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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안재욱 결혼식에 왜 안 왔어?”(김흥국) “(안재욱과 친분이 없고 결혼 소식을) 모르는데 어떻게 가요?”(개그맨 조세호)한 예능프로에서 던진 김흥국(57)의 말이 화제다. 억울한 표정으로 해명 아닌 해명을 한 조세호도 ‘프로 불참러’(경조사 등에 상습적으로 불참하는 사람)라는 애칭을 얻으며 덩달아 인기가 올랐다. “너 왜 ○○에 안 왔어?”가 유행어가 됐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김흥국 현상’이라고까지 말한다. 그에게는 어떤 매력이 있으며 사람들은 왜 김흥국을 ‘즐기고’ 있을까. 행적과 스펙만 보면 그는 젊은 세대에게 ‘꼰대’다. 그는 1985년 노래 ‘창백한 꽃잎’으로 데뷔한 가수지만 해병대와 축구로 더 알려졌다. 그는 방송에서 해병대 경력을 과시하고 후배들에게도 “군대는 해병대”라고 말한다. 월드컵이 열리면 개최국을 찾아 현지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그를 쉽게 볼 수 있다. 군대와 축구를 사랑하는, 젊은 여성에게 전형적인 비호감 캐릭터. 여기에 두서없이 말을 내뱉다 잦은 말실수로 구설에 오른다. 돌발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도 많다. 1997년 음주 뺑소니 사고로 구속됐고, 2013년 음주운전으로 면허정지 처분을 받았다. 정치권 언저리를 맴돌며 2011년 정몽준 당시 한나라당 의원 지원활동을 하다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에서 퇴출됐다. 한 방송 관계자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데다 자기 고집이 세고 변화를 잘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아 함께 일하기 힘들었다”며 “이런 스타일 때문에 ‘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많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일관성이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인기의 요인이 되고 있다. 사람들은 그를 ‘원래 그런 사람’으로 여기며 그의 실수조차 재미로 받아들인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다른 연예인이 비호감 행동을 하거나 기대와 다른 행동을 하면 ‘이중적’이라고 비난받지만, 김흥국에게는 기대 불일치가 없다”며 “그의 말장난까지 ‘아재개그’로 유행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작위적이지 않은 듯한 모습도 인기 이유로 분석된다. 최근 거짓말탐지기가 동원된 MBC ‘섹션TV 연예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웃음을 위해 일부러 단어를 틀리게 말한 적 있냐”는 질문에 “없다”고 대답했는데, 이게 탐지기에서 진심으로 나오며 웃음을 줬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박진경 PD는 “TV에 나오는 그의 모습은 일상 그대로라고 보면 된다”며 “연출도 안 통하는 그의 리얼리티가 요즘 예능과 잘 맞는다”고 했다. 그의 인기를 사람들의 의식구조 변화에서 찾는 전문가도 있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처럼 악명 높은 인물도 유희로서 즐기는 문화가 우리도 생겨나기 시작했다”며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는 문화 풍토가 젊은 세대에게 정착되고 있다”고 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정보가 넘치면서 사람들이 이전 정보를 쉽게 망각하고 있다”며 “한 인물이 어떤 일로 물의를 일으켰는지를 따지기보다 현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즐긴다”고 했다. 그의 인기가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까. 그의 ‘두서없음’처럼 알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거침없는 화법은 예상 못한 웃음을 주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며 “잔실수가 치명적인 실수로 이어지지 않게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배중 wanted@donga.com·구가인 기자}

가수 이석원의 에세이집 ‘보통의 존재―블랙 에디션’은 올 1월 출간 뒤 줄곧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5월까지 3만5000부 이상 판매가 됐다. 사실 이 책은 신간이 아니다. 2009년 나온 노란 표지의 페이퍼백 책을 올 1월부터 검은 양장으로 바꿔 냈을 뿐이다. 출판사는 목표로 삼은 수량이 다 팔리면 다시 노란 표지의 오리지널 책을 판매할 예정이다. 출판사는 출간 5주년에도 양장 리미티드 에디션을 내놔 화제가 됐다. 바뀐 표지와 한정판 행사로 책에 대한 관심을 다시 모으는 데 성공한 셈이다. 최근 각종 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이처럼 출간된 지 꽤 지난 ‘오래된 책’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소설처럼 특별한 계기로 다시 관심을 받거나 혜민 스님의 옛 책들처럼 신간의 영향을 받아 다시 주목받는 책도 있지만 절묘한 제목이나 마케팅이 돋보이는 책들도 있다. 4년 전 출간된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는 ‘제목 장사’로 성공한 책이다. 서른 살 즈음 여성 독자들이 꾸준히 선택해 지난 4년간 20만 부 이상 판매됐다. 2년 전 출간돼 역사 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 중인 ‘설민석의 무도 한국사 특강’은 저자가 유명해지면서 책도 잘 팔리게 된 케이스. 출판사 측은 “책이 팔리려면 저자 인지도가 높아야 한다는 생각에 TV 프로그램 출연 등 미디어 노출을 꾸준히 도왔다”고 전했다. 새로운 편집과 디자인을 도입한 리메이크 책도 화제가 된다. 지난해 9월 출간된 김훈 작가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가 대표 사례. 과거 절판된 에세이집의 글을 다시 모아 꾸린 이 책은 출간 당시 월간 베스트셀러 종합 2위까지 올랐다. 최근 출간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의 ‘문장의 품격’은 2008년 나온 770쪽의 ‘고전산문산책’ 중 대중적인 내용만 300쪽으로 추려내 관심을 받았다. 출간 5주년이나 10주년, ‘100쇄 기념’ 같은 행사도 꺼져 가는 관심을 다시 살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광고인 박웅현 씨의 ‘여덟단어’(2013년) ‘책은 도끼다’(2011년)는 100쇄를 기념해 양장본 출간과 함께 강연회가 열려 이목을 끌었다. 출판계 관계자들은 10년 넘게 사랑받는 스테디셀러일수록 정기적으로 개정판을 내며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미학오디세이’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등을 낸 휴머니스트의 김학원 대표는 “트렌드가 빨리 변하면서 개정판을 내는 속도도 빨라졌다. 개정판은 검증된 콘텐츠라는 점에서 강력한 입소문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대형 서점의 매대는 많은 출판사가 책을 올리고 싶어 하는 곳이다. 매대에 오른 책 중엔 베스트셀러도 있지만 이른바 자릿세, 매대 광고비를 지불한 것도 있다. 서울 광화문과 강남 일대 대형 서점 매대의 한 달 광고비는 위치와 지점에 따라 적게는 60만∼70만 원에서 많게는 300만∼400만 원에 이른다. 대형 서점 매대에 노출된 책은 얼마나 팔릴까. 판매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3월과 4월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 ‘기대되는 신간’ 매대에 오른 책의 판매 실적을 살펴봤다. 이 매대는 프레젠테이션 경쟁을 통해 선발된 소형 출판사의 책을 광고해주는 코너. 대부분 광고·마케팅을 하지 않아 순수한 ‘매대 효과’를 살펴볼 수 있다. “거의 안 늘었어요. 기대했던 것보다 판매율은 미미합니다.” 각 출판사 취재 결과 이 매대에 책을 올린 대다수 출판사는 판매 실적에서 큰 효과를 얻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달과 비교해 해당 매장에서 10권 이상 책 판매가 늘었다고 답한 출판사는 드물었다. 단, 요리책 같은 일부 실용서와 아동책은 다른 책보다 실적이 좋았다. 이 경우도 매장 내 판매는 대부분 30권을 넘지 못했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3, 4월은 학기 초라 아동도서 수요가 있었고, 매대가 계산대 옆이라 인문도서보다는 가벼운 실용도서가 눈에 띈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매대 위치의 영향이 컸던 걸까. 