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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기홍 대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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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11-14~2025-12-14
칼럼100%
  • [단독]北, 작년 파인애플 등 특권층 위한 과일 中서 1만t 180억원어치 수입

    압록강 하구의 북-중 접경지대인 중국 랴오닝(遼寧) 성 단둥(丹東) 시를 통해 매년 북한으로 과일 1만 t가량이 수출돼온 것으로 전해졌다. 주로 특권층을 위한 과일 수입은 일반 국민의 극심한 식량난에도 불구하고 최근 5년간 매년 두 자릿수의 증가율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단둥의 정통한 소식통은 6일 “지난해 단둥해관을 거쳐 북으로 수출된 과일은 대략 1만 t 규모였다”며 “금액은 1억 위안(약 180억 원)어치”라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5년간 연평균 15%씩 성장해 왔다”고 덧붙였다. 북으로 수출되는 과일의 종류는 사과 귤 수박은 물론이고 바나나 파인애플 여지 화룡과 두리안 등 아열대 및 열대과일 등 중국 시장에 나오는 모든 종류가 포함돼 있다고 한다.특히 김정일 생일인 2월 16일,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 등 북한의 명절 직전에는 과일 수출량이 크게 증가한다고 한다. 이 소식통은 “예년엔 성탄절을 앞두고도 과일 수출량이 크게 늘었으나 지난해는 김 위원장 사망 때문에 큰 변화가 없었다”고 밝혔다. 북한은 성탄절을 쉬지 않으나 12월 24일이 김 위원장의 생모 김정숙의 생일로 명절이어서 과일 수출량이 증가해온 것으로 보인다. 수출 목적지는 평양으로 행사에 이용되거나 북한 특권층이 소비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결제 화폐는 주로 달러이며 위안화도 종종 사용되고 있다.한편 단둥 시는 최근 대북 과일 수출을 전담 관리하는 조직을 신설했다. 랴오닝 성 정부는 2일 홈페이지를 통해 단둥에 ‘변경무역 수출과일 시장구매센터’가 설립됐다고 발표했다. 설립 목적은 북한에서 늘어나는 과일 수요를 맞추고 수출 과일의 품질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무질서한 대북 과일 수출시장을 관리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단둥에는 지역주민 대상이 아닌 대북 무역을 겨냥한 과일 상점 여러 곳이 영업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가게 주인은 “신의주와 단둥을 정기적으로 오가는 차편을 통해 과일들을 북으로 내보내고 있다”고 말했다.이 센터는 이런 소규모 상점들의 과일 수출을 포함해 대북 과일 수출시장 전체를 통제관리하기 위한 것이다. 앞으로 대북 과일 수출은 모두 이 센터를 통해야만 통관이 가능하다고 한다.이 센터는 단둥 시가 만든 국영기업인 단둥 궈핀(果品)유한공사 산하로 1000만 위안(18억5000만 원)을 들여 과일의 선별과 냉장 보관, 포장, 검사, 운송 능력 등을 높이는 시스템을 구비했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 2012-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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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의 눈/구자룡]‘독재본색’ 러시아의 명분 없는 시리아 감싸기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 전 대통령은 1970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이듬해 러시아에 시리아 타르투스 항을 제공했다. 러시아는 베트남 이집트 등에 있던 해외 해군기지를 옛 소련 붕괴 이후 모두 폐쇄했지만 유독 타르투스 항에서만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냉전 이후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턱밑에서 미국 주도의 ‘전략미사일 방어체계’에 대응하는 것이 새로운 임무로 주어졌다. 최근 이곳에 러시아의 유일한 핵항공모함인 쿠스네초프가 입항했다. 러시아는 일상적인 일이라고 주장했지만 시리아의 정정이 불안한 상태에 이뤄진 일이라 주목을 받았다. 시리아 반군 ‘자유 시리아군’의 지도자인 리야드 알아사드 대령은 1일 “알아사드 대통령은 시리아의 절반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시리아 대통령 부자의 대를 이은 오랜 동맹국으로 현 알아사드 대통령의 가장 든든한 ‘배경’이 되어 왔다.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가 반정부 시위대를 초강경 진압해 온 것을 규탄하는 내용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이나 제재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방패막이를 해주고 있다. 지난해 초 반정부 시위 발생 이후 정부군의 유혈 진압과 폭력 사태로 인한 희생자가 5400여 명에 이를 만큼 반인륜적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 러시아가 반대하면 국제사회의 무력 개입은 사실상 힘들다. 러시아의 친시리아 정책의 배경에는 ‘무기 판매’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는 알아사드 정권과 그동안 약 40억 달러의 무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으며 약 20억 달러의 추가 무기 거래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 이는 러시아 해외 무기 판매량의 10%에 해당하는 액수다. 지난달 10일에는 지중해에서 풍랑을 만나 키프로스로 긴급 피신한 러시아 화물선에서 시리아군에 공급하는 무기와 탄약이 발견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다음 달 4일 대선을 앞두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러시아 내 민주화 요구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알아사드 대통령에게 동병상련을 느낄 수도 있다고 전했다. 중국도 시리아 제재에 반대하고 있지만 큰 이해관계는 없다. 티베트 등 소수민족 분리 움직임 문제가 있기 때문에 ‘내정 불간섭’을 제재 반대 이유로 내세우는 정도다. 러시아는 세계 3위 산유국이기 때문에 시리아 제재를 원하는 아랍 산유국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냉전시대의 유대를 바탕으로 민주화를 거부하는 점에서 초록은 동색인 러시아와 시리아가 ‘반민주, 반인권’ 동맹을 언제까지 유지할지 역사가 지켜볼 것이다.구자룡 국제부 bonhong@donga.com}

    • 201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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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 “한국계 女방송인과 교제 맞다” 시인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52)이 한국계 여성 방송인과의 교제 사실을 인정했다. 1일 정부기관의 창립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루손 섬 남서부 케손시티를 방문한 아키노 대통령은 방송인 그레이스 리(한국명 이경희·30) 씨와의 교제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기습 질문에 “우리는 서로 사귀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환호를 지르며 “(사귄 지) 얼마나 됐느냐”고 재차 물었으나 아키노 대통령은 “사생활”이라며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고 필리핀 신문 인콰이어러가 전했다. 한편 리 씨도 이날 자신의 TV 프로그램을 통해 “대통령의 말씀이 맞다”며 교제사실을 인정했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 2012-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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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기홍]송아지 요리에 대한 斷想

    소값 파동 대책으로 정부가 송아지 요리 보급에 나섰다는 발표를 보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국제뉴스를 다루는 필자의 직무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듣고 흘려버릴 사안이었지만 마음 한구석에 그림자 같은 게 남았다. 우리 사회가 지구촌이 지향하고 있는 거대한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답답함이었다.송아지 요리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른 것은 저물어가는 한 시대의 초상이었다. 소값 안정 위해 도살해 없앤다? 경쟁 효율성 적자생존 등으로 상징되는 서구 물질주의가 세상의 대세이고 선으로 여겨졌던 시대를 우리는 방금 거쳐 왔다. 특히 지난 십수 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 속에서 다들 정신없이 달렸고 그 대가로 물질적 풍요를 누렸다. 더 맛있는 것, 더 편한 것, 더 빠른 것… 더 많은 쾌감을 얻기 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 욕망의 질주였다. 유럽의 한 이탈리아식당 메뉴판에서 처음 대면한 송아지 요리는 그런 시대의 속성을 보여주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현지인이 설명해준 ‘빌(veal·송아지고기) 생산법’은 충격적이었다. 갓 태어난 송아지는 빌 크레이트라는 상자에 갇힌다. 쇠사슬에 묶여 발도 제대로 못 편다. 근육 없는 연하고 핏빛이 적은 고기를 만들기 위해 움직이지 못하게 한 채 철분을 뺀 고단백 유동식을 먹인다. 태어나서 4, 5개월을 그렇게 살다가 도축장으로 끌려간다. 2009년 미국에서는 송아지 도축장 폭로 영상이 나왔다. 파이프로 때리고, 의식이 깨어 있는 송아지의 목을 따고, 시간당 작업량을 늘리기 위해 숨이 채 끊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가죽을 벗기고…. 더 연한 고기를 위해서라면 어린 생명이라도 개의치 않고 입맛을 다시는 소비자,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선 그 무구한 눈망울을 꼬챙이로 찔러 컨베이어로 내모는 업자들의 합작품인 송아지 요리가 칭송받을 만큼 서구 물질문명은 끝을 모르는 욕망 충족을 향해 내달려 왔다. 그러나 차면 기우는 법. 지금 세계는 경쟁과 효율에 대한 숭배를 멈추고 방향을 대전환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월가 점령 시위, 갈수록 커지는 빈부 격차가 울린 경종에 정반합(正反合)의 자기수술에 들어간 것이다. 경쟁 공격 포식(捕食) 대신 공존 형평 공유 생명 따스함이 강조되고 있다. 상대를 제압해 독식하는 대신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의 처지에 서 보는 공감(sympathy)과 감정이입(empathy)이 중시되고 있다. 경쟁과 효율성의 왕국인 미국의 대통령마저도 신년 국정운영의 화두로 공평을 제시했다. 이런 흐름에서 ‘넘치니 도살해 없앤다’는 접근법은 낡은 시대의 냄새가 난다. 효율성과 경제성만을 따지는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백신 접종을 거부한 채 330만 마리의 소 돼지를 매장한 것과도 맥이 통한다. 근래 유럽과 미국 각 주에선 비인도적인 송아지 사육에 대한 규제 강화가 잇따르고 있고, 송아지 요리 반대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서양의 왜곡된 식습관 따라해서야 송아지 요리가 소값 파동을 안정시켜 준다면 그나마 위안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일단 농민단체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선진국에서 즐겨먹는 부드러운 고기”라며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송아지 요리 시식회까지 열었다. 하지만 다수 참석자의 반응은 “질기고 맛없다”는 것이었다. 우유로 키운 서양의 송아지 고기와 달리 우리 송아지는 그냥 사료로 키워 연함이 덜한 데다 마블링이 생기기 전에 도살됐기 때문이다.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 전통적으로 우리는 송아지를 먹지 않았다. 어린 생명의 눈망울을 보며 ‘연한 스테이크’를 떠올릴 만큼 한국인의 상상력은 강퍅하지 않았던 것이다. 서구 물질문명이 공존 동감 생명이라는 동양적 가치를 향해 선회하고 있는 지금, 서양인들이 버리고 있는 왜곡된 식습관을 뒤늦게 따라가는 게 타당한 일일까.이기홍 국제부장 sechepa@donga.com}

