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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 고분에서 발견된 금동신발을 근거로 5세기 한반도에 천연기념물 ‘따오기’가 서식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앞서 다양한 동식물 고고학 연구를 통해 옛 한반도의 생태환경을 복원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당시 생태계를 파악하면 이를 자원으로 활용한 사람들의 생활상도 추정할 수 있다. 김우열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 연구원은 최근 한국조류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2009년 전북 고창 봉덕리 백제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의 봉황무늬가 따오기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천연기념물 제198호인 따오기는 1979년 경기 파주에서 마지막 야생 개체가 발견됐다. 논문에 따르면 금동신발의 새 무늬는 고니, 기러기, 원앙 등 다른 금동유물들에 새겨진 무늬와 생태학적으로 다르다. 김 연구원은 “부리가 아래로 휘어져 있고 부리 크기가 머리에 비해 2, 3배가량 더 긴 점 등이 따오기와 유사하다”고 밝혔다. 금동신발에서 여러 개체가 쌍을 지은 것처럼 묘사된 것도 따오기의 생태 습성과 닮았다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어린 따오기로 보이는 새들이 무리지어 있는 것으로 묘사된 사실을 미뤄볼 때 따오기가 고대 한반도에서 번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따오기는 일제강점기 동요로 불리는 등 20세기 초까지도 우리에게 친숙한 철새였다. 조선시대 세종실록이나 연산군일기에 이를 포획하거나 상납한 기록이 남아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전엔 따오기 서식과 관련된 역사 기록은 전무하다. 김 연구원은 “현재 따오기 야생 복원사업이 이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봉덕리 고분 유물은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단서”라며 “고고학과 생태학 협동 연구를 통해 따오기가 서식했던 시점을 추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적지에서 출토된 동물 뼈도 생태환경 분석에 핵심 자료로 쓰이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04∼2007년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유적지에서 출토된 소, 말, 돼지 뼈에서 백제인들이 경작한 잡곡류 성분을 찾아냈다. 삼국시대에 소 등을 가축으로 사육한 증거를 발견한 것이다. 출토된 쌀과 볍씨를 통해 농경이 이뤄진 시기를 가늠하는 식물 고고학 연구도 주목할 만하다. 1976년 경기 여주 흔암리 유적에서 출토된 기원전 10세기경 탄화미(炭化米·불에 탄 쌀)는 일본열도에서 한반도로 벼농사가 전래됐다는 일본 학계의 주장을 반박하는 근거가 됐다. 흔암리 탄화미가 일본에서 출토된 것에 비해 600년 이상 앞섰기 때문이다. 옛 화장실 유적도 생태환경과 식생활 분석의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예컨대 전북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발견된 측주(厠籌·대변을 본 뒤 사용한 뒤처리용 도구)는 백제인들이 채식과 물고기 위주의 식단을 즐겼음을 보여줬다. 육식성 기생충인 조충이 아닌 채식을 많이 하는 이들이 걸리는 회충 편충이 측주에서 주로 검출된 것. 이와 함께 민물고기에 많이 서식하는 간흡충이 발견돼 백제인들이 근처 하천인 금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섭취한 사실이 밝혀졌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인문학 연구는 계속돼야만 해요. 많은 사람들에게 사유의 시간을 안겨주니까요. 금전적 보상이 뒤따르지 않아도 제가 계속해서 연구하려는 이유입니다.” 생계를 위해 틈날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낮으로 아이를 돌보는 와중에 연구를 한다. 한 아이의 엄마이자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윤보라 씨(41)는 2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인문학 연구자로 살아가려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윤 씨를 포함해 2000년대 학계에 발을 디딘 30, 40대 젊은 인문사회학 연구자 10명이 ‘우리는 왜 연구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한 책 ‘연구자의 탄생’(돌베개·사진)을 21일 펴냈다. 인문학이 위기를 맞은 건 오래된 일이다. 인문대학과 사회과학대학이 통폐합되고, 대학에서 연구자들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암울한 진단서가 날아오지만 이들은 “그럼에도 계속 연구해보겠다”고 말한다. 이들은 독립연구소를 만들어 학교 밖에서도 연구가 이어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윤 씨는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을 밟고 있는 또래 연구자들과 2017년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를 만들었다. 연구소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월급은 한 푼도 없다. 오히려 세미나를 열기 위해 사비를 써야 한다. 윤 씨는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선후배 연구자들과 만나 공부해보자는 취지로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씨는 지난해 12월 연구소 동료 8명과 공동저자로 여성주의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 ‘페미니즘 교육은 가능한가’(교육공동체벗)라는 책을 펴냈다. 연세대 미디어문화연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천주희 씨(36)에게 연구는 곧 실천이다. 2016년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사이행성)라는 책을 통해 학자금대출 등 채무불이행 상태에 놓인 청년 빈곤 실태를 진단한 천 씨는 연구에서 멈추지 않았다. 사회적 협동조합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에서 청년들의 재무 상담을 도운 것. 천 씨는 “내게 공부란 죽음과 불평등과 배제, 소외를 어떻게 해석하고 바꿔나가야 할지 삶과 생존을 위한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도록 독려하는 매개”라고 했다. 천 씨가 석·박사 과정을 거치며 받은 학자금 대출금은 약 1억5000만 원. 하지만 천 씨는 “내일도 연구자이고 싶다”고 말한다. 책 제목처럼 인문학의 위기 속에서도 연구자는 계속 탄생하고 있다. 젊은 인문사회 연구자들의 원고를 엮은 돌베개 출판사는 “이들이 존재하기에 대학과 연구재단 밖으로 연구자의 외연이 확장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고대 그리스어로 ‘많은 섬들’을 뜻하는 폴리네시아에는 수천 개의 섬들이 드넓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대륙과 떨어져 있다. 바다는 이들을 고립시키는 장벽이었을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바다는 오히려 길을 열어 섬들을 이어줬다는 것. 폴리네시아인은 카누로 항해하며 각자의 물건을 나눴다. 남태평양의 섬나라 통가에서는 다른 섬에서 온 사람을 ‘카카이 메이 타히(바다에서 온 사람들)’라고 불렀다. 바다를 고향으로 여긴 통가인에게는 이웃 섬에서 온 이방인도 내 고향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들에게 바다는 나의 것도 너의 것도 아닌 우리의 터전이었다. 전작 ‘대항해시대’(서울대출판부)에서 15세기 해양 세계사를 다룬 저자는 신간에서 선사시대부터 오늘에 이르는 인류사를 바다 관점에서 풀어냈다. 저자는 “근대에 이르러 서구인들은 마치 자신들이 최초로 발견한 듯 바다를 소유로 삼으려고 했지만 바다는 먼 과거부터 많은 사람들의 삶이 펼쳐진 공간이었다”고 말한다. 