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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키타는 특유의 웃는 듯한 얼굴 때문에 ‘바다의 판다’라고 불린다. 실은 몸길이 1.5m에 불과한 세상에서 가장 작은 고래다. 현재 세계에 약 10마리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 ‘멸종 위기종’이기도 하다. 1990년대만 해도 약 500마리였던 바키타의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한 데는 불법 포획이 큰 영향을 미쳤다. 멕시코 마피아들이 동아시아에서 한약재로 유통되는 ‘토토아바’라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설치한 어망에 바키타도 함께 걸려들었다고 한다. 이 책은 희귀동물 멸종 등 인간의 탐욕으로 생긴 각종 생태 문제를 만화로 보여주는 그래픽 노블이다. 환경 및 사회 문제를 다루는 온라인 탐사 매체를 운영하는 프랑스 저널리스트 위고 클레망이 글을 썼다. 그림은 유망한 신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프랑스 만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도미니크 메르무 등이 그렸다. 고래 학살을 즐기는 페로 제도, 플라스틱 쓰레기로 꽉 찬 인도네시아 레콕의 하천, 빙하가 녹고 있는 북극 스발바르제도…. 세계 환경 파괴의 현장을 거침없이 누빈 저널리스트의 경험이 다채롭고 섬세한 그림과 잘 어우러진다. 책은 주로 인간의 동물 학대 실태를 고발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프랑스에선 인간의 먹거리가 되기 위해 도살당하는 동물이 하루 약 300만 마리에 이른다. 생존과 관계없이 재미를 위해 하는 사냥도 빈번하다. 사냥꾼들은 “사냥으로 생물 개체수를 조절하는 순기능이 있다”고 항변하지만, 저자는 직접 취재한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말을 토대로 이를 반박한다. 사냥으로 살상되는 조류의 대부분은 인간이 사육한 것이다. 멧돼지 역시 일부러 풀어주고 곡물 사료까지 공급하면서 사냥감으로 키운다. 저자는 “우월한 지능을 가진 인간이 다른 동물을 지배해도 된다”는 인간 중심적 사고의 맹점을 날카롭게 꿰뚫어 본다. 동물성 식품 소비, 일회용품 등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자는 합리적인 대안도 제시한다. 귀여운 동물 그림 덕에 무거운 주제가 주는 긴장감은 다소 완화되지만, “생물 다양성이 없다면 미래를 생각할 수 없다”는 간절한 호소가 마음에 무겁게 와닿는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한국 음악방송 최초로 따라 부를 수 없는 곡.” 15일 방영된 한 지상파 음악방송의 유튜브 영상에 달린 댓글이다. 이날 방송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의 ‘비트박서(Beatboxer)’ 윙(본명 김건호·28)이 출연해 자작곡 ‘도파민(Dopamine)’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기대만큼 무대는 독특했다. 화려한 반주도 무대를 채우는 댄서도 없었지만, 그의 ‘입’은 무대를 꽉 채웠다. 선명한 베이스, 드럼, 날카로운 기계음은 립싱크(녹음을 틀고 입만 맞추는 것)가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멋져서 따라 하다 세계적 뮤지션으로 잘 만든 일렉트로닉댄스뮤직(EDM)을 방불케 하는 음악에 반응은 뜨거웠다. “마이크만 있어도 되는 무대” “방송 나와서 못하는 소리가 없네” 등 재치있는 댓글들이 잇따랐다. 유튜브 조회수도 26일 기준 176만 회로 같은 날 출연한 가수 중 가장 높았다. 25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 응한 윙은 “조금씩 국내에서도 인기를 실감 중”이라며 쑥스러워했다. 무대에서 선보인 현란한 사운드와 달리 평상시 목소리는 무척 맑고 밝았다. “저를 좋아해 주시는 주변 분들이 더 기뻐해 주시니까 좋긴 하더라고요. 요샌 인스타 DM(다이렉트 메시지) 확인하는 게 재밌고 행복해요.” 비트박스는 입의 구강 구조와 호흡기 등의 진동과 마찰을 이용해 만든 음으로 연주하는 기법. 국내에선 2004년 래퍼 후니훈이 한 광고에서 “비트박스에 필요한 건 ‘북치기 박치기’”라는 유행어를 남기며 유명해졌다. 하지만 힙합과 EDM 등에 밀려 대중적 인기를 끌진 못했다. 윙은 “사촌형이 비트박스를 하는 모습이 멋져 보여 이 길을 걷게 됐다”고 했다. 실은 그는 이미 세계에서 손꼽히는 비트박서다. 고교 1학년이던 2013년 국내 대회에 처음 출전한 뒤 2018년 아시아 비트박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2023년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비트박스 대회 ‘그랜드 비트박스 배틀(Grand Beatbox Battle·GBB)’ 솔로 부문에서 3위를 차지했다. 방송에서 선보인 곡 ‘도파민’도 세계대회 우승을 목표로 만든 곡이다. “2년 전부터 GBB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계속 못 하니까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야식이나 쇼츠처럼 주변의 ‘쉬운 도파민’을 제거하고, 노력해서 성취하는 ‘어려운 도파민’을 떠올리면서 소리를 만들었어요.”● “비트박스로 그래미 받고 싶어” ‘멋져 보여서’ 시작했다지만, 비트박스를 프로로 이어간 원동력은 뭘까. “지금도 멋있어서요. 제가 걱정을 미리 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계속 했어요. 비트박스는 돈도 안 들고, 언제 어디서나 ‘입’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매력적이거든요.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는 건강한 취미이기도 해요. 음악적으로 감수성도 풍부해집니다. 너무 어렵게 여기지 말고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어요.” 윙이 활동 중인 5인조 비트펠라(비트박스+아카펠라) 크루 ‘비트펠라하우스’는 2022년 10월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현재 구독자 654만 명을 넘어섰다. 한 멤버가 소리를 냈을 때 똑같이 따라 하지 못하면 벌칙을 받는 ‘TRY THIS(트라이 디스)’ 등의 코너가 인기를 얻었다. 비트박스와 아카펠라로 블랙핑크나 아이브 등의 노래를 부른 ‘K팝 메들리’ 영상도 반응이 뜨거웠다. 윙은 올해 말에 열릴 GBB에서 다시 한 번 우승에 도전한다. 지금도 연습 도중 인터뷰에 응했다는 그는 야심찬 장기 목표도 갖고 있다. “베토벤 같은 위대한 음악가가 지금은 없지만 역사엔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역사에 남는 비트박서’가 되고 싶어요. 비트박스로 그래미를 받거나 빌보드 차트에 들어가면 그렇게 평가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정말 ‘좋은 노래’를 만들고 싶다, 그 생각 하나뿐이었습니다.”(정태춘)“정태춘 씨의 글에 멜로디를 입힐 때마다 ‘이 사람은 참 (남들과) 다른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박은옥)‘한국 포크의 전설’ 정태춘(71)과 박은옥(68) 부부가 다음 달 12번째 정규 앨범 ‘집중호우 사이’를 발표한다. 