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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배터리가 예전엔 가격에서만 앞섰다면, 요즘은 기술력에서도 한국 제품에 우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거대한 내수 시장과 정부 지원을 따라가기 벅찬 상황입니다.”(국내 이차전지 기업 임원 A 씨)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견인했던 철강이나 석유화학 등의 산업은 이미 성숙기, 혹은 쇠퇴기에 들어섰다. 반도체와 자동차 이후 한동안 대(代)가 끊겼던 한국 제조업의 새로운 ‘주력 산업’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이차전지는 중국에 밀리고 있다. 인공지능(AI) 등 후속 산업 발굴은 지체되는 중이다. 우리 기업들이 평가한 한국 산업의 냉정한 현주소다. ● 현재는 레드오션… 그래도 미래 투자 못 해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제조업체들에 설문조사를 한 결과 주력 제품 시장이 ‘성숙기’(시장 포화)나 ‘쇠퇴기’(시장 감소) 등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에 진입했다고 응답한 기업이 전체의 82.3%에 달했다.비금속광물(시멘트업종 등)이 가장 높은 95.2%였고, 정유·석유화학(89.6%), 철강(84.1%), 기계(82.9%), 섬유(82.4%), 자동차·부품(81.2%) 순이었다. 1960년대 이후 한국 경제의 수출 원동력이었던 주요 산업들이 모두 레드오션에 진입했다는 기업들의 자체 진단이 나온 것이다. 응답한 제조기업의 83.9%는 자신의 업종에서 “(경쟁국에 비해) 우위가 없거나 추월당했다”고 평가했다.경쟁력이 추월당한 대표 업종이 철강이다. 그동안 글로벌 시장을 이끌던 한국 철강 기업들의 영향력은 최근 크게 축소됐다. 중국발 공급 과잉이 주된 원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철강 글로벌 공급 과잉이 6억3000만 t에 달했는데, 이는 국내 철강 생산량(6300만 t)의 10배에 이르는 수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4일 국회에서는 여야 의원 106명으로 구성된 국회철강포럼이 한국 철강 산업 지원을 위한 특별법, 이른바 ‘K스틸법’을 공동 발의했다. 보조금 지원과 세금 감면, 융자 지원 등이 핵심 내용이다.한국이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던 특수강 분야도 중국산 덤핑 제품에 밀린다. 중국 업체가 저가의 특수강 봉강을 국내에 반입하면서, 국내 철강업체들의 영업이익은 2년 만에 90% 넘게 줄었다. 세아베스틸과 세아창원특수강은 이날 무역위원회에 중국산 특수강 봉강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신청했다. 석유화학 역시 중동과 중국발 공급 과잉 문제가 부각하면서 공급량 감축 등 구조조정 전망이 나온다. 컨설팅 업체인 보스턴컨설팅그룹은 향후 2, 3년 동안 1500만 t 수준의 에틸렌 및 범용 폴리머 신규 공장이 가동되며 2030년까지 공급 과잉이 이어질 것으로 봤다.● “혁신 부족이 제조업 위기 불렀다”전문가들은 최근 국내 제조업 부진에 대해 신사업 진출을 주저하는 ‘혁신 부족’을 이유 중 하나로 꼽는다. 한국 기업이 철강이나 석유화학 분야에서 값싼 노동력 등을 바탕으로 미국이나 유럽 기업을 밀어냈듯, 중국 인도에 추격당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기존 산업 경쟁력을 잃기 전 정보기술(IT) 분야를 키웠다. 한국도 기존 산업이 건재할 때 과감한 대체 산업 투자를 해야 했지만,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남대일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기업들이 신산업에 투자하지 않고 기존 산업 지키기만 하다 ‘제조업 위기’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대한상의 설문 결과 국내 제조업체 중 57.6%는 “현재 진행 중인 신사업이 없다”고 답했다. 신사업 추진을 못 하는 이유로는 ‘자금난 등 경영 악화’(25.8%)와 ‘신사업 시장성 사업성 확신 부족’(25.4%)을 꼽았다.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한국 제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AI나 로봇을 이용한 생산성 향상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인프라 구축에 많은 투자가 필요한 만큼 정부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현대차그룹이 미국 시장 진출 39년 만에 판매 대수 3000만 대를 넘어섰다. 4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 7월까지 총 3010만7257대의 차를 미국 시장에서 판 것으로 집계됐다. 브랜드별로는 현대차가 1755만2003대, 기아가 1255만5254대를 각각 팔았다. 이는 현대차가 미국에 처음 진출한 1986년 이후 39년 6개월 만에 이룬 성과다.이로써 현대차그룹은 미국 시장에서 현지 브랜드가 아닌 회사로는 도요타, 혼다에 이어 세 번째로 3000만 대를 판매한 완성차업체가 됐다. 다만 ‘3000만 대’ 판매 달성 속도는 이들 경쟁자들보다도 빨랐다. 1958년 미국 시장에 뛰어든 도요타는 54년 만인 2012년 3000만 대 판매고를 올렸다. 혼다 역시 1970년 진출해 47년 만인 2017년에야 3000만 대를 넘어섰다.현대차가 처음 미국에 수출한 모델은 ‘엑셀’이다. 1986년 1월 울산공장에서 생산한 차를 수출했다. 기아는 1992년 미국에 판매 법인을 설립한 뒤 2년 뒤인 1994년 2월부터 독자 모델인 세피아와 스포티지를 판매하기 시작하며 미국 시장 경쟁을 시작했다.이후 현대차그룹은 1990년 100만대, 2004년 500만 대, 2011년 1000만 대의 판매고를 올렸고, 이후에는 매년 100만 대 이상의 차를 미국 시장에 팔며 2018년 2000만 대 판매를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역대 최고 판매량인 연 170만8293대를 팔기도 했다.다만 미국과의 관세 협상으로 인해 현대차그룹의 전망이 밝지 못한 상황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를 누려왔는데 이제 15% 관세가 부과되게 됐기 때문이다.이에 따라 현대차는 현지 생산 비중을 늘려 관세 전쟁에 대응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2005년에는 앨라배마주에, 2010년엔 조지아주에 생산공장을 각각 설립했고 지난해 조지아주에 ‘메타플랜트 아메리카’를 준공한 만큼 현지 생산 비중을 크게 늘릴 계획이다.하이브리드 차량과 전기차 등 친환경 차량 판매에도 집중하는 한편 고부가가치 브랜드인 제네시스 브랜드의 판매량도 늘린다는 전략이다. 현대차는 최근 진행한 2분기(4~6월)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친환경 차량과 제네시스 차량의 글로벌 판매 비중이 처음으로 20%를 넘어섰다”고 발표하기도 했다.기아 측도 “향후 하이브리드차 판매를 강화해 상반기 미국 시장에서 5.1%였던 점유율을 6%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기업이 투자를 시작할 땐 노조가 노란봉투법을, 결과가 나왔을 땐 소액주주들이 상법 개정안을 들이댈 상황이 됐다.”(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 더불어민주당이 4일 국회 본회의 처리 강행을 예고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등을 두고 법학계와 경영학계를 중심으로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노란봉투법과 이미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의 내용이 서로 충돌해 기업이 이도저도 못 하는 ‘진퇴양난’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서로 충돌하는 상법개정안-노란봉투법학계에 따르면 노란봉투법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사용자의 개념을 넓힌 것이다. 이에 따라 이제 기업들은 고용 계약을 맺은 근로자뿐만 아니라 하청업체 노조 등에 대해서도 사용자로서 교섭에 나서야 할 형편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근로조건뿐만 아니라 투자, 사업 매각 등의 기업 의사결정에 대해서까지 노조가 쟁의에 나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법학계와 경영학계에서 이 같은 노란봉투법 내용이 ‘이사회가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의 이익에도 충실해야 한다’는 내용의 상법개정안과 충돌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하청업체들이 대거 쟁의에 나서 기업이 수십∼수백 개의 하청업체 노조와 일일이 교섭에 나서다가 손해가 발생하면 이번에는 또 주주들이 “주주 이익이 훼손됐다”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이익이 발생한 부분을 주주에게 배당하는 경영상 의사결정을 두고도 노조에서 이를 임금인상분으로 돌리라며 반대하면서 쟁의에 돌입할 수 있다고 내다본다. 구조조정이나 해외 투자 등의 결정도 노조와 주주 양측의 힘겨루기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사회와 주주총회에서 사업부 매각 결정을 내렸는데 노조에서 ‘해당 결정에 반대한다’며 쟁의행위에 돌입하면 매각 ‘골든타임’을 놓치게 돼 기업가치가 훼손된다. 이는 결국 또 주주들의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란봉투법은 근로 조건에 영향을 주는 결정에 한해 쟁의가 가능하다는 전제를 달고 있다. 하지만 이 전제가 유명무실하다는 시선이 많다. 과거에도 현대차그룹의 경우 2022년 경기 오토랜드 화성에 전기차 전용 공장 설립을 발표하면서 노조와 갈등을 빚은 바 있다. 