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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전 탈북해 한국에 정착했던 청년이 지난달 헤엄쳐 개성으로 월북한 사건이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은 이런 일이 터지면 자신들을 향한 야릇한 눈길을 감내하며 한동안 숨을 죽이고 지낸다. 한국에는 정착에 성공한 탈북민도, 실패한 탈북민도 존재한다. 그러나 ‘성공적인 정착’이라는 잣대로만 탈북민을 보는 시선은 부족함이 있다. 이에 주성하 기자가 21세기 한반도에서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간첩 혐의 지난달 14일 인천의 모 처에서 지방에서 올라온 경찰 몇 명이 김예나 씨(가명·30)와 마주 앉았다. 김씨는 북한 보위성과 내통한 간첩 혐의로 수사를 받는 중이다. 전달 이미 경찰은 김씨를 불러내 휴대전화를 넘겨받은 뒤 디지털 포렌식 작업에 착수했다. 김 씨가 연락을 나눈 북한 보위성 사람은 그가 예전에 북송된 탈북민을 구출하기 위해 매수했던 사람이었다. 그 사실조차 아는 사람은 몇 명밖에 없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벌써 경찰의 귀에 들어갔다. 이것저것 물어보던 경찰들은 “위챗 대화 내용이 다 복구되면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떠났다. 8월 중순에 잡힌 다음 면담을 앞두고 김 씨는 간첩으로 몰려 감옥에 가야 하는 것이 아닌지 두려움에 잠겼다. 그는 지난해 10월 중국에서 가까스로 도망쳐 온 몸이었다. 그가 한국으로 탈출한 뒤 중국 정부는 그에게 입국 금지를 내렸다. 남편은 중국에, 자신은 한국에 남아 이산가족이 됐다. 이런 가운데 한국 경찰에게서 간첩 혐의로 조사까지 받게 된 것이다. 이젠 어디든 갈 곳이 없는 신세가 됐다.# 운명의 시작 김 씨는 2008년 18세 때 한국에 왔다. 가족이 없다보니 2년 정도 서울의 한 수녀원에서 살다가 대학에 갔다. 대학 3학년 때인 2013년 캐나다로 유학을 갔는데, 이때 캐나다로 유학을 온 중국 한족 남성을 운명의 짝으로 만났다. 둘은 2016년 결혼했고, 김 씨는 남편을 따라 중국 랴오닝(遼寧) 성 선양(瀋陽)으로 옮겨갔다. 남편은 큰 식당을 운영했고 그 집안은 최소 수백 억대의 재산을 가진 부자였다. 김 씨의 집에는 람보르기니, 벤츠 아우디 랜드로바 스포츠카 등 고급 외제차만 최소 5대가 있었다. 김 씨는 부자집 사모님이 됐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2016년 4월 수녀원에 지낼 때 알고 지냈던 한 탈북자 출신 목회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예나. 22세, 23세 되는 탈북 청년 두 명이 선양 근처에서 체포됐어. 얘들을 좀 꺼내줄 수 없을까.” 북송되면 그들이 어떤 일을 당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는 김 씨였다. 모르는 척 할 수 없었다. “제가 도와줄게요. 남편이 공안에 아는 사람이 있어요. 불쌍하잖아요. 꼭 살려낼게요.” 김 씨는 남편에게 말을 꺼냈다. “조선 청년들은 중국에 도망쳐 왔다 북송되면 감옥에 끌려가 목숨을 잃을 수 있어. 나는 한 동포라 모르는 척 할 수 없어. 당신이 좀 도와줘.” 눈물을 흘리는 아내의 간절한 호소에 남편이 움직였다. “그래, 내가 해볼게.” 남편이 두 청년의 소재를 수소문했지만, 불행하게도 이들은 북송된 뒤였다. 김 씨는 이들의 탈북을 주선한 브로커를 통해 북에 살고 있는 2명 중 한 청년의 어머니를 찾아냈다. 그리고 이들을 꺼내는데 쓰라고 2만 위안을 북에 보냈다. 한달쯤 지난 어느 날 밤. 김 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누나, 살려주세요. 누나 덕분에 감옥에서 나와 다시 탈북한 철민(가명)이와 영남(가명)이예요.” 김 씨는 한국의 브로커에게 연락했다. 브로커는 이들을 국경에서 선양까지 데려오려면 250만 원이 든다고 했다. “그 돈 제가 드릴게요.” 김 씨는 2명 몫으로 500만 원을 보냈다. 브로커가 움직여 철민과 영남은 선양에 왔다. 이곳에서 감옥 생활로 약해진 몸을 추스른 뒤 이들은 한국으로 떠났다. 3국까지 가는 비용으로 김씨는 다시 340만 원을 브로커에게 주었다. 김 씨의 도움으로 한국에 온 철민이와 영남이는 현재 경기 김포와 의정부에서 살고 있다.# 구출의 근거지이 사건 이후 탈북민의 처지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김 씨가 탈북 브로커들의 눈에 들어왔다. 이후부터 도와달라는 요구가 끝이 없었다. 그때마다 그는 만사를 제치고 도왔다. 탈북하면 국경에서 내륙 도시로 들어오는 길이 제일 위험하다. 곳곳에 공안 초소가 위치해 차들을 단속했다. 김 씨는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람보르기니를 끌고 양강도 혜산 맞은편인 지린(吉林) 성 창바이(長白)에 나가 탈북민들을 태우고 선양으로 왔다. 공안은 람보르기니는 감히 단속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렇게 창바이에서 선양까지 직접 탈북민을 데려온 것만 해도 3년 반 동안 20여 차례. 그의 식당에 숨었다 한국으로 떠난 탈북민은 300여명에 이른다. 그의 집과 식당 숙소는 언제부터인가 중국 내 탈북 루트의 중간 경유지가 됐다. 중국 감옥에 갇힌 탈북민도 남편을 움직여 7명이나 꺼내주었고, 억류돼 강제로 알몸 화상채팅을 당하는 탈북 여인도 구출한 적도 있었다. 김 씨는 단 한 푼의 돈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모아두었던 거액의 돈을 탈북민을 구출하는데 써버렸다. 돈이 모자라면 남편에게서 사정해 더 받아냈다. 남편이 부자이고, 김 씨 역시 큰 식당을 운영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탈북민 구출은 큰 위험을 동반한 일이기도 하다.# 공안에 끌려가다 지난해 5월 중국 공안 7명이 갑자기 들이닥쳐 식당에서 일하던 김 씨에게 다짜고짜 족쇄를 채워 끌고 갔다. “명호(가명)를 아나. 왜 도와줬나”라는 심문이 시작됐다. 얼마 전 한국으로 보냈던 명호가 일행 6명과 함께 3국으로 가다 공안에 체포된 것이다. 뒤늦게 뛰어온 남편 덕분에 다행히 김 씨는 무사히 풀려났다. “다시 한번 걸리면 더 봐주기 어려우니 이젠 손을 떼시오.” 자리를 나오기 전 아는 공안이 경고했다. 명호 일행은 중국 내 탈북 브로커들 중에서 악명이 자자한 강은아란 여자에게 걸려든 먹잇감이었다. 강은아는 중국 옌벤(延邊) 일대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보위부 스파이다. 한국에 온 적이 없는 북에서 온 여성인데, 브로커로 위장해 은신하며 거미처럼 먹이를 기다린다. 걸려든 탈북민이 한국에 돈을 대줄 가족이 있으면 일단 한국에 보낸다고 돈을 받는다. 돈을 받으면 내륙으로 이동하는 차에 태우지만, 이후 매수한 공안을 움직여 도중에 체포한 뒤 북송하게 만든다. 이 작업이 끝나면 다시 한국 가족에게 연락해 이들을 꺼낼 수 있다며 또 돈을 요구한다. 강은아는 이렇게 두 번 돈을 받아내고, 보위부 일도 돕는다고 했다. 지금까지도 그는 옌벤에서 이런 짓을 계속하는 중이다. 명호는 강은아가 지난해 선양까지 직접 데려와 김씨에게 넘겨준 탈북민이다. 강은아의 정체를 몰랐던 김 씨는 명호를 도와달라는 브로커의 부탁에 선뜻 12만 위안(약 2000만 원)을 강은아에게 선불로 주었다. 선양에서 명호를 넘겨받을 때 덧니가 유독 눈에 띄는 강은아의 얼굴을 김 씨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가 숨겨주었던 명호는 다른 도시로 이동하다 체포됐고 일행과 함께 북송됐다. 모든 게 강은아의 작전이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김 씨는 많은 돈을 뇌물로 보내 일행들을 꺼냈고, 그들을 중국까지 다시 빼왔다. 다행히 명호는 한국에 무사히 왔다. # 한국으로 탈출명호 사건으로 공안의 경고를 받은 뒤에도 김 씨는 탈북민 구출을 계속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끝내 큰 사건이 터졌다. 김 씨가 숙소에서 보호해 주고 보냈던 9명이 3국으로 가다가 체포된 것이다. 탈북 브로커들의 이권다툼이 원인이었다. 두 브로커가 각각 6명과 3명 그룹을 움직였는데, 이동 도중 브로커끼리 서로 상대가 자기 사람을 빼간다고 다툼이 벌어졌다. 브로커에게 탈북민은 돈이다. 분노한 이들은 서로를 공안에 신고했고, 이동하던 9명이 체포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공안에 끌려간 9명은 김 씨의 집에 숨어있었다고 자백했다. 그날 외출했다 집으로 돌아오던 김 씨는 집에 있던 외제차 중 탈북민 9명 이송에 사용했던 아우디 스포츠카와 랜드로바, 혼다 밴을 공안이 정확히 압수해 가는 장면을 보게 됐다. 아는 공안이 전화가 왔다. “이번에 잡히면 인신매매로 체포돼 5~7년 형을 받게 된다. 빨리 한국으로 도망가라.” 김 씨는 옷과 돈도 챙기지 못한 채 남편과 작별을 나누지 못하고 황급히 공항으로 나와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는 중국 입국이 금지됐다. 이렇게 돌아온 한국에서 누군가 또 김 씨를 북한 보위성 요원과 내통한다고 신고했다. 북송된 탈북민을 꺼내기 위해 뇌물을 주며 연락했던 적이 있던 사람이었다. 김 씨는 경찰의 조사를 받는 몸이 됐다.# 흙탕에 핀 연꽃 김 씨가 탈북민을 도왔던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탈북민 한 명을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브로커에게 지불하는 비용은 평균 1500만~2000만 원 정도였다. 브로커들은 이 돈을 먼저 온 탈북민 가족에게 받거나 교회 또는 미국의 인권단체 등에서 받는다. 이쪽저쪽에 구출대상자라고 사진을 보내 중복으로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김 씨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 온 탈북민만 300명이 넘는다. 이들을 한국에 무사히 대가로 여러 브로커들이 최소 45억~60억 원을 챙겼을 것으로 보인다. 이중 김 씨의 기여분이 어느 정도인지는 값을 매기기가 쉽지 않다. 그는 가장 위험한 구간인 창바이-선양 구간을 직접 외제차를 몰아 탈북민을 구해오고, 선양에 숨겨주었다. 김 씨 덕분에 브로커들은 막대한 돈을 써도 안전을 담보할 수 없었던 위험 구간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이곳을 통과하기 위해 써야 했을 돈은 고스란히 브로커의 이윤으로 남았다. 김 씨는 탈북민을 돕는 대가로 단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 오히려 그는 2억 원 넘는 돈을 썼고, 온갖 위험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나중에 브로커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런데 내 눈 앞에는 당장 위험한 고향 사람들이 있었고 도와주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제가 한 일은 후회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 일로 간첩으로 잡혀가진 않을런지….” 7월 어느 날 기자와 마주앉은 김 씨는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올해 30세. 한창 인생을 즐겨야 할 20대 젊은 나이에 중국에서 온갖 위험을 뚫고 담차게 탈북민을 돕던 그는 한국에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사를 쓰는 것뿐이에요.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안돼요. 남편과 시댁은 아직 제가 탈북민인 줄 몰라요.” 기자는 18년 동안 북한을 취재해 왔다. 탈북 브로커의 세계가 돈을 벌기 위해 온갖 협박과 고발, 사기 등이 어우러진 아수라의 진흙탕임도 잘 안다. 그런데 그 흙탕물에도 한 떨기 연꽃이 피어있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어렸을 때 북에서 ‘림꺽정’이란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 월북 작가 홍명희 소설에 기초해 1987∼89년 5부작으로 제작된 림꺽정은 당대 최고 배우들이 출연했고,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김정일의 지시로 림꺽정과 ‘안중근 이등박문 쏘다’라는 영화가 비공식적으로 상영이 금지됐다. 림꺽정은 온갖 가렴주구에 시달리던 민초의 반란을 다뤘고, 안중근은 수뇌 암살을 영웅적 행위로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4년 전쯤 북한은 과거에 만든 영화 10여 편을 시청 및 유포 금지 대상으로 공지했다. 대부분 외국 생활을 보여줬거나, 반란을 다뤘거나, 주요 배우가 숙청된 영화들이었다. 림꺽정은 주제가까지 금지 리스트에 올랐다. 림꺽정의 주제가를 들으면 누구라도 북한의 현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1절은 “구천에 사무쳤네 백성들의 원한소리/피눈물 고이었네 억울한 이 세상/산천아 말해다오 부모처자 빼앗기고/백성의 등뼈 갉는 이 세상 어이 살리”라고 시작된다. 3절 후렴은 “나서라 의형제여 악한 무리 쓸어내고/가슴에 쌓인 원한 장부답게 풀어보자”라고 대놓고 반항을 선동한다. 