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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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형준 기자입니다. 일본 정치와 사회, 한국 산업과 경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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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6-05-18~2026-06-17
칼럼97%
사설/칼럼3%
  • 日 가전기업 대표 ‘파나소닉’의 ‘인사 항쟁사’ 파헤쳐보니…

    한때 세계를 주름잡던 일본 가전기업들의 성적이 최근 모두 부진하다. 글로벌시장에서 삼성과 LG에 번번이 밀린다. 일본을 대표하던 가전기업 파나소닉(옛 마쓰시타전기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파나소닉의 부진을 파헤친 책들이 여럿 나왔다. 주로 경영전략 측면의 잘못을 지적했다. 하지만 최근 ‘인사(人事)’에서 문제점을 찾은 책이 일본에서 출판돼 주목을 끌고 있다. 제목은 ‘파나소닉 인사 항쟁사’. 저자인 이와세 다쓰야(岩瀨達哉·60) 씨는 저널리스트다. 특히 연금문제를 집중적으로 취재해 대위기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이름을 떨쳤다. 이번 책은 파나소닉의 옛 임원들을 만나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던 무대 뒤 이야기를 취재했다. ‘인사에서 중요한 것은 약점을 최소한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강점을 최대한으로 발휘시키는 것이다.’ 이와세 씨는 오스트리아 출신 경영사상가 피터 드러커가 남긴 격언으로 책을 시작한다. 실천하기 쉬워 보이는 격언이지만 기업들은 잘 지키지 못한단다. 오랜 세월 세계 가전업계를 주름잡았던 파나소닉이 경영부진에 빠지게 된 것도 드러커의 격언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파나소닉 창업주인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씨는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린다. 초등학교 중퇴의 학력으로 최고 경영인의 반열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경영이란 끊임없는 창의적 연구를 통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라는 평소 신념을 스스로 실천했다. 그는 위기에 강했다. “바람이 강하게 불 때야말로 연을 날리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며 불황 때 더 적극적인 사고방식으로 회사를 키웠다. 그는 장녀의 사위인 마쓰시타 마사하루(松下政治)를 2대 사장으로 앉혔다. 그리고 19년 동안 회장과 사장으로 지내면서 기업을 키웠다. 하지만 이와세 씨는 책에서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비밀 하나를 누설한다. 창업주가 3대째 사장인 야마시타 도시히코(山下俊彦) 씨에게 ‘마사하루를 경영에서 손떼게 하라’고 명령했다는 것이다. 3대 사장이 들어섰을 때 마사하루는 회장의 직위에 오른 상황이었다. 야마시타 사장은 경영개혁에 시동을 걸었지만 스스로의 손에 피를 묻히지는 않았다. 대신 4대째 사장인 다니이 아키오(谷井昭雄) 씨에게 악역을 넘겼다. 1989년 사장으로 올라선 다니이 씨는 개혁을 주도하면서 마사하루 회장과 대립하기 시작했다. 마사하루 회장은 “지나친 개혁으로 창업가의 정신이 사라지고 있다”고 반발했다. 두 사람의 대립은 1990년대 초 경영 주도권을 둘러싼 ‘인사항쟁’으로까지 발전했다. 그 당시는 상상도 못했지만 인사 항쟁은 끝없는 후유증을 낳았고 약 20년이 걸쳐 파나소닉의 경영 발목을 잡았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다니이 사장은 자회사의 부정융자와 결함 냉장차 사건의 책임문제로 결국 실각하고 만다. 뒤를 이어 1993년 5대째 사장으로 모리시타 요이치(森下洋一) 씨가 선임됐다. 그는 마사하루 회장에게 충성을 다하면서 전임 사장의 노선을 모두 부정했다. 그러면서 파나소닉 경영이 일관성 없이 흔들렸다. 6대째 사장인 나카무라 구니오(中村邦夫) 씨는 강압적인 리더십을 보였다.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사업을 강하게 밀어붙였지만 액정이 세계 시장에 주류로 자리잡으면서 파나소닉의 경영이 급격히 기울었다. 저자는 파나소닉의 이 같은 부침을 상세하게 기술했다. 기업의 흥망성쇠를 인사 요인 하나로 풀어내기는 무척 어렵다. 그러나 이면을 파헤치는 기자적 기질과 열정이 이 책을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아사히신문은 “숨겨진 진실을 찾는 집념이 돋보이는 역작”이라고 평가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 2015-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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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의 눈/박형준]‘위안부 진실’ 귀막고 눈가린 日언론

    일본 16개 역사학 단체 회원 6900여 명이 “위안부 왜곡을 그만하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로 한 25일 오후 2시 반. 발표 예정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쿄(東京) 중의원 제2의원회관에 들어섰지만 벌써 한국 특파원 예닐곱 명의 모습이 보였다. 발표 장소인 회의실이 협소해 20명 정도 들어가면 꽉 찰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다들 서둘러 온 길이었다. 배포된 출입증을 목에 걸고 뛰다시피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니 웬걸, 텅 비어 있었다. 곧이어 기자회견이 시작됐지만 대부분 한국 기자들뿐이어서 여기가 서울인지 도쿄인지 헛갈릴 정도였다. 일본 기자라고 해봐야 아사히신문과 NHK방송 정도였다. 일본 기자들의 무관심은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매일 오전과 오후 한 번씩 하는 정례기자회견 자리에서도 확인됐다. 각종 현안에 대한 정부의 공식 입장이 나오는 자리라 모든 현안이 망라되는데 역사학 단체의 공동 성명에 대해 질문을 한 일본 기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더 놀란 것은 이튿날(26일) 조간신문이었다. 동아일보를 포함해 많은 한국 신문이 1면에 싣는 등 비중 있게 다뤘지만 일본 신문은 아사히신문과 도쿄신문만 작은 박스 기사로 처리했다. 성명을 낸 사람들이 일본 내에서 비주류 혹은 소수파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회원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분명 다수파이자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일본 언론의 무관심은 이해가 안 갔다. 이번 성명을 주도한 구보 도루(久保亨) 역사학연구회 위원장은 “우리는 소수의 우익도 좌익도 아닌 상식적인 생각을 가진 다수 역사학자들의 의견을 반영한다”고 했다. 더구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2012년 말 총리가 된 이후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수정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정치문제화해선 안 된다. 역사학자들의 판단에 맡겨두겠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궁지에 몰릴 때마다 입버릇처럼 핑계를 대 온 대상인 역사학자들이 이번에 단체로 성명을 낸 것이다. 일본 언론은 왜 침묵하는 것일까.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한 일본 기자는 “역사학자들의 정치력이 약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들의 목소리가 아베 정권에 도달하기 힘들다. 아베 총리가 이들의 주장을 듣고 자신의 사고를 바꿀 가능성도 ‘제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으니 16개 단체 역사학자들이 “사실(事實)로부터 눈 돌리지 말라”고 촉구한 대상에 정치인뿐 아니라 미디어도 포함됐다는 점이 이해가 갔다. 역사학자들은 25일 성명에서 위안부 강제연행은 많은 사료에 의해 실증돼 왔다며 “사실로부터 눈을 돌리는 무책임한 태도를 일부 정치가와 미디어가 계속하면 일본이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아베 정권을 향해 ‘돌직구 발언’을 날리다 외압으로 3월 방송에서 하차한 뉴스 해설가 고가 시게아키(古賀茂明) 씨도 본보와의 인터뷰(5월 19일자)에서 “일본 언론은 정권 눈치만 본다”고 개탄한 바 있다. 지난해 10월 한국 검찰이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을 불구속기소했을 때 일본 정부는 “한국은 언론 자유가 없는 나라”라고 맹비난한 바 있다. 과연 일본 정부는 한국을 향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되묻고 싶다. 박형준·도쿄특파원 lovesong@donga.com}

