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기홍]같은 숙제, 다른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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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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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국제부장
이기홍 국제부장
양쪽 집이 똑같은 숙제를 받아갔다. 하지만 그 숙제를 해내는 태도는 너무도 다르다. 2007년 잉태(합의)된 한미 FTA라는 태아의 출산(비준) 과정에서 한국과 미국이 보여주는 모습은 여러 대목에서 비교된다.

①가장(家長)의 역할=FTA 반대론자였던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FTA 찬성으로 선회한 뒤 설득을 위해 몸을 던졌다. 기회 있을 때마다 현장을 찾아 FTA를 통한 일자리 창출 메시지를 던졌다. 비판론자들과 몇 시간이고 논쟁하고 설득했다. 막판에 무역조정지원제도(TAA)와 FTA 연계 문제로 난항을 겪자 야당 대표와 직접 협상했다. 상하원 지도부를 만나 타협안을 이끌어냈다.

오바마만 그런 게 아니다. 1993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비준 투표를 앞두고 빌 클린턴 대통령은 NAFTA 반대 의원들을 한 명씩 차례로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일대일로 의원들을 만나 다과와 온갖 친절을 베풀며 찬성을 부탁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연설 등을 통해 FTA 비준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직접 토론하고 설득하는 자리는 없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전달한 것이다. 비단 FTA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등 이슈가 있을 때마다 타운홀 미팅을 열어 반대론자들과 토론을 벌이면서 자연스레 자신의 논리를 국민에게 스며들게 했던 오바마의 자세와 대비된다.

②의사결정 시스템=미 의회에도 FTA 반대론자가 많았다. 하지만 비준안 상정 자체가 문제될 수는 없었다. 싫으면 표로 반대하는 거지, 상정 및 처리 자체를 물리력으로 막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노조 지지를 받는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FTA 반대론자이면서도 의회 상정에는 적극 협력했다.

의회 처리 절차에 대해 대통령과 민주, 공화당 대표 3자 간에 합의가 이뤄지자 상임위와 의원들은 군말 없이 절차에 돌입했다. 표결은 프리보트(찬반을 의원 각자 정함)지만 절차에 관한 한 지도부의 결정에 절대적으로 따른 것이다.

표결 전 찬반토론에서 반대파 의원들은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역설했지만 표결 때는 모두 참석했다. 어떤 야유나 몸싸움, 언쟁도 없었다. 투표는 5분 만에 일사천리로 끝났으며 표결 후엔 모두 군소리 없이 해산했다. 아무리 의견이 달라도 의회의 룰은 민주주의 존립 기반이라는 확고한 공감대를 재확인한 것이다. 싸워도 룰 내에서 싸우는 것이다.

③논쟁의 퀄리티=FTA로 인해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에 대해선 미국 내에서도 격론과 이견이 있었다. 하지만 협정 내용을 곡해해 유언비어성 주장으로 사회를 뒤흔드는 경우는 없었다. 설령 누군가가 사실관계를 교묘히 왜곡, 과장해 발표한다 해도 그런 주장은 필터링이 되기 때문이다.

FTA가 2007년 봄 잉태된 이래 헤쳐가야 할 여건은 양국이 비슷했다. 양쪽 다 FTA를 체결한 정권이 대선에서 패하고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권력구도로 보면 미국의 여건이 더 어려워 보였다. 한국은 후임 정권이 FTA를 적극 찬성하지만, 미국은 FTA 반대론자들이 정권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 미국은 의회 역사상 가장 신속히 결론을 냈다. 찬성한 의원들은 박수를 치고 반대론자는 침묵 속에 돌아갔다. 반면에 한국 국회는 2008년 말 쇠망치 사건에 이어 여전히 아수라장이다.

쇠망치 사건 당시 워싱턴에서 만난 미 의회 관계자가 던진 코멘트가 기억난다.

“저럴 거면 의석수가 무슨 의미지요? 다수당이 되려고 애쓸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요?”

이기홍 국제부장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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