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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의 본산인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미국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1757∼1804)의 생애와 건국 초기 모습을 다룬 뮤지컬 ‘해밀턴’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 최신호가 보도했다. 해밀턴은 미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 중 한 명이자 10달러 지폐의 주인공이다. ‘건국의 아버지’는 미국 독립전쟁 및 독립선언문 작성에 깊숙이 관여한 주요 정치인 수십 명을 일컫는 말. 해밀턴을 비롯해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 미 독립선언문의 주역 벤저민 프랭클린 등이 포함된다. 8월 브로드웨이 리처드 로저스 극장에서 막을 올린 이 뮤지컬은 연말연시를 맞아 연일 만석을 기록하고 있다. 이 뮤지컬을 두 번이나 관람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빛나는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이 뮤지컬은 대부분의 음악이 힙합과 랩으로 구성돼 있다. 흑인과 히스패닉 배우들이 역사적 백인 인물을 연기한 게 흥미롭다. 이는 대본, 작사, 작곡, 주연을 맡은 미 히스패닉계 가수 겸 배우 린마누엘 미란다(35)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후손인 그는 딱딱한 역사 이야기를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힙합과 랩을 곁들어 재미있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내년 1월 4일부터 역내 위안화 거래시간을 7시간 늘리겠다고 23일 공표했다.인민은행은 이날 웹사이트를 통해 “현재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인 역내 위안화 거래의 마감시간을 오후 11시 30분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거래시간 연장은 위안화의 국제화 촉진 및 외환시장 개혁을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매일 오후 4시 30분에 마감하는 현재의 거래 체제 하에서는 유럽이나 미국 등 외국 투자자의 참여가 힘들지만 거래 시간을 늘리면 시차 문제가 해결돼 더 많은 외국 투자자가 위안화 거래를 할 수 있기 때문.국제금융 전문가들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달 30일 위안화를 특별인출권(SDR) 기반통화(바스켓)에 편입한 가운데 이번 조치로 위안화 국제화 속도가 더 빨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리 보 GF증권 자문위원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된 만큼 더 많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아시아 시장의 정규 거래시간 외에도 위안화 거래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매주 잡지의 마지막 면을 인물 부고 기사로 채우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1일 올해 자사 부고란에 실렸던 세계 유명인사를 추려 ‘올해의 10대 부고’를 선정했다. 사망시점 기준으로 첫 번째로 뽑힌 인물은 1월 7일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테러로 숨진 프랑스 풍자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의 스테판 샤르보니에르 편집장(47)이다. 이슬람 선지자 무하마드나 교황 등에 대한 도발적이고 날카로운 만평으로 유명했던 그는 수 년 전부터 이슬람 무장단체의 살해협박을 받아왔지만 “언론의 자유가 없다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두 번째 인물은 1월 30일 숨진 오스트리아 태생의 미국 화학자 칼 제라시 전 스탠퍼드대 교수(92)다. 1960년대 그가 개발한 경구피임약은 여성의 성적 자유 및 사회적 지위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어 올해 2월 피살된 러시아 야권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55)가 순위에 올랐다. 그는 친(親)서방 성향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고 정적으로 꼽혔으며 모스크바 시내 한복판에서 의문의 총격을 받아 숨졌다. 3월 타계한 영국 소설가 테리 프래칫(66)도 순위에 올랐다. ‘디스크월드’ 시리즈로 유명한 그는 ‘해리포터’의 조앤 롤링과 함께 영국 판타지문학을 세계에 알렸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4월 숨진 199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겸 ‘양철북’의 작가 귄터 그라스도 뽑혔다,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 탈레반의 창시자인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는 2013년 4월 사망했지만 올해 10대 부고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은둔의 지도자’로 불릴 정도로 행방이 모연했던 그의 죽음이 올해 공식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어 미 신경의학자 올리버 색스, ‘끝나기 전까진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로 유명해진 미 프로야구 뉴욕 양키스 선수 요기 베라, 영국이 1970년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당시 재무장관을 지낸 노동당의 거물 정치인 데니스 힐리 전 영국 재무장관, 11월 13일 프랑스 파리 바타클랑 극장 테러로 숨진 파리 시민 세드릭 모듀잇 씨(41)도 포함됐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14일 아르헨티나 북부 살타 주에서 경찰버스가 추락해 탑승하고 있던 경찰관 최소 42명이 숨지고 9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로이터 등이 보도했다. 