 악장을 연주하는 동안 머릿속에 끔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었죠. 그 전까지만 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곧 지나갈 일로 생각되었고, 이렇게 길고 힘든 싸움이 될 걸로는 예상하지 못했었습니다. 나는 새 멋진 아파트를 구입한 상태였고, 고국으로 돌아가서 엄마와 함께 새 집으로 이사할 계획이었습니다. 엄마도 짐을 다 싸 두셨죠. 며칠 뒤 프랑스의 한 음악축제에서 이 곡을 또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곡을 준비하면서 또다시 눈물이 흘렀습니다. ‘괜찮아. 몇 달만 기다리면 여행제한이 풀리겠지.’ 어찌어찌 마지막 악장까지 연주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그 날 저녁 끔찍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매일 어머니 안부를 체크하던 이웃 분의 전화였습니다. 문을 두드려도 엄마가 반응이 없다는 거였어요. 예, 그렇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제 언제 다시 내가 함머클라비어 소나타를 연주할 수 있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쇼팽 스케르초 네 곡을 연주하시는데, 이 곡들에 대한 생각을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리시차에 나흘 앞선 9월 7일 피아니스트 조성진도 쇼팽 스케르초 네 곡을 같은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한다)”지난겨울 락다운으로 이탈리아의 산간 마을에 갇혀있었습니다. 찬 물조차 하루 두 시간밖에 나오지 않는 오지였죠. 여기서 한 독일 오케스트라로부터 슈만의 피아노협주곡을 연주하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이 곡은 연주 효과가 크지 않다는 평이 있기 때문에, 한층 학구적으로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아주 오래 전 거장의 연주부터 시작해 수십 개의 레코딩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연주 중 단 하나 때문에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피아니스트 요제프 호프만(1876~1957)이 남긴 녹음이었습니다. 옛날 라디오에서 나오는 것 같은 끔찍한 음질이었지만 오히려 최신 녹음보다 더 선명한 소리가 들려왔죠. 이유가 뭘까. 답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선명한 소리는 녹음의 특성이 아니라 호프만 자신의 피아노 테크닉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소리를 나도 내보자고 생각했죠. 몇 주가 걸렸지만, 나는 결국 성공했습니다. 기술적인 세부에 대해 얘기하자면 너무 긴 얘기가 되겠습니다만, 이렇게 슈만 협주곡 연주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은 뒤 나는 쇼팽 시대의 에라르(Erard) 피아노를 통해 쇼팽의 소리를 탐구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얻은 결과를 한국에서 연주할 쇼팽 네 곡의 스케르초에 적용할 것입니다.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2007년 쇼팽 연습곡을 유튜브에 올리면서 ‘유튜브에서 가장 많이 조회되는 피아노 스타’로 등극했습니다. 유튜브로 기회를 열고 싶은 연주가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유튜브는 초보자부터 스타급 연주자까지 여러 음악가들에게 수많은 도움을 줍니다. 첫째, 유튜브는 학습 도구입니다. 옛 연주자들의 역사적인 녹음처럼 희귀한 자료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둘째, 교육 도구입니다. 어려운 악절의 운지법(손가락 사용)부터 전문 음악학자의 강의까지 뭐든지 배울 수 있습니다. 셋째, 홍보 도구입니다. 직접 자신의 청중과 팬을 찾아나서고자 하는 음악가들에게 도움을 줍니다. 물론 위험은 있습니다. 나쁜 댓글에 마음이 상할 수 있죠. 하지만 경기장에 온 다른 팀의 팬들이 야유한다고 해서 눈물을 흘리며 떠날 수는 없습니다. 버텨내면 승리할 것입니다.“ ―윗세대 작곡가들과 피아니스트들이 내놓은 모든 어려운 기교를 다 소화하는데다가 체력을 소진시키는 긴 프로그램도 문제없이 소화하고 있습니다. 피아노 연습 외 체력훈련도 별도로 하는지 궁금합니다.”피아노를 치는 것은 육체적으로는 큰 도전이 아닙니다. 최소한 정신적 도전 만큼은요. 학교에서 체육을 참 못했습니다. 달리기, 수영, 배구 등 뭐든지. 반면 고등학생 때 체스에 매혹돼 순식간에 높은 랭킹에 올랐습니다. 피아노는 물리적(physical) 도구라기보다는 오히려 형이상학적(metaphysical) 도구입니다. 계속 소리를 상상해야 하고, 빨리 사라져버리는 음표들을 멜로디로 이어나가야 합니다. 피아노를 물리적으로만 상상하면 금속 현을 양털로 감싼 나무망치로 두드리는 것, 그것뿐입니다. 피아노의 진짜 비밀은 우리의 귀와 뇌에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음표가 어떻게 들릴지 잘 한다면 충분한 훈련으로 그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베토벤은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자신의 걸작을 머리로 들은 다음에 종이에 써낼 수 있었습니다. 베토벤 시대의 빈약한 피아노 소리와 그의 후기 소나타를 비교하면 더 경탄을 주는 일입니다.“ ―남편 알렉세이 쿠즈네코프도 피아니스트로 활동 중이고 두 분이 듀오 무대도 종종 갖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내한 연주를 함께 할 계획은 없는지요. ”남편과 저는 키예프 음악원 동문입니다. 