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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적 사랑’에 대한 견해에 따라 이 책은 다르게 읽힐 것 같다. 약혼녀가 있는 상태에서 우연히 마주친 먼 친척뻘 여동생을 사랑하게 되는 스토리는 여느 로맨스에서도 그리 드물지 않다. 엇갈린 만남과 결국 이뤄지지 못하는 숙명적인 사랑 이야기는 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생에 걸친 열정적인 연모와 집착으로 그 여인을 기리는 박물관을 만든다는 이 소설의 발상은 기상천외하다. 거기에는 그녀가 어린시절 탔던 자전거, 흰 양말, 속옷, 귀걸이, 심지어 그들이 데이트 하던 당시 식당 테이블에 놓였던 소금, 후추통도 전시한다니! 2006년 오르한 파묵이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처음으로 발표한 이 장편은 1970년대 터키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한 독특한 연애소설이다. 주인공이자 소설의 화자인 케말은 이스탄불의 상류층 사회에서도 손꼽히는 재력가 집안의 둘째 아들이다.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난 그는 악의 없고 순수하지만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전형적인 ‘도련님 스타일’. 약혼녀인 시벨 역시 프랑스에서 유학한 명문가 출신의 교양 있고 아름다운 여성이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이 커플의 운명은 퓌순이 나타나며 완전히 달라진다. 케말은 시벨의 선물을 사러 들어간 명품 숍에서 먼 친척뻘인 여종업원 퓌순과 우연히 마주친다. 그는 그녀를 보자마자 설명할 수 없는 이끌림과 매혹에 마음을 빼앗기고, 약혼을 앞두고 양다리를 걸친다. 앞날이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시벨과 결혼한 뒤에도 퓌순과의 관계를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약혼식 날 찾아온 퓌순을 보고도 죄책감이나 번뇌보다 반갑고 기쁜 마음이 더 클 만큼 철이 없는 남자다. 퓌순은 그의 이중적인 태도와 우유부단함에 상처를 받고 그날 이후 자취를 감춘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퓌순이 갑자기 사라지고 난 뒤에 케말은 그녀의 부재가 주는 처절한 고통을 통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이때부터 케말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부와 명예, 목숨까지 포기하는 낭만주의적 주인공들처럼 용단을 내린다. 주변의 지탄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시벨과 파혼한 그는 이미 한 남자의 아내가 된 퓌순을 찾아낸다. 그리고 치졸하고 끈질기게 그 부부 곁을 맴돈다. 이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작가는 유머러스하게 묘사한다. 물론 한 번 어긋난 이들의 사랑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다. 퓌순의 부재 당시 덮쳐온 괴로움이 어떤 것인지 아는 카멜은 그때부터 만일을 대비해 퓌순과 관련된 모든 물건들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허무맹랑해 보일 만큼 지고지순한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 외에도 당대 이스탄불 상류층 사회의 면모, 보수적인 성 문화와 가부장적인 제도에서 갈등하는 젊은 세대들의 고민 등 읽을거리가 풍성하다. 이 순수하고 맹목적인 사랑에 설득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다. 올 8월 말 이스탄불에 실제로 파묵의 소설을 바탕으로 당시 터키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을 보여주는 ‘순수박물관’이 개관할 예정이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2000년대 이후 언어, 정신에 대한 탐색을 진전시키는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해 온 소설가 배수아 씨의 신작 소설집. 서사가 해체된 단편 작품들은 기괴한 꿈처럼 한층 낯설어지고 난해해진 독특한 감수성을 드러내 보인다. ‘양의 첫눈’은 자신을 만나러 오는 여자친구를 기다리는 주인공 ‘양’이 한 남녀의 모습을 엿보면서 과거에 그가 만났던 이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내용이다. 기억을 통해 대상을 끌어올리는 과정이 백일몽처럼 아련하게 펼쳐진다.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에서처럼 꿈과 환상의 시공간이 현실에 중첩되고 기억이 주체를 옮겨 다니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표제작 ‘올빼미 없음’을 비롯해 ‘올빼미’ ‘무종’ 등은 꿈, 환상의 요소가 글쓰기와 결합하고 서사의 조각에 맞물리면서 독특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긴 문장과 복문의 반복은 따라 읽기가 쉽지 않지만 배수아 작품만의 심미적 특색을 보여준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문학·예술 라오라오가 좋아(구경미 지음·현대문학)=국제결혼으로 한국 사회에 편입한 라오스 여자와 사회에서 소외당한 중년 남자가 충동적으로 도피행각을 벌인다.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지만 대안 없는 현대인의 쓸쓸한 자화상을 그려냈다. 1만2000원. 페르시아의 신부(도리트 라비니안 지음·들녘)=100여 년 전 페르시아의 작은 유대인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소녀 플로라와 나지아의 결혼 이야기. 이스라엘의 젊은 작가가 쓴 작품으로 처연하면서도 환상적인 색채가 짙다. 1만2000원. 꿈에도 생각할 수 없어(미야베 미유키 지음·황매)=도시 한복판의 정원에서 의문의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던 남자가 익사체로 발견된다. 전작 ‘오늘 밤은 잠들 수 없어’에 등장했던 명콤비 시마자키와 오카타가 사건을 해결해 간다. 1만1000원. 한 편이라고 말해(우웸 아크판 지음·은행나무)=아프리카 어린이들이 겪는 가난과 굶주림, 학대 등을 어린이의 시선으로 풀어낸 소설집. 에이즈에 걸린 부모 때문에 호객꾼 삼촌 집에 얹혀살게 된 남매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 등 다섯 편의 중단편을 모았다. 1만3000원.