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호

이성호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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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성호 본부장입니다.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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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7~2024-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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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성호]IT 강국 민낯 보여준 K에듀

    전국 학교가 개학한 지 2주차를 맞았다. 현장은 어수선하다. 매일 학교 가는 학생도, 등교와 원격을 ‘퐁당퐁당’ 병행하는 학생도 아직 혼란스러워 보인다. 그래도 두려움이나 불안감은 덜해 보여 다행이다. 그만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익숙해진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은 학생들의 짜증은 더 커진 듯하다. 개학 첫날부터 실시간 쌍방향 원격수업을 위한 공공 학습관리시스템(LMS)인 ‘e학습터’와 ‘EBS 온라인클래스’의 크고 작은 오류가 발생한 탓이다. 정부는 코로나19 2년차인 올 1학기부터 실시간 쌍방향 원격수업의 전면 실시를 여러 차례 공언했다. LMS 개발과 운영에 100억 원 가까운 예산도 지원했다. 하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1년 동안 도대체 뭘 했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오류는 개학 1주차 내내 이어졌다. 접속이 안 되거나 늦는 건 기본이고 수업을 위한 자료 업로드가 되지 않는 경우도 속출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5일 부랴부랴 EBS를 찾아 “다음 주부터는 정말 안정적으로 운영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교사들은 수업이 본격 시작되는 개학 2주차를 앞두고 주말 내내 컴퓨터를 붙잡고 진땀을 흘렸다. 교사가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다면 그 손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코로나19 1년차인 지난해 현장에서 교사들이 겪으면서 얻게 된 교훈이다. 하지만 올 2월 말에야 시스템이 개통한 탓에 익숙해질 시간이 없었다. 일부 교사는 알아서 자구책을 찾고 있다. ‘올해는 제대로 하겠다’며 차근차근 원격수업을 준비했던 교사들이 LMS 탈출을 선택하는 것이다. 대전의 한 고교 교사는 “학기가 시작됐는데 새로운 시스템 공부하느라 시간을 버릴 수는 없다”며 “내가 할 수 있는, 익숙한 시스템을 이용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실시간 화상회의 서비스인 ‘줌(ZOOM)’을 이용해 원격수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8월 유 부총리는 “감염병 상황이 아니어도 온라인과 등교를 병행하는 ‘블렌디드 러닝’으로 교육과정이 운영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이후에도 원격수업을 병행하겠다는 것이다. 같은 해 12월에는 새 학기부터 실시간 화상수업 시스템의 전면 운영 계획을 강조했다. 그러나 개학 1주차 오류가 이어지자 7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시스템을 재구조화하고 기능을 개선한다는 게 사실 물리적으로 굉장히 어려움이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에 없는 시스템”이라는 이유를 내놓았다. 자녀의 원격수업을 지켜보는 학부모 사이에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 정보기술(IT) 강국의 현실이 믿기지 않는 것이다. 지난해 정부는 IT 강국을 앞세워 K방역 등 이른바 ‘K시리즈’를 홍보했다. K에듀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해외 민간기업 플랫폼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오히려 사교육 업체들이 안면인식 기술, 인공지능(AI)까지 동원해 ‘집에 혼자 있어도 집중할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교육당국은 등교수업 확대를 강조하고 있다. 물론 등교 확대는 교육 정상화의 기본이다. 하지만 단순히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라면 곤란하다. 전면 등교가 공교육 신뢰까지 회복시키진 못한다. 그건 정부가 공언한 ‘미래 교육’의 시작도 아니다.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starsky@donga.com}

    • 2021-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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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군가는 끝이 아니라고 경고해야 한다[오늘과 내일/이성호]

    ‘긴급공지입니다. 지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지역보건소에 추가로 공급됐습니다. 만 19세 이상 성인은 보건소에 가면 바로 맞을 수 있습니다. 질병관리청.’ 자, 휴대전화로 이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첫 번째는 주변 사람에게 묻거나 포털사이트를 검색하는 사람, 두 번째는 보건소에 직접 전화해 확인하는 사람, 마지막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건소로 달려가는 사람일 것이다. 세 번째 유형이 얼마나 될지 의심이 들 만도 하다. 하지만 지금 바다 건너에선 현실이다. 며칠 전 미국 뉴욕시의 코로나19 백신접종센터로 수백 명의 시민이 몰렸다. ‘지금 가면 예약 없이 성인 누구나 백신을 맞을 수 있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시지를 보고 달려온 사람들이다. 메시지는 가짜였다. 당시 뉴욕에선 의료기관 종사자와 65세 이상 같은 우선접종 대상자 중 예약자만 접종이 가능했다. 줄지어 선 시민들은 “제발 돌아가라”는 보건소 직원과 경찰의 호소 대신 SNS 메시지를 믿으며 밤을 지새웠다. 한국은 다를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 3차 유행 초기였던 지난해 11월 18일 오후 ‘코로나19 현황’이라는 제목의 메시지가 SNS와 휴대전화를 통해 확산됐다. 방역당국의 발표 형식을 그대로 가져와 신규 확진자가 오후 9시 582명, 10시 632명, 11시 852명으로 급증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확진자 수 증가가 무서운 속도로 빨라지던 때라 불안감이 커졌다. 하지만 이 역시 가짜였다. 지난해 말 약국마다 다짜고짜 클로로퀸(말라리아 치료제)을 사겠다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코로나19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가짜정보를 믿고 온 사람들이다. 클로로퀸은 지난해 5월 당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복용 사실을 밝힌 약이다. 하지만 일찌감치 효과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정부 발표대로 2월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 아마 한국에서도 뉴욕 같은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선순위를 놓고도 이견과 갈등이 우려된다. 예컨대 의료기관에는 의사와 간호사뿐 아니라 간병, 행정, 청소, 경비, 조리 등 여러 분야의 직원이 있다. 이 중 우선접종 대상은 어디까지일까. 또 만성질환자 기준도 갈등 요소다. 빨리 맞고 싶은 마음에 자신을 ‘고위험군’으로 지정해달라는 요구가 쏟아질 수 있다. 만약 장애인을 포함시킨다면 등급 기준으로 할지, 아니면 마스크 착용 능력으로 할지도 애매하다. 기업인은 외국인 직원의 접종 여부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백신 선택권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서울의 김모 씨는 이번 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을 예정이다. 그런데 부산에 사는 김 씨의 사촌은 다음 주 화이자 백신을 맞는다고 한다. 화이자 백신을 맞고 싶은 김 씨는 선택할 수 있을까. 접종 시작과 동시에 이처럼 갖가지 혼란이 벌어질 것이다. 최근 백신 도입과 접종 일정이 가시화하면서 정부 차원에서 희망적 메시지가 이어지고 있다. 물론 지친 국민들에게 필요한 내용이다. 하지만 백신 접종이 마치 끝이고 전부인 듯한 메시지는 불안하다. 과도한 희망은 자칫 예측 불가능한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접종이 시작되는 순간, 지칠 대로 지친 국민의 방역의식이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다. 집단면역에 이르기 전 4차, 5차 유행을 맞닥뜨릴 수 있는 것이다. 만에 하나 그 상황에서 일부 백신의 도입이 늦어져 접종에 차질이 빚어지면 상상하기 힘든 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접종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가 너무 희망에 치우쳐선 안 되는 이유다. 아직은 최선보다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둘 때다.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starsky@donga.com}

    • 2021-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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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연 방역이 정치의 최우선이었나[오늘과 내일/이성호]

