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식

김갑식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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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갑식 부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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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6~2025-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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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생존을 위한… 北인민들의 ‘전략적 글쓰기’

    “… 본 학생은 북조선로동당 당원으로 있으나 별로 사업하는 것은 없다. 그러나 가장 열성적인 학생이다. 학업에 있어서 앞으로 이 학생은 일층 더 공부에 노력하면은(※맞춤법은 원본대로) 진정한 인민교원으로서 손색없는 일꾼이 된다는 것을 평정한다.” 빈농 출신으로 1949년 평양교원대학에 재학 중인 29세 김삼돌에 대한 학과장의 평정서(評定書) 일부다. 광복 이후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선 북한은 대중에게 개인 기록물을 작성하도록 했다. 평정서는 개인이 직접 작성한 이력서, 자서전과 한 세트를 이뤘다. 주로 상급자가 작성하는 평정서는 이력서와 자서전의 오류를 바로잡을 뿐 아니라 개인의 품성에 대한 평가와 향후 사회주의 역군으로서의 가능성까지 담았다. 이 책은 1945∼1950년 총 879명이 작성한 이력서와 자서전, 평정서를 기초자료로 삼았다. 대학교수와 중학 교사, 대학생, 통신사 직원 등 지식층에 속하는 이들의 기록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평양공업대학 교수 이력서는 인적 사항뿐 아니라 부모의 직업과 재산, 토지개혁 때 몰수되거나 분배받은 토지 평수, 출신성분과 사회성분, 외국여행 경력, 8세 이후 경력 등 무려 42개 항목을 기록하도록 돼있다. 이력서가 단답식인 반면 자서전은 그들의 활동 경력과 가족 배경 등을 미시적 수준까지 해부할 수 있는 ‘인생 고백’이었다. 6·25전쟁 중 미군이 노획해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소장돼 있던 이 자료들은 10여 년 전 빛을 보게 됐다고 한다. 통상 역사는 승자의 것이다. 훗날 사가(史家)들은 불가피하게 풍부하고 선명하게 남아 있는 권력자들의 말과 기록 같은 공식적인 자료에 의존하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이 책은 인민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져 있던 북한 사람들의 삶을 미시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책은 1부 전략적 글쓰기를 시작으로 해방의 소용돌이, 일제 잔재 청산, 토지개혁, 국가건설, 교육, 계급 등 11부로 구성됐다. 모자이크 조각처럼 흩어져 있는 개인의 기록에 생기를 불어넣고 하나의 주제로 관통시켰다. 20여 년간 북한사를 연구해온 저자의 내공과 노고가 돋보인다. 특히 전략적 글쓰기란 표현과 내용이 흥미롭다. 알려진 대로 사회주의 체제, 특히 북한에서 출신성분은 개인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잣대였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각 개인은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사실을 빠뜨리거나 허위 기재, 변명성 글쓰기 등의 전략을 구사했다. 평양교원대학에 재학 중이던 학생은 기독교 신앙과의 단절을 강조했다. 예배당에 불이 나자 맨발로 뛰어나가느라 애지중지하던 새 운동화가 사라졌다며 “하나님이 보호해준다는 것은 기만적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한 학생은 이력서 출신성분에 아버지가 시청 토목과에 근무했다고 적었는데 거짓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형무소 간수장이었고 광복 직후 체포돼 감옥에서 숨졌다. 황해도 출신으로 청년훈련소에 들어간 16세 김종성은 보통 자서전 형식이 아니라 스케치를 곁들이며 자신의 삶을 기록했다. 오늘의 눈으로 이념과 체제의 대립이 극심했던 광복 직후의 시기를 저울질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고백의 조각들은 북한이 건설하려던 사회의 모습을 증언한다. 정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념, 그리고 그 이념은 출신성분에 의해서 나온다는 것이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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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인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전략적 ‘거짓 이력서’를 썼다

    “… 본 학생은 북조선로동당 당원으로 있으나 별로 사업하는 것은 없다. 그러나 가장 열성적인 학생이다. 학업에 있어서 앞으로 이 학생은 일층 더 공부에 노력하면은(※맞춤법은 원본대로) 진정한 인민교원으로서 손색없는 일꾼이 된다는 것을 평정한다.” 빈농 출신으로 1949년 평양교원대학에 재학 중인 29세 김삼돌에 대한 학과장의 평정서(評定書) 일부다. 광복 이후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선 북한은 대중에게 개인 기록물을 작성하도록 했다. 평정서는 개인이 직접 작성한 이력서, 자서전과 한 세트를 이뤘다. 주로 상급자가 작성하는 평정서는 이력서와 자서전의 오류를 바로잡을 뿐 아니라 개인의 품성에 대한 평가와 향후 사회주의 역군으로서의 가능성까지 담았다. 이 책은 1945~1950년 총 879명이 작성한 이력서와 자서전, 평정서를 기초자료로 삼았다. 대학교수와 중학 교사, 대학생, 통신사 직원 등 지식층에 속하는 이들의 기록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평양공업대학 교수 이력서는 인적 사항뿐 아니라 부모의 직업과 재산, 토지개혁 때 몰수되거나 분배받은 토지 평수, 출신성분과 사회성분, 외국여행 경력, 8세 이후 경력 등 무려 42개 항목을 기록하도록 돼있다. 이력서가 단답식인 반면 자서전은 그들의 활동 경력과 가족 배경 등을 미시적 수준까지 해부할 수 있는 ‘인생 고백’이었다. 6·25전쟁 중 미군이 노획해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소장돼 있던 이 자료들은 10여 년 전 빛을 보게 됐다고 한다. 통상 역사는 승자의 것이다. 훗날 사가(史家)들은 불가피하게 풍부하고 선명하게 남아 있는 권력자들의 말과 기록 같은 공식적인 자료에 의존하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이 책은 인민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져 있던 북한 사람들의 삶을 미시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책은 1부 전략적 글쓰기를 시작으로 해방의 소용돌이, 일제 잔재 청산, 토지개혁, 국가건설, 교육, 계급 등 11부로 구성됐다. 모자이크 조각처럼 흩어져 있는 개인의 기록에 생기를 불어넣고 하나의 주제로 관통시켰다. 20여 년간 북한사를 연구해온 저자의 내공과 노고가 돋보인다. 특히 전략적 글쓰기란 표현과 내용이 흥미롭다. 알려진 대로 사회주의 체제, 특히 북한에서 출신성분은 개인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잣대였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각 개인은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사실을 빠뜨리거나 허위 기재, 변명성 글쓰기 등의 전략을 구사했다. 평양교원대학에 재학 중이던 학생은 기독교 신앙과의 단절을 강조했다. 예배당에 불이 나자 맨발로 뛰어나가느라 애지중지하던 새 운동화가 사라졌다며 “하나님이 보호해준다는 것은 기만적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한 학생은 이력서 출신성분에 아버지가 시청 토목과에 근무했다고 적었는데 거짓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형무소 간수장이었고 광복 직후 체포돼 감옥에서 숨졌다. 황해도 출신으로 청년훈련소에 들어간 16세 김종성은 보통 자서전 형식이 아니라 스케치를 곁들이며 자신의 삶을 기록했다. 오늘의 눈으로 이념과 체제의 대립이 극심했던 광복 직후의 시기를 저울질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고백의 조각들은 북한이 건설하려던 사회의 모습을 증언한다. 정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념, 그리고 그 이념은 출신성분에 의해서 나온다는 것이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0-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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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 참전용사, 온라인으로 초청

