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의 공포는 소설이 되고… 상처의 치유는 詩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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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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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문학 속의 6·25… 비극에서 동질성 회복까지

《6·25전쟁은 전후(戰後) 한국문학의 주요 주제였다. 3년에 걸친 전쟁의 참상,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 적의 점령과 아군의 수복이 혼란스럽게 교차하는 와중에 힘없이 스러져간 민초들의 삶…. 6·25전쟁과 분단을 다룬 한국문학은 기본적인 인간 생존의 문제부터 사상의 문제까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다양하게 비췄다.》
박완서 ‘그많던…’ 김원일 ‘불의 제전’
전쟁의 참상-체험 전하고

조정래 ‘태백산맥’ 오상원 ‘유예’
남북 갈등-이념대립 조명

최인훈 ‘광장’ 하근찬 ‘수난이대’
이데올로기의 허구성 고발

황순원 ‘학’ 윤흥길 ‘장마’…
화해와 극복과정 그려내


○ 남침부터 휴전까지 6·25의 참상

6·25전쟁의 상흔은 문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전후 한국문학은 전쟁의 깊은 상처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이를 치유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1·4후퇴가 시작된 1951년 1월 초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 동아일보 자료 사진
6·25전쟁의 상흔은 문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전후 한국문학은 전쟁의 깊은 상처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이를 치유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1·4후퇴가 시작된 1951년 1월 초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인민군이 삼팔선 전역에 걸쳐 남침을 시도했다는 뉴스를 듣긴 했지만 전에도 삼팔선에선 충돌이 잦았고 그때마다 국군이 잘 물리쳐 왔기 때문에 그저 그런가보다 했다…그러나 하학 길은 아침과 좀 달랐다…다음 날 아침에는 포 소리가 미아리고개 너머에서 쏘는 것처럼 가까이 들렸다…귀갓길은 시시각각으로 촉박한 전운이 감돌고 있었고, 간단없는 포 소리에 행인들은 무작정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박완서, ‘그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동족상잔의 비극. 남침 하루 만에 의정부를 점령한 북한군은 28일 서울을 장악했다. 6·25전쟁 체험에 문학적 뿌리를 두고 있는 소설가 박완서 씨의 작품 속에는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했던 당시의 혼란상이 잘 드러나 있다. ‘엄마의 말뚝’(1982) ‘그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 그의 여러 작품에서 싱그러웠던 6월 갑작스럽게 터진 전쟁과 그로 인한 공포, 위기감 등을 묘사해 놓았다.

인민군에게 서울을 침탈당했던 연합군과 국군은 3개월 만인 1950년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한다. 유년 시절의 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형상화해온 김원일 씨는 대하소설 ‘불의 제전’(1983)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전쟁의 전개과정을 총체적으로 조망했다. 1950년 1월부터 10월까지 6·25전쟁 과정을 그려낸 이 작품엔 당시 시가전의 참혹함이 생생하다.

“석 달 전 하루 사이에 세상이 변했듯, 석 달 뒤 정말 하루 사이에 다시 변해버린 세상이다…세종로 쪽을 보니 광화문 앞 광장에 쓰레기 더미가 왕릉처럼 수북이 쌓였다. 국군들이 중앙청 안에서 연방 무언가를 날라 와 쓰레기 더미에 던져 보탠다. 시체다. 쌓인 시체의 걸친 옷은 흰색이 많아 군인이 아닌 민간인들이다.”

전쟁의 아수라 속에서 잔혹하게 자행된 인명 살상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그것은 타 죽은 시체의 산이었다. 지붕을 했던 양철이라든지 가마니 따위로 대강은 가리어 놓았지만, 백구에 가까운 시체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장용학, ‘현대의 야’·1960).

조정래 씨의 대하소설 ‘태백산맥’(1989)은 남한 내 좌익세력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1948년의 여순사건에서부터 1953년 휴전협정이 조인된 이후까지 한반도에서 벌어진 일을 수많은 인간 군상들의 삶을 통해 기록하고 있다.

○ 파괴된 삶…휴머니즘으로 극복


전쟁으로 파괴된 개인과 공동체의 삶은 김동리의 ‘귀환장정’(1950), 최태응의 ‘동부전선 기행’(1953) 등 전쟁 당시인 1950년대 전시소설부터 최인훈의 ‘광장’(1960), 박경리의 ‘시장과 전장’(1964), 홍성원의 ‘남과 북’(1987)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기록됐다. 오상원의 ‘유예’(1955), 선우휘의 ‘불꽃’(1957)은 전쟁 상황에서 인간의 실존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손창섭의 ‘비오는 날’(1953), 이범선의 ‘오발탄’(1959) 등은 전후의 무기력과 좌절 등 후유증을 보여준다.

“동무는 아직도 계급의식이 그대로 남아 있소…다시 한 번 생각할 여유를 주겠소. 한 시간 후, 동무의 답변이 모든 것을 결정지을 거요…몽롱한 의식 속에 갓 지나간 대화가 오고 간다…사박사박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밑에 부서지는 눈, 그리고 따발총구를 등 뒤에 느끼며 앞장서 가는 인민군 병사를 따라 무너진 초가집 뒷담을 끼고 이 움 속 감방으로 오던 자신이 마음속에 삼삼히 아른거린다.”(오상원 ‘유예’)

침략과 반격이 교차되는 접경지대에서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마을 공동체가 분열되거나 가족이 대립하는 경우가 많았다. 황순원의 ‘학’(1953) ‘나무들 비탈에 서다’(1960), 윤흥길의 ‘장마’(1973), 하근찬의 ‘수난이대’(1957) 등의 작품들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황순원의 ‘학’은 전쟁의 와중에 국군과 인민군 편으로 갈릴 수밖에 없었던 두 친구의 갈등과 화해를 그렸다.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고발하면서 휴머니즘, 민족의 동질성 회복 등을 통해 전쟁의 상처에 대한 문학적 처방을 제시한 것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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