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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도에 이르는 가파른 직벽에 매달려 잠을 잔다. 언제 산사태가 날지 모르는 극한의 공포가 밀려온다. 정상 정복까지 주어진 시간은 약 100시간. 이후엔 다시 눈보라가 칠지 모른다. 험하기로 악명 높은 안나푸르나(해발 8091m) 남벽에 코리안 루트를 개척하고 있는 산악인 박영석 대장(48·골드윈코리아) 얘기다. 안나푸르나 남벽은 에베레스트(8850m) 남서벽, 로체(8516m) 남벽과 더불어 히말라야 3대 남벽으로 꼽힌다. 해발 4200m 지점의 베이스캠프에서 정상까지의 표고차가 3891m에 이르는 거벽이다. 7000m 부근에서 시작되는 600m 구간은 세계 최고의 암벽 전문가들에게도 성역으로 여겨지고 있다. 직벽 구간을 모두 통과해 안나푸르나에 오르면 세계 최초가 된다. 2009년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코리안 루트를 개척했던 박 대장은 지난해 안나푸르나 남벽에 도전했지만 기상 악화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박 대장은 9월 19일 출국해 히말라야 아일랜드 피크 등지에서 고산 훈련을 마쳤다. 네팔 최대 명절인 '다사이' 흰두 축제 기간 때문에 12일에야 전진 베이스캠프(5100m)를 구축했다. 원래 안나푸르나 남벽 베이스캠프는 4200m에 있지만 알파인 스타일 등정을 위해 좀 더 공격적인 위치에 캠프를 만들었다. 전진캠프를 떠나면 산소통도 짐꾼도 쉴 수 있는 캠프도 더 이상 지원되지 않는다. 박영석 대장, 신동민, 강기석 대원은 18일 오전 4시(한국 시간 오전 7시) 남벽 공격을 시작해 남벽 6500m 지점까지 올랐다. 영하 20도, 시속 50km의 칼바람을 견디며 비박을 하면서 21일 등정을 목표로 전진할 예정이다. 안나푸르나 남벽 코리안 루트 개척에 성공한다면 박대장은 북면으로 하산해 세계 최초의 횡단 여정을 마무리하게 된다.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미국프로야구 세인트루이스가 5년 만에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텍사스와 우승을 다투게 됐다. 세인트루이스는 17일 열린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방문 6차전에서 밀워키를 12-6으로 꺾고 4승 2패를 기록해 2006년 이후 5년 만에 정상 복귀를 노리게 됐다. 세인트루이스는 홈런 3개를 포함해 장단 14안타를 몰아치며 화끈한 타격전을 펼쳤다. 세인트루이스는 5-4로 쫓긴 3회에는 선두타자 앨버트 푸홀스가 1점 홈런으로 포문을 열었고 닉 푼토의 희생플라이와 앨런 크레이그의 2타점 적시타로 9-4까지 달아나며 승부를 결정지었다. 세인트루이스의 상대는 2년 연속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창단 첫 우승에 도전하는 텍사스. 텍사스는 한 경기 17안타, 15득점, 1이닝 9득점 등 팀 포스트시즌 기록을 연거푸 깨고 있는 방망이 군단이다. 11번째 우승을 노리는 세인트루이스와 2년 연속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창단 첫 왕좌에 재도전하는 텍사스. 리그 팀 타율 1위 간 맞대결로 화끈한 타격전이 예상되는 월드시리즈는 20일 1차전이 열린다.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지난해 신세계는 꼭 이기고 싶다고 말했지만 한 경기도 못 이겼어요.” 여자프로농구 ‘만년 꼴찌’ 우리은행의 주장 임영희는 11일 미디어데이에서 ‘올해 꼭 이기고 싶은 팀’을 꼽아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결연한 각오였다. 주장 임영희가 27점을 폭발시키며 우리은행에 홈 개막전 승리를 선사했다. 우리은행은 17일 춘천에서 신세계를 79-70으로 꺾는 이변을 일으켰다. 2007년 겨울리그 이후 4년 만의 홈 개막전 승리다. 우리은행은 1쿼터부터 신세계를 강하게 압박하며 22-11로 앞서갔다. 하지만 2쿼터부터 백전노장 김지윤(27득점)을 앞세운 신세계에 추격을 허용하며 3쿼터 초반 역전을 허용했다. 위기의 순간에 빛난 건 해결사 임영희였다. 우리은행은 4쿼터에만 13점을 쓸어 담은 임영희의 활약을 앞세워 승리를 거뒀다. 신세계는 4쿼터 에이스 김정은(17득점)까지 5반칙 퇴장당해 추격의 힘을 잃었다. 우리은행 김광은 신임 감독은 “오늘 지면 그냥 죽자고 말했다”고 말했다.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영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의 역동성이 드러난 최고의 레이스였다. 보통 경기 후반 판도가 드러나면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영암 레이스는 팬들의 눈을 끝까지 서킷에 붙잡았다. 먼저 피트 스톱이 대부분 2번밖에 없었던 점이 놀라웠다. 다른 대회에서는 보통 3회 이상 피트 스톱이 일어난다. 피트 스톱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서킷이 고급이라는 증거다. 피트 스톱이 줄어 차들의 간격이 떨어지지 않고 후반까지 재밌는 경기가 가능했다. 제바스티안 페텔의 질주는 자신이 왜 황제인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영암 서킷은 고속 코너가 많고 직선주로가 길어 직선에 강한 벤츠 엔진이 유리하다. 예선 1위로 폴 포지션(결선 출발 당시 가장 유리한 맨 앞에 서는 것)을 차지한 루이스 해밀턴의 우승이 점쳐진 이유다. 하지만 페텔은 레드불 머신이 직선에서 약하다는 평가를 극복하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같은 레드불 팀 동료 마크 웨버가 해밀턴(2위)을 따라잡지 못하고 3위에 그쳤는데, 페텔이 머신 때문에 우승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한 셈이다. 4위 싸움도 흥미로웠다. 