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휘

강성휘 기자

동아일보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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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알못'의 여의도 고군분투기

yolo@donga.com

취재분야

2025-11-21~2025-12-21
정치일반83%
정당10%
국회7%
  • 또 人災… 지하 15m에서 안전조치 없이 가스작업중 ‘쾅’

    또다시 ‘인재(人災)’로 아까운 생명 4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기북부지방경찰청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1일 오전 7시 27분경 경기 남양주시 주곡2교 아래 지하철 진접선 공사 현장에서 가스 폭발 사고가 발생해 근로자 윤모 씨(61) 등 4명이 숨지고 김모 씨(46) 등 10명이 다쳤다. 부상자 중 황모 씨(61) 등 3명은 전신 화상을 입은 중상이다. 서울메트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와 비슷하게 안전 불감증이 빚은 사고였다. 폭발 위험성이 큰 지하 밀폐 공간에서 아무런 안전조치 없이 공사하다 사고가 일어났다. 건설 시공자인 포스코건설의 하청업체 직원 2명과 일용직 근로자 12명은 이날 오전 7시부터 출근해 작업을 준비했다. 약 25분 후 현장 인부들은 2개 조로 나뉘어 작업장에 투입됐다. 이 중 5명이 ‘용단’ 작업을 하기 위해 산소와 액화석유가스(LPG) 통과 연결된 호스를 들고 지하 15m 아래로 들어갔다. 용단은 가스로 열을 발생시켜 철근을 절단하는 작업이다. 용단 작업을 시작하는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과 함께 지하에 있던 2명이 현장에서 숨졌다. 지상에 있던 근로자 2명도 폭발의 충격으로 사망해 총 4명이 목숨을 잃었다. 부상자 중 중국 국적의 심모 씨(51)는 전신 3도 화상을 입어 생명이 위독한 상태다. 폭발 가능성이 있는 작업이었지만 안전 규정은 전혀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용단은 열과 압력을 이용해 금속을 절단하기 때문에 화재나 폭발 위험이 커 철저한 관리감독과 작업자의 안전 준수가 요구된다. 그러나 사고 현장에서는 가스 누출 감지 시설 등 안전장치가 없었다. 현장에서 일하다 2도 화상을 입은 하모 씨(59)의 아들은 “아버지가 경보음이 울리지 않아 위험을 감지할 수 없었다고 했다”고 전했다. 허술한 소방안전 관련법이 사고를 유발시켰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까지 서울소방재난본부 등 일부 지방 소방본부에서는 용접과 용단 등 폭발 가능성이 있는 작업을 할 경우 사전 신고를 권고했었다. 하지만 지난해 소방시설법이 일부 개정되면서 이마저도 권고 사항에서 빠졌다. 류상일 동의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경기 이천 냉동창고 사고, 고양 터미널 화재 모두 공사장에서 용접, 용단 작업을 하다 낸 사고였다”며 “용접, 용단 작업의 사전 신고 의무화 등 안전에 관한 법률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남양주=강성휘 yolo@donga.com·이지훈·이호재 기자}

    • 2016-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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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양주 지하철 공사현장 붕괴사고, 중상자 많아 사망자 늘듯

    경기 남양주 진접선 지하철 공사현장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해 근로자 4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경기북부지방경찰청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1일 오전 7시 20분경 경기 남양주시 진전읍 진접선 지하철 공사현장이 붕괴해 근로자 4명이 현장에서 숨지고 10명이 다쳐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경찰 관계자는 “중상자 3명은 상태가 위독해 사망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사고 발생 장소는 진접선 제4공구 주곡2교 다리 아래 통과구간이다. 포스코건설의 하청업체 ‘매일ENC’가 공사를 맡았다. 당시 근로자 17명이 개착 구간(터널 공사시 위에서 땅을 파고들어가는 작업) 철근 조립 공사 중 용단 작업(공기로 불순물을 제거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쾅’하는 폭발음이 들렸다는 목격자 증언에 따라 소방 당국은 산소통의 산소가 폭발하면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망자 1명은 폭파 충격으로 현장 바깥으로 튕겨져 나오고 나머지 3명은 매몰됐다가 사망했다. 김진선 남양주소방서장은 현장 브리핑에서 “용단 작업에 가스가 연료로 쓰이는데 이 가스가 작업 중 불상의 이유로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경기북부경찰청은 박승환 남양주경찰서장을 수사본부장으로 하는 수사본부를 편성하고 사고원인 및 공사책임자 안전관리 소홀, 작업자 과실 여부 등 여러가지 가능성에 대해 다각적으로 수사할 예정이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은 사고 현장을 방문해 사고 수습과 안전 관리 등을 점검할 계획이다.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 201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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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회? 그런 부분 있는 것 같다”… ‘화장실 살인’ 피의자 검찰 송치

    서울 서초경찰서는 17일 서울 강남역 인근 건물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을 살해한 김모 씨(34)에 대해 정신질환(조현병)에 의한 ‘묻지 마 살인’으로 최종 결론 짓고 살인 혐의로 26일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의 살인은 2일 전부터 준비한 계획 범죄였다. 계획 단계에서부터 불특정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사건 당일 김 씨의 행적도 추가로 밝혀졌다. 17일 오후 5시 40분경 김 씨는 근무하던 서초구 서초동의 한 주점에서 조퇴하면서 범행에 쓸 흉기를 주점 부엌에서 몰래 들고 나왔다. 이후 가출한 뒤 머무른 적 있는 강서구 화곡동의 한 건물 남자 화장실 등에서 시간을 보내다 다시 서초동으로 돌아와 범행을 저질렀다. 송치 과정에서 김 씨는 기자들이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자 “아니다”라며 “저도 인간이니까 나름대로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며 후회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김 씨는 “피해자에 대한 원한이나 감정이 없고 제 범행으로 사망한 나이 어린 피해자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을 갖고 있다”며 고개를 숙였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 201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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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남역 묻지마 살인범에 ‘오원춘 사건’ 프로파일러 투입