    6·25전쟁 70주년을 맞는 올해 해외 참전용사를 온라인으로 초청하는 보은 행사가 치러진다. 경기 용인시 새에덴교회(담임 소강석 목사)는 24일 오전 10시 교회 프라미스홀에서 참전용사 온라인 초청 행사를 개최한다고 16일 밝혔다. 이 행사는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는 퇴역 항공모함 등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면서 비대면 행사로 바뀌었다. 한국 미국 캐나다 태국 필리핀 등 5개국 참전용사와 가족 등 150여 명이 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행사에 참여한다. 교회 측은 이 내용을 유튜브 등으로 생중계할 예정이다. 새에덴교회의 참전용사 초청 행사는 올해로 14년째다. 2007년 ‘마틴 루서 킹 국제평화상’을 수상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소 목사와 참전용사 레리 레딕 씨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 “동두천, 의정부, 수원, 평택…”을 더듬거리며 언급한 레딕 씨는 왼쪽 허리의 총상을 보여주면서 “한국에 다시 가고 싶은데 형편이 어려워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소 목사는 한국의 은인이라면서 큰절을 올린 뒤 “한국으로 초청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13년간 8개국에서 4000명 넘는 참전용사와 가족이 한국을 방문하거나 현지에서 진행된 보은 행사에 참석했다. 소 목사는 “코로나19와 남북관계 악화 등으로 상황이 나쁘지만 그럴수록 행사를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당일 행사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영상 축하 메시지를 비롯해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한미 양국 군 관계자 등의 축사가 있을 예정이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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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염수정 추기경, 사제 수품 50주년 ‘금경축’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사진)이 사제 수품 50주년인 금경축을 맞는다. 서울대교구는 19일 오후 2시 반 명동대성당에서 사제 수품 70·60·50주년 축하 미사를 봉헌한다. 1970년 사제품을 받은 염 추기경은 서울 이태원과 장위동 성당 등에서 주임 신부로 본당 사목을 했고, 2002년 주교품을 받고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됐다. 2012년 5월 서울대교구장 및 평양교구장 서리로 임명됐으며 다음 달인 6월 교구장으로 착좌했다. 2014년 2월 한국교회의 세 번째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최익철 신부는 사제 수품 70주년, 유재국 신부는 60주년(회경축), 임덕일 박용일 김충수 신부는 50주년을 맞는다. 수품 25주년으로 은경축을 맞는 25명의 신부를 위한 축하 자리도 마련된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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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가승과 출가묘 “우린 서로 쿨한 사이”

    《10일 승보사찰(僧寶寺刹)인 전남 순천 송광사를 찾았다. 지난해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에 이어 최근 ‘고양이를 읽는 시간’을 낸 보경 스님(56·보조사상연구원 이사장)과 주인공 ‘냥이’를 만나기 위해서다. 책 속 냥이가 좋아하는 공간인 탑전(塔典)은 송광사 초대 방장 구산 스님(1909∼1983)의 사리탑을 모신 곳. 구산선문(九山禪門)이란 현판이 붙은 입구는 중앙 기둥을 파서 낮고 좁은 문을 만들어 들어서려면 누구나 허리를 굽혀야 한다. 그래서 하심문(下心門)으로도 불린다.》―구산선문의 유래는 무엇인가. “이 문은 25년 전쯤 은사(현호 스님)가 주지로 계실 때 도량을 정비하면서 탑전으로 들어가는 일주문 격으로 세웠다. 참배객이 허리를 숙여 추모의 마음을 가져 달라는 바람이 담겨 있다. 구산(九山)이 방장 스님의 법호고, 선종의 상징이라는 중의적 뜻이 있다. 사람은 허리를 숙여야 하지만 냥이는 그냥 지나다닐 수 있다(웃음).” ―냥이는 어디에 있나. “저는 무상각에서 책 보며 글 쓰고 냥이는 보일러실 쪽에 거처가 있다.” 그쪽을 내다보니 낯선 방문객에도 냥이의 표정은 무심(無心) 그 자체였다. 첫 책 ‘…내게로 왔다’는 스님과 냥이의 흔치 않은 만남과 사연을 다뤘고 이번 책은 속편 격인데, 예사롭지 않다. 노자와 장자, 불교의 선(禪)과 수행뿐 아니라 역사와 문화, 사회현상에 대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내공이 엿보인다. ―스님과 고양이의 첫 만남은…. “2016년 겨울이었다. 원래 큰 절(송광사) 공양주 보살이 쥐를 쫓으려고 (고양이들을) 데려왔는데 세력 다툼 끝에 거기서 밀려난 거죠. 겨울을 날 요량으로 보일러실에 온 것 같아 사료와 박스를 갖다놨는데 냥이가 살게 됐다.”―어떻게 책으로 쓸 생각을 하게 됐나. “함께 있으니 육아일기 쓰듯 관찰하게 되더라. 다른 생각들도 쌓여 글이 모였다. 첫 책이 설렘이었다면, 이번에는 좀 더 깊이 들어가려 했다. 어느 순간 절집에서 이야기가 사라졌더라. 절집에 흥미로운 사연이 많아야 출가자도 늘고 사람이 모이지 않겠는가.” ―‘고양이를 읽는다’는 게 무슨 뜻인가. “철학은 보는 것과 아는 것을 등가로 생각한다. 시선은 날카로운 검(劍) 같다. 관찰자로서 거리를 두고 보려고 노력했다. 냥이도 물론 의지가 있다. 요즘 언어로 서로 ‘쿨’한 관계다.” ―책에서 독서 1만 권의 꿈을 언급했는데…. “어림잡아 7000∼8000권 읽었다. 목표라기보다는 독서를 통해 성찰의 시간이자 기회를 얻겠다는 의미다.” ―선(禪)은 문자나 책보다는 ‘단박 초월’의 세계를 염원하지 않나.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보라고 하지만 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도 봐야 한다. 문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바다가 깊은 것은 넓이에서 온다. 1만 시간의 법칙처럼 양이 쌓여야 질(質)로 들어갈 수 있다.” ―글 쓰는 스님으로는 법정 스님이 유명했다. 송광사 스님이기도 했다. “법정 스님 강연이 출가의 계기가 됐다. 광주 시민회관에서 강연하셨는데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면 그 원한은 사라지지 않는다. 원한을 버리는 것이 원한을 갚는 길이요, 영원한 진리’라고 하시더라. 법구경 구절이었다. 1980년 이후 광주의 4, 5월은 매년 뜨거웠다. 세상 모든 사람이 동쪽을 보는데, 서쪽을 보는 것처럼 들렸다. 너무 강렬해 ‘불교는 뭐지?’ 하는 발심(發心)으로 이어졌다. 절집에 오니 다른 것은 나의 길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글쓰기와 관련해 법정 스님과 얘기를 나눈 적 있나. “‘사는 즐거움’이란 에세이를 출간해 서울 길상사에 보냈다. 이후 법정 스님의 건강이 악화돼 문중 스님들과 병원을 찾았는데 말씀하시기 힘든 상태였다. 알아들을 수 없는 몇 마디를 하시는데 옆의 시봉 스님이 ‘글이 좋다’는 말씀이라고 전해줬다. 뜻밖의 말씀이이서 ‘내가 글을 써도 되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냥이 이야기 3권도 나오나. “세 번째는 주변 사람들 얘기로, 완결편이 될 것 같다. 사람들이 주인 되는 삶을 살고, 기쁘게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다.”순천=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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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노를 다스리는 지혜’는 어디에서 올까

