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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성수대교 붕괴 참사는 국민들에게 뚜렷한 보수 보강 대책 없이 방치된 도시 기반시설의 위험성을 일깨워줬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도 땅 위에는 ‘땜질식 처방’에 그친 낡은 교량이 여전히 있고, 땅속에는 지반 침하를 일으키는 노후 하수관로가 방치돼 있다. 방치된 시설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나도 참사의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살아간다. 하지만 도시 노후시설물을 관리하고 유지 보수를 책임져야 할 지방자치단체들은 예산 부족에 허덕일 뿐 사고 예방을 위한 전면적 조치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선뜻 건널 생각이 들지 않는 ‘낡은 교량’ 본보는 교량 전문가인 김상효 연세대 토목공학과 교수와 함께 5월 서울시 정밀안전진단 결과 D등급(긴급 조치 필요)을 받은 서울 성북구 북악스카이웨이 1교의 안전 상태를 13일 점검했다. 성북구 북악산로에 위치한 교량은 길이 60m, 폭 8m로 상판 4개를 붙여 만들었다. 완공된 지 44년이 지났고, 하루 평균 1만 대의 차량이 이 교량을 통과한다. 서울시는 북악스카이웨이 1교 상판의 부식이 진행됐으며, 상판 두께(15cm)가 현행 기준(22cm)에 맞지 않아 상판 추락 및 교각 붕괴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통행금지(E등급) 전 단계인 D등급 판정을 내렸다. 8월 보수 공사가 완료됐지만 전면 보수가 이뤄진 것이 아니어서 여전히 사고 위험성에 노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는 교량을 버티고 있는 콘크리트 교각 3개 외에 임시 철근 교각 2개를 다리 중앙에 세워 상판 추락을 막았고, 부식이 진행된 상판 조각의 추락을 막기 위해 임시 교각 사이에는 철판을 깔았다. 그러나 본보가 김 교수와 함께 점검한 결과 상판뿐만 아니라 교각을 포함한 다리 전체의 철근에서 부식이 발생하고 있었다. 김 교수는 “철근이 부식되면서 부피 팽창이 일어나 철근을 둘러싸고 있는 접합재료인 콘크리트를 밀어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차량이 교량 위를 지나갈 때마다 균열된 틈 사이로 부서진 콘크리트 가루가 뿜어져 나왔다. 김 교수는 “긴급 예산을 편성해서라도 부분 보수가 아닌 교량 전체를 개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근 주민들은 불안감을 호소했다. 교량 밑 주택에 거주하는 김모 씨(43)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다리 밑에서 사는 기분은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가 없다”며 “하루에도 수십 번 다리만 바라보고 산다. 너무 불안하다”고 말했다. 1979년 준공된 서울 동대문구 이문고가도 대표적 노후교량으로 정밀안전진단 결과 C등급(보수 보강 조치 필요)을 받았다. 지난해 12월까지 보수 보강 공사를 했지만 북악스카이웨이 1교 사례와 마찬가지로 개축을 한 것은 아니어서 보수 공사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 교수는 “예산 편성 문제로 적절한 시기에 개축해야 할 시설물들이 보수 공사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빠른 노후화 속도를 막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반 침하 원인인 ‘낡은 하수관로’ 서울 서초구 교대역 인근 건물에서 근무하는 최모 씨(66)는 8월 22일 황당한 광경을 목격했다. 서초대로를 달리던 승합차의 앞바퀴가 도로 한복판에 발생한 구멍(폭 1.5m, 길이 1.8m, 깊이 1.2m)에 빠진 장면을 본 것. 다행히 운전자는 경찰에 의해 무사히 구조됐다. 그러나 최 씨의 가슴 한편에 남은 불안감은 떨쳐지지 않았다. ‘매일 이 도로를 이용하는데 나라고 구멍에 빠지지 말라는 법 있나….’ 최 씨를 혼란스럽게 한 구멍은 하수관로 불량으로 인한 지반 침하로 발생한 것이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노후 하수관로는 ‘싱크홀’과 ‘동공(텅빈 굴)’ 등 지반 침하 현상의 주요 원인(85%)으로 꼽힌다. 본보가 서울의 A구가 관할하는 구역 내 하수관로 내부 촬영 사진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30년 이상 사용된 노후 하수관로 곳곳에서 균열이 발생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가 된 하수관들은 상층부에 구멍이 뚫려 있거나 1m가량 덮인 토사의 하중을 견디지 못해 구부러져 있었다. 전문가들은 균열의 원인으로 △하수관 설계상 부실 △하수관 주변 공사상 과실을 지적했다.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노후 하수관의 경우 개별 하수관 사이에 콘크리트로 이음매를 만드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이 때문에 이음매 부위가 부식되면서 하수관로가 ‘V자형’으로 꺾여 지반이 내려앉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분석했다. B구의 안전치수과 관계자는 “메인 하수관을 가정 하수관과 잇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구멍을 뚫은 뒤 방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발생한 구멍으로 토사가 유입돼 지반 침하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지반 침하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균열이 발생한 하수관로를 사전에 발견해 보수해야 하지만 이 과정에 소요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A구에 따르면 크기가 작은 지름 60cm짜리 하수관로 200m를 보수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1억2000만 원에 달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하수관의 크기와 주변 상황에 따라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이 때문에 현재 책정된 예산만으로는 하수관로의 전면 보수가 힘들다”고 말했다.박성진 psjin@donga.com·정윤철 기자}

《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와 ‘담양 펜션 화재’ 등 참사가 잇따르면서 안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상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의 이면에 개인의 방심으로 인한 ‘안전수칙 미준수’가 있다고 지적한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단속과 규제 보완뿐만 아니라 개인의 의식 변화가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본보는 일반인인 직장인 박모 씨(47·여)와 대학생 이모 씨(25)의 일상을 통해 ‘안전불감증’이 어떤 사고로 연결될 수 있는지와 그 원인을 살펴봤다. 조사는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과 공동 제작한 ‘생활안전진단표’를 토대로 이뤄졌으며 분석 결과 공통적으로 4가지 안전사고 가능성에 노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 “나에겐 사고 일어나지 않아”… ‘낙관의 오류’ 박 씨와 이 씨는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각각 직장과 학교로 향한다. 그러나 진단 결과 둘 다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 박 씨는 “균형을 잡는 데 문제가 없는 데다 위생상 깨끗하지 않아 보여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 사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통제력 착각’과 ‘편향된 낙관’에 빠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재희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자신의 몸이 스스로 반응해 돌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과 공공시설물에서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안전의식을 둔화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에 따르면 지난해 에스컬레이터와 승강기 등에서 발생한 사고는 총 88건으로 이 중 65건(약 74%)이 이용자 과실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스마트폰 속에 빠져버린 ‘안전의식’ 12일 낮 12시 30분. 