    • 201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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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군 기동력 훈련… 北 만약의 사태땐 2시간내 평양 진입”

    북한의 유사시에 대비해 중국군이 국경 부대의 기동력을 높이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이 22일 보도했다.이 신문은 ‘중국군 해부’ 특집기사에서 “중국군 관계자가 ‘우리 군의 기동력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에서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면 2시간여 만에 평양 진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신문은 중국군과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는 북한 유사시 핵 관리와 치안 회복을 위한 파병을 부정하고 있다고 전했다.보도에 따르면 중국군 싱크탱크인 군사과학원 산하 ‘한반도 위기관리 연구반’이 2010년 작성한 비공개 보고서는 “북한의 핵 개발과 관련해 사소한 오해나 혼란이 한반도 전면전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북한 내 사태가 유동화되면 ‘무엇보다 신속하게 핵 확산을 방지하는 것이 제1의 목표’”라고 규정했다.경총 “급진 통일땐 365만명 남하”한편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4일 ‘통일 이후 노동시장 변화와 정책과제’라는 보고서에서 “남한과 북한의 기대 소득 차이 등을 고려하면 급진적 통일이 이뤄졌을 때 북한 지역 주민 161만∼365만 명이 남한으로 이동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보고서는 이어 “대규모 인구 이동으로 노동 시장에 예상되는 혼란에 응할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 201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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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의 눈]그리스 발목 잡는 헤지펀드의 탐욕

    그리스의 국가 부도를 막고 유로존을 지키기 위해 그리스 정부와 민간 채권자들이 벌이는 막바지 협상이 일부 헤지펀드 때문에 난항을 겪고 있다. 헤지펀드는 소수의 고액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사모펀드를 조성한 뒤 주식 채권 외화 등 각종 파생금융에 고위험 고수익 투자를 하는 자본을 말한다. 그리스와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지난해 10월 27일 2차 구제금융 제공 협상을 타결하면서 민간 채권단의 손실분담률(PSI)을 50%로 하기로 합의했다. 그리스 은행들(500억 유로), 다른 유럽 은행들(400억 유로), 그리스 사회보장펀드(300억 달러), 유럽의 사회보장회사(150억 유로) 등 민간 채권자들도 이를 감수하기로 했다. 채권의 50%만 받겠다는 것이다. 민간 채권자들은 가지고 있는 채권의 액면가를 50%로 깎은 새 채권(쿠폰)을 받고 상환 만기는 20∼30년으로 연장하며 금리는 아직 협상 중이지만 4∼5% 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민간 채권단의 총손실 규모는 68%에 이른다. 민간 채권단이 그 같은 손실을 감내하기로 한 것은 그런 노력이 없을 경우 IMF 등이 구제금융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며, 그러면 그리스가 3월 20일 만기가 돌아오는 145억 유로를 상환하지 못해 ‘무질서한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리스 국채 중 약 500억 유로를 보유한 몇 개의 헤지펀드는 높은 금리의 보상을 하지 않으면 탕감 협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자신들은 일절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심사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악화시켰던 헤지펀드들이 또다시 유럽 경제위기를 악화시키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민간 채권단을 대표해 그리스 정부와 채무 탕감 협상을 벌이는 국제금융협회(IIF) 관계자는 채무 삭감에 참여하는 채권자가 일정 수가 되면 헤지펀드 등 일부가 참가하지 않아도 협상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헤지펀드들은 손실을 보지 않고 다른 채권자들이 손실을 감내하면서 유지시킨 채권 가격으로 만기가 되면 자신들의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게 된다. 더욱이 이 헤지펀드들은 그리스 위기로 채권 가격이 폭락했을 때 매입한 것도 적지 않다고 한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국채 가격이 폭락했을 때 사서 큰 이윤(fat profit)을 남기려는 헤지펀드의 탐욕이 그리스 구제를 막고 있다”고 비난했다. 모 헤지펀드 관계자는 “IIF도 결국은 골드만삭스나 AIG보험 등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 아니냐”며 자본주의 논리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외환위기 때 왜 자신들이 비난받았는지, 자신들이 활동하는 공동체를 지켜야 할 책임은 없는지 등을 헤지펀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구자룡 국제부 bonhong@donga.com}

    • 201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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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천안함 北 소행’ 김정남도 인정했는데…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은 핵무기 보유와 선군정치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꾸민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라고 단언했다. 김정남은 일본 도쿄신문 편집위원과 2004년부터 7년 동안 e메일을 100여 회 주고받으며 대담하는 과정에서 이같이 밝혔다. 국내 종북(從北)좌파 세력은 북한 권력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김정남의 이런 폭로를 듣고도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계속 주장할 것인가. 천안함 폭침에 대해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와 함께 과학적인 조사를 했고, 북한 소행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물증까지 찾아냈다. 그런데도 북한은 ‘남조선 자작극’이라고 우겼고, 남쪽의 종북좌파는 “눈으로 보지 못해 믿을 수가 없다”며 억지를 부렸다. 김정남은 “북조선 처지에서는 서해5도 지역이 교전지역임을 강조해야만 핵과 선군정치의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이라고 북의 도발 의도를 꿰뚫어봤다. 그는 김정일이 애초에 3대 세습에 반대했다며 이복동생 김정은을 흔드는 발언도 했다. 김정남은 김정은의 강력한 후견인으로 등장한 고모 김경희, 고모부 장성택이 자신과 ‘좋은 관계’에 있으며 그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말로 김정은을 자극했다. 김정남은 통치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기존 권력 간 세력다툼이 일어날 경우 김정은 체제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스위스 제네바 국제학교와 옛 소련 모스크바에서 유학생활을 했고 2000년 이후 마카오 등에서 지내는 김정남은 북한을 국제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 그는 “개혁·개방을 하지 않으면 북한이 무너지고 개혁·개방을 할 때는 북한 정권이 붕괴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일에게 개혁·개방을 주문하다가 후계자 경쟁에서 밀려났다는 김정남의 주장은 자신의 처지를 합리화하려는 의도를 깔고 있는 듯하다. 김정일이 다른 남자의 아내였던 성혜림에게서 낳은 김정남은 적통(嫡統)이 아니라서 권력승계 대상에서 일찌감치 제외돼 있었다는 일반적 시각과는 차이가 있다. 김정남의 북한 체제 비판은 세상의 주목을 받아야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절박한 생존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김정일 사망 후 김정은 체제가 빠르게 안정되는 듯해도 언제 무슨 일이든 터질 수 있는 게 북한 체제라는 전제를 갖고 우리는 대응해야 한다. 김정은과 그를 둘러싼 집단이 체제 생존을 위해 언제든지 대남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되는 이유다.}

    • 201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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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봉투에 박희태 명함” 고승덕, 검찰서 진술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300만 원이 든 돈봉투를 돌린 당사자는 2008년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박희태 국회의장 측이었다고 고승덕 의원이 8일 검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이달 3일 전당대회 금품살포 의혹을 폭로한 고 의원은 8일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상호)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2008년 7월 전당대회를 며칠 앞두고 박희태 국회의장(당시 대표 최고위원 후보) 측 인사가 의원실 직원을 통해 돈봉투를 전달해 왔지만 내용물을 확인한 뒤 깜짝 놀라 곧바로 되돌려줬다”고 진술했다.이날 오후 1시 50분경 검찰에 출석한 고 의원은 11시간 가량 조사를 마치고 9일 0시 50분경 귀가하면서 “2008년 전당대회에 대해 진술하신 것 맞느냐”는 기자들이 질문에 “예, 맞다. 그것만 확인해 드리고 가겠다”고 답변했다.고 의원은 또 연합뉴스에 “2008년 7월 전당대회 2, 3일전에 의원실로 현금 300만원이 든 돈봉투가 전달됐으며, 봉투 안에는 ‘박희태’라고 적힌 명함이 들어있었다”고 밝혔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쓴 한 젊은 남성이 의원실의 여비서에게 노란 서류봉투를 건네며 “고 의원에게 직접 전해 달라”고 했는데 여비서가 이를 잊고 있다가 전당대회 다음날 고 의원에게 전달했으며, 고 의원이 서류 봉투를 열어보니 흰 편지봉투 3개에 각각 현금 100만 원이 들어있었고 이들 다발은 H은행의 이름이 적힌 띠지로 묶여 있었다는 것. 고 의원은 이날 검찰 조사에서 △돈봉투를 건넨 당사자가 박 의장 측인지를 어떻게 알게 됐는지 △돈봉투를 의원실에 건네준 박 의장 측 인사가 누구인지 △어떤 과정을 통해 돈봉투를 되돌려줬는지 등도 상세히 진술했다.고 의원이 검찰에서 돈봉투를 건넨 주체를 박 의장 측이라고 지목함에 따라 수사는 진술의 사실 여부를 다각도로 확인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또 고 의원이 돈을 전달했다고 지목한 박 의장 측 인사 등 사건 관련자들을 차례로 소환조사한 뒤 최종적으로 박 의장이 돈봉투를 제공한 것으로 확인되면 박 의장도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그러나 박 의장 측은 돈 봉투를 돌리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있다. 자칫 현직 국회의장이 검찰 조사를 받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고 의원은 지난해 12월 중순경 이 문제를 제기하게 된 경위에 대해 “비대위에서 재창당을 하느냐 (현 체제) 그대로 가느냐 문제로 논란이 뜨거웠는데 일부 쇄신파 의원들이 재창당을 주장해, 전당대회로 갈 경우 줄 세우기와 편 가르기가 또다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박근혜 전 대표가 한다고 해도 후유증이 크고 전멸할 듯한 위기감이 있어 얘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 2012-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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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파워 시프트] 러시아

