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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노조는 성향에 따라 ‘반대’ ‘수용’이라는 엇갈린 반응을 내놓았다. 하지만 ‘숫자’만 고쳤을 뿐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피했고 기여율과 지급률을 각각 5년, 20년에 걸쳐 고치도록 강도를 완화했기 때문에 내부적으론 대체로 ‘선방했다’는 분위기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국회 공무원연금특별위원회에서 도출한 합의안 통과를 저지하겠다고 3일 밝혔다. 여야가 합의한 개혁안을 거부한 셈이다. 전공노 관계자는 “실무기구 합의안이나 기타 어떤 안에 대해 합의한 적이 없다”며 “연금특위에서 만든 공무원연금 개악안이 통과되면 총력 투쟁에 나서겠다”고 주장했다. 이충재 전공노 위원장은 “하위직 공무원의 연금은 최저생계비 수준밖에 안 될 정도로 너무 많은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면서도 “신규·재직 공무원을 분리하는 (구조)개혁을 막아냈다는 것만 해도 의미가 있다. 선방했다”고 평가했다. 반면에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은 우선 여야 합의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안영근 공노총 사무총장은 “세부적 합의 사항에 아쉬운 점은 있지만 당초 정부안보다는 양보를 받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내부적으로 공무원단체 간 합의 사항에 이견이 있지만 일부 강경파가 반대한다고 해서 (합의 사항을) 철회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조영달 dalsarang@donga.com·박성진 기자}

바이킹이 정점에 올랐다. 하체 이곳저곳이 시큰거린다. 여기저기서 기분 좋은 비명소리가 터져 나온다. 두 손을 들어 바람에 싣는다. 스트레스도 날려 보낸다. 배를 압박하고 있는 안전바가 안전을 지켜주고 있다. 무엇이 두렵겠는가. 그런데 갑자기 안전바가 풀린다면? 기분 좋은 공포는 두려운 현실이 될 것이다. 아찔한 상상은 실제로 일어났다. 올해 2월 20일 인천 중구 월미도 유원지 내 한 놀이시설에서 탑승객 추락 방지를 위해 채워진 바이킹의 안전바가 갑자기 풀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14명이 탄 바이킹은 안전바가 자동으로 풀린 뒤에도 2, 3차례 더 왕복한 뒤에야 멈췄다. 다행히 이용객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등 큰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6명이 기구에 부딪혀 타박상을 입었다. 안전을 책임지는 관리자는 현장에 없었다. 본보 취재진이 21일 찾은 인천 월미도 유원지에서는 여전히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월미도 유원지에서 놀이기구 사업을 하는 업체는 5곳. 바이킹, 디스코팡팡 등 70여 개의 놀이기구가 가동 중이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이용객이 안전벨트를 제대로 착용했는지 확인하는 직원은 없었다. 특히 가장 인기 있는 놀이기구 디스코팡팡은 제대로 된 안전장치도 없이 운행됐다. 빠르게 돌면서 탑승객을 튕겨내는 이 기구에서 사람들은 손잡이만 꽉 잡은 채 자리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기기를 작동시키는 ‘DJ’는 기계를 격렬하게 움직여 탑승객을 위험에 빠지게 할수록 구경꾼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흔들리는 힘을 이기지 못한 탑승객은 기구 중앙으로 굴러떨어졌다. 부산에서 친구들과 함께 월미도를 찾은 이모 씨(21·여)는 이 과정에서 손바닥이 까지고 무릎에 멍이 들었다. 이 씨는 “안전하게 스릴을 즐기기 위해 기구를 탔는데 타는 동안 너무 무서웠고 불안했다”며 “다시는 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영세한 규모의 유원시설업체가 난립하면서 시설 점검과 직원 교육이 적절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관광진흥법 재난안전관리기본법 등에 의해 지방자치단체의 관리·감독을 받는 전국의 놀이시설은 310여 곳. 업체들은 규모에 따라 매년 1번 이상 정기적으로 안전검사를 받고 매일 자체 검사를 해야 한다. 하지만 소규모 업체 중 자체 검사를 매일 하는 곳은 드물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소규모 놀이공원은 자체 검사에 소극적인 데다 정기적으로 직원들에게 안전교육을 실시하도록 강제하는 법규가 마련돼 있지 않아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근오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놀이기구 탑승자가 귀찮아 할 정도로 안전규정을 정확히 적용시키겠다는 원칙이 현장에 녹아들 수 있도록 세밀한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미끼 상품으로 내 건 단원 김홍도의 그림, 신라시대 반가사유상(사진)은 모두 가짜였다. 200억 원이 넘는 고미술품들이라며 손님을 유혹했다. 진품을 가려내는 유명 TV프로그램 감정위원들과 찍은 사진도 걸어 놨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골동품 경매 사무실을 차린 유모 씨(47)는 이런 식으로 자신을 고미술품 권위자로 둔갑시켰다. 방문객에겐 “저금리 시대에 미술품만 한 투자처도 없다”고 속였다. 주로 미술품을 잘 알지 못하는 강남 일대 주부가 범행 대상이었다. 유 씨는 피해자 13명에게 가짜 골동품 16점을 진품이라고 속여 개당 700만∼2000만 원을 받고 팔았다. 유 씨의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유 씨는 “위탁 판매를 맡겨 주면 되팔아 두 달 안에 20%의 수익금을 주겠다”며 팔았던 가짜 골동품과 판매 대금 2억500만 원까지 모두 가로챘다. 시간이 지나도 돈과 물품을 돌려받지 못하자 피해자들은 유 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유 씨가 갖고 있던 골동품 30여 점 중 100년 이상 됐지만 예술적 가치가 거의 없는 도자기 2점(시가 50만∼100만 원 상당)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짜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유 씨는 여전히 자신의 미술품이 진품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20일 유 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환전 청구금액의 10배인 싱가포르달러를 받아 간 뒤 돈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한 고객이 자신의 휴대전화에서 나온 싱가포르달러 사진으로 인해 궁지에 몰렸다. 정보기술(IT) 업체 대표 이모 씨(51)는 지난달 3일 서울 강남구의 한 은행에서 현금 486만 원을 6000싱가포르달러로 환전하는 과정에서 창구 직원이 실수로 주황색 100달러짜리 지폐 60장 대신 보라색 1000달러짜리 지폐 60장(6만 싱가포르달러)을 건네자 이를 가로챈 혐의(횡령)를 받고 있다. 당시 이 씨는 “은행에서 돈을 받은 뒤 액수를 확인하지 않고 가방에 넣어 1000달러짜리 지폐를 받았다는 것을 몰랐고 돈도 잃어버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씨가 싱가포르에서 사업을 하기 때문에 돈의 색상을 구분할 수 있었다고 본 은행은 이 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이 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삭제된 사진 및 동영상을 복원한 뒤 횡령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에 따르면 이 씨 휴대전화에 1000달러짜리 지폐가 봉투에 담긴 사진과 수십 장의 1000달러를 부챗살 모양으로 펼쳐 보이는 동영상이 있었다. 