○ 인문·교양 발명 마니아(요네하라 마리 지음·마음산책)=교통체증 탈출법, 코골이 방지법부터 해수면 상승과 사막화를 막는 법, 태풍 대비책까지 기발하고 엉뚱한 발명의 아이디어를 재치 있는 문장과 그림으로 선보인다. 1만5000원. 중국의 정화 대함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불을 지피다(개빈 멘지스 지음·21세기북스)=레오나르도 다빈치, 코페르니쿠스 등 르네상스 천재들의 업적에서 중국 문명의 흔적을 발견한다. 중국의 정화 대함대의 방문이 유럽 르네상스를 일으켰다는 도발적인 주장이 펼쳐진다. 1만8000원. 심리학 노트에 쓴 행복이야기(이종목 지음·오래)=인간의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를 환경, 유전, 의도적 활동으로 나눠 설명한다. 전북대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물질적 풍요를 포함한 환경이 행복의 10%를, 유전적 요인이 행복의 50%를, 의도적인 활동이 행복의 40%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1만3500원. 고맙다, 줄기세포(라정찬 지음·위즈덤하우스)=줄기세포에 대한 과학적 설명과 현재 진행 중인 줄기세포 치료법을 소개한 책. 수의학 박사인 저자가 줄기세포가 어떤 방식으로 효과를 내는지, 어떤 질병을 어떤 원리로 치료하는지 등을 설명했다. 1만5000원. 클래식 시대를 듣다(정윤수 지음·너머북스)=클래식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베토벤은 18세기 정점이었지만 19세기 히틀러 시대의 베토벤은 고독했다. 300여 년 전 비발디부터 현대 윤이상에 이르기까지 정치 사상적 변화에 따라 변해온 클래식의 역사를 그렸다. 2만6000원. 성서 그리고 역사(장 피에르 이즈부츠 지음·황소자리)=서구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성경. 성경에 나오는 장면들을 지리적, 역사적으로 분석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의 10가지 재앙은 실제 있었는지 등을 기술하고 사진과 지도로 나타냈다. 6만8000원.○ 학술 북조선 연구(서동만 지음·창비)=실증적인 북한학 연구로 업적을 남긴 고 서동만 상지대 교수의 1주기를 맞아 그가 1995년부터 2007년까지 발표했던 학술논문과 칼럼을 모은 책이다. 그의 스승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의 북한연구 업적에 대한 평가도 실렸다. 2만9000원. 사실과 가치의 이분법을 넘어서(힐러리 퍼트남 지음·서광사)=사실적 주장과 가치판단의 구분은 중요하다. 하지만 하버드대 명예교수이자 철학자인 저자는 그 구분이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의 이분법과 동일시되면 해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2만2000원. ○ 실용·기타 가슴으로 꾼 꿈이 행복한 미래를 만든다(박성종 지음·서울문화사)=축구선수 박지성의 아버지가 어떻게 아들을 키웠는지를 에세이로 썼다. 박지성의 어린 시절부터 태극마크를 달고 해외에 진출하기까지 겪은 어려움과 아버지로서의 조언을 담았다. 1만2000원. 내 몸을 지키는 기술(보니 헨리 지음·라이프맵)=바이러스, 세균, 곰팡이, 기생충 등 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을 자세히 파헤쳤다. 20여 년간 전염병을 연구해온 저자는 “항생제는 세균에만 작용하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원인인 감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식의 팁도 제시한다. 1만5000원.}

◇뉴머러티/스티븐 베이커 지음·이창희 옮김/304쪽·1만3500원·세종서적어떤 사람이 신문사 웹사이트에 접속해 자동차 ‘제네시스’의 기사를 읽는다고 치자. 이 사람은 또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 ‘신차’를 검색한다. 그는 자동차를 사려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이 사람이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니는 어느 시점에 슬며시 온라인 자동차 광고가 뜬다. 이 광고를 클릭하는 순간 그의 행동을 관찰해 광고를 띄운 업체는 광고주로부터 돈을 받는다. 미국 뉴욕에 있는 타코다가 실제로 행했던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 회사는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의 행동에 관한 정보를 매일 200억 건씩 수집해 분석했다. 미국 AOL에 2억7500만 달러에 매각된 타코다는 정보기술의 발달로 사방 천지에 남겨지는 인간의 ‘흔적’을 읽는 수많은 기업 가운데 한 곳일 뿐이었다. 친구를 기다리던 당신, 근처 맛집이 궁금해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을 구동시키자 ‘현재 위치 정보를 사용하고자 하니 승인하라’는 메시지가 뜬다. 별생각 없이 승인 버튼을 누르는 순간 당신의 ‘행동정보’는 그들 ‘뉴머러티’에게 넘어가게 된다. 뉴머러티는 숫자를 뜻하는 넘버(number)와 계급을 뜻하는 리터러티(literati)의 합성어다.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신용카드 이용정보, 인터넷 검색정보, 교통카드를 이용한 이동정보 등 인간 행동을 재현하고 예측하도록 해주는 ‘디지털 흔적’들은 계속 늘고 있다. 야후나 구글 같은 업체들은 사람들이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 노출하는 이런 정보를 데이터화한다. 매달 평균 한 사람에게서 수집하는 정보는 약 2500건. 뉴머러티들이 우선 관심을 보일 만한 분야는 구매 패턴이다. 특정인이 경제적 사정 때문에 구매를 줄였는지 또는 다이어트 중인지를 천리 밖에 앉아서도 구분할 수 있다. 예전 같으면 그 집 쓰레기통을 직접 조사해야 알 수 있을 정보를 앉아서 얻는 것이다. 이들은 또 사람들의 정치적 가치관까지 분석할 수 있다. 뉴머러티들은 2억 명의 미국 유권자를 개인이 사는 동네와 성별, 인종, 애완동물 보유 여부, 대학교육 이수 여부, 자녀 유무, 잡지 구독 여부, 취미활동 등으로 구분해 10개 ‘부족’으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바탕으로 부동층의 마음을 움직일 공약을 만들 수도 있다.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면 바닥에 깔아놓은 건강 점검 프로그램을 통해 부모님의 알츠하이머병의 징조를 잡아낼 수 있다. 치료비가 덜 들면서도 건강한 생활 패턴을 유지할 정보를 건질 수도 있다. 뉴머러티들은 분석을 넘어 예측을 시도하고 있다. 