    《 지난해 9월 24일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대통령과 총리 자리를 맞바꾸는 ‘권력 스와프’에 합의했을 때 서방세계는 어이없어하면서도 “그게 러시아의 현실”이라며 ‘푸틴 체제의 부활’을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였다. 이튿날 모스크바 시내에서 시위가 벌어졌지만 수백 명에 불과했다. 푸틴은 자신의 2012년 3월 대선 재출마에 대한 반대 분위기를 찻잔 속의 미풍 정도로만 여겼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4일의 총선 부정 파문을 계기로 러시아 사회에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소련 붕괴 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대규모 시위의 확산은 단지 푸틴이 다시 대통령이 되거나 총선 부정에 항의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10여 년간 ‘관리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지속되어 온 통제체제에 대한 부정이다. 》○ ‘푸틴 체제 자식들’의 반란 푸틴을 거부하는 계층은 푸틴 체제하에서 성장한 ‘신흥 도시 지식인과 중산층’이다. 그들이 한때 ‘차르’로 존경했던 푸틴을 무대에서 내려오라고 한다. 권력자와 일반 국민의 권력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러시아야 말로 단순히 수평적인 정권 교체 이상의 ‘권력 이동(파워 시프트)’이 일어나고 있으며 역사적인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푸틴이 보리스 옐친 대통령으로부터 1999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지명되면서 러시아를 물려받을 당시 러시아는 옐친의 건강만큼이나 허약했다. 냉전시대 미국과 자웅을 겨루던 강대국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15개국으로 구성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은 해체되고 보유외환이 바닥났으며 실업률은 두 자릿수를 넘나들었다. 혜성처럼 나타난 푸틴은 강력한 러시아의 재건을 외쳤으며 그의 근육질 몸매만큼이나 자신감이 넘쳤다. 그가 8년간 대통령과 4년간 총리로 지내는 동안 실업률은 절반으로 떨어지고, 보유외환은 58억 달러(1993년)에서 4794억 달러(2010년)로 82배 이상으로 늘었다. 옛 소련 붕괴 당시 모라토리엄(채무 지불유예) 직전까지 몰린 러시아를 비웃었던 서유럽 국가가 재정위기로 허덕이는 현재, 러시아의 국내총생산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1.5%(2011년 추정치)로 양호한 편이다. 러시아는 유럽 구제금융 자금 100억 달러를 출자할 예정이다. 푸틴 전성기는 일종의 ‘러시아판 개발독재’ 시대와 비슷했다. 지구촌의 많은 국가들에서 경제 개발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중산층과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정치적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터져 나오는 것과 비슷한 분위기가 러시아에서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 시위의 주축을 이루는 대도시 중산층과 젊은층들은 ‘푸틴 체제’로 대변되는 ‘경제적 자유+정치적 통제’ 상황을 거부한다. 러시아의 시위가 아랍의 재스민 혁명과 다른 점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빵보다는 자유’다. 푸틴 체제에서 독버섯처럼 자란 정경유착 비리도 푸틴을 외면하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푸틴은 집권하면서 러시아판 권력형 축재 재벌이던 ‘올리가르히’의 척결을 외쳤으나 정작 그의 치세에서도 ‘신흥 올리가르히’가 독버섯처럼 늘어났다.○ 이겨도 불안할 대선 ‘푸틴 당’으로도 불리는 집권러시아당이 지난해 12월 4일 얻은 득표율은 49.5%로 2007년의 64.3%에 비해 15%포인트가량 줄었으며 의석수도 315석에서 238석으로 줄었다. 그나마 ‘사전투표 용지 투입’ ‘개표 조작’ 등에 의한 것으로 야당은 실제로는 30%대에 불과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총선 부정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에 놀란 푸틴은 대선에서 전국 9만4000여 개 투표소에 웹 카메라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부에서는 자신의 복귀에 대한 거부감이 사그라지지 않으면 ‘복귀 체제’의 한 축인 ‘메드베데프 총리’ 카드를 버릴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올해 3월 4일 치러지는 대통령선거의 후보 등록 마감은 이달 18일. 현재는 푸틴을 위협할 후보는 보이지 않는다. 이변이 없는 한 푸틴이 당선될 가능성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푸틴의 심기는 느긋할 수 없다. 지지도가 곤두박질치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폼(FOM)이 지난해 12월 24, 2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푸틴에 대한 지지도는 44%로 2008년의 60%에서 크게 낮아졌다. 이는 푸틴이 대선 1차 투표에서 승리(50% 이상 지지 필요)를 확정짓지 못하고 2차 투표까지 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대선 전까지 ‘반푸틴’ 시위가 몇 차례 더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때 시위가 격화되고 유혈 진압 사태라도 벌어지면 푸틴의 대선 가도에 복병이 될 수도 있다. 다만 푸틴이 오랫동안 정치적 라이벌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통제한 영향 등으로 뚜렷한 대항마가 나타날 가능성은 별로 없다. 러시아의 3대 재벌로 미국 프로농구팀 ‘뉴저지 네츠’의 구단주로 유명한 기업인 미하일 프로호로프(47)가 출마를 선언해 관심을 끌고 있지만 그는 중산층과 젊은 유권자들의 불만을 대리 배출시키기 위해 푸틴 측이 내세운 위장후보라는 주장이 나온다. 최대 야당인 공산당의 겐나디 주가노프 의장(67)은 과거 3차례에서 2위를 한 것처럼 이번에도 2위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이다.○ 푸틴의 대서방 정책 어디로 푸틴은 정보기관인 국가보안위원회(KGB)에서 15년간 근무하는 등 냉전시대 최전선에 있었지만 냉전은 러시아만 고립시키고 속으로 곪게 한다는 생각을 했다. ‘병자 러시아’가 회복하기 위해 서방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한 시대 상황과도 맞물려 푸틴은 서방과의 유화정책을 펴왔다. 과거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 있던 상당수 동유럽 국가들이 유럽연합(EU)에 가입하거나 옛 소련을 겨냥해 결성된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하는 것도 용인하거나 지켜보아야 했다. 하지만 이제 러시아가 다시 강대국의 면모를 회복하면서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러시아와 접한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려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핵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푸틴은 국내적으로 자신에 대한 정치적 지지 열의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서방과의 긴장관계를 이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군사적으로는 고비용 구조의 핵개발에서 첨단 재래식 무기 무장을 통한 군사 강국을 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다.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 토머스 프리드먼 칼럼 “세계화 - IT혁명이 푸틴 체제 뒤흔들 것” ▼역사가 월터 러셀 미드는 소련을 붕괴시킨 1990년대 혁명 후 “러시아인들은 ‘생선 수프를 수족관으로 바꾸는 것보다 수족관을 생선 수프로 바꾸는 것이 더 쉽다’는 격언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적용돼 유럽에서 중동까지 많은 수족관이 지금 생선 수프로 바뀌는 중이다. 아마 곧 러시아와 아시아도 이 대열에 합류할 것이다. 우리는 제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냉전 이후 때처럼 다시 대폭로의 시대에 서 있다. 이번에는 전쟁이 없었지만 많은 국가가 붕괴됐다. 왜? 주요 동인은 세계화와 정보기술 혁명이라고 믿는다. 이 두 가지는 21세기 10년 동안 취약한 국가나 허약한 기업들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민주화를 이끌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미 합참의장 보좌관이었던 마크 마이클레비가 ‘기대의 민주화’라고 부르는 것을 봤다. 그것은 모든 개인이 자신의 직업과 시민권, 미래를 형성하는 데 제한받지 않고 참여할 수 있다는 기대다.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말이 내가 이전에 들었던 호스니 무바라크에 대한 이집트인들의 말과 너무나 비슷해 충격을 받았다. 이집트 작가 알라 알 아스와니는 아들 가말에게 권력을 넘겨주려는 무바라크의 계획에 이집트인들이 분노했다고 말했었다. 러시아 인기 블로거 알렉세이 나발니는 “우리는 가축이나 노예가 아니다. 우리는 목소리와 투표권,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LRN(윤리적 기업환경 컨설팅회사)의 최고경영자(CEO)인 도브 시드먼은 “일방적 대화를 통한 선도 국가나 선도 기업의 시대는 끝났다”며 “당근과 채찍을 통해 사람에게 권력을 사용하는 ‘명령과 통제’의 구체제는 사람을 통해 권력을 일으키는 ‘연계와 협동’으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고 말했다. 푸틴 총리는 그가 국민들에 대한 힘을 가지고 있고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강요할 수 있다고 생각해 지금 권력에 머무는 것을 정당화하는 대화를 강요하고 있다. 코카콜라는 주력상품인 청량음료를 휴일에는 하얀 캔에 포장했다. 그러나 고객들로부터 신성모독이라는 비난을 받고 일주일 만에 하얀 캔에서 붉은 캔으로 돌아갔다. 지금 지도자의 역할은 아래로부터 올라오고 있는 것을 최대한 이해해 그것을 위로부터의 비전과 융합시키는 것이다. 듣고 있습니까, 푸틴 총리!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

    • 201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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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김정은 시대]“北이 집단지도체제? 장성택이 김정은 다 커버해줄 거야”