사고는 이날 새벽 2시경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북쪽으로 약 1500㎞ 떨어진 살타 주 로사리오 델 라 프론테라에서 일어났다. 국경수비대 경관 60여 명을 태우고 국도를 이동하던 버스가 깊은 산 속 위에 있는 다리를 건너던 중 25m 아래 마른 강바닥으로 추락한 것. 현지 언론들은 사고가 새벽에 일어나 구조 작업이 원활하지 않은데다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 수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현재 현지 경찰은 심야시간에 도로 사정이 열악한 시골 지역을 이동하던 버스가 운전사의 졸음운전이나 차량 이상 등으로 추락했을 것으로 보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한편 이달 10일 취임한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 새 대통령은 “사망한 경관들을 추모하고 가족들을 위로한다. 열악한 이 나라의 도로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국제 유가의 벤치마크인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14일 한때 배럴당 34달러 대로 떨어져 2009년 2월 이후 6년 10개월 최저치를 기록했다. 14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내년 1월 인도분 WTI 가격은 한때 전일 종가보다 0.82달러 하락한 배럴당 34.80달러에 거래됐다. 이는 2009년 2월 19일 이후 최저치다. 런던 ICE 선물시장에서 내년 1월 인도분 북해산 브렌트유 선물 가격도 3.5%(1.31달러) 급락한 배럴당 36.62달러로 떨어졌다. 만일 브렌트유가 36.20달러 밑으로 떨어지면 2004년 중반 이후 11년 최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WTI 가격은 이달 4일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에서 감산 합의 실패 소식이 전해진 이후 7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이 기간 동안 하락폭만 13%에 달한다. 이날 유가 하락을 이끈 요인은 이란의 증산 예상 소식으로 풀이된다. 이란 국영통신 사나는 14일 국내 전문가들을 인용, “핵협상 타결로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이르면 내년 1월 첫째 주부터 해제될 것”이라며 “이에 따라 이란이 추가 원유수출에 대한 고객들을 이미 확보한 상태”라고 전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미국-쿠바 국교정상화, 콜롬비아 내전 종식을 위한 평화협상 등 올해 굵직한 국제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막후 중재자 역할을 해 온 프란치스코 교황(79)이 파리 기후협정 협상에서도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고 BBC 등이 13일 보도했다. BBC에 따르면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마지막 날인 12일 미국 터키 니카라과 등 일부 참가국들의 제동으로 협상이 진통을 겪자 교황이 직접 나서서 반대를 누그러뜨렸다. 막판 협상이 어려워진 것은 미국이 최종 합의문의 한 단어를 문제 삼아 수정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선진국이 온실가스 감축을 주도해야 한다’는 문구에 들어가는 영어 ‘shall’이 법적 강제성을 띄는 것으로 해석돼 의회를 통과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좀 더 완곡한 표현인 ‘should’로 바꿀 것을 주장했다. 미국의 이 요구로 최종 타결이 수 시간 늦춰지자 다른 참가국들도 잇따라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합의문을 고치려고 시도했다. 터키는 합의문의 요구 사항이 지나치게 많다고 불평했고 니카라과도 합의문의 일부 내용과 향후 후속 조치가 상응하지 않는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때 교황이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70)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협정을 꼭 타결해야 한다”고 간청했다고 BBC는 보도했다. 이후 니카라과는 반대를 철회했고 세계 195개국이 참여하는 첫 지구적 기후협약인 파리 협정이 무사히 타결됐다. 니카라과의 반대 철회가 100% 교황의 전화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그의 중재가 큰 기여를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BBC는 전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3월 교황이 된 후 줄곧 기후문제를 주요 관심사로 삼고 지구촌이 적극 대응해야 할 것을 촉구해왔다. 그는 올해 9월 미국을 첫 방문 했을 때는 물론 이번 파리 기후총회 개막 직전에도 “기후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하정민기자 dew@donga.com}