    매일 1000명 안팎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900명, 1000명 같은 규모도 무섭지만, 어느 순간 숫자에 익숙해지는 나 자신을 보는 게 더 공포스럽다. 이제 국민은 매일 오전 방역당국의 발표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 대신 확진자 발생을 실시간으로 집계하는 ‘코로나 라이브’ 사이트를 직접 찾는다. 집계된 숫자를 보고 이튿날 발표 내용을 짐작한다. 1000명을 넘지 않을 듯하면 안도하며 잠자리에 드는 게 요즘 국민의 일상이다. 이런 공포가 처음은 아니다. 5월 수도권에서 확진자가 급증할 때도 그랬다. 5월 6일 생활방역 실시 직전 평균 확진자는 하루 8.9명이었다. 45일에 걸친 거리 두기 덕분에 간신히 확진자를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황금연휴(4월 말∼5월 초)가 화근이었다. 서울 이태원 클럽발 확산이 시작됐다. 학교는 다시 문을 닫고, 거리 두기가 강화됐다. 당시 확진자 증가세는 5월 28일 79명을 정점으로 꺾였다. K방역 표현에 부정적인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 덕분에 이런 고비를 넘긴 것도 사실이다. 선제 검사와 공격적 역학조사, 광범위한 격리와 적극적 치료가 시너지 효과를 냈다. 불편과 피해를 감수하고 적극적으로 거리 두기에 참여한 국민이 화룡점정이다. 어느 하나만 삐끗했어도 K방역은 진즉에 무너졌을 것이다. 3차 유행 시작 후 거리 두기 효과가 나지 않고 있다. 피로감 탓이 크다. 무엇보다 거리 두기의 기본인 연대, 협력 같은 이타적 의식이 흐려진 게 확연해 보인다. 남의 안전을 배려해야 나도 안전한 게 거리 두기의 취지다. 마스크를 쓰는 목적이 외부 바이러스 침투를 막는 것보다 내가 가진 바이러스 유출을 막는 데 있는 것과 같다. 거리 두기뿐이 아니다. 방역 자체가 현장의 역학조사, 의료진의 빈틈없는 진료가 톱니바퀴처럼 돌아가야 한다. 어느 하나에 균열이 생기면 댐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3차 유행이 쉽게 진정되지 않는 건 균열이 꽤 오래전부터 커진 탓일 수도 있다. 그런 균열이 나고 커지는 걸 막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하지만 정부가 거기에 충실했는지 의문이다. 이태원 클럽발 확산이 수그러들자마자 정부여당은 의대 정원을 늘리는 방안을 발표했다. 몇 번을 곱씹어 봐도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다. 팬데믹(대유행) 상황에서 의료계 반발이 뻔한 결정을 굳이 서두른 이유를 알 수 없다. 아마도 K방역을 믿었을 것이다. 그래서 올지 안 올지 모르는 3차 유행에 대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또 의대 정원 확대 같은 지역구 선물이 최선의 방역이라 믿고 싶었을 것이다. 만약 방역을 국정과 정치의 최우선 과제로 생각했다면 당연히 종식 이후로 미뤘어야 했다. 게다가 고비 때마다 정부여당은 이른바 ‘방역의 정치화’라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올 8, 9월 확진자가 300명 안팎까지 치솟을 때 그랬다. 정부에 비판적인 단체의 집회 개최와 방역 비협조를 겨냥한 것이다. 지금도 비슷하다. 백신 확보 지연을 꼬집는 야당과 언론에 ‘백신의 정치화’라며 들고 일어섰다. 차라리 솔직한 게 낫다. 다른 나라 접종 소식에 허탈해하는 국민께 사과하고, 백신 없는 겨울을 이겨내자고 설득하는 게 필요하다. 지금 같은 상황이면 대부분의 학생은 내년 1학기를 또 집에서 시작해야 한다. 자영업자는 오후 9시 또는 더 일찍 문을 닫을 수 있다. 정부여당이 방역의 정치화를 비판할 때가 아니다. 그 어느 것보다 방역을 우선하겠다는, 말뿐이 아닌 진짜 ‘방역 정치’를 해야 한다.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starsky@donga.com}

    • 2020-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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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사 국가시험 문제 해결 언제까지 미룰 건가[오늘과 내일/이성호]

    “잠복기에는 전염성이 낮을 것으로 판단한다.” 올 1월 말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당시 질병관리본부장)의 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무증상 전파에 대한 설명이다. 당시만 해도 가능성이 낮아 보였다. 정 청장뿐 아니라 국내외 많은 전문가 생각이 비슷했다. 과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와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그래서다. 사정이 달라졌다. 여름이면 사라질 걸로 기대했던 코로나19는 삼복더위에도 기세등등했다. 우려했던 겨울철 유행은 현실이 됐다. 무증상 감염이 주요 원인 중 하나인 게 분명해졌다. 지난달 29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괴물 같은 바이러스”라고 표현한 것도 같은 이유다. 정 청장도 “정말 어려운 상대”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말을 합치면 현재 방역당국은 ‘굉장히 불리한 여건에서 괴물 같은 상대’와 맞서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땐 똘똘 뭉쳐 싸워도 승산을 점치기 쉽지 않다. 그런데 실제 상황은 적전분열(敵前分裂)에 가깝다. 지난달 26일 보건복지부는 내년도 전공의(레지던트) 정원을 확정해 발표했다. 하지만 인턴 정원은 빠졌다. 의대생들이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에 응시하지 않은 탓이다. 3000명 넘게 나와야 할 인턴 자원이 400명 남짓으로 줄었으니 인원 배정이 불가능하다. 보통 서울의 대형병원 한 곳에만 매년 100∼200명의 인턴이 필요하다. 이렇게 되면 전공의로 올라가는 인턴의 빈자리를 메울 수가 없다. 내년에 의료진 2700명가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코로나19와 맞서야 한다. 겨울철 고비를 운 좋게 넘겨도 끝난 게 아니다. 대부분의 인턴은 수도권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지방 대형병원의 피해가 뻔하다. 코로나19뿐 아니라 다른 환자 치료도 차질이 우려된다. 지방의 거점 의료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수도권 병원이 안심할 일도 아니다.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 등 필수 의료 분야의 차질이 불가피하다. “인턴 대신 레지던트와 교수가 하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물론 똑같은 의사니까 가능하다. 실제 지난 의료계 파업 때 그렇게 운영됐다. 그로 인해 중환자 수술과 외래진료가 미뤄져 환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이 대신 잇몸으로 버틸 수 있지만, 1년을 그럴 순 없다. 병원마다 대책을 마련 중이다. 하지만 해법은 나오지 않고 있다. 병원이 할 수 있는 게 없다. 한 대학병원의 교육수련 담당자는 “그냥 암흑 속에 있는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내년도 수련 일정 논의는 시작도 못 하고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인턴이 전공과를 선택할 때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너도나도 인기 과목에 몰릴 가능성이 높고, 필수 분야 공백은 더 커질 것이다. 이미 소아과, 산부인과 등에서 최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무의촌 지역을 지켰던 공중보건의사 확보도 어려워진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장은 “1년, 2년 후 벌어질 혼란이 눈에 선하다”며 “그때 가서 과연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냐”라고 꼬집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의 청신호가 켜졌지만 누구도 선뜻 종식을 언급하지 않는다. 의사 국시 문제 해결을 미룰 수 없는 이유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공공의료의 장점이 확인된 건 부인할 수 없다. 의료계는 공공의료 정책 수립에 전향적 태도로 참여해야 한다. 정부도 의정 협상의 유리한 고지에 오를 지렛대로 이 문제를 여겨선 곤란하다. 지금은 말한 대로 괴물 같은 바이러스만 생각하고 판단할 때다.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starsky@donga.com}

    • 202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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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도권, 최근 일주일간 확진자 696명…거리두기 1.5단계 격상 검토

    강원도에선 주말에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 39명이 발생했다. 최근 일주일간 하루 평균 13.9명이다. 강원도의 경우 권역별 사회적 거리 두기 1.5단계 기준(10명 이상)을 훌쩍 넘었다. 수도권은 최근 일주일간 확진자가 696명 나왔다. 일평균 99.4명으로 격상 기준(100명 이상)에 육박했다. 이에 따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와 각 시도는 거리 두기 1.5단계 격상을 검토 중이다. 중대본은 17일 오전 회의를 열어 세부 방안을 논의한 뒤 격상 여부 등을 발표할 예정이다. 유력한 방안은 수도권의 경우 서울 경기 인천을 모두 포함하고 강원권은 영서지역만 격상하는 것이다. 시점은 19일 0시부터 적용하는 걸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원도 관계자는 “지역 내 확진자가 원주, 인제, 철원에 편중돼 있어 강원도 전역에 대해 1.5단계를 적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방역당국도 “강원도는 지역적 분포가 있기에 전체 지역을 모두 1.5단계로 할 건지 아니면 일부 유행이 발생하는 지역과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할 건지에 대한 마지막 검토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거리 두기가 1.5단계는 지역적 유행이 시작되는 상황이다. 유흥주점 등 중점관리시설 9종과 PC방 등 일반관리시설 14종에 대한 방역이 한층 강화된다. 영업 중단은 아니지만 일부 시설은 야간 운영이 제한된다. 또 대부분 시설면적 4㎡당 1명으로 이용 인원이 제한된다. 프로야구 등 스포츠 경기 관람객은 전체의 30% 이내만 허용된다. 정규 예배나 미사 같은 종교활동도 전체 좌석의 30% 이내만 이용할 수 있다. 종교활동 중 모임과 식사는 금지다. 한편 국방부도 17일부터 29일까지 수도권과 강원권 군부대에 대해 거리 두기 1.5단계를 적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이 지역 군부대 장병은 행사나 출장, 회의를 최소화해야 하고 유흥시설 방문은 금지된다. 영내 종교시설 예배 참석은 전체 좌석의 30%로 이내로 제한되고 예배 후 모임이나 식사는 금지된다. 민간인 강사들의 영내 강연도 중단된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 202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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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탄소 전쟁의 시작[오늘과 내일/이성호]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습니다.” 지난달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내용이다. 문장은 짧지만, 의미는 간단치 않다. 한국이 처음으로 탄소 중립 목표 시기를 밝힌 것이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세계 주요 국가와 기업이 뛰어든 글로벌 탈(脫)탄소 전쟁을 향한 ‘참전 선언’이다. 문 대통령은 3일 국무회의에서도 “결코 쉽지 않은 무거운 약속”이라고 말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제로(0)’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 생리현상 중에도 온실가스가 나온다. 전 세계 가축이 온실가스 절반을 내뿜는다는 분석도 있다. 세계 인구는 약 70억 명, 가축은 약 280억 마리다. 일상생활과 산업활동에서 온실가스 배출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배출한 만큼 줄여야 한다. 그렇게 순수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이 탄소 중립이다. 그래서 ‘넷(net) 제로’ 선언이다. 뜬금없이 나온 게 아니다. 70개 넘는 국가가 우리보다 먼저 선언했다. 동북아 3개국은 비슷했지만 굳이 순서를 따지면 한국이 꼴찌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는 지난달 26일 취임 후 첫 국회 연설에서 처음 밝혔다. 한국과 같은 2050년까지 온실가스 실질 배출량을 없애겠다는 목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9월 22일 유엔총회 화상연설을 통해 “2030년 전까지 배출량의 정점을 찍고 2060년 전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중국은 세계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다. 2018년 기준 약 100억 t. 두 번째로 많은 미국이 약 54억 t이니 비교 불가인 1위다. 그런 나라가 순(純)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수도 의심받는 중국 통계여서 잘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판단은 다르다. 그린뉴딜 정책 수립에 참여하는 국내 한 전문가는 “중국의 선언이 그냥 나왔을 리 없다. 정부 차원에서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탄소 중립으로 가도 세계 경제를 주도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섰을 것’이라는 뜻이다. ‘겨울이면 석탄난로 팍팍 때는’ 나라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치부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중국의 태양광 발전량은 2018년 세계 발전량의 3분의 1이다. 세계 최대의 태양광 모듈 생산국이 중국이다. 계산이 선 곳은 중국뿐이 아니다. 글로벌 기업도 마찬가지다. 에너지 기업은 물론이고 자동차와 화학 철강 식품 섬유까지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국내도 다르지 않다. SK그룹 8개 관계사는 2050년까지 사용 전력량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기로 했다. 몇 년 전까지 수소차에 매달리던 현대자동차는 이제 전기차에도 집중하고 있다. 둘 다 충분히 가치 있는 시장이 된 것이다. 기업의 발 빠른 변화에는 이유가 있다. 탄소 중립을 주도하는 유럽연합(EU)은 2023년 탄소국경세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국가에서 수출한 제품에 관세를 매기는 것이다.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고 의회마저 민주당이 차지하면, 환경 정책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때의 정반대로 향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후퇴시킨 걸 만회하려 더욱 속도를 낼 가능성도 있다. 2050년이 너무 멀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출발선이 아니라 결승선이다. 1750년 1차 산업혁명 이후 300년에 맞춰 예고된 탄소혁명이다. 국가 간, 기업 간 총성 없는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한국의 첫발은 오히려 늦었다.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starsky@donga.com}