    분노를 다스리는 지혜는 어디에서 오는가. 티베트인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달라이 라마의 지혜를 담은 책 ‘달라이 라마, 화를 말하다’(담앤북스·사진)가 출간됐다. 인도의 위대한 스승이자 승려였던 샨티데바의 ‘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 중 ‘인욕품(忍辱品)’을 놓고 달라이 라마와 청중 1600명이 함께한 닷새간의 기록이다. 강연과 명상, 대화를 통해 화의 원인과 치유, 수행법을 전한다. ‘명상과 죽음’에 이은 세 번째 통찰 시리즈다. 인욕품은 화가 나 증오를 일으키면 1000겁(劫) 동안 쌓은 공덕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인내만큼 견디기 힘든 고행도 없지만 모든 방법을 다 써서 인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 자만심을 다루는 방법이나 인내를 끌어올리는 용서의 역할 등 달라이 라마의 시각에서 본 마음 수행법을 엿볼 수 있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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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시대엔 교회가 문화적-영적 방역의 ‘순환 펌프’ 역할해야”

    지난달 31일 개신교 최대 연합단체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은 ‘한국 교회 예배 회복의 날’을 선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3개월여 만에 정상화를 위한 움직임이었지만 서울 이태원 클럽과 물류센터, 개척교회 등에서 확진 사례가 늘면서 논란이 일었다. 3일 한교총 사회정책위원장이자 9월 예장 합동 교단 총회장으로 취임하는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58)를 만나 최근 개신교계를 둘러싼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 한교총의 예배 정상화 선언이 최근 확진자가 다시 늘면서 논란을 초래했다. “공교롭고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당시는 정부가 생활방역으로 전환한 상태였고, 정지된 대한민국을 움직여 달라는 사회적 요구가 있었다.” ― 신자 출석률 80% 등 현장 예배 강화는 어떻게 되나.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하겠다. 한교총의 선언은 예배의 현장성 회복뿐 아니라 예배의 소중함과 가치를 목회자와 성도(신자)들이 함께 느끼도록 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 개척교회를 중심으로 한 코로나19 확산이 우려를 낳고 있다. “재정적으로 미자립 상태의 교회가 3만∼4만여 곳으로 추산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줄곧 이들 교회에 대한 지원을 위해 노력해 왔다. 앞으로 한교총과 교단 차원에서 공유와 나눔을 통해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방역 당국 발표를 보면 예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거리 두기와 방역에 철저하다. 문제가 된 소규모 모임에 대한 대처가 필요하다.” ―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연합단체의 리더십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원 리더십, 원 메시지가 아쉬웠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전체 교회의 90%를 아우르는 한교총이 앞서가 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 리더십 부재에 대한 비판은 오래된 것 아닌가. “한국 교회가 시대정신을 제시하지 못하고, 사회적 책임에 소홀하게 대처한 것이 리더십 부재의 큰 원인이다. 한경직 목사님 이후 신앙과 공인으로서의 모범을 두루 갖춘 걸출한 리더가 없었다. 리더를 세우는 분위기와 토양도 부족했다. 저희 세대부터는 그런 토양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보수적 개신교계와 정부의 소통 문제가 지적돼 왔다. 몇 점이나 줄 수 있나.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소통의 다리’가 놓아졌다. 하지만 60점 정도로 아직 부족하다. 요즘은 소통을 넘어 공감의 시대 아닌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목회자로서 현장 예배가 중단됐을 때 어떤 심정이었나.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나도 수도사처럼 기도 생활을 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예배를 잃어버린 신자, 바로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게 목회자가 아닌가. 그래서 우리 교회 부목사가 100명이 넘지만 모든 예배를 혼자 진행하다시피 했다.” 윤동주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이기도 한 그의 10번째 시집 ‘꽃으로 만나 갈대로 헤어지다’는 최근 20쇄를 넘겼다. 그의 설교에서는 시 구절은 물론이고 트로트도 등장한다. 그는 인터뷰 중 ‘보랏빛 엽서’의 구성진 가락을 직접 흥얼거렸다. ‘오늘도 가버린 성도의 생각에/눈물로 써 내려간 얼룩진 일기장엔/다시 돌아올 성도 모습 기다리는 목자의 사연∼.’ ―진짜 설교에서도 트로트를 하나. “현장 예배가 재개될 때 성도들 들어오는 길목을 풍선과 깃발로 장식했다. 좋아하는 ‘보랏빛 엽서’로 마음을 전했다. 안 될 게 뭐가 있겠나? 설교도 올드 포맷만 고수할 필요 없다. 성도들과 마음을 나누지 못한다면 코로나 이후에 교회가 살아날 수 없다.” ―코로나19의 일상화라는 우울한 전망도 있다. “미국 경제학자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의 말대로 우리나라는 단기 방역에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전으로 가면서 물리적 방역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비가 온다고 언제까지 방 안에 갇혀 숨어 지낼 수만 있겠나. 우산을 쓰거나 우비를 입고서라도 할 일은 해야 한다. 장기전으로 가면 무엇보다 경제가 중요하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서적 문화적 영적 종교적 방역이 필요하다. 교회가 그 순환의 펌프 역할을 해야 한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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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떻게 살 것인가… 청년 김대건의 고민은 현재 젊은이의 고민”