음악원 시절부터 함께 듀오 연주를 했죠.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는 듀오 피아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듀오 레퍼토리는 많지 않고, 인기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건 갈 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고 솔로 활동에 주력하게 됐죠. 재작년 데카 레이블로 차이콥스키 피아노 작품 전집을 발매했었는데, 이 중 포핸즈 (피아노 한 대로 두 사람이 연주하는 것) 곡들을 남편과 함께 연주했습니다. 그런데 이 전집에서 남편이 한 역할은 연주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프로듀서 겸 편집자 역할도 했죠. 남편은 최신의 기계를 사용하는 일이나 녹음 과정을 좋아합니다. 잘된 일이죠. 알고 보니 난 프로듀서와 결혼한 거였어요!“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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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 길목, 위로의 숨결 관악 매력에 빠져보세요”

    가을의 길목, ‘부는’ 악기들의 축제가 열린다. 9월 5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두 개 무대를 마련하는 ‘관악질주’다. 영아티스트포럼앤페스티벌이 2019년 피아노의 매력을 결산한 ‘열혈건반’, 이듬해 바이올린족(族)의 면모를 드러낸 ‘현악본색’에 이어 세 번째로 마련한 축제다. 오후 2시 첫 무대는 플루티스트 박예람이 마련한다. 원곡이 플루트 소나타이지만 ‘바이올린 소나타 2번’으로 더 잘 알려진 프로코피예프 소나타 D장조와 원곡이 바이올린곡인 피에르네의 소나타, 베토벤 소나타 ‘봄’으로 플루트의 매력을 강조한다. 박예람은 프랑스 파리고등음악원 학사, 석사, 최고연주자과정을 최연소 수석 졸업했고 2017년 21세로 국립 아비뇽오케스트라 종신수석에 발탁됐다. 이듬해에는 생모(Saint-Maur) 음악원 최연소 교수로 임용됐다. 피아니스트 김가람이 반주한다. 오후 7시에는 관악 연주자 5명이 다양한 관악기의 음색과 주법을 펼쳐 보인다.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 등 ‘목관 5중주’에서 볼 수 있는 다섯 악기다. 호른은 금관악기이지만 부드러운 음색이 목관과 잘 어우러져 목관 5중주 또는 목관 앙상블에 거의 빼놓지 않고 등장한다. 박예람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 수석인 클라리네티스트 조인혁,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수석인 바수니스트 김현준, 서울시향 단원인 호른 김병훈, 파리 국립 고등음악원에 재학 중인 오보이스트 윤성영이 출연한다. 라벨 ‘쿠프랭의 무덤’, 드뷔시 ‘작은 모음곡’, 풀랑크 6중주는 피아니스트 박영성과 함께 연주한다. 여섯 연주자는 “숨결을 불어넣어 소리를 내는 관악기는 듣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모두가 힘든 시기, 따뜻한 목관 앙상블 연주로 위로를 전하고 싶다”고 전했다. 영아티스트포럼앤페스티벌은 공연계 대표 여성 기획자 4명이 젊은 연주가들의 활로를 열기 위해 2017년 설립한 단체. 음악가들의 사회 진출을 고민하는 포럼을 개최하고 여러 장르의 매력을 알리는 행사를 마련해왔다. 내년에는 7월 롯데콘서트홀에서 여는 ‘성악예찬’을 준비하고 있다. 두 공연 각각 3만∼5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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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사위원 울린 목소리 한번 들어보실래요?

    “소프라노면 ‘조수미’란 이름을 떠올리듯이 ‘바리톤’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꿈은 크게 그리되 현실적인 목표부터 차근차근 이뤄가고 싶어요.” ‘카디프의 별’ 바리톤 김기훈(30)이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9월 4일 김덕기가 지휘하는 코리아쿱오케스트라와 함께 오페라 아리아들로 리사이틀을 갖는다. 6월 19일 영국 카디프 성악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그는 카디프 콩쿠르 우승 직후인 7월 8일 경기 성남시 티엘아이아트센터에서 정태양의 피아노 반주로 미리 예정되어 있던 리사이틀을 가진 바 있다. 그는 2015년 동아음악콩쿠르 성악부문 1위에 이어 2016년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세계 음악계에 처음 이름을 알렸다. 17일 서울 강남구 마리아칼라스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의외로 “서울국제음악콩쿠르는 예선 1차 통과가 목표였다”고 밝혔다. “국제콩쿠르로 처음 나간 대회가 서울국제음악콩쿠르였어요. 세계 곳곳에서 오신 유명 성악가, 극장장 등 영향력이 큰 심사위원들의 눈에 띄는 게 참가 목적이었죠.” 차례로 라운드를 통과하면서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이후 그는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와 유명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주관하는 ‘오페랄리아’ 콩쿠르에서 차례로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카디프 국제콩쿠르 도전은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고 그는 밝혔다. 