    서울 강남에서 발생한 ‘묻지 마 살인 사건’ 피해자 A 씨(23·여)에 대한 추모 물결이 지방으로 이어졌다. 부산시 진구의 한 백화점 앞 조형물과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 2번 출구에는 많은 시민들이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와 같이 A 씨를 추모하는 메시지를 담은 쪽지를 남기고 있다. 서울 지하철 강남역 10번 출구에 마련된 추모 공간 역시 전날과 같이 추모를 위해 모인 시민들로 붐볐다. 시민들이 붙이고 간 쪽지도 전날보다 더 늘었다. 쪽지를 붙일 곳이 부족해지자 서울시는 출구 뒤편에 쪽지를 붙일 게시판을 추가로 설치했다. 극우성향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를 비판하는 분위기도 일고 있다. 19일 오후 일베 회원이 여성혐오 범죄를 추모하는 분위기를 비꼬는 의미의 대형 화환을 보낸 것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민들은 해당 화환을 일베를 비판하는 쪽지를 붙이는 것으로 활용하고 있다. 정치인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19일 박원순 시장에 이어 이날에는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국회의원 당선자(서울 강남을)와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이 추모현장을 찾았다. 강 장관은 “화장실에 비상벨을 설치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라고 단정하기엔 아직 적절치 않다”며 “경찰 조사 결과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이날 오후 피의자 김모 씨(34)에 대한 정신감정을 이어갔다. 서울 서초경찰서 관계자는 “프로파일러를 추가로 투입해 오전 9시 40분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김 씨에 대한 2차 프로파일링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번 정신감정에는 ‘오원춘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권일용 경감도 참여했다.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 2016-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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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남역 10번 출구 ‘화장실 묻지마 살인’ 희생자 추모 물결

    17일 새벽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20대 여성이 낯선 남성의 흉기에 희생된 ‘묻지 마 살인’ 이후 추모를 넘어 불안과 공포를 호소하는 움직임이 온·오프라인에서 확산되고 있다. ‘나도 언제라도 제물이 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직장인 박모 씨(34·여)는 “사건 당시 바로 근처에서 나도 술을 마시고 있었다”며 “내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다”고 말했다. 사건 직후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는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등 유력 정치인도 다녀갔다. 19일 오후 이곳에서는 600여 명(경찰 추산)이 모인 가운데 피해자를 추모하는 촛불문화제도 열렸다. 특히 여성들의 불안심리가 두드러졌다. 추모공간에 붙은 쪽지에는 ‘나는 우연히 살아남은 한국 여자다’ ‘여자라는 이유로 죽고 싶지 않다’ 같은 내용이 적지 않았다. ‘다음 생엔 부디 남자로 태어나요’라는 글도 눈에 띄었다. 피의자 김모 씨(34)가 검거 직후 범행 동기와 관련해 “여성들이 나를 무시했다”고 진술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경찰은 “여성 혐오 살인으로 보기 어렵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들의 불안감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피의자 진술을 접하고 스스로를 잠재적 피해자라고 느낀 여성들이 행동에 나선 것”이라고 진단했다. 온라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도 해시태그(#)를 이용해 ‘살아남았다’와 ‘살려주세요’를 붙인 게시물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페이스북 등에는 추모 페이지가 개설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은 심야에도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서울 강남의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참변을 당했다는 점에서 평소 방범 사각지대에 대해 여성들이 느꼈던 불안을 증폭시켰다. 공용화장실은 몰래카메라, 강제추행, 성폭행 등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성들이 기피하는 대표적 우범 장소로 꼽힌다. 표혜령 화장실문화시민연대 상임대표는 “주점뿐만 아니라 학원가나 PC방, 노래연습장 등에 설치된 화장실은 대부분 남녀 공용”이라며 “이런 곳에서는 성범죄나 강력 범죄가 일어날 개연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즉각 남녀 공용화장실 실태를 조사해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서울시 고위관계자는 이날 현장에 다녀온 박 시장과 회의를 한 뒤 “시내 공용화장실을 전수 조사하고 남녀 화장실을 분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건이 일어난 서초구의 조은희 구청장도 “우범지역은 물론이고 일반 건물에도 폐쇄회로(CC)TV를 추가 설치하도록 서울시에 예산 지원을 건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19일부터 프로파일러를 동원해 피의자 김 씨의 범행 동기를 분석하고 있다. 김 씨를 면담한 프로파일러는 “피의자가 여성으로부터 이렇다 할 피해를 입은 사례가 없어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냈다. 담당 경찰도 “김 씨의 정신분열증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중학생 때부터 비공격적인 분열 증세가 있었고 2008년 정신분열 진단을 받고 입원한 뒤 2011년, 2013년, 그리고 지난해까지 네 차례 입원 치료를 받았다. 올해 초부터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서 증세가 악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김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박창규 기자 kyu@donga.com·강성휘 기자·김민 기자}

    • 2016-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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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엿보고 찍고 덮치고… 잠금장치 없는 ‘공포의 공용화장실’

