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든 주인 되고 진리를 만나면 세상사 거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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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 축서사 문수선원장 무여 스님

참선 수행자로 살면서도 고민을 갖고 찾아오는 이들을 언제나 웃는 얼굴로 맞는 무여 스님. “다른 것은 몰라도 ‘전공’은 잘 선택했다. 저를 찾는 이들이 힘을 내면 ‘인생복덕방’을 연 보람이 있는 것 아니냐”는 게 스님의 말이다. 봉화=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참선 수행자로 살면서도 고민을 갖고 찾아오는 이들을 언제나 웃는 얼굴로 맞는 무여 스님. “다른 것은 몰라도 ‘전공’은 잘 선택했다. 저를 찾는 이들이 힘을 내면 ‘인생복덕방’을 연 보람이 있는 것 아니냐”는 게 스님의 말이다. 봉화=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경북 봉화군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독수리 형상의 산세 때문에 축서사(鷲棲寺)라고 이름 붙여진 청정도량이 있다.

673년 의상 대사가 창건했다는 이 사찰은 서울에서 차로 3시간 넘게 걸리고, 꽤 가파른 문수산 800m 고지에 있다.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이유로 이곳을 찾는다.

첫째는 산세와 어우러진 사찰의 아름다움 때문이고 둘째는 수행자들의 스승, 선지식(善知識)으로 명성이 높은 문수선원장 무여(無如) 스님(80)을 찾아서다.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30일)을 앞둔 21일 축서사 응향각에서 스님을 만났다.

“산골 중을 찾아 먼 길을 뭐 하러 왔냐”는 스님은 알려진 대로 환한 웃음 자체였다.》

―스님의 웃음에 피로가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서울이나 부산, 대구 등지에서 제 한마디 듣기 위해 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참선(參禪) 공부하다 어려워 작심해서 오고, 살기가 괴로워 저를 찾는데 웃으며 맞는 것이 예의이고 범절이죠. 선 얘기뿐 아니라 다양한 고민이 나와 ‘인생복덕방’ 주인이 됐어요. 한마디 듣고 힘이 난다고 하면 복덕방 연 보람을 느끼죠. 허허.”

―쇠락했던 작은 사찰이 30여 년 만에 번듯한 사찰로 바뀌었습니다.

“강원(講院)도 안 다니고 곧바로 참선을 시작해 20년쯤 됐을 때였습니다. 걸망 지고 여기저기 떠돌다 보니 자신을 정리하고 싶었어요. 그러던 중 고우 스님이 토굴 같은 절이 있다고 했는데 바로 축서사였어요.”

―선방 스님에게 도량을 정비하는 큰 불사(佛事)는 뜻밖인데요.

“2년만 있다 가려는데 신도들이 말렸어요. 그래서 저는 불사는 못 하니, 앞으로 불사할 수 있도록 터만 닦아 드리겠다고 했죠. 풍수지리 풍월로 보니, 이곳이 터는 좋은데 덕스럽지 못해 어렵게 살 곳으로 보였어요. 그래서 좋은 흙을 올려 부잣집 맏며느리처럼 부토(富土)로 바꾸자 싶었죠. 그랬더니 흙만 트럭 3000대 분량이 들어갔고 법당, 다시 부속 건물까지 불사가 이어졌습니다.”

―도반(道伴)인 고우 스님의 법문집 ‘태백산 선지식의 영원한 행복’이 최근 출간됐습니다.

“반가운 일이죠. 지난해 이런저런 얘기가 많이 들려 몇 번 찾아가고 걱정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건강이 좋아져 다행입니다.”

―지난해 말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의 갑작스러운 입적이 큰 충격이었습니다.

“아픈 것도 아니고 사고로 입적해 너무 안타까웠어요. 장례식 때 제가 호상을 했습니다. 공부할 때 보면 성격이 남성적이고, 강하고, 고집도 있었어요. 뭘 한다 하면 끝장을 보고, 대중을 이끄는데 리더십 있었는데….”

―이분들과 선 수행의 고민을 나눈 적도 있나요.

“글쎄, 그런 얘기는 안 했어요.”

―고수(高手)들이라서 그럴까요.

“(웃음).”

―화두를 드는 참선 수행은 어렵다는 이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제대로 마음을 낸 분이 얼마나 될까요? 남다른 인생을 살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어야 해요. 처음 출발할 때는 제대로 된 스승에게 지도를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나란 무엇인가’ ‘이 뭣고’ 같은 화두를 드는데, 처음에는 화두가 계속되기 어렵죠. 끊기면 다시 화두를 들고, 그러다 보면 화두에 대한 진정한 의심이 생기고, 그런 정도만 되어도 마음이 평안해지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어요.”

―언제 그런 느낌을 처음 맛보셨나요.

“운 좋게도 출가 첫해 느꼈습니다. 굴곡은 있었지만 오직 이 길뿐이라며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선의 즐거움을 체험했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인간 무여는 보잘것없지만 전공은 잘 선택한 거죠. 일반인도 아침 참선 뒤 하루를 시작하면 정말 하루가 굿모닝입니다.”

―일부 출가자와 종단 행정에 대한 비판도 있습니다.

“절 집안이 어렵고 사건도 일어나는데 승복 입고서도 부처님 법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죠. 귀불 귀법 귀승(歸佛 歸法 歸僧), 자나 깨나 부처님으로 꽉 차 있어야죠.”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를 밝혀주시겠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법회와 연등회를 취소한 것은 안타깝지만 올바른 결정입니다. 어렵고 힘든 이 세상에 지혜의 등불을 환하게 켜서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는 게 부처님 뜻입니다.”

―평소 신도들에게 자주 하시는 말씀은 무엇인가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어디서든 주인이 되고 진리를 만나야 합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면 코로나19를 포함한 세상의 어려움을 능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 무여(無如) 스님은?
1966년 직장 생활을 하던 중 26세 때 오대산 상원사에서 희섭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68년 오대산 월정사에서 탄허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1971년 금정산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여러 선원에서 20여 년 동안 수행하고, 칠불사와 망월사 선원장을 지냈다. 1987년부터 축서사에 머무르며 조계종 ‘선원청규(禪院淸規)’ 발간의 총감수를 맡았다. 2018년 최고 법계인 대종사를 품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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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무여 스님#경북 봉화 축서사#부처님오신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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