성악 공부를 시작할 무렵 카디프 국제콩쿠르 영상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1989년, 메인 부문 1위 입상자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 가곡 부문 1위 브라인 터펠이라는 불세출의 명바리톤 두 사람을 배출한 대회 영상이었다. “그 무대에 서보는 게 소원이었어요. 한국인 최초라는 타이틀도 따고 싶었고요.” 올해 카디프 콩쿠르 최고의 화제는 그가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에 나오는 아리아 ‘나의 동경, 나의 망상이여’를 부를 때 심사위원이었던 소프라노 로버타 알렉산더가 눈물을 흘린 일이었다. “노래를 부를 때 그 심사위원이 밉게 느껴졌어요. 어두운 표정으로 턱을 괴고 계셨거든요.” 콩쿠르가 모두 끝난 뒤 함께 출전한 한국인 성악가가 호텔에 찾아왔다. “영상 보았느냐고, 심사위원이 울었다고 하더군요. 믿기지 않았어요.” 그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을 받았다.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오페랄리아 콩쿠르 2등 입상 후 예정되었던 수많은 큰 무대가 취소됐다. 다행히 카디프 콩쿠르 우승으로 더 많은 출연 제안이 오고 있다고 그는 밝혔다. 세계 최고 권위의 오페라극장 중 하나인 영국 코번트가든 로열 오페라에도 내년 1월 모차르트 ‘여자는 다 그래’의 굴리엘모 역으로 데뷔한다. 이번 콘서트에선 카디프 콩쿠르에서 노래한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 중 ‘나는 이 거리의 만능 일꾼’, 바그너 ‘탄호이저’ 중 ‘저녁별의 노래’ 등을 들려준다. 소프라노 서선영과 테너 강요셉이 특별출연해 베르디 ‘가면무도회’의 중창을 함께 노래한다. 3만∼10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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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극으로 꾸민 K가곡, 우리말의 멋과 음악성 한껏 뽐내”

    “얘, 나는 잔치에 다녀올 테니 청소나 잘하고 있어!” 남겨진 처녀는 울컥해 노래를 부른다. 최진 곡 ‘시간에 기대어’다. “저 언덕 너머 그대가 살고 있을까, 계절이 수놓은 시간이란 덤 위에….” 오페라가 아니다. 몇 곡을 이어 부르고 퇴장하는 갈라 콘서트도 아니다. 14, 1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 ‘2021 예술의전당 대학가곡축제’ 중 ‘볼우물’ 팀 공연 모습이다. 예술의전당이 올해 처음 연 이 축제에서는 전국 대학 성악과에 재학 중인 27개 팀이 출연해 각기 한국 가곡 3∼5곡씩으로 20분 남짓한 음악극을 꾸렸다. 공연은 네이버TV로 동시 중계됐다. 혼자 또는 2∼6명씩 팀을 이뤄 신청한 출연자들은 저마다 독특한 색깔의 무대를 엮어냈다. 남녀 성악도 네 명이 모인 ‘볼우물’ 팀은 콩쥐팥쥐 또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산뜻하게 풀어냈다. 광복절 연휴에 열린 축제여서인지 ‘항일’과 ‘애국’을 다룬 소재가 많았다. 가천대 ‘더 데이 독립의 날’ 팀과 박성진 씨(추계예대)는 각각 나라를 위해 몸 바친 독립지사의 희생을 극으로 구성했다. 청년층의 취업난을 그린 작품도 여럿이었다. 백지원 씨(성신여대)는 취업에 실패한 뒤 옛 그림일기를 보면서 위로를 얻는 주인공을 연기했다. 송기철 씨(한양대)는 거듭 공무원 시험에서 낙방하고는 달을 보며 고향의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는 주인공을 표현했다. ‘엄마의 꿈’이란 제목으로 공연한 ‘들려드림’은 엄마와 아들, 딸로 구성된 가족팀으로 눈길을 끌었다. 만학도로 성악을 공부하게 된 엄마가 역시 성악을 공부하는 자녀들과 화음을 이룬다는 내용을 담았다. 어머니 김동희 씨(47·서울사이버대)는 “성악을 향한 꿈을 접어두고 살다가 아이들이 성악을 공부하게 되면서 다시 꿈을 싹틔웠다”며 “극에서 표현한 것처럼 아이들과 함께 노래하고 무대에까지 서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서울사이버대 ‘SCU 성악앙상블’의 ‘그리운 가족’에선 축제 최고령자인 이병학 씨(76)가 주목을 받았다. 고향을 그리는 실향민을 연기한 이 씨는 맑은 노래결뿐 아니라 또렷한 대사와 평안도 사투리 등 자연스러운 연기까지 선보였다. 이 씨는 “우리 가곡은 우리말에 담긴 자연스러운 음악성을 표현한다. 행사에 참여하면서 가곡을 제대로 부르겠다는 목표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번 축제 출연 팀들엔 작곡가 최진, 연출가 김태웅, 바리톤 공병우와 메조소프라노 김향은이 세 차례에 걸쳐 멘토링을 제공했다. 김태웅 연출가는 “팀마다 처음엔 극의 흐름을 잡아내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모두 곡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음악적 흐름에 대한 감각이 뛰어났다”고 말했다. 이틀 동안의 등수 없는 경쟁 끝에는 아쉬움도 남았다. 출연자들이 고른 2000년대 이후의 신작 가곡은 작곡가 최진과 김주원, 특히 ‘아트팝’을 표방한 김효근의 곡들이 대부분이었다. 과감한 화성과 곡에 밀착하는 가사, 서정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곡들이지만 한국 가곡이 수십 년간 탐구해온 실험성과 사실주의 등 다양한 시도들이 배제된 채 특정 경향에 과도히 집중될 위험이 느껴졌다. 한국 가곡이 더 다양한 세계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이 축제와 같은 새로운 시도가 더욱 많아져야 함을 느끼게 했다.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은 “중장년층에게는 향수를, 청년들에게는 낯설었던 우리 가곡을 가깝게 느끼게 만들고 싶었다. 계속해서 사랑받는 축제로 가꾸어 나가겠다”고 밝혔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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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튜브]명곡의 숨은 매력 찾아주는 편곡의 마법