그러나 광고비를 지불하고 서울 주요 대형 서점의 매대에 책을 올려본 출판사들도 ‘매대 효과’에 대해 회의적으로 평가했다. 다른 광고·마케팅이나 특별한 계기 없이 매대 광고만 의존해서는 판매율 상승을 기대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한 인문도서 출판사 대표는 “유명 저자의 책이나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른 책, 언론에서 호평을 받은 책은 매대 광고를 하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대형 서점 매대 노출만으로는 광고비의 절반도 못 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많은 출판사가 매대 광고를 하는 이유는 뭘까. 대형 서점의 매대 광고를 통해 출판사의 인지도를 높이거나 장기적인 입소문 효과를 기대하는 출판사가 많았다. 한 대형 출판사 마케터는 “매장에서 당장 책을 사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책을 구입할 잠재적 독자에게 노출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매대 광고를 대형 서점과의 ‘원활한 관계’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출판사도 많았다. 주로 예술도서를 내는 한 출판사 마케터는 “매대 광고를 했던 책은 광고 외적으로도 서점에서 노출해주는 빈도나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걸 느낀다”고 답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 ‘셀러브리티(celebrity·유명인)’의 시대다. 매체가 다양해지고 입소문의 힘이 강해질수록 스타의 영향력은 커진다. 연예인이 입는 옷과 먹는 음식, 즐겨 찾는 장소가 인기를 얻는다. 책은 어떨까. 최근 베스트셀러를 낸 출판사 12곳을 대상으로 ‘저자로 삼고 싶은 스타가 누구인지’에 대해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 출판계에도 유재석 파워 이른바 ‘유느님’은 출판계에서도 통했다. 설문에 응한 12곳 출판사 중 절반 이상이 방송인 유재석(44)을 저자로 삼고 싶다고 답했다. 출판사들은 자서전(혹은 자전적 에세이)과 자기계발서 두 분야에서 그를 가장 ‘탐나는’ 스타로 꼽았다. 고세규 김영사 이사는 “유재석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제 역할을 수행하는 리더다. 리더십 비결을 소개하는 책은 관심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우 유아인(30)이 2위였다. 출판사들은 그에 대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떠돌아다니는 유아인의 조각 글만 모아도 에세이집 한 권이 될 것 같다” “그에게서 젊은이의 고민과 열정, 기성세대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을 듣고 싶다”고 밝혔다. 가수 이승환(51)과 배우 윤여정(69) 김혜수(46)도 출판사에서 모시고 싶어 하는 인물이었다. 이승환에 대해서는 “나이가 무색하게 늘 새로운 무대를 보여준다”, 윤여정에 대해서는 “삶 자체가 한 권의 책으로 충분히 묶일 것 같다”고 했다. 배우 김혜수를 꼽은 이들은 “요즘 젊은 여성들의 롤 모델”이라고 답변했다. 1990년대 싱어송라이터에 대한 선호도 눈에 띄었다. 가수 유희열(45) 김동률(42) ‘자우림’의 김윤아(42)의 에세이집을 내고 싶다는 출판사도 적지 않았다. 한 편집자는 “유희열과 김동률은 여성 편집자들의 ‘로망’이다. 글도 잘 쓰고 20∼40대 여성 팬덤도 있다”고 전했다.○ 아이돌 책을 내지 못하는 이유 가수 조용필(66)과 래퍼 도끼(26)의 자서전, 배우 송중기(31)의 화보집, 가수 이효리(37)의 요리책을 내고 싶다는 답변도 있었다. 지드래곤(자서전, 자기계발서) 엑소(자기계발서) 방탄소년단(〃) 같은 아이돌 가수를 꼽은 출판사도 있었다. 2009년 빅뱅이 낸 자기계발서 ‘세상에 너를 소리쳐’는 55만 부 이상 판매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돌 관련 책 출간에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형필 쌤앤파커스 기획실장은 “요즘 아이돌은 과거에 비해 기획사에 의해 만들어진 느낌이 강해 ‘뻔하다’는 느낌을 줄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출판사 관계자도 “어느 정도 판매는 보장되겠지만 기획사 입김이 세고 몸값이 높아져 ‘남는 장사’가 어렵다”고 했다. 한편 ‘추천사를 맡기고 싶은 스타’를 묻는 질문에는 소설을 쓴 가수 이적(42)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이어 방송인 김제동(42), 배우 김혜자(75), 유재석, 이효리의 이름도 나왔지만 “추천사를 받고 싶은 연예인이 없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연예인 추천사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며 “신뢰성 있는 이미지를 갖춘 연예인이 흔치 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답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중국인에 대한 감정은 양가적이다. 이들은 서울 강남과 명동 일대에서 통 큰 쇼핑을 하는 ‘큰손’이자 모셔야 할 손님이다. 또 ‘짝퉁’의 대표적인 생산자이며 여전히 인권 탄압에서 자유롭지 못한 ‘2등 시민’처럼 보이기도 한다. 요 근래 국내 언론을 비롯한 대중매체에서 그려진 중국인의 모습이다. “(중국) 민중의 세계는 결코 서양식 ‘근대’를 따르지 않았다. 자기 나름의 근대 혹은 현대를 만들어 낸 것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비교문화학자이자 사상가인 쑨거(61)는 중국을 평가하는 잣대가 지나치게 서구적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중국에 대한 ‘오해’를 풀고자 일본의 잡지에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에세이 25편을 연재했다. 이 책은 그가 바깥 세상에 소개하고 싶은 ‘다른 중국’의 민낯이다. 저자에 따르면 최근 중국에 등장한 ‘산보(散步)’는 중국의 성숙해진 시민의식을 상징하는 사례다. 산보는 큰 길에 대규모 시민이 모여 함께 걷는 시위 방식이다. 2007년 샤먼(廈門) 시에서는 정부의 화학공장 건설을 반대하는 산보를 통해 공장 건설을 늦춘 바 있다. 저자는 “격렬한 저항은 아니지만 정부나 체제의 통치 방식을 ‘바로잡는’ 일을 통해 사회개혁을 진전시키고 있다”고 평가한다. 주로 정치와 사회, 역사 관련 책을 써온 저자는 이 책에서 생활 속 변화를 소개하지만 정치·사회적 해석도 빠뜨리지 않는다. 중국에서 나오는 ‘산자이(山寨)’(샤오미 같은 복제품을 가리키는 용어)에 대한 해석은 재밌다. 저자는 단종된 자신의 휴대전화 배터리를 산자이 제품으로 바꾸면서, 새 제품 소비를 줄이고 ‘의도치 않게’ 독점자본 시스템에 도전하는 서민의 생활양식을 읽어낸다. 자신의 집 인테리어 공사를 해준 농민공(농촌 출신 빈곤층 노동자)에게 ‘켜짐’과 ‘꺼짐’이 거꾸로 연결된 전기 스위치를 항의한 일화도 있다. 그의 항의에 대해 농민공이 “습관을 바꾸라”고 설득한 것을 두고 혁명의 시대를 버텨온 중국 농민들의 유연성과 연결짓는다. 문화혁명기에 성장한 저자는 부모를 따라 농촌인 둥베이(東北) 지방으로 보내져 농업 생산에 종사했다. 그는 ‘문혁 시기 노동자는 자발적으로 헌신했다’는 보수적인 입장을 거부하지만 노동자의 고통은 인정한다. 하지만 문혁이 고통뿐이었다는 주장도 반대한다. 그는 어린 시절 먹었던 둥베이 지방 팥떡의 시큼한 맛을 떠올리면서 “문혁의 고통과 추억은 상반되는 게 아니라 한 사람 안에 공존한다”고 썼다. 외부인의 시각에선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도 있다. 그러나 중국 상황에 대한 중국적인 해석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27일 국내 강연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저자는 “어떤 면에서 중국은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깨끗하지 못한 사회가 맞지만 더러운 진흙탕에서 아름다운 것을 길러내는 곳 역시나 중국”이라고 했다. 그는 “책을 낼 당시 일본의 혐중 분위기에 맞서 건설적인 논의를 하고 싶었다”며 “조만간 나올 중국판 책에는 중국 사회에 대한 더 많은 비판을 던질 예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책 속의 ‘중국’이 장밋빛도 아니고 잿빛도 아님은 물론이다. 장밋빛이나 잿빛을 포함한 여러 색이 섞여 혼돈으로 가득 찬 중국이 있고 이것이 평범한 생활인에 의해 힘차게 움직이고 있다.” 작가의 생각이 집약된 말이다.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김봉태 작가(79)의 작품은 원색과 기하학적인 형태가 두드러진다. 그는 이우환을 비롯해 1970년대 이후 한국 미술계를 주도한 모노크롬(단색) 화법을 따르지 않았다. 