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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미국 뉴욕 시가 면책특권을 이용해 주차 위반을 일삼는 외교관 차량을 단속한 적이 있다. 이집트 파키스탄 나이지리아처럼 부패지수가 높은 나라일수록 적발도 많이 되고 벌금도 안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관 역시 자기 나라의 풍토와 규범, 부패성향까지 온몸으로 반영한다”고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저서 ‘사회적 동물’에서 분석했다. 중국 상하이 주재 한국총영사관의 스캔들은 2011년 대한민국 외교 막후의 추한 모습을 드러냈다. 정부는 여러 재외공관장을 ‘측근 인사’ ‘보은 인사’로 임명해 이런 사태를 증폭시켰다. 이들이 현지 외교관들의 근무 기강을 바로 세우고 부적격자를 걸러낼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현 정부 출범 때부터 말썽이 끊이지 않았던 인사 문제가 해외에서 국가 망신을 부채질한 꼴이다. 정부가 지난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잔치 외교’ ‘행사 외교’에 치중하는 동안 속으로는 곪아 터져버린 형국이다. 외무고시로 뽑힌 외교관들은 기수에 따라 자동으로 진급해 공관장으로 나가는 것을 당연시하는 특권의식에 젖어 있다. 국가를 대표하고 교민을 보호하는 공복(公僕)이 아니라 상사 주재원과 교민 위에 군림하며 외교보다 내교(內交)에 힘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주재국 행사에 참여하기보다는 한국에서 오는 국회의원이나 고위 관리를 접대하고 인사 로비, 예산 로비에 바쁘다. 그동안 드러난 외교관 비리도 가지가지다. 대사관저에서 만찬을 하면서 참석자 수를 부풀려 공금을 챙기는 공관장도 있었고 출장 기간을 거짓으로 늘려 공금을 착복한 외교관이 적발됐다. 브로커에게 뇌물을 받고 ‘비자 장사’를 하는 외교관, 주택이나 자동차 구입 서류를 조작해 공금을 타내는 외교관, 관용 차량을 개인 차량으로 이용한 외교관도 있었다. 이들을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 외교관의 일탈과 무사안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외교통상부는 이번과 같은 사태를 감추기에 급급하거나 방임해 왔다. 재외공관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강력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국회 외교통상위원회는 국정감사 때마다 몇 개 그룹으로 나눠 4, 5개국씩 순방하지만 현안을 잘 알지 못해 현지 대사의 초청 만찬을 가장 큰 일정으로 삼을 정도다. 유럽공관 감사 때는 꼭 파리를 들르고, 동유럽권 국가 하나와 러시아를 포함해 해외 관광 목적이 아니냐는 비판을 듣고 있다. 항공기의 비즈니스석 이상을 이용하는 건 물론이다. 이 의원들이 재외공관을 감독하는 데 얼마나 힘을 보탰는지 묻고 싶다. 중국이 미국과 ‘평기평좌(平起平坐·서로 대등한 관계)’를 주장하고 북한의 김정일은 막바지 세습공작을 서두르는 지금, 대한민국의 외교 무대는 전쟁터나 다름없다. 지난해 유명환 외교부 장관 딸의 특별채용 의혹이 터지면서 외교부는 인사와 평가, 배치 등에서 대대적 개혁을 공언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외교관 채용과 양성을 포함한 개혁은 용두사미가 되고 있다. 각종 비리에 연루되고 귀국 후 자리 챙기기에 급급한 외교관들로는 대한민국의 생존이 위험해질 수 있다. 개혁은커녕 국익을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도, 공직자로서의 자존심도 없는 ‘바람난 외교’가 국민을 수치스럽게 만들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법적 근거 없이 예산을 출연해 장학재단을 만들어 사금고(私金庫)의 쌈짓돈처럼 쓴 사실이 드러났다. 감사원이 검찰 수사를 요청한 전남 강진군은 강진군민장학재단을 세우면서 2005∼2009년 공사·용역·물품 계약을 맺은 324개 업체에서 14억 원을 거뒀다. 강진군수는 공무원들을 내보내 업체가 계약을 대가로 기부금품을 내도록 독려했다고 감사원이 밝혔다. 이 장학재단의 돈은 교사수당과 해외연수비 등으로 엉뚱하게 집행됐다. 감사원이 조사한 전국 145개 지자체의 장학재단도 강진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선 지자체장들이 경쟁적으로 장학재단을 세워 운영한 것은 다음 선거를 의식한 선심 행정 성격이 짙다. 지자체 장학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은 학생의 부모들이나 특별 수당을 받은 교사들은 현직 시장 군수 구청장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현직 프리미엄을 이용한 사실상 선거운동에 해당한다. 이런 돈이면 지자체장의 빛이 나지는 않겠지만 관내 공교육을 강화하는 데 쓰는 것이 훨씬 값지다. 최근 지방재정 건전성이 악화돼 경북 예천군 등 12개 지자체는 자체 수입으로 공무원 인건비조차 주지 못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전국 지자체의 장학재단 출연금 규모는 2005년 289억 원에서 2007년 633억 원, 2009년엔 1307억 원으로 증가했다. 업체들이 공사비에서 생돈을 떼어내 바쳤으니 관급 공사가 부실해지지 않았는지 걱정이다. 지자체장은 기금 조달을 위해 지방공무원들을 수족처럼 부렸다. 심지어 승진 대가로 장학재단에 기부금을 내도록 한 지자체도 있다. 지자체장이 공무원과 업체들의 손목을 비틀어 장학재단을 세웠더라도 가난한 집안의 학생들을 도왔다면 비난받을 소지가 다소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장학금이 도의원 자녀들에게 배정되고 도의원 해외 유람 비용으로 쓰였다니 배신감마저 느낀다. 광주 북구에선 구의회 의장, 전 부구청장 자녀를 장학생으로 뽑았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짓이다. 전라북도인재육성재단에선 장학재단 기금으로 도의회 의원 3명을 캐나다로 보내 유람을 시켰다. 장학재단이라는 ‘세탁소’를 거쳤을 뿐 결국 지방공직자들이 업자들의 돈을 받아 놀러 다닌 것과 마찬가지다.}

“학생들이 휴대전화로 제일 하기 싫어하는 게 뭔지 아느냐”고 한 교수가 물었다. 정답은 ‘통화하기’다. 대학생들이 리포트 제출 날짜를 늦춰달라거나 추천서를 써달라고 종종 문자를 보내오는데 그때 전화기에 찍힌 번호를 냅다 눌러 “나 아무개 교순데…” 하면 그들은 질색을 한다는 거다. “왜 전화를 하세요. 그냥 문자로 하시지!” 교수가 학생이었던 시절엔 교수실에 불려가 차 한잔 얻어 마시면 영광이었다. 뜻밖에 학점 올리기나 유학 도움을 받는 일도 생겼다. 하지만 비슷한 시절을 보낸 어른들은 지금 공식적 모임에선 물론이고 가까운 이들끼리 모인 자리에서도 눈을 내리깔고 휴대전화만 들여다본다. 2009년 국내에서 스마트폰이 가동하기 전까지만 해도 문자만 챙기는 게 고작이었다. 이젠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신문 읽기에, 업무처리까지 하느라 앞에 앉은 사람은 안중에 없다. 스마트폰 없는 사람은 심심할 판이다. 이러려면 왜 바쁜 시간에 모였을까, 했더니 내 옆에서 스마트폰을 톡톡거리던 이가 말했다. “나 없을 때 중요한 얘기 나올까 봐 그렇지.” 다행스러운 건 이게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에서도 2009년 이미 휴대전화 통화보다 문자나 e메일, 음악 감상에 쓰는 데이터의 양이 더 커졌다. 내가 보내고 싶을 때 보내고, 편할 때 체크하고 답장할 수 있는 휴대전화 문자가 말로 통화하기보다 훨씬 편해서다. e메일도 컴퓨터보다 스마트폰에서 더 많이 사용한다. 작년 여름 미국의 와이어드지(誌)가 ‘웹은 죽었다’고 선언했을 정도다.페이스북의 친근감 믿을 수 있나 문자에 비하면 불쑥 걸려오는 전화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밖이다. 미국선 휴대전화를 걸기 전에 “전화 걸어도 되나요” 문자를 먼저 보내는 게 에티켓이 됐다. 가족 아닌 사람이 예고 없이 전화하는 건 무례로 간주되기도 한다. 아주 중요하거나 급한 일이 아닌 한, 몸소 전화를 하는 일은 시간과 에너지 소비량이 많은 서비스 비즈니스가 된 것이다. 25년 전 앳된 가수 이선희는 ‘알고 싶어요’라는 노래에서 “바쁠 때 전화해도 내 목소리 반갑나요” 하고 물었다. 그 옛날 황진이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소세양에게 써 보냈던 한시에서 ‘바쁜 중 돌이켜 생각함이라 괴로움일까 즐거움일까’(忙中要顧煩或喜)라고 한 것을 작사가 양인자가 당시로선 현대적으로, 그렇게 번안했다. 하지만 요즘 같은 디지털시대엔 먹힐까 의문이다. 이게 스마트폰의 패러독스다. 1970년대부터 테크놀로지와 인공지능을 연구해온 셰리 터클은 새 저서 ‘홀로 또 같이’에서 “문자처럼 개인이 ‘통제하는 관계’가 디지털시대의 대세라는 것이 오히려 우리를 외롭게 한다”고 했다. 트위터 팔로어가 암만 많아도 소용없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트위터에 아무리 친근한 척 문구를 띄운대도 그가 나를 알 리 없다. 페이스북의 힘으로 이집트의 독재자가 쫓겨난 것은 경축할 일이지만 리비아의 독재자는 페이스북도 통제한다. “페이스북에서 당신을 찾는 친구가 있습니다”라는 문자가 와도 내가 안 찾고 말면 그만이다. 