이 씨는 20일 “경찰이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22일쯤 구속영장실질심사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씨는 경찰이 증거로 제시한 지폐는 자신이 은행 측으로부터 받은 돈이 아니라 지인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씨는 “지난달 19일 싱가포르의 한 호텔에서 지인을 만나 그가 호텔방 개인금고에 보관하던 싱가포르 돈을 보고 호기심에 촬영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내가 환전 사건에 연루된 것이 기억나 (사진과 동영상을) 삭제했다. 돈이 담긴 봉투도 환전한 은행의 것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이 씨는 “명예 회복이 우선이라고 생각해 경찰 조사 내용을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한 것은 맞지만 영장 신청 여부 등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정윤철 trigger@donga.com·박성진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1주년인 16일 낮 12시 전남 진도 팽목항에 도착해 분향소에서 헌화와 분향을 하려 했다. 하지만 분향소 문 앞에 책상과 실종자 사진 패널들이 놓여 있어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이 박 대통령의 분향을 막기 위해 가져다놓은 물품이었다. 유가족 등은 노란색 바탕에 빨간색 글씨로 ‘진상규명 원천봉쇄 대통령령을 즉각 폐기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분향소 입구에 걸어 놨다. 박 대통령은 함께 간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과 전 해수부 장관인 이주영 새누리당 의원에게서 실종자들의 사연을 전해들은 뒤 발길을 돌렸다.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을 직접 만나 위로하려던 계획도 취소됐다. 박 대통령은 팽목항 방파제 앞에서 대국민 발표문을 읽은 뒤 20여 분 만에 상경했다. 박 대통령이 팽목항을 찾은 것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 당시 두 차례를 포함해 이번이 세 번째다. 박 대통령은 발표문에서 “갑자기 가족을 잃은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 아픔이 지워지지 않고 늘 가슴에 남아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도 제 삶을 통해 느껴왔다”며 부모를 흉탄에 잃은 자신의 경험을 들어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을 위로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가신 분들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그분들이 원하는 가족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고통에서 벗어나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은 박 대통령의 방문을 ‘보여주기 식 행보’라며 한목소리로 비난했다. 동생 권재근 씨와 조카 권혁규 군이 실종된 권오복 씨(61)는 “대통령이 1년이 지나도록 인양을 진지하게 준비하고 있다고만 한다”며 “하루빨리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만이 실종자 가족을 진정으로 위로하는 길이다”라고 말했다. 경기 안산시 단원고 2학년 실종자 허다윤 양의 아버지 허흥환 씨(51)도 “대통령이 진심으로 희생자 가족을 위로하고 싶었으면 안산 합동분향소를 찾았어야 했다”며 “생색내듯 가족들도 없는 팽목항을 찾은 대통령이 원망스럽다”고 밝혔다. 팽목항에 머물던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이 “관 주도의 정부 행사에 들러리 역할은 하지 않겠다”며 전남 목포 등으로 흩어진 가운데 임시 폐쇄된 분향소 앞에서는 가벼운 실랑이도 벌어졌다. 분향소를 찾아 숨진 여동생의 얼굴을 보려 했던 한 일반인 유가족은 “일부러 직장에 월차를 내고 왔는데 동생 얼굴도 보지 못하게 해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열린 추모행사에는 유 장관, 이낙연 전남도지사, 이동진 진도군수 등 추모객 2000여 명이 참석해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실종자 가족 중에서는 유일하게 이영숙 씨의 동생 이영호 씨(46)가 참석했다. 이 씨는 “대통령을 붙잡고 강력하게 세월호 인양을 요구하려고 했는데 희생자 가족들이 항의의 표시로 팽목항을 떠나 아쉽다”고 했다. 이날 일반인 추모객 500여 명이 팽목항을 찾았으며, 일부 추모객은 눈물을 쏟아냈다. 광주에서 온 조순례 씨(72·여)는 “세월호 참사를 TV로만 봤고 직접 이곳을 찾아온 것은 처음이다”라며 “자식을 둔 부모라면 누구나 느꼈을 고통을 현장에서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진도=박성진 psjin@donga.com / 이재명 기자}

계절이 4번 바뀌었다. 가슴은 무너졌는데 담담했다. 도무지 현실같지 않았다. 언제 철들까 싶던 곱디고운 딸의 얼굴은 희미해졌다. 애써 기억하려고 해야만 떠올랐다. 죄스럽다. 딸을 집어삼킨 바다를 다시 찾았다. 바다는 여전히 말이 없다. 진도의 벚꽃은 사람 속도 모르고 흐드러지게 피었다. 단장(斷腸)의 고통을 담은 비명 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았다. 시신을 뭍으로 옮기던 임시 선착장에서는 낚시질이 한창이었다. 따스한 봄바람에 나부끼는 색 바랜 노란 리본만이 그날을 기억하는 듯했다. 세월호 1주년을 앞둔 9일 경기 안산시 단원고 2학년 고 윤솔 양의 아버지 윤종기 씨(50)는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있었다. 지난해 4월 16일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별처럼 수놓던 조명탄 아래 있었다. 차디찬 바닷속에 딸을 두고 고깃배에 서 있었다. 힘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구조선들을 향해 제발 딸을 구해 달라고 소리치는 것뿐이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분노를 참기 위해 악착같이 깨물었던 아랫입술에서는 피가 터져 나왔다. 세월호에 타고 있던 476명 중 304명이 뭍으로 돌아오지 못한 그날 팽목항은 온갖 분노와 절규만이 가득했다. 딸은 사고 발생 22일 만인 지난해 5월 8일 돌아왔다. 팽목항에 마련돼 있던 시신안치소에서 딸을 만났다. 보고 싶었던 막내딸이었다. 흰 천으로 덮인 여학생의 이마에 난 상처를 보고 딸임을 알았다. 어렸을 때 계단에 부딪혀 난 상처였다. 차마 천을 내려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닮은 구석이 없어졌을까 봐 두려웠다. “나만 아빠 닮았으니까 나는 언제나 아빠 편”이라고 말하던 막내였다. 23일 동안 울지 않았다. 애써 참고 있었다. 울면 딸이 슬퍼할 것만 같았다. 딸을 보는 순간 맺혔던 눈물이 흘렀다. 살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막상 아이 몸이 차가우니까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공부 욕심이 많았던 딸이었다. 사는 것이 힘들어 여러 학원에 보내지는 못했다. 자기 방도 주지 못했다. 거실과 언니들 방을 옮겨 다니며 공부했다. 그래도 “우리 아빠 돈 많이 벌면 방 3개짜리 집으로 갈 거잖아”라며 미소 짓던 아이였다. 그런 딸이 대견스럽고 고마웠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아이라 아버지는 직업군인을 권했다. 딸은 경찰이 되고 싶어 했다. 경찰이 돼 24시간 위험에 노출될까 걱정됐다. 사고 이틀 전 딸과 마지막 저녁을 먹으면서도 딸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수학여행 가 있는 동안 제주도에서 많이 고민하고 결정할게요. 