    충남 당진 솔뫼성지는 ‘한국의 베들레헴’으로 불린다. 솔뫼는 소나무 언덕이란 뜻이다. 이 성지에는 한국 최초의 사제이자 25세에 순교한 김대건 신부(1821∼1846)의 생가가 있다. 이 집안에서만 11명의 순교자가 나왔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인 내년을 희년(禧年)으로 선포하는 등 가톨릭교회 차원의 기념과 쇄신 운동을 전개한다. 희년은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회개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제정된 해다. 5월 18일 솔뫼성지를 담당하고 있는 이용호 신부(53)를 만났다. ―솔뫼성지가 바빠질 듯하다. “솔뫼뿐 아니라 한국 교회 전체가 힘을 모으고 있다. 올해 11월 한국 교회의 상징인 서울 명동대성당 희년선포미사에 이어 김대건 신부를 조명하는 행사들이 이어진다.”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의 의미는 무엇인가. “한국 성직자들을 보호하는 주보성인(主保聖人)이 바로 김대건 신부님이다. 그분의 삶과 신앙이 한국 교회 전체에 특별하다는 의미다. 주교회의 차원의 준비위원회가 꾸려졌고, 전국 교구 대표와 평신도들도 참여해 200주년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새삼 놀라운 것은 김대건 신부가 순교 당시 25세의 청년이라는 점 아닐까. “많은 분들이 ‘젊은 나이에 순교할 수 있었을까’, 그런 질문을 던진다. 왜 순교했을까, 그런 고민을 신자뿐 아니라 한국 사회와 공유하는 것도 탄생 200주년의 숙제다.” ―죽음을 앞둔 김대건 신부의 갈등은 없었을까. “신부님이 감옥 안에서 쓴 편지를 보면 처음에는 살고 싶어 했다. 조선 정부에서도 지식이 있는 젊은이를 죽이는 게 아까워 배교(背敎)를 설득한다. 옥중 편지를 비롯한 자료를 보면 신부님은 나중에는 순교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김대건 신부는 죽음을 앞두고 편지글을 남겼다. “…내 죽는 것이 너희 육정과 영혼 대사에 어찌 거리낌이 없으랴. 그러나 천주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내게 비겨 더 착실한 목자를 상 주실 것이니, 부디 설워 말고 큰 사랑을 이뤄, 한 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사후에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 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천만 바란다. 잘 있거라.” ―그 편지는 신자들에게 큰 가르침이었다. “신부님은 가톨릭이 전래된 이후 처음으로 얻은 신부, 바로 영적 아버지였다. 사제가 없는 시기에 그분의 유지였기에 글을 아는 이들은 수도 없이 베껴 썼고, 모르는 이들은 말로 외웠다. 착실한 목자는 바로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1821∼1861)였을 것이다.” ―우리는 ‘청년 김대건’을 어떻게 봐야 하나. “김수환 추기경의 어린 시절을 다룬 영화 ‘저 산 너머’를 연출한 최종태 감독과 김대건 신부님에 관한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200년 전 서세동점(西勢東漸) 시기와 세계 강국의 입김에 시달리는 오늘날 한반도의 상황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을까? 지금이 순교의 상황은 아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젊은이들의 고민은 여전할 것이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시아 청년들과의 만남을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 “그때 왔던 젊은이들이 매년 8월 15일 ‘프란치스코 데이’ 모임을 갖는다. 그때 만나 결혼하고 아이 세례명을 프란치스코라고 지은 이들도 있다. 화동이었던 아이들은 아직도 ‘교황 할아버지’라고 한다. 그 대회 이후 삶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분들이 적지 않지만, 교황께서 주신 메시지가 잊혀지는 것 같아 아쉽다.” ―그 메시지는 무엇인가. “각종 행사에 참석하면서 4박 5일간 교황이 주신 메시지를 계속 읽게 됐다. 한국 사회를 바라봤던 교황님의 눈이 보였다. 내가 보기에는 ‘기억과 희망’이다. 세월호 참사 등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억하고, 미래를 위한 희망도 버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사제 서품 뒤 줄곧 성지를 중심으로 활동한 ‘성지전담 신부’인가. “본당 신부가 좋다는데 제대로 못해 봤다(웃음). 솔뫼에서만 12년째다. 앞으로 어떤 일이 주어질지 모르지만 솔뫼는 기도하는 성지로 가꾸고 싶다. 관광객들도 많이 찾지만 미사가 쉼 없이 진행돼 경건한 분위기가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올 11월 복합예술공간이 들어선다. 공연과 전시, 기도와 집회가 가능해 비신자들에게도 열린 공간이 될 것이다.”당진=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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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돈만으로는 가난을 해결할 수 없다

    파괴적 혁신 이론의 창시자이자 21세기 가장 위대한 경영사상가의 한 명으로 꼽히는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의 지난해 출간된 마지막 저작이다. 암 투병 중에도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는 올 1월 23일 합병증인 백혈병으로 타계했다. 그의 제자인 에포사 오조모와 하버드비즈니스리뷰 편집자를 지낸 캐런 딜런이 공저자로 참여했다. 원제 ‘The Prosperity Paradox’. 크리스텐슨이 평생 숙제로 여긴 질문은 ‘왜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였다. 그는 서문에서 “어째서 어떤 나라는 번영의 길을 찾는데 다른 나라는 여전히 가난의 질곡에서 헤어나지 못할까”라고 묻는다. 저자들이 찾은 해답은 ‘시장 창출 혁신(market-creating innovation)’이다. 이는 혁신 하면 흔히 떠올리는 첨단 기술이나 뛰어난 제품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조직이 노동 자본 원재료 그리고 정보를 한층 더 높은 가치의 재화와 서비스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근본적 변화다. 책은 ‘시장 창조 혁신의 힘’ ‘혁신은 어떻게 번영을 창조하는가’ ‘번영의 장벽 극복하기’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 등 4부로 구성돼 있다. 크리스텐슨의 ‘혁신 교과서’에는 새로운 개념들이 자주 등장하지만 풍부한 사례를 나침반 삼는다면 독서의 항해는 순조롭다. #1990년대 말 모 이브라힘이 아프리카에 이동통신회사를 세우겠다고 나섰다. ‘하루 세 끼조차 사치일 수 있는 곳에서 휴대전화가 가능할까’ ‘존재하지도 않는 시장을 위해 인프라에 투자하는 것 아닌가’ 같은 의문이 이어졌다. 하지만 가난뿐 아니라 ‘기회’를 본 이브라힘의 눈은 달랐다. “어머니에게 소식을 전하려면 7일을 꼬박 걸어가야 한다. 어떤 기기 하나로 이게 가능하면 그 가치는 얼마일까?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이 절약될까?” 1998년 셀텔을 창업한 그는 6년 만에 아프리카 13개국에서 고객 530만 명을 확보했다. 좀 오래된 기록이지만 2005년 셀텔의 가치는 34억 달러였다. #공저자인 오조모의 실화다. 그는 오전 3시에 일어나 땔감을 모아 장터에 팔고 물을 길어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에티오피아의 10세 소녀 아마레치 이야기를 접한 뒤 비영리단체 ‘가난은 이제 그만’을 설립했다. 그는 모금한 돈으로 고국 나이지리아에 우물 5곳을 만들었다. 6개월 뒤 우물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전화를 받았다. 지금은 1곳만 정상 운영되고 있다. 저자들은 혁신의 토양을 만들기 위해 먼저 인프라와 제도를 구축하고 부패를 척결해야 한다는 접근법에 반대한다. 셀텔 사례처럼 시장 창출 혁신이야말로 일자리와 수익, 사회의 문화를 바꿀 잠재력을 낳을 수 있고 새로운 성장엔진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모르몬교) 신자인 크리스텐슨은 1971∼73년 춘천과 부산에서 ‘구창선’으로 불리며 선교 활동을 했다. 한국이 이룬 기적에 대한 자부심, 그럼에도 한국인은 행복한가에 대한 우려가 책에 여러 차례 언급된다. 그는 암과 싸우면서 자신의 이론을 인생에 투영하려고 노력했다. 2012년 ‘당신의 삶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라는 책에서는 “신이 내 인생을 평가하는 지표는 ‘달러’가 아니라 내가 접촉한 사람들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아마레치 같은 세계의 아이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자격이 있는 아이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는 크리스텐슨. 이 책은 아름다운 인생을 산 그의 마지막 선물이 아닐까 싶다.김갑식 문화전문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0-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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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질문에 저자들이 찾은 해답은…