    • 2015-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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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역사학회 6900명 “위안부 왜곡 그만”

    일본 내에서 규모와 영향력이 가장 큰 4개 역사학 단체(일명 ‘4자 협의회’ 멤버) 소속 역사 연구자를 포함해 총 16개 단체 회원 6900여 명이 일본 정부와 언론을 향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사 왜곡을 중단하라는 성명을 25일 냈다. 성명서 명단에는 회원 2200여 명을 둔 역사학연구회를 비롯해 역사과학협의회, 일본사연구회, 역사교육자협의회 등 4개 주요 단체 등 역사 연구를 하는 학자와 일반 시민들이 망라됐다. 16개 단체 대표 중 6개 단체 대표자는 이날 도쿄 중의원 제2의원회관에서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의 역사학회·교육자단체의 성명’을 영어와 일본어로 동시에 발표했다. 성명은 “군 위안부 강제연행 사실이 근거를 잃었다는 듯한 언동이 일부 정치가와 미디어에서 보인다”며 “강제연행된 위안부의 존재는 지금까지 많은 사료와 연구에 의해 실증돼 왔다. 구체적으로 인도네시아 스마랑과 중국 산시(山西) 성에서 강제연행이 확인됐고, 한반도에서 다수의 강제연행 증언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어 “당사자의 의사에 반한 연행 사례는 모두 강제연행에 포함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사실로부터 눈을 돌리는 무책임한 태도를 일부 정치가와 미디어가 계속하면 일본이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구보 도루(久保亨) 역사학연구회 위원장은 성명을 읽은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역사학 단체 16곳이 한 사안에 대해 의견일치를 본 것은 처음”이라며 “참여 인원이 6900여 명에 달한다는 것은 소수 의견이 아니라 다수의 의견이 반영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명에 동참한 사람들 중에는 초중등학교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들도 있었다. 구로다 다카코(黑田貴子) 역사교육자협의회 부위원장은 “일본에서 현재 위안부 문제를 다룬 중학교 역사교과서는 하나도 없다. 어린이들은 혐한(嫌韓) 뉴스 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역사적 진실을 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번 성명은 지난해 10월 단독으로 ‘정부 수뇌와 일부 매스미디어에 따른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부당한 견해를 비판한다’는 성명을 낸 역사학연구회의 뜻에 동참한 4대 역사학 단체를 중심으로 학회들이 모이면서 이뤄졌다. 구보 위원장은 그동안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위안부 문제나 고노 담화와 관련해 “역사는 역사학자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 데 대해 기자들이 묻자 “그렇다면 ‘(이번) 역사학자들의 말을 들어라’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연구 실적을 바탕으로 말한다. 학문적 성과에 기초하지 않은 무책임한 말을 그만해 달라”고 말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 윤완준 기자}

    • 2015-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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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네스코 “日시설물, 세계유산 취지 안맞아… 보완하라”

    《 조선인 강제동원 시설이 포함된 일본 근대 산업시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문제와 관련해 유네스코 산하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가 일본에 부정적 역사까지 담으라는 권고를 넘어 신청한 시설물들이 세계문화유산이라는 근본적 취지에 맞지 않으니 충분히 내용을 보완하라는 권고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 이 같은 내용은 이코모스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홈페이지에 공개한 ‘세계문화유산 등재심사 평가보고서’(총 353쪽) 전문을 본보가 직접 분석해본 결과 확인됐다. 이 보고서는 94쪽에서 ‘일본이 제출한 서류에는 중공업, 조선, 탄광 등의 몇 가지 산업시설에서 서구로부터 받아들인 ‘기술적인 과정’만 반영하고 있지 산업기술이 가져온 복잡하고 광범위한 사회 정치적 변화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자료를 충분히 보완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유네스코는 ‘산업혁명 유산’에 대한 정의를 ‘사회 정치적 변동이라는 대전제(prerequisite) 아래 대학을 개설하고, 통신망과 철도, 해상 운송을 가능케 하는 등 사회 교육 의료 정치적 분야에서 낡은 봉건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데 영향을 준 시설물’이라고 하고 있다. 따라서 ‘산업혁명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려면 해당 시설물들이 기술 진보뿐 아니라 사회 정치적 변화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고서는 ‘일본이 신청한 시설들은 산업혁명의 전체적인 범위(full scope of the Industrial Revolution)를 담고 있지 못하다고 판단된다’고 적시했다. 이런 내용들은 맨 말미에 일본 정부를 향해 ‘역사의 전모(full history)를 이해할 수 있게 하라’며 조선인 강제징용 등 부정적 역사를 담으라고 주문한 것을 넘어 해당 시설물들을 과연 세계문화유산으로 볼 수 있느냐 하는 근본적 의문점을 던졌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일본은 이 시설물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리기 위해 2001년부터 무려 14년간 공을 들여왔다. 치밀하기로 유명한 일본이 왜 이런 허점을 보인 것일까. 답은 태평양전쟁(1941∼1945년) 당시 벌어졌던 조선인 및 중국인의 전시 강제노동 사실을 숨기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은 등재 신청한 23개 시설물에 대한 설명 자료에서 ‘1850년대부터 1910년까지 서양 기술을 전통 문화와 융합해 산업국가를 형성한 궤적을 보여 준다’면서 해당 시설물들이 산업혁명에 기여한 기간을 메이지시대(1890∼1910년)로만 한정했다. 시설물들에 대한 이름도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 유산’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렇게 시대를 한정하다 보니 시설물들이 가진 역사적 기여를 제대로 담지 못하고 기술적 진보만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문부과학상은 이달 초 배경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신청한 23개 산업시설은 1910년 이전 이야기이다. 거기에 강제적으로 조선인의 노동이 행해진 것은 아니다. 시대가 완전히 다르다”고 했었다. 이코모스는 1965년 설립된 유네스코 산하의 자문기구로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전문가 심사를 맡고 있다. 144개국의 미술사학자, 역사학자, 건축학자 9500명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지만 일본의 영향력은 엄청난 것으로 알려졌다. 1999년 동양인 최초로 유네스코 사무총장에 오른 일본인 마쓰우라 고이치로(松浦晃一郞) 사무총장이 10년간 재임할 당시 일본 정부가 이코모스에 많은 자금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 보고서에서 문화유산의 정체성 문제까지 거론하며 일본에 대한 권고를 담은 것은 강제징용 역사가 포함된 시설물이 어떻게 세계문화유산이 될 수 있느냐는 한국 정부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국 정부는 일본과의 협상과는 별도로 국회 차원에서 대응하는 ‘외교전’에도 나설 예정이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은 24일 “외통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다음 달 초쯤 유네스코 주요 위원국 6곳을 방문해 한국 정부의 입장을 전하고 설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본도 이달 초 총리관저가 직접 나서 외무성, 내각부, 문부과학성 등 3개 부처의 부대신(차관)과 정무관(차관급)에게 총리 특사자격을 주어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을 방문해 설득하도록 지시했다. 파리=전승훈 raphy@donga.com / 도쿄=박형준 특파원 / 이현수 기자}

