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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잠실: 삼성 탈보트-두산 니퍼트(MBC스포츠플러스) △문학: KIA 앤서니-SK 채병용(KBSN) △대전: LG 김광삼-한화 김혁민(XTM) △사직: 넥센 강윤구-롯데 이정민(SBS-ESPN·이상 17시) ▽프로축구 △강원-부산(강릉) △울산-인천(울산) △광주-대전(광주) △서울-수원(서울·TV조선·이상 19시)▽골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넵스 마스터피스(7시·강원 홍천 힐드로사이 골프장)▽프로배구 수원컵 남자부 △대한항공-현대캐피탈(14시·MBC스포츠플러스) 여자부 △도로공사-현대건설(16시·이상 수원체육관)▽씨름 전국선수권(9시·강원 동해체육관)}
2012년 런던 올림픽 테니스 남자 단식 챔피언 앤디 머리(25·영국·세계랭킹 4위)가 올림픽 이후 첫 대회에서 굴욕을 맛봤다. 머리는 17일 미국 오하이오 주 메이슨에서 열린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웨스턴&서던 파이낸셜그룹 마스터스 대회(총상금 340만 달러) 3회전(16강)에서 제레미 샤르디(38·프랑스·38위)에게 0-2(4-6 4-6)로 졌다. 런던 올림픽에서 영국 선수로는 조사이어 리치 이후 104년 만에 올림픽 정상에 섰지만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한 것이다. 디펜딩 챔피언으로 4번 시드를 받아 2회전에 직행한 머리는 첫 상대 샘 퀘리(미국·29위)를 2-1로 물리쳤다. 하지만 3회전에서는 더운 날씨에 과민 반응을 보이며 제 컨디션을 찾지 못했다. 머리는 결국 샷 난조와 샤르디의 포핸드 스트로크에 밀리며 완패했다. 머리는 “볼이 평소보다 많이 튀어 올라서 공을 제어하기가 쉽지 않았다. 곧바로 뉴욕으로 날아가 27일 시작하는 US오픈에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샤르디는 1회전에서 앤디 로딕(미국·21위), 2회전에서는 데니스 이스토민(우즈베키스탄·33위)을 각각 2-0으로 꺾은 데 이어 디펜딩 챔피언 머리까지 잡으며 돌풍의 주인공이 됐다.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대한민국 대통령의 첫 독도 방문, 가수 김장훈과 한국체대 학생들의 8·15기념 독도수영횡단까지…. 독도가 연일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가운데 또 하나의 독도 이벤트가 열린다. 이번엔 고교 최강 농구 선수들이 펼치는 3대3 농구 대회다. 대한농구협회가 25일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 선착장에서 ‘제2회 독도사랑 3대3 농구대회’를 연다. 이번 대회에는 경복고, 용산고, 울산 무룡고, 안양고 등 고교 농구 4개 팀이 참가해 토너먼트로 우승팀을 가린다. 독도경비대 농구팀과의 친선경기, 3점슛 경연대회 등 다양한 이벤트도 함께 열린다. 이날 독도 선착장에는 가로 17m, 세로 11m 규격의 조립식 반코트가 설치될 예정이다. 선착장에 정규 규격(가로 28m×세로 15m)의 코트 설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협회는 간이 농구골대, 바닥 매트, 농구공 등의 집기를 서울에서 가져갈 예정이다. 공이 바다로 튀어 나가는 것에 대비한 그물망이나 펜스는 설치하지 못한다. 펜스를 고정시키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환경을 훼손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행사 관계자와 선수들이 인간 펜스를 만들어 공을 막을 예정이다. 선수단은 24일 울릉도에 도착한 뒤 25일 독도에 입성한다. 기상 악화로 독도 접안이 불가능할 경우 26일 재시도할 계획이다. 지난해 8월 열린 제1회 독도사랑 농구대회는 독도 육상에서 열린 최초의 스포츠 행사로 기록돼 있다. 당시 용산고, 광신정보산업고, 경복고, 동아고 선수들이 출전했다. 협회는 2008년 한국농구 100주년 기념행사로 ‘독도 농구대회’를 추진했지만 기상 악화로 입항하지 못해 독도 앞바다에 정박한 해안 경비정 선상에서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지난해 대회를 직접 관전한 이종걸 대한농구협회장은 “고교 최강팀들이 3대3 경기를 치르면서 독도 사랑과 애국심을 키울 수 있기를 바란다”며 “독도에서는 야구나 축구를 할 수 없고 농구만 가능하다”고 대회 정례화 의지도 피력했다.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런던 올림픽 주요 메달리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인 14일 인천국제공항. 메달을 목에 걸지는 못했지만 메달리스트를 능가하는 인기를 과시한 선수가 있었다. 한국 리듬체조 사상 첫 결선 무대에 진출해 5위에 오른 손연재(18·세종고)다. 올림픽이 끝났지만 식을 줄 모르는 ‘손연재 열풍’의 원동력과 올림픽 뒷이야기들을 키워드로 정리해 봤다. ○ 독기 ‘얼굴만 예쁜 줄 알았는데…. 실력까지 갖추다니.’ 런던 올림픽을 지켜본 팬들은 손연재의 원숙한 연기에 놀랐다. 손연재는 상위 10명이 겨루는 결선 진출을 1차 목표로 했지만 톱5에 진입하며 한국 리듬체조의 위상을 높였다. 손연재의 급성장은 러시아 대표팀의 노보고르스크 훈련소에서 보낸 2년이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러시아식 성적 지상주의는 손연재를 자극했다. 손연재는 처음 러시아에 여장을 푼 2010년 여름 주눅이 들었단다. 러시아 코치들은 세계 각국에서 온 선수들을 성적순으로 1열 횡대로 세운 뒤 훈련시켰기 때문이다. 손연재는 맨 마지막에 서야 했다. 세계 최고 훈련소에서 손연재는 아시아 변방에서 온 무명 선수 취급을 받았다. 대열의 선두는 ‘리듬체조 여왕’ 예브게니야 카나예바, 다리야 콘다코바(이상 러시아) 등이 점령했다. 러시아식 선수 관리는 손연재의 독기를 자극했다. 손연재는 1년 남짓 지난 뒤부터는 대열 중간 지점을 차지했다. 손연재는 “처음에는 홀대와 외로움에 많이 울었다. 하지만 그들의 훈련을 따라가기만 해도 실력이 느는 게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자신감 런던 올림픽에서 보여준 손연재의 강인한 정신력도 화제다. 리듬체조 슈즈가 벗겨지는 불운과 실수 속에서도 투혼을 펼친 곤봉 연기 장면은 폐막 후까지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손연재의 강심장은 다양한 실전 경험에서 나왔다. 특히 올림픽 개막 전 영국 셰필드에서 펼친 모의 올림픽이 큰 도움이 됐다. ‘리듬체조계의 대모’ 이리나 비네르 러시아 리듬체조협회장은 셰필드 주민 3000여 명을 초청해 가상 경기를 치르게 했다. 카나예바 등 세계적 스타의 등장 속에 분위기는 올림픽 못지않게 뜨거웠다. 손연재는 “당시 영국 관중 앞에서 연기를 펼친 뒤 자신감이 더해졌다”고 회상했다. ○ 사랑 손연재의 경기력 뒤에는 어머니 윤현숙 씨의 사랑이 있었다. 윤 씨는 리듬체조 경기가 열리기 나흘 전인 5일 영국 런던에 도착했지만 딸에게 부담을 줄까 봐 만나지 않았다. 하지만 손연재가 10일 예선 6위로 결선 진출을 확정하자 선수단 숙소를 찾아 딸과 깜짝 상봉을 했다. 1차 목표를 달성한 딸을 격려하기 위해서다. 엄마를 발견하자마자 한걸음에 달려가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린 손연재는 “엄마를 보고 난 뒤 마음이 편해졌다. 결선 경기를 즐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2012 런던 올림픽이 찾아낸 최고의 보물 손연재 선수였습니다.” 리듬체조 개인종합 결선이 열린 11일 영국 런던 웸블리 경기장. 손연재(18·세종고)의 마지막 종목인 리본 연기가 끝나자 장내 아나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8000여 관중도 러시아와 옛 동구권이 지배하던 리듬체조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손연재를 향해 박수갈채를 보냈다. 손연재는 이날 결선에서 3위 류보프 차르카시나(벨라루스·111.700점)에게 불과 0.225점 모자라는 4종목 합계 111.475점으로 5위에 올랐다. 