국제유가가 7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7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전일 대비 5.8% 떨어진 배럴당 37.65달러에 마감했다. 이는 2009년 2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유가가 20달러까지 추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산유국이 직격탄을 맞은 것은 물론이고 국제 질서까지 흔들 기세다. 산유국 정정 불안이 지정학적 긴장을 높여 전 세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블룸버그 등이 7일 보도했다. 산유국 정정 불안에 이웃 국가들은 안보 동맹이나 경제 블록에서 하나둘씩 등을 돌리고 있다. 유가 하락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나라는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으로 중동에서 ‘맏형’ 역할을 해 오던 사우디아라비아다. 올해 사우디의 재정적자는 1300억 달러(약 152조 원)로 국내총생산(GDP)의 19.5%에 달한다. 이를 막기 위해 최근 1년간 외환보유액에서 915억 달러를 빼냈고 올해 7월에는 국채도 발행했다. 그럼에도 이 나라는 예멘 내전 개입, 이슬람국가(IS) 공습 등으로 지난해 GDP의 10%였던 국방 예산 비중을 올해 17%로 늘려 국민 불만이 증폭되고 있다. 이달 12일 사상 최초로 여성 참정권이 부여된 지방선거가 실시되는 것도 국민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세계 7위 경제 대국 브라질에서는 저유가로 인한 경제난이 대통령 탄핵 위기로 번졌다. 이 나라는 올해 3분기 성장률이 ―4.5%로 1996년 통계 집계 후 사상 최저치였다. 브라질 의회는 이달 3일 불법 선거 자금 문제 등의 혐의로 좌파 정부를 이끄는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에 돌입했다. 집권당 대표인 호세프 대통령이 당장 탄핵될 가능성은 낮지만 남미 대륙에서 대국으로서의 지도력을 잃어 가고 있다. 중남미 최대 산유국인 베네수엘라도 총선에서 우파가 승리했고 역시 석유 수출국인 아르헨티나에는 이미 우파 정권이 들어섰다. 수출의 68%를 에너지 산업에 의존하는 러시아도 저유가 직격탄을 맞았다. 7일 러시아의 국가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294.14bp(베이시스포인트·1bp는 0.01%)로 약 2주 만에 무려 40bp 가까이 올랐다. 이 나라 의회는 내년 유가를 배럴당 50달러로 예상하고 예산안을 심의하고 있지만, 유가가 떠받쳐 주지 못할 경우 1998년처럼 디폴트 상황까지 몰릴 수 있다. 러시아의 경제난은 옛 소련의 형제국이던 독립국가연합(CIS)의 결속력도 흔들어 놓았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러시아의 내전 개입으로 이미 등을 돌렸고, ‘러시아의 동생’으로 불리던 벨라루스도 시리아 내전 대처 등에서 러시아의 말을 듣지 않는 상황이다. 러시아에서 일하던 우즈베키스탄이나 타지키스탄 출신 노동자들도 루블화 급락에 따라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번 유가 하락은 선진국까지 전염시키고 있다고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선진국은 저유가로 인한 물가 하락이 디플레이션 압력으로 번질까 고민하고 있다. 이미 마이너스 금리 상태지만 지난주 또 금리를 낮춘 유로존은 ‘저물가→침체 가속’이라는 악순환을 우려하고 있다. 독일이나 일본 등 주요 수출국은 산유국에서 진행되던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를 중단하거나 재검토하고 있다. 재정적자와 환율 하락이 겹친 터키 인도 등도 저유가의 그늘 속으로 들어갔다고 블룸버그가 전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한국 3대 부호의 재산 합계가 지난해 북한의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4일 기준 블룸버그의 ‘세계 200대 부호 순위’에 따르면 한국인으로 순위 안에 포함된 부호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87위),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148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186위) 등 3명이었다. 이 3명의 재산을 모두 합치면 268억 달러(약 31조3560억 원)로 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북한의 명목 GDP 33조9494억 원에 약 2조6000억 원 모자라는 수준이다. 한국 최고 부호인 이 회장의 올해 재산은 4일 현재 117억 달러(약 13조6890억 원)로 지난해보다 11% 정도 줄어든 것으로 추산됐다. 삼성전자 등 주력 계열사들의 주가 하락이 주요인이라고 블룸버그는 평가했다. 국내 2위 부호인 서 회장의 재산은 아모레의 실적 호조로 지난해보다 약 50% 늘어난 82억 달러(약 9조5940억 원)를 기록했다. 3위는 이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으로 69억 달러(약 8조730억 원)였다. 블룸버그는 자사 웹사이트(www.bloomberg.com/billionaires)에 세계 부호 순위를 매일(주말 제외) 업데이트하고 있다. 한편 올해 세계 최고 부자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주였으며 재산은 847억 달러(약 99조990억 원)였다. 2위는 패션 브랜드 ‘자라’로 유명한 아만시오 오르테가 인디텍스 창업주, 3위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차지했다. 올해 세계 부호 중 재산이 가장 많이 늘어난 사람은 미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제프 베저스 창업주였다. 그의 재산은 593억 달러로 올해 들어서만 307억 달러(약 35조9190억 원) 늘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일본 교토를 대표하는 사찰로 상국사(相國寺·쇼코쿠지)가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금각사 은각사도 이 절의 말사(末寺)이다. 상국사에 붙어 있는 분원(分院)으로 자조원(慈照院·지쇼인)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 사찰은 18세기 조선통신사 유물을 대거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사찰은 통신사와는 별 관계가 없는 곳인데도 통신사들이 남긴 각종 시문(詩文)과 서화 100여 점을 보관하고 있다. 여기엔 9대 주지를 지낸 벳슈 소엔(別宗祖緣·1658∼1714)의 조선인들에 대한 남달랐던 애정이 숨겨져 있다. 》○ 창고 속에서 나온 통신사의 흔적들 이상 더위로 낮 기온이 섭씨 30도에 육박하던 4월 23일 교토 북쪽에 있는 자조원을 찾았다. 