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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층 인사들에게 성접대를 한 혐의를 받고 있는 건설업자 윤모 씨(52)를 형사처벌하려면 성접대 대가로 편의를 제공받은 사실이 확인돼야 한다. 경찰은 윤 씨가 2000년 이후 20여 건의 고소, 고발을 당하면서도 처벌을 피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비롯한 검찰 고위 인사가 윤 씨의 뒤를 봐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특히 경찰은 김 전 차관에게 윤 씨를 소개해준 인물이 당시 사정기관 간부였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 전직 간부의 역할에도 주목하고 있다.○ 법조 인맥 동원해 수사 무마 의혹우선 지난해 11월 윤 씨가 강간 공갈 혐의로 고소됐을 때 ‘봐주기 수사’가 이뤄졌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당시 여성사업가 K 씨(52)는 “윤 씨가 차에서 약물을 먹이고 성폭행했다. 빚 15억 원을 안 갚으려고 이 장면을 휴대전화로 찍은 뒤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며 서울 서초경찰서에 윤 씨를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K 씨가 윤 씨와 내연관계였다는 점에서 강간과 공갈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보고 불기소 의견으로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 안미영)에 송치했다. 동영상 촬영이나 총포도검법 마약물관리법 위반 등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부수적 혐의에만 기소 의견을 냈다.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이 과정에서 검찰이나 경찰 수뇌부가 외압을 넣었는지, 수사팀이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했는지 등을 밝히기 위해 당시 수사팀을 불러 조사하고 있다. K 씨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경찰이 (윤 씨와) 합의를 종용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윤 씨는 2007년과 2010년, 그리고 지난달 등 총 3차례에 걸쳐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의 한 주상복합빌딩 분양 피해자들로부터 사기 횡령 혐의로 고소당했다. 피해자들은 “윤 씨가 대표로 있던 J산업개발이 2003년 상가를 분양하면서 인테리어 공사 등을 위해 조성한 개발비 71억 원을 횡령했다”며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지만 2007년과 2010년 고소 건은 모두 불기소 처분됐다.고소인 중 한 명인 김모 씨(62)는 24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2010년경 검사가 사건을 1년 넘게 끌면서 윤 씨와 합의를 하라고 종용했다”고 밝혔다. 김 씨는 “결국 무혐의로 결론이 나자 담당 검찰 수사관에게 ‘수사를 제대로 했느냐’고 따졌지만 수사관이 ‘검사가 수사관 도장을 달라고 해서 넘겨줬을 뿐’이라고 말해 황당했다”고 말했다.○ 별장 이용해 문어발식 인맥 확장윤 씨는 자신의 강원 원주시 별장을 정관계 법조계 인맥을 넓히는 전초기지로 활용했다. 별장은 당초 한 개동으로 지었지만 더 많은 사람을 초대하기 위해 2006년 4개동으로 증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윤 씨가 유력인사를 별장으로 끌어들여 성접대를 하면서 동영상을 찍은 뒤 이를 약점 잡아 요구를 관철하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윤 씨는 평소 지인들에게 김 전 차관과 전 사정기관 간부 A 씨 등 고위층 인사들과 가까운 사이라는 점을 과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윤 씨의 한 측근은 본보 취재팀에 “사업 투자금을 모집할 때 다양한 유력인사와의 친분을 내세우며 ‘도와주는 분들이 많아 절대 (사업이) 실패할 염려가 없다’고 자주 강조했다”고 전했다.한편 경찰은 25일부터 경찰청 범죄정보과, 지능범죄수사대, 마약범죄수사대, 여성·청소년 조사 전문 여경 등 8명을 지원받아 기존의 특수수사과 수사팀을 8명에서 16명으로 늘려 이번 사건 수사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또 참고인들이 별장에서 수천만∼수억 원의 도박판을 벌였다는 의혹과 마약성 약물을 복용한 채 환각파티를 벌였다는 정황을 포착하고 확인 작업을 하고 있다. 전 감사원 국장급 간부가 윤 씨가 지은 빌라(217.8m²형·66평형)를 정상가보다 싸게 구입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확인하고 있다. 이 전직 간부는 본보 취재팀에 “5억5000만 원에 구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이 빌라의 3.3m²(1평)당 분양가가 1100만∼1250만 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전체 분양가는 7억 원이 넘는다. 이 전직 간부는 “나중에 알고 보니 3억∼4억 원에 집을 산 사람이 태반이었고 나는 엄청 비싸게 산 것”이라고 말했다.신광영·최예나·최지연 기자 neo@donga.com}

17일 오후 11시 32분 서울국제마라톤 골인지점인 올림픽주경기장. 레이스를 마친 스페인 출신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 하비에르 콘데 씨(47)가 웃음을 지었다. 뼈와 근육이 발달하지 못한 두 팔이 앙상해보였다. "기분이 어떤가요?"라는 유니세프 관계자의 질문에 대답할 기력도 없었다. 그래도 즐겁다. 그는 이날 3시간 2분 47초 기록으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콘데 씨는 양 손가락이 각각 네 개밖에 되지 않는 장애인이다. 어릴 적 그는 "'자고 일어나면 엄지에 손가락이 자라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고 말했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은 그를 "네 손가락"이라며 놀려댔다. 어른이 되면서 자신의 장애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 콘데는 1992년 장거리 선수로 데뷔해 팰럴림픽 대회에서 장거리 경기와 마라톤 부문 금메달 7개, 은메달 2개를 따냈다. "은퇴 전까지는 제 승리를 위해 달렸지만, 이젠 소외받는 아동들을 위해 뛰고 있습니다" 콘데 씨는 이날 대회에 참가하면서 NGO단체 유니세프에 1000유로(한화 약 145만 원)를 기부했다. 4년 전 은퇴한 그는 이듬해부터 지금까지 28개국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며 아동구호단체에 기부금을 전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는 "공신력 있는 국제 단체를 통해 아이들을 돕고 싶어 유니세프를 통해 후원하게 됐다"고 밝혔다. 콘데 씨는 주로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열었던 나라를 중심으로 마라톤에 참가하고 있다. 한국도 그중 하나다. 그는 특히 한국의 마라토너가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금메달을 땄던 것을 인상 깊게 생각하고 있다. 경기에 나서기 전 그는 "마라톤은 관중들에게 힘을 주는 스포츠"라며 "이번 대회가 내 자신과 한국 관중들에게 하나의 축제가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운동복 차림으로 공항 주변을 조깅했을 정도로 '달리기 광(狂)인 콘데 씨는 "달리는 것은 내 삶의 일부다. 생명이 다 하는 한 이렇게 달리면서 많은 사람을 돕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앞으로 유니세프 등 국제 아동 구호 단체를 통해 기부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계획이다.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 “재판 준비하느라 연습 많이 못했어요” ▼■ 60세 김이수 헌재 재판관“마지막 풀코스 도전입니다. 이제 환갑이고 일도 많아져서요.” 