    노르웨이 화가 뭉크의 그림 ‘절규’는 소리 지르는 남자의 배경에 깔린 핏빛 노을이 강렬하게 시선을 압도한다. 하지만 이 화가에게는 붉지 않은 ‘절규’도 있다. 뭉크가 같은 구도로 흑백의 석판화를 남긴 것이다. 판화에는 강렬함마저 소거된 앙상한 고독감이 강조된다. 뭉크는 두 가지 표현방식을 다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같은 구도를 채색화와 판화로 제작한 것과 같은 일이 음악에도 가능할까. 비교할 만한 사례들이 있다. 같은 곡을 악기 또는 편성을 달리해 편곡한 경우다. 러시아 작곡가 무소륵스키의 피아노곡 ‘전람회의 그림’(1874년)은 친구였던 화가 겸 건축가 하르트만 추모전을 보고 받은 인상을 여러 악장의 피아노곡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프랑스 작곡가 라벨이 1922년 이 곡을 관현악곡으로 편곡해 발표했다. 정명훈이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이 이 곡을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한다. 피아노곡에서는 무소륵스키 특유의 선 굵은 표현이 강조되는 반면 관현악곡에서는 훨씬 화려하고 다채로운 음색들이 쏟아져 내린다. 라벨은 자신의 피아노곡도 종종 관현악곡으로 바꾸어 선보였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숨진 친구들을 추모하기 위해 작곡한 ‘쿠프랭의 무덤’도 그렇다. 21일 피아니스트 이효주가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선보이는 리사이틀 ‘라데팡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피아노곡을 관현악곡으로 편곡하는 데는 남다른 상상력이 필요하지만, 독주곡이나 이중주곡에 사용되는 악기를 바꾸어 연주하는 일은 한결 쉽다. 단지 악기마다 음높이가 다르므로 조(調)를 바꾸거나 너무 높거나 낮은 음을 바꾸고, 연주할 수 없는 부분도 바꾼다.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는 첼로, 플루트, 심지어 금관에서 최저음을 담당하는 튜바로도 연주돼 왔다. 이런 경우는 뭉크의 다른 그림인 ‘병든 아이’와 비교할 수 있다. 뭉크는 열다섯 살 때 세상을 떠난 누나의 기억을 그림에 담았다. 이 그림 역시 채색화와 석판화가 있는데, 석판화도 검은 잉크를 쓴 것과 붉은 잉크를 쓴 버전이 있다. 각각의 색이 주는 인상이 선연히 달라서 한 가지만이라면 아쉬울 것 같다.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 오보이스트 함경과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듀오 연주회에서 프랑크의 소나타를 오보에와 피아노라는 색다른 조합으로 들을 수 있다. 때로 원곡과 편곡 악보의 시간차가 꽤 클 때도 있다. 26일 피아니스트 김태형은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드뷔시, 라벨 등의 프랑스 근대 피아노곡과 18세기 프랑스 작곡가 라모의 건반악기 작품을 연주한다. 라모의 ‘암탉’은 꼭꼭꼭, 하는 닭의 울음소리를 표현한 곡인데, 이 작품을 20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레스피기가 관현악 모음곡 ‘새(鳥)’에 편곡해 넣었다. 근대 관현악곡의 팬들에게는 레스피기의 편곡으로 더 친숙할 것이다. 알려진 작품의 편성을 바꾸어 듣는 것은 신비하고 때로 놀라운 체험을 제공한다. 예전에 듣지 못하던 선율이 들려오기도 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작품의 조형적 측면이나 색깔을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편곡된 작품을 들은 뒤에는 원곡도 새롭게 들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편성이나 악기를 바꾼 편곡 작품을 듣는 것은 오늘날의 음악팬에게는 특정 레퍼토리에 국한되거나 이색적인 경험이 된다. 음향기기가 개발되기 전에는 사정이 달랐다. 18세기 귀족들은 흔히 관악기 8∼10여 대로 구성된 앙상블 ‘하모니무지크’를 고용했다. 새 교향곡이 화제가 되면 관현악 악보를 하모니무지크용으로 편곡해 듣곤 했다. 19세기 중반 유럽 중산층 가정에 피아노가 널리 보급되면서 교향곡이나 오페라를 피아노 독주나 연탄(두 사람이 피아노 한 대에 앉아 연주하는 것)용으로 편곡한 악보가 널리 팔렸다. 오늘날 우리는 첨단 음향기기의 도움으로 어떤 곡이든 편곡 없이도 바로 불러낼 수 있다. 다른 악기를 위해 편곡된 버전들도 음원스트리밍 서비스나 유튜브에서 간단한 검색으로 찾아낼 수 있다. 놀라울 만큼 편리하지만, 그만큼 귀한 것의 가치에 무뎌진 시대이기도 하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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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튜브]명곡의 숨은 매력 찾아주는 편곡의 마법