사찰은 윤동주와 정지용이 유학해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동지사(同志社·도시샤)대학에서 가까웠지만 상국사와는 10분 정도 떨어진 한적한 주택가에 독립적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 찾기가 쉽지 않았다. 길을 헤매느라 지각을 하고 말았지만 주지 히사야마 류쇼(久山隆昭·73) 스님은 따뜻하게 기자를 맞아주었다. 교토 5대 선종 사찰(京都五山) 중 하나인 상국사는 한때 132만2300m²(약 40만 평)의 부지를 보유한 큰 절이었지만 분원인 자조원은 작은 정원, 본관 건물, 창고 1개로 매우 아담하고 소박했다. 규모는 작지만 정원과 본관 모두 티끌 하나 없이 깔끔해 스님과 신도들이 얼마나 공들여 관리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스님은 기자에게 정원에서 직접 길렀다며 따뜻한 녹차를 내주었다. 시중에서 파는 일반 녹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깊은 맛이 느껴졌다. 그는 10대 후반 출가해 수십 년간 선대 주지였던 숙부로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았고 1980년 숙부가 타계하면서 이어받았다. 그는 1982년 3월 중순 어느 날 창고 청소를 하다가 통신사들이 남긴 흔적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그의 말이다. “며칠 전부터 절 뒤편 창고에서 흰개미 떼가 들끓기 시작한 겁니다. 물건이 썩어서 그런가 보다 생각해 창고 정리를 시작했지요. 한참 동안 잡동사니와 쓰레기를 치우는데 가장 안쪽에서 오래된 후스마(襖·추위와 바람을 막기 위해 실내 문에 덧대는 일종의 중문)가 나온 거예요. 수북하게 쌓인 먼지를 털어내니 한눈에도 진귀해 보이는 각종 시와 그림들이 붙어 있었습니다. 하나하나 세어보니 59점에 달했습니다.” 보통 물건이 아님을 직감적으로 알아본 그는 이것들이 100여 년 전 일본에 왔던 조선통신사들이 남긴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고 통신사 연구에 명망이 높았던 재일교포 사학자 신기수 선생(1931∼2002)을 수소문해 만나게 된다. 마침내 신 선생으로부터 병풍이 1711년(숙종 37년) 일본을 방문한 통신사 일행과 자조원 9대 주지였던 벳슈 소엔이 교류한 흔적임을 확인했다. 그들의 인연은 어떻게 만들어졌던 것일까.○ 자유로웠던 화풍(畵風) 당시 일본을 방문했던 통신사는 영조 때 우의정까지 오른 평천 조태억(1675∼1728)이 이끄는 일행이었다. 약 400명의 통신사는 에도 막부 6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노부(1662∼1712)의 쇼군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1711년 5월 일본에 왔다가 벳슈 스님과 인연을 맺는다. 탁월한 학식과 뛰어난 시문 능력을 지녀 일본에서도 유명했던 벳슈는 통신사가 대마도에서 에도(현 도쿄)로 향할 때 오사카, 교토, 에도로 이어지는 구간을 동행하며 안내와 접대를 맡았던 ‘접반승(接伴僧)’이었다. 히사야마 스님은 “창고에서 나온 병풍틀이 다 썩어있어서 새로 틀을 만들어 그림과 시를 붙여 원형을 복원하려 했다”며 기자를 안쪽 방으로 안내했다. 직접 확인한 그림과 시문들은 고미술에 문외한인 기자의 눈에도 남달라 보였다. 우리가 흔히 보는 직사각형 한지가 아니라 부채, 매화, 살구꽃, 복숭아, 다각형 등 다양한 모양으로 오린 종이에 글을 적거나 그림을 그린 것들이어서 생동감 있고 자유롭게 느껴졌다. 히사야마 스님은 “일본 전통 유물 중에는 이런 특이한 형태의 종이에 글과 그림이 있는 유물이 거의 없다”며 “당시 통신사들의 예술적 감각과 창의성이 매우 뛰어났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꼬장꼬장하던 조선 선비들이 꽃 모양으로 종이를 오리고 그 위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고미술 분야 권위자이며 자조원 병풍 도록작업에 참여했던 홍선표 이화여대 교수(미술사학)는 “그림, 글씨, 탁본, 도장 등을 붙인 병풍을 백납병풍(百衲屛風)이라 한다”며 “숫자 백(百)과 누더기 옷을 뜻하는 납(衲)을 결합한 단어로 수많은 그림을 마치 누더기 옷을 깁듯 겹쳐 붙여놓았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는 “자조원 병풍은 18세기 조선 서화의 일본 내 유입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도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유물 ‘한객사장’ 자조원에는 통신사 일행이 벳슈 주지에게 남긴 약 100점의 시를 총 4개의 두루마리 형태로 모아놓은 ‘한객사장(韓客詞章·조선에서 온 손님들이 남긴 감사의 글)’이라는 귀한 물건도 있었다. 두루마리들은 세로 21cm, 가로 48cm, 높이 21cm의 나무상자 속에 잘 보존되어 있었다. 상자 안쪽에는 ‘1711년 벳슈 소엔이 쇼군의 명을 받들어 한국인들을 접대하며 주고받은 허다한 시편이 있어 세상에 출판하였다. 이를 4개의 두루마리로 만들어 영구히 보관한다’는 벳슈의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히사야마 스님은 2009년 3월 부산시,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와 손잡고 소장 유물을 형태, 연대, 인물별로 분류한 뒤 이름과 번호를 붙인 도록을 발간했다. 제작에는 정경주 경성대 교수(한문), 조강희 부산대 교수(일어일문), 다와타 신이치로 일본 히로시마대 교수 등 한일 학자들이 두루 참여했다. 18세기 한국과 일본의 교류 흔적이 21세기 양국 지식인들의 교류로 이어진 것이었다. ‘한객사장’ 중에는 통신사 일행이던 이현과 이방언이 남긴 벳슈에 대한 고마움이 담긴 시도 보였다. ‘문안 인사 자주 옴이 놀랍거니와/맑은 시 기쁘게 다시 보노라니/새벽 종은 옛 절을 울리고/가을 달은 겹겹 멧부리에 걸렸네’(이현) ‘여관 침상에 턱을 괴니 등불만 깊어/홀로 거문고 잡아 향수를 달래는데/고마워라 스님의 소중한 마음 씀씀이/좋은 시를 자주 보내어 발자국 소리를 대신하네’(이방언) 한태문 부산대 교수(국문과)는 “새벽 종, 가을 달, 향수 같은 서정적인 단어에서 알 수 있듯 벳슈는 머나먼 이국땅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잠을 못 이루는 조선인들을 달래주던 일본인이었다”며 “접반승이라는 공식 업무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통신사 일행을 배려했으며 통신사들 또한 그의 따뜻하고 진정성 있는 마음에 감동했음이 시에 잘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당시 통신사 서기를 맡았던 홍순연(洪舜衍)이 ‘비단을 머금은 듯 민첩하고 격조는 솟구친 봉우리처럼 높다’며 벳슈의 재능을 칭찬한 글도 있었다. 