    • 202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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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방역 대신 지속가능한 방역이 필요하다[오늘과 내일/이성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남편인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의 ‘미국행’을 보며 느낀 감정을 분노라는 한마디로 표현하는 건 너무 단순하다. 속내를 뜯어보면 꽤나 복잡하다. 기본적으로 분노를 자아낸 건 박탈감이다. 엄두도 못 내는 해외여행을 누군가는 자유롭게 즐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여기에 당사자가 해외여행 업무를 담당하는 외교부 장관의 배우자라는 점에서 배신감이 더해졌다. 고백건대 수억 원짜리 요트로 카리브해를 여행한다는 꿈에 대한 부러움도 없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걱정이 들었다. 당사자도 아닌, 남편의 사생활을 놓고 흥분하는 모습이 괜히 좀스럽게 보이는 건 아닌지 해서다. ‘은퇴한 노(老)교수의 버킷리스트 실현조차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쿨하지 못한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도 했다. 물론 이 교수 말고도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은 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국에 보통 시민이 여행을 위해 출국 비행기에 오르는 건 쉽지 않다. 여전히 주위에는 우리 회사, 우리 학교, 우리 아파트에서 ‘1호 확진자’가 될까 봐 떨고 있는 사람이 많다. 결혼하는 부부에게 신혼여행지를 물어보면 열에 여덟은 제주, 나머지는 강원도 아니면 부산이다. 해외로 신혼여행을 가며 회사에 “2주일 자가 격리 후 출근하겠다”고 통보할 용감한 직장인은 없다.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공동체 안전을 위해 어느 정도 사생활 양보가 필요하다는 건 불문율이 됐다. 추석 연휴 이동을 자제하는 정부의 권고에 종갓집 종손들까지 나서서 차례를 취소할 정도다. 추캉스(추석+바캉스) 인파도 있었지만, 대다수 시민은 가족끼리 집 근처 식당 가는 것도 조심스러워한다. 여름방학 내내 수영장 가자는 아이들 성화를 달래느라 부모들은 진땀을 뺐다. 그런 시민의 자발적 희생과 참여가 K방역의 핵심이다. 그래서 쿨하지 못하게, 남의 사생활 때문에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 교수의 출국은 단순히 ‘내로남불’ 논란을 떠나 은연중 방역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각자의 마음에 정해진 방역 마지노선이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많은 시민이 거리 두기에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다. 지금까지보다 앞으로의 코로나19 방역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최근 상황을 보면 정부는 일단 손쉬운 방역을 선택하는 모습이다. 13일 시행되는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대표적이다. 버스 지하철 등 거의 모든 일상공간이 대상이다. 다음 달 13일부터 노마스크는 물론이고 턱스크(입과 코를 제대로 가리지 않은 상태)에도 1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개천절인 3일 서울 도심 집회를 막은 것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확산 우려는 당연하지만, 집회를 전면 차단하는 게 유일한 해법인지 의문이다. 코로나19 종식 때까지 이런 방식으로 계속 집회를 막을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전문가 11명과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은 올해 말 개발돼도 내년 11월에야 미국인 대부분에게 접종이 가능하다. 영국 자선단체 옥스팜은 2023년에야 세계 인구 모두가 백신 접종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위드(with) 코로나’는 앞으로 길게 3, 4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 최근 전문가 사이에선 ‘지속 가능한 방역’이 주목받고 있다. 좁게 보면 치료 체계의 변화를 의미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 시스템을 바꿀 방역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강제와 처벌 중심의 방역정책은 금세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 의지를 꺾어 버리면 K방역의 지속은 불가능하다.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starsky@donga.com}

    • 202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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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 교육에 아이들 더 맡겨야 하나[오늘과 내일/이성호]

    2학기는 나아질 줄 알았다. 조금 달라지기만 해도 좋았다. 하지만 나아진 것도, 달라진 것도 없다. 아이들은 여전히 ‘집콕’이고, 지켜보는 부모는 애가 탄다. 월요일에 중학교 3학년인 큰아이의 실시간 원격수업이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온라인을 통해 처음 하는 실시간 수업이었다. 주말 내내 줌(Zoom·화상회의 서비스) 이용법을 설명했다. 정보기술(IT) 기기에 익숙한 세대이니 지루했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가만있을 수 없는 게 부모 마음이다. 기대도 있었다. 사실 올 1학기 교사들도 참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2학기에는 교사가 공들여 준비한 원격수업에 학생들이 충실히 참여하는 모습을 바랐다. 하지만 첫 실시간 원격수업의 끝은 너무 황당했다. 사용시간 제한(줌은 무료로 40분간 이용할 수 있다. 아니면 돈을 내야 한다.)에 걸려 수업 도중에 끝난 것이다. 아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선생님이 줌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더라고….” 최근 수도권의 한 학교는 주변에 확진자가 발생하자 등교를 중단했다. 혹시 몰라 온라인으로 교직원 대책회의를 열었다. 그런데 상당수 교사가 줌 사용법을 몰랐다. 결국 교사들은 학교로 향했다. 코미디 같지만 현실이다. 서울의 한 학교 교사가 말했다. “줌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교사가 얼마나 될 것 같아요? 한 학교에 한두 명밖에 안 돼요.” 2학기가 됐지만 실시간 위주로 원격수업을 진행 중인 학교는 여전히 손에 꼽는다. 대부분 미리 만든 영상자료 중심으로 수업을 한다. EBS 자료, 아니면 유튜브 영상이다. 매일 3, 4개의 영상 링크가 학생들에게 전달된다. 집집마다 ‘유튜브 전쟁’이 벌어지는 이유다. 유튜브 수업이 불가피한 점도 있다. 필요한 영상 자료는 많은데 저작권 시비까지 피해야 한다. 교사들 사이에선 ‘고소당하지 않으려면 안전한 건 유튜브뿐’이라는 자조가 나온다. 그래도 정도가 지나친 경우가 많다. 서울의 한 유치원은 원격수업 기간에 이용하라며 30개가 넘는 유튜브 영상을 안내했다. 한 초등 3학년생 학부모가 허탈하게 말했다. “그동안 아이의 스마트폰 중독을 피하려고 정말 눈물 나게 노력했는데….” ‘위드(with) 코로나’에 맞춰 2학기를 준비한 교육부도 별반 달라진 것 같지 않다. 학생들은 매일 아침 온라인을 통해 스스로 건강진단을 한다. 증세가 있으면 등교가 제한된다. 그런데 웹사이트에서 진행하던 건강진단이 7일 갑자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를 알고 있었던 학부모는 별로 없었다. 갑자기 이용자가 늘면서 앱 내려받기는 물론이고 웹사이트마저 오전 내내 불통이었다. 뒤늦게 안내 받은 부모들은 집이나 직장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교육당국이 예고 없이 금요일에 앱 전환을 학교에 알려 학부모에게까지 전달되지 못한 탓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원격수업 환경이 곧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포기하는 게 맞다. 차라리 담임교사가 일주일에 한 번씩 학생에게 전화하는 건 어떨까. 지친 아이들을 위로하고, 작은 일탈을 꿈꾸는 아이들에게 조언 한마디를 해주는 게 지금 필요하지 않을까. 한 학급이 30명 남짓이니, 한 명당 5분 정도면 하루에 1시간도 채 안 된다. 어차피 2학기에도 제대로 된 원격수업이 불가능하다면 이렇게 학교와 선생님의 존재가치라도 잃지 않는 방법을 찾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유튜브만 보느니, 차라리 ‘우리 선생님이 전화할 시간’을 기다리는 게 훨씬 교육적이다.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starsky@donga.com}