지하철에서 내린 이 씨는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선은 스마트폰에 고정돼 있었다. 그때 그의 옆에 다리를 꼰 채로 서 있던 남성이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듯 오른쪽 다리를 움직였다. 곁눈으로 이를 본 이 씨는 횡단보도로 발을 내디뎠다가 혼비백산했다. 승용차 한 대가 자신을 향해 돌진해오고 있었고, 신호등은 여전히 빨간불이었기 때문이다. 신호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다 보니 남성이 교차된 다리의 순서를 바꾸려 한 것을 보행 움직임으로 착각한 것이다. 이 씨는 “평소에도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손기상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보행 시 스마트폰에 집중하게 되면 주변 인지 능력이 상실돼 위급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 상실된다. 안전을 위해 설치된 신호등을 무시한 것은 주위 소홀로 볼 수 있는데 언제든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다”라고 분석했다.○ 불씨 남은 꽁초… ‘용광로 쓰레기통’ “불을 내뿜는 쓰레기통이요? 많이 봤죠.” 이 씨와 박 씨의 진단표를 보면 ‘불씨가 남은 담배꽁초를 쓰레기통에 던지는 사람을 봤느냐’는 질문에 ‘목격’이라고 적혀 있다. 이 씨는 “학교 내에 흡연 장소가 있는데 친구들이 담배꽁초를 손끝으로 ‘톡톡’ 떨어낸 뒤 불씨를 확인하지 않고 쓰레기통에 던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불씨가 남았잖아’라고 친구에게 경고하고 나서야 친구는 침을 뱉어 불을 끈다”고 말했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쓰레기통 안에는 불이 옮겨붙을 재료(휴지, 신문지, 종이컵 등)가 많기 때문에 화재 규모가 커지고, 확산 속도도 빨라 대형 화재가 발생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담뱃불 화재 실험’을 실시한 서울도봉소방서에 따르면 휴지가 들어 있는 쓰레기통에 담뱃불이 떨어지면 불과 3분 50초 만에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발화가 시작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안전 지키려는 노력은 불편하다? 박 씨와 이 씨는 퇴근길과 하굣길에서도 안전사고 가능성에 노출됐다. 이들은 술자리 등이 끝난 뒤 귀가를 위해 택시를 타고 지하철역까지 이동하는데 택시 뒷좌석에 탑승할 때 안전띠를 매지 않았다. 공통된 이유는 “짧은 시간 택시를 탔기 때문에 사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했으며 안전띠를 매면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교통사고 통계에 따르면 안전띠를 매지 않았을 때 교통사고 치사율이 착용 시보다 4.1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까지는 고속도로와 자동차전용도로에서만 승차자의 안전띠 착용이 의무화됐지만 전문가들은 모든 도로에서 의무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설재훈 한국교통연구원 교통안전재난연구단장은 “뒷좌석에 앉은 탑승자의 전면에는 에어백이 없기 때문에 사고 발생 시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영화관에서 비상구 확인 안한다” 67% ▼본보-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조사… “안전 소홀, 빨리빨리 문화 탓” 34%동아일보와 사단법인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이 ‘우리나라 국민의 안전의식 수준’에 대해 일반 시민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들이 생각하는 국민의 안전의식 점수는 100점 만점에 51.74점(평균)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는 직장인과 대학생 등 523명이 참여했다. 정재희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체계적인 안전교육의 부재로 인해 개인의 확고한 안전의식이 형성되지 못했음을 뜻한다. 또한 언론을 통해 대형사고 소식을 꾸준히 접하면서 ‘우리 사회가 안전하지 못하다’는 불안감을 갖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안전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179명(34.2%)이 ‘안전보다 경제발전이 우선시되는 문화’라고 답했다. 김일영 씨(30·회사원)는 “‘빠르게 일 처리를 해야 성공한다’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 보니 안전을 챙길 여유를 잃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질문에 178명(34.0%)은 ‘느슨한 단속과 솜방망이 처벌’이 원인이라고 응답해 당국의 규제와 단속 미비가 안전불감증을 부추기고 있다고 진단했다. 안전사고 유형 중 응답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교통사고(277명·53.2%)였으며 화재(89명·17.2%), 산업재해(67명·13.0%)가 그 뒤를 이었다. 응답자 중 상당수는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승용차 뒷좌석에 탈 경우 안전벨트를 착용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331명(63.3%)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영화관 등 다중이용시설 이용 시 비상구를 확인하는가’라는 질문에는 351명(67.1%)이 ‘확인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정 교수는 “위험에 대한 인식이 선제적 예방활동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며 “반복적인 교육과 제도적 보완을 통해 안전수칙 준수를 습관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정윤철 trigger@donga.com·박성진 기자}
세월호 실종자 수색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가운데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10일 오후 전남 진도군청에서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 수색작업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민간 잠수업체가 수차례에 걸쳐 수색에 어려움을 밝힌 바 있어 수색 지속 여부를 집중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9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 따르면 현장에 있는 잠수사들은 악천후와 선체 붕괴 위험, 산소 중독 등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사고 해역의 바람도 거세지고 있다. 바람 때문에 파고가 2m 이상이 되면 잠수가 불가능하다. 앞서 실종자대책위원회는 지난달 27일 “과거 기상통계를 분석한 결과 수중 수색이 가능한 파도 높이(1.5m)는 11월에 20일 정도”라고 밝혔다. 작업 시간을 늘리려고 도입한 나이트록스(산소 함량을 21∼40%까지 높인 혼합공기) 잠수 방식도 7월 도입됐을 때 산소 중독의 위험성이 제기됐다. 이미 오랜 기간 수색이 진행되면서 잠수사들 신체에 산소 축적으로 인한 후유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세월호 선체 붕괴가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선미 쪽은 상당 부분 붕괴가 진행됐고 선수와 중앙 쪽도 붕괴되고 있다. 88수중 측은 이런 점을 들어 더이상 수색이 쉽지 않다는 입장을 범대본에 전한 상태다. 7일 열린 수색구조 태스크포스(TF) 회의에 참석한 실종자 가족들도 “잠수사들이 그동안 고생한 것을 안다”며 공감했다. 이에 따라 10일 오후 열릴 이 장관과 실종자 가족 만남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관심이 모아진다. 한편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는 “수색 지속을 요구하기 위해 경기 안산시에 머무는 유가족들과 함께 직접 진도를 찾을 예정”이라고 9일 밝혔다.최혜령 herstory@donga.com·박성진 기자}