경기 초반 비가 가늘게 내려 흡사 영국 같은 분위기였다. 영국 출신인 젠슨 버튼(4위)이 경기 후반 따라붙으며 치열한 3, 4위 싸움이 전개됐다. 피트 스톱 때는 메르세데스 팀의 협동심이 돋보였다. 첫 피트 스톱에서 니코 로스베르크는 버튼보다 늦게 들어왔지만 출발에선 오히려 앞질렀다. 미하엘 슈마허가 허무하게 경기를 포기한 것과 피트에서 주로로 진입하는 선이 너무 짧아 사고 위험성이 있었던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한국인 포뮬러원(F1) 드라이버가 나와야 코리아 그랑프리도 산다.” 대회 관계자, 언론인, 팬들까지…. 전남 영암 서킷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은 목소리였다. F1 코리아 그랑프리가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닌 내실 있는 대회로 연착륙하기 위해 한국인 F1 드라이버가 절실하다는 얘기다. 올해 대회는 교통, 숙박, 서킷 주변 편의시설, 경기 운영 등 여러 면에서 한 단계 도약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6일 결승에는 8만여 명이 서킷을 찾아 높아진 열기를 보여줬다. 하지만 말끔해진 외양과는 달리 속은 곪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 때문에 대회 중단의 우려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자국 F1 드라이버의 중요성은 독일이 잘 보여준다. 1990년대 초 자동차 산업 세계 1, 2위를 다투던 독일의 F1 열기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하지만 미하엘 슈마허(42·메르세데스GP)가 슈퍼스타로 떠오르며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슈마허는 기자에게 “국민 F1 드라이버가 나오면 많은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인 F1 드라이버 탄생의 확실한 방법은 현대·기아자동차나 삼성이 F1 팀을 창단하는 것이다. 인도(포스인디아), 말레이시아(로터스), 러시아(버진) 등 한국보다 자동차 산업의 규모가 작은 나라들도 F1 팀이 있는데 우리도 이젠 때가 됐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한 해 적게는 300억 원에서 많게는 3000억 원에 이르는 운영비 때문에 기업들의 결심은 쉽지 않아 보인다. 좀 더 현실적인 방법은 현 F1 팀의 스폰서 계약을 하면서 한국인 드라이버 영입을 조건으로 내거는 것이다. 고바야시 가무이(25·자우버) 등 전현직 일본인 드라이버들은 이런 방법으로 F1에서 활동해왔다. F1의 글로벌 스폰서인 LG전자는 이미 연 300억 원가량을 마케팅 비용으로 쓰고 있는데 방법을 조금만 바꾸면 한국 F1 드라이버 탄생에 일조할 수 있다. 물론 카트 기대주들을 어린 나이에 유럽 무대에 진출시켜서 기량을 높이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F1 진출을 코앞에 둔 한국인 최초 F2 드라이버 문성학(21·성균관대)은 한 해 차량 운영 및 관리, 연습장 대여, 타이어 교체 등 15억 원이 든다고 말했다. 유럽의 유망주들은 대부분 10대 시절부터 기업의 후원을 받지만 문성학은 건설업을 하는 아버지가 비용을 대왔다. 현실적으로 정부나 기업의 지원 없이 F1 진출은 힘든 상황이다. F1 드라이버의 등장이 적자 대회를 단숨에 흑자로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코리아 그랑프리를 계속 개최하기 위한 전제 조건임에는 분명하다.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유근형 스포츠레저부 noel@donga.com}

양학선(19·한국체대·사진)이 세계기계체조선수권대회 뜀틀에서 금메달을 따냈다.양학선은 16일 일본 도쿄 메트로폴리탄 체육관에서 열린 결선에서 1, 2차 시기 평균 16.566점을 획득해 2위 안톤 골로츠코프(러시아·16.366점)를 따돌렸다. 1991∼1992년 뜀틀 2연패를 한 유옥렬, 1999년 이주형(평행봉), 2007년 김대은(평행봉) 이후 한국 남자 체조의 다섯 번째 세계 제패다.지난해 11월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 우승한 양학선은 2012년 런던 올림픽 전초전인 세계선수권에서 정상에 오르며 한국 체조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 전망을 밝게 했다. 남자 대표팀은 단체전 예선에서 6위를 차지해 6회 연속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여자 대표팀도 단체전 15위에 올라 다음 해 1월 런던 프레올림픽에서 사상 첫 올림픽 출전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양학선(19·한국체대)이 세계기계체조선수권대회 뜀틀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양학선은 16일 일본 도쿄 메트로폴리탄 체육관에서 열린 결선에서 1, 2차 시기 평균 16.566점을 획득해 2위 안톤 골로츠코프(러시아·16.366점)를 따돌렸다. 1991~92년 뜀틀 2연패를 한 유옥렬, 1999년 이주형(평행봉), 2007년 김대은(평행봉) 이후 한국 남자 체조의 5번째 세계 제패다. 지난해 11월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 우승한 양학선은 2012년 런던 올림픽 전초전인 세계선수권에서 정상에 오르며 한국 체조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 전망을 밝게 했다. 특히 난도 7.4인 공중 세 바퀴 돌기(1080도) 신기술을 성공시켜 주가를 높였다. 남자 대표팀은 단체전 예선에서 6위를 차지해 6회 연속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여자 대표팀도 단체전 15위에 올라 다음해 1월 런던 프레올림픽에서 사상 첫 올림픽 출전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1시간 전까지 굉음을 내며 질주하던 포뮬러원(F1) 머신은 온데간데없었다. 