    국립 러시아사범대 교환교수로 재직하던 1992년 러시아에서 망명한 김현식 교수는 월남한 후에도 북한 정권의 핵심간부로 활동하고 있는 제자들의 안전을 우려해 공개석상에서 끝까지 자신의 신원을 밝히는 것을 거부해왔다. 그는 2003년 도미해 미국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김정일 사망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1990년대 초반으로 기억한다. 김일성이 나보고 ‘여보, 우리는 60이 청춘이고 90이 환갑이야. 내가 이제 80즈음이니 아직도 환갑이지. 10년은 더 일할 수 있어’라고 말한 게 생생하다. (그렇게 따지면) 김정일은 지금 ‘청춘’이지, 이렇게 일찍 갈 줄 몰랐다. 북한 수재들이 다 모여 있는 ‘장수연구소’가 있는데 거기선 담당 의사들이 24시간 김정일에게 붙어있다. 장수연구소가 뭘 했는지 모르겠다. 69세가 뭔가. 아버지만큼도 못 살고. 내가 쓴 책을 읽고 김정일이 마음을 돌려서 북한을 개방했으면 했는데, 김정일 스스로 ‘카다피처럼 죽으면 안 되지…’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마음을 돌리도록 하고 싶었는데…” ―가정교사를 할 때 김정일은 어떤 학생이었나. “김정일이 고3 때였다. 9월에 새 학기가 시작됐는데 김일성이 전문가 몇 사람을 불러 ‘우리 애가 여름방학 한 달 반 동안 휴양소에서 러시아어 회화를 열심히 했는데 한 학기도 안 돼 다 까먹었다. 매일 한 시간씩 수업한다고 했는데 이런 상황이니 나가서 검열하시오’라고 하는 거 아닌가. 내가 검열위원장이 돼 김정일 수업 참관도 하고 교장실에서 교장 교원이 모여 시험도 쳤다. 읽기는 더듬더듬했지만 문법은 꽤 잘했다. 하지만 회화는 꽉 막혀 있었다. 김일성이 ‘아들한테 회화 과외 지도를 해라’라고 해서 매일 교장실에 앉혀놓고 회화 공부를 시켰다. 성실하게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과외 끝나고 헤어질 때는 문간으로 따라와서 소련제 판 초콜릿을 내 호주머니에 넣어줄 정도였다. 중국제 담배도 줬다. ‘야, 난 담배 안 피워’ 그러니까 다음엔 중국제 알사탕을 넣어줬다. 매번 그랬다….” 김 교수는 순간 눈물을 흘렸다. 어릴 때 순진하던 김정일을 생각하면서 한참 말을 잇지 못하고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 아이가 왜 저렇게 마음이 비뚤어졌는지….” ―김정일이 왜 호전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고 보는가. “참으로 안타까운 대목이다. 심리적으로 비뚤어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 있다고 본다. 어렸을 때 동생이랑 못가에 가서 놀다가 동생이 빠져 죽었다. 그래서 혼자가 됐다. 또 일곱 살 때인가, 여덟 살 때 엄마(김정숙)도 자궁외 임신으로 죽고…. 북한에는 이(異)부모학원이라는 곳이 있다. 부모 중 어느 한쪽이 친부모가 아닌 애들을 기숙학교에 넣는 것인데 김일성이 만든 거다. 아들이 얼마나 비뚤어졌으면 아버지가 저런 새로운 학교 시스템을 만들었을까 생각할 정도다. 다음에 동생들이 생겼는데 평일, 경일, 경진이가 모두 자기보다 키가 크고 잘났다. 평일이는 학교 가서 애들 몽땅 끌어 다니면서 노는데 키 작은 김정일은 그렇게도 못하니까 더욱 열등감을 가진 것이다.” ―김정은으로의 권력세습은 순조롭게 될 거라고 보는가.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이 있다. 10조 65항으로 돼 있는데 이게 북한의 헌법이다. 여기에 ‘혁명의 위업은 대를 이어 계승 완성한다’는 대목이 있다. 북한에서 수령은 하늘이 정해주는 것이다. 수령에게 충성을 다할 뿐이지 누구도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을 못하게 만든다. 김정일 다음에 그 아들이 최고지도자가 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오극렬이나 장성택이 어떻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천만의 말씀이다. 집단지도체제? 북한 물정 모르고 하는 소리다. 김정은을 통해서 모든 것을 하려고 할 거다. 뒤에서 다 의견 나누고 장성택이 마지막에 김정은한테 ‘이건 이렇게 하는 게 좋지요’ 하면서 올릴 거라는 말이다. 또 군부에서 어떻게 한다? 그것 역시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장성택이 김정은을 다 커버해줄 거다. 내가 1975년부터 장성택과 일했는데 통이 크고 미래지향적이고 의리가 있는 사람이다. 그걸 김정은에게 고스란히 물려주면서 김정은이 한 것으로 만들 것이다. 김정일이 죽었다고 해서 북한 체제가 붕괴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다 모르고 하는 소리다.” ―통일이 앞당겨질 가능성은 없나. “북한 입장에선 제일 약한 게 식량 문제다. 의식주 문제가 딱 걸려 있는데, 이걸 풀려면 장성택이 통 크게 앞을 많이 내다보고 유연하게 해야 된다. 김정일보다는 외국에서 공부도 했고 다른 나라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을 것이다. 장성택이 김정은을 개방의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이라고 본다. 김정일도 개혁 개방 하려고 했는데 체제를 유지하면서 핵개발도 놓지 않고 개방을 하려고 하니 이게 딜레마였다. 김정은도 개성공단을 절대 포기 못할 거다. 지금 자본주의 방식으로 일하는 것을 엄청 배우고 있는데 어떤 식으로든 북한식의 개방정책을 펼칠 거다.” ―김정일 사망 직전에 미국과 북한이 식량지원과 농축우라늄 폐기 문제에 의견 접근을 본 것 같은데…. “북한이 핵을 절대 버리지 않을 거다. 마지막 생명줄이 핵인데 포기할 리가 없다. 전술적으로 요렇게 갔다 조렇게 갔다 할 수는 있지만 본심은 핵을 죽을 때까지 꼭 안고 있을 거다.”페어팩스=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 김정일에 러시아어 가르쳐… 1992년 南으로 ▼■ 김현식 교수는 탈북학자 김현식 교수는 1971년부터 20년 동안 김일성 처가 쪽 자녀들의 개인 과외교사로 활동했다. 김일성 처남의 6세짜리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공부에 집중하지 않는 아이의 관심을 끌려고 김일성이 보는 앞에서 아이에게 목말을 태우고 숫자와 글자를 가르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 일로 김일성의 신임을 얻었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는 김 위원장이 고 3때 러시아어를 개인교습하면서 친해졌다. 6개월 동안 일요일을 제외하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러시아어 개인교습을 했다고 한다. 1954년부터 38년 동안 평양사범대(김형직 사대) 러시아어과 교수로 일했다. 북한에서 2명만 파견되는 국립 러시아사범대 교환교수로 있던 1992년 대학에서 ‘북한 말과 한국의 얼’을 가르치다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주선으로 러시아에서 42년 전 함흥에서 헤어진 누나를 만나 남한으로 망명했다. 이후 10년간 탈북자로 서울에 머물며 경남대 북한대학원 초빙교수와 외국어대 교육대학원 러시아어 강사, 통일정책연구소(이사장 황장엽) 연구위원을 지냈다. 2003년 미국으로 건너와 예일대 초빙교수를 지냈고 하버드대 등 40여 미국 대학에서 북한 교육을 주제로 강의했다. 2007년부터 버지니아 주 조지메이슨대 연구교수로 일하고 있다. 2007년 자서전 ‘나는 21세기 이념의 유목민’(김영사)을 출판했다.페어팩스=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 2011-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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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김정은 시대]김정일의 前 개인교사 김현식 교수 ‘제자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

