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누군가의 글쓰기’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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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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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셀린 붓다/정영문 지음/276쪽·1만2000원·자음과모음

한밤중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 잠 못 이루는 서술자가 자신이 쓰게 될 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첫 장면에서부터 이 소설은 메타텍스트적이다. 이후에 전개되는 이야기는 이렇다 할 사건이 없는 주변의 사소한 소리, 움직임에 관한 기록이거나 과거에 겪은 일들에 대한 회상이다. 하지만 소설에 언급되는 내용에 대한 신빙성은 서술자에 의해 부정되기도 하고 사실과 회상, 상상이 뒤섞이면서 이 글이 진행되고 있음을 스스로 밝히기도 한다.

서술자는 계속해서 ‘이 글의 구성’ ‘이 글의 형식’ ‘이 글을 쓰는 나’를 환기시킨다. 독자들은 글쓰기에 길을 잃은 누군가의 글쓰기, 진행 중이고 만들어져 가고 있는 누군가의 글쓰기를 지켜보고 있는 셈이다. 최근 한국 소설에서는 이처럼 서사 자체를 실험하는 작품들이 늘고 있다. 줄거리도, 사건도, 캐릭터도 없는 이런 작품을 기존의 독법으로 읽으려고 해서는 머리 아프고 짜증만 날 것이다. 글 쓰는 행위 자체를 문제 삼는 작중 의도를 염두에 두고 감각적으로 감상한다면 좀 수월하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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