    • 20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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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풍 동반 ‘바비’, 볼라벤·링링과 판박이? 이동 경로 보니…

    제8호 태풍 ‘바비(BAVI)’는 서해상을 통해 북상했다. 얼핏 내륙이 아닌 바다로 이동하는 태풍의 경우 피해가 크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동 중에 뜨거운 바다에서 계속 수증기를 공급받기 때문에 강한 위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올라오면 더 큰 피해가 날 수 있다. 2012년 8월 볼라벤과 2019년 9월 링링이 대표적이다. 두 태풍의 이동 경로는 바비와 판박이처럼 비슷하다. 볼라벤은 중심기압이 960hPa(헥토파스칼), 강풍반경 450km의 ‘강한’ 태풍이었다. 바비처럼 강풍이 위력적이었다. 당시 전남 완도에서 최대 순간풍속이 초속 51.8m를 기록했다. 볼라벤은 시속 21km의 속도로 이동해 북한으로 상륙했다. 인명 피해 11명, 재산 피해 6364억 원이 발생했다. 지난해 링링도 비슷하다. 중심기압이 950hPa, 강풍반경 390km의 ‘강한’ 태풍이었다. 흑산도에선 순간적으로 초속 54.4m의 강풍이 불었다. 인명 피해는 4명, 재산 피해는 333억 원이었다. 바비는 ‘매우 강한’ 태풍으로 볼라벤, 링링보다 더 위력적이다. 한국 기상청과 일본 기상청, 미국 합동태풍경보센터는 바비의 이동 경로를 비슷하게 예보했다. 다만 27일 상륙 지점은 약간 차이가 있다. 한국 기상청은 27일 오전 바비가 북한 황해도 옹진반도에 상륙한 뒤 28일 오전 중국 내륙에서 소멸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 기상청은 옹진반도를 스쳐 지나가 그보다 위에 있는 신의주 근처로 진입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합동태풍경보센터는 일본 기상청 예보보다 조금 더 서쪽으로 이동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세 기관 모두 한반도 서해안 대부분이 태풍 영향권에 들어갈 것으로 분석했다.이성호기자 starsky@donga.com임우선기자 imsun@donga.com}

    • 2020-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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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각이 키운 ‘괴물 기후’[오늘과 내일/이성호]

    추워야 겨울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때는 정말 추웠다. 2012년에서 2013년으로 넘어가던 때다. 아직 12월 초순이었던 9일 서울 지역 수은주는 영하 13.2도를 찍었다. 이날 강원 철원의 기온은 영하 21.7도까지 곤두박질쳤다. 해가 바뀌자 더 추워졌다. 최저기온이 영하 10도 안팎인 날이 11일 동안 이어졌다. 영하 29.5도(강원 용평)를 보인 곳도 있었다. 2월 어느 날에는 서울 기온이 영하 15.8도까지 떨어졌다. ‘모스크바보다 추운 서울’은 농담이 아닌 현실이었다. 의류 매장마다 기능성 내복을 사기 위한 줄이 길게 이어졌다. 2010년 말부터 나타난 겨울 한파는 그렇게 세 차례 이어진 뒤 수그러들었다. 당시 한파의 가장 큰 원인은 북극이다. 북극 지역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찬 공기를 가두는 제트기류의 힘이 약해졌다. 원형을 유지해야 할 기류는 마치 리듬체조 선수의 리본처럼 춤을 췄다. 중위도 지역까지 처진 기류 탓에 북극의 찬 공기가 여러 나라에 추위를 몰고 왔다. 파도처럼 출렁이는 기류 탓에 비슷한 위도여도 나라마다 날씨가 달랐다. 북반구 겨울 날씨는 복불복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기후변화 정책에 반대하는 학자나 정치인은 쾌재를 불렀다. “이렇게 추운데, 지구 온난화가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음모론이 퍼졌다. ‘권력 이동’을 꿈꾸는 일부 글로벌 기업과 자본가, 선진국 정치인이 결탁한 결과가 기후변화라는 것이다. 결론 없는 논쟁 속에 그해 한파는 잊혀졌다. 올해 한반도는 전례 없는 여름을 나고 있다. 11일로 올 장마는 역대 최장기(49일·2013년)와 같은 기록을 썼다. 공교롭게 원인을 제공한 건 바로 북극이다. 10년 전 3년 연속 한파 때와 같다. 달라진 건 겨울이 아닌 여름에, 그리고 추위가 아닌 물폭탄이 내린 것이다. 그 대신 한반도 여름 날씨를 쥐락펴락하는 북태평양고기압은 영 맥을 못 추고 있다. 북극 찬 바람에 밀려 좀처럼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가 두 세력의 전장(戰場)이 되면서 엉뚱하게 장마전선이 오도 가도 못한 채 하염없이 비를 내리고 있다. 치열한 ‘남북 대치’는 이때만이 아니다. 2018년 여름에 닥친 사상 최악의 폭염은 올해와 정반대 상황 탓이었다. 그해 여름 북태평양고기압은 전례 없이 폭발적으로 세력을 키웠다. 또 북극의 찬 공기는 제트기류의 봉쇄를 넘어서지 못했다. 지구 온난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상상 이상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더 이상 따뜻한 겨울과 뜨거운 여름에 머물지 않는다. 갈수록 예측불허의 이변을 만들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이례적 10월 태풍도 마찬가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창궐의 원인을 기후변화에서 찾는 전문가가 많다. 달라진 기후가 동식물 생태계를 바꿔놓은 탓에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을 불러왔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당장 코로나19까지 의심할 필요도 없다. 뎅기열을 유발하는 흰줄숲모기는 이미 국내 도심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열대지방에 사는 이집트숲모기는 20여 년 뒤 한반도에 뿌리 내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겨울 대부분 춥지 않은 날씨가 반가웠을 것이다. 하지만 올여름 곳곳에 대벌레 매미나방 같은 벌레 발생이 늘어난 건 그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 환경부가 펴낸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한반도 기온 상승 폭은 지구 전체 평균의 2배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다. 그러나 7년 전 한파, 2년 전 폭염의 교훈을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다. 한파와 폭염 그리고 이번 장마까지, 범인은 같다. 논쟁을 시작하는 건 늦었다. 행동하지 않고 쉽게 잊으면 또 다른 괴물이 찾아올 것이다.이성호 정책사회부장 starsky@donga.com}