산산이 분해된 머신의 골격은 해부된 야생동물의 앙상한 뼈처럼 보였다. 머신 부품 주변에는 10여 명의 미캐닉(정비기술자)이 쉴 새 없이 작업을 이어갔다. 14일 1, 2차 연습 주행 후 공개된 레드불의 팀 피트 풍경이다. 레드불은 올 시즌 최강의 기술력을 발휘하며 팀 순위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레드불은 제바스티안 페텔(독일·시즌 우승 확정), 마크 웨버(호주·4위) 원투 펀치를 앞세워 팀 부문 2연패가 유력한 신흥 명문이다. 에너지 음료회사 레드불을 모기업으로 하는 레드불 레이싱팀은 2005년 재규어팀을 인수해 창단했다. 뛰어난 드라이버와 함께 ‘레드불 RB7’이란 최고 성능의 머신까지 보유해 다른 팀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레드불팀의 피트는 차고 2개로 이뤄져 있다. 오른쪽은 페텔, 왼쪽은 웨버의 차량이 위치한다. 작업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위해 차량 위치는 바뀌지 않는다. 나사를 조이는 방식까지 세분화돼 있다. 기술진은 매 순간 레이스를 분석하며 즉각 대응 전략을 세운다. 기술 책임자와 공기역학 책임자가 따로 있다. 60명에 육박하는 팀원 중 25명을 차지하는 미캐닉 대부분은 공학계열 석사 이상의 학위를 소지하고 있다. 영암=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그들에겐 질주 본능이 있다. 지상에서 가장 빠른 스피드를 겨루는 포뮬러원(F1) 그랑프리. 750마력의 엔진은 으르렁거리며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1분에 1만8000번 회전하는 초강력 엔진을 장착한 머신들을 조종하는 사나이들이 F1 드라이버들이다.2011 F1 코리아 그랑프리가 14일 전남 영암에서 막을 올린다. 14일 연습주행, 15일 예선을 거쳐 16일 본선을 치른다. F1 그랑프리는 1년에 20회 정도 각국을 돌며 경기를 치른다. 각 경기에서의 순위를 점수로 환산한다. 이 점수를 합산해 종합 순위를 매긴다.5.615km의 서킷을 55바퀴 도는 코리아 그랑프리는 올해 열리는 19번의 대회 중 16번째 대회다. 올해에도 20개의 대회가 예정돼 있었으나 올해 초 바레인 대회는 자국 상황으로 취소됐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선수는 단연 독일의 제바스티안 페텔(24·레드불)이다. 그는 올 시즌 이미 9차례나 우승해 일찌감치 종합우승을 확정지었다. 지난해 종합우승에 이어 역대 최연소로 2년 연속 종합우승을 차지한 떠오르는 태양이다. 올 시즌 2위를 달리고 있는 영국의 젠슨 버튼(31·맥라렌메르세데스)과 3위에 올라있는 스페인의 페르난도 알론소(30·페라리)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모두 참가한다.페텔은 직전 대회인 일본 그랑프리에서 종합우승을 확정한 뒤 F1의 ‘전설’ 미하엘 슈마허(42·독일·메르세데스GP)와 가라오케에서 진탕 술을 마셨다. 이미 올 시즌 종합우승을 확정지었지만 페텔에게는 아직도 할 일이 많다. 그는 코리아 그랑프리 직전에 열린 일본 그랑프리에서 버튼과 알론소에게 뒤져 3위에 머물렀다. 이번 대회에서 설욕을 벼르고 있다. 페텔은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 기회가 온다면 언제나 이겨야 한다. 레이스에서 우승하고 싶지 않다면 더는 대회에 참가하는 의미가 없다”며 이번 대회를 앞둔 각오를 밝혔다.그러나 단순한 설욕 외에도 페텔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는 많다. 첫째는 시즌 최다승 도전이다. 시즌 최다승 기록은 슈마허가 갖고 있는 13승이다. 영암 대회부터 올해 남은 대회는 모두 4회. 페텔은 남은 대회에서 모두 우승해야 슈마허의 기록과 타이를 이룬다. 페텔은 시즌 최다승 기록뿐만 아니라 팀 우승 때문에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F1에서는 두 가지 부문에서 챔피언을 가린다. 하나는 개인 드라이버가 차지하는 종합우승 타이틀이다. 다른 하나는 소속팀이 차지하는 타이틀(컨스트럭터 챔피언)이다. F1에는 12개 팀이 참가한다. 현재 팀 순위에서는 페텔과 마크 웨버(35·호주)의 소속팀인 레드불이 518점으로 1위에 올라 있다. 그러나 버튼과 루이스 해밀턴(26·영국)이 속한 맥라렌메르세데스가 388점(2위)으로 맹추격을 벌이고 있다.:포뮬러원(F1):국제자동차연맹(FIA)이 주관하는 세계 최고의 자동차 경주대회. 오픈된 좌석과 밖으로 돌출된 바퀴를 가진 경주용 자동차로 하는 포뮬러 경주의 최고봉이다. 12개 팀 24명의 드라이버가 2011시즌 총 19개 그랑프리를 치른다. 각 대회 1위부터 10위까지 각각 25, 18, 16, 15, 10, 8, 6, 4, 2, 1점을 부여해 총점으로 챔피언을 가린다. 2011시즌은 제바스티안 페텔(레드불)이 9일 일본 그랑프리에서 이미 종합우승을 확정했다.영암=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운동을 계속 시켜야 할지 막막하네요.” 리듬체조 유망주인 중학생 자녀를 둔 A 씨는 착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딸의 우상인 신수지(세종대)가 제기한 점수 조작 의혹 사태를 바라보며 딸의 미래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리듬체조의 중흥기를 연 선수가 소속 협회를 믿지 못하게 된 현실이 답답하다”고 했다. 판정 시비, 파벌 등 그동안 쉬쉬해 오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진 결과였다. 10일 전국체전 리듬체조 일반부 은메달에 머문 신수지가 자신의 미니홈피에 점수 조작 의혹을 제기한 뒤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체조협회는 “점수 조작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지만 진실이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논란의 초점은 마지막 곤봉 점수의 발표 지연, 전광판과 기록지의 점수 차이, 심판의 편파 배정으로 압축된다. 