17일 서울국제마라톤에 출전한 김이수 헌법재판소 재판관(60·사진)은 풀코스를 17번 완주한 베테랑 마라토너다. 최고 기록은 2010년 11월 세운 3시간39분29초. 지난해 재판관이 되면서 연습량이 줄었다며 “4시간30분 안에만 들어오면 좋겠다”며 웃었다. 김 재판관의 이날 기록은 4시간4분36초. 김 재판관은 2003년 마라톤을 시작했다. 부인 정선자 씨(59)가 2002년 하프마라톤을 완주한 뒤 자극을 받아 함께 뛰기 시작한 것. 2004년 5시간 5분대에 첫 풀코스 완주를 했다. ‘다시는 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지만 그는 마라톤의 매력에 빠져 있었다. 매일 1시간 반을 달렸고 주말엔 25∼35km를 뛰었다. 연습량만큼 기록도 좋아졌고 68kg이던 몸무게도 63kg으로 줄었다. 김 재판관은 “마라톤은 자세 유지와 체중 관리에 가장 좋은 운동”이라고 했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 “8년째 후원대회, 직접 달려보니 뿌듯” ▼■ 아식스 국제담당 임원 가토씨“초반에 몸이 가볍다고 느껴져서 오버페이스를 했는지 후반에 다리가 풀려버렸어요.” 다리가 풀렸다던 가토 가즈미 씨(55·아식스·사진). 그러나 엄살같이 느껴졌다. 전혀 지친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국제마라톤을 8년째 후원하고 있는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아식스의 임원이다. 이번 대회에 직접 참가해 풀코스를 3시간53분 만에 완주했다. 가토 씨는 2007년 뉴욕 마라톤을 시작으로 서울국제마라톤까지 풀코스를 7번 완주했다. 그는 아식스가 온라인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맞춤형 러닝 플랜 시스템 ‘마이 아식스(My ASICS)’를 통해 3개월간 꾸준히 서울국제마라톤을 준비해왔다. 그는 “개인 최고기록을 깨지 못해 아쉽다”며 “3시간 30분이라는 목표를 성공한 뒤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식스는 로스앤젤레스(LA)와 로마, 바르셀로나 마라톤도 후원하고 있다.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 “서울 근무 5년, 완주가 가장 기쁜 일” ▼■ 아사히신문 지국장 하코다씨“서울 도심 한복판을 당당하게 달릴 수 있는 기회잖아요. 서울에 머무는 동안 꼭 뛰어보고 싶었어요.” 하코다 데쓰야 아사히신문 서울지국장(48·사진)은 17일 2013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4회 동아마라톤에 출전해 4시간21분19초로 완주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완주가 목표였는데 예상 밖으로 기록이 잘 나와 기쁘다. 게다가 동호회 7명 전원이 완주해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대회에서는 제한시간 5시간을 20여 초 앞두고 간신히 완주했다. 하코다 지국장은 2008년 한국에 부임했다. 이달 말로 임기가 끝나 일본으로 돌아간다. 그는 주위에서 지난 5년간 지국장으로 근무하며 가장 기뻤던 순간을 물어보면 ‘동아마라톤 완주’를 꼽는다고 했다. “지난해 동아마라톤에서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한국인들이 일본에 보내준 성원과 겹쳐 보여 더 감동적이었죠.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매년 3월 동아마라톤에 출전하고 싶어요.”주애진 기자 jaj@donga.com}

채동욱 서울고검장(54·사진)이 15일 검찰총장에 지명되면서 지난해 12월 벌어진 사상 초유의 ‘검란(檢亂)’ 사태 이후 103일 동안 비어있던 검찰 총수 자리가 주인을 찾았다. 하지만 채 고검장이 검찰총장에 지명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당초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에 김학의 전 대전고검장을 유력한 후보로 검토했다는 말이 나돌았다. 그러나 지난달 7일 법무부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는 예상을 뒤엎고 채 고검장과 김진태 대검 차장, 소병철 대구고검장 등 3명을 검찰총장 후보로 추천했다. 김 차장은 검란 이후 검찰총장 대행으로 무난하게 조직을 추슬렀다는 점이, 소 고검장은 호남 출신으로 지역 화합과 안배에 유리하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혔다. 반면에 채 고검장은 검란 당시 대검 차장으로 한상대 검찰총장의 사퇴를 압박한 것이 부담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한 달 넘게 임명제청이 이뤄지지 않자 검찰 안팎에서는 갖가지 소문과 예측이 이어졌다. 결국 채 후보자가 낙점되면서 “박 대통령이 김 전 고검장을 법무부 차관에 임명한 뒤 검찰총장 인사는 참모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홍원 국무총리도 박 대통령에게 채 고검장을 적극 추천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와 검찰도 채 후보자 지명을 대체적으로 반기는 분위기다. 법무부의 중견 간부는 “후배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고 폭넓게 존경을 받는 분”이라며 “특별수사는 물론이고 기획이나 공안 검사들도 환영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사법연수원 14기인 채 후보자가 검찰총장이 되면 검찰은 고위 간부들의 급격한 물갈이를 피할 수 있게 된다. 채 후보자와 동기인 14기 고검장 8명이 사퇴하면 15기 검사장 4명, 16기 검사장 4명이 고검장에 승진할 것으로 보인다. 채 후보자는 대표적인 특별수사통이다. 서울지검 특별수사부장과 대검 수사기획관을 거치면서 굿모닝시티 분양 비리, 현대자동차 비리,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매입 및 탈세 사건 등 굵직한 비리사건을 맡았다. 풍부한 대형 사건 수사 경험으로 분석력과 상황 판단력이 탁월하다는 평가. 원만한 성품에 따르는 후배도 많다. △서울(사법시험 24회·사법연수원 14기) △세종고 △서울대 법학과 △밀양지청장 △대검찰청 마약과장 △서울지검 특수2부장 △대전지검 서산지청장 △대검 수사기획관 △전주지검 검사장 △법무부 법무실장 △대전고검장 △대검찰청 차장 △서울고검장이상록·최예나 기자 myzodan@donga.com}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됐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69)에 대한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14일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73)으로부터 인사 청탁 명목으로 5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기소됐던 한 전 총리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뇌물 공여와 특가법상 횡령 혐의로 기소된 곽 전 사장은 징역 2년 6개월과 집행유예 4년이 확정됐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피고인에게 막말을 퍼붓는 판사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양 대법원장은 1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 토론회에서 “법원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 통탄스럽다. 전체 법관의 명예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밝혔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최모 부장판사는 지난해 말 피고인에게 “초등학교 나왔죠? 부인은 대학 나왔는데 마약 먹여서 결혼한 것 아니에요?”라고 말한 사실이 최근 알려져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양 대법원장은 “법관의 업무 부담도 원인이겠지만, 변명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실수에 대해서는 (해당 판사가)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하고,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야 한다는 게 저를 비롯한 법관들의 생각이다”라고 했다. 