수천 명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그들이 가진 기술과 근무이력, 취약점 등을 변수화해 생산성에 관한 예측 모델을 만들 수 있다. 기업은 특정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어떤 근로자를 배치하는 것이 최선인지 찾아낼 수 있다. 인도의 방갈로르 지사로 발령을 낼 때의 사람들의 반응을 예상함으로써 기업 전체의 생산성에 관한 최적화된 상태를 찾을 수도 있다. 저자는 “뉴머러티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인간을 ‘계산’하고 있으며 전 인류에 대해 예측 모델을 수립하려 한다”고 말하고 “이 때문에 모든 사업의 지평이 바뀔 것”이라고 예상한다.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구글의 성공에서 찾는 기업 생존법칙◇구글노믹스/제프 자비스 지음·이진원 옮김/400쪽·1만8000원·21세기북스20여 년 만에 세계 최대의 초대형 인터넷 검색회사로 변신한 구글. 구글의 성공비결과 법칙에는 현대 기업이 알아야 할 필수 생존법칙과 성공전략이 숨어 있다. ‘고객 주도의 시대’ ‘희소성의 경제에서 풍요의 경제로의 이동’ 등이 그것이다. 언론인 출신인 저자는 미래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구글이 택한 방법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방법 중에는 우리의 통념과 배치되는 것도 많다. 고급정보를 온라인에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공개하고 개방하는 일은 얼핏 손해인 것 같지만 결국 자신에게 혜택으로 돌아온다. 극적인 예로 파울루 코엘류가 있다. 이 작가는 온라인에 해적판이 돌수록 자신의 책 판매부수도 많아진다는 것을 알아채고 자신의 웹사이트에 해적판 링크를 걸어두기도 했다. 고객에게 통제권을 넘겨야 하는 이유, 네트워크와 플랫폼의 중요성 등 구글적 사고방식을 여러 예를 통해 설명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시장과 세상을 이끄는 오리진이 되려면…◇오리진이 되라/강신장 지음/276쪽·1만4000원·쌤앤파커스스팀청소기, 오래 씹어도 턱이 아프지 않고 포장이 절로 떨어지는 껌, 예쁜 그림과 명언이 적힌 종이컵…. 모두 인기 상품이 된 발명품이다. 더 편리하게 해주고 기쁨을 주는 발명품은 창의성에서 나온다. 이 같은 발명품들은 그 분야의 새로운 기원(오리진)이 되어 새 판을 짜고 게임의 룰을 만든다. 삼성경제연구소 지식경영실장을 지낸 지은이는 오리진이 세상을 이끈다고 봤다. 단적인 예가 애플의 아이폰과 스티브 잡스다. 오리진 사람이 만든 오리진 제품이 기존 시장의 판도를 바꿨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오리진이 되기 위한 10가지 팁을 전달한다. 사랑하고 아픔을 찾아내고 전혀 다른 것과 뒤섞고 예상을 깨라는 ‘당연한’ 충고를 비데와 남성 백조의 호수, 라스베이거스의 테마호텔 등 ‘특별한’ 성공 사례를 통해 전한다. 지은이는 “오리진은 보고 베끼는 경영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우리의 유일한 선택지”라며 “숨겨진 창의성을 꺼내는 열쇠는 노력을 통해 가능하다”고 말한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한글학자 주시경과 시인 김소월이 배재학당 개교 125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배재인상’을 받았다. 배재학당 총동문회는 4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 배재고 아펜젤러 기념관에서 개교기념식을 갖고 상을 추서했다. 주시경과 김소월은 각각 1900년, 1923년에 배재학당을 졸업했다. 배재학당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 서재필 박사 등을 배출한 한국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일본, 한국의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윤동주 시인의 작품을 들을 수 있게 돼 꿈만 같습니다.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짊어지고 고뇌했던 시인의 마음을 전하는 데 이 CD가 매개체가 됐으면 합니다.” ‘서시’ ‘별헤는 밤’ 등 윤동주의 대표작 25편을 일본어와 한국어로 낭송한 CD ‘윤동주 시집’을 기획한 아마누마 리쓰코(天沼律子·사진) 씨가 한국을 찾았다. 일본의 레코드사인 킹인터내셔널에서 지난해 12월 발매됐던 이 CD는 신나라레코드에서 수입해 최근 국내에서도 발매됐다.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평범한 주부였던 아마누마 씨가 윤동주를 알게 된 것은 20여 년 전 일본의 한 수필집에 실린 ‘서시’ 등을 접하게 되면서였다. 윤동주 시의 순수함과 서정성, 청렴한 감성은 그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윤동주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가 교토 도시샤(同志社)대를 가기 전에 제 모교인 릿쿄(立敎)대에서 유학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쉽게 쓰인 시’에 등장하는 늙은 교수는 제 담당교수님의 부친이기도 했어요.” 아마누마 씨는 남편이자 릿쿄대 동문인 킹인터내셔널의 사장 아마누마 스미오(天沼澄夫) 씨에게 부탁해 2007년 낭독 CD 제작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익을 얻기 힘든 사업이라 제작비 일체는 자비로 댔다. 일본인 화백이 그림을 넣은 앨범을 디자인했고 일본 연극배우가 일본어 낭독을, 릿쿄대 교목 유시경 씨가 한국어 낭독을 맡았다. 윤동주를 좋아하는 이들이 십시일반 자원해 앨범을 완성한 것이다. 앨범으로 얻은 수익은 릿쿄대의 ‘윤동주장학금’에 전액 기부할 예정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모든 것을 낱낱이, 생생히, 온전히 기억한다는 거짓말. 기억은 알을 품고, 잎을 틔우고, 바람에 펄럭이고, 안개에 휩싸이고… 주름이 잡히고, 살얼음이 끼고, 머리털이 서고, 시큼하게 발효한다, 기억은.”(‘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너를 기억하기 위해 필요한 고독’) 소설가 이신조 씨(36·사진)가 신작 소설집 ‘감각의 시절’(문학과지성사)을 펴냈다. 숨 가쁘게 이어지는 그의 문장들은 시적이다. 서사의 디테일은 섬세한 언어를 통해 환기되는 감각, 분위기 등으로 대체된다. 이 씨는 “작가로서의 내 감수성은 이야기꾼과는 거리가 멀다. 등단할 때부터 감성적이고 예민한 부분에 의존해왔고 지금까지 그렇다”며 그런 의미에서 ‘감각의 시절’이란 제목을 붙였다고 말했다. 제목대로 책에는 청춘을 관통하는 감수성이 가득하다. 