아빠.” 딸의 결정을 존중해주지 못한 것이 한(恨)이다. 말로는 고민하겠다고 했지만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겠는가. 아빠의 눈치를 살피며 고민하던 딸의 모습이 눈에 밟혀 숨이 막힌다. 일상이 두렵다. 딸은 아빠 밥을 좋아했다. 그런 딸을 위해 투박한 손으로 돈가스를 튀기고 계란도 말았다. 밥 때가 되면 여전히 막내딸의 밥을 그릇에 담는다. 아내는 조용히 눈물을 훔친다. ‘아차’ 싶다. 막내가 없다는 사실이 매번 새롭다. 남은 가족의 슬픔을 외면하고 계란말이를 막내의 밥공기에 얹는다. 비어 있는 자리를 향해 그래도 맛있게 먹으라고 속으로 되뇐다. 팽목항 등대 앞에 서서 한참동안 먼 바다를 바라봤다. 마지막으로 다시 딸을 집어삼킨 바다를 보며 기도했다. 1년이 지난 지금 가장 가슴 아픈 것은 막내의 친구들이 여전히 저 바닷속에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를 품에 안지 못한 부모의 고통을 감히 이해할 수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이 못난 아비가 막내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은 친구들을 고이 곁으로 보내주는 것이다. 대답 없는 파도를 향해 세월호가 인양되게 해달라고 소리쳤다. 그리운 딸에게 꼭 다시 보자고 인사하고 남은 가족들 품으로 돌아간다. “우리 예쁜 딸 솔아! 너무 보고 싶다. 아빠 자주 내려올게, 잘 있어!”진도=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그는 오늘도 백사장 위를 걸었다. 밀물에 떠밀려 와 해변 곳곳에 쌓인 쓰레기를 발끝으로 들췄다. 바위틈과 절벽 밑도 꼼꼼히 살폈다. 그날 이후 하루에 한 번씩 섬 주위를 거닌 지 벌써 1년째다. 지난해 11월 11일 정부는 세월호 실종자 수색 작업 종료를 선언했다. 하지만 전남 진도군 대마도 주민 김대열 씨(46·사진)는 수색을 끝내지 않았다. 끝낼 수 없었다. 미안함 때문이다. 김 씨는 사고 당일 대마도 주민과 함께 1t 어선을 몰고 바다로 나가 학생 20여 명을 구했다. 처절했던 구조 활동이 끝나고 남은 것은 죄책감뿐이었다. “여학생 하나가 엉엉 울면서 ‘삼촌. 친구들이 객실 안에 있어요. 저 유리창 좀 깨 주세요’라고 하는데 급하게 나오느라 배에 두꺼운 유리를 깰 만한 도구가 없었거든…” 유리창 너머로 살려 달라고 소리치는 학생들을 꺼내 주지 못한 것이 마음속 짐이 됐다. 사고 발생 보름쯤 지나 해경이 사고 해역에서 흘려보낸 부표가 대마도 해변으로 들어왔다. 파도에 실종자가 밀려온다면 대마도로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 씨는 부표를 발견한 날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섬 주위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구조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건네는 간절한 사죄였다. 실종자는 찾지 못했다. 유류품만 건졌다. 수학여행 가는 딸에게 부모가 선물했을 흰색 운동화 한 켤레, 아이들이 애타게 찾았을 ‘세월호’ 세 글자가 선명한 구명조끼 4벌을 찾았다. 김 씨는 ‘할머니 할아버지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적힌 생존 학생의 편지를 1년이 지나도록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있다. 편지를 보며 “애들 신발이라도 하나 더 건지면 죄스러운 마음이 좀 풀리려나…”라고 중얼거렸다. 이웃들에게도 그날의 기억은 선명하다. 마을 청년회장 김문욱 씨(49)는 “아직도 배 안에 갇혀 있던 얼굴이 선명한데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나”라고 말했다. 정면용 씨(49·여)도 “4월 16일이라는 날짜와 그날 아침 미역을 말리던 평상만 보면 불쌍한 학생들 생각이 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 “사고해역에서 돌아온 구조선… 세번째 배가 마지막일 줄이야” ▼‘응급진료 파견’ 김재혁 목포한국병원 과장앳된 소녀가 임시 진료소 안으로 들어왔다. “밖이 너무 추워서 그러는데 잠시 여기 앉아 있어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환자를 위해 마련해 둔 매트리스를 내줬다. 소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스마트폰을 꺼냈다. 소녀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어느 공원에서 활짝 웃고 있는 자매의 사진을 보고 있었다. 동생을 찾지 못한 언니의 슬픔은 아무 말이 없어도 금세 그리고 분명하게 전해졌다. 정신없이 환자를 돌보느라 알아차리지 못했던 감정이 순간 심장을 찔렀다. 왈칵 쏟아지려는 눈물을 애써 참았다. 김재혁 목포한국병원 응급의학과 과장(40·사진)은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9시경 응급실 당직을 서고 퇴근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동료 의사가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난이라고 생각하면서도 TV를 켰다. 커다란 배 한 척이 기울어진 채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재난에 대비하라는 보건복지부의 전화도 왔다. 현실이 아니길 바랐지만 그는 동료 의사 4명, 간호사 4명과 함께 팽목항으로 떠났다. 다행히 구조선이 들어오기 전 현장에 도착했다.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팽목항 대합실에 임시 진료소를 차렸다. 오전 11시 5분경 첫 번째 구조선이 도착했다. 중증 환자 10여 명과 경증 환자 37명이 있었다. 중증 환자는 대부분 심한 화상을 입었다. 오전 11시 25분경 2차 구조선이, 오후 1시 50분경 3차 구조선이 도착했다. 부상 정도가 심하지 않아 동거차도에 모여 있던 경증 환자 100여 명을 태운 배들이었다. 이 배가 마지막이었다. 부상을 입었을지언정 살아서 구조선을 타고 아이들이 돌아오면 빨리 치료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김 과장은 정부가 세월호 수색 종료를 선언한 지난해 11월까지 매주 하루씩 팽목항 의료지원시설에 파견돼 울다 지쳐 쓰러진 유족과 부상한 수색대원, 잠도 못 잔 봉사자를 돌봤다. “세월호는 그 시간 그 자리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에게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이죠. 다만 이 악몽이 우리 사회를 좀 더 안전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큰 교훈이 됐으면 해요.” ▼ “분노 털고 끌어안아준 그분들… 마음은 지금도 팽목항 그곳에” ▼‘217일간 가족지원 활동’ 주영로 경위그날 이후 죄인이 된 듯했다. 감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지 못했다. 쏟아지는 질책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세월호 참사 당일 전남 진도체육관에서 그는 갈 곳 잃은 가족들의 분노를 고스란히 받아 냈다. 팽목항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뚫고 조명탄은 쉴 새 없이 터졌다. 조명탄이 밝힌 어둠의 민낯은 공포 그 자체였다. 울부짖는 가족들의 얼굴이 사진처럼 뇌리에 박혔다. 처음으로 사람이 두려웠다. 지옥이 있다면 이곳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군산해양경비안전서 변산해양경비안전센터 주영로 경위(45·사진)는 지난해 4월 16일 팽목항에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일은 가족들의 불편을 해결하는 것. 전국 각지에서 진도로 파견된 해경 11명으로 이뤄진 ‘가족지원반’이 구성됐다. 그러나 죄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가족들은 곁을 내주지 않았다. 그저 닿을 수 없는 그림자처럼 가족들 곁을 지켰다. 