예부터 바다는 문명을 이어주는 통로였다. 기원전 3세기 인더스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해상무역을 통해 긴밀히 교류했다. 인더스 문명에서는 규질암으로 0.86g과 13.7g 단위의 추를 만들었는데, 똑같은 추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도 발견됐다. 같은 도량형을 쓴다는 건 두 문명의 사회경제 체제가 서로 연결됐다는 증거. 아프리카 악기 실로폰이 동남아시아로 흘러가고, 인도네시아 악기 치터가 아프리카로 전해진 것도 바다를 통해서였다. 세계사의 결정적인 순간도 바다에서 비롯됐다. 기원전 8세기 이탈리아 반도의 작은 도시국가였던 로마가 지중해를 장악하지 않았다면 제국으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했다. 15세기 초 정화 함대가 인도양을 항해한 후 중국이 해양에서 손을 뗄 무렵, 유럽 열강들은 바다 건너 대륙으로 뻗어나갔다. 저자는 유럽이 해양 패권을 손에 쥔 15세기가 서구 중심의 근대로 바뀌는 전환점이 됐다고 말한다. 대항해시대 바다는 ‘제국의 것’이 된다. 대영제국은 바다 건너 도착한 아메리카 대륙과 이곳에 살던 원주민마저 자신들의 것이라고 여겼다. 세계가 바닷길로 연결됐지만 오히려 지구는 제국과 식민지의 경계선으로 나뉘었다. 1870년대 개발된 증기선은 범선으로 나흘이 걸리던 240km의 거리를 32시간으로 단축해 자본주의 세계화의 초석이 됐다. 문명에서 제국으로, 제국에서 자본으로 바다의 주인이 바뀐 역사를 조망하는 저자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바다는 본래 누구의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마치 제 것인 양 바다를 누벼온 인류에게 이제는 바다가 경고를 보내고 있다. 육지의 쓰레기가 바다로 떠밀려와 남한 면적의 15배가 넘는 쓰레기 섬을 이뤘다. 어선들의 남획으로 일부 어종은 멸종 위기에 처했다. 저자는 해저자원 개발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현재와 같은 약탈적 방식이 아니라 해양 환경과 공존하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바다가 강대국 간의 전장이 되는 상태를 피하려면 바다의 역사를 원래대로 복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표지에 큼지막하게 적힌 제목은 ‘바다인류’를 붙여 쓰지 않고, 바다라는 두 글자를 인류보다 위에 뒀다. 바다 위에 인간이 있는 게 아니라 바다라는 거대한 세계 안에 인간이 있음을 나타내는 듯하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성리학의 한계에서 벗어나 서양사상과의 소통을 주장한 연암 박지원(1737∼1805)의 미완성 원고를 분석한 책이 나왔다. 김명호 전 서울대 국문과 교수(69·사진)는 32년 만에 초판을 수정 증보한 ‘열하일기 연구’(돌베개)를 10일 펴냈다. 신간에는 초판에 빠진 연암의 ‘일신수필’ 서문에 대한 분석이 담겼다. 김 명예교수의 1990년 초판본은 연암 연구의 중심을 ‘허생전’ 등 소설에서 열하일기로 옮겼다는 평을 받았다. 1783년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일신수필은 1780년 7월 중국으로 사행길에 오른 연암이 중국 랴오닝(遼寧)성 소흑산에서 산해관에 이르는 9일간의 여정을 기록한 글이다. 연암은 높은 산에 올라 경치를 바라보며 “큰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래의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서문에 썼다. 약 800자로 쓴 이 글에는 “서양인은 거대한 선박을 타고 둥근 지구 저편에서 빙 돌아왔다”는 언급도 있다. 연암은 총 25편의 열하일기 중 13편에 서문을 붙였는데 유일하게 일신수필 서문만 완성하지 못했다. 김 교수는 “연암은 이 글에서 유학은 물론이고 불교와 서학까지 포용하는 논법을 구사했다”며 “비록 미완에 그쳤지만 동서양 사상의 소통을 시도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연암은 일신수필 서문에서 동양사상을 바라보는 서구의 시선을 풀어내는 문장을 끝으로 돌연 글을 멈춘다. 왜 그랬을까. 학계는 정조의 천주교 박해에 따른 부담감 때문으로 보고 있다. 김 교수는 “연암이 서양사상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의견을 계속 개진할 수 있었다면 조선이 근대화의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간송미술관이 2020년 보물 두 점에 이어 최근 국보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癸未銘金銅三尊佛立像)’과 국보 ‘금동삼존불감(佛龕)’을 경매에 내놓기로 하면서 그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보가 미술품 경매 시장에 나온 건 국내에서 처음이다. 문화재보호법상 국보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는 해외로 반출할 수 없고 국내에서만 거래가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국립중앙박물관이 2020년 보물 두 점을 사들였듯이 국보도 구매하는 게 가장 적합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박물관은 예산 부족으로 경매에 선뜻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케이옥션이 27일 열리는 경매에 출품되는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의 추정가는 32억∼45억 원, 금동삼존불감은 28억∼40억 원이다. 두 국보는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재를 사들여 해외 반출을 막았던 간송 전형필 선생(1906∼1962)이 생전 아꼈던 애장품으로도 꼽힌다. 간송미술관은 14일 입장문을 통해 “코로나19 사태로 문화예술계의 활동이 전반적으로 위축되면서 재정적 압박이 커졌고 적절한 활로를 찾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구조조정을 위해 소장품 매각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할 수밖에 없게 돼 송구한 마음이 크다”고 밝혔다. 케이옥션에 따르면 국보 두 점을 합한 거래 시작가는 최소 60억 원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경매 참여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했지만 박물관이 한 해 유물 구입비로 쓸 수 있는 예산은 39억 원에 그친다. 박물관 측은 “경매에 참여하더라도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며 “국보에 책정된 가치가 적정한지,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학계에서는 박물관이 경매에 참여한다면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을 인수하는 데 유물 구입비를 모두 쓸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불입상이 국내에 많이 남아 있지 않아 희소성이 큰 데다 제작 연도까지 기록돼 사료로서의 가치도 있기 때문이다.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에는 계미십일월(癸未十一月)에 제작했다는 명문(銘文·비석이나 기물에 새긴 글)이 새겨져 있어 563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경매 시장에서 문화재는 관리하기가 쉽지 않아 개인이 소장하기 부담스럽고, 국가기관 중에선 국립중앙박물관만큼 유물 구입비를 책정해둔 곳이 없어 시작가가 높게 정해지면 유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 2020년 5월에도 간송미술관이 보물 ‘금동여래입상’과 보물 ‘금동보살입상’을 경매에 출품했지만 응찰자가 없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민간에서는 삼성이 운영하는 호암미술관 외에 불상과 같은 문화재를 소장하는 박물관이 거의 없다”고 했다. 2020년처럼 경매가 유찰된 뒤 간송미술관이 국립중앙박물관과 직접 거래해 적정 가격을 협의할 것이란 예측이 우세하다. 이 경우 경매 수수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돼 박물관도 부담을 줄일 수 있다. 2020년 국립중앙박물관은 금동여래입상, 금동보살입상의 경매 시작가가 각각 15억 원씩 책정되자 적정하지 않다고 보고 경매에 참여하지 않았다. 