결선 진출자 10명 중 키가 가장 작은 158cm의 동양 소녀가 자신의 첫 올림픽 무대에서 당당히 톱 5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예브게니야 카나예바(116.900점)와 다리아 드미트리예바(114.500점)가 각각 금·은메달을 휩쓴 세계 최강 러시아의 관계자들을 통해 런던을 놀라게 한 ‘손연재 신드롬’에 대해 들어봤다.○ “무서운 발전 속도에 놀라” 러시아 관계자들은 손연재의 성장 속도에 주목했다. ‘리듬체조의 대모’ 이리나 비네르 러시아 리듬체조협회장은 “2년 전만 해도 손연재의 현실적인 목표는 톱 10 진입이었다. 하지만 연재는 그 이상을 해냈다”고 칭찬했다. 실제로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 동메달에 그쳤던 손연재는 당시 1위 안나 알랴비예바(카자흐스탄·15위), 2위 울리야나 트로피모바(우즈베키스탄·20위)를 이번 대회에서 모두 제쳤다. 지난해 몽펠리에 세계선수권 11위에 비해서도 6단계나 순위가 상승했다.○ “성실하고 예의바른 선수” 특히 러시아 선수들은 손연재의 인성에 대한 칭찬을 잊지 않았다. 금메달리스트 카나예바는 ‘손연재는 어떤 선수인가’라는 질문에 “연습도 실전처럼 진지하게 임하는 선수다.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기 때문에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손연재와 카나예바는 이날 경기 후 서로 진한 포옹을 나누며 우정을 과시했다. 러시아 대표팀과 함께 훈련하면서 성실함과 성품을 인정받은 손연재의 인기는 러시아 팬들 사이에서도 상당하다. 이날 관중의 절반가량인 러시아 팬들은 손연재가 무대에 설 때마다 자국 선수 못지않은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2∼3년 안에 러시아 위협할 것” 손연재의 선전을 지켜본 국내 팬들은 벌써부터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금메달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하지만 현재 22세인 여왕 카나예바의 독주가 지속되고 러시아의 두꺼운 선수층을 고려하면 동메달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그렇다면 러시아 관계자들의 평가는 어떨까. 은메달리스트 드미트리예바의 전담 코치인 올가 부이아노바 씨는 “러시아는 한두 선수만 잘하는 국가가 아니다. 선수층이 두껍다. 그 때문에 손연재와 러시아 선수를 일대일로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전제하면서 “손연재는 2∼3년 안에 러시아를 위협하는 선수로 성장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세간의 평가에 대한 손연재의 반응은 올림픽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한 열여덟 소녀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차분하고 담담했다. “0.225점 차로 동메달을 아깝게 놓쳤다고 하는데…. 저는 성인무대에 갓 데뷔했고 동메달을 다툰 선수들은 7∼8년차다. 아직 메달 딸 때가 아니다. 하지만 나도 ‘할 수 있겠구나’라고 느꼈다. 막연한 생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4년 뒤 스물두 살 성인이 되는 손연재의 연기가 기대되는 순간이었다.런던=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우간다의 스테판 키프로티츠(23)가 남자 마라톤에서 깜짝 우승하며 런던 올림픽 육상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키프로티츠는 12일 런던 버킹엄궁 앞을 출발해 궁 주변 3.57km를 한 바퀴 돈 뒤 런던의 명소를 도는 12.875km 코스를 세 번 순환해 다시 버킹엄궁으로 들어오는 42.195km 풀코스 레이스에서 2시간8분1초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키프로티츠는 1972년 뮌헨 올림픽 육상 남자 400m 허들의 존 아키 부아 이후 40년 만에 조국 우간다에 금메달을 선사했다. 2009년 베를린과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2연패한 아벨 키루이(2시간8분27초)와 윌슨 킵상 키프로티치(2시간9분37초·이상 케냐)는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에 그쳤다. 한편 이두행(고양시청)이 2시간17분19초로 32위에 올라 한국 출전 선수 중 최고 성적을 냈다.런던=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와∼.” 8만여 팬은 자리에서 일제히 일어나 함성을 터뜨렸다. ‘번개’가 트랙을 돌며 세리머니를 펼치고 스탠드의 공동취재구역 인터뷰를 마치는 30여 분간 함성과 갈채는 이어졌다. ‘전설’을 쓰겠다는 약속을 지킨 영웅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우사인 볼트(26·자메이카)가 9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육상 남자 200m 결선에서 19초 32로 우승하며 새 역사를 썼다. 2008년 베이징 대회에 이어 사상 처음 100m와 200m에서 대회 2연속 동시 석권을 이루며 명실상부하게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200m 2연패도 1900년 제2회 파리 올림픽에서 200m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뒤 사상 처음이다. 200m에서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 2011년 대구 세계선수권에 이어 이번까지 메이저대회 4회 연속 우승이란 신기원을 이뤘다. 볼트가 ‘괴물’에서 ‘전설’이 되는 순간을 ‘런던’이 함께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 오전부터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던 나흘 전 100m 결선 당일과는 정반대의 날씨였다. 현지 조간신문들은 ‘맑은 날씨가 볼트의 200m 세계신기록 작성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내용을 대서특필하며 팬들의 관심을 유도했다. 7레인에서 출발한 볼트는 곡선주로에서 바깥쪽 8, 9레인 선수를 일찌감치 제칠 정도로 초반부터 치고 나갔다. 직선주로에서는 넓은 보폭과 폭발적인 스피드를 내세우며 경쟁자들을 압도했다. 자신이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에서 작성한 세계기록(19초 19)을 깨는 데는 실패했지만 팬들은 아무도 쓰지 못한 전설을 쓴 그의 질주에 열광했다. 볼트는 양팔을 벌려 하늘을 찌르는 전매특허 번개 세리머니를 펼쳤고 사진 기자의 카메라를 빼앗아 기자들을 찍는 장난스러운 장면까지 연출하며 최고의 순간을 만끽했다. 자메이카는 요한 블레이크(19초 44)와 워런 와이어(19초 84)가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을 차지하며 남자 200m를 싹쓸이했다. 볼트는 12일 오전 5시(한국 시간) 400m계주에서 ‘2회 연속 3관왕’이란 신화 창조에 나선다.런던=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동영상=손연재, 한국 리듬체조 사상 첫 결선 진출-다시보기‘요정’이라는 수식어는 더이상 어울리지 않았다. 파워와 기술을 겸비한 원숙한 연기는 이미 리듬체조 변방 아시아를 넘어 세계 정상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가 ‘여왕’으로 불릴 날을 꿈꾸게 만들기에 충분한 연기였다.손연재(18·세종고)가 한국 리듬체조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결선 무대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손연재는 10일 영국 런던 웸블리 경기장에서 끝난 리듬체조 개인종합 예선 둘째 날 경기에서 곤봉 26.350점, 리본 28.050점을 얻어 전날 후프(28.075점)와 볼(27.825점)을 합쳐 합계 110.300점으로 6위를 기록했다. 출전 선수 24명 중 상위 10위까지 주어진 결선 진출권을 획득한 것이다. 손연재는 전날 후프와 볼에서 중간 합계 4위에 올라 결선행이 유력했다. 하지만 이날 첫 번째 종목인 곤봉 연기 초반 기구를 공중으로 던진 뒤 다시 바닥에 정지시키는 장면에서 실수를 했다. 설상가상으로 리듬체조 슈즈가 벗겨지는 불운까지 겪었다. 개의치 않고 연기를 마쳤지만 26.350점을 받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 리본을 남긴 상황에서 중간 순위는 7위까지 떨어졌다.그러나 손연재는 약 30분의 쉬는 시간 동안 마음을 다잡고 나온 리본 경기에서 무결점 연기로 28.050점을 획득해 곤봉 실수를 곧바로 만회했다. 손연재는 “곤봉 실수 후 무척 당황했지만 여기는 꿈꾸던 올림픽 무대고 내가 끝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개인종합 결선은 11일 오후 9시 30분 시작된다.런던=유근형 기자}