현직 대법원장이 언론인과의 토론회에 참석한 것은 사법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양 대법원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국민의 신뢰 회복’을 거듭 강조했다. 최모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가 최근 페이스북에 김병관 국방부 장관 임명 반대 글을 올리는 등 법조인이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것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했다. 양 대법원장은 “법관도 사적으로 정치적 견해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법관은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기 때문에 외관상으로도 공정하게 보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편 대법원은 21일 공개변론을 처음으로 중계방송한다. 이날 오후 2시 반부터 대법원 홈페이지와 네이버를 통해 생중계한다. 양 대법원장은 “법원 재판 과정 전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도 신뢰를 높이기 위한 일환”이라고 말했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당신을 납치해 오면 10억 원을 준다는 사람의 전화를 받아서 마음이 흔들렸어요. 하지만 안 하려고요.” 지난해 10월 30일 서울 강남구 타워팰리스 로비. 김모 씨(34)의 이런 말을 들은 최모 씨(여)는 두려움에 떨었다. “원하는 게 뭐냐”고 묻자 김 씨는 “그저 일자리를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 씨의 남편은 당시 삼성그룹 전략기획실 사장 김인주 씨다. 로비에서 만나기 몇 시간 전 김 씨로부터 “꼭 할 말이 있다”는 전화를 받은 최 씨는 남편과 상의해 경찰에 신고했고, 김 씨는 잠복해 있던 경찰에 붙잡혔다. 2010년 호프집 사업 실패로 1억 원의 빚을 진 김 씨는 삼성 직원이 되고 싶었다. 2004년부터 2년간 삼성그룹 협력업체에서 일하면서 든 생각이었다. 그는 실세를 알면 취직할 수 있다고 믿고 김 사장에게 접근을 시도했다. 함께 일했던 후배 강모 씨(33·여)에게 부탁해 김 사장과 가족의 인적사항을 알아냈다. “가족을 노리는 괴한이 있다”고 알려주면 이를 고마워한 김 사장 측이 대가를 물어볼 것이고 이때 취직자리를 부탁한다는 계산이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부장 김윤상)는 김 씨를 사기미수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12일 밝혔다. 김 사장 가족의 개인정보를 넘긴 강 씨는 벌금 200만 원에 약식 기소했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2009년 2월 이모 씨(54·여·무직)는 사업가 임모 씨(46)에게 접근해 “박정희 대통령 시절 비자금으로 보관된 달러가 부산 부둣가 창고에 있는데, 관리자를 잘 안다”면서 “5000만 원을 주면 달러 5억 원어치를 받을 수 있다”고 꾀었다. 이 씨는 인터넷에 떠도는 미국 달러 뭉치와 채권 사진을 보여줬다. 운영하던 사업체가 부도나 돈이 급했던 임 씨는 바로 돈을 건넸지만 이 씨는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지난해 9월 서울 관악구의 한 빵집. 이번에는 이 씨의 시선이 성모 씨(54·무직)의 휴대전화 화면에 꽂혔다. 비닐로 포장된 5만 원권 뭉치, 층층이 쌓인 금괴, 달러 묶음…. 성 씨는 사진을 보여주며 “내가 김대중 전 대통령 비자금을 만든 인물이다. 현금 2억∼3억 원을 갖고 오면 미국채권, 달러, 12.5kg 금괴, 현금 5억 원이 들어 있는 박스 2개를 주겠다”고 했다. “창고가 추풍령에 있으니 (돈을) 당장 가져올 수도 있다”는 말이 결정적이었다. 이 말을 믿은 이 씨는 성 씨에게 1억 원을 건넸지만 곧 연락이 끊어졌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 이형택)는 사기 혐의로 성 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11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성 씨는 이 씨처럼 인터넷에서 떠도는 현금과 금괴 사진을 내려받아 자신이 직접 찍은 것처럼 보여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씨는 지난해 10월 경찰에 자신의 범죄를 자백한 뒤 성 씨를 신고했다. 검찰은 유방암 말기인 이 씨를 올해 1월 불구속 기소했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이제 2학년인데 각오가 어떠니?” “정말 열심히 다녀야죠!” “혹시 또 정신교육 받아야 하는 거 아니지?” “아니에요. 저 이제 사고 안 쳐요∼.” 개학을 앞둔 지난달 28일 오전 사법연수원 교수로 재직 중인 김정민 판사(40·여·사법연수원 29기)의 휴대전화에 연신 카카오톡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지웅(가명·18)이, 김 판사가 2009년과 2011년에 소년원에 보냈던 아이다. 지난해 남들보다 1년 늦게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지웅이는 오토바이를 지독하게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김 판사와 만난 것도 무면허로 오토바이를 탄 혐의(도로교통법 위반) 등으로 2009년 5월 수원지방법원 소년부에 왔을 때였다. 이혼한 어머니는 생계 때문에 지웅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중학교 1학년(2008년) 때 자퇴하고 가출해 친구들과 오토바이 타고 본드 마시고 후배나 친구 돈을 빼앗아 경찰서에 몇 번 드나들었지만 법정에 선 건 처음이었다. 김 판사는 지웅이에게 보호관찰 처분을 내렸다. 단 한 번의 만남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해 11월 지웅이는 야간 외출을 제한하는 준수 사항을 어기고 또 가출해 재판을 받았다. 김 판사는 지웅이를 소년원에 한 달간 가게 했다. 2010년 초에도 지웅이의 사건은 여러 건 접수됐다. 소년원에 가기 전에 저질렀던 사건이 뒤늦게 수사됐던 것. 김 판사는 재판에 부치지 않는 대신에 “또 사고 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그해 10월, 사건 목록에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지웅이가 또 오토바이를 타고 친구 돈을 빼앗았다. 재판이 능사가 아니었다. 김 판사는 1주일에 한 번씩 아이를 법원에 부르기로 했다. 매일 3쪽씩 반성문을 써 오라는 숙제와 함께. “아무도 안 깨워 줘서 학교에 못 가서 자퇴했습니다.” “저는 쓰레기입니다. 엄마가 잔소리할 때 욕을 했습니다.” 아이는 솔직한 마음을 쏟아 냈다. 김 판사는 훈계를 하다 그의 상처를 위로해 주기도 했다. 2, 3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지웅이와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을 소집해 함께 밥을 사주기도 했다. 그 아이들까지 다잡아야 지웅이가 제자리를 찾을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웅이의 반성문은 편지로 변해 갔다. “판사님을 법정에서 만났을 때 무서웠습니다. ‘나 같은 애 봐줄 리 없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를 변하게 하려는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제 이야기 들어 주고 혼내는 어른이 없었는데….” “안녕하세요, 판사님. 날씨가 엄청 춥습니다. 따뜻하게 입고 계신지 걱정됩니다.” 이 기간에도 지웅이는 몇 번 말썽을 피웠다. 김 판사는 속이 상했지만 지웅이를 놓아 버릴 수 없었다. ‘그래도 처음 만났을 때보다 눈빛이 조금은 달라졌어.’ 3개월간의 멘토링을 끝낸 2011년 1월 김 판사는 지웅이에게 소년원에 6개월간 가는 처분을 내렸다. 직접 데려다주며 말했다. “4월에 꼭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 합격하자. 내년에 고등학교 가는 거야.” 그 다음 달 김 판사는 서울가정법원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지웅이와의 인연은 계속됐다. 