부부는 25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앨범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중요하지 않다”라면서도 “많은 사람이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수줍게 소망을 전했다. 이번 앨범은 두 가인(歌人)의 데뷔 45주년을 기념하는 문학 프로젝트인 ‘노래여, 벽을 깨라’의 결과물 중 하나다. 정규 앨범으로는 2012년 발매한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이후 13년 만이다. 수록곡 10곡 가운데 8곡은 정태춘이, 2곡은 박은옥이 불렀다고 한다. 함께 부른 듀엣곡은 없다.앨범 발매 뒤 5월 17일 부산을 시작으로 대구와 울산, 서울 등에서 전국 콘서트 ‘나의 시, 나의 노래’를 개최한다. 책도 나온다. 앨범 수록곡 가사와 미발표 가사 20여 편을 실은 정태춘의 노래 시집 ‘집중호우 사이’와 그가 2010년 초부터 작업해 온 붓글과 산문을 함께 실은 책 ‘노래여, 노래여’도 각각 5, 6월에 출간된다.두 가수는 1978, 1979년 각각 ‘시인의 마을’과 ‘회상’으로 솔로 데뷔했다. 1980년 결혼한 뒤 음악적 동료이자 삶의 동반자로서 함께 활동하고 있다. 서정적이면서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한국적 포크를 추구하며 ‘사랑하는 이에게’(1984년) 등 여러 히트곡을 남겼다. 13년 만에 나온 이번 앨범은 원래 예정됐던 건 아니었다. “2019∼2021년 진행한 데뷔 40주년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영화가 제작됐을 때만 해도, 더는 새 노래를 내지 않으려 했어요. 그런데 내 안에서 노래가 나오더군요.”(정태춘) 그의 마음을 바꿔놓은 계기는 2016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미국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의 가사였다. 정태춘은 “노래에 관한 관심을 잃고 붓글에만 집중하고 있었는데, 도서관에 손녀를 데리고 갔다가 밥 딜런 가사집을 봤다”며 “이후 관련 평전과 소설을 전부 보면서 음악에 대한 자극을 받게 됐다”고 했다.평생 노래하며 45년째 무대에 서면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행복감’이라고 했다. “젊었을 때 느껴 보지 못했던 행복을 나이 들어서 더 느낍니다. 다시 태어나면 또 음악인이고 싶다고 생각해요.”(박은옥)이번 앨범 신곡엔 세상을 비추는 이야기들을 시적 울림으로 담아내는 두 사람의 음악적 특질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간담회에 해설자로 참석한 오민석 단국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는 “정태춘의 이번 앨범은 한국 대중가요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다”고 극찬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정말 ‘좋은 노래’를 만들고 싶다, 그 생각 하나였습니다.”(정태춘)“정태춘 씨의 글에 멜로디가 입혀졌을 때 ‘이 사람은 참 (남들과) 다른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박은옥)●13년 만의 정규 12집올해로 함께 활동한 지 45년이 된 ‘한국 포크의 전설’ 정태춘(71)과 박은옥 씨(68) 부부가 다음 달 12번째 정규앨범 ‘집중호우 사이’를 발매한다. 25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들을 만났다. 이번 앨범은 2012년 발매한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이후 13년 만의 정규 앨범이다. 수록곡 10곡 중 8곡을 정 씨가, 2곡을 박 씨가 불렀다. 앨범 발매는 두 사람의 데뷔 45주년을 기념하는 문학 프로젝트인 ‘노래여, 벽을 깨라’의 일환이다. 새 앨범과 함께 ‘나의 시, 나의 노래’라는 이름의 전국 순회공연도 펼친다. 5월 17일 부산을 시작으로 24일 대구, 6월 7일 울산, 17~23일 서울 등에서 열리는 상반기 공연을 시작으로 2026년까지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정 씨는 “앨범에 어떤 평가가 내려지든 중요치 않고, 많은 사람에게 노래가 전달되면 좋겠다”고 말했다.새롭게 나오는 책과 전시도 만나볼 수 있다. 새 앨범 수록곡 가사와 미발표 가사 20여 편을 실은 노래 시집 ‘집중호우 사이’와 2010년 초부터 정태춘이 작업해 온 붓글 작품과 산문을 함께 실은 책 ‘노래여, 노래여’와 각각 5, 6월에 발매된다. 6월 초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노래여, 노래여’라는 제목의 전시도 함께 열린다. ●서정적 ‘한국 포크’의 대명사정 씨와 박 씨는 1978, 1979년 각각 ‘시인의 마을’과 ‘회상’으로 솔로 데뷔했다. 1980년 결혼한 후 음악적 동료이자 삶의 동반자로서 함께 활동하고 있다. 서정적이면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한국적 포크를 추구하며 ‘시인의 마을(1984)’ ‘사랑하는 이에게(1984)’ 등 주옥같은 노래를 남겼다. 소극장 순회 공연을 통해 노래로 참여하는 실천가의 면모를 보였고, 비합법 음반 ‘아, 대한민국(1990)’ 발표는 1996년 대중가요를 통제하던 사전심의제도 폐지로 이어졌다.정 씨는 “새 노래를 내지 않으려 했는데, 노래가 내 안에서 나왔다”고 밝혔다. 2004년 그가 세상에 지쳐 절필한 후 깜짝 발매했던 2012년 11집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는 본래 일회성 음반이었다. 아내 박은옥을 위해 노래를 지어주기 위한 작품으로, 원래는 다시 새 노래를 낼 생각이 없었다. 그를 달라지게 한 것은 201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이었다. 그는 “노래에 관한 관심을 잃어버렸을 무렵 도서관에 손녀를 데리고 갔다가 밥 딜런 가사집을 봤다”라며 “이후 관련 평전과 소설을 전부 보면서 음악에 대한 영감을 얻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 씨도 “나이 들어서도 ‘노래하는 사람’이라 행복하다고 느낀다. 다시 태어나면 또 음악인이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황량함에서 희망으로앨범 수록곡들은 창작 공백기에 써뒀던 시와 단문들, 붓글의 텍스트 등을 기반으로 한다. 세상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시적 울림으로 담아내는 두 사람의 음악적 특질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해 질 녘 들판을 날아가는 기러기를 그려낸 ‘기러기’, 산길 끝 작은 간판을 묘사한 ‘도리 강변에서’는 어딘가 황량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참혹한 장마 후 햇살을 맞을 준비를 하는 어린 농게들을 그린 ‘집중호우 사이’, 세상에 눈물이 넘쳐도 저녁 숲으로 돌아오는 동백을 표현한 ‘폭설, 동백의 노래’ 등은 현실을 넘어선 희망을 노래한다. 간담회에 해설자로 참석한 오민석 단국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는 “밥 딜런이 음악인이면서 시인인 것과 마찬가지로 정태춘의 음악 역시 한국 대중가요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다”고 말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소속사 어도어와 전속계약 관련 분쟁을 벌이다가 법원의 판단으로 독자적 활동에 제동이 걸린 걸그룹 뉴진스(사진) 멤버들이 잠정적인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어도어 측은 “일방적인 선언이 안타깝다”며 “멤버들과 소통하고 싶다”고 밝혔다. 