▲동영상=손연재, 한국 리듬체조 사상 첫 결선 진출-다시보기“사람들은 (손)연재를 스포츠 아이돌이나 연예인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연재는 운동 앞에서는 프로입니다. 그 누구보다 독하게 운동하지요.”런던 올림픽 개막 전에 만난 손연재(18·세종고)의 어머니 윤현숙 씨는 기자에게 하소연을 했다. 운동선수로서의 면모가 아닌 겉모습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걱정스럽다는 거였다. 실제 손연재는 ‘실력보다 인기가 부풀려져 있다’는 일부 안티 팬들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다.하지만 올림픽이 끝나면 손연재 모녀의 걱정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손연재가 자신의 인기에 걸맞은 기량을 선보이며 한국 리듬체조 사상 최초로 올림픽 결선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리듬체조 변방의 소녀가 올림픽 결선 무대에 서게 된 원동력을 정리해 봤다.○ 비네르 사단의 핵으로 성장한 연재 손연재의 성공은 훈련의 혁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존 대표 선수들은 국내에 머물며 유럽 전지훈련을 실시해 왔다. 하지만 손연재는 시즌 내내 세계 최강 러시아 국가대표팀의 훈련소인 노보고르스크에 머물며 유럽 무대를 공략했다. 특히 러시아 리듬체조의 대모 이리나 비네르 사단의 핵으로 성장했다. 비네르 러시아 체조협회장은 세계무대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한 체조 관계자는 “리듬체조는 보이지 않는 심판의 영향력이 큰 종목이다. 연재가 비네르가 이끄는 러시아 대표팀과 동행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심판들에게 눈도장을 받는 것이다”고 말했다. 손연재는 영국 입성 후에도 선수촌이 아닌 비네르 사단의 셰필드 캠프에서 훈련하며 컨디션을 조절해 왔다. ○ 언어능력을 겸비한 손연재콧대 높은 리듬체조의 심장 러시아에서 적응하기 위해서는 운동만 잘해선 안 됐다. 손연재는 러시아 생활 2년 만에 일상 소통이 가능할 정도의 러시아어를 익혔다. 어릴 적 우상이던 ‘리듬체조 여왕’ 예브게니야 카나예바(러시아)와 스스럼없이 친구로 지낼 정도로 친화력도 발휘했다.이런 배경에는 학창시절 딸에게 운동뿐 아니라 공부도 시킨 어머니의 교육 방식이 있었다. 손연재는 초등학교 시절 교내 수학경시대회, 영어듣기평가대회에서 상을 탈 정도로 영특했다. 일본, 뉴질랜드 등지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나갈 때면 아예 한두 달씩 현지에 체류하며 어학연수를 받기도 했다.○ 멘털왕 손연재가족, 친지와 떨어져 지낸 러시아에서의 2년은 손연재를 정신적으로 강하게 만들었다. 손연재는 러시아에서 부모와 전화할 때는 절대로 “아프다.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단다. 어머니 윤현숙 씨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 뒤에야 엄마에게 살짝 귀띔할 때마다 놀란다. 가끔은 내 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독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손연재는 큰 무대에서 유독 강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는 단체전 4위에 그친 뒤 눈물을 쏟았지만 개인전 동메달로 곧바로 만회했다. 5월 소피아 월드컵에서는 곤봉에서 기구를 놓치는 실수로 7위에 그쳤지만 다음 날 마음을 가다듬고 리본 동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스포츠심리학자 조수경 박사는 “연재는 지난 결과를 잊고 다음 경기에 집중하는 전환 능력이 뛰어난 선수다. 연재보다 정신력이 강한 10대 선수를 본 적이 없다”고 평가할 정도다.런던=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오른손 엄지가 말을 듣지 않았다. 5월 어느 대회에서 다친 뒤 ‘인대가 조금 늘어났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게 화근이었다. 런던 올림픽 개막을 일주일 앞둔 지난달 21일. 통증이라도 줄이고자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뼛조각이 인대와 함께 떨어져 나와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소식을 전했다. 올림픽 출전도 무리란다. 진단명은 오른손 엄지 중수골 내측 골절. 8일 영국 런던 엑셀 레슬링 경기장에서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6kg급 챔피언에 오른 김현우(24)는 자칫 올림픽에 출전조차 못할 뻔했다.○ 아들 위해 영양탕집을 운영하다 김현우의 머릿속은 백지 상태가 됐다. ‘어떻게 찾아 온 인생 첫 번째 올림픽 무대인데…. 태릉선수촌에서 가장 고되다는 훈련도 버텼는데….’ 하늘이 원망스러웠다.하지만 그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해준 부모님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심지어 그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직접 영양탕집을 운영하셨다. 운동선수 아들의 체력증진을 위한 음식을 손수 챙기기 위해서였다. 운동선수 자녀를 둔 부모들이 보신 음식을 찾아 전국을 헤맸다는 에피소드는 흔하지만 직접 보신음식점까지 차린 것은 이례적이다. 아버지 김영두 씨(60)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현우는 초등학생 때 유도를 하다 고향인 강원도 원주에 유도로 진학할 학교가 없어 레슬링으로 전향했다. 유도를 할 때보다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현우에게 영양탕을 먹였는데 효험이 좋았다. 불교 집안이라 고기를 잘 안 먹지만 현우만은 좀 더 풍족하게 먹이고픈 마음에 가게까지 냈다.”○ 손가락 골절 숨기고 뛰기로 결심하다숨겨야 했다. 선수 생명이 단축되더라도 참고 뛰어야만 했다. 함께 병원에 간 소속팀 삼성생명 주무 김종대 씨는 올림픽 출전을 말렸지만 김현우는 간곡하게 부탁했다. 금메달을 따는 순간까지만 비밀로 하자고. 김현우는 소수의 관계자들을 제외하곤 주변에 골절 사실을 숨긴 채 런던행을 감행했다. 심지어 대표팀과 소속팀 지도자들에게도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보고하지 않았다. 경기 날이 다가왔지만 손가락은 나아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최악의 대진표’까지 받았다. 방대두 대표팀 총감독은 “대진 때문에 잠을 한숨도 못 잤다”며 한숨을 쉬었다.김현우는 오른손 손가락을 테이프로 감고 경기에 나섰다. 하지만 손가락에 힘이 없어 맞잡기 기술을 적극적으로 쓰지 못했다. 맞잡기는 유도의 잡기처럼 기선 제압에 필수적인 기초 기술이다. 상대는 테이프를 감고 나온 김현우의 손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설상가상으로 김현우는 1, 2회전에서 상대와 충돌해 눈을 다쳤다. 눈은 점점 부풀어 올라 준결승부터 오른쪽 시야를 가렸다. ○ 불운과 행운이 교차하다.