회사 측은 경기 등을 고려해 연간 생산량을 10만 대 규모로 계획했지만 노조에서는 고용 안정을 이유로 20만 대 규모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노란봉투법이 처리되면 경영 의사결정에 대한 개입과 반대 등이 더 거세질 수밖에 없다. 이미 일각에서는 미국에 건설한 친환경차 전용 공장인 ‘메타플랜트 아메리카’에서 하이브리드차를 생산하겠다는 현대차의 계획이 노조에 가로막힐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처럼 ‘노란봉투법’과 ‘상법’ 사이에서 기업이 이도 저도 선택할 수 없어지게 되면 기업 활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게 학계 지적이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 투자는 시기와 규모를 철저히 계산해서 시행해도 실패 확률이 높은데 투자의 시작과 끝이 노란봉투법, 상법에 막히게 됐다”며 “결국 기업이 연구개발에 쓸 비용을 법무에 돌리고 투자나 연구개발 없이 현행 유지만 하는 ‘공무원화’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란봉투법으로 ‘노노 갈등’도 우려 노란봉투법만 떼놓고 봐도 허점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하청업체까지 교섭 권한을 갖게 되는 만큼 교섭단체 간 의견이 갈리면 기업이 ‘소송전’에 시달릴 수 있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이 임금협상을 할 때는 한정된 재원을 두고 배분하게 되는데, 원청업체 직속 노조와 하청업체 노조가 서로 자기들 임금을 더 많이 올려 달라고 할 경우 기업은 어느 쪽에서든 파업이나 소송에 휘말리게 될 수 있다”며 “대기업 노조와 하청업체 노조는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협의해 대표교섭단체를 구성할 가능성도 낮다”고 설명했다. 물론 노란봉투법과 개정 상법은 각각 독립된 법률안이기 때문에 이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나 손해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조 교수는 “두 법안의 충돌에 대한 판례가 쌓여 질서 정리가 되려면 수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북극항로 언제 다시 열리나”항공사들의 북극항로 비행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4년째 중단된 상태다. 북극항로 비행은 극한의 환경을 지나야 해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만큼 항로가 다시 열리기를 모두가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10월 4일 오전 5시 51분 보잉의 슈퍼포트리스 ‘파쿠선 드림보트(Pacusan Dreamboat)’가 하와이 오아후섬의 육군 비행기지에서 이륙했다. 이 비행기는 세계의 꼭대기, 그 꼭대기의 하늘을 날았다.” 미국의 과학 전문지 ‘파퓰러 사이언스’ 1946년 12월호에 ‘꿈의 보트 안에서(Inside the Dreamboat)’라는 제목으로 실린 특집 기사다. 이 비행이 특집 기사까지 실릴 정도로 주목받은 이유는 미국 최초로, 그리고 사실상 서방권 국가 최초로 북극 하늘을 횡단한 비행기이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북극항로 비행은 대부분 러시아(당시 소련)를 중심으로 한 동구권 국가들의 전유물로 파악되지만, 정확한 사료는 없는 실정이다. ‘파쿠선 드림보트’는 보잉의 B-29 폭격기를 장거리 비행이 가능하도록 개조한 비행기다. 말이 개조지 조금이라도 필요성이 낮은 장비는 모조리 뜯어내 한계치까지 무게를 줄인 것이다. 당시 B-29의 최대 비행거리는 약 9000km였다. ‘파쿠선 드림보트’는 1만5163km(약 9422해리)를 날았다. 약 40시간 동안 승무원들은 항법 장비까지 뜯어낸 비행기에서 추위와 싸워 가며 해와 별의 위치만으로 방향을 찾았다. 이 비행기가 하와이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이집트 카이로에 무사히 착륙하면서, 진짜 ‘북극항로’ 시대가 열렸다.● 극한 환경, ‘온도’와 싸워야 하는 북극항로그로부터 6년 뒤인 1952년엔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합작 항공사인 스칸디나비아항공(SAS)이 승객을 태우고 북극 하늘을 처음 날았다. 북극항로 개척 6년 만에 ‘민간 항공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까지 북극항로 수요는 그리 많지 않았다. 냉전으로 동구권과 서방 국가가 서로 항공로를 개방하지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소련 해체와 냉전 종식 등으로 2000년대 들어 북극항로 수요는 빠르게 늘었다. 미국 연방항공청(FAA)과 보잉 등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하루 평균 약 1100대의 비행기가 북극 하늘을 지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북극 하늘을 비행하는 것은 결코 간단치 않은 일이다. 북극은 땅만큼 하늘도 극한 환경이다. 비행기가 북극항로를 지날 때 조종사들이 가장 애태우며 지켜보는 사항은 ‘연료의 온도’다. 순항 고도인 10km 높이에서 북극 기온은 영하 70도까지도 떨어진다. 통상적인 중위도의 같은 고도 기온보다 최대 20도 더 낮다. 그런데 비행기에 실리는 항공연료는 영하 40도 이하로 떨어지면 얼어붙기 시작한다. 연료가 얼면 엔진으로 연료 공급이 되지 않아 엔진이 멈추고,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조종사들은 이 연료 온도가 영하 37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관리를 하면서 북극을 통과해야 한다. 방법은 두 가지다. 고도를 낮추거나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시속 800∼1100km로 날아가는 비행기 표면에서는 공기와의 마찰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기온보다 비행기 표면 온도가 높아진다. 고도를 낮추면 공기 밀도가 높아지고 속도를 높이면 역시 비행기에 부딪히는 공기 입자량이 많아져 마찰열이 더 발생하게 된다. 이렇게 높아진 기체 표면 온도가 항공연료를 데우는 역할을 한다. 보잉에서는 속도를 마하 0.01 증가시킬 때마다 기체 표면 온도가 0.5도 이상 높아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만 두 방식 모두 비행기의 연비를 떨어뜨리는 방법이기 때문에 조종사들은 연료량과 남은 거리 등을 철저히 계산한 후 최적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북극에서는 통신도 문제가 된다. 비행기가 외부와 통신하는 방법은 초단파(VHF), 위성통신, 단파(HF) 등 세 가지다. 북극에서는 초단파와 위성통신을 사용할 수 없는 ‘음영지역’이 생긴다. 통신 거리가 수백 km로 짧은 초단파는 북극 지상에 발신 장비가 없어서, 위성통신은 정지궤도위성의 전파가 북극에 닿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이다. 유일한 해법은 통신 거리가 수천 km에 이르는 단파 통신인데, 잡음이 매우 심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항공안전 당국은 비행기의 3가지 통신장비 중 하나라도 고장 나 있거나 갖춰지지 않았으면 북극항로 진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비상시 긴급히 착륙할 대체 공항이 없다는 점도 북극항로 이용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상업 여객기는 반드시 일정 거리 안에 비상 착륙할 수 있는 공항을 끼고 경로를 짜도록 규정이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북극항로상에는 이 규정을 만족할 수 있는 공항이 많지 않다. 몇 안 되는 공항들은 대부분 러시아 공항이다. 러시아 영공을 쓰지 않으면 북극항로 비행을 못 하는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한국 항공사들이 북극항로를 이용할 때 가장 많이 설정하는 북극항로상 대체 공항 중 ‘야쿠츠크’ 공항이 있다. 야쿠츠크는 인천국제공항에서 거의 정북 쪽으로 약 2700km 떨어진, 북위 62도에 있는 도시다. ‘지구에서 사람이 사는 도시 중 가장 추운 곳’으로 알려져 있고, 러시아에서도 오지로 꼽는다. 하지만 공항 청사 앞에 비행기 네 대만 주기할 수 있는 이 도시의 작은 공항이 보유한 활주로 길이는 3400m나 된다. 인천공항 동쪽 활주로 길이인 3700m와 큰 차이가 없다. 이렇게 활주로가 긴 이유가 바로 어떤 크기의 비행기든 북극항로를 지날 때 ‘대체 공항’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폐쇄된 북극, 비용도 온실가스도 늘었다이 같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항공사가 북극항로를 선택하는 이유는 당연히 비용이다. 시간을 절약하면서 연료비도 줄일 수 있다.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10∼12km 고도의 하늘에는 북위 40∼60도 사이의 중위도에 강한 제트기류가 동에서 서로 상시 흐른다. 최대 시속이 200km에 달하는 강풍이다. 비행기가 서쪽으로 날아갈 때는 이 바람을 타고 가지만, 서에서 동으로 올 때 이 바람을 맞고 오게 되면 시간이 더 걸리고 연료 소모도 심해진다. 뉴욕, 워싱턴, 애틀랜타 등 미국 동부 도시에서 한국으로 올 때는 거리가 더 멀어지더라도 이 바람을 피하는 게 이득이다. 문제는 2021년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4년째 이 북극항로가 막혀 있다는 데 있다. 전 세계 대부분의 항공사들이 러시아 영공에 해당하는 북극항로를 이용하지 않고 있다. 처음엔 전쟁을 시작한 러시아에 대한 항의 성격이 짙었지만, 지금은 혹시 모를 피격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인 이유가 더 크다. 유럽항공안전청(EASA)에서도 현재 주기적으로 러시아 영공 안전 지침을 갱신해 가며 “북위 60도 이북 지역의 러시아 영공을 비행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피해는 적지 않다. 