체조협회 관계자는 “점수 발표가 늦어진 건 심판 한 명이 오기를 해 바로잡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신수지 측은 “8명이 뛴 고등부 발표는 5분도 안 걸렸는데 5명이 뛴 대학부는 30분이 넘게 걸린 점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금메달을 딴 김윤희의 후프 점수가 전광판과 채점지에 다르게 나온 부분도 검증돼야 한다. 신수지 측은 “전광판(25.130점)보다 채점지(25.425점)가 분명 높게 나왔다”고 주장했다. 체조협회는 “오히려 0.005점 깎였다. 점수가 조정되는 일은 종종 있는 절차”라고 반박했다. 신수지는 “서울(신수지), 경기(김윤희)가 아닌 다른 지역 심판의 자리에 경기지역 지도자가 3명 정도 들어갔다”고도 했다. 하지만 체조협회는 “억측이다. 규정에 따라 배정했다”고 일축했다. 사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리듬체조계의 세종대-비세종대 출신 사이의 알력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리듬체조 선수 학부모들은 “자기 편 끌어주기가 만연하면서 어느 코치, 심판과 친한가가 중요한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또 “국제 경험이 부족한 심판이 많아 난도를 높이기보다 실수를 안 하는 연기를 할 수밖에 없다. 이대로는 제2의 신수지, 손연재를 기대할 수 없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번 사태를 단순히 신수지 개인의 불만 표시로만 봐선 안 된다. 리듬체조계 전반의 문제를 논의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심판 자질 향상과 줄서기 문화 종식을 위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 신수지도 감정적인 대응을 한 데 대해선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동참하는 게 바람직하다. 전국체전에서 김포체육관을 가득 메웠던 리듬체조 꿈나무와 팬들을 잊는다면 한국 리듬체조의 미래도 없다.유근형 스포츠레저부 noel@donga.com}

마스터스 마라톤의 성지인 경주국제마라톤의 키워드는 ‘끝없는 도전’이다. 원조라는 타이틀에 안주하지 않고 국민과 함께하는 마라톤 축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경주마라톤은 1994년 국내 최초로 일반 국민이 참가하는 마스터스 부문을 신설해 마라톤 대중화의 신호탄을 쐈다. 당시 172명에 불과했던 참가자는 최근 1만 명 규모로 증가했다. 국내 마라톤 인구 400만 명 시대의 선구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2007년에는 다시 국제대회로 전환해 엘리트와 일반인이 함께 뛰는 대회로 탈바꿈했다. 외환위기 한파와 함께 2000년부터 마스터스 축제로만 펼쳐진 지 10년 만이다. 지난해에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으로부터 실버라벨을 받아 명품 대회로 인증받았다. 골드라벨인 3월 서울국제마라톤과 함께 봄, 가을 대표 마라톤 축제로 자리 잡았다. 16일 열리는 2011 경주국제마라톤(경상북도 경주시 대한육상경기연맹 동아일보 스포츠동아 공동 주최)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평탄했던 도심 순환 코스를 표고 차 100m에 이르는 도전적인 코스로 개조했다. 현재 국내 마라톤 대회는 400여 개가 난립한 상황이다. 흥행을 위해 ‘기록이 잘 나오는 대회’라고 강조하는 대회도 늘고 있다. ‘마라톤은 지루한 운동이다’라는 인식이 생기게 된 이유다. 게다가 동호인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마라톤은 트라이애슬론 등 복합 스포츠의 도전을 받고 있다. 경주국제마라톤은 마라톤 본연의 도전 정신을 강조하기 위해 ‘쉬운 코스’를 버렸다. 보스턴 마라톤의 ‘상심의 언덕’에 맞먹는 두 개의 언덕을 27km 지점부터 2km에 걸쳐 배치했다. 도심을 뺑뺑 도는 지루한 코스도 바꿨다. 심장이 터질 듯한 고통을 이겨낸 뒤 오른쪽에 펼쳐지는 보문호수는 경주마라톤만의 짜릿함을 선사할 것이다. 바뀐 코스는 이미 IAAF의 인증 작업도 끝냈다. 국제마라톤도로협회(AIMS) 실측 전문가인 대한체육회 중장거리팀 유문종 전임지도자와 수원시청 마라톤팀 이승구 감독이 진행했다. 끝없는 도전을 계속하고 있는 경주국제마라톤은 16일 오전 8시 경주시민운동장에서 출발한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저희가 ‘공공의 적’인 건 잘 알지만…. 무조건 통합 6연패 하겠습니다.” 2011∼2012 여자프로농구 개막을 사흘 앞둔 1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신한은행 최윤아는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지난해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로 통합 5연패를 달성한 기세를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이날 모인 여자프로농구 감독들도 신한은행을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았다. 신한은행은 전주원 진미정의 은퇴와 정선민의 이적 공백으로 세대교체가 단행됐다. 하지만 지난 아시아선수권에서 활약한 국가대표 최윤아 김단비 하은주의 조직력에 기대를 걸고 있다. 신한은행 임달식 감독은 “어느 한 팀 만만히 볼 수 없을 만큼 전력이 평준화됐다. 