    《 여든 살의 노(老)스승은 제자 김정일의 순진무구했던 어릴 적 시절을 떠올리며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1971년부터 20년 동안 김일성 처가 쪽 아이들의 개인교사로 활동했던 김현식 전 평양사범대 러시아과 교수(사진). 1992년 망명해 지금은 미국 워싱턴 근교 조지메이슨대 연구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김 교수를 25일 오후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에 위치한 자택에서 만났다. 4시간 동안 이뤄진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김 교수는 김정일에게 주려고 정성껏 썼던 편지를 손에 들고 아쉬워했다. 김 교수는 북한이 김정일 사망을 발표하던 순간인 18일 밤 10시(현지 시간) 대학 연구실에서 제자 김정일에게 보내는 편지를 막 마친 상태였다고 한다. 》김 위원장, 지금 세상은 온통 뒤집히고 있소. 이 거세찬 소용돌이에 당신이 지키고 있는 평양성이 휘말리지 않을 것 같소? 역사의 흐름은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서도 막아 낼 수 없소. 이 무서운 격랑을 잠재울 수 있는 그 어떤 힘도 이 세상에는 없다고 보오. 이런 격동의 시기에, 20대의 아들에게 평양성을 지키라고 넘겨주었으니….당신이 그렇게도 믿었던 세계 여러 나라에 나가 있는 대외 사업 일꾼들과 간부들, 일반 주민들까지 2만 명 이상이나 벌써 당신을 등지고 살길을 찾아 세계 여러 나라에 탈북 망명하였소. 이 세찬 탈북, 망명의 흐름을 당신은 언제까지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오? 평양성의 문은 이미 뚫렸고, 물막이 둑은 터졌소. 김 위원장, 이 스승의 진정 어린 충고를 귀담아듣고 어서 빨리 결단 내리길 바라오. 나는 스승으로서 제자인 당신이 제2의 후세인, 제2의 카다피가 되는 걸 원치 않소. 이웃나라 중국처럼 개혁 개방하는 길을 따르면 어떨지요?1970년대 초, 출장으로 평양-모스크바 국제열차로 중국 땅을 횡단할 때, 열차가 멈춰서는 역마다 헐벗고 굶주린 중국 사람들이 떼 지어 밀려와서 먹을 것을 구걸했소. 그것이 엊그제 같은데, 중국은 지금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미국이나 일본과 맞서고 있소. 그러한 급성장은 개혁 개방의 결과라고 생각하오. 북조선도 경제구조를 바꾸고 문호를 개방하면 이른 시일 내에, 중국을 따라 앞설 수 있을 것이오. 북조선 사람들은 얼마나 근면하고 슬기롭소. 당신의 조부모인 김형직 선생과 강반석 여사는 열렬한 애국자이고 진실한 기독교인이었소. 그들의 염원을 손자인 당신이 실현해 주어야 하지 않겠소? 당신 부친의 외국어 실력은 대단했소.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로 자유로이 회화했소. 다른 과목들보다 외국어 교육에 특별한 관심을 돌렸소. 그가 통치 50년 기간에, 단 한 번 학교에 나가 수업 참관을 했는데, 바로 그것이 러시아어 수업이었고 그 진행자가 사범대학 교수였던 나였소. 거기서 그는 외국어 교육에서는 회화를 기본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강령적 교시도 남겼소. 나는 여기 미국에 와서 수많은 대학에서 북조선 교육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소. 5년 전부터는 버지니아에 ‘조선반도 언어연구소’를 세우고 일을 벌이기 시작했소. 할 일은 많은데 사람이 부족하여 야단이오. 평양에 있는 재능 있는 동료 교수들, 실력 있는 제자들 생각이 간절하오. 그들이 자유로이 오갈 수 있어서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겠소! 평양성문을 활짝 열어 우리 사람, 외국 사람들이 마음대로 오가며 과학기술, 교육문화를 자유로이 공동으로 연구 발전시킬 수 있게 되기를 바라오.▼ “내 품에서 엉엉 울던, 그때로 돌아가길 바랐는데…” ▼김 위원장, 기억에 생생히 떠오르오. 당신이 고등학교 3학년 때였으니까, 50년 전이라고 생각되오. 당신 부친이 나를 시켜 당신에게 러시아어 회화 개별지도를 하게 하였소. 반년 동안이나 우리는 매일 오후, 당신이 다니던 남산학교 교장실에서 회화공부를 열심히 했지요.그리고 1960년 2월, 눈보라 세차게 몰아치던 어느 겨울 저녁이었소. 전국 러시아어 교원 협의회 참가자들을 위한 예술 공연에서 당신은 푸시킨의 시 ‘겨울 길’을 러시아어로 정말 멋지게 읊었소. 그날 저녁 날씨에 너무도 꼭 맞는 시였소. 당신의 시 낭송이 끝나자 참가자들은 모두가 일어서서 “김유라(김정일 위원장의 러시아 이름)” “김유라”라고 강당이 떠나갈 듯 환호하였소. 그러자 당신은 시 낭송을 지도했던 나한테 와락 달려와서, 내 품에 꼭 안겨 엉엉 울었소. 어린애처럼…. 나도 함께 울었소. 너무도 미덥고 감격스러워서….그때의 그렇게도 순진했던 어린 학생으로, 미더운 제자로 제발 되돌아가 주기를 바라오. 지금 온 세상 사람들이 당신을 전쟁 범죄자로, 독재자로, 당장 쳐 죽일 놈이라 규탄하고 있지만, 80세 된 나의 가슴에는 그때의 그렇게도 밝고 순진했던 미더운 제자 김유라만이 새겨져 있소. 김 위원장, 되돌아오길 바라오. 제발 그때의 그렇게도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제자의 모습으로, 이 스승 앞에 돌아오길 바라오. ―평양에서 수천수만 리 떨어진, 미국, 버지니아, 조지메이슨대학 연구실에서옛 스승 김현식2011년 12월 18일 밤 10시(한국 시간 19일 정오)PS. 편지를 막 끝내려 하는데, 서울에서 전화가 걸려 와서 받아보니, 당신이 심장병으로 사망했다고 하오. 내 귀를 의심했소. 나이 예순아홉에 어찌 이런 일이? 당신이 그렇게 되기까지 그 숱한 장수연구소 일꾼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단 말이오. 당신이 더 늙기 전에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서, 조국과 민족 앞에 못다 한 일을 하도록 편지까지 쓰고 있는데…. 김 위원장, 고이, 깊이 잠드시오. 당신이 저지른 잘못이 다음 대에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오. ■ ‘김정일 前가정교사’ 김현식 교수 인터뷰“北이 집단지도체제? 장성택이 김정은 다 커버해줄 거야”국립 러시아사범대 교환교수로 재직하던 1992년 러시아에서 망명한 김현식 교수는 월남한 후에도 북한 정권의 핵심간부로 활동하고 있는 제자들의 안전을 우려해 공개석상에서 끝까지 자신의 신원을 밝히는 것을 거부해왔다. 그는 2003년 도미해 미국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김정일 사망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1990년대 초반으로 기억한다. 김일성이 나보고 ‘여보, 우리는 60이 청춘이고 90이 환갑이야. 내가 이제 80즈음이니 아직도 환갑이지. 10년은 더 일할 수 있어’라고 말한 게 생생하다. (그렇게 따지면) 김정일은 지금 ‘청춘’이지, 이렇게 일찍 갈 줄 몰랐다. 북한 수재들이 다 모여 있는 ‘장수연구소’가 있는데 거기선 담당 의사들이 24시간 김정일에게 붙어있다. 장수연구소가 뭘 했는지 모르겠다. 69세가 뭔가. 아버지만큼도 못 살고. 내가 쓴 책을 읽고 김정일이 마음을 돌려서 북한을 개방했으면 했는데, 김정일 스스로 ‘카다피처럼 죽으면 안 되지…’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마음을 돌리도록 하고 싶었는데…” ―가정교사를 할 때 김정일은 어떤 학생이었나. “김정일이 고3 때였다. 9월에 새 학기가 시작됐는데 김일성이 전문가 몇 사람을 불러 ‘우리 애가 여름방학 한 달 반 동안 휴양소에서 러시아어 회화를 열심히 했는데 한 학기도 안 돼 다 까먹었다. 매일 한 시간씩 수업한다고 했는데 이런 상황이니 나가서 검열하시오’라고 하는 거 아닌가. 내가 검열위원장이 돼 김정일 수업 참관도 하고 교장실에서 교장 교원이 모여 시험도 쳤다. 읽기는 더듬더듬했지만 문법은 꽤 잘했다. 하지만 회화는 꽉 막혀 있었다. 김일성이 ‘아들한테 회화 과외 지도를 해라’라고 해서 매일 교장실에 앉혀놓고 회화 공부를 시켰다. 성실하게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과외 끝나고 헤어질 때는 문간으로 따라와서 소련제 판 초콜릿을 내 호주머니에 넣어줄 정도였다. 중국제 담배도 줬다. ‘야, 난 담배 안 피워’ 그러니까 다음엔 중국제 알사탕을 넣어줬다. 매번 그랬다….” 김 교수는 순간 눈물을 흘렸다. 어릴 때 순진하던 김정일을 생각하면서 한참 말을 잇지 못하고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 아이가 왜 저렇게 마음이 비뚤어졌는지….” ―김정일이 왜 호전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고 보는가. “참으로 안타까운 대목이다. 심리적으로 비뚤어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 있다고 본다. 어렸을 때 동생이랑 못가에 가서 놀다가 동생이 빠져 죽었다. 그래서 혼자가 됐다. 또 일곱 살 때인가, 여덟 살 때 엄마(김정숙)도 자궁외 임신으로 죽고…. 북한에는 이(異)부모학원이라는 곳이 있다. 부모 중 어느 한쪽이 친부모가 아닌 애들을 기숙학교에 넣는 것인데 김일성이 만든 거다. 아들이 얼마나 비뚤어졌으면 아버지가 저런 새로운 학교 시스템을 만들었을까 생각할 정도다. 다음에 동생들이 생겼는데 평일, 경일, 경진이가 모두 자기보다 키가 크고 잘났다. 평일이는 학교 가서 애들 몽땅 끌어 다니면서 노는데 키 작은 김정일은 그렇게도 못하니까 더욱 열등감을 가진 것이다.” ―김정은으로의 권력세습은 순조롭게 될 거라고 보는가.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이 있다. 10조 65항으로 돼 있는데 이게 북한의 헌법이다. 여기에 ‘혁명의 위업은 대를 이어 계승 완성한다’는 대목이 있다. 북한에서 수령은 하늘이 정해주는 것이다. 수령에게 충성을 다할 뿐이지 누구도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을 못하게 만든다. 김정일 다음에 그 아들이 최고지도자가 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오극렬이나 장성택이 어떻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천만의 말씀이다. 집단지도체제? 북한 물정 모르고 하는 소리다. 김정은을 통해서 모든 것을 하려고 할 거다. 뒤에서 다 의견 나누고 장성택이 마지막에 김정은한테 ‘이건 이렇게 하는 게 좋지요’ 하면서 올릴 거라는 말이다. 또 군부에서 어떻게 한다? 그것 역시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장성택이 김정은을 다 커버해줄 거다. 내가 1975년부터 장성택과 일했는데 통이 크고 미래지향적이고 의리가 있는 사람이다. 그걸 김정은에게 고스란히 물려주면서 김정은이 한 것으로 만들 것이다. 김정일이 죽었다고 해서 북한 체제가 붕괴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다 모르고 하는 소리다.” ―통일이 앞당겨질 가능성은 없나. “북한 입장에선 제일 약한 게 식량 문제다. 의식주 문제가 딱 걸려 있는데, 이걸 풀려면 장성택이 통 크게 앞을 많이 내다보고 유연하게 해야 된다. 김정일보다는 외국에서 공부도 했고 다른 나라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을 것이다. 장성택이 김정은을 개방의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이라고 본다. 김정일도 개혁 개방 하려고 했는데 체제를 유지하면서 핵개발도 놓지 않고 개방을 하려고 하니 이게 딜레마였다. 김정은도 개성공단을 절대 포기 못할 거다. 지금 자본주의 방식으로 일하는 것을 엄청 배우고 있는데 어떤 식으로든 북한식의 개방정책을 펼칠 거다.” ―김정일 사망 직전에 미국과 북한이 식량지원과 농축우라늄 폐기 문제에 의견 접근을 본 것 같은데…. “북한이 핵을 절대 버리지 않을 거다. 마지막 생명줄이 핵인데 포기할 리가 없다. 전술적으로 요렇게 갔다 조렇게 갔다 할 수는 있지만 본심은 핵을 죽을 때까지 꼭 안고 있을 거다.” ■ 김현식 교수는김정일에 러시아어 가르쳐… 1992년 南으로탈북학자 김현식 교수는 1971년부터 20년 동안 김일성 처가 쪽 자녀들의 개인 과외교사로 활동했다. 김일성 처남의 6세짜리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공부에 집중하지 않는 아이의 관심을 끌려고 김일성이 보는 앞에서 아이에게 목말을 태우고 숫자와 글자를 가르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 일로 김일성의 신임을 얻었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는 김 위원장이 고 3때 러시아어를 개인교습하면서 친해졌다. 6개월 동안 일요일을 제외하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러시아어 개인교습을 했다고 한다. 1954년부터 38년 동안 평양사범대(김형직 사대) 러시아어과 교수로 일했다. 북한에서 2명만 파견되는 국립 러시아사범대 교환교수로 있던 1992년 대학에서 ‘북한 말과 한국의 얼’을 가르치다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주선으로 러시아에서 42년 전 함흥에서 헤어진 누나를 만나 남한으로 망명했다. 이후 10년간 탈북자로 서울에 머물며 경남대 북한대학원 초빙교수와 외국어대 교육대학원 러시아어 강사, 통일정책연구소(이사장 황장엽) 연구위원을 지냈다. 2003년 미국으로 건너와 예일대 초빙교수를 지냈고 하버드대 등 40여 미국 대학에서 북한 교육을 주제로 강의했다. 2007년부터 버지니아 주 조지메이슨대 연구교수로 일하고 있다. 2007년 자서전 ‘나는 21세기 이념의 유목민’(김영사)을 출판했다.페어팩스=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 2011-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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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일 사망]美 CNN 등 정규방송 끊고 긴급보도