    회사원 차모 씨(24·여)는 몇 달 전 한 주점의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봉변을 당할 뻔한 뒤로는 아무리 급해도 여성 전용 화장실만 찾는다. 술을 마시다 공용 화장실에 갔는데 남성 두 명이 들어왔다. 좌변기가 놓인 공간에는 잠금장치가 있었지만 화장실 입구엔 별다른 장치가 없었다. 술에 취한 남성들은 칸막이 안에 있는 차 씨에게 “빨리 나와!”라며 세차게 문을 두드리고 욕설까지 내뱉었다. 겁에 질린 차 씨는 칸막이 문고리를 붙잡은 채 친구들에게 ‘도와 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친구들이 온 뒤에야 겨우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남녀 공용 화장실 사용을 꺼리는 여성이 늘어나고 있다. 남녀가 한 공간을 같이 쓰는 구조이다 보니 취객과 실랑이를 벌이거나, 자칫하면 각종 성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17일 오전 1시경 서울 서초구에서 20대 여성이 흉기에 찔려 숨진 장소도 남녀 공용 화장실이었다. 이곳은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문이 열리는 디지털 도어록이나 자물쇠 같은 잠금장치가 없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18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유흥업소가 밀집한 서울 강남역, 신촌, 종로 등의 상가 화장실을 둘러본 결과 약 30%는 남녀 공용이었다. 화장실 안에 좌변기 하나만 있거나 내부 칸막이가 있더라도 잠금장치가 허술한 곳도 적지 않았다. 여성들은 하나같이 불안함을 호소했다. 신촌의 한 맥줏집에서 만난 대학원생 전모 씨(26·여)는 “남성 여러 명이 들어와 담배를 피우거나 소변을 볼 때면 이들이 나갈 때까지 칸막이 안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대학생 서모 씨(21·여)는 “어쩔 수 없이 공용 화장실을 갈 때는 몰래카메라 같은 성범죄의 표적이 될까 봐 구석구석 살피곤 한다”고 말했다. 남성들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강남역 인근 선술집을 찾은 회사원 임모 씨(37)는 “소변기 앞에 서 있다 여성과 눈이 마주치면 괜히 범죄자 취급을 받는 기분”이라고 털어놓았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 등이 공개장소에 설치한 공중화장실 범죄 가운데 성폭행, 강제추행 등 성 관련 사건 비중이 매년 늘고 있다. 2014년에는 1795건 중 835건(46.5%)이 성범죄였다. 이는 일반 상가 등에 설치된 남녀 공용 화장실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로, 이를 반영하면 발생 건수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공공건물의 공중화장실은 남녀 공간을 분리하고 민간 역시 업무시설은 연면적 3000m², 상가시설은 2000m² 이상이면 남녀 화장실을 분리해야 한다. 그러나 이 법은 2004년 이후에 지은 건물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그 전에 건축된 건물의 주인들은 비용이 든다는 이유로 구조 변경을 꺼리고 있다. 임차인이 마음대로 구조를 바꿀 수도 없다. 강남역 부근 주점 업주 윤모 씨(47)는 “손님들이 불편하다고 해 건물주에게 개선을 요청했지만 들어주지 않아 자비로 디지털 도어록을 달았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 서초경찰서는 17일 일어난 남녀 공용 화장실 살인 사건의 용의자 김모 씨(34)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18일 밝혔다. 김 씨는 경찰에 “2008년부터 정신병원에서 수차례 입원치료를 받는 등 정신분열증, 공황장애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박창규 kyu@donga.com·강성휘·이지훈 기자}

    • 2016-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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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은 성년의 날… “열여덟살에 세상밖으로… 500만원으로 홀로서기 두려워”

    7세 때 부모에게 버림받은 뒤 줄곧 경기 안산시의 한 아동보호시설에서 생활했다. 19세가 되자 홀로 서야 했다. 수중에는 500만 원이 전부였다. 단칸방 계약서 쓰는 법도, 전기료 내는 법도 몰랐다. 다시 버려진 기분이었다. 1년이 지나 맞는 성년의 날. 김민재(가명·20) 씨는 “정말 내가 홀로 서야 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됐다”며 “축하보다는 ‘1년간 홀로 버텨내 장하다’는 말을 더 듣고 싶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김 씨는 ‘홀로서기 청소년’이다. ‘퇴소 청소년’이라고도 한다. 아동복지법상 만 18세가 돼 아동보호시설에서 자립한 사람이다. 매년 사회로 나오는 홀로서기 청소년은 약 2000명이다. 정부의 지원은 보호시설을 나올 때 딱 한 번 주는 자립정착지원금 500만 원이 전부다. 김 씨는 따로 모아둔 100만 원가량이 더 있었지만 12년을 지내 친숙한 안산에 자리 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아는 이 하나 없는 경북 경산시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당장 살 곳을 구하기도 막막했다. 방을 구하려면 부동산 중개업소에 찾아가 계약서를 써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찜질방에서 일주일을 지내며 방을 구했지만 석 달 뒤 전기와 수도가 끊겼다. 공과금 내는 법을 몰랐던 탓이다. 김 씨는 “가끔 이상한 종이가 우편함에 꽂혀 있어 반송함에 넣곤 했는데 그게 고지서였다”고 했다. 그는 “보호시설에서는 아무도 이런 것들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 캄캄한 방에서 펑펑 울었다”고 말했다. 전 재산은 한 달도 안 돼 바닥났다. 보증금 300만 원과 이것저것 생활필수품을 샀더니 100만 원 남짓 남았다. 공부를 해 애견 조련사가 되겠다는 일념에 대학에 진학했는데 등록금 320만 원 중 국가장학금 200만 원을 뺀 120만 원과 입학금을 내니 비상금까지 모두 사라졌다. 생활고는 외로움만큼 빨리 찾아왔다. 기초생활수급비 55만 원은 월세 20만 원과 휴대전화 요금, 식비를 대기에도 벅찼다. 카페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두 달 만에 관뒀다. 장학금을 받기 위한 최소 평점을 맞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 수입 때문에 기초생활수급비도 끊겼다. 자퇴를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지금은 등록금을 모으기 위해 아르바이트 대신 식비를 줄이고 있다. 동아리 활동은 언감생심이다. 김 씨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2011년 홀로서기한 전모 씨(24)는 20년 동안 연락이 두절됐던 부모의 소득 때문에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대학 등록금을 지원받으려고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했지만 “부모가 직접 ‘관계 단절 소명서’를 내야 한다”는 말에 학교를 그만두고 취직했다. 이런 경제적 이유로 많은 홀로서기 청소년들이 학업 대신 생계를 택한다. 현재 보호시설에 있는 아이들의 77%가 대학 진학을 희망하지만 실제 진학비율은 24.1%에 그친다. 이들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이 없는 건 아니다. 보건복지부 아동자립지원단은 자립을 위한 사전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양육시설별로 선택해 가르치도록 하고 있지만 대부분 ‘내 감정 표현하는 법’, ‘우리 집 청소하기’ 같은 프로그램을 택한다. 홀로서기에 도움이 되는 ‘(임대차) 계약서 쓰기’를 듣는 보호아동은 1.5%, ‘돈 관리 기술’과 같은 경제교육을 수강하는 아동은 10%가 채 안 된다. 보호시설에서 반드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의무도 없기 때문에 별다른 교육조차 하지 않는 소규모 양육시설이나 공동생활가정도 있다. 아동자립지원단 관계자는 “사전교육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 여러 개선책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가장 절실한 것은 경제적 지원이다. ‘아름다운 가게’ 관계자는 “개인 후원을 위해 2011년부터 모금을 하고 있지만 ‘다 큰 어른을 왜 도와야 하느냐’는 인식 탓에 쉽지 않다”며 “나이는 성인이어도 아직은 도움과 관심이 필요한 아이들이라는 인식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박설미 동명아동복지종합타운 자립지원팀장은 “경제적 지원과 함께 자립 후 지속적인 상담 등 사후 관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 2016-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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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르신 노린 악덕상혼 갈수록 기승