내년 하반기부터 달라지는 삼성그룹의 채용 방식에 대해 전공과 출신 학교에 따라 취업준비생들의 반응이 엇갈렸다. 특히 인문·사회계열 전공자들은 취업 문턱이 더욱 높아질 것을 우려했다. 경희대 경영학과 졸업을 앞둔 박모 씨(25)는 “이공계는 전공을 살려 지원할 수 있고 전공 성적이 좋으면 가산점도 받을 수 있지만 문과생들이 주로 지원하는 직군에서는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사실상 없다”며 “직무에세이를 쓰고 영업직에 지원하면 1박 2일 면접까지 봐야하는 문과생들의 취업 준비는 더욱 어려워질 것 같다”고 말했다. 달라지는 채용 방식에 따르면 대다수가 이공계 전공자들이 지원하는 연구개발·기술·소프트웨어 직군은 전공과목 성적에 따른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인문·사회계열 전공자들이 주로 지원하는 영업과 경영지원 직군에서는 가산점 자체가 없다. 취업 관련 인터넷 카페와 대학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사실상의 서류전형 부활 아니냐” “어설픈 인문계 전공자는 문턱도 못 넘겠다” “문과생들 삼성 취업은 올해가 막차”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최근 기업들이 인문계 출신들을 아예 뽑지 않거나 채용 인원을 줄이면서 인문계 출신들의 취업 사정이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일부 문과생은 불필요한 취업 준비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공계 전공자들은 전공능력을 중시하겠다는 개편 취지에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올 9월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과를 졸업한 김모 씨(27)는 “전공과 상관없는 SSAT를 공부해야 하는 부담이 컸다”며 “개편 취지에 적극 공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구개발·기술·소프트웨어 직군의 직무적합성 평가 방식의 공정성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취업준비생인 정모 씨(27)는 “대학마다 수준 차이가 있고 같은 전공과목도 교수마다 학점이 다른데 오로지 학점으로만 전공 능력을 평가하는 게 객관적일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김호경 whalefisher@donga.com·박성진 기자}

세월호 유가족들이 지난달 31일 타결된 여야의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을 사실상 받아들였다. 경기 안산 단원고 유가족들로 구성된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는 2일 오후 6시 안산시 화랑유원지 내 경기도미술관에서 총회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 가족대책위는 총회 직후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10·31 합의안’은 가족과 국민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첫 결실”이라며 “양당의 합의 과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족대책위는 여야 합의안이 적지 않은 한계와 문제점을 갖고 있다며 일부 내용의 수정 보완을 제안했다. 가족대책위는 “특별조사위원장을 유가족이 추천하기로 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여당이 특별검사 2명을 추천할 때 유가족이 반대하는 인물을 배제한다는 안에 대해선 “그래도 독립성을 제약할 것”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또 청문회 출석 대상자가 조사를 계속 거부하고 동행명령도 거부하면 벌금 1000만 원을 물릴 수 있다는 강제조항도 “과태료 상한선이 낮아 강제력이 약하다”고 주장했다. 가족대책위는 5가지 제안을 정부와 여야에 제시했다. △법안 처리 전 유가족이 지적한 개선안 반영 △‘진실 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대국민 서약식’ 개최 △연내 특별조사위 구성 후 내년부터 본격 활동 △후속 절차에 유가족 참여 △배상·보상에 생존자 피해자 참여 보장 등이다.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이 제안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합의안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법안이 만들어져 공포가 될 현실을 수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총회에는 유가족 230여 명이 참석했다. 총회가 열리는 동안 고성이나 논쟁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9월 30일 여야가 새로운 합의안을 마련했을 때 가족대책위 내부에서 찬반 논쟁이 격하게 벌어졌던 분위기와는 크게 달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인지 2일 총회에서는 합의안 수용 여부를 놓고 투표도 하지 않았다. 한 유가족은 “수용 여부를 정하는 게 아니라 제안문을 만드는 등 세부적인 사항을 정했을 뿐 투표할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광화문광장과 국회,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의 농성장 철수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부분적으로 철수하는 쪽으로 어느 정도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청운효자동주민센터만 조속한 시일에 철수하고 국회 농성장은 7일 법안 통과 후에 철수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광화문광장에선 농성을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 가족대책위 관계자는 “국회와 청운효자동주민센터 농성장은 철수할 것으로 보이나 광화문광장 농성장은 예정된 것이 없다”고 전했다. 일반인 가족대책위원회도 조만간 여야 합의안을 놓고 견해를 내놓을 방침이다. 장종열 대책위원장은 “알려진 것처럼 전반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다”라며 “위원장을 유족이 선출한 상임위원이 맡는다지만 수적으로 많은 단원고 유가족에게 일반인 유가족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앞서 세월호 침몰 사고 200일째인 1일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는 세월호 참사 200일 문화제가 열렸다. 진도실내체육관에는 실종자 여덟 가족만이 남아있다. 같은 날 안산시 정부합동분향소에서는 단원고 유가족과 생존 학생 가족 300여 명, 일반인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이 열렸다.이샘물 evey@donga.com/진도=박성진/안산=최혜령 기자}

가슴은 무너지는데 담담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다. 196일이나 기다렸는데 막상 현실이 되니 ‘그냥 돌아왔구나’ 싶었다. 언제 철들까 싶던 곱디고운 얼굴은 사라졌다. 그래도 내 딸이었다. 그렇게 지현이가 내 품으로 돌아왔다. 30일 오전 7시경 전남 진도군 진도실내체육관. 단원고 2학년 3반 황지현 양(17)의 어머니 신명섭 씨(49·여)는 입고 있던 노란색 잠바를 조용히 벗었다. 그리고 4월 16일 처음 진도에 내려올 때 가져왔던 짐을 챙겼다. 오전 9시경 범정부사고대책본부로부터 전날 수습한 시신은 DNA 검사 결과 지현이가 맞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신 씨는 놀라지 않았다. 그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바닥의 한기를 막아주던 노란 이불을 한참 바라본 뒤 짧은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른 실종자 가족들이 다가왔다. 서로의 뺨을 어루만지며 연신 “축하한다” “미안하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신 씨는 그렇게 딸의 빈소가 차려진 경기 안산시 고려대 안산병원으로 향하는 차에 올랐다. 지현 양의 아버지 황인열 씨(51)는 시신과 함께 헬기를 타고 안산으로 향했다. 황 양의 부모가 떠난 체육관은 다시 적막해졌다. 남은 실종자 가족들은 넓은 체육관 안에 섬처럼 흩어져 있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날 오후 3시경 황 양의 빈소에 단원고 2학년 3반 담임이었던 김초원 교사(26·여)의 아버지 김성욱 씨(55)가 찾아왔다. 김 교사는 세월호 참사 당일인 4월 16일 숨진 채 발견됐다. 