    • 201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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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쿄대 야구부, 94연패 사슬을 끊다

    경기가 끝나자 선수들은 모두 투수에게 뛰어가 서로 얼싸안았다. 관중도 함성을 지르며 일어나 박수를 쳤다. 응원단 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23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벌어진 도쿄대와 호세이(法政)대의 경기에서 도쿄대가 이기는 ‘이변’을 연출했다. 도쿄대는 연장 10회에 6-4로 승리했다. 도쿄대는 2010년 가을 리그에서 와세다(早稻田)대를 이긴 이후 5년 동안 94연패를 하다가 이날 값진 1승을 올렸다. 이날 경기를 뛴 도쿄대 선수 중에는 재학 기간 중 1승을 경험한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 승리 투수가 된 시바타 아키히로(柴田叡宙)는 “연패를 끊기 위해 입학했다.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일본 최고의 명문대인 도쿄대는 1919년 야구부를 창립했으며 1925년 대학 리그에 가입했다. 그해 ‘6대학(도쿄대, 와세다대, 게이오대, 릿쿄대, 메이지대, 호세이대) 야구 리그’가 탄생했다. 도쿄대의 리그 최고 성적은 1946년에 기록한 2위. 그 후 만년 꼴찌였다. 도쿄대의 연패에는 이유가 있었다. 다른 대학은 체육특기생 제도가 있어 유망 고교 야구선수들을 뽑지만 도쿄대는 그런 제도가 없었다. 공부로 1등 하는 학생들이 모여 과외 활동으로 야구를 할 뿐이었다. 야구 평론가인 에모토 다케모리(江本孟紀) 씨는 “도쿄대가 100연패, 200연패를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야구는 몸이 자산이다. 도쿄대에 입학할 정도로 공부해선 야구 할 몸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대학 야구팀 사이에선 ‘도쿄대에만은 절대 져선 안 된다’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였다. 하지만 도쿄대는 무너지지 않았다. 2010년 프로야구 주니치(中日) 선수였던 야자와 겐이치(谷澤健一)를 코치로 영입해 타격을 강화했다. 하루 1000개의 스윙을 의무화했다. 최근에는 실책이 많다고 판단해 내야수들이 ‘볼 돌리기’ 연습에 집중했다. 선수들은 ‘볼 돌리기를 55초 안에 10차례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하루 1시간씩 연습을 반복해 왔다. 2012년 도쿄대 지휘봉을 잡은 뒤 처음으로 승리한 하마다 가즈시(濱田一志) 감독은 경기 후 언론 인터뷰에서 “여러분에게 신세를 졌다. 감사를 말하기 시작하면 24시간 이상 계속해야 한다”며 웃었다. 대학 야구임에도 불구하고 도쿄대의 1승은 일본에서 ‘빅뉴스’였다. 아사히신문, 도쿄신문, 산케이신문은 24일 자 1면에 사진과 함께 도쿄대의 1승 소식을 전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 201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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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장국 獨 “강제징용 표지석 세우자” 중재

    일본 아사히신문은 23일 자에서 “일본의 유네스코 위원국 임기가 올해까지이고 이후 6년간 입후보할 수 없어 이번에 등록되지 않으면 언제 다시 등록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강하다”고 정부 내부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병현 파리 유네스코 한국대표부 대사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일본과의 협상에서 한국정부의 첫 번째 목표는 일본이 신청한 강제 노동 시설 8곳을 등재 목록에서 빼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목표가 여의치 않을 경우 차선책으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는 하되 강제 노동 관련 내용을 함께 넣는 것을 협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6월 28일∼7월 8일 독일 본에서 열리는 제39회 세계유산위원회의 총회에서는 총 40여 건의 세계유산 등재 신청이 의결될 예정이다. 총회에서 투표권을 가진 21개 위원국은 아직까지는 대부분 말을 아끼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유산위원회 의장국인 독일도 이번 총회에서 40여 건의 세계유산 등재 의결을 평소처럼 ‘잔치 분위기’로 치렀으면 하는데, 한일 간에 심각한 이슈가 있어서 고민이 많은 상태다. 독일은 의장국으로서 일본의 메이지 시대 산업 시설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과 관련해 한국인 징용을 알리는 표지석을 세우는 중재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이를 거부하면 7월 초 총회에서 21개 위원국이 등재 찬반 투표를 벌이게 된다. 등재되기 위해서는 기권을 제외하고 찬반 투표를 한 이사국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아사히신문은 23일 자에서 일본 정부가 6월 말 열리는 유네스코 총회에서 이번 사안에 대한 최종 심의가 연기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익명을 요청한 문화청 간부를 통해 “총회에서 등재될 게 분명하다고 하지만 ‘심의 연기’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며 일본 정부 분위기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어 “이스라엘의 ‘3중 아치 문’은 이코모스의 ‘등록’ 권고에도 불구하고 국경문제가 있어 심의 연기 결정이 났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2008년 이스라엘이 레바논과 시리아 국경 지역에 있는 ‘3중 아치 문’을 문화유산으로 신청했지만 아랍 국가들이 국경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는 바람에 결국 2011년 유네스코 총회는 심의 연기를 결정했다. 일본 정부도 심의가 연기되는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한국의 위원국 임기가 2017년까지 4년인 데 반해 일본은 올해로 위원국 임기가 끝나 심의가 연기되면 등재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일본 정부 관계자는 산케이신문에 “등록은 이번에 한해 가능한 단판 승부다”라고 말했다. 한편 위원국은 현재 일본과 한국을 포함해 총 21개국이다. 일본이 신청한 유산의 경우엔 당사국인 일본을 제외한 20개국이 심의한다. 아사히신문은 ‘한국의 협의 요청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일본 외무성 간부의 말을 전하며 그 배경에 대해 “세계유산위원회의 위원국을 신경 쓰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이 한국과 성실히 협의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 투표권을 가진 위원국들의 마음을 사려고 한다는 것이다.파리=전승훈 raphy@donga.com / 도쿄=박형준 특파원}