    “할머니, 이것만 끼시면 다 잘 들릴 겁니다.” 전북 전주시에 사는 최모 씨(72·여)는 난청이 심해지자 2월 시내에 있는 보청기 매장에서 보청기를 구매했다. 정부보조금을 뺀 보청기 값 200만 원은 슬하 4남매가 모아 내줬다. 그런데 ‘다 잘 들린다’는 보청기를 끼고 난 뒤 더 알아듣기 힘들어졌다. 말소리 대신 주변 소음이 더 크게 들렸다. 난청 환자마다 소리의 높낮이에 따라 들리지 않는 주파수대가 달라 개인별 맞춤이 필요했는데 이런 진단 없이 판 탓이다. 최 씨는 높은 소리가 안 들렸는데 보청기는 낮은 소리에 맞춰졌던 것이다. 고령 인구가 늘어 시장의 주요 소비층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들을 상대로 한 엉터리 마케팅이 늘고 있다. 노인들이 상대적으로 꼼꼼하지 못하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효과를 부풀리거나 어려운 용어를 써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속이고 있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60대 이상 소비자 피해구제 건수는 2326건으로 2010년에 비해 약 43% 증가했다. 현행법상 지자체에 의료기기 판매 신고만 하면 청능사(청각능력을 평가하는 전문가) 같은 전문가 없이도 보청기를 판매할 수 있다. 최 씨가 방문한 매장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매장을 여러 차례 찾아 바꿔 달라고 했지만 ‘곧 좋아진다’라며 교환해주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거니 하는 생각에 두 달 가까이 생활한 최 씨는 청력이 더 나빠졌다. 통신비가 저렴해 대표적인 ‘효도 상품’으로 꼽히는 알뜰폰 관련 소비자원 상담건수도 2013년 84건에서 2015년 1573건으로 19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우체국 알뜰폰 사용자의 약 40%가 60대 이상 고령이다. 권모 씨(73)는 지난해 7월 당시 요금(2만 원)보다 통신비가 적게 나온다는 휴대전화 대리점 판매원의 말을 믿고 알뜰폰을 샀지만 다음 달 고지서에 찍힌 요금은 3만 원이 넘었다. 월 1만9000원짜리 요금제를 소개한 뒤 실제로는 월 2만9000원짜리 상품에 가입시킨 것이다. 대리점을 찾아 따졌지만 “계약을 해지하려면 위약금을 내라”고 했다. 결국 권 씨가 소비자원에 피해구제 신청을 하고서야 대리점 측에서 요금제를 바꿔줬다. 상조서비스 관련 피해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소비자원에는 2013년부터 꾸준히 1만 건이 넘는 피해 상담이 들어오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노인들은 상대적으로 이성적 판단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꼼수 마케팅의 타깃이 되고 있다”며 “고령화가 빨라지고 있는 만큼 노인 소비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면서 환불할 수 있는 기간을 늘려주는 등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 2016-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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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활비 없어서”…‘빈집털이’ 소년원 동기 2명 검거

    훔친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며 빈집과 상점 등 30여 곳을 턴 소년원 동기 2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올해 3월부터 서울 시내 복도식 아파트와 상점 등 34곳에서 5040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박모 씨(24)와 또 다른 박모 씨(24)를 구속했다고 5일 밝혔다. 이들은 소년원에서 만나 친분을 쌓았으며, 경찰 조사에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의 주요 범행대상은 복도식 아파트였다. 초인종을 눌러 집이 빈 것을 확인한 뒤 복도 쪽으로 나있는 창을 통해 들어가 물건을 훔쳤다. 방범창이 있을 때에는 손으로 세게 흔들어 뜯어냈다. 경찰 관계자는 “서울 시내 복도식 아파트의 대부분이 지어진지 오래 돼 방범창 이음새가 낡았다는 점을 노렸다”고 설명했다. 새벽에는 치킨집 같은 상점을 털었다. 이들은 소위 ‘딸키’라 불리는 오토바이용 만능키를 이용하면 일부 자동출입문 잠금장치가 쉽게 열린다는 점을 악용했다. 이들이 만능키를 이용해 문을 여는 데는 3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훔친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녔고,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수시로 오토바이를 새로 훔쳐 바꿔 탄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에게서 훔친 물건을 사들인 장물업자 이모 씨(61)등 9명을 불구속 입건하는 한편 구속된 박 씨 등 2명의 여죄가 있는지 수사를 이어갈 계획이다.강성휘기자 yolo@donga.com}

    • 2016-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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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마사지 받고 “목 아프다”…전국 돌며 돈 뜯은 20대 사기단