당시 박물관은 30억 원 미만을 주고 보물 두 점을 인수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1962년 가톨릭 수도사 슈무엘 루페이센은 자신을 “유대인으로 인정해 달라”고 이스라엘 대법원에 청원했다. 폴란드의 유대인 가정에서 나고 자란 그는 자신을 뼛속까지 유대인으로 여겼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와 맞서 싸운 그는 ‘민족의 땅’ 이스라엘에서 여생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종전 후 가톨릭으로 개종한 게 발목을 잡았다. 폴란드 시민권을 포기하고 이스라엘에 온 그에게 대법원은 청원 수용 불가를 통보한다. 어머니가 유대 혈통이거나 자신이 유대교 신자이어야만 유대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저자는 유대 민족의 허상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 판결을 꼽는다. 루페이센은 평생 스스로를 유대인이라고 믿었지만 ‘민족 불명’이라는 신분증을 갖고 살아야 했다. 유대인으로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역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 책에서 자기 민족의 뿌리를 뒤흔드는 도발적 주장을 내놓는다. 유대인이라는 민족 정체성이 역사적으로 조작됐다는 것. 이 책이 나오고 그는 이스라엘 시오니스트의 공격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동료 교수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영국 문학비평가 테리 이글턴이 “가장 용감한 올해의 책”이라고 평한 이유다. 이와 관련해 저자의 가계도 눈길을 끈다. 동유럽계 유대인이 쓰는 이디시어를 사용한 그의 아버지는 민족주의에 비판적인 공산주의자였다. 미국 인류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이 근대 민족의 허구를 밝힌 ‘상상의 공동체’를 1991년 펴낸 후 관련된 비판적 분석이 이뤄졌지만 유대 민족에 대해선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세계 각지를 떠돈 2000년 디아스포라 역사와 나치의 잔혹한 탄압이 맞물려 일종의 성역이 구축됐기 때문이다. 이 서사가 무너지면 유대 민족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와 유대 국가를 세운 명분이 무너질 수 있었다. 그런데도 저자는 용기 있게 유대 민족의 허상을 폭로한다. 19세기 유대 역사학자들의 계보를 정리해 이들이 구약성서에 나오는 신화를 역사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본토에서 추방당한 민족사를 상징하는 기원전 13세기 출애굽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다”고 반박한다. 기원후 1세기 로마제국이 유다 왕국을 점령한 데 이어 7세기 유대인을 강제 이주시킨 역사도 허구라고 주장한다. 이 시기 무슬림이 유대 지역으로 대거 이주해오자 소수파가 된 유대인이 스스로 이슬람교로 개종하거나 다른 땅을 찾아 떠났다는 것이다. 땅을 빼앗긴 민족이라는 장엄한 역사는 애초부터 없었다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저자는 이스라엘 사회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민족을 배척하고 ‘우리들만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유대 민족을 내세운 게 아니냐는 것. 저자는 “이스라엘이 스스로 유대 국가로 여기는 한 이 나라는 민주국가라고 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스라엘에는 전 인구의 75%를 차지하는 유대인을 비롯해 20%의 아랍인, 5%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이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방법은 없을까. 저자는 유대 민족 개념을 해체하는 데 멈추지 않고 유대와 비(非)유대를 아우르는 새로운 미래를 상상한다. 민족이 만들어진 것이라면 지금의 세대가 이스라엘인의 정체성을 새롭게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새해 첫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경계 가자지구에서 폭격이 벌어졌다. 해묵은 민족, 종교 갈등을 넘어 새로운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함께 만들자는 저자의 견해는 세대, 남녀, 빈부갈등 등으로 점철된 모든 나라에도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고통받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보내주신 백신 나눔 기금에 진심 어린 감사를 드립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사진)이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보낸 코로나19 ‘백신 나눔 운동’ 기금에 대해 전한 감사 서한이 10일 공개됐다. 교황은 지난해 12월 23일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같이 밝히며 “베풀어주신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서울대교구 모든 공동체에 영적 친밀감을 전한다”고 전했다. 앞서 같은 달 17일 서울대교구는 백신 나눔 운동으로 모금한 133만5000달러(약 16억 원)를 교황청에 전했다. 교구는 지난해 6월과 10월에도 각각 모금액 100만 달러(약 12억 원)를 보냈다. 교황청에 전해진 기금은 교황자선소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사용할 예정이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아버지는 머리에 흰 끈을 두르고 누워만 계셨어요. 베개 주변에는 늘 아버지가 토해낸 핏자국이 묻어 있었습니다.”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위원(62)이 최근 펴낸 ‘탐욕의 땅, 미쓰비시 사도광산과 조선인 강제동원’(선인)에 담은 강제징용자 고 홍동철 씨 유족의 증언이다. 홍 씨는 1939년부터 4년간 일본 니가타(新瀉)현 사도(佐渡)시 사도광산에 끌려간 뒤 진폐증을 앓아 1965년 45세로 세상을 떠났다. 사도광산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 실태를 다룬 단행본 발간은 처음이다. 지난해 12월 28일 일본 정부는 일제강점기 조선인을 강제 동원한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추천 후보로 선정했다. 정 위원은 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15년 일본 정부는 ‘군함도’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조선인 강제동원 역사를 은폐했다”며 “사도광산도 그 연장선에 있다. 가만히 손놓고 지켜볼 수 없어 흩어진 자료를 모아 책을 냈다”고 밝혔다. 앞서 사도시는 일본 정부에 세계문화유산 추천서를 내면서 사도광산 기간을 에도시대(1603∼1867년)로 한정했다. 조선인 강제동원 역사를 지우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정 위원은 2019년 발표한 사도광산 조사보고서를 통해 광산 내 담배 공급업자와 조선총독부가 각각 작성한 ‘조선인연초배급명부’, ‘지정연령자연명부’를 처음 공개했다. 조선인 징용자의 이름과 생년월일, 근무시기가 적힌 조선인연초배급명부에는 1943∼1945년 강제 동원된 조선인 피해자 463명의 명단이 들어있다. 이는 국무총리실 산하 강제동원피해자조사위원회가 파악한 사도광산 피해자 148명 중 22명의 인적사항과 일치했다. 학계는 사도광산이 일본 정부에 제출한 체불임금 자료를 바탕으로 광복 직전까지 최소 약 1140명의 조선인이 사도광산에 동원됐다고 보고 있다. 정 위원은 “내가 찾은 자료는 극히 일부일 뿐이다. 아직도 찾아야 할 사료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의 범부처 태스크포스(TF)에 조만간 참여할 예정이다. 외교부를 주축으로 행정안전부와 국가기록원, 동북아역사재단이 사도광산의 강제동원 피해 실태를 조사한다. 정 위원은 관련 자료를 찾고 피해자 유족들의 구술기록을 모을 계획이다. 사도광산 피해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 조사 과정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만약 일본 정부가 다음 달 1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하면 내년 중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만큼 시간이 촉박하다는 얘기다. 