북한 당국이 두려워할 이유가 충분히 있는 영화와 노래인 셈이다. 그런데 강화도에서 건너다보이는, 림꺽정의 실제 활동 무대였던 황해남도 연안군 한 농장에서 지난해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발단은 군량미 수탈이었다. 각 농장에 할당한 군량미가 제대로 걷히지 않자 북한은 아예 군부대에 논밭을 나눠주고 직접 수확해 가져가도록 했다. 열심히 농사를 지었던 농민들은 가을에 다 여문 벼를 강제로 빼앗겼다. 연안군은 곡창지대지만, 아사 사건도 심심치 않게 나오는 곳이다. 산간지대 농촌은 산에 개인 텃밭이라도 몰래 일굴 수 있지만, 평야지대에는 개인 경작을 할 땅이 없는 상태다. 졸지에 한 해 수확물을 모두 빼앗긴 농민들은 분노했다. 이 중 한 개 분조 7명이 외통길(한 군데로만 난 길)에 드러누워 벼를 싣고 가는 군용차들을 막아섰다. 다 빼앗기면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우리를 깔고 지나가라는 것이었다. 영화 림꺽정도 농작물을 모두 빼앗겨 분노한 사람들이 수탈하러 나온 양반들을 죽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북한에서 당의 지시를 거부하고 군량미 제공에 반대해 실제 행동에 옮긴 것은 반정부 시위와 다름없는 심각한 정치적 반항이다. 놀랍게도 이들은 현장에서 체포되지 않았다. 오히려 농장 관리위원회 간부들이 나와 일을 잘 해결해 주겠다고 달래 농성을 풀었다. 이후에도 한동안 이들에 대한 처벌이 없어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수군거렸다. 그런데 진짜 이상한 일은 나중에 일어났다. 3월 초까지 불과 몇 달 사이에 군용차를 막았던 7명 모두가 앓다가 죽거나 객사한 것이다. 북한은 원래 부검이나 사인 공개 같은 것도 없는 곳이다. 내막을 아는 사람은 이들이 모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살해됐다고 믿고 있다. 죽은 이들이 워낙 주위의 주목을 받던 터라 소문도 빠르게 퍼졌다. 연안 사건은 최근 북한의 처형 방식이 새롭게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에 군법이 적용돼 2월 중순부터 4월 중순까지 700명 이상 처형됐는데, 이들도 공개처형이 아니라 비밀처형됐다. 북한 권력자들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공포심을 심어주는 공개처형을 선호했는데, 이제는 수법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는 북한 체제가 대중의 눈치를 볼 만큼 허약해졌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공개처형을 마구 하다가 처형자와 심정적 분노를 공유하는 군중 심리가 폭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비밀처형도 소문이 퍼지기 때문에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는 목적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공포를 주려는 의도를 넘어 진짜로 ‘불순분자’를 없애지 않으면 저항 정신을 누를 수 없기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 특히 북한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이 커지자 목격자와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한 것일 수도 있는데, 이 이유가 가장 타당해 보인다. 숙청, 비밀경찰, 공개처형, 비밀처형…. ‘인민의 천국’ 공산주의로 간다는 달콤한 유혹에 속았던 나라들에서 보았던 행태들이다. 그러나 동유럽과 소련(현 러시아)은 30년 전에 청산한 유혹의 대가를 북한은 너무도 오래, 잔인하게 치르고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코로나19 이후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음식뿐만 아니라 마시는 물도 수원지, 성분 등을 따져 깐깐하게 고르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이에 최근 오리온이 출시한 ‘오리온 제주용암수’가 ‘연수’ 위주의 국내 물 시장에 ‘경수’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개척하며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오리온 제주용암수는 6월 판매를 개시한 이후 한 달 만에 150만 병 판매를 돌파하는 등 반응이 뜨겁다. 물의 부드러운 정도인 경도는 물 속 칼슘과 마그네슘 함량으로 결정되는데 칼슘과 마그네슘에 각각 가중치를 둬 더한 값이 높을수록 경수에 가깝다. 물 1L에 녹아 있는 칼슘과 마그네슘을 기준으로 경도가 150mg 이상이면 경수로 보는데, 이에 맞는 대표적인 물이 오리온 제주용암수다. 오리온 제주용암수는 미네랄 부족을 겪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풍부한 미네랄을 제공하고, 세계적 명수와 경쟁할 수 있도록 미네랄 함량을 신체 밸런스에 맞춰 대폭 높인 것이 특징이다. 주요 미네랄 성분으로는 뼈 건강에 도움이 되는 칼슘이 1L 기준 62mg, 나트륨 배출로 체내 수분과 전해질 균형에 도움을 주는 칼륨이 22mg, 신경과 근육 기능 유지에 도움이 되는 마그네슘이 9mg 정도 포함돼 있다. 서구화된 식습관으로 인해 몸의 산성화를 겪고 있는 소비자들을 위해 수소이온농도(pH) 8.1∼8.9로 약알칼리화했다. 오리온 제주용암수는 출시 후 중국, 베트남 등 글로벌 시장 진출도 시작했다. 오리온 관계자는 “최근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늘며 오리온 제주용암수에 대한 국내외 반응 또한 뜨겁다”며 “미네랄이 함유된 오리온 제주용암수로 올여름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지난해 북한군 7·27사단 리종무 사단장(71)이 지병으로 쓰러졌다. 연말에 두 명이 후임 사단장 후보로 올랐다. 한 명은 김광민 여자축구팀 감독이었고, 그보다 더 유력한 후보는 7·27사단 당위원회 조직부 박시철 부원(지도원)이었다. 그가 현송월 노동당 부부장(43)의 남편이다. 갑자기 수군수군 말들이 퍼져갔다. “기껏해야 중좌(중령) 편제인 조직부 부원이 곧바로 중장이 맡고 있는 사단장에 오른다는 것이 말이 되냐. 아무리 현송월의 뒷배가 커도 체육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사단장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냐.” 부정적 여론 등으로 사단장 인사 처리가 지지부진해진 사이 리종무 중장이 치료를 받고 복귀했다. 사단장 인사는 없던 일이 됐다. 북한군 7·27사단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조직이다. 이는 인민무력성 소속 1군인 4·25체육단과 2군인 소백수체육단, 호위총국 소속 리명수체육단, 각 군단 체육단 등 북한 군부 체육단들을 총망라한 조직이다. 7·27사단장은 북한군의 체육상이라 할 수 있다. 리종무 사단장도 북한 최대 체육단인 4·25체육단장을 지내다가 2012년 장관급인 북한 체육상에 올랐고 2016년 7·27사단장으로 왔다. 북에선 7·27사단장이 인민무력상이나 총참모장, 총정치국장보다 더 선망받는 자리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북한 스포츠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다 보니 후방 공급 및 기자재 공급은 북한에서 최상이다. 달러와 육류를 많이 만질 수 있는 자리라는 뜻이다. 검열을 피해 부정 축재하기에도 안성맞춤이라 언제 숙청될지 모르는 장관보단 훨씬 안전하고 재물도 많이 모을 수 있다. 각종 대회 때마다 자유롭게 외국 구경도 할 수 있다. 최부일 노동당 군사부장은 과거 이곳 사단장을 지내다가 군 부총참모장으로 승진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 사단장 전용차 벤츠의 키를 가지고 달아났던 일도 있다. 국정원이 2015년 숙청됐다고 발표한 현영철 전 북한군 총참모장도 7·27사단장 자리를 무척 탐냈다. 그가 사단장이 됐다면 아직 살아 있을 것이다. 리종무 사단장은 유머러스한 언변술로 김정일과 고용희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사람이다. 그의 자리를 넘보던 사람들 모두 그 벽을 넘지 못했다. 유교사상이 팽배한 북한에서 현송월의 남편은 이번에도 출세 시도가 실패해 기가 크게 꺾였을 듯하다. 자신은 부원에 불과한 데 비해 아내는 김정은 체제 들어 모란봉악단장, 대좌, 노동당 후보위원, 노동당 부부장 등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현송월은 김정은과 어떤 사이일까. 한국의 대다수 사람들은 그가 김정은의 옛 애인이라고 알고 있다. 2015년 12월 현송월을 단장으로 하는 북-중 친선 공연단이 공연 3시간을 앞두고 전격 귀국하면서 이런 소문이 더 커졌다. 북에서도 현송월을 보는 시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 2017년 12월 현송월이 책임진 모란봉악단 지방순회공연 때에는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김씨 일가의 경호를 맡은 국가보위성 5총국이 호위를 담당했다. 김씨 일가 외 5총국의 경호를 받은 사람은 현송월이 유일하다. 이를 지켜본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김재룡 총리도 현송월 앞에선 꼼짝 못 하고 공손해졌다. 권력자의 귀에 누가 더 가까운지를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송월이 김정은의 옛 애인이라는 실체적인 증거는 없다. 일반인 남녀가 선을 넘어 비정상적으로 애정을 표현한다 하더라도 짐작만 할 뿐 둘의 관계를 단정하기 어렵다. 남녀의 문제는 둘이 입을 다물면 제삼자가 알 방법이 없다. 하물며 전국에 널린 김정은의 비밀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은 북에 거의 없다. 아니 알아도 말을 할 수 없다. 최근 현송월이 김정은의 아이를 낳았다는 말까지 나오지만 이건 더욱 증명할 수 없는 일이다. 본부인인 리설주가 낳은 셋째가 아들인지 딸인지도 모르는데, 현송월이 김정은의 아이를 낳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설령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이는 후계구도에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일이라 현송월조차 발설할 수 없는 비밀이다. 모든 상황을 차치하고 김정은이 현송월의 남편까지 챙길 생각은 없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마음만 먹으면 장성도 시켜줄 수 있었을 것이다. 현송월에 대한 김정은의 신임도 유효기간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지난달 21일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4차 확대회의에선 리병철 군수공업부장이 실권자로 급부상했다. 그는 북한 군부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최고 군사정책 결정기구인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 선출돼 김정은에 이어 군부 2인자가 됐다. 그동안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은 북한군의 3대 핵심 실세로 꼽히는 총정치국장, 총참모장, 인민무력상 중 한 명이 뽑혔다. 그런데 이번에는 군수공업부장인 리병철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리병철은 김정은과 맞담배를 피운 최초의 인물이다. 2016년 8월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 시험발사에 성공했을 때 노동신문은 둘이 맞담배를 피우는 사진뿐만 아니라 얼싸안고 환호하는 사진까지 실었다. 리병철은 어떻게 이런 신임을 받게 됐을까. 지난해 리병철과 그의 집안에 대한 흥미롭고 자세한 여러 정보를 입수했다. 그가 바로 리설주의 부친, 즉 김정은의 장인이라는 것이다. 정보원의 위치와 신뢰 관계 등을 감안했을 때 믿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지금까지 정보에 대한 복수 확인이 되지 않는 사이 리병철은 승승장구했다. 리설주의 집안은 외부에 거의 알려진 게 없다. 북한에선 리설주가 비행사의 딸이라는 소문만 퍼져 있을 뿐 더 자세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리병철은 혁명가 유자녀를 위해 세운 만경대혁명학원을 졸업하고 비행사가 됐으며 고위 당 간부의 딸과 결혼했다. 