소년원으로 찾아가거나 편지에 답장을 보냈다. 소년원에서 나오기 직전 지웅이는 김 판사에게 편지로 고백했다. “판사님께서 저를 만날 때 행복하시다면 저도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판사님의 저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판사님!” 드디어 지난해에 지웅이는 “교복 입은 모습 보여 드릴게요”라던 약속을 지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래도 김 판사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담임교사에게 편지도 쓰고 직접 만나 부탁까지 했다. “아이가 한번에 바뀌기는 힘들 거예요. 잘못해도 ‘네가 그럼 그렇지’ 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담임과의 첫 면담에서 “판사님 때문에 학교 왔다”며 수동적이던 아이는 이제 방학이 심심해 싫다고 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당연히 결석과 지각도 하지 않았다. “너, 차(車) 전문가잖아. 나중에 내 차는 네가 고쳐 줘야지!” 요즘 김 판사가 틈 날 때마다 하는 말이다. 지웅이가 대학에 갈 의지를 다지고 있어서다. 주변에서는 김 판사를 말리기도 했다. “뭐 하러 저런 아이에게 힘을 쏟느냐”고. 하지만 ‘관심을 가져 주면 변한다’는 김 판사의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지난해 지웅이는 스승의 날을 맞아 편지를 보내 왔다. “저는 잘한 것도 없는데 어떻게 판사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는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고양=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정부합동 의약품 리베이트 전담수사반(반장 고흥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은 국내 1위 제약업체인 동아제약으로부터 불법 리베이트(사례금)를 받은 혐의(의료법 위반)로 김모 씨(46)등 의사 119명과 병원 이사장 1명, 병원 사무장 4명 등 모두 124명을 기소했다고 10일 밝혔다. 리베이트 수사로 100명이 넘는 의사가 한꺼번에 기소된 것은 처음이다. 의사 119명은 쌍벌제 시행 이후 리베이트를 수수하다 적발됐다. 2010년 11월 시행된 쌍벌제는 의약품 판매와 관련해 금품을 건넨 쪽 외에 받은 쪽도 처벌하는 제도다. 또 수사반은 쌍벌제 시행 전 리베이트를 수수한 의사들에 대해서도 보건복지부에 명단을 통보했다. 기소된 119명을 포함해 명단이 통보된 의사는 무려 1300명에 달한다. 쌍벌제 시행 전에 범행을 저지른 의료인에게는 받은 금액과 상관없이 자격정지 2개월의 조치가 내려진다. 수사반은 김 씨 등 1000만 원 이상 수수한 혐의를 받은 의사 18명과 병원 사무장 1명은 불구속 기소했다. 또 리베이트로 받은 돈이 1000만 원 미만이거나 혐의를 인정한 나머지 105명은 150만∼700만 원의 벌금형에 약식 기소했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김 씨 등 의사들은 동아제약이 온라인 콘텐츠 제작업체에 의뢰한 동영상 강의에 출연하거나 설문조사에 응한 뒤 사례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는 가장 많은 돈(36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병원 홈페이지 광고료 명목으로 돈을 받거나 명품시계, 의료장비, 전자제품을 받은 의사도 있었다고 수사반은 밝혔다. 쌍벌제 시행 이후의 위법 행위에 대해선 벌금 액수에 따라 자격정지 기간이 2∼12개월로 나뉘기 때문에 법원에서 형량이 최종 확정된 뒤에야 행정처분이 시작된다. 고득영 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장은 “행정처분 대상 의사들이 행정소송으로 맞서면 실제 징계까지 몇 년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최예나·이지은 기자 yena@donga.com}

‘영구’로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영화 ‘디워’로 할리우드까지 진출했던 심형래 씨(사진)가 법원으로부터 개인파산 선고를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파산1단독 원용일 판사는 7일 심 씨에게 파산을 선고했다. 법원이 선정한 파산관재인은 심 씨가 채권자들에게 나눠줄 재산이 있는지 조사한다. 재산이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 법원은 바로 파산절차를 종료한 뒤 채무면책을 결정하고, 재산이 있으면 채권액에 비례해 배당한다. 파산 선고가 끝난 뒤 경제활동을 해서 취득한 재산은 본인 소유가 된다. 영화 제작에 많은 비용을 투자했다가 흥행 실패로 재정난을 겪어온 심 씨는 1월 서울중앙지법에 개인파산을 신청했다. 이날 변호사와 함께 법원에 나타난 심 씨의 표정은 초췌했다. 국민에게 큰 웃음을 줬던 모습은 없었다. 비공개로 진행된 2차 심리에서 심 씨는 “앞으로 열심히 살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코미디의 전설이었던 심 씨는 1993년 영화 제작자로 나섰다. ‘용가리’(1999년)가 한국 공상과학(SF) 영화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을 받아 정부로부터 신지식인 1호로 선정됐다. ‘디워’(2007년)는 미국에 진출한 한국 영화 중 가장 크게 흥행했다. 그러나 200억 원 이상의 제작비를 들여 할리우드 일급 배우들과 만든 ‘라스트 갓파더’(2010년)가 흥행에 참패하면서 재정 위기가 왔다. ‘디워’ 제작 때 빌린 55억 원을 갚으라며 금융기관이 제기한 소송에서도 패소했다. 회사와 집이 압류되고 직원들 월급도 못 주는 상황이 됐다. 결국 제작사는 2011년 7월 문을 닫았고, 심 씨의 카지노 출입설이 돌기도 했다. 지난해 8월에는 심 씨 부부 소유의 타워팰리스 아파트(102평형)가 경매로 나와 40억 원에 낙찰됐다. 심 씨는 영구아트무비 직원 43명의 임금과 퇴직금 8억9153만 원을 체불한 혐의(근로기준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돼 1월에는 법원으로부터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심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1월 선고 후 취재진에게 “앞으로는 영화를 찍을 때만 돈을 주는 계약직으로 회사를 운영하겠다”며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차기작 ‘유령도둑’도 준비 중이었다. 그는 신지식인 1호로 선정된 뒤 TV 광고에서 이런 말을 했다.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니까 못하는 겁니다.” 영구 심형래가 국민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날이 다시 올 수 있을지 두고볼 일이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2010년 교육감선거에서 후보 사퇴 대가로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에게 2억 원을 받은 혐의(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됐던 박명기 전 서울교대 교수(사진)가 곽 전 교육감과의 단일화 및 재판 과정 등을 담은 책을 이르면 4월 말 낼 계획이다. 그는 지난해 9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과 추징금 2억 원이 확정돼 복역한 뒤 지난달 21일 만기 출소했다. 박 전 교수는 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책이 60% 정도 완성됐다. 교도소에서 연필로 쓴 걸 컴퓨터로 옮기는 시간을 감안하면 4월 말쯤 출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 책에서 “박 전 교수가 단일화 대가로 10억 원을 요구했지만 선거대책본부가 거절했다”는 곽 전 교육감 측 주장을 반박하며 단일화 합의 바로 전날(2010년 5월 18일) 상황을 자세히 담을 계획이다. 박 전 교수는 “곽 전 교육감이 18일 ‘선거 준비 오래 하셨는데 갑자기 나와 미안하다. 그만두면 선거비 보전도 못 받을 텐데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그냥 두겠냐. 