지난해 항공운송관리저널에서 발간한 연구자료를 보면 전 세계 항공편 중 6.2%가 우회 경로를 찾아 더 먼 거리로 비행해야 했다. 이에 따라 편당 연료 소비량이 13.3% 늘었다. 당연히 온실가스 배출량도 늘었다. 프랑스 소르본대 연구팀이 올해 초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항공 분야에서 이 영향으로 추가 배출된 온실가스 양은 2023년 기준 총 820t에 이른다. 항공 분야 전체 배출량의 1%를 차지하는 양이다.특히 악영향이 큰 국가는 한국과 일본이다. 저널을 보면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한국에 취항하는 17개 항공사의 주당 운행 시간이 북극항로 폐쇄로 인해 201시간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도 15개 항공사가 영향을 받았고 주당 운행 시간 증가가 262시간에 달했다. 미국 동부에서 한국으로 오는 항공편 일부는 총비행시간이 16시간을 넘어가면서 일본에 중간 기착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2022년 10월 뉴욕에서 서울로 오는 아시아나항공이 이런 이유로 도쿄에 중간 기착하면서 총여행시간이 19시간을 넘기는 일도 있었다. 조종사의 비행시간이 한 번에 8시간을 넘어설 수 없다는 항공법 때문에 조종사 교대를 위해 임시 착륙한 것이다. 이후 국토교통부는 항공사 요청으로 부랴부랴 임시로 비행시간 8시간을 넘겨 근무할 수 있도록 특별비행근무계획을 승인해 주기도 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항공사들은 빨리 북극항로가 다시 열리기를 기다리는 분위기다. 승객 입장에서도 북극항로가 다시 열려야 지루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 10시간이 채 안 걸리던 파리∼서울 비행편의 경우 지금은 12시간 가까이 걸린다. 시간과 비용이 증가하면 항공사도 ‘요금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시간과 비용을 모두 아끼는 유일한 방법은 전쟁이 끝나는 것인 셈이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이재명 대통령이 꾸준히 북극항로 개척을 강조하면서 해양 북극항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상태다. 이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때이던 3월 부산신항을 찾아 “한반도가 북극항로 거점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오고 있다”며 그 핵심에 부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처럼, 2030∼2040년이 되면 북극 얼음이 심각하게 녹아내릴 것으로 예상하는 과학자들이 많다. 2040년경이 되면 실제로 상설 북극항로가 열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이렇게 된다고 해서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비중이 크게 늘어날지에 대해서는 아직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 현재 시점에서 해양 북극항로 활성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경제성이다. 적도를 거쳐 대양으로 항해할 때와 달리 북극항로를 이용할 때는 쇄빙선의 ‘에스코트’가 필수적이다. 한 번 운항할 때 드는 쇄빙선 임차료만 최대 30만 달러(약 4억2000만 원) 수준이다. 극한 기후 지역을 통과하니 위험도는 증가한다. 혹시라도 선박 고장 등의 사고가 생겨도 도움을 청할 곳이 마땅찮은 점도 부담이다. 이 같은 요소 때문에 보험료도 비싸진다. 캐나다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의 연구 내용을 보면 20피트 컨테이너 하나(1TEU)를 운송할 때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면 286달러가 들지만, 북극항로를 통과하면 여름에 349달러, 겨울에 587달러가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여기에 선박들이 여러 항구에 들러 화물을 내려놓고 다시 싣는 등 ‘운송 장사’를 하기 어려운 루트라는 점도 부담이다. 항공기든 선박이든 화물 운송의 경우 모두 목적지와 출발지를 왕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공항과 항만을 차례로 들르며 짐을 내리고 다른 짐을 싣는 방식으로 장사를 한다. 하지만 북극항로에서는 이 같은 방식을 쓸 수 없기에 운임 단가가 더 비싸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상시 운항이 가능한 환경이 되어도 서방권 국가들이 북극항로를 선택할지 미지수라는 의견도 있다. 북극항로 개발이 현재 러시아와 중국 주도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아 베넷 미국 워싱턴대 지리학 교수는 “중국은 그간 러시아 등 인접 국가들과 계속해서 항해 루트를 분석해 왔다”며 “북극항로 개발을 통해 ‘극지 실크로드’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연구 내용을 보면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배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환경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중국 상하이와 네덜란드 로테르담을 연결하는 항로를 수에즈 운하로 선택하면 약 2만1000km지만 북극항로를 타면 1만4000km로 줄어든다. 여기에 북극항로에서는 배가 느린 속도로 운항할 수밖에 없어 단위 거리당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최대 76%까지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처럼 ‘친환경 루트’로 주목받는 북극항로가 제대로 쓰이려면, 지구 온난화로 인해 북극 얼음이 상당 부분 녹아내려야 한다는 ‘모순’이 존재한다는 점이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한미 상호관세 협상 결과에 따라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를 집행해야 할 기업들이 국내에선 각종 규제 법안까지 줄줄이 적용받을 처지에 놓였다. 산업계는 “악화한 무역 환경에서 기업이 국가 경제에 기여할 수 있도록 경영 활동을 보장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재계는 2차 상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 3조 개정안)이 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자 법안들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한 수출 대기업 관계자는 “미국의 새로운 상호관세 부과로 가뜩이나 수출 전선에 먹구름이 끼어 있는데 기업의 자율적인 경영 판단을 규제하는 ‘더 센 상법’이 이중 족쇄 역할을 할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했다. 자동차 조선 철강 등 협력업체가 많거나 강성 노조를 갖고 있는 기업들은 노조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교섭권을 강화하는 노란봉투법에 대한 고민이 깊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노사가 수시로 합의해야 해 의사결정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데다 인건비 추가 요인까지 발생한다”며 “이 같은 요소들이 모두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주한유럽상공회의소 등 외국계 기업 단체들도 최근 노란봉투법을 반대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특히 기업들은 2차 상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이 최근 한미 간에 합의한 대미 투자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제조업체 고위 임원은 “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면 영업이익률은 일시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며 “이 경우 개정 상법의 ‘주주 충실 의무’에 저촉돼 소송이 줄을 이을 여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제조업체 관계자도 “노조가 대미 투자에 대해 ‘경영상 결정에 반대’를 이유로 교섭을 요구할 경우 기업은 이중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특히 1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 부담이 있는 조선업계는 걱정이 더 크다. 조선업체 한 관계자는 “미국과 합의한 조선업 펀드가 정상적으로 가동되기 위해서는 노란봉투법 철회가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한미 상호관세 협상 결과에 따라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를 집행해야 할 기업들이 국내에선 각종 규제 법안까지 줄줄이 적용받을 처지에 놓였다. 산업계는 “악화한 무역 환경에서 기업이 국가 경제에 기여할 수 있도록 경영 활동을 보장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재계는 2차 상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 3조 개정안)이 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자 법안들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한 수출 대기업 관계자는 “미국의 새로운 상호관세 부과로 가뜩이나 수출 전선에 먹구름이 끼어 있는데 기업의 자율적인 경영 판단을 규제하는 ‘더 센 상법’이 이중 족쇄 역할을 할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했다. 