한 교수는 “이뿐만 아니라 벳슈를 남송시대에 명망을 떨쳤던 중국 최고 승려시인 혜휴(惠休)와 비견하는 시도 있고 자신의 문학적 재능이 벳슈만큼 뛰어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시도 있다”고 전했다. 이런 벳슈와 이별하는 것을 통신사들은 못내 서운해했다. 정사 조태억이 지은 시에는 이런 심경이 잘 드러나 있다. ‘흰 구름 가득한 넓은 바다가 돌아갈 노정/한 조각 돛단배는 고국을 향한 마음뿐/서글프다 스님과는 이제부터 소식조차 막히리니/불가(佛家)의 맑은 만남 다시 이루기 어려우리.’○ 일반인이 보기 힘든 유물 매년 교토를 방문하는 한국인은 수십만 명에 달하지만 자조원 유물들을 접하기는 힘들다. 몇 년에 한 번씩 특별 전시 때만 공개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돈 때문이다. 여타 많은 일본 절과 마찬가지로 자조원은 신도들의 기부금으로만 운영되는 터라 기본 경비를 충당하기에도 벅차다. 이런 와중에도 히사야마 스님은 유물이 발견됐던 낡은 나무 창고를 화재와 통풍에 강한 세라믹 소재로 바꿔 짓고 있다. 총 5억 원이 드는 사업이다. 스님은 “앞으로 3억 원 정도가 더 필요한데 주차장 이용료, 입장료 등을 모으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겠느냐”며 웃어 보였다. 전시관 건립에 한일 양국 정부나 기업의 후원이 필요하냐고 묻자 그는 “지원을 받으면 제약도 커지지 않겠는가”라고 조심스레 답했다. 히사야마 스님은 “2007년 8월 조태억의 11대 후손이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며 “선조의 흔적을 보며 기뻐하는 모습에 나 역시 뿌듯했다”고 했다. 마침 부산시립박물관이 6일까지 열리는 ‘조선통신사와 부산’전에서 자조원 유물을 대거 선보이고 있다. 선조들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교토=하정민 기자 dew@donga.com}

1억 파운드(약 1739억 원)를 호가하는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작 ‘아름다운 공주(La Bella Principessa·사진)’가 위작(僞作) 논란에 휩싸였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등이 30일 보도했다. 고(故) 천경자 화백의 대표작 ‘미인도’를 둘러싸고 1991년 국내에서 벌어졌던 위작 논쟁과 비슷해 관심을 끈다. 영국 위조화가 숀 그린헐 씨(54)는 최근 출간한 회고록 ‘한 위조 화가의 이야기’에서 다빈치가 아닌 자신이 ‘아름다운 공주’를 그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1978년 영국 랭커셔 지방에 거주할 때 이 그림을 그렸다면서 인근 슈퍼마켓에서 일하던 땋은 머리의 젊은 여종업원 ‘샐리’를 모델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린헐 씨는 그림 위조 혐의로 2006년 체포돼 5년간 복역했으며 감옥에서 이 회고록을 썼다. 그는 “이 그림이 1400년대에 그린 진품처럼 보이도록 오래된 문서를 캔버스로 사용했고 고목으로 만든 숯으로 그렸다”고 밝혔다. 영국 미술계는 그린헐 씨의 이런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지난 2년에 걸친 실험실 감식 결과 이 작품이 최소 250년 전에 그려졌다는 결론이 나왔다는 것이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다음달 12일 1932년 사우디아라비아 건국 후 사상 최초로 여성참정권이 부여된 지방선거가 치러질 예정인 가운데 이를 위한 선거운동이 29일 시작됐다. 피선거권이 보장된 여성이 후보로 나서는 것도, 여성 후보가 선거운동에 나서는 것도 사우디 역사상 모두 최초라고 알자지라 등이 30일 보도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선 사우디 전체 지방의회 의원 3159명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2106명이 선출된다. 나머지 3분의 1은 정부가 직접 지명한다. 사우디 선관위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 입후보자 6140명 중 여성 후보자는 전체의 14%인 865명이다. 하지만 유권자 등록을 마친 여성은 13만6000명에 불과해 여성 후보자 비중보다도 훨씬 낮다. 이에 따라 여성 후보자의 당선 비율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라고 외신들은 전망했다. 이는 여성 후보자들의 선거운동에 많은 제약이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알자지라는 평가했다. 우선 여성 후보자는 남성 유권자의 얼굴을 보며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오로지 남성 대변인을 통해서만 남성 유권자나 언론과 간접 소통할 수 있다. 이 같은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여성 후보들은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사우디 주요도시 제다에서 출마한 사회복지사 출신의 사미라 샤마트 씨는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을 이용해 유권자와 소통하고 있다. 그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딸과 두 아들도 선거운동을 적극 돕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이 자동차 운전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남녀차별이 극심한 사우디에서 여성들의 선거 참여는 매우 이례적이다. 올해 1월 숨진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전 국왕이 2011년 여성참정권을 부여하겠다고 밝힌 뒤 약 4년 만에 이뤄진 것. 