도와 드리겠다’고 했다”며 “곽 교수 측과 접촉했던 양재원 선대본부장이 그날 아침 ‘곽 교수 측에서 7억 원 정도를 보장해 주기로 했다’고 말해 그 얘기를 하는 것으로 알았다”고 주장했다. 박 전 교수는 자신이 수감된 뒤 곽 전 교육감 측이 한 기자회견 내용도 반박할 계획이다. 그는 “내가 자살하겠다며 교육감실로 찾아가 소동을 부렸다고 기자회견에서 주장했는데, 2010년 11월 17일 강경선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를 만났을 때 ‘슈퍼를 인수한다고 속이고 재산을 빼앗은 조폭’에 관한 기사를 보여주면서 슈퍼 주인이 얼마나 분하면 자살했겠느냐’고 말한 게 전부다”라고 주장했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강남 미국대학수학능력시험(SAT) 학원들의 시험 문제 사전 유출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학원들에서 압수한 시험 문제를 SAT 주관사인 미국교육평가원(ETS)에 감정 의뢰한 것으로 3일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박근범)는 지난달 I어학원 등 8개 학원에서 압수한 SAT 문제 분석 자료 일부를 최근 ETS 한국지사를 거쳐 미국 본사에 보내 공식 감정을 요청했다. 문제가 된 학원들이 학생들에게 나눠 준 SAT 문제가 실제 ETS 문제은행이 보유한 것과 동일한지를 가리기 위한 것이다. ETS 감정 결과에 따라 한국 응시생들의 특정 시기 SAT 성적이 무효화될 가능성도 있다. ETS는 2007년 1월 한국에서 치러진 SAT에 대한 문제 유출 의혹이 일자 한국 응시생 900여 명의 성적을 모두 무효 처리한 바 있다. 검찰은 ETS의 감정 결과를 받는 대로 학원 관련자들을 소환 조사해 문제 입수 경위를 확인할 예정이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폭행치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A 씨(43)는 4년 넘게 도망 다니던 끝에 지난해 9월 경찰에게 붙잡혔다. A 씨가 도망 다니게 된 사연은 2008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 양주시의 한 주유소에 간 A 씨는 종업원 B 씨와 영수증 발부 문제로 시비가 붙었다.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던 중 B 씨가 갑자기 땅바닥에 주저앉자 A 씨는 인공호흡을 한 뒤 119 구급대원을 불렀다. B 씨가 병원으로 가다 사망한 사실을 알게 된 A 씨는 자신이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했다. 그는 곧바로 도망쳤고 4년 넘게 떠돌았다. 그가 붙잡힌 것도 가족을 만나다가 잠복 중인 형사에게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판사 정형식)는 A 씨에게 원심과 같이 폭행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80시간을 명했다고 1일 밝혔다. 재판부는 “건장한 체격의 피해자가 외견상 아픈 모습이 아니었고, 심근경색으로 추정되는 피해자의 사인이 예상치 못한 급사에 해당하며 폭행도 심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A 씨가 피해자의 사망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워 폭행치사죄를 적용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멱살을 잡아 심하게 흔들면서 몸싸움을 하면 평소 건강한 사람도 심장마비 등으로 갑자기 사망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미국대학수학능력시험(SAT) 학원 업계의 ‘스타’로 불리며 인기를 끌다 문제 유출 혐의(업무방해)로 불구속 기소된 강사 제프리 손 씨(42)가 기소 1년여 만에 또다시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박근범)가 최근 SAT 문제 유출 의혹이 제기돼 압수수색한 강남의 SAT 학원 8곳 중에 손 씨가 설립해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I어학원이 포함된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이 학원 관계자는 동아일보에 “손 대표의 전력 때문에 압수수색을 받은 것이지 우리 학원은 문제 유출과 관련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과 강남교육지원청 등에 따르면 손 씨는 2007년 1월 SAT 시험 문제의 사전 유출 혐의로 2010년부터 수사를 받던 중 2011년 5월 이 학원을 새로 설립한 뒤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그는 지난해 1월 불구속 기소된 이후 이 학원에서 SAT 과목을 계속 가르쳐 왔다고 학원 측은 밝혔다. 검찰은 학원에서 압수수색한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강의 자료, 강사 활동 자료 등에 대한 분석을 끝낸 뒤 손 씨 소환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손 씨가 시험 문제 유출 사건으로 수사를 받으면서도 버젓이 새 학원을 차려 대대적인 홍보를 하며 SAT 강의를 계속해 온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손 씨는 학원을 차린 2011년 5월에만도 4차례의 설명회를 열었다. 당시 설명회는 예약을 해야 참석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학원은 손 씨가 기소되기 한 달 전에도 설명회를 열어 “올해 10, 11월에 SAT 만점자들을 연속으로 배출한 노하우를 공개할 예정”이라는 내용을 강조했다. SAT 주관사인 미국교육평가원(ETS)도 이번 수사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ETS는 2007년 1월 시행된 SAT 시험 문제의 사전 유출 사건 뒤 자체 조사를 벌여 해당 시험의 한국 응시생 900여 명 전원의 성적을 무효 처리한 바 있다. ETS는 “이번 수사 결과에 따라 SAT 시험 결과를 무효 처리할 것이냐”는 취재팀의 질의에 공식 답변을 하지 않았다. 학원 업계에 따르면 손 씨는 2010년 수사를 받으며 오히려 더 유명해졌다. 한 학원 업계 관계자는 “자녀의 미국 명문대 합격을 소망하는 학부모들은 손 씨가 시험 문제를 유출할 정도의 수완이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SAT 점수를 높여줄 것으로 기대한 것 같다”며 “수사를 받던 손 씨를 ‘미다스의 손’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검찰에 따르면 손 씨는 2007년 1월 27일 동료 강사 김모 씨에게 태국에서 SAT를 보게 한 뒤 김 씨의 연락을 받고 당시 시험 문제가 2005년 12월 문제와 같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곧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당일 미국 동부 뉴욕에서 치러질 SAT의 문제와 답안을 게시했다. SAT가 같은 날 전 세계에서 치러지기 때문에 나라별 시차를 이용하면 시험 문제를 미리 알 수 있다는 점을 이용했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학원가에는 손 씨가 당시 문제 유출 의혹의 ‘몸통’이라는 소문이 퍼졌고, 2010년에 경찰 수사로 파문이 확산됐다. 손 씨는 지난해 1월에 불구속 기소돼 현재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동아일보는 손 씨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학원에 여러 차례 전화했으나 “(손 씨는) 수업이 없어 나오지 않는다”는 답변만 들었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상호)는 위장탈북 후 서울시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며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넘긴 혐의(국가보안법·여권법 위반 등)로 화교 출신 간첩 유모 씨(33)를 26일 구속기소했다. 유 씨는 탈북자 관련 단체와 서울시에서 일하면서 얻은 탈북자 200여 명의 신원정보를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에 따르면 2004년 4월 탈북자로 위장해 한국에 들어온 유 씨는 2006년 5월 가족을 만나러 몰래 다시 북한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북한 보위부에 적발됐다. 