    전 세계 주요 외신들은 19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소식을 긴급 타전한 데 이어 향후 북한의 후계 구도와 역학 관계 등을 분석하는 기사를 쏟아냈다.미국 CNN 등 주요 방송은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이 소식을 긴급 뉴스로 보도했다. CNN은 김 위원장에 대해 ‘수수께끼 같은 지도자였던 그는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미국에도 자주 가시 같은 존재였다’고 묘사했다. AFP통신은 김 위원장을 “기근과 경제적 어려움에도 야만적인 정권을 유지해온 정치적으로 노련하고 무자비한 지도자”라고 묘사했다.뉴욕타임스는 김 위원장을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는 사람들을 정치범수용소로 몰아넣고 국가를 핵무장한 사람”이라면서 “할리우드에 등장하는 냉전 직후의 우스꽝스러운 독재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고 표현했다. 또 “자신의 나라가 기아와 붕괴로 치달아가도 마지막 카드인 핵무기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평했다.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한국군 당국이 김 위원장의 사망에 따라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며 한국군의 반응을 긴급히 보도했다. 이 밖에 러시아 프랑스 호주 중남미 베트남 네덜란드 이스라엘 등 전 세계 언론이 주요 뉴스로 내보내며 집중적인 관심을 보인 반면 북한과 친분관계가 두터운 쿠바 관영언론은 특별한 보도 없이 침묵 상태를 유지했다.특파원 종합}

    • 2011-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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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군 전사자 4500명, 전비 927조 원 투입… 美 8년 8개월 만에 “이라크 전쟁 종결” 선언

    2003년 침공2003년 3월 20일 미군 이라크 침공, 4월 9일 바그다드 점령, 5월 1일 조지 W 부시 대통령 주요작전 종료 선언. 동아일보DB후세인 체포2003년 12월 13일 고향 티그리트 인근 토굴에 숨어있던 사담 후세인 체포. 2006년 12월 30일 사형 집행.테러 수렁에2007년 8월 14일 모술에서 자살폭탄테러로 최소 200명이 사망. 8년 8개월 동안 테러 희생자 등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 최소 12만6000명 발생.드디어 종전15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미군기지에서 열린 이라크전 종결기념식 모습. 미군이 성조기, 이라크 국기와 함께 이날까지 미군기지에 걸려있던 미군 지휘기를 내려 돌돌 만 채 들고 나가고 있다. 이로써 2003년 이후 8년 8개월 25일간 지속된 미군의 이라크 군사작전이 종료됐다. 이날 군용기편으로 이라크에 도착한 리언 패네타 미국 국방장관(연단 왼쪽에서 두 번째 양복 입은 이)과 제임스 제프리 주이라크 미국대사(왼쪽)가 의식을 지켜보고 있다. 8년 8개월 동안 미군 4500여 명이 전사했으며 3만2000여 명이 부상했다. 2007년 최대 17만 명이었던 이라크 주둔 미군은 크게 줄어들어 현재 4000여 명만 남아 있다. 군사고문 200여 명을 제외한 나머지 병력은 올해 말까지 철수한다. 바그다드=AFP 연합뉴스}

    • 2011-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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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이기홍]괴담생산공장 종사자들

    한미 FTA를 둘러싸고 괴담이 난무한다. 국제뉴스 에디터로서 프랑스 일본 중국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기획을 지시했다(본보 12일자 A8면 참조). 제3국 전문가니까 객관적 의견 제시가 가능하리라 싶어서다. 특파원들이 인터뷰한 전문가들은 ISD 논란을 비롯해 한국 내 괴담들에 대해 어이없어했다. 그런데 그들의 의견을 전달하는 기사를 출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의미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괴담의 진위가 밝혀진다 해도 아수라판은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반대론자들이 원하는 것은 괴담을 영양분 삼아 암세포처럼 자라나고 담금질되는, 보수정권과 미국에 대한 반대감정 그 자체 아닐까. 진위가 밝혀져 약발이 떨어지면 그들은 또 다른 괴담을 퍼뜨릴 것이다. 온라인과 SNS를 통해 루머가 유포되는 건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선진국엔 이를 검증하는 시스템이 발달돼 있다. 미국 의회는 어떤 논란이 생기면 즉시 청문회를 연다. 거의 매일 여러 건의 청문회가 열린다. 버젓이 거짓말을 하던 자도 청문회에 서면 진실을 말한다. 사소한 거짓말이라도 처벌이 엄혹하기 때문이다. 부시 정권 시절 실세였던 스쿠터 리비 부통령비서실장이 징역 30개월, 벌금 25만 달러의 중형을 받은 것은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와 관련해 CIA 요원의 신분을 누설했다는 사건의 핵심 때문이 아니라, 그 정보를 체니 부통령에게서 들어놓고 기자들로부터 들었다고 거짓 증언한 때문이다. 영국 법원은 8월 페이스북에 폭동을 선동하는 글을 올린 청년 2명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악의를 품은 말의 폐해를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준다. 우리 사회의 괴담생산 시스템에서 주목되는 또 하나의 집단은 일부 언론과 인터넷 논객들이다. 그들은 괴담 자체를 지면이나 전파에서 직접 주장하지는 않지만 괴담을 사실로 믿고 싶은 이들에게 심정적 확신을 심어줄 온갖 자양분과 배경그림을 제공한다. 무수한 별들을 마음대로 이어서 별자리를 만들 듯 단편적 팩트들을 이리저리 모자이크한다. 그러면서도 객관성을 외면한 데 가책을 느끼는 기색은 없다. 지면 전파 인터넷을 ‘역사의 진보에 기여할 자신의 이념과 가치관’을 전파하기 위한 배타적 권리로 여기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어설프게 접했을 참여-순수 논쟁의 영향 탓이리라. “이명박에 대한 적개심이 하늘을 찌를 때” 운운한 광우병 PD수첩 작가는 방송전파를 자신의 정치관을 전도할 도구로 여긴 ‘선무당 언론’의 한 사례다. “젖소가 도축됐다”를 “이런(광우병 걸린) 소가 도축됐다”로 슬쩍 바꾸고, 조금 후엔 “아까 그 광우병 걸린 소들”이라고 단정짓는 PD수첩의 수법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 행동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지 않도록 그들의 마음을 단련시켜준 ‘정치적 사명감의 힘’이다. 언론노조가 ‘나꼼수’를 민주언론상 수상자로 결정했다는 소식도 객관성, 팩트의 신성함보다는 ‘목적에의 기여’를 우선시하는 시각이 만연함을 보여준다. 괴담이 재생산되는 토양을 개선하려면 국회가 상시적으로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 진위 논쟁이 붙는 이슈가 터지면 상임위원장들이 저마다 손쉽게 청문회를 소집해서 당사자들을 진실의 마이크 앞에 서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청문회에서 사소한 거짓말이라도 하면 바로 감옥행이라는 전통을 쌓아가야 한다. 그래야 광우병 천안함 FTA 등 재료만 바꿔가며 가동되는 괴담생산공장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조금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이기홍 국제부장 sechepa@donga.com}

    • 201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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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이기홍]같은 숙제, 다른 풀이

    양쪽 집이 똑같은 숙제를 받아갔다. 하지만 그 숙제를 해내는 태도는 너무도 다르다. 2007년 잉태(합의)된 한미 FTA라는 태아의 출산(비준)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이 보여주는 모습은 여러 대목에서 비교된다. ①가장(家長)의 역할=FTA 반대론자였던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FTA 찬성으로 선회한 뒤 설득을 위해 몸을 던졌다. 기회 있을 때마다 현장을 찾아 FTA를 통한 일자리 창출 메시지를 던졌다. 비판론자들과 몇 시간이고 논쟁하고 설득했다. 막판에 무역조정지원제도(TAA)와 FTA 연계 문제로 난항을 겪자 야당 대표와 직접 협상했다. 상하원 지도부를 만나 타협안을 이끌어냈다. 오바마만 그런 게 아니다. 1993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비준 투표를 앞두고 빌 클린턴 대통령은 NAFTA 반대 의원들을 한 명씩 차례로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일대일로 의원들을 만나 다과와 온갖 친절을 베풀며 찬성을 부탁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연설 등을 통해 FTA 비준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직접 토론하고 설득하는 자리는 없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전달한 것이다. 비단 FTA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등 이슈가 있을 때마다 타운홀 미팅을 열어 반대론자들과 토론을 벌이면서 자연스레 자신의 논리를 국민에게 스며들게 했던 오바마의 자세와 대비된다. ②의사결정 시스템=미 의회에도 FTA 반대론자가 많았다. 하지만 비준안 상정 자체가 문제될 수는 없었다. 싫으면 표로 반대하는 거지, 상정 및 처리 자체를 물리력으로 막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노조 지지를 받는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FTA 반대론자이면서도 의회 상정에는 적극 협력했다. 의회 처리 절차에 대해 대통령과 민주, 공화당 대표 3자 간에 합의가 이뤄지자 상임위와 의원들은 군말 없이 절차에 돌입했다. 표결은 프리보트(찬반을 의원 각자 정함)지만 절차에 관한 한 지도부의 결정에 절대적으로 따른 것이다. 표결 전 찬반토론에서 반대파 의원들은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역설했지만 표결 때는 모두 참석했다. 어떤 야유나 몸싸움, 언쟁도 없었다. 투표는 5분 만에 일사천리로 끝났으며 표결 후엔 모두 군소리 없이 해산했다. 아무리 의견이 달라도 의회의 룰은 민주주의 존립 기반이라는 확고한 공감대를 재확인한 것이다. 싸워도 룰 내에서 싸우는 것이다. ③논쟁의 퀄리티=FTA로 인해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에 대해선 미국 내에서도 격론과 이견이 있었다. 하지만 협정 내용을 곡해해 유언비어성 주장으로 사회를 뒤흔드는 경우는 없었다. 설령 누군가가 사실관계를 교묘히 왜곡, 과장해 발표한다 해도 그런 주장은 필터링이 되기 때문이다. FTA가 2007년 봄 잉태된 이래 헤쳐가야 할 여건은 양국이 비슷했다. 양쪽 다 FTA를 체결한 정권이 대선에서 패하고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권력구도로 보면 미국의 여건이 더 어려워 보였다. 한국은 후임 정권이 FTA를 적극 찬성하지만, 미국은 FTA 반대론자들이 정권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 미국은 의회 역사상 가장 신속히 결론을 냈다. 찬성한 의원들은 박수를 치고 반대론자는 침묵 속에 돌아갔다. 반면에 한국 국회는 2008년 말 쇠망치 사건에 이어 여전히 아수라장이다. 쇠망치 사건 당시 워싱턴에서 만난 미 의회 관계자가 던진 코멘트가 기억난다. “저럴 거면 의석수가 무슨 의미지요? 다수당이 되려고 애쓸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요?”이기홍 국제부장 sechepa@donga.com}