그날은 김 교사의 생일이었다. 3반 제자들은 참사 전날 배 안에서 김 교사의 생일파티를 열었다. 공교롭게도 황 양의 시신은 그의 18번째 생일날 수습됐다. 김 씨는 “3반 학생들 가운데 지현이만 못 찾아서 그동안 속을 많이 태웠다”며 “초원이가 하늘에서도 자기 제자들을 챙길 것이다. 그 마음에 답해준 지현이에게 너무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황 양의 빈소에는 단원고 생존 학생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가슴에 세월호 추모 배지를 단 학생들은 굳은 얼굴로 친구를 마주하고는 금방 눈시울이 붉어졌다. 침묵 속에 조문을 마친 학생들은 조용히 장례식장을 빠져나갔다. 황 양의 시신이 발견된 뒤 실종자 가족들은 새로운 수색 방식이 필요하다며 격앙된 분위기다. 민관군 합동구조팀도 오랜만의 실종자 발견에 고무된 표정이지만 ‘더듬이식’ 수색의 한계 탓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해양경찰청 관계자는 “오늘 들어간 공간이 내일이면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시신이 각종 부유물 때문에 보이지 않다가 물살에 풀리면서 보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진도=박성진 psjin@donga.com / 안산=황성호 / 최혜령 기자}

196일 만이었다. 4월 16일 세월호와 함께 바닷속으로 사라졌던 실종자 중 경기 안산 단원고 2학년 황지현 양(17)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29일 수습됐다. 이날 오후 8시 30분경 해경 경비정에 실려 시신이 전남 진도 팽목항으로 들어오자 실종자 10명의 가족들은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듯 연신 호흡을 가다듬었다. 황 양의 어머니 신명섭 씨(49)가 남편 황인열 씨(51)의 손을 꼭 잡은 채 “애기 얼굴 볼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배가 정박할 때까지 이들의 시선은 한곳을 향했다. 침착함은 사라지고 부모의 흐느낌은 점점 커졌다. 흰 천에 싸인 시신이 선착장의 흰 천막으로 들어갔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 법률대리인 배의철 변호사가 천막에 들어가 시신을 스마트폰으로 찍은 뒤 황 씨 부부에게만 보여줬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굵은 눈물이 연신 바닥으로 떨어졌다. 배 변호사는 “생각보다 시신은 깨끗한 편이다”라고 전했다. 여성 속옷과 숫자가 새겨진 티셔츠, 레깅스, 목 부분만 남기고 찢어진 구명조끼를 입은 채 발견된 시신은 선내 발견 위치와 생존 학생의 증언 등으로 미뤄 황 양으로 보인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유전자(DNA) 감식을 거쳐 신원이 공식 확인되는 건 30일 오전. 하지만 부모는 깊은 오열로 시신이 자신의 피붙이라고 알렸다. 세월호 선체 안에서 발견된 실종자 시신은 하루 만에 차가운 바다에서 뭍으로 올라왔다. 29일 오후 6시 18분경 민관군 합동구조팀 잠수사들은 시신을 수습해 바지선으로 옮긴 뒤 팽목항 시신안치소로 이송했다.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이날 새벽과 오전 2차례 조류가 잠잠해지는 정조(停潮)시간에 2인 1조로 구성된 잠수사 5개 팀을 투입했다. 시신이 발견된 4층 중앙화장실로 접근하는 통로가 협소하고 시야가 불량해 수습에 실패했지만 잠수사들은 세 번째 시도 끝에 시신 수습에 성공했다. 처음 시신을 발견한 민간잠수사가 자신이 직접 마무리하겠다며 바다에 들어가 수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은 황 양의 18번째 생일이었다. 가족들은 황 양의 생일을 맞아 진도군청 기자회견장에서 케이크를 자르고 노래를 부르다 끝내 눈물을 흘렸다. 팽목항에 차려진 황 양의 밥상에는 황 양과 같은 반 아이들의 어머니들이 끓여준 미역국이 올랐다. 이날 오후 2시경 기자회견에 참석한 실종자 가족과 배 변호사는 “마지막 한 명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생일상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아버지 황 씨는 케이크에 직접 촛불을 켜며 눈물을 보였다. 실종자 가족 대표를 맡았던 황 씨는 “사랑하는 지현아, 좋은 자리 잡아놓으면 아빠가 나중에 따라갈게”라고 인사를 남겼다. 실종자 가족들은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전 구역 전면 재수색을 반영한 11월 수색계획 수립을 재차 요구했다. 배 변호사는 “전문가들도 유실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는 만큼 미진했던 공간을 정밀하게 다시 수색해야 한다”고 밝혔다.진도=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세월호 유가족의 대리운전기사 폭행 사건에 연루된 김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사진)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폭행)과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28일 김 의원과 함께 김병권 전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위원장, 김형기 전 수석부위원장, 한상철 전 대외협력분과 부위원장, 이용기 전 장례지원분과 간사 등 유가족 4명에게 공동상해 혐의와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유가족 4명은 지난달 17일 0시 40분경 서울 영등포구 KBS 별관 뒤쪽 거리에서 대리기사 이모 씨(42)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유가족들이 대리기사를 집단 폭행해 전치 4주의 상해를 가한 점과 이를 말리던 신고자 일행 노모 씨 등 2명에게 각 2주간의 상해를 가한 사실도 인정된다”고 밝혔다. 경찰은 김 의원이 대리기사 폭행에 실제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대리기사에게 명함을 건네받은 행인에게는 물리적인 힘을 가해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지나가는 행인에게 명함을 뺏으려는 시도가 이번 폭행사건의 발단이고 김 의원이 직접 행인의 옷깃을 잡아끌며 ‘명함을 내놔라’라고 하는 장면이 1분 30초간 폐쇄회로(CC)TV에 나온다”며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폭행에 적극 관여하지 않았더라도 폭행 행위를 조장하거나 적극적으로 만류 또는 제지하지 않은 자를 폭행의 공동정범으로 본다”고 밝혔다. 폭행혐의를 받고 있는 김 전 부위원장은 경찰 조사에서 목격자 정모 씨(35)에게 턱을 맞아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며 쌍방폭행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은 “정 씨가 김 전 위원장을 때린 증거가 없다”며 “턱을 맞아 기절했으면 순간적으로 쓰러지면서 무릎과 팔에 상처가 생길 수 없는데 상처가 있고 모든 목격자가 김 전 부위원장이 술에 취해 혼자 쓰러졌다고 진술했다”고 반박했다. 경찰은 정 씨를 불기소 의견(혐의 없음) 처리하고 사건을 28일 오전 서울남부지검으로 송치했다. 박성진 psjin@donga.com·강은지 기자}

“실종자가 발견됐답니다. (세월호) 4층 여자화장실에서요.” 28일 오후 5시 반경 실종자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남 진도군 진도실내체육관에 전해지자 가족들은 크게 술렁였다. 7월 18일 세월호 조리원 이묘희 씨(56·여) 발견 소식 후 102일 동안 실종자가 발견되지 않은 터였다. 여성의 시신으로 추정된다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단원고 2학년 황지현 양(17)의 아버지 황인열 씨(51)는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황 씨는 생존 학생들이 마지막으로 황 양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4층 여자화장실의 수색을 희망해 왔다. 실종자 발견 다음 날인 29일은 결혼 7년 만에 얻은 외동딸 황 양의 18번째 생일. 황 씨는 “지금은 말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전화를 끊었다. 다른 실종자 가족들도 실종자 발견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남은 실종자는 여성 2명, 남성 7명 등 9명. 남성 실종자의 가족들은 “정말 다행이다, 잘됐다”며 황 씨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다른 여학생 실종자인 허다윤 양의 아버지 허흥환 씨(50)는 “여성이 발견됐다는 말에 내 딸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먹먹했다. 