쉴 수 있는 공간도 없었다. 가족지원반을 위한 이동식 가옥이 세워지기 전까지 93일 동안 차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그도 단원고 학생들 또래의 아들과 딸을 둔 아버지였지만 가족들의 분노와 아픔 모두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 두려웠지만 먼저 가족들에게 다가갔다. 가만히 넋두리를 들어 주고 사고 해역을 향해 108배 하는 가족들 옆에서 조용히 절했다. 사고 발생 100일이 지날 무렵 가족들은 그에게 마음을 열었다. 지친 가족들은 그를 “형님” 또는 “동생”이라고 불렀다. 까맣게 타 쩍쩍 갈라진 얼굴로 세월호 수습을 담당해왔던 범정부사고대책본부가 해체한 지난해 11월 18일까지 217일 동안 가족들의 곁을 지켰다. 그가 떠나던 날 가족들은 “그동안 너무 고생했고 감사하다”며 그를 꼭 끌어안아 줬다. 일상으로 돌아왔다지만 마음속 그의 시계는 여전히 1년 전에 머물러 있다. “아직도 시신을 찾지 못한 가족들이 있다는 현실에 마음이 무겁기만 해요. 몸은 이곳 격포 바다 앞에 있지만 마음은 아직도 팽목항에 있습니다.” ▼ “숨어 울던 아버지-빈소의 교복… 너무나 생생해 가슴 아려와” ▼‘50명 장례’ 안산제일장례식장 박일도 대표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수습된 단원고 희생자 시신이 목포로 옮겨져 신원 확인을 마치면 경기 안산의 장례식장에 안치됐다. 인근 시흥, 수원까지 희생자가 옮겨졌던 그때 안산제일장례식장 박일도 대표(60·사진)는 단원고 교사와 학생 50명의 장례를 치렀다. 참사 1주년을 이틀 앞둔 14일 그는 “배가 기울어진 TV 화면을 볼 때만 해도 당연히 모두 구조했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최혜정 선생님을 시작으로 장례식장에 밀려드는 시신에 참담했다”고 회상했다. 박 대표는 가족을 달래느라 빈소에서는 울지 못하고 건물 밖 어두운 곳에 숨어 몰래 흐느끼던 여러 아버지의 뒷모습이나 형제자매를 찾던 어린아이를 봤을 때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그는 “영정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하루 종일 오빠를 부르며 울던 초등학생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참사 후 1년이 지났지만 안전 의식이 아직도 제자리라고 지적했다. 그는 “변한 것은 거리를 가득 메웠던 노란 현수막이 줄어들었다는 점뿐이다”라며 “사고 직후에는 어른들이 ‘미안하다,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달라진 게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세월호 참사는 그의 인생관을 바꿔 놓았다. 지난해 5월에는 학생들의 장례 수익금 중 5000만 원을 단원고에 기부했다. 빈소에 놓였던 단원고 교복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그는 지난해 12월에는 중학교에 진학하는 초등학생 50명을 위해 교복 값으로 1000만 원을 기부했다. 올해는 수혜자를 늘려 100명에게 기부할 예정이다. 장례 절차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박 대표는 불면증에 시달리다 얼마 전부터 약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가족들 얼굴이 떠올라 견디기 힘들었다”는 박 대표는 “참사로 떠난 학생들을 안타까워하다 아예 일을 그만 둔 직원도 많다”고 전했다. 그는 “옆에서 지켜보기만 한 우리도 힘들 정도인데, 자식 잃은 부모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세월호 참사를 겪은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추모 가사를 썼다. ‘오! 필승 코리아’, ‘서시’, ‘말리꽃’ 등의 노래를 만든 작곡가 이근상 씨가 곡을 붙인 이 추모곡은 음원으로 발매될 예정이다.천호성 thousand@donga.com·박성진·최혜령 기자}

짝 잃은 흰색 운동화, 군데군데 흙이 묻은 검은색 트레이닝복 하의, 연두색 여행용 가방, 분홍색 화장품 파우치, 누렇게 변해버린 흰색 속옷, 구겨진 남색 야구 모자….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년. 사람만 떠난 이들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다. 전남 진도군청 주차장 한쪽에는 1년이 지나도록 주인을 찾지 못한 물품이 쌓여 있다. 세월호 탑승객의 유류품이다. 진도군이 보관하고 있는 유류품은 총 1162점. 가방 118점, 의류 244점, 잡화 295점, 신발 320점, 모자 37점 등이다. 진도군은 유실물법 제16조(인터넷을 통한 유실물 정보 제공)에 따라 지난해 12월 29일부터 해경으로부터 인계받은 유류품 정보를 군청 사이트에 게시하고 있다. 공고 기간은 올해 6월 30일까지로 6개월이다. 세월호 참사 1주년을 이틀 앞둔 14일까지 유류품을 찾아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찾아가는 사람이 없으면 이를 발견한 사람에게 소유권이 주어진다. 하지만 습득자가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으면 추가로 3개월 동안 보관하고 이 기간이 끝나면 국고로 귀속시킨다. 진도군은 유류품이 국고로 귀속되면 세월호 추모사업과 연계해 기념관에 전시하거나 교육 목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주인을 찾지 못한 물품들은 진도군청 사이트(www.jindo.go.kr)와 경기 안산 합동분향소에 있는 유류품 사진첩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진도=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가족을 찾아야 했다. 못 본 지 1년이 다 되었단다. 정말 1년이 지나간 게 맞는지도 확실치 않다. “1년 지났다는 게 그렇게 중요해서 찾아오는 건가? 아직 가족이 바닷속에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게 중요하지….” 이들은 사고 발생 364일째인 14일까지 여전히 악몽 같은 ‘2014년 4월 16일’을 살고 있다. 전남 진도군 진도실내체육관에서 하염없이 가족을 기다리던 세월호의 마지막 실종자 9명의 8가족(실종자 권재근 씨, 권혁규 군은 부자 관계)은 지난해 11월 11일 세월호 수중수색 종료 후 대부분 진도를 떠났다. 단원고 실종자 허다윤 양(당시 17세) 부친 허흥환 씨(51) 부부 등 일부 실종자 가족은 서울 광화문광장과 국회 앞에서 실종자 수색 및 세월호 선체 인양을 호소한다. 오랜 기다림 탓에 병을 얻은 일부 가족은 안산에서, 또는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 심신을 추스르며 조용히 수습 소식을 기다린다. 동생과 조카를 한꺼번에 잃은 권오복 씨(61)는 진도군 팽목항에 남아 매일 소주와 함께 밤바다를 바라본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에 트라우마를 남겼다. 침몰이 가져온 ‘슬픔과 분노’는 1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사람들 마음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참사를 계기로 사회 각계 저명인사들은 변화를 이야기했고, 개인의 가치관이나 습관은 조금씩 바뀌었다. 하지만 이를 사회적 변화로 발전시키기에는 반복된 정쟁과 갈등으로 인한 ‘불신’에 발목 잡히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비통함을 넘어 치유와 발전으로 가지 못하면 대한민국도 침몰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최혜령 herstory@donga.com·김도형 / 진도=박성진 기자}