리설주가 어렸을 때부터 각종 대남행사에 동원된 것으로 미루어 ‘좋은 집안 출신’으로 추정했는데, 부친이 리병철이라면 진짜로 집안이 좋았던 셈이다. 국내 북한 인물자료엔 리병철의 경력이 1990년 북한군 2비행사단장일 때부터 기록돼 있다. 리설주는 1989년생으로 알려졌는데 이를 감안하면, 리병철이 비행연대장을 할 때 태어난 늦둥이 딸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 예술 분야에 정통한 다른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은은 은하수관현악단 가수인 리설주와 비밀동거를 했으며 2009년 둘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고 한다. 리설주는 그 당시 약 1년 동안 사라졌다가 이듬해 다시 악단에 복귀해 가수로 활동했다. 북한에선 1960년대부터 인기 연예인이 사라졌다 복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개 김씨 가문과 관련 있기 때문에 동료들은 짐작만 할 뿐 그 사연을 캐묻지 않는다. 김정일 사망 8개월 뒤인 2012년 7월 김정은이 리설주를 현지 시찰에 데리고 나올 때까지 둘의 관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공교롭게 이즈음부터 리병철도 승승장구했다. 그는 1992년에 중장이 됐지만 무려 16년 뒤인 2008년에야 상장 진급과 함께 공군사령관이 됐다. 상장이 되는 데 16년이 걸렸는데 대장은 2년 만인 2010년에 달았다. 2014년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 2019년 군수공업부 부장이 된 뒤 올해 군부에서 김정은 다음의 실세가 됐다. 군수공업부를 미사일이나 방사포를 생산하는 정도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 군수공업부는 수출입의 최우선권을 갖고 있다. 고양이뿔 빼고는 다 취급할 정도다. 리병철이 북한의 최고 돈줄을 꽉 잡고 있는 셈이다. 리병철에게 고난의 시기도 있었다. 지난해 10, 11월경 그는 중앙당 집중 검열을 받았다고 한다. 제거할 고위 인물은 집중 검열부터 받는 게 관례다. 다행히 리병철은 처벌은 받지 않았다. 그가 복귀한 뒤 김정은은 리설주와 함께 백두산에 올라 리명수 냇가에서 다정한 모습을 연출했다. 2017년 1월 국가보위성에서 조사받던 중 사망한 강기섭 고려항공 총국장은 리설주의 외삼촌이라고 한다. 즉 리병철과 강기섭은 매부 처남 사이인 셈이다. 이 사건은 김원홍 당시 국가보위상의 몰락을 불러왔다. 강기섭에게도 리설주와 친자매처럼 똑 닮은 딸이 있는데, 강기섭의 딸이 리설주보다 키가 좀 더 크다고 한다. 리병철이 김정은의 해외자금 은닉까지 관리한다는 정보도 있다. 지난해 집중 검열을 받았던 것 역시 김정은이 자기 돈을 리병철이 빼돌린다고 의심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지난달의 파격적인 승진으로 미루어 리병철은 확실한 재신임을 받은 듯하다. 최근 김여정과 리병철의 급부상을 보면, 김정은의 패밀리(가족) 의존도가 더욱 심해지는 분위기다. 김정은 집권 10년이 돼 가는데, 정작 믿을 사람은 없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으로 날아간 대북전단은 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은 3만5000명이 넘지만 이들 중 북에서 한국 삐라를 본 사람은 많지 않다. 삐라가 도달하는 범위가 대개 군사분계선 이북 수십 km에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북에서 이 지역에는 군인들이 많이 살고 민간인은 많지 않다. 반면 탈북자의 80% 이상은 삐라가 도달하지 못하는 함경도 지역 출신이다. 다만 북한 최전방에서 근무했다면 삐라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또 삐라를 경험하면 매우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삐라에 영향을 받고 귀순을 선택한 사례가 적잖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금강산 인근에서 북한군으로 근무하다 2016년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순한 강유 씨다. 그는 “삐라가 너무 많아 골라볼 정도였다”며 “삐라 외에 USB, MP3, 초코파이, 담배, 1달러 지폐 등도 산에 널려 있었다”고 기억했다. 이어 “북한에선 한국에서 보낸 삐라나 물자를 만지면 손이 썩는다고 선전해 처음엔 독이 빠졌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물속의 삐라만 보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호기심은 점차 확대돼 한국에서 보낸 USB를 몰래 보는 데 이르렀다. 삐라를 보면서 그의 생각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강 씨는 “김정은 일가를 비난하는 삐라는 믿지 않았지만 한국의 경제력을 보여주는 삐라에는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털어놨다. 특히 그는 USB에서 고려대에 다니는 탈북 청년의 이야기를 보면서 “저기는 열심히 노력하면 대학에도 가고 성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귀순 결심에 삐라의 영향이 50% 정도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개성 지역에서 군 복무를 하다 2012년 귀순한 정철민(가명) 씨도 비슷한 사례다. 그는 “김씨 일가 우상화를 비난하는 삐라를 봤을 때는 처음에는 화가 났고, 한국 군사력을 선전하는 삐라엔 영어가 많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한국의 경제력을 선전하는 삐라가 가장 인상 깊었다”며 귀순 결정에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했다. 북한 당국은 삐라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강원 통천에서 살았던 김주영(가명) 씨는 “1992년 여름 평양에서 살 때 김일성 생가가 있는 만경대 지역에 가로 15cm, 세로 3cm 정도의 종이에 ‘김정일 타도하라!’고 적힌 삐라가 살포돼 당국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이 사건으로 당시 평양 사람들은 모두 필체 검사를 받았다. 한국에서 보낸 것이 아니라 내부자의 소행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당국에 특히 비상이 걸린 것이었다. 그렇다면 북한은 삐라를 어떻게 처리할까. 강원 평강군 등 최전방 지역에서 198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15년 동안 ‘적위대부’ 소속 삐라 수거 전담 조직에서 활동했던 박선희(가명) 씨의 증언을 통해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한국에서 날아온 삐라와 물자는 ‘적지물자’로 불린다. 민가 주변에 떨어진 삐라는 일반인의 신고를 받고 전량 수거한다. 반면 깊은 산속에 떨어진 삐라는 전담 조직이 매일 차를 타고 가서 조별로 할당된 지역을 수색해 수거해 온다. 삐라 내용은 나체의 여인 사진이 제일 많았다. 젊은 병사들의 눈길을 끌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또 빌딩과 도로 등 한국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삐라가 많았다. 수거한 삐라는 하늘에서 살포된 것보다는 터지지 않은 채 뭉텅이로 떨어져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불에 잘 타지 않는 재질이어서 휘발유를 뿌려가며 태웠다. 삐라와 함께 볼펜, 라이터, 수첩, 여성 속옷 등도 날아왔는데 북한 당국은 USB를 열면 폭발하고 여성 속옷을 입으면 몸속에 벌레가 생긴다고 선전했다. 박 씨는 “한국의 볼펜을 주워 속심만 빼내 북한 볼펜 안에 넣고 썼는데 질이 너무 좋아 인상적이었고, 사탕이나 과자는 돼지를 주긴 했지만 사람은 먹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0년 넘게 삐라를 주웠지만 워낙 사상교육을 많이 받아 이에 동화되진 않았다”며 “다만 2008년 인천공항에 내려 서울로 들어오는 동안 함께 온 탈북자들은 감탄했지만 나는 너무 많이 봤던 풍경이라 무덤덤했다”고 전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으로 날아간 대북 전단은 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은 3만5000명이 넘지만 이들 중 북에서 한국 삐라를 본 사람은 많지 않다. 삐라가 도달하는 범위가 대개 군사분계선 이북 수십㎞ 정도에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북에서 이 지역에는 군인들이 많이 살고, 민간인은 많지 않다. 반면 탈북자의 80% 이상은 삐라가 도달하지 못하는 함경도 지역 출신이다. 다만 북한 최전방에서 근무했다면 삐라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또 삐라를 경험하면 매우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삐라에 영향을 받고 귀순을 선택한 사례가 적잖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금강산 인근에서 북한군으로 근무하다 2016년 분계선을 넘어 귀순한 강유 씨다. 그는 “삐라가 너무 많아 골라볼 정도였다”며 “삐라 외에 USB, MP3, 초코파이, 담배, 1달러 지폐 등도 산에 널려 있었다”고 기억했다. 이어 “북한에선 한국에서 보낸 삐라나 물자를 만지면 손이 썩는다고 선전해 처음엔 독이 빠졌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물 속의 삐라만 보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호기심은 점차 확대돼 한국에서 보낸 USB를 몰래 보는데 이르렀다. 삐라의 보면서 그의 생각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강 씨는 “김정은 일가를 비난하는 삐라는 믿지 않았지만 한국의 경제력을 보여주는 삐라에는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털어놨다. 특히 그는 USB에서 고려대에 다니는 탈북 청년의 이야기를 보면서 “저기는 열심히 노력하면 대학에도 가고 성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귀순 결심에 삐라의 영향은 50% 정도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개성 지역에서 군 복무를 하다 2012년 귀순한 정철민(가명) 씨도 비슷한 사례다. 그는 “김 씨 일가 우상화를 비난하는 삐라를 봤을 때는 처음에 화가 났고, 한국 군사력을 선전하는 삐라엔 영어가 많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한국의 경제력을 선전하는 삐라가 가장 인상 깊었다”며 귀순 결정에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했다. 북한 당국은 삐라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강원도 통천에서 살았던 김주영(가명) 씨는 “1992년 여름 평양에서 살 때 김일성 생가가 있는 만경대 지역에 가로 15㎝ 세로 3㎝ 정도의 종이에 ”김정일 타도하라!“고 적힌 삐라가 살포돼 당국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이 사건으로 당시 평양 사람들은 모두 필체 검사를 받았다. 한국에서 보낸 것이 아니라 내부자 소행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당국에 특히 비상이 걸린 것이었다. 그렇다면 북한은 삐라를 어떤 식으로 처리할까. 강원도 평강군 등 최전방 지역에서 198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15년 동안 ‘적위대부’ 소속 삐라 수거 전담 조직에서 활동했던 박선희(가명) 씨의 증언을 통해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한국에서 날아온 삐라와 물자를 ‘적지물자’로 볼린다. 민가 주변에 떨어진 삐라는 일반인들의 신고를 받고, 전량 수거된다. 반면 깊은 산속에 떨어진 삐라는 전담 조직이 매일 차를 타고 가서 조별로 할당된 지역을 수색해 수거해온다. 삐라 내용은 나체의 여인 사진이 제일 많았다. 젊은 병사들의 눈길을 끌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또 빌딩과 도로 등 한국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삐라가 많았다. 수거한 삐라는 하늘에서 살포된 것보다는 터지지 않은 채 뭉텅이로 떨어져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불에 잘 타지 않는 재질이어서 휘발유를 뿌려가며 태웠다. 삐라와 함께 볼펜, 라이터, 수첩, 여성 속옷 등도 날아왔는데, 북한 당국은 USB를 열면 폭발하고, 여성 속옷을 입으면 몸속에 벌레가 생긴다고 선전했다. 