압둘라 전 국왕은 2013년 국왕의 최고 자문기구이자 국정의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슈라위원회 위원 30명의 20%도 반드시 여성으로 채우게 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13일 프랑스 파리 테러 당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바타클랑 극장에서 공연했던 미국 2인조 록밴드 ‘이글스 오브 데스메탈’이 22일 미 온라인매체 바이스와 최초로 인터뷰를 갖고 테러 당시의 참혹했던 현장을 생생히 증언해 화제다. 이글스 오브 데스메탈의 리더인 제시 휴스(43)는 이날 인터뷰에서 “테러범이 난입하자 많은 사람들이 우리 밴드의 탈의실 안으로 들어와 숨었다. 하지만 테러범이 이 곳으로도 들어와 한 명씩 모두 죽였다”며 “내 가죽 재킷 뒤에 숨은 한 아이만 살아남았다”고 밝혔다. 그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공포에 떨었고 결국 살해당했다. 많은 사람들이 친구와 주변 사람을 두고 혼자 도망가지 않으려다 테러범의 총에 맞았다. 그래서 더 많은 피해자가 생겼다”고도 설명했다. 휴스와 나머지 멤버 제시 홈스(42)는 당시 무대 뒤 출구를 통해 무사히 탈출했지만 이글스 오브 데스메탈의 매니저였던 닉 알렉산더(36)를 비롯한 음반회사 직원, 음악계 동료 등 많은 지인을 잃었다. 이에 이글스 오브 데스메탈은 지난 18일 자신들의 페이스북에 페이지에 “우리의 생각과 마음은 이번 테러의 희생자, 이들의 친구,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해 있다”며 “이번 일로 사랑만이 악(惡)을 무색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알게 됐다”고 고인들을 추모했다. 한편 이번 독점 인터뷰를 게재한 온라인 매체 바이스는 자사의 홈페이지에 휴스와 나눈 약 1분 짜리 인터뷰 영상만을 공개했다. 바이스 측은 이번주 안에 전체 인터뷰를 공개하겠다고 덧붙였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20일 서아프리카 말리 테러로 숨진 민간인 20명 가운데 유일한 미국인 희생자 아니타 다타르 씨(41·여) 사연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고 가디언 등이 21일 보도했다. 그가 평생 제3세계 빈곤 및 질병 퇴치에 헌신한 공공정책 전문가인 데다 7세 아들을 혼자 키우고 있는 ‘싱글맘’이어서 미국 내 추모 열기가 뜨겁다고 덧붙였다. 미 국제 컨설팅회사 팔라디움의 직원 신분으로 최근 말리에 온 다타르 씨는 동료 2명과 함께 이번 테러가 벌어진 수도 바마코의 5성급 호텔 래디슨블루에 투숙했다. 20일 오전 7시께 무장괴한들이 이 호텔에 난입해 투숙객 및 직원 20명이 숨졌고 이 과정에서 그도 희생됐지만 자세한 사망 과정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인도계 미국인인 다타르 씨는 1974년 미 동북부 매사추세츠 주에서 이민 1세대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뉴저지 주 럿거스대에서 심리학 학사,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공공보건 및 공공정책 석사 학위를 딴 엘리트다. 그는 1997∼1999년 말리 인접국 세네갈에서 2년간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했고 인도 첸나이에서 빈곤 여성을 돕는 비영리단체도 조직했다. 2012년 팔라디움에 입사한 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냐 나이지리아 등을 돌며 에이즈 퇴치를 포함한 아프리카 보건 향상에 힘써왔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다타르 씨의 사망 소식을 듣고 “아니타는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이자 미국의 관용정신을 대표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어린 아들이 짊어져야 할 짐을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진다”고 애도 성명을 냈다. 이어 “그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이 이슬람국가(IS)나 알카에다를 비롯한 테러단체와의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존 케리 국무장관도 역시 성명을 통해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고 밝혔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18일 새벽 파리 북부 생드니의 아파트에서 벌어진 파리 테러 총책 압델하미드 아바우드(27)의 검거 작전에서 한 여성 용의자가 경찰을 향해 총을 쏘며 저항하다 자살폭탄 조끼를 터뜨려 자폭한 것이 화제가 됐다. 아바우드의 사촌으로 알려진 그의 이름은 아스나 아이트불라센(26). 그의 이름으로 개설된 페이스북에는 짙은 푸른색 히잡을 쓴 젊은 아랍계 여성이 양손을 ‘브이(V)’자 모양으로 한 채 정면을 응시하는 사진이 게시돼 있다. 가디언, 르파리지앵 등에 따르면 아이트불라센은 모로코계 프랑스인으로 1989년 파리 근교 클리시 라 가렌에서 태어났다. 2012년까지 생드니 인근의 한 건설회사에서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경찰은 그가 아바우드에게 은신처를 제공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그가 이번 파리 테러에 직접 가담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서구 언론들은 아이트불라센처럼 최근 IS의 주요 테러 사건에 등장하는 여성 테러리스트들을 ‘지하드 제인(Jihad Jane)’이라고 부른다. CNN은 “여성 테러리스트들은 당국 수사망을 피하기 쉬운 데다 일반인들도 이들을 경계하지 않아 더 위험하다”고 분석했다. ‘지하드 제인’의 시초는 2005년 11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미군 호송 차량을 향해 자폭테러를 벌인 벨기에 백인 여성 뮈리엘 드고크(당시 38세). 제빵사로 평범한 삶을 살던 그는 모로코계 무슬림 남편을 만나 극단주의에 물들었고 테러리스트로 변신했다. 