아이를 바닷속에 묻어둔 엄마는 말이 없었다. 따뜻했던 어느 봄날 흐드러지게 핀 벚꽃 아래 남편과 딸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 담긴 사진만 연신 쓰다듬었다. 세월호 1주년을 앞둔 12일 오전 경기 안산 단원고 2학년 실종자 허다윤 양의 어머니 박은미 씨(45)는 전남 진도군 팽목항 등대 앞에 있었다. 분향소에 조문 온 사람, 관광객, 세월호 유가족 및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서 그저 딸의 사진이 붙어 있는 노란색 스티로폼 피켓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었다.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바닷바람을 견뎠다. 엄마는 “제발 유가족이라도 됐으면 좋겠다”며 “곱던 딸이 사라진 지 1년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 엄마라서 너무 미안하다”고 말하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세월호 1주년을 앞두고 팽목항에 사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11일에는 세월호 일반인 유가족 60여 명과 4·16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 14명이 팽목항과 사고 해역을 찾았다. 일반인 유가족들은 당시 사고 해역에서 수습된 시신들이 육지로 옮겨지던 팽목항 임시 선착장에 상을 차리고 제사를 지냈다. 준비한 사과, 배, 밤, 대추 등 과일들과 부침개, 나물, 말린 생선포, 표고전, 육전 등을 올렸다. 애써 울음 참는 소리, 낮은 탄식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제사를 지낸 가족들은 해경 경비정 4척에 나눠 타고 사고 해역으로 향했다. 대화는 없었다. 눈에 눈물은 고였지만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약속이나 한 듯 눈은 사고 해역 쪽을 향했다. 사고 해역에 도착한 경비정들은 침몰해 보이지 않는 세월호의 위치를 표시한 노란색 부표 주변을 10여 분간 선회하기 시작했다. 애써 침묵을 지키던 가족들은 “아이고 왜 여기서 죽었냐. 나는 네가 보고 싶고 가슴이 아파 죽겠는데…”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해. 못해줘서 미안해”라며 부표를 향해 국화꽃을 던졌다. 사고 발생 6일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정원재 씨의 아내 김봉희 씨(58)도 이제는 볼 수 없는 남편에게 “며느리 출산 예정일이 16일이야. 당신이 당신 대신 손주를 보내준 것 같은데 얼굴이라도 좀 보고 가지…”라며 오열했다. 이날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사고 해역 방문에는 부모와 형을 잃고 홀로 구조된 조요셉 군(8)도 함께 했다. 아이는 슬픔을 알지 못했다. “작년에 탔던 배 이름이 뭐지?”라고 묻는 삼촌의 물음에 민망한 듯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슬퍼하는 어른들 사이에서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이석태 위원장을 비롯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들도 이날 팽목항과 사고 해역을 잇달아 찾았다. 한편 단원고 교사 10여 명도 이날 팽목항에 마련된 가족지원시설을 찾았다. 이들은 분향소를 찾아 묵념하고 희생자 가족들에게 사골 4박스와 잡곡 2박스 등을 전해주고 조용히 진도를 떠났다.진도=박성진 psjin@donga.com / 천호성 기자}
고급 외제차 등 가족이 소유한 차량 5대를 이용해 일부러 사고를 낸 뒤 1억 5000여만 원의 보험금을 가로챈 가족 사기단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강동경찰서는 병원 관계자들과 짜고 허위로 보험금을 타낸 이모 씨(48)의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아내 유모 씨(45·여)와 아들(26)은 사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30일 밝혔다. 경찰은 이들을 입원시키고 허위 진단서를 끊어준 경기 광주의 한 병원 의사 유모 씨(61)와 사무장 박모 씨(48)도 사기 방조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 등은 2009년 8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서울과 경기 광주 일대에서 이 씨 소유의 차량 5대를 돌려 사용하며 고의로 교통사고를 냈다. 도로 경계석 등을 들이받거나 후진하는 차량의 뒷바퀴에 다리를 들이미는 수법을 썼다. 사고는 대체로 범퍼가 찌그러지는 수준이었다. 경미한 사고를 당한 이 씨 등은 월급을 받으며 병원에서 일하던 유 씨를 포섭해 전치 2~3주의 진단서를 발급 받아 허위 입원해 보험금을 타냈다. 병원의 실제 주인이었던 박 씨도 이를 묵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 등은 이러한 수법으로 총 24차례에 걸쳐 보험금 1억 5630만 원을 가로챘다. 경찰 관계자는 “이 씨가 상당한 재력가임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범행을 상습적으로 저질렀다”며 “특히 이 씨의 아들은 아버지의 범행 수법을 배워 그대로 따라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박성진 기자psjin@donga.com}
서울 강남의 한 모텔에서 성매수를 하다 현장에서 경찰에 붙잡힌 감사원 공무원들이 1차 술자리인 고급 요정에서 한국전력공사 관계자들과 동석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한전 관계자들이 감사원 공무원들에게 고가의 저녁 식사와 성접대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25일 경찰에 따르면 한전 김모 차장과 한전 계열사인 한전병원 주모 부장은 19일 감사원 감찰담당관실 김모 과장(4급), 김모 사무관(5급)과 함께 요정 형태로 운영되는 강남구 D한정식집에서 만났다. 주 부장은 과거 한전 감사실에 근무하면서 감사원 감찰부서 직원들과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 공무원들은 저녁식사 가격이 한 명당 최소 40만 원에 이르는 이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뒤 여종업원 2명을 인근 모텔에서 만나 성매매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감사원 공무원들은 여성가족부와 합동 단속에 나선 경찰에 적발돼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경찰은 한전 직원들이 접대 명목으로 감사원 공무원들의 저녁 식사와 성매매 비용을 치렀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식당 예약자가 한전 직원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과 별도로 내부 조사를 실시한 한전 측은 “우리 직원 2명이 감사원 직원들과 사건 당일 동석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식사만 함께했고 성매매 현장에는 같이 가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식사 자리에 동석한 한전 직원들을 소환해 모임의 의도를 확인하고 식사비를 지불한 주체가 누구인지 등을 파악할 것으로 보인다. 한전 직원들은 “주 부장의 승진을 축하하기 위해 만난 자리였다. 저녁 식사만 함께했을 뿐이며 식사비용도 십시일반 냈기 때문에 대가성은 없다”며 성접대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요정 측이 제출한 거래 장부를 분석했지만 이들이 식사비용을 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제3자가 냈거나 외상으로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한편 경찰은 이와 별도로 국세청 간부 2명이 성매매 한 유흥업소와 모텔을 16일 압수수색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업소의 카드전표와 장부 등을 확보한 경찰은 대가성 접대 명목으로 동석한 사람이 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폐쇄회로(CC)TV로는 동석자가 파악되지 않아 통화 기록 등을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정윤철 trigger@donga.com·박성진 기자}