날카롭고 세련된 언어의 운용을 바탕으로 소통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작품들을 주로 수록했다. 작가는 관계와 소통에 대한 문제의식을 언어를 매개로 파고든다. 첫 번째 수록작인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는 이 같은 특색을 뚜렷이 보인다. 실패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사랑, 기억이라는 두 가지 층위로 서술하면서 언어의 다름이 타자를 만들고 기억으로 인해 왜곡되고 변형되는 과정을 그려낸다. ‘베로니크의 이중생활’은 한국에서 태어나 벨기에로 입양된 베로니크가 자신의 한국 이름을 접하면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정을 다뤘다. 언어적 명명에 의해 형성되기 이전의 존재에 대한 탐색이 주를 이루면서 언어에 대한 작가의 일관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어린 나이에 죽은 혼령이 서울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동생을 찾아다니는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은’, 글을 쓰기 위해 여행을 떠난 소설가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로서의 자의식을 드러낸 ‘앨리스, 이상한 섬에 가다’ 등도 수록했다. 1998년 등단한 이후 소설집 ‘나의 검정 그물 스타킹’ ‘새로운 천사’, 장편소설 ‘기대어 앉은 오후’ 등을 활발히 펴냈던 것을 감안하면 오랜만의 신작이다. 작가는 “그동안 운 좋게 책을 자주 낸 편이었는데 5년 정도 슬럼프가 길게 왔던 것 같다. 그 시절을 일단락하는 책인 것 같아 더 뜻 깊게 느낀다”고 말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살만 루슈디는 1988년 출간한 ‘악마의 시’에서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를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암살 위협에 시달렸던 작가다. 이 작품은 영국 정부의 보호 아래 생활하다 2000년 이후 미국에서 작품 활동하던 중 그가 2005년 발표한 소설이다. 이야기는 한 테러리스트에게 인도의 미국대사를 지냈던 유대인 막스 오퓔스가 암살되는 사건에서 시작한다. 1991년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딸 인디아의 아파트를 찾은 막스는 스스로를 ‘광대 샬리마르’로 칭하는 운전사의 칼에 맞아 숨진다. 샬리마르가 신분을 숨긴 채 막스에게 접근한 뒤 그를 잔인하게 살해한 것은 극단적이거나 거창한 종교적, 정치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얼핏 테러리즘으로 보이는 이 사건의 이면에는 샬리마르라는 남자가 깊이 품은 개인적인 원한이 도사리고 있다. 그 원한에는 그가 사랑했던 무희 부니와 얽힌 치정, 카슈미르 분쟁 등이 가로놓여 있다. 이야기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 인도 카슈미르의 계곡의 한 마을로 되돌아간다. 줄타기 광대였던 샬리마르는 그곳 최고의 미녀 무희인 부니와 사랑에 빠진다. 아내 부니는 무슬림인 그와는 달리 힌두교도다. 종교가 다른 그들이 사랑으로 힘겹게 이뤄놓은 조화로운 세계는 오래 가지 못한다. 부니는 인도의 미국대사로 온 막스의 첩실이 돼 샬리마르를 버리고 떠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가 있던 막스가 인도 여인인 부니를 임신시킨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순진한 힌두교도 소녀를 착취한 사악한 미국인’으로 지탄받게 된다. 막스의 명성은 땅에 떨어지게 되고 부니는 딸 인디아를 막스의 아내에게 넘긴 뒤 고향으로 돌아와 숨어 지낸다. 샬리마르는 사랑을 배반한 부니와 그녀를 취한 막스에게 복수를 결심한다. 그 무렵 인도와 파키스탄 간에 카슈미르 분쟁이 폭발하고 막스는 가족을 비롯해 모든 것을 잃는다.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에 짓눌린 개인의 비극 속에서 샬리마르의 적개심은 테러란 형태로 발화한다. 그는 국제적 테러조직에 들어가 암살자가 되는 길을 택한다. 작가는 샬리마르가 테러리스트로, 그가 사랑했던 부니가 창부로 전락하고,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제2차 세계대전 레지스탕스의 영웅이었던 막스가 지하세계의 검은 손으로 살다 암살당하는 파국의 과정을 그려 보인다. 이야기의 스케일은 방대하다. 공간적으로는 아시아, 유럽, 미국을 넘나들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부터 종교분쟁, 국제 테러리스트 조직 등이 등장한다. 이 소설 속에서는 가해자와 희생자가 고정돼 있지 않고 증오의 원인과 결말 역시 선후관계가 분명치 않다. 작가는 혼란스럽고 어두운 이 세계에서 폭력과 증오로 반목하는 이들은 사실 모두 피해자이며 희생자임을 보여준다. 탈출구 없이 계속해서 파괴와 복수의 악순환을 낳는 세계는 무겁고 암담한 빛깔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도심 아파트 거실에서의 오후, 창문 앞으로 푸드덕 날아드는 나방, 수조의 형광물고기, 달개비 잎사귀들…. 시인은 일상의 풍경에서 길어 올린 작고 세밀한 움직임들을 차분히 포착해낸다. 무심한 듯, 담담한 언어로 직조되는 시편들 속에 삶의 애환들이 농축돼 있다. “나는 지금 바늘구멍 속을 지나가고 있다/지겨운 머리통은 겨우 빠져나왔는데/어깨가 통 빠지지 않는다/이렇게 쌍봉낙타는 바늘구멍 속에 걸려 있다…나의 목걸이처럼 바늘을 목에 걸고 저 길을 걸었다/보게, 나의 이 기막힌 바늘 목걸이를/엉거주춤 바늘구멍에 걸려 빠져나가지 못하는 나를/나는 지금 바늘구멍에 걸려 있다”(‘바늘구멍 속의 낙타’) 바늘구멍에서 머리통은 겨우 뺐는데, 몸통이 빠지지 않아 목에 바늘 목걸이를 달고 있는 시 속의 화자는 현실과 이상의 틈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살고 있는 현대인의 삶과 닮아 있는 듯하다. 기술 문명사회에서의 피로감을 통찰한 시편도 보인다. “문득, 통화권이탈지역으로 들어오고 말았다/소란한 세상을 닫아건 잎들의 무늬를 읽는다/그대 잠시 두리번, 결락된 감각을 찾는가/소리 없는 엽록체의 통화권이탈지역은/동물들의 울음과 이동이 찍히지 않는 영토…빛은 떠나고, 혼돈이 거니는 어둠 한쪽/완전 통화권이탈지역에서 너와 나는 오래전/서로 잃어버린 것을 조용히 만지고 있다.”(‘통화권이탈지역’) 식물적인 세계를 묘사한 시가 많은 점도 눈에 띈다. 