뉴진스 멤버들은 23일 홍콩 아시아월드 엑스포에서 열린 ‘콤플렉스콘(ComplexCon)’ 공연이 끝날 무렵에 “오늘 무대가 당분간 마지막 공연이 될 수 있다”며 “저희는 법원의 결정을 준수해 모든 활동을 멈추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법원 결정에 따라 독자 활동이 어려워졌으나, 어도어로 돌아가지도 않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수석부장판사 김상훈)는 21일 어도어가 뉴진스 멤버들을 상대로 낸 ‘소속사 지위 보전 및 광고 계약 체결 금지 등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인용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11월 뉴진스가 전속계약 해지를 통보하자, 어도어는 ‘전속계약 유효 확인 소송’과 1심 판결 선고 전까지 “독자적 활동을 막아 달라”는 취지의 가처분 신청을 냈다. 멤버들은 이날 홍콩 공연에서 새롭게 내세웠던 팀명 ‘NJZ(엔제이지)’와 뉴진스를 모두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공연장 발광다이오드(LED) 화면에는 ‘NJZ’로 표시됐다. 멤버들은 뉴진스의 히트곡 대신 각자의 솔로 무대와 신곡 ‘피트 스톱(Pit Stop)’만 선보였다. 어도어는 현장에 관계자를 파견했으나, 멤버들을 만나진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어도어는 “법원 결정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활동 중단을 선언한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빠른 시간 안에 멤버들과 만나 미래에 대해 논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뉴진스 멤버 측은 앞서 법원 결정 직후 “가처분은 잠정적 결정”이라며 “이의 제기 절차를 통해 추가 쟁점을 다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오래된 옛얘기겠지 했는데…, 나도 잊고 지내던 ‘청춘’을 동네 카페에서 마주한 느낌이에요.”가수 김창완(71)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글’로 표현하며 생애를 지내 왔다. 1977년 전설적인 록밴드 ‘산울림’으로 데뷔한 뒤 48년 동안 싱어송라이터로서 노랫말을 지어 왔다. 30여 년간 라디오 진행의 오프닝 원고도 항상 직접 썼다. 2016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처럼, 김창완 역시 음악과 함께 글로 다진 길에서 우리의 고단한 삶을 위로해온 예술가다.19일 출간한 책 ‘이제야 보이네’(다산북스)는 1995년 그가 썼던 첫 산문집을 다시 다듬고 손봐서 내놓은 결과물이다. 딱 30년 만에 새로 단장한 산문집을 핑계로 21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낮술 한잔’을 청해봤다.● “남루한 노래도 남루하지 않게”이번 산문집은 원래 ‘집에 가는 길’(문예마당)이란 제목으로 출간됐었다. 이후 2005년 ‘이제야 보이네’(황소자리)로 개정판을 냈고, 다시 20년 만에 새 글 8편과 그림 20점을 더해 펴냈다. 30년의 세월을 관통한 산문집은 취업을 걱정하던 청춘기부터 가족에 대한 애틋함을 담은 장년기까지 일상에서 느낀 삶의 소중함이 오롯이 담겼다.“예전 원고들을 정리하다 보니 지나온 청춘이 선명하게 떠올랐어요. 나도 까맣게 잊고 있던 옛 모습을 다시 알게 돼 반가웠죠, 하하.”가수와 배우 등 여러 방면으로 활동하는 김창완은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 ‘닮고 싶은 어른’ 중 한 명으로 자주 거론된다. 2023년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보여준 69세 가수의 깊은 내공에 젊은이들은 열광했다. 지난해 책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웅진지식하우스)도 “매일 만들어지는 불완전한 동그라미 같은 하루도 아름답다”며 청춘을 위로했다.“그렇게 불린다고 해서 정말 그런 사람이 된 것은 아니에요. 다만 할 수 있는 위로를 하려고 노력하는 거죠.”그는 “위로와 격려에 목말라 있는 청춘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며 “그들의 결핍이 때론 희망의 씨앗이 되고, 인간의 근본을 파고드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했다.개정판에 새로 실린 시 ‘내 노래’를 보면, 반세기를 가수로 살아온 그의 음악에 대한 애틋함이 절절하다. ‘50년 동안 부른 남루한 노래/소매가 나달나달하고 단추가 떨어지고 … 그걸로 애도 키우고/그걸로 봉양도 하던/남의 얘기 같은 내 노래.’김창완은 “내 옛 노래를 부르다 보면 가끔 ‘이미 남루해진 노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며 “그 노래를 남루하지 않게 부르려고 하는 데 의미가 있지 않겠냐”고 했다.● “불안도 허탈함도 아름다울 수 있어”이번 산문집에선 그간 김창완이 좀처럼 내보이지 않았던 ‘연한 속살’도 드러난다. 30년 가까이 투병하셨던 아버지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나 2008년 세상을 떠난 막냇동생(김창익)을 잃은 상실의 아픔도 배어 있다.뭣보다 그의 노랫말처럼, 책은 일상 속의 먹먹한 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해 냈다. 짜장면 한 그릇을 먹은 뒤 빨리 일어서는 무뚝뚝한 아들에게 어머니는 ‘긴 이별 앞에 있는 사람처럼’ 이것저것 묻는다. 그는 “길고 긴 인생에서 짜장면 한 그릇의 순간. 이 짧은 순간이나마 몇 번이나 될지”라며 그 시간을 회상한다.“90세가 된 어머니를 보면 지금도 예뻐요. 공연도 보러 오실 정도로 건강하시니까 항상 고맙고 장하다고 느낍니다.”하지만 김창완은 오래된 원고 속에서 흘러가 버린 삶에 집착하는 편은 아니다. 다가올 일상에 더 많은 의미를 둔다. 그는 “책에 있는 것은 내가 지나온 흔적일 뿐”이라며 “책 바깥에 있는 나의 부끄러움, 두려움, 근면과 목마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떠올렸다.“삶의 방향성을 잃었다면 ‘일상 속 아름다움’을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며 자신을 가두거나, ‘나는 안 맞아’라며 미리 포기할 필요 없어요. 허탈함 속의 나를 발견하거나 괜한 불안을 느끼는 것도 일상 속 아름다움 아닐까요.”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소속사 어도어와 전속계약 관련 분쟁을 이어가고 있는 걸그룹 뉴진스가 활동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 어도어는 이에 대해 “일방적 활동 중단 선언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빠른 시간 안에 아티스트와 만나고자 한다”고 밝혔다.24일 가요계에 따르면 뉴진스는 23일 오후 7시 30분(현지시간) 홍콩 아시아월드 엑스포에서 열린 ‘콤플렉스콘(ComplexCon)’에 출연했다. 이날 뉴진스는 자신들이 새롭게 내세웠던 활동명 ‘NJZ(엔제이지)’와 뉴진스를 모두 언급하지 않고 각자의 이름을 소개했다. 뉴진스 이름으로 발표됐던 곡도 부르지 않고, 각자 솔로 무대만 가진 뒤 미공개 신곡 ‘피트 스톱(Pit Stop)’만을 선보였다. 다만 공연장 발광다이오드(LED)에는 팀명 NJZ가 표출됐고, 공연장 인근에서 NJZ 이름으로 나온 굿즈도 판매됐다.