자동차 조선 철강 등 협력업체가 많거나 강성 노조를 갖고 있는 기업들은 노조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교섭권을 강화하는 노란봉투법에 대한 고민이 깊다.완성차업계 관계자는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노사가 수시로 합의해야 해 의사결정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데다 인건비 추가 요인까지 발생한다”며 “이 같은 요소들이 모두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주한유럽상공회의소 등 외국계 기업 단체들도 최근 노란봉투법을 반대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특히 기업들은 2차 상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이 최근 한미 간에 합의한 대미 투자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제조업체 고위 임원은 “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면 영업이익률은 일시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며 “이 경우 개정 상법의 ‘주주 충실 의무’에 저촉돼 소송이 줄을 이을 여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제조업체 관계자도 “노조가 대미 투자에 대해 ‘경영상 결정에 반대’를 이유로 교섭을 요구할 경우 기업은 이중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특히 1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 부담이 있는 조선업계는 걱정이 더 크다. 조선업체 한 관계자는 “미국과 합의한 조선업 펀드가 정상적으로 가동되기 위해서는 노란봉투법 철회가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HD현대의 전력기기 및 에너지솔루션 계열사인 HD현대일렉트릭이 영국 전력회사와 친환경 초고압 변압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에 이어 유럽의 친환경 변압기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HD현대일렉트릭은 최근 영국 전력회사 ‘내셔널그리드(National Grid)’와 400kV(킬로볼트)급 12대와 275kV급 1대 등 총 13대의 초고압 변압기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31일 밝혔다. 수주 금액은 1404억 원으로 최종 인도 시점은 2028년이다. 이번에 수주한 변압기 중 11대는 친환경 변압기다. 친환경 변압기는 절연유(변압기 내부에서 전기 절연과 냉각 역할을 하는 기름)를 기존 원유 기반 광유(Mineral Oil) 대신 자연 분해되는 식물유 기반의 합성유(Synthetic Ester Oil)로 대체한 제품이다. 화재 위험이 낮아 신재생 에너지 발전소와 도심지역, 민감한 산업 시설에 적합하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HD현대일렉트릭은 동일 사양의 친환경 변압기를 미국 등에서 수주하며 품질과 기술력을 입증받아 왔다. HD현대일렉트릭 관계자는 “친환경 제품의 유럽 시장 공급을 확대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한미 양국이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율을 일본 및 유럽연합(EU)과 같은 수준인 15%로 합의하면서 산업계에서는 “최악은 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한국 기업들에 ‘무관세’ 혜택을 안겨줬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시대가 13년 만에 사실상 막을 내리면서 우리 기업들은 미국 시장에서 더욱 혹독한 경쟁 환경을 마주하게 됐다. 기업들은 “앞으로 가격 경쟁력만 앞세워 승부하기는 더 힘든 상황이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 FTA 효과 증발… 자동차 “2.5% 가격 우위 사라져”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은 31일 브리핑에서 자동차 관세와 관련해 “우리는 12.5%가 맞다고 당연히 주장했다”며 “그런데 미국식 의사결정 과정에서 ‘됐고 우리는 이해하는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다’라고 했다”고 말했다. 앞서 일본은 미국으로 수출되는 일본산(産) 자동차 품목 관세를 25%에서 12.5%로 낮췄다. 기존의 기본관세 2.5%를 더해 총 15%의 관세를 부과받게 된 것이다. 이에 우리 정부는 한미 FTA에 따라 기존 한국산 자동차가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돼 온 점을 강조하며 한국 자동차도 품목 관세가 12.5%로 인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일본, EU와 같은 관세율(기본관세 합산)인 15%를 고집했다는 게 정부 협상단의 설명이다. 한국 자동차 업계로서는 한미 FTA 효과가 사라지면서 기존에 누리던 2.5%포인트의 관세율 우위를 빼앗기게 된 셈이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한국에 대한 관세는 15%로 합의했다”면서 “미국은 (한국으로 수출할 때) 관세를 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 실장은 “FTA라는 것이 상당히 많이 지금 흔들리고 있는 것”이라며 “미국의 관세가 (발표된) 4월 1일 이후부터 각 나라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협상들을 보면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나 FTA 체제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지금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한국 자동차 업계는 ‘나 홀로 25% 관세’라는 최악의 상황은 다행히 피할 수 있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는 31일 입장문을 내고 “25% 고율의 자동차 관세가 일본, EU 등 경쟁 국가와 동등한 15%로 감소한 것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자동차 업계의 속내는 복잡하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일본, 유럽 등 경쟁사 대비 관세 우위가 사라지면서 앞으로 가격 경쟁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게다가 현대차는 다른 글로벌 자동차 업체보다 미국 내 현지 생산 비율도 낮아 관세 부과에 더더욱 취약하다. 도요타 등 일본 브랜드는 미국에서의 현지 생산 비율이 50%대로, 40%대인 현대차그룹보다 높은 편이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는 이날 미국의 15% 관세 부과로 인한 현대차·기아의 추가 비용 부담 규모가 50억 달러(약 6조9000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시험대 오른 K제조업” 한미 FTA 혜택이 사라지면서 산업계에서는 이제 미국 시장에서 일본, 유럽 등 경쟁 기업들과 ‘계급장 떼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형성됐다고 보고 있다. 한 업계 고위 관계자는 “(관세율 인하는) 일주일 전과 비교해 좋아진 것이지 1년 전을 생각하면 오히려 더 나빠진 상황”이라며 “다행이라고 안심할 게 아니라 이제부터 정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가전 대기업 관계자는 “브라질처럼 미국의 고율 관세가 부과됐다면 우리나라의 국가 신용도가 흔들렸을 것”이라며 “그나마 차선의 결과”라고 평가했다. 산업계에서는 부품이나 원자재 공급처를 다양화해 원가를 최대한 절감하려는 움직임이 이미 감지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내 부품 수급이 가능한 업체 200여 곳을 대상으로 가격과 품질 등을 분석하는 작업을 이미 시작했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술 혁신으로 상품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은 당연한 과제”라며 “인공지능(AI) 활용이나 스마트공장 구축 등 생산 단계에서 혁신 기술을 적용해 최대한 비용을 줄이고 이익을 늘리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최원영 기자 o0@donga.com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한미 양국이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율을 일본 및 유럽연합(EU)과 같은 수준인 15%로 합의하면서 산업계에서는 “최악은 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한국 기업들에 ‘무관세’ 혜택을 안겨줬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시대가 13년 만에 사실상 막을 내리면서 우리 기업들은 미국 시장에서 더욱 혹독한 경쟁환경을 마주하게 됐다. 기업들은 “앞으로 가격 경쟁력만 앞세워 승부하기는 더 힘든 상황이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FTA 효과 증발…자동차 “2.5% 가격 우위 사라져”김용범 대통령 정책실장은 31일 브리핑에서 자동차 관세와 관련해 “우리는 12.5%가 맞다고 당연히 주장했다”며 “그런데 미국식 의사결정 과정에서 ‘됐고 우리는 이해하는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다’라고 했다”고 말했다.앞서 일본은 미국으로 수출되는 일본산(産) 자동차 품목관세를 25%에서 12.5%로 낮췄다. 기존의 기본관세 2.5%를 더해 총 15%의 관세를 부과받게 된 것이다. 