반면 바쁠 때 전화한 애인이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귀엽다면, 그들의 감정이 통하기 때문이다. 연애 초기의 애인이나 만만한 친구, 가족은 내가 ‘통제하기 힘든’ 존재다. 때로는 귀찮고 부담스럽다. 이성적으로 이해해도 감정으로는 어쩔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바로 그런 통제하지 않는 관계가 우리를 외롭지 않게 한다. 딸이 짜증을 낼 걸 알면서도 엄마는 굳이 전화해 잔소리를 하기 때문에 끈끈한 관계인 거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서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을 만든 것도 친구가 없어서였다. 트위터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에번 윌리엄스도 수줍어 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어서 커뮤니케이션을 쉽고 편하게 해주는 트위터에 빠졌다. 스마트폰 속에 천 사람의 팔로어를 거느렸대도 내가 기다리는 단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면 외로울 수밖에 없다.이성보다 감정, 기계보다 사람 9일부터 SKT가 아이폰4 예약을 받는다. 스마트폰이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건 틀림없다. 하지만 행복하게 해주기까지는 바라지 않는 게 좋겠다. 늘 이성과 경쟁력을 강조했던 뉴욕타임스의 우파논객 데이비드 브룩스는 최근 “결혼이나 대통령선거같이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판단은 이성 아닌 정서에 좌우된다”고 ‘감정적 전향’을 했다. 스마트폰 속에 론리플래닛 여행앱만 있으면 혼자서도 얼마든지 여행은 한다. 아무리 먼 곳에 갔더라도 결국 내가 문자를 보내고 기다리는 상대는 정서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그래서 브룩스는 “우리가 진정 행복을 느끼는 것도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라고 했다. 이때 스마트폰은 아예 끄고(진동 절대금지) 내 앞의 그 사람에게 집중해야 하는 건 물론이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엄기영 전 MBC 사장이 오늘 한나라당 강원도당에서 입당 기자회견을 열고 강원도지사 출마를 공식화한다. MBC 사장을 지낸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강원도지사 출마를 위해 그제 비례대표 의원직 사퇴서를 냈다. 강원도지사 선거는 MBC 전직 사장들끼리 경쟁하는 모양새가 됐다. 엄 전 사장은 “강원도민을 위해 당당하게 당내 경선과 본선에 임하겠다”고 밝혔지만 MBC 사장 때 한 일을 보면 그를 공천하려는 한나라당의 정체성에 의구심이 생긴다.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을 일으킨다’고 허위 왜곡 보도한 MBC PD수첩은 2008년 그가 사장 때 방영됐다. 이 프로그램으로 광우병 촛불시위가 촉발돼 서울 도심이 근 100일 동안 시위대에 점령되다시피 했다. 이 시위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2007년 대선 결과에 대한 불복운동의 성격이 강했다. 그는 PD수첩의 허위 왜곡이 밝혀진 뒤에도 “정치적 수사” 운운하며 광우병 쇠고기 프로그램을 제작한 PD들을 편들었다. 사장 재임 중이나 퇴임 후에 단 한 번도 “PD수첩 사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반성의 태도를 보인 적이 없다. 한나라당으로선 강원도지사 자리를 되찾아 오는 것이 급하겠지만 엄 전 사장을 공천함으로써 한나라당 지지자들에게 혼란을 주는 일은 피해야 한다. MBC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사장이 된 최 의원은 MBC를 노영(勞營)방송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사장 때 본부장 등 경영진의 보도제작편성 참여를 금지하고 본부장 밑의 국장은 노조원들이 탄핵할 수 있게 한 단체협약을 맺음으로써 노조가 보도와 제작은 물론이고 인사 경영까지 좌지우지하도록 제도화했다. 이런 사람이 도지사가 된다면 공무원노조가 인사와 행정 정책까지 좌지우지하지 않을지 걱정된다. 그는 MBC 사장 임기를 마치자마자 민주당 비례대표로 의원이 돼 폴리프레스(politics+press), 즉 정치언론인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2009년 7월 미디어법 통과 이후엔 “언론과 표현의 자유, 헌법, 민주주의를 지켜내지 못했다”며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해놓고 반년도 안돼 제 발로 복귀했다. 최 의원은 “MBC 후배들이 엄 전 사장을 지키는 투쟁을 하느라 해고되고 사법처리됐다. 그가 한나라당으로 출마하는 것은 후배들에게 큰 상처를 주게 된다”며 “엄 전 사장이 민주당으로 출마할 경우 강원도지사 후보를 양보하겠다”고 제안한 바 있다. 강원도지사 후보 자리를 양보한다던 최 의원이 정작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어떻게 상대방을 공격할지도 관심거리다. 공천개혁으로 정치 선진화를 꾀하겠다는 정당들이 두 사람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낼지도 지켜볼 것이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의 ‘대통령 하야(下野)운동 불사’ 발언에 대해 “정교(政敎)분리에 반하는 위헌적인 발언일 뿐 아니라 영향력 있는 대형 교회의 수장으로서 상식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조 목사는 지난달 24일 이슬람채권(수쿠크)법이 계속 추진되면 이명박 대통령 하야운동을 벌이겠다고 한 데 이어 27일에도 “교회에 대적한 국가와 개인은 반드시 망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조 목사의 발언에 대해 ‘교회가 자신의 의견과 다른 견해를 가진 대통령을 협박하는 언동’이라고 비판하기까지는 표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인으로서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 대표 말대로 이 대통령은 기독교계의 표만으로 당선된 것이 아니다. 교회가 자신들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하야시키겠다는 것은 종교의 부당한 정치 개입이 아닐 수 없다. 이 대표는 가톨릭 신자지만 가톨릭 일부 사제의 일탈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았다. 지난해 말 정진석 추기경이 “주교단에서 4대강 사업에 자연파괴 위험이 보인다고 했지만 반대한다는 소리를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을 때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정 추기경의 용퇴를 촉구하는 사상 초유의 항명 사태를 일으켰다. 이 대표는 그때도 “교회의 수장인 추기경을 성토하는 그 용기로 북한 주민의 인권과 자유를 억압하는 김정일과 지도부를 성토하라. 그곳이 바로 순교할 자리”라고 쓴소리를 했다. 수쿠크는 종교가 관여할 이유가 없는 경제 문제인데도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청와대조차 개신교의 표심을 잃을까봐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은 교계에 ‘신세’를 지고 집권하면 ‘은혜’를 갚는 것이 한국적 정교 유착의 부끄러운 현실이다. 4월 재·보선의 표심이 위태롭다고 느낀 한나라당은 벌써 개신교 측에 이슬람채권법안의 사실상 폐기 방침을 전했다고 한다. 이 대표가 “정치가 교회의 협박에 굴복했다”고 비판한 그대로다. 국민은 포퓰리즘이나 당리당략에 흐르지 않고 바른말 쓴소리를 하는 원로의 존재에 목말라 하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이 세상을 뜬 뒤 우리에겐 ‘어른’이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이념과 믿음에 따라 정치 사회가 갈라지고 인터넷 공간에선 참과 거짓이 뒤범벅돼 있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옳고 그른 것을 분명하게 가리는 원로들의 권위와 지식인의 선비정신이 간절하게 기다려진다.}