경기 용인시의 한 도로건설 현장에서 공사 중이던 교량 상판이 무너져 1명이 숨지고 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25일 오후 5시 18분경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북리 남사∼동탄 간 국가지원지방도 23호선 공사 현장에서 교량 상판이 갑자기 무너져 내렸다. 당시 10m 높이의 상판에서는 레미콘을 타설하고 있었다. 약 20m(폭 15.5m)의 상판이 붕괴되면서 현장에 있던 인부 9명이 함께 추락해 레미콘 액체와 철근 더미 등에 매몰됐다. 교각 밑에서 일하던 인부 7명은 신속히 대피해 피해를 보지 않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은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벌여 사고 1시간여 만에 매몰자 9명을 모두 구조해 병원으로 이송했다. 그러나 중상을 입은 이모 씨(67)는 병원에서 치료 도중 숨졌다. 중상을 입은 이모 씨(50)와 나머지 경상자 7명은 치료 중이다. 소방당국은 추가로 있을지 모르는 매몰자를 찾기 위해 밤늦게까지 현장 수색을 계속했다. 사고가 난 현장은 교량 가운데가 싹둑 잘려 나갔고 철근들이 서로 얽히고 구부러진 채 밖으로 노출돼 마치 폭격을 당한 듯 처참한 모습이었다. 이날 현장에는 50여 명의 인부가 있었으며 레미콘 타설 현장에서는 16명이 일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공사인 롯데건설 측은 “레미콘 타설 중 갑자기 상판을 받치던 가설 부자재가 무너지면서 교량이 함께 붕괴됐다”고 설명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현장에서는 약 1500m³의 레미콘을 타설할 계획이었다. 이 가운데 약 1000m³의 레미콘을 타설했을 때 교각 상판 중간 부분 지지대(시스템 동바리)가 붕괴된 것으로 추정된다. 레미콘 타설작업을 할 때는 거푸집에 부은 레미콘이 굳는 동안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동바리로 불리는 지지대를 설치해야 한다. 레미콘 타설 때 발생하는 붕괴사고는 바로 이 지지대 부실이 원인일 때가 많다. 실제로 올 2월 서울 동작구 사당종합체육관 천장에서 레미콘 타설 중 붕괴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의 원인도 조립식 지지대가 부실했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수사전담반을 구성해 롯데건설 현장 관계자와 대피한 인부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경찰은 시공사 측의 안전 및 주의 의무 위반이 확인되면 형사입건할 방침이다. 경찰은 “하부 구조물의 부실시공 의혹과 관리감독을 제대로 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롯데건설 김치현 대표 등 임직원 10여 명은 이날 오후 8시 50분경 사고 현장을 방문해 “죄송하다. 사고 수습에 최선을 다하고 관계기관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사고가 난 곳은 남사∼동탄 간 국지도 23호선 3공구 중 냉수물천교 교각공사(길이 27m, 폭 15.5m, 높이 10m) 현장으로, 이 도로(전체 5.4km)는 동탄신도시 광역교통대책의 일환으로 롯데건설이 2012년 착공해 올해 말 완공 예정이었다.용인=남경현 bibulus@donga.com / 박성진 기자}

조직폭력배들의 ‘사업 아이템’이 다양해지고 있다. 국내 대포차 판매 1위 업자와 자신의 아파트에서 함께 살며 고급 외제 대포차 등을 판매해 40배의 수익을 올린 ‘범서방파’ 행동대장이 경찰에 적발됐다. 대포차 업자의 주요 고객이던 폭력배가 아예 공급자로 나서 대포차 사업을 새로운 수익 창구로 악용하고 있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온라인 대포차 거래 사이트(www.88ca.co.kr·폐쇄 조치)를 개설해 2010년 4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총 340억 원 상당의 대포차 1700여 대를 유통시킨 김모 씨(32)를 자동차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이모 씨(37)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4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사채업자 등에게서 사들인 람보르기니, 포르셰 등 슈퍼카를 포함한 고급 외제차를 되파는 수법으로 막대한 이익을 남겼다. 조직이 아닌 단일 유통업자 규모로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경찰 관계자는 “보통 대포차 유통업자들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한 명의 대포차 공급업자에게만 물건을 받는데 김 씨는 위험을 감수하고 복수의 공급업자와 거래하며 많은 물량을 단기간에 확보해 높은 불법 수익을 거뒀다”고 밝혔다. 문제는 김 씨의 대포차 사업이 전국 3대 폭력조직 중 하나로 꼽히는 범서방파 행동대장 박모 씨(39)의 조직 자금을 통해 운영됐다는 점이다. 박 씨는 대포차 유통 사업으로 큰돈을 벌 생각으로 김 씨를 포섭했다. 2010년부터는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에서 아예 김 씨와 함께 살며 불법인 대포차 사업 확장에 나섰다. 조직에서 매달 받는 자금 100여만 원으로 ‘동생’들을 먹여 살릴 수 없다는 이유였다. 박 씨는 초기 사업자금으로 5000만 원을 투자해 지난해까지 4년간 20억 원을 벌어들였다. 2012년 폭력행위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동안에도 수익금을 챙겼다. 경찰 관계자는 “박 씨가 수완이 좋은 김 씨를 놔주지 않으려고 폭력을 행사하는 등 4년 동안 김 씨를 데리고 살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박 씨의 신원을 확보해 여죄를 조사하고 있다. 박 씨와 김 씨는 불법이지만 적은 돈으로 허영심을 채우고 싶어 하는 일반 시민들에게 대포차를 판매해 사업 규모를 키웠다. 경찰 조사에서 김 씨는 “‘허세’를 부리기 위해 고급 외제차를 대포차로 구입하는 손님이 많았다”고 진술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판매자는 물론이고 벌금형에 그치는 구매자 처벌 수위를 지금보다 높여야 대포차 유통이 근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찰은 폭력배들이 합법을 가장한 다양한 사업에 뛰어드는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경찰 단속이 강화되면서 조직폭력배들이 과거처럼 성매매에 개입하거나 보호비 명목으로 업소에서 돈을 빼앗는 등의 행위로 돈을 챙기기 어려운 환경이 됐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폭력조직은 은밀하게 폭력을 동원해 기업을 인수합병하거나 정보를 빼내 주식에 투자하는 등 합법을 가장한 지능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며 “이런 수법의 조직폭력배들을 집중 수사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대포차 ::부도난 기업이나 노숙인 명의로 돼 있어 실제 운전자와 법적 소유자가 다른 차량. 소유주를 찾기가 어려워 각종 범죄에 이용되기 쉽다. 대부분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하면 보상받기 어렵다.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지나가는 학생을 볼 때마다, 창문을 봐도 (세월호에 갇힌) 아이들이 생각난다. 잊으라 하는데 어찌 잊을 수 있겠나.”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학생 10여 명을 구조해 ‘파란바지의 구조영웅’으로 불린 김동수 씨(50·당시 화물차 기사·사진)는 아직도 1년 전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 20일 오전 제주국제공항에서 만난 김 씨의 왼쪽 손목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전날 오후 그는 제주시 조천읍 자택에서 흉기로 자신의 왼쪽 손목을 자해했다. 