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리아 퇴치’ 40년 전쟁… 빛을 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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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K새 백신 임상시험 결과 50% 면역효과
빌 게이츠 10년간 연구지원… 2015년 상용화

현대 의학이 정복하지 못한 난관들 가운데 하나인 말라리아 퇴치가 눈앞에 다가왔다. 한 해 80만 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는 말라리아를 퇴치하겠다는 과학자들의 집념, 그리고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를 비롯한 독지가들의 지원이 낳은 개가다.

영국의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게이츠 씨 부부가 운영하는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은 18일 50% 수준의 면역 효과가 있는 새 말라리아 백신의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했다.

모기를 통해 감염되는 말라리아는 선진국에서는 거의 사라졌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한 해 평균 2억 명이 감염되고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하는 무서운 질병이다. 또 치료 비용 증가로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 매년 120억 달러의 경제적 피해를 끼치고 교육 기회를 박탈하는 등 ‘빈곤의 악순환’을 유발하는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과학자들은 지난 수십 년간 말라리아 백신 개발에 매달렸지만 지금까지는 수시로 치료약을 복용하고 모기장을 치는 것 외에는 마땅한 예방법을 개발하지 못했다. 이번 백신이 나머지 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쳐 2015년경 상용화가 되기만 하면 매년 수십만 명의 귀중한 목숨을 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40년 만의 중대 진전

이번 백신의 임상시험에는 가나 케냐 등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7개국에서 1만5460명이 참가했다. 과학자들은 이 가운데 1차로 생후 5∼17개월 영유아 6000명에게 백신을 접종하고 12개월 이후 말라리아 발병률을 관찰했다. 그 결과 임상적(clinical) 말라리아는 56%, 중증(severe) 말라리아는 47%의 면역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공적인 백신이라면 90% 이상의 예방 효과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의학계는 이 정도만으로도 매우 중대한 진전이라고 평가한다. 이번 백신 개발에 참가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메리 하멜 박사는 “과학자들은 지난 40년간 말라리아 백신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아 왔다”며 “비로소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한 백신 개발이 본궤도에 올랐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09년 말라리아로 인한 사망자 78만 명 중 85%가량이 5세 이하의 아프리카 어린이였다.

GSK의 앤드루 위티 최고경영자(CEO)는 “25년 전 백신 개발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우리는 불가능한 일에 도전한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며 “하지만 임상시험의 데이터가 처음 공개되자 동료들은 울음을 터뜨리는 등 감격스러워했다”고 말했다.

○ 인류애가 낳은 성과

이번 백신 개발에는 GSK가 3억 달러,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이 2억 달러를 투자했다. 특히 게이츠 씨는 지난 10여 년 동안 재단 사업의 상당 부분을 말라리아 연구 지원에 할애하는 등 전염병 퇴치에 전력을 다해 왔다. 그의 노력은 후원기금 고갈, 정치 지도자들의 의지 부족 등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마침내 말라리아 정복의 이정표를 세우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게이츠 씨는 18일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말라리아 포럼’에 참석해 “말라리아 퇴치라는 궁극의 목표가 내가 살아있는 동안 달성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백신 개발자인 GSK도 다국적 회사로서 이익을 취하기보다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국민들을 위해 인도적으로 백신 사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GSK는 백신을 제조원가보다 5% 비싼 가격에 공급하되 이 5%는 차세대 말라리아 백신 연구에 사용할 계획이다. 위티 CEO는 “백신으로 돈을 벌 생각은 없다. 가격을 낮추는 데 온 힘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백신은 신생아에 대한 접종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고 예방 효과가 얼마나 지속되는지가 확인되지 않는 등 넘어야 할 산은 많이 남아 있다. 이번 임상시험 결과는 의학전문지인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 최신호에 실렸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말라리아 백신 ::


바이러스가 아닌 기생충에 의한 질병인 데다 기생충이 인체 곳곳을 돌아다니며 형태가 변해 백신 제조가 특히 어려웠다. 이번 백신은 말라리아 원충의 표면 단백질과 B형 간염 바이러스, 면역자극제 등을 이용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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