국민연금공단이 지난해 70세 이상 1만4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였더니 수급 대상자가 사망한 뒤 가족이 연금을 받는 ‘유령수급’이 11명이나 됐다. 시범조사에서 나온 결과이니 전수(全數)조사를 하면 더 늘어날 것이다. 한나라당 원희목 의원이 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0년부터 작년 8월까지 사망자를 제때 신고하지 않고 국민연금을 부정수급한 건수가 2만1611건이나 됐다. 국민연금 수급자가 300만 명을 돌파한 터에 유령이 연금을 타먹도록 방치하면 연금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기금 부실도 커질 수 있다. 현재 국민연금 수급자 중에는 가입 기간이 짧고 수급개시 연령은 빠른 조기노령연금이나 특례노령연금 대상자가 많다. 누구보다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므로 부정수급액은 반드시 환수해야 한다. 주로 부양가족이 아닌 사람을 부양가족으로 등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처럼 사망신고를 미루고 연금을 타먹는 신종 수법이 노출된 것은 처음이다. 지난달 광주에서는 24년간 모친의 사망 사실을 숨기고 1억6000여만 원의 보훈급여를 타낸 사람이 적발됐다. 모든 복지에는 도덕적 해이가 따라오기 쉽다. 지난해 일본에서도 호적상으로만 살아있는 유령노인이 23만 명이나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언론의 폭로로 이런 사실이 밝혀지자 지방자치단체가 연금지급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급격한 고령화에 들어선 한국도 일본과 같은 유령연금 지급사태를 바다 건너 불로 바라볼 수만은 없게 됐다. 수급자에 대한 정기적 실태조사는 물론이고 행정안전부로부터 사망 자료를 즉시 통보받는 방식으로 사후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 직원 1명이 3만 명의 사후관리를 담당하는 현재 시스템으로는 부정수급을 막기 힘들다. 국민연금 징수가 어느 정도 정착단계에 들어선 만큼 이제는 기금관리 및 지급 누수(漏水)를 차단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할 때다. 무엇보다 국민연금 수급자 실태조사를 의무화하고,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의 관리주체를 일원화하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입만 열면 도덕성을 강조했던 노무현 정부는 박연차라는 B급 기업가의 구린 돈에 빠진 ‘부도덕한 좌파정권’의 전형이었다. 건설회사회장 출신 대통령이 이끄는 이명박 정부는 현장식당(함바집) 브로커의 뇌물에 얽혀 ‘함바집 정권’이 되고 있다. 이 정부가 아무리‘공정한 사회’를 외쳐도 소용없다. 당대의 부패 스캔들이 정권을 규정하는 것이다.公正을 殺처분한 개혁실세 떡값 인부들부터 함바집, 하청업체,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업체까지 뒤엉켜 완공 때까지 제각기 최대한 이득을 올리려는 곳이 건설현장이다. 정부에도 이념과비전을 공유하기보다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를 위해 모였던 업자들로 그득하다. 5년 안에 공기업 감사 자리라도 꿰차투자비용을 회수하려는 이들이 차고 넘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정부에서 국방개혁을 맡은 ‘대통령의 아바타’가함바집 브로커한테 인부들 식당 밥값에서 삥땅 친 수천만 원, 특전사 이전 공사를 따낸 대우건설로부터 1000만 원 상품권을‘떡값’으로 챙겼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하필 장수만 방위사업청장이 검찰에 소환된 17일, 대통령은 ‘공정사회 추진회의’ 첫월례회의를 주재하면서 5대 추진과제 중 첫 번째로 공정한 법·제도 운영과 부정부패 근절을 꼽았다. 장수만이누군가. 고려대·영남·소망교회 출신이라는 3박자를 유일하게 갖춘 ‘고소영 인사’의 원조다. 2009년 국방부 왕차관 시절국방예산 삭감안을 장관을 건너뛰고 청와대에 직보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리베이트만 없애도 국방예산의 20%는 삭감할 수 있다”던대통령의 뜻을 받들어서였다. 당시 장 차관한테 하극상당한 이상희 국방장관이 “국방예산 증가율은 경제논리와재정회계의 논리를 초월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경제논리에 따라 안보조차도 희생할 수 있는 정부’라는 오해를 받을 수있습니다”라고 청와대에 보낸 편지를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 작년 3월 천안함 피폭 사태가 터지자 즉각 국방예산이 적정한지 논란이벌어졌고, 국회 국방위원회는 올해 예산을 정부안보다 7333억 원 늘려 의결했다. 물론 실세 장수만이 군의 사기와예산을 깎은 탓에 천안함 피폭이 일어났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자신의 위치와 소임을 아는 사람이면 떡 사먹을 돈이 없어 차라리굶어죽더라도 떡값은 받아선 안 되는 법이다. 그가 무너지자 당장 방위산업체에선 방위산업의 부정을 막는 법을 이끌 강력엔진이제거됐다며 장수만세(장수만 만세)를 부른다지 않는가.인부 먹을 생선살은 뇌물로 갔다 작년 말 강기정 민주당 의원이 대통령 부인에게 1000달러의수표 묶음이 전달됐다는 의혹을 제기했을 때 대통령은 ‘진노’했다. 그런데 이번엔 진노했다는 전언이 없다. 강 의원에게 “국가품위를 떨어뜨리는 묵과할 수 없는 발언”이라고 흥분했던 정진석 정무수석도 개혁동력까지 떨어뜨린 묵과할 수 없는 비리에 대해선아무 말이 없다. 정부가 행동으로 보여준 건 박연차에게 1억 원어치 상품권을 받은 박정규 전 민정수석에 대한 가석방 결정뿐이다.부정부패로 잡혀가도 곧 풀어주고, 공정한 법·제도 운영이란 말로만 하는 소리임을 알려주는 신호 같다. 어차피부패는 정관계의 직업병이라고 보면 속 편하다. “부패 척결”을 외친 새 정권이 등장해도 또 다른 부패는 예정돼 있을지 모른다.그런 정권을 다음 선거 때 응징할 수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분노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2011년의 대한민국은 그렇게 여유롭지 않다. 대통령의 분신이 해선 안 될 일로 추락하면서 이 정부가 추진하는 옳은 정책까지흔들릴 우려가 커졌다. 사회가 공정치 못하다고 인식할수록 분배에 대한 요구는 거세진다는 것이 미국 하버드대 알베르토 알레시나교수의 연구결과다. 정권 실세가 함바집 뇌물을 받아먹는데 우리 아이가 무상급식 좀 먹으면 어떠냐는 억하심정이 솟구칠 수 있다.스웨덴 같은 북유럽에서 고(高)세율 고(高)복지가 가능한 것은 ‘우리 정부는 부패하지 않는다’는 철석같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세계 가치조사기구 ASEP/JDS에 따르면 사회적 신뢰지수가 스웨덴은 134.5인데 우리나라는 56.9, 그리스는54.6이었다. 우리도 파켈라키(fakelaki·그리스어로 ‘떡값’)라는 말이 판치는 그리스같이 복지를 늘리다간 내 평생선진국은 돼보지도 못하고 경제·안보 불안에 시달려야 할 판이다. 이 정부는 아직 2년이나 남았다. 불도저 대통령에다이내믹 코리아라면 지난 3년간 못 한 일도 2년 안에 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공정한 사회’라는 말은 제발 그만두기바란다. 대통령이 “특히 사회 취약계층에 대해 공정한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한 그날도 밥심으로 일해야 할사회 취약계층의 인부들은 생선살 없이 뼈만 떠다니는 ‘사골동태국’을 먹고 있었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는 부유한 과부에게 장가들어 여유로운 삶을 살았다. 서기 1000년까지만 해도 세계 전체의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중동이 차지하는 비중(10%)은 유럽보다 컸다. 중동의 부(富)가 1700년엔 2%로 쪼그라든 이유 중 하나로 일부다처(一夫多妻)제가 거론된다. 갈라 먹어야 할 식솔이 많아 부를 축적할 수 없었다는 거다. ‘너희 마음에 드는 과부 둘 셋 또는 넷까지를 아내로 삼으라’는 코란 제4장 3절은 전투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아내와 고아들을 맡아 생계를 책임지라는 무슬림의 생존법이었다. 일부일처제를 고수한 서구 시각에서 본다면 후진적 결혼제도가 후진적 경제를 만든 셈이다. ▷미국에서 한 남자와 세 아내가 사는 ‘빅 러브’라는 HBO 시리즈가 화제다. 캐나다에선 일부다처제를 금지하는 것이 옳으냐를 따지는 재판이 열리고 있다. 미국의 드라마는 유타 주에 사는 근본주의적 모르몬교도를 그린 픽션이지만, 캐나다는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 사는 모르몬교 한 분파의 실제 상황이다.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만 허용되는 건 비인도적이라는 의견까지 나왔다. 남편이 경제적 능력이 있거나 아내가 병이 있다는 이유로 일부다처로 사는 캐나다 무슬림도 적지 않다. ▷러시아에선 일부다처제의 법제화를 원하는 여성도 많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인류학자인 캐럴라인 험프리 교수는 “특히 시베리아의 몽골계 여인들은 일부다처제야말로 신이 준 선물로 여긴다”고 했다. 경제난에다 남성인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능력 있는 남자를 공유하는 제도가 허용돼야 여자와 아이들이 경제적 육체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번번이 의회에서 좌절당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개리 베커는 일부다처제가 남성들의 경쟁력을 자극해 결혼시장의 효율성을 높인다고 주장했다. 가난하고 무능한 남편보다 돈 많고 유능한 남편을 원하는 여성들은 늘 존재한다. 하지만 베커 교수의 여제자는 박사학위를 딴 뒤 “이건 결국 잘난 남자들한테 더 혜택을 주는 제도”라고 마음을 바꿨다. 경제난에 전세난까지 겹치면서 ‘결혼 격차’가 생겨나는 추세다. 미국에서도 특히 남자들이 교육과 생활수준이 높을수록 결혼을 하고 이혼도 덜 하는 반면, 그 반대일수록 결혼도 못하고 이혼은 더 많이 한다. 일부다처제는 그 깨어진 틈을 파고드는 변종 결혼제도가 아닐까.