    • 20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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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드 코로나’, 대학에 위기이자 기회[오늘과 내일/이성호]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만난 수도권 한 사립대 총장의 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덮친 올 1학기를 돌아보며 한 말이다. 고개를 가로젓는 얼굴에 허탈한 미소가 흘렀다. 어디나 비슷하지만 대학 역시 올 상반기는 혼돈 그 자체였다. 현장에서 가장 힘겨워한 건 외국인 유학생 관리다. 학기에 맞춰 입국시키는 것도, 들어온 학생을 관리하는 것도 어려웠다. 교직원들은 기숙사나 원룸에 격리된 유학생에게 도시락은 물론 간식용 치킨까지 배달했다. 한 사립대 총장은 과일을 들고 유학생들의 숙소를 직접 찾았다. 입학처와 학생처, 국제교류 담당부서 사이에선 유학생 관리 업무를 놓고 이른바 ‘관할 논쟁’도 벌어졌다. 갑자기 시작된 온라인 강의도 제대로 진행될 리 없었다. 실시간 강의는 고사하고 녹화도 못해 몇 년 전 영상물을 재탕한 교수들도 있었다. 온라인 시험 때는 학생들의 집단 부정행위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어쩌면 실패한 학기일 수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한 취업정보 사이트에서 대학생 1050명에게 1학기 온라인 강의 만족도를 물었다. 만족은 44%, 불만족은 31%였다. 대학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70%가량의 교수가 온라인 강의에 만족했다고 한다. 비슷한 이유가 있다. 준비된 학교였고, 소통하는 학교였다. 서울의 한 사립대는 지난해 2학기 때 대형 강의실마다 영상녹화 시스템을 갖췄다. 교수가 평소처럼 강의만 하면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수도권 한 대학의 교수들은 실습이 불가피한 간호대 학생들을 위해 새벽에 나와 방호장비를 직접 챙겼다. 실습수업이 제대로 진행되면 온라인 강의의 만족도도 자연스레 높아졌다. 2학기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장밋빛 전망대로 코로나19 백신이 나와도 우리 몸에 주사를 놓기까진 적어도 1년 이상 걸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올 2학기는 각 대학에 위기이면서 기회이다. ‘위드(with) 코로나’에 최적화한다면 경쟁력을 단번에 높일 수 있다. 하지만 백신이 나올 때까지 버틸 생각이라면 한순간에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 총장은 “솔직히 1학기는 준비할 시간이 없다는 걸 모두 알기 때문에 어수선한 채 지나갔다”며 “하지만 2학기는 상황이 다르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학생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발 빠른 대학은 2학기 준비에 한창이다. 대부분 다양한 방식의 온·오프라인 강의를 병행하며 이른바 ‘캠퍼스 거리 두기’를 지킬 계획이다. 하지만 해결할 문제가 많다. 공통의 고민은 집이 먼 학생들의 숙소 문제다. 오프라인 강의가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학생들이 비싼 돈을 주고 원룸에 살 수가 없다. 방역 탓에 기숙사 풀가동도 어렵다. 그래서 일부 대학은 기숙사를 에어비앤비처럼 운용하는 걸 고민 중이다. 원하는 기간만큼 숙박업소보다 저렴한 가격에 빌려주는 것이다. 물론 그래도 감염 위험을 100% 피할 순 없다. 성인인 학생들의 캠퍼스 밖 사생활까지 대학이 관리할 순 없어서다. 이보다 조금 먼 미래까지 본다면 앞으로 입학할 이른바 ‘코로나 수험생’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초중고교생 학력 저하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코로나19는 더욱 심각한 격차를 낳고 있다. 언젠가는 대학이 맡아 키워야 할 인적 자원이다. 떨어진 학력을 높일 교육도 필요하다. 당장 올 하반기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준비해야 한다. 위드 코로나 시대가 준비된 대학에는 충분히 기회가 될 수 있다.이성호 정책사회부장 starsky@donga.com}

    • 2020-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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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차 대유행 막으려면 현장부터 챙겨라[오늘과 내일/이성호]

    “우유 좀 사다 주세요.” 한밤중 보건소에 전화를 건 민원인이 다짜고짜 말했다. 그는 해외에서 입국해 자가 격리 중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격리되면 지방자치단체가 기본 생필품을 전달한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추가 메뉴’를 요구하는 격리자가 많다. 심지어 집에 와서 밥을 해 달라거나 애완견 사료를 구입해 달라는 요청도 있다. 그나마 철없는 격리자는 낫다. 방역 현장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고성이 끊이질 않는다. 아파트 단지에서 역학조사를 하면 “몇 동 몇 호에서 확진자가 나왔냐”며 따지듯 묻는 주민들이 꼭 있다. 조사 중이라고 답하면 “만약에 내가 출근했다가 확진되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며 윽박지른다. 해외 입국자를 아파트에 오지 못하게 하라는 주민들도 있다. 해외에서 오면 자신의 집에서 2주간 격리 생활을 한다. 그런데 말려야 할 관리사무소까지 나서서 “무조건 보건소가 막아라”라고 요구했다. 불가능한 민원인데도 주민들은 보건소 직원에게 “그러니 공무원이 무식하단 소릴 듣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보건소의 여직원은 자가 격리 이탈자를 어렵게 찾아낸 뒤 “고발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상대방은 “시민을 협박하느냐”며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내뱉었다. 해당 여직원은 충격을 받고 결국 다른 부서로 옮겼다. 방역의 최일선인 보건소의 업무 과부하는 이미 위험 수위다. 감염병 담당 직원들에게 휴식이나 주 5일 근무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근무 체계는 모두 24시간이다. 퇴근해도 사무실에서 쪽잠 자는 직원이 대부분이다. 확진자가 언제 발생할지 몰라서다. 겨우 집에 가도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는 연락이 오면 새벽에라도 현장에 나간다. 아파도 방법이 없다. 치료도 순번 정해 돌아가면서 할 정도다. 과로로 쓰러져도 대체할 인력이 없어 수액 맞고 다시 역학조사 현장이나 선별진료소로 향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여성 직원들의 고충은 더 심하다. 경기지역 한 보건소 감염팀장은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직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정말 죽을 것 같다’는 표현”이라고 말했다. 이 팀장은 “얼마 전까지는 그래도 공무원이라는 사명감으로 일했지만 이제는 더 버틸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요즘 대부분 수도권 보건소의 상황이 이렇다. 직원들이 직접 본보 기자들에게 하소연한 내용이다. 최근 수도권에는 하루 수십 명씩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쏟아지고 있다. 확진자 한 명이 발생하면 접촉자와 자가 격리자가 100명, 200명 나오는 게 기본이다. 바쁘고 힘들다는 표현으론 설명이 어렵다. 그야말로 전장(戰場)이다. 방역당국은 연일 2차 대유행을 경고하고 있다. 그러면서 질병관리본부 ‘청’ 승격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17일 브리핑에선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무회의 통과를 알리며 “2차 대유행을 고려할 때 국가적으로 꼭 필요하고 시급한 과제”라고 밝혔다. 일단 논란이 됐던 국립보건연구원은 승격될 질병관리청에 남게 됐다. 보건 분야를 담당할 보건복지부 2차관도 신설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만큼 조직 개편의 폭이 넓어졌다. 향후 시행령에 담아야 할 내용도 많아지고, 준비 과정도 복잡할 것이다. 새로운 조직이 제자리를 잡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현재 확산세를 보면 오히려 2차 대유행의 시기는 당겨질 수 있다. 그만큼 시시각각 달라지는 현장 상황이 중요하다. 조직 개편도 중요하지만 더 늦기 전에 현장의 과부하를 해결할 대책이 필요하다. 자칫 어느 한 곳에 작은 틈이 생기면 가을이 오기 전에 수도권 방역의 둑이 무너질 수 있다.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starsky@donga.com}

    • 2020-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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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교가 끝이 아니다[오늘과 내일/이성호]

    “정말 잔인하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가리켜 한 말이다. 바이러스가 가족 친구 등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감염시키는 탓이다. 그런데 요즘 코로나19 발생 상황을 보면 이 표현도 부족해 보인다. 참 잔인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똑똑한 바이러스다. 120일 넘게 이어진 상황을 되돌아보면 코로나19는 늘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한쪽을 막으면 어김없이 다른 쪽을 파고들었다. 처음 신천지예수교(신천지)를 시작으로 은혜의강교회 같은 종교시설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 의료기관도 예외는 아니다. 경북 청도 대남병원, 봉화 푸른요양원, 대구 제이미주병원 등에서 많게는 200명 가까운 확진자가 나왔다. 방역 초점이 주로 교회와 의료기관을 향하자 코로나19는 다른 틈을 찾았다. 서울 구로 콜센터는 그래서 아픈 기억이다. 물론 사업장을 방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콜센터 같은 형태의 밀집 사업장은 사전에 집중 방역 대상으로 관리했어야 했다. 비슷한 이유로 발생한 것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 클럽발 집단 감염이다. 클럽발 감염은 노래방과 주점 같은 공간을 발판 삼아 수도권에 산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바이러스가 방역망의 허점을 찾아 공격하면, 방역 당국이 수비에 나서는 형국이 이어지고 있다. 방역망의 빈틈을 치고 빠지는 코로나19 ‘게릴라전’이다. 교훈도 있다. 공격만큼 수비를 잘하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 인천 팔복교회와 온사랑장로교회가 대표적이다. 클럽발 확진자로부터 감염된 학생 2명이 다닌 교회다. 그러나 신도 700여 명 중 확진자는 없었다. 두 교회 신도는 예배 때 늘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했다. 지정좌석제를 통해 거리 두기를 지켰다. 삼성서울병원도 눈여겨볼 만하다. 간호사 4명 확진 후 1000명이 넘는 의료진과 환자 중에선 아직 추가 감염이 나오지 않았다. 간호사 지인의 감염만 확인됐다. 물론 아직 검사가 진행 중이라 병원 내 확진자가 나올 수 있다. 그래도 방역 당국은 대규모 확산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이유가 있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전체 환자 186명 가운데 85명이 삼성서울병원에서 나왔다. 뼈아픈 경험은 감염병 대응 시스템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자 병원 안에서 ‘묵언(默言) 식사’ 지침까지 시행할 정도다. 교회와 병원 모두 방역 수칙만 제대로 지키면 나와 이웃을 지킬 수 있다는 원칙을 다시 확인시켰다. 5차례 연기 끝에 20일 고교 3학년의 첫 등교가 시작됐다. 하지만 첫날부터 75개 학교에서 정상 수업을 하지 못했다. 인천 66개 학교의 고3 학생은 21일 실시된 전국연합학력평가를 온라인으로 치렀다. 대구에서는 등교 후 처음으로 학생 확진이 확인됐다. 학교 가는 학생도, 이를 바라보는 학부모도 여전히 불안하다. 정부는 고3은 물론 다른 학년의 추가 등교 연기에도 부정적이다. 고3의 입시 준비를 감안해야 하는 정부의 고민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걱정스러운 건 등교를 생활 속 거리 두기(생활방역)의 마지막 단계로 여기는 정부 안팎의 시선이다. 자칫 ‘학교 방역’이 전부라는 신호로 비칠 수 있다. 등교는 재유행을 막기 위한 새로운 방역의 시작이다. 학교 밖 방역이 더 중요한 이유다. 교실과 급식실 소독만 신경 쓸 게 아니라 학원과 스터디카페, 코인노래방과 PC방 등 ‘학생 동선’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 코로나19가 공격할 빈틈을 먼저 찾아내야 외부 유입으로 인한 학교 내 감염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래야 학업과 방역이 함께 갈 수 있다.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starsky@donga.com}