그 대신 선과 면, 색을 통해 차별화된 양식을 구축한 작가로 꼽힌다. 김봉태전이 7월 1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이 2014년부터 진행한 ‘한국현대미술작가 시리즈’의 회화 부문 네 번째 전시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드로잉과 작가의 대표작 100여 점이 전시된다. 전시는 크게 네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1960년대 초반 작가의 표현주의 추상화 작품(‘표현적인 추상미술의 시기’)과 1960년대 중반 미국 유학 이후 작품(‘기하학적 조형 및 삼차원의 탐색’)을 비교하면 작가가 삼차원적 입체성을 추구한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또 원색과 면을 강조하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의 작품(‘색면의 유희성과 변형 캔버스’), 빛을 투과하는 반투명 재료인 플렉시스글라스를 사용한 최근 작품이 시기별로 전시된다. 1961년 서울대 미대 회화과를 졸업한 그는 당시 작가 등용문이던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반발해 만든 ‘1960년 미술협회’와 ‘악튀엘’의 창립 멤버로 활동했다. 1963년 파리 비엔날레에 판화를 출품했고, 미국 오티스미술대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나 1980년대 중반까지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덕성여대 교수로 교편을 잡았지만 1992년 이후엔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책은 콘텐츠다? 이제는 책의 물성(物性)과 장식적 요소도 중요하다. 주부 이소연 씨(36)는 최근 전원주택을 리모델링하며 인테리어의 주제를 ‘책’으로 잡았다. 그는 미술 작품이나 인테리어 소품 대신 미국 작가 바버라 쿠니나 레오 리오니의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책 등으로 거실과 현관, 주방 등 집 안 곳곳을 꾸몄다. 그의 집에선 책이 책장에 일렬로 꽂혀 있지 않다. 복도 계단에 세워 진열된 책이 있는가 하면, 펼쳐진 상태로 전시된 책도 있다. 이 씨는 책 표지를 전시할 수 있게 전면 책장도 따로 맞췄다. 그는 “예술작품으로도 손색없는 책이 많다”며 “적은 돈으로 책만큼 다양하게 인테리어 연출을 할 수 있는 소품도 없다”고 말했다. 이 씨처럼 ‘장식’으로의 책 가치에 주목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예쁜 책을 오브제로 사용한 사진이나 화려한 책장을 자랑하는 사진을 찾는 게 어렵지 않다. 서울 홍익대 앞이나 이태원 등에는 책을 대량 비치해 놓은 북카페가 몰려 있다. 책을 테마로 한 술집, 책바도 생겼다. 출판사 문학동네가 운영하는 북카페 ‘카페 꼼마’의 장으뜸 대표는 “애서가가 아닌 손님들도 책이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을 때 느껴지는 정취를 좋아한다. 카페를 열기 전 예상했던 것보다 반응이 훨씬 좋아 2호점에 이어 다른 지점 개설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인테리어 소품을 파는 일부 업체에서는 책 표지만 있는 모형책, 영미권 잡지, 헌책을 판매한다. 최소 50년 이상 지난 영미권 책을 판매하는 빈티지 전문점 ‘올드시티’의 이용혁 대표는 “레스토랑이나 호텔, 카페 등에 인테리어용으로 책을 판매하는 경우가 다수지만 개인 고객도 적지 않다”고 했다. 출판사들도 책의 장식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학 전집을 비롯한 시리즈 도서를 내는 한 대형 출판사 관계자는 “시리즈 도서의 경우 중간에 사소하게 디자인이 바뀌어도 항의 전화를 많이 받을 만큼 표지 디자인이 중요하다”며 “책 수집 독자가 진열하는 방식을 고려해 책등(옆면) 디자인을 먼저 하는 출판사도 있다”고 말했다. 예술서 전문 출판사인 미메시스의 홍유진 대표는 “책 기획 단계부터 내용뿐 아니라 책을 들고 다닐 때나 진열할 때의 장식성을 고민한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장식적 가치가 높은 화집이나 사진집 같은 이른바 ‘커피 테이블 북’이 잘 팔리지 않는다는 인식이 높았지만 이제는 이런 수요도 늘고 있다. 홍 대표는 “그래픽 노블 전집이나 예술서 시리즈를 인테리어 목적으로 구입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고 했다. 이런 트렌드에 맞춰 책을 다양한 방식으로 진열할 수 있는 가구도 늘고 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박지현 달앤스타일 대표는 “기성제품 중에서도 전면 책장이나 걸이식 책꽂이처럼 일반적인 책장과 디자인이 다른 제품이 많다”면서 “책에 담긴 이야기가 각각인 만큼 주제와 공간의 분위기를 고려해 매치하는 것이 좋은 연출법”이라고 조언했다.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회장님이 1950년생이시죠?” “아마 그럴걸요. 나이 얘길 싫어하세요.” ‘회장님 나이’를 묻자 한 직원이 답했다. 실제 경기 성남시 판교 이노디자인에서 만난 김영세 대표(67)는 ‘늘 그렇듯’ 청바지에 스니커즈 차림이었다. 그가 세운 디자인 회사 이노디자인은 최근 30주년을 맞았다. 그에겐 ‘산업디자이너 1세대’ ‘디자인계의 그루’ 같은 수식어가 붙는 한편 ‘시대를 잘 만난 사람’ 같은 말도 뒤따른다. “문화인인지 사업가인지 어떻게 수식할지 모르겠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문화산업인’ 아니겠느냐”며 사무실에 놓여 있는 2012년 ‘옥관문화훈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는 마음에 드는 수식어로 ‘혁신가’라는 말을 꼽았다. 이노디자인이라는 상호도 혁신이라는 뜻의 ‘이노베이션(innovation)’에서 따왔다. ―디자인의 시대라고 한다. 국내의 디자인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나. “잠재력은 있다. 다만 아직도 디자인을 필수가 아닌 사치로 보는 기업들이 많다는 건 아쉽다. 그런데 계속 바뀌겠지. 어차피 디자인은 ‘대세’니까.” ―혹시 디자이너로서 회의가 든 적 있었나. “전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디자이너가 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빅 디자인’의 시대다. 과거 디자인을 장식으로 여겼다면 이제는 상품 기획부터 디자인을 염두에 둬야 한다. 요즘 실리콘밸리 창업자 중 디자이너 출신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다. 숙박공유 사이트 에어비앤비 창업자도 디자인 명문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 출신이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김 대표는 미국 일리노이대 유학 후 같은 대학에서 2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학교를 그만둔 것은 창업을 위해서였다. 그는 1983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을 찾아가 ‘디자인 회사를 만들 테니 프로젝트를 달라’고 요청했다. 30대 초반 대우의 디자인 계열사 대표와 대우전자 디자인 총괄이사를 지냈다. 그러나 3년 뒤 대우를 나왔고 이노디자인은 이때 만들어졌다. ―어떤 이는 운이 좋았다고 평가한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뭐든지 처음 한다는 것은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왜 안정적인 선택지를 버리고 창업했나. 요즘 젊은이들은 창업보다는 대기업 입사를 꿈꾼다. “중학교 때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이라는 미국 잡지를 본 이후부터 내 꿈은 산업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나도 그런 멋진 것을 디자인한다는 생각을 품으며 살았다. 창업을 해야 했다. 결국, 창업은 ‘디자이어(desire·욕구)’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돈 벌겠다는 게 아니라 다른 욕구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청년에게 창업을 독려하려면 정부 지원과 별개로 성공 모델이 많아야 한다.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욕구를 주는 사람 말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어디서 구하나. “습관처럼 상상을 즐긴다. 가끔 꿈에서도 아이디어를 낸다. 어젯밤엔 소셜미디어서비스를 만드는 꿈을 꿨다. 괜찮은 꿈이라 새벽에 일어나 기록해 뒀다.” ―포털사이트 프로필을 보니 아들이 힙합 뮤지션 솔튼페이퍼더라. 자녀들에겐 뭘 강조하나. “각자 원하는 걸 한다. 미국에 있는 딸(리아 김)은 나이키의 요가 홍보대사다. 