다행히 딸(18)의 재빠른 신고로 근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귀가했다. 김 씨는 “더이상 먼저 간 아이들에게 죄인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며 “나 스스로도, 가족들도 나만 사라지면 모두 편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김 씨는 지난해 10월부터 1주일에 한 번씩 경기 안산시 세월호 트라우마센터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20일에도 안산에 와 치료를 받았다. 이곳에서 상담을 받고 신경안정제를 처방받는다. 문제는 안정제 처방량이 늘고 있다는 것. 김 씨는 “살려 달라고 창문을 두들기던 아이들을 잊으려면 약을 먹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항상 약에 취해 사는 기분”이라며 “해가 진 밤에는 정신적 고통 때문에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지난해 11월 의사상자 신청을 했으나 선정되지 못했다. 정부에서 요구한 추가 서류를 제때 내지 못해서다. 그는 “국회와 제주도청에 하소연했지만 돌아온 건 아무것도 없다. 세월호특별법에서 생존자는 뒷전이고 유가족이 먼저가 됐다. 살아남은 우리에겐 무엇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한편 세월호 침몰 때 구조에 나섰던 전남 진도군 조도면 5개 섬 주민 89명은 이날 안산 단원고를 찾았다. 주민들이 도착하자 학생들은 “와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노란 카네이션 한 송이씩을 건넸다. 주민들도 학생들의 손을 잡으며 “이렇게 살아있으니 우리가 오히려 고맙구나”라고 위로했다. 이에 앞서 주민들은 안산시 초청으로 18일 2박 3일 일정으로 올라와 유가족 등을 만났다.제주=임재영 jy788@donga.com / 박성진 / 안산=남경현 기자}
감사원의 간부급 공무원들이 성매매 현행범으로 경찰에 체포됐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감사원 A 과장(4급)과 B 사무관(5급)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0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두 사람은 19일 오후 11시경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유흥주점에서 1차로 술을 마신 뒤 여종업원들과 소위 ‘2차’로 불리는 성매매를 하기로 하고 근처 모텔로 향했다. 이들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여종업원과 시간 차를 두고 모텔로 들어갔고 뒤이어 여종업원 2명이 이들의 방에 각각 투숙했다. 그러나 잠시 후 여성가족부와 합동 단속에 나선 경찰이 현장을 급습했고 이들은 성매매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이들은 처음 경찰 조사에서 술에 취한 척하며 제대로 답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이름과 소속 등 신상 정보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이 신원조회 등을 통해 이들이 공무원 신분임을 확인하자 결국 감사원 소속 직원임을 털어놨다. 경찰 관계자는 “여성가족부 인권보호점검팀과 합동 단속을 벌이던 중 평소 성매매 의심 신고가 많았던 업소에서 이들이 나와 모텔로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검거했다”고 밝혔다. 앞서 2일에는 서울국세청의 과장급 간부 2명이 역삼동의 한 고급 룸살롱에서 술을 마신 뒤 여종업원과 근처 모텔에서 성매매를 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돼 직위 해제됐다.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초·중학교 여학생들에게 접근해 음란사진과 동영상을 찍게 하고 성관계까지 요구한 20대 남성이 구속됐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20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모바일메신저를 이용해 9~15세 여학생 300여명으로부터 노출사진이나 자위 동영상을 전송받고 이를 빌미로 성관계를 강요한 혐의(아동청소년 성보호법 위반 등)로 김모 씨(23)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2013년 12월부터 지난달 25일까지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 ‘카카오톡 스토리’ ‘라인’ 등을 통해 여학생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또래 여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친구를 맺었다. 사춘기 여학생들 중 몸매에 대한 관심이 높아 자신의 몸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올린 학생들만 집중적으로 노렸다. 친구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노골적으로 노출 사진을 요구했다. “나도 부끄럽지만 사진을 보여줄 테니 너도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는 식이었다. 김 씨는 인터넷에서 수집한 사진이나 이미 자신에게 노출 사진을 보낸 피해 여학생들의 나체 사진을 먼저 보내 피해 여학생들을 안심시켰다. 피해 여학생들이 마지못해 일부 신체를 노출시킨 사진을 보내면 김 씨는 태도를 바꿔 민감한 부위를 찍은 수위 높은 사진이나 자위 동영상을 요구했다. 상대가 거부하면 “지금까지 찍어 보낸 사진이라도 유포하겠다”며 협박했다. 김 씨는 이렇게 수집한 사진 및 동영상 1200여개를 날짜별로 정리해 자신의 스마트폰에 보관했다. 개인 USB에도 100여개의 파일을 넣어 간직했다. 15개월 넘게 이어진 범행은 올해 1월 13일 중학교 진학을 앞둔 초등학교 여학생에게 성관계를 요구하다 드러났다. 김 씨는 이 학생에게 “왕따 당하지 않으려면 중학교의 잘나가는 일진 남학생들과 성관계를 맺어야 한다”며 성관계를 가질 것을 요구했다. 이를 거부한 여학생이 부모에게 사실을 알렸고 경찰은 2개월여간 수사 끝에 인천에 있는 김 씨의 직장 숙소에서 김 씨를 긴급체포했다. 경찰 조사에서 김 씨는 “여성 공포증 때문에 성인 여성과는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다”며 “정확한 수는 모르지만 최소 300명을 협박해 사진과 영상 등을 받아냈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김 씨가 2년 전에도 미성년자를 상대로 비슷한 범죄를 저질러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며 “김 씨가 보관하고 있던 영상 파일 등을 토대로 미성년자를 협박해 성추행하거나 성관계를 맺은 사실이 있는지 조사 중이다”라고 밝혔다.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시급으로 따졌을 때 과외만한 돈벌이 수단이 없었다. 과외를 할 능력은 없지만 과외를 통해 돈을 벌고 싶었다. 지방의 한 전문대학교를 졸업하고 보험설계사로 일하던 이모 씨(42)는 ‘짝퉁 과외선생님’이 되기로 결심했다. 돌이켜보면 과외선생님들은 언제나 교습비를 선불로 받았다. 일단 주머니 안으로 들어간 돈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가르치지 않고 돈만 받기로 했다. 과외를 받고자 하는 학생들은 넘쳐났다. ‘과외선생님을 구한다’며 과외연결사이트에 연락처를 남긴 학부모들에게 직접 연락했다. 서울의 명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했다고 소개했다. 교육청에 등록한 경력 10년의 베테랑 과외전문교사라고도 말했다. 말만으로는 부족했다. 안 그래도 과외 사기가 극성이지 않은가. 