    • 201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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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日 재무장관 “정경분리해 경제협력 강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은 23일 일본 도쿄에서 재무장관회의를 열어 정경분리 원칙에 합의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과거사 왜곡 문제로 양국의 정치외교 관계는 악화됐지만 재정 통상 금융 등 경제 분야에서는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것이다. 한일 재무장관회의가 열린 것은 2012년 11월 이후 2년 6개월 만이며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부총리급 이상 고위 각료가 일본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재부는 24일 ‘제6차 한일 재무장관회의 공동 보도문’을 내고 “양국 장관이 글로벌 경제 변화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과 함께 적절한 거시경제정책 집행 등 정책 공조 노력을 지속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공동 보도문에서 양국은 “글로벌 경제의 하방 리스크를 감안할 때 충분한 ‘충격 완충 정책(policy buffer)’이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또 “양국 정부가 제3국에 진출할 때 민간 부문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지원을 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최 부총리는 23일 재무장관회의 후 가진 도쿄 특파원단 간담회에서 “역사는 역사, 경제는 경제다. 정경분리에 따라 투트랙 협력으로 가는 첫출발이라고 해도 좋다”고 말했다. 또 “한일은 서로 동병상련하는 관계다. 이번 만남이 꽉 막힌 한일 경제 관계를 풀어 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국 재무장관은 세계문화유산 등재,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 통화스와프 등 갈등을 빚고 있는 현안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았다. 다만 최 부총리는 특파원 간담회에서 “아소 부총리에게 엔화 약세에 대한 우려를 밝혔다”며 “아베노믹스의 핵심이 양적 완화이고 그로 인해 엔화 약세가 됐다. 주변국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고려해 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최 부총리는 또 “과거엔 일본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구조였는데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구조 개혁을 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했다”며 “한국에는 국회선진화법이 있어서 야당의 재가 없이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고충을 토로했다.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 도쿄=박형준 특파원}

    • 201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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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 “징용 반영을”… 日 “그럴 수 없어”

    조선인 강제동원 시설이 포함된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문제를 놓고 한일 양국이 22일 오후 도쿄(東京) 외무성 청사에서 첫 협의를 가졌다. 한국의 최종문 외교부 유네스코 협력대표(차관보급)와 일본의 신미 준(新美潤) 외무성 국제문화교류심의관(국장급)이 각각 수석대표로 나선 이날 협의는 오후 2시 10분부터 시작돼 2시간 50분 동안 진행됐다. 한국 정부는 조선인 강제징용 관련 시설을 등재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조선인 강제징용 사실을 등재 결정문에 반영하라고 일본 측을 강하게 압박했다. 그러나 일본 측은 이달 초 세계유산위원회(WHC) 산하 민간자문기구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일본이 신청한 23개 유산의 등재를 유네스코에 권고한 점을 들어 원안대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고집했다. 일본 측은 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시설은 1850년부터 1910년까지 (일본의) 산업혁명을 가져온 유산이고 조선인 강제징용 역사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주장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한국 측은 ICOMOS가 ‘일본은 모든 유적지의 전체 역사(full history)를 이해시키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한 사실을 내세워 1910년 이후의 역사도 등재 결정문에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대사는 협의가 끝난 뒤 “1940년대 강제징용 역사의 (등재 결정문) 반영은 양보하지 못하지만 어떻게 반영시킬지는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측은 이날 협의에서 △조선인 강제징용이 확인된 7개 유적지를 빼고 등재하는 안 △23개 모두 등재하되 7개에는 강제징용 내용을 명시하는 안 △7개 유적지에 강제징용 관련 영상물이나 안내 표지판을 세우는 안 등을 일본 측에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정부는 이날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까지 나서 강제징용을 명시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이해를 얻도록 어두운 측면도 밝힐 것이냐’는 질문에 “유네스코에서 권고가 그대로 실현되기를 바란다”고 답변했다. 한일 협상단은 양자 협의를 계속 갖기로 했다. 양국이 접점을 찾지 못하면 6월 28일∼7월 8일 독일 본에서 열리는 제39차 유네스코 WHC 회의에서 표결로 판가름이 나게 된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 2015-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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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유산 된 獨탄광은 강제노역 공개-사죄… 日과 달랐다

    일본이 근대산업시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과정에서 강제징용 사실을 외면해 한국의 반발을 사는 것과 달리 비슷한 성격의 독일 탄광은 주변국의 축복을 받으며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대조되고 있다. 200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독일 에센의 촐페어라인 탄광 산업단지가 그곳이다. 1800년대 후반에 지어진 이곳은 근대산업시설이며 탄광이라는 점에서 일본이 등재를 추진 중인 하시마(端島·일명 군함도) 탄광과 흡사하다. 특히 큰 전쟁을 거치면서 강제노역을 동원했다는 점은 일본의 하시마와 판박이로 닮았다. 하지만 두 시설의 역사적 잘못을 공개하는 과정은 판이하다. 독일은 이 탄광이 강제노역에 쓰였음을 감춘 적이 없다. 오히려 이런 부끄러운 사실을 적극 공개하고 정부 차원에서 추모시설을 건립하는 등 반성과 사죄 노력을 기울였다. 이 때문에 2001년 세계유산 신청 당시 위원국들의 반발이 없었다. 표결을 할 필요조차 없이 만장일치로 등재됐다. 이 시설은 건축물로서의 가치도 온전히 평가받았다. 세계문화유산을 관리하는 유네스코는 홈페이지에서 “이 광산은 현대 건축이 표현주의에서 큐비즘, 기능주의로 넘어가는 시기를 보여주는 등 미적 가치가 높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 일본은 하시마 등 산업시설이 강제징용에 활용된 사실이 공개될까 봐 등재 신청서에 세계문화유산 지정 시기를 1850∼1910년으로 제한했다. 정부 당국자는 “한반도 침탈과 태평양전쟁 시기에 이 시설이 훨씬 왕성하게 이용됐음에도 1910년까지로 지정 시기를 제한한 건 꼼수”라고 말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도 17일 ‘공포의 섬’ 기사에서 “하시마에서는 최대 5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1916년 일본 최초로 지어진 고층 건물에 살았다”고 보도했다. 하시마 탄광 운영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1910년 이후였다는 뜻이다. 하시마에도 강제징용자 추모비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일본 정부가 만든 것이 아니라 민간단체 등이 자발적으로 만든 것이다. 국가의 책임 인정과는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독일은 강제노동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을 위해서도 애썼다. 이 역시 ‘강제징용 보상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모두 끝났다’며 지금도 피해자들과 소송을 벌이는 일본과 대비된다. 199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한 북한도 이를 “파렴치한 행위”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2일 “일제가 세계 인민들에게 감행한 범죄 현장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해 교묘하게 놀아대고 있다”며 “피의 자욱이 역력히 찍혀 있는 죽음의 살인 현장을 비단 보자기로 감싸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 내에서도 ‘부정적 역사를 감추지 말고 밝히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21일 칼럼에서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에 편협함이 느껴진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빛을 비추는 방법으로 세계유산을 등록해선 안 된다. 부정적 역사와도 마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아사히신문은 8일 ‘세계유산, 복안(複眼)으로 역사를 보는 기회로’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역사를 무시하고 1910년 이후의 일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부자연스럽다”고 지적했다.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 도쿄=박형준 특파원}