    • 2020-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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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능후 복지장관 “백신-치료제 나오기 전까진 해외관광 어려울 듯”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64)은 5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예전처럼 해외로 관광을 떠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국내뿐 아니라 외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나아져도 과거와 같은 해외 활동이 어렵다는 뜻이다. 그는 “현재도 통제 가능한 범위에서 필수적으로 해외를 다녀야 하는 외교관과 경제인에 한해 정부가 보증하면 해외 교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비(非)필수인원에 대해서도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지만 박 장관은 “범세계적인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날 인터뷰는 서울 중구 세종대로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1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2차 대유행 가능성이 높은가. “코로나19는 언제든지 빠른 속도로 확산될 수 있다. 백신,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거리 두기를 완화하는 것은 사실 대단히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 생활이 지장을 받고 있기에 조심스럽게 생활과 방역을 동시에 하자는 것이다. 약 40만 명(2월 말 기준)으로 추산되는 국내 미등록 외국인(불법 체류자)도 취약 요소다. 기존 방역망이 포착하지 못한 숨은 감염원이 있을 수 있다. 특히 농어촌 노동자에 대해 지방자치단체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코로나19와 인플루엔자(독감)가 동시에 발생하면 왜 위험한가. “호흡기 환자가 발생했을 때 원인이 코로나19인지 인플루엔자인지 빨리 선별하지 못하면 의료계에 큰 부담이 된다. 인플루엔자 증상은 코로나19 증상과 비슷한데 1년에 약 280만 명이 감염된다. 올해는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인플루엔자가 조기에 종식됐다. 코로나19인지 선별할 수 있도록 진료체계를 정비하고 있다. 호흡기 질병에 걸려도 감염이 두려워 병원을 가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호흡기 전담 클리닉’을 늘리겠다.” ―사태 초반 중국인 입국금지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많았다. “내국인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중국을 막으라는 말은 아무런 실효성이 없는 얘기였다. 중국발 입국자 중 중국인보다 한국인 확진자가 더 많았다. 올 1월 1일부터 이달 5일까지 중국발 한국인 입국자(39만9484명) 중 12명만 확진 판정을 받았다. 외국인 62만4621명 가운데 중국인 확진자는 5명에 불과했다. 발생 현황 분석을 바탕으로 한 적절한 조치였다.” ―국내는 괜찮지만 일본 상황은 심각하다. 도움을 줄 계획이 있나. “15일에 한중일 보건장관 회의가 화상으로 열린다. 세 나라 보건장관이 따로 회의하는 건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이다. 최근 일본 내 코로나19 발생 상황이 심각하다. 이번 회의를 통해 우리가 진단시약을 지원하는 등 한일 간 구체적인 협력방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와 소통은 어땠나. “정은경 본부장과 매일 두 시간씩 토론한다. 복지부는 질본과 자유롭게 온갖 의견을 나눴다. 과거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드라이브 스루 검사, 생활치료센터가 그렇게 나왔다.” ―질병관리본부의 ‘청’ 승격에 관심이 많다.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가칭)으로 승격하는 내용을 담은 원포인트 조직개편안을 다음 달 21대 국회가 원 구성을 마치는 대로 제출할 예정이다. 코로나19 종식 시기를 알 수 없기 때문에 2차 유행에 대비해 서둘러 추진하려고 한다. 현재 정 본부장과 긴밀하게 협의하는 중인데 지방조직 신설 등이 담길 예정이다.” ―K방역(한국의 방역체계)을 평가한다면…. “우리 사회가 가진 여러 역량이 집결된 결과라고 본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우수성에 기반한 메커니즘 덕분이다. 평소엔 민간의 효율성, 위기 시에는 공공성이 결합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다. 국내 의료체계는 공공의료가 병상의 경우 8.2%, 의사인력은 9.6%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민간 의료기관이 이번 사태에서 병상을 비워주고 환자 이송을 받아주는 등 대부분 질서정연하게 움직여줬다.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병원이지만 국가가 관리할 수 있다.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가장 큰 특징이자 다른 나라는 쉽게 가질 수 없는 체계다.”대담=이성호 정책사회부장 starsky@donga.com정리=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 2020-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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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 시작된 새로운 일상[오늘과 내일/이성호]

    “이거 언제 끝나?” 요즘 만나는 사람 열에 아홉이 묻는 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묻는 것이다. 대답은 항상 같다. “안 끝납니다.” 반응도 비슷하다. 대부분 ‘나도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짓고는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야?”라고 묻는다. 지난달 22일 시작된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한 달을 넘겼다. 강도는 완화됐지만 시한인 5월 5일까지 아직 열흘 넘게 남았다. ‘공식적인’ 기간만 그렇다. 2월 말부터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한 걸 감안하면 두 달이 넘는 셈이다. 미국과 유럽처럼 “못 살겠다”는 시위 한번 없는 걸 보면 한국인의 참을성이 새삼 대단해 보인다. 그 덕분에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최근 6일째 20명 이하에 머물고 있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코로나19를 ‘방심을 부르는 고약한 바이러스’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아직 확인되지 않은 특성이 많아서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끝이 아니라 생활 속 거리 두기(생활방역)로 바뀌는 이유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이후 자신과 가족의 일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일상은 이미 시작됐다. 언제부턴가 외출할 때 마스크를 챙기는 게 자연스럽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마스크가 없으면 좌불안석이다. 스마트폰이 없을 때와 비슷하다. 일종의 마스크증후군이다. 맛집 앞에 줄을 서면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앞 사람과 1m 정도 거리를 두는 것도 익숙하다. 4·15총선은 생활방역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체험현장이었다. 발열 체크와 손 소독을 하고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느라 1, 2시간씩 기다려야 했지만 항의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28년 만에 가장 높은 투표율이 나온 걸 보면 이제 많은 사람이 달라진 일상에 꽤 익숙해진 셈이다. 30일 부처님오신날을 시작으로 다음 달 5일 어린이날까지 징검다리 휴일이다. 코로나19 사태 후 첫 ‘황금연휴’다. 4·15총선보다 더 큰 생활방역의 시험대인 셈이다. 한 달 전만 해도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연휴 기간 제주에 하루 2만∼3만 명의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전망됐다. 최근 1만3000∼1만6000명 정도로 줄었는데 약 2배 규모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하루 4만5000명 수준이었다. 강원 동해안 지역의 유명 콘도와 리조트도 예약이 거의 찼다고 한다,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기대 반, 걱정 반일 것이다. 침체된 지역경제에 작게나마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겠지만 자칫 확진자가 발생하면 그동안의 방역정책이 물거품이 될 것이다. 그래서 제주도는 연휴 기간 공항과 항만 방역을 대폭 강화한다. 강원도는 민간 업소 2100여 곳에 소독제를 지원한다. 소독용 알코올 솜 700만 개를 관광객에게 제공하는 계획도 세웠다. 지자체만으로는 부족하다. 민간의 노력이 절실하다. 매표소마다 최소 1m 이상의 줄 간격을 유지하고, 휴게소나 식당의 테이블을 30% 정도 치우면 어떨까. 당장 그날 손님 회전은 줄겠지만 오히려 ‘감염병 프리’ 업소로 인식될 것이다. 마치 서비스처럼 발열 체크를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정부는 24일 생활방역 세부 지침을 발표한다. 사무실과 대중교통 음식점 등에서 지켜야 할 거리 두기 기준이다. 아마 낯설고 어색한 내용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조금 불편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금 버스와 승용차에서 안전벨트를 매는 것처럼 익숙해질 것이다.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starsky@donga.com}

    • 2020-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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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학 이후가 걱정스러운 이유[오늘과 내일/이성호]