유전자(DNA) 감식 결과가 나올 때까지 어떻게 기다릴지 모르겠다”며 말을 삼켰다. 295번째 희생자가 발견되면서 세월호 인양론은 당분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됐다. 수중수색으로 실종자를 발견해 굳이 인양을 추진할 명분이 없어진 셈이다. 실종자 가족 권오복 씨(60)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했다고 했지만 또 실종자가 발견됐다. 가족들은 수중수색에 다시 기대를 걸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이들은 실종자 발견 장소가 가족들이 추가 수색을 원했던 4층 중앙화장실로 확인되자 상기된 반응을 보였다. 세월호 실종자가족 법률대리인 배의철 변호사는 27일 세월호 인양 부결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4층 선미 좌측 다인실(SP1)과 여자화장실 추가 수색을 가족들이 희망한다”고 전한 바 있다. 앞으로 이어질 수중수색에서는 실종자 가족의 의사가 이전보다 더 중시될 것으로 보인다. 배 변호사는 “(이번 희생자 확인으로) 수색팀의 수색이 아직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수색이 완료된 곳도 재수색에 나설 것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종자 발견 소식이 전해진 이날 오후 8시 실종자 가족들은 범정부사고대책본부가 마련된 진도군청을 방문해 가족들이 원하는 수색 위치를 반영한 11월 수색계획을 다시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88수중 소속 잠수사들은 4층 화장실 벽에 구멍을 뚫어왔고, 최근 작업을 완료해 확보한 진입로를 통해 실종자를 발견했다. 일부 가족은 해군 대신 88수중 소속 잠수사가 들어가 교차 수색을 한 덕분에 실종자를 발견했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날 실종자 수습은 곧바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호원 88수중 부사장은 “물살이 빠르고 시야가 좋지 않아 수습이 쉽지 않은 상태다. 희생자의 위치를 확인한 뒤 일단 잠수사는 철수했다”고 말했다. 잠수사들은 29일 오전 4, 5시경 정조 시간에 다시 희생자 수습에 나선 뒤 수습한 시신의 유전자를 감식해 신원 확인 작업에 나선다. 안전 문제로 수중수색에 어려움을 표하던 일부 잠수사의 불만의 목소리도 잦아들 것으로 보인다. 구조팀 관계자는 “수중수색이 유효한 것으로 나타난 만큼 잠수사들도 가족들이 원하는 대로 수색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이건혁 gun@donga.com·최혜령·박성진 기자}
서울 강서구 재력가 송모 씨(67)의 살해를 청부한 혐의(살인교사)로 구속 기소된 김형식 서울시의원(44)이 국민참여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김 의원의 지시를 받고 송 씨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팽모 씨(44)에게는 징역 25년이 선고됐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박정수)는 27일 열린 김 의원에 대한 공소사실 일체를 만장일치로 유죄로 인정한 배심원 평결을 받아들여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9명의 배심원은 김 의원에 대해 각각 징역 20년(1명), 징역 30년(1명), 무기징역(5명), 사형(2명) 등의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김형식이 피해자 송 씨로부터 토지용도변경 청탁을 받으며 5억2000만 원이라는 거액을 받았으나 이를 지키지 못하자 정치생명을 잃을까 두려워 친구를 시켜 피해자를 살해한 사건”이라며 “자신의 잘못을 전혀 뉘우치지 않고 용서를 구하지 않아 배심원 평결을 고려해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팽 씨에 대해서는 “10년 지기 친구의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살인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손도끼로 피해자의 머리를 15회 가격하는 등 수법이 매우 잔인하다”면서도 “죄를 깊이 뉘우치며 범행을 자백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김 의원 측 변호인은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다. 변호인은 “수사기관의 증거 짜맞추기식 수사로 억울하고 잘못된 판결이 내려졌다”며 “항소해서 반드시 무죄를 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시종일관 묵비권을 행사하던 김 의원은 이날 처음으로 입을 열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검찰의 신문 과정에서는 수차례 감정에 북받친 듯 눈물을 흘렸다. 김 의원은 최후진술에서도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진실을 밝혀주십시오”라며 울먹였다. 2008년 1월 처음으로 시행된 국민참여재판이 6일간(주말 제외) 연속으로 진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참여재판은 재판부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배심원의 평결을 참고해 유죄 여부를 판단한다. 유죄라면 당일 형량을 정해 선고하지만 이번 사건은 김 의원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신청한 증인만 총 21명이나 돼 6일간 집중 심리를 거쳐 선고했다.박성진 psjin@donga.com·강은지 기자}
‘나 니들 시러(싫어).’ 서울의 한 사립대 영상학과 재학생 문모 씨(25)와 김모 씨(22)는 26일 오후 5시 55분경 서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국회 본청 후문 회색 기둥에 검은색 래커로 이렇게 낙서(사진)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손에 캔맥주를 들고 낙서를 하다가 국회 상황실 근무자와 순찰 중이던 기동대 경찰들에게 현장에서 붙잡혔다. 국회의원을 겨냥한 낙서가 국회에 새겨졌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인터넷에선 ‘속 시원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줬다’는 찬사 아닌 찬사가 잇따랐다. 문 씨와 김 씨는 범행 35분 전인 오후 5시 20분에 국회 남문을 통해 내부로 진입한 뒤 본청 후문 기둥으로 다가간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일상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을 광고 영상으로 표현하라는 과제를 수행하려고 국회의사당 벽에 낙서한 뒤 촬영하려고 했다”며 “죄가 되는 줄은 몰랐다”며 고개를 떨궜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문 씨와 김 씨를 공용건조물 침입 및 공용물건손상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자세한 경위와 실제 동영상이 촬영됐는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2014 재난대응 안전한국 훈련’의 하나로 전국 소방서에서 소방차 길 터주기 훈련이 실시된 22일 오후 2시. 서울 강서소방서 소속 소방차와 지휘차 14대가 훈련을 위해 일렬로 도로에 나섰다. 소방차가 사이렌과 함께 “소방차 길 터주기는 의무입니다”라고 방송하자 앞서가던 차량들은 길을 비켜주거나 인도 쪽으로 차를 붙인 뒤 소방차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구급차를 운전하던 김기정 대원(30)은 “교통체증이 심하지 않은 오후라 길을 터 준 차량이 많았지만 출퇴근 시간에는 이 정도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귀에 이어폰을 낀 채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횡단보도를 건너던 20대 남성은 소방차와 충돌하기 직전에야 가까스로 피했다. 소방차 행렬 사이로 길을 건너려던 50대 여성은 소방차 행렬을 멈추게 만들기도 했다. 강서소방서 현장지휘팀 전극연 소방위(50)는 “소방차가 달려도 그냥 길을 건너는 보행자들이 더 무섭다. 차량뿐 아니라 보행자들도 소방차에 길을 내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훈련을 주관하는 소방방재청은 이번 훈련이 세월호 참사 이후 처음 실시되는 국가 단위 훈련으로 국민 참여와 현장의 실제적인 훈련에 중점을 두고 진행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민의 참여는 기대에 못 미쳤다. 