정 위원은 “일본 정부와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 시작됐다”며 “올해 말까지 조선인 강제동원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연구결과물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인천=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내가 계속 유체역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아니면 바보인지 좀 알려주세요.” 1911년 10월,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지낸 버트런드 러셀의 연구실로 22세의 앳된 공대생이 들이닥쳤다. 러셀은 순간 당황했지만 애잔한 생각이 들었다. 가을학기 내내 자신을 쫓아다닌 학생에게 러셀은 “유체역학을 관두고 내게 배우라”고 권유했다. 학생의 이름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명언을 남긴 불세출의 철학자다. 현대철학의 두 거인을 사제관계로 엮어준 건 철학이나 문학이 아닌 유체역학이었다. 고대 그리스부터 20세기까지 약 2500년에 이르는 과학사의 중심에는 유체역학이 있었다. 저자는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로켓 엔진의 핵심 부품을 개발한 공학자다. 그는 1990년대 학부생 때부터 이 책의 뼈대가 된 글을 써내려갔다고 한다. 전공서에 적힌 수식보다 이를 만들어낸 이들의 삶이 궁금해서였다. 30년간 쌓아온 노력의 결실 덕분일까. 만담꾼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듯 과학사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저자는 “과학의 역사는 곧 유체 소멸의 역사”라고 평하면서도 실패로 끝난 유체역학 실험에 경의를 표한다. 1880년대까지만 해도 유체역학의 과제는 ‘에테르’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었다. 아이작 뉴턴을 비롯한 고전 물리학자들은 빛이 입자로만 이뤄져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이들의 이론에 따르면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 진공에서 입자인 빛은 나아갈 수 없었다. 하지만 빛은 진공의 우주공간에서도 나아간다. 19세기 유체역학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가상의 유체인 에테르 개념을 고안했다. 중력을 전달하는 에테르를 통해 빛이 직진한다는 것. 하지만 20세기 들어 에테르 개념은 불필요해졌다. 빛이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며, 진공에서도 불변의 속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를 실험으로 규명한 물리학자는 유체역학을 전공한 앨버트 마이컬슨이다. 저자는 마이컬슨에게 1907년 노벨 물리학상을 안긴 이 실험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실패”라고 평했다. 비록 에테르를 증명하려던 실험은 실패했지만 양자역학 같은 현대물리학이 싹틀 수 있었다. 유체역학을 둘러싼 담론은 물리학을 넘어 다양한 학문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전자의 이동을 전류(電流)라고 명명한 게 대표적이다. 유체역학을 공부한 비트겐슈타인과 절친했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유체역학의 ‘유동성’ 개념을 경제학에 도입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본래 회전을 뜻하는 레볼루션(revolution)이 혁명을 의미하게 된 것도 유체역학에 밝았던 철학자 볼테르와 몽테스키외가 지동설의 지적 충격을 혁명에 빗댄 데 따른 것이었다. 당대 예술에 끼친 영향도 지대했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 보티첼리는 ‘비너스의 탄생’에서 여신의 머릿결을 유체역학의 핵심 주제인 ‘소용돌이’로 표현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무수히 많은 소용돌이 스케치를 남겼다. 이 책에 나오는 각계 지식인 500여 명은 유체역학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어쩌면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은 지식인들의 교류야말로 우리가 이어가야 할 과학사의 유산 아닐까.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교류’의 단어 뜻에도 ‘근원이 다른 물줄기가 서로 섞여 흐른다’는 유체역학 개념이 담겨 있다.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어로 ‘모든 것은 흐른다’는 뜻을 지닌 책 제목(판타레이)처럼 모든 지식은 흐르기 때문이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하정이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습니다. 저 역시 현장에서 막노동하며 살고 있지만… 어떻게 자기 빚도 아닌 엄마의 빚 5000만 원을 물려받은 아이를 모른 척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2시경 동아일보 독자센터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경기 시흥시에 사는 방왕수 씨(61)는 이날 본보에 실린 ‘빚더미 벗어난 아이들’ 기사를 보고 용기 내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하정이(가명·9)는 3년 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생활고에 시달리던 어머니가 생전 대부업체 8곳에서 빌려 쓴 빚 5000만 원을 물려받았다. 방 씨는 “아이를 지켜주지 못한 것이 어른의 잘못인 만큼, 돕는 것은 어른의 책임 아니겠느냐”며 “저 역시 상황이 여의치 않아 큰 도움은 줄 수 없지만 하정이가 살아가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필요한 물품을 주고 싶다”고 했다. 이 같은 소식을 전해들은 하정이의 변호인 측은 “따뜻한 관심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빚더미 아이들’ 기사를 보고 발 벗고 나선 어른들은 또 있었다. 본보 보도 후 사흘 만에 미성년 빚 대물림 방지제도를 운영하는 대한법률구조공단(구조공단)에는 총 3건, 모두 5명의 아이를 빚에서 구제해 달라는 요청서가 접수됐다. 눈 밝은 지방자치단체 담당자들이 자기 일처럼 챙기고 나선 것이다. 각계각층의 관심도 이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보도 당일 내부 회의에서 동아일보 기사가 비중 있게 보고됐다”고 전했다. 지난해 10월 빚 대물림 방지대책을 지시했던 문재인 대통령도 보고를 주의 깊게 들었다고 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을 맡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실에서도 보도 당일 본보에 “우리가 어떤 법을 만들 수 있겠느냐”고 문의해 왔다. 서 의원실 관계자는 “관련 민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라니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약속했다. 시민들도 국회에 관련 법 처리를 촉구했다. 동아일보 온라인 기사에는 “미성년 빚 상속은 악법 중에 악법”이라며 “하루빨리 법을 손봐야 한다”는 댓글이 쏟아졌다.시민들 “어른 잘못으로 아이 빚더미… 돕고 싶어”, 국회선 “빚 대물림 방지법 통과에 힘 보태겠다” 최근 5년 파산신청 미성년자 80명… “성인돼 결정할 수 있게 법 바꿔야” 지방자치단체에도 빚더미 아이들을 구제해 달라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29일 오전 11시경 경북 영천시 동부동 행정복지센터에는 한 40대 남성이 방문해 조카를 도울 방법을 물었다. 이 남성의 조카는 어릴 적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함께 살던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며 부모가 남긴 빚 수천만 원을 떠안은 상황이었다. 