그의 시편들 속에서 식물들은 여리고 조용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 감각과 활력을 가진 열려 있는 세계, 번잡한 인간세상의 대안으로 그려진다. “조용히 있어야 집중되고 물이 올라온다는 걸 안 풀줄기들/물소리, 아 물달개비들 날갯소리, 여름의 물 아우성/고무판 노란 오리물갈퀴가 뒤로 회똑 뒤집히면서 앗/몸이 출렁여, 온 태양의 들판엔 물질이 한창이다.”(‘달개비들의 여름 청각’) ‘나의 황폐화를 기념한다’‘우스꽝스러운 새벽의 절망 앞에’ 등 시력 30년을 맞은 시인으로서 시작(詩作)에 대한 자의식을 드러낸 시편들도 보인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에픽하이의 음악을 좋아하고 패션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중학생 장하리. 화장실에 누군가가 두고 간 음악 CD를 슬쩍 가져와 좋아하는 친구인 성민이에게 선물한다. 하지만 하리의 비밀을 아는 예주가 그걸 빌미 삼아 자신이 물건을 훔치는 데 하리를 끌어들인다. 약점을 잡힌 하리는 예주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고 숨겨야 할 비밀, 거짓말도 늘어간다. 자신이 예주에게 점점 길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하리는 도둑질을 끊으려 한다. 하지만 그때 엄마의 비밀을 알게 되고 만다. 마음의 충격을 안게 된 하리는 다시 도벽이 도지기 시작한다. 가정, 학교생활, 우정…. 힘겨운 성장통을 겪으며 삶을 배워가는 사춘기 소녀의 이야기.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인구증가, 질병, 내전, 기아 등 아프리카의 위기로 일컫는 현상들은 본래의 아프리카가 아니며 오히려 진보라는 이름으로 밀려들어온 타자에 의해 누대에 걸친 아프리카의 완전성, 균형상태가 깨뜨려진 결과입니다. 모든 게 다 나빴다고 말할 순 없지만 아프리카가 마땅히 지녀야 하는 모습과는 다른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대륙이자 원초적 자연생태의 보고, 인류 기원의 수수께끼가 담겨 있는 대륙 아프리카. 이곳이 아프리카라는 이름으로 불린 것은 16세기 네덜란드 항해자들이 항해술의 발달에 힘입어 발을 들여놓으면서부터다. 지리상의 발견과 함께 아프리카의 비극도 시작됐다. 자연조건이나 종족, 문화 등의 차이를 무시하고 제국 열강들이 마음대로 분할한 국경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아프리카 분쟁과 갈등의 불씨가 됐다. 아프리카는 고유의 모습을 잃었고 무자비한 착취의 땅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도 현대문명을 거부하고 독특한 전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부족들이 있다. 아프리카 동부의 중앙 초원지대에 거주하는 마사이족이 대표적이다. 이 책은 시인이자 국제민간구호단체 ‘피스프렌드’에서 활동 중인 황학주 시인이 약 3년 동안 여러 차례 찾아 머물면서 관찰하고 느낀 마사이족의 삶에 관한 기록이다. 시인이 지켜본 그들의 내력, 전통, 생활방식에 대한 산문과 시, 생생한 컬러사진들이 함께 실렸다. 수록된 사진들은 사진가 이상윤 씨가 찍었다. 마사이의 뜻부터 보자. ‘마’는 사람들, ‘사이’는 기도라는 뜻이다. 이들이 사는 동부 아프리카 초원은 가장 오래된 인류가 출현한 지역이다. 마사이 땅인 리프트밸리의 여러 곳에서 화석인류들이 발견됐다. 1974년 이곳의 거대한 단층에서 300만 년 이상 되는 여성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두개골이 발견됐다. 이들은 인류 기원의 수수께끼를 안고 있는 지역에서 살아온 셈이다. 마사이족은 종족 역사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자부심이 강하고 용감한 종족으로 알려져 있다. 노예 수탈시대에 노예중개상들은 마사이족을 노예 매매에서 제외했다. 팔려가는 즉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저항했기 때문이다. 남자 중심의 사회이며 연령에 따른 위계질서가 엄격하다. 시인은 “마사이 부족에서 나이 많은 사람을 설득하거나 사귀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60세 이상의 연령대를 뜻하는 안쿠시들은 자신과 비슷한 연령의 사람들과만 대화한다. 유목부족인 이들은 쇠똥으로 집을 짓고 소의 피, 젖, 고기 등으로 살아간다. 마사이족에게 소는 중요한 교환가치이며 부족의 상징, 생활의 중심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신식 주택인 양철집도 생기고 있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워 이곳에는 맞지 않는 건축양식이지만 이들 사이에서 경제적 상징성을 가진다. 여인들은 화려한 장신구를 손수 만들고 염색기술을 배워 형형색색의 천을 몸에 두른다. 열매를 모으고, 쇠똥을 줍고, 물동이를 지고 나르면서도 직접 구슬을 꿰어 아름다운 장신구를 만든다. 이런 마사이족의 삶에도 많은 변화와 도전,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아프리카를 휩쓸고 있는 후천면역결핍증(AIDS·에이즈)의 광풍에서 마사이도 예외가 아니다. 부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많은 아이가 졸지에 고아가 되고 에이즈에 걸릴 확률도 높다. 여성 할례의식은 심각한 부작용과 폐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저자는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드넓은 마사이의 땅과 문화가 어떻게 개발되고 보존될는지 예측할 수 없다. 신 앞에 나아가 기도할 때 깍지를 낀 양손이 와르르 부러지거나 꺾이지 않는 한 신은 마사이를 보호한다는 그들의 믿음이 끝까지 지켜지기를”이라고 책은 끝을 맺는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문학의 역할은 친일파냐 아니냐를 규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친일파로 지목받고 있다 하더라도 그 내면의 고민과 소망, 좌절을 들여다보는 일이 문학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소설가 조성기 씨(59·사진)가 일제강점기 대표 지식인이자 친일파였던 좌옹(佐翁) 윤치호(1865∼1945)의 삶을 다룬 신작 소설 ‘좌옹의 길’을 26일 펴냈다. 애국가를 작사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한 윤치호는 개혁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로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등 다방면에서 활동했으나 한일강제병합 이후 친일파로 변절했다. 