원래 투자은행을 다니다가 ‘설레는 일, 몰입할 수 있는 일, 남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면서 요가 강사로 전직했다. 지지해 줬다.” 회사 로비에 놓인 30주년 기념물에는 ‘Celebrate last 30, Ignite next 30& Beyond(지난 30년을 축하하고 다음 30년을 불 지피자)’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인터뷰 끝 무렵, 그가 말했다. “얼마 전 서른 생일을 맞았다. 앞으로 더 열심히 뛰어야지.”성남=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영국의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1969년 영국 식품도매회사 부커그룹이 제정해 ‘부커상’으로 불리다 2002년 금융투자회사 맨그룹으로 후원사가 바뀌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 상은 본상과 인터내셔널 부문으로 나뉜다. 본상은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 작가를 대상으로 했으나 2014년부터 국적에 상관없이 영어로 쓰고, 영국에서 출판된 모든 문학책을 대상으로 한다. 한강이 수상한 인터내셔널 부문은 2005년 제정됐으며 현재는 영어 외의 언어로 쓴 소설과 번역자에게 공동으로 준다. 지난해까지 작가의 작품 세계 전체를 평가해 격년제로 시상했지만 올해부터 작가의 한 작품을 대상으로 매년 시상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영어권 출판 관계자의 추천을 받은 소설을 대상으로 평론가와 소설가, 학자로 구성된 선정위원회가 수상작을 선정한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유정이와 승훈이는 같은 6학년이지만 방과후 시간표는 완전히 다르다. 유정이는 오후 3시 학교 수업이 끝나면 5시까지 공부방에서 보낸다. 저녁을 먹은 뒤엔 1시간 동안 영어학원에 가고, 그 후로 주 3회 2시간씩 수학 과외를 한다. 학교 공부로 부족한 건 학원에서, 학원 수업으로 부족한 건 과외로 보충하는 것이다. 학교와 학원 숙제까지 마무리하면 밤 12시는 돼야 잠자리에 든다. 승훈이는 오후 3시 반에 학교가 끝나면 의무적으로 체육 활동을 한다. 봄엔 육상, 가을엔 미식축구다. 그 후엔 학교 밴드 클럽에서 드럼을 배운다. 6시 넘어 집에 돌아오면 저녁 먹고 1시간 정도 숙제를 한 뒤 놀다가 10시쯤 잔다. 동갑내기 유정이와 승훈이의 일상을 갈라놓는 건 교육 환경이다. 유정인 서울, 승훈이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산다. 한국의 초등 고학년 중 많은 아이가 유정이처럼 살아가고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1조가 보장하는 ‘놀 권리’를 빼앗긴 채.○ “예체능은 저학년 때 끝내야죠” 아이들은 뛰고놀아야 할 시간에 다들 학원에 간다. 아동복지 전문기관인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가 지난해 9∼11월 초등 4, 5학년과 중고교생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권장 시간(하루 30분∼2시간)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하는 초등학생 비율이 63.5%로 중고교생(41.0∼48.4%)보다 높았다. 10명 중 6명 이상은 운동 시간이 하루 1시간도 안 됐다. 초등 4학년이 되면 예체능은 ‘사치’다. “피아노랑 미술은 3학년 때까지 하고 그만뒀어요. 영어, 수학학원에 들렀다 집에 오면 오후 7시예요. 밥 먹고 나면 학원 숙제해야 해요.”(6학년 남학생) “3학년 때까지 방송 댄스를 배웠어요. 대회에서 상도 타고 잘하는 편이었는데 4학년이 돼 수학학원에 다니면서 그만뒀어요.”(5학년 여학생) 6학년 아들을 둔 엄마 강모 씨는 “영어와 수학에 치중하다 보니 나머지 과목에 쏟을 시간이 없다”고 했다. “아이가 어렸을 땐 악기 하나쯤은 다룰 수 있고 운동도 잘하면 평생 자산이 될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고학년이 되면 그런 생각은 사치라는 걸 깨닫게 돼요. 교육에 더 빠삭한 엄마들은 예체능을 초등학교 입학 전에 끝내야 한다고도 해요. 영어, 수학에 집중하려면.” 예체능 교육마저 순수한 즐거움보다는 입시를 위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 “예체능도 사실 수행평가 때문에 하죠. 피아노나 미술의 기술적인 부분을 저학년 때 뗀 뒤 수행평가 임박해서 바짝 개인 레슨을 붙이는 게 훨씬 효율적이에요.”(5학년 딸 엄마) “아들 둔 부모들은 체육은 고학년까지 시키는 경우가 많아요. 키 크라고요. 우리 아들은 축구나 야구를 하고 싶어 하지만 농구를 시키고 있어요. 공부 시간 많이 안 잡아 먹고 키 크는 데 효율적인 종목을 찾은 거죠.”(6학년 아들 엄마) 4학년이 되면 책도 ‘끊는다’. 입시에 도움이 되는 역사나 학습만화 위주로 읽고 문학은 고전 요약본을 본다.(박지은 아동출판 비룡소 편집장) “저학년 땐 하루에 10권 넘게 읽었는데 요즘엔 엄마가 도서관에서 골라주는 역사책이나 과학 책 위주로 읽어요. 난 탐정 소설이 좋은데….”(6학년 남학생) “여가생활은 커서 생활이 안정되고 여유가 생길 때 하는 것 아닐까요. 어른들도 그렇잖아요. 돈 있는 사람이 골프 치고, 취미 생활을 하는 거죠. 나중에 그런 여유 만들어주고 싶어서 아이 학원 보내요.”(6학년 아들 엄마)○ “놀 시간 있어도 놀 줄 몰라요” 여유 시간이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여가의 질은 더 큰일이다. 아이들은 여가 시간의 대부분을 TV를 보거나 컴퓨터 혹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데 쓴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의 조사에서 초등학교 4, 5학년의 TV 시청 시간은 평일엔 하루 1시간 24분, 주말엔 2시간 40분이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이용 시간을 합치면 평일은 2시간 48분, 주말엔 4시간 5분이나 된다. 이 중 학습이나 정보검색에 쓴 시간은 35∼37분(평일)이고, 나머지는 게임, 소셜미디어, 동영상 보느라 쓴 시간이다. 대개 남학생은 게임, 여학생은 채팅으로 나뉜다. “모바일 게임 ‘클래시오브클랜’ 레벨 69등급까지 올리고 싫증나면 ‘무한도전’ ‘런닝맨’ 재방송 봐요. 친구들과 만나 1시간에 500원인 싼 PC방에 들어가 리그오브레전드, 서든어택 하죠. 저녁엔 유튜브 동영상 보는데, 턱형 양띵 라포 같은 유명 게임 BJ(개인 방송 진행자)들이 하는 영상을 좋아해요.”(6학년 장모 군의 휴일) “TV로 오락 프로그램 재방송 봐요. 친구들이랑 만나면 대형마트 문구점 캔디숍 돌아다니죠. 노래방 갔다가 집에 와선 채팅하고, 온라인 쇼핑몰에서 스키니진 구경하고, 남자 친구랑 보이스톡 하고 그래요.”(6학년 김모 양의 휴일) 여가 활동은 아이들의 행복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조사에서 운동 시간이 늘수록 초등학생의 자아 존중감과 생활 만족도는 높아졌다. 반면 미디어 이용 시간이 길수록 자아 존중감과 학업 성적은 떨어지고 우울감, 공격성, 스트레스 정도는 높아졌다. 선진국들이 다양한 방과후 활동과 운동을 중시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결국 아이들이 부모를 닮는 것 아닐까요. 어른들도 술 마시고 노래방 다니며 스트레스 풀고, 시간 나면 TV 보면서 뒹굴뒹굴하잖아요.”(회사원 이모 씨·45) “베이징 주재원으로 근무할 땐 주말마다 아이들과 놀았어요. 아버지들이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아이들을 불러 모아 축구나 야구를 하면서 놀아주죠. 한국에 와선 주말에도 거래처 사람들과 만나 등산하거나 골프장 가요. 아이들 여가의 질을 높이려면 부모들의 여가 생활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회사원 장모 씨·46)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구가인 기자·전주영 기자}

