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전처럼… ‘댓글 제보’ 국정원 前 간부 ‘미행작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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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사칭 “선물 보내려는데…” 여직원 주소 알아내
공모한 국정원 직원과 차명폰 통화하며 실시간 추적
檢 “은폐-축소 與커넥션 의혹도 수사”

지난해 12월 11일. 민주당 당직자들이 국정원 여직원 김모 씨의 오피스텔 앞으로 몰려들어 ‘국정원 정치·대선 개입 의혹’을 제기한 과정에는 국정원 전직 간부 김상욱 씨(50·불구속 기소)가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만약 유죄로 판명된다면 용서할 수 없는 중대 범죄지만 검찰은 이와 더불어 국정원 직원 정보와 내부 문건이 야당에 흘러들어간 과정도 분명히 밝혀 내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물론 앞으로 야당과 해당자들은 “‘도둑이야’라고 외친 양심적 내부고발”이라고 주장하고 나설 개연성이 크다. 이들의 동기와 행동과정이 양심에 따른 내부고발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인지는 앞으로 법원이 판단할 문제다.

검찰은 민주당이 제기한 “권영세 주중국 대사가 경찰 은폐·축소 수사의 몸통”이라는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어서 여야가 각각 제기한 의혹의 실체가 어떤 식으로 가려질지 주목된다.

19일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에 따르면 김 씨는 국정원 직원 정모 씨(49·불구속 기소)의 도움을 받아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4명의 심리전단 근무 여부와 차량 정보 등을 확인했다. 김 씨는 이후 정 씨가 알려준 심리전단 당직실 전화번호로 세 차례 전화를 걸어 심리전단 직원 3명의 주소지를 알아냈다. 그는 “수사국 김○○이다. 연말 선물을 보내려는데 ×××의 주소를 알려 달라”는 식으로 국정원 현직 직원을 가장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여기에는 국정원 여직원 김모 씨의 주소지 정보도 포함됐다.

김 씨와 정 씨는 직접 만나거나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보안을 유지했다. 간혹 다른 사람 명의의 ‘차명폰’을 이용해 통화하기도 했다. 미행도 영화 속 첩보전처럼 은밀하게 이뤄졌다. 정 씨가 국정원 내부에서부터 특정 심리전단 직원을 미행해 밖으로 나오면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교차 미행을 하거나 김 씨에게 넘겨주는 방식이었다.

이들이 국정원 여직원 김 씨를 미행한 건 ‘감금 의혹 사건’이 발생하기 전날인 지난해 12월 10일 오후 1시 1분부터였다. 정 씨는 국정원 주차장에 세워진 여직원의 SM3 차량 옆에 자신의 차를 세워 놓고 기다리다 여직원 김 씨가 출발하자 이 사실을 국정원 주변에서 대기 중이던 김 씨에게 알렸다. 김 씨는 여직원의 차를 뒤쫓은 끝에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오피스텔 주차장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다. 김 씨는 곧바로 김부겸 전 의원의 정모 보좌관과 민주당 유모 전 부대변인에게 여직원의 오피스텔 주소와 차량 종류, 색상, 번호 등을 알렸다.

이튿날인 11일 오전 6시 반부터 여직원의 오피스텔 지하 주차장에서 기다리던 김 씨는 여직원이 국정원으로 출근하자 이 사실을 국정원에 있던 정 씨에게 알렸고, 정 씨는 오후 1시경 여직원이 퇴근했다고 김 씨에게 알려줬다. 퇴근 후 오피스텔로 온 여직원이 밖으로 나오지 않자 김 씨는 정 보좌관과 유 전 부대변인에게 전화했다. 이 사실을 전달 받은 민주당 김모 인권법률국장은 오후 6시 반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경찰에 신고했다. 강남구선관위와 경찰이 출동했고 민주당 당직자들과 기자들까지 여직원의 오피스텔 앞에 몰려들었다. 이 사이 민주당은 “국정원이 문 후보 낙선을 위한 사이버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제보를 근거로 민주당이 출동했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최예나·장선희 기자 yena@donga.com
#국정원#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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