    노르웨이 화가 뭉크의 그림 ‘절규’는 소리 지르는 남자의 배경에 깔린 핏빛 노을이 강렬하게 시선을 압도한다. 하지만 이 화가에게는 붉지 않은 ‘절규’도 있다. 뭉크가 같은 구도로 흑백의 석판화를 남긴 것이다. 판화에는 강렬함마저 소거된 앙상한 고독감이 강조된다. 뭉크는 두 가지 표현방식을 다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같은 구도를 채색화와 판화로 제작한 것과 같은 일이 음악에도 가능할까. 비교할 만한 사례들이 있다. 같은 곡을 악기 또는 편성을 달리해 편곡한 경우다. 러시아 작곡가 무소륵스키의 피아노곡 ‘전람회의 그림’(1874)은 친구였던 화가 겸 건축가 하르트만 추모전을 보고 받은 인상을 여러 악장의 피아노곡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프랑스 작곡가 라벨이 1922년 이 곡을 관현악곡으로 편곡해 발표했다. 오늘날엔 관현악곡으로 더 쉽게 들을 수 있을 정도다. 정명훈이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이 이 곡을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한다. 피아노곡에서는 무소륵스키 특유의 선 굵은 표현이 강조되는 반면 관현악곡에서는 훨씬 화려하고 다채로운 음색들이 쏟아져 내린다. 라벨은 자신의 피아노곡도 종종 관현악곡으로 바꾸어 선보였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숨진 친구들을 추모하기 위해 작곡한 ‘쿠프랭의 무덤’도 그렇다. 21일 피아니스트 이효주가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선보이는 리사이틀 ‘라데팡스’에서 이 곡을 피아노 버전으로 만나볼 수 있다. 피아노곡을 관현악곡으로 편곡하는 데는 남다른 상상력이 필요하지만, 독주곡이나 이중주곡에 사용되는 악기를 바꾸어 연주하는 일은 한결 쉽다. 단지 악기마다 음높이가 다르므로 조(調)를 바꾸거나 너무 높거나 낮은 음을 바꾸고, 악기의 특성에 따라 연주할 수 없는 부분도 바꾼다.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는 첼로, 플루트, 심지어 금관에서 최저음을 담당하는 튜바로도 연주돼 왔다. 이런 경우는 뭉크의 다른 그림인 ‘병든 아이’와 비교할 수 있다. 뭉크는 열다섯 살 때 세상을 떠난 누나의 기억을 그림에 담았다. 이 그림 역시 채색화와 석판화가 있는데, 석판화도 검은 잉크를 쓴 것과 붉은 잉크를 쓴 버전이 있다. 각각의 색이 주는 인상이 선연히 달라서 한 가지만이라면 아쉬울 것 같다.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 오보이스트 함경과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듀오 연주회에서 프랑크의 소나타를 오보에와 피아노라는 색다른 조합으로 들을 수 있다. 때로 원곡과 편곡 악보의 시간차가 꽤 클 때도 있다. 26일 피아니스트 김태형은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드뷔시, 라벨 등의 프랑스 근대 피아노곡과 18세기 프랑스 작곡가 라모의 건반악기 작품을 연주한다. 라모의 ‘암탉’은 꼭꼭꼭, 하는 닭의 울음소리를 표현한 곡인데, 이 작품을 20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레스피기가 관현악 모음곡 ‘새(鳥)에 편곡해 넣었다. 근대 관현악곡의 팬들에게는 레스피기의 편곡으로 더 친숙할 것이다. 이처럼 알려진 작품의 편성을 바꾸어 듣는 것은 신비하고 때로 놀라운 체험을 제공한다. 예전에 듣지 못하던 선율이 들려오기도 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작품의 조형적 측면이나 색깔을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편곡된 작품을 들은 뒤에는 원곡도 새롭게 들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편성이나 악기를 바꾼 편곡 작품을 듣는 것은 오늘날의 음악팬에게는 특정 레퍼토리에 국한되거나 이색적인 경험이 된다. 그러나 음향기기가 개발되기 전에는 사정이 달랐다. 18세기 귀족들은 흔히 관악기 8~10여 대로 구성된 앙상블 ’하모니무지크‘를 고용했다. 새 교향곡이 화제가 되면 관현악 악보를 하모니무지크용으로 편곡해 듣곤 했다. 19세기 중반에는 유럽 중산층 가정에 피아노가 널리 보급되면서 교향곡이나 오페라를 피아노 독주나 연탄(두 사람이 피아노 한대에 앉아 연주하는 것)용으로 편곡한 악보가 널리 팔렸다. 오늘날 우리는 첨단 음향기기의 도움으로 어떤 곡이든 편곡 없이도 바로 불러낼 수 있다. 다른 악기를 위해 편곡된 버전들도 음원스트리밍 서비스나 유튜브에서 간단한 검색으로 찾아낼 수 있다. 놀라울 만큼 편리하지만, 그만큼 귀한 것의 가치에 무뎌진 시대이기도 하다. 유윤종 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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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추사의 위대함은 제주 유배시절 완성됐다