하지만 지성이면 감천. 행운이 뒤따랐다. 결승에서 김현우와 만난 터마시 뢰린츠(헝가리)가 금메달 후보들이었던 프랑크 슈테블러(독일), 저스틴 레스터(미국), 마누차르 츠하다이아(조지아)를 차례로 격파하고 올라온 것이다. 주요 대회마다 김현우의 발목을 잡았던 사이드 무라드 압드발리(이란)도 8강에서 탈락했다. 결승전은 사실상 김현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부러진 손가락, 퉁퉁 부은 눈. 금메달을 알리는 종료 부저가 울리자 엑셀 레슬링 경기장에 모인 체육인들은 눈물을 흘렸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정지현 이후 8년 만에 나온 레슬링 금메달이었다. 김현우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경기장에서 큰 절을 올렸다. “하나도 보이지 않고 부상 부위가 거슬렸지만 정신력으로 경기 했어요. 이 금메달은 저 혼자 딴 게 아닙니다. 부모님. 지도자 선생님들, 동료들 감사합니다.”런던=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 평소의 점잖은 노신사는 온데간데없었다. 아이처럼 방방 뛰며 환호하는 모습은 약관의 제자보다 격렬했다. 6일(현지 시간) 한국 체조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이 나오던 순간 양학선(20)을 부둥켜안고 굵은 눈물을 쏟았던 조성동 체조 대표팀 총감독(65). 한국 체조의 산증인 조 감독에게 ‘뜀틀의 신’ 양학선을 지도한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 다언다실(多言多失)“말을 많이 하면 복이 나갈 것 같아서 인터뷰는 안 할게요. 이해하시지요?”런던 올림픽 개막을 앞둔 지난달 23일 현지에서 만난 조 감독의 첫마디는 단호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유옥렬,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의 여홍철 등이 아쉽게 금메달을 놓치는 것을 몸소 지켜보며 정립한 나름의 원칙이었다. 본인도 선수도 입을 닫았다.조 감독은 올림픽을 앞두고는 양학선에게도 말을 줄이는 훈련을 시켰다. 양학선은 지난해 연말 한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한 뒤 춤을 추는 등 튀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뜀틀은 3∼4초의 공중 연기에서 승부가 갈린다. 선수는 자신을 통제하고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조 감독의 묵언 훈련에 힘입어 연예인 기질이 충만했던 양학선은 돌부처로 단련됐다. ○ 거안사위(居安思危)조 감독은 편안할 때 위기에 대비하는 지도자다.지난해 도쿄 세계선수권에서 양학선은 난도 7.4의 신기술 양1(공중에서 세 바퀴를 비틀어 돌며 착지하는 기술)로 경쟁자들을 압도했다. 하지만 조 감독은 반 바퀴를 더 돌아 총 세 바퀴 반을 도는 ‘양2’를 준비시켰다. 신기술을 만드는 건 어렵지만 따라하기는 쉽기 때문이다. 양학선은 올 초 ‘양2’의 성공률이 50%를 넘었다. 양1로도 모자라 양2까지 완성 단계라는 소식은 경쟁자들의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었다.하지만 조 감독은 결국 ‘양1’로 올림픽을 치르게 했다. 두터운 국제 인맥을 동원한 결과 양학선의 독주를 견제하는 분위기 속에서 양2의 기술 점수를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는 귀띔을 들었기 때문이다. 조 감독의 인맥을 활용한 정보력 덕분에 양학선은 양1에 집중할 수 있었다.○ 외유내강(外柔內剛)조 감독은 훈련 때 말을 거의 걸지 않는다. 그저 교장선생님처럼 멀리서 지켜볼 뿐이다. 심리적 요인이 강한 뜀틀에서 질책 한마디가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인자한 미소를 보내고 있지만 조 감독의 머리는 항상 꽉 차 있다. 점프 횟수, 각도, 속도, 착지까지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 수년간의 방대한 자료는 양학선의 컨디션 그래프로 만들어져 활용되고 있다. 그는 런던 도착 후 착지 난조를 보인 제자에게 “지금 착지가 잘되면 시합 때 오히려 안 된다. 안 되는 게 오히려 좋은 거다”라며 부드럽게 대했다. 조 감독은 “예상보다 컨디션이 올라오는 속도가 늦어 예선에서는 양1보다 안정적인 여2(양1과 형태는 같으나 회전수만 반 바퀴 적음. 난도 7.0점)를 시도해 컨디션을 끌어올리게 했다”고 말했다. 조 감독의 세심하면서도 부드러운 할아버지 리더십은 결국 한국 체조 사상 가장 완벽한 연기를 탄생시켰다.런던=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어릴 적 부모님을 원망한 적이 있다. 가난했던 살림살이 탓은 아니었다.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건 또래보다 작았던 키. 친구들의 놀림을 받을 때마다 생각했다. “엄마 아빠는 날 왜 이렇게 작게 낳아주셨을까?” 160cm의 작은 키가 훗날 세계 최고의 뜀틀 기술을 탄생시키는 원천이 될 줄은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체조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건 양학선(20·한국체대) 얘기다.○ 혼자 집에 있기 싫어 시작한 체조맞벌이 부모 밑에서 자란 양학선은 방학이면 주로 혼자 집에 있어야 했다. 유일한 탈출구는 체조 선수였던 형을 따라 체육관 구경을 가는 것. 각종 신기한 체조 기구가 있는 체육관에 갈 때마다 놀이동산에 가는 것처럼 신났다. “집안 사정이 좋아서 어머니가 가정주부셨다면 체조를 안 했을지도 모르겠어요.”엘리트 체조 선수의 길로 접어든 광주체중 시절. 작은 키는 여전히 그의 아킬레스건이었다. 양학선은 다른 종목에 비해 작은 편인 체조 선수 중에서도 작았다. 근력과 파워가 붙지 않았다. “중학교 때 체조 선수를 그만둘까 생각한 적도 있어요.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을 때보다 더 부모님을 원망했어요.”○ 작은 키는 신이 내린 선물하지만 광주체고 진학 후 돌파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코치들은 “작은 키를 역이용하면 남보다 더 높이 뛰고 더 많이 회전할 수 있다”며 뜀틀에 집중할 것을 권했다.먼저 ‘뜀틀의 제왕’ 여홍철(경희대 교수)을 목표로 잡았다. 여홍철은 자신의 이름을 딴 뜀틀 기술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을 따낸 한국 체조 간판이다. 양학선은 여1(도움닫기 후 구름판을 구르고 도마에 손을 짚은 뒤 두 바퀴를 옆으로 비틀며 도는 기술)을 속성으로 익힌 데 이어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를 앞두고는 여2(여1과 형태 같음. 회전수만 두 바퀴 반. 난도 7.0점)까지 완성했다. 조성동 대표팀 총감독은 “광주에 있는 고등학생이 여2까지 완벽하게 해낸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웠다. 대표팀에 뽑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양학선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 ‘여2’를 앞세워 금메달을 목에 걸고 차세대 한국 체조 간판으로 떠올랐다. ○ ‘강심장’ 양학선양학선의 비상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여2에서 반 바퀴를 더 돌아 총 세 바퀴를 옆으로 도는 신기술을 개발했다. 양학선은 자신의 이름을 딴 ‘양학선’을 국제체조연맹(FIG) 기술집에 등재하는 데 성공했다. 난도 점수도 현 최고인 7.4점을 인정받았다. 양학선은 런던 올림픽 전초전인 지난해 도쿄 세계선수권 뜀틀 결선에서 ‘양학선’을 앞세워 우승을 차지했다. 체조인들은 한국 체조가 첫 올림픽에 나선 1960년 로마 올림픽 이후 한국 체조의 올림픽 노골드 징크스를 양학선이 깨줄 것이라고 기대했다.부담이 될 법도 했지만 양학선은 타고난 강심장이다. 금메달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들을 때마다 “사람들이 가장 확실한 금메달 후보라고 말해서 오히려 좋다. 