이날 오후 2시경 서울지하철 6호선 봉화산역에서 진행된 지하철 화재 대비 훈련에 참여한 승객 대부분은 미리 훈련에 참여하기로 한 월곡중학교 학생과 시민 등 120여 명뿐이었다. 나머지 승객들은 훈련에 관심도 갖지 않았다. 서울 내부순환로 홍지문터널에서 진행된 차량화재 진압 가상훈련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로에서 연막탄이 피어오르자 출동한 홍지문터널 긴급구조대 직원 1명이 소화기를 사용해 진화에 나섰고, 뒤이어 도착한 소방대원들이 마무리했다. 터널 안 3개 차로 가운데 2개를 막았지만, 나머지 1개 차로에서는 차량들이 정상 운행했다. 훈련 관계자는 실제 상황이라면 터널 안으로 들어오는 차량들을 전면 차단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훈련이어서 차량 통행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훈련이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계기는 되고 있지만, 효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예고 없이 실제와 가깝게 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도심에서도 불시에 강도 높은 훈련을 실시해야 실제 사고가 발생했을 때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박성진 psjin@donga.com·강홍구·이건혁 기자}
세월호 실종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4층 선미 다인실 수색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잠수사가 투입되는 현재 인력 중심의 수색작업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1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 따르면 4층 선미 다인실은 침몰 때 충격 때문에 창문 쪽 외벽과 천장이 거의 붙어 있는 상태다. 일부 실종자 가족은 “외벽과 천장을 벌려서 수색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민간잠수업체 측은 “잠수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는 의견이다. 또 가족들이 겨울철 수색을 위해 요청했던 잭업바지(jack-up barge·바다 밑에 4개의 긴 파일을 박고 수면 위에 사각형의 바지를 얹혀 파도에 영향을 덜 받게 하는 바지) 설치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범대본과 민간잠수업체는 일단 잠수사를 투입해 수색을 계속할 방침이다. 세월호 실종자 수색은 7월 18일을 마지막으로 21일까지 96일째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진행 중이다. 실종자 가족들은 최근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위원장으로 황인열 씨(단원고 2학년 황지현 양 아버지)를 선출했다. 황 위원장은 “그동안 공식적인 실종자 대표가 없어서 이번에 내가 맡은 것”이라며 “전체 세월호 가족대책위와 다른 의견을 내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21일 오후 진도실내체육관을 방문한 일반인 유가족대책위 관계자들을 만나 수색작업 등을 논의했다.최혜령 herstory@donga.com·박성진 기자}
서울 강서구 재력가 송모 씨(67)를 살인 교사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형식 서울시의원(44)의 첫 공판이 20일 서울남부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박정수) 심리로 열렸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이날 공판에서 김 의원은 배심원 12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범행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거듭 무죄를 주장했다. 검찰은 김 의원이 살인을 교사해 실제 범행을 저지른 팽모 씨(44)의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이어서 혐의를 입증할 직접적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김 의원의 변호인은 김 의원에게 뚜렷한 살해 동기가 없고 생활이 어려운 팽 씨가 돈을 노리고 저지른 단독 범행이라고 반박했다. 쟁점은 김 의원의 살해 동기였다. 검찰은 “김 의원은 피해자로부터 빌딩 용도변경을 부탁받고 2010년부터 1년 사이에 5억2000만 원을 건네받았다”며 “로비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피해자를 친구에게 부탁해 살해한 것”라고 강조했다. 이에 김 의원 측 변호인은 “해당 빌딩은 용도변경 없이도 인허가만 받으면 언제든지 호텔을 지을 수 있었다. 초선에 4개월밖에 되지 않은 시의원에게 그런 일을 부탁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김 의원이 2011년 12월 20일 “새로운 시장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해 보겠다며 2억 원을 가져갔다”고 밝혔고, 변호인 측은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전인데 야당 초선 시의원이 2억 원을 로비 명목으로 달라고 해서 냉큼 돈을 내줄 송 씨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연두색 수의 차림의 김 의원은 시종일관 차분한 표정으로 양측 변론 내용을 메모했고, 팽 씨는 공판 내내 눈물을 흘렸다. 이번 재판은 27일까지 주말을 제외하고 6일간 집중심리를 거쳐 최종 선고가 내려진다. 국민참여재판이 1주일간 열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검은 상복이 바닥에 끌려 빗물에 젖었다. “아빠 언제 일어나?”라고 묻는 손녀의 얼굴을 할아버지는 한참 동안 말없이 쳐다봤다.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와 할아버지의 붉어진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 이내 언니와 장난을 쳤다. 아빠를 보내는 마지막 자리. 아이들은 여전히 ‘아빠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20일 오전 7시경 경기 용인시에 있는 강남병원 장례식장 앞. 여섯 살 딸, 다섯 살 아들, 세 살 딸은 그렇게 아빠 윤모 씨(35)를 하늘로 보냈다. 이날 윤 씨의 발인에는 그의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윤 씨의 관이 모습을 드러내자 친지의 품에 안겨 아들의 영정사진을 따르던 윤 씨의 어머니는 한 걸음 내딛고 흐느끼고 다시 걷다 멈춰 오열하기를 반복했다. 흐느끼는 소리만 가득한 가운데 누구 하나 섣불리 말을 하지 못했다. 정적을 깬 것은 홀로 아이들을 키울 윤 씨의 아내. “여보, 당신 없이 더 이상 어떻게 살아”라고 나지막이 가슴속 한마디를 꺼냈다. 컴컴한 하늘에서는 비가 세차게 내렸다. 같은 날 오전 10시경 경기 성남시 성남중앙병원 앞에서는 장모 씨(39·여)의 발인이 엄수됐다. 장 씨의 관이 운구차에 들어가는 순간 그의 어머니는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어 연신 왼쪽 가슴을 두드렸다. “아이고 아이고”를 입 밖으로 뱉어냈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운구차 앞에 선 그의 아버지는 “아이고 우리 아기 불쌍해서 어떻게 해…”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한 시간 뒤 같은 장소에서 김모 씨(27·여)의 발인도 진행됐다. 4남매 중 장녀였던 그의 영정사진을 동생들은 말없이 뒤따랐다. 가족끼리 “누나가 가는 마지막 길에서는 절대 울지 말자”고 약속했다던 김 씨의 남동생은 말없이 웃고 있는 누나의 사진을 들고 있었다. 가족, 친구 등 10여 명 누구도 소리 내지 않았다. 김 씨의 어머니도 딸의 관을 말없이 바라보다 남편과 함께 운구차에 탑승했다. 19일(1명)에 이어 20일 서울·경기 지역 병원 장례식장 4곳에서는 윤 씨 등 희생자 6명의 발인이 엄수됐다. 남은 희생자 9명의 장례 절차는 사고대책본부와 유가족협의체가 20일 보상 등에 합의함에 따라 21일 모두 진행될 예정이다. 대형사고 발생 5일 만에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사고 발생 다음 날인 18일 유가족협의체 한재창 간사(41)는 “이 사고를 국가적 이슈로 만들고 싶지 않다”며 “보상과 관계없이 장례를 치를 것이다”라고 밝혔다. 용인·성남=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검은 상복이 바닥에 끌려 빗물에 젖었다. “아빠 언제 일어나?”라고 묻는 손녀의 얼굴을 할아버지는 한참 동안 말없이 쳐다봤다.