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민족사관고가 입시전형에서 무성영화를 보여준 뒤 영어토론을 시켰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게 됐다. 고교 입시에서 필기고사와 교과지식을 묻는 구술면접, 적성검사는 못하게 한 ‘자기주도 학습전형 지침’을 어겼다는 이유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용인외고도 영어 동영상을 활용한 질문과 수학 심화과정을 묻는 면접을 했다며 교육청에 정원 감축 등 단호한 처분을 지시했다. 민사고는 국어와 국사를 제외한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고 토론하는 학교다. 정부로부터 한 푼도 지원받지 않고 2010년에만 88명을 해외 유명대학에 진학시킬 만큼 교육성과가 크다. 세계무대에서 활약할 인재를 기르는 것이 목표인 민사고에서 영어토론 전형은 징계 대상이 아니라 권장해야 할 일이다. 용인외고도 글로벌 리더가 될 소질을 갖춘 학생들에게 수월성(秀越性) 교육을 시키기 위해 설립된 학교다. 이명박 정부는 우수한 인재 양성이라는 교육 목표를 포기하고 온통 사교육 때려잡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듯한 모습이다. 교과부는 올해 총사교육비가 20조9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3.5% 감소했다고 밝혔다. 교과부는 “고교 입시제도 개선, 학원 단속 같은 사교육 대책이 효과를 거두었다”며 사교육비 공식 집계 이래 10년 만의 첫 감소를 자축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사교육비 감소를 교육정책의 성공과 직접 연결하는 것은 잘못이다. 학생이 21만 명 줄었고 경기후퇴로 인한 가계소득 감소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내신 1등급 학생이 수두룩한 현실에서 영어토론 전형까지 막는다면 신입생을 대체 무슨 기준으로 뽑으라는 건지 답답하다. 윤정일 민사고 교장은 “개정된 교육법 시행령에 자립고는 자율고로 바꾼 다음에도 학교장이 입학전형을 실시할 수 있게 돼 있다”며 “못하는 학생들을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잘하는 학생들을 끌어내리는 정책으로 이 정부가 무엇을 이루려는지 모르겠다”고 개탄했다. 자연자원이 풍부하지도 않은 나라에서 내세울 것은 인적자원밖에 없다. 지식경제사회로 갈수록 우수한 인적자원이 더 많은 나라가 국제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처럼 한 명의 똑똑한 인재가 수십만 명, 수백만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시대다. 이 정부는 과거 좌파정부보다 더 심하게 고교입시를 간섭해 미래인재들의 싹을 자르고 있다. 이 정부가 초기에 내세웠던 ‘교육 자율화를 통한 인재강국’이라는 교육 목표는 사교육 잡기에 밀려 실종돼 버렸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어제 KBS 수신료 인상안에 대해 논의했으나 결론을 못내고 KBS 관계자를 불러 의견을 듣기로 했다. 방통위에서는 2TV 광고를 지금처럼 유지하면서 수신료만 3500원으로 올리자는 KBS 이사회안(案)에 대해 제작비 절감의 노력이나 KBS 발전의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적 의견이 적지 않았다. 글로벌미디어 환경과 국내방송 현황을 둘러보건대 KBS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고 본다. KBS를 상업광고로부터 해방시켜 시청률에 얽매이지 않는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게 할 때다. 다(多)매체 다채널의 무한경쟁 시대를 맞아 시청자는 광고 없는 청정(淸淨) 공영방송을 가질 권리가 있다. 지난 30년간 국내방송은 3개 지상파의 독점 지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공영방송은 방송의 공적기능과 독립성을 위해 국민이 방송 재원을 부담하는 방송이다. 그런데도 KBS는 재원의 40%를 상업광고에 의존하는 바람에 공적기능도, 독립성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 작년 KBS의 경영분석을 한 보스턴컨설팅그룹도 KBS가 진정한 공영방송이 되는 방안으로 상업광고를 폐지하고 수신료 중심의 안정적 재원구조를 확립할 것을 제시했다. KBS는 공영방송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방송의 질에서 상업방송과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 수신료 인상안을 제출하면서도 비대한 조직의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KBS는 인건비가 예산의 36%나 될 정도로 인력이 방만하다. 영국 BBC나 일본 NHK는 상업광고 없이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 낸다. BBC는 ‘오락 프로그램이 단지 웃기기 위해 모욕을 주거나 거슬리는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 따라 오락 프로그램도 품위 있게 만들려고 애쓴다. 일본 NHK 경영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고모리 시게타카 후지필름홀딩스 사장은 “공영방송은 한 나라를 대표하는 방송이므로 국가의 공식 견해나 국익을 대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공영방송을 위해 영국 국민은 연 27만 원, 일본은 21만 원 정도의 수신료를 낸다. 올 하반기부터 지상파의 독과점 구조가 깨지고 종합편성채널이 4개, 보도채널이 1개 더 등장해 방송환경이 획기적으로 변화한다. 새롭게 출범하는 종편 채널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제도적 후속 조치와 지원이 중요하다. 방통위는 광고를 완전히 없앤 KBS에 대한 비전을 갖고 독자적인 수신료안을 내놓아야 한다.}

이번 설에도 “취직은 됐느냐”는 소리가 제일 괴로웠다는 젊은층이 적지 않다. 본인들도 속 타겠지만 제 밥벌이도 못하는 자식을 보는 부모 속에선 열불이 난다.대통령도 같은 심정일 것이다. 지난주 신년방송대담에서 대통령은 “대학 졸업하신 분들이 놀고 있는 사람이 많고 그래서 정부가 급료를 주면서 기술을 1년 코스, 6개월 코스로 하는 길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사실 독일도 대학가는 비율이 40%도 안 된다. 우리는 80%인데….”독일 대학진학률이 40%인 이유2009년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진학률이 81.9%다. 군 입대와 대학원 진학을 포함한 취업률이 76.4%이고 정규직 취업률은 48.3%다. 대학진학률이 절반으로 줄면 정규직 취업 100%도 가능해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졸백수 문제는 당장 해결될 수 있다는 얘기다.대통령은 2009년 7월 원주정보공고를 찾은 자리에서도 “한국 현실이 누구나 대학을 가려 하지만 이제 한계에 왔다. 이러니 취업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대학정원을 절반으로 줄이는 교육개혁을 단행하겠다고 말이다.독일의 대학진학률이 40%인 이유는 대학입학자격시험(아비투어)을 준비하는 9년제 중등학교인 김나지움에 진학하는 학생이 딱 그 정도 비율이기 때문이다. 수월성 원칙에 따라 초등학교 때 공부 잘한 학생들은 김나지움에 가고 나머지는 실업계로 간다. 독일이 중국과 함께 글로벌 경제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바탕엔 여기서 길러진 기술력이 있었던 것도 분명하다.하지만 200년 전 계급사회에서 비롯된 이원적 교육제도가 21세기에도 맞느냐는 의문이 나오는 추세다. 이 나라에서 구글 같은 이노베이션이 나오지 못하는 데 대해 “월드클래스의 연구대학을 중심으로 하이스킬(high-skill)에 집중한 미국과 달리 독일은 중간기술에 머물렀기 때문”이라고 지난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노동력 스킬과 이노베이션’ 논문에서 분석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노골적으로 “독일엔 지식기반시대에 맞는 글로벌 엘리트를 길러낼 대학이 너무 적다”고 했다.숙련된 기술 인력을 공급해온 것으로 믿었던 직업학교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훈련기회를 주는 기업이 줄고 수학 과학 공부를 못한 청년들은 유능한 기술자가 되기 힘들다는 비관론도 있다. 특히 어린 나이에 직업학교를 택해 평생 그 일에 종사하게 만듦으로써 계층이동의 기회를 봉쇄하는 게 과연 공정한지의 문제도 심각하다.‘인재강국’ 교육목표 어디 갔나우리 대통령에게 대졸백수 문제 해결이 중요하다면, 누구나 대학 가려는 풍토를 나무랄 게 아니라 대학을 바꿔야 한다. 좀 더 잘살아 보겠다는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상향본능을 대통령이 막을 순 없기 때문이다. 독일처럼 대입준비를 하는 인문계 고교 정원부터 중학교 졸업생의 40%로 낮추거나 대학정원을 40%로 축소하는 게 차라리 낫다.단, 공평하게 한답시고 정원을 학교마다 골고루 줄이진 말기 바란다. 