여성학자가 쓴 페미니즘 책이다. “여성 대통령 시대에 페미니즘 책이라니!” 혀를 차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페미니즘은 진부하고 낡은 것으로 여겨지게 됐다. 페미니스트에겐 제 권리만 외치는 깐깐하고 피곤한 여자라는 이미지도 덧씌워져 있다. 온라인에 성 평등에 대한 글이 올라오면 ‘꼴페미’ ‘페미충’ 같은 욕이 댓글로 달린다. 고위직 여성이 뉴스에 매일 등장하고, 알파 걸이 베타 보이들을 위협하는 세상에서 페미니즘이 왜 필요한가 반문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현재 한국 여성의 평균 임금은 남성의 63% 정도에 불과하다. 역대 최다라지만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지역구 여성 의원은 10명 중 한 명 정도며, 여성 관리직 역시 10명 중 한 명 정도다. 반면, 강력 범죄 피해자 10명 중 8명 이상이 여성이다(여성정책연구원 성인지 통계). 굳이 통계를 대지 않더라도 60대인 대통령부터 평범한 10대 소녀까지 대부분의 여성은 능력 못지않게 외모에 대한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이 책은 성차별을 ‘과거의 일’처럼 여기며 여성들이 오히려 권력을 휘두르는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이 시대의 ‘진화된 성차별’에 대해 논하고 있다. “TV에서 보는 고위직 여성의 모습은 남성이 장악한 전문직 세계에서 여성의 정복한 정도를 과장되게 그려낸다. … 이런 현실 도피적인 이미지들은 연봉이 트럭 한 대 값밖에 되지 않는 현실 속의 무수한 여성들의 처지를 가려 버린다.” 저자는 특히 대중매체에 주목한다. 199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미국 텔레비전과 영화, 잡지를 꼼꼼히 살폈다. 이 시대에 ‘여자는 무엇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이는 없다. 그 대신 ‘여자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그럴 능력이 있지만 어쨌듯 여성스러워야 한다’는 메시지가 통용된다. 영화 ‘툼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나 ‘미녀 삼총사’의 주인공 같은 ‘T팬티를 입은 여전사’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등장했다. 실제로 21세기 소녀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가슴 크기와 몸무게에 사활을 건다. “T팬티를 입은 여전사들은 여성들이야말로 힘과 공격성을 여성성 및 섹슈얼리티와 결합할 수 있으며, 그래야 한다고 주장했다. … 다른 한편으로 여전사들은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다시 한 번 굳건히 했고, 여성이란 도자기 같은 피부에 가슴이 풍만하고 날씬해야만 여느 남성만큼 강해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진화된 성차별은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발견된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힐러리 클린턴이 선거 유세 중 눈물을 보인 것을 두고 남성 평론가들은 “표를 얻기 위한 어설픈 계략”이라고 비난했다. 여성 앵커 케이티 커릭이 CBS의 간판 저녁 뉴스 앵커로 발탁되자 사람들은 “아침 프로그램 출신이라 ‘진지함’이 부족하다”고 평했다. 다른 아침 프로 출신 남성 앵커들에겐 드문 비판이었다. 저자는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미국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 같은 드라마가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는 지적부터 셀러브리티 매체가 여자 스타에게 출산과 양육을 강요한다는 비판까지 다양한 화두를 던진다. 혹자는 ‘웃자고 하는 일에 죽자고 덤빈다’며 불편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진화된 성차별에 보호막을 제공한 것은 바로 이러한 ‘그건 모두 농담이야’라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여전히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베르나르 베르베르(55)가 ‘제3인류’의 한국어판 완간을 기념해 방한했다. 1994년 처음 한국을 찾은 후 일곱 번째, 2013년 이후 3년 만이다. 13일 서울 중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베르베르는 간담회장에 들어서자마자 스마트폰으로 취재진을 촬영했다. “한국은 제게 특별한 나라에요. 제 첫 작품부터 사랑해주고 저를 이해해준 나라니까요.” 베르베르는 자국 프랑스보다 한국에서 더 사랑받는 작가다. 교보문고가 지난 10년간 국내외 소설 누적 판매량을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개미’ ‘나무’ ‘타나타 노트’ 같은 히트작을 낸 베르베르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국내에서 그의 책은 1000만 부가 팔렸다. “한국은 굉장히 미래 지향적인 나라죠. 제 글이 진화나 미래를 소재로 삼다보니 미래지향적인 한국인들이 가장 잘 이해해주지 않았나 싶어요. 좋은 출판사를 만난 것도 있고요.” 그는 작품에 한국에 대한 애정을 담아왔다. ‘제3인류’에는 현대자동차가 등장하고 한국은 ‘로봇 공학에서 가장 앞선 나라’로 나온다. 이번에 국내 출간된 5,6 권에서는 한국인 고고학자 히파티아 김(한국이름 김은선)이 여주인공으로 새로 등장한다. 그는 “한국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했다”면서 “한국인 여성 주인공을 통해 남녀의 만남, 동서양의 만남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근에 한국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한국 건국 신화에 대해 알 수 있었죠. 프랑스 독자들에게도 한국 역사나 신화를 알려주면 재밌을 것 같아서 책에도 단군신화에 대한 내용을 담았어요. 한국 역사 중에서는 특히 1900년 이후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아요. 주변 강국들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무수히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지금의 발전을 이룬 것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소설에서 인공 지능(AI)을 자주 소재로 삼았던 그는 최근 한국에서 진행한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에 대해서는 “10년 이내에 인간만큼 똑똑한 안드로이드가 개발 될 것”이라며 “AI는 그 자체로 나쁘거나 좋은 것도 아니지만 어떻게 사용할지 인간에게 달렸다”고 말했다. “지능보다 인간이 더 흥미로운 것은 자아죠. ‘제3인류’에도 자아를 인식하는 안드로이드 로봇이 나와요. 자아 때문에 근심 걱정에 사로잡힌 로봇이죠. 너무 공상과학 같은 얘기지만 미래 언젠가는 이런 로봇이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그 때 로봇이 인간 위에 군림하는 문제를 항상 생각해야 해요. 이건 우리시대가 고민할 문제라고 봅니다.” 20일 출국하기 전까지 베르베르는 7박 8일간 강연을 비롯한 바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15일에는 야구 시구도 한다. 그는 방한 중에도 “틈틈이 새로운 작품을 쓰고 있다”고 했다. 얼마 전 수면과 꿈을 다룬 소설 ‘6번째 수면’을 프랑스에서 출간한 후 “고양이에 대한 새로운 소설을 10월 프랑스 출간을 목표로 집필 중”이라고 했다. “열여섯 살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글을 써요. 지금도 아침 8시부터 낮 12시 반까지 쓰는데, 소설 쓰기는 운동과 비슷해서 매일 서야 발전할 수 있죠. 어떤 작가들은 글쓰기가 괴롭다고 하지만 나에겐 정말 즐거움뿐이에요.”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당신을 요리하고 싶어.’ 그가 속삭인다. ‘통째로.’ 아, 어쩌면 좋아. 내 몸이 속에서부터 뜨거워진다.” 오해 마시길. 요리책이다. ‘치킨의 50가지 그림자’는 베스트셀러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패러디했다. 원작이 여대생과 억만장자의 사랑을 파격적으로 묘사했다면, 이 책은 평범한 생닭이 요리사 ‘칼잡이’ 씨를 만나 ‘막나가는 치킨’으로 변하는 과정을 50여 가지 닭 요리법과 함께 담았다.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를 패러디한 ‘베이킹 배드’, ‘워킹 데드’를 패러디한 ‘스내킹 데드’ 등 영미권에서는 인기 영화나 소설을 패러디한 요리책이 많다. 그중에서도 이 책은 25만 부 이상 판매됐다. 이 책에 이어 ‘베이컨의 50가지 그림자’ 같은 요리서도 나왔다. 닭 요리에 성적 코드를 접목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만 소개된 요리가 너무 서구적이다. 식재료는 낯설고, 오븐이 없다면 따라하기 힘든 요리가 많다.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태후’는 끝났지만 ‘송혜교 립스틱’은 남았다. 이 립스틱은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강모연 역의 송혜교가 간접광고(PPL)를 한 아모레퍼시픽 화장품 브랜드 라네즈 ‘투톤립바’를 말한다. 송혜교는 16부작 드라마에서 총 10가지 색상의 투톤립바를 바르며 등장했다. 3월 출시된 이 립스틱은 지난달까지 59만 개가 국내에서 팔렸다. 특히 첫 회 등장한 11호 쥬시팝은 16만 개나 팔려 단일제품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다. 중국권 판매량은 그 몇 배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기자도 투톤립바 쥬시팝을 발라봤다. 