이에 우리 정부는 한미 FTA에 따라 기존 한국산 자동차가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돼온 점을 강조하며 한국 자동차도 품목관세가 12.5%로 인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일본, EU와 같은 관세율(기본관세 합산)인 15%를 고집했다는 게 정부 협상단의 설명이다. 한국 자동차 업계로서는 한미 FTA 효과가 사라지면서 기존에 누리던 2.5%포인트의 관세율 우위를 빼앗기게 된 셈이다. 김 실장은 “FTA라는 것이 상당히 많이 지금 흔들리고 있는 것”이라며 “미국의 관세가 (발표된) 4월 1일 이후부터 각 나라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협상들을 보면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나 FTA 체제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지금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물론 한국 자동차 업계는 ‘나 홀로 25% 관세’라는 최악의 상황은 다행히 피할 수 있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는 31일 입장문을 내고 “25% 고율의 자동차 관세가 일본, EU 등 경쟁 국가와 동등한 15%로 감소한 것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전방위적 통상외교 노력에 대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나 자동차 업계의 속내는 복잡하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일본 유럽 등 경쟁사 대비 관세 우위가 사라지면서 앞으로 가격 경쟁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게다가 현대차는 다른 글로벌 자동차 업체보다 미국 내 현지 생산 비율도 낮아 관세 부과에 더더욱 취약하다. 도요타 등 일본 브랜드는 미국에서의 현지 생산 비율이 50%대로, 40%대인 현대차그룹보다 높은 편이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는 이날 미국의 15% 관세 부과로 인한 현대차·기아의 추가 비용 부담 규모가 50억 달러(약 6조9000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가격 우위 사라져…시험대 오른 K제조업”한미 FTA 혜택이 사라지면서 산업계에서는 이제 미국 시장에서 일본, 유럽 등 경쟁 기업들과 ‘계급장 떼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형성됐다고 보고 있다. 한 업계 고위 관계자는 “(관세율 인하는) 일주일 전과 비교해 좋아진 것이지 1년 전을 생각하면 오히려 더 나빠진 상황”이라며 “다행이라고 안심할 게 아니라 이제부터 정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가전 대기업 관계자는 “브라질처럼 미국의 고율 관세가 부과됐다면 우리나라의 국가 신용도가 흔들렸을 것”이라며 “그나마 차선의 결과”라고 평가했다. 산업계에서는 부품이나 원자재 공급처를 다양화해 원가를 최대한 절감하려는 움직임이 이미 감지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내 부품 수급이 가능한 업체 200여 곳을 대상으로 가격과 품질 등을 분석하는 작업을 이미 시작했다.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술 혁신으로 상품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은 당연한 과제”라며 “인공지능(AI) 활용이나 스마트공장 구축 등 생산 단계에서 혁신 기술을 적용해 최대한 비용을 줄이고 이익을 늘리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최원영 기자 o0@donga.com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아직 그랑프리 10번을 더 남겨둔 F1과 달리 전기차 경주의 최강자를 가리는 ‘포뮬러 E’ 대회는 2024∼2025 시즌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번 시즌 포르셰는 제조사 챔피언십 타이틀과 팀 챔피언십 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포르셰 모터스포츠 팀은 이번 시즌 포뮬러 E 월드챔피언십에서 팀 및 제조사 부문 챔피언십 타이틀을 차지했다고 30일 밝혔다. 직접 운영하는 태그호이어 포르셰 포뮬러 E 팀이 우승 1번을 포함한 포디움 피니시 10번을 기록하며 256포인트로 우승했다. 이 팀은 이번 시즌 ‘폴 포지션’(예선전 기록이 제일 좋아서 본선 시 맨 앞자리에서 출발)도 3번이나 차지했고 패스티스트 랩(트랙 1바퀴 최단시간 기록)도 7번 기록했다. 여기에 시즌 마지막 경기인 런던 E-프리에서는 포르셰의 파워트레인을 장착한 머신 네 대가 10위권에 진입하면서 제조사 포인트도 쌓였다. 직접 운영하는 태그호이어 포르셰 팀 외에도 안드레티 커스토머, 쿠프라 키로 팀 등이 포르셰가 만든 99X 일렉트릭 기술을 기반으로 한 머신으로 경쟁하고 있다. 포르셰는 2019∼2020 시즌 때부터 포뮬러 E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지난 시즌에는 포르셰 워크스 팀 소속 드라이버 파스칼 베를라인이 드라이버 부문 월드 챔피언십 타이틀을 따낸 바 있다. 올해 ‘더블 타이틀’을 따내면서 포르셰는 이 대회에서 획득할 수 있는 모든 타이틀을 보유하게 됐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법안이 시행될 경우 향후 한국에 대한 미국 기업들의 투자 의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국내 최대 외국계 경제단체인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가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 3조 개정안)이 한국의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며 반대 성명을 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조선, 자동차 등 업종별 단체들과 공동으로 노란봉투법 중지를 촉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여는 등 총력 저지에 나섰다. ● “최후 수단으로 헌법소원까지 검토” 제임스 김 암참 회장은 30일 발표한 성명에서 “규제의 예측 가능성 부족은 외국계 기업들의 주요 애로사항”이라며 “이번 개정안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더욱 키울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한국의 글로벌 경쟁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암참은 이번 법안이 산업 현장의 우려에도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추진됐다며 절차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내 경제단체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대한건설협회 등 주요 업종별 단체는 30일 서울 마포구 백범로 경총회관에서 경총과 공동으로 성명을 발표하면서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파업 만능주의’로 산업 생태계를 붕괴시킬 것이 자명하다”고 토로했다. 특히 최근 우리 정부가 대미 관세 협상에서 ‘지렛대’로 생각하고 있는 조선업에 피해가 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는 미국에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MASGA)’라는 의미의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를 제안한 상태다.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주목받고 있는 우리 조선업의 경우 제조업 중에서도 협력사 비중이 높아 노조법 개정 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된다”며 “추상적이고 모호한 사용자 지위 기준은 우리 기업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고 경영 활동을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조선업계 관계자도 “현재 대미 관세 협상에서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가 가장 중요한데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 프로젝트가 잘되겠느냐”고 지적했다. 이 부회장은 “개정안에 따르면 노조가 불법행위를 하더라도 사실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며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의 투자 결정, 사업장 이전, 구조조정 등 사용자의 고도의 경영상 판단까지 쟁의행위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6개월의 유예 기간 동안 (여당은) 우려 사항들을 시행령에 담는다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계속 대화를 하고, 그래도 안 되면 최후의 수단으로 헌법 소원을 제기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숨죽이던 재계, 강경 대응으로 선회 암참에서는 법 개정안이 처리되면 정부와 재계가 공동으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성공을 위해 들여온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정부와 재계는 APEC 성공을 위해 샘 올트먼(오픈AI), 젠슨 황(엔비디아),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을 초청하려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계 기업들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규제 리스크가 불거지면 투자나 경제협력의 대상으로서 한국의 매력도가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합리적 노사관계의 오랜 역사를 가진 서구 투자자들에게 노란봉투법은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도 알 수 없게 만들어진 법이라고 느껴질 것”이라며 “해외 기업의 신규 투자 계획과 기존 투자 모두 철회되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지금까지 경제단체들은 국회를 찾아가 여당 의원들을 설득하거나 개정안의 폐해를 홍보하는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한적으로 대응해 왔다. 