그런 전망들을 오히려 즐겨보겠다. 금메달로 부모님께 집을 지어 드리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양학선은 결국 부모님, 국민, 체조인,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내며 한국 체조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런던=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대한민국의 양! 학! 선!”이 무대에 서기 위해 수천 번을 넘어지고 일어났다. 결코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올림픽 무대가 바로 눈앞이다. 떨리는 두 손을 꼭 잡고 눈을 감는다. “엄마 아빠, 힘을 주세요.” 우레와 같은 관중의 함성을 뒤로하고 힘차게 뜀틀을 향해 뛰어나간다. 스무 살 약관의 양학선(한국체대)의 금빛 비행은 그렇게 시작됐다.양학선이 한국 체조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의 쾌거를 이뤄냈다. 양학선은 6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노스그리니치 경기장에서 열린 체조 뜀틀 결선에서 1, 2차 평균 16.533점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2위 데니스 아블랴진(20·러시아)과의 격차는 무려 0.134점. 이로써 양학선은 아시아경기(2010년 광저우), 세계선수권(2011년 도쿄)에 이어 올림픽까지 제패하며 뜀틀 천하통일을 이뤘다. 확실한 금메달 후보로 손꼽혔지만 양학선은 런던 현지 도착 후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달 29일 단체전 예선을 겸한 개인 종목별 결선 진출전 뜀틀에서 1, 2차 시기 평균 16.333점을 받아 아블랴진(16.366점)에 이어 전체 2위로 결선에 진출했다. 결선에 대비해 국제체조연맹(FIG)에 역대 최고 난도 7.4점의 신기술 양1(공중에서 세 바퀴를 옆으로 비틀며 착지하는 기술)을 아끼고 여2(난도 7.0점·양1과 형태 같고 회전수만 두 바퀴 반)를 연기했지만 아쉬운 결과였다.하지만 양학선은 큰 무대에 강했다. 결선 1차 시기에서 비장의 무기인 양1을 무난하게 성공시켰다. 착지에서 두 발이 흔들렸지만 큰 감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2차 시기에서는 ‘스카라 트리플’(손 짚고 옆으로 돌려 몸을 편 상태에서 세 바퀴를 비트는 기술)을 완벽하게 소화했다.런던=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누가 그에게 등을 보여줄 수 있을까. 4년 전. 베이징 올림픽은 우사인 볼트(26·자메이카)의 대회였다. 키 195cm의 볼트가 남자 육상 100m 결선에서 성큼성큼 큰 보폭으로 다른 선수들을 여유 있게 따돌리고 9초69의 당시 세계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할 때 세계는 혜성처럼 등장한 ‘인간 탄환’에 경악했다. 6일 런던 올림픽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8만여 명의 시선은 남자 100m 결선 7번 레인에서 몸을 푸는 볼트에게 쏠렸다. 출발 총성과 함께 주자들이 쏜살처럼 결승선을 향해 달려 나갔지만 우승은 중반부터 엄청난 속도로 치고 나가 9초63의 올림픽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볼트의 차지였다. 남자 100m 올림픽 2연패는 1988 서울 올림픽에서 우승한 미국의 칼 루이스에 이어 두 번째. 당시 루이스는 벤 존슨(캐나다)에 뒤져 2위로 결승선을 끊었지만 벤 존슨이 금지약물 복용으로 실격 처리된 뒤 1위로 올라섰다. 두 대회 연속 100m 결승선을 가장 먼저 끊은 것은 볼트가 처음이다. ○ 출발 반응속도 0.165초 볼트는 약점으로 꼽히던 출발 반응속도에서 0.165초로 8명 가운데 5위에 그쳤지만 이내 장점인 넓은 보폭을 앞세워 정확히 41걸음(스트라이드) 만에 레이스를 마쳤다. 2위 요한 블레이크(자메이카·9초75)는 45.5걸음, 3위 저스틴 게이틀린(미국·9초79)은 42.5걸음이었다. 단거리의 주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보폭을 크게 하면서 한 걸음 내딛는 주기(피치)를 줄이는 스트라이드 주법이고 다른 하나는 보폭을 줄이는 대신 발걸음을 빨리 하는 피치 주법이다. 피치 주법의 대표적인 선수는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9초79의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지만 약물 복용 사실이 드러나 기록이 취소된 벤 존슨이다. 그는 당시 46걸음, 초당 4.7걸음을 뛰어 레이스를 마쳤다. 이날 볼트는 초당 4.3걸음을 뛰었다. 그렇다고 이날 볼트의 스트라이드가 세계 최고는 아니다. 백인 최초로 10초벽을 넘은 크리스토프 르메트르(프랑스)는 보통 40.5보에 100m를 뛴다. 대신 피치 수가 떨어진다. 일반적으로 키가 크면 보폭이 커지고 보속은 느린데 현재까지 볼트는 두 주법을 가장 이상적으로 결합한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볼트는 2009년 세계기록(9초58)을 세울 때 출발 반응속도가 0.146초였다. 당시와 똑같은 출발 반응속도를 기록했다면 볼트의 이번 올림픽 2연패 기록은 9.61초까지 당겨질 수 있었다. 팀 몽고메리(미국)가 2002년 파리 그랑프리파이널대회에서 기록했던 출발 반응속도(0.104초)로 뛰었다면 볼트는 9초57이라는 세계신기록을 세울 수도 있었다.○약점인 척추측만증 강점으로 승화 볼트는 부상이 잦은 선수다. 2010년 6월 아킬레스힘줄을 다쳤던 볼트는 8월에 허리 부상까지 겹치며 일찌감치 시즌을 접었다. 볼트의 허리 부상은 선천성 척추측만증 때문이다. 척추측만증은 척추가 C형 또는 S형으로 휘어 양 어깨나 골반의 좌우 높이가 달라진 상태를 말한다. 볼트는 가만히 서 있을 때 오른 어깨가 왼 어깨에 비해 눈에 띄게 낮다. 이 질환은 늘 달려야 하는 육상 선수에게 치명적이다. 척추와 골반, 그리고 허벅지 근육까지 충격을 받는다. 볼트의 경우 지속적인 치료와 근육 훈련으로 상태가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뛸 때마다 미세한 통증이 따른다. 하지만 볼트는 전문 의료진의 도움과 엄청난 훈련을 통해 치명적인 약점을 극복해 왔다. 하체 근육을 키워 척추측만증으로 인한 부상 가능성을 상쇄하는 방식이다. 양쪽 골반의 높이가 다르기 때문에 볼트의 보폭은 왼발과 오른발이 큰 차이가 난다. 왼발을 내디딜 때 보다 오른발을 내디딜 때 20cm가량 짧다. 전문가들은 이 차이가 되레 폭발적인 스피드의 원동력이라고 분석한다. 왼발을 내디딜 때 골반이 크게 내려가기 때문에 더 큰 힘으로 지면을 박찰 수 있기 때문이다. 하체 근육이 받쳐 주기 때문에 가능한 시나리오다. 볼트의 아성은 최근 흔들렸다. 6월 자국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블레이크에게 1위를 내준 게 빌미였다. 이때도 볼트는 허벅지가 정상이 아니었다.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도박사들이 예년에 비해 볼트의 우승 가능성을 낮게 본 것도 그래서였다. 하지만 볼트는 불세출의 스프린터답게 여유 있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볼트는 평소 9초40까지는 가능하다고 말해 왔다. 9초50의 벽을 무너뜨릴 인간 탄환은 현재로서는 볼트뿐이다. 한편 이날 100m 결선은 전체 출전 선수의 기록으로 볼 때 ‘사상 최고의 레이스’로 남게 됐다. 출전 선수 7명이 9초대를 끊고 그중 3명이 9초80 이하를 기록한 것은 역대 가장 빠른 100m 경기였다. 부상으로 레이스 후반을 포기한 아사파 파월(자메이카·11초99)이 제 컨디션이었다면 결선 출전자 8명 전원이 9초대로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었다. 볼트는 10일 남자 육상 200m에 다시 나선다. 100m와 200m 대회 2연패는 전인미답의 영역이다. 볼트는 말했다. “전설에 한 발 더 다가갔다.”