    전국 마사지 업소를 돌며 안마를 받은 뒤 “목이 아프다”며 합의금을 뜯어낸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2월부터 4월 중순까지 전국 마사지업소 40곳을 돌며 치료비 명목으로 2000여만 원을 뜯어낸 설모 씨(23)와 황모 씨(23)등 2명을 구속하고 김모 씨(20)등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동네 선후배 사이인 이들은 서울, 인천, 광주, 부산 등 전국 19개 지역 마사지업소 40곳을 돌아다니며 범행을 저질렀다. 2인 1조로 안마를 받은 뒤 “마사지를 받고 나니 목이 아프다”며 진단서를 끊어와 안마비용과 합의금을 뜯어냈다. 이들은 목이 아프다고 하면 병원에서 별다른 의심 없이 2주짜리 진단서를 끊어준다는 점을 이용했다. 실제로 이들은 발마사지를 받고도 목 통증을 호소하며 치료비를 받아내기도 했다. 대부분의 마사지 업소에서 마사지 자격 없는 안마사를 고용한다는 점도 범행에 이용됐다. 합의금을 줄 수 없다고 버티는 업주들에게는 “불법 안마업소로 경찰에 신고 하겠다”며 협박했다. 업주들은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경우 손해가 더 크기 때문에 이들의 터무니없는 요구에도 합의금을 건넸다. 경찰 조사 결과 이번에 붙잡힌 일당은 공갈, 특수강도, 폭력 등으로 수차례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또 다른 피해업소가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 2016-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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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후 마케팅’ 너무하지 말입니다

    “너무 ‘오버’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대학생 심원석 씨(26)는 최근 종영한 인기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주연 배우 송중기(31)의 조부모가 살았다는 대전 동구 세정골이 관광명소로 개발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대전시는 송 씨가 유년 시절을 세정골에서 보냈다는 소문이 나면서 관광객이 몰리자 이곳을 관광지로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다른 시민들도 지나치다는 반응을 보였다. 회사원 최모 씨(43·여)는 “‘태후’ 열풍이 사그라들면 20여 가구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에 얼마나 사람들이 몰리겠느냐”며 “전형적인 예산 낭비”라고 비판했다. 대전시 관계자는 “3월 국비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부됐다”며 “아직 구체적으로 예산을 책정한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전시 외에도 적지 않은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태후 마케팅’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치밀한 준비 없이 당장의 유행에 편승하려는 사업 계획이 난무해 오히려 한류(韓流) 열풍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강원 태백시는 철거된 태양의 후예 촬영 세트장을 뒤늦게 복원하겠다며 문화체육관광부에 예산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제대로 된 수익성 분석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문체부 관계자는 “현재 태백시의 관광자원을 고려했을 때 시간이 지나면 세트장만을 보려고 태백을 방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의 무리한 한류 마케팅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서울 강남구는 2012년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자 한류 스타들의 추억이 있는 명소를 관광객에게 소개한다며 청담동 일대에 ‘한류스타 거리’를 조성하고 이를 소개하는 가이드북을 제작했다. 하지만 이 책자는 대부분 광고로 채워져 관광객의 빈축을 사고 있다. 24일 한류스타 거리를 방문한 대만인 관광객 황수훙(黃書虹) 씨(23·여)는 “구청에서 만들었다고 해 믿을 만하겠다 싶었는데 일반 가이드북보다 더 광고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가이드북에는 ‘만다리나덕은 많은 스타에게서 사랑받는 브랜드’, ‘최근 인기를 끄는 제품은 김우빈과 김수현이 드라마에서 선보인 MAILMAN 모델이다’와 같은 광고가 절반에 이른다. 강남구 관계자는 “연예 잡지사에 명소 선정을 맡기는 바람에 가이드북에 대한 구청의 심층적 분석은 부족했다”고 해명했다. 사후 관리 소홀로 외면받는 곳도 있다. 서울 송파구가 올림픽홀에 조성한 ‘스타애비뉴’는 2010년 조성 당시 그대로 방치돼 있다. 포토존에는 걸그룹 ‘소녀시대’의 2010년 활동 모습을 담은 입간판이 6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강원도청은 2006년 강원도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를 소개하는 ‘강원 드라마갤러리’를 개관했지만 시설이 열악하고 홍보가 부족해 현재는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긴 상태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안목 없는 지자체의 한류 마케팅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채지영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의 유니버설스튜디오나 디즈니랜드처럼 다양한 콘텐츠를 한데 모아 꾸준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 2016-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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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림픽 펜싱 금메달리스트, 4번째 음주운전 혐의로 수사 받아

    한국 최초 올림픽 펜싱 금메달리스트 김영호 씨(45)가 또 음주운전 혐의로 걸렸다. 서울동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주용완)는 김 씨를 음주운전 혐의로 수사 중이라고 24일 밝혔다. 김 씨가 음주운전으로 입건된 건 이번이 네 번째다. 김 씨는 2004년과 2007년에 음주운전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가장 최근인 2011년에는 면허를 취소당했다. 2013년 다시 면허를 땄지만 3년 만에 다시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다 적발됐다. 김 씨는 12일 오후 송파구 방이동의 한 골프연습장 부근에서 술에 취한 채 운전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날 김 씨는 자신의 차량 오른쪽 사이드미러에 팔꿈치를 부딪친 행인 이모 씨(33)와 시비가 붙었다. 김 씨에게서 술 냄새를 맡은 이 씨가 경찰에 신고했고 결국 김 씨는 덜미를 잡혔다. 당시 김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244%로 이는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수치다. 경찰은 18일 김 씨를 검찰로 불구속 송치했다. 한편 김 씨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펜싱 플뢰레 부문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현재는 로러스 펜싱클럽 감독 및 대한펜싱협회 도핑이사를 맡고 있다.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 2016-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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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일 장애인의 날]“직진하세요”… 따라갔더니 출구대신 벽