광복 직전에는 일본 귀족원 칙선의원에 임명되기도 했다. 1883년부터 1943년까지 60년간 영어로 쓴 일기 속에는 개화파와 수구파의 충돌을 비롯해 구한말 격동적인 사회, 정치 상황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조 씨는 “윤치호의 일기는 독특한 문체뿐 아니라 시대에 대한 고민, 개인사 등을 세세하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일기문학의 백미”라며 “몇 년 전 편역된 작품을 접한 뒤 충격을 받아 고서점 등을 뒤지며 구할 수 있는 관련 자료들을 본격적으로 찾아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소설은 민족주의자인 동시에 중국어, 일본어, 영어 등에 능통하고 강대국의 속성, 국제정세에 밝았던 유학파 지식인 윤치호가 친일을 선택하게 되기까지의 민감한 시대상황과 내면 갈등을 그려낸다. 조 씨는 윤치호를 민족 진영의 분열 형태에 회의하면서 동시에 친일파의 행태에도 비판하고 항의했던 경계인으로 보았다. 그는 “윤치호 일기는 시대상, 자기반성, 동시대 지식인에 대한 평가 등이 담겨 사료적 가치 높은 자료인데 친일이란 이유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며 “한 인간의 삶을 이분법, 흑백논리로 볼 것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작업이 문학에서도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이성부 시인(68)이 서울신문사가 주관하는 제18회 공초문학상 수상자로 26일 선정됐다. 수상작은 시집 ‘도둑 산길’에 수록된 시 ‘백비’. 상금은 500만 원이며 시상식은 6월 4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에서 열린다.}

데카르트, 몽테스키외, 들뢰즈…. 철학은 딱딱하고 어렵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이들의 철학이 녹아 있는 영화는 즐겨 본다. 영화감독이자 철학교수인 저자는 젊은 세대가 친근하게 소비하는 예술인 영화를 통해 철학을 좀 더 쉽고 흥미롭게 강연한다. 대중예술인 영화의 풍부한 이미지, 스토리, 캐릭터 등을 활용해 삶의 속성과 철학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데카르트, 스피노자의 철학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영화 ‘매트릭스’는 근원적인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의심하고 몰아내라고 말했던 데카르트의 철학을 보여준다. 영화 ‘아메리칸 뷰티’는 무기력한 가장인 레스터가 자기 인생의 지배권을 되찾으며 현실에 활력을 부여해 가는 과정을 통해 정념의 역할, 정신과 육체의 평행 관계에 주목했던 스피노자의 철학을 되짚어 보게 한다. ‘파이트 클럽’ ‘베를린 천사의 시’ ‘블레이드 러너’ ‘식스 센스’ 등 우리에게도 친숙한 영화들이 다양하게 언급된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이 소설은 이국의 어느 거리에 관한 이야기다. 이곳이 아닌, 어느 다른 곳. 하지만 지구의 다른 편에서 우리와 중력을 함께 나누며 사는 이들이 있는 곳. 태국의 방콕 나나역 인근의 매춘 거리가 이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방인에게는 스쳐 지나가면 그만인 여행지의 소란스러운 풍경일 뿐이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에게는 매일 꾸려가야 하는 삶의 현장이다. 작가는 소이 식스틴이라는 이곳 매춘 거리의 풍경을 세밀화처럼 펼치면서 무덥고 생경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일명 ‘나나’의 초입에는 축축하게 젖은 행상인들이 똑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매춘부들 틈에서 목탄에 구운 바나나와 닭날개 꼬치와 계란을 풀어 넣은 볶음국수와 물방개 튀김 따위를 팔았다. 행상 패거리들이 늘어선 길 안쪽으로는 무리하게 스피커 볼륨을 높인 선술집이 오십여 미터 옹기종기 모여 있었으며…세 시간 단위로 숙박비를 받는 중저가 호텔들로 끝 모르게 이어졌다.” 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여섯의 한국인 청년 레오는 아프리카로 가는 여행길에서 태국을 경유한다. 그곳에서 한 여인 플로이를 만나면서 여행 일정이 흐트러진다. 그는 그녀가 지내는 공동주택가에서 몇 달 머문다. 플로이는 소이 식스틴 거리의 매춘녀들을 아우르는 실세다. 그가 플로이에게 끌린 것은 아름다운 외모뿐만이 아니라 레오에게 얼핏얼핏 스치는 어떤 영상 때문이다. 레오는 사람들의 전생을 볼 줄 안다. 그녀를 만났을 때 덮친 윤회의 환상을 보고 그가 알게 된 것은 그들이 오백 년을 넘어 다시 마주치게 됐다는 사실이다.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들에게 몸을 파는 매춘부이자, 그런 삶을 철옹성처럼 단단히 지켜나가려고 하는 그녀는 어수룩한 레오가 말하는 ‘사랑’ 따위를 믿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를 끊임없이 맴돌면서 상처를 입히고, 일정한 거리 이상 가까워지지 않는 상태 그대로 헤어졌다 다시 만나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들 주변에는 플로이와 함께 살고 있는 제각각의 기구한 사연을 가진 다른 인물들이 등장한다. 냄새나는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면서도 이곳을 떠날 희망을 거의 포기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매춘부들, 거리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부패 경찰관들, 레오처럼 잠시 머물다 떠나는 이방인들. 거리의 소외된 이들의 삶을 가로지르면서 시간이 흐른다. 소이 식스틴도 변해가고, 몇 번 이 거리를 다시 찾게 되는 한국남자 레오도 나이가 든다. 소설은 동시대인들의 비루한 삶의 풍경을 세밀한 취재를 토대로 먼 타국으로까지 확장시킨다. 그러면서 이것이 그저 지나치고 말 어느 여행지, 우리와는 무관한 먼 공동체의 이야기가 아님을 되새겨보게끔 한다. “오늘 여기서 맡은 배역이 다를 뿐이다. 우리 중에서 매춘부로 살아보지 않는 자는 한 명도 없는 것이다”라고.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2010년 월드컵이 열리는 아프리카 대륙. 한국 시인들이 아프리카 시인들의 시집 출간을 돕기 위해 뭉쳤다. 모임 이름은 ‘아시낭모’. ‘아프리카 시를 낭독하는 모임’이란 뜻이다. 참여 시인은 문인수, 이하석, 황학주, 송재학, 장관옥, 김선우, 장석남, 김경주 시인 등 10여 명. 