하지만 이 같은 방식으로는 여당의 드라이브를 막을 수 없다는 판단이 선 것으로 해석된다. 손경식 경총 회장도 31일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노란봉투법 재검토를 호소할 예정이다. 재계에서는 정부와 여당의 이중적인 태도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한 제조업계 관계자는 “대통령은 기업을 지원하겠다고 해놓고, 여당은 이 같은 법 처리를 밀어붙이는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기업들이 더 불안해지고 위축될 수밖에 없지 않겠냐”라고 말했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최원영 기자 o0@donga.com}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가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고 있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 3조 개정안)에 대해 명확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다. 외국계 경제단체로는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에 이어 두 번째다. 한국에 투자한 해외 기업 단체에서 잇따라 우려를 제기하면서 법 개정으로 한국의 기업 환경에 대한 인식이 악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암참은 30일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해당 법안이 처음 발의되었을 때도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며 “국내 8개 경제단체가 발표한 공동 성명에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밝혔다. 특히 암참은 노란봉투법 처리가 올해 10월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제임스 김 암참 회장은 “APEC은 한국이 혁신과 경제 정책 측면에서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무대”라면서 “이 같은 시점에 해당 법안이 (전 세계에) 어떤 시그널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이어 “유연한 노동 환경은 한국이 아태 지역 비즈니스 허브로서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라며 “이번 법안이 현재 형태로 시행될 경우 향후 한국에 대한 미국 기업들의 투자 의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국내 산업계도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노란봉투법 개정을 중지하라고 촉구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주요 산업 업종별 단체는 공동 성명을 내고 “노란봉투법은 기업이 급변하는 산업 환경에 대처하기 어렵게 만들어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상실케 할 것”이라며 “그로 인한 피해는 결국 근로자들과 미래 세대에게 돌아가게 된다”고 밝혔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우리는 현재 하청업체가 4000개가 넘는데, 이제 다수의 하청업체가 교섭을 요구해오면 다 응해야 하는 것이냐.”(대기업 A사) “사업을 매각하거나 철수할 때도 노조 허락 받게 생겼다.”(대기업 B사) “외국에는 없는 사례라 본사에서 전혀 이해 못하는 법이다. 한국 철수도 검토 중이다.”(외국계 기업 C사)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의 본회의 통과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기업들의 불만이 격화되고 있다. 특히 여당 의원들이 경제단체를 찾아와 의견을 청취했음에도 오히려 더 강경한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본회의에 오르게 되면서 기업들은 위기감을 넘어선 절망감을 토로하는 분위기다.● “노조에 인사·경영권까지 쥐여 줬다”기업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사용자를 ‘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로 정의한 부분이다. 사용자 지위와 대표 교섭단체의 기준이 없어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협력업체들이 모두 최상위 기업을 상대로 개별 교섭을 요구할 상황이라는 것이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업은 기본적으로 최소 100여 개의 협력사들과 함께 일하는 생태계”라며 “본사 노조와의 협상만으로도 진을 빼고 있는데 협력사들이 각각 강성 투쟁을 벌이면 업무가 마비될 게 뻔하다”고 울상을 지었다. 지주회사 체제인 대기업집단도 마찬가지다. 그룹 지주회사 소속인 한 기업 관계자는 “현재는 각 계열사가 노조를 상대하고 있었지만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계열사 노조가 지주회사를 향해 교섭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노조가 불법적인 쟁의행위를 하더라도 회사가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되면서 반도체, 제철처럼 생산라인 가동 중단 자체가 생산 차질 등 대형 리스크를 불러올 수 있는 기업들의 근심도 깊다. 한 철강업체 관계자는 “책임질 일이 없어진 노조가 협상 카드를 빌미로 ‘용광로 정지’ 같은 최악의 카드를 손쉽게 꺼내게 될 수 있다”며 “업종별 특수성이나 현장 상황에 대한 고려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법안”이라고 말했다. 노동쟁의 대상으로 ‘사업경영상의 결정에 관한 주장 불일치’가 포함된 데 대해서는 “노조에 경영권을 쥐여 주는 내용”이라는 반발도 터져 나온다. 최근 미국과의 관세협상 등으로 각종 투자나 사업 조정을 다각도로 검토 중인 한 기업의 노사 담당 관계자는 “수익성이 나지 않아 사업을 매각하려 해도 노조에서 ‘결정에 반대한다’고 주장하면 교섭 대상이 되어 버린다”며 “사업 조정으로 업무를 전환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해져 인사권까지 노조가 가져가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외국계 기업 “본사에서 이해 못 하는 법… 철수도 검토” 불안감은 한국에 진출한 해외 기업으로도 번지고 있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는 최근 입장문을 내고 “해외에서 한국에 투자한 기업들이 노란봉투법으로 형사처벌 위험에 직면할 경우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수 있다”고 경고장을 날린 바 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역시 최근 로펌과 공동으로 세미나를 열어 노란봉투법 관련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한 외국계 기업 관계자는 “노란봉투법이 통과할 경우 형사 처벌 위험이 커지고, 불법 노동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도 어려워진다”며 “외국에는 전혀 없는 내용이기 때문에 본사에서는 해당 법에 대해 전혀 이해를 못 하는 상태다.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서 사업 축소, 더 극단적으로는 사업 철수에 대한 검토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법 개정안이 효력을 발휘하면 국내 외국계 기업이 한국에서 동남아시아 등 다른 국가로 거점을 옮기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외국계 기업이) 적은 이윤에 노사 갈등 비용, 경영상의 위험 부담까지 감내하면서 한국에 굳이 있을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경제 현안에 소극적인 대응을 이어온 경제단체들도 정부와 여당이 “재계 목소리를 듣겠다”던 약속과 달리 연이어 규제 입법 드라이브를 걸자 참지 못하고 반발에 나섰다. 최근 공포된 개정 상법도 기업 경영에 부담을 가중시키지만, 더 세진 상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경영권마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위기감이 더 커진 모습이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 상법 개정안 때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3% 룰’ 도입 시에도 재계와 논의한다고 한 뒤 즉각 시행하더니, 노란봉투법 역시 대화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정치권에서 상생을 걷어차고, 기업의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하는데 말해서 뭐 하겠느냐”라며 격앙된 반응을 나타냈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최원영 기자 o0@donga.com}