    • 2015-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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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역사학자들 “위안부 왜곡 반대 동참”

    전 세계 역사학자들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일본군 위안부 왜곡을 비판한 데 이어 이번엔 일본 역사학자들도 이 같은 움직임에 동참하기로 했다. 역사학연구회 등 역사학 관련 16개 단체는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25일 도쿄(東京) 중의원 제2의원회관에서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의 역사학회·역사교육자단체 성명’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단체들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총의를 발표하기 위해 반년 가까이 준비했다”며 “역사학과 역사교육에 관여하는 많은 사람이 기본적으로 일치를 본 견해를 밝힐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들은 또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발언에 의해 불필요한 마찰과 오해를 초래하지 않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역사학연구회 관계자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번 성명은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적시하고 아베 총리의 역사인식을 질타하는 내용”이라며 “지난해 역사학연구회가 단독으로 낸 성명을 기초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역사학연구회는 지난해 10월 성명에서 “일본군이 위안부 강제 연행에 깊이 관여하고 실행했다는 것은 흔들림 없는 사실”이라며 “아베 총리의 견해대로 (위안부 문제를) 이해한다면 일본 정부의 무책임한 자세를 세계에 알리는 우를 범할 것”이라고 질타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 2015-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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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근로자가 정년연장 선택… 55세부터 임금깎아

    일본의 임금피크제는 연금 지급 시기 및 정년연장과 하나의 세트처럼 묶여 있다.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200%가 넘는 상황에서 재정 고갈을 막기 위해 나온 고육책이 3개 제도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재정 위기로 연금을 받는 연령을 계속 늦췄다. 고령기초연금의 경우 1986년 법 개정으로 65세부터 받을 수 있다. 연금 지급 시기가 늦어지면서 나타나는 수입 공백기를 메우기 위해 정년도 지속적으로 늦췄다. 이미 1998년 6월부터 정년을 55세에서 60세로 연장했고, 2013년 4월부터는 희망하는 근로자 전원을 65세까지 고용하도록 의무화했다.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연공서열에 따라 임금이 늘어나는 연공급제(호봉제) 임금체계를 채택하고 있다. 정년이 길어지면 그만큼 기업의 부담이 커지고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업은 다양한 ‘유연근로제도’를 마련했고 임금피크제도 그중 하나다. 일본 기업들은 정년 60세를 채운 근로자에 대해 △퇴직 후 재고용 △정년 5년 연장 △정년 폐지 중 하나를 대체로 선택하고 있다. 이 중 ‘퇴직 후 재고용’이 가장 일반적인 형태다. 60세가 넘으면 일단 퇴직한 후 자회사 등에 재고용되는 것이다. 임금은 계약에 따라 다르지만 십중팔구 줄어든다. 정년을 5년 연장할 때는 대부분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 임금 하락에 대한 노동자의 거부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평생직장’ 인식이 강한 일본에서 노동자들은 정년연장이란 혜택을 보는 대신 임금 인하를 감내했다. 회사는 정상 월급을 받고 60세 정년을 맞는 안, 60세 이전부터 월급을 줄이고 65세까지 정년을 연장하는 안 등 다양한 안을 제시해 노동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후지(富士)전기의 노동자는 만 55세가 되면 60세에 퇴직할지 65세까지 정년을 연장할지 결정한다. 정년연장을 선택하면 55세 때부터 임금의 50% 수준을 받으며 60세 이후에도 일할 수 있게 했다. 닛코증권은 50, 55, 60, 65세 등 4단계 정년제도를 만들었다. 사원이 정년 시점을 고르면 회사는 각 시점에 맞춰 임금 및 퇴직금 체계를 설계했다. 산요(三洋)전기의 경우 노동자가 65세까지 정년을 연장하고자 하면 55∼60세 동안 55세 때 임금(피크임금)의 70∼75%를 받고, 60세 이후에는 별도의 임금제도를 적용한다. 사회보험 전문 ‘오피스모로호시’의 모로호시 히로미(諸星裕美) 대표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년연장이 법으로 정해지면서 임금피크제도 일반화되고 있다”며 “노사가 임금피크제에 대해 서로 한 발씩 물러서 합의에 도달하는 게 성공 열쇠”라고 말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 2015-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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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년만에 한일 국방장관 회담… 30일 열릴 듯

    한일 국방장관 회담이 4년여 만에 열린다. 한일 양국은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안보회의에 맞춰 이달 30일 양자 국방장관 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최종 조율 중이라고 일본 교도통신이 19일 보도했다. 양국은 과거사와 독도 문제 등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2011년 1월 이후 국방장관 회담을 열지 않았다. 나카타니 겐 방위상은 각의(국무회의) 결정을 거쳐 국회에 제출된 안보법제 개정안과 새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에 대해 회담에서 설명할 예정이라고 통신은 전했다. 또 한국군과 자위대 간에 물자를 상호 융통할 수 있는 물품역무상호제공협정(ACSA)과 2012년 추진했다 무산된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 체결을 위한 협의에 속도를 내자고 제안할 예정이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일본의 안보법제 개정이 이웃 나라에 위협을 줘선 안 된다는 내용을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국방부 관계자는 “한일 국방장관 회담 추진과 관련해 그동안 신중히 검토해왔다”며 “현재 회담 일자 등을 놓고 실무 차원에서 조율하고 있다”고 밝혔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 201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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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의 취재노트]퇴장당한 하시모토의 ‘극장 정치’