립스틱에 두 가지 색상이 담겨 있어 입술에 입체감을 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하지만 송혜교 같은 입술 색은 나오지 않았다. 포털 사이트에서 이 립스틱에 대한 인터넷 평점은 5점 만점에 4점대 후반. 하지만 “생각했던 그 색상이 아니다”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Q. 정말 송혜교는 ‘송혜교 립스틱’을 발랐나 혹시 드라마 속 립스틱은 다른 제품 아니었을까. 그러나 라네즈 측은 “(송혜교가) 드라마에서 해당 립스틱을 바른 게 맞다”고 했다. 화장품 광고를 많이 찍은 한 감독은 “CF에서도 광고 제품과 같은 걸 사용한다”고 전했다. 단 립스틱 색을 예쁘게 표현하려면 밝고 화사한 피부 톤이 중요하기 때문에 강한 조명과 영상 보정에 공을 들이긴 한다. 그러나 이 감독은 “이런 기술도 본판을 많이 바꾸진 못한다”면서 “결론적으로, 립스틱 색이 유독 예뻐 보였다면 송혜교의 타고난 피부 덕이다”라고 강조했다. Q. 송혜교 립스틱은 왜 잘나갈까 송혜교는 특히 립스틱을 잘 소화하는 배우다.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바르고 나온 립스틱도 ‘완판’됐다. 밝은 피부 톤에 은은한 눈매, 도톰한 입술이 입술 화장을 강조하기에 더없는 조건이라는 평을 받는다. 이미지 컨설턴트인 강진주 퍼스널이미지연구소장은 “화면을 기준으로 송혜교의 피부색은 아주 환한 노란 톤이다. 이런 무결점의 피부를 가진 한국 여성은 5∼10%밖에 안 된다”고 평했다. 강 소장은 또 “인기 색상인 쥬시팝은 피부색이 노란 한국인과 비교적 잘 맞지만 피부 톤이 어둡다면 안 어울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 방송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입술 고유의 색도 중요하다. 립스틱을 바르기 전 립 베이스를 발라주면 발색감이 좋다”고 조언했다. Q. PPL로 립스틱이 사랑받는 이유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전지현 립스틱도 있었다. 이외에도 최근 여자 연예인 이름을 딴 ‘○○○ 립스틱’은 넘쳐난다. 드라마 PPL 화장품 중 립스틱은 화제성이 높다. 화장품 마케터들은 “컬러 때문에 다른 화장품보다 주목도가 높다” “다른 품목보다 가격 부담이 적어 대중적 소구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방송 관계자는 “립스틱이 드라마 소품으로 활용도가 높아서 인상적인 PPL을 만들기 좋다”고 했다. 앞으로도 제2, 제3의 송혜교 립스틱이 나와 여심을 유혹할 것이다. 지갑을 열기 전, 송혜교 립스틱을 샀다는 한 누리꾼의 댓글은 마음에 새길 만하다. “뭐, 모든 것의 완성은 얼굴이니까요.”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회사원이자 주부인 전지은 씨(33)는 핸드메이드 공예품에 흠뻑 빠져 있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 백화점과 벼룩시장, 핸드메이드 전문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그릇과 가구를 사 모은다. 전 씨는 “수공예 자기나 목공예품은 틀에 박힌 모양이 아니라 더 정감이 간다”고 했다. 개인 사업을 하는 이경신 씨(36)도 최근 공예가가 직접 만든 사무용품과 액세서리를 여럿 구입했다. 이 씨는 “요즘 수공예 손목시계를 사려고 생각 중이다. 작가가 공들여 만든 제품이라 더 가치 있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들처럼 생활용품에서 사람의 ‘손맛’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백화점 리빙관에 기성품이 아닌 핸드메이드 제품이 한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공예 작가가 만든 생활용품을 한자리에 모아 판매하는 온라인 사이트도 인기다. 카카오톡은 2월부터 ‘메이커스 위드 카카오’ 선주문 생산 판매 서비스를 시작했다. 매주 10∼20개의 상품을 소개하는데 상품마다 정해진 최소 수량 이상 주문이 들어오면 제작이 진행된다. 카카오톡 관계자는 “상품 생산자의 상당수가 아티스트들이다. 단기간 매진된 제품이 많다”고 전했다. 핸드메이드 생활용품의 인기는 세계적인 트렌드다. 미국에서는 2000년대 중반부터 엣시(etsy.com) 같은 수공예품 직거래 사이트가 대박을 터뜨렸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개념의 아이디어스(idus.com) 같은 사이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에는 수준급 작가를 선정해 제품을 소개하는 업체도 생겼다. 지난해 ‘작가주의 생활용품’을 표방하며 문을 연 마이마스터즈(mymasters.net)의 김광신 대표는 “수공예 생활용품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완성도 높은 작가의 작품을 큐레이션해주는 서비스의 필요를 느꼈다. 작가의 판매 마케팅을 지원하고, 소비자에겐 질 높은 상품을 소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판로 다양화는 공예 작가들에게도 고무적이다. 목공예 작가인 박하수 씨는 “과거에는 유명 작가가 아니면 작품 홍보나 판매가 어려웠다. 이제 신인 작가라도 해외까지 작품을 알리고 판매하는 게 가능하다”고 했다. 금속공예 작가인 전경아 씨 역시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기회가 늘었다. 금속공예 제품에 관심 있는 분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다”고 말했다. 류승호 강원대 영상문화학과 교수는 “3차원(3D) 프린터 같은 기술 발달로 공예품 생산이 수월해진 데다 대량 생산품에 질린 소비자가 늘면서 크래프트 이코노미(craft economy·공예 경제)라는 말이 나올 만큼 시장이 커졌다. 사회가 디지털화될수록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 ‘혁신’은 미국 실리콘밸리 사람들이 가장 중요히 여기는 가치다. 페이스북 직원부터 스탠퍼드 학생까지 모두가 창업을 꿈꾼다. 남다른 아이디어만 있다면 돈은 어디서든 구할 수 있다. 이곳의 한 벤처기업 투자자는 말한다. “실패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건 문제되지 않는다. 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새로운 벤처를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 중국의 정보기술(IT)은 ‘모방’과 ‘검열’로 성장했다. 런런은 페이스북을, 유쿠는 유튜브를, 바이두는 구글을 따라했으며, 약 6억 명에 달하는 중국 누리꾼은 이 서비스를 활발히 이용 중이다. 반면 ‘원조’ 사이트들은 중국에 접근이 차단됐거나 검열당한다. 중국 정부의 검열 인력은 4만∼1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일부 전문가는 “중국 공산당의 목표가 자국 IT기업의 편의를 봐주는 것이며 검열 또한 그 목표를 위한 수단”이라고 평가한다. 인터넷 초기, 디지털 발달이 국경을 초월해 세상을 하나로 만들 것이라는 주장이 많았다. 이 예상은 빗나갔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계는 ‘평평해’지지 않았다. 이질성을 통해 성장한 미국의 IT문화와 국가가 통제하는 중국의 그것이 판이하듯 말이다. 프랑스 사회학자이자 작가인 저자는 “‘글로벌 인터넷’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세계화된 플랫폼은 존재하지만 콘텐츠까지 세계화되지는 않았다”면서 “오히려 인터넷이 각 지역의 문화적 차이를 공고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인터넷의 지역화를 확인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베이징, 요하네스버그, 가자 지구 등 50여 개 도시를 오가며 현지의 IT 실태를 취재했다. 책이 소개하는 각국 정부의 인터넷 검열 실태와 대응 방식은 흥미롭다. 중국에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장기 매매를 고발할 순 있지만 ‘3T’로 통하는 티베트, 타이완, 톈안먼 문제를 비판하지 못한다. 그래서 중국 누리꾼들은 톈안먼 사건 발생일을 6월 4일 대신 ‘5월 35일’이라고 쓴다. 최근에는 ‘4월 65일’ ‘3월 96일’이라고도 한다. 2009년 이란 대선 결과에 반대해 녹색혁명이 일어난 후 이란 정부의 인터넷 통제도 강화됐다. 테헤란에서 구글 검색창에 ‘sex’라는 단어를 치면 이슬람 경전인 꾸란 구입을 권하는 페이지가 뜬다. 온라인은 오프라인을 반영한다. 브라질에서 많이 썼던 SNS ‘오르컷’은 처음에는 상류층이 이용하고, 중산층이 대거 합류하며 브라질의 핵심 사이트가 됐다. 그러나 하급 계층 이용자가 늘자 브라질의 중산층은 모두 페이스북으로 갈아탔다. 도메인 주소에 사용되는 ‘.eu’는 유럽연합(EU)의 불안한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u’는 독일의 ‘.de’나 프랑스의 ‘.fr’와 같은 국가 도메인보다 수가 적고, 2012년 이후부턴 계속 정체 상태다. 책은 디지털화에 대한 막연한 낙관주의와 회의주의 모두를 경계한다. 