박 씨는 “한국의 볼펜을 주어 속심만 빼내 북한 볼펜 안에 넣고 썼는데 질이 너무 좋아 인상적이었고, 사탕이나 과자는 돼지를 주긴 했지만 사람은 먹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0년 넘게 삐라를 주었지만 워낙 사상교육을 많이 받아 이에 동화되진 않았다”며 “다만 2008년 인천공항에 내려 서울로 들어오는 동안 함께 온 탈북자들은 감탄했지만 나는 너무 많이 봤던 풍경이라 무덤덤했다”고 전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SPC삼립이 이커머스 ‘쿠팡’과 협업해 홈 델리 브랜드 ‘얌(YAAM!)’을 론칭했다고 24일 밝혔다. 얌(YAAM!)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표현하는 영문 감탄사 ‘YUMMY(아주 맛있는)’를 재치 있게 표현한 것으로, SPC삼립의 제품력과 쿠팡의 편의성이 접목된 온라인 전용 브랜드다. SPC삼립은 최근 온라인 식품 배송 시장의 성장과 브런치 문화 확산 등 서구화되어 가는 식문화 추세에 따라 ‘홈 델리’ 콘셉트의 간편식 제품을 개발하고 온라인 전략 부서를 신설해 쿠팡과 손을 잡았다. 얌(YAAM!) 브랜드 제품은 64겹 결이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는 ‘골든 패스츄리식빵’, 프랑스 정통 빵으로 고소한 보리의 풍미를 느낄 수 있는 ‘통검정보리 깜파뉴’, 토스트기와 에어프라이어로 간편한 조리가 가능한 ‘치아바타 샌드위치’ 등 베이커리 10종과 SPC그룹의 샐러드 브랜드 ‘피그인더가든’의 대표 메뉴 ‘파워보울 샐러드’ 등 샐러드 2종, 간편한 식사로 즐길 수 있는 ‘양송이 크림스프’와 ‘전복새우죽’ 등 죽, 수프 5종과 델리 제품 17종이다. 쿠팡의 신선식품 새벽, 당일배송 서비스인 ‘로켓프레시’로만 만나볼 수 있다. 제품 패키지는 시즐감을 강조한 제품 이미지를 삽입해 주목도를 높였고, 일부 제품은 패키지 겉면에 레시피를 넣어 소비자들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강한 바람은 높은 파도를 만든다. 하지만 바람이 불자마자 파도가 일진 않는다. 일정한 시차를 두고 높아지고, 바람이 멈춘 뒤에도 오랫동안 사그라지지 않는다. 파도가 갑자기 높아지면 배들이 침몰한다. 작고 낡은 배가 먼저 뒤집힌다. 세계 주가 대폭락이라는 강풍도 이와 비슷한 현상을 만든다. 그런데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흥미로운 양상이 나타났다. 주가 대폭락 1년 뒤쯤부터 허약한 독재국가들이 마치 태풍 만난 낡은 배처럼 뒤집어진 것이다. 21세기 들어 미국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대폭락이라 정의할 수 있는, 직전 고점 대비 35% 이상 하락한 사례는 세 번이다. 첫째는 2000년 1월 11,722.98을 기록했던 다우지수가 2002년 9월 7,591까지 하락했을 때다. 고점 대비 약 35% 빠졌다. 둘째는 2007년 10월 13,930을 찍었던 다우지수가 1년 4개월 뒤인 2009년 2월 7,062로 무려 49.5%나 떨어졌을 때다. 국제 금융 위기였다. 셋째는 올해 2월 13일 29,550을 기록했다가 40일 뒤인 3월 24일 18,576으로 고점 대비 약 37% 하락한 것이다. 이렇게 주가가 고점 대비 35% 이상 떨어지면 이듬해에 독재국가들이 도미노처럼 줄줄이 무너졌다. 2003년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의 붕괴는 미국의 침공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라크를 제외하고도 2003년부터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서 독재 정권들을 줄줄이 무너뜨린 ‘색깔 혁명’이 일어났다. 2003년 장미 혁명으로 그루지야(현 조지아)에서 11년 집권했던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가 축출됐다. 2004년엔 우크라이나 오렌지 혁명으로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2005년엔 튤립 혁명으로 키르기스스탄에서 15년간 장기 집권했던 아스카르 아카예프가 각각 권좌에서 밀려났다. 2009년 주가 대폭락이 벌어졌던 이듬해인 2010년 튀니지에서는 아랍의 봄이 시작돼 제인 벤 알리가 쫓겨났다. 이어 리비아에서 무아마르 알 카다피, 이집트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예멘에서 알리 압둘라 살레, 알제리에서 압델 아지즈 부테플리카, 수단에서 오마르 알 바시르가 줄줄이 무너졌다.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도 붕괴 직전까지 갔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대공황 수준의 주가 폭락이 오면 시차를 두고 실물경제에 충격이 간다. 이 충격을 가장 크게 받는 국가들은 선진국이 아니라 경제가 허약한 독재국가들이다. 다우지수가 하락하면 미국이 최대 피해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달러를 미국으로 뽑아가는 바람에 중남미,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가 더 큰 피해를 받는 이치를 떠올리면 된다. 가난한 청년의 분신이 도화선이 된 아랍의 봄처럼 붕괴된 독재국가들에선 경제 악화가 시위를 불렀다. 다우지수가 37% 이상 빠진 올해의 경우 엄청난 유동성에 힘입어 V자 반등에 성공한 듯 보이지만, 전 세계 실물경제는 이미 큰 타격을 입었다. 그렇다면 과거 사례에서 보듯이 이 충격이 내년부터 가장 허약한 독재국가들에 미칠 가능성이 높다. 현재 타격을 볼 가능성이 높은 독재국가로 이란과 북한, 투르크메니스탄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이 중 코로나와 원유 가격 하락으로 큰 피해를 본 이란이 가장 위험해 보인다. 북한 역시 강력한 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셀프 봉쇄로 급속히 허약해지고 있다. 명색이 국가인지라 내년까지는 충격을 버틴다고 해도 그 이후는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사례를 보면 소련이 멸망한 뒤 3, 4년 잘 버티다 1994년 하반기에 접어들며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사람들이 굶어죽기 시작했다.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통일부에서 ‘북한정세지수’란 것을 개발했다. 아마 내년에 이 지수의 위기 점수가 가장 높을 것으로 보인다. 21세기 들어 지금처럼 북한 내구력이 취약해졌거나 또 취약해질 것으로 예상된 적은 없다. 주가가 V자 반등에 성공해 내년까지 유지되면 김정은 체제는 훨씬 버티기 수월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올가을에 팬데믹이 다시 시작된다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충격파는 올 2분기와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라는 배가 그런 충격에도 전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말하긴 쉬워도, 막상 현실화되면 무서운 시나리오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도대체 김정은―김여정 남매는 왜 이럴까. 북한이 2018년 비핵화 대화 시작 후 전례 없는 초강경 대남 드라이브를 걸면서 한미 외교가에서 끊이지 않고 나오는 질문 중 하나다. 지난해에도 ‘삶은 소대가리’ 등 격한 표현의 ‘말 폭탄’은 있었지만 이번에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물리적으로 폭파하고, 9·19 군사합의를 깨는 군사 도발을 예고하고 나선 만큼 완전히 다른 판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군 총참모부가 17일 한국을 향해 “대적 군사행동 계획들을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비준에 제기할 것”이라고 하면서 국무위원장 겸 중앙군사위원장인 김정은이 직접 등장해 강도 높은 대남 압박을 펼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대남 메시지에 침묵했던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선다면 앞선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는 다른 차원의 메시지와 행동 강령을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세 번 회담을 갖고 서울 답방까지 동의했던 김 위원장, 그리고 이를 가장 옆에서 지켜본 여동생 김여정은 왜 이렇게까지 나오는 것일까.○ 가중된 제재로 위기에 놓인 경제난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다음 날인 17일 김여정이 내놓은 담화에서 문 대통령을 향한 원색적인 비난을 걷어내면 북한 수뇌부의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의 윤곽이 드러난다. “미국 눈치를 보면서 대북제재 완화나 해제 시도 등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여정은 문 대통령이 15일 “(제재와 관련해) 더디더라도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으며 나아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 “사대 의존의 본태가 여지없이 드러났다”고 일갈했다. 김여정이 직접 나서 문 대통령을 향해 제재 불만을 쏟아낸 것은 북한 경제난이 한층 심각해졌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분석이 많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북한의 대중무역 적자액은 2016년 5억5800만 달러였지만, 2017년 16억7700만 달러, 2018년 20억2200만 달러에 이어 지난해엔 23억7300만 달러로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그마저도 수출과 수입 모두 쪼그라들고 있다. IBK북한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4월 북한의 대중무역액은 수출 221만 달러, 수입 218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0% 수준이다. 이렇게 북한 경제난이 가중되는 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가 누적되면서 그 파괴력을 더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8월 6일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2371호는 북한에 경험해 보지 못한 ‘지옥’을 보여줬다. 이 제재로 북한은 석탄, 철과 같은 핵심 광물 자원의 수출이 막혀 가장 큰 달러원을 잃게 됐다. 지난해 12월 해외에 나와 있던 북한 근로자들도 전부 철수하는 수순을 밟은 것도 크다. 해외 북한 근로자들은 벌목공 등으로 일하면서 받은 월급 중 상당 부분을 달러는 물론 미국 재무부의 단속망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 루블화, 중국 위안화, 유로화 등으로 바꿔 전산 시스템이 아닌 외교 행낭을 통해 평양으로 보내왔다. 그런데 그 달러벌이를 위한 ‘일자리’ 자체가 끊긴 것이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조치로 북한이 올해 1월 말부터 국경을 폐쇄하면서 그나마 있던 물품 교역마저 급격히 위축된 상황이다. 윌리엄 브라운 미 조지타운대 교수는 “대북제재가 북한의 수출을 큰 폭으로 줄였다면, 코로나19는 수입을 급감시키는 역할을 했다”며 “최근 북한의 수입품은 주민들의 민생과 연결된 생필품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수출과 수입 모두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북한은 사실상 무역이 가장 없는 나라 중 하나가 됐다”고 밝혔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19일 전했다. 결국 이런 극심한 경제난은 통치자금 잔액을 ‘깡통계좌’로 만들면서 김정은 체제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북한 상품무역수지 적자는 지난해 23억6000만 달러, 2018년 20억 달러여서 북한의 외환보유액 규모(2018년 25억∼58억 달러)가 줄고 있다. 이 때문에 버락 오바마 정부 시기부터 본격화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트럼프 정부 내내 이어지면서 경제난으로 촉발된 대내적 위기가 본격화되자 상황 변화를 위해 ‘대남 때리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북한 경제는 제재와 코로나19로 인해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며 “코로나 때문에 늦긴 했지만 뭔가 하긴 해야겠고, 그러니까 제일 약한 고리인 한국을 공격하면서 제재 이슈를 만들어 나가려는 속셈”이라고 했다. 