    “나 같은 정치인이 오래하는 세상은 위험하다. ‘원 포인트 릴리프(한 타자만 상대하는 구원투수)’로 충분하다. 적을 만드는 정치가가 계속 있는 것은 세상에 해롭다. 그게 건전한 민주주의다.” 한때 총리 후보감으로 기대를 모았던 하시모토 도루(橋下徹·45) 일본 오사카(大阪) 시장의 정계 은퇴 선언을 듣는 일본인들은 갸우뚱했다. 누구보다도 남을 헐뜯으며 독설을 날려 온 그가 스스로를 ‘퇴출 정치인’이라 낙인찍으며 자신 같은 사람이 정치를 하면 세상에 해롭다고까지 말했기 때문이다. 그는 오사카 시와 부를 합치겠다는 행정구역 재편안이 17일 부결되자 “부결되면 정계 은퇴하겠다”고 선언한 대로 기자회견을 자청해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촉망받던 한 젊은 정치가의 퇴장을 보는 일본 언론들은 ‘극장 정치(화려한 연기를 하는 듯한 정치)’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전했다. 하시모토는 일본에서 극장 정치의 대표 정치인으로 통했다. 하시모토는 와세다(早稻田)대 정경학부를 졸업한 후 사법시험에 합격해 1997년부터 변호사를 했다. 잘생긴 얼굴에 달변이어서 많게는 주 9회 버라이어티쇼 등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거액을 벌어들이는 ‘탤런트형 변호사’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38세 때인 2008년 1월 도쿄(東京) 다음 가는 대규모 광역지자체인 오사카 부(府) 지사에 선출됐다. 정치가로서 그는 독설을 수시로 던지며 싸움닭과 같은 삶을 살았다. 오사카 공무원들에게 내놓은 첫 일성이 “여러분은 파산 회사의 종업원들이다”였다. 2011년 정치자금 모금 파티에선 “지금 정치에서 필요한 것은 독재”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의 주장에 반대하는 이들은 공개 토론을 벌여 제압하기도 했다. 상당수 정치인과 공무원이 그에게 등을 돌렸지만 오사카 시민들은 열광했다. 그가 2010년 만든 지역 정당인 오사카유신회는 2012년 일본유신회로 이름을 바꿔 달고 전국 정당으로 몸집을 키웠다. 현재 유신당으로 이름을 바꾼 일본유신회는 의원 51명이 소속된 제2 야당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달변인 그의 발언은 때론 상식을 벗어났고, 그 발언들이 결국 자신의 발목을 잡았다. “위안부가 (일본)군에 폭행, 협박을 당해서 끌려갔다는 증거는 없다. 있다면 한국이 내놓았으면 좋겠다”(2012년 8월)고 한 망언은 한국인들의 지탄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전쟁터에서 위안부 제도는 필요했다”(2013년 5월)고까지 말해 미국 등 해외뿐 아니라 일본 국내에서도 강한 반발에 부닥쳤다. 그 후 지지도는 급격히 떨어졌다. 겉보기에는 화려하나 독설과 막말로 남에게 상처를 주고 때로 상식을 넘어서는 말로 대중을 선동하는 정치인들이 한국에도 많다. 하지만 정치는 단거리가 아니라 장거리 경주라는 것을 하시모토는 보여주었다. 탤런트 정치인들의 퇴장이 남의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 2015-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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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칼럼/박형준]실패한 일본 빚 갚기