    파괴적 혁신 이론의 창시자이자 21세기 가장 위대한 경영사상가의 한 명으로 꼽히는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의 지난해 출간된 마지막 저작이다. 암 투병 중에도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는 올 1월 23일 합병증인 백혈병으로 타계했다. 그의 제자인 에포사 오조모와 하버드비즈니스리뷰 편집자를 지낸 캐런 딜런이 공저자로 참여했다. 원제 ‘The Prosperity Paradox’. 크리스텐슨이 평생 숙제로 여긴 질문은 ‘왜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였다. 그는 서문에서 “어째서 어떤 나라는 번영의 길을 찾는데 다른 나라는 여전히 가난의 질곡에서 헤어나지 못할까”라고 묻는다. 저자들이 찾은 해답은 ‘시장 창출 혁신(market-creating innovation)’이다. 이는 혁신 하면 흔히 떠올리는 첨단 기술이나 뛰어난 제품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조직이 노동 자본 원재료 그리고 정보를 한층 더 높은 가치의 재화와 서비스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근본적 변화다. 책은 ‘시장 창조 혁신의 힘’ ‘혁신은 어떻게 번영을 창조하는가’ ‘번영의 장벽 극복하기’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 등 4부로 구성돼 있다. 크리스텐슨의 ‘혁신 교과서’에는 새로운 개념들이 자주 등장하지만 풍부한 사례를 나침반 삼는다면 독서의 항해는 순조롭다. #1990년대 말 모 이브라힘이 아프리카에 이동통신회사를 세우겠다고 나섰다. ‘하루 세 끼조차 사치일 수 있는 곳에서 휴대전화가 가능할까’ ‘존재하지도 않는 시장을 위해 인프라에 투자하는 것 아닌가’ 같은 의문이 이어졌다. 하지만 가난뿐 아니라 ‘기회’를 본 이브라힘의 눈은 달랐다. “어머니에게 소식을 전하려면 7일을 꼬박 걸어가야 한다. 어떤 기기 하나로 이게 가능하면 그 가치는 얼마일까?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이 절약될까?” 1998년 셀텔을 창업한 그는 6년 만에 아프리카 13개국에서 고객 530만 명을 확보했다. 좀 오래된 기록이지만 2005년 셀텔의 가치는 34억 달러였다. #공저자인 오조모의 실화다. 그는 오전 3시에 일어나 땔감을 모아 장터에 팔고 물을 길어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에티오피아의 10세 소녀 아마레치 이야기를 접한 뒤 비영리단체 ‘가난은 이제 그만’을 설립했다. 그는 모금한 돈으로 고국 나이지리아에 우물 5곳을 만들었다. 6개월 뒤 우물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전화를 받았다. 지금은 1곳만 정상 운영되고 있다. 저자들은 혁신의 토양을 만들기 위해 먼저 인프라와 제도를 구축하고 부패를 척결해야 한다는 접근법에 반대한다. 셀텔 사례처럼 시장 창출 혁신이야말로 일자리와 수익, 사회의 문화를 바꿀 잠재력을 낳을 수 있고 새로운 성장엔진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모르몬교) 신자인 크리스텐슨은 1971~73년 춘천과 부산에서 ‘구창선’으로 불리며 선교 활동을 했다. 한국이 이룬 기적에 대한 자부심, 그럼에도 한국인은 행복한가에 대한 우려가 책에 여러 차례 언급된다. 그는 암과 싸우면서 자신의 이론을 인생에 투영하려고 노력했다. 2012년 ‘당신의 삶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라는 책에서는 “신이 내 인생을 평가하는 지표는 ‘달러’가 아니라 내가 접촉한 사람들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아마레치 같은 세계의 아이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자격이 있는 아이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는 크리스텐슨. 이 책은 아름다운 인생을 산 그의 마지막 선물이 아닐까 싶다.김갑식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0-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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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준경 전도사 순교 70주년 사진전

    ‘빈한 자의 위로 되고, 병든 자의 의사, 아해 낳는 집의 산파, 문맹 퇴치 미신 타파의 선봉자가 되었으며… 모든 것을 섬사람을 위하였고 자기를 위하여는 아무것도 취한 것이 없었다.’ 전남 신안군 증도에 있는 문준경 전도사(1891∼1950·사진) 순교비 문구의 일부다. 여러 목회자가 신앙의 사표(師表)로 여기는 문 전도사는 1891년 암태도에서 태어나 17세에 증도로 시집을 갔다. 한 부인의 전도로 신앙을 받아들인 그는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해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뒤 신앙을 전했다. 그는 6·25전쟁 때 교인들을 보호하고 신앙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애쓰다가 공산군에 의해 숨졌다. 문 전도사 순교 70주년을 기념하는 사진전 ‘길을 찾아 떠나다―문준경이 사랑한 섬마을과 사람들’이 6월 1∼30일 증도 문준경전도사순교기념관에서 열린다. 사진작가 김혜경이 2007년부터 촬영한 작품 중 28점을 출품했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0-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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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에도 봉축법요식 열수 있는건 국민들 덕분”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사진)이 30일 오전 10시 전국 사찰에서 열리는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 앞서 봉축사를 발표했다. 원행 스님은 26일 봉축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속에 봉축법요식이 원만히 봉행되는 것은 정부와 헌신적인 의료진, 불편을 기꺼이 감수한 국민 덕분”이라며 “봉축법요식은 온 대한민국이 함께 만들어낸 것으로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원행 스님은 “이 세상은 나와 무관한 세계가 아니라 모두가 하나의 인다라망으로 연결되어 있고 나에 의해 매순간 새롭게 창조된다”며 “우리 스스로 부처님처럼 마음 쓰고, 말하고, 행동하면 온 세상이 부처님으로 가득한 화엄 세계가 성취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계종을 포함한 불교계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4월 30일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을 한 달 뒤인 5월 30일로 미루고, 연등회도 취소했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0-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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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디서든 주인 되고 진리를 만나면 세상사 거뜬”