이들은 22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시집 출간 기금 마련을 위한 첫 낭독회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이어 매달 대구, 광주,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시 낭독회를 열고 기부금을 모아 매년 아프리카 시인 두 명의 시집을 1000부씩 출간해 줄 계획이다. 언어는 아프리카 공용어의 하나인 스와힐리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한국의 시인들이 아프리카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얼까. 문명과 개발의 때를 타지 않은 생생한 원시성은 이들의 시심을 일깨우는 중요한 요소다. 황학주 시인은 수차례 아프리카를 방문하며 아프리카를 노래한 시뿐만 아니라 산문집 ‘아프리카 아프리카’, ‘아프리카 마사이와 걷다’를 썼다. 그는 “아프리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후진국이라고 생각하고 마는데 시인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태도를 간직한 더없이 매력적인 곳”이라며 “언어나 초원 등에서 엿보이는, 경계를 넘나드는 애매모호함은 그 자체로 풍요로운 상상력을 전해준다”고 말했다. 아프리카를 계몽의 대상, 원조의 대상 정도로만 보려는 데 대한 비판과 아쉬움도 작용했다. 김이듬 시인은 “피상적인 수준이 아니라 그 공동체 자체를 이해하려면 결국 정신문화의 산물인 예술을 이해하고 공유해야 한다”며 “아프리카라는 낯선 공간을 이해하고 공유지점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세상을 이해하고 다가서려 하는 시인의 마음과 닮아 있는 것 같아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이 아프리카에 다가서는 방법은 시다. 직접 시를 쓰기도 하지만 아프리카의 정신을 생생히 구현하고 있는 아프리카 시인들의 시 창작을 돕기로 한 것이다. 문인수 시인은 “시집 한 권을 냈을 때의 기쁨이나 기대감이 얼마나 큰지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오랫동안 시를 쓰면서도 시집 한 권 갖지 못했던 분들이 시집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아프리카의 예술과 정신이 더욱 풍요로워질 것 같다”고 말했다. 스와힐리어는 탄자니아, 케냐, 우간다 등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널리 쓰이는 언어. 그러나 아프리카 문인들은 주로 영어, 프랑스어 등 식민종주국의 언어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황 시인은 “언어만큼 문화를 잘 담는 것이 없기 때문에 한 언어가 위협받는 건 아프리카의 정신뿐 아니라 세계인의 정신과 공유할 수 있는 지점이 흔들리는 것”이라며 “기업체나 단체 지원이 아니라 한국 시인들이 소박하게 마음을 모은 일이라 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아시낭모’ 시인들은 시집 출간을 지원할 아프리카 시인 두 명을 6월 중 선정한다. 올해 말 시집을 출간해 전달하고 이어 내년부터는 선정 시인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시 낭독회도 개최할 예정이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일본소설 주로 읽으며 자란현재의 젊은 층 보며 아쉬움한국적 감수성 표현하려 노력밀리언셀러 ‘엄마를 부탁해’의 작가 신경숙 씨가 1년 반 만에 신작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문학동네)를 냈다. 추리기법을 도입해 엄마를 중심으로 한 가족사를 풀어냈던 ‘엄마를 부탁해’와 달리 이번 신작은 찬란하고 아름다운 만큼 상실과 비탄의 그늘에 젖은 청춘의 여진이 고스란히 담긴 청춘물이다. 18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청춘은 찬란한 열병이며 그 시간이 혼돈과 방황, 모색과 좌절로 점철돼 있는 것은 시대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젊은 사람들이라면 어느 시대에나 상관없이 읽으며 치유하고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썼습니다.” 소설에는 청춘의 정점에 선 네 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 정윤과 대학 친구인 명서, 명서의 어린 시절 친구 미루, 정윤의 고향 친구 단이다. 이들은 애틋함, 연대와 유대감, 그리움과 불안 등 여러 감수성의 끈으로 단단히 엮여 있다. 작품의 주된 배경은 낭만이 가득한 대학 캠퍼스. 하지만 이들 중 몇몇은 불의의 사고로, 짊어지기 힘든 고통 때문에 스러지면서 남은 이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 대학생들의 가두시위, 사회현실과 수업 현장의 괴리감 등은 시대적 배경이 1980년대 언저리라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시대상에 관한 구체적 정황이나 사건은 등장하지 않는다. 작가는 “이 소설은 1980년대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20대였을 때는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이뤄지고 군사독재가 해결되면 세상만사가 다 잘 풀릴 거라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세월이 이렇게 많이 흐른 뒤에도 젊은 친구들은 우리와 별로 다를 것 없는 갈등 속에서 청춘을 보내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여기 등장하는 것들은 모두 현재 진행형이에요. 현재 청춘을 보내고 있는 젊은층들의 시간을 제 기억과 겹쳐보려고 노력했어요.” 신 씨는 고뇌하는 청춘들을 위해 이 소설을 썼다. 그는 “1990년대 이후부터 젊은 독자들이 주로 일본 소설을 읽으면서 성장통을 겪어 내거나 의지하는 것을 보면서 작가로서 많이 아쉬웠다”며 “청춘의 감수성을 대변할 품격 있는 한국 소설로 만들기 위해 문장도 가능한 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려 정확히 쓰려고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소설 제목은 최승자 시인의 시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에서 따왔다. ‘끊임없이’를 ‘어디선가’로 변형해 고독, 외로움이란 정서를 부각했다. 제목도 그렇지만 소설은 상처와 상실, 회복의 서사를 한 땀 한 땀 곡진하게 풀어냈던 초기작의 느낌과 흡사하다. 그는 금세 휘발돼 버리고 마는 청춘의 복잡미묘한 감정의 결을 신경숙 특유의 문체로 정확히 붙들어 놓는다. 