그는 복지센터 담당자에게 “그동안 방법을 몰라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며 “기사를 보고 조카를 도울 방법이 있을 것 같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센터를 찾았다”고 했다. 민원을 접수한 오혜림 주무관(31)은 “미성년 빚 대물림 방지제도가 시행된 줄 모르고 있었는데 마침 이날 오전 동아일보 기사를 보고 민원인을 도울 수 있었다”며 “신청 서류를 안내했고 조만간 서류가 접수되면 구조공단을 통해 상속 포기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오 주무관은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사례를 발굴해 어린아이들이 빚을 물려받지 않도록 돕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미성년 80명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빚을 제때 처리하지 못해 개인파산을 신청했다. 한 해 많게는 21명, 적게는 2명씩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신용불량자가 된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와 구조공단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미성년자가 재산보다 많은 채무를 물려받지 않도록 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시행 중인 대책은 현행법에 따라 3개월 이내에 상속 포기를 하도록 하는 내용이라, 시기를 놓친 하정이와 같은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미 프랑스와 독일 등에서 빚 대물림을 막는 법을 만들어 시행 중이다. 지난해 5월 본보가 ‘빚더미 물려받은 아이들’ 기획보도를 게재한 것을 전후(지난해 5∼7월)해 미성년자가 원천적으로 상속 재산보다 큰 빚을 물려받지 않도록 하거나, 성년이 된 뒤부터 특별한정승인 신청 가능 기간을 계산하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은 민법 개정안 4건이 발의됐다. 하지만 제대로 된 논의 한번 없이 반년이나 국회에 계류 중이다. 새해에도 20대 대통령 선거(3월 9일)를 앞둔 여야가 정쟁에만 몰두할 경우 빚더미 아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법안이 기약 없이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상훈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장(변호사)은 “최소한 미성년자가 성인이 된 뒤 상속 포기나 한정승인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한 차례 기회를 더 주는 방향의 법 개정이 신속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석 달 새 부모를 연이어 잃고도 ‘혼자서 잘 살아보겠다’고 하더군요.” 경기 시흥시 연성동 행정복지센터 신미숙 복지팀장은 박재민(가명·17) 군과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재민이는 올 7월 간암 투병 중이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10월 어머니마저 숨지며 혼자가 됐다. 남은 건 부모님의 빚뿐이었다. 수년간 병원에서 지냈던 아버지는 개인회생 후 매달 18만 원씩 갚고 있었다. 어머니는 금리 연 10%의 카드론 450만 원을 남겼다. 재민이 통장으로 매달 기초생활 생계급여 55만 원이 들어오면 부채 상환 원금과 이자로 40여만 원이 빠져나갔다. 남은 돈으로는 먹거리를 사기도 어려웠다. 재민이 혼자 힘으로 빚을 처리할 수도 없었다. 민법상 친척 등이 친권자로 지정된 뒤 재민이를 대리해 채무 상속 포기 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재민이는 그런 법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런 재민이에게 최근 희망이 생겼다. 본보가 올 5월 ‘빚더미 물려받은 아이들’ 시리즈를 통해 빚의 대물림에 고통받는 아이들의 사연과 법의 허점을 지적한 뒤 정부가 ‘미성년 빚 대물림 방지 대책’을 내놨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달 1일부터 부모 등 친권자가 사망하면 지방자치단체와 대한법률구조공단(구조공단)이 미성년자 유족의 채무 상속 포기를 일괄 지원하는 제도가 시행됐다. 재민이를 만난 후 신 팀장은 6일 구조공단으로 ‘위기아동 법률구조 요청서’를 보냈고, 구조공단은 최근 이모를 후견인으로 지정해 상속 포기 절차를 밟고 있다. 신 팀장은 “어떻게든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려는 재민이에게 (우리 사회가) 적어도 빚부터 물려주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구조공단에 따르면 대책 시행 이후 채 한 달이 안 된 28일까지 10명의 아이가 이 제도를 통해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별도의 상속 포기 절차 없이도 미성년자가 재산보다 많은 빚을 물려받지 않도록 민법 개정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프랑스와 독일 등이 이미 유사한 법을 시행 중이다. 본보 보도 전후로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백혜련 의원 등이 민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제대로 된 논의 한번 없이 반년 넘게 국회에 계류 중이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석 달 새 부모를 연이어 잃고도 ‘혼자서 잘 살아보겠다’고 하더군요.” 경기 시흥시 연성동 행정복지센터 신미숙 복지팀장은 박재민(가명·17) 군과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재민이는 올 7월 간암 투병 중이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10월 어머니마저 숨지며 혼자가 됐다. 남은 건 부모님의 빚뿐이었다. 수년간 병원에서 지냈던 아버지는 개인회생 후 매달 18만 원씩 갚고 있었다. 어머니는 금리 연 10%의 카드론 450만 원을 남겼다. 재민이 통장으로 매달 기초생활 생계급여 55만 원이 들어오면 부채 상환 원금과 이자로 40여만 원이 빠져나갔다. 남은 돈으로는 먹거리를 사기도 어려웠다. 재민이 혼자 힘으로 빚을 처리할 수도 없었다. 민법상 친척 등이 친권자로 지정된 뒤 재민이를 대리해 채무 상속 포기 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재민이는 그런 법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런 재민이에게 최근 희망이 생겼다. 본보가 올 5월 ‘빚더미 물려받은 아이들’ 시리즈를 통해 빚의 대물림에 고통받는 아이들의 사연과 법의 허점을 지적한 뒤 정부가 ‘미성년 빚 대물림 방지 대책’을 내놨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달 1일부터 부모 등 친권자가 사망하면 지방자치단체와 대한법률구조공단(구조공단)이 미성년자 유족의 채무 상속 포기를 일괄 지원하는 제도가 시행됐다. 재민이를 만난 후 신 팀장은 6일 구조공단으로 ‘위기아동 법률구조 요청서’를 보냈고, 구조공단은 최근 이모를 후견인으로 지정해 상속 포기 절차를 밟고 있다. 신 팀장은 “어떻게든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려는 재민이에게 (우리 사회가) 적어도 빚부터 물려주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구조공단에 따르면 대책 시행 이후 채 한 달이 안 된 28일까지 10명의 아이가 이 제도를 통해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별도의 상속 포기 절차 없이도 미성년자가 재산보다 많은 빚을 물려받지 않도록 민법 개정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프랑스와 독일 등이 이미 유사한 법을 시행 중이다. 본보 보도 전후로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백혜련 의원 등이 민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제대로 된 논의 한번 없이 반년 넘게 국회에 계류 중이다.재산보다 많은 빚 떠안게된 미성년, 복지센터 직원이 법률구조 요청구조공단, 상속포기 절차 등 지원…전국 곳곳서 지원 요청서 보내와“복지 담당자가 선제적 발굴해 빚더미 안고 사회 첫발 막아야”부산에 사는 A 군(16)은 올 9월 아버지를 여의었다. 