올해 1월 프랑스 풍자잡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 당시 파리 시내 유대인 식료품점에서 인질극을 벌이다 숨진 세네갈계 프랑스인 아메드 쿨리발리의 아내 아야 부메디엔(26) 역시 지하드 제인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는 남편 쿨리발리가 인질극 전날 파리 남부에서 여성 경찰관 한 명을 죽일 때 당시 현장에서 이를 도왔다. 알제리계 프랑스인인 부메디엔은 테러 공범으로 경찰 수배를 받았지만 유유히 종적을 감췄고 아직도 행방이 묘연하다. 2013년 67명이 숨진 케냐 나이로비 쇼핑몰 테러 주동자인 영국 백인 여성 서맨사 루스웨이트(32)도 마찬가지. 그는 2005년 7월 영국 런던 지하철 테러의 주범인 저메인 린지의 아내로 2014년 초부터 시리아의 이슬람국가(IS) 본부에서 여성 테러대원을 훈련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언론은 루스웨이트가 IS에서 ‘스페셜 원’으로 불릴 만큼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09년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마호메트)를 조롱한 스웨덴 만화가 라르스 빌크스 살해를 시도한 미국 백인 여성 콜린 라로즈(51)는 지난해 1월 미국 연방법원으로부터 10년 형을 선고받고 미국 감옥에 수감돼 있다. 직접 테러에 가담하지 않는 대신 후방에서 IS의 선전선동 전략에 가담하는 여성도 있다. 영국 버밍엄의 평범한 주부였던 백인 여성 샐리 존스(46)는 몇 년 전 25세 연하의 IS 대원 주나이드 후세인(21)과 재혼했다. 후세인을 따라 시리아로 건너간 그는 이곳에서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서구 소녀들을 시리아로 회유하는 일을 담당했다. 둘은 영국 언론으로부터 ‘미스터 앤드 미시즈 테러(Mr. and Mrs. Terror)’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후세인은 올해 8월 미군 드론 공격으로 숨졌으나 존스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 싱크탱크 뉴아메리카재단에 따르면 IS의 테러가 본격화된 지난해에만 IS 합류를 위해 시리아 입국을 시도하다 체포된 여성이 455명이다. 이 중 약 8%(36명)가 서구 국적자로 이들의 평균 연령은 불과 18세다. 미 테러전문가 재럿 브라크먼은 저서 ‘글로벌 지하디즘’에서 “지하드 제인은 광적인 축구팬과 비슷하며 그들이 즐기는 스포츠가 테러”라고 했다. 존스가 영국 10대 소녀들을 회유할 때도 “지하드 전사의 신부가 되면 돈을 벌 필요도, 공부를 할 필요도 없다. 모두가 당신을 여신처럼 공경하고 떠받드니 시리아로 오기만 하면 된다. 멋진 인생이 펼쳐질 것”이라는 식으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미 분쟁지역 전문 PD도 “IS는 사막의 노을, 맛있는 음식 등 이국적인 삶을 강조하면서 돈을 벌 필요도, 공부를 할 필요도 없다며 순진한 여성들을 끌어들인다”며 “무슬림 전사의 아이를 낳고 그들을 내조하는 일이 고국에서는 하기 힘든 매우 중요하고 존경받는 일이라고 세뇌한다”고 했다. 캐서린 브라운 런던 킹스칼리지대 교수는 “지하드 제인은 대부분 서구사회에서 차별받는 무슬림계이거나 백인이더라도 하층민”이라며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은 무슬림 남성보다 눈에 띄기 때문에 특히 더 많은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는데 이때 느낀 피해의식이 이들을 극단적 행동으로 몰고 간다”고 지적했다.:: 지하드 제인 ::이슬람 성전(聖戰)을 뜻하는 단어 ‘지하드’에 미국 유명 여배우 데미 무어가 미 해군 특수부대원으로 출연한 1997년 작 ‘지아이(GI) 제인’의 주인공 이름 ‘제인’을 합쳐 만든 단어. 서구 언론이 ‘자생적 여성 테러리스트’를 뜻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남중국해를 둘러싼 중국과 미국의 충돌이 18, 19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또 벌어졌다. 18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날 “남중국해에서의 인공섬 건설을 중단하라”고 중국에 촉구하자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곧바로 “인공섬 건설은 주권 행위”라며 받아쳤다. 또 중국 관영 환추(環球)시보는 같은 날 사설에서 “중동이란 ‘말벌집’을 건드렸던 미국이 남중국해라는 또 다른 ‘말벌집’을 건드리려 한다”고 강력 비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베니그노 노이노이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국제법에 따라 해결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지난주 필리핀 정부는 중국을 의식한 듯 ‘APEC 회의에서 남중국해 문제를 언급 않겠다’고 했으나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태도를 바꿨다.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17일 필리핀에 도착하자마자 마닐라 만에 정박한 필리핀 해군 함정 ‘그레고리오 델 필라르’에 승선했다. 그는 이 함정 위에서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4개국의 해양안보 강화를 위해 미국이 총 2억5900만 달러(약 3263억 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처럼 양국의 군사동맹 의지를 강조한 것은 남중국해 문제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AP통신이 풀이했다. 중국도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남중국해에서 주변국들이 ‘불법 점거하고’ 있는 섬을 무력으로 빼앗을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는 등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다. 