하지만 젊은 선수들을 앞세워 제2의 도약기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의 통합 6연패를 저지할 팀으로는 정선민을 영입한 국민은행이 가장 주목을 받았다. 국민은행 정덕화 감독은 “팀 이름도 스타즈(Stars)로 바꿨다. 변연하와 정선민도 돌아왔다. 어느 때보다 우승 열망이 강하다”고 말했다. 삼성생명과 KDB생명은 다크호스로 지목됐다. 삼성생명은 국가대표 센터 김계령이 친정팀에 복귀한 것이 큰 힘이다. 삼성생명 이호근 감독은 “창단 이래 최대 물갈이를 단행했다. 조직력을 가다듬어 7번째 우승을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KDB생명 김영주 감독도 “지난해 챔피언전을 통해 경험 부족과 스타성 부재라는 과제를 해결했다. 난공불락인 신한은행이 버티고 있지만 정규시즌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최하위에 머문 우리은행 김은혜는 “지난 시즌에는 많이 못 이겨 인터뷰실에서 기자님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올해는 인터뷰실에 자주 가겠다”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리듬체조 신수지(20·세종대·사진)가 전국체전 점수 조작 의혹을 제기해 파문이 일고 있다.신수지는 10일 리듬체조 일반부 경기에서 김윤희(세종대·101.550점)에게 0.325점 뒤져 2위(101.225점)에 머물렀다. 후프-볼-리본까지 김윤희에게 앞섰지만 마지막 곤봉에서 역전당했다. 신수지는 당시 곤봉 점수가 평소보다 30여 분 늦게 발표됐고 전광판과 공식 기록지가 다르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신수지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나를 1위로 생각했다. 곤봉에서 윤희와 그렇게 차이가 날 수 없다”며 “더구나 윤희 점수는 발표되지도 않았기에 조작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대한체조협회는 “심판 한 명이 채점지에 오기를 했다. 바로잡느라 전광판에 점수를 띄우는 데 시간이 걸렸다. 점수 조작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경기 종료 후 신수지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더러운 ×들아. 그딴 식으로 살지 마라. 이렇게 더럽게 굴어서 리듬체조가 발전을 못하는 거다’라면서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해당 게시물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자 글을 삭제했다. 신수지는 “전국체전 심판들은 이론만 공부해 문제가 많았다. 심판들의 장난 때문에 후배들도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언니로서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며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레이싱은 연애와 참 많이 닮았다. 속도에 욕심을 부리면 여지없이 문제가 생긴다. 반면 액셀을 과감히 밟지 않고선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뜨거운 가슴과 이를 절제할 수 있는 차가운 머리가 동시에 필요하다. 자동차와의 밀고 당기기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14일 전남 영암에서 열리는 포뮬러원(F1) 코리아 그랑프리 개막을 앞두고 레이싱의 매력을 탐구하고자 기자가 직접 카트 체험에 나섰다. 파주 스피드파크는 길이 1.2km, 폭 8∼10m의 서킷으로 주말이면 300여 명의 체험 관광객이 찾는 카트장이다. 한국인 최초의 F2 드라이버인 문성학에게 6일 카트 비법을 전수받았다. 레이싱카트는 F1 드라이버의 등용문이다. 현역 F1 드라이버 대부분은 카트 출신이다. 미하엘 슈마허(독일·메르세데스GP), 제바스티안 페텔(독일·레드불) 등도 대여섯 살부터 카트를 탔다. 슈마허는 시즌 중에도 카트를 통해 실전 감각을 유지한다. 오전 이론교육 2시간을 소화한 기자는 입문용 스포츠카트부터 체험했다. 스포츠카트는 최고 시속 60km(6.5마력)를 낸다. 먼저 최대한 F1 드라이버의 환경을 체험하고자 800도 불에 13초까지 견디는 불연성 레이싱복을 입었다. 초등학생도 즐긴다는 스포츠카트는 놀이동산의 범퍼카보다 빨랐지만 10년 무사고로 단련된 기자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 하지만 레이싱카트(최고시속 120km·14마력)에 오르자 모든 것은 제로 상태가 됐다.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카트는 갈대 같은 여자의 마음처럼 이리저리 움직였다. 운전석에 앉자마자 몸이 꽉 조이는 답답함이 느껴졌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정형돈이 F1 머신에 오르자마자 뛰쳐나온 이유가 이해가 갔다. 시동을 걸자 고통은 더 심했다. ‘덜덜덜’ 떨리는 카트에 앉아 있노라면 헬스장의 벨트마사지기를 온몸에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엔진의 굉음은 영암 서킷에서의 소음 못지않았다. 카트의 액셀을 밟자 BMW, 벤츠 같은 고급 스포츠카를 탄 듯한 착각이 들었다. 두려움 속에 맞이한 첫 코너에서 여지없이 스핀(차가 미끄러지며 도는 것)이 났다. 주로를 벗어난 차량 앞은 흙먼지로 뒤덮였다. 헬멧을 썼지만 작은 돌들이 얼굴에 들어왔을 정도다. 파주 스피드파크 김태은 사장은 “속도가 너무 느려서 엔진이 젖었다. 기름은 계속 공급되는데 엔진이 소모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말했다. 문성학도 “무서워하지 마라. 지금 40km도 안 나왔다. 코너 직전에 브레이크를 살짝 밟고 핸들을 튼 뒤에는 오히려 액셀을 밟아야 통과할 수 있다”고 일갈했다. 