어머니는 어릴 적 세상을 떠났다. 부모를 잃은 A 군에게 남겨진 것은 아버지가 남긴 재산보다 많은 빚이었다. 자칫 빚을 고스란히 떠안게 될 뻔한 A 군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부산지역 복지센터의 한 직원이었다. 법무부,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가 연계한 ‘미성년 빚 대물림 방지대책’이 이달 1일 시행됐다. 부산 복지센터의 이 직원은 대책이 시행된다는 교육을 지난달 30일 대한법률구조공단(구조공단)에서 받다가 A 군의 사정을 떠올렸다. 이 직원은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나고 남겨진 아이의 이름 석 자가 뇌리에 계속 박혀 있었다”면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빚까지 물려받은 아이라 더욱 기억에 남았다”고 말했다. 직원은 다음 날 A 군의 고모를 통해 ‘정확한 부채 규모는 모르지만 A 군의 아버지가 재산보다 많은 빚을 남겼다’는 말을 듣고 곧장 경북 김천시에 있는 구조공단 본부에 ‘위기아동 법률구조 요청서’를 보냈다. 요청서는 이달 2일 도착했다. 대책 시행 하루 만이다. 구조공단은 A 군의 고모를 법정 후견인으로 신청한 뒤 상속재산 조회부터 상속 포기 절차까지 일괄 지원하고 있다. 구조공단에 따르면 대책 시행 이후 전국 곳곳에서 법률 지원 신청서가 도착했다. 그 결과 이달 28일까지 10명의 아이가 이 제도를 통해 빚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생후 6개월 된 갓난아기부터 18세 청소년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구조공단 내부에서도 “부모 등 친권자가 죽고 빚부터 물려받는 아이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는 반응이 나왔다.○ “복지 담당자가 선제적 발굴해야”법무부는 이달 1일 ‘미성년 빚 대물림 방지대책’을 발표하면서 친권자가 세상을 떠나고 미성년자만 남은 경우뿐 아니라 유족 가운데 친권자가 있더라도 별거 등의 사유로 법률 대리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적극 법률 지원에 나서달라고 지자체 등에 권고했다. 지난달 25일 세상을 떠난 아버지로부터 수천만 원에 이르는 빚을 물려받은 B 양(2)도 지자체 담당자의 적극적인 노력 덕분에 채무의 대물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B 양에겐 상속 포기 등 법적 절차를 밟아줄 어머니가 있었지만 중국 출신으로 우리말이 서툴고 법 절차를 잘 몰랐다. 지난달 말 B 양의 어머니로부터 남편의 사망신고 서류를 접수한 제주시 한 주민센터의 정모 주무관은 제도 시행 하루 만인 2일 구조공단에 B 양의 구조 요청서를 제출했다. 정 주무관은 “외국인 어머니가 한국에서 법률적 행위를 하기 쉽지 않고, 한국어마저 서툴러 즉시 개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공단의 위승용 변호사는 “지금으로서는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자치단체 복지 담당자가 부모 등 친권자가 사망한 미성년 가정에 적극 개입해 사례를 발굴해야 ‘빚의 대물림’을 끊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모가 남긴 재산 없다면 법률 지원 신청”이달 13일 구조공단에는 태어난 지 6개월이 갓 넘은 C 양의 ‘법률구조 요청서’가 들어왔다. 홀로 아이를 키우던 어머니가 지난달 세상을 떠난 뒤 복지시설에 맡겨진 아이였다. 친권자가 없다 보니 어머니가 남긴 재산과 빚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되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 아이의 사례를 관리하는 대전지역의 한 복지 담당자는 “상속재산을 조회해 부채 규모를 파악하는 등 법률 지원이 필요하다”고 구조공단에 도움을 요청했다. 구조공단은 “구체적인 부채 규모를 알지 못하더라도 아이가 친권자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없다고 판단되면 대체로 빚이 더 많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우선 구조공단에 법률 지원 신청을 하길 바란다”고 답했다. 위 변호사는 “부모의 빚을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하지 못하면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부채가 불어날 수 있다”며 “우리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아이들이 빚을 떠안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유채연 기자 ycy@donga.com}
미성년 70명을 성 착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찬욱(26)에게 징역 12년이 선고됐다. 23일 대전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박헌행)는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최찬욱에게 이같이 선고했다. 또 신상정보 공개 10년, 아동·청소년·장애인 관련 기관 취업 제한 10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10년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성 착취는 신체·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아동·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엄정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최찬욱은 2014년부터 올 4월까지 30개에 이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이용해 남아 70명에게 성 착취 영상을 전송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6·25전쟁 민간인 학살피해 유족들에게 접근해 배상금 청구소송을 도와주겠다며 수수료 명목으로 돈을 받으려 한 60대 남성 A 씨가 내사(입건 전 조사)를 받고 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3일 “올 8월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A 씨를 수사해달라고 경찰에 의뢰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A 씨와 유족들, 진실화해위를 대상으로 사실 관계를 조사 중이다. 경찰 등에 따르면 자신을 전남지역 6·25전쟁 민간인 학살피해 유족회장이라고 주장하는 A 씨는 올해 초부터 8월까지 유족들에게 “나를 통해 진실 규명을 신청하라”며 유족회 가입을 권하고 회비 명목의 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유족 등에게 “진실 규명을 신청하면서 추후 국가를 상대로 배상금 청구소송도 진행할 수 있다”며 로펌을 알선하려 한 것으로 전해졌다. 변호사 신분이 아닌데도 수수료 등을 받을 것을 약속하고 법률사무를 하는 행위는 변호사법 위반에 해당한다. 진실화해위는 “진실 규명 신청서를 검토하고 신청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A 씨에 대한 범죄사실을 알게 됐다”며 “A 씨의 행위는 피해자와 유족들의 억울함과 간절함을 이용해 자신의 영리를 취하고자 한 불법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A 씨는 유족회 운영을 위한 활동비 명목으로 가입비를 받은 것일 뿐 진실규명 신청에 대한 수수료를 받은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는 ‘누구든지 피해자 또는 유족을 지원한다는 명목 아래 영리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하거나 개인 활동을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정부와 싸우자는 게 아니에요. 자영업자의 현실도 한번 들여다봐 달라는 겁니다.” 인천 계양구에서 PC방을 운영하는 권모 씨(46)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권 씨는 “영업시간이 제한되면서 PC방처럼 24시간 운영해 오던 업종은 매출액이 80% 넘게 줄었다”면서 “당장 한 달 임차료도 감당하기 힘든데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며 울부짖었다. 