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와 할아버지의 붉어진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 이내 언니와 장난을 쳤다. 아빠를 보내는 마지막 자리. 아이들은 여전히 ‘아빠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20일 오전 7시경 경기 용인시에 있는 강남병원 장례식장 앞. 여섯 살 딸, 다섯 살 아들, 세 살 딸은 그렇게 아빠 윤모 씨(35)를 하늘로 보냈다. 이날 윤 씨의 발인에는 그의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윤 씨의 관이 모습을 드러내자 친지의 품에 안겨 아들의 영정사진을 따르던 윤 씨의 어머니는 한 걸음 내딛고 흐느끼고 다시 걷다 멈춰 오열하기를 반복했다. 흐느끼는 소리만 가득한 가운데 누구 하나 섣불리 말을 하지 못했다. 정적을 깬 것은 홀로 아이들을 키울 윤 씨의 아내. “여보, 당신 없이 더 이상 어떻게 살아”라고 나지막이 가슴속 한마디를 꺼냈다. 컴컴한 하늘에서는 비가 세차게 내렸다. 같은 날 오전 10시경 경기 성남시 성남중앙병원 앞에서는 장모 씨(39·여)의 발인이 엄수됐다. 장 씨의 관이 운구차에 들어가는 순간 그의 어머니는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어 연신 왼쪽 가슴을 두드렸다. “아이고 아이고”를 입 밖으로 뱉어냈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운구차 앞에 선 그의 아버지는 “아이고 우리 아기 불쌍해서 어떻게 해…”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한 시간 뒤 같은 장소에서 김모 씨(27·여)의 발인도 진행됐다. 4남매 중 장녀였던 그의 영정사진을 동생들은 말없이 뒤따랐다. 가족끼리 “누나가 가는 마지막 길에서는 절대 울지 말자”고 약속했다던 김 씨의 남동생은 말없이 웃고 있는 누나의 사진을 들고 있었다. 가족, 친구 등 10여 명 누구도 소리 내지 않았다. 김 씨의 어머니도 딸의 관을 말없이 바라보다 남편과 함께 운구차에 탑승했다. 19일(1명)에 이어 20일 서울·경기 지역 병원 장례식장 4곳에서는 윤 씨 등 희생자 6명의 발인이 엄수됐다. 남은 희생자 9명의 장례 절차는 사고대책본부와 유가족협의체가 20일 보상 등에 합의함에 따라 21일 모두 진행될 예정이다. 대형사고 발생 5일 만에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사고 발생 다음 날인 18일 유가족협의체 한재창 간사(41)는 “이 사고를 국가적 이슈로 만들고 싶지 않다”며 “보상과 관계없이 장례를 치를 것이다”라고 밝혔다. 용인·성남=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검은 상복 차림의 딸(18)은 더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대신 근조화환의 국화를 어루만지며 멍하니 아빠의 영정만 바라봤다.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사흘째인 19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에 차려진 윤병환 씨(47)의 빈소에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아빠의 부재’ 앞에서 오열하던 딸은 눈물조차 메마른 듯 침묵을 지켰다. 윤 씨는 군대 간 아들과 고등학교 3학년 딸을 둔 가장이다. 그는 매일 승용차를 운전해 딸의 등하교를 함께했다. 대형마트 점원으로 일하는 아내의 퇴근이 늦으면 직접 딸을 위해 간식을 만들어 준 ‘딸 바보’였다. 윤 씨는 19일 군대에 있는 아들을 면회하러 갈 예정이었다. 아들을 면회하는 날은 집안 잔치가 열린다. 가족과 친척 등 20명 가까운 일행이 늘 함께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윤 씨는 며칠 전부터 친척들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오는 일요일에 우리 아들 면회를 가자”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싸늘한 주검이 돼 아들을 만나야 했다. 사고 현장 근처 건물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던 정연태 씨(47)와 부인 권복녀 씨(46)는 금실 좋은 ‘잉꼬부부’로 소문났다. 사고 당일도 자녀들에게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나간다”고 말했지만 알고 보니 부부끼리 외출 나와 공연을 보던 중이었다. 큰아들(19)은 사고가 난 17일 오전 군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를 받은 뒤 오후 1시경 집에 돌아왔다. 마침 쉬는 날이었던 아버지가 집에 있었지만 아들은 피곤하다는 이유로 점심식사도 함께하지 못했다. 정 씨가 건넨 “잘 자”라는 짧은 인사가 부자간의 마지막 대화였다. 부부에게는 초등학생인 늦둥이 딸이 있다. 큰아들은 “이제 내가 가장”이라며 멍하니 하늘만 바라봤다. 숨진 A 씨는 부인과 두 아들을 중국으로 보낸 뒤 홀로 살던 ‘기러기 아빠’였다. 한 엔지니어링 회사에 다니던 A 씨는 내년 초 가족과 함께 살 날을 고대하며 최근 새로운 전셋집을 얻었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했다.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 가까스로 구조된 한모 씨(32·여)와 이모 씨(31·여)는 친구 사이다. 이날도 나란히 공연을 지켜보다가 사고를 당했다. 두 사람은 떨어지면서 간신히 난간 등을 붙잡아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 경기도 성남시 합동대책본부에 따르면 16명의 사망자 가운데 30대 이상이 14명이다. 부상자 역시 11명 중 9명이 30대 이상이다. 대부분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이다. 당초 부상자라고 주장했던 강모 씨(47)는 이번 사고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사상자는 대책본부 공식발표처럼 27명(사망 16명, 부상 11명)이다. 사고 다음 날인 18일에는 안전관리를 제대로 못했다는 책임감에 세상을 등진 한 가장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다. 이날 오전 7시 15분경 성남시 분당구 테크노밸리 공공지원센터 건물 옆 길가에서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오모 과장(37)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추락사고가 난 ‘판교 테크노밸리 축제’의 안전관리 담당자였다. 오 과장은 이날 오전 2시부터 3시 20분경까지 분당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어 오전 4시경 사무실로 돌아온 뒤 6시 50분경 사무실에서 빠져나와 비상계단을 통해 건물 10층 옥상으로 올라갔다. 오 과장은 오전 7시 1분경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 왔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동료들에게 미안하고 사고로 죽은 이들에게 죄송한 마음입니다. 진정성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유가족들은 경찰 조사에서 “평소 책임감이 강하고 꼼꼼한 성격이라 사고 책임에 대한 무게감을 이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 동료는 “사고 발생 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얼굴이 흙빛이었다. 연신 한숨만 내쉬었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오 과장이 죄책감에 스스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며 “유가족 요청에 따라 부검을 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고 희생자 가운데 처음으로 홍석범 씨(29)의 발인이 19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성남=박성진 psjin@donga.com·황성호 기자}