    《경북 봉화군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독수리 형상의 산세 때문에 축서사(鷲棲寺)라고 이름 붙여진 청정도량이 있다.673년 의상 대사가 창건했다는 이 사찰은 서울에서 차로 3시간 넘게 걸리고, 꽤 가파른 문수산 800m 고지에 있다.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이유로 이곳을 찾는다. 첫째는 산세와 어우러진 사찰의 아름다움 때문이고 둘째는 수행자들의 스승, 선지식(善知識)으로 명성이 높은 문수선원장 무여(無如) 스님(80)을 찾아서다.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30일)을 앞둔 21일 축서사 응향각에서 스님을 만났다.“산골 중을 찾아 먼 길을 뭐 하러 왔냐”는 스님은 알려진 대로 환한 웃음 자체였다.》 ―스님의 웃음에 피로가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서울이나 부산, 대구 등지에서 제 한마디 듣기 위해 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참선(參禪) 공부하다 어려워 작심해서 오고, 살기가 괴로워 저를 찾는데 웃으며 맞는 것이 예의이고 범절이죠. 선 얘기뿐 아니라 다양한 고민이 나와 ‘인생복덕방’ 주인이 됐어요. 한마디 듣고 힘이 난다고 하면 복덕방 연 보람을 느끼죠. 허허.” ―쇠락했던 작은 사찰이 30여 년 만에 번듯한 사찰로 바뀌었습니다. “강원(講院)도 안 다니고 곧바로 참선을 시작해 20년쯤 됐을 때였습니다. 걸망 지고 여기저기 떠돌다 보니 자신을 정리하고 싶었어요. 그러던 중 고우 스님이 토굴 같은 절이 있다고 했는데 바로 축서사였어요.” ―선방 스님에게 도량을 정비하는 큰 불사(佛事)는 뜻밖인데요. “2년만 있다 가려는데 신도들이 말렸어요. 그래서 저는 불사는 못 하니, 앞으로 불사할 수 있도록 터만 닦아 드리겠다고 했죠. 풍수지리 풍월로 보니, 이곳이 터는 좋은데 덕스럽지 못해 어렵게 살 곳으로 보였어요. 그래서 좋은 흙을 올려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부토(富土)로 바꾸자 싶었죠. 그랬더니 흙만 트럭 3000대 분량이 들어갔고 법당, 다시 부속 건물까지 불사가 이어졌습니다.” ―도반(道伴)인 고우 스님의 법문집 ‘태백산 선지식의 영원한 행복’이 최근 출간됐습니다. “반가운 일이죠. 지난해 이런저런 얘기가 많이 들려 몇 번 찾아가고 걱정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건강이 좋아져 다행입니다.” ―지난해 말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의 갑작스러운 입적이 큰 충격이었습니다. “아픈 것도 아니고 사고로 입적해 너무 안타까웠어요. 장례식 때 제가 호상을 했습니다. 공부할 때 보면 성격이 남성적이고, 강하고, 고집도 있었어요. 뭘 한다 하면 끝장을 보고, 대중을 이끄는데 리더십 있었는데….” ―이분들과 선 수행의 고민을 나눈 적도 있나요. “글쎄, 그런 얘기는 안 했어요.” ―고수(高手)들이라서 그럴까요. “(웃음).” ―화두를 드는 참선 수행은 어렵다는 이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제대로 마음을 낸 분이 얼마나 될까요? 남다른 인생을 살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어야 해요. 처음 출발할 때는 제대로 된 스승에게 지도를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나란 무엇인가’ ‘이 뭣고’ 같은 화두를 드는데, 처음에는 화두가 계속되기 어렵죠. 끊기면 다시 화두를 들고, 그러다 보면 화두에 대한 진정한 의심이 생기고, 그런 정도만 되어도 마음이 평안해지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어요.” ―언제 그런 느낌을 처음 맛보셨나요. “운 좋게도 출가 첫해 느꼈습니다. 굴곡은 있었지만 오직 이 길뿐이라며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선의 즐거움을 체험했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인간 무여는 보잘것없지만 전공은 잘 선택한 거죠. 일반인도 아침 참선 뒤 하루를 시작하면 정말 하루가 굿모닝입니다.” ―일부 출가자와 종단 행정에 대한 비판도 있습니다. “절 집안이 어렵고 사건도 일어나는데 승복 입고서도 부처님 법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죠. 귀불 귀법 귀승(歸佛 歸法 歸僧), 자나 깨나 부처님으로 꽉 차 있어야죠.”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를 밝혀주시겠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법회와 연등회를 취소한 것은 안타깝지만 올바른 결정입니다. 어렵고 힘든 이 세상에 지혜의 등불을 환하게 켜서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는 게 부처님 뜻입니다.” ―평소 신도들에게 자주 하시는 말씀은 무엇인가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어디서든 주인이 되고 진리를 만나야 합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면 코로나19를 포함한 세상의 어려움을 능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무여(無如) 스님은?1966년 직장 생활을 하던 중 26세 때 오대산 상원사에서 희섭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68년 오대산 월정사에서 탄허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1971년 금정산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여러 선원에서 20여 년 동안 수행하고, 칠불사와 망월사 선원장을 지냈다. 1987년부터 축서사에 머무르며 조계종 ‘선원청규(禪院淸規)’ 발간의 총감수를 맡았다. 2018년 최고 법계인 대종사를 품수했다. . 봉화=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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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달음의 성지이자 문학적 명소

    충남 서산시 천장사(天藏寺) 가는 길은 예사롭지 않다. 도로에서 많이 들어가지 않는데도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져 깊은 길의 여운을 준다. 633년 백제 시기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이 사찰은 근현대 불교의 선맥(禪脈)을 잇는 경허(鏡虛·1849∼1912), 만공(滿空·1871∼1946) 선사가 머무르며 도를 깨친 곳으로 유명하다. 사찰 경내에는 경허 선사 열반송이 적힌 기념탑과 만공 선사의 득도를 알리는 비가 있다.사찰 입구 바위에는 ‘최인호 문학의 금자탑 ‘길없는 길’의 무대-천장암’이라는 표지가 있다. 과거 이곳은 천장암으로 불렸다. ‘이곳 연암산 천장암은 경허 대선사께서 18년간을 주석하신 정신적 도량으로서 그의 수법 제자인 수월, 해월, 만공이 수행했던 곳입니다. 작가 최인호(1946∼2013)는 그 내용을 주제로 한 소설 ‘길없는 길’을 썼고, 이로써 천장암은 한국문학사에 길이 전하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연이 많은 곳이 천장사다. 수덕사 주지를 지낸 천장사 회주 옹산 스님은 인근 지장암을 복원하는 등 경허-만공 선사의 흔적과 향기를 되살리기 위해 힘써왔다. 최근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30일)을 앞두고 천장사에서 만난 스님은 등불을 다는 마음가짐에 대해 “한 개의 등불이 천 년을 밝혀 어둠을 없애고, 하나의 지혜가 만 년의 어리석음을 밝힌다”고 말했다. 스님은 올해 봉축 표어 ‘자비로운 마음이 꽃피는 세상’도 언급했다. “자비는 즐거움과 기쁨을 주고 괴로움을 없앤다. 그런 생각이 있다면 언제나 세상이 봄이다. 아름다운 꽃은 한 주 가기 힘들다. 하지만 영원한 향기의 꽃은 사람 가슴 가슴마다 사랑을 주기 때문에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서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0-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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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도 수행… 자급자족하며 도시와 교류하는 게 사찰의 미래”