수월성 원칙에 따라 고교는 대입 실적이 나쁠수록, 대학은 취업 실적이 나쁠수록 정원을 조정해야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 그래야 공부 안 시키는 교사가 많은 고교나 제 밥벌이할 능력도 못 키워주면서 비싼 등록금만 꼬박꼬박 챙긴 삼류대학이 사라진다.그러나 이 방법으론 우리나라가 더는 도약하기 힘들다는 게 문제다. 지금 선진국이 나아가는 방향과도 어긋난다. 크든 작든 한 조직의 지도자는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고, 우리 조직은 어떻게 돼야 하며, 따라서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뚜렷한 전략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OECD는 지난해 “글로벌 위기에서도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은 타격을 덜 받았고, 앞으로도 대학졸업자의 고용수요는 늘어날 것”이라며 “정부는 일자리와 세수(稅收) 확대를 위해 대학교육을 확대하라”고 발표했다. 개인과 나라가 대학교육에 쓰는 비용과 대학교육으로 얻게 되는 혜택을 비교해 보니 우리나라는 OECD 20개국 중 끝에서 두 번째지만 그래도 이득이 더 크다는 분석도 제시됐다. 미국의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이 “2025년까지 고졸자 80%를 대학에 진학시키자”는 목표를 2년 전에 내놓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출범 당시 이 정부가 내걸었던 ‘인재강국’의 교육목표도 같은 의미였다고 믿고 싶다.그렇다면 정부는 대학을 포함한 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여 청년 고용률을 끌어올리는 정책으로 가야 옳다. 기업 하는 환경을 깜짝 놀랄 만큼 개혁해 외국인투자기업을 포함한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은 더 중요하다. 국정기조를 ‘중도서민’으로 틀었다고 해서 교육정책마저 서민 더 많이 만들기로 가면 세계 일류를 지향하는 ‘G20세대’는 나올 수 없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후 & 추아. 최근 미국은 이 두 사람의 중국인으로 떠들썩했다. 후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고 추아는 예일대 로스쿨 교수인 에이미 추아를 말한다. 후는 마침내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동방대국에 등극했음을 과시해 미국의 혼을 빼놨다. 추아는 ‘왜 중국 어머니들은 우월한가’라는 도발적 제목으로 자신의 자녀교육법을 월스트리트저널에 실어 미국인의 비위를 긁었다. 안 그래도 미국은 자국의 쇠락과 중국의 굴기(굴起)에 뼈가 저리는 처지다. 일본계 3세 미국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21세기 첫글로벌 위기에서 미국 민주주의는 무능과 부패를 노출했지만 중국은 독재자본주의(authoritarian capitalism)의우월성을 입증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다 ‘고발’했다. 그의 말이 맞는다면 앞으로의 세계는 암울하다. 우리처럼 작은 나라는조공이라도 바쳐야 하는 게 아닌지 걱정될 판이다. 후가 오늘의 중국을 상징한다면 추아는 내일의 중국을상징한다. 추아 같은 엄마들이 길러낸 엘리트가 결국 중국을 이끌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가 쓴 ‘호랑이 엄마의 전투찬가’는2주 전 출간 즉시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자녀 성적이 나의 성공’이라고 믿는 중국 엄마들은 자녀가 성공할 수 있는능력을 길러주기 위해선 뭐든 한다는 내용이다. 아이가 뭘 하든 “잘한다”고 치켜세워온 미국 엄마들은 경악했다. 아동학대가아니냐는 비판부터 중국이 무섭다는 전율까지, 유력 신문은 물론이고 인터넷에서도 난리가 났다.한국 부모 敎育熱 짓밟는 정부 교육열로 치면 추아 정도의 엄마는 얘깃거리도 안 되는 곳이 우리나라다. 예일대 교수쯤 되는 한국 엄마가 영어로 책을 안 내서 그렇지, 우리 엄마들이 자녀교육에 쏟는 열정과 희생은 중국에 지지 않는다. 이 엄청난 교육에너지가 세계 모든 엄마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중요하다. 자녀사랑이야 공통된 본능이겠지만 교육열은 그렇지않다. 브라질에선 저소득층 엄마들한테 아이들 학교 보낸다는 조건으로 정부가 현금 지원을 하는데도 학교 안 보내고 돈 벌어오라고등 떠미는 집이 수두룩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열을 ‘망국적 치맛바람’으로 폄훼해온 시각을 바꿀 필요가있다. 미국에선 미중 경쟁이 군사력 아닌 교실에서 결판난다며 교육경쟁력 높이기에 박차를 가하는 판국이다. 우리나라가 중국을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방도가 바로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열로 글로벌 인재를 키우는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역사적으로도 우리는 문명권 중심부 중국에 맞서는 최상의 방법이 학구열에 있다고 봤다. “근대 평등사회를 이루는 과정에서 중국은상위신분을 철폐해 하향평준화가 된 반면 우리는 누구나 상위신분이 되는 상향평준화를 택했다”고 조동일 서울대 명예교수는 분석했다.타고난 처지에 머물지 않고 잘살아 보겠다고 공부에 분투했던 역동성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것이다. 이런 한민족이 두려웠던 일본은 우리의 학구열과 교육열 낮추기를 식민통치의 주요 시책으로 삼았다. 이 식민통치의 유산을 지금 이명박 정부가 이어가고 있다. 출범 때만 해도 ‘글로벌 인재양성’이 핵심이었던 교육정책은 2008년 촛불시위에 놀라 ‘사교육 때려잡기’로 돌변했다. 사교육비에허리 휘는 서민을 위해서라지만 가계소비지출에서 의식주를 뺀 교육비 지출 비중은 1965년 24.5%에서 2008년 22.2%로외려 줄었다. 가장 많이 늘어난 건 교통통신비인데도 정부는 교육열이 나라를 망치기나 하는 양 엉뚱한 정책에 매달리고 있다. 더구나 글로벌 위기 이후 선진국의 실력주의(meritocracy)는 더 확대되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불평등’을 특집으로다룬 최근호에서 “정부는 교육투자에 힘쓰되, 잘하는 애들을 막지 말고 못하는 애들을 끌어올려 계층이동을 북돋는 게 최선의정책”이라고 했다. ‘공부 잘 가르치기를 회피하는 교원노조가 빈곤층의 적(敵)’이라는 대목은 한국 상황을 두고 말하는 것처럼들린다.자유 없는 중국보다 옥죄어서야 중국이 잘나가는 듯해도 정치적 사상적 자유가 없는 나라에선 구글 같은 이노베이션이 나올 수 없다고 미국은 자위하고 있다. 그래도중국엔 국제학교와 사립학교가 많고 하버드대를 비롯한 세계 일류대학 분교가 진출해 글로벌 인재를 키운다. 정치적 사상적 자유가있다고 자부하는 우리 정부가 중국만도 못하고, 노무현 시대보다 심한 교육관치(官治)를 펴는 것은 후대에 죄를 짓는 일이다.우리 국민이 10년 후에 먹고살 것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대통령이라면 국제고 외국어고 같은 인재학교와 명문대학의 엘리트 교육을옥죄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부인하고 싶대도 장차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글로벌 인재는 여기서 나온다. 땅덩어리도, 자원도,이성(理性)도 빈약한 우리나라가 중국에 조공 바치지 않고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정부가 막진 말기 바란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최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머지않아 우리 아이들도 ‘장발은 죄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머리카락 길이가 아니라 머릿속에 든 것입니다’라고 말할 것 같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16일 뮤지컬 ‘풋루스’를 관람한 뒤 “(풋루스 속의) 버몬트 아이들은 ‘춤은 죄가 아니다’며 춤 금지조례 폐기를 청원한다”면서 쓴 글이다. 장발은 죄가 아닐지 몰라도 곽 교육감이 남발하는 ‘교육포퓰리즘’은 한국 교육의 미래를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 학생들이 건강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교육적 차원에서 복장과 두발을 지도하고 잘못을 저지르면 좋은 길로 가라고 꾸중하는 것이 왜 나쁜가. 정신과 육체가 성숙하지 않은 학생들을 자유방임으로 놓아두는 것이 학생인권이고 ‘참교육’은 아닐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어제 체벌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팔굽혀펴기 같은 간접 체벌은 학칙으로 정하도록 일선 학교에 자율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두발과 복장 자유화, 휴대전화 소지도 학칙에 따르도록 하고 교육감의 학칙 인가권은 폐지했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3월부터 발효되면 서울시교육청의 체벌금지 지침과 경기도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는 무효가 된다. 