하지만 북한의 거센 대남 공격이 제재와 관련해 한미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이 17일(현지 시간) 북한에 대한 기존 경제제재를 1년 더 연장하며 북한을 “비상하고 특별한(unusual and extraordinary) 위협”으로 규정했다. 개성 연락사무소를 완파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문 대통령을 겨냥해 제재 불만을 쏟아낸 지 하루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 고삐를 틀어쥔 셈이다.○ 김정은 지도력 실추, 반전 노려2019년 3월 5일 오전 3시, 김정은 위원장이 탄 전용열차가 평양역 구내에 들어섰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베트남 하노이 회담을 위해 2월 23일 오후 4시 30분 평양역을 출발한 지 226시간 30분 만의 귀환이었다. 앞서 박태성 당 중앙위 부위원장은 김 위원장의 하노이행에 대해 2월 25일 노동신문 1면에 “애국애민, 애국헌신의 대장정”으로 치켜세웠지만 김 위원장은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열차역 플랫폼은 환영 인파로 가득했다. 북―베트남 회담 성과를 김 위원장의 치적으로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런 풍경과는 달리 김 위원장의 ‘하노이 노딜’의 충격은 한미 정보당국의 평가보다 심각했고 오래갔다. 김 위원장은 하노이에서 돌아오자마자 ‘흰쌀밥에 고깃국’을 언급한다. 그해 3월 6일 평양에서 열린 ‘제2차 전국 당 초급선전일꾼대회’에 보낸 서한에서다. 김정은은 서한에서 “전체 인민이 흰쌀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좋은 집에서 살게 하려는 것은 수령님(김일성)과 장군님(김정일)의 평생 염원”이라고 했다. ‘하노이 빅딜’을 기대했던 북한 주민들에게 김일성이 약속했던 ‘쌀밥에 고깃국’을 다시 언급하면서 ‘하노이 노딜’로 대북제재 중 일부가 해제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인민’들의 실망감을 줄이려고 나선 셈이다. 한 대북 소식통은 “일부 강경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이 하노이 북―미 회담에 나섰지만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돌아왔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무오류성’ 원칙에 결정적이면서도 공개적인 오점을 남긴 셈”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말까지 ‘크리스마스 선물’까지 거론하며 미국에 양보를 요구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선물’을 얻지 못했다. 그러자 별다른 선택지가 없는 김정은은 올해 초 다시 자력갱생을 강조하며 허리띠 졸라매기를 독려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2012년 김정은이 다시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일이 없다고 하면서 핵 개발에 집착했지만 결과는 경제난으로 돌아왔다”며 “모든 실패의 책임을 사실 김정은이 져야 하는 상황이지만 최고 존엄이 질 수는 없으니 그 책임을 한국에 돌리는 것”이라고 했다. 최근 김여정을 앞세우는 것도 김정은의 영도력 실추나 건강 이상과 연관이 돼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각에서 김여정을 북한의 후계자를 뜻하는 ‘당중앙’이라고 호칭하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는 상황. 이에 대해 또 다른 대북 전문가는 “김정은이 자신의 실정 책임을 스스로 한국에 돌리는 모습이 불편하니, 일단 김여정을 앞세웠다는 분석이 많다”고 했다. ○ 美대선 앞두고 워싱턴 관심 끌기이런 북한은 결국 미국 대선을 4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방식, 다시 말해 도발적 언행과 사무소 폭파와 같은 다분히 ‘북한식’ 이벤트로 국제사회에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낼 필요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선 정국에 돌입하면 미국 정계는 표심을 좌우하는 국내 문제에 집중하는 만큼 북한과 같은 골치 아프고 해결하기 어려운 해외 이슈들은 뒤로 돌리는 경향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평양이 이번 대남 강경 드라이브를 통해 워싱턴의 관심 돌리기에 본격 나섰다는 것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여정 담화를 보면 대북전단 문제에 대한 불만도 있지만 한미 태도 문제를 이야기한다”며 “답답한 국면에서 자기들이 아무것도 안 하면 존재감도 잊혀질 뿐 아니라 이 상태를 수용하고 수긍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세게 판을 흔들어서 상대가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반응하려고 하는 의도가 크다”고 했다. 앞서 북한은 워싱턴의 눈길을 잡아끌기 위해 폭파 이벤트를 자주 사용해왔다. 2008년 6월 27일 미국 대선을 4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한 게 대표적이다. 이는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대북 치적으로 비쳤고, 북한은 이미 효용이 다해 ‘깡통’으로 평가받기도 했던 냉각탑의 폭파 비용으로 미국으로부터 수십만 달러를 받으며 장사 수완을 보이기도 했다. 북한은 2018년 5월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며 비핵화 의지를 드러내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결국 이런 강력한 이미지는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첫 정상회담 성사로 이어졌다. 이번에 북한이 개성 연락사무소를 가공할 만한 폭발력으로 완파시킨 것도 결국 미국이 평양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드는 하나의 이벤트라는 것이다. 특히 미국 대선 전망이 한층 혼조세로 최근 들어선 것은 북한이 이런 도발 이벤트로 더 몸값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레드라인을 넘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비롯한 고강도 도발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평양의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고,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에게도 과거 오바마 대통령 때 부통령을 하면서 선보였던 ‘전략적 인내’와 같은 시간끌기용 대북정책을 향후에는 펴지 말라고 선제 경고장을 날린 것일 수도 있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북한은 상황을 의도적으로 최악으로 끌고 간 다음에 극적으로 대화 기조로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상당 기간 우리에겐 뼈아픈 고통의 시간이 될 것 같다”고 했다. 황인찬 hic@donga.com·주성하·손효주 기자}

하늘로 날아오른 대북전단 풍선들이 북한에 갈 확률은 얼마나 될까. 바람을 따져 보내도 20% 남짓이란 데이터가 있다. 한반도 상공의 편서풍 때문이다. 지상의 바람 방향과 상관없이 풍선이 1500m 이상 올라가면 편서풍의 영향을 받는다. 이 고도면 눈으론 풍선을 거의 볼 수 없다. 풍선이 편서풍 고도까지 도달하고, 제트기류까지 감안하면 2시간 이내에 동해에 간다. 가끔 풍선을 터뜨리는 타이머가 오작동해 남쪽에 삐라를 쏟기도 하고, 타이머가 고장 나면 일본 후쿠시마 쪽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북한에 전단을 보내려면 1500m 이상 올라가지 않게 해야 한다. 과거 대북전단 업무에 종사했던 사람의 말에 따르면 이는 상당한 기술이 요구되는 작업이며 북에 갔다고 해도 대다수가 분계선에서 수십 km 이상 올라가기 어렵다. 백령도에서 날리면 남포 정도까지는 간혹 가지만, 파주나 임진각에서 날린 풍선이 평양까지 갈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특정 날짜를 정해 기자들을 불러 이벤트성으로 날려 보내면 풍향에 대한 고려가 우선되지 않았기에 거의 가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비밀’이다. 대북전단 단체가 후원자의 신뢰를 쌓으려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한 위치정보 정도는 보여줘야 하는데, 데이터를 검증받는 장면은 본 적이 없다. 대북전단의 내용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일베 사진 합성 수준의 낯 뜨거운 내용이나 선교 전단도 많다. 황해도에서 전단을 봤다는 탈북자를 몇 명 만나보니 “자기들(전단을 살포한 탈북자들)은 남쪽으로 도망가 놓고 북에 있는 우리 보고 목숨 걸고 싸우라고 하니 오히려 화가 났다”는 반응들도 있었다. 김여정의 4일 담화문은 “5월 31일 ‘탈북자’라는 것들이 전연 일대에 기어 나와 수십만 장의 반공화국 삐라를 우리 측 지역으로 날려 보내는 망나니짓을 벌여놓은 데 대한 보도를 보았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날려 보냈다’가 아니라 ‘보도를 보고 알았다’는 식인데, 아마 31일에 날렸다는 전단은 보지 못한 듯한 뉘앙스다. 전단 살포가 하루 이틀도 아닌데, 북한이 지금 이를 문제 삼아 대남 강경정책으로 돌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내부적 원인과 문재인 대통령에게 쌓인 감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1월 23일자 칼럼 ‘보위성 재신임한 김정은, 공포통치 시작된다’에서 올해 북한의 행보를 예상했다. 사상 최강의 대북제재로 경제가 점점 파탄나자 북한은 민심을 통제하기 위해 지난해 말에 이미 공포통치 시나리오를 짰다. 보위성은 올해 상반기 간첩단 사건들을 조작해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려고 계획했다.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이 계획은 미뤄졌고, 간첩 대신 탈북자를 도마에 올리는 것으로 수정된 듯하다. 어차피 둘 다 군중대회를 열고 ‘타도하라’ ‘죽여라’를 외치는 것은 똑같다. 김정은은 후계자로 결정되자 탈북을 완전히 막겠다는 것을 첫 공약으로 내걸고 2009년 1월 김정일에게서 보위기관을 넘겨받았다. 최근 대남기관을 넘겨받은 김여정도 탈북자를 활용해 권력을 강화하고 있다. 전국에서 연일 진행되는 집회를 통해 김여정의 담화는 자연스럽게 최고 지도자의 교시처럼 부각되고 있다. 향후 북한 내부 상황의 악화를 김정은 혼자 감당하긴 버거워, 남매가 공동 플레이를 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 같다. 북한이 남쪽에 대한 기대를 접은 지는 오래다. 김정은은 작년 신년사에서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재작년 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했을 여러 약속의 이행을 기대한 듯하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작년 5월 쌀 5만 t을 제공하겠다고 밝혔을 뿐, 1년 반 가까이 움직이지 않았다. 북한이 원한 것은 쌀이 아니었다. 김정은은 배신감을 느낀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대해 북한이 ‘삶은 소대가리’를 운운하며 맹비난하던 즈음부터 북한의 대남 성명에는 감정적 분노가 서려 있었다. 움직이지 않으면서 현실성 없는 제안만 계속 던져 북한을 정치에 이용한다는 불만으로 읽혔다. 지금의 남북관계는 ‘전단 금지법’으로 풀 성격이 아니다. 또 이미 때도 놓쳤다. 현 정부 임기는 2년도 채 안 남았다. 북한이 미국 대선을 대비해 지금쯤 전략 수정을 준비할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남은 시간이 없다. 획기적인 발상이 없으면 남북관계는 계속 악화될 것이다. 다만 시간에 더 쫓기는 것이 북한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김정은 사망설이 퍼졌던 4월 우리는 잊고 있던 사실 하나를 떠올리게 됐다. 김정은이 갑자기 죽을 수도 있으며, 그럴 경우 현재 북한 권력을 계승할 사람이 김여정밖에 없다는 것이다. 