    “김정희는 학술을 예술로 변용하는 재능에서 천재였으며 위대한 학예(學藝)주의자의 면모를 확립했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언어와 문자, 그리고 형상에서 실현 가능한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어 천재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관료, 문인, 화가, 서예가, 금석학자, 실학자, 예술학자, 불교학자….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가 남긴 면모는 그의 수많은 호(號)만큼이나 다채롭다. 고교생 시절 추사에 매혹된 저자는 그가 제주도에 유배된 나이와 같은 쉰다섯 살 때부터 추사의 생애와 예술의 전모를 낱낱이 들여다보는 ‘대작업’에 착수했다. 제주 시절이야말로 거장을 완성시킨 시간이었으며, 그 시기가 없었다면 김정희라는 이름이 ‘그저 수많은 별 가운데 하나’로 흘러갔을지 모른다고 보기 때문이다. 책의 방대한 분량은 꼼꼼하고도 지난했던 검증의 결과물이다. 김정희와 자하(紫霞) 신위의 관계를 검증한 부분도 수많은 사례 중 하나다. 자하 문하에서 학예의 터전을 일군 추사는 연경에 들어가는 자하를 위해 쓴 전별(餞別)의 시에서 그를 ‘전배(前輩·선배 혹은 연장자) 앞선 무리’로 부르는 등 당시 시각에선 무례한 표현을 사용한다. 이유가 뭘까. 저자는 추사의 글들을 편찬한 후학들이 시를 변조했음을 꼼꼼한 정황과 증거로 보여준다. 그러나 추사가 자하를 ‘선생’으로 표현하며 사제지간의 연을 맺지 않았음도 밝힌다. 집요할 정도의 엄밀성은 추사의 인간관계뿐 아니라 그의 학술과 이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난을 그릴 때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글씨와 학문이 나타내는 품격)’가 있은 다음에야 될 수 있다고 한 말은 널리 회자되는 문장 중 하나다. 이 표현 또는 이론의 배경을 추적하는 집요함도 경탄을 자아낸다. 엄밀한 작업 끝에 저자는 책을 쓰면서 적용한 태도를 술이부작(述而不作)으로 설명한다. 옛사람의 말을 전할 뿐 자신의 학설을 지어내지 않는다는 겸허한 자세다. 250여 컷의 방대한 도판도 추사의 면모를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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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채로운 빛깔 릴레이 음악축제

    서울 예술의전당이 클래식 매니지먼트사들의 연합체인 한국공연예술경영협회와 손잡고 ‘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의 돛을 올린다. 27∼29일 사흘 동안 여덟 개 콘서트에서 열네 개 연주단체와 연주자가 다양한 색깔의 팔레트를 펼쳐내는, 승부 없는 경연이다. 축제는 이승원 지휘 SAC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치는 개막·폐막 연주회와 색깔 있는 열세 개 연주팀의 릴레이 음악 축제로 구성됐다. SAC페스티벌오케스트라는 세계를 무대로 활동 중인 한국 연주자들을 한데 모았다. 악장으로는 27일 개막 연주에 독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제2 바이올린 악장 이지혜, 29일 폐막 연주에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악장 박지윤이 자리를 잡는다. 22 대 1의 경쟁을 거쳐 선발된 지휘자 이승원은 현악4중주단 노부스 콰르텟 비올리스트로 익숙한 얼굴. 함부르크 음대 최고연주자 과정을 지휘 과정으로 졸업했고, 루마니아 BMI 지휘콩쿠르에서 1위 입상했으며, 함부르크 교향악단과 KBS 교향악단 등을 지휘했다. 개막 연주회에선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과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가 협연하는 브루흐 ‘스코틀랜드 환상곡’, 폐막 연주회에선 말러 교향곡 1번과 원재연이 협연하는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1번을 들려준다. 릴레이 음악 축제는 14 대 1의 경쟁을 통과한 13개 팀이 28, 29일 이틀 동안 한 개 무대를 2부 또는 3부로 나눠 모두 여섯 개 콘서트를 펼친다. 올해 체코 프라하의 봄 콩쿠르 현악4중주 부문 우승자인 아레테 콰르텟, 현대음악 전문 앙상블인 앙상블 블랭크, 김진세 박지형 기타 듀오 등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지난해 문을 연 새 연주회장 인춘아트홀에서 각각 개성 강한 무대를 마련한다. 올해 축제의 주제는 ‘New Hope(새 희망)’. 코로나로 무대를 갖지 못했던 음악인들에게 연주 기회를 마련해주고, 공연 제작사와 기획사의 상생 기반을 만든다는 뜻이다.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은 “기획사들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을 보고 공연예술경영협회와 함께할 일이 무엇인지 의논한 결과 축제를 만들었다. 기획 기간이 짧아 작은 규모로 시작했지만 매년 신진 아티스트들에게 기회와 희망을 주는 축제로 키워 나가겠다”고 밝혔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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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하나가 됩시다” 거장이 지휘하는 여름날의 선율

    정명훈 지휘 원코리아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의 만남이 두 번째로 펼쳐진다. 2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중기 낭만주의 대표 바이올린협주곡인 브루흐의 협주곡 1번을 협연한다. 정명훈과 신지아는 지난해 12월 열린 원코리아 오케스트라 콘서트에서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협주곡으로 호흡을 맞췄다. 올해 콘서트 후반부 프로그램은 베토벤의 거작인 교향곡 9번 ‘합창’이다. 소프라노 서선영, 메조소프라노 정수연, 테너 존노, 베이스 심기환이 협연한다. 원코리아 오케스트라는 ‘음악을 통해 하나 되는 대한민국’을 모토로 4년 전 창단된 비상설 오케스트라. 국내 주요 오케스트라 단원과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출신 연주자들이 앙상블을 이룬다. 