책 말미에 저자는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따라 인터넷은 달라진다”고 결론 내린다. 풍부한 취재를 따라 읽다보면 “인터넷을 대문자 단수인 Internet 대신 소문자 복수인 internets로 표기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꽤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어린시절 엄마 아빠와 읽었던 동화는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한다. 이야기는 가물가물 해도 즐거웠던 느낌은 선명하다. 함께 책에 빠진 경험은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추억이 된다. 다가오는 어린이날엔 온 가족이 함께 재미난 책을 나누는 것도 좋겠다. 어린이 책 전문가들이 가족이 함께 읽을 책을 추천했다.▽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책 엄마가 세상의 전부인 시기가 있다. 아이와 함께하지 못하는 엄마는 그래서 더 미안하다. ‘구름빵’ 백희나 작가의 신작 ‘이상한 엄마’는 이런 엄마와 아이를 위해 많은 이가 추천했다. 일하느라 아이가 아파도 집에 못 가는 엄마를 대신해 선녀가 하루 ‘이상한 엄마’가 돼 준다. 김태희 예스24 어린이MD는 “엄마가 없을 때도 아이 곁에서 누군가가 따뜻함을 전해준다는 이야기가 큰 위로를 건넨다”고 했다. ‘엄마 마중’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 마음을 담은 책이다. 마지막 그림 속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 모습이 여운을 준다. ‘세 엄마 이야기’는 좀 더 유쾌하다. 엄마와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 할머니의 엄마, 모녀 4대의 시골생활을 담았다.▽아빠와 함께 읽고 싶은 책 늘 바쁜 아빠는 표현조차 서툴다. “밥 먹었니?” “숙제했니?” 묻고 나면 어색해진다. 이수지 작가가 그린 ‘아빠, 나한테 물어봐’는 그런 아빠들에게 권하는 책이다. 아빠와 딸이 보내는 아름다운 하루를 담았다. 야구팬 아빠라면 ‘마이 볼’도 좋다. 작가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 캐치볼을 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썼다. ‘지원이와 병관이’ 시리즈의 김영진 작가의 신작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도 아빠와 아이의 친밀감을 돋운다. 아이와의 소통에 자신 있는 아빠라면 ‘그림 없는 책’에 도전해 볼 만하다. ‘뚜에엑’ ‘이끼끼끼끽’ 같은 의성어가 그림을 대신한다. 아이를 웃게 하는 건 아빠의 읽기 실력에 달렸다.▽언니 오빠 동생이 나눠 볼 책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지만 다툼도 잦다. 영국 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터널’은 형제가 함께 보면 좋다. 티격태격하던 남매가 터널을 통과하며 화해하는 과정을 그렸다. 일본 작가 쓰쓰이 요리코는 동생이 생긴 언니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작가다. ‘이슬이의 첫 심부름’ ‘병원에 입원한 내 동생’은 그림체만 봐도 사랑스럽다. 초등학교 이상 아이라면 ‘사자왕 형제의 모험’도 있다. ‘말괄량이 삐삐’의 작가가 쓴 이 판타지물은 형제가 있는 아이뿐 아니라 외동인 아이에게도 흥미로울 책이다.▽어린이날을 보낼 엄마 아빠에게 부모도 책이 고프다. 휴일 내내 아이를 돌보느라 지친 마음을 책으로 달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헤르만 헤세의 고전 ‘데미안’은 세상을 이해하고자 했던 초심을 일깨운다. 만화 ‘요츠바랑’의 신권도 오랜만에 나왔다. 우지영 책읽는곰출판사 편집장의 말처럼 “아이라는 생물을 대하는 어른의 자세에 모범 답안이 있다면” 이 만화가 제격이다. 마지막으로, 비싼 선물을 사주면서도 찜찜했던 부모라면 ‘내 아이와 처음 시작하는 돈 이야기’도 참고할 만하다. 그렇다고 장난감 대신 책 한 권만 달랑 선물하는 것은 가정 평화를 위해서 지양해야겠지만. ※도움말―김진 사계절 그림책팀장, 김태희 예스24 어린이 MD, 박수진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과장, 박은덕 보림 편집장, 박지은 비룡소 편집장, 우지영 책읽는곰 편집장, 이린하애 길벗어린이 편집1팀장, 이복희 문학동네 어린이책 편집장, 천지현 창비 어린이 출판부장, 어린이도서연구회 동화팀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회식 뒤풀이를 하는 노래방에서 흘러간 유행가를 ‘떼창’ 하다 보면 간혹 마음이 뭉클해지는 순간이 있다. 과거 그 노래를 좋아했거나 회식 멤버 구성이 탁월했던 것은 아니다. 알코올과 옛 노래의 시너지 덕분이다. 그다지 친하지 않아도 공통의 감성을 끌어낼 만큼 흘러간 유행가는 힘이 세다. 최근 방영한 MBC 무한도전(무도) ‘토토가2―젝스키스’ 편을 보면서 흘러간 유행가의 힘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16년 전 해체한 인기 아이돌 그룹이 관광버스 뒷자리에 앉아 부르는 전성기 시절 노래는, ‘그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우리처럼 그들도, 그들처럼 우리도 나이가 들었다. 그 공감대 덕분에 시청률이 올랐다. 젝스키스가 출연한 16일과 23일 무한도전의 시청률은 14∼15%대를 기록했다. 젝스키스 컴백 콘서트를 방영할 30일 시청률은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무한도전 최고 시청률은 2월 13일 ‘못친소 페스티벌2’의 15.7%였다(TNMS 전국 시청률). 문제는 최근 무도에서 화제가 된 기획이 옛 유행가 메들리 같다는 점이다. 토토가2의 시작은 2014년 말부터 2015년 초까지 방영한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1990년대 가수를 출연시킨 이 방송은 시청률 20%를 넘기며 지난해 무도 최고 시청률을 찍었다. 사실 토토가가 다룬 1990년대 문화 역시 2010년 이후 영화와 케이블 방송을 통해 숱하게 반복 소비된 것들이다. 한때 B급 문화를 유행시키며 새 트렌드를 이끌었던 무도에서 최근 시청률로 ‘선방’했거나 언론의 관심을 받은 프로는 대부분 전편의 반복 혹은 확장판이다. ‘못친소 페스티벌2’는 2012년 방영한 ‘못생긴 친구를 소개합니다’의 후속이고, 조만간 방영을 앞두고 있는 ‘무한상사’는 2011년부터 수차례 반복하는 시리즈다. 2007년 ‘강변북로 가요제’로 시작해 2년마다 열리는 무도 가요제는 5회를 넘겼다. 무한 ‘도전’이라기보단, 무한 ‘반복’ 혹은 ‘복제’에 가깝다. 새로운 것은 사라졌지만 갈수록 규모는 커지고 화려해진다. 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대형 전시 엑스포를 하고 음원차트를 뒤흔들 만큼의 힘도 있다. 2005년 무도 전신인 ‘무모한 도전’에서 전철과 100m 달리기를 하거나 목욕탕 배수구와 물 퍼내기 대결을 펼치던 ‘대한민국 평균 이하 찌질남’들은 이제 예능뿐 아니라 한국 대중문화 판을 흔드는 ‘거물급 아재’가 됐다. 10년 넘게 연출자와 주요 출연자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예능 프로에 과거처럼 ‘신선한 삽질’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인지도 모른다. 실제 무도의 김태호 PD는 지난해 말 한 강연에서 “2009년까지 ‘무한도전’이 토요일 저녁에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웬만한 건 다 했다. TV 밖에서의 도전이 필요한 상황이다”라며 TV 플랫폼을 벗어난 시즌제에 대한 바람을 비쳤다. 그러나 MBC 측은 이에 대해 “계획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흘러간 유행가를 반복하는 ‘아재’들은 여전히 토요 예능 1위를 달리고 있다. 어찌 보면 나이가 들고 도전이 버거운 것은 무도 멤버뿐 아니라 TV 앞에 앉은 무도 팬 역시나 마찬가지인지도 모른다. 과거 무도가 보여줬던 도전은 사라졌고 대신 편안함과 익숙함만 남았다. 그래서, 흘러간 유행가는 짠하다. ★★★(별 5개 만점)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거대한 돔은 장엄함으로 보는 이를 압도했다. 사원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아랍어 캘리그래피와 기하학적 무늬는 화려하면서도 기품이 있었다. 기도 시간이 되자 신자들은 일제히 동남쪽 메카를 향해 엎드려 기도했다. 99개의 창을 통과한 빛이 사원 안을 은은하게 감쌌다. 모스크 안 세상은 빈틈없이 정연했다. 불가리아, 그리스와 맞닿은 터키 서북부 도시 에디르네. 이곳에 자리 잡은 셀리미예 모스크는 오스만튀르크 시대를 대표하는 건물로 꼽힌다. 이 모스크를 만든 이는 미마르 시난(?∼1588년)이다. 미마르는 터키어로 ‘건축가’라는 뜻이다. 시난은 이슬람 문화와 건축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술레이만 1세 시절 궁정 건축가가 된 시난은 셀림 2세와 무라드 3세 때까지 활동하며 오스만 제국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건축물을 지었다. 