‘기업 우선’을 강조했던 이재명 정부가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과 더 세진 상법 개정안 등 ‘기업 옥죄기’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며 기업들이 패닉에 빠졌다. 조선업계에선 “(하청 업체 수에 맞춰) 100번씩 교섭하라는 얘기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외국계 기업들은 공공연하게 “한국 철수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하고 있다. 29일 국내 경제단체 8곳은 공동 입장문을 통해 “엄중한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상법·노란봉투법 개정 추진에 깊은 우려를 넘어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경제단체들은 최근 정부 여당의 친노동 정책 추진에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이례적으로 공동 긴급 성명을 낸 것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28일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분리선출 감사위원 확대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에 이어 노조의 손해배상 책임을 대폭 면제해주는 노란봉투법을 국회법제사법위원회로 보냈고 다음 달 4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할 예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 재계 총수들을 만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지만 민주당이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안 등 기업의 부담을 키우는 입법 드라이브에 나서면서 재계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 현장 상황상 100개 이상의 하청업체와 일하는 조선업계 관계자는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1년 내내 하청기업 노조와 교섭만 하다가 시간을 다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상장사 대표는 “엄살이라고 하지만, 추가 상법 개정안이 발효되면 국내 상장사 상당수의 경영권이 제3자로 넘어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업에 대한 규제가 본격화되면서 산업계의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저평가)’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한 유럽상공회의소는 전날 성명에서 “노란봉투법에서 말하는 사용자 범위 확대는 매우 추상적이며 법리에도 맞지 않는다”며 “노란봉투법으로 인해 사용자가 법적 처벌을 받을 경우 유럽상의는 한국 투자를 철회할 수 있다”고 공개 선언했다. 한 외국계 반도체 기업 대표는 “한국은 반도체 기업 하기 좋은 나라지만 노동법이 발목을 잡는 상황”이라며 “노란봉투법까지 통과된다면 한국 사업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야당인 국민의힘도 “민주당이 반(反)시장 입법을 멈추지 않고 있다”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성장 중심의 시장경제를 옹호한다면서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왼쪽으로 급하게 방향을 트는 셈”이라고 지적했다.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처리에 속도를 내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28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법안보다 더 강력한 노란봉투법을 상임위에서 통과시켰다. 민주당은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를 담은 2차 상법 개정안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에서 단독 처리했다. 민주당은 경제계 반발이 큰 두 법안을 다음 달 4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킨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예고하는 등 총력전을 준비하고 있어 여야 대치가 격화될 전망이다.● 與, 노란봉투법-상법 개정안 4일 처리 예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8일 법안심사소위에 이어 전체회의를 연이어 열고 민주당 주도로 노란봉투법을 처리했다. 환노위 통과 법안에는 ‘사용자’ 범위를 확대해 하청 노동자가 원청과 교섭할 수 있도록 했다. 손해배상 청구 제한 대상인 노동쟁의의 범위도 기존의 ‘근로조건의 결정’에서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과 사용자의 명백한 단체협약 위반’으로까지 확대했다. 현재는 임금협상 결렬 등에만 파업이 가능하지만 개정안이 시행되면 구조조정, 공장 해외 이전 등을 이유로도 파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용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는 대상도 ‘단체교섭과 쟁의행위’에서 ‘그 밖의 노조 활동’으로 확대했다. 사용자의 불법행위에 대응하다 노조가 부득이하게 손해를 가했다면 손해배상 책임이 없어진다. 노조가 법원에 배상액 감면을 청구하면 법원이 감면 여부를 의무적으로 판단하도록 했다. 근로자가 아닌 외부인도 노사 협상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또 지난해 폐기된 법안에는 ‘사용자가 노조 활동 등에 따른 노조나 근로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면제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는데, 이번 통과안에는 법 시행 전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도 소급 적용한다는 부칙이 추가됐다. 2022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하청 노동자 파업 등 개정안 시행 전 발생한 쟁의도 손해배상 책임이 면제될 수 있는 길을 열어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소급 적용에 대해 “노사 간 분쟁 해결을 촉진시켜 노동권을 보호하고 사용자의 배임 책임을 완화시켜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조계 관계자는 “진행 중인 노사분쟁에서 노조 측이 면책 주장을 펼칠 여지가 넓어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날 노란봉투법은 당정 간담회(오전 7시 30분),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오전 10시), 환노위 전체회의(오후 8시)를 거쳐 하루 만에 전광석화처럼 처리됐다. 급박하게 처리하느라 노동쟁의 인정 요건의 핵심인 ‘해고’가 빠진 소위 통과안이 전체회의에 올라갔다가 가결 직전 수정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국회 법사위로 넘어간 노란봉투법에 대해 민주당은 8월 4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이날 법사위 법안소위에선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내용의 2차 상법 개정안이 민주당 주도로 단독 처리됐다. 민주당은 다음 달 1일 법사위 전체회의를 거쳐 4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강행 처리에 반발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野 “사용자 책임 비정상적 확대… 갈등 조장 악법” 노란봉투법이 민주당 주도로 상임위를 통과하자 국민의힘 환노위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정부의 ‘입법 폭주’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개정안의) 실상은 사용자의 책임을 비정상적으로 확대시켜 노동 현장을 갈등과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명백한 ‘갈등 조장 악법’”이라며 “기업이 떠난 나라에서 노조법 개정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를 통해 저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필리버스터 개시 후 24시간이 지나면 민주당이 표결을 통해 필리버스터를 종료시킬 수 있는 만큼 4일 본회의에 상정되는 첫 번째 쟁점 법안은 다음 날 여당 주도로 처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도 입장문을 내고 해외 기업들이 노란봉투법으로 형사처벌 위험에 직면할 경우 한국에서 철수할 수 있다고 밝혔다. ECCK는 “한국에 투자한 해외 기업들은 노동 규제로 인한 법적 리스크에 민감하며, 교섭 상대 노조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교섭 거부로 형사처벌 위험에 직면할 경우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북한이 지난해 26억9611만 달러(약 3조7193억 원) 규모의 대외 무역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2023년 대비 2.6% 감소한 수치다. 28일 KOTRA가 발간한 ‘2024년 북한 대외무역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지난해 수출액은 3억6044만 달러(약 4972억 원), 수입액은 23억3567만 달러(약 3조2220억 원)였다. 수출액은 한 해 전과 비교해 10.9% 증가한 반면에 수입은 4.4% 감소했다. 이에 따라 북한의 무역 적자는 2023년 21억1878만 달러에서 6.8% 줄어든 19억7523만 달러로 집계됐다. 최대 수출 품목은 ‘조제우모’였다. 새의 깃털, 조화, 사람 머리카락 등으로 된 상품을 의미한다. 총 1억8939만 달러(약 2612억 원)어치를 팔아 전체 수출액의 52.5%를 차지했다. 