    • 2011-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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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라리아 퇴치’ 40년 전쟁… 빛을 보다

    현대 의학이 정복하지 못한 난관들 가운데 하나인 말라리아 퇴치가 눈앞에 다가왔다. 한 해 80만 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는 말라리아를 퇴치하겠다는 과학자들의 집념, 그리고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를 비롯한 독지가들의 지원이 낳은 개가다. 영국의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게이츠 씨 부부가 운영하는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은 18일 50% 수준의 면역 효과가 있는 새 말라리아 백신의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했다. 모기를 통해 감염되는 말라리아는 선진국에서는 거의 사라졌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한 해 평균 2억 명이 감염되고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하는 무서운 질병이다. 또 치료 비용 증가로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 매년 120억 달러의 경제적 피해를 끼치고 교육 기회를 박탈하는 등 ‘빈곤의 악순환’을 유발하는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과학자들은 지난 수십 년간 말라리아 백신 개발에 매달렸지만 지금까지는 수시로 치료약을 복용하고 모기장을 치는 것 외에는 마땅한 예방법을 개발하지 못했다. 이번 백신이 나머지 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쳐 2015년경 상용화가 되기만 하면 매년 수십만 명의 귀중한 목숨을 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40년 만의 중대 진전 이번 백신의 임상시험에는 가나 케냐 등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7개국에서 1만5460명이 참가했다. 과학자들은 이 가운데 1차로 생후 5∼17개월 영유아 6000명에게 백신을 접종하고 12개월 이후 말라리아 발병률을 관찰했다. 그 결과 임상적(clinical) 말라리아는 56%, 중증(severe) 말라리아는 47%의 면역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공적인 백신이라면 90% 이상의 예방 효과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의학계는 이 정도만으로도 매우 중대한 진전이라고 평가한다. 이번 백신 개발에 참가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메리 하멜 박사는 “과학자들은 지난 40년간 말라리아 백신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아 왔다”며 “비로소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한 백신 개발이 본궤도에 올랐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09년 말라리아로 인한 사망자 78만 명 중 85%가량이 5세 이하의 아프리카 어린이였다. GSK의 앤드루 위티 최고경영자(CEO)는 “25년 전 백신 개발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우리는 불가능한 일에 도전한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며 “하지만 임상시험의 데이터가 처음 공개되자 동료들은 울음을 터뜨리는 등 감격스러워했다”고 말했다.○ 인류애가 낳은 성과 이번 백신 개발에는 GSK가 3억 달러,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이 2억 달러를 투자했다. 특히 게이츠 씨는 지난 10여 년 동안 재단 사업의 상당 부분을 말라리아 연구 지원에 할애하는 등 전염병 퇴치에 전력을 다해 왔다. 그의 노력은 후원기금 고갈, 정치 지도자들의 의지 부족 등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마침내 말라리아 정복의 이정표를 세우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게이츠 씨는 18일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말라리아 포럼’에 참석해 “말라리아 퇴치라는 궁극의 목표가 내가 살아있는 동안 달성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백신 개발자인 GSK도 다국적 회사로서 이익을 취하기보다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국민들을 위해 인도적으로 백신 사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GSK는 백신을 제조원가보다 5% 비싼 가격에 공급하되 이 5%는 차세대 말라리아 백신 연구에 사용할 계획이다. 위티 CEO는 “백신으로 돈을 벌 생각은 없다. 가격을 낮추는 데 온 힘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백신은 신생아에 대한 접종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고 예방 효과가 얼마나 지속되는지가 확인되지 않는 등 넘어야 할 산은 많이 남아 있다. 이번 임상시험 결과는 의학전문지인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 최신호에 실렸다.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말라리아 백신 ::바이러스가 아닌 기생충에 의한 질병인 데다 기생충이 인체 곳곳을 돌아다니며 형태가 변해 백신 제조가 특히 어려웠다. 이번 백신은 말라리아 원충의 표면 단백질과 B형 간염 바이러스, 면역자극제 등을 이용해 만들었다.  }

    • 201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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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 당장 고쳐” 南기자에 행패… 北의 안하무인

    “누가 이렇게 얘기했는지 당장 밝혀. 천안함 얘기는 일절 없었는데 누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야? 기사를 당장 고쳐. 이 자식이 기사를 소설로 쓰고 있어.” 18일 오후 5시(현지 시간)경 미국 조지아 주 애선스에 있는 조지아대 클래식센터 엠파이어룸 앞 복도. 한반도 문제 학술세미나에 참석한 북한 대표단 소속의 맹경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실장과 고경원 세계인민들과의연대성 조선위원회 연구원이 한국의 연합뉴스 기자에게 고성을 마구 질렀다. 연합뉴스는 전날 비공개로 열린 토론회 내용을 전하며 천안함, 연평도 사건과 관련해 한 참석자의 말을 인용해 “남측 참가 인사들은 ‘북측이 북측 책임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유감을 표명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하면서 보다 명확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등 진전된 태도를 보일 것을 촉구했고, 북측은 미사일 문제 토론 때와는 달리 강한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북한 대표단은 연합뉴스 기사를 보고받은 뒤 세미나실 옆에 있는 기자실을 찾아와 연합뉴스 기자를 복도로 불러냈다. 그러곤 발설자를 색출해야겠다며 누가 이런 얘기를 했는지 밝히라고 다그쳤다. 사뭇 위압적이었으며 연합뉴스 기자는 무척 당혹해했다.북한 관리는 “회의에서 ‘천안함’ 얘기는 ‘천’자도 안 나왔는데, 남측의 이런 얘기에 대해 북한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쓸 수 있느냐 말이냐”며 “우리가 도적질을 하지도 않았는데 앞으로 도적질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특히 맹 실장은 반말로 “소설 쓰지 마라. 누가 그랬어? 누가 얘기했는지 지금 색출하고 있다”며 “당신들이 이런 식으로 기사를 쓰니까 우리가 남한 언론하고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 말이야”라고 기자들을 압박했다. 그는 또 연합뉴스에 대해 “안에서 새는 쪽박이 밖에서도 샌다”는 조롱의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고 연구원은 현장을 취재하던 동아일보 특파원이 들고 있는 휴대용 녹음기를 빼앗아 녹음했는지를 체크한 뒤 다시 돌려주기도 했다. 맹 실장은 앞서 17일엔 동아일보 특파원에게 “내가 동아일보에 대해 할말이 많지만 일개 기자에게는 말하지 않겠다”고 하기도 했다.이어 토론회가 끝난 18일 오후 6시가 조금 넘어 북측은 연합뉴스 기자를 다시 복도로 불러냈다. 북측 대표단장인 이종혁 조선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은 아주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연합뉴스는 남북이 공동사업을 할 때 북한에서 취재할 수 없도록 취재단에서 배제할 수도 있다”며 “그런 책임을 당신이 어떻게 지려고 하느냐”고 강한 어투로 경고했다. 북측은 이 부위원장이 연합뉴스 기자에게 항의하는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비디오로 촬영했다. 북측은 이후 실제로 연합뉴스 기자의 취재를 가로막았다. 이 부위원장은 동아일보와 SBS 기자의 질문에 몇 마디 대답을 했지만 연합뉴스 기자의 접근은 차단했다. 이에 연합뉴스 기자가 항의하자 맹 실장은 “뭐? 이 자식아, 저리 꺼져!”라며 밀쳐냈다.연합뉴스는 첫 보도를 내보낸 지 7시간 뒤에 정정보도를 내보냈다. 하지만 복수의 세미나 참석자들은 “세미나에서 남측 일부 참석자가 ‘북한은 그동안 자기들이 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유감이라고 한 바 있다. 이번에 유가족에 대한 위로라도 표현할 용의가 없느냐’고 물었는데 북한에선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참석자도 첫날 세미나는 대부분 천안함 문제가 주제로 다뤄졌다고 전했다. 애선스=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 201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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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김석한]한미 FTA, 이젠 한국 차례다