류전민(劉振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17일 기자들 앞에서 “중국은 주변국가에 불법으로 침탈당한 도서와 암초를 수복할 권한과 능력이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이 해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극도의 자제력을 발휘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에는 중국이 현재 남중국해 문제에서 선의를 보이고 있다는 의미와 함께 앞으로 무력 동원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18일 중국은 남해 함대가 남중국해에서 군사훈련을 하는 장면을 공개하기도 했다. 중국 인민해방군 기관지 제팡(解放)군보엔 전투기가 활주로에 착륙하는 장면을 비롯해 조종사, 관제탑 표정 등이 담긴 사진이 실렸다. 중국 언론도 미국을 향해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환추시보는 사설을 통해 “파리 테러를 비롯한 유럽 혼란은 결국 미국 책임”이라며 “중동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미국뿐 아니라 전 유럽에 침투해 마드리드 런던 파리 등을 공격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은 남중국해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말썽꾸러기가 유리창을 깨는 것과 비슷한 경솔하고 우악스러운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며 “중국이 이를 제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날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이 문제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태평양 국가들이 대화와 협의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좁히자”라고 말했다. 하정민 dew@donga.com·주성하 기자}
16일 정오(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소르본대 앞. ‘뎅 뎅’ 종소리가 울리자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마뉘엘 발스 총리를 포함한 장관들과 대학생들이 함께 서서 1분간 테러 희생자를 추도하는 묵념을 했다. 누군가의 입에서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가 흘러나오자 너나없이 따라 부르면서 합창했다. 묵념을 마친 철학 전공 학생은 “테러범들이 자유롭게 국경을 통과해 무고한 시민을 죽이는 일을 더는 놔둘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11월은 1월과 다르다(November is not January)’라는 내용의 기사를 싣고 1월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에 이어 이달 13일 2차 테러를 맞은 프랑스 시민들이 더는 ‘톨레랑스(관용)’를 말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 직후였던 1월에 프랑스 전역에서 약 370만 명이 넘는 시민이 거리 행진에 참가해 ‘톨레랑스(관용)’를 외쳤는데 이번 테러 이후엔 아직 어떤 시민 연대의 움직임도, 일반 무슬림과 급진주의자들을 구별하자는 목소리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NYT는 전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무슬림을 죽여라’와 같은 말이 넘쳐나고 길거리에서 무슬림을 향해 욕설을 퍼붓고 위해를 가하는 프랑스인도 늘고 있다. 한 무슬림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체육관에 갔다가 경찰에게서 아무 이유 없이 ‘헬멧을 벗어 보라’는 불심검문을 당했다”고 했다. 베일을 쓴 무슬림 여성 몇몇이 파리 시내의 한 임시 추모소에서 테러 희생자들을 애도하던 중 프랑스인 남성으로부터 욕설을 듣는 일도 벌어졌다. 당시 무슬림 여성 중 한 명인 아비바 타라바크 씨는 “욕설을 한 남성에게 ‘우리는 테러리스트들과 관계가 없다’고 항변했지만 ‘이곳은 당신들이 있을 데가 아니다’라는 답변만 들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또 올랑드 대통령이 16일 연설에서 이번 테러를 두고 “프랑스인이 다른 프랑스인을 죽였다”라고 발언한 데 주목했다. 범인이 무슬림임을 무의식중에 강조한 발언으로 심각한 사회 분열을 조장할 수 있는 표현인데도 누구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는 것이다. 발스 총리는 테러 발생 직후 “프랑스 전역에서 급진 이슬람 지도자(이맘)을 모두 쫓아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프랑스 여론이 급변한 최대 원인으로 ‘난민’을 꼽았다. 시리아 난민이 유럽에 본격 유입된 8월 이후 전 유럽에 난민 반대, 무슬림 반대 기류가 확산됐다고 분석했다. 또 표현의 자유와 다른 종교에 대한 존중을 두고 우선순위 논쟁이 벌어졌던 샤를리 에브도 테러와 달리 이번 테러로 인한 피해자는 이슬람과 별 관계가 없는 일반인이라는 점도 문제라고 덧붙였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올해 1월 7일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테러로 12명의 직원을 잃은 프랑스 풍자 전문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가 17일 나흘 전 파리 테러와 관련한 만평을 공개했다고 인디펜던트가 보도했다. 이번 만평에는 강렬한 붉은색 바탕 위에 총에 맞은 한 남성이 등장한다. 왼손에 와인 잔을, 오른손에 술병을 든 이 남성은 총에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온 몸 곳곳에서 피 대신 샴페인을 쏟아낸다. 만평에는 또 ‘그들(테러범)에겐 무기가 있다. 테러범 따위 엿 먹으라고 해(F*** them). 대신 우리에겐 샴페인이 있다’는 프랑스어 글귀가 실려 있다. 이어 “삶이 종교보다 소중하다. 우리의 믿음은 음악! 키스! 삶! 샴페인! 그리고 기쁨!”이라고 끝을 맺는다. 이는 거듭된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테러가 샴페인을 즐기는 프랑스인의 일상을 흔들지 못한다는 내용으로 해석된다고 인디펜던트는 풀이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