빠른 속도를 제어하지 못해 스핀이 난 것으로 생각했던 기자는 식은땀이 났다. “속도를 더 올리라고요?” 용기를 잃자 스핀은 밥 먹듯이 일어났다. 코너를 돌 때마다 자기 체중의 3배에 이르는 횡압력이 몰려왔다. 횡압력에 익숙해지자 기자의 등은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문성학의 기술지도가 더해지자 제법 랩타임이 일정해졌다. 체험을 마감하기 전 문성학이 제안해 왔다. 서킷 5바퀴 경주를 해보자는 것. 미래의 F1 드라이버와 겨뤘다는 훈장을 달기 위해서 선뜻 경주에 응했다. 결과는 물론 문성학(평균 랩타임 53초96)의 완승으로 끝났다. 그는 첫 코너부터 기자(1분6초07)의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4바퀴 만에 기자를 추월했다. 한 바퀴 차 완패를 당한 기자에게 문성학은 손을 내밀었다. “아마추어들은 랩타임이 계속 빨라지는데 기자님은 마지막 4, 5바퀴가 거의 같았어요. 기자님 연애 잘하실 것 같아요. 자동차와의 밀고 당기기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계시다는 증거네요.” 30년 인생 최초로 내 안의 ‘속도 본능’을 느낀 기자는 안타깝게도 유부남이다.파주=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한국 최초 F2 드라이버 문성학(21·성균관대·사진)은 카레이싱 본고장에서 본격적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해외유학파 1세대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11세 때 처음 카트를 탄 그는 2003년 중학생 신분으로 성인 카트 무대를 평정했다. 문성학의 등장으로 초등생들의 조기 성인 무대 진출 시대가 열렸다. 그는 “미하엘 슈마허는 6세 때 처음 카트를 탔다. 나는 한국에선 최초였지만 오히려 늦은 시기였다”고 말했다.그는 서울 신사중 2학년 때 모터스포츠의 메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주중엔 영국 학교에서 공부했고 주말엔 비행기를 타고 이탈리아로 넘어가 카트 대회에 출전했다. 당시 소속팀인 CRG는 현 F1 드라이버 루이스 해밀턴(26·영국·맥라렌)을 배출한 이탈리아 카트 명문이다. 문성학은 “나름 한국 최고였는데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홀로 유럽 생활을 하며 상상할 수도 없었던 F1 드라이버의 목표를 구체화했다”고 말했다. 유럽 카트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문성학은 2007년 영국 포뮬러(운전석이 오픈돼 있고 바퀴는 차체 밖으로 나와 있는 경주용 자동차) 르노시리즈에 한국 최초로 진출했다. 르노 시리즈는 F1∼F3 드라이버가 되려는 유망주들의 경연장이다. 르노 시리즈에서의 활약은 올해 F3를 건너뛰고 F2 진출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F2는 F1의 전 단계. F1과 같이 24명의 드라이버만 활동하며 F1 서킷에서 경기를 펼친다. F2 드라이버는 F1 팀들의 스카우트 표적이 된다. 꿈에 그리던 F1 드라이버 바로 전 단계까지 도착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적지 않다. 포뮬러 르노시리즈를 한 시즌 뛰는 데는 차량 운영 및 관리, 연습장 대여, 타이어 교체 등 약 10억 원의 비용이 필요하다. F2는 약 15억 원 이상 든다. 그것도 레이스 도중 사고가 안 난다는 전제하에서 산출한 비용이다.유럽 정상급 드라이버들은 카트 시절부터 기업들의 후원을 받으며 성장한다. 반면에 문성학은 지금까지는 건설업을 하는 아버지가 전액 비용을 대왔다. F1 드라이버가 되는 그날까지 엄청난 비용을 자비로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레이싱 관계자들은 “현실적으로 기업 후원 없이 F1 진출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문성학은 “F1까지 87% 정도 왔다고 생각한다. 한국인 최초라는 동기가 없었다면 못 버텼을 것이다. 반드시 이겨내 2년 안에 F1에 진출하겠다”고 다짐했다.파주=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마라톤 유망주였다. 하지만 27세의 젊은 나이에 아킬레스힘줄 부상으로 은퇴했다. 이후 7년 동안 마라톤의 ‘마’자도 보지 않고 살았다. 마스터스 마라톤 고수로 부활한 정석근 씨(38·사진) 얘기다. 선수 시절을 아쉽게 마감한 정 씨는 2007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도금공장 공무과장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지만 오후 9시 이후에 짬을 내서 연습에 매진했다. 그는 “배운 게 달리는 것밖에 없었다. 은퇴 후 꼴도 보기 싫었는데 이것밖에 할 게 없었다. 취미 삼아 다시 시작했는데 매주 마라톤 대회장을 누비게 됐다”고 말했다. 선수 출신답게 기량은 1년 만에 마스터스 최고수 수준으로 회복됐다. 올해 참가한 11번의 대회 중 8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유독 동아일보 마라톤과는 인연이 없었다. 3월 서울국제마라톤 4위가 최고 성적이었다. 이날 정 씨는 2위 최진수 씨와 경기 막판까지 각축을 벌였다. 힘겨운 레이스 끝에 2시간36분35초를 기록해 2위에 13초 앞서 결승선을 통과했다. 동아일보 주최 마라톤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그는 “수도 없이 우승했지만 유독 동아마라톤대회만 가면 컨디션이 안 좋았다. 현역 시절 우승을 못한 동아마라톤 우승컵을 들어올려 기쁘다”고 말했다.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여자 풀코스 우승자 배기순 씨(46·사진)의 마라톤 인생은 한 권의 교범 같다. 마라톤 초보자가 입문에서 고수로 진화하는 과정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배 씨는 30대 후반이던 2003년 건강을 위해 집 주변인 경기 성남 탄천 변을 달리기 시작했다. 