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당구치고 헌혈, 멘토와 보낸 6개월… 소년범이 달라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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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파랑마니또’ 시행 1년 성과

지난해 10월 처음 만난 소년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음료수만 들이켰다. “앞으로 나랑 뭘 같이 하고 싶니?”라고 물었더니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교육받는 것도 귀찮은데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하는 표정이었다. 삼환기업에서 근무하는 한규범 씨(36·대리)가 오토바이를 훔친 혐의로 기소유예된 승준(가명·17) 군을 멘토링하기 위해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이다.

승준이는 밴드부 친구들과 길에 세워진 오토바이를 훔쳐 입건됐다. 가슴이 답답해 쌩쌩 달리고 싶었다고 한다. 외동아들인 승준이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고 엇나가고 있었다. 담배를 연신 피웠고 매일 밤늦게까지 놀았다. 기타 치는 것을 좋아했지만, 부모는 밴드부가 아들을 망쳤다고 생각해 반대했다. 승준이는 부모에게 입을 닫아버렸다.

한 씨는 맛있는 것을 같이 먹고 당구도 치며 승준이와 친해져 갔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금세 ‘형’으로 바뀌었다. 승준이는 멘토링 기간 동안 3가지를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오토바이를 타지 않겠다 △집에 늦게 들어가지 않겠다 △반 등수를 10등 이상 올리겠다.

한 씨는 형처럼 승준이를 보살폈다. 시험기간에는 전화나 문자로 공부 진행상황을 체크했다.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영화도 보여줬다. 남을 돕는 마음을 키우라고 헌혈을 같이하기도 했다.

승준이는 점차 변해갔다. 웃는 일이 많아졌고 내신은 9등급에서 5등급으로 올랐다. 한 씨 회사에 데려가 사무실 풍경을 보여줬더니 승준이는 대학에 꼭 가겠다는 다짐도 했다. 승준이는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기타는 틈틈이 치겠다”고 했다.

한 씨와 승준이의 만남은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 김홍창)가 주선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5월 청소년희망재단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소년범 57명에게 일대일로 멘토를 연결하는 ‘파랑마니또’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청소년희망재단에서 모집한 직장인과 대학생 등 20, 30대 멘토와 범행을 저지른 청소년을 연결해 주는 것이다. 검찰이 기소유예한 소년범에게 멘토링을 실시하는 건 처음이다. 학교폭력 성폭력 절도 등을 처음 저질러 기소유예된 아이들은 6개월 내에 12∼20시간의 교육을 이수해야 하는데 검찰이 멘토링을 교육의 한 과정으로 도입한 것이다.

6개월간의 멘토링이 끝난 뒤 승준이는 말했다. “형이 내 고민을 들어주고, 잔소리하기보다는 조언을 해주니까 정말 좋았어요. 저도 나중에 커서 저 같은 아이들한테 멘토가 되고 싶어요.”

서울중앙지검은 19일 멘토링 프로그램의 1년간 성과를 발표하는 심포지엄을 열었다. 김홍창 부장은 “소년범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크게 변할 수 있다”며 “초범일 때 바로잡으면 재범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은 또 지금까지 가해자 중심으로 해오던 멘토링 프로그램을 학교폭력 피해자에게로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파랑마니또#소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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