경기 성남시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로 16명이 숨진 지 하루 만에 서울에서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한 화재가 발생해 1명이 목숨을 잃었다. 18일 오후 9시 반경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모텔 1층 주차장에서 시작된 화재로 투숙객 송모 씨(43·여)가 숨지고 이모 씨(21) 등 34명이 연기를 들이마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또 구조 과정에서 서울양천소방서 김재호 구조대원(45)이 구조 헬멧을 착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너지는 건물 잔해에 머리를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다. 서울강서소방서에 따르면 불은 T모텔 1층 주차장에서 시작돼 1층 통로를 따라 바로 옆 R모텔까지 옮겨붙었다. 당시 두 모텔에는 중국인 관광객 42명을 포함해 총 90명이 머물고 있었다. 화재에 놀란 T모텔 투숙객 27명은 건물 옥상으로 대피했다가 소방당국에 의해 무사히 구조됐다. 하지만 순식간에 연기와 불이 T모텔 위쪽으로 번지면서 상층부 객실(705호)에 있던 송 씨는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연기를 과다하게 흡입해 객실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불은 화재 발생 40여 분 만인 오후 10시 10분경 완전히 진압됐다. 인명 피해 외에 모텔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차량 3대와 객실 일부 등을 태워 소방서 추산 2억6000만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화재 발생 4분 만에 소방대원과 구조대원들이 도착했는데도 피해 규모가 컸다. 소방 관계자는 “화재 지역은 모텔이 몰려 있고 진입로가 협소해 자칫 대형 화재로 번질 위험이 있어 소방서에서 집중 관리하는 곳이었다”며 “건물 자체가 골목 안쪽에 있는 데다 그 시간대 인근 교통정체가 심해 화재 진압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19일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현장 정밀 감식을 벌였다. 또 모텔의 화재경보기가 울리지 않았다는 목격자 증언도 있어 확인 조사할 방침이다. 박성진 psjin@donga.com·정윤철 기자}

17일 ‘제1회 판교 테크노벨리 축제’가 열린 경기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 유스페이스 야외공연장 무대. 오후 5시 53분경 첫 번째 초청가수인 걸그룹 포미닛이 3곡을 부른 뒤 마지막 곡인 ‘핫이슈’를 부르고 있었다. 무대 앞은 물론이고 주변 담장이나 환풍구 위까지 올라간 700여 명의 관객은 크게 환호하기 시작했다. 공연을 가까이서 보려는 관객들이 몰려들면서 무대에 설치된 앰프가 밀릴 정도였다. 순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났다. 무대 정면에서 10시 방향으로 20여 m 떨어진 환풍구에서 20m²(가로 4m, 세로 5m)의 덮개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순식간에 27명이 4층 깊이(20여 m) 지하로 사라졌다. ‘어!’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손을 위쪽으로 헛손질하는 모습이 목격됐지만 그대로 추락했다. 환풍구에서는 점차 회색 먼지가 뽀얗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관객들 환풍구 위로 몰려 지면에서 1m가량 위로 솟은 환풍구는 무대를 한눈에 볼 수 있어 20m² 공간에 관객 50여 명이 올라가 있었다. 환풍구 덮개는 흔히 쓰이는 두께 5∼6cm 상판이었다. 소방당국과 경찰은 상판 10개 중 6개가 관객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서 무너져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장 관리자들이 “올라가지 말라”고 안내했다지만 관객들이 몰리면서 통제가 어려워졌다. 김연수 씨(32)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무대가 잘 보이는 곳을 찾아 환풍구 위에 올라서기 시작했다. 좁은 공간이어서 옆사람을 붙잡지 않으면 떠밀릴 정도로 꽉 차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대와 그 근처는 급박한 사고 현장과는 달랐다. 사고가 난 뒤에도 대부분 관객들은 사고가 났음을 알아채지 못했을 정도였다. 사고 현장 주변 관객들의 비명은 음악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고 환풍구 주변 관객들이 119에 신고 전화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공연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상훈 씨(32)는 “갑자기 빈 공간이 보여 이동하려 했더니 바로 환풍구가 무너진 자리였다. 사람들이 비명 지르는 소리, 도망가는 소리가 모두 노래 사운드에 묻혔다”고 전했다. 사고를 눈치 채지 못한 포미닛은 끝까지 노래를 마쳤다. 사이렌 소리와 음악 소리가 뒤섞였지만 사회자는 공연을 중단시키지 않았다. 포미닛이 무대에서 내려옴과 동시에 사회자가 “안전사고가 났으니 정리하고 다시 하겠다” “구급차가 지나가야 하니 길을 비켜 달라”고 안내 방송을 했다. 엄주희 씨(38·여)는 “6시쯤 뒤에서 학생들이 ‘하수구에 사람 빠졌대’라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며 “소방관과 경찰관이 오고 난 뒤에야 행사요원이 관객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당시 인근 가게에서 청소를 하던 김남식 씨(58) 역시 “행사 주최 측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몰랐던 것 같다. 사고가 난 뒤에도 한동안 공연이 계속됐다”고 전했다.○ “사고 난 뒤에도 공연 계속됐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소방구조대원이 컴컴한 환풍구 아래로 줄을 내렸으나 한참을 내려도 바닥에 닿는 것 같지 않았다. 소방구조대는 상황이 여의치 않자 건물 지하 4층 주차장으로 내려간 뒤 환풍구와 연결하는 벽을 뚫고 진입해 구조했다. 소방당국은 환풍구 깊이가 깊은 데다 무거운 철망과 함께 관람객이 한꺼번에 추락하면서 피해가 컸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6시 20분이 지나면서 천으로 덮은 시신들이 실려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무대 앞 공연이 잘 보이는 자리에 있던 관객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때까지 사고 사실을 모르는 관객도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목격자들은 무대와 관람석을 가르는 안전펜스도 없었고, 환풍구 주변에 안전요원도 보이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사상자는 대부분 20∼50대였다. 인근에 위치한 정보기술(IT) 기업 직원들이 주말을 앞두고, 저녁을 먹고 나서 잠시 공연을 구경하러 나왔다가 참변을 당했다. 인근에서 근무하는 직원 노모 씨(33·여)는 “사고 현장 근처에서 1년을 근무했지만 환풍구 밑이 20m 깊이의 위험한 곳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미정(31) 한은희 씨(32)는 환풍구 1∼2m 아래 위치한 난간을 간신히 붙잡아 큰 부상 없이 구조됐다.확인된 사망자 (18일 0시 30분 현재)강희선(20대·여) 권복녀(46·여) 김민정(20대·여) 김성대(40) 김효성(28) 방극찬(40대) 윤병환(49) 윤철(35) 이영삼(45) 이영선(20대·여) 이인영(42) 장혜숙(30대·여) 정연태(47) 조대희(35) 홍석범(29) 그 외 신원 미상 1명우경임 woohaha@donga.com / 판교=조동주·박성진 기자}

"당신 회사의 소중한 연예인들 초상권을 함부로 사용하는 사람들로부터 돈 받아드립니다." 2012년 조모 씨(51)는 기발한 사업 아이템을 생각해냈다. 온·오프라인에서 업체들이 연예인의 사진이나 이름을 무단으로 사용해 광고하는 것이 문제가 되던 때였다. '가수 A 선글라스' '배우 B의 꿀피부 비법' 등이 흔한 광고 문구였다. 조 씨는 '기획사의 노력만으로는 관리·보호가 어려운 초상사용권(퍼블리시티권)에 대한 보호 조치를 마련하고 합리적인 사용료를 징수한다'며 초상권 관리 대행업체를 차렸다.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기획사 여러 곳과 대행 계약도 체결했다. 사업은 순탄했다. 조 씨는 2012년 8월부터 올해 5월까지 직원들을 시켜 온·오프라인 상에서 연예인의 초상권을 침해한 업체를 찾아가 '침해 사용료'를 내라고 요구했다. 합의금을 내지 않는 업체에 대해서는 소송을 진행하는 등 법률대리인을 자처했다. 조 씨는 합의금의 30%씩을 수수료로 챙겨 490여 회에 걸쳐 1억4000만 원을 기획사들로부터 받았다. 하지만 법원은 법적 권한이 없는 사설 업체가 법률적인 업무를 대행하고 수수료를 받는 것은 불법이라고 판단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 1단독 이오영 판사는 초상권 대행업체인 S업체 대표 조 씨에게 변호사법을 위반한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하고 수익금 1억4000만원을 추징했다고 17일 밝혔다.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