보위부는 가족의 안전을 위협하며 유 씨를 포섭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씨는 그 뒤 북한에 있던 여동생을 통해 탈북자들의 신원정보를 보위부에 전달했다. 북한에 넘어간 것으로 확인된 것만 200여 명 분이다. 유 씨의 여동생은 지난해 10월 탈북자로 위장 입국하려다 합동신문 과정에서 적발됐다. 국가정보원은 이때부터 유 씨에 대한 내사를 벌여왔다. 유 씨는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주거지원금과 정착금 등 2565만 원을 받았다. 대한민국 여권도 발급받아 중국 독일 태국 등을 12회 드나들었다. 중국 국적이면서도 탈북자로 속여 혜택을 받은 것이다. 행정안전부 통일부 국정원 서울시 등은 탈북자 사전 검증을 제대로 하지 못한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검찰은 “최근 탈북자를 이용한 북한의 공작활동이 늘고 있다”며 “위장 탈북자에 대해서는 더욱 엄중 처벌하겠다”고 밝혔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 2008년 겨울 열한 살이던 다영이(가명·여)는 아빠가 자신의 몸을 만지는 게 어떤 뜻인지 알지 못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아빠의 행동은 심해졌다. 지난해에야 다영이는 그게 성폭행이라는 것을 알았다. 괴로웠지만 말할 곳이 없었다. 학교에서 커터 칼로 손목을 그었다. 이를 목격한 교사와 상담하면서 그동안의 일을 털어놨다. 교사가 이 사실을 성폭력상담소에 알렸고 상담소의 도움을 받아 다영이가 지난해 9월 아버지 A 씨(45)를 고소했다. A 씨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친족 관계에 의한 강간)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고, 지난달 징역 8년에 전자장치 부착 명령 15년을 선고받았다. 》○ 성폭행한 父, 방관한 母 “부모 자격 없다”이 사건을 수사한 수원지검 여주지청 서지현 검사(40·여·사법연수원 33기)는 A 씨를 기소하면서 법원에 친권 상실 심판을 청구했다. ‘아버지가 친딸에게 성폭력을 지속적으로 저질렀고, 구금 생활을 상당 기간 할 것이라 적절히 친권을 행사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이달 7일 수원지법 여주지원 가사부는 A 씨의 ‘아버지 자격’을 박탈했다. 아이를 보호하고 키울 권리와 의무가 사라졌다는 뜻이다.수진이(가명·12·여)는 부모가 모두 가해자였다. 지난해 봄부터 9월 사이 성폭행 또는 유사 성행위를 세 차례 당했다. 상대는 새아빠. 엄마 B 씨(34)는 그때마다 자리를 피해 주거나 모른 척했다. 인천지검은 수진이의 새아빠를 구속 기소하고 엄마는 불구속 기소하면서 친권 상실을 청구했다. 인천지법 제1가사부는 지난해 12월 말 수진이 엄마의 친권 상실을 결정했다. 법원은 “남편의 범죄 행위를 알면서도 묵인했다면 친권자임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고 판단했다.검찰에 따르면 이 같은 이유로 친권을 잃는 부모가 매년 150명에 달한다. 친권은 천부적으로 주어진 것이라는 전통적 인식에 안주해 아이를 학대하면 국가가 부모 자격을 박탈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2008년부터 시행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옛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14조 1항은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사건 가해자가 피해 아동의 친권자인 경우 검사가 법원에 의무적으로 친권 상실 심판을 청구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 따라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이 2009년 처음 친권 상실을 청구했다. 법원은 검사의 친권 상실 청구를 대부분 받아들인다. 서울가정법원 관계자는 “정상적인 부모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이 대부분이라 친권 상실을 결정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법에 따른 친권 상실 청구지만 하기 쉬운 결정은 아니다. 친권을 행사할 다른 부모가 없는 경우가 특히 그렇다. 춘천지검 원주지청은 지난달 딸 민아(가명·14)를 수차례 성폭행하고 추행한 아버지 C 씨(42)에 대한 친권 상실 심판을 법원에 청구했다. C 씨는 동거녀가 2011년 폐경되자 딸을 성관계 대상으로 삼았다가 구속 기소됐고 지난해 말 징역 8년에 전자장치 부착 명령 10년을 선고받았다.민아는 보호센터로 보내졌고 검찰에 “아빠와 살기 싫다”라는 편지도 보냈다. 검찰은 빨리 청구서를 제출하려고 했지만 오래전 가출한 어머니의 행방을 찾을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원주지청 관계자는 “친모가 친부의 친권 상실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청구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친권을 행사할 사람이 엄마밖에 남지 않는 상황에서 행방은 확인해 봐야 했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엄마 행방을 찾기 어렵다고 보고 친권 상실을 청구했고 이에 따라 법원은 후견인을 지정할 것으로 보인다.○ 학대 부모도 친권 상실 청구앞으로는 아동 학대를 저지른 부모에 대한 친권 상실 청구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 안미영)는 최근 서울가정법원에 태호(가명·9) 군 아버지 D 씨(36)에 대한 친권 상실을 청구했다. D 씨는 숙제를 안 했다며 물이 담긴 대야에 태호의 머리를 박거나 책을 못 읽는다며 얼굴을 때려 코피가 나게 하는 등 학대한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지난달 구속 기소됐다.담당 검사는 고민했다. 아무리 나쁜 아빠여도 친권을 상실시키는 게 옳은 일인지 확신하기 쉽지 않았다. 아동 학대로 검사가 친권 상실을 청구한 경우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후유증으로 물만 보면 떠는 태호를 보며 결심했다. 담당 검사는 청구서에 “친권은 사랑과 양육을 전제로 합니다. 이에 반대되는 아버지가 계속 친권을 행사하면 아이의 정서나 심리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습니다”라고 적었다.전문가들은 검사의 친권 상실 청구에 긍정적이다. 정운선 경북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녀에게 성폭력이나 학대를 저지르는 아버지는 아내에게도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가 많아 엄마가 아이의 진술을 번복시키는 경우도 있다”라며 “국가가 가해자와의 접촉을 끊어주지 않으면 아이를 지킬 수 없다”라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도 “부모 중 어느 한쪽이 아이를 학대한 상대의 친권을 빼앗아 달라고 청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검사가 공익의 대표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했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미군이 나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미군을 쏴 죽이자는 노래는 나의 마음과 같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통일위원회가 2005년 개최한 ‘어린이민족통일대행진단’에 참가한 학생이 한 인터넷 언론 기자에게 한 말이다. 2005∼2007년 전교조 통일위원장을 맡았던 박모 전 전교조 수석부위원장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주한미군 철수나 국가보안법 폐지 같은 친북교육을 실시한 결과였다. 검찰이 전교조 소속 교사들로 구성된 친북 성향 단체를 처음 적발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 이정회)는 이적단체 ‘변혁의 새 시대를 열어가는 교육운동 전국준비위원회’(새시대교육운동)를 만든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전교조 교사 4명을 21일 불구속 기소했다. 