무대를 마친 멤버들은 공연이 끝날 무렵에 “사실 오늘 무대가 당분간 마지막 공연이 될 수 있다”며 “저희는 법원의 결정을 준수해 모든 활동을 멈추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버니즈(뉴진스 팬덤)가 속상할 수 있지만 이것이 우리를 지키는 일이다”며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우리는 돌아온다”고 발했다. 이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김상훈 수석부장판사)이 21일 어도어가 뉴진스 멤버들을 상대로 낸 ‘소속사 지위 보전 및 광고 계약 체결 금지 등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인용 결정을 내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당시 “뉴진스의 주장과 자료만으로는 어도어가 이 사건의 전속 계약상 중요한 의무를 위반함으로써 해지 사유가 발생했다거나, 그로 인해 상호 간의 신뢰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됐다는 점이 충분히 소명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어도어의 손을 들어줬다.뉴진스는 법원의 결정에 따라 본안 소송 1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어도어와 협의 없이 독자적 활동을 할 수 없게 됐다. 이번 활동 중단 선언은 멤버들이 가처분 인용에도 불구하고 어도어로 돌아가 활동을 하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어도어는 이번 홍콩 공연에 스태프를 현지 파견해 소속사로서 멤버들을 매니지먼트하려 했다. 이미 티켓이 판매됐고, 가처분 인용 후 공연까지 시간이 촉박한 점을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어도어 스태프들은 현장에서 뉴진스 멤버들과 만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어도어는 뉴진스의 활동 중단 발표에 대해 “법원 결정에도 불구하고 뉴진스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공연을 강행한 것과 일방적으로 활동 중단을 선언한 데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유효한 전속계약에 따라 뉴진스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빠른 시간 안에 아티스트와 만나 미래에 대해 논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기존 소속사인 가요기획사 어도어와 전속계약 분쟁을 벌이고 있는 걸그룹 ‘뉴진스’(새 활동명 NJZ)가 독자적으로 활동해서는 안 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이로써 멤버 5명이 지난달 상표권까지 출원하며 NJZ로 활동하려던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김상훈 수석부장판사)는 21일 어도어가 뉴진스 5명을 상대로 낸 ‘기획사 지위보전 및 광고계약 체결 등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인용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11월 뉴진스 5명은 어도어 측에 전속계약 해지를 통보한 뒤, NJZ로 활동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어도어의 중대한 계약 위반”으로 전속계약이 해지됐다는 이유였다. 이에 어도어는 지난해 12월 “전속계약이 유효하게 존속한다는 점을 법적으로 확인받고자 한다”며 법원에 전속계약 유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올 1월엔 멤버 5명을 상대로 전속계약 소송 1심 판결 선고까지 ‘어도어의 승인·동의 없이 독자적으로 광고 계약 등을 체결하는 것을 막아 달라’는 취지의 가처분 신청도 냈다. 어도어는 판결 직후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에 감사한다”며 “조속히 멤버들과 만나 진솔한 대화의 시간을 갖고, 소속사로서 향후 활동 지원에 책임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원의 판단으로 멤버들의 NJZ 활동은 제동이 걸리게 됐다. 이들은 23일 NJZ로 새로운 노래를 발표하고, 같은 날 홍콩에서 열리는 축제인 ‘콤플렉스콘’에서 신곡 무대도 가질 예정이었다. 멤버 측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나 가처분은 잠정적 결정”이라며 “이의 제기 절차를 통해 추가 쟁점을 다툴 것이며, 홍콩 행사는 예정대로 참석하겠다”고 밝혔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

“편지에서는 전화보다 엄마 목소리가 더 가깝게 들렸다. 나는 내 방 책상에 앉아, 문간에 서서, 침대에 누워 편지를 읽었다.” 드라마 ‘파친코’ 작가진으로 참여한 경력이 있는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 겸 번역가의 에세이다. 저자는 미국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는 아버지로 인해 미국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아버지가 좋은 조건으로 한국 회사의 스카우트를 받으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부모가 저자와 오빠만 남겨둔 채 한국으로 돌아간 것이다. 가족의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한 외톨이 소녀에겐 일주일에 한 번씩 엄마가 보내준 편지만이 유일한 위안이 됐다. 책에는 어머니가 저자에게 보낸 편지 10통의 사진과 저자의 가족사를 다룬 글 10편이 번갈아 나온다. 한글을 잘 모르는 딸을 위해 중간중간 괄호를 치고 영어를 적어 넣는 어머니의 섬세함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이모는 엄마가 우리 은지 있는 게 너무 부러운(envy)가 봐.” 반면 편지를 읽는 딸의 심정은 조금 더 복잡하다. 부모의 부재와 방치로 다친 마음과 부모의 돌봄을 갈구하는 이중적인 마음이 뒤섞여 드러난다. 외로운 청소년기에 겪었던 자살 충동과 섭식 장애를 묘사하는 덤덤한 문체가 더 마음을 저릿하게 한다. 어머니의 편지가 유일한 ‘치료제’였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결코 아니었다. 책은 개인적 아픔을 솔직히 보여주지만 개인사에만 그치지 않는다. 어머니와 할머니, 때론 그 윗대까지 확장되는 이야기 속에서 한국의 굴곡진 현대사도 드러난다. 저자의 증조할아버지는 제주4·3사건에 연루돼 돌팔매질로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남편의 바람기로 평생 상처받은 삶을 살던 외할머니 이야기에서도 여성이 부당한 차별에 시달려야 했던 시대가 읽힌다. 2020년 미국에서 먼저 출간돼 워싱턴주 도서상, 퍼시픽 노스웨스트 도서상, AAAS 도서상을 받았다. 이주자의 정체성과 삶을 다룬 ‘디아스포라 문학’과 청소년기 내면의 갈등을 이겨낸 단단한 ‘자기 고백’이란 두 면모를 모두 지녔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기존 소속사인 가요기획사 어도어와 전속계약 분쟁을 벌이고 있는 걸그룹 ‘뉴진스’(새 활동명 NJZ)가 독자적으로 활동해서는 안 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이로써 멤버 5명이 지난달 상표권까지 출원하며 NJZ로 활동하려던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됐다.