이승건 기자 why@donga.com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블레이크가 날 깨워… 200m도 우승해 전설 되겠다”▼볼트 “의심하는 자들이여, 너희가 틀렸노라”“마치 (요한) 블레이크가 내 방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올림픽이 곧 열리는데 넌 준비됐니?’라고 묻는 것 같았다. 자고 있는 나를 깨운 모닝콜이었다. 훈련에 다시 집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우사인 볼트는 남자 100m를 2연패한 뒤 자신의 훈련 파트너였던 요한 블레이크의 존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볼트는 블레이크가 자신의 2연패를 만들어 준 자극제라고 밝혔다. 그는 “올림픽대표 선발전 때 내가 블레이크에게 두 차례(100m, 200m)나 진 게 나를 일깨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림픽의 해에 나는 이렇게 갈 수 없다고 생각했고 다시 챔피언이 되기 위해 나를 일깨웠다”고 말했다. 볼트는 200m마저 우승해 육상의 ‘전설’이 되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그는 “런던의 전설이 되기 위해 한 걸음 더 전진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200m 우승이다. 그것은 나의 메인이벤트”라고 밝혔다. 볼트는 “나는 지금까지 나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 왔다. 그들이 나에 대해 의혹을 가지는 게 오히려 나에겐 에너지를 준다. 나는 그들 때문에 항상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런던=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모두들 미친 것 같아요.” 여자 펜싱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지연(24)은 4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엑셀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런던 올림픽 펜싱 마지막날 경기 여자 에페 단체전을 지켜보며 기자에게 농담 아닌 농담을 던졌다. 8개 출전국 중 세계랭킹이 가장 낮은 한국(10위)이 8강에서 1위 루마니아를 꺾는 등 돌풍을 일으키며 깜짝 은메달을 목에 걸었기 때문이다. 김지연의 말처럼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펜싱은 그야말로 ‘크레이지 모드’였다.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한국 역대 올림픽 100번째 금메달을 수확하는 등 ‘금 2개 은 1개 동 3개’의 역대 최고 성적을 올렸다. 특히 출전한 단체전 3종목에서 모두 메달을 따내는 등 한국 펜싱의 업그레이드된 실력을 확인했다.○ 변방에서 돌풍의 핵으로 펜싱 전문가들은 런던 쾌거가 ‘준비된 기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먼저 절대적인 훈련량이 4년 베이징 올림픽보다 많았다는 게 펜싱계의 중론이다. 대표팀은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365일 중 3일밖에 쉬지 못할 정도로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했다. 남자 플뢰레 동메달리스트 최병철(31)은 “펜싱 대표팀 선수들에게 일요일은 또 다른 월요일이었다. 외박은 머릿속에서 지우고 살았다”고 말했다. ‘신아람 1초 사건’을 겪으며 선수단 전체가 똘똘 뭉친 것도 경기력으로 이어졌다. 최병철은 펜싱 첫 메달을 딴 당일 축하 인사를 전해오는 동료들을 조용히 시키기에 바빴단다. 경기가 남아있는 동료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세심한 배려였다. 일년 내내 동고동락하며 다져진 우애와 신아람 사건이라는 외적인 자극제까지 더해져 최상의 팀워크가 완성된 것이다.○ 훈련 패러다임 혁명 이끈 손길승 회장 무엇보다 훈련 패러다임 혁명을 이끈 손길승 대한펜싱협회장(71·SK텔레콤 명예회장)의 지원이 있었다. 손 회장은 2009년 협회장 취임 후 선수단 훈련비를 크게 늘려 연간 6억 원 정도이던 지원 규모를 12억 원으로 올려놨다. 이런 탄탄한 지원 덕에 대표팀은 1년의 반 정도를 유럽에 머물면서 굵직한 국제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됐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같은 메이저 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이 좋은 대진을 누릴 수 있게 된 것도 큰 대회에 자주 나가 랭킹 포인트를 많이 쌓았기 때문이다. “유럽 대회장과 한국을 오가며 체력과 시간을 낭비할 바에는 차라리 계속 유럽 현지에 머무는 게 낫다”며 선수단 귀국을 막은 일화도 있다.○ 오심 아픔 신아람의 아름다운 마무리 지난달 30일 여자 에페 개인전 준결승에서 ‘1초 판정 논란’을 겪으며 ‘노메달’에 그쳤던 신아람(26)은 정효정(28), 최인정(22), 최은숙(26)과 함께 출전한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아쉬움을 털어냈다. 은메달을 목에 걸고 웃음을 되찾은 신아람은 그동안 가슴속에 묻어뒀던 이야기들을 꺼냈다. 신아람은 “평소 8시간은 자야 컨디션이 유지되는데 4시간 이상 못 자겠더라. 배는 항상 고픈데 밥이 넘어가질 않아 마시는 건강보조제품을 주로 먹었다”며 괴로웠던 지난 5일을 떠올렸다. 또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더 악착같이 뛰었다. 앙금이 다 풀리진 않았지만 메달을 따내 기쁘다”고 말했다. 신아람은 국제펜싱협회(FIE)의 특별상, 대한체육회(NOC)의 공동 은메달 추진 움직임에 대해서도 심경을 밝혔다. “난 특별한 게 없는 사람인데…. 특별상을 왜 주는지 잘 모르겠다. 단체전에만 집중하고 싶었는데 주변에서 흔들어서 더 힘들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공동 은메달을 거부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에는 실력으로 메달을 따면 된다고 생각했다.” 지난달 30일 피스트에 앉아 많은 눈물을 쏟았던 신아람. 그는 한국 펜싱 마지막 경기인 여자 에페 단체전에서 마지막 주자의 소임을 다하고 은메달을 확정한 뒤에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감동과 회한이 밀려올 법도 했지만 그는 밝게 웃기만 했다. “저는 기쁠 때는 울지 않습니다.” 신아람 1초 오심에 함께 분노했던 국민들도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런던=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동영상=신아람 1초 오심, 다시보기2012 런던 올림픽 메인 스폰서이자 시간 기록 장비들을 총괄하고 있는 오메가의 에크하르트 프랑크(독일) 기술대표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신아람 1초 사건’에 대해 비상식적인 언사를 쏟아내 파문이 예상된다. 그는 “펜싱에서 1초 남은 상황이면 산술적으로 5번까지 동시 공격이 이뤄질 수 있다. 런던 올림픽 여자 에페 신아람의 준결승 경기는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프랑크 기술대표의 주장은 국내 전문가들의 중계 화면 분석 결과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시간센터 권택용 박사는 비디오 판독 결과를 통해 3번의 공격 동안 약 1.42초가 흘렀다고 분석한 바 있다. KBS도 30분의 1초(약 0.033초)를 의미하는 프레임 단위를 이용해 3번의 공격 동안 약 1.56초가 흘렀다고 분석했다. 프랑크 기술 대표는 이에 대해서도 “분석에 쓰인 프레임(30분의 1초)은 정확한 시간단위가 아니다. 분석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프랑크 기술대표는 펜싱 타임워치의 단위에 대해서는 변경이 필요하다는 뜻을 드러냈다. 그는 “국제펜싱연맹(FIE)에서 타임워치의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현 1초 단위를 100분의 1초 단위로 바꾸는 논의를 진행 중이다”라며 “결정만 내려지면 100분의 1초 단위로 바꿀 준비를 이미 마쳤다”고 말했다.