    온가에시(恩返し). 우리말로 하면 ‘은혜 갚기’ 정도 된다. 2000년에 일본 나고야(名古屋)대에 교환학생으로 가 6개월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일본 학생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때 온가에시란 단어를 알게 됐고 일본에 온가에시를 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가졌기에 도쿄(東京) 특파원으로 오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2012년 6월 도쿄로 부임하면서 일본엔 망언을 일삼는 정치인만 있는 게 아님을 보여 주려 했다. 일본 문화의 힘, 경제 저력, 사회 전반에 스며든 예의와 질서 등을 기사화하려 노력했다. ‘노벨상 강국 일본의 교훈’, ‘정전대란 없는 일본 절전 비결’ 등과 같은 기사가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부임 첫해 겨울 첫 시련이 찾아왔다. 우파 성향 정치인 중에서도 가장 오른쪽에 서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의원이 총리가 된 것이다. 그는 “(일본의 과거사 반성을 담은) 역대 담화들을 수정하겠다”, “침략의 정의는 없다”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내가 일본을 잘못 알았나’라는 생각에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기자의 마음을 다잡아 준 이들은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들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는 성명을 냈던 일본 역사학자들, 군마(群馬) 현에 강제징용자 추모비를 세운 일본인들, 안중근의 철학을 흠모하는 연구자들,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지키자는 시민단체들…. 이들 모두 동아일보 지면에 소개됐다. 두 번째 시련은 지난해 말에 찾아왔다. 평소 알고 지내던 일본인 지인들이 대놓고 한국 비판에 가세한 것이다. 그들은 페이스북에 떠도는 혐한 기사에 ‘좋아요’를 눌렀다. “위안부 사과하란 말을 언제까지 반복할 것이냐”고 댓글도 달았다. 아베 정권 들어 일본 사회가 전반적으로 우경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일본에 대한 실망감이 말할 수 없이 커졌고 애착은 급속도로 식었다. 그럼 아베 총리가 물러나고 새 총리가 들어서면 일본이 달라질까. 아무래도 아닐 것 같다. 일본은 기자가 교환학생으로 지냈던 15년 전과 너무나 많이 변했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익 정치인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과거사에 대해 (주변국에) 사과할 만큼 했다’고 여긴다. 일본 사회는 점차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나아가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일본 주류로 등장하면서 나타나고 있다. 요즘 일본 내에선 가해(加害)의 역사가 지워지고 있다. 조선인 강제동원과 중국 난징대학살 유물을 전시했던 박물관인 피스오사카(Peace Osaka)의 경우 7개월간 공사한 후 지난달 다시 문을 열었는데 가해 자료가 모두 사라졌다. 한국인을 강제 동원해 공사했던 터널, 비행장 등지의 안내문 등에선 ‘강제동원’이란 단어가 삭제되고 있다. 전후 세대들이 주축이 된 일본 정부는 패전 후 폐허에서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거듭난 ‘자랑스러운 일본’을 강조할 뿐이다. 이런 인식을 갖고 있는 일본의 전후 세대들에게 “과거사 반성부터 하라”고 강요한다면 한일 관계 개선은 점점 힘들어질 것이다. 요즘 일본에서는 ‘아예 한국을 무시해 버리자’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전쟁 가능 국가 일본을 이웃에 둔 한국은 이제 스스로 힘을 길러야 할 때다. 한동안 중국은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를 대외정책의 근간으로 삼고 힘을 키웠다. 그 결과 미국은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을 더이상 무시하지 못한다. 3년간의 특파원 생활을 끝내고 6월 중순 한국으로 돌아간다. 결국 온가에시는 하지 못했다. 어쩌면 당분간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생각에 가슴 한쪽이 답답해 온다.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 2015-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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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오사카 市-府 통합’ 부결… 하시모토 입지 흔들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大阪) 시를 없애고 오사카 부(府)로 통합하는 행정구역 재편안이 17일 주민 투표에서 부결됐다. 이 안을 추진해 온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유신당 최고 고문)은 정계 은퇴에 내몰리게 됐고 야당 재편은 속도를 내게 됐다. NHK방송 등 일본 언론은 “오사카 시의 유권자 약 211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주민투표 결과 반대가 찬성을 웃돌았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개표가 99% 진행된 오후 11시 현재 찬성 69만2801표, 반대 70만3953표로 반대 의견이 약간 앞섰다. 하시모토 시장은 2011년 오사카 시장으로 뽑혔을 때부터 오사카 시와 부가 나뉘어 있으면 ‘이중 행정’의 낭비가 생긴다며 둘을 통합해 ‘오사카 도(都)’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집권 여당인 자민당과 제1야당인 민주당 등은 “오사카 도로 바뀌면 주민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며 반대했다. 오사카 시와 부에 각각 있던 학교, 병원 등이 오사카 도로 통합되면서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오사카 시 존속을 결정한 것은 행정 효율보다는 자신의 복지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극우 성향의 정치인인 하시모토 시장은 정계 은퇴를 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는 “오사카 도 구상이 부결되면 올해 12월 시장 임기를 끝내고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하시모토 시장은 중의원 40명, 참의원 11명 등 51명의 국회의원을 보유한 제2야당 ‘유신당’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 아울러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헌법 개정을 지지하며 총리 관저와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번 투표 결과로 아베 총리는 개헌에 힘을 실어줄 ‘파트너’를 잃게 됐다. 반면 유신당 내 오사카 도 구상에 반대했던 에다 겐지(江田憲司) 대표 등의 존재감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유신당은 앞으로 야당 색채를 더 강하게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의원은 제1야당인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길 움직임도 보여 야당 재편이 일어날 것이라고 아사히신문은 내다봤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 2015-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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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위대 70년만에 사실상 ‘군대’로… 日 군사대국화 가속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내각이 제2차 세계대전 패전 70년 만에 자위대를 사실상의 군대로 격상하는 11개 안보법률 제정·개정안을 14일 각의(국무회의)에서 결정했다. 이로써 일본이 공격을 받았을 때만 방어한다는 ‘전수(專守) 방위 원칙’이 허물어졌다. 아베 내각은 이날 각의를 열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뼈대로 한 안보법률 제정·개정안을 의결했다. 아베 내각은 15일 이 법안을 국회로 넘겨 늦어도 8월 초까지 통과시킬 방침이다. 여당이 다수여서 법안 통과가 확실시된다. 법안이 통과되면 일본의 군사대국화 및 미일 군사작전 일체화는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베 총리는 이날 저녁 기자회견에서 “미일 동맹을 강화해 억지력을 높일 수 있다”며 “전쟁법안이라고 딱지를 붙이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정·개정 법안은 평화안전법제정비법안(10개법 개정안)과 국제평화지원법안(신설법)의 두 묶음이다. 모두 ‘평화’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자위대의 활동 반경을 평시부터 유사시까지 양적 질적으로 대폭 확장하는 내용이다. ①공간 확대: 법안이 통과되면 한반도 등 일본 주변 지역에 한정됐던 자위대 활동 공간은 전 세계로 확장된다. 이에 따라 현행 ‘주변사태법’은 ‘중요영향사태법’으로 이름이 바뀐다. 다만 ‘외국 영역에 대한 대응 조처는 당해 외국의 동의가 있을 때에 한정해 시행하는 것으로 한다’고 명기해 한국의 사전 동의가 있어야 자위대가 한반도에 들어올 수 있다는 한국 정부의 요구가 관철됐다. ②상황 확대: 지금까지 일본이 공격을 받았을 때만 무력을 행사할 수 있던 자위대는 앞으로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타국이 공격받아도 무력행사를 할 수 있게 된다. 이번 법안에 ‘전쟁법안’이란 별명이 붙은 것은 이 때문이다. ③언제든 출동: 이번에 신설된 국제평화지원법안은 자위대가 다국적군 후방 지원에 참여할 때 국회의 사전 승인만 받으면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까지는 매번 국회에서 특별조치법을 만들어야 했다. 법안 제정·개정의 명분은 북한과 중국이다. 아베 총리는 특히 북한을 겨냥해 “일본 대부분이 북한 탄도미사일 사정권에 있다”고 강조했다. 또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무자비한 측근 숙청을 염두에 둔 듯 “북한의 행동도 예측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자위대 역할 확대는 한국에 양날의 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동북아 긴장 국면이 고조되는 한편으로 주일 미군에 대한 지원이 강화돼 북한에 대한 억지력이 향상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사도 아키히로(佐道明廣) 주쿄(中京)대 종합정책학부 교수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문제를 생각하면 이번 법안은 한국의 안전 보장에도 분명히 공헌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내각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일본 국내에서는 법안 반대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14일 오전 도쿄(東京) 총리관저 주변에는 안보법제 정비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관계자 약 500명(주최 측 추산)이 시위를 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안보법제 개정 반대가 찬성보다 많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굴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그는 이날 “행동하면 비판이 따르는 법이다. 미일 안보조약을 개정할 때도, 국제평화유지활동(PKO) 법안을 성립시킬 때도 그랬다. 그런 비판이 틀렸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고 역설했다.도쿄=박형준 lovesong@donga.com·배극인 특파원}

    • 2015-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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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동북부 규모 6.8 강진… 도쿄까지 흔들

    13일 오전 6시 13분 일본 동북부의 미야기(宮城) 현 앞바다에서 리히터 규모 6.8의 강진이 일어났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여진인 것으로 알려졌다. 진원의 깊이가 약 46km로 다소 깊었지만 200km 이상 떨어진 도쿄(東京)에서 진도 2의 지진이 관측될 정도로 강력했다. 이와테(巖手) 현 내륙에서도 진도 5가 넘는 강한 흔들림이 감지됐고 도쿄에서 홋카이도(北海道)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지역에서 진도 1∼5의 지진이 관측됐다. 고속철도인 신칸센(新幹線) 일부 노선은 운행을 일시 중단하기도 했다. 일본 기상청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4년 전 동일본 대지진의 여진으로 보인다. 일주일 안에 최대 진도 5에 가까운 흔들림을 동반한 여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온천 관광지인 가나가와(神奈川) 현 하코네(箱根) 산은 13일에도 화산성 지진이 관측됐다. 지난달 말부터 활발해지기 시작한 화산 활동이 계속되고 있는 것. 기상청은 소규모 분화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분화구 주변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분화경계수준 2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크고 작은 지진이 계속되고 있다. 문부과학성은 수도권에서 향후 30년 내 규모 7.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확률이 70%라고 발표한 바 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 2015-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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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자민-공명, 자위대법 등 안보관련법안 합의

    일본 자위대가 제3국 영토에 들어가 타국 군대의 후방 지원을 할 때 해당국의 사전 동의를 얻도록 하는 규정이 일본의 안보 관련 법안에 신설된 것으로 확인됐다. 연립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은 11일 자위대법, 주변사태법 등 10개 안보 관련 법안을 개정하기로 공식 합의했다. 이 중 한반도 유사 사태 대응과 관련된 중요 영향 사태법의 2조 4항에 ‘외국 영역에 대한 대응 조처는 당해 외국의 동의가 있을 때에 한정해 시행하는 것으로 한다’는 내용이 새로 포함됐다. 한국의 사전 동의가 있어야 자위대가 한반도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은 그동안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것으로 결국 관철된 셈이다. 지난달 27일 미국과 일본이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개정할 때도 ‘제3국 주권을 전적으로 존중하고 국제법을 준수한다’는 모호한 문구를 포함해 해석을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14일 관련 법안을 각의(국무회의)에서 결정한 다음 이튿날 곧바로 국회에 넘길 예정이다. 국회를 최종 통과해야 법안이 확정된다. 한편 12일 오후 도쿄(東京) 히비야 공원에는 약 2500명의 일본인들이 모여 자위대 역할 확대를 불러오는 안보 관련 법 개정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 2015-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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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 위에서… 바다 밑에서… 中-日, 해양주도권 경쟁