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김상훈 수석부장판사)는 21일 어도어가 뉴진스 5명을 상대로 낸 ‘기획사 지위보전 및 광고계약 체결 등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인용 결정을 내렸다.지난해 11월 뉴진스 5명은 어도어 측에 전속계약 해지를 통보한 뒤, NJZ로 활동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어도어의 중대한 계약 위반”으로 전속계약이 해지됐다는 이유였다.이에 어도어는 지난해 12월 “전속계약이 유효하게 존속한다는 점을 법적으로 확인받고자 한다”며 법원에 전속계약 유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올 1월엔 멤버 5명을 상대로 전속계약 소송 1심 판결 선고까지 ‘어도어의 승인·동의 없이 독자적으로 광고 계약 등을 체결하는 것을 막아 달라’는 취지의 가처분 신청도 냈다. 이후 멤버 5명의 작사, 작곡, 가창 등을 포함한 연예계 활동을 금지해 달라며 가처분 신청 범위를 넓히기도 했다.어도어는 판결 직후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에 감사한다”며 “조속히 멤버들과 만나 진솔한 대화의 시간을 갖고, 소속사로서 향후 활동 지원에 책임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법원의 판단으로 멤버들의 NJZ 활동은 제동이 걸리게 됐다. 이들은 23일 NJZ로 새로운 노래를 발표하고, 같은 날 홍콩에서 열리는 축제인 ‘콤플렉스콘’에서 신곡 무대도 가질 예정이었다. 멤버 측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나 가처분은 잠정적 결정”이라며 “이의 제기 절차를 통해 추가 쟁점을 다툴 것이며, 홍콩 행사는 예정대로 참석하겠다”고 밝혔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는 ‘평범한 공연’이 아니다. 바닥은 물론이고 벽과 천장까지 모든 공간이 무대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등장한 무용수들은 와이어를 타고 하늘을 날고, 물이 담긴 수조 속에서 연기를 펼친다. 배우들이 지정석 없이 서 있는 관객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함께 어울려 춤을 춘다. 관객과의 소통으로 몰입을 유도하는 이머시브(Immersive)형 공연 ‘푸에르자 부르타(FUERZA BRUTA·푸에르사 브루타)’의 새 시리즈 ‘아벤(Aven)’이 18일부터 서울 성동구 성수문화예술마당 FB씨어터에서 공연된다. 스페인어로 ‘잔혹한 힘’이란 뜻의 푸에르자 부르타는 2005년부터 ‘미친 예술 공연(크레이지 아트 퍼포먼스)’을 표방하며 세계에서 공연하는 아르헨티나 무용단 및 퍼포먼스를 일컫는다. 현대인의 스트레스와 분노를 표출한 ‘웨이라(바람)’등 전작들은 세계 37개국의 68개 도시에서 관객 680만여 명을 끌어모았다. 한국에서도 2013년 초연된 뒤 30만 명 이상 관람했다.‘모험(Adventure)’과 ‘천국(Heaven)’이 결합된 아벤은 이전 공연과 달리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를 발산한다. 파비오 다킬라 총괄 코디네이터는 공연 첫날 열린 간담회에서 “이 공연은 사람들의 소통이 단절됐던 팬데믹 시기에 기획됐다”며 “사람들이 다시 소통하며 인간성을 회복하고, 행복감을 되찾자는 내용”이라고 소개했다. 디에고 이그나시오 페르난데스 마요라 무대 감독은 “관객들이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즐기는 자유로운 마음으로 참여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아벤’은 약 1시간 10분 동안 무용수 14명이 공연장 전체를 누비며 관객들의 정신을 쏙 빼놓는다. 크레인과 와이어를 활용해 ‘공중전’을 펼치고, 지상에선 대형 트레드밀을 달리며 ‘런웨이’를 만든다. 특히 천장에 매달린 커다란 지구 모형을 달리는 퍼포먼스가 인상적이다. 각자 지구를 껴안다가 배우들끼리 손을 맞잡는 장면이 마치 팬데믹으로 상처받은 인류를 위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폭포와 나비, 고래 등 전작보다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장치들을 많이 활용한 것도 눈길을 끈다. 이 공연은 역시 ‘보는 공연’보다 ‘참여하는 공연’에 가깝다. 배우들은 자유롭게 서 있는 관객들과 함께 ‘동대문을 열어라’ 게임을 하고, 춤과 하이파이브 등 스킨십을 유도했다. 제작진은 “볼 키스, 포옹으로 소통하는 아르헨티나와 달리 한국 문화에 맞는 소통 방법을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일반 공연과 달리 사진과 영상 촬영, 소셜미디어 업로드가 자유로운 것도 장점이다. 6월 22일까지.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는 ‘평범한 공연’이 아니다. 바닥은 물론이고 벽과 천장까지 모든 공간이 무대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등장한 무용수들은 와이어를 타고 하늘을 날고, 물이 담긴 수조 속에서 연기를 펼친다. 배우들이 지정석 없이 서 있는 관객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함께 어울려 춤을 춘다.관객과의 소통으로 몰입을 유도하는 이머시브(Immersive)형 공연 ‘푸에르자 부르타(FUERZA BRUTA·푸에르사 브루타)’의 새 시리즈 ‘아벤(Aven)’이 18일부터 서울 성동구 성수문화예술마당 FB씨어터에서 공연된다.스페인어로 ‘잔혹한 힘’이란 뜻의 푸에르자 부르타는 2005년부터 ‘미친 예술 공연(크레이지 아트 퍼포먼스)’을 표방하며 세계에서 공연하는 아르헨티나 무용단 및 퍼포먼스를 일컫는다. 현대인의 스트레스와 분노를 표출한 ‘웨이라(바람)’ 등 전작들은 세계 37개국의 68개 도시에서 관객 680만여 명을 끌어모았다. 한국에서도 2013년 초연된 뒤 30만 명 이상 관람했다.‘모험(Adventure)’과 ‘천국(Heaven)’이 결합된 아벤은 이전 공연과 달리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를 발산한다. 파비오 다킬라 총괄 코디네이터는 공연 첫날 열린 간담회에서 “이 공연은 사람들의 소통이 단절됐던 팬데믹 시기에 기획됐다”며 “사람들이 다시 소통하며 인간성을 회복하고, 행복감을 되찾자는 내용”이라고 소개했다. 디에고 이그나시오 페르난데스 마요라 무대 감독은 “관객들이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즐기는 자유로운 마음으로 참여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아벤’은 약 1시간 10분 동안 무용수 14명이 공연장 전체를 누비며 관객들의 정신을 쏙 빼놓는다. 크레인과 와이어를 활용해 ‘공중전’을 펼치고, 지상에선 대형 트레드밀을 달리며 ‘런웨이’를 만든다. 특히 천장에 매달린 커다란 지구 모형을 달리는 퍼포먼스가 인상적이다. 각자 지구를 껴안다가 배우들끼리 손을 맞잡는 장면이 마치 팬데믹으로 상처받은 인류를 위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폭포와 나비, 고래 등 전작보다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장치들을 많이 활용한 것도 눈길을 끈다.이 공연은 역시 ‘보는 공연’보다 ‘참여하는 공연’에 가깝다. 배우들은 자유롭게 서 있는 관객들과 함께 ‘동대문을 열어라’ 게임을 하고, 춤과 하이파이브 등 스킨십을 유도했다. 제작진은 “볼 키스, 포옹으로 소통하는 아르헨티나와 달리 한국 문화에 맞는 소통 방법을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일반 공연과 달리 사진과 영상 촬영, 소셜미디어 업로드가 자유로운 것도 장점이다. 6월 22일까지.사지원 기자 4g1@donga.com}

