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유령이 타먹는 국민연금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21일 03시 00분


국민연금공단이 지난해 70세 이상 1만4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였더니 수급 대상자가 사망한 뒤 가족이 연금을 받는 ‘유령수급’이 11명이나 됐다. 시범조사에서 나온 결과이니 전수(全數)조사를 하면 더 늘어날 것이다. 한나라당 원희목 의원이 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0년부터 작년 8월까지 사망자를 제때 신고하지 않고 국민연금을 부정수급한 건수가 2만1611건이나 됐다. 국민연금 수급자가 300만 명을 돌파한 터에 유령이 연금을 타먹도록 방치하면 연금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기금 부실도 커질 수 있다.

현재 국민연금 수급자 중에는 가입 기간이 짧고 수급개시 연령은 빠른 조기노령연금이나 특례노령연금 대상자가 많다. 누구보다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므로 부정수급액은 반드시 환수해야 한다. 주로 부양가족이 아닌 사람을 부양가족으로 등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처럼 사망신고를 미루고 연금을 타먹는 신종 수법이 노출된 것은 처음이다. 지난달 광주에서는 24년간 모친의 사망 사실을 숨기고 1억6000여만 원의 보훈급여를 타낸 사람이 적발됐다.

모든 복지에는 도덕적 해이가 따라오기 쉽다. 지난해 일본에서도 호적상으로만 살아있는 유령노인이 23만 명이나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언론의 폭로로 이런 사실이 밝혀지자 지방자치단체가 연금지급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급격한 고령화에 들어선 한국도 일본과 같은 유령연금 지급사태를 바다 건너 불로 바라볼 수만은 없게 됐다.

수급자에 대한 정기적 실태조사는 물론이고 행정안전부로부터 사망 자료를 즉시 통보받는 방식으로 사후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 직원 1명이 3만 명의 사후관리를 담당하는 현재 시스템으로는 부정수급을 막기 힘들다. 국민연금 징수가 어느 정도 정착단계에 들어선 만큼 이제는 기금관리 및 지급 누수(漏水)를 차단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할 때다. 무엇보다 국민연금 수급자 실태조사를 의무화하고,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의 관리주체를 일원화하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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