    “레벨D 방호복을 어떻게 입는지도 몰랐습니다.” 얼마 전 한 대학병원 원장이 고백하듯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한 지금 이야기가 아니다. 5년 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한국을 덮쳤을 때다. 그는 당시 대부분의 의료기관이 비슷했다고 말했다. “검체를 어떻게 채취해서 어떻게 검사기관으로 보내는지…. 그런 시스템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메르스 치사율은 20.4%. 백신도, 치료제도 없으니 의료진은 환자 살리기에 매달렸다. 임상기록을 제대로 작성하지도 못했다. 다음 환자라도 살릴 수 있는 귀중한 자료를 남기지 못한 것이다. 결과는 참담했다. 메르스 환자는 186명이었지만 사망자는 38명이었다. 병원 내 감염이 많아 의료진 피해도 컸다. 첫 번째 코로나19 환자 발생 후 두 달이 지났다. 900명 가까이 치솟던 하루 신규 확진자는 최근 100명 안팎에 머물고 있다. 대구경북의 의료 현실은 여전히 열악하다. 하지만 의료 시스템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현장 의료진과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메르스에서 찾는다. 당시 쓰디쓴 경험이 이번에 최악의 상황을 막았다는 것이다. 메르스 사태 후 국내 주요 병원은 정기적으로 감염병 대응 연습을 하고 있다. 감염병 환자가 외래병동이나 응급실에서 발생한 걸 전제로 실전 같은 훈련을 벌인다. 코로나19 발병 후 의료진은 환자의 임상자료를 꼬박꼬박 기록하고 있다. 그 덕분에 바이러스의 특징을 분석한 여러 자료가 나오고 있다. 치사율은 낮고, 전파력은 강한 코로나19의 특성이 조금씩 드러났다. 또 드라이브스루(차량용), 워킹스루(1인용) 선별진료소처럼 새로운 검사 방식이 탄생했다. 아직 코로나19 상황은 안갯속이다. 신규 환자 100명이 적어 보이는 건 신천지예수교(신천지)로 인한 ‘착시효과’다. 게다가 이제 환자 절반은 유럽과 미국 등 해외에서 온다. 코로나19 전선(戰線)이 확대되는 것이다. 방역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국의 방역 정책을 세계 각국에 자랑하기에 시기상조인 이유다. 걱정스러운 건 이르면 다음 달 6일로 예정된 전국 초중고교 개학이다. 정부는 ‘안전한 개학’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4월 5일까지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추진 중이다. 솔직히 전문가들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의견이다. “개학 후 바이러스 유행이 다시 올 가능성을 두고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 개학하려면 학급에서 학급, 학년에서 학년, 학교에서 학교로 확산되는 걸 막을 대책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주치의들이 참여하는 중앙임상위원회의 경고가 차라리 현실적이다. 교육부는 확진자가 나오면 교실이나 복도 또는 학교 전체를 폐쇄할 방침이다. 하지만 교문 걸어 잠그는 게 전부일까? 학부모들은 ‘내 아이가 감염돼 신상이 공개되면 왕따가 되는 건 아닌지, 다시 학교에 갈 수 있을지’도 걱정한다. 교육 대책은 이런 세심한 부분도 다뤄야 한다. 장관이 직접 시연까지 한 원격수업도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저소득층, 농어촌 학생을 위한 ‘디지털 접근성’ 대책도 없다. 개학 연기 4주차에 내놓은 개학 방침이다. 메르스 때 전국의 학교 2900여 곳이 휴업했다. 전례 없는 규모였다. 교육당국은 당시 경험을 통해 무엇을 고쳤는지 묻고 싶다. 그때나 지금이나 바이러스가 사라지기만 기다리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당장 올해 말 코로나20이, 5년 후 코로나25가 닥칠 수 있다. 코로나19 경험만큼은 헛되이 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starsky@donga.com}

    • 2020-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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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신과 공포의 전염이 더 무섭다[오늘과 내일/이성호]

    살인사건이나 조폭의 칼부림 현장을 혼자 취재하다 보면 종종 등골이 오싹하다. 노란 폴리스라인 너머에서 전해지는 정체 모를 싸늘한 기운 탓이다. 월요일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승객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굳어 있었다. 하얀색과 검은색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빛에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지하철역에 멈출 때마다 승객들이 타고 내렸지만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직업 탓이겠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한 뒤 출근길 지하철 승객을 유심히 살펴본다. 그날 승객들의 마스크 착용률을 보고 코로나19의 확산과 소강을 판단하는 것이다. 월요일 지하철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승객이 100명 중 2, 3명에 불과했다. 그럴 만도 하다. 18일 대구에서 31번 환자(61·여) 발생 후 코로나19 사태는 180도 바뀌었다. 확진 환자는 하루에 약 50명, 100명, 200명 안팎씩 늘었다. 매일 2배 규모다. 주말 이틀에만 400명이 넘게 증가했다. 대구와 경북에 많았지만 그동안 환자가 없던 광역자치단체는 물론 서울, 경기의 크고 작은 시군구에서도 속출했다. 월요일 지하철의 분위기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은 분명 재난이다. 포항 지진, 태안 기름 유출, 세월호 침몰 같은 자연·사회재난과 다를 바 없다.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건 당연하다. 다만 감염병 특성상 사상자 규모에 상관없이 불안감이 더 크다. ‘나도 걸릴 수 있다’는 걱정 탓이다. 감염병 같은 이른바 ‘특수재난’의 특징은 또 있다. 피해자를 향한 시선이다. 보통 재난 피해자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감염병은 다르다. 피해자 즉, 확진자에게 비난이 집중된다. 감염의 책임을 오롯이 환자 본인에게 돌리는 것이다. 심민영 코로나19 통합심리지원단장(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사업부장)은 “재난 때마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는 건 일반적이지만 (감염병의 경우) 국민적 비난이 몰리며 심리적 타격이 크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런 불신과 비난이 감염병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키운다는 것이다. 갈수록 대중교통은 물론 학교나 직장까지 기피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출입문 손잡이를 잡아주는 등의 기본적인 공중도덕과 시민의식이 이미 사라지고 있다. 극단적 상황이 되면 단순히 확진자와 같은 지역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동료와 선후배를 멀리할 수도 있다. 개인의 일상이 하나둘 위축되면 사회 전체는 마비될 수밖에 없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실제 많은 사람이 코로나19 감염보다 확진자가 됐을 때 받을 비난을 두려워하고 있다. 유 교수는 “확진자에게 책임을 돌리고 비난하는 분위기가 부메랑처럼 코로나19에 대한 불안을 가중시킨다”고 지적했다. 사람뿐이 아니다. 확진자가 많은 대구와 경북을 상대로 퍼지는 근거 없는 오해와 가짜뉴스도 공포를 부추긴다. 심 단장은 “이럴 때일수록 확진자나 격리자, 의료진에게 지지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정확한 정보 공개도 중요하다. 과도한 공포가 아닌지 객관적 정보를 토대로 스스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불안과 공포를 없앨 가장 중요한 조치는 완벽한 방역이다. 현재 시행 중인 정부의 방역 정책이 실패한다면 심리적 방역 조치도 의미가 없다. 하지만 공포와 불안 앞에 먼저 무너진다면 바이러스에게도 절대 이길 수 없다.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starsky@donga.com}

    • 2020-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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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국종 이후 한국 외상센터의 과제[오늘과 내일/이성호]

    이국종 교수(51)를 처음 본 건 정확히 9년 전이다. 2011년 1월 30일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강당이었다. 이 교수는 소말리아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크게 다친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을 살리기 위해 밤샘수술을 진행했다. 이날 병원 강당에서는 석 선장 경과에 대한 첫 브리핑이 열렸다. 마이크는 유희석 당시 아주대병원장(현 아주대의료원장)이 잡았다. 이 교수는 연단 아래에 앉았다. 두 사람은 브리핑 중 수시로 의견을 나눴다. 두 사람은 설 연휴도 반납하고 석 선장 치료에 매달렸다. 덕분에 석 선장의 상태는 빠르게 호전됐다. 당시 현장을 취재하던 필자에게 이 교수와 유 원장의 모습은 꽤 보기 좋은 파트너로 비쳤다. 두 사람의 역할이 국내 중증외상환자 치료 시스템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였다. 기대에 살짝 금이 간 건 얼마 뒤였다. 그해 2월 13일 병원 내 작은 회의실에서 이 교수를 따로 만났다. 석 선장 치료를 맡고서 처음으로 이 교수가 언론과의 단독 인터뷰에 나섰다. 이 교수는 석 선장 치료 과정과 경과를 자세히 설명했다. 다소 피곤한 모습이었지만 눈빛은 지금처럼 날카로웠다. 그는 중증외상환자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국내 시스템의 문제점을 역설했다. 기사 마감을 위해 인터뷰를 마무리할 즈음, 이 교수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는 질문에 없던 내용을 쏟아냈다. 요약하자면 자신과 외상외과를 둘러싼 병원 안팎의 불편한 시선이었다. 두툼한 자료까지 꺼내 놓으며 꽤 구체적인 이야기를 털어놨다. 그의 말을 수첩에 적었지만 당시 기사에는 제대로 담지 못했다. 관심이 집중된 석 선장 이야기가 먼저일 수밖에 없었다. 석 선장 퇴원 후 이 교수는 말 그대로 ‘영웅’이 됐다. 응급의료법 개정안(이국종법)을 통해 그가 꿈꿨던 중증외상센터가 전국에 설치됐다. 그 모습을 보며 마음 한편에 있던 빚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그가 “오만보다 못하다”고 혹평했던 한국의 외상환자 치료 시스템이 조금이나마 나아졌기 때문이다. 그 후 외상센터에 대한 문제가 이따금 불거질 때마다 있을 수 있는 갈등이라고 여겼다. 이달 18일 이 교수가 외상센터장 사의를 표명했다는 걸 듣고 9년 전 그날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그가 겪었을 마음고생의 시간을 알기에 결심을 바꾸기 어려울 것 같았다. 결국 이 교수는 29일 사표를 던졌다. 예고했던 날짜보다 5일이나 빨랐다. 사표가 수리되면 그는 평교수로 돌아간다. “외상센터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당분간 연구나 강의에 전념할 것으로 보인다. 외상센터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병원 측의 고충도 충분히 공감이 간다. 수익도 나지 않고, 응급의료 전문헬기(닥터헬기) 탓에 민원만 초래하는 외상센터 운영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현장을 지키면서 겪은 이 교수의 어려움과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정부는 이국종 이후의 외상센터와 중증외상환자 치료 시스템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물론 사람 한 명 빠졌다고 당장 시스템이 마비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전국 외상센터는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다. 제2의 이국종이 나올 수도 있다. 정부도 다시 진지하게 따져봐야 한다. 민간병원이 공공성의 무게를 모두 감당할 수 있을지 말이다. 닥터헬기의 부활도 걱정이다. 과연 어떤 의사와 병원이 쏟아지는 민원을 몸으로 막아낼지 의문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 교수 퇴장의 배경을 ‘영웅 뒷바라지에 따른 갈등’이라는 감성적 코드로만 바라보는 것 같아 영 불편하다.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starsky@donga.com}