    “여기가 아닌가?” 18일 서울지하철 신도림역 환승통로 한복판에 선 나병택 실로암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53)은 연방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발짝 내딛다 다시 뒷걸음질하기를 여러 번. 길 잃은 미아처럼 한자리만 맴돌 뿐이었다. 시각장애인인 나 소장이 의지할 것은 손에 쥔 리모컨뿐. 버튼을 누르면 근방에 설치된 음성유도기에서 현재 위치, 출구 정보, 화장실, 환승통로 등을 알려주는 음성안내가 나와 길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장치다. 그러나 나 소장의 기대와 달리 음성유도기는 옳은 길을 알려주지 못했다. “나가는 곳은 점자블록을 따라 직진하시면 됩니다”라는 안내에 따라 지팡이를 휘저었는데 벽이 나타났다. 엘리베이터였다. 다시 음성유도기에 귀를 기울이며 방향을 잡아도 마찬가지였다. 연거푸 나 소장을 막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그는 “이런 상황이라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결코 목적지로 갈 수 없다. 이렇게 형편없이 안내하는 기기를 왜 설치했느냐”고 푸념했다. 이날 동아일보 기자는 나 소장과 함께 서울지하철 1호선 대방역에서 2호선 봉천역까지 동행하며 역사(驛舍)에 설치된 시각장애인 음성유도기를 실제로 활용해 봤다. 결과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우선 지하철역에 들어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대방역 6개 출입구에는 음성유도기가 전혀 없었다. 개찰구로 가는 약 100m 거리의 지하보도에도 음성유도기는 보이지 않았다. 역 안도 나을 게 없었다. 승강장으로 이어지는 계단마다 음성유도기가 설치돼 있었지만 대부분은 먹통이었다. 그나마 나오는 음성안내도 노량진역 방향인지, 신길역 쪽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나 소장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지하철에 오르는 데만 45분이 걸렸다. 신도림역에서 환승할 때에도 시간을 한참 지체하는 바람에 봉천역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은 총 1시간 30분. 비장애인이라면 25분이면 갈 거리를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3배나 걸려 도달한 셈이다. 현재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지하철역에는 약 1만500개의 음성유도기가 설치돼 있다. ‘교통약자의 이용편의 증진법’에 따라 2000년부터 지하철역에 음성유도기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서울메트로 관할인 1∼4호선 50개 역에는 음성유도기가 없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역사가 세워진 지 오래돼 음성유도기 설치가 늦는 편”이라고 궁색하게 해명했다. 설치 비용도 만만치 않다. 1개 역에 평균 37개의 음성유도기를 설치하는 데 드는 돈은 약 1억500만 원에 이른다. 그럼에도 제대로 작동하는 기기가 많지 않아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한 시각장애인은 “이럴 거라면 차라리 그 돈으로 점자블록이나 정비해 달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손지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연구원은 “실제 필요한 곳에는 없거나, 있어도 고장 난 기기가 많아 이용률이 떨어지고 제대로 유지 보수도 안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며 “시각장애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 201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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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거 현수막 어디로… 재활용-폐기물 운명 제각각

    그 많던 선거 현수막은 다 어디로 갔을까. 뜨거웠던 총선 열기만큼이나 사흘 전까지 도로변에는 선거 홍보 현수막이 가득했지만 15일 거리에서는 현수막이 자취를 감췄다. 지역구 후보자들의 당락처럼 현수막의 운명도 제각각이었다. 동아일보는 14, 15일 사라진 현수막 뒤를 따라가 봤다. 일부 현수막은 앞치마 등으로 다시 태어나지만 그렇지 않은 현수막은 소각장에서 태워졌다. 15일 서울 송파구 광고물정비팀 직원들은 길거리에 걸려 있는 선거 현수막을 걷어내느라 오전부터 잠실 사거리에서 오금 사거리까지 바삐 움직였다. 수거한 선거 현수막은 앞치마, 화분, 선풍기 덮개, 줄넘기 등으로 새로 태어나 학교나 복지시설에 기증된다. 김호전 송파구 광고물정비팀장은 “현수막이 많아 버겁기도 하지만 재활용 재료를 많이 확보할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선거 직후”라고 말했다. 서초구에 걸린 현수막 역시 재활용되고 있다. 서초구는 선거 현수막을 수거하면 양재종합사회복지관이 이를 이용해 앞치마나 에코백 등을 만들어 판매한다. 판매 수익금은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자활에 쓰인다. 박수진 사회복지사는 “선거철이 현수막을 확보할 수 있는 ‘대박’ 기회”라며 “평소보다 2, 3배 많은 현수막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초구 관계자는 “처리 비용과 환경 문제도 줄이고 복지관 운영에도 도움이 돼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재활용 계획이 없는 지방자치단체에 현수막은 골칫거리다. 강동구와 강남구는 후보자 사무실에서 걷어가지 않는 현수막은 폐기한다. 강동구 관계자는 “선거가 끝나면 늘어나는 폐현수막 때문에 업무량이 많아지고 소각 비용도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자체마다 현수막의 운명이 다른 것은 정부가 손을 놓고 있어서다.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2012년 현수막 재활용 업체 ‘터치포굿’과 폐현수막 재활용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2014년부터는 재활용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다. 서울시는 19, 20대 총선 모두 재활용 업체 2곳을 선정해 각 구에 폐현수막 제공에 협조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지만 강제력이 없어 대부분 폐기하는 실정이다. 경기도와 대구시도 특별한 재활용 계획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자원순환사회연대 김미화 사무총장은 “선거 때마다 현수막 처리로 인해 환경 문제뿐만 아니라 30억 원에 가까운 처리비용이 발생한다”며 “정부가 일회성 재활용이 아닌 장기적인 폐자원 활용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 2016-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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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 남친 예비신부에게 사귈때 문자메시지 보낸 여성에 무죄