그동안 전교조 교사가 개별적으로 국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적은 있지만 이적단체 구성으로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부위원장은 다른 전교조 교사들과 함께 2008년 1월 새시대교육운동을 조직했다. 이들은 발족식에서 △자주 민주 통일세상을 위한 변혁 운동 전개 △민족자주의식과 계급의식을 각성한 활동가 양성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으로 사는 통일 조국 건설 등을 결의했다. 검찰은 이 단체가 북한 대남혁명론 및 사회주의 교육 철학을 추종하면서 교육 현장에서 주체사상, 선군정치 등 북한 체제를 전파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남북 교사 교류 행사 등에 참여해 통일부 신고를 거쳐 합법적으로 각각 4∼26회 방북했다. 그런데 이들은 남으로 돌아오면서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의 선군정치는 정의의 보검’ 등이 적힌 북한 간부 연설문을 가져와 배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과 국정원은 지난해 1월 박 전 부위원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해 2005년 5월 경인교대에서 예비교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강의안 등을 발견했다.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에 대해 전교조는 이날 성명서를 내 “검찰이 노동조합 내에서 활동하는 자유로운 교사모임을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공안몰이를 시작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주장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라는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강원 속초-고성-양양)의 주장에 대해 검찰이 21일 “거짓으로 보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발언록을 열람한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간접으로 확인해 준 것이어서 향후 정치권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상호)는 “2007년 10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 때 남북 정상 간의 비공개 대화록이 있다”라고 의혹을 제기하며 이런 주장을 한 정 의원을 비롯해 같은 당 이철우 의원, 박선규 당선인 대변인을 무혐의 처분했다. 이해찬 민주통합당 전 대표, 천영우 대통령외교안보수석,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등 이 사건으로 피소된 인사들도 모두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이로써 대선 선거운동 기간인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석 달간 계속된 여야의 NLL 발언 관련 고소·고발 사건에 대한 수사가 모두 마무리됐다. 검찰은 “국정원이 제출한 제2차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발췌본과 대화록 원본을 비교·대조한 결과 정 의원의 주장을 거짓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대화록에 정 의원이 의혹을 제기한 구체적인 대화 내용이 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정 의원이 의혹을 제기할 만한 대화 내용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화록 발췌본’은 2급 비밀인 공공기록물이라 수사기관도 그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라며 대화록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전지성·최예나 기자 verso@donga.com}

이달 7일 헌정 사상 처음 열렸던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추천위) 결과는 법조계와 정치권에서 ‘신선한 반란’으로 여겨졌다. 현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진영 일각에서 염두에 두고 있던 인사들이 탈락했기 때문이다.그런데 최근 정치권에서 이상한 기류가 일고 있다. 추천위가 추천한 3명 가운데 검찰총장을 임명하지 않고 새 정부 출범 뒤 추천위를 다시 개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이다. 20일 복수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새로 출범할 정부의 주요 공직자 인사 라인에서 최근 추천위를 다시 열어 새로운 총장 후보자들을 추천하는 것이 법적인 문제점이 있는지 등을 검토했으며 문제가 없다고 보고 다시 추천위를 여는 것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추천위를 다시 열기로 방침이 굳어질 경우 그 시점은 새 법무부 장관이 취임한 뒤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권 내 법무실무자들은 이와 관련한 법리 검토까지 마쳤지만 이러한 상황을 박 당선인에게까지 보고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추천위를 다시 열기로 방침이 정해지면 실무는 첫 추천위 때와 마찬가지로 법무부가 맡게 된다.지난주 중반부터 여권 내에서 추천위를 다시 여는 방안이 논의된 배경에 대해 정치권과 검찰 인사들은 추천위의 ‘반란’을 꼽고 있다. 추천위 개최 전 야당과 언론들은 “추천위는 인사권자가 점찍은 인사를 후보로 추천하는 거수기 역할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을 했다. 그러나 여권과 법무부 예상과 달리 추천위는 무기명 비밀투표 방식으로 후보를 골랐다. 그 결과 여권 일각에서 내심 희망했던 것으로 알려진 후보들이 탈락하는 이변이 연출됐다. ▼ 여권서 내심 희망했던 후보들 탈락 이후 임명제청 절차 진행되지 않아 ▼추천위는 김진태 대검찰청 차장검사(61·사법연수원 14기·총장 권한대행)와 채동욱 서울고검장(54·14기), 소병철 대구고검장(55·15기) 등 3명을 후보로 추천했다.이후 검찰총장 임명 절차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권재진 법무부 장관이 3명의 후보자 중에서 최종 후보를 결정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임명제청하는 절차가 남아 있는데 차일피일 미뤄졌고 결국 새 정부 출범이 코앞에 다가왔다. 새 대통령과 새 법무부 장관이 취임한 뒤 임명제청 절차가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당초 법무부는 현 정부 임기 만료 전에 제청 절차를 마치겠다는 계획표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가운데 검찰 안팎에선 “실질적 인사권자인 박 당선인 측에서 추천 후보군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임명제청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소문이 돌았다.추천위를 다시 개최한다는 발상은 담당 부처인 법무부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와 검찰은 “검찰청법의 추천위 관련 조항을 보면 위원회를 다시 개최하는 데 법적인 걸림돌은 없다”고 전제한 뒤 “그런 (추천위 재개최) 방침을 청와대나 박 당선인 측에서 전달받은 바 없고 법무부에서 법리 검토를 진행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검찰청법 관련 조항(34조의 2)은 ‘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 후보자를 제청할 때마다 위원장 1명을 포함한 위원 9명으로 구성하고 후보자를 추천하면 위원회는 해산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돼 있다. 이 조항에 따라 7일 열렸던 추천위는 일단 해산됐고 새 법무부 장관은 추천위를 다시 구성할 수 있다. 법무부 검찰국장과 법원행정처 차장, 대한변호사협회장,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등 5명의 당연직 위원 외 4명의 비당연직 위원은 다시 위촉하면 된다.