한편 프랑크 기술대표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오메가 타임워치의 작동 방식에 대해 “1초가 남은 것으로 표시되지만 실상 1000분의 1초 단위까지 흐르고 있다”고 말했다. 오메가의 설명대로라면 ‘1초가 남은 상황에서 0.9초가 흘러도 다음 상황에서 다시 1초로 되돌아간다. 신아람의 패배가 정당하다’는 일각의 주장은 틀린 것이다.런던=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아무도 몰랐다. 국민, 언론, 대한체육회, 펜싱 대표팀 감독,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그가 한국 여자 펜싱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주인공이 될 줄은. 그는 시상식을 마치고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기자들과 대면한 자리에서조차 금메달 획득이 믿기지 않다는 듯 “로또 맞은 거 같아요”를 연발했다. 1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엑셀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런던 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깜짝 금메달의 주인공인 김지연(24)이 그랬다. 한편 사브르가 2004년 아테네 대회부터 여자 펜싱 정식 세부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아시아 선수로서는 첫 우승이다.○ 펜싱 신데렐라의 탄생 김지연과 펜싱의 인연은 부산 재송여중 1학년 때 시작됐다. 당시 플뢰레로 입문했지만 부산디자인고 진학 후 코치의 추천으로 사브르로 전향했다. “찌르기만 하는 플뢰레보다 마구 후려치는 사브르가 더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사브르로 전향했지만 성적은 나아지지 않았다. 빠른 발과 패기는 좋았지만 세밀한 기술이 떨어졌다. 하지만 펜싱대표팀 여자 사브르 김용율 감독은 가능성을 보고 대표선발전에서 떨어진 김지연을 직접 추천해 발탁했다. 막상 대표가 됐지만 사브르 종목은 세계와의 격차가 컸다. 김지연은 2009년까지 세계랭킹 포인트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국제무대에서 무명이었다. 2010년부터 국제대회에서 경험을 쌓기 시작했지만 규모가 작은 대회에서도 1등은 한 번도 못했다. 한국 여자 사브르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 이후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딴 적이 없기에 펜싱계의 기대도 적었다. 김 감독은 “솔직히 지연이가 런던 올림픽에서 가장 잘해야 4강 정도를 예상했다. 금메달은 꿈도 못 꿨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의 런던 올림픽 전력분석 자료는 김지연의 예상 성적을 8강으로 평가했다.○ 한국형 발펜싱 1세대의 탄생 그러나 펜싱전문가들은 김지연의 우승이 우연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10년간 유럽 펜싱 강국들의 장점을 꾸준히 흡수해 상대보다 한 발 더 뛰는 한국형 발펜싱을 완성한 결과라는 것. 오경석 KBS 펜싱 해설위원은 “10년 전만 해도 외국 코치들이 가르치는 것을 무작정 따라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최근에는 외국인 코치가 없을 정도로 한국의 독자적 펜싱이 완성 단계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형 발펜싱에는 러시아의 빠른 발, 프랑스의 세밀한 손기술, 독일의 파워 등이 적절히 녹아 있다”고 설명했다. 김지연은 한국형 발펜싱의 1세대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태권도와 육상선수 출신인 김지연은 플뢰레, 에페에 비해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사브르 경기에서 실력을 발휘했다. 발펜싱의 원조 러시아 선수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긴 팔 다리와 손기술을 앞세운 유럽 선수들은 빠른 발을 앞세운 김지연에게 말려 번번이 패했다.○ 발펜싱의 백미 ‘콩트르 파라드’ 그렇다고 김지연이 발만 빠른 선수는 아니다. 상대의 찌르기 기술을 쳐내는 정교한 손기술을 갖췄다. 특히 신속히 뒤로 물러나면서 상대를 유인한 뒤 공격해오는 검을 쳐내고 빠르게 역습을 감행하는 ‘콩트르 파라드’ 기술은 김지연표 발펜싱의 백미다. 김지연은 세계랭킹 1위 매리얼 재거니스(미국)와의 준결승에서 3-9까지 뒤져 패색이 짙었지만 콩트르 파라드를 이용해 대역전극을 펼쳤다. 소피야 벨리카야(러시아)와의 결승에서도 이 기술로 상대의 추격 의지를 꺾었다. 김지연은 고된 훈련 끝에 정상에 선 여느 금메달리스트와는 달리 “쉬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빨리 다시 검을 잡고 싶단다. “그냥 빨리 휘두르고 싶어요. 펜싱은 제 전부니까요.”런던=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아무도 몰랐다. 국민, 언론, 대한체육회, 펜싱 대표팀 감독,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그가 한국 여자 펜싱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주인공이 될 줄은. 그는 시상식을 마치고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기자들과 대면한 자리에서조차 금메달 획득이 믿기지 않다는 듯 "로또 맞은 거 같아요"를 연발했다. 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엑셀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런던 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깜짝 금메달의 주인공인 김지연(24)이 그랬다. ● 펜싱 신데렐라의 탄생 김지연과 펜싱의 인연은 부산 재송여중 1학년 때 시작됐다. 당시 플뢰레로 입문했지만 부산디자인고 진학 후 코치의 추천으로 사브르로 전향했다. "찌르기만 하는 플뢰레보다 마구 후려치는 사브르가 더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사브르로 전향했지만 성적은 나아지지 않았다. 빠른 발과 패기는 좋았지만 세밀한 기술이 떨어졌다. 하지만 펜싱대표팀 여자 사브르 김용율 감독은 가능성을 보고 대표선발전에 떨어진 김지연을 직접 추천해 발탁했다. 막상 대표가 됐지만 사브르 종목은 세계와의 격차가 컸다. 김지연은 2009년까지 세계랭킹 포인트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국제 무대에서 무명이었다. 2010년부터 국제대회에서 경험을 쌓기 시작했지만 규모가 작은 대회에서도 1등은 한 번도 못했다. 한국 여자 사브르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 이후 국제 대회에서 메달을 딴 적이 없기에 펜싱계의 기대도 적었다. 김용율 감독은 "솔직히 지연이가 런던 올림픽에서 가장 잘해야 4강 정도를 예상했다. 금메달은 꿈도 못 꿨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의 런던 올림픽 전력분석 자료는 김지연의 예상 성적을 8강으로 평가했다. ● 한국형 발펜싱 1세대의 탄생 그러나 펜싱 전문가들은 김지연의 우승이 우연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10년 간 유럽 펜싱 강국들의 장점을 꾸준히 흡수해 한국형 발펜싱을 완성한 결과라는 것. 오경석 KBS 펜싱 해설위원은 "10년 전만 해도 외국 코치들이 가르치는 것을 무작정 따라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최근에는 외국인 코치가 없을 정도로 한국의 독자적 펜싱이 완성 단계다"며 "한국형 발펜싱에는 러시아의 빠른 발, 프랑스의 세밀한 손기술, 독일의 파워 등이 적절히 녹아 있다"고 설명했다. 