마흔에 도전한 첫 풀코스에서 4시간33분대로 무난한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경기 분당 지역 마라톤클럽 ‘분당검푸’에서 주 3, 4회씩 훈련에 매달리면서 실력이 늘었다. 2008년 입문한 지 5년 만에 서브 스리를 달성하며 고수 반열에 올랐다. 그는 “마라톤은 정직한 운동이다. 초보자도 훈련에 매진하면 누구든지 서브 스리를 달성할 만큼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배 씨는 이날도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독주를 펼친 끝에 3시간10분31초로 정상에 올랐다. 그는 “경쟁자들이 다음 주 경주국제마라톤에 대비해 풀코스 출전을 꺼려 어부지리로 우승했다”고 겸손해했다. 배 씨는 트라이애슬론 올림픽코스(수영 1.5km, 사이클 40km, 달리기 10km)까지 완주한 만능 스포츠맨이다. 그는 “8년째 마라톤을 하다 보니 슬럼프가 올 때가 있다. 다른 운동까지 병행하며 오랫동안 즐겁게 건강하게 운동하는 것이 꿈이다”라고 말했다.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그의 모자에는 별 네 개가 그려져 있다. 이 가운데 세 개는 야구 인생 최고의 순간들을 담았다. 초등학생 시절 생애 첫 우승,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이 그것이다. 마지막 네 번째 별은 올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염원하는 그의 마음이다. 모자의 주인은 올해 투수 4관왕에 오른 KIA 에이스 윤석민이다. 4일 광주구장에서 만난 윤석민은 평소와 다름없이 진중한 모습이었다. 그는 평균자책(2.45) 다승(17승) 탈삼진(178개) 승률(0.773) 등 4개 부문 1위를 확정한 지난달 24일 이후 등판하지 않고 포스트시즌 준비에 들어갔다. 윤석민은 “공교롭게도 별 네 개만큼 개인타이틀을 따냈다”며 “쉬지 않고 두세 경기에 더 나가 20승에 도전하고 싶었는데 아쉽다. 하지만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한 기록이라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포스트 선동열? 난 윤석민일 뿐 투수 4관왕은 1989년부터 3년 연속 기록했던 선동열 이후 20년 만의 대기록이다. 윤석민이 포스트 선동열 반열에 올랐다는 찬사도 나온다. 윤석민은 “아직은 비교 자체가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겸손해했다. 그러면서 “선동열 선배가 아닌 모든 투수보다 잘 던지고 싶다. 물론 선배보다 빠른 슬라이더를 던진다는 자부심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고 시속 143km의 고속 슬라이더를 던진다. 변화무쌍하게 종횡으로 떨어졌던 선동열의 135km 슬라이더보다 빠르다. 그는 류현진(한화) 김광현(SK) 등 경쟁자들의 부상이 타이틀 획득에 도움이 됐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류현진과 김광현의 부상으로 4관왕이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이 정상 컨디션이었더라도 나의 4관왕을 막지 못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네 번째 별을 꿈꾸며 윤석민은 지난해 라커룸 문을 주먹으로 때려 생긴 오른 손가락 골절과 롯데 조성환에 대한 빈볼 논란에 이은 공황장애까지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시련을 극복한 원동력이 궁금했다. 그는 “예민한 성격을 고치고 싶었다. 결과가 안 좋아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마인드컨트롤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야구를 쉽게 생각하려고 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윤석민은 용병 투수들의 부진 속에 사실상 홀로 팀의 선발진을 이끌었다. 지난해보다 정신적으로 강인해진 모습은 천진난만한 외모 때문에 생긴 ‘윤석민 어린이’라는 별명까지 잊혀지게 만들었다. 8일 시작되는 SK와의 준플레이오프에 대한 승부욕도 숨기지 않았다. 윤석민은 “SK는 가을에 강한 박정권, 경험이 많은 이호준 정근우 등 노련한 선수가 많다. 거포들을 만나도 정규시즌 때보다 과감하게 몸쪽 승부를 할 생각”이라고 했다. 마지막 별 네 개를 채우기 위해서 준플레이오프는 무조건 이기겠다는 각오다. 인터뷰를 마치고 인사하기 위해 잡은 윤석민의 손에는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한국 최고의 오른손 투수로 우뚝 선 그의 지난날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의 모자에 그려진 네 번째 별이 언제 반짝반짝 빛날지 더욱 기대되는 순간이었다.광주=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이 남자의 야구 인생, 생각보다 퍽퍽했다. 투지 넘치는 플레이와 수려하지만 거친 외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이미지는 그의 진짜 속내와는 많이 달랐다. 그에게 야구는 냉엄한 현실 그 자체였다. 생애 첫 도루왕 등극을 앞둔 두산 오재원(26)을 만나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들어봤다.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만난 오재원은 담담했다. 생애 첫 개인 타이틀 수상을 눈앞에 둔 설렘은 조금도 발견하기 어려웠다. 오재원은 “첫 도루왕 타이틀이 영광스럽긴 하지만 마음이 무겁다. 도루를 의식하다 시즌 중반 타격 페이스가 떨어지기도 했다. 