신지아는 ‘순국내파 바이올리니스트’로 2008년 롱티보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연주계 스타로 떠올랐고 2012년에는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3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원코리아 콘서트에서는 후반에 악장 역할을 맡아 브람스 교향곡 4번 연주를 이끌었다. ‘정명훈 여름 시즌’은 26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로 이어진다. 1970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이자 베토벤 소나타 전집으로 2008년 그래미상을 수상한 피아니스트 개릭 올슨이 슈만 피아노협주곡을 협연하고, 메인 프로그램으로는 라벨이 편곡한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을 올린다. 정명훈과 올슨은 9월 1일 ‘KBS교향악단과 함께하는 제5회 여수음악제’에서도 같은 프로그램을 전남 여수 GS칼텍스 예울마루 대극장에서 연주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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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교대 음악영재교육원, 초등학생 대상 음악 집중교육 눈길

    “서울교대 음악영재교육원은 음악적 감수성의 발달에 가장 중요한 초등학교 3∼6학년생들이 음악가로 성숙할 수 있는 곳이죠. 일대일 실기수업뿐 아니라 흥미로운 이론수업, 다양한 음악체험 및 그룹수업으로 음악성이 쑥쑥 자라도록 커리큘럼을 구성했습니다.”(최영미 서울교대 음악영재교육원장) 서울교대가 올해 음악영재교육원을 개원해 어린 음악영재에 대한 집중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건영과 더위크앤리조트의 후원으로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관악, 국악 등 53명의 영재를 선발해 서울시교육청 소속으로 4월 10일 개원했다. 1년 2학기 과정으로 프로그램이 짜였으며, 매주 토요일 실기와 이론 수업을 실시한다. 1기 음악영재들은 서류전형과 실기 오디션, 심층 면접으로 이어지는 엄격한 선발 과정을 거쳤다. 지난달 3일에는 한 학기를 결산하는 영재 연주회가 열렸다. 연주회에 참석한 신수정 서울대 명예교수(피아니스트·대한민국예술원 회원)는 “음악을 사랑하는 이 영재들이 더욱 발전하길 기원한다. 꾸준함과 끈기를 기르도록 하라”고 연주회 후 총평에서 격려했다. 최영미 원장은 “국내 최고 권위의 강사진이 진행하는 실기교육뿐 아니라 명사 초청 특강, 그룹으로 진행하는 흥미로운 체험 교육, 여러 차례의 ‘향상 음악회’ 등 무대 연주 체험을 통해 어린 영재들이 종합적으로 음악에 대한 탐구심을 유지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서울교대는 350석의 전문 공연장과 130석의 콘서트홀, 레슨실 12개, 실기연습실 84개 등을 갖추고 있으며 수학영재교육원, 과학영재교육원, 미술영재교육원, 소프트웨어영재교육원을 운영해왔다. 2기 영재 모집은 9월 중 홈페이지를 통해 공고할 예정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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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수미 ‘음악의 원천’, 어머니 별세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하루 여덟 시간씩 피아노를 연습하라며 문을 걸어 잠그셔서 원망도 많이 했죠. 나중에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신 분은 바로 어머니라는 걸요.” (조수미, 2019년 음반 ‘마더’ 기자간담회에서) 세계적 소프라노 조수미를 키워낸 어머니 김말순 여사가 8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5세. 고인은 10여 년 전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은 뒤 병원에서 생활해 왔다. 조 씨는 2019년 어머니에 대한 감사를 담은 앨범 ‘마더(Mother)’를 냈고 올해 5월 8일 어버이날에는 감사의 마음을 담은 리사이틀 ‘나의 어머니’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기도 했다. 2004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조 씨는 “어린 시절 동네 어른들이 ‘쟤는 뭘 두드려야 오래 산다’고 얘기해서 부모님이 어려운 살림 가운데서도 피아노를 시키셨다”고 회상했다. 어머니 김 씨도 젊은 시절 성악가가 꿈이었기에 조 씨가 성악에 재능을 보인 순간 장래가 결정됐다. 조 씨는 “어머니가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를 좋아했다. 나는 뭐든지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지만 그중에서도 성악은 어머니와 나에게 특별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재학 중 어머니와 스승들의 권유에 따라 이탈리아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난 조 씨는 1987년 세계적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깜짝 오디션을 받고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공연할 베르디 ‘가면무도회’의 오스카역으로 캐스팅되면서 세계적 프리마돈나로 떠올랐다. 그런 그에게도 어머니는 가장 무서운 비평가였다. 한 방송에서 조 씨는 “어머니는 한 번도 내게 잘했다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오늘 저녁 안 먹었니? 