    워싱턴의 심각한 당파적인 정치 환경을 감안할 때 한미 FTA의 미 의회 통과는 괄목할 만한 역사적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워싱턴 정치 환경은 아주 투쟁적이고 호전적이다. 국가부채 한도를 올리기 위해 신랄하게 토론하는 과정에서 정치권은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벼랑 끝 전술을 폈고, 결국 국가 신용등급 하락을 불러왔다. 이런 적대적인 환경을 감안할 때 많은 한미 FTA 지지자들은 이 협정이 의회에서 제대로 통과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품었던 게 사실이다.美의회 역사상 가장 빨리 동의받아 한미 FTA는 많은 지지자의 로비 노력이 없었다면 시의적절하게 통과되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주미 한국대사관은 미 의회와 백악관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미 상공회의소와 산업계, 풀뿌리 운동도 큰 도움을 줬다. 9월 말까지만 해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무역조정지원(TAA) 제도 연장 문제의 해결 없이 FTA 법안을 의회에 제출하는 것을 주저했다. 공화당이 TAA를 연장해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당사자들은 백악관에 간담회와 전화, e메일, 신문기고 및 광고 등을 통해 빨리 통과시키라고 압력을 가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친밀한 유대관계도 백악관이 FTA 법안을 미 의회에 서둘러 제출하는 데 기여했다. 끊임없는 압력은 미 의회와 맥스 보커스 상원 재무위원장, 데이브 캠프 하원 세입위원장 등 의회의 핵심 지도자들에게도 가해졌다. 의회 지도자들은 TAA를 연장하는 조건으로 한미 FTA 등 3개 FTA 법안 투표를 연계했다. FTA 법안과 중국환율 조작에 대한 투표를 별도로 하는 방식으로 한미 FTA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잠재웠다. 게다가 보커스 위원장과 캠프 위원장은 의원들이 한미 FTA 법안을 수정하거나 지연하는 전술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모의축조심의에 넘겨 효율적으로 처리되도록 했다. 한미 FTA는 미 의회 역사상 가장 빨리 의회의 동의를 받았다. 이제 한국 국회지도자들이 정치적인 난투에서 벗어나 이 역사적인 법안을 통과시킬 차례다. 단기적이고 편협한 관심사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국가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자동차 산업에 대한 우려는 미국과 보다 친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얻게 되는 중요한 장기적인 경제적 및 전략적 이익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상쇄될 수 있다. 한미 FTA는 미래 성장의 엔진이자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가 되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관세장벽이 허물어지면 효율성과 생산성이 높아질 뿐 아니라 한국 기업이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대국에 접근하는 데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게 된다. 게다가 한미 FTA는 한국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참여하는 토대를 제공할 것이다. TPP는 미국과 호주 칠레를 포함해 9개 국가 사이에 협상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 중요성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장기적인 국가이익 먼저 생각해야 한미 간의 전략적 관계를 강화하는 측면도 평가되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한미동맹은 경제와 무역을 통한 동맹이라기보다는 군사동맹이었다. 한미 FTA는 파트너십에 새로운 경제적인 분야를 추가하면서 동맹관계를 더욱 강력하고 지속적이게 할 것이다. 또 중국과 일본 등 강대국과의 외교 및 경제 협상에서 한국의 지렛대를 더욱 증가시킬 것이다. 여기에다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한미동맹을 더욱 심화 발전시킬 것이다. 한국은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정치지도자들은 이제 서로의 차이는 제쳐놓고 장기적인 경제적 전략적 이익에서 무엇이 최상인지를 고민하면서 이 기회를 붙잡아야 한다. 한국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맹국은 엄청난 장애물을 극복하면서 한미 FTA를 통과시키며 손을 내밀었다. 한국은 이런 제안을 퇴짜 놔서는 안 된다.김석한 변호사·미 애킨 검프 법률회사 수석 파트너}

    • 201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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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이기홍]페일린에게 배울게 있다면…

    세라 페일린 전 미국 알래스카 주지사가 한국에 왔다. 내년도 미국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첫 나들이다. 서울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모습을 보니 2008년 9월 초의 ‘페일린 선풍’이 기억난다. 무명의 초선 주지사에서 일약 공화당 부통령후보로 발탁된 페일린은 9월 3일 40분간의 후보 수락연설에서 자유민주주의의 힘과 가족의 가치, 미국의 미래를 역설했고 ‘만루홈런을 쳤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낙태 및 동성애 반대, 총기 허용, 재정지출 억제 등 보수주의 이념을 확고히 체화한 미인대회 출신의 젊은 여성 주지사는 보수의 희망으로 떠오르기 충분했다. 하지만 장밋빛 기대는 곧 거품으로 드러났다. 검증과정에 들어가자 언론 인터뷰를 한사코 기피하더니, TV토론에서 ‘빈약한 콘텐츠’를 여실히 드러냈다. 보수주의 가치의 포장만 달달 외울 뿐 그 진정한 의미와 콘텐츠는 체득하지 못한 빈 깡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보수파를 진짜 실망시킨 건 실력 부족이 아니었다. 주지사 공무출장에 가족들을 데리고 다니며 여행비용을 공금으로 결제하고, 당의 선거자금으로 유세 때 입을 럭셔리 브랜드 옷을 15만 달러어치나 산 사실이 드러났다. 여동생의 전 남편(현직 경관)을 해고하라는 지시를 거부한 치안국장을 해임했고, 친구들의 일자리를 알아봐줬다. 공화당엔 미국의 오늘을 이끌어온 원로가 많다. 하지만 그들은 올드보이다. 젊고 참신한 차세대 우파 리더가 등장해 리버럴에 맞서 미국의 가치를 지켜주길 기대했던 꿈이 페일린에게 모아졌지만 리더는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페일린은 자신에게 엄격하지 못했고, 공사 구분을 못했다. 나이만 젊을 뿐 구태를 답습한 올드우파였던 것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보수주의의 위기는 젊은 유망주들이 사이비 우파로 변질되기가 너무 쉽다는 점이다. 박원순 저격수를 자처하며 날카로운 폭로를 하는 소장파 의원이 하필이면 성희롱 논쟁의 장본인이라는 데 우파의 비극이 있다. 주사파로 뛰다가 허상을 깨닫고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전파해온 뉴라이트 논객이 생방송을 앞두고 폭탄주를 들이켜는 무분별함을 지녔다는 점도 보수진영의 얄팍한 인재풀을 보여준다. 국민들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겪으면서 진보진영 차세대 기대주들의 허상과 위선에 실망했다. ‘잔업 끝내고 돌아올 아내를 기다리며/이불 홑청을 꿰매며/아픈 각성의 바늘을 찌르며’ 살았을 것으로 여겨졌던 운동가들이 이런저런 끈을 잡고 하루아침에 고위직 감투를 차지했다. 그런 그들 가운데 고급 승용차와 여비서, 호화로운 사무실, 법인카드가 죄스럽고 송구스러워서 사양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끼리끼리 챙겨먹기, 을(乙)에게 큰소리치기, 실력자에게 굽실대기는 군부독재에 영합해 살던 낡은 우파들을 뺨칠 정도였다. 좌파는 당장 약자에게 도움이 될 정책을 내세우고, 우파는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도움이 될 해결책을 모색한다. 이 때문에 우파는 강자, 부자의 편으로 비치기 쉽다. 그런 만큼 우파의 리더, 논객이 되려면 더더욱 자기 절제와 신독(愼獨)이 요구된다.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이 페일린을 만나 대담을 나눴다고 한다. 후광 효과를 통해 여성리더의 이미지를 강화하려 했다면 번지수를 한참 잘못 짚었다. 차세대 보수주의 리더로 자라나기 위해서는 얼마나 뼈를 깎는 자기 절제와 공부가 필요한지, 자칫하면 바로 낡은 보수로 변질될 수 있음을 경계하게 해주는 반면교사라면 또 모를까.이기홍 국제부장 sechepa@donga.com}

    • 201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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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이기홍]일요일이 망가지는 소리

    2003년 미국 워싱턴에 연수를 갔을 때 도심 속 드넓은 잔디공원인 내셔널몰을 걸으며 부러웠다. 포토맥 강변의 조깅 코스를 달리는 시민들도 부러웠다. 역시 미국이구나…. 그러나 연수와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2009년 말 귀국한 뒤엔 생각이 바뀌었다. 한강변은 포토맥 강변에 비해 조금도 손색없이 잘 가꿔져 있었다. 저물녘 청계천 변을 걸어보니 내셔널몰이 부럽지 않았다. 한강공원에 매료돼 일요일 새벽마다 자전거를 탄다. 양화대교에서 성산대교 쪽으로 달리다 보면 주홍색 다리 너머로 강이 굽이굽이 펼쳐진다. 바다를 향해 달리는 것 같은 장관이다. “더 이상 미국이 부럽지 않다!”고 외치고 싶은 기분이 된다. 그러나 여명이 걷히면 불청객이 나타난다. 트럭과 승합차들이 비상등을 깜박거리며 자전거 길에 들어오는 것이다. 낮에 한강공원에서 열릴 하프마라톤 같은 행사의 집기와 진행요원을 태운 차량들이다. 산책객들은 매연을 마시며 비켜준다. 거의 매주 휴일 아침마다 보는 장면이다. 기자는 한강공원에서 시민이 함께하는 체육행사가 열리는 걸 반대하지 않는다. 도시의 낭만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승합차와 트럭을 버젓이 자전거 길로 들여보내는 관리당국과 주최 측의 무례함은 이해하기 어렵다. 탁자 등을 날라야 한다면 뒤에 화물칸이 달린 전기카트를 이용하면 된다. 트럭보다는 조금 불편하겠지만 그 정도는 산책로를 양보하는 시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아닐까.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출근한다. 일요일 출근은 신문업 종사자의 숙명이다. 동아일보는 청계천의 시발점인 청계광장 옆에 있다. 가족, 연인들이 한가로이 거니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하지만 그런 평화도 깨지기 일쑤다. 지난 일요일엔 귀를 찢는 듯한 기계음악 소리가 청계광장을 흔들었다. 한 자동차회사 노조 집회에서 발산한 소음이었다. 견디기 힘든 소음이었지만 오후 내내 방치됐다. 문화제라는 명목으로 집회를 열면 집시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 제도적 맹점이 빚은 결과다. 워싱턴 내셔널몰에서도 집회와 행사는 열린다. 하지만 시설물 훼손, 폭력, 소음 등이 발생하면 엄중한 책임을 묻는다. 미 국립공원국 대외협력담당관에게 “집회의 자유와 공원 이용객의 권리가 상충할 때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그는 “공원은 모든 시민을 위한 공공장소다. 집회신청서에 기재한 사항을 조금이라도 어기면 차후엔 절대 집회 허가를 받을 수 없다”고 답했다. 청계천의 정취를 깨는 것은 정치성 집회만이 아니다. 특산물 판매행사 등으로 청계광장은 도떼기시장이 되기 일쑤다. 마차들까지 등장해 청계천 일대를 돈다. 마차가 신기해 즐거워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하루종일 종로의 혼잡한 차량들 틈에서 아스팔트를 달려야 하는, 가쁜 숨을 내쉬며 앞말의 꽁지에 머리를 처박은 말들의 겁먹은 눈을 보면서 낭만보다는 안쓰러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휴식을 위한 공원과 위락시설(amusement park)을 혼동하는 이런 부조화의 풍경을 볼 때마다 왜 우리 관리들은 공원을 가만 놔두지 못하고 이벤트나 유희를 만들어 들쑤시려고 안달하는지 한숨이 나온다. 인프라는 선진국 수준이 됐을지 몰라도, 타인의 불편은 안중에 없는 후안무치한 사람들, 그리고 당국의 낙후된 발상을 보면 ‘아직은 멀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선진국이 부러울 게 없다”는 자부심이 충만했던 마음이 씁쓸해지는 일요일이다.이기홍 국제부장 sechepa@donga.com}

    • 2011-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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