1982년 발표돼 국민 가요로 자리 잡은 노래 ‘아파트’를 부른 가수 윤수일 씨(70·사진)가 11년 만에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소속사 누리마루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17일 윤 씨는 그의 새 앨범 ‘2025 우리들의 이야기’를 발표했다. 이번 앨범에는 타이틀곡 ‘꿈인지 생신지’를 비롯해 ‘사랑의 세레나데’ ‘살아 있다는 것으로’ 등 윤 씨가 직접 작사 및 작곡한 10곡이 담겼다. 윤 씨는 이번 앨범을 발표하며 “우여곡절을 겪어 온 삶과 사랑을 진정성 있게 노래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의 시그니처 스타일인 ‘록 트로트’ 장르에 클래식을 접목해 고급스러운 느낌을 더했다. ‘윤수일 밴드’의 리더 신용진 등 멤버들이 편곡 작업을 도왔다. 1977년 데뷔한 윤 씨는 밴드 음악을 바탕으로 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꾸준히 지켜 왔다. 지난해 블랙핑크 로제의 ‘아파트(APT.)’가 세계적으로 히트하며 그의 ‘아파트’도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1982년 발표돼 국민 가요로 자리 잡은 노래 ‘아파트’를 부른 가수 윤수일 씨(70·사진)가 11년 만에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소속사 누리마루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17일 윤 씨는 그의 새 앨범 ‘2025 우리들의 이야기’를 발표했다. 이번 앨범에는 타이틀곡 ‘꿈인지 생신지’를 비롯해 ‘사랑의 세레나데’, ‘살아 있다는 것으로’ 등 윤 씨가 직접 작사 및 작곡한 10곡이 담겼다. 윤 씨는 이번 앨범을 발표하며 “우여곡절을 겪어온 삶과 사랑을 진정성 있게 노래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의 시그니처 스타일인 ‘록 트로트’ 장르에 클래식을 접목해 고급스러운 느낌을 더했다. ‘윤수일 밴드’의 리더 신용진 등 멤버들이 편곡 작업을 도왔다. 1977년 데뷔한 윤 씨는 밴드 음악을 바탕으로 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꾸준히 지켜 왔다. 지난해 블랙핑크 로제의 ‘아파트(APT.)’가 세계적으로 히트하며 그의 ‘아파트’도 다시 한번 주목받았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노래를 통해 여러분이 안고 있는 슬픔과 괴로움, 분노, 기쁨 등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대변자’로 무대에 서고 싶어요.” 데뷔 25년 차인 일본 가수 나카시마 미카(42)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J팝 가수 중 한 명이다. 가수 박효신이 리메이크한 나카시마의 대표곡 ‘눈의 꽃’은 임수정과 소지섭이 출연한 한국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년) 배경음악(OST)으로 쓰이며 큰 인기를 누렸다. 5월 10, 11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첫 내한 콘서트를 펼칠 예정인 나카시마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나카시마는 “이전부터 ‘한국에서 라이브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팬데믹으로 해외에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드디어 한국 팬들을 만날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그동안 이벤트성 공연으로 내한한 적은 있으나 한국에서 단독 콘서트를 갖는 건 처음이다. 원래 공연은 10일 하루만 예정돼 있었지만, 표가 빠르게 매진되는 바람에 11일 추가 공연이 결정될 정도로 예매 열기가 뜨거웠다. 2차 공연 티케팅은 27일 낮 12시에 진행된다. 나카시마는 아이묜, 요네즈 겐시 등 최근 한국에서 불고 있는 J팝 가수 열풍보다도 한참 앞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에서 사랑받았다. ‘눈의 꽃’ 외에도 민효린, 바다, 에일리 등 여러 한국 아티스트가 그의 노래를 리메이크했다. 올 초에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 가수들과 함께 자신의 히트곡을 불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 가수분이 커버해주는 라이브를 들을 기회가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에 너무 기뻤습니다. 정말 소중하게 불러주는 게 마음으로 전달돼 ‘음악을 통해 연결돼 있다’고 느꼈어요. 많이 감동했습니다.” 그는 ‘나카시마 감성’이 한국에서 인기인 이유에 대해서는 “음악에 언어의 벽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2001년 싱글 ‘STARS(스타스)’로 데뷔한 나카시마는 일본에서도 24년간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구축해 온 아티스트로 꼽힌다. 특유의 저음 가성으로 애절한 발라드를 소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강렬한 로커 같은 이미지로 변신하기도 했다. 순정 만화가 원작인 영화 ‘나나’(2005년)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하며 불렀던 ‘GLAMOROUS SKY(글래머러스 스카이)’도 인기였다. 2022년엔 처음으로 전곡을 직접 프로듀싱한 앨범 ‘I(아이)’를 발매하기도 했다. 나카시마는 “데뷔 때부터 장르와 상관없이 다양한 노래를 만들어 왔다”며 “데뷔 25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계속 도전하는 것’이 음악 활동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전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17일 진아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가수 태진아(71)가 신곡 ‘친구야 술 한잔하자’를 23일 낮 12시에 발표한다. 태진아가 직접 가사를 쓰고, 그의 아들인 이루가 작곡했다.이번 신곡은 박진감 넘치는 리듬과 격정적인 브라스 섹션이 인상적인 곡이다. 태진아의 허스키한 샤우팅 창법과도 조화롭게 섞인다. 노랫말은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가는 설레임을 표현했다. 힘든 세상사를 잊고 친구와 술 한잔 기울이고 싶은 현대인들의 고달픔을 노랫말에 담았다. 친구야 술 한잔하자가 실린 앨범에는 ‘당신의 눈물’, ‘애인’, ‘사랑은 아무나 하나’ 등 태진아의 기존 히트곡도 함께 수록된다. 