김지연은 한국형 발펜싱의 1세대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태권도와 육상 선수 출신인 김지연은 플뢰레, 에페에 비해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사브르 경기에서 빛을 발휘했다. 발펜싱의 원조 러시아 선수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긴 팔 다리와 손기술을 앞세운 유럽 선수들은 빠른 발을 앞세운 김지연에게 말려 번번이 패했다. ● 발펜싱의 백미 '콩트르 파라드' 그렇다고 김지연이 발만 빠른 선수는 아니다. 상대의 찌르기 기술을 쳐내는 정교한 손기술을 갖췄다. 특히 빠르게 뒤로 물러나면서 상대를 유인한 뒤 공격해오는 검을 쳐내고 빠르게 역습을 감행하는 '콩트르 파라드' 기술은 김지연표 발펜싱의 백미다. 마치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 대첩 당시 상대를 유인해 괴멸시켰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김지연은 세계랭킹 1위 마리엘 자구니스(미국)와의 준결승에서 3-9까지 뒤져 패색이 짙었지만 콩트르 파라드를 이용해 대역전극을 펼쳤다. 소피아 벨리카야(러시아)와의 결승에서도 이 기술로 상대의 추격 의지를 꺾었다. 김지연은 고된 훈련 끝에 정상에 선 여느 금메달리스트와는 달리 "쉬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빨리 다시 검을 잡고 싶단다. "그냥 빨리 휘두르고 싶어요. 펜승은 제 전부니까요."런던=유근형기자 noel@donga.com}
비운의 펜싱 스타 신아람(26·계룡시청)의 ‘특별상’ 수상과 관련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발단은 1일 국제펜싱연맹(FIE)이 경기 결과에 승복하고 동메달 결정전에 나선 신아람의 정신을 높이 사 특별상을 주겠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FIE는 이날 한국 선수단이 제출한 소청을 기각했다. 관련 규정이 없어 심판의 재량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어설픈 논리가 이유였다. 특별상을 통해 일단 논란을 무마하고 보자는 ‘꼼수’라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이미 2심까지 갔기 때문에 판정이 번복될 일도 없고 스포츠중재재판소에 간다고 해도 승산이 없다”면서 “단체전도 있고 하니 (특별상을) 받고 끝내자고 결론 내렸다”고 발표했다. 논란은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이 신아람이 특별상을 거부했다고 보도하면서 커졌다. 이 신문에 따르면 신아람은 인터뷰에서 “그것(특별상)은 올림픽 메달이 아니기 때문에 내 마음을 달래기 힘들다. 판정이 오심이라고 믿기에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체육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신아람은 ‘특별 메달이 뭔지 모르기 때문에 받는다, 안 받는다 말할 처지가 못 된다’고 말한 게 전부”라고 설명했다. 논란 직후 본보 기자와 만난 신아람은 특별상을 받을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 생각하기 싫다”며 즉답을 피했다. 대한체육회에서 수상 관련 강요가 있었느냐는 물음에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뒤 “받는다고 말 한 적도, 안 받는다고 한 적도 없다. 모든 건 단체전이 끝나고 생각해 보겠다”며 자리를 떴다. 신아람은 지난달 31일 펜싱 여자 에페 개인전 준결승에서 독일의 브리타 하이데만과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지만 1초가 남은 상황에서 잘못된 시간 측정 때문에 억울한 패배를 당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런던=유근형 기자 noel@donga.com▲동영상=신아람 1초 오심, 다시보기}

운수 좋은 날이었다. 지난달 30일 오후 6시 47분(현지 시간) 문제의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영국 엑셀 런던의 사우스 아레나에서 열린 펜싱 여자 에페 개인전에서 판정 논란 속에 노 메달에 그친 신아람(26) 얘기다.세계 12위 신아람은 4강까지 거침이 없었다. 준결승 상대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브리타 하이데만(독일). 하지만 전성기가 지났고 현재 세계 17위까지 처져 있어 메달 희망을 부풀렸다.신아람은 준결승 정규시간을 5-5 동점으로 끝내고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 3분을 동점으로 끝낼 경우 이기게 되는 어드밴티지까지 확보했다. 어드밴티지 규칙은 공격적인 펜싱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다. 오심은 여전히 5-5로 맞선 종료 1초 전 나왔다. 1초를 남기고 신아람은 상대와 세 번이나 동시에 서로를 찔렀지만 시간은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네 번째 공격에서 하이데만에게 점수를 허용해 5-6으로 패했다. 한국 코치진은 1시간여 동안 강력하게 항의했으나 국제펜싱연맹(FIE) 심판진은 재심 끝에 하이데만의 승리를 선언했다. 하이데만은 결승에 진출해 은메달을 땄다. 그렇다면 시계는 왜 3번의 공격 시도 동안 1초도 흐르지 않은 걸까. 먼저 심판이 실수 또는 고의로 스톱워치를 누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김국현 대한펜싱협회 부회장은 “심판이 의도적으로 스톱워치를 누르지 않은 것 같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독일 펜싱 관계자는 “타임워치가 시작되지 않았다면 동시 공격이 이뤄졌을 때 공격이 성공했다는 신호도 들어오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펜싱에 사용되는 타임워치의 작동 방식도 논란거리다. FIE 관계자들은 소수점 아래 단위가 없는 펜싱 시계는 1초가 남은 상황에서 0.9초가 흘러도 다음 상황에서는 다시 1초가 남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창곤 FIE 심판위원의 설명은 다르다. 그는 “1초가 흐르기 전에 경기가 중단돼도 다시 시계가 1초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세 번의 공격이 각각 아무리 빨랐더라도 모두 합친다면 1초가 지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이데만의 결승 득점이 인정된 네 번째 공격의 경우 1초가 흐른 뒤 이뤄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심재성 코치는 “하이데만이 신아람의 칼을 쳐낸 뒤에 들어갔기 때문에 앞의 공격보다 길었다. 독일 코치도 네 번째 공격 인정은 이해되지 않는다며 나를 위로했다”고 말했다.한국표준과학연구원 시간센터 권택용 박사는 비디오 판독 결과 “하이데만이 세 번 공격하는 데 걸린 시간이 모두 1.42초가 걸린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FIE는 31일 해당 심판 조치 요구 등을 포함한 한국팀의 항의를 끝내 기각했다.3, 4위전에 나선 신아람에게는 유럽인이 대부분인 8000여 관중의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관중은 심판 판정에 항의한다는 의미를 담아 신아람이 점수를 올릴 때마다 발로 바닥을 구르며 박수를 쳤다. 3, 4위전에서 세계 1위 쑨위제(중국)에게 패해 노 메달에 그쳤지만 더 많은 박수를 받은 건 신아람이었다.경기 후 믹스트존에 선 신아람은 떨리는 목소리로 짧은 소감을 밝힌 뒤 떠났다. “1초가 그렇게 긴 줄 몰랐어요. 피스트(펜싱 경기장)에서 기다리던 1시간이 지난 4년과 비슷하게 길게 느껴졌어요. 티켓을 사서 제 경기를 기다려준 관중과 한국 팬들에게 죄송해요.” 현진건의 소설처럼 신아람의 ‘운수 좋은 날’도 그렇게 저물어갔다.런던=유근형 기자 no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