신 씨는 “쓰면서 정말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며 “‘엄마를 부탁해’가 뜻밖의 관심을 받으면서 휘둘릴 수도 있었는데 작가로서의 균형을 잡을 수 있게 해줘 더 고마운 작품”이라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강렬한 바이러스에 한번쯤 감염되는 것 같아요. 그것이 연애일 수도 있고, 평생 하고 싶었던 일에 대한 흥분일 수도 있고, 운명에 대한 것일 수도 있지요. 자신을 침입한 그 바이러스와 싸우고 분투하는 유쾌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어요.” 영화 ‘모던보이’의 원작소설 작가인 이지민 씨(사진)가 신작 장편 ‘청춘 극한기’(자음과모음)를 냈다. 사람들을 사랑에 빠뜨리는 신종 바이러스가 퍼지는 과정을 유쾌하고 가벼운 필치로 그려낸 작품이다. 지난해 국내를 휩쓸었던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서 얻은 모티브를 청춘 연애물에 적용했다.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그는 “작가들이 한번쯤은 청춘에 관한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데 더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이번에 시도해봤다”며 “우화적인 개념의 바이러스를 통해서 청춘이란 인생의 정점에서 중간점검을 해보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험실에서 과로와 박봉에 시달리던 한 젊은 연구원 남수필이 신종 바이러스에 감염돼 죽는다. 그가 사랑했던 ‘나’ 역시 감염 가능자 대상에 오른다. 사람들은 그가 죽은 이유가 한창 유행한 특정 바이러스 탓이라 생각하고 ‘나’를 격리시키려 한다. ‘나’는 죽은 남수필의 당부대로 격리를 피해 도망다니며 그를 죽게 한 바이러스의 정체를 찾아간다. 그 바이러스는 걸리는 순간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바이러스로 밝혀진다. 이 씨는 “친언니가 관련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여서 글을 쓰는 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정색하고 쓰면 오히려 더 우스꽝스러울 것 같아서 전문적인 내용을 많이 뺐다”고 말했다. 대부분 바이러스를 모티브로 한 문학 작품들이 인간 실존의 문제를 어둡게 형상화한 데 반해서 이 소설의 바이러스는 명랑한 만화적 상상력에 가깝다. 작가는 “일종의 ‘생활 SF’를 써보려고 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바이러스처럼 우리의 청춘도 가시화되지 않은 공포감과 불안을 어떻게 이겨내느냐가 관건인 것 같아요. 결국은 그런 공포, 불안감도 끌어안고 함께 가는 게 인생이겠죠.”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12년 전 첫 길이 열렸을 때 금강산 관광은 현대아산의 ‘기대주’였다. 현대아산은 2008년엔 누적관광객 200만 명 돌파기념식까지 열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해 ‘총성 한 발’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이제 현대아산은 구조조정 위기에 몰리고 있다. 금강산 관광가이드와 건설 책임자로 현장을 누볐던 두 사람으로부터 금강산관광에 대한 소회를 들어봤다. ■ 지방선거 현장 패트롤 : 광화문광장 공방“한국의 대표적인 광장이라 해외에 널리 알려야 한다.” “이벤트성 행사만 개최하는 것은 광화문광장의 역사를 훼손하는 것이다.” 서울시장에 도전한 후보들이 광화문광장을 놓고 맞붙었다. 광화문광장을 둘러싼 여야 후보들의 열띤 논쟁을 살펴봤다. ■ 6·25 룩셈부르크 참전용사의 특별한 여행룩셈부르크의 6·25전쟁 참전용사 요제프 바그너 씨(사진)가 미국과 캐나다로 17일간의 여행을 떠났다. 그는 전쟁 이후 각자의 삶을 찾아 룩셈부르크를 떠난 전우들을 만나 무엇을 느꼈을까. 그의 특별한 여행은 다큐멘터리로 제작됐다. 그 제목이 ‘참전(Tour of Duty)’인 이유를 알아봤다. ■ 中대양해군 분쟁해역서 실력행사중국 ‘대양 해군’이 드디어 실력 행사에 들어갔다. 영유권 분쟁을 빚는 남중국해에서 일방적으로 어로금지구역을 설정하고 불법 어로단속에 들어갔다. 어족 보호가 명분이지만 베트남 등은 영해로 편입하기 위한 사전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중국의 국력 신장이 주변국과의 갈등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 조선 사대부 편지서 건진 일상어들전시(篆侍), 교침(喬沈), 누만(漏萬)…. 무슨 뜻인지 파악하기 힘든 한자 어휘지만 조선시대 편지글에는 자주 등장하는 단어였다. 문집이나 관찬 사서와 달리 일상용어가 많이 들어 있는 옛 편지에서 낱말을 건져 올려 사전으로 엮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7년째 간찰낱말사전을 만들고 있는 가회고문서연구소 사람들. ■ 류머티즘 치료 패러다임이 바뀐다한 번 발병하면 오랫동안 지독한 통증에 시달려야 하는 류머티즘 관절염. 요즘은 젊은 여성도 많이 걸린다. 최근 대한류마티스학회 학술대회 참가차 내한한 에드워드 키스톤 토론토대 의대 교수는 “류머티즘 치료법이 처음부터 강한 약효의 치료제를 쓰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 자본금 45위 꼬마 증권사의 깜짝 실적자본금이 업계 45위인 ‘꼬마’ 리딩투자증권이 영업이익을 6배 넘게 거두면서 영업이익증가율 1위에 올랐다. 미래에셋과 같은 해 창업했지만 ‘무명’에 불과했던 리딩증권의 실적은 박철 회장의 지휘로 일취월장했다. 한국은행 부총재에서 민간경영인으로 변신한 그의 전략을 소개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가족과 함께 지하 배수로에 살고 있는 어린 개다. ‘나’는 우연히 사람이 돼 인간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창구를 발견하게 되고 호기심에 가득 찬 나머지 가족을 버리고 인간들의 도시로 온다. 소년의 몸을 얻어 살게 된 나는 낯선 문화를 경험하면서 조금씩 적응해간다. 하지만 이 세계를 알아 갈수록 자신이 상상하고 꿈꿔온 인간들의 세상과는 격차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힘센 자 앞에서는 꼬리를 흔들고, 먹을 것을 위해 물어뜯고 할퀴기에 급급한 사람들. 성적순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교사들. 돈밖에 모르는 장사꾼들과 무능하고 고지식한 경찰…. 그런 와중에 ‘나’는 내가 떠나 있는 동안 가족들에게 일어난 사건을 알게 되면서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사람이 된 개’를 통해 인간 세상을 재기발랄하게 풍자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