남성우월주의 관념이 팽배한 사실상의 유교 국가 북한에서, 업적과 권력 기반이 취약한 김여정이 과연 권력을 오래 유지할 것인가에 대해선 당연히 의문부호가 붙는다. 그 의문에 해답을 찾으려면 후계 1순위 김여정에 대해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김여정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세력의 후원을 받는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남편은 누구인지 등 많은 것이 베일에 싸여 있다. 김여정이 1987년생으로 김정은보다 세 살 어리며 어린 시절 오빠들과 스위스에서 유학을 했다는 것은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1990년대 이야기일 뿐 스위스에서 돌아온 그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필자는 지난 10년 동안 김여정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정보를 모아왔다. 그중에는 김여정이 2009년부터 2011년 사이 김일성종합대 법률대학 특설반을 다녔다는 정보도 있다. 특설반은 정규 코스가 아닌 특별히 만든 학급을 의미한다. 정보에 따르면 원래 김일성대 법률대학엔 특설반이란 것이 없다. 유일하게 김여정을 위해 만들었다가 없앴다고 한다. 한 목격자에 따르면 당시 특설반은 약 20명의 젊은 여성들로 구성됐다. 북한에서 여학생들이 입는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고 다녔는데 항상 우르르 함께 등하교를 했다고 한다. 법률대학이 있는 김일성대 22층짜리 2호 청사는 내가 6년 동안 공부했던 건물이라 내부가 훤하다. 건물 안에는 여성 운전공이 늘 타고 있는 교수용 엘리베이터도 몇 대 있다. 특설반 학생들은 항상 교수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그들이 우르르 단체로 오면 운전공이 이미 타고 있던 머리 허연 교수들에게 “미안합니다. 다른 것 타셔야겠습니다”라고 말한다고 한다. 교수들도 눈치가 있으니 아무 말 없이 내리고, 20대 아가씨들이 거리낌 없이 그 엘리베이터에 탔다고 한다. 아마 그들 중에 김여정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나머지 여성들은 김여정의 신분을 감추는 역할을 하다가 지금은 보좌진이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 평양 장철구상업대에 경제학 특설반이 생겨났다. 이 역시 20대 여성 20여 명으로 반이 구성됐는데, 버스를 타고 함께 등하교를 했다고 한다. 정보를 종합하면 엄선된 김여정 또래 여성 40여 명이 두 팀으로 나누어 한 팀은 김일성대에서 법률을 배우고, 한 팀은 경제를 배웠다는 것이다. 김여정은 지금 이렇게 체계적으로 어렸을 때부터 함께 교육을 받은 젊은 여성 그룹의 보좌를 받을 수도 있다. 이들 여성은 김여정을 대신해 전국을 돌며 현실을 보고하고, 정보를 분석하고, 정책 작성에 참여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김여정은 법률대학 특설반에 입학했다는 2009년에 만 22세였다. 북한에선 만 18세에 대학에 간다. 김여정이 특설반 이전에 국내 또는 해외에서 다른 대학을 다녔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는 의미다. 김여정의 남편에 대해서도 추측이 난무한다. 평범한 군인 또는 경호원 출신이라는 설들도 있다. 하지만 북한이 김여정의 대학생활마저 철저히 관리하며 다니게 했다면 그런 그를 배우지 못한 평범한 군인에게 시집보냈을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같은 시기 김일성대 법률대학을 다녔던 사람에게서 흘러나온 말에 따르면, 김여정은 대학 재학 시절 연애하던 남성이 있었다고 한다. 법률대학에 다니는 얼굴이 칼칼하게(날카롭게) 생긴 제대군인이며 김여정이 집에 데리고 가 인사시켰다는 소문이 퍼졌다는 것이다. 물론 그가 지금 남편인지는 알 수 없고, 나아가 김여정이 대학 때 연애한 사실이 있었는지도 확신은 할 수 없다. 2018년 김여정이 서울에 왔을 때 임신했다는 추정도 있었지만 사실로 확정되진 않았다. 김여정의 파워는 점점 커지고 있다. 과거 오빠를 보좌하던 역할에서 이제는 북한의 핵심실세 조직인 조직지도부마저 거머쥐고 공동 통치를 하는 단계까지 이른 듯 보인다. 2일 순천 인비료공장 준공식에선 오빠와 박봉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과 나란히 앉아 달라진 위상을 드러냈다. 현지 시찰에 나선 김정은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질수록 우리는 김여정에게도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하이트진로가 지역사회 소외계층을 위한 나눔 활동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착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세상’이라는 구호 아래 2012년부터 사회공헌활동을 본격화해 왔다. 매년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에 사회복지기관의 저소득층 어린이, 홀몸·장애 어르신들을 위해 카네이션, 운동화, 다과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나눔 활동을 진행했다. 올해에는 총 18개 복지기관을 통해 장애인, 노인, 아동 등 이웃들에게 2000만 원 상당의 금액을 지역상품권으로 지원함으로써 나눔을 실천하고 ‘착한 소비자 캠페인’에도 동참했다. 이를 통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을 돕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가정의달 5월이 우리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달이 되길 희망한다”며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바란다”고 밝혔다. 하이트진로는 또 특별관리구역으로 지정된 대구경북 지역의 사회복지시설, 자가 격리자, 의료진, 취약계층 등을 위한 마스크 20만 장, 손세정제 6만 개, 생수와 블랙보리 총 31만9000병을 포함해 예방과 피해 복구를 위한 현금 등 총 12억 원을 지원했다. 전국적으로 확대 중인 ‘착한 임대인 운동’에 적극 동참해 회사가 소유해 소상공인에게 임대 중인 서울 부산 강원 전주 지역의 17개소에 대해 3월부터 6월까지 4개월간 임대료를 전액 면제해준다. 또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취약계층을 위해 생수와 간식을 긴급 제공하는 등 지원에 앞장서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서울 지역 쪽방촌 거주민과 서울역 ‘따스한 채움터’의 노숙인 등 2000명에게 생수 1만8000병과 백설기 2500개를 순차적으로 제공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김정은이 20일 동안 잠적한 사이 한국은 넘쳐나는 가짜 대북 정보로 몸살을 앓았다. 수술설, 뇌사설, 사망설 등 온갖 가능한 시나리오들이 쏟아졌다. 가짜 대북 정보가 이렇게 단기간에 많이 쏟아진 적은 없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원인은 크게 다섯 가지라고 본다. 첫째로 최근 대북 휴민트(내부 정보원) 시장은 극심한 가뭄이다. A급 정보는 고사하고 C급 정보도 얻기 어렵다. 정보에는 ‘양적인 변화가 축적되면 질적으로 변화한다’는 ‘양질 전환의 법칙’이 적용된다. 정보가 많을수록 이를 종합한 판단의 질이 높아지는 것이다. 강력한 대북제재로 지난해 12월까지 해외 북한 무역일꾼, 근로자 대다수가 귀국하면서 정보원들이 대거 사라졌다. 코로나19로 북한이 1월부터 국경까지 폐쇄하면서 출장자도 없다. 북한 내부 휴민트도 믿기 어렵다. 김정은 등장 이후 국경 봉쇄와 전파 감시가 매우 강화됐다. 한국과 통화하려면 수십 리를 걸어 휴대용 전파탐지기 출동이 어려운 산에 가야 한다. 북한 주민이 이런 위험과 수고를 아끼지 않고 하는 이유는 대개 돈을 위해서이다. 북한 내 탈북민 가족을 연결시켜 송금 수수료를 받거나 또는 정보를 보내 돈을 받는다. 이런 정보는 한국의 정보 수요를 파악해 자극적으로 가공됐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그 정보를 전달받는 사람까지 사익에 빠지면 가짜 뉴스가 된다. 대북 정보로 인지도를 얻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C급 정보마저 귀해지니 어쩌다 들으면 허겁지겁 터뜨리는 현상이 급증했다. 둘째로 신뢰하기 어려운 메신저들이 급격히 늘었다. 과거엔 기자들이 정보를 듣고 검증했고 오보에 책임도 져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 중요한 정보 소스였던 탈북민들이 유튜브를 개설해 저마다 북한 정보를 전한다. 기자보다 더 치열하게 서로 속보 경쟁을 펼치며, 방송사를 본뜬 대담프로도 만든다. 이들은 정보 전달 훈련도, 오보에 대한 책임도 없다. 유튜브 같은 개인 미디어 동영상 서비스와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도 책임 없는 1인 미디어 종사자를 급속히 늘렸다. 셋째로 편파적 대북 정보 수요층이 등장했다. 개인 미디어와 SNS 시장엔 팩트보다 ‘내 편이냐 아니냐’가 더 중요한 수십만 명의 구독자가 생겨났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나 세력을 비판하면 ‘내 편 미디어’가 된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와의 전쟁에 필요한 분노의 소재다. 의혹을 계속 제공해주는 사람이 스타가 된다. 이런 수요층을 향해 가짜 뉴스와 비판 메시지를 적당히 버무리면 편파적 수요층은 환호한다. 북한 뉴스는 이런 수요층의 관심도가 매우 높다. 대북 정책에 대한 견해를 통해 내 편인지 아닌지를 쉽고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사 ‘내 편’ 메신저가 말을 뒤집고 신뢰성에 의문이 생겨도 이들은 ‘박해받는 순교자’의 논리를 들이대며 오히려 “더 잘하자”고 격려하고 감싼다. 편파적 수요층은 김정은 잠적 기간 정부 발표를 신뢰한다는 유튜버에게 몰려가 ‘신고 테러’를 하기도 했다.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은 신고가 많은 유튜브 계정을 신뢰할 수 없는 계정으로 인지해 영상을 거의 노출시키지 않는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가짜가 뜨고 팩트가 가라앉는 것이다. 수십만 명의 세력이 수십억 명이 보는 서비스의 인공지능을 교란시킬 가능성도 있다. 넷째로 가짜 뉴스가 돈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유튜브가 그러한데, 진짜와 가짜 정보, 상대에 대한 비판까지 섞은 10분 남짓한 논평을 자극적 섬네일과 격앙된 목소리로 만들면 조회수가 크게 늘어난다. 100만 명이 보면 200만 원 정도 번다. 처벌도 사실상 없으니 얼굴에 철판만 깔면 쉽게 돈을 번다. 가짜 뉴스인 것이 드러나도, 얻는 이익이 잃는 이익보다 더 크게 되면 가짜 뉴스는 막지 못한다. 다섯째로 기성 언론도 조회수와 시청률에 매달려 정보력이나 신뢰성, 의도 등에 대한 검증이 소홀했다. 가짜 뉴스임이 밝혀져도 ‘인용’을 했다며 책임을 지려 하지 않으니 불신을 자초한 면이 있다. 가짜 뉴스를 없애긴 쉽지 않다. 미국 회사인 유튜브와 페이스북은 나 몰라라 하고, 정치인들은 점점 극단적 지지 계층에 의존해 선동 정치에 매달린다. 이러니 대북 정보 시장의 미래도 암울하다. 과연 해답이 나올 수 있을까.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김정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덕을 적잖게 보는 듯하다. 장기간 잠적으로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을 뿐만 아니라 내부 통제와 달러벌이까지 잘하고 있다. 북한은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사상 최강의 대북제재로 궁지에 몰려 있었다. 명색이 국가인데 지난해 수출액은 2억 달러도 안 됐다. 한 달 수출이 1700만 달러 수준으로 10년 전에 비해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해외에 파견된 노동자들이 철수하면서 큰 돈줄이 또 막혔다. 김정은은 이런 위기 상황을 공포 통치로 돌파하려 했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그는 올 상반기 여러 간첩 사건들을 조작한 뒤 여기저기서 공개 처형을 진행해 사회에 두려움을 심어주려고 계획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이 계획을 바꾸었다. 이달 3일 김정은은 “방역조치가 길어져 해이되는 상황을 막고, 모여서 생일놀이와 결혼식 등을 벌인 사람들을 적들과 내통한 자들로 여기고 가차 없이 처벌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렸다. 