태진아는 다음달 첫째 주부터 각종 TV 음악방송에 출연해 신곡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노래를 통해 여러분이 안고 있는 ‘슬픔’, ‘괴로움’, ‘분노’, ‘기쁨’ 등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대변자’로 앞으로도 무대에 서고 싶어요.”25년 차 일본 가수 나카시마 미카(42·사진)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J팝 가수 중 한 명이다. 5월 10, 11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첫 내한 콘서트를 펼치는 나카시마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그동안 이벤트성 공연으로 내한한 적은 있지만, 단독 콘서트를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원래 10일 하루만 공연이 예정돼 있었지만, 표가 빠르게 매진되는 바람에 11일 추가 공연이 결정될 정도로 예매 열기가 뜨거웠다. 2차 공연 티켓팅은 27일 낮 12시에 진행된다. 이에 대해 나카시마는 “이전부터 ‘한국에서 라이브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해외에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라며 “드디어 이 타이밍에 한국 팬들을 만날 수 있어 기쁘다”고 전했다.그는 아이묭, 요네즈 켄시 등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 불고 있는 J팝 가수 열풍보다도 한참 전인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사랑받았다. 가수 박효신이 리메이크한 나카시마의 대표곡 ‘눈의 꽃’은 임수정과 소지섭이 주연을 맡은 한국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의 OST로 사용돼 큰 인기를 누렸다. 이외에도 민효린, 바다, 에일리 등 여러 한국 아티스트들이 그의 노래를 리메이크해 부를 만큼 호소력 있는 ‘나카시마 감성’은 한국에 잘 맞아떨어졌다. 그는 “음악에 언어의 벽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 초에는 한 예능에 출연해 한국 가수들과 함께 자신의 히트곡을 불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한국 가수분이 커버해 주는 라이브를 듣는 기회는 지금까지 없어서 너무 기뻤습니다. 정말 소중하게 불러주는 게 전달되어 ‘음악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 감동했어요.”2001년 싱글 ‘STARS(스타스)’로 데뷔한 그는 24년간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구축해 온 아티스트로 꼽힌다. 특유의 저음 가성으로 애절한 발라드를 소화하는 것은 물론, 강렬한 락커 같은 이미지로의 변신도 자유롭다. 순정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나나(2005)’의 주인공을 맡아 부른 ‘GLAMOROUS SKY(글래머러스 스카이)’도 인기였다. 2022년에는 처음으로 전곡을 직접 프로듀싱한 앨범 ‘I(아이)’도 발매할 만큼 음악적 성취를 이뤘다. 그는 “데뷔 때부터 장르 없이 악곡을 만들어 왔다”라며 “데뷔 25주년을 눈앞에 두고도 ‘계속 도전하는 것’이 음악 활동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이 ‘제니’였다. 파워풀한 랩과 강렬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여전사. 분홍빛 야광봉을 흔드는 팬들을 보며 울먹이는 소녀. 그리고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겠다는 당당한 여성까지. 제니의 첫 단독 콘서트는 제니여서 제니다웠다. 15일 인천 중구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열린 콘서트 ‘더 루비 익스피리언스(The Ruby Experience)’는 7일 발매한 제니의 첫 솔로 정규앨범 ‘Ruby(루비)’처럼 반짝반짝했다. K팝 아이돌 멤버를 넘어 팝 아이콘이자 솔로 아티스트로 나아가는 제니의 다채로움이 가득했다. 이날 공연에서 제니는 앨범 ‘루비’에 수록된 15곡을 모두 선보였다. 6, 7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피콕 극장과 10일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이어진 무대. 다소 짧은 러닝 타임 등 아쉬운 점도 없진 않았지만,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 9000여 명을 시종일관 열광하게 만들었다.● “온 세상은 무대일 뿐”“All the world’s a stage, And all the men and women memerly players(온 세상은 무대일 뿐이고, 모든 사람은 단지 연극을 할 뿐이다).” 솔로 앨범에 영감을 줬다는 셰익스피어 희극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 속 한 문장과 함께 등장한 제니는 노래마다 천변만화했다. 붉은 상의 위에 털 재킷을 걸치고 거울 앞에서 ‘Start a war(스타트 어 워)’를 부를 땐 리듬 속에 우아하게 몸을 맡기는 숙녀 같았다.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여성에 대한 애정을 담은 노래인 ‘Mantra(만트라)’에선 화끈한 리더였다. 변화무쌍한 공연 흐름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했다. “자신의 본질을 사랑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댄스곡 ‘ZEN(젠)’에선 검정 파워숄더 재킷을 걸친 전사처럼 보였다. 하지만 다음 곡인 ‘Damn Right(댐라이트)’에선 곧바로 그루브한 R&B(알앤비) 감성을 물씬 풍겼다. 하이라이트는 ‘Like Jennie(라이크 제니)’와 ‘with the IE(위드 디 아이이)’ ‘ExtraL(엑스트라엘)’까지 3곡을 연달아 소화한 무대였다. 힙합 기반의 댄스곡 퍼레이드는 이번 앨범에서 제니가 추구하는 지향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특별한 무대 장치는 없었지만, 제니의 퍼포먼스는 그 자체만으로 몰입하기 충분했다. 특히 “잘난 게 죄니”라는 ‘라이크 제니’의 날카로운 한글 랩은 귀에 쏙쏙 꽂혔다. ‘위드 디 아이이’에선 마이크를 뚫는 성량도 빛났다.● 70분 러닝타임은 아쉬워 “정말 울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한테 무한한 사랑만 받았을 때 그걸 너무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11곡을 부른 뒤에야 처음으로 말문을 연 제니는 팬들에 대한 고마움에 끝내 울컥했다. 하지만 소녀 같은 말투로 숨돌리는 것도 잠시. “공연 모드로 돌아가겠다”며 프로답게 나머지 곡들을 선보였다. 마지막 곡 ‘twin(트윈)’도 여운이 깊었다. 오롯한 기타 연주에 맞춰 친구를 그리워하는 애틋한 감성을 차곡차곡 실어냈다. 마지막으로 제니는 “언제나 좋은 음악을 하는 좋은 사람 제니일테니 지켜봐 달라”고 했다. 다만 이번 공연은 정규 앨범 발매에 맞춰 선보인 ‘쇼케이스성’ 공연임을 감안해도, 약 1시간 10분에 그친 러닝타임은 아쉬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티켓 가격이 최소 15만 원가량인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무대를 넓게 사용하지 않는 연출도 제니의 시원시원한 퍼포먼스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노출 논란이 벌어졌던 미국 공연과 달리, 국내 공연은 비교적 ‘얌전한’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인천=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모두 제니였다. 