22일 오후 3시경 서울 종로구 광화문시민열린마당에서 열린 ‘전국 소상공인·자영업자 총궐기 집회’에는 권 씨처럼 정부의 거리 두기 방침에 반발한 자영업자들이 생업을 접어두고 거리로 나왔다.○ “왜 자영업자만 손해 봐야 하나요”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1시간 40분 동안 영업제한 등 정부의 거리 두기 방침 철폐를 촉구했다. 이들은 ‘왜 자영업자만 멈춤인가’ ‘협조하면 빛 볼 줄 알았거늘 어찌 빚만 보이는가’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일률적인 영업제한 철폐하고 손실보상 보장하라”고 소리쳤다. 전국에서 모인 자영업자는 400여 명. 현행 거리 두기 방침에서 허용 가능한 인원(299명)을 넘어서면서 한때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 사이에서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비대위 측은 임시 출입구를 마련해 참가자 명단을 작성하고 초과한 인원에 대해선 현장 출입을 통제했다. 하지만 집회 현장에 들어가지 못한 자영업자 100여 명은 경찰 통제선 밖에서 “자영업자 죽이는 방역을 중단하라”며 함께 구호를 외쳤다. 충북 청주에서 맥줏집을 운영하는 김응패 씨(51)도 경찰 통제선 너머에서 집회에 동참했다. 김 씨는 “어젯밤 오후 9시까지 혼자 장사한 뒤 잠 한숨 못 자고 나왔다”며 “밤에 장사하는 업종에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건 문 닫으라는 소리”라고 토로했다. 일부 자영업자는 집회 현장 출입을 가로막는 경찰을 향해 “다 비켜라. 억울해서 가게 문까지 닫고 온 사람들”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곳곳에서 경찰과 옥신각신하기도 했지만 큰 충돌은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일부 참가자들이 펜스 밖에서 경찰에게 항의는 했지만 대부분은 명부를 작성하고 방역수칙을 준수했다”고 설명했다. 맥줏집을 운영하는 문영태 씨(43·서울 영등포구)도 “6개월째 밀린 임차료만 1500만 원”이라며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직원도 전부 내보내고 대출까지 수천만 원 받았지만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며 울분을 토로했다.○ 곳곳서 ‘방역 불복’ 움직임 같은 날 인천 연수구 송도유원지에 있는 한 카페. 입구에 붙어 있던 ‘24시간 정상 영업’이라고 적힌 안내문이 떼어져 있었다. 앞서 연수구는 이 카페 본점과 지점 2곳을 ‘영업시간 제한 등 방역지침을 지키지 않았다’며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결국 카페는 24시간 영업을 포기했다. 직원 A 씨는 “경찰이 카페에 찾아와 손님을 내보내고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였다”면서 “구청에서 고발까지 하는데 어쩔 수 있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치단체마다 ‘방역지침을 지키지 않으면 강경 대응하겠다’고 했지만 방역 불복 움직임은 전국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한국외식업중앙회 등 6개 소상공인단체가 포함된 코로나피해자영업총연합 측은 27, 28일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간판 불을 끄는 단체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민상헌 대표는 “영업시간 제한에 항의 표시로 업소 100만여 곳이 단체행동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싸우자는 게 아녜요. 자영업자의 현실도 한번 들여다 봐달라는 겁니다.” 인천 계양구에서 PC방을 운영하는 권모 씨(46)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권 씨는 “영업시간이 제한되면서 PC방처럼 24시간을 운영해오던 업종은 매출액이 80% 넘게 줄었다”며 “임대료도 감당하기 힘들다.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 없다”며 불만을 터트렸다. 22일 오후 3시경 서울 종로구 광화문 거리에서 ‘전국 소상공인·자영업자 총궐기 집회’에는 권 씨처럼 정부의 거리두기 방침에 반발한 자영업자들이 생업을 접어두고 거리로 몰려나왔다.● “왜 자영업자만 손해를 봐야 하나요”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1시간 40분 동안 영업제한 등 정부의 거리두기 방침 철폐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그들의 손에는 ‘왜 자영업자만 멈춤인가’ ‘방역 협조하면 빛 볼 줄 알았거늘 어찌 빚만 보이는가’라고 적힌 손팻말을 손에 들고 “일률적인 영업제한 철폐하고 손실보상 보장하라”고 소리쳤다. 집회에 모인 자영업자는 400여 명. 현행 거리두기 방침에서 허용 가능한 인원(299명)을 넘어서면서 한때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 사이에 충돌이 일기도 했다. 비대위 측은 광장 주변에 임시 출입구를 마련해 참가자 명단을 작성하고 초과한 인원에 대해선 현장 출입을 통제했다. 자영업자 100여 명은 경찰 통제선 밖에서 “자영업자 죽이는 방역을 중단하라”며 함께 구호를 외쳤다. 충북 청주에서 맥줏집을 하는 김응패 씨(51)도 경찰 통제선 너머에서 집회에 동참했다. 김 씨는 “어젯밤 9시까지 혼자 장사를 한 뒤 잠 한숨 제대로 못 자고 집회에 나왔다”며 “밤 장사하는 업종에 시간을 제한하는 건 문 닫으라는 소리”라며 토로했다. 일부 자영업자들은 집회 현장 출입을 가로막는 경찰을 향해 “다 비켜라. 억울해서 가게 문까지 닫고 온 사람들”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곳곳에서 경찰과 충돌은 있었지만 집회는 큰 마찰 없DLL 진행됐다. 경찰 관계자는 “일부 참가자들이 경찰 펜스 밖에서 충돌을 빚기도 했지만 집회 참가자 대부분이 명부를 작성하고 방역수칙을 준수했다”고 설명했다.● 곳곳서 ‘방역 불복’ 움직임 같은 날 인천 연수구 송도유원지에 있는 한 카페. 입구에 붙어 있던 ‘24시간 정상 영업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떼어져 있었다. 앞서 연수구청은 이 카페 본점과 지점 2곳을 ‘영업시간 제한 등 방역지침을 지키지 않았다’며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결국 카페는 24시간 영업을 포기했다. 직원 A 씨는 “18, 19일 이틀간 24시간 영업을 했는데 경찰이 카페에 찾아와 손님들을 내보내고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였다”며 “구청에서 고발까지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정부의 방침을 따르기로 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치단체마다 ‘방역지침을 지키지 않으면 강경 대응하겠다’고 했지만 방역 불복 움직임은 전국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한국외식업중앙회 등 6개 소상공인단체가 포함된 코로나피해자영업총연합 측은 27, 28일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간판 불을 끄는 단체행동을 나서기로 했다. 민상헌 코로나피해자영업총연합 대표는 “영업시간 제한에 대한 항의 표시로 업소 100만여 곳이 단체행동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신입사원 최종 면접에서 여성 지원자에게 “결혼 후 육아를 담당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물은 면접위원에 대해 “면접점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성차별 행위”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지난해 경남개발공사 행정직 신입사원 최종 면접에서 성차별적 질문을 한 면접위원과 인사 책임자 등을 대상으로 인권교육을 실시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해 시행하라고 권고했다”고 21일 밝혔다. 인권위에 따르면 당시 면접 전형에 참여한 한 면접관은 여성 지원자인 A 씨에게 “여성들이 직장에서 가정 일 때문에 업무를 못하는데 결혼해서 육아를 담당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물었다. 