법적으로 조례보다는 상위법인 시행령이 우선이다. 예상했던 대로 서울 경기 강원 광주 등 좌파 성향 교육감들은 즉각 교과부 방침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나섰다. 서울시교육청은 “선거를 통해 당선된 교육감의 교육정책 실현을 제한할 뿐 아니라 교육자치에 역행하는 조치”라고 반발했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일부 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교육현장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마련한 방안”이라고 밝혔다. 좌파 성향 교육감들이 교과부 정책과 어긋나는 방침을 일방적으로 강행하는 것을 더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발언이다. 교과부는 새 시행령을 수용하지 않는 교육청에 대해 법적 절차에 따라 단호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교과부는 2008년 4월 학교자율화 조치를 발표하면서 시도교육청에 자율화 권한을 대폭 이양했다. 그러나 2010년 교육감 직선에 따라 당선된 일부 좌파 교육감들은 정부 정책과 거꾸로 가는 ‘교육해방구’를 추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교과부 방안은 학교운영의 자율권을 학교에 돌려주는 조치로 볼 수 있다. 한나라당과 정부는 어제 대통령령을 개정해 올해 교원능력개발평가(교원평가)를 계속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교원 평가와 학업성취도 평가 같은 사안에 대해서는 정부가 좌파 교육감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아야만 교육이 산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부자들은 우리와 다르다.” 1920년대 미국의 황금기를 그린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장편소설 ‘위대한개츠비’(1925년)에 나오는 말이다. 당시 상류층은 물려받은 재산으로 정계 재계 사교계를 주름잡았다. 21세기의슈퍼리치(super rich)는 또 다르다. 탁월한 능력을 테크놀로지와 세계화로 극대화해 막대한 연봉을 받는 ‘근로부유층’이다. 활발한 자선활동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지만 최상류층에서 보통사람과는 동떨어져살아간다.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현빈이 연기하는 최고경영자(CEO) 김주원도 보통 드라마의 재벌2세와 다르다. ‘삼신할머니의 랜덤(random·무작위)’ 배치 덕에 부자로 태어났지만 ‘여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능력있는’ 슈퍼리치다. 백화점을 물려받자마자 최상류층 공략 마케팅으로 업계 1위를 만들었다. 미국 명문대를 나온 그에게 스턴트우먼길라임처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과 마주칠 기회가 있었을 리 없다. ▷‘신기하고 얼떨떨하던’ 그 여자와‘함께 있으면 모든 것이 동화가 되는’ 단계까지는 신데렐라 드라마 같았다. 하지만 결혼도 ‘일생일대의 인수합병’이라고 믿는 잘난남자는 여자에게 “적당한 때 인어공주처럼 사라져 달라”고 요구한다. 그가 여자의 환경까지 받아들이게 된 건 두 사람의 영혼이바뀌고, 시련을 공유하면서부터다. 소방관인 아빠가 순직한 뒤 ‘나라에서 나오는 돈’으로 살았다고 여자가 말하자 남자는 “(세금)더 낼 걸 그랬다”고 나직하게 받았다. ▷이 까도남(까칠하고 도도한 남자) 역할을 현빈 말고 다른 남자가 했어도‘주원앓이’ 팬이 넘쳤을까. 툭툭 던지는 대사로 건방을 떨다가도 여배우까지 설레게 만드는 시선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흔치않다. 드라마에서 유독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강조했던 그가 해병대에 지원했대서 화제다.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은 “요새‘노블레스(고귀한 신분)’는 연예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현빈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고 환호했다. 남자들 일각에선군대가 무슨 도덕적 의무냐, 훈련이나 제대로 받겠느냐며 질투 섞인 반응이다. 하지만 권력자 자식 중에는 그런 사례도 흔치 않으니무슨 말을 하랴.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장석웅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위원장이 앞으로 이념적 투쟁 대신 수업과 학교 개혁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11일 전교조 행사에서 “지난 20년간 준비한 참교육의 가치와 내용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학교를 만들어 국민에게 ‘이것이 진정한 학교’라고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학교 개혁이 과연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공교육 개혁을 의미하는지는 의문이다. 전교조와 코드가 같은 좌파 교육감들은 서울 경기 등 6개 시도에 진출해 그들의 이념에 맞는 교육정책을 강력하게 밀고 나가고 있다. 전교조가 지지하는 세력이 전국 교육 권력의 상당 부분을 장악한 이상 공연히 이념 투쟁을 내세워 국민의 거부감을 초래할 이유가 없다고 계산하고 있을지 모른다. 좌파 교육감이 쏟아내는 교육정책을 학교 현장에서 구현하는 ‘현장 투쟁’으로 전교조의 운영 방향을 튼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좌파 교육감들이 착수한 학교 개혁은 많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이들이 학생인권조례를 강행한 이후 교사가 학생에게 욕설을 듣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서울시교육청은 학생들의 학교 밖 정치집회 참여를 허용하는 조례까지 추진하고 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임기 내 교육예산의 63%를 무상급식 등 ‘보편적 교육복지’에 배정하고 13%를 수준별 교육과정 운영 등 학력 향상에 사용할 계획이다. 학교가 학력보다 복지에 더 신경을 쓰면 작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꼴찌였던 서울의 학력은 더 떨어질 우려가 크다. 전교조의 학교 개혁도 이런 정책이 현장에 착근되게 하는 식이라면 학부모들이 바라는 학교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 장 위원장은 교원 평가제 반대를 내걸고 당선됐다. 전교조는 현재의 교육이 ‘경쟁 만능의 교육’이라며 학력 향상 교육에도 반대한다. 장 위원장은 교육정책 개발과 대안 제시를 전교조의 본령인 듯 말했지만 학생과 학부모들이 원하는 교사는 ‘잘 가르치는 교사’다. 이 점에서도 학교 개혁에 대한 전교조와 학부모의 인식은 차이가 있다. 장 위원장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교육 의제를 주도할 것”이라고 밝혀 정치 참여에 대해서는 여전히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전교조가 진실로 학교 개혁을 최우선으로 한다면 교원 평가부터 수용해야 한다. 학교 개혁의 성공 여부는 교원의 자질과 책임의식에 달려 있다. 교원 평가를 거부하면서 무엇을 위한 학교 개혁을 하겠다는 것인지 참으로 걱정스럽다.}

이퇴계 이율곡이 조선시대 감사원인 사헌부의 대관(사헌부 관원 총칭)이었다는 걸 나는 처음 알았다. 감사원이 펴낸 ‘감사 60년사’를 보고나서다. “대관 임명은 다른 관직보다 엄격했다. 군주의 잘못을 기탄없이 간쟁하고 장상(將相)들의 그릇됨을 과감히 규탄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했다.” 감사원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대관의 생명은 소신을 굽히지 않는 강직성이었다. 세종이 대사헌에 임명한 이발(李潑)을 대관들이 부적격하다며 거부해 결국 왕이 물러섰을 정도다. 헌정사상 두번째 직속 비서 출신 예나 지금이나 감사원에는 국민이 기대하는 바가 있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암만 바닥이래도 감사원만은 우리가 헌법을 통해 부여한 국정감시자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고 싶어 한다. 전두환 대통령도 이한기 서울대 법대학장을 당대 첫 감사원장으로 임명해 나름대로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대통령비서가 감사원장이 된 경우는 1976년 유신독재시절 임명돼 박정희 대통령 시해까지 겪은 신두영 청와대 사정담당 특별보좌관이 유일하다. 정동기 전 민정수석의 감사원장 내정은 그래서 더 불길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동의 요청사유서에서 밝힌 대로 “감사원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킬 적임자”라고 믿을 사람은 많지 않다. ‘정동기 감사원장’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다. 