결혼식이나 생일잔치만 해도 간첩 취급을 한다는 뜻이다. 21일엔 전국 각지에 코로나19 검열단을 파견해 각 지역의 동태를 실시간 보고하게 했다. 방역 지침 위반으로 4월 중순까지 처형된 사람이 700명이 넘으며, 해임된 간부가 300명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이라면 굳이 간첩 사건을 조작할 필요가 없다. 김정은 잠적 와중인 19일과 20일 평양의 대형 상점인 ‘광복지구상업중심’에서 가구당 중국산 콩기름 5kg을 10달러에 판매했다. 이는 코로나19 발생으로 국경을 폐쇄하기 전 가격이다. 평양 사람들은 상점에 달려가 기름을 사는 데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사실 알고 보면 이 콩기름은 여러 돈주들에게서 약탈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지난달 말 김정은은 국가전략물자 수입 계획을 승인하면서, 1월 말부터 차단했던 북-중 국경을 살짝 열었다. 3월 착공한 평양종합병원 건설에 필요한 건재, 장비 부속품 등을 중국에서 들여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북한 사람들을 내보내지 않고 중국 화물 트럭으로 실어오라는 단서도 달았다. 중국 단둥에서 화물트럭 임대비는 4∼5배 뛰었다. 중국 기사도 북한에 들어갔다 나오면 보름 동안 격리돼야 하기 때문에 한 번 운행에 우리 돈으로 300만 원 정도 불렀다. 며칠 뒤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대의 운송 물량인 트럭 30대가 신의주 세관에 도착했다. 문제는 세관이 통보받은 수입량은 트럭 10대 분량인데, 무려 20대나 더 추가된 것이다. 세관은 상급기관인 국가보위성 세관총국에 보고했고, 정경택 국가보위상이 이를 김정은에게 보고했다. 보위성 반탐부국장이 현장에 나가 조사를 한 결과 13대는 평양시 무역업자들의 것이었고, 7대는 신의주시 무역업자들의 것이었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조사가 시작되자 숨었던 업자들은 3일 만에 전부 체포돼 군법으로 처벌받게 됐다. 35% 정도의 이윤을 바라고 위험을 무릅쓰고 수백만 달러어치의 콩기름과 설탕을 들여오려던 무역업자들은 돈도 목숨도 잃게 됐다. 이를 빼앗아 상점에 팔아 번 돈은 고스란히 김정은의 주머니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세관이 잠시 열린다는 정보는 어떻게 새 나갔을까. 김정은 측근에서 새 나갔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건이 한 번으로 끝났다면 무역업자를 낀 고위 간부의 일탈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수상한 점이 있다. 20일부터 평양에서 갑자기 사재기가 벌어졌다. 올해 말까지 무역을 일절 못 한다는 소문이 하루 사이 퍼지면서 상품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이 됐고, 주민들이 싸우면서 물건을 사는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그런데 며칠 뒤 유언비어를 유포시키고 물가를 올렸다는 죄명으로 여러 판매업자들이 잡혀갔다. 이제 이들이 갖고 있던 물자가 압류돼 시중에 팔리게 되면 그 돈은 또 김정은이 갖게 될 상황이다. 이쯤 되면 김정은이 코로나19 상황을 활용해 돈 있는 사람들을 약탈하고 있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현재 북한엔 코로나19 전용 격리시설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1월 말부터 50일간 여관 등에 격리됐던 1차 격리자들과 이들과 접촉한 뒤 25일간 자택 격리에 들어간 2차 격리자들도 모두 풀려났다. 그런데도 코로나19를 내세운 사회 통제는 전혀 약화될 기미가 없다. 김정은은 지금 자기에게 쏠린 세계의 시선을 느긋하게 즐기면서 어디엔가 숨어 상인들을 약탈할 새로운 꿍꿍이를 열심히 연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농심 백산수가 변하지 않는 물맛과 풍부한 미네랄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백산수는 백두산의 자연과 시간이 빚은 물이라는 점에서 타 생수와 차별된다. 백산수는 백두산에 내린 비와 눈이 수백만 년 동안 형성된 화산암반층을 따라 장시간 통과하면서 우리 몸에 유익한 각종 미네랄 성분을 머금은 물이다. 또 화산암반층이라는 거대한 천연 필터가 각종 불순물을 깨끗하게 걸렀다. 백두산의 풍부한 수량과 기온, 지질 등 천혜의 자연이 제 역할을 해 만들어낸 명작이라는 것이 농심의 설명이다. 이뿐만 아니다. 백산수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수원지에서 지층 압력에 의해 자연적으로 솟아 나오는 ‘자연용출수’다. 수맥이 섞일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연중 미네랄 수치가 기온에 관계없이 일정하며 계절에 따라 수질도 변하지 않는다. 물 전문가로 알려진 공주대 환경교육과 신호상 교수팀에 따르면 백산수는 국내서 판매되는 생수 중 마그네슘-칼슘 농도비(Mg/Ca)와 실리카 함량에서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았다. 생수는 칼슘 대비 마그네슘 비율이 1에 가까울수록 건강수로 분류된다. 백산수는 0.9 이상의 비율을 보이면서 일반 생수와 큰 차이를 보였다. 농심은 2006년에 백두산 원시림보호구역 내 내두천에서 모든 기준에 부합하는 최상의 수원지를 찾아냈다. 농심은 ‘세계 최고의 물을 세계 최고의 설비로’라는 철학 아래 백산수 공장에 세계 최고의 설비를 투자했다. 취수한 물을 안전하게 병에 담는 일이 좋은 수원지를 선택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여과 시스템만 거치고, 백두산의 물을 그대로 깨끗하게 담고자 했다. 혹시 모를 오염을 차단하기 위해 취수부터 생산, 물류, 출고까지 모든 과정에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다. 이런 노력 끝에 마침내 백산수는 시간이 갈수록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생수로 자리 잡고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어느 나라나 명목상의 권력 서열과 실질적 권력 서열은 다르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북한의 실질적 권력 서열을 꿰뚫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북한의 실질적 권력 서열은 정점의 김정은과 그 아래 ‘스리 우먼(이설주, 김여정, 현송월)’으로 시작된다. 이 4명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신(神)계의 왕족이라 보면 된다. 그렇다면 인간계 권력 서열 1위는 누구일까. 노동당 상무위원인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도, 박봉주 총리도 아니다. 바로 김평해 노동당 부위원장 겸 간부부장이었다. 북한에서 권력자를 찾으려면 인사권을 누가 쥐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김평해는 노동당 내각 보위성 보안성 중앙재판소 검찰소 무력성 총참모부 총정치국의 책임일꾼, 즉 중앙당 정치국에서 비준하는 간부 사업을 하는 책임자다. 가장 높은 레벨의 간부 임명을 맡고 있다. 김평해 밑의 부부장, 과장들이 그보다 한 단계 낮은 중앙당 비서국 비준 대상 간부 임명을 담당한다. 김평해는 모든 고위급 간부들의 해임, 임명, 조동 등을 김정은에게 건의하고 또 지시를 받는다. 김평해는 당정군의 모든 고위간부들의 재임 기간, 미배치 간부 등을 꿰고 있다가 김정은의 히스테리적인 인사 조치에 맞게 적합한 인물을 선발하여 건의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자랑했다. 중앙당에서 오래 일한 사람을 지방에 파견하거나 또는 그 반대의 순환 경력을 갖게 한다거나 또는 보안, 보위, 군의 당 사업 경력이 없는 간부들이 해당 경력을 갖추게 할 시점을 정한다거나 하는 등의 ‘경력과정안’도 그가 정한다. 간부 스펙 관리까지 하는 셈이다. 이런 인간계 권력 1위인 김평해가 지난해 12월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전격 해임됐다. 그리고 올해 초부터 ‘김평해 일당’ 숙청 작업이 시작됐다. 김정은 시대에 장성택 전 노동당 행정부장의 처형에 이어 두 번째로 꼽을 수 있는 대숙청이 시작된 것이다. 올해 2월 말에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이만건 노동당 조직지도부장과 박태덕 농업담당 부위원장이 해임된 사실은 한국 언론에서 크게 다뤘지만, 김평해는 언급이 거의 없다. 알고 보면 이만건과 박태덕 모두 김평해가 키운 사람들이다. 김평해는 1992년부터 2011년까지 20년 동안 평안북도 도당 조직비서, 책임비서를 역임했던 인물이다. 도당 책임비서는 노동당 비서와 동급의 고위직이다. 도당 책임비서가 가장 선호하는 지역이 평안북도다. 도 소재지인 신의주에 북한의 각 중앙기관 산하의 무역회사들이 밀집되어 있기 때문에 큰 명절 때마다 최소 수십만 달러를 뇌물로 받을 수 있다. 특히 김평해가 평안북도를 쥐고 있던 시기엔 폐철, 폐알루미늄, 구리, 철광석, 산림자원 등이 중국에 대거 팔려 나갈 때였다. 북한 무역일꾼들은 1995∼2005년을 외화벌이 황금기로 평가한다. 이런 시기에 ‘황금의 자리’에서 오래 버티기는 쉽지 않지만 김평해는 20년을 장기 집권했다. 이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처세술이 비상한지 알 수 있다. 당연히 김평해는 엄청난 재산을 축적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에게서 충신 중의 충신이란 조용한 감사 인사까지 받은 것을 보면 혼자 먹지 않고 많은 액수를 상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책임비서로 있을 때 둘째 아들은 신의주 시당 간부부장을 지냈는데, 사생활이 부화방탕하고 마약을 복용하는 등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부친이 김정일의 신임이 두터워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그도 결국 숙청이란 뻔한 말로를 피해갈 수 없었다. 김평해가 지난해 말 숙청되고, 올 2월에는 그가 키웠던 김능오 평양시당 위원장, 이학송 김일성고급당학교 교장 등 심복들이 모두 출당·철직됐다. 이학송은 김평해가 도당 위원장을 하던 시기 신의주 시당 위원장으로 있었던 사람이다. 평북 도당 위원장 자리가 황금계란이라면 신의주 시당 위원장은 황금계란의 노른자위라 할 수 있다. 평안북도를 연고로 김평해가 키웠고, 또 그가 숙청된 뒤 ‘김평해 일당’으로 몰려 함께 숙청된 북한 고위간부는 올해 1분기에만 5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은 김정일 시대 말기 간부들이기도 하다. 김평해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북한 권력의 가장 큰 세력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북한 간부들은 이를 보고 김정은 턱밑에선 누구도 온전히 살아남기 힘들다는 현실을 새삼 느끼고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김정은이 평양 인근의 자라공장 지배인을 새끼 자라를 죽였다는 이유로 처형한 일은 한국에 이미 잘 알려져 있다. 2015년 5월 19일 조선중앙통신은 ‘대동강자라공장’을 시찰한 김정은이 이런 말을 하며 격노했다고 전했다. “인민들에게 약재로만 쓰이던 자라를 먹일 수 있게 됐다며 기뻐하던 장군님의 눈물겨운 사연이 깃든 공장이 어떻게 이런 한심한 지경인지 말문이 막힌다. 전기 문제, 물 문제, 설비 문제가 걸려 생산을 정상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넋두리이다.” 조선중앙통신에는 이례적으로 ‘격하신 어조’ ‘격노’라는 표현이 3번이나 들어갔다.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는 2018년 발간한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김정은이 “지배인을 심하게 질책한 뒤 처형을 지시해 즉시 총살이 집행됐다”고 썼다. 5년이 지난 지금 당시 현장에서 이를 목격한 사람들의 입을 통해 보다 더 상세한 상황이 북한 고위층들 사이에서 널리 퍼지고 있다. 전언을 전하면 이렇다. 당시 김정은은 새끼 자라들이 거의 다 죽은 것을 보자 화를 내며 “야, 이 ×끼들아. 자라 다 죽을 동안 뭐 했냐”고 소리를 질렀다. 북한 매체들은 질책했다고 에둘러 표현하지만 김정일도 그렇고 김정은도 화가 나면 수시로 상욕을 퍼붓는다. 지배인이 황급히 나서 “전기가 없어 물을 끌어올 수 없고, 사료가 공급되지 않고 있다”고 변명하자 김정은이 “뭐라고 이 ×끼야. 어디 이런 ×끼가 다 있어” 하고 더 화를 냈다. 바로 그 순간 180cm가 넘는 거구의 김정은 호위병 두 명이 지배인 옆에 딱 붙어 서더니 양팔을 딱 붙잡고, 동시에 발로 무릎 관절을 차서 꿇어앉힌 뒤 팔꿈치로 뒷머리를 꽉 눌러버렸다. 