분홍빛 야광봉을 흔드는 팬들을 보며 울먹인 ‘소녀’도, 파워풀한 랩과 강렬한 퍼포먼스를 선보인 ‘여전사’도,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을 사랑하자는 각오를 전달하는 ‘당당한 여성’도. 15일 오후 인천 중구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열린 제니의 첫 단독콘서트 ‘The Ruby Experience(더 루비 익스피어리언스)’에선 K팝 스타 블랙핑크 멤버가 아닌 솔로 아티스트로서 제니가 지향하는 다채로운 음악을 만끽할 수 있었다.이번 공연에서 제니는 7일 발매한 첫 번째 솔로 정규 앨범 ‘Ruby(루비)’에 수록된 15곡을 모두 선보였다. 공연은 6, 7일 이틀간 미국 로스엔젤레스(LA) 피콕 극장에서 시작돼 10일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 이날 인스파이어 아레나까지 총 나흘간 이뤄졌다. 블랙핑크 멤버 로제와 뉴진스(NJZ), 트와이스, 레드벨벳 등 아이돌 그룹과 배우 김지원, 공효진 등 연예인도 객석에 자리했다.●한 편의 유려한 연극“All the world’s a stage, And all the men and women memerly players(온 세상은 무대일 뿐이고, 모든 사람은 단지 연극을 할 뿐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뜻대로 하세요’ 속 문구가 스크린에 등장한 뒤 공연이 시작됐다. 제니는 붉은 상의 위에 털자켓을 걸치고 등장해 거울 앞에서 ‘Start a war(스타트 어 워)’를 부를 땐 리듬 속에 우아하게 몸을 맡기는 ‘숙녀’ 같았고,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여성에 대한 애정을 담은 노래인 ‘Mantra(만트라)’에선 ‘리더’의 모습이었다.변화무쌍한 공연 흐름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했다. “자신의 본질을 사랑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댄스곡 ‘ZEN(젠)’에선 검정 파워숄더 자켓을 걸친 ‘여전사’로 변신했다. 다음 곡인 ‘Damn Right(댐라잇)’에선 곧바로 그루브한 R&B(알앤비) 감성을 잘 보여줬다.특히 ‘Like Jennie(라이크 제니)’, ‘with the IE(위드 디 아이이)’, ‘ExtraL(엑스트라엘)’까지 연달아 부른 힙합 기반의 댄스곡 퍼레이드는 이번 앨범에서 제니가 추구하는 음악을 가장 잘 표현했다. 돌출 무대나 특별한 무대 장치가 배제된 제니의 퍼포먼스만으로도 몰입하기 충분했다. 특히 “잘난 게 죄니”라는 라이크 제니의 날카로운 한글 랩은 귀에 꽂혔고, 위드 디 아이이에선 마이크를 뚫는 성량이 빛났다. 객석을 채운 9000여 명의 팬들과의 호흡도 노련하게 맞춰갔다.●70분의 러닝 타임은 아쉬워11곡을 연달아 부른 뒤에야 첫 토크를 선보인 제니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정말 울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한테 무한한 사랑만 받았을 때 그걸 너무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소녀 같은 말투로 숨돌리는 것도 잠시, “다시 공연 모드로 돌아가겠다”며 곧바로 나머지 곡들을 선보였다. 마지막 곡 ‘twin(트윈)’에선 오롯한 기타 연주에 맞춰 절친이었던 친구를 그리워하는 애틋한 감성을 보여줬다. 제니는 “언제나 좋은 음악을 하는 좋은 사람 제니일테니 지켜봐 달라”고 했다.다만 이번 공연이 정규 앨범 발매에 맞춘 ‘쇼케이스성’ 공연임을 감안 하더라도 1시간 10분의 러닝타임은 다소 짧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K팝 가수들의 평균 공연 시간은 2시간 내외다. 이번 공연의 티켓 가격이 최소 15만 원 이상임을 고려하면 더욱 아쉽다는 평가다. 무대 폭을 넓지 않게 사용한 공연 연출도 제니의 퍼포먼스를 잘 뒷받침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노출 논란이 있었던 앞선 미국 공연과 달리 일부 의상을 교체해 노출 수위를 낮추는 모습을 보였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군주들은 자신의 궁에 ‘스투디올로’라는 작은 전시용 방을 만들었다. ‘서재’라는 뜻이지만 책을 읽는 장소는 아니었다. 오히려 값비싼 보석과 회화, 조각 등을 배치해 군주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그들이 지적인 것처럼 포장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인문주의와 예술이 발달했다고 분석한다. 15∼19세기 동서양의 수집과 진열 문화를 살펴보는 책이다. 서양 중세와 르네상스 미술 연구자인 어머니와 청나라 및 조선의 궁중회화를 연구하는 딸이 함께 지었다. 서양의 경우 15,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와 16, 17세기 알프스 북쪽에 있던 신성로마제국을 살펴본다. 동양은 중국의 오랜 수집 역사를 계승하려 했던 청나라와 한양의 문인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조선의 수집 문화에 주목한다.근대적 미술 작품 배치의 기본을 확립해 ‘최초의 미술관’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는 스투디올로의 발전적 형태다. 르네상스 시대 예술인들을 후원한 것으로 유명한 메디치가가 만든 공간이다. 미술품은 물론이고 보석, 무기, 지도 등 온갖 희귀한 수집품을 보관했다. 권력자들의 수집품엔 당대 사회의 유행과 욕망이 충실히 반영된다는 것을 보여줘 흥미롭다. 지금은 우피치 미술관이 미켈란젤로나 보티첼리 등 유명 화가의 미술품을 볼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18세기까지만 해도 이 미술관이 소장한 회화와 조각은 전체 전시품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당시 유럽에선 미술품보다 야자수 열매 껍질처럼 이국적인 수집품이 더 가치 있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수집 후 진열은 뒤엉켜 있던 지식이 체계적으로 분류된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신성로마제국의 지배층은 독일어로 ‘경이로운 방’이라는 뜻의 ‘분더카머’에 수집품을 전시했다. 황제 루돌프 2세(재위 1576∼1612년)가 프라하궁에 마련한 분더카머는 특히 화려했다. 첫 번째 방엔 도자기, 두 번째 방엔 지구본과 시계 같은 과학 물품, 세 번째 방엔 보석 상자와 고대 정치인의 초상이 새겨진 금은동 메달 등이 있었다. 무작위로 집합한 물건들을 ‘자연물’과 ‘과학 도구’, ‘가공한 예술품’ 등으로 체계화한 것이다. 수집은 한 나라의 지향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청나라는 중국 고대부터 명대까지 중국 전반의 수집 문화를 포괄하면서도 이민족으로서 다양한 문화를 포용했다. 6대 황제 건륭제(재위 1735∼1796년)는 전통 서화뿐 아니라 불교와 도교 회화도 수집했고, 일본과 서양의 희귀품도 모았다. 반면 조선의 책가도(冊架圖·책과 당대 귀중품들을 그린 그림)는 ‘현실과 욕망의 차이’를 보여준다. 저자들은 “조선 문인들의 실제 소장품 목록과 책가도를 비교해 보면 그림에선 조선 백자를 배제하고 중국의 분채자기 등을 많이 그렸다”고 분석했다. 개인의 수집이 문화 발전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원론적인 이야기보다는 구체적인 공간과 미술품을 풍부하게 제시해 볼거리가 많다. 과거의 수집 문화가 당대의 욕망을 보여준다는 점을 곱씹어 보면, 오늘날 전시 공간에 대한 호기심도 자연스레 생긴다. 책장을 덮은 뒤 근교 박물관에 가보고 싶어지는 책이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