오죽하면 비서를, 그것도 하필 정 씨처럼 사정을 맡았던 사람을 감사원장 시킨 대통령이 박정희밖에 없었을까. 청와대 관계자는 “모의청문회에서 수석비서관 출신을 감사원장으로 보내는 데 대해선 아무 논의가 없었다”고 했다. 감사원장이 어떤 자리인지, 자유민주 정부가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 무엇인지 개념을 가진 사람이 청와대 안에 없다면 비극이다. 국민을 대신한 국정감사가 아니라 대통령을 돕기 위한 국정단속을 할 의도라고는 정말이지 믿고 싶지 않다. 둘째 능력 문제다. 실용을 앞세우는 정부이니 참모 출신이라는 전력이 아니라 능력만 본 인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 씨는 2009년 전형적 ‘스폰서 검사’였던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 인사검증 파동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민정수석이 청문회에서 금방 드러날 내용조차 파악 못했으면 무능이고, 알고도 강행했다면 판단력에 문제가 있다. “안 됩니다”라는 말도 못한 인물이면 강직성도 없다. 아예 천성관 인선과 검증에서 배제됐다면 바지저고리였다는 얘기다. 더구나 정 씨가 민정수석이었던 때는 ‘민간인 사찰’이 있었던 시기다. 이에 대해 잘 아는 핵심인사는 “청와대 하명으로 정권에 문제를 일으킬지 모르는 사람들을 사찰하는 건 37년 된 관행”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현 정부에서처럼 특정지역 인맥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같은 공조직에 똬리를 틀고 탐정놀이 하듯 사찰해온 건 어처구니없다. 호가호위(狐假虎威) 세력의 ‘권력형 비리’ 냄새가 풀풀 난다. 민정수석으로서 정 씨는 대체 뭘 하고 있었기에 일이 그 지경이 됐단 말인가.‘도곡동땅’ 변호로펌서 갓끈매다 셋째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높은 도덕성과 청렴성을 유지해왔다”는 청문회 요청서 내용도 믿기 어렵다. 정 씨에게 7억 원의 보수를 준 로펌 ‘바른’은 2007년 그가 대검차장일 때 이상은 씨(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의 형) 편에서 도곡동 땅 의혹사건 소송을 맡았던 곳이다. 그해 8월 14일 그는 “도곡동 땅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땅이라고 볼 증거도 없다”고 확인시켜줌으로써 ‘바른’ 손을 들어줬다. 결과적으로 8월 19일 대선 후보 경선투표에 영향을 미친 대검차장이 11월 20일 퇴임한 지 엿새 만인 26일 바로 그 로펌의 대표변호사로 옮겼다. 이것도 철저한 자기관리라 할 수 있는지 보통사람의 가치관으론 납득할 수 없다. 이 정부가 인사 때마다 국민적 공분(公憤)을 일으키고도 같은 인사 행태를 반복하는 건 더욱 절망스럽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기는지는 중요하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 최근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비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실적이 좋은 것도 아닌데 좋게 기억되는 건 미국인들에게 ‘미국은 대단한 나라’라는 희망을 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좋은 기억을 갖기 힘든 것도 희망은커녕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 될 나라’라는 부정적 인식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이번 같은 공정하지 못한 인사로 이 대통령이 ‘우리나라 권력은 어쩔 수없다’는 국민적 낭패감을 남긴다면 대통령도 국민도 불행이다. 정 전 수석은 천성관 사태 때 모든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했다. 충성심과 책임감에 따른 선택이었다고 믿고 싶다. 지금이 그 덕목을 다시 한번 발휘할 기회다. 그리하여 임명권자의 부담을 덜어주고 국민이 이 정부에 희망을 잃지 않게 해주기 바란다. 전관예우 관행이 당장 없어질리 없으니 어딜 가든 억대 연봉도 따라오지 않겠는가.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그동안 시도 단위 일제고사에 대한 명확한 공식 방침을 유보해오던 서울시교육청이 전교조 서울지부와의 정책협의를 거쳐 마침내 폐지를 확정했다.’ 지난해 11월 29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가 ‘투쟁속보’에서 밝힌 내용이다. 이틀 뒤인 12월 1일 시교육청이 같은 내용을 공식 발표했다. 같은 날짜의 ‘투쟁속보’엔 학교장 평가에서 학업성취도 향상 반영을 폐지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시교육청은 12월 22일 동일한 내용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전교조가 먼저 나가고 교육청이 뒷북을 치는 꼴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쏟아내는 일련의 교육방침을 보면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친(親)전교조를 넘어 전교조의 아바타(분신)가 된 것 같다. 전교조 서울지부는 단체협약 본교섭을 앞두고 시교육청에 ‘2010 단체교섭 10대 과제(안)’를 전달한 바 있다. 방과후 학교 강제 실시 땐 제재, 중학교 국어 영어 수학 수업 과다 금지, 교장 인사권 견제 같은 내용이다. 곽 교육감은 여기 나온 내용을 하나하나씩 자신의 정책이라며 발표하는 형국이다. ▷그는 좌파성향의 시민단체들이 정한 이른바 ‘진보진영 단일후보’로 나와 당선됐다. 당선 직후엔 “저를 지지하지 않은 65%의 마음도 헤아리겠다”며 취임준비위원회에 전교조 교사 출신을 포함시키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지키지 않은 전력이 있다. “전교조 관계자 중에는 국민정서와 동떨어지고 내가 동의 못하는 부분들도 있다”고 하더니 내놓는 방침마다 전교조 판박이다. 말로는 아닌 척하면서 전교조의 지시를 따라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속사정이라도 있는지 궁금하다. ▷디지털 세계에서 아바타는 실존 인물의 확장된 자아(自我)다. 전교조는 곽노현이라는 확장된 자아를 두어 좋겠다. 거칠게 말해 곽노현은 전교조의 도구라는 얘기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각 시도교육청에 교육정책이나 인사에 관여하는 단체협약은 맺지 말라고 지침을 내렸다. 전체 교원 41만8000명 가운데 15%(6만667명)도 안 되는 전교조가 서울의 교육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지도 의문이다. 학부모와 학생 그리고 비전교조 교사들은 이렇게 철저히 무시돼도 되는가. 교육 수요자들도 영화 ‘아바타’의 나비족처럼 힘을 합쳐 싸워야 할 모양이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중국 일본 독일 등 세계의 지도자들이 신년연설에서 한결같이 강조한 것은 경제와 개혁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경제를 성장시키고, 일자리를 만들고, 중산층 강화를 확실히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며 여소야대(與小野大) 의회의 당파를 초월한 협력을 호소했다. 그는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헌신한다면 누구와도 기꺼이 협력할 것”이라며 하원 다수의석을 차지한 공화당의 국정 협조를 당부했다. 2010년 경제 규모 세계 2위에 오른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 역시 경제를 새해의 톱 어젠다로 제시했다. 후 주석은 지난해 12월 31일 국영방송을 통해 국내외에 방송된 연설에서 “1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2011∼2015년)이 시작되는 첫해인 새해엔 경제발전 방식의 변혁을 가속화하겠다”며 경기부양책을 계속하면서도 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을 잡는 정책을 시사했다. 선진국들도 중국이 쉽사리 회복궤도에 오르지 못하는 세계 경제를 견인하는 주요 동력이 돼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는 “헤이세이(平成·일본의 현재 연호)의 개국(開國)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일본의 부흥을 이끈 메이지유신의 1차 개국, 전후 고도성장시대의 2차 개국에 이어 올해는 3차 개국을 성공시키겠다는 비장한 다짐이다. 간 총리는 그 수단으로 자유무역협정(FTA)보다 단계가 높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과 한국 유럽연합(EU) 호주와의 FTA를 들었다. 보호주의적 관행을 깨는 일본을 보더라도 당리당략 때문에 한미 FTA 국회 비준 동의를 미뤄서는 안 될 것이다. 재정위기를 겪는 유럽의 국가 지도자들은 고통 분담을 호소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정부지출 감축은 아프지만 꼭 필요한 개혁”이라고 강조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프랑스가 성장을 지속할 수 있도록 새해에는 세제 및 사법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저(低)실업률 고(高)수출을 구가하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위기를 통해 우리는 더욱 강해졌다”며 “무엇보다 국민 여러분께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그는 “독일 경제는 성실과 규율, 상상력과 기술력으로 월드컵에서 3위를 차지한 독일 축구 같은 미덕을 지녔다”며 철학자 카를 포퍼의 말을 인용했다. “미래는 활짝 열려 있고,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습니다. 아이디어와 호기심과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새해를 맞이합시다.”}