    전 남자친구와 사귈 때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캡쳐해 예비신부에게 보낸 30대 여성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동부지법 형사7단독 김준혁 판사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회사원 권모 씨(31·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11일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직장동료인 양모 씨와 헤어진 권 씨는 2014년 11월 6일부터 13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양 씨와 결혼 예정이던 정모 씨와 정 씨의 여동생, 지인 등의 페이스북 계정에 “(양 씨와) 이야기만 하면 빠져드는 것 같다. 자신감 있게 사는 것도 멋있고 눈썹과 말투, 생각도 다 좋다”등의 문자메시지 내용을 캡쳐해 올렸다. 같은 달 14일에는 정 씨에게 직접 e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정 씨는 페이스북와 e메일 계정을 사용하지 않아 이 내용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뒤늦게 지인으로부터 이 같은 사실을 전해 듣고 권 씨를 고소했다. 재판부는 “권 씨가 보낸 메시지 때문에 정 씨가 혼인과정에서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사실은 인정 된다”면서도 “권 씨가 정 씨의 항의를 받은 후에는 더 이상 메시지를 보내지 않은 점, 정 씨가 문자메시지 내용을 정보통신망이 아닌 지인을 통해 안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한 이유를 밝혔다.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 201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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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전거 사고 전담 검사’ 첫 지정… 檢 “관련법규 보완”

    서울동부지검은 사상 최초로 자전거 전담 검사를 지정했다. 김지헌 서울동부지검 형사3부장검사는 7일 “오토바이처럼 자전거 사고 역시 중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관련 법규나 제도가 촘촘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앞으로 3개월간 자전거 관련 사건을 통해 보완해 나가야 할 점이 무엇인지 분석하기 위해 자전거 전담 검사를 이달 초 지정했다”고 밝혔다. 최근 자전거 인구가 늘어나면서 사고 역시 급증한 데 따른 조치다. 경찰청 교통사고 통계에 따르면 2005년부터 10년간 자전거 교통사고는 2배 이상 늘어났다. 2014년에는 1만8402명이 자전거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최근에는 자전거를 상대로 한 보복운전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서울 강서구에서는 자전거에 보복운전을 한 40대 승합차 운전자가 불구속 입건됐다.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 201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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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꿀알바? 선거운동원은 극한알바

    경기도에 사는 대학 휴학생 문모(가명·21·여) 씨는 최근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기 전 병원에 들러 링거를 맞았다. 전날 11시간 넘게 실외에서 피켓을 들고 자전거를 탔는데 큰 일교차때문에 몸살감기에 걸린 것이다. 문 씨가 하는 ‘알바’는 선거운동원. 그는 “짧은 기간 바짝 일해 목돈을 쥐는 ‘꿀알바’로 알았는데 일해 보니 ‘극한 알바’였다”며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 옆에서 유세를 할 때면 치일까 봐 불안할 때도 많다”고 털어놨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주부 김모 씨(46)도 지인의 권유로 선거운동원을 시작했다가 무릎이 아파 고생하고 있다. 그는 “어제도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왔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일하려니 목도 아프고 온몸이 쑤셔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부터 제20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선거운동원의 모습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세차량을 따라 번화가나 길목을 돌며 구호를 외치고 율동을 하는 것은 기본. 지하철역 입구에 나란히 서서 90도로 인사하는 것도 선거운동원의 몫이다. 이렇게 일하고 이들은 최대 7만 원의 일당을 받는다. 언뜻 보면 그럴듯한 알바 같다. 하지만 조목조목 따져 보면 아쉬운 점이 적지 않다. 중앙선관위는 선거운동원이나 선거사무원을 근로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2007년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이들을 근로자로 규정한다. 고용 기간이 1일인 일용직 근로자인 셈이다. 그러나 공직선거법에 이들이 하루 몇 시간을 일해야 한다는 등의 근로조건에 관한 규정이 없다. 그래서 불이익을 받는 사례가 많다. 대다수의 후보사무소는 운동원을 모집하면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근로시간을 초과해도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다. 선거운동이 치열해질수록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는 등 1일 8시간을 넘기는 건 예사고 유세나 유권자 방문 등의 일정이 길어지면 밤늦게까지 매달려야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이렇게 되면 최저임금(시간당 6030원) 미만을 받고 일하는 셈이 된다. 예컨대 하루 11시간을 일했다면 산술적으로 시간당 최저임금 6030원×8시간에 3시간은 초과근로수당(최저임금의 1.5배로 9045원)을 더해 7만5375원을 받아야 한다. 실제론 이보다 훨씬 더 일하고도 선관위 규정 때문에 7만 원만 받고 있다. 일용직 근로자도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지만 이러한 절차도 잘 지키지 않는다. 선거운동 중 사고를 당해도 보상받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보험 관련 근로조건의 문제는 후보사무소에서 알아서 할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후보들마다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자를 위한 공약을 내세우면서도 정작 자신들이 고용한 ‘노동자’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는 셈이다.강성휘 yolo@donga.com·박창규 기자}

    • 2016-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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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화점 VIP 고객 속여 4억여원 가로챈 명품매장 직원

    서울 수서경찰서는 백화점 VIP 고객 A 씨(39·여)등 2명을 속여 4억5000여만 원을 챙긴 명품매장 관리자 B모 씨(36·여)를 구속했다고 4일 밝혔다. B 씨는 A 씨와 A 씨의 지인에게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 중국으로 팔 대금에 투자하면 수익금 일부와 건 당 수수로 210만 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속였다. B 씨는 피해자들을 속이기 위해 영수증 185장을 위조해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게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A 씨 등 피해자 2명에게 150여 차례에 걸쳐 약 5억 원을 건네받았다. 그 중 3억7000만 원을 가로챘다. 또 B 씨는 “직원할인을 받아 산 물건을 되팔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속여 A 씨의 신용카드로 7300만 원 상당의 명품시계를 사기도 했다. B 씨는 시계를 팔아 돈을 챙기고 주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일이 생겼다”며 800만 원을 빌려 갚지 않은 적도 있다. B 씨는 빚을 내서 수익금을 지급하고 투자받은 돈으로 다시 빚을 갚는 ‘돌려 막기’ 수법을 썼다. 하지만 결국 늘어난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A 씨에게 범행을 털어놓으면서 덜미를 잡혔다. 경찰조사에서 B 씨는 “개인 빚을 갚는데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 201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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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거운동원이 ‘꿀 알바’?…최저임금도 못 받는 ‘극한 알바’

