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한줄 막힐 때마다 사무쳐 뼈가 우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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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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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에 시집 낸 서정춘 시인

고치고 또 고쳐 마침표 찍은
정갈한 담묵화 같은 시 20편
“쓰다보니 내안의 동심느껴
앞으로 아동문학 해볼까봐”

“아직도 시가 써지지 않으면 사무쳐서 뼈가 우는 것 같습니다. ‘이 멍텅구리야’ 하면서 끊임없이 시를 고칩니다.” 일흔의 나이에도 시 한 줄을 위해 생각하고 고치기를 거듭하는 서정춘 시인. 박선희 기자
“아직도 시가 써지지 않으면 사무쳐서 뼈가 우는 것 같습니다. ‘이 멍텅구리야’ 하면서 끊임없이 시를 고칩니다.” 일흔의 나이에도 시 한 줄을 위해 생각하고 고치기를 거듭하는 서정춘 시인. 박선희 기자
온라인 글쓰기의 일상화로 어느 때보다 많은 활자가 쏟아지는 시대지만, 꼭 맞는 단어 하나를 찾느라 수년을 기다리고 쉰 번, 예순 번씩 문장을 고치며 언어를 벼리는 시인이 여전히 있다. 한 해에 발표하는 작품이 많아야 두서너 편, 5년 만에 펴낸 신작 시집에 수록된 시들이 20편 남짓. 서정춘 시인(69)이 최근 신작 시집 ‘물방울은 즐겁다’(천년의 시작)를 내놓았다.

2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있는 자택을 찾았다. 연립주택가에 있는 양옥 이층집이 시인이 사는 곳이었다. 가구들이 정갈하게 놓인 집은 절제미가 흐르는 시인의 작품세계만큼이나 소박하면서도 염결한 듯했다. 그는 “이번 시집을 내고 보니 많이 가벼워지고 편해진 것 같다. 그동안 여백미, 절제미를 살리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긴장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부담이 훨씬 덜해진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시인은 동화출판사 제작부에서 명예퇴직한 1996년 뒤늦게 등단 28년 만의 첫 시집 ‘죽편’을 펴냈다.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지만 대학졸업장이 없는 학력이 번번이 문제가 돼 취업할 곳을 찾지 못했다. 동갑내기 문우인 소설가 김승옥 씨의 도움으로 출판사에 입사한 뒤 자기 숙성을 하는 데 20여 년을 보냈다. 그는 “사는 게 바쁘고 게을렀지, 뭐”라면서도 “어지간히 해서는 한 편도 못 건지겠다 싶어 계속 갈고닦고 했던 과정”이라고 했다. 그의 시는 대부분 10행 이내며 가장 긴 시도 20행을 넘지 않는다. 간결하고 응축된 언어가 담묵화(淡墨畵) 같은 서정성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하늘아래/처음 본 문자의 첫줄 같다/그것은, 하늘아래/이쪽과 저쪽에서/길게 당겨주는/힘줄 같은 것/이 한줄에 걸린 것은/빨래만이 아니다/봄바람이 걸리면/연분홍 치마가 휘날려도 좋고/비가 와서 걸리면/떨어질까 말까/물방울은 즐겁다/그러나, 하늘아래/이쪽과 저쪽에서/당겨주는 힘/그 첫 줄에 걸린 것은/바람이 옷벗는 소리/한줄 뿐이다”(‘빨랫줄’)

“흰 꼬리 고양이 울음소리가/문지방에 희미하게 걸렸습니다”(‘새벽’) “바다 위, 거미줄 친 돛단배들/물거미 입에 물린 흰나비의 羽化(우화)들”(‘돛’)처럼 두세 행으로 이뤄진 시는 한시나 시조에서 느껴지는 고졸미가 특히 뚜렷하다. 시인은 “서당 훈장이셨던 백부님이 오언율시를 외며 몸을 흔드시는 모습이 어릴 때부터 그렇게 좋았다. 자라면서 처음 접하게 된 시도 시조 가락이 배어 있는 소월, 영랑의 시였기 때문에 내 시에도 시조 음수율의 느낌이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도 시인은 하루를 글 쓰고 책 읽는 데 다 쓴다. “백수가 과로로 죽겠다”고 농담하는 서 씨. 그는 “이번 시집을 쓰다 보니 동심이나 동화적인 것이 내 속에 많이 어려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며 “아동문학은 일흔 즈음의 장르라고 했던 영국의 한 문호의 말처럼 앞으로 이쪽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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