    중국 당나라 때 고승으로 유명한 백장 선사(720∼814)의 일화다. 선사는 90세에도 다른 이들처럼 일을 했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제자가 그의 노동을 그만두게 하려고 농기구를 감췄다. 선사는 일을 하지 못하자 하루를 굶었다. 제자가 그 이유를 물으니,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고 답했다. 수행에 달리 형식이 없고 일상생활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상징하는 사례다. 일은 사람들에게 삶의 한 방편인 노동을 뜻하나 사찰에서는 수행의 하나로 여겨졌다.울력은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하는 육체적 노동을 의미하는데 절집에서는 여러 사람이 기를 모으거나 힘을 구름처럼 모은다는 뜻에서 운력(運力) 또는 운력(雲力)이라고 한다. 경남 하동 쌍계사는 울력의 전통이 강하다. 쌍계총림 방장인 고산 스님(87)이 평생 손에서 일을 놓지 않는 모범을 보였기 때문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과 승려들에게 계를 내리는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을 지낸 스님은 드물게 선교율(禪敎律)을 두루 갖춘 원로이자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와 ‘지리산 무쇠소’로 불린다. 1975년 쌍계사 주지로 부임한 뒤 가람을 정비하면서 농사를 지어온 ‘농사의 달인’이기도 하다. 수 년 전 스님은 기자에게 불쑥 “호박 키우는 재미를 아냐”고 물었다. 서울 촌놈이 이를 알 수 있으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자 스님이 답했다. “한 구덩이에서 호박 한 줄기에 다섯 개씩, 다섯 줄기면 5 곱하기 5 해서 25개, 이걸 다시 열 차례 따 먹으면 한 해가 가요. 사람들이 이 재미를 잘 몰라요. 허허허.” “요즘도 당신(고산 스님)께서 다 해요. 오늘은 미나리 풀매라, 내일은 뭐 해라(웃음)…. 건강이 예전만 못하고 부천에 계셔 농사일을 직접 못하지만 전화로는 다 하시는 셈”이라는 게 주지 영담 스님의 말이다. 쌍계사에 따르면 주변 밭과 차밭이 10만 m²(약 3만 평)가 넘는다. 벼농사는 어렵지만 고추, 옥수수, 콩, 배추, 무, 고사리, 호박, 오이, 감자 등 온갖 작물을 심는다. 차 시배지(始培地)는 1000년 동안 이어진 토종 야생차밭이다. 2만6000여 m²(약 8000평)의 차밭에서 한 해 녹차 300kg, 발효차 250kg이 나온다. 선교율과 차, 범패의 근본도량인 쌍계사의 미래 모습은 울력, 스님들이 스스로 먹을거리를 만들고 도시인들과 나누는 생산불교(生産佛敎)다. 최근 찾은 쌍계사는 고산 스님으로부터 시작된, 수행과 일을 통해 잠시도 쉬지 않는 불식촌음(不息寸陰)의 도량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큰 사찰에는 대중의 상징처럼 큰 가마솥이 있기 마련인데 쌍계사에는 없었다. 최근 울력을 통해 가마솥부뚜막이 생겼고, 좁은 장독대가 넓혀졌다. 3년 전 기증 받은 트랙터 등 농기계도 수리하고 사용이 가능하도록 정비했다. 북한 돕기 운동에 적극적인 윤여두 동양물산기업 부회장이 기증한 것과 사찰에서 구입한 것인데 그동안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쌍계사에는 강원 등에서 경전과 수행을 배우는 학인(學人) 스님을 비롯해 제철에는 20여 명, 스님들이 선방에서 집중 수행하는 결제 기간에는 50여 명이 있다. 선방 수좌들도 1, 2시간씩 울력에 참여해 불식촌음의 전통을 바로 세울 계획이다. 영담 스님은 “신도들에게만 의지하는 사찰, 나아가 종교는 살림살이뿐 아니라 수행 기풍도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며 “사찰은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하고 이를 도시인들과 교류하면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찾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하동=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0-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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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보 ‘혜소 선사 대공탑비’의 신비 간직한 사찰