    경기도에 사는 휴학생 문영주(가명·21·여) 씨는 최근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기 전 병원에 들러 링거를 맞았다. 전날 11시간 넘게 실외에서 피켓을 들고 자전거를 탔는데 큰 일교차 때문에 몸살감기에 걸린 것이다. 문 씨가 하는 ‘알바’는 선거운동원. 그는 “짧은 기간 바짝 일해 목돈을 쥐는 ‘꿀 알바’로 알았는데 일해 보니 ‘극한 알바’였다”며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 옆에서 유세를 할 때면 치일까 봐 불안할 때도 많다”고 털어놨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주부 김모 씨(46)도 지인의 권유로 선거운동원을 시작했다가 무릎이 아파 고생하고 있다. 그는 “어제도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왔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일하려니 목도 아프고 온몸이 쑤셔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부터 제20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선거운동원의 모습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세차량을 따라 번화가나 길목을 돌며 구호를 외치고 율동을 하는 것은 기본. 지하철역 입구에 나란히 서서 90도로 인사하는 것도 선거운동원의 몫이다. 이렇게 일하고 이들은 최대 7만 원의 일당을 받는다. 언뜻 보면 그럴듯한 알바 같다. 하지만 조목조목 따져보면 아쉬운 점이 적지 않다. 중앙선관위는 선거운동원이나 선거사무원을 근로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2007년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이들을 근로자로 규정한다. 고용기간이 1일인 일용직 근로자인 셈이다. 그러나 공직선거법에 이들이 하루 몇 시간을 일해야 한다는 등의 근로조건에 관한 규정이 없다. 그래서 불이익을 받는 사례가 많다. 후보사무소 대다수는 운동원을 모집하면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근로시간을 초과해도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다. 선거운동이 치열해질수록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는 등 1일 8시간을 넘기는 건 예사고 유세나 유권자 방문 등의 일정이 길어지면 밤늦게까지 매달려야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이렇게 되면 최저임금(시간당 6030원) 미만을 받고 일하는 셈이 된다. 예컨대 하루 11시간을 일했다면 산술적으로 시간당 최저임금 6030원×8시간에 3시간은 초과근로수당(최저임금의 1.5배로 9045원)을 더해 7만5375원을 받아야 한다. 실제론 이보다 훨씬 더 일하고도 선관위 규정 때문에 7만 원만 받고 있다. 일용직 근로자도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지만 이러한 절차도 잘 지키지 않는다. 선거운동 중 사고를 당해도 보상받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보험 관련 근로조건의 문제는 후보사무소에서 알아서 할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후보들마다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자를 위한 공약을 내세우면서도 정작 자신들이 고용한 ‘노동자’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는 셈이다. 노무법인 신영의 김광훈 노무사는 “선거 특성상 운동원은 지지 후보를 돕는 봉사활동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운동원 역시 근로자다. 각 후보사무소는 근로계약서 작성 등을 준수하고 선관위도 선거운동원의 근로조건 관련 규정을 현실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강성휘 기자 yolo@donga.com박창규 기자 kyu@donga.com}

    • 201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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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경기 지역 1300여곳 초중고교 문화예술교육 한 달 째 파행

    경기 성남시의 한 중학교 예체능 부장 임모 교사(48)는 최근 ‘펑크’난 수업을 메우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3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무용수업이 새 학기 들어 아예 시작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용수업은 1주일 3시간의 체육시간 중 1시간인데 담당 강사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결국 3학년 8개 반 학생들은 무용시간마다 남학생은 축구, 여학생은 피구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임 교사는 “미리 짜놨던 교육과정이 무용지물이 됐다. 수행평가도 무용을 하기로 했는데 이마저 바꿔야 할 판이라 학생들이 혼란에 빠졌다”고 하소연했다. 이 학교를 비롯해 경기 지역 초중고교 1300여 곳의 문화예술교육이 한 달 째 파행을 겪고 있다. 강사 선발 및 계약을 맡고 있는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이하 경기지원센터)가 올해 강사들과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교육은 2000년 문화체육관광부가 학생들에게 수준 높은 수업을 제공하겠다며 도입했다. 국악과 연극 영화 만화 무용 공예 디자인 사진 등 8개 과목이 대상이다. 정교사 중 관련 전공이 없을 경우 계약직 강사를 채용해 진행한다. 강사 선발 및 계약은 각 지역의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가 맡았다. 그러나 지난해 일부 강사들이 노조를 결성해 휴일근무수당 지급 등을 요구하면서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경기지원센터 등 전국 16개 센터는 “우리는 문체부에서 내려준 근로계약서에 대신 서명할 뿐”이라며 “계약 주체를 문체부 산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으로 일원화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문체부는 “당장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고수하고 있다. 새 학기를 맞아 현장의 파행이 이어지자 일단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조건부 합의를 거쳐 수업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경기지원센터는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결국 센터 측은 사업 불가를 선언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경기 지역에서는 학교 1293곳에서 예술강사 600여 명이 수업을 진행했다.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강사들은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한 중학교에서 4년째 무용강사로 일하는 최윤선 씨(43·여)는 “수업을 펑크 낼 순 없으니 일단 강의를 해달라”는 학교 측의 요청에 지난주부터 수업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상태라 다음 달 수강료를 제대로 받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최 씨는 “학교 측에 사정을 물어보면 오히려 ‘어떻게 된 일이냐’며 되묻고 있다”며 “어디에 문의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도 “우리는 사업비만 댈 뿐 사업 주체는 문체부”라며 선을 그었다.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 2016-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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