지배인이 김정은 앞에 꿇어앉아 머리도 들지 못하고 말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상태의 지배인에게 김정은은 온갖 욕설을 다 퍼부은 뒤 “이런 ×끼는 살아 있을 자격이 없어”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호위병이 지배인을 질질 끌고 가 대기시켰던 승합차에 실었다. 김정은이 떠난 뒤 지배인은 즉각 총살됐다. 김정은이 살아 있을 자격이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목격한 간부들은 공포로 질려 버렸다. 사실 지배인 입장에선 정말 억울한 일이다. 전기와 사료를 자기가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국가에서 공급하지 않는데 맨손으로 자라를 키울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김정은 앞에서 변명했다는 이유로 죽었다. 이때부터 북한 간부들 속에선 김정은이 화가 났을 때 대처 요령이 생겨났다. 아무리 억울해도 절대 변명하면 안 된다. 김정은이 화가 났을 때 바로 무릎을 꿇고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지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죽기를 각오하고 집행하겠다”고 대답해야 그나마 살 확률이 높아진다. 2013년 5월 미림승마구락부 건설 도중 처형된 북한군 설계연구소장도 똑같은 방식으로 죽었다고 한다. 김정은이 “지붕이 왜 내가 그려준 그림과 반대로 향했냐”고 화를 내자 “겨울에 대동강에서 강풍이 불면 지붕이 날아갈 수 있어 방향을 바꾸었다”고 설명하려 한 것이다. 그러자 김정은이 “이 ×끼가 누구 맘대로 설계를 뜯어고쳐. 이런 놈 필요 없어”라고 화를 냈고, 호위병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꿇어앉게 한 뒤 김정은의 욕설이 다 끝나자 끌고 갔다. 다음 날 처형된 설계연구소장의 죄명은 ‘1호 행사 방해죄’였다. 끌려간 사람도 똑같은 방식으로 죽는 것은 아니다. 김정은이 “살아 있을 가치가 없는 놈” “숨 쉴 자격이 없는 놈” 하면 그나마 총살당해 시체라도 남긴다. 그러나 김정은이 “땅에 묻힐 자격도 없는 놈”이라고 하는 순간 고사기관총에 형체가 사라지거나, 화염방사기로 태우거나, 장갑차로 밀거나, 개에게 먹히거나 등 각종 방식으로 그 간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봉건 왕조에서도 신하는 왕에게 상소를 할 수 있었다. 직언을 했다고 신하를 바로 죽이는 일은 연산군과 같은 극히 몇몇 폭군 시대에나 있었다. 신하가 직언은 고사하고 변명을 좀 했다고 파리 목숨처럼 죽는 지금의 북한을 먼 훗날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 아울러 21세기 세습 왕조 ‘정은군’ 시대는 어떻게 막을 내렸다고 역사에 기록될지 궁금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2010년 6월 남아공 월드컵. 김정훈 감독이 이끄는 북한 축구대표팀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이후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에 참가했다. 김정훈 감독은 북한의 최고 스타가 됐다. 그는 대표팀 감독 재임 4년 동안 한국에도 여러 차례 경기하러 와서 남쪽에도 잘 알려져 있다. 우리에게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은 원정 사상 첫 16강의 쾌거를 이룬 대회로 기억된다. 당시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16강에 진출했지만 우루과이에 2 대 1로 패했다. 북한에 남아공 월드컵은 악몽 같은 패배의 기억이다. 첫 경기에서 북한은 브라질과 만나 접전을 펼쳤지만 2 대 1로 아깝게 패배했다. 그러자 평양이 흥분했다. 브라질과 거의 비등하게 싸울 정도면 두 번째 경기인 포르투갈전은 이길 수 있다고 착각했다. 김정은은 포르투갈전을 생중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잘만 하면 후계자의 위대한 ‘영도업적’으로 크게 부각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하지만 북한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앞세운 포르투갈에 7 대 0으로 비참하게 완패했다. 허무한 패배의 현장은 북한 안방에 그대로 전달됐다. 얼마나 충격이 컸는지 4·25체육단에 모여 응원하던 북한군 장성들 중에서 총참모부 종합계획국과 축지국의 소장(한국 준장) 두 명이 심장마비로 사망할 정도였다. 월드컵이 끝나고 한 달 뒤쯤 한국 언론과 외신들에는 김정훈 감독이 건설장에서 강제노동을 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그는 그해 11월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의 ‘감독의 밤’ 행사에 참가했다. 강제노동설은 지금도 북한 보도의 대표적 오보 사례로 조롱받고 있다. 그러나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이다. 당시 김 감독이 귀국 후 강제노동을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것도 그냥 건설장이 아니었다. 비행장에 내리는 즉시 체포돼 평안남도 회창군에 있는 북한군 노동교화연대에 끌려갔다. 김 감독의 원 소속팀인 4·25체육단은 군 소속이라, 형기를 받은 군인 죄수들이 수감돼 강제노동을 하는 곳에 간 것이다. 김정은의 지시는 아니었다. 그가 언제 분통을 터뜨릴지 몰라 수하의 아첨꾼들이 미리 손을 쓴 것이다. 당시 선수들은 다행히 1주일 동안 사상투쟁회의를 하는데 그쳤다. 그런데 김 감독이 강제노동을 한다는 뉴스가 나오자 8월 국제축구연맹(FIFA)은 북한에 해명을 요구했다. AFC도 11월 감독의 밤 행사에 그를 참가시킬 것을 지시했다. 문제가 커진 것이다. 북한은 부랴부랴 김 감독을 석방해 평양 낙랑구역 보위사령부 초대소에 데려다 빡빡 깎았던 머리를 기르게 하고, 몸 보양도 시키며 두 달 가까이 부산을 떤 끝에 11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를 AFC 행사에 출석시켰다. 해외에 나와 있던 북한 관계자들은 김 감독의 숙청설이 나오자 그가 원 소속팀인 4·25체육단 축구감독으로 돌아갔다고 해명했다.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석방된 김 감독은 4·25체육단의 2군 격인 소백수축구팀 감독으로 강등됐다. 이렇게라도 살아나는 듯했던 김 감독은 몇 달 뒤 아내와 딸까지 포함해 온 가족이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누구도 그의 생사를 아는 사람이 없다. 그가 왜 사라졌는지에 대해선 북한에서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김 감독이 사라진 이유는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출신인 아내 때문이었다. 아내는 역시 무용수 출신으로 김정일의 부인이자 김정은의 모친인 고용희와도 친분이 있었다. 축구 영웅으로 존경받던 남편이 월드컵 이후 하루아침에 죄수가 되자 아내는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구명운동을 시작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는 여러 간부들을 만나 고용희와의 친분까지 입에 올렸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당시 김정은은 모친의 출생지에 특히 민감하던 때였다. 백두혈통임을 과시하기 위해 외모마저 할아버지 김일성과 닮게 만드느라 노력했는데 모친이 ‘후지산 줄기’라는 것이 드러나면 큰일이었다. 생모를 언급하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었다. 김 감독과 가족은 어디로 끌려갔을까. 지방에 추방시켜도 소문이 퍼질 위험은 남아 있다. 그러니 처형은 면했다 해도 완전통제구역인 정치범수용소에 보내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때로부터 벌써 10년 가까이 지났다. 살아 있긴 할까. 44년 만에 북한을 월드컵 본선 무대로 이끌었던 김정훈 감독이 숙청된 뒤 북한 축구는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해 북한 소식통들을 통해 입수한 ‘처형’ 사례가 있다. 지금까지 입수한 사례는 3건이지만 더 있을 수도 있다. 북-중 관문인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지난달 16일 두 명이 총살됐다. 한 명은 압록강 철교 아래쪽 강성무역회사 전용 부두 담당 보위지도원이었다. 강성무역회사는 무연탄과 광물 밀수출 분야에선 최고 실적을 자랑하는 회사 중 하나로 전용 부두까지 갖고 있다. 이곳 국가보위성 소속 요원은 신의주에서도 끗발이 대단한 자리다. 그러나 코로나19 의심 증세 때문에 허망하게 총살됐다. 14일 그를 진단한 의사는 감염증 환자로 판단했다. 하지만 당시엔 믿을 수 있는 진단 키트가 평양밖에는 없었다. 환자를 평양에 보내야 했다. 그러나 이송에 앞서 취조가 시작됐다. 북한은 1월 22일부터 국경을 폐쇄했는데 23일 뒤인 2월 14일에 증세가 나타난 것이 이상했던 것이다. 취조를 하니 아닌 게 아니라 중국인과 접촉한 위법 행위가 적발됐다. 부두에 배가 많다 보니 밤에 몰래 중국에 가 밀무역을 하는 건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김정은은 2월 초 방역 규정 위반자에게 군법을 적용할 것을 지시했다. 보위지도원은 감염자로 찍힌 지 이틀 뒤인 16일 총살됐다. 감염이 의심됐기 때문이 아니라 김정은의 지시를 감히 우습게 봤다는 죄로 본보기 삼아 죽인 것이다. 같은 날 총살된 또 다른 사람은 평안북도 보안국(경찰청) 간부였다. 그는 2월 10일경 격리된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건물 출입을 막고 나선 요원들과 시비가 붙었다. 평소 몸에 밴 갑질 근성이 발로해 “너 따위가 나를 막느냐”며 행패를 부린 것이다. 이 간부는 현장에서 즉시 체포됐다. 당국은 도 보안국 성원들을 모이게 한 뒤 체포된 간부를 끌어내 견장을 뜯고 수갑을 채워 연행했다. 그 역시 김정은의 지시를 우습게 여겼다는 죄로 처형됐다. 방역 규율 위반자로 처형된 첫 사례는 지난달 초 북부 나선시에서 나왔다. 중국에 다녀와 격리됐던 무역일꾼이 몰래 대중목욕탕에 간 사실이 적발돼 곧바로 총살됐다. 운 좋게 총살형을 면한 간부도 있다. 평안북도 보위부 외사처장은 격리가 싫어 1월에 중국에 다녀온 사실을 보고하지 않고 숨겼다. 대좌(대령)급 간부인 그는 도 보위부에서 상위 5위 안에 드는 실세다. 그런데 그의 운전기사가 술에 취해 이 사실을 발설했다. 간부는 즉시 체포돼 신의주시 근처 협동농장 농장원으로 쫓겨났다. 그나마 처형을 면했으니 다행인지 모른다. 강성무역회사 보위지도원이 감염자로 의심된다는 보고는 문경덕 평북 도당위원장을 통해 김정은에게 곧바로 전달됐다. 김정은은 평양에서 유능한 의사 100명을 신의주로 파견하는 한편 신의주와 인근 동림군을 봉쇄할 것을 지시했다. 신의주 시당위원장은 통제를 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난달 15일 해임됐다. 북한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비상이 걸렸다는 보도는 1월부터 나왔다. 그러나 3월 초인 지금까지 북한에 감염자가 속출한다는 정보는 개인적으로 들은 바가 없다. 아무리 북한이 은폐의 달인이라 하더라도 여기저기 확진자가 잇따라 발생하면 완전히 숨기긴 어렵다. 물론 의심되는 사람을 족쳐 위법 행위를 실토 받고 바로 처형하니 진짜 감염자라면 병원을 찾아가 검사받으려 할까 싶긴 하다. 북한은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치사율이 떨어진다고 볼 수 없는 파라티푸스, 장티푸스, 콜레라가 주기적으로 퍼지는 곳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대개 전염병에 무덤덤하다. 특히 감기 정도 걸렸다고 약도 없는 병원에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북한에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져봐야 찾아내기도 어렵고, 진단도 어려울뿐더러 사람들이 크게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는 뜻이다. 북한에선 코로나바이러스 정도는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김정은은 대북 제재를 풀지 못한 창피스러움을 코로나 소동으로 두 달간 무마하고 사회 통제도 강화했다. 그러나 이제부터 사람들이 “코로나 환자가 없다면서 왜 아직까지 못살게 구느냐”고 불만을 가질 때다. 2일 김정은이 참관한 포사격과 3일 김여정의 원색적인 대남 담화는 그런 시각에서 봐야 한다. 코로나 통제로 지친 북한 인민들의 시선을 대남, 대미 도발로 돌릴 때가 온 듯싶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