    쌍계사는 문화재의 보고다. 가람 규모는 크지 않지만 국보 제47호인 진감 혜소 선사(774∼850) 대공탑비를 비롯해 혜소 선사 부도와 팔상전 영상회상도, 대웅전 등 9점이 보물로 지정돼 있다. 쌍계사 석등과 팔상전 등 20여 점은 지역 문화재 및 기념물로 관리되고 있다. 쌍계사 사역(寺域) 전체가 경남도 지정 기념물 제61호다. 쌍계사는 크게 혜소 선사에 의해 조성된 금당 영역과 벽암 각성 스님(1575∼1660)에 의해 중창된 대웅전 영역으로 구분된다. 금당 역역은 다시 청학루와 팔상전, 금당으로, 대웅전 영역은 일주문과 팔영루, 대웅전으로 이어진다. 이로 인해 금당 영역은 남북, 대웅전은 동서의 축선을 갖게 돼 두 영역이 서로 직교하게 된다. 사찰을 찾는 이들이 자주 발길을 멈추는 곳이 국보로 지정된 혜소 선사 대공탑비 앞이다. 신라 정강왕이 선사의 높은 덕과 법력을 앙모해 그가 도를 닦은 옥천사를 쌍계사로 고친 뒤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토황소격문’ ‘계원필경’으로 유명한 고운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썼다. 대공탑비는 여느 사찰과 달리 대웅전과 비스듬한 위치에 있어 궁금증을 자아낸다. 주지 영담 스님은 “혜소 선사비의 ‘미스터리’”라며 “일제 식민지 시대 촬영된 사진을 봐도 지금의 위치다. 학자들도 명확하게 이유를 밝혀내지 못해 향후 연구과제”라고 말했다. 쌍계사에 소장된 문화재 중 탱화가 많다는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팔상전 영산회상도를 포함해 팔상전 팔상탱, 대웅전 삼세불탱, 쌍계사 괘불과 감로왕도 등 작품성이 뛰어난 탱화 대작이 여럿 있다. 영산회상도는 1688년 비단 바탕에 조성됐으며 중앙 본존불이 전체의 3분의 1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크게 묘사했고, 그 아래로 문수, 보현 보살이 시립해 있다. 쌍계사 측은 “지정된 문화재 외에도 추가로 지정을 준비 중인 유물이 여럿 있다”며 “문화재 당국과 사찰의 협조 속에 적절한 문화재 보존과 관리가 시급하다”고 밝혔다.하동=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0-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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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달 미룬 연등회 결국 취소… “국민 안전이 최우선”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30일)을 앞두고 치러질 예정이었던 연등회(燃燈會)가 19일 전면 취소됐다. 대한불교조계종에 따르면 연등회가 취소된 것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령으로 행렬이 진행되지 못한 이후 40년 만이다. 조계종을 포함한 한국불교종단협의회(종단협)와 연등회보존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심사숙고 끝에 무엇보다도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23, 24일 예정돼 있던 연등법회 및 연등행렬, 전통문화마당 행사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단, 30일 전국 사찰에서 봉행될 예정된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은 철저한 방역지침 준수하에 계획대로 진행된다. 연등회는 신라 진흥왕 때부터 팔관회와 함께 이어져 온 행사로 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돼 있다. 12월에는 제17차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 종단협 회장이자 조계종 총무원장인 원행 스님은 총무부장 금곡 스님이 대독한 입장문에서 “연등회는 신라 진흥왕 때부터 천년 넘게 이어진 소중한 전통문화이지만 최근 이태원발 코로나19사태로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됐다”며 “국민의 안전과 생명보호를 우선시해 취소를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원행 스님은 이어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그동안 불교계와 방역당국의 지침을 성실히 이행해 주신 전국 사찰의 주지 스님들과 불자님들께 감사드린다”며 “국가와 국민의 어려움을 함께하고자 하는 불교계의 결정이 더욱더 의미 있게 우리 사회에 회향될 수 있도록 뭇 생명의 평화를 위한 정진의 길에 함께해 주시길 당부드린다”고 밝혔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0-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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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닥토닥”… 코로나에 지친 의료인-공무원들 쉬러 오세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헌신적으로 싸워온 의료인과 관련 공무원을 위한 특별 지원 프로그램 ‘토닥토닥 템플스테이’가 진행된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하 문화사업단·단장 원경 스님)이 공익사업으로 펼치는 나눔 템플스테이로 10월 31일까지 총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이번 템플스테이는 전국 137개 템플스테이 운영 사찰 중 자연경관이 우수하고 휴식하기 좋은 사찰 16곳에서 이뤄진다. 몸과 마음을 편히 쉴 수 있도록 휴식형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기본으로 제공하며 최대 3박 4일까지 지원한다. 아울러 위로와 힐링의 의미를 담은 특별 기념품도 제공한다. 토닥토닥 템플스테이는 전액 무료이며 참가를 원하면 템플스테이 예약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된다. 원경 스님은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며 치료 및 예방, 방역에 종사하는 보건의료 관계자와 관련 공무원들의 피로도가 극심해지고 있다”며 “이들의 심신 안정을 위한 휴식처 제공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판단해 토닥토닥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게 됐다”고 밝혔다. 문화사업단은 코로나19 추이를 지켜본 후 토닥토닥 템플스테이 연장 운영도 검토할 계획이다. 문화사업단은 사회적 약자 및 소외계층 등을 대상으로 나눔 템플스테이를 꾸준히 운영해 지난해에는 총 2만5000여 명에게 템플스테이를 지원한 바 있다. 템플스테이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맞아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가장 한국적인 모습을 선보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제는 외국인뿐 아니라 내국인들 사이에도 각광받는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체험관광 프로그램이 됐다. 참가자들은 전통문화와 자연환경이 어우러진 한국 사찰에 머무르며 예불, 참선, 발우공양, 울력 등 사찰에서의 일과를 체험하게 된다. 문화사업단은 템플스테이를 총괄 운영·관리하고 있으며 매년 템플스테이 정식 운영사찰을 선정 및 지정하고 있다. 현재 템플스테이는 2018년 기준 전국 130여 개 사찰에서 운영되고 있다. 외국인 참가자들을 위해 영어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외국인 템플스테이 전문 사찰도 있다. 토닥토닥 템플스테이 운영 사찰금산사(전북), 낙산사(강원), 동화사(대구), 불국사 은해사 직지사(이상 경북), 삼화사(강원), 송광사 증심사 화엄사(이상 전남), 수덕사(충남), 신륵사(경기), 통도사 해인사(이상 경남), 한국문화연수원(충남), 화계사(서울)※ 현재 16곳, 추후 늘어날 수 있음텍스트를 입력하세요템플스테이 홍보관내용: 템플스테이 운영 사찰에 대한 안내와 ‘스님과 의 차담’ ‘전통문양 채색 체험’ ‘연꽃등 만들기’ 등 의 체험 프로그램을 상시 진행운영 시간: 월∼일요일 오전 9시∼오후 7시주소: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56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0-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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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눔의집’도 후원금 부정 사용 논란

    위안부 피해 할머니 지원 시설인 경기 광주시의 ‘나눔의집’이 후원금을 부정하게 사용했다는 내부 고발이 나왔다. 나눔의집에는 이옥선 할머니(93) 등 피해 할머니 5명이 머물고 있다. 사회복지법인 ‘나눔의집’에서 근무하는 김대월 학예실장 등 직원 7명은 19일 “나눔의집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보금자리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무료 양로시설일 뿐 그 이상의 치료나 복지는 제공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법인이 채용한 운영진이 20여 년간 독점 운영했고, 병원 치료비나 물품 구입 등을 모두 할머니들 개인 비용으로 지출하게 했다”고 했다. 이 직원들은 “나눔의집에 지난해 25억 원이 넘는 후원금이 들어왔지만, 할머니들을 위해 쓰인 돈은 6400만 원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수입·지출을 담당하는 사무국장의 배임·횡령 의혹도 제기했다. “사무국장이 개인 계좌로 기부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나눔의집 전시 사업을 특정 업체에 몰아줬다”며 “운영진에 수차례 문제를 제기했지만 오히려 해당 직원을 해고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김대월 실장은 이날 동아일보와 만나 “할머니들이 아직 살아 계신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지만 할머니들을 위해 문제를 꼭 해결하고 싶다”고 했다. 나눔의집 이사회는 “이유 불문하고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에 책임을 통감한다”면서도 “할머니들에 대한 후원금 횡령 등은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3월 광주시에 특별감사를 요청해 지난달 운영 관련 경고와 시정명령 조치를 받았을 뿐 횡령 등은 지적받은 바 없다”고 했다. 이사회는 “나눔의집은 대한불교조계종 산하가 아닌 독립법인”이라며 “설립 당시 4억5000만 원을 출연한 송월주 이사장은 29년간 무보수로 봉직해 왔다”고 밝혔다. 경기도는 13∼15일 나눔의집 법인에 대한 특별지도점검을 실시했다. 경찰은 직원들의 고발을 받은 뒤 후원금 횡령 의혹 등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강승현 byhuman@donga.com·신지환 기자 /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 2020-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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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계, 한달 미룬 연등회 결국 취소… 40년만에 처음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30일)을 앞두고 치를 예정이던 연등회(燃燈會)가 취소됐다. 대한불교조계종을 포함한 한국불교종단협의회(종단협)와 연등회보존위원회는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23, 24일 예정된 연등법회 및 연등행렬, 전통문화마당 행사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조계종에 따르면 연등회 취소는 1980년 전국 비상계엄령으로 못 한 이후 40년 만이다. 종단협 회장인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이날 총무부장 금곡 스님이 대독한 입장문에서 “연등회는 신라 진흥왕 때부터 이어진 전통문화이지만 최근 ‘이태원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됐다”며 “무엇보다 국민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30일 법요식은 철저한 방역지침을 지키는 가운데 예정대로 열릴 방침이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0-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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