2년 전 정부는 2010년까지 외국인 유학생 10만 명을 유치한다는 ‘스터디 코리아(Study Korea) 프로젝트 발전방안’을 수립해 첫해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745명을 뽑았다. 그러나 2009년은 504명으로 줄였고 올해는 첫해보다 적은 700명을 선발했다. 실적이 부진하자 목표 달성 연도를 2012년으로 늦췄는데도 외국인 장학생 관련 내년도 예산은 326억3900만 원으로 올해보다 2300만 원이 삭감됐다. 2008년부터 국내에 들어와 공부하는 1942명의 외국인 장학생 가운데 200명 정도가 학기당 1600만∼2000만 원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받지 못해 공부를 못 마치고 귀국해야 할 판이다. 외국인 장학생들은 해당 국가에서 뛰어난 성적을 낸 학생들로 한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나면 장차 그 나라의 사회지도층 인사가 되거나 한국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시각에서 보면 수년간 공들여 친한파(親韓派)를 양성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국내 대학생들을 위한 장학금과 학자금 대출도 중요하지만 외국 유학생을 위한 지원에 인색해 공연히 반한파(反韓派)를 만들어선 안 될 일이다. 자비로 유학 온 학생들에 대한 사회적 정책적 배려도 요구된다. 전체 외국인 유학생 8만9616명 중 약 75%인 6만7000여 명이 중국인들로 입학 정원 확보가 어려운 지방대에 많이 재학하고 있다. 최근 한국교육개발원과 이준식 성균관대 교수가 중국인 유학생 122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41%가 반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응답했다. 더구나 한국에 오래 체류할수록 반한 감정이 높아지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 한양대 중국문제연구소가 발표한 ‘한중 양국 상호 유학생 실태와 개선 방안’에서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국내 대학의 허술한 학사관리와 부실한 문화교류, 교수와 동료 학생들의 차별에 불만이 많다고 답했다. 학생 부족을 메우기 위한 지방대의 무분별한 유학생 유치에도 문제가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새로 온 공장장이 “공장을 민주주의와 인권의 장(場)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고 가정해보자. 공장 사람들은 환호할지 모른다. 당장 제품을 잘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다. 또 공장장이 “우리 공장을 통해 학벌사회 노동사회의 문제를 바로잡자” “친환경 무상 구내식사로 보편적 복지를 확대하고 농정혁명을 이룩하자”고 외친다고 상상해보라. 그곳에서 생산하는 제품이 잘 팔릴 수 있을까. 그 공장장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공장을 맡은 것일까.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8월 31일 관훈토론회에서 “학교를 민주주의와 인권의 장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입시경쟁과 학교 서열화를 막아 학벌사회 노동사회의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 “친환경 무상급식은 보편적 복지를 확대하고 농정혁명을 이룰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라는 말도 그가 그 자리에서 한 발언이다. “이런 것이 진보라면 나는 진보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곽노현을 보며 나는 쿠데타에 성공한 변방의 장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무력 아닌 선거를 통해 뽑힌 교육감을 쿠데타 주도자에 비유하는 건 무엄한 일이다. 그러나 5·16쿠데타도 한때 군사혁명이라고 미화됐듯, 곽노현 쿠데타는 전교조군(軍)이 기획 제작한 교육혁명처럼 착착 진행 중이다.민중혁명세력 키우기가 지향점?취임하자마자 학업성취도 평가 결석자 문제를 놓고 교육과학기술부와 마찰을 빚은 곽노현이 체벌 전면금지, 교장 권한 축소, 무상급식비 예산편성, 수능 개편안 반대 등 정부와 맞선 정책은 일일이 열거하기 숨찰 정도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65%의 마음도 헤아리겠다”더니 노무현 전 대통령같이 주변을 코드인사, 더 정확히는 전교조 출신으로 채운 건 물론이다. 결과는 당장 교권붕괴 교실파괴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주 전교조 홈페이지엔 “교사에게 반말을 하거나 욕을 하는 일이 수시로 벌어진다. 한 학생은 여자 선생님의 배를 발로 차고 도망가면서 ‘때리려면 때려 봐. 신고할 테니까’라고 큰소리로 외쳤다”는 한 중학교 교사의 글이 올라왔다. 체벌금지를 선포한 서울시교육청 관할이 아니라 해도 영향력은 가히 전국적이다. 곽노현에게는 이런 패륜적 인성파괴적 교육현실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장으로 가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비칠지 모른다. 하지만 민주교육의 이상으로 평가받는 소크라테스의 문답교육에서도 교사와 학생은 동등하지 않았다. 교권 붕괴의 주원인을 한국교총은 체벌 금지로 인한 교사의 통제력 상실 때문으로 보는 반면, 전교조는 잘못된 입시교육에 대한 학생들의 반항으로 친다. 곽노현이 “우리 교육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파행의 근본원인은 모든 학생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이끄는 현행 입시제도”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전교조와 전교조에 업혀 당선된 곽노현의 궁극적 목표는 현행 교육제도의 전복(顚覆)이라 할 수 있다. 전복하려는 이유가 아이들을 학습부담에서 풀어주기 위해서라거나, 백번 양보해 민주주의와 인권의식을 키워주기 위해서라면 차라리 고맙겠다. 1980년대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과 민중교육지 사건 등을 수사했던 ‘공안검사’ 출신 고영주 변호사는 “전교조 핵심부의 목표는 학생들을 사회 민중민주주의 혁명세력으로 키우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80년대부터 운동권을 추적한 그에 따르면, 전교조의 ‘참교육’이란 일본 좌파 교원단체인 일교조가 강조했던 ‘공산주의 혁명을 위한 진교육(眞敎育)’의 직역이다. 전교조의 눈에는 30년간 교단에서 의식화 세례를 했는데도 아직까지 민중민주주의 혁명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 이상하고 불만스러울 수 있다. 고 변호사는 “우리나라 학생들은 밖으로 튀어나오려다가도 대학입시 때문에 움츠러들어 혁명이 안 된다는 것이 전교조가 내린 결론”이라고 진단했다. 결국 전교조와 좌파 교육감들이 학력평가를 반대하고 학생인권조례를 서두르는 것도 학생들을 입시에서 풀어줌으로써 거리의 혁명세력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는 지적이다. 그러니 서울시교육감에 ‘불과한’ 곽노현이 민주주의와 인권, 학벌과 노동사회, 농정혁명 등 사회변혁까지 언급하는 것도 당연할 수 있다.‘反안보 교육현장’ 대통령은 알까 우리나라는 연방제 국가 아닌 단일국가이고 단일국가의 정부는 하나뿐이다. 교육정책을 포함한 정책 결정권은 정부가 독점한다. 지방자치단체의 교육감은 정부가 정한 교육정책의 범위 내에서 법령이 허용한 집행권만을 갖는다. 서울시교육청이 독립정부라도 된 양 중앙정부의 교육정책을 뒤집는데도 교육부는 엄포만 놓고 있다. 고 변호사가 전교조를 이적단체로 규정하는 고발장을 2년 전 검찰에 냈지만 검찰도 아무 움직임이 없다. 지난주 대통령은 안보와 관련해 “당면문제 해결도 중요하지만 근본해결은 교육을 통해 해야 한다”며 교사들의 관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은 곽노현식 쿠데타의 현장과 실상을 다 알고 있을까.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