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지자체장 私금고 전락한 지자체 장학재단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8일 03시 00분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법적 근거 없이 예산을 출연해 장학재단을 만들어 사금고(私金庫)의 쌈짓돈처럼 쓴 사실이 드러났다. 감사원이 검찰 수사를 요청한 전남 강진군은 강진군민장학재단을 세우면서 2005∼2009년 공사·용역·물품 계약을 맺은 324개 업체에서 14억 원을 거뒀다. 강진군수는 공무원들을 내보내 업체가 계약을 대가로 기부금품을 내도록 독려했다고 감사원이 밝혔다. 이 장학재단의 돈은 교사수당과 해외연수비 등으로 엉뚱하게 집행됐다. 감사원이 조사한 전국 145개 지자체의 장학재단도 강진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선 지자체장들이 경쟁적으로 장학재단을 세워 운영한 것은 다음 선거를 의식한 선심 행정 성격이 짙다. 지자체 장학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은 학생의 부모들이나 특별 수당을 받은 교사들은 현직 시장 군수 구청장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현직 프리미엄을 이용한 사실상 선거운동에 해당한다. 이런 돈이면 지자체장의 빛이 나지는 않겠지만 관내 공교육을 강화하는 데 쓰는 것이 훨씬 값지다.

최근 지방재정 건전성이 악화돼 경북 예천군 등 12개 지자체는 자체 수입으로 공무원 인건비조차 주지 못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전국 지자체의 장학재단 출연금 규모는 2005년 289억 원에서 2007년 633억 원, 2009년엔 1307억 원으로 증가했다. 업체들이 공사비에서 생돈을 떼어내 바쳤으니 관급 공사가 부실해지지 않았는지 걱정이다. 지자체장은 기금 조달을 위해 지방공무원들을 수족처럼 부렸다. 심지어 승진 대가로 장학재단에 기부금을 내도록 한 지자체도 있다.

지자체장이 공무원과 업체들의 손목을 비틀어 장학재단을 세웠더라도 가난한 집안의 학생들을 도왔다면 비난받을 소지가 다소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장학금이 도의원 자녀들에게 배정되고 도의원 해외 유람 비용으로 쓰였다니 배신감마저 느낀다. 광주 북구에선 구의회 의장, 전 부구청장 자녀를 장학생으로 뽑았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짓이다. 전라북도인재육성재단에선 장학재단 기금으로 도의회 의원 3명을 캐나다로 보내 유람을 시켰다. 장학재단이라는 ‘세탁소’를 거쳤을 뿐 결국 지방공직자들이 업자들의 돈을 받아 놀러 다닌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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