학부모들을 사로잡기 위해 고급 외제차를 리스해 준비했다. 잘 나가는 과외선생님처럼 보이고 싶었다. 특목고나 국제중 입시전략을 분석한 책을 사서 외우고 시중에 나와 있는 문제집을 편집해 교재도 만들었다. 이 씨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가격. “1달 수강료는 50만 원인데 2~3달 수강료를 미리 주면 과외비를 10% 할인해주겠다”며 학부모들을 설득했다. 과외계약서에 ‘2주 안으로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도 적었다. 이 씨는 시험 강의를 적극 활용했다. “과외를 하겠다”는 연락이 오면 학생 집에 방문해 “공짜로 시험 강의를 해 주겠다”며 강의 소개정도만 하고 과외비를 받았다. 시험 강의는 학부모가 직접 듣지 않는다는 점을 노렸다. 과외비를 받으면 연락을 끊은 채 잠적했다. 이 씨는 이와 같은 수법으로 지난해 4월 6일부터 올해 2월 26일까지 10개월여 동안 학부모 36명에게서 2400여만 원을 가로챘다. 경찰 조사결과 이 씨는 2009년과 2011년에도 과외 빙자 사기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는 상습 사기범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이 씨가 수사가 시작되자 주소지를 바꾸고 타인 명의 휴대전화를 쓰는 등 도피생활을 하는 도중에도 학부모들을 상대로 계속 사기행각을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며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돼 여죄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 씨가 출소 후 결혼한 뒤 양육비와 생활비 등을 마련하려고 사채를 썼다가 이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다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17일 이 씨를 상습사기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사업 다각화를 추진한다는 명목으로 이사회 동의 없이 수십억 원대의 약속어음을 발행해 유흥비로 탕진한 코스닥 상장사 전 대표이사가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업무상 배임) 혐의로 코스닥 상장사인 J사 전 대표이사 백모 씨(39)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16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백 씨는 엔터테인먼트 회사 등을 인수하겠다며 지난해 1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지인들에게 10차례에 걸쳐 57억 원 상당의 회사명의 약속어음을 발행해 돈을 받았다. J사의 이사회는 사업 다각화를 위한 백 씨의 ‘엔터테인먼트 회사 인수’ 제안을 거부한 상태였다. 백 씨의 어음 발행 사실을 모르고 있던 회사 측은 같은 해 5월 30일 4억5000만 원 규모의 채권 강제추심을 당했다. 자금회수에 나선 채권자들로 인해 회사는 추가로 5억5000만 원 상당의 채권 압류 및 추심명령을 받았다. 결국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8월 29일 J사의 주권매매거래를 정지했고 현재 상장폐지 실질심사를 진행 중이다. 백 씨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투자금 유치 명목으로 어음을 발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 조사 결과 백 씨는 어음 발행 명목으로 받은 투자금 8억 원을 골프 비용, 유흥비, 개인채무변제 등으로 탕진하는 등 회사를 위해 추진한 업무는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2013년 12월 31일 기준 소액 주주가 보유한 주식이 52.16%에 달하는 회사의 특성상 백 씨의 배임 행위로 주권매매거래가 완전히 정지되면서 불특정 다수 개인투자자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박성진 기자psjin@donga.com}

서울을 두근거리게 한 축제였다. 15일 서울국제마라톤에 참가한 선수 및 일반인 2만4000여 명을 비롯해 구경하던 시민, 자원봉사자 모두 건강한 봄기운을 나눠 가졌다. 42.195km 풀코스 출발선인 광화문광장에 모여든 일반인 참가자들은 다소 쌀쌀한 날씨에도 들뜬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가족, 친구, 동료들과 사진을 찍으며 “완주합시다” “파이팅”을 외쳤다. 오전 8시 엘리트 선수들이 출발한 뒤 시민들은 광복 70년을 기념하기 위해 애국가를 제창하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이어 박원순 서울시장이 “86번째를 맞는 동아마라톤은 독립운동의 시작이나 다름없습니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인 만큼 (숭고한) 마음을 안고 뛰시길 바랍니다”라고 축사를 한 뒤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울리자 참가자들은 환호와 함께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이날 풀코스에는 약 1만8500명, 서울 뚝섬 한강공원에서 출발한 10km 코스에는 약 5500명이 참가했다. 축제의 장에 걸맞게 곳곳에서 독특한 복장을 한 참가자들이 눈에 띄었다. 슈퍼맨 복장에 망토까지 걸친 중국인 참가자 차이진핑 씨(23)는 “처음으로 참가하는 해외 마라톤대회에서 슈퍼맨처럼 초인적인 힘이 나왔으면 해서 입고 나왔다”고 말했다. 다람쥐 복장을 하고 완주한 맹철민 씨(37·회사원)는 “올해로 4년째 이 복장으로 서울국제마라톤에 참가했다. 가족뿐 아니라 구경하는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어 선택한 옷”이라며 웃었다. 이날 대회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인정한 국내 유일의 골드라벨 대회라는 국제적인 명성에 걸맞게 많은 외국인들이 참여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이날 대회 마스터스 코스에 참가한 외국인은 역대 최다 규모인 총 1695명. 2014년 대회(1363명 참가)에 비해 300여 명이 증가했다. 특히 중국인 참가자가 가장 높은 비율(489명)을 차지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2009년부터 대회에 참가한 쑤친성 씨(61)는 “동료 48명을 설득해 함께 바다를 건너왔다”며 “세계 여러 마라톤대회에 참여해 봤지만 동아마라톤대회가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달렸다는 사실에 의의를 둔 참가자들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출발 2시간 만에 10km 지점에 도착한 뒤 달리기를 멈춘 최규한 씨(84·여)는 “풀코스를 달릴 수 있다는 의지를 갖고 도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건강하다는 증거”라며 “자식들이 출전을 말려도 소용없었다”며 미소지었다. 5시간 45분의 기록으로 완주에 성공한 이번 대회 최고령 참가자인 원춘일 씨(87)는 “완주가 목표였는데 실제로 이뤄서 기쁘다. 내 나이에 완주라니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6시간 34분을 기록해 이번 대회 공식 꼴찌가 된 프랑스인 노르망 마르하방 씨는 “꼴찌를 했다니 오히려 영광이다”며 “두 번째 참가한 대회인데 즐겁게 달렸다”며 곧장 출국을 위해 떠났다. 이른 아침부터 거리를 찾은 시민들은 “파이팅” “힘내세요”를 외치며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동아국제마라톤 열리고 있어요, 모두 파이팅입니다”는 글을 올린 전경선 씨(48·여)는 “매년 열리는 큰 행사인데 안전하게 치러주고, 동네 주민들도 큰 축제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이건혁 gun@donga.com·박성진·황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