    미국 견제라는 공통된 목표 아래 ‘신(新)밀월’을 맞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지중해에서 연합훈련을 시작했다. 일본과 필리핀 해군은 중국과 필리핀의 영유권 분쟁 해역인 남중국해에서 연합훈련을 벌인다. 영토 및 역사 갈등을 벌이는 중일이 바다 위에서 영향력 확대 경쟁을 벌이는 형국이다. 중국은 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전승 70주년 기념식에 처음으로 인민해방군을 보내 군사 우의를 과시한 데 이어 11일부터 지중해에서 러시아 해군과 ‘해상연합 2015’ 훈련에 돌입했다. 기간도 10일로 지금까지 중국 동부 해안에서 벌였던 3차례의 연합훈련보다 긴 최장 기간이다. 중국 해군은 북해함대 소속 054A형 미사일 호위함 웨이팡(유坊)함과 린이(臨沂)함, 종합보급선인 웨이산후(微山湖)함 등 군함 3척과 함정 이착륙 헬기 2대, 특전부대를 파견했다. 러시아 해군은 흑해함대 소속 군함 9척을 투입했다. 중국 군함은 아덴 만과 소말리아 해역에서 선박 호송작전을 수행 중이던 함선들로 이번 훈련을 위해 흑해의 러시아 노보로시스크 군항에 정박해 있었다. 중국은 또 아프리카 진출을 강화하기 위해 홍해 입구인 지부티의 오보크 항구에 영구적인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홍콩 밍(明)보가 11일 AFP통신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스마일 오마르 겔레 지부티 대통령은 “현재 중국과 관련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확인하고 “중국은 지부티에서 환영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부티에는 미국 프랑스 일본이 군사 기지를 두고 있다. 특히 미국은 지부티에 동부 아프리카 최대의 군사기지를 두고 중동 예멘과 소말리아를 비롯한 동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의 반(反)테러 활동을 지원하고 있어 중국에 기지 건설을 허용하는 것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고 AFP는 전했다. 중국은 이미 지부티에 90억 달러(약 9조7800억 원)를 투자해 철도 도로 비행장 등의 건설을 지원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2월 지부티와 군사협의서에 서명해 지부티의 항구 사용권을 얻어냈다. 지난달 예멘 내전 시 중국 국민을 탈출시키던 군함들이 정박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으로 자위대 활동범위 확대를 꾀하는 일본은 남중국해에서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잇달아 해상 연합훈련을 벌인다. 일본과 필리핀 해군은 12일 필리핀 마닐라 만과 수비크 만 사이 남중국해에서 돌발 상황에 대비한 연합훈련을 할 계획이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 훈련에는 일본 호위함 2척, 필리핀 프리깃함 1척과 헬리콥터 등이 참가한다. 일본 해상보안청과 필리핀 해안경비대는 이달 6일 필리핀 해안에서 해적 퇴치, 무기밀매 등을 위한 첫 연합훈련을 벌이기도 했다. 일본은 베트남과도 14일 베트남 해안에서 수색 및 구조 연합훈련을 할 예정이다.베이징=구자룡 bonhong@donga.com / 도쿄=박형준 특파원}

    • 2015-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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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러시아 지중해에서…일본-필리핀 남중국해에서…中-日 해상훈련 기싸움

    미국 견제라는 공통된 목표 아래 ‘신(新)밀월’을 맞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지중해에서 연합 훈련을 시작했다. 일본과 필리핀 해군은 중국과 필리핀의 영유권 분쟁 해역인 남중국해에서 연합 훈련을 벌인다. 영토 및 역사 갈등을 벌이는 중-일이 바다 위에서 영향력 확대 경쟁을 벌이는 형국이다. 중국은 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2차 대전 전승 70주년 기념식에 처음으로 인민해방군을 보내 군사 우의를 과시한 데 이어 11일부터 지중해에서 러시아 해군과 ‘해상연합 2015’ 훈련에 돌입했다. 기간도 10일간으로 지금까지 중국 동부 해안에서 벌였던 3차례의 연합훈련보다 긴 최장 기간이다. 중국 해군은 북해함대 소속 054A형 미사일 호위함 웨이팡(¤坊)함과 린이(臨沂)함, 종합보급선인 웨이산후(微山湖)함 등 군함 3척과 함정 이착륙 헬기 2대, 특전부대를 파견했다. 러시아 해군은 흑해함대 소속 군함 9척을 투입했다. 중국 군함은 아덴만과 소말리아 해역에서 선박 호송작전을 수행 중이던 함선들로 이번 훈련을 위해 흑해의 러시아 노보로시스크 군항에 정박해 있었다. 중국은 또 아프리카 진출을 강화하기 위해 홍해 입구인 지부티의 어보크 항구에 영구적인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홍콩 밍(明)보가 11일 AFP통신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스마실 쿠마르 겔레 지부티 대통령은 “현재 중국과 관련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확인하고 “중국은 지부티에서 환영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부티에는 미국 프랑스 일본이 군사 기지를 두고 있다. 특히 미국은 지부티에 동부 아프리카 최대의 군사기지를 두고 중동 예멘과 소말리아를 비롯한 동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의 반(反)테러 활동을 지원하고 있어 중국에 기지 건설을 허용하는 것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고 AFP는 전했다. 중국은 이미 지부티에 90억 달러(9조7800억원)을 투자해 철도 도로 비행장 등의 건설을 지원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2월 지부티와 군사협의서에 서명해 지부티의 항구 사용권을 얻어냈다. 지난달 예멘 내전 시 중국 국민을 탈출시키던 군함들이 정박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으로 자위대 활동범위 확대를 꾀하는 일본은 남중국해에서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잇따라 해상 연합 훈련을 벌인다. 일본과 필리핀 해군은 12일 필리핀 마닐라 만과 수빅 만 사이 남중국해에서 돌발 상황에 대비한 연합 훈련을 할 계획이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 훈련에는 일본 호위함 2척, 필리핀 프리깃함 1척과 헬리콥터 등이 참가한다. 일본 해상보안청과 필리핀 해안경비대는 지난 6일 필리핀 해안에서 해적 퇴치, 무기밀매 등을 위한 첫 연합 훈련을 벌이기도 했다. 일본은 베트남과도 14일 베트남 해안에서 수색 및 구조 연합 훈련을 할 예정이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베이징=구자룡특파원 bonhong@donga.com}

    • 2015-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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