매년 열리는 가을야구를 못한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며 아쉬워했다.○ 개펄에 처박힌 진주오재원의 지난 야구 인생은 그의 담담한 소감만큼이나 건조했다. 세상에 드러나 빛을 보지 못한 퍽퍽한 개펄 속 진주 같았다. 그는 학창시절 눈에 확 띄는 선수가 아니었다. 고교 졸업 후 두산의 지명을 받았지만 경희대 진학을 선택했다. 오재원은 “지금만큼 잘할 자신이 없었다. 프로에 갔다가 도태되는 게 두려웠다”고 당시 심경을 말했다. 대학 졸업 후 2007년 두산 유니폼을 입었지만 주로 대주자로 기용됐다. 부상 공백이 생긴 내야수 자리에 투입되는 수비형 멀티플레이어로 자리를 잡았지만 여전히 존재감은 미약했다. 오재원은 “3년 동안 벤치에 앉아 있으면서 도를 많이 닦았다. 주전 공백이 생겨 수비에 들어갈 때마다 사활을 걸고 이 자리를 지켜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오재원은 내야의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만능 수비수로 성장하며 지난해 주전으로 발돋움했다. ○ 진주 드디어 빛을 보다2011년은 오재원이라는 진주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해다. 5일 현재 지난해까지 5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한 LG 이대형(34개)을 12개나 앞서 새 대도(大盜) 시대를 활짝 열었다. 2006년 이종욱 이후 5년 만에 두산의 대도 명맥을 잇게 됐다. 1번부터 3번까지 상위 타선에서 붙박이로 활약할 정도로 타격도 좋아졌다. 지난해까지 1개도 없던 홈런을 6개나 때리며 소총수 이미지도 극복했다. 오재원은 “올해까지 적당한 성적을 못 내면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생각했다. 겨울에 보디빌더처럼 웨이트트레이닝에 매달린 게 적중했다”고 말했다.오재원의 도루왕 등극에는 김광수 감독대행의 숨은 비법 전수가 있었다. 1루 출루 시 손을 모아 상대 투수에게 혼란을 주는 동작이다. 오재원의 도루 성공률(86.8%)이 이대형(66.7%) 등 경쟁자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 중 하나다. ○ 야구는 현실이다오재원에겐 거친 남자 이미지가 있다. 몸을 날리는 플레이, 판정에 대한 격렬한 항의, 상대를 자극하는 쇼맨십, 수염 등 튀는 행동과 패션 때문이다. 2일 서울 라이벌 LG와의 경기에서는 상대의 빈볼에 항의하며 마운드로 다가가 벤치 클리어링의 발단이 되기도 했다. 그는 “거친 이미지가 없었다면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김경문 전 감독이 그런 역할을 주문했다”며 “야구는 내게 지독한 현실이었다. 모든 이미지와 행동 하나하나는 생존을 위한 방법이었다”라고 고백했다. 오재원은 “도루왕 2연패가 내년 목표는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그는 “하루하루가 급하다. 한 달 또는 1년 목표를 생각하고 야구를 할 만큼 여유가 없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목표로 할 뿐이다”며 “올해보다 도루, 안타를 하나씩 더 기록하는 게 목표다”라고 말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머리 아파 죽겠어요.” SK 이만수 감독대행은 최근 ‘희망 고문’이란 단어를 체감하고 있다. 플레이오프 직행 희망의 끈을 놓기도, 2위 탈환을 위해 총력전을 펴기도 어려운 사정 때문이다. 전날까지 3위인 SK는 2위 롯데에 1경기 차로 뒤졌고 4위 KIA에는 1.5경기 차로 앞섰다. KIA와의 시즌 마지막 3연전 결과에 따라 2위 등극까지 노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무리하게 총력전을 펴다가 KIA에 패하면 8일 시작하는 준플레이오프 준비까지 망칠 소지가 있었다. 이 감독대행은 “투수 로테이션 시나리오를 4개나 만들었지만 정답이 보이지 않는다. 김상진 코치와 밤샘 회의를 하느라 잠도 몇 시간 못 잘 정도”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4일 프로야구 세 경기 결과 이 감독대행의 플레이오프 직행의 꿈은 무너졌다. 3위 SK는 KIA에 0-4로 패한 반면 2위 롯데는 한화에 20-2로 대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롯데는 SK에 2경기 차로 앞서 남은 두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플레이오프 직행을 확정지었다. 반면 SK는 4위 KIA에 0.5경기 차로 쫓기며 남은 두 경기 결과에 따라 3위마저 장담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이날 SK는 이 감독대행의 복잡한 속내를 반영하듯 답답한 경기를 펼쳤다. 선발 고효준은 3이닝 동안 5안타 3볼넷을 허용하며 3실점했다. 타선도 무기력했다. 산발 3안타에 그치며 한 점도 뽑아내지 못했다. 반면 일찌감치 준플레이오프행이 결정된 KIA는 여유가 넘쳤다. 조범현 KIA 감독이 포스트시즌 선발로 준비 중인 한기주는 지난달 29일에 이어 선발 등판해 최고 시속 152km에 이르는 강속구를 던졌다. 손가락에 물집이 잡혀 2이닝 만에 마운드를 내려갔지만 6타자를 상대로 1안타만 허용하며 무실점 호투를 펼쳤다. 이후 손영민 서재응 임준혁 김희걸 심동섭에 이어 마무리 김진우가 마운드에 올라 무실점 투구로 준플레이오프 예행연습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사직에서 롯데는 올 시즌 한 팀 최다인 20득점을 올리며 창단 후 첫 플레이오프 직행을 자축했다. 롯데는 김주찬의 연타석 홈런 등 선발 전원 안타에 장단 22안타를 몰아쳐 한화에 20-2로 이겼다. 특히 6회에만 11점을 집중시키는 파괴력을 선보였다. 7위 LG는 선두 삼성을 7-2로 이기고 6위 두산에 0.5경기 차로 다가섰다. 광주=유근형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