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60주년]“요즘 전쟁이 어딨냐 하는데 6·25는 지난 사건이 아닌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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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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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문학 작가 윤흥길 - 젊은 평론가 김나영 ‘전쟁’을 말하다

《분단문학의 대표작 ‘장마’의 작가 윤흥길 씨(68).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젊은 문학평론가 김나영 씨(27)와 함께 17일 서울 중구 황학동에 있는 그의 자택을 찾았다. 윤 씨는 ‘장마’ 외에 ‘황혼의 집’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 ‘에미’ 등 유년 시절에 겪은 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분단문학에 천착해 왔다. ‘장마’는 각각 국군과 인민군으로 서로 총부리를 겨눈 아들을 둔 친할머니와 외할머니의 갈등과 화해를 어린 화자의 눈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화자의 삼촌은 국군으로 싸우다가 전사했고 그 통지를 받은 친할머니가 빨치산에 대한 저주를 퍼부으면서 외할머니와의 갈등이 고조되지만 두 할머니는 토속신앙을 토대로 이데올로기를 넘어 용서와 화합으로 나아간다. 이날 대담에서 문학평론가 김 씨는 전쟁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가 관심을 두지 않는 전쟁의 참상과 분단 상황에서의 문학의 역할을 물었다. 윤 씨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전쟁의 비극에 대해 자주 이야기해주곤 한다”며 2시간여에 걸쳐 전쟁 체험과 문학의 역할 등을 되짚었다.》
“파리똥만큼 작아보이던 폭탄 순식간에 참혹한 폐허 만들어 아홉살의 충격 날 오래 괴롭혀…
6·25는 세계역사가 행한 오폭…그로 인해 우리 삶 전체가 굴곡
참상 증언-분단전 동질성 확인…한권도 팔리지 않는다 해도 작가의 의무 계속해 갈것”


김=반갑습니다. 근황이 어떠신가요.

전쟁의 상흔과 분단 문제를 문학으로 다뤄온 소설가 윤흥길 씨(오른쪽)가 6·25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젊은 문학평론가 김나영 씨를 만나 전쟁과 문학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윤 씨는 “이 땅에 다시는 6·25라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전쟁과 분단마저 이해타산적으로 이해하는 인식과 사고 자체를 바꿔야 한다”며 “내가 가장 듣기 싫은 말 가운데 하나가 ‘이민이나 가버릴까’ 하는 말”이라고 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전쟁의 상흔과 분단 문제를 문학으로 다뤄온 소설가 윤흥길 씨(오른쪽)가 6·25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젊은 문학평론가 김나영 씨를 만나 전쟁과 문학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윤 씨는 “이 땅에 다시는 6·25라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전쟁과 분단마저 이해타산적으로 이해하는 인식과 사고 자체를 바꿔야 한다”며 “내가 가장 듣기 싫은 말 가운데 하나가 ‘이민이나 가버릴까’ 하는 말”이라고 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윤=대학에서 정년퇴임한 뒤론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쓰고 싶은 게 많은데 시간이 한정돼 있어 집에서 꼼짝 않고 밤새워 작품을 씁니다.

김=여전히 밤새워 작품을 쓰신다니 열정이 놀랍습니다. 올해로 6·25전쟁이 발발한 지 60년이 됐습니다. 분단문학의 대표 작가이신 선생님께서 느끼는 감회는 어떠신지요.

윤=1953년에 휴전이 된 뒤 7년 뒤인 1960년에 군대에 갔습니다. 당시만 해도 내 아들대가 되면 징병제가 사라질 거고 통일도 돼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그 상태 그대로 지속되고 있어요.

김=어린 시절 전쟁을 경험하셨는데 전쟁의 기억이 어떻게 남아 있는지 궁금합니다.

윤=아홉 살 때 6·25가 터졌습니다. 당시 전쟁이 났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살던 전북 이리(현 익산시)의 시골 마을은 7월까지도 전쟁의 느낌은 없었어요. 그러다 수업 중에 이리역에 폭격사고가 났어요. 폭탄이 파리똥만큼 작게 내려오다 순식간에 커지면서 머리 위에 똑바로 떨어질 것 같은 공포에 질렸던 느낌이 납니다. 참혹한 풍경이었어요. 역 건물이 무너지면서 철근이 휘어지고 거기에 몸뚱이가 꿰어 있는 사망자도 봤지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은 미군이 인민군을 타격하려다 실수로 쏜 오폭이었어요. 전쟁 때문에 죽거나 고통 받은 주변 사람들뿐 아니라 어린 시절 처음 접했던 오폭의 충격과 혼란도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습니다.

김=비극적인 체험이 선생님 문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 같은데요.

윤=오랜 시간에 걸쳐 문학을 통해 그 혼란에 답을 내릴 수 있게 됐지요. 사실은 6·25전쟁 자체가 이리역의 오폭사건처럼, 세계 역사가 한반도에 오폭을 한 것이란 생각이었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북한, 이에 응전한 남한 모두 세계 역사 전체를 놓고 볼 때는 피해자입니다. 평론가들은 편의상 내 문학을 ‘장마’는 분단문학,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산업화 사회소설, 이런 식으로 나누지만 정작 나는 그렇게 구분해본 적 없어요. 과거나 현재나 시종여일 우리 민족의 삶을 극성스럽게 간섭하고, 훼방하는 원인이 바로 6·25전쟁과 이후의 분단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 이상 중요한 게 없다고 믿습니다. 내 모든 소설은 결국 여기서 비롯됐습니다.

김=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6·25전쟁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고민하는 사회의 여러 부조리들도 상당 부분 전쟁과 연관돼 있다는 점도요. 하지만 대부분의 젊은 세대가 6·25를 지나간 사건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요.

윤=내 입장에서 놀라운 게 바로 그 점입니다. 우리 주변에 전쟁이 어디 있느냐고들 하는데 조금만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면 우리 삶 전체가 6·25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아요. 군부독재, 군비지출, 징병제, 국제관계, 이산가족…. 모두 전쟁이 남긴 것들입니다. 6·25는 역사에 편입된 적이 없는 현재의 일입니다. 경제 논리를 들며 통일을 반대하는 젊은 세대들도 안타까워요. 분단으로 인한 수많은 제약과 비용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는 단견입니다.

김=그렇기 때문에 문학이 담당해야 할 역할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윤=이런 시대에 작가가 감당해야 할 역할은 두 가지가 있을 겁니다. 작품을 통해 전쟁의 비인간적인 면을 증언하는 것, 그리고 이질화 돼가는 남북의 동질성을 확인해 나가는 것. 여기서의 동질성은 우리가 이데올로기로 인해 분단되기 이전 남북이 공유하던 전통과 관습 같은 것들이겠지요.

김=말씀을 듣고 보니 전쟁의 참상에 대한 증언, 한민족 동질성 회복의 노력들이 선생님의 여러 작품 속에서 구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쓰고 계신 작품이나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윤=분단문학은 작가로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이고 작가로서 의무라고 생각하는 주제입니다. 한 권도 팔리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까지의 작업을 계속 해나가려고 합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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