한 해 전에는 3위였던 광물류 수출이 2위로 상승했으며, 철강은 수출량이 줄어 2위에서 3위로 떨어졌다. 수입품 중에서는 원유와 정제유가 총 4억4631만 달러(약 6157억 원) 규모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플라스틱류와 조제우모 제품이 많이 수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KOTRA는 “북한의 주요 교역국은 중국, 아르헨티나, 베트남, 네덜란드, 나이지리아 순”이라며 “지난해 무역 규모는 줄었지만 수출은 증가한 만큼 신규 교역국이 생겼거나 수출 품목이 늘어났는지 추가 확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한국 수출의 양대 기둥인 자동차와 반도체가 미국발 관세 리스크에 휘청거리고 있다. 미국 시장 최대 경쟁자 일본에 이어 유럽까지 15%로 자동차 관세를 하향 조정했는데 우리 자동차만 여전히 25% 고관세를 적용받을 위기에 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반도체 품목에 대한 관세를 2주 안에 발표하겠다고 예고하면서 반도체 수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27일(현지 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약 1시간 동안 정상회담을 갖고 상호관세율을 15%로 책정하는 데 합의했다고 각각 발표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유럽의 대미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 등 대부분의 EU산 제품에도 15%의 관세율이 부과된다. 그 대신 EU는 7500억 달러(약 1038조 원)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를 수입하고, 군사 장비도 구입하기로 했다. 또 EU는 기존 투자 외에 6000억 달러를 추가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했다. 미국 시장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 중인 일본과 유럽이 모두 관세율 인하에 합의하면서 한국 완성차 업체는 수세에 몰렸다. 관세 협상에서 우리도 15% 수준으로 관세를 낮추지 못할 경우 ‘가격 역전’ 현상이 발생하면서 미국 시장에서 일본과 유럽 경쟁 업체에 완전히 밀려버릴 수 있다는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27일(현지 시간) EU와의 무역협상 타결 후 트럼프 행정부가 2주 안에 반도체 수입 관련 국가 안보 조사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 초부터 25% 이상의 반도체 품목관세를 예고해 왔다. 대통령실은 28일 미국과의 안보 패키지 협의와 관련해 ‘국방비 증액’과 ‘미국산 무기 구매’도 협상 테이블에 올라가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미국의 농축산물 시장 개방 요구에 대해 “미국 측 압박이 매우 거센 것은 사실”이라며 “가능한 한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양보의 폭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28일 스코틀랜드 턴베리 골프장에서 가진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의 기자회견에서 아직 관세 합의를 못 이룬 나라들에 대한 관세율을 묻는 질문에 “15∼20% 정도 될 것”이라고 답했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그간 공들여온 ‘글로벌 3대 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의 입지가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세계 최대 수출 시장인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의 관세 협상이 난항을 겪으며 시장 점유율을 빼앗길 위기에 처해 있다. 두 번째로 큰 시장인 유럽과 세 번째 시장인 인도에서도 현지 자동차 시장 자체가 침체하면서 수출 부진으로 이어질 우려가 나온다.현대차그룹은 북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수출 시장인 유럽에서 올해 상반기(1∼6월) 현대차 31만2000여 대, 기아 27만1000여 대를 판매했다. 각각 1년 전 대비 0.6%, 3.9% 줄어든 판매량이다. 여기에 유럽의 자동차 시장이 위축되기 시작하면서 올해는 유럽 수출 비중을 늘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유럽자동차제조사협회(ACEA) 자료를 보면 올해 상반기 유럽 지역의 신차 등록 대수는 1.9% 감소했다. 유럽 역시 미국 상호관세의 영향을 받는 데다 경기 침체와 에너지 가격 상승 등으로 소비 여력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로이터는 최근 “내연기관차 환경 규제 등의 영향까지 받아 주요 자동차업체의 판매 대수가 모두 감소했다”며 “반면 BYD 등 ACEA에 등록되지 않은 중국 자동차는 전기차를 중심으로 판매 대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인도 상황 역시 녹록지 않다. 현대차그룹이 인도 시장에 판매한 차 대수는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 모두 합계 43만 대 수준으로 ‘옆걸음’을 했다. 인도 자동차제조업협회(SIAM)에 따르면 지난해 인도 내수 시장은 1.9% 성장했지만, 2023년 성장률 8.4%에 비하면 크게 둔화했다. 인도에서 인기 있는 차량들이 소형차 중심이어서 판매 대수 대비 이익률이 높지 않은 점도 현대차가 인도 시장을 두고 고민하는 요인 중 하나다. 현대차그룹은 정부의 관세 협상 결과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경우 유일하게 성장세에 있는 고부가가치 시장인 북미에서 타격이 생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 때문에 회사 내부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때처럼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차그룹은 우선 미국 시장 내 점유율 방어에 주력할 방침이다. 하이브리드 등 고부가가치 차량 판매에 최대한 집중해 수익성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차량인 투싼의 경우 가솔린 모델과 하이브리드 모델의 가격 차이가 500만 원에 달한다.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 판매에도 공들이고 있다. 제네시스 북미 법인은 올해 미국 내 제네시스 전담 판매 영업소 8곳을 새로 열어 전체 영업소를 68곳으로 늘리기도 했다. 미국 내에서 생산되는 차는 최대한 미국 내에서 판다는 전략도 마련했다. 정성국 기아 IR·전략투자담당 전무는 실적 발표 당시 “미국 조지아 공장 등에서 생산해 각국으로 수출하던 물량을 최대한 미국 현지 물량으로 돌릴 예정”이라고 전했다. 그 외에 현대차그룹은 차량 판매 딜러사에 지급하는 인센티브를 애초 계획보다 낮추기로 했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올바로, 곧바로, 제로(0)로.” 현대차그룹이 올해 3월 이동석 최고안전책임자(CSO) 사장, 문용문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 등 노사 관계자 1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공동으로 선언한 안전 브랜드 ‘바로제로’의 핵심이다. 현대차 노사는 중대재해를 사전에 예방하고 노조가 힘을 모아 선진 안전 문화를 구축하자는 차원에서 2022년부터 머리를 맞대 왔다. 2년간 안전문화 조성을 위한 의견을 모아 함께 발표한 ‘안전 문화 조성을 위한 노사 공동 선언문’에 따른 결과물이 ‘바로제로’ 브랜드다. 안전 수칙은 ‘올바로’ 지키고, 위험 요인을 발견하면 ‘곧바로’ 동료와 소통하며, 사업장 내 위험 요소를 ‘제로(0)로’ 만들겠다는 의미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현대차는 울산에서 시작한 바로제로 브랜드를 전주, 아산 등 국내 생산 거점과 연구소, 하이테크센터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올해 상반기부터는 ‘바로제로’의 로고를 안전모와 안전 안내판 등에 새겨 안전한 근무 현장 조성을 전 근로자들이 직관적으로 의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제품의 안전성 강화도 빼놓을 수 없다. 새 모델 개발 과정에서는 충돌 테스트만 100여 차례, 충돌 시뮬레이션은 3000회 이상 한다. 이 결과를 차체 구조를 개선하거나 안전장치를 적용하는 데 활용해 승객 상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개선한다. 그 결과 현대차그룹의 주요 모델들은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와 유로 NCAP 등 미국과 유럽의 신차 안전 평가 기관에서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IIHS 충돌안전평가에서 ‘가장 안전한 차’를 의미하는 ‘톱 세이프티 픽’ 이상의 등급에 최근 5년간 106개 모델이 선정됐다. 이 기간 자동차그룹 기준 가장 많다. 같은 기간 도요타그룹은 80개, 폴크스바겐그룹은 62개 등이 선정됐다. 유로 NCAP에서도 판매 중인 전용 전기차들이 모두 최고 등급인 별 다섯 개 등급을 받았다. 고객을 위한 안전 캠페인도 수시로 진행한다. 2016년부터 한국도로교통공단 등과 함께 ‘교통안전 베테랑 교실’을 진행하며 65세 이상의 운전자를 대상으로 인지능력 검사 및 교통안전 교육 등을 진행해 왔다. 올해 5월부터는 이 프로그램에서 선발한 운전자를 대상으로 맞춤형 안전 운전 교육을 실시하는 ‘시니어 안전 드라이빙 데이’를 열고 있다. 11월까지 총 20회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동석 사장은 “임직원들이 최고 수준의 안전을 현장에서 실천하면서 현대차의 안전 문화를 확고하게 정립하고 대내외적으로 안전에 대한 신뢰도 공고하게 하겠다”고 말했다.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