    • 202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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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금 먼저 온 미래’ 제대로 준비하고 있나[오늘과 내일/이성호]

    “모든 초등학생의 하교 시간을 오후 3시로 맞추자.” 2018년 8월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출산위)가 내놓은 공식 제안이다. 저출산과 사교육 과잉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 중 하나였다. 저출산위는 2023년까지 시범 실시, 2024년 전면 실시라는 로드맵을 마련해 교육부와 협의를 시작했다. 당시 소식을 듣고 반색한 학부모가 많았다. 대부분 맞벌이다. 1, 2학년 어린 자녀를 잠시나마 더 학교에 둘 수 있어서다. 위험한 ‘학원 뺑뺑이’ 대신 좋아하는 선생님과 함께 있는 것에 안심하는 건 당연하다. 형제나 자매, 남매를 둔 학부모는 더욱 반겼다. 형, 누나와 함께 끝나면 더 안전한 하굣길이 될 수 있으니까. 실제 미국에서는 모든 초등생이 같은 시간에 등하교한다. 형제자매가 손잡고 스쿨버스를 타고 내리는 게 자연스럽다. 그로부터 1년 6개월이 지났다. 여전히 초등생들은 학년별로 따로 하교한다. 저출산위가 이런 제안을 했다는 걸 아는 학부모도 별로 없다. ‘초등생 동시 하교안’은 어떻게 됐을까. 확인해보니 공식적으로 ‘유보’ 상태였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사들의 반대가 너무 많았다”고 말했다. 실제 한 조사에서 교사 반대율이 95%를 넘었다. 업무 과중을 이유로 들었지만 책임 문제에 대한 불만도 컸다고 한다. 방과 후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책임지느냐는 것이다. 초등생 동시 하교는 유보가 아니라 사실상 무산된 셈이다. 10일 서울 강서구 염강초교에서 마지막 졸업식이 열렸다. 염강초는 올 3월 문을 닫는다. 서울에서 학생 수 감소로 폐교하는 첫 번째 공립학교다. 서울은 처음이지만 지방에서는 1980년대부터 폐교가 본격 시작됐다. 하지만 교육당국은 여전히 우왕좌왕이다. 서울 마포구 창천초와 창천중 통합은 학부모 반대로 무산 위기에 놓였다. 기존 초·중학교를 합쳐서 운영하는 건 서울에서 처음이다. 그런데 결정 과정이나 기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대학은 어떨까. 지방대학이 벚꽃 피는 순서대로 문을 닫을 거라는 전망은 낙관론이 됐다. 지금은 한꺼번에 망할 거라는 우려가 대세다. 지방의 전문대학에서는 공학 전공 교수가 간호학이나 물리학을 가르치는 등 황당한 일이 비일비재하다. 수도권 대학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해 홍콩 시위가 절정일 때 서울 일부 대학에선 한국과 중국 학생이 물리적 충돌까지 빚었다. 서울의 주요 대학에 중국인 유학생이 그렇게 많은 걸 비로소 알게 됐다. 외국인 유학생이 서울로 몰리자 지방대학은 다시 어려움에 처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신년사에서 올해 ‘각별히’ 챙길 교육정책 10가지를 소개했다. 유아교육 공공성 강화 방안, 민주시민교육 활성화 방안, 고교 서열화 해소 방안, 일반고 역량 강화 방안, 고교 학점제 추진, 학교공간 혁신,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 사학 혁신 방안, 대학·전문대학 혁신 지원 방안, 고졸 취업 활성화 방안. 학령인구 감소 등 인구구조 변화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다짐이 있었지만 새롭거나 구체적인 정책은 보이지 않았다. 다음 달 2019년 연간 출생아 집계가 발표된다. 지난해 10월까지 전국 출생아 수는 25만7965명. 사상 처음으로 30만 명 아래로 떨어질 것이 확실시된다. 미래는 조금 먼저가 아니라 이미 성큼 다가섰다. 그러나 우리 교육당국은 아직도 너무 먼 미래로 생각하는 것 같다.이성호 정책사회부장 starsky@donga.com}

    • 2020-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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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헌고 학생들의 외침 외면하지 말아야[광화문에서/이성호]

    “깨어있는 학생들에게 호소합니다. 교육현장의 주인은 학생과 학부모입니다.”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울려 퍼진 말이다. 이날 서울 인헌고 전국학생수호연합이 주최한 집회에 학생 3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서울시교육청으로 이동해 시위를 이어갔다. 학생들은 “교육 현장을 정치교사들의 특정 사상을 주입하는 사육장으로 만든 ‘교육농단’을 고발하겠다”며 “조희연 교육감은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일부 교사의 ‘정치편향’ 논란을 처음 제기한 최인호 군(18)은 “오늘은 학생 혁명의 날”이라고 표현했다. 학생들의 집회가 열리던 시간 인헌고에서는 최 군과 관련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가 열렸다. 이번 학폭위는 최 군이 학교 측의 대응에 정신적 피해를 주장하면서 열리게 됐다. 최 군에 따르면 정치편향에 대한 내부고발 후인 10월 28일 학교 측은 “학교를 둘러싼 왜곡되고 과장된 보도에 대해서는 여러분(학생)들이 지혜롭게 판단해주길 바란다” “외부 소음들은 시간이 지나면 분명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등의 내용을 방송했다. 최 군은 학교 측의 일방적 주장에 고통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학교 측은 학생 생활지도를 위한 교육행위라는 의견이다. 학폭위 결과는 사흘 후 개인에게 통지될 예정이다. 교사들의 정치편향 문제가 불거진 건 인헌고가 사실상 처음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교사들의 위태로운 교육은 끊이지 않았다. 올 10월 한 중학교 교사는 학생 수행평가를 위해 독후감용 책 두 권을 소개했다. 이어 조건을 달았다. 첫 번째 책을 선택하면 최고 점수로 A등급을, 두 번째 책을 고르면 B등급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공교롭게 첫 번째 책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정치권 인사가 쓴 것이었다. 지난해 한 고교 교사는 수업 중 1980년대 학생운동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진행됐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에 대한 부정적 의견도 덧붙였다. 교육당국은 두 교사에게 어떤 조치를 내렸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징계는 없었다. ‘정치편향의 의도가 없다’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등이 그 이유였다. 두 사례를 포함해 최근 3년간 서울시교육청에 접수된 ‘정치편향’ 수업 민원은 모두 14건. 교사가 특정 정치인이나 정부를 노골적으로 지지 또는 비판하고, 국가보안법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같은 사안에 대놓고 찬반 한쪽을 강조한 경우다. 그러나 1건을 제외한 13건은 감사는커녕 특별장학도 이뤄지지 않았다. 당연히 징계 없이 ‘자체 종결’로 처리됐다. 교권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학생에게 교사의 위상은 부모 못지않다. 정치편향 논란을 교사의 실수 탓으로 그냥 넘기는 게 걱정스러운 이유다. 조사 과정에서 학생 의견이 정확히 반영됐는지도 의문이다. 학생은 무조건 정치 현안에 눈 감고 귀 닫으라는 것이 아니다.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해라”라고 윽박지를 학부모도 이제 많지 않다. 스마트폰과 유튜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뉴스가 쏟아지는 현실에서 그런 말은 통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교사와 학교가 원칙을 지키면 된다. 치우치지 않은, 중립적인 교육이다. 이성호 정책사회부 차장 starsky@donga.com}

    • 2019-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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