그는 당시까지 도시마다 달랐던 건축 스타일을 하나로 통합했다. 거대한 돔 건축물과 그 주변 세워진 높은 첨탑인 미나레트를 특색으로 하는 오스만식 건축 양식은 시난 시절 확립된 것이다.“돔 아래선 모두가 하나가 되는 느낌” 시난이 80대였던 1574년 완성한 셀리미예 모스크는 그가 자신의 ‘역작’이라고 칭한 건축물이다.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 모스크의 넓이는 1620m², 높이는 43.3m다. 특히 지름 31.2m인 돔의 무게는 2000t에 이른다. 사실 셀리미예는 동로마제국 시절 그리스도교 대성당으로 이스탄불에 세워진 하기아 소피아(537년)와 모양새가 닮았다. 건축가로서 시난이 마음에 담은 목표가 하기아 소피아였기 때문이다. 셀리미예는 돔의 크기는 하기아 소피아와 비슷하지만 높이는 54m인 전자에 다소 못 미친다. 그러나 구조적 안정감과 논리적 정교함에선 하기아 소피아를 능가한다. 8개의 기둥과 아치로 받쳐진 거대한 돔은 정사각형 외벽으로 부드럽게 연결됐다. 실제로 하기아 소피아가 지진으로 여러 차례 보수 공사를 해 왔다면 셀리미예는 17세기, 18세기에 일어난 여러 차례의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1913년 불가리아가 에디르네를 점령했을 당시 모스크는 대포 공격을 받았지만, 돔 일부에 작은 흔적만 남았을 정도로 견고함을 자랑한다. 사원 안에 더 많은 창을 내고 내부에 빛을 충분히 통과시킬 수 있었던 것 역시 튼튼한 구조 덕분이다. 수피 사치 터키 바키프대 건축학과 교수는 “시난은 모든 오스만 건축의 표준을 만들었다. 특히 셀리미예만큼 완벽한 구(球) 형태의 거대한 돔을 올리는 것은 시난 이후의 제자들도 실패했을 만큼 어려운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지금도 셀리미예는 사원으로 쓰인다. 매주 금요 기도회에는 5000∼6000명의 이슬람 신도가 이곳을 찾는다. 셀리미예는 대형 기도회에 최적화돼 설계됐다. 기둥을 벽 쪽으로 밀착시켜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을 없앴고, 메카의 방향을 알리는 미흐라브를 비롯한 니치형 벽감은 이맘의 목소리를 확산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이 사원의 타메르 발라트 이맘(이슬람 성직자)은 “하나의 돔 아래서 모두가 함께 있는 느낌을 얻는다”고 했다.끊임없는 자기 혁신을 한 오스만의 ‘미켈란젤로’ 시난은 종종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이자 건축가인 미켈란젤로(1475∼1564)와 비교된다. 다재다능한 재주를 가졌고, 신에 대한 신실함을 바탕으로 재능의 최대치를 이뤄 낸 천재라는 점에서 둘은 닮았다. 다만 활동 무대의 넓이와 작업량만 비교한다면 시난은 미켈란젤로를 넘어선다고 할 수 있다. 시난의 건축물은 오늘날 헝가리, 우크라이나, 세르비아, 시리아 지역에서도 발견된다. 80여 개 모스크를 비롯해 그가 참여한 건축물은 400여 개에 이른다. 이 시절 시난이 이처럼 많은 건축물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가 오스만 제국의 최전성기였다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시난의 손을 거친 통일된 형식의 건축물들은 오스만이 지배한 땅에 소속감을 부여하며 제국의 통합에 기여했다. 최근 터키 문화관광부가 시난의 건축물을 소개하는 데 역점을 기울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난의 건축물을 소개하는 건축 기행도 생겼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터키 관광이 이슬람을 벗어나 기독교 성지 순례나 오스만 이전 역사 유적지에 집중됐다면 시난을 중심으로 한 기행은 정통 이슬람 문화를 소개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에디르네 지역을 관할하는 마흐무트 샤힌 트라키아 주정부 개발공사 사장은 “이스탄불과 트라키아 주정부가 연대해 ‘미마르 시난의 건축 기행’ 코스를 개발하고 있다. 종교를 떠나 진정한 터키의 문화예술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시난은 10대에 오스만 제국 내 이교도 젊은이를 대상으로 한 부대 예니체리에 징집된 뒤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터키의 근위병이 됐다. 당시 공병으로서 여러 지역을 두루 다녔던 경험은 훗날 그의 건축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오스만식 건축은 고대 로마의 아치나 높이를 추구했던 중세 유럽의 건축, 비잔틴 건축의 돔 양식 등 다양한 문화의 건축양식을 실용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술레이만 1세 시절 오스만 제국의 중심지인 이스탄불은 시난이 수습 시절 참여했던 건축물부터 그가 참여한 다양한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곳이다. 천재라는 칭송을 들었던 이 건축가는 끊임없이 자기 혁신을 이뤘던 노력파이기도 하다. 시난의 건축물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돔의 크기가 커지는 한편 내부 공간의 효율성도 높아진다. 특히 술레이만 1세를 위해 만든 술레마니예 모스크(1557년)는 셀리미예 모스크와 함께 시난의 대표작이자 가장 유명한 오스만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시난은 술레마니예에 대해 ‘진정한 첫 작품’이라고 했다. 골든혼이 내려다보이는 이스탄불의 서쪽 언덕 위에 세워진 이 모스크는 웅장한 세련미가 특징이다. 길이 59m, 너비 58m(3422m²)의 거대한 사원에 지름 26.2m의 거대한 돔이 49m의 높이로 올려져 있다. 모스크를 중심으로 200m 근방에 위치한 신학교와 병원 목욕탕 식당 숙소 등을 포함해 쿨리예라 불리는 사원 주변 시설을 돌다 보면 ‘대제’라고 호칭되는 술레이만 1세의 힘을 실감하게 된다. 미술 사학자인 안현배 씨는 “셀리미예와 술레마니예 모스크는 이후 오스만 건축 양식의 표본이 됐다. 한 사람의 생애 동안 이처럼 대규모의 건축물을 여럿 내놓을 수 있는 시스템을 확립했다는 것만으로도 인정받을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술레마니예 모스크의 북쪽 주변에는 시난이 생전에 그 위치를 직접 골랐다는 그의 무덤이 있다. 무수하게 많은 대규모 건축물을 지었던 건축가의 무덤은 겨우 길 끝 모서리 몇 평을 채울 정도로 소박했다. 묘비에는 시난의 친구이자 작가인 사이 무스타파 첼레비가 쓴 글이 남겨져 있다. “…성스러운 거장은 팔십 군데가 넘는 모스크를 지었네/그가 백수 넘게 살고 마침내 삶을 마감했으니/그가 누운 곳이 장미의 정원이 되었네…시난, 건축가들의 거장이 이제 떠났네/모든 사람들이여 그를 위해 파티하(이슬람 경전 꾸란의 한 구절)를 암송하시오.” 에디르네·이스탄불=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취재 지원=터키 문화관광부, 터키항공}

“그 여자가 동화를 썼다고?” 작가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동화책을 집어 들곤 살짝 당혹해할지도 모른다. 그 여자는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실비아 플라스다. 서른한 살 나이에 가스오븐에 머리를 묻고 자살한, 사후에 출간된 시집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그 비운의 천재 말이다. 책에 실린 세 편의 동화는 플라스가 당시 영미 문단의 스타 테드 휴스와 결혼하고 3년이 지난 후인 1959년 지어졌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신의 아이를 위해 이 동화를 쓴 것으로 보인다. 동화가 나온 1년 후인 1960년 플라스는 첫딸 프리다를 낳았고, 1962년 아들 니컬러스를 낳았다. 동화는 사랑스럽다. ‘이 옷만 입을 거야’ 속 일곱 형제의 막내인 일곱 살 주인공 맥스 닉스는 정장 한 벌을 간절히 바란다. 마침 닉스가에 전달된 겨자색 정장이 아빠와 여섯 형들을 거쳐 맥스에게 전해진다. 아이의 기쁨이 경쾌한 운율감과 함께 느껴진다. 두 요정과 가전제품들의 이야기인 ‘체리 아줌마의 부엌’에서는 서로 남의 일을 부러워하는 가전제품들이 각자의 일을 바꿔본다. 와플을 만드는 다리미, 케이크를 굽는 세탁기 같은 설정이 깜찍하다. 마지막에 실린 ‘침대 이야기’는 하늘을 나는 침대, 북극 침대처럼 재미난 침대를 주제로 한 시다. 책 사이사이 들어간 데이비드 로버츠의 삽화도 귀엽다. 책을 읽다 보면 깊은 밤 침대 머리맡에서 아이들에게 자신의 동화를 읽어주었을지도 모를 ‘엄마’ 플라스가 그려진다. 누군가의 생소한 옛 사진을 훔쳐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찌됐건, 아이가 있는 실비아 플라스의 팬에게 당장 선물해 주고 싶은 책이다. 추천사를 쓴 소설가 정이현 씨의 말처럼 “우리가 함께 사랑하는 책이 한 권 생겼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니까.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