어쩐지 고음이 달리더라’는 식이었다. 가장 무서운 비평가였다”고 회상했다. 2003년 정부가 수여하는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수상한 고인은 2006년 조 씨의 부친이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식에 오지 말고 (예정된) 프랑스 파리 공연을 잘하라”고 권해 뜻을 관철하기도 했다. 당시 조 씨는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관객에게 아버지의 별세 사실을 알리고 콘서트를 끝까지 마쳤다. 조 씨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SMI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조 씨가 해외에서 활동하는 중에도 ‘음악과 관계된 기억이 가장 오래 간다’는 학설에 따라 알츠하이머병으로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위해 전화로 노래를 들려주곤 했다”고 전했다. SMI엔터테인먼트 측은 “조 씨가 현재 이탈리아 로마에 있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자가 격리 문제로 한국에 들어와 상을 치를 수 없는 사정이 있다”고 밝혔다. 유족으로는 조수미 외 조영준(SMI엔터테인먼트 대표), 영구 씨(사업)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 10일 오전 7시. 유족 측은 조문객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조문을 정중히 사양한다고 밝혔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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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년 전 슈베르트, 2021년 평창에서 ‘재생’되다

    7월 28일 개막한 제18회 평창대관령음악제의 테마는 ‘산(alive)’이다. 1일 평창 알펜시아 뮤직텐트에서 열린 공연 제목은 ‘재생(再生·revive) 1’이었다. 재생이란 죽은 것이 삶을 입어 다시 태어남을 뜻한다. 연주를 기록했다가 다시 듣는 것도 재생(playback)이다. 음악이 악보에 기록됐다가 연주되는 순간마다 작품은 다시 태어나는 기적을 맛본다. 빈 중심가 투흘라우벤의 1828년 3월 26일은 1일 평창에서 재생되었다. 슈베르트의 작품만을 공연했던 193년 전 빈 악우협회 콘서트 프로그램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주로 ‘하우스 콘서트’로 열렸던 슈베르티아데(슈베르트 애호가들의 작은 콘서트)의 확대판 격이었다. 슈베르트의 혼령이 지상에 있다면 기쁘게 감상했을 것이다. 날씨는 슈베르트의 짧은 삶 만큼이나 순조롭지 않았다. 빗줄기가 뮤직텐트를 때리는 소리가 커지고 작아지기를 거듭했다. 피아노3중주 2번 연주 중에는 뇌성이 울렸다. 실내악 공연으로는 이례적으로 알펜시아 콘서트홀이 아닌 뮤직텐트에 많은 청중을 불러 모았지만 그 비용을 치른 셈이 됐다. 두 세기 전을 불러낸 프로그램은 호화로웠다. 슈베르트의 마지막 현악4중주인 15번 1악장과 피아노3중주 2번 전곡, 그리고 성악곡 8곡이 무대에 불려나왔다. 제1바이올린 신아라를 비롯한 현악4중주 팀의 준비가 예사롭지 않았음은 첫 곡부터 뚜렷했다. 현악4중주 15번 첫악장의 물결처럼 숨쉬는 16분음표의 셋잇단음표가 마치 붓과 펜, 마커를 한 자루에 붙여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정밀하게 표현됐다. 이 팀의 첼로 배지혜와 바이올린 박지윤, 피아노 박종해가 호흡을 맞춘 3중주도 여기에 지지 않았다. 4악장에서 피아노의 쏟아지는 하행 음형과 여기 달라붙듯 호흡을 맞춘 앙상블은 경탄스런 순간이었다. 부부 성악가인 소프라노 홍혜란과 테너 최원휘는 박종해의 피아노에 맞춰 ‘십자군’ ‘별’ ‘강 위에서’ 등 잘 연주되지 않는 슈베르트 성악곡들을 단아한 표정으로 들려주었다. 성악 라인이 피아노에 주도권을 주고 자기 색깔을 줄인 점은 아쉬웠다. 평창대관령음악제 프로그램북은 완성도 높기로 정평이 있지만, 이날 성악곡들의 가사를 싣지 않은 점도 아쉬움을 남겼다. 하루 앞선 7월 31일, 같은 알펜시아 뮤직텐트에서는 젊은 지휘자 차웅의 지휘로 평창페스티벌오케스트라의 두 번째 공연 ‘등정’이 열렸다. 각 악기 수석을 비롯한 연주자들의 면면만으로 환호를 일으키는 이 ‘비상설’ 오케스트라는 국내에서 가장 기대하고 보는 관현악단으로 굳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색깔이 뚜렷하고 다이나믹한 짧은 관현악곡 세 곡과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이라는 프로그램만으로도 이미 열렬한 반응이 예상됐지만 이날의 호연은 기대를 뛰어넘었다. 차웅의 리드는 능란했고 김홍박이 이끄는 호른 팀의 완벽한 앙상블과 조성현이 이끄는 플루트 팀의 밝고 뚜렷한 색감이 돋보였다. 현악 솔로부, 특히 저음이 묻히기 쉬운 뮤직텐트의 악조건을 첼리스트 김두민은 바로 극복해냈다. 매년 뮤직텐트 밖에서 들려오는 말소리를 비롯한 소음은 축제 실무진이 특히 유념해야 할 부분으로 생각된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시대를 단절 없이 ‘살고 있는’(alive) 평창대관령음악제는 해마다 뚜렷한 주제의식과 연주의 완성도로 그 기대를 계속해서 높여가고 있다. 올해 축제는 7일 평창페스티벌오케스트라의 폐막 콘서트 ‘내려갈 때 보았네’로 마무리된다.평창=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1-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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