그러나 만약 추천위를 다시 연다면 법조계에서 강한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적법한 절차를 통해 후보가 추천된 상황에서 다시 추천위를 여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일부 당연직 위원들 사이에선 “추천위를 다시 연다면 참석 여부부터 심각하게 고려하겠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추천위를 다시 여는 것은 정치적 자해행위다. 결국 박 당선인이 최대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당선인은 대선 전 검찰개혁 공약을 발표하며 “검찰총장은 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인사 가운데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사람을 임명할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고위 법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최근 추천위 관련 소문을 듣고 우려스러운 마음”이라며 “하지만 박 당선인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절차적 정당성을 존중할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전지성·최예나 기자 verso@donga.com}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보유 의혹을 제기했던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전직 경찰청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법정 구속한 것은 파격적인 판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이성호 판사는 사자(死者)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청장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한 뒤 법정 구속했다. 이 판사는 “조 전 청장의 ‘차명계좌’ 발언은 허위”라고 못 박았다.○ “국론 분열한 죄”에 중형 선고 조 전 청장은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일하던 2010년 3월 기동단 팀장급 398명을 상대로 특별교양 강의를 하며 “(노 전 대통령이) 뛰어내리기 바로 전날 계좌가 발견되지 않았습니까? 차명계좌가. 10만 원짜리 수표가 타인으로.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됐는데…. 그거 때문에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린 겁니다”라고 말해 노 전 대통령의 유족에게 고소·고발당했다. 검찰은 조사를 통해 명예훼손 혐의가 있다고 보고 조 전 청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성호 판사는 “조 전 청장이 지목한 계좌는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당시 수사 과정에서 청와대 행정관 2명의 은행계좌 4개가 발견됐지만 거래 내용을 볼 때 몇천 원부터 수백만 원이 수시로 입·출금돼 ‘거액의 차명계좌’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판사는 “권양숙 여사의 심부름을 담당한 행정관이 자기 계좌로 현금을 받고 지출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조 전 청장이 “권 여사가 차명계좌를 감추려고 민주당에 특검(특별검사 도입)을 못 하게 했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강연 전에 믿을 만한 사람에게서 들었다고 할 뿐 누군지 밝히지 않고 있다. 소명자료를 제시하지 않는 이상 허위 사실 공표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 판사는 조 전 청장을 강하게 질타했다. 그는 “근거 없이 막연하게 허위 사실을 말해 국민들이 차명계좌에 대해 쑥덕거리게 됐고 수많은 의혹이 증폭됐다”며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과 비판하는 국민 사이에 국론을 분열시켰고, 검찰도 국민으로부터 차명계좌 수사를 중단한 것처럼 필요 이상의 비난을 받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 판사는 “발언이 허위 사실이 아니라면 근거를 밝히는 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며 “뭔가 있긴 한데 밝히진 못하겠다는 건 허위 사실 공표보다 더 나쁜 행위”라고 말했다. 또 “언론이나 법정에서는 피해자 측에 사과한다고 했지만 한 번도 직접 용서를 구한 적이 없었다. 진정한 의미의 사과와 반성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20분간 고개를 꼿꼿이 들고 이 판사를 바라봤던 조 전 청장은 법정 구속이 선고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재판이 열리기 5분 전 분홍색 넥타이를 매고 법정에 도착해 담담한 미소를 짓던 모습은 더이상 볼 수 없었다. 방청석은 탄식을 내뱉는 사람들과 눈물 흘리는 사람들로 순간 술렁였다. 선고 직후 노무현재단은 “사필귀정”이라며 “패륜적 행태가 우리 사회에 더이상 발붙일 수 없도록 경종을 울렸다”는 논평을 냈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조 전 청장이 일선 기동대장들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한 발언임을 감안해주지 않아 아쉽다”며 “역대 청장들이 계속 처벌되는 것도 안타깝다”고 했다.○ “죄질 나쁘면 여지없다”… 잇따른 법정구속 법조계에서는 이번 선고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대부분 벌금형으로 끝나는 명예훼손 범죄에서 징역 10개월이라는 중형이 선고된 것은 법원이 여론을 이끄는 사회지도층의 허위 사실 공표를 무겁고 심각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법원이 발간한 ‘2012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1년 명예훼손 사건으로 기소된 사람은 모두 2981명이다. 이 가운데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건 43명, 집행유예형도 55명뿐이다. 1690명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이 하급심에서 징역형을 선고하면서 곧바로 법정 구속하는 원칙이 정착 단계에 이르렀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 계열사 자금 465억 원을 빼돌려 펀드 투자에 사용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최태원 SK㈜ 회장이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됐다. 수천억 원 규모의 탈세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아 온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 회장과 저축은행 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가 인정된 정두언 의원도 1심 선고 직후 법정 구속됐다. 지난해 7월 가수 타블로의 학력위조 의혹을 제기해 논란을 빚은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타진요)’ 카페 회원 3명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법원이 실형을 선고하고도 법정 구속을 하지 않아 도망가는 ‘자유형 미집행자’가 속출하는 데다 대법원에서 징역형이 확정된 뒤 피고인을 수감하는 게 더 큰 여론의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급심 판결 강화 방침에 맞춰 하급심의 위상을 높이고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우는 대법원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의견도 있다.최예나·최창봉 기자 ye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