이후 최종 면접에서 탈락한 A 씨는 해당 질문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 조사에서 해당 질문을 한 면접위원은 “가정과 직장 생활을 동시에 하다 보면 생기는 애로사항에 대해 질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성차별 발언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해당 질문은 여성이 결혼할 경우 야근이나 업무 몰입에 있어 남성에 비해 불리할 거라고 전제하고 있으며 여성을 가족 내 돌봄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주체로 가정하는 가부장적 여성관에서 비롯됐다”며 “면접위원이란 지위에서 이런 발언을 할 때 여성의 사회적 참여를 위축시킬 수 있고 다른 면접위원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남개발공사 측은 이에 대해 “면접에서 성차별 발언을 한 면접위원을 정규직 신입사원 채용 면접위원에서 배제했으며 앞으로 면접위원을 대상으로 사전교육을 철저히 실시해 차별 발언을 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경남개발공사는 지난해 행정·기술직 7급 신입사원 10명을 모집했으며, A 씨가 지원한 행정직 최종 면접에는 여성 4명과 남성 8명 등 모두 12명이 올라왔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신입사원 최종면접에서 여성 지원자에게 “결혼 후 육아를 담당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물은 면접위원에 대해 “면접점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성차별 행위”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지난해 경남개발공사 행정직 신입사원 최종면접에서 성차별적 질문을 한 면접위원과 인사 책임자 등을 대상으로 인권교육을 실시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해 시행하라고 권고했다”고 21일 밝혔다. 인권위에 따르면 당시 면접 전형에 참여한 한 면접관은 여성 지원자인 A 씨에게 “여성들이 직장에서 가정 일 때문에 업무를 못하는데 결혼해서 육아를 담당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물었다. 이후 최종면접에서 탈락한 A 씨는 해당 질문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 조사에서 해당 질문을 한 면접위원은 “가정과 직장 생활을 동시에 하다보면 생기는 애로사항에 대해 질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성차별 발언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해당 질문은 여성이 결혼할 경우 야근이나 업무 몰입에 있어 남성에 비해 불리할 거라고 전제하고 있으며 여성이 가족 내 돌봄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주체로 가정하는 가부장적 여성관에서 비롯됐다”며 “면접 위원이란 지위에서 이런 발언을 할 때 여성의 사회적 참여를 위축시킬 수 있고 다른 면접위원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남개발공사 측은 이에 대해 “면접에서 성차별 발언을 한 면접위원을 정규직 신입사원 채용 면접 위원에서 배제했으며 앞으로 면접위원을 대상으로 사전 교육을 철저히 실시해 차별 발언을 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경남개발공사는 지난해 행정·기술직 7급 신입사원 10명을 모집했으며, A 씨가 지원한 행정직 최종 면접에는 여성 4명과 남성 8명 등 모두 12명이 올라왔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정부의 강도 높은 거리 두기 방침에 반발한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2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에서 ‘방역 불복’ 집회를 강행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영화업계와 소상공인단체도 정부의 방역대책을 규탄하는 단체행동을 예고했다. 경찰은 “자영업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굉장히 어렵지만 방역이라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원칙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비대위는 22일 오후 3시경 종로구 광화문시민열린마당에서 299명이 모이는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했다.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에 따라 18일 0시부터 내달 2일까지 299명까지 시위 참여가 가능하다. 조지현 대표는 “자영업자에게만 방역 희생을 전가하는 정부의 거리 두기 방침을 더는 따르지 않겠다”며 “생업을 잠시 접어두고서라도 집회에 나와 자영업자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알릴 것”이라고 했다. 영화업계에서도 정부의 방역대책에 반발하며 집회를 예고했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상영관협회 등은 21일 오전 10시경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49명이 모여 집회를 열겠다고 예고했다. 이들은 “영업시간 제한은 영화관만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계 전체로 피해가 확산될 수 있다”며 “영화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해 달라”고 촉구할 예정이다. 한국외식업중앙회 등 6개 소상공인단체가 포함된 코로나피해자영업총연합 측은 27, 28일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간판 불을 끄는 단체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민상헌 대표는 “영업시간 제한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전국 100만여 업소에서 단체행동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했다. 최관호 서울경찰청장은 20일 기자간담회에서 “299명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주동자 사법 처리가 불가피하다. 방역수칙 위반 사안에 대해서는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이소연기자 always99@donga.com}
경기 파주시의 한 연립주택에 불이 나 110세 어머니와 70대 딸 부부 등 일가족 3명이 목숨을 잃었다. 19일 파주소방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6분경 파주시 탄현면에 있는 3층짜리 연립주택 3층에서 불이 났다. 이 화재로 집에 있던 A 씨와 A 씨의 딸(70), 사위(73)가 의식을 잃은 채로 발견돼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소방당국은 “‘펑펑’ 터지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치솟았다”는 옆집 주민의 119신고를 받고 10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소방대원들이 불이 난 집 현관문을 강제로 열고 집 안으로 진입했을 당시 3명 모두 중문 앞에 쓰러져 있었다. 소방 관계자는 “불길을 피해 탈출을 시도하려다가 닫힌 문을 열지 못하고 중문 앞에서 쓰러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소방당국은 인력 34명과 장비 13대를 투입해 불이 난 지 40여 분 만인 오전 7시 50분경 완전히 불을 껐다. 불이 난 집에는 스프링클러가 없어 피해를 키웠던 것으로 조사됐다. 2005년부터 11층 이상 아파트에는 스프링클러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법이 바뀌었지만 이 연립주택은 1998년 지어진 데다 층수 기준에도 못 미쳐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이 아니다. 소방당국 등은 몸이 불편한 고령자만 집에 살고 있어 인명 피해가 컸던 것으로 보고 있다. 가족 중 나이가 가장 많은 A 씨는 경증 치매를 앓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당국과 경찰은 A 씨의 의료용 침대 바퀴에 전기장판의 전선이 끊어지면서 불이 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파주=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